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사

  • [날씨] 12월 10일(수)

    [날씨] 12월 10일(수) "차차 구름 많음"

    2025-12-09 19:00:35

  • [사설] 시늉뿐인 개인정보 유출 피해 구제책, 징벌적 배상이 답이다

    개인정보 유출의 2차 피해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작 기업들의 피해자 구제책(救濟策)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보험 보장한도가 터무니없이 적어 적절한 보상은 불가능하고, 기업이 분쟁조정을 거부하면 긴 법정 다툼에서 이겨야 소액 배상을 받을 수 있다. 가입자 확보에만 혈안이 돼 정보 보안을 등한시(等閑視)해 온 기업들에 피해 규모에 걸맞은 보상을 강제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쿠팡이 가입한 '개인정보유출 배상보험'의 보장한도는 10억원이다. 배상 책임이 인정돼 10억원의 보험금이 나오면 1인당 30원씩 받는다. 2천30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SK텔레콤의 보험금 보장한도도 10억원으로 동일하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유출 관련 보험 가입을 강제하지만 최소 가입 한도는 10억원에 그친다. 가입자 1천만 명이 넘는 대기업도 10억원 보험에만 가입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기업이 배상 관련 분쟁조정(紛爭調停)을 거부해도 아무 조치를 취할 수 없다. SK텔레콤은 피해자 1인당 30만원을 배상하라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정안을 거부했는데, 신청인들이 배상을 받으려면 민사소송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 2, 3차 피해 우려 속에 책임 규명과 보상까지 길고 답답한 법정 다툼이 남아 있다. 쿠팡의 피해 조사 발표도 내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박대준 쿠팡 대표는 지난 3일 피해 보상과 관련한 국회 질의에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전문가들은 징벌적(懲罰的) 배상 등 강력한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악용한 피싱·스미싱 등 사이버 공격과 명의도용·계정 탈취 등으로 인한 추가 피해가 걱정스럽지만 기업들의 낮은 보안 인식 탓에 관련 보험조차 활성화하지 못했다. 보험업계는 보장한도를 실질적 배상이 가능한 수준으로 늘리고, 보험 가입률을 끌어올릴 규제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험과 배상은 사후 해결책일 뿐이다. 기업을 옥죄는 징벌적 배상이 아니라 보안을 극대화하는 촉매(觸媒) 역할을 해야 한다.

    2025-12-09 05:00:00

  • [사설] 내란전담재판부 자체가 위헌인데, 몇 가지 수정한다고 합헌 되나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과 법 왜곡죄 신설법 등에 대해 위헌 논란이 강하게 제기되자 '위헌소지 최소화 방안' 마련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민주당 주도(主導)로 법사위를 통과한 내란재판부설치법은 헌법재판소장과 법무부 장관, 판사회의 추천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판사들로 재판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장·판사회의·법무부가 각각 3명씩 추천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추천위 구성 조항을 수정·보완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행정부 소속인 법무부가 사법부 영역에 관여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으로 우려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추천위원회 구성 방식이나 재판을 담당할 판사를 추천하는 방식을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사법 독립의 핵심은 공정한 사건 배당(配當), 즉 '사건 무작위 배당'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는 그 자체가 특정 사건과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다. 추천위원회 구성 방식이나 구성 조항을 변경하더라도 '특별재판부' 그 자체가 사건 배당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재판권이 사법부에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민주당은 '현직 판사 중에 특별재판부 판사를 임명할 것인데, 무슨 위헌이냐?'는 입장이다. 궤변(詭辯)이다. 나치 특별재판부가 그랬다. 나치는 기존 판사 중에 정권에 충성도가 높은 사람을 골라 재판하게 했다. 만약 국민의힘이 "현재 사법부는 현직 대통령을 재판할 의지가 없으니, 특별재판부를 만들고 강단 있는 판사를 임명해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하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나?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는 이미 1심이 진행 중인 사건도 이관(移管)하게 되어 있다. 이 법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현 재판부가 마음에 안 드니, 자기들 뜻에 맞는 재판부를 임명해 진행 중인 재판을 빼앗아 재판하겠다는 것이다. 입법부가 재판을 하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2025-12-09 05:00:00

