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은 4년 동안 해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교육감은 탄핵 심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철밥통 중 철밥통인데 교육감 선거에선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유권자 대다수가 후보의 이름조차 모른 채 표를 던진다. 전화 여론조사에서 후보 이름 조차 "모르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는 일이 흔하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린다. 시민이 교육 수장을 직접 고른다는 발상은 오랜 임명 시대를 끝낸 진일보로 칭송 받았다. 이제 임명제로 가자는 소리는 권위주의로의 회귀처럼 들린다. 직접 뽑을수록 더 민주적이고 더 책임 있는 교육이 된다는 믿음은 좀처럼 의심 받지 않는다. 그런데 책임이란 선출된 권력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그를 끌어내릴 수단이 있어야 비로소 작용한다. 교육감은 제어할 방법이 없다. 선거는 4년에 한 번 심판할 기회를 주는 듯 보이지만 누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는 유권자에게 심판은 너무 어려운 영역이다. 막대한 권한만 넘어가고 그 권한의 사용처를 따져 물을 고리는 끊긴 셈이다. 이 공백을 선거 제도로 메우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공영 토론을 늘리고 후보를 단일화하고 선거 비용을 보전해 줬다. 하지만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후보들은 여전히 수십조 원에 이르는 교육 곳간을 어떻게 나눠 줄 지로 경쟁하고 유권자는 여전히 기표소에서 그 이름을 처음 보게 된다. 형식을 아무리 다듬어도 없던 책임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교육 자치의 본산으로 꼽히는 미국의 사례를 보자. 50개 주 가운데 교육감을 주민이 직접 뽑는 곳은 12곳에 불과하다. 1920년대에는 70% 넘는 주가 직선제였지만 한 세기에 걸쳐 그 비중은 24%까지 줄었다. 대부분 주에서는 주지사나 교육위원회가 교육감을 임명하고 일을 못하면 해임한다. 한국이 택해야 할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 중앙 정부가 아니라 주민이 직접 뽑은 광역자치단체장이 교육감을 임명하고 그 성패를 함께 짊어지게 하면 유권자는 교육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물을 수 있다. 이것이 덜 민주적이라는 반박이 들어올 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핵심은 표를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는 능력이며 내 손으로 뽑은 광역자치단체장에게 교육 책임을 따져 묻는 쪽이 훨씬 더 민주적이다. 이 무책임한 교육감 선거의 청구서는 고스란히 공동체의 미래에게 날아온다.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교실의 규칙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혼란을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유권자다. 영혼 없이 투표에 동참한 대중은 자신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매번 같은 파멸의 행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에 민주주의를 적용한 게 아니라 책임을 지운 것이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기표소 도장이 아니라 잘못된 결정 앞에서 "이건 당신의 책임"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한 사람을 갖는 데 있다.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에게 교육을 맡기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더 정직한 민주주의다. 김민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7-13 21:29:11
2026-07-13 19:29:54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중원의 동이족 국가들-(2)거국(莒國 ?~BCE 343)
◆중원 지역 성읍의 건설과 동이족 중원에 살았던 동이족들은 무리를 지어 성읍을 세웠다. 성곽으로 둘러싼 도시인 성읍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가장 먼저 성곽을 쌓은 이는 우(禹)임금의 아버지 곤(鯀)이다. 『사기』·『제왕세기』·『세본』 등의 고대 사료에 따르면, 황제(黃帝)는 누조(嫘祖)와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가 소호(少昊) 김천씨이고 둘째가 창의(昌意)다. 소호 김천씨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은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의 후예여서 성(姓)을 김(金)이라 한다"고 말하고 있고, 「김유신 비문」도 "〈김유신은〉 소호의 자손이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 역사와 직접 연결되는 동이족이다. 첫째 소호가 동이족이면 둘째 창의 역시 동이족이 분명한데 그는 전욱(顓頊)을 낳고, 전욱은 곤(鯀)을 낳았다. 곤의 증조부가 소호와 창의의 부친 황제이고, 조부는 창의이며 소호는 곤의 삼촌이다. 황제, 소호, 창의, 전욱, 곤은 모두 동이족이다. 중원지역 성읍을 건설하고 나아가 고대국가를 형성한 민족은 우리 동이족이라는 뜻이다. ◆곤과 우의 치수와 성읍의 기원 공자가 왕위를 선양했다고 크게 높였던 요(堯)임금도 역시 동이족이다. 요 임금 시대에 22년 동안이나 대홍수가 계속되자 요 임금은 곤에게 치수(治水)를 맡겼다. 곤은 둑을 쌓아 물길을 막으려 했으나 치수에 실패했다. 곤의 치수와 관련해서는 '식양(息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식양은 스스로 자라면서 부풀어 오르는 특징을 가진 신비한 토양이다. 고대 동이족의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의 「해내경(海內經)」에는 곤이 천궁(天宮)에 감춰져 있던 천제(天帝)의 식양(息壤)을 훔쳐 홍수를 막으려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 이후 그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우(禹)인데 그는 부친의 실패를 거울삼아 물길을 터 주는 방식으로 치수에 성공하였다. 