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해야 할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언제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삶은 수많은 마침표로 이어진다. 졸업과 퇴사, 이별과 사별, 심지어 매일 밤 찾아오는 하루의 끝까지.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끝내며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소피 갈라브뤼의 신간 '마침표의 순간들'은 그 끝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대개 '시작'을 사랑한다. 새 학기, 첫 출근, 첫사랑 같은 단어에는 설렘이 붙는다. 반면 졸업 후 텅빈 교실, 마지막 출근 날의 어색한 인사, 헤어진 뒤 삭제하지 못한 메시지처럼 '끝'은 늘 상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삶을 이루는 것은 시작이 아니라 수많은 마지막들이라고 말한다.
1990년생인 저자는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며 난해한 철학 용어 대신 일상의 언어로 사유를 전하는 프랑스 '팝 철학'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특히 그의 첫 책은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직접 선정하는 '고등학교 철학 도서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책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마지막을 여러 형태로 나눈다. 은퇴와 졸업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준빙된 작별이 있는가 하면, 갑작스러운 이별이나 죽음처럼 뒤늦게야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다. 또 어떤 끝은 하나의 구원처럼 찾아온다. 오래된 중독을 끊어내거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관계를 정리하는 일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저자가 끝을 거창한 철학 개념보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끌어낸다는 점이다. 저자는 영화와 뉴스, 라디오 사연, 여행의 기억 같은 익숙한 풍경으로 천천히 사유를 이끈다. 오래 살던 집을 떠나며 괜히 한 번 더 빈방을 둘러보는 마음, 이제 연락하지 않는 친구를 문득 떠올리는 밤,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은 여행지에서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들. 독자는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 속 마지막들을 하나씩 꺼내보게 된다.
저자는 마지막을 단순히 닥쳐오는 상실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떻게 끝을 맺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 또한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갑작스러운 상실 속에서도 아주 작은 목표를 세우며 하루를 버텨내는 일, 혹은 떠나는 공간과 사람에게 스스로 작별의 의식을 건네는 일 역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끝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더 가까운 책처럼 읽힌다.
읽다 보면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오래 바라봤을 장면은 없었는지, 너무 쉽게 끝내버린 관계는 없었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관계와 감정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라서인지 책의 메시지는 더욱 선명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시작하고,너무 서둘러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시간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인질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제 끝날까'를 두려워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마침표의 순간들'은 끝에 관한 책이지만 이상하게도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끝났기 때문에 비로소 선명해지는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은 결국 수많은 마지막을 지나 다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조용히 일깨운다. 288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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