  • [사설] 北 억류 국민 외면하는 정부,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이재명 정부가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문제 해결에 소홀한 모양새를 거듭 연출하고 있다. 민주주의(民主主義)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다. 제한된 임기 동안 국정을 책임진 정부 또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명(使命)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 3일 북한 억류 한국인 문제에 대한 외신기자의 질문을 받은 이재명 대통령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해 주위를 경악(驚愕)하게 했다. 무책임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전 세계에 심어준 셈이다. 게다가 질문한 외신기자는 "개인 안전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문재인 정부 관료로부터 가짜 뉴스 유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밝혔다. 망신(亡身)도 이런 망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안보실은 다음 날 선교사 3명, 탈북민 3명 등 6명이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무심(無心)했더라도 일단 국민의 안전 문제가 부각된 이상 대책을 마련하고 노력하는 게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7일 열린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는 북한 억류(抑留) 한국인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페이스메이커로서 북한,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남북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해 나가겠다"는 유화론만 강조했다. 미국이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직접 북한으로 보내 한국계 미국인을 데려온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1970, 80년대 모두 17명이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도 지속적인 진상 규명과 북한에 대한 사과 요구로 2002년 5명을 귀환시켰으며, 나머지 12명에 대한 생존 여부 및 진상 규명을 위해 끊임없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북한과의 가장 중요한 외교 현안으로 납북자 문제가 제시된다. 이재명 정부는 틈만 나면 국민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진짜 '국민 주권(主權) 국가'는 국민의 생명·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2025-12-09 05:00:00

  • [관풍루]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배우 조진웅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범여권 일각의 주장에…

    ○…NK뉴스 채드 오 캐럴 기자,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북한 억류 국민 질문 후 "개인 안전에 대한 경고받았고, 전직 문재인 정부 관료로부터 가짜 뉴스 유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알려. 종북주의자가 설쳐대는 개탄할 현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배우 조진웅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범여권 일각의 주장에 "좌파 진영에서 조진웅을 옹호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의문 제기. 조진웅에게서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내란 재판'의 경우 법원의 위헌 법률 심판 제청에도 재판이 정지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는 민주당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해 헌재도 '위헌 소지' 있다는 의견 표명. 민주당에는 소 귀에 경 읽기.

    2025-12-09 05:00:00

  • [날씨] 12월 9일(화)

    [날씨] 12월 9일(화) "대체로 맑음"

    2025-12-08 19:04:05

  • 영국 저명 사진작가 마틴 파 73세로 별세

    영국 저명 사진작가 마틴 파 73세로 별세

    영국의 저명한 사진작가 마틴 파가 6일(현지시간) 73세를 일기로 잉글랜드 브리스틀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AFP 통신과 BBC 방송이 보도했다. 마틴 파는 현대인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 작가다. 일상의 작은 파편들을 통속적인 색채로 담아낸 그의 작품들은 장난스럽고 유머를 지닌 동시에 날카로운 비판도 담아 사회적 논쟁과 토론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20년 한 전문지와 인터뷰에서 "나는 엔터테인먼트로 위장한 진지한 사진을 찍는다"며 "보편적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순간을 짚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머지사이드 뉴브라이튼에서 휴가를 즐기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94년부터는 영향력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영국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북한부터 알바니아,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모습도 담았다. 70대 노년에 들어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최근 자전적 사진집 '아주 게으르고 산만한'(Utterly Lazy and Inattentive)을 내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수지 파와 딸 엘렌 파가 있다.

