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반팔이 어색하지 않고 해가 지면 바람이 차다. 일교차가 큰 10월, 낮 대신 밤을 걷는 여행이 늘고 있다. 궁궐 담장과 암벽, 숲길과 하천에 조명과 미디어아트가 입혀지면서 전국 다섯 권역마다 야간 가을 산책로 명소가 자리를 잡았다.
◆ 밤에 걸으면 하루 더 머문다
한국관광공사의 2022년 야간관광 실태조사에서 국내 여행객 열에 여섯 가까이가 밤 관광을 경험했다. 만족도는 열에 여덟을 넘겼고, 밤 관광을 택한 이유로는 셋 중 둘 가까이가 야경 감상을 꼽았다.
효과는 숫자로 드러난다. 공사의 2023년 특화도시 분석에서 야간 여행은 평균 체류일수를 0.7일 늘렸다. 쇼핑 지출은 낮보다 30% 넘게 불었고 레저와 외식도 따라 늘었다. 연간 생산유발효과는 1조원대에 이른다.
정부는 2022년부터 3년에 걸쳐 야간관광 특화도시 10곳을 골랐다. 한 곳당 4년 동안 해마다 국비 3억원을 주고 지방비를 같은 액수로 보탠다. 마지막 공모에는 마흔 곳 넘는 지자체가 몰렸다. 여기에 야경 명소 100곳을 묶은 '대한민국 밤밤곡곡' 브랜드가 더해졌다.
한국관광공사의 한 전문위원은 "과거 야간관광은 일몰이나 일출 등 일시적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면 현재는 24시간 개념으로 확장돼 주간과 야간이 선순환하는 지역관광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 수도권·강원, 궁궐 별빛과 암벽 스크린
수도권의 가을밤은 고궁이 연다. 경복궁 야간관람은 하루 선착순 3000매를 온라인으로 먼저 판다. 외국인은 현장에서 300매를 받는다. 전각 안쪽까지 들어가는 '별빛야행'은 한 회 38명, 하루 두 차례만 받는 소규모 예약제다. 110분을 걷는다. 가을 궁중문화축전과 고궁 야간관람은 24일 끝난다.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는 해수로를 따라 LED 조명 산책로와 문보트를 묶은 도심형 코스다.
강원권은 원주 간현관광지 소금산그랜드밸리다. 폭 250m, 높이 70m 자연 암벽이 통째로 스크린이 돼 '은혜 갚은 꿩' 설화를 비춘다. 음악분수는 최대 60m까지 물줄기를 올리고, 1·2부를 합 토요일과 공휴일에만 열리며 가을 시즌은 31일 막을 내린다. 원주시시설관리공단 집계로 올해 상반기 방문객은 한 해 전보다 절반 넘게 늘었다.
◆ 충청·호남, 하숙골목 물길과 한옥 처마 조명
충청권 공주는 제민천 하숙마을에서 공산성으로 이어지는 역사 도보길을 야간 산책 프로그램 '야학당'으로 묶었다. 구도심 물길을 따라 걷다 성벽 야경으로 올라서는 무료 개방형 코스다. 단양강 잔도와 수양개빛터널은 절벽 데크로드와 폐터널 일루미네이션을 이어 걷는다.
호남권 전주 한옥마을 달빛산책로는 태조로와 경기전 돌담길에 청사초롱을 걸고 한옥 처마에 미디어 조명을 입혔다. 여수는 해안 산책로에 해양 오케스트라 소리를 입힌 '밤소리 투어'를 내놨다.
◆ 영남, 1.5km 디지털 숲길과 500년 왕버들
1호 특화도시 통영의 남망산공원 디피랑은 숲길 1.5km에 미디어아트 연출 공간 열다섯 곳을 심은 국내 최장 야간 디지털 파크다. 옻칠미술관 벽화가 밤마다 빛의 정원으로 되살아난다. 올해 1월 말 영상 장비를 바꿔 다시 문을 열었고, 가을에는 오후 10시 30분까지 걷는다. 통영시는 특화도시 추진 뒤 방문객이 1.2% 늘고 숙박 비율도 올랐다고 밝혔다.
성주 성밖숲은 천연기념물인 500년 왕버들 숲에 참외밭 노을길을 이어 별빛 트레킹과 팜파티 코스로 바꿨다. 부산 나이트페스타는 지난해 10월까지 누적 참가자가 48만명을 넘었다.
한 대학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야간 명소가 곧 체류형 관광이다. 불꽃축제나 드론쇼 같은 대형 이벤트에만 치우치기보다 원도심이나 강변 등 잠재력이 있는 지역에 소규모 상시형 야간 콘텐츠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빛 뒤의 그늘, 민원 1410건과 수초 매진
빛이 늘수록 민원도 는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올해 조사에서 지난해 서울에 접수된 인공조명 빛공해 민원은 1410건이었다. 수면 방해가 많았다. 빛공해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한 한 용역기관 대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미디어파사드 등 야간 관광지 조성으로 빛공해 요인이 늘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빛공해 방지 종합계획을 5년마다 세운다.
접근성도 문제다. 고궁과 국립공원의 야간 예약은 수초 만에 매진돼 온라인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은 표를 잡기 어렵다. 지자체마다 비슷한 LED 조형물이 늘어 콘텐츠가 닮아간다는 지적, 심야 대중교통 단절과 산지 산책로의 낙상 위험도 거론된다.
특화도시 10곳은 이달 '밤밤페스타' 순회 행사를 이어가고, 31일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공동 가을 이벤트를 연다. 조명을 늘리는 일정은 잡혀 있지만, 빛공해 민원과 예약 쏠림을 어떻게 줄일지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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