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폰>의 안병기 감독의 영화 <분신사바>는 학교 폭력·집단 심리 구조를 공포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면, <괴담낭독클럽>(작 장신비, 나온씨어터)은 기이한 괴담 형식을 빌려 사망자 40명이 발생한 1994년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선화여자기술학원'으로 배경을 전환한 연극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여자기술학원은 교화시설이다. 부산 형제복지원처럼 10대 소녀들뿐만 아니라 70~80년대에는 윤락녀, 가출 소녀, 고아 등을 수용하는 시설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마구잡이로 수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인권을 짓밟는 폭력이 난무했다. 해마다 200여 명이 강제 구금됐다. 가혹행위를 견딜 수 없어 교도소보다 더 지옥 같은 이곳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대형 화재로 번지면서 결국 폐쇄되었다. 현재는 경기 IT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로 바뀌었다. 정철 연출의 <괴담낭독클럽>에 등장하는 대사를 들어보자. "너무너무 무서울 땐 차라리 괴담을 생각해. 그러면 현실이 덜 무서워지잖아. 오늘도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원이 풀리셨다면 우리를 보호해 주세요." 탁자에 볼펜을 세워 '궁신사바, 궁신사바' 주문을 외워 신의 영혼을 부르는 강신술(降神術) 놀이를 한 번쯤 해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이 강신술 놀이를 매일 밤 기술학원 기숙시설에 갇힌 다섯 명의 아이들이 허름한 창고에 모여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갇힌 현실보다 더 두려운 괴담은 이들에게 탈출구이자,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망을 비현실적인 세계로 치환해 견뎌야 하는 생존의 방식이다. 원생 다섯 명을 중심으로 각각의 괴담들이 이어지는 세계가 이들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자의식의 내면성,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환기한다면, 괴담은 현실을 견디기 위한 이들의 놀이적 방식이면서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회적 폭력과 참사를 타격하는 은유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들은 매일 밤 모여 '분신사바, 분신사바' 주문을 외우고 강림한 신의 영혼을 불러 괴담에 등장하는 극 중 인물로 분화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괴담을 통해 이들의 현실을 투영한다. <괴담낭독클럽>은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극 중 장면을 엮어내는 연출의 속도감이 매끄러운 것이 장점이다. 극 중 장면은 실화 사이에 괴담을 중첩하는 구조인데, 원생 다섯 명을 중심으로 각각의 괴담을 에피소드처럼 이어가는 구조로 전개된다.
◇괴담과 실화 사이, 현실을 견디는 주술(呪術)의 방식들
나온씨어터 극장 진입로부터 '선화여자기술학원'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분위기다. 시간표는 오전 6시 30분 기상으로 시작해 신앙교육과 정신교육을 거쳐 야간교육과 저녁점호를 마친 뒤 밤 10시쯤 취침하는 생활이다. 주요 생활수칙 중 하나는 "외부와의 연락은 오직 편지로만 가능하다.", "야간 시간대에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교육 신조는 "새 나라의 여인은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이고, "과거를 참회하고 미래를 위하라"는 교육가의 문장으로 당시의 기숙형 기술학원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규칙들은 국가폭력의 통제 장치로 기능했다. 개인의 삶과 선택은 규율과 규칙, 복종만이 요구되는 생활구조 속에서, 아이들의 교육가와 생활수칙은 이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괴담을 낭독하는 행위는 무엇인가. 쇠창살의 통제 구조 속에서 해방되고 싶은 욕망의 표현행위이며, 괴담으로 치유와 위안을 얻고자 하는 아이들의 주술적 행위이다.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분신사바 주술을 걸어 괴담을 통해 각자의 육신이 분신(分身)이 되어, 극 중 인물로 분화되어 자유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괴담 서사에 전래놀이들이 중첩되어 현실적 서사로,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감각하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원이 풀리셨다면 우리를 보호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표현행위는 구원의 주술인 것이다. 괴담은 누군가에게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때로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으로, 그 기억 속으로 다시 살아가고 싶은 갈망의 행위인 것이다.