요 임금에게 자리를 선양 받았던 순(舜)임금은 중국 학자들도 모두 동이족으로 인정하는데, 우에게 천하를 넘겨주었고 우는 중원의 삼대(三代), 즉 하·은·주(夏殷周)의 첫머리 국가인 하(夏)를 세웠다. 곤과 우가 치수에서 사용했던 둑을 쌓는 토목기술 등이 나중 성곽과 성읍을 쌓는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곽과 성읍은 자기 씨족을 결집시키고, 다른 씨족을 구별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읍들이 연합하여 나라를 이루었는데 성읍의 씨족 가운데 가장 역량 있는 종족이 왕족으로 추대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고대 하·은·주 3대는 여러 성읍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나라였다. 곤과 우의 치수에서 비롯된 성곽과 성읍이 고대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새로운 성읍의 개척성읍은 변방을 지키거나 새로운 땅을 개척하기 위해 새로 건설되기도 하였다. 왕족 중 누군가가 왕도(王都)를 떠나 새로운 성읍을 건설하는 분할제도도 있었다. 새로운 성읍의 개척자는 반드시 본래의 씨족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휘호(徽號)와 새로운 영토의 관할권, 본래의 씨족 왕족과의 연속성을 보증하는 의식부호나 도구 등을 가지고 출발했다. 본래 종족의 기억과 유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분할제도를 통해 형성된 성읍국가는 하나라 때에 1만여 국이었다가 동맹이나 전쟁 등을 겪으면서 은나라 때에는 3천여 국, 주나라 무왕 때에는 1천 800여 국으로 줄어들었다. 하·은·주 3국은 성읍국가를 대표하는 힘 있는 국가였지 유일한 국가는 아니었다. 은나라의 갑골문에는 1천 개나 되는 성읍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모두 오늘날 산동성 서부, 하북성 남부, 하남성 동부, 안휘성 부북와 강소성 일대에 있었다. 은나라 갑골문에는 은나라 탕임금이 하나라 걸왕(桀王)을 정벌하고, 주(周)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했어도 그 주변의 성읍국가들은 여전히 존재했다고 말해준다. ◆소호의 후예, 거국의 기원주 무왕은 은을 정벌한 후 자신의 친족들과 공신들뿐만 아니라 옛 하나라와 은나라 왕족의 후손들에게도 봉지를 하사하고 제후로 삼았다. 그 중 하나가 지금의 산동반도에 있던 거국(莒國)이었다. 사마천은 『사기』 「진본기」에서 진나라 선조의 성은 영(嬴)인데, 그 후손으로 서씨(徐氏), 담씨(郯氏), 거씨(莒氏) 등이 있다고 했다. 이들의 성씨가 곧 나라 이름이었다. 중국 서진(西晉) 시대 두예(杜預, 222~285)는 『세족(世族)』에서 "거국은 영성이며 소호의 후예"라고 했으니 동이족 국가다. 서국과 담국 역시 동이족 국가이다. 산동성 동남부에 있던 거국은 북쪽으로 제나라와 접했고, 서쪽으로는 노나라와 이웃하였으며, 남쪽으로는 같은 소호의 후손 국가인 담국과 닿아 있었다. 동쪽은 황해가 펼쳐져 있었다. 거국은 소호의 후예라는 점에서 신라왕실과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는데 거국은 어떠한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을까. ◆선사문화의 계승과 거국거국이 위치한 산동성 동남부 지역은 구석기 시대 이래 거국의 성립까지 후리문화(后李文化 BCE6500~BCE5500), 북신문화(北辛文化BCE5300~BCE4100),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BCE4100~BCE2600), 용산문화(龍山文化BCE2600~BCE2000), 악석문화(岳石文化BCE2000~BCE1600)를 거쳤다. 후리문화에서 악석문화까지 각 문화층의 유물들이 연속적으로 출토되었는데 이는 모두 동이족 문화이다. 주 무왕(武王)은 서기전 1046년 경 은을 멸망시키고 소호의 후손인 자(兹)를 거국에 봉했는데 그가 시조인 자여기(茲輿期)다. 주 무왕이 동이족인 소호의 후손 자여기를 거국에 봉한 것은 그가 은나라의 왕성과 그 주변만 점령했을뿐 거국을 포함한 은나라의 제후국들을 모두 복속시키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거국은 주대(周代)에만 약 700년간 존속하였는데, 이는 주나라가 동이족의 세력권인 산동반도를 실제로 지배하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춘추 강국 거국과 제환공춘추시대 유명한 동이족 국가는 서국과 담국이지만 거국도 강국으로 손꼽혔다. 주나라 때 제후국은 7정(七鼎)까지 갖출 수 있었는데 거국은 7정을 갖춘 정식 제후국이었다. 또한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제(齊)·노(魯)·송(宋)·채(蔡)·정(鄭)·위(衛) 등 여러 나라와 회맹을 맺었는데,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도 30여 차례에 이른다. 거국이 상당한 정치적 위상과 외교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춘추시대 거국은 인근 국가의 귀족은 물론 때로는 군주들도 망명하여 보호를 받았다. '거나라에 있을 때를 잊지 말라'는 뜻의 '물망재거(毋忘在莒)'라는 사자성어는 훗날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가 된 제환공(齊桓公)이 공자 시절 거나라로 망명했던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다. 당시 제나라는 군주인 양공(襄公)의 폭정, 공손무지(公孫無知)의 양공 시해, 공손무지의 암살 등을 차례로 겪으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양공의 동생 공자 규(糾)는 노나라로, 후에 제환공이 되는 공자 소백(小白)은 거나라로 망명했다. 소백은 거국의 보호를 받다가 제나라 왕위에 공백이 생기자 규를 속여 제나라에 먼저 도착해 왕위에 올랐다. 물망재거의 고사는 당시 거국이 노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국력을 가진 국가였음을 알려준다. 실제로 거국은 화폐를 자체적으로 발행할 정도로 부강한 나라였다. ◆거국의 교육 전통거국은 교육열이 매우 높고, 교육 수준 역시 뛰어났다. 이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숙문(叔文)의 일화이다. 숙문은 거국의 재상으로 3년간 재직하고 낙향했다. 그의 어머니는 "너는 3년을 재상으로 있으면서 말과 수레는 많아졌지만, 네가 한 일은 장차 이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내가 듣건대 군자가 시(詩)·서(書)·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반드시 사치와 방탕한 마음이 생기고, 소인이 농사를 좋아하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질하는 마음이 생기며, 부인이 길쌈을 좋아하지 않으면 반드시 음란한 행실이 생긴다.