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핵무기는 방어용·지뢰 도발은 사고라는 민주당 정권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는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최후 방어 무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는 '핵무기는 방어용일 뿐 남한을 향해 쏠 일이 없다'는 과거 북한의 말과 흡사(恰似)하다. 북핵 맨 앞에 노출돼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식이라기에는 대단히 안이하고 우려스럽다. 북한이 2022년 9월 만든 '핵무력정책법'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선제 핵 공격이 가능하다'고 명시(明示)하고 있다. 특히 '전쟁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주도권을 장악(掌握)하기 위해 작전상 필요한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필요하면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전쟁 위협이 가장 높은 지역에 있다. 그나마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전쟁 억지력(抑止力)을 유지한 덕분에 70년 이상 전쟁이 없었다. 그런 만큼 대한민국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 북한 핵 위협 증가에 따라 우리도 핵무장을 하거나 한·미동맹 및 한·미·일 연합훈련 강화 등 전쟁 억지력을 키워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북핵은 실전용이 아니라'며 북한 입장을 감싸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 정부 고위 인사들의 인식은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 집권층인지, 북한 대변인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지뢰 도발에 국군 장병들이 발목을 잃는 등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아직 지뢰 공격으로 특정(特定)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불의의 사고"라고 했다. 눈앞에서 도발과 위협이 이어지는데도 민주당 인사들은 '북한은 우리 주적(主敵)'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시작전권 환수와 한미연합훈련 축소, 9·19 군사합의 등 국방안보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민주당 정권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의심스럽다.
2026-10-21 05:00:00
[사설] 국민 건보료는 철저히 정산, 정부 재정 책임은 누가 묻나
건강보험 당국이 건강보험료 소득 정산(精算) 제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 그리고 직장가입자의 월급 외 소득에 대해선 과거 소득 자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소득 감소 등을 이유로 조정을 신청한 경우만 사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앞으로는 가입자의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국세청 확정 소득을 확인해 매년 보험료를 다시 계산하겠다는 것이다. 소득 증가가 확인되면 보험료를 더 걷고, 소득이 줄었다면 돌려준다. 건보공단이 지역가입자를 대상으로 분석했더니 394만 세대가 약 3조3천억원을 추가 납부하고 232만 세대는 1조8천억원가량을 환급받으며, 건보 재정은 1조5천억원가량 늘 것으로 추산됐다. 가입자들의 소득 증가분을 보험료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정부도 역할을 다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건보 지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금액은 19조4천억원을 넘는다. 보험료 부담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강조하려면 정부부터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건보 재정은 2030년까지 매년 수조원대 영업적자가 우려된다. 보험료율이 매년 1.49%씩 인상된다는 가정 아래 만든 시나리오에서도 막대한 적자가 불가피한데, 정부는 내년 보험료율을 7.19%로 동결(凍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지원과 의료 보장 확대에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다. 물론 보험료율 동결과 소득 정산 확대가 모순되는 정책은 아니다. 보험료율을 유지하면서 실제 소득에 맞게 보험료를 걷을 수 있지만 소득 정산 확대에 따른 1조5천억원의 재정 확충만으로는 구조적 불균형 해결이 요원(遙遠)하다. 정부는 국고 지원 기준에 부합하는 재원 확보, 보험급여 확대, 의료수가 인상에 따른 중장기 지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정산 과정에서 한꺼번에 큰 금액을 내야 하는 가입자 부담을 완화할 방안도 필요하다. 국민 부담 보험료는 한 푼까지 따져 계산하면서 정부 재정 책임은 방만하게 다루는 태도로는 건강보험에 대한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
2026-10-21 05:00:00
[사설] '성역 없는 수사' 하라면서 중수청·공소청장 국무회의 배석시키나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은 임명장을 받은 다음 날(20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배석(陪席)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고려해 불문율처럼 지켜온 불참(不參) 관례가 깨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부처 소속 외청(外廳)도 참석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구자현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중수청과 공소청, 경찰청의 직무대행들도 배석해 왔다. 수사기관의 정식 수장(首長)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등을 근거로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제도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별개다. 대통령의 지휘·감독 권한이 수사기관의 중립성보다 앞설 수는 없다. 수사기관은 대통령과 장관들도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공소기관 역시 권력자의 사건이라고 해서 기소(起訴)와 공소 유지를 주저해선 안 된다. 그런데 수사·공소기관 수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해 국정 방향과 정부 방침을 공유한다면 어떻겠는가. 구체적인 사건 지시가 없더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립성은 실제로 외압(外壓)이 있었는지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외압이 작동할 수 있다는 의심까지 차단해야 중립성이 확보된다. 중수청법과 공소청법에 지휘·감독 제한 규정을 둔 취지도 권력의 수사 개입을 막으려는 데 있다. 오죽하면 참여연대가 '수사·공소 유지 기관장의 국무회의 정례 참석'을 반대했겠나. 정부는 수사·기소의 독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검찰청을 없애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출범시켰다. 그런데 이들 기관이 출범부터 논란에 휘말린 것이다. 권력과 수사기관 사이엔 분명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독립성·중립성 확보의 필수 조건이다. 김 중수청장은 취임 일성(一聲)으로 '수사의 정치화 청산'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국무회의 참석 문제에서도 독립성을 지킬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참모 조직이 아니다.
