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춘향의 얼굴을 복원한 그림을 두고 한바탕 시끌했던 일이 떠오른다. 중성적인 외모에 나이 들어 보인다는 반응부터 "내가 상상한 춘향과 다르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애초에 춘향은 실존 인물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이다. 이도령이 처음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작가는 "옥처럼 깨끗한 모습에 붉은 입술, 복숭아꽃 같은 고운 얼굴" 정도만 묘사했을 뿐이다. 결국 사람마다 마음속에 그리는 춘향의 모습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올해 미스춘향 선발대회에서 사상 첫 외국인 본상 수상자가 나오자 이번에는 "외국인이 웬 미스춘향이냐"는 반응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출신 안젤리나 게라시멘코(23·리나). 하지만 리나 씨에게 춘향은 낯선 옛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다. 긴 시간을 버티며 자신의 마음을 지켜낸 춘향의 모습에서, 그는 한국을 향해 걸어온 자신의 시간을 떠올렸다. "10년 넘게 한국을 꿈꾸며 버텨온 시간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춘향의 모습이다."
-한국을 향한 지고지순한 마음이 정말 춘향이를 닮았다. 왜 그렇게 오래 한국을 꿈꿨나.
▶처음에는 작은 호기심이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걸 좋아했는데, 우연히 들은 한국어 소리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살던 곳에는 대한민국 대사관도, 대학 수준의 한국학 과정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공부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 체험을 이어갔다. 한국 유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세 가지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며 버텼다.
-결국 한국까지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그 시간들을 버텨온 끝에 대한민국 정부초청장학생(GKS)으로 선발돼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해 TOPIK 6급을 취득했고, 세종학당 한국어 교원 과정도 이수했다.어릴 때 막연히 꿈꾸던 나라에서 직접 배우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게 한국을 좋아하던 사람이, 결국 한국에서 가장 전통적인 상징 중 하나인 '미스춘향'이 됐다. 스스로도 놀랐을 것 같다.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를 좋아했고, 혼자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언젠가 꼭 한국에 가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한국에 오는 것을 넘어, 한국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무대에서 '미'로 불리게 됐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품어온 진심과 노력을 한국 분들이 알아봐 주신 것 같아 더 뜻 깊었다.
-우크라이나 가족들에게 '춘향'을 어떻게 설명했나.
▶처음에는 단순한 미인대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먼저 '춘향전' 이야기부터 설명했다. 춘향이 왜 한국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는지, 단순히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긴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지켜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또 미스춘향이 단순한 외모 경쟁이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와 정신을 함께 알리는 문화적인 의미를 가진 무대라는 점도 설명했다.
--합숙이나 대회 준비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외국인 참가자라 더 새롭게 느껴졌던 장면도 궁금하다.
▶합숙 기간 동안 참가자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전통 예절과 춘향의 정신에 대해 배우던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외국인인 저에게는 모든 과정이 새롭고 신기했지만, 다른 참가자분들이 먼저 다가와 도와주고 함께 이야기해 준 덕분에 금방 편안해질 수 있었다. 특히 서로의 메이크업을 도와주거나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응원해주던 순간들이 가장 따뜻하게 남아있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가 '전통'이나 '한국다움'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느꼈나.
▶전통 역시 하나의 고정된 형태라기보다 다양한 시선과 해석 속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듯, 한국다움 역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한국 전통문화도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길 때 더 넓게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춘향'으로 기억되고 싶나
▶정체성과 국적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춘향으로 기억되고 싶다. 또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따뜻한 마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과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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