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곡식을 기르는 것과 같고, 새가 날개를 가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거국이 교육을 무엇보다 중시한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거국에서 유래된 맹강녀 설화 거국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국력을 키워 대국들과 경쟁하였다. 거국은 향(向)나라를 공격하고, 기(纪)나라를 점령했으며, 운(郓)나라를 정벌하고, 담(郯)나라와 싸우는 등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잦은 전쟁은 후대에 다양한 설화를 낳았다. '맹강녀가 장성에서 곡했다'는 맹강녀곡장성(孟姜女哭长城)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서기전 550년에 거국과 제나라가 전쟁 중 제나라 장수 기량 (杞梁)이 전사했다. 그의 부인 맹강녀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자 성벽이 무너졌고, 맹강녀는 마침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다. 지금 중국에서는 이 이야기를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생겨난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거국 시기의 이야기가 후대에 잘못 전해진 것이다. ◆거국의 몰락 원인거국은 춘추시대 유력한 강국 중 하나로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사회적 모순이 존재했다. '맹강녀곡장성' 이야기는 잦은 전쟁이 거국을 멸망으로 이끈 요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잔혹한 노예제도가 있었다. 거국은 노예를 귀족과 함께 순장했으며, 칼을 제작하면 노예의 목을 베어 그 성능을 시험했다. 거국의 가혹한 노예제도는 노예들의 봉기를 불러왔고, 평민들까지 가세하였다. 본래 동이족은 생명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녔으나 같은 동이족 국가인 거국은 생명을 경시하는 잔혹한 노예제도 등 때문에 백성들의 원망과 저항을 불러왔고, 결국 멸망의 불씨가 되었다. 거국은 주변 제후국들과의 잦은 전쟁까지 겹치면서 국력이 쇠퇴해 갔다. 『사기』는 기원전 431년 거국의 도읍이 초나라에 함락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거국은 곧바로 멸망하지 않았다. 거주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잔존한 영토는 기원전 343년 제나라에 병합되면서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300년 전 제환공을 보호해 준 거국이 도리어 제나라에게 멸망당한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26-07-13 14:55:00
대구에 정착한 지 어느새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아침에 파란 실 같던 머리카락이 저녁에 눈처럼 하얗게 됐다'는 이백(李白)의 시구절이 이토록 서늘하게 와닿을 줄 몰랐다. 그런데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 도시가 여전히 낯선 얼굴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경험의 질은 시간의 양을 압도한다.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저장된 기억은 한 인간의 정서적 바탕을 이룬다. 사십이 넘어서야 대구에 닻을 내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일상이 학교와 집, 작업실이라는 기능적 공간에만 갇혀 있었던 탓이 크다. 그러던 내게 이 도시의 숨어있는 오랜 결들이 찾아와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교수님, 제가 우연히 전시하고 싶은 곳을 찾았는데 한번 봐주실래요? 그런데 일반적인 전시 공간은 아니에요." 호기심에 찾아간 곳은 근대 골목에 있는 무영당(茂英堂). 1930년대 이근무(李根茂)에 의해 조선의 민족자본으로 세워진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낡았지만 단정한 외관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층계를 오르는 순간, 나는 공간이 토해내는 생경한 울림에 빠져들고 말았다. 걸음을 받쳐주는 견고한 돌계단과 껍질이 벗겨진 채 군데군데 허옇게 드러난 벽과 천정은 그 자체가 시간의 화석이었다. 그 사이로 투명하게 스며드는 햇살과 켜켜이 배어 있는 시간의 냄새가 나의 영감을 세차게 흔들었다. 문득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을 때, 살아있는 이 건축물 위에 나의 호흡을 심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랐다. 백 년의 무영당과 찰나의 붓질이 만나는 지점, 그렇게 '백 년과 1초'라는 전시가 태어났다. '백 년 건축'이라는 과거의 축과 나의 그림 '1초 수묵'이라는 현재의 선이 시공을 초월하여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과거와 현재가 쉼 없이 버무려지는 그 시공간에 머물며 조용히 거닐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대구라는 도시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향촌동과 약령시장, 청라언덕과 공구 골목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전시장을 나서며 골목길을 조우할 때마다 내 안의 세포들은 새로운 기억을 채우느라 바빠졌다. 길에서 만난 오랜 세월을 지켜온 노포들과 미래의 노포들을 서성이며 음식에 깃든 '시간의 맛'도 탐닉했다. 향촌동 골목에서 마주한 단돈 이천 원짜리 장터국수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진한 국물에 담긴 연륜과 오랜 수행 같은 풍미는 오감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나눌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은 삶의 커다란 위로이고 기쁨이다. 지나온 인연, 지속되는 인연, 새로이 스치는 인연 모두가 눈부시다. 삶은 아득하고 요원하지만, 결국 타인의 마음속에 기억으로 남아 함께 자란다. 이 찰나의 시간여행을 지금 여기에 살아서 누릴 수 있다는 것, 참으로 과분한 호사다.