2026-10-21 05:00:00
[관풍루] 코스피가 하락장을 이어가면서 '빚투'한 사람들의 주식 강제 처분 금액이 4거래일 연속 500억원을 넘어서
○…李 대통령, 20일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산재 사망 감소' 보고에 "노동자가 장관 한 효과다. 박수만 치지 말고 포상도 하고 격려도 하라"고 주문. 그러면 대통령 자리엔 어떤 인사를 앉혀야 국민이 행복하고 잘 살 수 있을까. ○…코스피가 하락장을 이어가면서 '빚투'한 사람들의 주식 강제 처분 금액이 4거래일 연속 500억원을 넘어서. 결혼·전세자금 날린 민초들 곡(哭)소리 하늘을 찌르네. ○…北 김여정 노동당 부장 19일 군사분계선(MDL) 침범 시 한국군의 경고사격 조치에 반발하며 "군사력 증강 배치와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 검토" 담화 발표. 적반하장도 유분수.
2026-10-21 05:00:00
'콜 오브 듀티'가 까뒤집은 그들의 내로남불 [가스인라이팅]
오는 23일 출시되는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는 북한의 남침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무너지는 전선에서 조국을 지키는 국군 '박 이병'이다. 그런데 좌익 진영 일각에서 이 게임이 북한을 악마화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가 악마화일까. 먼저 이중잣대부터 짚자. 그동안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사실관계를 비틀 때마다 좌익 진영은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를 방패 삼았다. 실존 인물을 마음대로 각색하고 역사적 평가를 한쪽으로 끌고 가도 예술이니 관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이 침공하는 가상의 시나리오 앞에서는 갑자기 엄격한 윤리를 들이댄다. 창작의 자유가 진영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편의다. 설령 그 잣대를 인정하더라도 이번 비판은 성립하지 않는다. 악마화란 없는 악을 덧씌우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상상이 아니라 역사이자 현재다. 1950년 북한은 탱크를 몰고 내려왔다. 2010년 천안함을 침몰 시켜 46명의 장병을 앗아가고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다. 김정은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헌법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명시하라고 지시했다. 불과 한 달 전에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묻어둔 지뢰에 정상 작전 중이던 우리 장병이 다쳤고 한 장교는 발목을 잃었다. 이미 저지른 일을 게임에 묘사한 게 악마화일 수 없다. 오히려 이 게임은 우리가 잊고 사는 사실을 일깨운다. 휴전은 종전이 아니다. 70년 넘게 이어진 불안한 평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서울이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외면한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즐기는 게임이 한반도의 위협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그것은 비극의 소비가 아니라 위협의 환기다. 전쟁을 다루는 창작물은 늘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신중함과 침묵은 다르다. 북한의 위협을 그리는 것조차 '악마화'로 낙인 찍는 태도야말로 우리의 안보 의식을 무디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오락이다.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10-21 02:28:10
2026-10-20 19:01:48
예전의 대구는 한강 이남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거리마다 청년들의 활력이 넘쳐나고 일자리가 풍부했던 도시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성장의 시계가 멈추고,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며 도시의 온기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 지방의회의 일원이자 이 도시를 깊이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쇠락해 가는 현실 앞에 무거운 책임감과 마음 깊은 자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우리 대구를 다시 살리고 가슴 뛰는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그 첫걸음은 단연 유망 기업을 유치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들이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 경제적 토대를 다지는 일이다.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된 수성알파시티의 디지털·AI 중심 신산업 생태계 육성이나 미래 성장동력 확보는 도시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일자리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기 어렵다. 단지 '일하러 오가는 공간'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꼭 와보고 싶고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대구만의 특색 있는 문화시설과 감성적인 콘텐츠가 채워져야 한다. 해 질 녘 수성못을 조용히 거닐어 본다. 아늑한 저녁노을이 앞산 자락에 걸치면서 잔잔한 수면이 따스한 붉은빛으로 물들어진다. 수변 카페마다 따듯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버스킹 음악 소리와 산책하는 시민들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어우러진다. 이곳이야말로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참된 휴식과 감성을 선사하는 '도심 속 문화 휴식처'이다. 이 정겨운 수성못 일대에 머지않아 국제적 수준의 문화 인프라가 들어설 예정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2천 석 규모의 관람석을 갖춘 '수성못 수상공연장'이 연내 착공에 들어가면, 품격 높은 글로벌 시그니처 공연과 다채로운 축제가 펼쳐지며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여기에 수성못과 들안길 먹거리타운, 들안예술마을을 잇는 경관보도교인 수성브리지와 문화거리가 완성되면, 이동과 관람·체류가 하나로 이어지는 독창적인 문화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유원지에 머물던 수성못 일대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지로 크게 발돋움하는 순간이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대구의 미래 지도를 새로 그릴 대형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다. 제2작전사령부, 제5군수지원사령부, 방공포병학교 등 군부대가 떠난 자리에 대학병원과 연구기관이 연계된 종합 의료 클러스터, 금융 중심 도심복합타운, 글로벌 에듀파크(교육 특화지구) 등이 조성되면 의료·금융·교육·첨단산업이 상호 연계하는 도시의 신성장축으로 발전할 예정이다. 아울러 K-2 군공항 이전에 따른 '대구 공항후적지'에 첨단 산업과 문화, 글로벌 관광, 상업 거점이 어우러진 미래형 수변도시가 건설되면 대구의 도심 지형을 크게 바꿀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십 년간 단절되었던 도심 공간이 청년들이 일자리를 가지고 문화를 즐기는 첨단 의료와 교육,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대구는 생기와 기품이 넘치는 '젊고 힙한 매력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위대한 대전환은 한 사람이나 특정 기관의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정부와 대구시, 그리고 지방의회가 긴밀히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 시민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예전의 활력 넘치던 대구,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대구를 향해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2026-10-20 15:55:32
