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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황희진] 오디세이 안티노오스와 안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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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백, 안티노오스. 연합뉴스, 네이버 영화
안규백, 안티노오스. 연합뉴스, 네이버 영화
황희진 주간본부 차장
황희진 주간본부 차장

최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에서는 트로이 전쟁에 나갈 사람을 제비뽑기로 정한다. 평민 집안 시논은 귀가 표식(標式)을, 귀족 집안 안티노오스는 참전 표식을 뽑는다. 그러나 안티노오스는 형편이 어려운 시논의 가족을 돌봐주겠다는 거짓말로 표식을 바꾼다. 전쟁의 의무는 힘 있는 집 아들에게서 가난한 집 아들로 옮겨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원전에 새롭게 추가한 이 설정은 한국 관객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릴 만하다. 징병제 국가에서 병역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공정성(公正性)의 시험대라서다.

6·25전쟁 때 제임스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의 아들 제임스 주니어는 B-26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실종됐다. 그를 비롯해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장성의 아들은 142명, 이 가운데 35명이 전사·실종되거나 부상했다. 아들을 전장에 보낸 지휘관들의 이야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자체다.

그러나 전쟁 뒤 한국 사회가 밟은 행보는 구차했다. '석사장교'가 그랬다. 석사 학위자를 선발해 6개월 군사교육과 전방 체험 후 소위로 임관시키자마자 전역시켰다.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전재국 씨가 입대를 앞둔 1982년 시작돼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현 주중대사가 복무한 뒤인 1991년 폐지됐다. 당시 일반 병사의 복무기간은 30개월 안팎이었다. '있는 집 자식용 병역 제도'라는 오명(汚名)이 달렸다.

이 기억이 오래가는 이유는 병역 문제가 과거형이 아니어서다. 힘과 돈, 연줄을 가진 집 자식들의 병역 회피·특혜 논란은 세대가 바뀌어도 반복됐다. 그래서 석사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조차 오늘의 공직 후보자에게는 설명해야 할 이력이 됐다. 당시 제도였고 합법이었다는 변명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소수에게만 열렸던 혜택을 실제로 누린 사실까지 오늘의 기준으로 다시 평가받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방위병 복무 중 군무이탈 의혹이 재점화한 것도 이 맥락에서 짚어야 한다. 국방부는 정상적으로 복무를 마쳤다는 입장을 반복하지만, 정치권은 병적기록부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핵심은 탈영 여부 하나만이 아니다. 최근 안 장관의 과거 발언까지 논란에 보태졌다. 그가 지난 6월 공군사관학교 생도들과의 간담회에서 '처변불경'(處變不驚)을 언급하며 "마오쩌둥의 좌우명이 곧 내 좌우명"이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6·25전쟁 때 중공군 참전을 결정한 마오쩌둥을 국방 수장이 사관생도들 앞에서 좌우명 출처로 내세운 걸 두고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방부는 특정 정치 인물이나 사상을 옹호하는 의도가 아니라 정세 변화에 흔들림 없이 대처하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관학교 통합처럼 논란 속에서 군 구조를 바꾸고 장병에게 규율(規律)과 희생을 요구하는 국방 수장이라면, 자기 복무 기록은 물론 안보관과 역사 인식까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밝혀야 한다. 국방 정책의 권위는 결국 수장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영화 오디세이 후반부에서 안티노오스는 마침내 과거 선택의 대가와 마주한다. 한때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던 전쟁의 의무는 돌고 돌아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누군가에게 심판당했다기보다 끝내 피할 수 없게 된 자기 책임과 마주한 셈이다.

현실 정치는 영화처럼 장면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안 장관에게 필요한 것도 누군가의 처단이 아니다. 우선 필요한 건 공개와 설명이다. 의혹이 허위라면 기록으로 증명하면 된다. 사실이라면 스스로 책임지는 게 참회(懺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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