2026-07-13 09:52:47
[사설] 억울한 피해자 못 본 체하겠다는 민주당의 보완수사권 폐지 몰이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검사의 보완(補完)수사권 폐지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이어 대한변호사협회도 "민생 사건에선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반대 의견이 속출한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보완수사권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전당대회 전에 통과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12일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안전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의 절규보다 더 강한 논거(論據)는 없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중상해 사건으로 처리했지만,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성폭행 목적의 범행이란 실체를 밝혔다. 장윤기 사건의 수사 비리도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국민들은 이런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경찰의 수사권 전횡(專橫)을 우려하고 있다. 여권 강경파의 인식은 여론과 동떨어져 있다. 친여 방송인 김어준 씨는 장윤기 사건을 두고 "1년에 몇 건씩 있는 사건"이라며 언론이 보완수사권 존치를 위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괴(駭怪)한 발언이다. 수사 비리가 자주 발생한다면 수사기관 간 견제와 교차 검증 장치를 강화하는 게 마땅하다. 비극적인 사건을 정치적 프레임으로만 해석하는 태도는 피해자를 향한 또 다른 폭력이다. 최강욱 전 의원의 발언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검사가 언론에 알리면 된다는 것이다. 모경종 의원은 "보완수사권을 폐지해 예외적인 경우까지 모두 막아 버리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곽상언 의원도 "검찰의 수사권 남용(濫用)을 막겠다고 경찰에 독점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여당 의원들조차 피해자 보호와 견제 장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권 강경파는 '검찰 개혁 완수'만 외치고 있다.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2026-07-13 05:00:00
[사설] 병적기록부 공개 않고 궤변 늘어놓는 안규백, 국민과 국군이 우습나
안규백 국방장관의 탈영(脫營) 의혹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지만, 국방부 관계자를 내세워 "명백한 허위"라는 주장만 할 뿐 정작 본인은 침묵(沈默)을 계속하고 있다. 45만 국군을 지휘하는 대한민국 국방장관으로서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은 이와 관련, 12일 "당장 국민 앞에 병적기록부를 공개하라. 의혹 해소도, 자진 사퇴도 없다면 국회는 국민의 엄중한 명령에 따라 즉각 탄핵(彈劾) 소추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또 "이러한 결함을 알고도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면, 국정 농단(國政壟斷)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안 장관에 대한 국회 탄핵 청원은 31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10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안 장관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군무 이탈 의혹 등에 대해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그 대신 국방부 관계자를 통해 "탈영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면서 장관 임기가 끝나면 병적 오류에 대해 정정(訂正) 청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국방장관 신분으로 정정 청구를 한다면 또 다른 논란이 나올 수 있지 않나"라고 했다. 궤변(詭辯)이고 비열(卑劣)한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안 장관 본인의 개인적 문제에 대해 직접 해명하지 못하고 국방부 관계자를 방패로 내세운 듯한 모양새부터 대한민국 국무위원이자 국방장관으로서 기본 자질 미달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게다가 본인이 '병무 행정의 피해자'라면서 국방장관 신분으로 정정 청구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논리 역시 억지스럽다. 탈영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사실)의 문제이다. 장관이든, 대통령이든, 일반 국민이든 조작이 없다면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 안 장관의 무책임한 침묵과 국방부의 궤변이 계속될수록 이재명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不信)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안 장관은 스스로 병적기록부를 공개해 국민적 의혹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2026-07-13 05:00:00
[사설] 미봉책으로는 기형적인 '체감 먹거리 고물가' 못 잡는다
장바구니 물가가 심각할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민생 현장의 비명이 결코 과장이 아님이 수치로 드러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구매력평가(PPP) 기준 물가 수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가격 수준은 146~147로 OECD 평균(100)보다 47%나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38개 회원국 중 스위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미국(94), 영국(89), 독일(107), 일본(126) 등 주요 선진국을 모두 제쳤다. 한국 국민의 밥상 물가가 3년 연속 OECD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엄중한 민생 위기다. 한국의 물가 구조도 지극히 기형적이다. 가계 최종 소비(HFC) 물가지수는 85로 OECD 평균을 밑돌고 교통, 문화, 주거 물가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식음료(147)를 비롯해 의복·신발(137), 교육(110) 등 의식주와 생활에 필수적인 품목의 가격만 비정상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전체 물가 지표의 착시 뒤에는 생계형 필수 품목의 '살인적 고물가'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체감물가를 잡기 위해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대형마트·전통시장 할인 확대, 비축 물량 조기 방출, 수입 농축산물 할당관세 확대 등을 논의 중이다. 라면 등 가공식품 유통사들의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조사하고, 소비자단체와 협력해 가공식품 원가 분석 및 가격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은 대다수 대외 충격을 잠시 늦추는 미봉책(彌縫策)일 뿐이다. 한국의 식료품 물가가 유독 높은 근본 원인 중 하나는 47.9%에 불과한 낮은 식량 자급률과 밀·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전량 수입 의존 구조, 그리고 영세한 영농 규모에 따른 낮은 생산성에 있다. 무엇보다 농산물 구매 가격의 절반(49.2%)을 차지하고 일부 품목은 70%를 웃도는 후진적 다단계 유통 구조도 문제다. 생산자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폭리를 감당해야 하는 왜곡된 유통망을 혁신하는 일이야말로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2026-07-13 05:00:00
[관풍루]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 "조건에 맞는 장소만 있다면 미국이든 전 세계 어디든 상관없이 반도체 공장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
○…조국,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가 '무섭노'라고 말한 것이 '일베 말투'라는 비난에 가세한 것과 관련, "어떤 글에서도 리센느를 언급하거나 겨냥한 적이 없다"고 말해. 문제가 되면 발뺌하는 '좌파병'의 전형적 증상. ○…민주당 당권 주자 김민석 전 총리 "이재명 대통령 저가 제일 잘 뒷받침할 수 있다", 정청래 대표 "이재명 대통령 끝까지 지킬 사람은 정청래". 누가 누가 잘 빠나 불붙은 아부 경쟁.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 "조건에 맞는 장소만 있다면 미국이든 전 세계 어디든 상관없이 반도체 공장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 광주전남 억지 춘향 투자할 수 없다고 누구 들으라는 소리?