10월도 중순이 지났다. 2026년은 이제 두 달 반 정도 남았다. 새해 첫날에 세웠던 계획을 떠올려 보자. 난 올해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더 많이 하기로 결심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출력'보다는 '입력'에 힘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따로 독서할 시간은 없으니 틈새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어야 했다. 책 들고 다니는 것도 무거워서 전자책 리더기까지 샀다. 출근할 때, 점심시간, 자기 전에 책을 읽기로 했지만, 실행한 날보다 어영부영 지나간 날이 더 많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리하여 올해 세운 계획은 폭삭 망했다고 생각하며 한숨 쉬고 있는데 아내가 카카오톡으로 기사 링크를 하나 보냈다. 기사 제목은 '여든 이후 1천400권 읽은 87살'이었다. 강릉에 사는 87살 박정옥 할머니는 여든이 되던 2018년에 마음을 먹었다. 이제 일할 나이도 지났으니 죽기 전에 책 1천 권을 읽자는 것이었다. 그 뒤 8년 동안 하루 평균 5시간씩 책을 펼쳤고, 읽은 책은 어느새 1천400권을 넘었다. 80대 가운데 책을 읽는 사람이 열에 하나 남짓이고 한 해 평균 독서량이 한 권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생각하면, 남들이 책을 덮는 나이에 오히려 책을 펼친 셈이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에게 독서는 사치였다. 국민학교를 마친 뒤 보험 영업과 한복 바느질로 일흔다섯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은퇴 후에야 얻은 시간을 할머니는 책으로 채웠다. 소설과 철학, 종교, 뇌과학까지 가리지 않고 읽었다. 읽은 책마다 번호를 매겨 적은 독서 노트는 열 권이 됐고, 딸이 이를 엮어 지난달 '늦은 나이는 없다'라는 책으로 펴냈다. 책은 할머니의 생각을 바꾸기도 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평생 품어 온 믿음을 고쳐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사람이 겸손해지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독서를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일'에 빗댄다. 물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자라듯, 읽은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조금씩 자신을 키운다는 것이다. 시작이란 무엇일까. 한자로 시작(始作)은 '처음 시(始)'와 '지을 작(作)'이 만난 말이다. 무언가를 처음 짓는다는 뜻이다. 몸을 움직여야 일어나는 일, 그러니까 결심이 아니라 행동이다. 한번이 아니라 매일 다시 하는 일이며, 결과를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는 소박한 믿음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늦은 시작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 듯하다. 시작은 언제나 '지금'에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망했다고 생각한 나를 들여다본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 그것만으로도 어깨를 토닥여 줄 만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가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마음먹은 걸 시작할 때'다. 늦은 시작이란 없다.
2026-10-20 15:41:46
최근 빈소를 차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는 '무빈소 가족장'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타인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이자 경제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살아서도 빽빽한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살던 현대인은, 죽어서도 작은 상자로 켜켜이 쌓인 '납골당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 효율성에 인류가 가꿔온 죽음에 대한 예의와 낭만은 지극히 납작하게 생략돼 버렸다. 과연 인간의 마지막 자리는 이토록 간소하게 지워져도 괜찮은 것일까. 그 쓸쓸함의 끝에서 천오백 년 전, 죽음을 거대한 우주적 대화로 마주했던 고구려인들의 무덤 천정을 떠올린다. 찬란한 벽화고분은 귀족들의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만주 집안(集安) 지역에 산재한 무려 1만 2천여 기의 큰 무덤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고구려 고분은 여러 개의 방에서 하나의 방 구조로 변해갔지만, 시선의 설계만큼은 일관됐다. 벽면에는 주인공이 생전에 누렸던 지상의 삶을 그렸고, 천정에는 죽음 이후 맞이할 영원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경이로운 점은 피장자가 누워 천정을 바라볼 때, 그 눈길이 닿는 우주가 정면으로 마주 보이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무덤은 어두운 매장지가 아니라, 누워서 영원히 하늘을 감상하는 '사후의 극장'이었다. 고분에는 사후 세계를 상상하던 고구려인들의 취향과 희망이 서려 있다. '별자리 무덤'인 덕화리 고분이 대표적이다. 팔각형의 평행 고임과 거북이 등딱지 모양의 기하학적 구조 속에서 누워 바라보는 천정은 온통 별자리로 가득하다. 추상적이고도 완벽한 짜임은 흡사 은하계를 관측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무용총의 천정 또한 회화적 아름다움의 극치다. 신선과 영물, 음악을 연주하는 선인들이 단순하면서도 유연한 선과 색으로 그려져 있다.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자유롭게 비상하는 영혼의 낙원이었다. 인간의 육신을 독수리의 먹이로 내어주며 영혼을 온전히 하늘로 보내는 티베트의 '천장(天葬)'처럼, 고구려인들 역시 무덤의 천정을 통해 영혼이 하늘 세계로 이어지기를 갈망했다. 천정이 영원한 우주로 열린 숨구멍이었던 셈이다. 반면 효율적인 행정 절차로만 끝나는 현대인의 죽음에는 하늘을 우러러볼 천정이 사라졌다. 사후 세계의 상상력과 낭만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죽음은 너무나 가난하다. 치열한 삶을 끝내고, 우리가 돌아갈 마지막 자리가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콘크리트 수납함에 갇히더라도 영혼만은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덕화리 고분 벽화의 천정 별자리처럼, 무용총의 선인 풍경처럼 드넓고 자유로운 새 우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소망한다. 죽음 이후 미지의 여정마저도 인간이 갈구하는 희망과 영성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하늘이 있는 삶과 죽음'의 여백을 생각해 본다.
