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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단군조선의 발상지는 어디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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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북경시 밀운지역에는 백단이란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북경시 밀운지역에는 백단이란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로공신도비명豆(盧公神道碑銘)」에 보이는 고조선의 명산 밀운산(密雲山)

지금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상고사 자료가 없다. 『고조선비사』 같은 우리 조상들이 손수 쓴 자료들을 사대, 식민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모두 잃어버린 탓이다. 환국과 단군조선의 상고사를 다룬 『환단고기』가 있긴 하지만 아직 국내외 학계로부터 공신력을 얻지 못한 상태다.

다행히 청나라 건륭황제 때 국력을 기울여 중국 5천 년 역사상의 문헌을 약 8만 권으로 집대성한 『사고전서(四庫全書)』 안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군조선 관련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1,500년 전 남북조시대 유신(庾信)이 쓴 모용 선비족 「두로공신도비명」에 "조선이 건국했고 고죽이 임금이 되었다. 땅은 고류라 호칭하고 산은 밀운산이라 부른다.(朝鮮建國 孤竹為君 地稱髙栁 山名密雲)"라고 말했다. 고죽국 이전의 고조선 건국을 이야기하면서 고류, 밀운산을 언급하고 있는 이 기록은 단군조선이 하북성 특히 북경시 밀운 지역 일대에서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고 본다.

현재 하북성 동쪽 진황도시에 고죽국 유적이 남아 있고 하북성 탁록시 서쪽 산서성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고류(高柳)로 비정되는 양고현(陽高縣)이 있으며 그 중심에 북경시 밀운구가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하북성 진황도시, 서쪽으로는 산서성 양고현, 그리고 북경시 밀운구 이 일대는 바로 발해의 모퉁이 즉 발해만 북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산해경』에서는 "고조선이 발해의 모퉁이에 있다"라고만 간단히 언급했는데 단군조선의 중심지를 동쪽과 서쪽을 아울러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두로공신도비문」 내용이라고 여긴다.

오늘날 북경시 밀운구를 중심으로 한 그 일대를 왜 단군조선의 발상지 즉 단군의 왕검성이 있던 곳이라고 보는 것인지 그 근거를 사료의 고증을 통해 최초로 밝히고자 한다.

옛 어양군 백단현에 있던 백단산으로 비정되는 운무산, 산 정상에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옛 어양군 백단현에 있던 백단산으로 비정되는 운무산, 산 정상에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밀운산에서 유래한 북경시 밀운구의 역사

「두로공신도비명」은 고조선의 건국을 이야기하면서 밀운산을 언급했다. 이는 고조선과 관련한 우리의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나 만주지역에는 역사상에 밀운산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북경시 북쪽, 고북구 서쪽의 송나라 때까지 조선하로 불렸던 조하(潮河) 부근에 밀운구가 있고 밀운이란 지명은 밀운산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단군조선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앞서 북경시 밀운구의 지난 역사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경시 『밀운현지(密雲縣志)』에 "밀운현의 동남쪽에 높은 산이 있는데 일년 내내 운무가 산을 감싼다. 그래서 구름이 빽빽하다는 뜻으로 밀운산이라고 불렀으며 그 부근에 설치한 현을 밀운현이라 부른다"라고 하였다.

『밀운현지』의 기록에 따르면 밀운현은 역사가 매우 유구한 곳이다. 10만 년 전에 인류의 활동이 있었고 6,000년 전에 촌락이 형성되었으며 신석기시대 후기 순임금이 공공(共工)을 유주(幽州)로 귀양보냈는데 그 공공이 거주했던 공공성(共工城)이 바로 현재의 밀운현 연락촌(燕落村) 남쪽에 있다고 말했다.

"공공을 유주에 귀양보냈다(流共工于幽州)"라는 기록은 『서경』 요전편과 『사기』 오제본기에 실려 있어 그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연락촌을 위시한 그 부근의 여러 지역에서는 학계에서 고조선 유적으로 평가되는 약 4,000년 전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이 발굴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북경시 『밀운현지명지』에는 "연나라 소왕 29년 (서기전 283)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가 동호를 공격하여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5군을 설치했는데 이때 설치한 어양군이 바로 북경시 밀운 지역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중국 서쪽 섬서성에 본거지를 둔 서주(西周)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동쪽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산동성에 제나라와 노나라를, 하북성 남쪽에 연나라를 세웠는데 소왕 시대에 연나라가 전성기를 맞아 동쪽의 고조선을 공격했다.