2026-07-13 05:00:00
국방부가 육·해·공군사관학교를 통합해 '국군사관학교'를 창설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현재 육사는 서울 태릉, 해사는 경남 진해, 공사는 충북 청주에 위치한 사관학교에서 장교를 배출한다. 이를 1~2학년 동안 대전 자운대에서 공통교육을 하고 3~4학년에는 육군의 경우 전남 장성에, 해군은 경남 진해에, 공군은 충북 청주에 위치한 각 군 군사학교로 가도록 구조로 바꾼다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육·해·공사를 2년제 '군사학교'로 축소하고 서울 태릉에 위치한 육사 교정을 전남 장성으로 옮기자는 얘기다. 통합을 주장하는 측이 내세우는 명분은 3군 합동성 강화다.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감소와 예산 절감도 덧붙인다. 초급 장교를 한 곳에서 가르쳐야 합동 작전 능력이 배양되고 더 싸게 장교를 키울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명분엔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 합동성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사관학교만 합치려 하는가. 군 병력 다수를 차지하는 부사관과 병사의 합동성은 필요 없는가. 정부 논리 대로라면 통합 부사관학교와 통합 신병훈련소부터 만드는 것이 먼저다. 정부는 "군 지휘부 '장교단'의 합동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린 "왜 장교 양성과정의 일부인 '사관학교'만 합동성 강화 대상인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육군만 해도 장교는 사관학교 출신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육군은 학군사관(ROTC)과 학사사관으로 전체 인원 대부분을 충당한다. 해군과 공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면에는 다른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명분은 합동성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사관학교의 역사를 인위적으로 지우고 재편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다른 사관학교 이전에 대한 얘기는 없고 육사만 콕 집은 걸로 봐선 12·3 계엄에 대한 징벌적 개편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더구나 진보민주세력을 자처하는 현 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보수 대통령의 모교가 육사 아니던가. 우린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사례를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예산이 더 들어가더라도 육해공 사관학교를 철저히 분리해 운영한다. 각 군 환경에 최적화된 전문적 리더십이 국방력의 원천임을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 지상, 해상, 공중이라는 이질적인 전장 환경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각 공간은 고도의 전술적 이해와 치밀한 전문성을 요구한다. 초급 장교 시절에는 각 군 고유의 전술과 훈련을 뼛속 깊이 체득하는 것이 우선이다. 합동성은 생도를 한 교실에 물리적으로 모아둔다고 생기지 않는다. 현대전의 합동성은 첨단 지휘통제체계의 완벽한 연동과 실전적인 대규모 합동 군사 훈련으로 완성된다. 타 군에 대한 이해와 전략적 시야는 기본기를 탄탄히 마친 영관급 장교 시절 합동군사대학교 등에서 서로 교류하며 쌓는 것이 군사 과학의 상식이다. 국가 안보는 어설픈 행정 실험이나 정치적 논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관학교 개편은 철저한 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얄팍한 명분으로 사관학교를 약화 시키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종길 프리드먼연구원 통합연구센터장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7-12 23:40:47
174만명이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이유 [가스인라이팅]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올해도 역시나 노사 양측이 법정 심의 기한을 넘겨가며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 가고 있다. 당초 노동계는 최소 생계비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1만2천원이라는 파격적 수치를 제시했고 사측에서는 소상공인의 높은 부담을 고려해 현행 수준인 1만320원 동결을 요구했다. 양측 수정안 간격이 690원까지 좁혀지며 막판 타협점을 찾는 듯 보인다. 다들 단순히 산술적 중간값 찾기만 하고 있는데 최저임금 이면에는 해결되지 못한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우선 올해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이 무산됐다. 누군가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차별'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시장 작동 원리를 오해한 시각이다. 실제 서울 한복판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과 손님이 뜸한 시골 골목길의 영세 편의점은 사용자의 지불 능력도 다르고 노동자의 생산 능력도 다르다. 뚜렷한 생산성 격차와 각자 처한 사정, 경제 구조를 무시한 채 단 하나의 숫자로 모든 지역과 업종을 규율하려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환자에게 같은 용량의 약을 처방해주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는 한계에 내몰리고 보호 받아야 할 저숙련 노동자는 오히려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예를 들어 은퇴 후 소일거리 삼아 저녁에 편의점을 지키고 싶은 어르신, 사회 경험이 전혀 없어 독서실 총무라도 하고 싶은 취업 준비생을 생각해 보자. 이들에게 필요한 건 '높은 시급'이 아니라 '일할 기회'다.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이들의 생산성보다 높으면 업주는 이들을 쓰지 않는 게 낫다.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제도가 정작 가장 약한 사람의 입구를 막아버린 셈이 됐다. 최근 주요 대기업이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이는 것과 달리 골목상권의 실물 경제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2026년 자영업자 경영환경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국 자영업자 중 34%는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중이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고용 인원을 줄이거나 아르바이트생의 근로시간을 쪼개고 있다. 업주가 주휴수당이 발생하지 않는 주 15시간 미만으로만 근로자를 고용하는 경향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쪼개기 근로자'라는 초단시간 근로 시대가 열렸다. 초단시간 근로자 규모는 최근 174.2만 명까지 늘어나 전체 취업자의 6.1%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국가데이터처 역대 통계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취약계층의 소득을 늘려주겠다는 선의는 그들의 일자리를 잘게 파편화했고 질을 낮췄으며 진입장벽을 높이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었다. 곧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막바지 심의가 재개된다. 특정 지역의 경제 수준과 노동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청년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고 키오스크 업자의 배만 불려주었던 문재인 정부 시기의 뼈아픈 과오를 우리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현장의 실물경제 붕괴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 최저임금위원회의 현명한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7-12 19:40:05
2026-07-12 18:42:51
올해로 20회째를 맞이한 DIMF(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딤프)가 막을 내렸다. 20년, 사람으로 치면 갓 태어난 아기가 자라 성인이 되는 나이다. 한 사람의 20년이라고 생각하니 묘하게 묵직하다. 지나온 세월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을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 속에 세상은 참 부지런히도 바뀌었다. 아날로그는 예전의 것이 됐고, 코로나19로 텅 빈 객석을 마주하기도 했다. 어디서든 공연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세상이 됐고, 이제는 극장 밖에서도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어두운 극장 불을 밝히고 관객을 맞이하던 모습들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축제가 20년 동안 계속해서 무대의 불을 켜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무대와 객석이 주고받는 날것의 호흡, 오직 극장이라는 공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터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텅 빈 객석과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견디며 축제가 단단한 성인으로 자라나기까지는 무대 뒤편에서 땀 흘린 이들의 노력과 불편한 극장 의자를 채워준 관객들이 있었다. 나 또한 관객으로, 또 무대 뒤편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으로 축제와 함께했다. 객석에 앉아 무대 위 세상을 즐겼고, 반대로 무대 뒤편에서 관객들을 위해 부리나케 움직였다. 돌이켜보니 딤프가 성년으로 자라나는 동안, 나 또한 축제의 안과 밖을 부지런히 오가며 내 삶의 한 시절을 함께해온 거다. 이제 축제는 화려한 불을 끄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숨을 고른다. 나 역시도 관객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뜨거운 여름을 지키는 축제는 다시 내년에 스물한 살이 돼 돌아온다. 늦었지만 스무 살이 된 축제에 애정을 담아 축하를 보낸다. 또다시 무대의 불이 켜지고 객석의 불이 꺼지는 순간 누군가는 처음으로 뮤지컬과 사랑에 빠질 것이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한 장면을 마음에 품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축제가 스무 해 동안 지켜온 가장 큰 가치일지도 모른다. 한 편의 공연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 것. 그리고 극장을 나서는 모두가 '오늘 정말 잘 왔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 그 가치를 위해 오늘도 누군가는 무대 뒤에서 묵묵히 땀을 흘린다. 그렇게 딤프의 스물한 번째 여름도 조금씩 준비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 축제가 두 번째 스무 살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오래 걸어가기를!