2026-10-20 11:24:01
[사설] 포퓰리즘·방만한 재정 운용 불치병 된 프랑스, 남의 일 아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졌다. 발단(發端)은 정부의 예산 감축에 반발한 고교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 요구였고, 물가와 생계난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합류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 17일 시위에는 정부 추산 약 55만 명이 참가했고, 2천400명가량이 체포됐으며 상점 1천500곳이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재정 압박 속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공공부채가 올해 GDP의 119.3%, 내년 121.7%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고, 총리는 540억유로를 절감하지 않으면 내년 적자가 GDP의 6.5%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감축의 고통은 학교 같은 일상의 현장에서 체감됐고, 연금 등 지출을 키우는 근본 요인 대처는 더뎠다. 큰 폭의 감축은 의회에서 잇따라 막혔다. 앞서 바르니에 내각은 긴축(緊縮) 예산안으로 불신임을 당했고, 바이루 총리도 긴축 예산안 신임 투표에서 졌다. 긴축이 답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사회적·정치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거나 미루는 사이 감축은 점점 급해지고 반발도 커졌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태를 한국에 그대로 투영(投影)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는 교육, 물가, 생계난이 겹친 복합적 사건이고 한국의 부채 비율은 프랑스의 절반에 못 미친다. 정치·사회 구조도 다르다. 그러나 위험 신호, 즉 지출 압력과 규율의 약화는 한국에서도 보인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9%로 재정준칙 상한 3%를 2020년부터 6년째 넘었다. 내년 예산안은 총지출이 12.8% 늘어 역대 최고 증가율이다. 정부는 재정지표가 개선된다고 설명하지만 반도체 호황으로 국세수입이 늘어난 덕이다. 부채 비율이 50% 안팎이라는 데 안도(安堵)해선 안 된다. 재정준칙 법제화, 연금 구조개혁 로드맵, 초과 세수를 항구적 지출 확대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등을 위기 전에 합의해야 한다. 프랑스는 합의 없이 개혁을 밀어붙이거나 미루기를 반복했고, 반발과 교착 속에 큰 위기를 맞았다. 한국은 합의를 먼저 만들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에 서 있다.
2026-10-20 05:00:00
[사설] 졸속 도입 확인된 단일종목 ETF, 진상규명 뒤따라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졸속(拙速) 심사(審査)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4월 중순인가 금융위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일정을 정책적으로 발표한 게 있다. 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통상 ETF 종목 상장 시 한국거래소 예비 심사와 금감원 심사 등 두 단계를 거치는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경우 예비 심사가 끝나기도 전에 심사를 했다며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를 묻자 이 원장은 "저희가 확인해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답변했다. 금감원 부원장보 이상 간부 13명 중 단일종목 ETF 출시에 찬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가 발표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일은 지난 5월 27일이다. 국내 증시를 인위적(人爲的)으로 부양시켜 6·3 지방선거 때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졸속 도입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금융당국의 무능과 무책임 아래 도입됨으로써 개인 투자자들이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 변동성 심화, 금융당국의 제도적 실패라는 엄청난 후폭풍에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중순까지 개인 투자자의 확정 처분 손실만 2조3천242억원에 달하고, 주가 급락에 따른 평가 손실까지 합산할 경우 전체 국민 피해 규모는 최대 54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分析)까지 제기되고 있다. 10월 현재 주요 레버리지 상품들은 상장가 2만원 안팎 대비 5분의 1 수준인 6천~7천원대 신저가로 추락했다. 국민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이번 사태를 그냥 묵과(默過)할 수는 없다. 금감원장의 국정감사 증언으로 무모하고 무책임한 정책 실패가 확인된 만큼,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규명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對)국민 사과 역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26-10-20 05:00:00
[사설] 소장한 친일파 글씨 '셀프 전시'한 유홍준 관장은 사퇴하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자신의 소장품(所藏品)을 전시에 내놓고, 친일파의 글씨를 애국지사의 작품으로 소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검증 부실을 넘어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려는 '작품 세탁'이란 의혹까지 나온다. 문제의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 유묵(遺墨)은 유 관장이 경매에서 5만원에 구입한 개인 소장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직접 추천해 특별전에 출품했다. 박물관은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했지만, 재검증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으로 결론 났다. 친일파의 글씨를 독립운동가의 작품으로 잘못 소개한 것은 중앙박물관의 권위에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유 관장과 박물관은 전시품 검증이 부실했다며 사과하면서도 '관장의 소장품'이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전시 기획이 자신이 부임하기 2년 전에 이뤄졌다는 해명(解明)도 궁색하다. 관장 자신의 물건을 전시에 내놓으면서 이해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독립적인 검증을 거쳤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중앙박물관 전시 이력은 소장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애국지사의 작품으로 소개된 과정이 의도적인 '작품 세탁'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별도의 조사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19일 국정감사에서도 여야의 질타(叱咤)가 쏟아졌다. 야당은 사퇴를 요구했다. 여당에서도 소장자 신분을 뒤늦게 밝힌 경위를 따졌다. 유 관장은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누가 작품을 선정했고, 어떤 근거로 진위(眞僞)를 판단했으며, 관장의 추천이 검증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야 한다. 논란은 또 있다. 유 관장의 부인이 기증한 조선시대 돌 호랑이 조각도 넉 달 동안 홈페이지에 게시되지 않은 채 일부가 전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증 심의위원장이 남편인 관장이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利害衝突) 논란까지 불거졌다. 박물관의 내부 통제와 윤리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중앙박물관의 무너진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방법은 유 관장의 사퇴뿐이다.
