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대구시 중구 대안동에서 매일신문 모체인 남선경제신문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흑백의 타블로이드 2면으로 발행된 창간호였다. 그로부터 80년, 매일신문은 정론의 길 위에서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도전을 하며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매일신문은 권력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정론지로서의 역할을 이어왔다. 창간 이후 1955년 발생한 이른바 '백주의 테러'는 매일신문의 그 우직함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주필 최석채는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통해 정치 행사에 어린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는 자유당 정권을 비판했고, 이를 문제 삼아 대낮에 무장한 괴한 40여 명이 신문사를 습격했다.
1960년에는 정부의 억압 속에서도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부상 당한 학생들을 위한 금품 모금 운동, 1962년 대구 명덕로터리에 세워진 2·28 대구 학생 의거탑 건립 기금 마련에도 앞장섰다.
매일신문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앞장서서 이끌었다. 1961년에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언론사 최초 신년 단독 대담을 통해 경제개발5개년 계획, 재건국민운동 방향, 한일국교정상화 전망 등의 특종을 쏟아내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77년 지령 1만 호를 발간한 매일신문은 1981년 현재의 계산동 신사옥을 완공, 이전했다. 1983년에는 국내 첫 지역 주간신문 '매일생활정보'를 발간했다.
1987년, 당시 첨단제작시설인 CTS(자동편집조판시스템)를 본격 도입하며 납 활자 제작시대를 마감했다. 4년간의 시험기간을 거쳐 1991년부터는 모든 지면을 CTS로 제작했다.
지면을 넘어 독자와의 소통 통로를 넓히고자, 1995년에는 지방신문사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이듬해에는 매주 1회, 컬러 12면을 포함한 48면을 발행하게 된다. 이 또한 지방신문사로서 첫 시도였다.
2008년에는 우리 땅 독도를 지키고 제대로 알리고자 우리나라 언론 사상 최초로 독도 상주 기자를 파견했고 2009년에는 국내 일간지 5번째로 지령 2만 호를 맞았다.
이어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여하는 최고경영자 네트워크 과정 '매일 탑리더스 아카데미'가 2013년 출범했다. 2014년에는 빠른 기술 변화에 대응해 모바일 뉴스 앱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5년 1월 1일, 매일신문은 창간 69년 만에 발행체제를 석간에서 조간으로 바꾸며 새로운 변화의 기점에 섰다. 더 빠른 신문, 더 알찬 신문을 향한 첫 발걸음에 많은 지역민의 성원과 기대가 따랐다.
2019년에는 '이웃사랑' 연재 기사가 '한국 신문사 최장 불우이웃돕기 연재 및 최고 누적 성금액 모금'으로 한국기록원의 공식 인증을 받았다.
2022년, 지역의 면면을 기록해온 매일신문의 수많은 자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디지털화하기 위한 아카이빙센터가 설립됐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주간매일이 10년 만에 부활해 관심을 모았다.
매일신문 창간 80년은 단순히 시간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를 기록하고 공동체를 연결해온 지역 언론의 축적된 가치를 키우고 앞으로 맞이할 시대 속에서도 공공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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