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공항 맞은편 주택가에 자리 잡은 작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면 한쪽 가득 채운 '36인 작가의 방'이 눈에 들어온다. 발터 벤야민, 박완서, 김영하 등 서점이 '늘 함께 하고픈' 작가 36명을 엄선해 그들에게 방 하나씩을 내어주듯 책장 한 칸마다 그들의 책을 꽂아뒀다. 김수환 추기경, 봉준호 영화감독, 이상화 시인 등 대구 출신 인물에 관한 책을 모아둔 코너도 있다. 매장 곳곳엔 책을 보러 온 이들이 오래 쉬어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뒀다. 2층엔 책과의 하룻밤을 꿈꾸는 이들이 묵어갈 수 있는 북스테이 공간도 있다. 인문서점 '여행자의 책'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박주연(44) 대표. 그는 5년 전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이곳에 서점을 열었다. 지난 9일 '여행자의 책'에서 만난 그는 "처음 바랐던 것처럼 이 공간이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이자 공공 서재로 자리 잡은 것 같아 흐뭇하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선한 일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교사 출신이다. 서점은 언제 열게 됐나.
▶2021년 3월 서점 문을 열었다. 그 직전 달까지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10년 동안 가르쳤다. 교편을 잡은 게 서른 살쯤이었는데 그 이전엔 대학에 있었다. 학부를 마친 뒤 대학원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며 조교와 시간강사 생활을 했다. 뭔가 그렇게 계획한 건 아니지만 대학을 10년 다녔고, 또 학교에서 아이들을 10년간 가르쳤다. 서점 간판 불을 켜면서 10년은 여기에 빠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 그 절반쯤 왔다.
-서점을 열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과도 참 잘 맞았기에 재미있게 일을 했다. 그런데 문득 '인생은 한 번 뿐인데 이게 전부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삶을 산다면 서점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하면 늘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서점이나 도서관이었다. 맨 처음 하는 일이란 건, 해외여행 때 '귀국하면 가장 먼저 김치찌개를 먹어야지'하고 갈망하는 것처럼 굉장히 기다렸다는 거다. 이런 부분을 제가 굉장히 원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전국의 서점을 참 많이 찾아다녔다. 대도시는 물론, 군산이나 순천 같은 소도시도 즐겨 찾았다. '이런 곳에 이런 서점이?'라고 감탄할만한 곳을 보면 무척 부러웠고, 왜 '대구는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돌이켜보면 서점 여행을 하면서 책방지기를 만나는 일이 또 하나의 삶의 축이 됐던 것 같다. 오래가는 서점은 그 나름대로, 금세 문을 닫는 서점은 또 다른 의미에서 오래가는 서점을 해보라고 권하는 것만 같았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하는 일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안전한 일을 하나 두고 병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건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생에 한 번밖에 없다면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란 '사노라면'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돈 안 되는 일에도 10년 정도는 인생을 던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서점을 열었다.
-서점 이름이 독특하다. 어떤 의미인가.