2026-10-20 05:00:00
[관풍루] 올해 초반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 나타냈던 한국 증시, 이달 들어서만 무려 17% 하락하면서 올해 누적 상승률 1위 자리도 내줘
○…'소방 재정 빨대' 발언으로 거센 파장 불러온 추미애 경기도지사, 26억5천만원의 소방차량 25대 구입 예산 삭감해 놓고 자신은 새로운 관용차 구매해. 재정 파탄 상황에도 새 관저와 새 차는 포기 못 하나 보지? ○…올해 초반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 나타냈던 한국 증시, 이달 들어서만 무려 17% 하락하면서 올해 누적 상승률 1위 자리도 내줘. 경제 기초 체력이 허약한데 숫자만 뛸 수 있나. ○…자녀를 둔 청년 맞벌이 가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하루 평균 1시간 43분 더 가사와 돌봄 노동에 매달리는 것으로 조사돼. 같이 벌고 세월이 흘러도 집안일은 여전히 '엄마 몫'인걸.
2026-10-20 05:00:00
[날씨] 10월 20일(화) "대체로 흐리고 가끔 비"
2026-10-19 18:50:34
최근 영화 〈암살자(들)〉의 제목을 차용하여 현대사의 세 지도자(이승만·박정희·전두환)를 단죄하는 『독재자(들)』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한국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이런 류의 책들이 제기하는 핵심 이슈는 개발연대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인권을 무시하고 헌법을 짓밟았으며, 독재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두 가지 치명적 오류가 숨어 있다. 첫째는, 서구 선진국들도 수백 년 걸렸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안착 과정을 이제 갓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에 억지로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필요충분조건들이 갖춰져야만 하는데, 이 점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저서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갖춰진 사회가 열린 사회이며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서구 선진국들이 포퍼가 말한 '평화적 정권 교체'와 성별·계급·인종 차별 없는 온전한 보통 선거권을 확립한 시점은 17~18세기 명예혁명이나 미국 독립, 프랑스 혁명기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원형 국가인 영국에서 성인 남녀 모두에게 차별 없이 1인 1표 투표권이 주어진 시기는 1928년이었다. 미국은 1920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줬으나 흑인에게까지 차별 없이 투표권이 주어진 시기는 1965년이었다. 프랑스는 1944년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되어 1945년 처음 행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은 1949년 서독 기본법 제정과 총선을 통해 입헌적 자유민주 질서가 구축되었다. 스위스의 경우, 연방 차원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것은 1971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처럼 서구 선진국조차 최소 200~300년 유혈 혁명과 내전, 파시즘과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와 시장경제'라는 뿌리가 내려졌다. 한국은 어떤가. 1945년 8월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3년여 미군정을 거쳤다. 1948년 8월 건국된 지 2년 후 미증유의 전쟁을 겪으며 전 국토의 80%가 초토화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 내외의 절대빈곤과 폐허,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에 시달리는 신생국에서 "왜 건국 초부터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온전히 구가하지 못했느냐"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시대착오적 폭력이다. ◆민주주의는 아무 곳에서나 꽃피지 않는다 근대화 이론이나 민주주의 연구의 석학들은 자유민주주의는 아무 곳에서나 무작위로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사회경제적 토대'와 '제도적 국가 역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엄중한 연구와 통계, 사료를 통해 밝혀냈다. 정치학의 거두 시모어 마틴 립셋은 "경제 발전과 두터운 중산층 형성 없이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는 자생할 수 없다"라는 근대화 이론을 세운 학자다. 민주주의는 도덕적 선언이나 이념적 열망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생산력과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안착할 수 있는 제도적 상부구조라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증명해 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립셋의 가설'이다. 정치학자 아담 프셰보르스키와 페르난도 리몬지는 1950~1990까지 135개국 데이터를 정밀 분석하여 립셋의 가설이 사실임을 증명해 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가난한 나라에서도 독재자 사망, 외적 충격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될 수는 있다. 하지만, 1인당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는 예외 없이 경제난과 쿠데타로 무너졌다. 프셰보르스키 연구에 따르면, 1인당 GDP가 당시 구매력 기준 6천 달러 이상에 도달한 민주 국가는 세계사에서 단 한 번도 독재로 회귀하지 않았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국민의 빈곤을 퇴치하고 사법부 독립과 재산권 등 법치주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선거만 치르면, 거의 100% 확률로 독재자나 선동가가 권력을 장악하는 '비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전락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적 번영과 법치적 기반이 먼저 다져져야 비로소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 낸 학자로 유명하다. 민주주의의 석학(碩學)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달도 "준비되지 않은 가난한 토양에 성급히 이식된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내전·독재의 파멸로 귀결된다"라고 설파했다. 