무대구조를 환기해 보자. '선화여자기술학원'의 협소한 창고로 보이는 공간이다. 비대칭의 공간은 폭력으로 균열된 폐쇄성과 억압, 공포적인 분위기를 드러낸다. 공간 밖 경계에는 몇 개의 의자를 배치해 17세~19세로 보이는 다섯 명의 원생들이 기술을 배우는 교실이자 기숙시설처럼 구조화된다. 때로는 이 안과 밖, 무대의 전면과 후면까지 공간 전환의 폭이 넓어진다. 공간 배치 구도는 연출로 필요한 표현 재료들만 쓰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조명과 음향으로 괴담 효과의 연속성을 형성해 이들의 현실을 감각하게 하고, 탈출할 수 없는 폐쇄적 공포를 형성한다. 불이 타오르는 두툼한 초에 흐르는 불빛과 촛농, 초를 들고 있는 한 인물로부터 시작되는 프롤로그부터 괴이한 분위기로 형성된 미장센의 구도가 감각적으로 연출된다. 신입인 선옥(윤아진 분)을 중심으로 극은 1995년 방화사건의 용의자 배선옥 외 2명을 소년부로 송치한다는 목소리로 전환되는데, 초를 바라보고 있는 선옥의 침묵과 시선, 반복적인 체조와 구타 소리, 교육가는 선화여자기술학원의 통제된 질서와 폭력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고립되고 파괴됐는지를 드러내면서도 여전히 구원에 대한 주술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주술의 끝은 이 사회적 고립과 폭력, 참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시선이자 연대이다.
특히 이 장면에서는 기계적인 집단 리듬으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신체와 무표정한 군무, 통일된 원생 체육복이 통제된 공간에서 비인간성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극 중 장면들의 전환방식들이 절제되어 연출된다. 대체로 괴담을 다루거나 공포적인 미장센이 강조되는 연극에서는 그 분위기와 이미지, 의상의 형태나 기술적으로 채도를 형성하면서 서사의 맥락을 놓치기 쉬운데, 정철 연출은 <괴담낭독클럽>을 단순한 공포적 표현성에 머무르지 않고, 괴담-놀이-규칙적인 생활-노동행위-반복과 폭력성-교육가를 극 중 장면 사이에 배치해 반복 구조를 하나의 집단적 폭력으로 구축하면서 서사의 긴장과 감정의 폭을 밀도 있게 형성한다. 괴담이 진행된 뒤 원생들은 교육가를 반복해서 제창하거나 신체적 행위로 노동의 반복성을 보여주고, 괴담을 통해서는 서사의 긴장성을 유지하면서도 전래놀이를 통해 분위기를 전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적 연출은 사회적 폭력 안에 갇힌 원생들의 현실성을 강조하면서도, 국가폭력과 참사의 구조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환기한다.
실제로 대형 화재 참사는 반복됐다.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건을 비롯해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등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사회적 참사가 이어져 왔다. 괴담 같은 수용시설의 인권 침해 사건들도 반복됐는데,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처럼 국가와 제도의 이름으로 개인을 강제 수용하고 폭력적으로 통제했던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특정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형태를 바꾼 채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환기하는 사회적 괴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현실이다.
◇'옥(玉)' 돌림자의 연대(連帶)와 괴담의 놀이성
연대(連帶)는 사회적 차원에서 동일한 조건과 현실 속에 놓인 이들이 서로의 고통과 문제를 공동의 것으로 인식하고 함께 대응하려는 관계를 의미한다. 동일한 현실을 공유하는 이들이 서로의 문제를 함께 감당하려는 사회적 결속이다. 한국 사회는 종종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사회적 비극은 여전히 결말을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대형참사로 두 눈을 감게 하면서도 시간의 유효성은 망각되어 반복된다.작가의 설정 중 괴담 서사를 진행하는 방식은 괴담과 현실 구조를 중첩해 교차하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명료한 전달성을 보이는데, 이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옥(玉)' 돌림자의 연대성과 괴담을 전래놀이로 중첩하는 서사적 구조이다.
여성 다섯 명의 극 중 인물들은 모두 '옥' 자 돌림이다. 기술학원 신입 선옥은 동대문에서 쪽잠을 자다 끌려왔고, 연예인이 꿈인 춘옥(이준 분)은 경찰에 잡혀 왔다. 금옥(김려은 분)은 새엄마에게 팔려왔고, 경옥(손채연 분)은 친구들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들어왔다. 미옥은 서울역에서 쪽잠을 자다가 문제 청소년으로 규정되어 국가기관 단속으로 들어왔다.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이들을 작가는 '옥' 자 돌림이라는 설정으로 묶어내 고립된 개인을 동일한 폭력 구조 안에 놓인 집단적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래서 괴담낭독클럽은 자칭 '옥 파이브'다. 2장에서는 춘옥을 중심으로 첫 괴담인 '문 두드리는 엄마 이야기'가 진행된다. 분신사바 주술로 신을 부르는 행위는 괴담을 통해 각자의 육신이 분신이 되어 극 중 인물로 분화되는 놀이이자 주술적 행위이기 때문에, 다섯 명 모두가 괴담 속 인물로 분화된다. 밤에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던 자매가 "엄마는 문을 다섯 번 두드릴 것"이라는 규칙을 믿고 문 안에서 기다리는 이야기에서 약속된 횟수 이후 한 번 더 울리는 노크는 그 존재가 더 이상 엄마가 아님을 암시하며 공포를 형성한다.
