'행복'이라는 단어만큼 우리 주변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청년·신혼·고령자 등에게 시세 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의 또 다른 이름마저 행복주택일 정도다. 현대인들에게 행복은 이제 갈구의 대상을 넘어 삶의 목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규율이나 사회적 의미보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실존적 개인주의 세태와도 무관치 않다.
문제는 이 행복을 인생에서 달성해야 할 유일한 목표로 선정하는 강박성 행복 지상주의에 있다. 사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라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렇다 보니 행복해지려 노력하다 오히려 그 반대 늪에 빠지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본지는 동·서양 철학자와 현대 학자, 다양한 계층의 지역민들이 바라본 '행복론'에 대해 살펴보는 기획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다다를 수 있는지 등을 고찰해보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행복이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은 존재가 아니라 고단한 우리 삶에 시원한 물줄기, 삶의 나침반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편집자 주〉
◆서양 철학의 행복론
서양 철학에서 행복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목적과 연결된 개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라는 물음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핵심 주제였으며, 각 시대의 철학자들은 행복의 본질과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나름 고민해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행복을 인간 삶의 최고 목적으로 설정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로운 영혼의 상태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영혼은 이성, 기개, 욕망이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이성이 기개와 욕망을 적절히 통제할 때 영혼의 조화가 이뤄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론을 더욱 체계화했다. 그는 모든 인간 행위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며, 그중에서도 행복은 그 자체로 추구되는 최고선이라고 봤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인간 고유의 기능(ergon)인 이성의 탁월한 발휘를 의미한다. 다만 여기서 이성의 탁월함은 일시적 행위가 아니라 평생에 걸친 덕(arete)의 실천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지성적 덕과 품성적 덕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중용(mesotes)의 원리에 따라 살아갈 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 등장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개인의 내면적 평온함에 주목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hedone)을 행복의 핵심으로 봤으나, 이는 흔히 오해되는 방종적 쾌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추구한 쾌락은 고통과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 즉 아타락시아(ataraxia)였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것, 자연적이지만 불필요한 것, 비자연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구분하고, 절제와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첫 번째 범주의 욕망 만을 추구할 것을 권했다. 참된 쾌락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우정, 학문, 철학적 사색과 같은 정신적 만족에서 발견된다.
스토아 학파는 자연(physis)의 필연적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강조했다. 그들은 우주가 로고스(logos)라는 이성적 원리에 따라 운행된다고 봤으며, 인간 역시 이 우주적 이성을 공유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사건에 집착하지 않을 때 얻어진다. 이들은 통제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는 것을 이성의 오판인 정념(pathos)으로 간주하고, 부동심(apatheia)의 상태를 이상으로 제시했다.
중세 기독교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행복론을 신학적 틀 안에서 재해석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신국론」 에서 인간의 모든 욕망이 궁극적으로 신을 향한다고 봤다. 그는 "주님,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불안합니다"라고 말하며 진정한 행복은 현세적 쾌락이나 성취가 아니라 신과의 합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기독교 신학과 종합해 자연적 덕의 실천을 통한 현세적 행복과 신의 은총을 통한 초자연적 지복(beatitudo)을 구분했다. 그에게 궁극적 행복은 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visio beatifica)을 통해서만 완성된다.
근대 철학은 행복론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범신론적 관점에서 자연, 즉 신이라는 필연적 질서를 이성적으로 인식할 때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념에 예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이성적 인식을 통해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할 때 신에 대한 지적 사랑에 도달하며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칸트는 행복을 도덕의 근거로 삼는 것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에게 도덕적 행위는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의무 그 자체를 위해 수행돼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행복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실천이성비판」에서 그는 덕과 행복이 비례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최고선(summum bonum)의 개념을 제시하며, 이것이 현세에서는 불가능하기에 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도덕적 요청(postulate)으로 제시했다.
공리주의는 행복을 쾌락과 동일시하고,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행복 극대화를 도덕의 원리로 제시했다.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적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밀은 이를 수정하여 질적 공리주의를 제안했다. 그는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며 쾌락에도 고급과 저급의 구분이 있음을 강조했다.
