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라 부르라." 영화 '타짜'에서 편경장(백윤식 분)이 고니(조승우 분)에게 그렇게 말했다. 2000년생 소년에겐 1970년대생 야구광 '아재'가 있었다. 그가 영화 속 편경장 목소리를 흉내내며 그리 말했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진심이었다. 안 그러면 진짜 토라졌다. '얘도 아니고, 참'.
삼촌은 아버지의 사촌형이었다. 사실 5촌 당숙인 셈. 아버지가 워낙 잘 따라 그냥 형제나 다름없었다. 가까이 살기도 했다. 그래서 소년도 그냥 '큰아버지'라 부르곤 했다. 한데 그 말을 참 듣기 싫어했다. 차라리 삼촌이라 부르란다. 나이 든 사람 취급이 싫었나 보다. 그를 따라 야구장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소년도 라이온즈 팬이 됐다.
◆통합 4연패 달성, 삼성 '왕조'
유치원생 소년에게 야구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였다. 하지만 삼촌에겐 그렇지 않았다. 일상이 야구요, 야구가 곧 일상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전날 삼성이 이겼는지, 졌는지 알 수 있었다. 2006년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삼촌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아버지는 사촌형(내가 삼촌이라 부르는)을 참 좋아했다. 어린 시절 장손인 아버지 주위엔 온통 어른들뿐이었다. 사촌형이 안식처였던 셈. 그가 하자는 건 다했다. 다만 야구엔 취미가 없었다. 야구장에 끌려 다니긴 했지만. 결혼 후 상황이 변했다. 이제 아버지의 안식처는 어머니. 아버지의 '대타'는? 소년이었다.
삼촌은 소년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삼성은 최강이지만 한이 서린 팀이라고, 아직 우승에 목마르다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삼촌은 과거사를 또 줄줄 읊었다. 프로야구 원년, 우리 에이스 이선희가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최종전 만루 홈런을 맞은 일부터.
삼성은 2004년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역대 최고 투수로 꼽혔던 '국보' 선동열을 품었다. 김응용 감독과 함께 '검빨(빨간색 상의에 검은색 하의)' 유니폼을 입고 삼성을 밟던 해태 출신. 김 감독을 사령탑으로 임명, 우승 목표를 이룬 데 이어 선동열을 코치로 데려왔다.
선 코치, 아니 선 감독은 2005년과 2006년 삼성을 이끌고 왕좌에 올랐다. 삼촌이 어릴 적 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젠 우승을 선물한 산타클로스가 됐다. 선 감독의 치세는 2010년에서 끝났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에 4연패로 무너진 게 컸다.
초등학생인 소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준우승 감독을 바꾸다니. 반에서 2등인데 1등이 아니라고 뭐라 하는 꼴로 보였다. 삼촌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나마 그가 안도한 건 자신이 어릴 적 영웅으로 삼았던 사람이 새 사령탑이란 점. 삼성의 전설적인 유격수 류중일이 지휘봉을 잡았다.
우승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준우승 감독이 물러나는 걸 봤으니 류 감독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류 감독은 변화보다 안정을 택해 빠르게 전력을 다시 다졌다. 전임 선 감독이 남긴 유산, 막강 불펜을 바탕으로 선발투수진을 강화해나갔다.
'돌부처' 오승환이 건재했다.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이 오승환에 앞서 등판해 상대의 공세를 무력화했다. 경기 후반엔 '철옹성'. 그 덕분에 소년과 삼촌은 경기 내내 초조해할 필요가 없었다. 신예 배영섭과 김상수는 공수에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삼성은 2011년 팀 역사상 다섯 번째 우승을 일궈냈다. 한국시리즈 제패는 네 번째. 삼촌의 어린 시절, 1985년엔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 통합 4연패 위업을 이뤘다. '왕조'라 할 만했다.
그동안 준우승만 무려 9번. 한(恨)을 풀었다. 4년 연속 우승한 날, 삼촌은 웃지 않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게 좋은 날에? 소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럴 만했다. 소년에겐 삼성이 이기는 게 일상사. 하지만 삼촌은 어린 시절 삼성과 함께 참 많이 울었다. 그렇게 어른이 됐다.
◆암흑기 지나 다시 정상 도전
삼성은 한때 '비운의 팀'이라 불렸다. 최강 전력을 갖추고도 좀처럼 최고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팀 팬들 앞에서 최강이라 얘기하긴 좀 그랬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20세기에 해태에게만 한국시리즈에서 3번 꺾였다.
삼촌은 축구도 즐겼다. 해외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았다. 유럽프로축구를 볼 땐 콥(리버풀의 팬을 이르는 말). 미국프로야구에선 보스턴 레드삭스를 좋아했다.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다들 강한데 오래 우승을 못해서'라 했다. 결국 그들을 택한 기준도 삼성이었던 모양이다.
굴곡진 20세기가 지나갔다. '21세기 최강팀'이란 얘기도 듣게 됐다. 왕조 시절, 삼촌이 슬퍼한 건 2011년 9월초 한 번뿐. 잘 알고 지내던, 어린 시절 영웅 장효조 2군 감독의 부고를 접한 뒤였다. 삼촌은 '장효조 코치'라 저장된 휴대전화 번호를 끝내 지우지 못했다.
소년이 중학교 3학년이 된 2015년. 그해도 삼성은 정규시즌을 1위로 마쳤다. 전무후무한 '5년 연속 통합 우승 기록'이 눈앞. 하지만 삼성 왕조에 균열이 생겼다. 류중일 감독의 말대로 "우째 이런 일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주축 선수들의 원정 도박 사건이 터졌다.
팀 분위기가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주축들이 이탈, 힘도 빠졌다. 두산에게 1승 4패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 했다. 선현들의 말은 진리였다. '대구시민야구장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추운 시절이 찾아왔다.
2016년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개장했다. 다들 이곳을 '라팍'이라 줄여 불렀다. 새 둥지는 쾌적했지만 성적은 암울했다. '야통(야구 대통령의 준말)' 류중일 감독도 어쩌지 못했다. 시즌 최종 순위는 9위. 충격적이었다. 류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놨다.
삼성 3루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한수 코치가 새 사령탑. 하지만 삼성은 반등에 실패했다. 지난 시즌 후 최형우와 차우찬이 각각 KIA와 LG로 떠난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2017시즌도 9위. '국민타자' 이승엽이 은퇴 경기를 치렀고, 그의 등번호 36번은 영구결번 처리됐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말했다. 야구와 적당히 거리를 두라고. 그러지 않으면 1년 중 절반은 화가 나 있을 거라 했다. 그땐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소년이 고3이던 2018년. 순위는 겨우 3계단 오른 6위. 공부도 잘 안되는데 야구까지 스트레스를 줬다. 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2019, 2020시즌은 모두 8위. 2020시즌엔 오승환이 해외에서 복귀, 다시 마무리를 맡았다. 소년의 초등학생 시절 영웅이 돌아왔다. 희망이 생겼다. 2020시즌 지휘봉을 잡은 허삼영 감독은 2021시즌 삼성을 3위에 올려놨다. 하지만 이듬해 바로 7위로 추락했다.
2022시즌 도중 허 감독이 옷을 벗었다. 소년은 군복을 벗었다. 대학생으로 돌아왔다. 박진만 감독이 이끌게 된 삼성은 2024, 2025시즌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마침내 암흑기가 끝났다. 최형우가 돌아온 2026시즌, 삼성은 다시 정상을 꿈꾼다. '취준생' 소년, 아니 청년도 같은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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