북경시 동북쪽 밀운 지역은 전국시대 연나라가 공격하기 이전 하, 상, 주 시대에는 고조선 땅이었다.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 색은(索隱)에 "조선의 재상 노인은 어양현 사람이다.(朝鮮相 路人 漁陽縣人)"라고 말했는데 이는 어양군이 본래는 고조선 땅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연나라가 국력이 커지자 고조선을 공격하여 하북성 서남쪽 1천리 땅을 빼앗아 거기에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요동군 5개 군을 설치했는데 이때 지금의 밀운 지역 일대에 어양군이 설치된 것이다.

따라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 시대에 중국과 고조선이 국경을 마주한 동북방 최전선은 바로 어양군이었다. 『사기』 진섭열전에 보이는 "시골의 빈민들을 징발하여 어양에 가서 국경 수비를 담당하게 했다(發閭左 適戌漁陽)"라는 기록은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이다. 진시황 때 만일 요녕성의 요하나 북한의 청천강이 조, 중 국경선이었다면 왜 병사들을 오늘날의 북경시 밀운구, 당시의 어양군으로 보내 국경을 수비하도록 했겠는가.

어양군은 어수(漁水)의 북쪽이라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사해(辭海)』에 의하면 어수는 현재의 조하 즉 조선하 아래쪽의 백하(白河)이다. 어양군을 백하의 북쪽이란 뜻으로 백양군이라 하지 않고 왜 굳이 백하를 어수로 명칭을 바꾸어 어양군이라고 했을까.

백하라는 명칭의 한자 백(白)은 우리말 밝으로서 밝달민족을 연상시킨다. 밝달민족의 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고조선 땅을 빼앗아 여기에 연 나라 군을 설치하면서 밝달강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어수로 명칭을 바꿔 어양군이라 호칭했다고 본다.

뒤에 어양군이 있던 지역에 밀운군이 설치되는데 그러면 밀운군은 언제 설치되었는가. 『방여회편(方輿滙編)』 곤여전(坤輿典)에 "밀운군은 북위 황시 2년에 설치되었으며 백단현, 요양현, 밀운현 3개 현을 관할했다. 군청 소재지는 백단현에 있었다(密雲郡 北魏皇始二年置 領白檀 要陽 密雲 三縣 郡治 在白檀縣)"라고 말했다.

북위시대 황시(皇始) 2년(397)에 밀운군과 밀운현이 최초로 설치되었는데 밀운군의 군청 소재지는 밀운현에 있지 않고 백단현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방여회편』은 곤여전(坤輿典), 직방전(職方典), 산천전(山川典), 변예전(邊裔典) 4부로 구성된 책인데 청나라 강희 40년(1707)에 편찬되었다.

동위 시대(534~550)에 밀운현을 밀운군으로 승격시키고 그 아래에 밀운현, 백단현, 요양현 3개 현을 설치했다. 북제 시대(550~577)에는 밀운군을 폐지하고 백단현과 요양현을 밀운현에 합병시켰다. 그 후 밀운현이란 명칭은 명, 청 시대까지 존속되다가 1928년 하북성에 예속되었고 1958년 10월 북경시에 귀속되었다. 2015년 11월 밀운현을 폐지하고 밀운구를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단함과 향기를 겸비한 밝달나무, 동방의 신목으로 전해온다
단단함과 향기를 겸비한 밝달나무, 동방의 신목으로 전해온다

◆산 위에 밝달나무가 있었던 북경시 밀운현의 밝달산

『한서』 지리지에는 어양군이 유주(幽州)에 속하며 12개 관할 현이 있다고 말했는데 12개 현 가운데 백단현(白檀縣)이 보인다. 그리고 "백단현은 혁수가 백단현 북쪽 만이(蠻夷) 지역에서 발원한다(白檀 洫水出北蠻夷)"라고 하였다. 백단현 북쪽은 중국이 아니라 만이 지역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일대는 원래 동북방 고조선 땅이었음이 드러난다.

『대청일통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백단현은 지금의 고북구 밖에 있었다(漢白檀縣 在今古北口外)"라고 그 위치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였다. 고북구는 지금도 중국 지도상에 보이는 지명으로 북경시 북쪽 조하(潮河) 부근에 위치해 있다.