2026-07-12 08:33:59
[교육칼럼]지역의사제(2) '내신에 수능 최저까지' 격변의 의대 입시, 지역인재 문호 넓혔지만 빗장 더 걸었다
2027학년도 대입 전형의 최대 변수로 부상한 지역의사제 선발 방식이 철저한 이중 검증 구조를 띤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31개 의과대학의 모집 요강을 분석한 결과, 전체 공급 규모인 488명 중 절대다수인 93.9%(458명)를 수시모집으로 흡수하는 동시에 이 중 97.6%(447명)에 달하는 인원에게 매우 엄격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부과했다. 이는 학생부 교과나 종합 평가를 기본 축으로 삼으면서도, 고난도 수능 점수까지 동시에 확보한 자연계열 최상위권 엘리트만을 선별하겠다는 대학 측의 명확한 설계 고리로 풀이된다. 특히 대구·경북권의 경우 타 시도에 비해 수시 집중도와 수능 요구 조건이 가장 까다로운 권역으로 꼽힌다. 이 지역 5개 의과대학에 배정된 72명의 정원은 단 1명도 정시로 이월되지 않고 100% 수시모집(학종 60명, 교과 12명)을 통해 선발된다. 모집 단위별로 살펴보면 국립대인 경북대가 학종 지역의사선발 전형으로 가장 많은 26명을 선발하며, 계명대 15명(학종 11명·교과 4명), 영남대 13명(학종 9명·교과 4명), 대구가톨릭대 13명(학종 9명·교과 4명), 동국대 WISE 5명(학종 5명) 순이다. 문제는 이들 72명 전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이다. 계명대·영남대·대구가톨릭대의 학생부교과 전형과 동국대 WISE의 학종 전형은 무려 '3개 영역 등급 합 4'를 요구하며, 경북대와 나머지 3개 대학의 학종 전형 역시 '3개 영역 등급 합 5'라는 고난도 기준을 설정했다. 이 같은 구조 탓에 교육 특구와 일반 지역 고교 간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내신 경쟁이 치열한 대구 수성구 소재 C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18) 군은 "학교 특성상 1점대 중후반의 내신을 극복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지역의사제 전형은 '3개 합 4'라는 높은 최저학력기준 덕분에 수능 실력으로 내신의 불리함을 만회할 기회가 될 것 같다"며 "10년 의무 복무라는 조건이 걸려 있긴 하지만 의대 진학이 최우선 목표인 만큼 과감하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수능보다 내신 관리에 강점을 보여온 대구 비수성구 지역 D 고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 최모(48) 씨는 "아이의 교과 성적이 전교권이라 기대를 걸었지만, 모의고사에서 '3개 합 5'조차 맞추기가 아슬아슬한 상황"이라며 "수시 비중이 94%에 달한다고 해서 합격 문턱이 낮아진 줄 알았는데, 실상은 수능 장벽에 가로막혀 원서조차 쓰기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역의사제 전형의 역설적인 구조가 자연계열 전반의 합격선을 뒤흔드는 연쇄 효과를 낼 것이라 관측한다. 학생부와 수능을 모두 완벽하게 갖춘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지역의사제 수시 트랙으로 이탈할 경우, 일반 지역인재전형이나 상위권 약학·이공계열 학과의 합격선이 연쇄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해 연도 수능시험에 상위권 재수생 및 반수생이 얼마나 유입되느냐에 따라 실질 최저학력기준 충족률이 요동칠 수 있어 막판까지 치열한 눈치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2024학년도 의대 증원 파동 이후 모집 규모가 요동쳐 온 흐름을 짚으며, 수험생들은 단순히 수시 인원의 외형적 수치에 현혹되지 말고 본인의 수능 모의평가 등급 추이를 냉정하게 분석해 최종 지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상기 내용은 학교 측 사정에 따라 추후 변동이 될 수 있습니다. 윤경민 크라스에듀 대표
2026-07-10 10:00:18
[사설] 탈영 의혹 해소 못 하면 국방부 장관직 수행할 수 없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방위병 시절 군무이탈(탈영) 의혹(疑惑)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의혹은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안 장관이 복무(服務)할 당시 방위병 복무 기간은 14개월이었으나, 그의 기록은 22개월이었다. 이에 탈영 기간 등이 추가되면서 복무 기간이 22개월로 기록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안 후보자는 "병무 행정 착오에 따른 피해자"라며 의혹을 부인했으나, 야당이 요구한 병적기록부는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최근 김영수 공익신고센터장이 안 장관의 탈영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로 공개하며 논란은 2막을 맞이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라"고 했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세를 펼치고 있음에도 안 장관은 의혹을 해소(解消)할 수 있는 병적기록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장관의 침묵(沈默)이 이어지니 국민적 불신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국방부 장관은 국방에 관한 군정(군사 행정·인사·군수 등)과 군령(작전, 운용 등)에 관한 사무를 총괄(總括)하며 국방 정책 수립과 군 개혁을 이끄는 막중한 자리다. 45만 대한민국 국군을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가 정작 본인의 군 복무 의혹조차 투명하게 밝히지 못해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시달린다면 장관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본다. 군의 기강을 세우고 국방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공식 자료를 통한 의혹 해소는 필수적이다. 만약 안 장관의 군무이탈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지난 청문회에서 해명은 국민과 국회를 기만(欺瞞)한 것이다. 또 청와대가 이를 알고도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면 국정 농단과 다름없다. 안 장관은 즉시 병적기록을 국민 앞에 투명(透明)하게 공개해야 한다.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된다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만이라도 공개해야 옳다. 만약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안 장관은 스스로 사퇴해야 하며, 의혹 해소도 사퇴도 없을 경우 국회가 탄핵 소추해야 마땅하다.