현대 실존주의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창조할 때 비로소 진정성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르트르에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에게는 미리 주어진 본질이나 목적이 없으며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자유는 때로 불안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서양 철학의 행복론은 덕, 쾌락, 신, 이성, 자유라는 다양한 개념을 통해 좋은 삶의 의미를 탐구해왔다. 이 논의들은 단순히 행복해지는 기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담고 있다. 그 시대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반영하면서도 보편적인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들에도 여전한 사유 주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양 철학의 행복론
동양 철학에서 행복은 서양과는 다른 개념적 틀 속에서 이해된다. 서양 철학이 행복이라는 명시적 개념을 중심으로 체계적 논의를 전개했다면, 동양 철학은 '좋은 삶', '올바른 삶', '자연스러운 삶'이라는 포괄적 맥락에서 인간의 이상적 존재 방식을 논했다. 유가와 도가를 중심으로 한 동양 사상은 개인의 내면적 수양과 우주적 질서와의 조화를 통해 궁극적 삶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유가 전통의 출발점인 공자는 인(仁)의 실천을 통한 도덕적 삶을 강조했다. 공자에게 이상적 삶은 외적 조건이나 감각적 만족에 있지 않고 인간다움의 실현에 있다. 인간다움의 기본이 되는 인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의미하며, 이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면 남을 이루게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는 원리로 구체화된다. 공자는 인의 실천이 예(禮)라는 사회적 질서와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예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 질서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실천적 원리다. 공자는 "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실천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며 개인의 사욕을 절제하고 예의 질서 속에서 살아갈 때 진정한 인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봤다.
맹자는 인간 본성의 선함을 전제하고, 본성의 확충을 통해 도덕적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등 사단(四端)을 선한 본성의 단서로 제시하면서 이를 확충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을 완성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맹자는 "나는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我善養吾浩然之氣)"고 하며 의로움을 축적함으로써 얻어지는 도덕적 기운의 충만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호연지기는 외적 조건과 무관하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자신감과 존엄성을 의미한다.
도가의 전통은 유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상적 삶을 제시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강조한다. 유가가 강조하는 인의예지를 인위적 가치로 보고 이를 추구하는 욕망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에, 도(道)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를 때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노자는 "족함을 아는 자는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자는 위태롭지 않으니 오래갈 수 있다(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며 욕망의 절제와 소박한 삶을 통한 평온을 강조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노자에게 진정한 자유는 사회적 규범과 가치로부터의 해방에 있다. 그는 "큰 도가 폐하니 인의가 있고, 지혜가 나오니 큰 거짓이 있다(大道廢有仁義 智慧出 有大僞)"고 비판하며, 인위적 도덕 체계가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왜곡한다고 봤다.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더욱 심화해 인간의 편견과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을 역설한다. 그의 유명한 우화인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궁극적으로는 고정돼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장자는 이러한 구분과 집착을 넘어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서 절대적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장자에게 진정한 자유와 기쁨은 '소요유(逍遙遊)'의 상태다. 이는 모든 구분과 집착을 넘어서 우주와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노니는 경지를 의미한다. 장자는 "천지와 나란히 살고 만물과 하나가 된다(天地與我幷生 萬物與我爲一)"며 자아의 경계를 초월한 절대적 자유의 경지를 묘사한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지인(至人)은 자기가 없고(無己), 신인(神人)은 공이 없으며(無功),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는(無名), 일체의 세속적 가치와 집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다.
이와 같이 동양 철학의 행복론은 도덕적 수양, 본성의 실현, 우주와의 조화라는 주제로 수렴된다. 유가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도덕적 완성을, 도가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무위의 삶을 제시한다. 두 전통 모두 외적 조건보다는 내면의 수양과 태도의 변화를 통해 궁극적 삶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유가가 적극적 실천과 참여를 통한 자기완성을 강조했다면, 도가는 인위를 버리고 자연에 순응함으로써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동양의 행복론은 관계 속에서의 도덕적 실천,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성찰하게 하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
〈도움말 성정홍 성균관대 유학대학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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