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1960-2019, 본명 김현숙)의 1집 앨범 '눈내리던 겨울밤/그대와 나'(1981)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묘한 울림을 주는 앨범이다.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아니라서 희귀 음반으로 취급되며 일부 애호가 사이에서나 회자됐다. 그러나 참여진의 이름과 그 시대적 맥락을 파헤치면, 이 앨범은 단순한 여성 보컬 작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당시 청춘들이 빠져들었던 포크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비롯해 영화음악, 재즈, CM송 문화가 한 장의 음반 안에서 교차하기 때문이다.
◆김도향의 CM송 히로인
이 앨범 프로듀서를 맡은 김도향을 맨 먼저 언급해야 한다. 그는 '바보처럼 살았군요' 같은 히트곡의 가수로 흔히 기억되지만, 실은 1970~80년대 한국 CM송 문화를 만든 핵심 인물이었다. TV 광고가 급속도로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시기에 김도향은 자신이 세운 광고음악전문회사 서울오디오를 통해 수많은 광고음악을 제작하며 새로운 감각의 상업음악을 제시했다.
단 몇 초로 사람의 귀를 사로잡아야 했던 CM송은 당연히 가장 트렌디한 사운드 감각이 집약되는 매체가 됐다. 여기서 유난히 맑고 인상적인 목소리를 들려준 인물이 바로 서울오디오 소속 이화였다.
이화는 '코카콜라' '해태팝' '썬듀' 같은 광고 음악을 통해 대중에 익숙한 목소리로 떠올랐다. 이를 포함해 수백곡의 CM송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대중에 알려져 스타가 된 경우다.
사실 이화는 평범한 CM송 가수가 아니었다. 윤형주, 이정선, 이연실 같은 가수들의 앨범에 코러스로도 참여하며 우리나라 포크와 언더그라운드 음악 현장에서 한 역할을 차지했다.
◆정성조·김현식·이장희 참여
이런 이력 덕분일까. 이화의 1집 음반 속지엔 당대 한국 음악계의 중요한 이름들이 자연스럽게 적혔다. 우선 정성조가 편곡을 맡고 그가 이끌던 정성조와 메신저스가 연주를 담당한 게 눈길을 끈다. 이 인연은 이화가 처음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앨범이 정성조의 영화음악집 '밤의 찬가/죽음보다 깊은 잠'(1980)인 데 연결고리를 걸 수 있다. 앨범 곳곳에 흐르는 도시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재즈·포크·훵크 두루 일가견 있는 정성조의 솜씨다. 정성조는 '그게 나예요' '밤의 찬가2' '꿈과 사랑 사이' 등 수록곡 10곡 중 3곡을 작업했다.
김현식도 3곡을 작사·작곡했다. 타이틀곡 '눈내리던 겨울밤'을 비롯해 '그대와 나'와 '첫사랑'을 이화에게 선물했다. '그대와 나'는 김현식이 1집에서 부른 걸 이화가 다시 노래했고, '눈내리던 겨울밤'은 이화가 먼저 부른 후 김현식이 자신의 3집에 리메이크했다.
이장희가 직접 만들고 불러 히트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도 이화가 다시 열창해 눈길을 끈다. 이장희의 투박한 감성과 달리 투명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로 곡을 재해석했다. 이장희의 동생인 싱어송라이터 이승희도 '난 알았네'와 '난 오늘' 등 2곡 작사·작곡으로 참여했다.
결국 이화의 1집은 한 명의 신인 가수를 위한 앨범을 넘어 당시 뮤지션들의 느슨하지만 정성 가득한 연대가 응축된 결과물로도 읽을 수 있다.
수식을 하나씩 붙여보자. CM송 업계를 주름 잡던 김도향, 한국 재즈의 흐름을 이끌며 영화음악의 세계도 구축하던 정성조, 청춘문화의 상징이던 이장희, 그리고 막 자신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던 김현식까지(김현식도 데뷔 앨범을 이화 1집과 같은 1981년에 발표했다). 서로 장르도, 활동 무대도 달랐던 음악인들이 이화라는 목소리 아래 모여든 맥락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지금 다시 들으면 잊혀졌던 추억의 음반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인 산업 체계 안에서 정비되기 전에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참신한 음악을 탐구하던 시절의 공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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