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후 이사해 전학 절차를 밟던 한 학부모는 학교에 낼 주민등록표 등본을 떼어 보고 손을 멈췄다. 자녀 이름 옆 세대주와의 관계란에 '배우자의 자녀'라고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 한 장이 가족의 재혼 사실을 먼저 말해 버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표기가 오는 10월 29일 사라진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개정안이 이날 시행된다. 이에 따라 일반 등본에서 세대주와의 관계는 '세대원'으로 일원화된다.
◆ 배우자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세대원'
바뀌는 핵심은 관계 표기의 단순화다. 세대주의 배우자를 뺀 나머지 민법상 가족은 자녀든 부모든 구분 없이 모두 세대원으로 적힌다. 지금까지 쓰이던 '자녀', '배우자의 자녀', '부모' 같은 구체적 표기가 기본 서식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민법상 가족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세대 구성원은 종전처럼 '동거인'으로 표기된다. 친인척이 아닌 사람과 한 세대를 이루고 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주민등록등본 세대원 표기가 바뀌면서 등본만으로는 누가 누구의 친자녀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재혼이나 입양 등 가족의 내부 사정이 서류 제출 과정에서 자동으로 드러나던 관행이 끊기게 된다.
이번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날은 지난 4월 21일이다. 의결부터 시행까지 6개월가량 시간을 둔 것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발급 시스템과 서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등재 순위도 손본다…'자녀 뒤에 배우자의 자녀' 폐지
표기 문구뿐 아니라 이름이 적히는 순서도 달라진다. 기존에는 배우자의 자녀를 세대주의 친자녀 뒤에 배치하도록 해, 순서만 봐도 가족관계가 짐작됐다.
개정 시행령은 배우자의 직계존비속을 세대주의 직계존비속과 같은 순위로 등재하도록 했다. 등재 순위에 남아 있던 차등이 없어지는 것이다.
외국인 가족에 대한 표기도 바뀐다. 주민등록표에 로마자 성명과 한글 성명을 함께 적도록 했다. 서류마다 성명이 달라 동일인 확인이 어렵던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다. 외국인 주민등록 사항의 정정·변경 신청 권한도 본인 외에 세대주와 세대원까지 넓어진다.
◆ 상세 발급은 '선택'…용도와 목적 적어야
구체적 가족관계가 필요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민원인이 원하면 종전처럼 상세한 관계가 기재된 등·초본을 선택해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상세 서식을 고를 때는 제출 용도와 목적을 적어야 한다. 관행적으로 상세 등본이 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상속처럼 법적 친족관계를 정확히 증명해야 하는 일은 주민등록 서류가 아니라 가족관계등록부로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다. 행정안전부는 구체적 친족관계 확인이 필요하면 가족관계등록부를 발급받도록 안내하고 있다.
◆ 2391만 세대가 쓰는 서류…혼인 24만 건
이 서류는 사실상 전 국민이 쓴다. 행정안전부의 2024년 통계연보 기준 전국 주민등록 세대수는 2391만4천851세대이며, 1인 세대가 41.5%였다. 같은 자료에서 모바일 전자증명서 활용 실적은 연간 2천686만3천406건으로 집계됐다.
가족 형태가 바뀌는 속도도 빠르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혼인은 24만 건으로 전년보다 8.1% 늘었고, 이혼은 8만8천 건으로 3.3% 줄었다.
정부는 제도 안착을 위해 지난 9일 관계 부처 합동 업무협약을 맺었다. 전국 245개 가족센터를 거점으로 달라지는 표기 내용을 알릴 계획이다.
이번 홍보에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성평등가족부,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참여했다. 주민등록 서식을 다루는 부처와 가족정책을 맡은 부처, 현장 기관이 한자리에 모인 구조다.
전국 가족센터는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총괄하는 가족지원 거점이다. 재혼가정이나 한부모가정이 상담과 교육을 받으러 찾는 곳인 만큼, 서식 변경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이용자와 맞닿아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 "은행이 상세 등본 요구하면"…남는 과제
한계도 지적된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심사 편의를 이유로 상세 관계가 적힌 등본을 관행적으로 요구하면, 사생활 보호라는 취지가 반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외부 기관을 상대로 한 가이드라인이 함께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친족관계 확인이 필수인 업무에서는 별도 서류를 다시 떼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다. 상속이나 부양의무 증명, 청약 가점 확인 등이 대표적이다. 제출처가 어떤 서식을 요구하는지 미리 확인하는 절차가 당분간 필요하다는 얘기다.
친자녀까지 일괄적으로 세대원으로 적히는 데 대한 아쉬움도 일부 민원인 사이에서 나온다.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한 집에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반응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난 9일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사항이 안착해 재혼가정 등이 차별 없이 보호받도록 하겠다"며 "불필요한 사생활 침해를 막고 포용적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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