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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전망-최창희] '아무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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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 서울지사장
최창희 서울지사장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쏟아진 섬광과 비명, 그 아비규환의 한복판에서 펼쳐진 미군 구출 작전은 한 편의 영화였다. 조종사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압도적인 전력을 쏟아붓는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는 원칙.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넘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지금 페르시아만에는 우리 선박 26척과 선원 173명이 40일 넘게 위험한 상황에 갇혀 있다. 그중 7척의 유조선에 실린 1천400만 배럴의 원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화약고가 되어 선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식량이 바닥나고, 바닷물을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선원들은 새 떼만 봐도 드론 공격을 떠올리며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1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있은 미-이란 간 첫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 결렬로 우리 선원들의 호르무즈 해협 탈출(?)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추후 협상을 통해 종전으로 이어지길 바라지만 협상 성패를 떠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우리 정부가 보여 준 무기력함이다.

최근 주한이란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정부도, 기업도 얼씬조차 안 한다. 미국이 그렇게 겁나는가"라고 일갈(一喝)했다. 자국민이 고립되어 있는데 동맹의 눈치를 보느라 상대국 대사관조차 찾지 못하는 외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휴전이 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지난 9일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뒷북 외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문제는 이란 외교부가 아닌 혁명수비대가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마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통 창구인 대사관 방문조차 주저하면서 굳이 특사를 따로 보내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의 조건으로 '통행료'라는 해괴한 명분을 내걸었고, 이스라엘은 휴전 돌입 수시간 만에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공격했다. 말이 '2주 휴전'이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불안한 상황이다. 우리 선박들이 볼모가 된 상황에서 정부도 진퇴양난일 것이다.

미국 주도 제재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 자국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우회로 찾기'의 고단함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우회로를 찾는 행정적 분주함이 현장에 갇힌 선원들의 절박함을 앞설 수는 없다.

에너지 안보 전략도 아쉽다. 리비아의 대안으로 카자흐스탄을 택한 것은 방향을 잘못 짚었다. 카자흐스탄 석유는 결국 러시아의 통제 아래 있는 코즈미노항을 거쳐야 한다. 길목을 쥔 국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예속(隷屬)일 뿐이다. 실리를 챙길 '전략'은 없고 지도 위 유전만 좇는 아마추어 행정을 반복한 셈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온전히 책임질 때 비로소 그 존재 가치를 증명받는 법이다. 외교적 전략이라는 명분이 국민의 생존권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아무쪼록 앞으로의 미-이란 협상이 부디 경직된 갈등의 벽을 허물고 평화의 문을 여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르무즈 해협의 차가운 바다 위에서 긴 밤을 지새우고 있을 우리 선원들이,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하루빨리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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