마지막에는 숫자 세기와 "꼭꼭 숨어라"라는 전래동요가 중첩되며, 불안과 그리움이 교직되는 심리 상태를 형성한다. 4장에서는 여우 괴담이 역할극으로 진행되며 전래놀이의 형식이 서사를 직접 견인한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라는 놀이 속 여우는 폭력의 가해자를 상징하는 존재로 확장된다. 이 장면부터 집단 내부의 긴장과 폭력성이 드러난다. 5장의 '꼬마야 꼬마야' 율동은 통제와 감시 구조와 결합되면서 전래놀이가 규율의 장치로 변형되는 장면이다. 반복되는 노래와 동작 속에서 아이들의 신체는 통제되고 획일화되며, 놀이는 국가폭력의 통제로 전복된다. 익숙한 놀이 형식이 오히려 공포를 강화하는 장면으로 전환되면서, 집단에 의해 강요된 행위만이 남게 된다.
◇ 통제된 공간, 괴담으로 현실을 견디는 방식
6장의 자매 이야기는 장화·홍련 서사를 변주한 선옥의 괴담이다. "내가 죽였어.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로 시작되는 고백은 개인의 트라우마와 죄의식을 드러내는 내면화된 괴담이다. 자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괴담은 기억과 죄의식,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중첩된 서사로 확장되며 각자의 현실과 맞닿는다. 금옥의 "옛날 옛날에, 아주 무서운 학교가 있었대"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괴담이 아니라 경기여자기술학원의 화재 사건과 공간 자체를 괴담화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 장면부터 옥 파이브의 괴담은 바닥난다. 더 이상 외부의 이야기를 끌어올 수 없는 상태에서 남는 것은 현실뿐이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방화를 통해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며,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의 주술 행위처럼 작용한다. 방화를 모의하는 현실 괴담이 현실을 견디기 위한 방식이었다면 이 지점의 극중장면 부터는 갇힌 현실을 바꾸려는 행위로 이어진다. 유일한 수단은 방화를 통한 탈출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공간은 실제 사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견고한 쇠창살로 둘러싸인 선화여자기술학원은 감옥보다 못한 죽음의 공간이 된다. 누군가 죽어야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선옥의 마지막 절규는, "살려주세요. 나가고 싶어요. 제 친구들 다 착해요. 우린 그냥 나가고 싶을 뿐이에요. 내보내주세요. 사람이 있어요."는 괴담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의 언어이며,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장면이다. 괴담 서사나 재난, 폭력, 화재 사건 등을 다루는 서사들은 대체로 평면적 구도이거나 스토리에 함몰되기 쉬운데, <괴담낭독클럽>은 연출적인 장점과 감각이 보이는 작품이다. 무대 배치와 구조의 감각이 없다면 느슨하거나 당시 화재 사건만을 연상하게 할 수 있는 서사적 구조를, 연출적으로 괴담 서사를 무대화한 감각이 돋보인다. 프롤로그부터 마지막 장면 전환까지 괴담 서사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부여하며, 연극성과 영화 이미지가 결합된 극중 분위기를 유지하는 속도감도 매끄럽다.
통일된 체육복과 "새 나라의 새 여인, 과거를 참회하고 미래를 위하라"라는 교육가를 반복적으로 형상화해 시대의 집단적 폭력성과 괴담을 현재화하는 극 중 장면도, 괴담 한 편씩 이끌어가는 윤아진, 김려은, 이준, 이예원, 손채연의 연기 분위기도 영화 <분신사바> 못지않다. 대체로 여성 관객들이 많은데, 인스타그램이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객들이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주문처럼 호러적 분위기도 상당하지만, 사회적 폭력과 참사, 그리고 연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현재의 이야기다. "옛날 옛날에, 아주 무서운 학교가 있었대.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무덤과도 같은 학교가 있었대… 쉿."
|미니 인터뷰 (연출, 정철)
정철 연출은 대구에서 태어나 네버엔딩플레이에서 오세혁 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다. 그동안 뮤지컬 <드라이플라워>, <여단>, <집이 없어>, <머피>를 연출했으며, 연극 <보도지침>, <괴담낭독클럽>을 연출해왔다. 궁중문화축전 고궁뮤지컬 <소현>, 밀양강오딧세이 실경공연 <별들의 노래>, 강남페스티벌 개막식 뮤지컬 등이 있다. 연출의 구도가 간결하면서도 작품별로 특징을 부각화하는 장점이 있는 감각적인 연출가다. 미니 인터뷰는 극장에서 진행됐다.
