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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보는 세상] 102편 영화로 읽는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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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영화학교 촬영 현장. 매일신문DB
대구영화학교 촬영 현장. 매일신문DB

영화는 허구다. 하지만 수십 편의 영화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닮은 기록일지도 모른다.

김상목의 비평집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을 분석한 박소영 고려대 초빙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비평집이 다룬 대구 독립영화는 모두 102편 대부분이 2010년 이후 제작된 작품으로, 대구 청년들의 방황과 가족, 공동체, 노동, 사회운동 등을 반복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영화 속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은 하나였다. "대구를 왜 떠나려고 하는가."

◆ 현실을 담은 영화?

영화 속 청년들은 대부분 서울이나 해외를 꿈꾼다.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꿈을 펼칠 기회가 없어서', 때로는 '가족이라는 짐 때문에 떠나지 못해서'다. 영화 〈아무 잘못 없는〉 〈흐르다〉 〈여름의 건널목〉 〈두 집 살림〉에는 이런 청년들의 모습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부모의 병간호와 가업, 생계 같은 현실은 이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떠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두 집 살림〉에서 서울은 청년들에게 비좁은 방 한 칸을 내어줄 뿐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도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다. 〈여름의 건널목〉의 주인공 역시 경북 칠곡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지만 그의 기억과 마음은 여전히 고향과 연결돼 있다. 대구 영화 속 청년들에게 '떠남'은 성공이나 해방이라기보다 또 다른 경계에 서는 일에 가깝다.

영화 속 이야기는 현실과도 겹친다. 통계청 국내인구이동 통계를 보면 대구에서는 매년 청년층 순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34세 청년의 순유출 규모는 전국에서도 큰 편이며 이동 사유 역시 취업과 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가 현실을 따라간 것인지, 현실이 영화를 닮은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구의 예술영화전용관
대구의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 매일신문 DB

◆ '왜 남는가' 지역성도 조명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대구 영화가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더 오래 바라본다는 점이다. 〈커뮤니티〉는 지역에서 공동체를 만들려는 청년들을, 〈라샹스〉는 쇠퇴한 향촌동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장인을 기록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보수의 도시 대구'와는 사뭇 다른 풍경도 스크린에 등장한다. 〈퀴어053〉은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둘러싼 사람들을 기록하고, 〈소성리〉는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 배치에 맞선 주민들의 삶을 따라간다. 영화 속 지역은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떠나고 싶은 사람과 떠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 남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결국 대구 영화가 반복해서 기록하는 것은 '왜 떠나는가'라는 질문만은 아니다. 떠나는 것이 당연해진 도시에서 '왜 남는가', 그리고 '남아서 무엇을 하는가'까지 함께 묻는다.

◆ 영화 불모지인데 102편

흥미롭게도 이 질문은 영화 밖에서도 이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이 대구에 남아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척박한 지역에 남아 카메라를 들었다.

대구에는 4년제 영화학과가 없고 영상산업 기반과 관련 일자리도 부족하다. 반면 영화 소비는 활발하다. 연구는 대구가 한때 서울·경기에 이어 전국 영화 매출 3위를 기록했을 만큼 영화를 많이 보는 도시였지만, 정작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창작 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계속 만들어졌다. 지역 영화인들은 대구단편영화제를 비롯한 지역 영화 생태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2019년에는 대구영화학교도 문을 열었다. 비평집에서 다룬 작품 상당수 역시 이러한 지역 창작 기반에서 성장한 영화인들의 작품이다.

내용도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청년 유출이나 노동, 사회운동 같은 현실 문제뿐 아니라 좀비와 호러 등 장르적 실험도 이어진다. 김용삼, 전찬영, 김현진, 윤진, 장윤미 등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감독들도 저마다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영화 산업이 없는 도시'에서 오히려 끊임없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역설이다.

대구 북구 동화천 둔치에 영화를 관람하는 시민들. 매일신문DB
대구 북구 동화천 둔치에 영화를 관람하는 시민들. 매일신문DB

◆ 102편이 기록한 '또 다른 대구'

연구는 지역 영화의 의미 역시 단순히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촬영하거나 사투리를 사용하는 데 있지 않다고 본다. 그곳에 축적된 역사와 기억,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관계를 담아낼 때 비로소 지역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때로 그 시선은 대구라는 행정구역 밖으로도 뻗어나간다. 〈지금은 멀리 있지만〉은 대구에서 살아가는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지역 시민들과 연대하는 과정을 담는다. 대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 다른 지역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셈이다.

결국 102편의 영화가 기록한 것은 관광지도나 통계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대구다. 떠나려는 사람과 남으려는 사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삶이 한 편 한 편 쌓이며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허구다. 하지만 수십 편의 영화가 같은 현실을 반복해서 비춘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한 도시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대구 영화 102편이 보여주는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대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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