    2025-12-08 16:15:05

  • [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광복 80주년에 되돌아본 단재 신채호 민족사학의 공과(功過)

    [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광복 80주년에 되돌아본 단재 신채호 민족사학의 공과(功過)

    단재 신채호는 1880년 11월 7일 현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나 1936년 2월 21일(음력 1월 28일) 중국의 여순 감옥에서 5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단재는 꿈에 그리던 1945년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일제 치하에서 살다가 일제의 감옥에서 병사했으니 불우한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1910년 한양조선이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겼을 때 단재의 나이 31세였다. 한참 국가와 민족을 위해 활발히 활동할 나이에 나라를 잃어버린 단재는 그 후 중국의 상해, 북경, 러시아의 연해주 등지를 떠돌며 망명객 신분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 불행한 대일항쟁기에 태어나 안중근, 윤봉길 의사 같은 분들은 사생취의(捨生取義), 즉 직접 목숨을 바쳐 피로써 독립운동을 하였다. 한편 암울한 망국의 현실을 당하여 역사 속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일생 전심전력을 다한 분은 단재 신채호이다. 단재는 우리 역사는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대륙을 지배한 위대한 역사임을 널리 알려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그가 남긴 '독사신론',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등은 식민 반도사관을 깨고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를 한반도에서 만주지역까지 확대시킴으로써 기존의 역사 인식을 확 바꾼 파격적인 연구였다. 다만 단재의 연구가 당시로서는 식민주의 반도사학을 부수는 망치와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단재 사후 9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와서 살펴보면 단재의 한계와 문제점 또한 발견된다. 그 실례 몇 가지를 아래에서 단재의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한사군에 대한 단재의 오류 단재는 '조선상고사' 제4편 제2장 열국의 분립과 제3장 한무제의 침구(侵寇) 등에서, 한무제가 설치한 한사군이 현재의 요녕성 동쪽 해성, 개평 등지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전한서' 가연지열전에는 한무제가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서 현도군, 낙랑군을 설치하였다.(東過碣石 以玄菟樂浪爲郡)"라고 말하였다. 갈석산은 중국 하북성 쪽에 있다. 한무제가 만일 지금의 요녕성 동쪽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면, '전한서'에 해성시, 개주시 서쪽에 위치한 명산인 의무려산(醫巫閭山)을 지나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말하지 갈석산을 지나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한 강단사학은 물론 요녕성 동쪽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한 단재 역시 오류를 범한 것이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대한 단재의 오류 당나라 때 두우(杜佑)가 쓴 '통전(通典)'의 주군(州郡) 안동도호부 조항에는 "선비족이 세운 북위시대에 고구려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당시의 하북도 평주에 수도를 정했는데 당나라 고종 원년(668년)에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평정하고 거기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단재는 수, 당시대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다음의 기록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좌익위대장군 수군총관 내호아(來護兒)와 부총관 주법상(周法尙)이 군량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고 해로를 따라 대동강으로 들어가서 우문술과 합세하여 평양을 공격하기로 했다." 단재는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고구려의 수도 평양은 대동강 유역이 아닌 발해의 해변 당시의 하북도 평주, 현재의 중국 하북성 창려현, 노룡현 일대에 있었고 그곳에 안동도호부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구려의 패강(浿江)에 대한 단재의 오류 패강은 패수를 말한다. 