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의 한 편의점 앞,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한 30대 직장인이 스마트폰으로 삼성전자 실적 뉴스를 본다.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 사상 최대.' 그런데 표정은 밝지 않다. 반도체 대기업이 역대 최대 이익을 올리는 시대에, 자신의 월급은 제자리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면 빈 상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장의 과실이 어디로 가는지, 국제통화기금(IMF)의 최신 자료는 냉정하게 답하고 있다.
IMF가 내놓은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7천412달러다. 대만은 4만2천103달러로 이미 4천691달러 앞서 있다. 5년 뒤에는 격차가 1만달러를 넘는다. 한국이 2003년 대만을 앞질러 22년간 지켜온 우위가 지난해 역전당한 데 이어, 소득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역전에는 두 개의 구조적 덫이 있다. 첫 번째는 고환율이다. 한국 경제가 원화로 아무리 성장해도, 달러로 환산하면 쪼그라든다. 2025~2026년 이어진 원·달러 환율 1,400~1,500원대는 달러 표시 1인당 소득을 실제 생산 증가분보다 훨씬 낮게 만들었다. 2025년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1.0%로 코로나1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달러 기준 총 GDP는 오히려 감소했다. 원화 절하가 성장의 성과를 달러 숫자에서 고스란히 지웠기 때문이다. 대만 달러는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한 반면, 원화는 중동 전쟁과 미국 금리 격차라는 외부 충격 앞에서 속절없이 밀렸다.
두 번째 덫은 성장의 불균형이다. 삼성전자가 57조원을 벌어도, 그 과실이 전국에 고르게 퍼지지 않는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4분기 및 연간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 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실질 GRDP 성장률은 -1.3%로 역성장했다.
반면 반도체 공장이 자리한 충북은 4.4%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반도체 호황이 수도권 대기업 클러스터에 집중되는 사이, 지방 도시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조용히 가라앉고 있다. 수도권이 성장을 독식하는 동안 지방은 구조적 방치를 당하고 있다.
20년 넘게 이어진 수도권 집중과 지방 홀대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정책 실패의 누적이다.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균형발전이라는 구호는 수십 년간 반복됐지만 수도권 GRDP 비중은 오히려 높아졌다. 지역 청년은 일자리를 따라 서울로 떠나고, 지방 경제는 소비 기반을 잃는 악순환이 굳어졌다. IMF가 경고한 한국 국가부채 증가 속에서 추경을 쏟아부어도, 그 돈이 흘러가는 경로는 여전히 수도권 중심이다. 재정이 지방을 외면하는 한, 성장률 숫자는 지방 주민의 삶과 무관한 수도 평균치에 머문다.
대만과의 격차는 반도체 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고환율을 키운 취약한 외환 구조, 지방 소멸을 방치한 불균형 성장, 단기 추경으로 버텨 온 재정 정책이 겹쳐 만들어낸 복합 위기다. 국가 전체의 성장이 특정 지역·특정 산업에 쏠릴수록, 1인당 GDP 숫자는 평균의 함정이 된다.
1인당 GDP 순위 40위에서 41위로의 한 계단은 숫자가 아니다. 그 아래엔 대구의 빈 상가, 지방 대학의 미달 학과, 일자리를 찾아 짐을 싼 청년들이 있다. 반도체가 최대 실적을 내는데 나라 전체가 부유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장 모델 자체를 다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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