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리뷰] 부산 창조문화활력센터 소극장 624, 연극 10층(The 10F)〉"10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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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부산소극장 624
부산소극장 624
김건표 대경대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국수로 유명한 부산 구포. 구포시장 인근에 청년예술가들이 공공과 협업해 운영하는 '창조문화활력센터'. 센터명이 '문화 활력'이다. 문화와 연극이 생활에 활력이 될 수 있음을 자신 있게 내세우는 명칭이 인상적이다. 2013년에 구도심 길에 만들어진 뒤로 공공에서 건립해 민간극단과 협업하는 소공연장으로는 성공한 모델로 꼽히고 있다. 구포국수 역사박물관과 구포역, 3호선 덕천역에서 도보 15분 정도에 위치해 있는데 창조문화활력센터로 걷는 동안 80, 90년대 재래시장 분위기가 살아있다. 부산 어묵부터 생선가게가 즐비하고, 노점 과일은 빛이 살아있다. 5분 정도 더 지나면 3층으로 되어 보이는 건물 벽면이 페인팅 예술로 되어 있어 구포시장 주변과 묘하게 어울리는 장소다. 구도심 길가는 노령층 시민들로 북적이고 도로변 건물 입구에는 20~30대로 보이는 관객들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어 성수동과 청량리 경동시장을 도로 하나 사이로 좌우로 보는 분위기다. 이 공간을 부산 '극적 공동체 고도' 극단이 상주단체처럼 운영하고 있다. 지하는 연습실, 1층은 카페 공간과 훈련 연습실로 되어 있고, 2층은 커뮤니티 공간과 교육실로 되어 있다. 3층이 게스트룸과 소극장 624인데 전시부터 낭독공연, 연극과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시민들과 함께 운영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연극 포스터가 유리면에 부착된 1층 카페 공간 바리스타는 "구포시장 구도심에 있는데도 젊은 창작자들과 관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문화공간"이라고 안내까지 해준다. 4차선 도로 앞쪽 입구 공연 배너 홍보물에 환풍구만 보이는 연극〈10층(The 10F)〉공연 포스터가 괴기스럽기도 해서 번역극인가 창작극인가 살펴보니 이재현 작, 조창주 연출 작품이다.

부산소극장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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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10층은 존재하고 있는가?

80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 정면에는 거대한 프로펠러가 달린 대형 환풍구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을 통째로 빨아들일 것 같은 괴기스럽고 위압적인 분위기다.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풍구의 기능을 거대한 프로펠러의 이미지로 확장한 것은 인간을 소모시키는 기계문명의 폭력성과 통제의 구조를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프로펠러는 인간의 숨통을 틔워주는 장치가 아니라 숨통을 조여오는 역설적인 공간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소극장 무대를 압도하는 환풍구와 사다리꼴에 가까운 원근형 무대구조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폐쇄적인 공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인간이 육중한 구조물에 짓눌려 있는 듯한 분위기라고 할까. 양쪽 벽면이 무대 안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공간의 압박감은 더욱 강해지고, 숨이 턱 막혀오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배경 공간은 이 건물의 마지막 층인 9층에 자리한 설계사무소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살아갈 공간을 설계하는 사무소가 정작 인간이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은 폐쇄적인 구조 안에 놓여 있다. 건축물 구조를 설계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설계공간이면서도 인간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조차 확보되어 있지 않다. 이 건물은 9층이 마지막 층이다. 10층이 존재한다고 믿는 인물 B(함지원 분)가 나타나면서 평범해 보였던 설계사무소는 부조리한 논쟁으로 바뀐다. B는 10층이 있다고 주장하고, 9층 건물을 설계한 A(신선우 분)는 9층까지밖에 없다며 위는 옥상이라고 맞선다.

결국, 보이지 않는 10층은 올라갈 수 없는 공간이다. 실체를 설명할 수 없는 세계다. 마치 인간의 욕망, 꿈, 희망, 제도와 규칙 국가처럼 말이다. 이 극에서는 10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희망적 실체가 없는 부조리한 세상이란 점을 감각하게 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한다. 논쟁이 이어질수록 자신들이 서 있는 9층의 현실마저 불확실해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을 가지지만 정작 그곳으로 향하는 문은 닫혀 있다. 거대한 환풍구가 인간을 압도하는 무대의 폐쇄적인 구조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부조리하게 만든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건물에서 인간이 길을 잃고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10층을 찾아 헤매고 있다. 연출은 이러한 절망의 부조리한 세상을 프로펠러로 처리한 듯해 보였고, 거칠게 마감된 회색 콘크리트 질감의 높은 벽면이 무대 좌우와 정면을 감싸는 무대는 외부와 차단된 지하 벙커나 밀폐된 산업시설처럼 차갑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구조와 삶의 질서가 차단된 채 더 이상 10층 위로 올라갈 수도, 밖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는 세계를 시각화하는 장치로는 그 효과가 그로테스크해 보였다.