패수는 고조선과 고구려 시대에 수도 평양 서쪽에 있던 강이다. 단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익위대장군 내호아가 동래 지금의 연태에서 출발하여 발해를 건너 패강 입구로 들어왔다." "영양왕의 아우 고건무가 비밀리에 수군 장졸들을 구석진 곳에 감추어두고 평양성 아래의 인가에는 재물과 돈을 떨어뜨려 놓고 수나라 군사들이 상륙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호아가 정예병 4만 명을 뽑아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성 밑으로 돌진했다." 이는 단재가 한, 당시대의 패강을 오늘의 대동강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단재는 '살수전'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고구려군의 패강 승전에 대해 다루었는데 고구려의 패강이 현재의 대동강이라는 전제하에서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수, 당 시대 고구려의 수도가 현재의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 노룡현 일대에 있었다면 고구려 수도 서쪽에 있던 패강이 오늘날의 대동강이 될 수는 없다. 고구려의 패강은 고조선의 패수이고 패수는 지금의 대동강보다는 하북성 진황도시 서쪽, 북경시 북쪽의 백하(白河)로 보는 것이 우선 발음상 가깝다. 또한 '사고전서'의 기록에 의하면 패수를 북경 북쪽의 백하로 보아야만 당시의 역사 사실과 부합된다. ◆고구려의 살수(薩水)에 대한 단재의 오류 "을지문덕은 이때 이미 대동강 싸움에서의 승전보를 들었고 또 우문술 등 수군에 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미 필승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수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하루 동안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패하니 우문술 등은 크게 기뻐하면서 '고구려 사람들은 하잘 것이 없구나'하며 내리 길게 몰아쳐 와서 살수를 건너 평양에 이르렀다." 이는 단재가 살수대첩을 설명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살수에 대해 단재는 자신이 직접 주석을 하여 청천강이라고 표기하였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이 하북성 진황도시에 있었고 패강이 대동강이 아닌 북경 북쪽의 백하라면 을지문덕이 수군을 상대로 대첩을 거둔 살수가 청천강이라는 논리는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고구려의 서쪽 경계에 대한 단재의 오류 단재는 '조선상고사' 제9편에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에 대해 상세히 다루었는데 거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방에 고구려가 있어서 조선의 서북 –지금의 황해, 평안, 함경 3도와 지금의 봉천, 길림, 흑룡강 3성-을 전부 차지했다." 이는 단재는 고구려가 한반도 북부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동북 3성만을 차지한 것으로 인식하고 지금 북경을 포함한 하북성 동남쪽 일대가 모두 고구려 영토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단재는 수양제의 좌우 12군의 경유지에 나오는 지명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해는 지금의 강화이고 옥저는 함경도와 훈춘 등지이고 임둔과 동이는 지금의 강원도이니 평양에 총집결하는 수나라 군대가 어찌 훈춘이나 함북이나 평양 이남의 땅으로 나갔겠는가." 단재는 수, 당 시대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믿고 명해, 옥저, 임둔, 동이는 하북성 서쪽에서 하북성 동쪽에 걸쳐 있었던 고구려의 지명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 데서 위와 같은 오류를 범했다. 단재는 고구려와 수나라가 하북성 남쪽 역수(易水) 유역의 탁군을 경계로 국경을 마주하였고 역수 이동의 북경 일대는 모두 고구려 땅이었으며 그래서 수나라의 좌우 12군이 하북성 남쪽 탁군에 집결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평양에 집결하는 수나라 군대가 경유하는 곳의 지명들이 압록강 서쪽이 아닌 하북성 남쪽 역수 유역에서 하북성 동쪽에 걸쳐 있었던 지명임을 알지 못했으므로 단재는 '수서'나 '자치통감'에 나오는 수나라 12군의 경유지 지명이 본래의 지명이 아니라 임시로 지정한 지명이라는 억지 주장까지 펼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재가 만주 즉 동북 3성만을 고구려의 영토로 인정하고 고구려의 서쪽 경계는 하북성 동남쪽까지 포함됐다는 역사 인식이 부족했던 데서 초래된 오류라고 하겠다. ◆단재사학이 범한 한계와 오류를 발견하게 된 원인 한국사의 범주를 청천강 이남에서 동북 3성으로 확대시킨 단재 사학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단재사학의 한계와 오류를 지적할 수 있게 되었는가. 