이것이 그가 20세기 신생국들을 연구한 결과 내린 섬뜩한 결론이다. '정치 발전의 올바른 순서'를 주창한 학자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다. 그는 건전한 근대 국가가 작동하기 위한 3대 요소로 ①강력하고 유능한 국가기구(관료제·치안·인프라), ②재산권 보장과 권력을 제한하는 법치, ③정기 선거를 통한 민주적 책임성을 꼽았다. 후쿠야마는 ①과 ②가 정착되기 전에 ③을 먼저 도입하면, 국가는 포퓰리즘, 부패, 종족 갈등의 지옥으로 추락한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중동·남미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실패는 바로 이 '순서의 역전'이 낳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아시아국가인 한국·대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성공한 이유는 국가기구와 법적 질서, 경제적 번영을 먼저 닦은 후 민주화를 안착시킨 덕분이라고 설파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후쿠야마는 "물적 토대와 국가 역량 없이 급진적으로 도입된 민주주의는 축복이 아니라 국가를 파멸로 이끄는 독약"이라는 사실을 준엄하게 경고했다. 새뮤얼 헌팅턴도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정치질서』에서 '물질적 토대 없는 급진적 민주화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갓 독립한 신생국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즉각적 흉내'가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국가 권위와 행정 통제력"이라고 주장했다. 질서와 성장을 먼저 확보한 후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수용한 한국식 개발독재가 최선의 현실적 모델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학자가 헌팅턴이다. ◆엄격한 조건 갖춰져야 민주주의 정상 작동 이런 학자들의 분석 틀을 한국에 대입하면 좌파 진영의 이승만·박정희 폄훼는 이론적 무지를 바탕으로 한 선전 선동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48년 한국은 립셋이나 로버트 달이 경고한 "경제 토대 없는 상황에서 급진적 민주주의 도입"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만약 1인당 소득 60달러의 극빈 상황에서 한국이 서구식 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했다면 대지주 과두제와 빈곤을 해결하지 못해 중남미형 독재로 추락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이승만 시기에 열정적인 농지개혁과 문맹 퇴치, 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박정희 시기에 경부고속도로·제철·조선·중화학공업을 육성했으며(제1의 성장동력), 전두환 시기에 IT산업(제2의 성장동력), 원자력 국산화(제3의 성장동력), 물가 안정과 3저 호황으로 물적 토대 건설에 성공했다. 탄탄한 중산층과 고학력 시민을 배양해 낸 후인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로 이행한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고히 성공할 수 있었다.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는 도덕적 구호나 이념의 촛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산업화·근대화로 창출된 두터운 중산층과 고등 교육의 토대 위에서만 작동하는 신비로운 제도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는 밭을 갈고 거름 주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열매 맺기 위한 토양을 준비한 시기였다. 그런 과도기의 지도자들을 향해 "독재자" 운운하는 비난은 현대 정치학의 기본 원리조차 무지한 사람들의 패륜 행위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10-19 14:26:27
[사설] 호르무즈 우회 파병 논란, 장병 안전은 충분히 고려됐나
국방부가 올 연말 임무가 끝나는 청해부대 파견을 연장하면서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해협과 연결되는 오만만까지 확대하고, 해상초계기 등 전력도 보강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군함 파견 압력과, 한국 내 좌파의 파병(派兵) 반대 사이에서 이재명 정부가 '우회 꼼수 파병'으로 정치적 난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주말 "호르무즈 상황과 관련해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 전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하에 우리 국민 보호, 우리 경제 이익 수호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검토해 나가고 있으며, 현재까지 결정된 바 없다"고 입장문을 냈다. 대통령 국방특보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대통령께서도 '파병은 전쟁에 개입하는 파병은 아니다. 그렇지만 청해부대에서 방어력(防禦力) 보강은 필요하다'고 전에도 말씀하셨다.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의 이 같은 접근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오만만과 곧바로 이어져 있는 호르무즈해협에서는 최근 2주 사이 한국 선사 소유 선박을 포함해 무려 24척의 민간 선박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 민간 상선에 대해서조차 무차별 공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청해부대 군함(軍艦)이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청해부대는 대(對)해적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2009년부터 소말리아 아덴만 지역으로 파견된 부대로서, 4천400톤급 구축함 1척과 해상작전헬기 1대, 고속단정 3척 이내로 구성된 소규모이다. 해상초계기 전력이 보강되더라도 중동의 군사 강국인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해외 파병에 따른 국내외 압력을 회피하기 위해 우리 장병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절대 안 된다. 파병 문제는 '꼼수' '편법'이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할 때만이 이해 당사국들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다.