2026-07-10 05:00:00
[사설] 서울 일극(一極) 부동산 정책, 국민 신뢰 잃었다
정부와 여당이 이달 말 부동산 세제(稅制) 개편안을 내놓는다.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 장기보유특별공제 개편, 거래세 손질 등이 담길 전망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보유세와 거래세의 균형"을 말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는 원칙을 내놨다. 정책은 명분보다 신뢰로 평가받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장과 국민 신뢰가 없다면 힘을 잃는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지만 국민들이 집값 상승을 걱정하는 이유다. 한국갤럽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최근 설문 조사에서 '잘못한다'(46%)는 응답이 '잘한다'(26%)를 크게 웃돌았다. 30대의 부정 평가는 56%로 가장 높았고, 향후 1년 안에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응답은 전체의 55%, 20·30대는 각각 68%, 69%에 달했다. 정부는 거래세와 보유세를 함께 손질하겠다지만 국민 눈에는 보유세 인상부터 들어온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행 60%에서 80%로 올릴 경우 주택분 보유세는 8조6천995억원에서 10조658억원으로 15.7% 증가한다. 납세자 1인당 평균 부담도 324만원에서 624만원으로 2배가량 커진다. 과세표준을 조정해 세 부담을 키우면 그게 바로 증세(增稅)다. 거래세 완화는 구체적 그림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보유세 인상 논의부터 앞서니 '균형'보다 '증세'라는 인식이 생겨난다. 정부가 균형을 외쳐봐야 시장은 믿지 않는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서울 집값 중심이다. 주택공급이 부족한 서울과 달리 지방은 인구 감소, 산업 위축(萎縮), 거래 부진(不振)이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 정부는 단일 세제와 규제로 서로 다른 시장을 통제하려 한다. 수도권 과열을 겨냥한 세제를 전국에 획일적으로 적용한다고 지역 부동산이 살아날 리 없다. 부동산 정책의 성패는 세율 몇 퍼센트 올리고 내리는 데 있지 않다. 정부가 진정 시장을 안정시키고 싶다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어설픈 정책이 아니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2026-07-10 05:00:00
[사설] 민주당 종합특검 세 번째 연장 강행, 뭘 더 수사할 게 있나
더불어민주당이 2차 종합특검의 수사 기간을 세 번째 연장하는 법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8일 2차 특검 수사 기간을 연장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상정(上程)한 뒤 법안심사소위로 넘겼다. 수사 대상을 확대하고, 파견 인력도 증원하며, 공소 유지를 위한 변호사 제도까지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2차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관련 내란(內亂)·외환(外患) 및 국정 농단 의혹 등 추가 수사를 담당한다. 기본 수사 90일에 30일씩 두 차례 연장을 거쳐 150일간 수사했는데, 이걸로도 부족해 수사를 더 해야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사 기간은 180일로 늘어난다. 2차 특검은 3대(내란·김건희·순직 해병) 특검이 이미 탈탈 털어 더 나올 게 없다는 지적을 안고 출범했다. 실제로 2차 특검의 성적은 초라하다.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투입했지만, 추가로 밝혀낸 것은 미미(微微)하다. 오히려 앞선 특검이 무혐의 또는 불입건으로 결론 내린 인물들을 다시 입건하면서 '성과를 위한 짜내기 수사'란 비판을 샀다. 특검끼리 서로 다른 결론을 내놓고 공개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특검은 검찰·경찰의 수사로는 국민 의혹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한시적(限時的)으로 가동하는 예외적인 제도다. 법률로 수사 기간을 정하고, 연장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수사 기간을 최대한 연장하고도 부족하다며 법 개정에 나선 것은 특검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오죽하면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도 법안 검토 보고서에서 신중론을 제기했겠나. 특검법 개정안은 철회(撤回)돼야 한다. 기간 내 끝내지 못한 사건은 국가수사본부에 넘겨주면 된다. 많은 검사들이 특검에 파견됐다. 이 때문에 검찰의 형사 사건 적체는 심각하다. 민생 사건 처리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특검에 인력을 계속 투입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인가. 특히 검사의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면서도 특검에는 검사를 더 보내겠다는 민주당의 행태도 앞뒤가 맞지 않다.
2026-07-10 05:00:00
[관풍루] 서울에서 내 집 마련에 나선 2030세대, 본인 돈이 아닌 부모로부터의 증여나 사적 차입 등 외부 자금 의존도는 갈수록 커져
○…SK하이닉스 미국 예탁주식(ADS) 티커명 'SKHY'가 10일(현지시간) 나스닥에서 첫 거래를 시작하는 가운데 고점에서 물린 국내 투자자들, 미국 시장 프리미엄이 본주 가격까지 끌어올릴지 촉각. ○…서울에서 내 집 마련에 나선 2030세대, 본인 돈이 아닌 부모로부터의 증여나 사적 차입 등 외부 자금 의존도는 갈수록 커져.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조세 원칙이 작동하긴 하는 건가. ○…'광주 고등학생 살인사건' 부실 및 수사 유착 의혹으로 경찰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은 가운데, 경찰청 '봐주기 수사' 더 있나 전수조사 실시하기로. 이러고도 검찰 보완수사권 뺐겠다니.