─ '경기여자기술학원'은 꼬꼬무나 여러 채널을 통해 알려진 내용인데, 이것을 연극 구조로 한 이유(아이디어)는.
"<괴담낭독클럽>은 1995년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참사를 모티브로, 장신비 작가의 재구성·재창작을 통해 탄생한 작품입니다. 사건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작가님의 마음에서 시작된 텍스트였어요. 지난해 낭독극 형태로 이미 관객들과 한 차례 만났고, 이번 공연에서 새롭게 연출로 참여하게 되었죠. 탄탄한 서사를 가진 텍스트를 무대 위에서 다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영광과 동시에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연출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비극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었어요. 소녀들의 감정과 심리를 관객이 함께 감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해보았는데, 이야기를 먼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현실의 감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죠. 특히 폐쇄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이 만들어낸 '괴담'이라는 구조를 통해,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어떻게 우회적으로 드러나는지를 하나의 연극적 장치로 시각화하고자 했어요."
─ 괴담낭독클럽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고, 이를 괴담이라는 이야기 구조로 풀어가는데.
"극 중 금옥의 대사 중 '너무 너무 무서울 땐 차라리 괴담을 생각해. 그러면 현실이 덜 무서워지잖아.'라는 말이 이 작품을 설명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극중 아이들에게 현실은 이미 충분히 공포이기 때문이죠. 매일 반복되는 폭력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이 어떤 귀신 이야기보다도 더 잔혹한 세계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더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괴담을 통해 공포를 외부로 밀어내고, 그 이야기 속으로 숨어 들어가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저는 이 구조가 단순한 장르적 장치가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괴담 낭독'은 놀이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버티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절박한 탈출구로 표현하고자 했고요."
─ 극 중에서 기숙학원 학생들이 낭독클럽을 만들어 한 사람씩 괴담이 진행된다. 왜 이러한 설정을 했나.
"설정의 핵심은 연대와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옥'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스스로를 '옥파이브'라고 부르고, 매일 새벽 창고에 모여 촛불 하나에 의지해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는 그들에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죠.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으로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공간 안에서만큼은 누군가의 통제나 폭력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괴담 낭독'은 곧 자유의 형태이기도 해요.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좁은 사각 무대를 만들었고, 이들이 매일 밤 모여 괴담을 읽는 '창고'라는 공간으로 설정했습니다. 그 좁은 창고에서 그들은 살아 숨 쉽니다. 그 사각무대의 단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잃은 채 제식에 맞춰 움직이게 되죠. 각 인물이 가진 개인적인 사연(가출, 방임, 결핍) 같은 배경들이 괴담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각자의 상처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존재들로 보이길 바랐습니다."
─ 장면들이 전환될 때 전래동요를 차용했다.
"극 중 등장하는 전래동요는 본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놀이에서 출발한 노래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동요들이 신체검사나 억압적인 통제 상황과 겹쳐지면서, 익숙함이 뒤틀린 기묘한 공포로 변형되죠. 가장 순수해야 할 리듬과 목소리가 가장 폭력적인 순간의 배경음으로 사용될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어떤 불편함과 괴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연출로 이 지점을 통해 국가와 기관에 의해 훼손된 아이들의 일상, 그리고 빼앗긴 동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결국 이 동요들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가던 세계가 어떻게 뒤틀렸는지를 보여주는 정서적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 학생들이 반복적으로 부르는 기숙학원가는 당시의 억압적인 규칙과 환경을 표현하려고 했나.