2026-10-19 05:00:00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이다. 한국갤럽의 10월 셋째 주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가 39%로 하락세를 겨우 멈추긴 했지만 여전히 위태(危殆)롭다. 내리막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다. 지금 여권이 본격화하려는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추진이 그렇다. 민주당의 대법원장 탄핵 압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급기야 김민석 대표는 지난 주말 탄핵을 포함한 모든 경로를 검토 중이라며 탄핵 논의를 공식화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도 18일 "모호한 메시지를 멈추고 본회의 탄핵안 표결 날짜를 내놓으라"며 민주당을 몰아붙였다. 지금의 다툼은 대법관 후보 제청(提請)을 둘러싼 권한 갈등이다. 제청권과 임명권이 맞선 상황이지만 협의를 통한 정리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는 순간 싸움의 성격이 바뀐다. 갈등 정도가 아닌 다수 의석을 쥔 권력이 사법부 수장을 쫓아내는 일이 된다. 이 정권은 이기든 지든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하면 무리한 탄핵을 밀어붙인 정권이 된다. 인용돼도 사법부를 압박하고 삼권분립을 훼손한 정권이란 오명(汚名)을 피하기 어렵다. 어차피 내년 6월 정년을 맞는 대법원장을 탄핵하려고 정부 여당이 국정을 낭비했다는 비판도 불가피하다. 게다가 여권 일각이 거론해 온 탄핵 사유에는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의 파기환송도 있다. 대통령 본인의 재판 결과도 대법원장 탄핵의 근거가 됐다는 의혹은 어떤 해명으로도 씻기 힘들다. 소추가 의결되면 대법원장은 헌재 결정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제청 절차가 사실상 멈춘다. 상고심은 밀리고 재판받을 권리는 지연된다. 대법관 공백 책임은 탄핵을 밀어붙인 쪽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앞서 제청권 사태를 사법개혁의 방아쇠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총구가 대법원장이 아닌 대통령과 여당을 향할 수 있다. 내리막에서 가속 페달을 밟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2026-10-19 05:00:00
[사설] 47개월째 줄어든 청년 취업, 청년 위한 구조 개혁부터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가 석 달 연속 10만 명대 증가세를 이어갔음에도 15~29세 청년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4만7천 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47개월 연속 감소다. 청년 고용률은 44.0%로 29개월째 내림세를 보였고, 실업률은 5.4%로 올랐다. 정부가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에 맞춰 청년 범위를 15~34세로 넓혀 추가 공표한 지표에서도 취업자는 9만8천 명 감소해, 기준을 넓혀도 고용 한파(寒波)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구직을 아예 포기한 '쉬었음' 청년이 20대 후반까지 확산하며 경제의 역동성(力動性)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 공백 장기화는 개인이 경력을 쌓고 재도전할 기회를 앗아갈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잠재성장률을 저하시키는 심각한 구조적 위기다. 그럼에도 그간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 고용 대책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최근 3년간 고용노동부의 청년일자리 사업 예산은 7조5천억원에 육박했고, 참여 인원도 누적 200만 명을 넘겼다. 그러나 알선취업률과 고용유지율 등 실질적인 성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의 청년 알선취업률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일반고 학생 대상 직업훈련은 취업률이 70%를 넘으면서도 6개월 고용유지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중소기업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 역시 조기 퇴사자가 속출하고 불용액이 발생하는 등 현장과의 이극(二極)을 드러냈다. 단순히 예산을 늘리고 참여 인원을 채우는 방식의 단기·일회성 지원이 가져온 한계다. 정부는 기존 고용 정책 전반을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처음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시장에서 이탈한 청년, 장기 비취업자 등 대상별 특성에 맞춘 맞춤형 직무 훈련과 일 경험, 고용 연계 프로그램을 재설계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책의 평가 기준 또한 단순 집행률이 아닌 '지속 가능한 고용 유지'에 둬야 마땅하다. 또 과도한 규제를 대폭 걷어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2026-10-19 05:00:00
[관풍루] 대미 무역흑자 사상 첫 1천억달러 돌파 눈앞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관세 앞세워 알래스카 LNG 투자 압박
○…소방 예산을 '재정 빨대' 비유했던 추미애 경기지사, 순직 소방관 빈소 찾아 "사과 바라시니 사과드린다"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경기 도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사퇴' 바라시니까 '사퇴'하라"고 맹공 퍼부을 만하군. ○…대미 무역흑자 사상 첫 1천억달러 돌파 눈앞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관세 앞세워 알래스카 LNG 투자 압박. 한국 기업들 미국서 돈 벌면 청구서는 중간선거 앞둔 백악관에서 날아오는 상황. ○…검찰청 폐지 후 중수청·공소청 출범했지만 법무부 장관 54일, 검찰총장 474일째 공석이고 경찰청장마저 676일째 비어. 소위 개혁은 속전속결인데 인사는 감감무소식이니 간판만 덩그러니.
