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여년간 베일에 가려졌던 사적 '대구 달성'의 실체가 공개된다. 달성 축조에 집약된 과거 신라 고대 토목기술 등을 살펴볼 수있는 최초의 기회다.
19일 대구시에 따르면 '달성'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하는 현장공개 설명회를 20일 오후 1시30분에 중구 달성공원로 35(달성공원 내) 달성 남측 성벽에서 개최해 그 성과를 시민에게 공개한다.
이번 발굴조사는 대구 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초의 정식 학술발굴조사로, 국가유산청의 지원으로 지난해 5월부터 (재)대동문화유산연구원에서 달성 남측 성벽 구간을 조사 중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대구 달성은 첨해이사금 15년(261)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축조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희소성이 매우 높은 고대 성곽이다.
달성은 고대 신라가 대구 일대를 다스리기 위한 치소성(한 지역을 다스리는 치소지를 보호하는 성곽)으로 축성했으며, 이때 달성고분군도 함께 조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성벽의 개·보수를 거치며 그 기능을 이어 왔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성벽 규모는 하부 너비 35m, 외벽 높이 17m, 내벽 높이 9m 내외로, 대규모 방어 성벽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축성 시기는 성벽 기저부에서 출토된 토기 편과 성곽 축성기법 등으로 보아 5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점으로 판단된다.
특히 달성이 1천500여 년간 축조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것은 고대 대구 지역의 뛰어난 토목기술이 축성에 잘 적용된 결과로 보인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암반층을 정지한 뒤 흙과 돌을 교대로 다져 쌓고, 성벽 외면에 납작하게 깬 돌을 경사지게 층층이 겹쳐 쌓은 다음 약 40㎝ 두께의 점토층으로 마감하는 구조가 확인됐다.
특히 달성은 토성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번 조사 결과 흙과 돌을 적절히 사용한 '토석혼축'과 석축 기법을 혼용해 축성한 성곽으로 밝혀졌다.
또한 달성 축성에는 대규모 인력이 동원됐으며, 작업 그룹별로 분담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구획축조방식도 확인됐다.
황보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지난해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남성벽 발굴조사에 이어 올해 북성벽 조사에 착수했고, 내년에는 성 내부 발굴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며 "향후 지속적인 연구로 사적 '대구 달성'을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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