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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경제] "뭐가 나올지 몰라 또 산다"…유통가 파고든 '랜덤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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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가챠 "원하는 캐릭터 나올 때까지"
민음사 '문학빵' 랜덤 책갈피 모으기 열풍
유통업계 "'뽑는 재미' 새로운 판매 전략"

4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가챠·인형뽑기 매장에서 시민들이 인형뽑기를 즐기고 있다. 최근 동성로에는 가챠와 인형뽑기 등
4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가챠·인형뽑기 매장에서 시민들이 인형뽑기를 즐기고 있다. 최근 동성로에는 가챠와 인형뽑기 등 '랜덤 소비'를 즐길 수 있는 매장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임소현 기자

대구 동성로 한복판. 수백 개의 캡슐이 들어찬 가챠 기계 앞에서 20대 손님이 돈을 넣고 손잡이를 돌린다.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자 다시 지갑을 연다. 한 번에 4천원. 무엇이 나올지는 캡슐을 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편의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나타난다. "그 빵 있어요?", "키링 들어왔어요?"라며 특정 상품을 찾는 손님들이 매장을 찾는다. 포장을 뜯어야 확인할 수 있는 책갈피와 키링 등 '랜덤 굿즈'를 얻기 위해 같은 상품을 여러 번 구매하기도 한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 자체가 상품의 일부가 되고 있다. 가챠와 인형뽑기에서 시작된 '랜덤 소비'가 캐릭터 굿즈를 넘어 빵·과자 등 일상적인 먹거리까지 파고들면서 유통업계의 새로운 판매 전략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빈 점포 사이 가챠·인형뽑기점은 '우후죽순'

4일 오전 대구 중구 동성로. 평일 오전이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곳곳에는 임대 안내문이 붙은 빈 점포가 눈에 띄었다. 반면 인근 가챠숍에는 한두 팀씩 손님이 자리를 지키며 기계 앞에서 캐릭터를 고르고 손잡이를 돌렸다.

가챠를 즐겨 찾는 윤진호(29) 씨는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으면 한 번에 여러 차례 뽑기도 한다. 한 번 가격은 4천원. 다섯 번이면 2만원이지만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다시 지갑을 연다. 윤 씨는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면 기분이 좋다"며 "일반 토이숍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제품이 들어오기도 하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4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가챠숍에 다양한 캐릭터 상품이 들어 있는 가챠 기계가 줄지어 설치돼 있다. 가챠는 기계에 돈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의 상품이 무작위로 나오는 방식이다.임소현 기자
4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가챠숍에 다양한 캐릭터 상품이 들어 있는 가챠 기계가 줄지어 설치돼 있다. 가챠는 기계에 돈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여러 종류 가운데 하나의 상품이 무작위로 나오는 방식이다.임소현 기자

실제 동성로에서는 가챠·인형뽑기 매장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이날 옛 대구백화점 반경 500m 안에서 기자가 확인한 가챠·랜덤뽑기·인형뽑기 매장만 15곳 안팎에 달했다. 한 건물의 1·2층을 같은 업체가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일부 매장에서는 오락실을 2층에 두고 유동인구가 바로 접근할 수 있는 1층에 가챠 기계를 집중 배치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동성로에서 가챠숍과 인형뽑기점을 운영하는 김승원(49·가명) 씨는 최근 소비층이 넓어진 데다 특정 캐릭터를 겨냥한 반복 구매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예전에는 10대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20·30대 직장인 손님도 많이 늘었다"며 "인기 캐릭터 상품은 들여놓으면 며칠 만에 빠질 정도로 반응이 빠르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종류를 뽑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같은 가챠를 반복하는 손님이 많다"며 "보통 한 가챠에 3~4번 정도 도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민음사 빵. GS리테일 제공
민음사 빵. GS리테일 제공