▶2014년 무렵이었다. 교직에 평생 있진 않을 거란 예감이 있었다. 그러곤 적금을 들었는데, 나중에 집을 사면 한 층을 게스트하우스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계좌 이름을 '여행자의 집'으로 붙였다. 우리가 지구에 여행 왔다는 생각이 그때 문득 들었고, 그래서 언젠가는 지구에 잠시 여행을 온 사람들끼리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이름을 지었다. 마침 서점을 위해 1년 정도 대구를 돌아다니다가 공항 앞에 집을 마련하게 되면서 그 이름을 가져와 '여행자의 책'으로 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단순하게는 공항 앞 서점이어서 여행자의 책이란 말이 어울리기도 했고, 또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책을 펼치는 게 바로 여행의 시작이란 생각에서였다. 책에 등장하는 시간·공간여행에 이어 저자의 내면여행을 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독서 또한 여행의 또 다른 방식이란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정기적으로 여는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매달 꾸리고 있는 독서모임은 두 가지다. '세계문학 세계식탁'은 한 나라를 여행하듯 한 권의 세계문학과 한상의 식탁을 만난다는 콘셉트다. 지난달엔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 중편 '첫사랑'을 함께 읽고, 토마토가 주재료인 러시아 전통수프를 만들어 함께 식사를 했다. 책에 이어 음식으로 한 번 더 작가의 삶과 작품에 다가가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이 시대'란 독서모임은 '책방지기가 주목한 이 시대에 읽을 책'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매월 다양한 분야의 책 1권씩을 정해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눈다.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건 '작가와의 만남'이다. 1년에 총 6차례, 대략 2개월에 1번씩 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작가가 저희 일정에 맞추도록 한다는 거다. 죄송하지만 단호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게 동지, 대보름 등 여섯 가지 절기를 정해두고 그 날 행사를 열기 때문이다. 동지엔 '책 읽는 동지를 찾습니다', 대보름엔 '귀밝이책'이란 테마로 진행한다.
절기가 점점 잊히는 게 늘 아쉬웠다. 이런 전통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가 하겠지란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서점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소중한 날에 소중한 사람을 만나 소중한 책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동지엔 팥죽을, 단오엔 수리취떡을 나눠 먹으며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강연 내용도 현장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조금은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일화도 많을 것 같다.
▶독서모임을 하며 아주 가끔씩 술과 안주를 낼 때가 있다. 어느 날 작품 속에 도토리묵이 등장해 도토리묵을 직접 만들어 냈을 때였다. 참석자 한 명이 말했다. "이 서점 안주가 참 좋아." 황당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제겐 엄청난 칭찬으로 들렸다.
서점을 방문하는 이들을 늘 최고로 환대하고 싶은 마음이다. '얼마나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 할까'하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낼 때부터 즐거움이 밀려온다. 그렇기에 이 같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든 서점 중에서 도토리묵을 만들어서 낼 수 있는 건, 아마 저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출판도 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지금까지 직접 기획해서 낸 책은 다섯 권 정도다. 서점 문을 연 2021년 대구시청년센터 지원사업에 선정돼 '경상도 어르신 잔소리 사전'이란 책을 낸 게 시작이었다. 지역 청년 7명이 공동 저자가 돼 할머니·아버지 등과 통화한 내용을 기록하고, 대화에 등장하는 사투리 풀이를 함께 담은 책이다.
이 책을 만든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런 소소한 이야기책이 조금씩 팔려나가는 게 신기했다. 심지어 2024년엔 서울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특별전에 전시가 되기도 했다. '출판은 출산과 비슷하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책을 하나 낳으면 반드시 그 아이는 자라서 돌아온다. 그리고 무언가 응답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책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출판에 대해서도 늘 꿈을 꾸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이 일을 시작한데 대한 후회는 없나.
▶전혀 없다. 수익적인 면만 생각한다면, 저는 '예방주사'를 맞고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이정도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공간을 좋아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얻는 기쁨과 에너지가 훨씬 크다.
-작은 서점의 매력은 뭔가
▶서점을 처음 열며 사람들이 책과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다.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손님들이 책을 직접 만져보며 편하게 오래 머물다 가길 바라는 마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부분이다. 매장에 테이블과 의자를 많이 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독립서점은 각기 고유한 매력을 갖고 있다. 생존을 위해 별별 프로그램 다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서 각 서점의 정체성이 나온다. 그렇기에 서점을 방문하는 일 자체가 문화 경험이 된다.
저희 공간만 하더라도 외지 손님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어떤 주민은 '좋제?'라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으쓱해하며 친구와 문을 열고 들어서기도 한다. 때론 여기서 중고 거래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반상회도 한다.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이자 공공서재로 자리잡은 것 같아 흐뭇하다. 이처첨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세대와 사람을 아우를 수 있다는 것, 동네 서점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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