부산소극장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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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

무대 공간에는 사무용 탁자, 주황색과 옥색 의자 두 개, 검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어 삭막한 회색 공간과 그 후면의 거대한 프로펠러 환풍구와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이곳은 9층 건물에 자리한 A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소다. 환기하면, 희곡에는 극 중 인물 A와 B가 등장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 속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열쇠를 가진 수위 영감이 등장한다. 수위 영감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극 중 대화에 실제 인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공연에서는 환영처럼 나타나 B와의 신체적 움직임 정도로 처리된다. 편의상 〈10층(The 10F)의 극중 인물을 설계소장(A), 정년퇴임한 나이 든 교사(B), 그리고 건물 경비인 수위 영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작품은 설계소장과 정년퇴임을 한 교사가 2인극처럼 이끌어 가는 부조리극 형식의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두 극 중 인물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출구 없는 공간에 갇혀 대화를 반복하며 시간을 견뎌내는 분위기다. 중절모 차림과 의상 스타일에서도 베케트의 두 인물이 연상될 정도다. 건물에 10층이 있다고 믿는 교사와 건물은 9층으로 설계되어 그 위층은 옥상이라고 주장하는 설계소장. 두 사람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폐쇄된 문을 열어줄 수위 영감을 기다리면서 무료한 대화에 피지컬 움직임을 섞거나, 과장된 대사와 몸짓으로 9층 건물을 설계할 당시의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가상의 검으로 칼싸움을 벌이고 다양한 놀이를 하거나 서로의 역할을 바꿔가며 기다림을 반복한다. 수위 영감을 기다리면서 두 사람이 반복하는 놀이구조는 인간의 삶을 닮았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관계를 맺고 갈등하며 때로는 서로의 역할과 위치를 바꿔가면서 살아간다. 다투다가 화해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다가 오히려 설득당하기도 하며, 자신이 믿었던 현실을 의심하면서도 다시 일상의 반복으로 돌아간다. 두 사람이 벌이는 칼싸움과 역할극, 과장된 몸짓들은 극적 환기를 위한 장치로서의 놀이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의 축소판이다. 놀이 형식은 달라지지만 두 사람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희망이 부재한 제도와 시스템에서 삶의 갈등과 욕망만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부산소극장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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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수위 영감이 나타나 닫힌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끝없이 이어지고 놀이는 반복된다. 수위 영감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놀이는 출구 없는 현실에서 견뎌내야 하는 인간의 삶이다. 교사와 설계소장의 위치가 뒤바뀌는 극 중 장면이 흥미롭다. 10층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B가 어느 순간 설계 사무소장의 자리에 앉게 된다. 두 사람의 위치가 마치 권력 관계처럼 달라지는 듯하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계사무소장(권력자)의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권위와 역할은 달라질 수 있지만 9층이라는 공간과 10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는 그대로다. 이러한 역할의 전도(顚倒)는 인간사회의 권력과 지위가 바뀐다고 해서 세상의 구조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역할을 바꿔가며 놀이를 이어가지만 결국 수위 영감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할은 바뀌어도 기다림은 계속되고, 인간은 여전히 9층에 갇혀 있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반복되는 대화와 놀이 역시 두 사람을 10층이라는 공간으로 향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연극〈10층〉은 존재하는지조차 불분명한 10층을 찾아 헤매는 인물의 부조리한 상황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도, 희망의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는 현대사회의 폐쇄적인 구조를 감각시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설계소장은 건물이라는 구조를 통해 세상을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권력자이자 국가와 제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퇴직 교사는 매일 그 건물을 오르내리며 살아왔지만 더 이상 10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평범한 개인이자 주거 불안과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 빈곤과 고립, 계층 이동이 단절된 세상에서 탈출할 수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점을 눈치채게 한다. 10층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교사는 끝내 거대한 환풍구의 프로펠러를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려다 추락하고 만다. 그동안 10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설계소장은 교사가 추락한 뒤에야 비로소 10층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일 벌어진다. 10층이 있다고 믿었던 B는 10층에 오르지 못하고 추락하고, 10층이 없다고 주장하던 설계사 A는 한 사람이 추락하고 나서야 10층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 얼마나 부조리한 현실인가. 살아있을 때는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던 개인의 절박한 외침이 그가 추락한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사회적 참사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 다를 것이 없지 않다. 교사에게 10층은 한 층 더 높은 공간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지막 희망이다. 그러나 그 희망으로 향하는 정상적인 통로는 닫혀 있고, 결국 인간이 통과할 수 없는 환풍구를 통해서라도 올라가려는 B의 절박한 선택은 추락(죽음)으로 이어진다.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프로펠러가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과 노인들의 불안과 고립 등 사회적 문제를 은유하고자 하는 부조리극 형식을 띤 블랙코미디인〈10층(The 10F)〉은 두 사람이 이끌어 가는 60분 정도의 연극이다. 부조리함과 비현실성, 과장된 몸짓과 일상적인 대화, 피지컬 움직임과 블랙코미디 적 요소, 극적인 플롯 등 다양한 표현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데, 아쉬운 것도 이 지점이다. 극의 중심적인 스타일과 연출의 방향성이 좀 더 선명했으면 좋았을 듯하다. 차라리 두 인물을 중심으로 극적인 플롯으로 극을 밀고 가든가, 피지컬적 연극성을 더 시각화하는 부조리극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작품이 선명해졌을 것 같다. 일상적인 대화와 비현실적인 상황의 대비를 더욱 극대화하거나, 반대로 과장된 신체 움직임과 비현실적인 행동을 밀도 있게 구현하는 방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대화의 방식보다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피지컬적 시각성 움직임이 더 두드러지어야 작품 의도와 맞닿아 살아날 듯하다. 대화체를 드러내고 비현실적 움직임을 더 구현하면 좋을 것 같다. 다양한 표현 양식을 활용하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각각의 장면이 하나의 연극적 스타일로 응집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여러 표현 방식을 조금 덜어내고 작품이 지향하는 중심적인 연극성을 한 방향으로 밀고 나갔다면〈10층〉이 보여주고자 하는 부조리한 세계와 블랙코미디의 풍자성도 더욱 선명해졌을 듯하다. 공연 60분 동안 두 배우(신선우, 함지원)의 몰입도가 좋았다. 청년예술가들이 소극장 624를 다양한 창작극 공간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것은 창조 문화 활력 센터만큼 창작 활력은 넘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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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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