◆빵 속 책갈피가 뭐길래…누적판매 43만개

랜덤 소비는 가챠 전문점을 넘어 편의점까지 파고들고 있다. 식품에 캐릭터·문학 등 지식재산권(IP)을 결합한 데 이어, 어떤 굿즈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도록 한 상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GS25가 지난달 21일 민음사와 협업해 출시한 '문학빵' 4종은 지난 2일까지 누적 판매량 43만개를 넘어섰다. 출시 일주일 만에 약 20만개가 팔렸고, 현재 GS25 빵류 매출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빵에는 세계문학전집과 한국 시집의 문장을 담은 책갈피 20종 가운데 하나가 무작위로 들어 있다. 모바일 앱 '우리동네GS'를 통한 사전예약 픽업 비중도 전체 판매량의 46%에 달했다.

책갈피 20종 가운데 18종을 모은 정선혜(33) 씨는 원하는 책갈피를 얻기 위해 입고 시간에 맞춰 편의점을 8차례 이상 찾았다. 이 씨는 "좋아하는 책의 책갈피가 나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빵을 뜯는 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며 "그 뜯는 맛에 계속 빵을 사다 보니 책갈피를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민음사
민음사 '문학빵'을 구매한 이하은(32) 씨가 모은 책갈피 18종. 이 씨는 원하는 책갈피를 얻기 위해 편의점을 8차례 이상 찾으며 총 20종 가운데 18종을 모았다. 독자 제공

CU도 교보생명과 협업해 소설과 에세이 속 문장을 담은 책갈피를 무작위로 넣은 '문장 한입 팝콘'을 선보였다. 간식을 구매하면서 어떤 문장이 담긴 책갈피를 받게 될지 모르는 재미를 더한 상품이다. 세븐일레븐은 지난달 K리그와 산리오캐릭터즈를 결합한 빵·디저트 등 협업 상품에 총 73종의 랜덤씰을 넣었다. K리그 1·2 구단의 유니폼 등을 입은 산리오 캐릭터를 무작위로 제공하고, 별도로 150종의 컬렉션카드도 판매하며 스포츠와 캐릭터 팬덤의 수집 수요를 겨냥했다.

◆하나 살 손님이 두세 번 산다

원하는 상품을 직접 고르는 일반 판매와 달리 랜덤 상품은 원하는 제품을 얻거나 여러 종류를 모으기 위한 반복 구매로 이어지기 쉽다. 한 번 먹으면 소비가 끝나는 빵이나 과자도 랜덤 굿즈를 결합하면 '수집'이라는 새로운 구매 동기가 생긴다.

GS25 매장에
GS25 매장에 '몬치치 프렌즈 랜덤 피규어 키링'이 진열돼 있다. 9종 가운데 어떤 캐릭터가 들어 있는지는 포장을 뜯어야 확인할 수 있는 랜덤 상품이다. 독자 제공.

여기에 무엇이 나올지 기다리고 포장을 뜯어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소비 경험이 된다. 원하는 상품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구매하고, 원하는 상품을 얻더라도 다른 종류를 모으기 위해 추가 구매하는 식이다. 상품을 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뽑고 확인하고 모으는 재미'까지 함께 파는 것이다.

유통업계 입장에서는 반복 구매뿐 아니라 매장 방문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캐릭터·스포츠·문학 등 이미 팬층을 확보한 콘텐츠를 랜덤 방식과 결합하면 기존 팬덤을 상품 구매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랜덤 굿즈는 원하는 상품이 나올 때까지 구매하거나 여러 종류를 모으기 위해 같은 상품을 다시 찾는 소비가 나타난다"며 "인기 IP와 결합하면 신상품 출시 때마다 관심을 끌 수 있고 매장 방문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구조가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번에 쓰는 돈은 크지 않아 보여도 원하는 상품을 얻기 위해 구매를 거듭하다 보면 지출액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어서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재미'가 구매를 이끄는 힘이 된 만큼 소비자 스스로 지출의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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