"'새 나라의 새 여인', '과거를 참회하고 미래를 위하라'와 같은 가사는 아이들의 개성을 지우고, 국가가 요구하는 '정숙한 여성'의 틀 안에 가두려는 폭력적인 교화 시스템을 상징합니다. 아이들이 점호 때마다 이 노래를 제창하는 장면은 개인이 아닌 하나의 집단으로 길들여지는 과정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연출적으로는 이 노래가 단순히 한 장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 계속 울려 퍼지고 있는 듯한 감각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임지송 작곡가와 함께 의도적으로 익숙하고 단순한 멜로디로 곡을 구성했고,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구조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멜로디를 아이들이 목청껏, 집단적으로 반복해 부르는 순간, 그 노래는 따뜻한 합창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통제와 압박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이 지점을 통해 쉽고 단순할수록 더 깊이 스며드는 통제,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순된 억압의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 '기숙학원가'는 배경음이 아니라 아이들을 규정하고 지배하며, 끊임없이 반복되어 머릿속에 남는 하나의 시스템이자 잔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첫 괴담 서사에서 그림자극처럼 활용하는 장면, 흰색 천을 활용해 내외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흰색 천은 이 작품에서 보호막이자 동시에 장벽으로 작동합니다. 아이들에게 그 공간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잠시 숨을 수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폐쇄된 세계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천 너머로 비치는 거대한 그림자는 실체를 정확히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아이들이 느끼는 보이지 않는 압박과 공포를 시각화한 장치입니다. 또한 천 안쪽에서 서로를 껴안고 의지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바깥으로 투영되는 왜곡된 형상을 대비시켜 이들이 처한 현실의 뒤틀림과 고립감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각 괴담 장면마다 파란색, 검정색, 빨간색의 색을 분리해서 사용했고, 무대 중앙의 촛불은 노란색을 상징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이 색들은 단순한 시각적 구분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 색 체계인 오방색의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방색은 동서남북과 중심, 그리고 인간과 세계의 질서를 상징하는 색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 질서가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고 뒤틀린 채 존재하는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특히 중앙에 놓인 촛불의 노란빛은 이 세계의 '중심'이자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감각인데, 그 주변을 감싸는 색들이 점점 강해질수록 그 중심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고요. 결국 이 장면은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 안전한 은신처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질서가 무너진 채 고립된 세계라는 점을 빛과 색, 그리고 그림자를 통해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 장면에서 방화한 여학생의 괴담이 실제와 겹쳐지는 것은 설정인가.
"처음 대본을 보았을 때 작가님이 대본에 녹여낸 중요한 의도라고 생각이 들었고, 저는 그 의도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연출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극 중 금옥이 말하는 '화마가 모든 이야기를 불태웠어'라는 대사를 기점으로, 괴담으로만 존재하던 이야기들이 점점 현실과 겹쳐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대본 속 금옥의 또 다른 대사 '불에 타 죽었어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소녀 이야기였어'라는 말은 이 결말을 미리 예고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괴담을 통해 현실의 공포를 견디려 했지만, 결국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형식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자유를 찾기 위해 '불'을 선택했지만, 그 불은 탈출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그 자리에 묶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죠. 결국 아이들은 괴담 속에 등장하던 '떠나지 못하는 소녀'가 아니라, 그 이야기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저는 이 지점을 통해 괴담보다 더 무서운 현실, 그리고 구조적 폭력이 만들어낸 비극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공연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 만큼, 그 안에 존재했던 생존자들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동시에 가장 조심스럽고 어려운 지점이었습니다. 연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할 메시지와 감정이 분명히 있지만, 그 과정에서 비극을 소비하거나 단순화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고요. 또 하나는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이 겪는 감정의 무게였습니다. 폭행이나 절규와 같은 장면에 깊이 몰입할수록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감정들이 안전하게 다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과정을 끝까지 함께 고민하며 진실된 마음으로 임해준 배우들 덕분에 이 작품이 무대 위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깊은 감정의 시간을 함께 견뎌준 모든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 이 작품을 통해 연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연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특정한 사건을 설명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너무 쉽게 이름 붙이고, 그 이름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과, 각자가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언가를 단정하기보다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라고 여겨졌던 순간들에 잠시 멈춰 서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어쩌면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는 순간들과,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이야기 앞에 한 번 더 머물며 바라보고,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지금 공연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안산에서 진행되는 세월호 12주기 4월 연극제에 <괴담낭독클럽>이 참여하게 됩니다. 저에게도 여러모로 감회가 남다른 소중한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저는 공연제작사 네버엔딩플레이에 소속되어 있으며,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국의 이야기, 현시대에 유효하고 필요한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대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감각적인 세계를 더 많이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흔히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하지만, 저는 여전히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세계가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 무한한 가능성 속으로 계속해서 깊이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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