2026-07-10 05:00:00
2026-07-09 18:56:13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환상적이고 또 판타스틱하다
에두르지 않겠다. 데니스 존슨의 마지막 소설집 '바다 여인의 선물'을 읽는 내내 그의 대표작 '기차의 꿈'을 떠올렸다. 전혀 다른 이야기, 다른 시대 배경인데도 그랬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나는 두 책을 번갈아 보며 일부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전작이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면 '바다 여인의 선물'은 그 아래 똬리 튼 실체를 쫓는 리얼리티 판타지 같았다. 첫 번째 이야기 '바다 여인의 선물'의 화자는 뉴욕에서 경력을 시작해 덴버와 피닉스를 거쳐 마침내 샌디에이고에 정착한 남자, 결혼 25주년이 되었고 두 딸을 낳아 기르고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곧 예순세 살이 되는 광고인의 이야기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지점. 이 작가에게 이런 유머가 있었나, 싶었다. 그러니까 죽음을 앞둔 첫 번째 아내 지니에게서 걸려온 마지막이 될 통화를 하던 화자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이 여자가 내 첫 번째 아내 지니가 아니면 어쩌지? 제니라고 불릴 때가 많은 두 번째 아내 제니퍼라면?"(23쪽) 책 시작에 등장하는 그의 아내 이름은 일레인이었다. 책 어디에도 세 번째 아내라고 표기하지 않았으니 일레인이 일곱 번째나 열두 번째라도 무방할 터였다. 심지어 (첫 번째 아내라고 여긴 지니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고 돈에 대해 거짓말한 것을 용서받고 싶다고 말한 남자였으니 말이다. 뉴욕에서 꽤 잘나가는 광고인으로 젊은 날을 보낸 남자라면…. 갑자기 나는 '기차의 꿈'에서 아내 글래디스 단 한 명만을 사랑했고 재산이라고는 땅 1에이커와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가 전부였던 남자 로버트 그레이니어가 몹시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데니스, 고약한 양반 같으니. 로버트에겐 참혹하고 건조한 삶을 남기더니 뉴욕 광고장이에게 이런 호사를 안겨주나. 마지막 편인 '도플갱어, 폴터가이스트'는 엘비스의 쌍둥이 동생의 흔적을 뒤쫓는 어느 시인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2016년 1월 엘비스 프레슬리의 여든한 번째 생일을 앞두고 위대한 시인 마커스 에이헌이 멤피스 경찰에 체포된다. 작중 화자는 시 워크숍 강의장에서 이십대의 마커스를 처음 만났고 즉시 그의 재능을 간파하고는 "네 글은 훌륭해"라고 말하지만 마커스는 "그건 제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며 일축한다. 그가 말한 가장 중요한 일이란 엘비스의 진실을 밝히는 것. 마커스는 훌륭한 시인이 되지만, 외려 광기는 더해진다. 15년째 시를 쓰지 않는데도 대학 측이 그에게 종신 교수직을 주려고 하는데 화자인 나는 종신교수가 불가능한 사람이었지만, 마크는 그런 자리는 관심도 없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나와 달리 마커스에게 재능은 중요하지 않다. 재능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로 엘비스의 진실을 밝히는 것만 관심 있을 뿐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삶은 예측할 수 없다는 건 이런 거다. 누구는 평생을 애써도 못 이룰 일을 단숨에 뚝딱 해치우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그 일은 본업도 아니다. 이해하기 힘들고 아이러니한 세상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마커스의 광기도 충분히 납득 가능할 터. 마커스가 집착하는 쌍둥이 혹은 도플갱어 아니면 폴터가이스트가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버리는 장면과 만날 때, 이야기는 너무 영화적이어서 비현실적이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방증 앞에 무력해진다. 데니스 존슨의 '바다 여인의 선물'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판타지가 되는 이야기 모음집이다. 그러므로 이쯤에서 떠올리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명언 "영화가 현실에 가까울수록 더 환상적이다." 나머지 세 편? 더 판타스틱하다고만 말해두련다.
2026-07-09 10:23:07
[사설] 행정통합·군 공항 이전·3대 메가프로젝트 'TK 패싱', 이유가 뭔가
행정통합 무산, 군 공항 이전 지원 및 후적지 개발 소외, 3대 메가프로젝트 사실상 배제 등 '대구경북 패싱'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모두 대구경북이 가장 먼저 공론화하고 추진했거나 선도한 사업이라 박탈감과 허탈감이 더욱 크다. 행정통합과 군 공항 이전은 지자체 차원에서 주도하기 힘든, 사실상 중앙정부 사업 규모의 대업(大業)이다. 그렇지만 대구경북은 오랜 시간 거듭된 파행과 시도 및 시군 간 마찰·갈등 등 숱한 진통 속에서도 길을 열었다. 정부가 추진해야 할 사업을 지자체가 어렵게 준비하고 시작했는데도 혜택은커녕 돌아온 건 외면이었다. 3대 프로젝트 중 반도체 클러스터도 관련 산업 기반은 물론 필수불가결한 전력과 용수, 인력 등이 풍부함에도 공모 한 번 못 해보고 배제됐다. 행정통합, 군 공항 이전 지원 및 후적지 개발,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과실은 모두 광주전남에 돌아갔다. 광주전남이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충분한 투자와 지원을 받을 만하다. 대구경북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행정통합·군 공항 이전에 대한 염원과 간절함이 있었다. 전력과 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있지만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돼선 안 될 이유도 없다. 문제는 먼저 추진된, 이미 관련 인프라가 조성된 대구경북은 왜 배제됐느냐는 것이다. 광주전남 군 공항 이전엔 지원을 약속하고 정부가 나서 후적지 개발 문제까지 해결해 주면서 10여 년 전부터 지자체 홀로 사력(死力)을 다해 추진해 온 대구경북 군 공항 이전 사업은 왜 외면하느냐는 것이다. 대구경북이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아 온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행정통합과 신공항 관련된 간절한 요구에 "전 정부 때 하지 그랬냐"는 대통령 등의 핀잔이나 농담이 정권 창출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는 방증(傍證)이다. 없는 걸 '내놔라' '해달라' 한 게 아니다. 가장 먼저 시작하고 착실히 준비한 행정통합과 군 공항 이전이다. 조건을 고루 다 갖추고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 최적지여서다. 그런데 왜 하나같이 다 외면·배제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26-07-0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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