『무경총요』에서는 "조선하(朝鮮河)를 지나서 고북구에 간다"고 말했는데 『대청일통지』에서는 "백단현이 고북구 밖에 있다"고 하였으니 백단현은 지리적으로 조선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서(魏書)』 무제기(武帝記)에는 조조가 "북방의 오환(烏丸)을 공격할 때 노룡새(盧龍塞)를 나가서 백단산과 평강(平岡)을 지나 동쪽으로 유성(柳城)을 향해갔다"라고 하였다. 『태평환우기』에서는 "하북도 평주 노룡현에 조선성(朝鮮城)이 있다"고 말했는데 조조가 "노룡새를 나가서 백단산을 지나갔다"라고 한 것을 보면 조선성이 있던 노룡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백단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지』 전주전(田疇傳)에는 전주가 조조에게 "노룡구로부터 백단의 험지를 넘어가라(從盧龍口 越白檀之險)"고 건의한 말이 나온다. 노룡구는 현재는 희봉구(喜逢口)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성이 있던 노룡현 북쪽에 있던 백단산이 상당히 험준한 산이었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명나라 때 편찬된 『환우통지(寰宇通志)』(1456) 권1, 경사(京師) 산천조에 다음과 같은 단군조선의 건국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되는 내용이 발견된다. "백단산은 밀운현 남쪽에 있다. 그 산의 남쪽에 옛적에 밝달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산 이름을 백단산이라고 하였다(白檀山 在密雲縣南 其山之陽 古有檀樹 故名)"

또한 『대명일통지』 백단산 조항에도 "밀운현 남쪽 25리에 있다. 그 산의 남쪽에 밝달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백단산이라고 하였다. 위나라의 조조가 백단산을 넘어서 오환을 유성에서 격파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在密雲縣南 二十五里 其山之陽 古有檀樹 故名 魏曹操 歷白檀 破烏丸于柳城 卽此)"라고 말하였다. 밀운현에 있던 백단산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환우통지』와 『대명일통지』의 두 기록은 왜 이 산 이름이 백단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즉 산 남쪽에 오래된 밝달나무 고목이 있어서 백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서』 지리지, 『위서』 무제기, 『삼국지』 전주전, 『대청일통지』 등에 보이는 백단현은 조선성이 있던 노룡현, 조선하가 있던 고북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지명임을 감안할 때 상고시대에 이곳은 고조선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특히 『환우통지』, 『대명일통지』 등에서 백단산은 "산 남쪽에 밝달나무가 있어서 백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이 산은 밝달조선 즉 단군조선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밝달나무는 색상과 재질에 따라 백단(白檀), 자단(紫檀), 흑단(黑檀) 등으로 구분하는데 단군은 흑단이나 자단이 아닌 밝고 깨끗한 백단수 아래 조선을 건국했던 것이고 이것이 우리 백의민족의 기원일 수 있다. 백단은 우리 말로는 밝달의 한자 표기인 것이다.

고조선과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지역이라면 모르거니와 조선하가 흐르는 북경시 밀운현, 조선성이 있던 하북성 노룡현 부근에 위치한 산 이름이 밝달산이고 그 산 남쪽에는 밝달나무 고목이 있었다면, 이를 단군조선과는 전혀 무관한 우연의 일치라고 강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해경』에 "발해의 모퉁이에 조선이 있다."고 하였는데 위치적으로 북경 지역이 발해만의 모퉁이이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단군고기』를 위시한 여러 책에서 환웅과 단군이 단목(檀木) 즉 밝달나무 아래로 내려왔다고 했는데 북경 밀운 지역에는 산 위에 밝달나무가 있는 밝달산이 있다. 그리고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국명을 조선이라 하였다면 그곳에는 비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라도 흔적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경 북쪽 밀운현에 조선하, 단주(檀州)가 있고 북경 동쪽에는 조선성이 있었다. 고조선과 관련된 산명, 지명들이 당, 송시대까지도 남아 있었다.

단군조선의 발상지가 되기 위해서는 나라가 발해의 모퉁이에 위치해야 하고 밝달나무가 있는 밝달산이 있어야 하며 고조선과 관련된 산명이나 지명 등 어떤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대동강 유역은 이 중 단 한 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지역은 오직 발해만 북쪽 북경시 밀운현 일대뿐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지역을 단군조선의 발상지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다음에 더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밝달산과 단군조선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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