2026-10-19 05:00:00
[노인영의 부자 풍수, 장수 풍수] (1)초일류기업 삼성의 산실, 호암산과 장내(墻內)마을
옛말에 "작은 부자는 노력해서 되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한때 세간에서 '돈병철'이라 불릴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부가 되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초일류 기업 삼성을 탄생시킨 근원은 무엇일까. 전통 풍수의 관점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 본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의 호암산. 필자는 이 산의 산줄기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李秉喆, 1910~1987) 회장의 생가와 선영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장내마을 내 생가가 자리하고,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종조부와 계(繼)증조모 묘소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생가 터와 선영의 형세를 하나의 지리적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어떤 풍수적 해석이 가능할까. 풍수에서는 주산의 형체가 대단히 중요하다. 주산인 호암산은 후부한 토성체(土星體)로, 귀(貴)보다는 부(富)의 기운이 강하다. 따라서 음택과 양택 모두 부의 기운이 우세할 것이다. 호암(湖巖)이란 호도 이 호암산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호암이 태어난 생가를 살펴본다. 생가는 이 회장의 조부가 전통 한옥 양식으로 가래형 명당 터에 지은 천석꾼 부잣집이다. 가래는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농기구를 말한다. 호암은 이 집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고, 결혼한 뒤 분가하기 전까지 살았기에 이 부자 터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았을 것이다. 생가 안채 뒤편 산등성이와 건물 지붕은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청룡 방의 바위가 안채를 살짝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그런데 이 바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일반적인 주택에서는 볼 수 없는 형상이다. 이 형상을 금괴를 쌓아 놓은 모습이나 콩 가마니를 쌓아 놓은 형상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 형상이 생가가 부자 터임을 보여 주는 증표다. 또 장내마을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정곡천과 마을 왼쪽에서 흘러오는 월현천이 합류하는 지점에는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 노적봉 형상의 동산(해발 59.5m)이 있다. 경방(庚方)의 삼태성(三台星) 사격 등도 이 마을이 예사롭지 않음을 시사한다. 생가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많은 사람이 부자 터의 기운을 받고자 이 바위들을 만지다 보니 훼손되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어 현재는 바위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화단을 조성해 놓았다. 재벌이 되기 위해서는 생가 터도 중요하지만 조상의 음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호암의 조부 이홍석(李洪錫, 1838~1897)은 유학자로 문산정(文山亭)에서 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유학자들은 대체로 천문과 지리 관련 학문을 접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회장의 조부도 풍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을 터이니, 집터는 물론 부친의 묘소를 명당에 마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언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부친이 작고하자 10년 넘게 명당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내던 중 마을에서 가까운 산사의 스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이 스님은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명사였고, 조부의 정성에 감동해 특별한 명당을 알려 주며 그곳에 부친을 모시라고 권했다. 이에 현재의 자리에 모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스님이 점지했다는 이 회장 증조부의 묘소로 가 보자. 이 자리는 호암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맺은 곳으로 해발 약 240m의 높은 산 중턱에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묫자리를 잡을 때는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이곳은 사신사(四神砂)가 잘 감싸 안고, 골짜기로 불어오는 바람은 묘소 아래 큰 바위들이 잘 갈무리하고 있어 좋은 자리가 될 요건을 갖추었다. 이곳 묘소의 형상은 일반 묘소와는 사뭇 다르다. 경사가 급하다. 경사가 너무 급해 묫자리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자리는 급하게 내려오는 맥을 잡아 주는 바위가 좌우에 박혀 있고, 그 아래에는 거대한 바위가 맥을 거두어 주고 있어 명당이 형성됐다. 필자가 전국의 여러 명당을 간산해 보았지만 이런 지형과 지세를 본 적이 없다. 특이한 점은 묘소 아래 집채만 한 큰 바위 위에 궤짝이나 금고를 연상시키는 네모지고 두툼한 바위가 올라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자리의 핵심이다. 큰 부자의 탄생을 예견하는 하늘의 표식이다. 이 형상을 풍수 용어로 '고궤요성'(庫櫃曜星·돈이나 곡식을 넣어 보관하는 궤짝 모양의 바위)이라 한다. 묘소의 형국은 좌우에 박혀 있는 바위틈에 나비가 앉아 나풀거리는 형상인 비아부벽형(飛蛾附壁形)의 대명당이다. 다만 입향(立向·향을 바르게 놓는 것)이 아쉽다. 입향이 틀어지면 흉화가 따른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태어날 때 집터의 기운과 함께 조상 선영의 좌향(坐向), 파구, 주변 사격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증조부 묘소의 입수와 좌향을 고려하면, 이 회장은 증조부 묘소의 영향으로 부자가 될 기운을 타고났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회장도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한 적이 있고, 조부처럼 풍수지리를 신봉했기에 선조들을 명당에 모시고자 애썼다. 그리하여 친증조모의 묘는 남양주로, 조부모와 부모의 묘는 수원 이목동으로 이장했으나 증조부 묘는 명당이라 여겨 옮기지 않았다. 최근에는 남양주에 있던 증조모 진양 강 씨의 묘소를 문산정 뒤편 산 중턱으로 다시 이장했다. 호암은 아버지 이찬우(李纘雨)와 어머니 권재림(權在林) 사이에서 2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방황하기도 했고 사업에서도 몇 차례 실패했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린 뒤 처가가 있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시작으로 제당·섬유·무역·비료 사업 등에 뛰어들어 삼성을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말년에는 반도체와 조선업 등 제조업에도 진출해 삼성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할 토대를 닦았다. 그는 1987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향년 77세로 생을 마감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안에 있다. 오늘날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이 회장 본인이 사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전 임직원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풍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삼성은 이 회장의 증조부 묘소와 수원으로 이장한 조부모 묘소 등 여러 명당을 얻고 생가 터의 기운까지 더해져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이자 기업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해 본다. 노인영 철학박사 / (사)한국음양지리학회 전임강사
2026-10-19 0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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