그것은 광복 8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만리장성 밖의 홍산문화 유적이 발굴되어 고고학적 성과가 진척되고 또 8만 권에 달하는 사료를 집대성한 '사고전서'가 전자화되어 누구나 검색과 이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즉 문헌적 고고학적 연구성과가 단재 당시보다는 훨씬 더 많이 진척된 것을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단재가 중국에서 활동할 때 '사고전서'를 접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그가 생전에 '사고전서'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는 '사고전서'가 지금처럼 영인되어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또한 검색작업도 불가능했다. 단재가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8만 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어떻게 짧은 기간에 다 열람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단재는 '무경총요'에서 북경 북쪽에 송나라 때까지 조선하라는 강이 존재했었다고 밝힌 내용을 몰랐고 하북성 노룡현에 송나라 때까지 고조선의 조선성이 보존되어 있었다고 말한 '태평환우기'의 기록도 살피지 못했다. 하북성 노룡현 옛 고죽국 지역에서 고조선이 건국했다고 말한 두로공신도비문도 접하지 못했고 두우의 '통전'에 나오는 수, 당 시대에 고구려가 하북도 평주에 도읍을 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단재는 한국상고사의 범주를 만주의 동북 3성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는 했지만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 평양, 패강, 살수 등을 모두 현재의 북한 평양, 대동강, 청천강으로 간주하는 강단 사학과 동일한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단재는 한국 민족사학의 체계를 세운 인물이다. 오늘의 우리는 망국의 시대에 태어나 망명객의 신분으로 풍찬노숙하면서 이루어낸 단재의 조선상고사에서의 뛰어난 업적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공과는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광복 80주년 새로운 민족정사(民族正史) 정립해야 한다 단재가 여순형무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을 때 당시 조선일보 신영우(申榮雨) 기자가 단재를 찾아가 인터뷰한 단재 옥중회견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최근 수개월 전부터 우리 신문 지상에 그가 30여 년간의 깊은 연구와 세밀하고 넓은 조사와 꾸준하고 절륜한 노력을 경주한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가 비로소 대중적으로 계속 발표 소개되었다.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노력하여 저작한 역사가 조선일보 지상에 매일 계속 발표되고 있음을 아십니까." 단재가 답했다. "네 알기는 알았습니다만 그 발표를 중지시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비록 큰 노력을 하여서 쓴 것이기는 하나 그것이 단정적 연구가 되어서 도저히 자신이 없고 완벽한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10년의 고역을 무사히 마치고 나가게 된다면 다시 정정(訂正)하여 발표하고자 합니다." 자기의 원고가 완벽하지 않아서 나중에 정정하여 발표하려고 하니 조선일보에 발표를 중지시켜달라고 말한 것을 본다면 그의 연구가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단재도 자인했음을 알 수 있다. 광복 80주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통설이 바탕이 된 식민 반도사학과 단절하고 단재사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고 그간에 새로 발굴된 홍산문화의 고고 유적과 '사고전서'의 방대한 문헌사료를 우리 역사연구에 포함시켜 21세기를 열어갈 새로운 한민족의 바른역사, 민족정사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심백강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2025-12-08 11:40:21

  • [함께 꿈꾸는 시] 숲하루 '쿠폰 오후'

    [함께 꿈꾸는 시] 숲하루 '쿠폰 오후'

    〈쿠폰 오후〉 다른 공간 같은 맛을 따라가니 떨어진 거리만큼 손안에 든 서울, ​ 딸이 보낸 쿠폰 한 장 이곳 카페 오후를 데리고 앉았다 멀리서도 함께하면 힘을 내는 목소리가 들리는 마치 약속처럼 네가 고른 메뉴 그대로 시켰어 싱그러운 과일 한 접시 따뜻한 커피 샌드위치 하나 마음이 가까워지는 두 시로 흐르자 물결처럼 차오르는 사람들 책 한 권쯤 쏟아낸 낱낱 이야기가 귓가는 야릇한 주파수로 수런거렸지 때로는 광화문 문고리 소리로 때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로 끝내 말은 사라지고 소리만 남는 창문은 단단히 닫혀 있는데 그 많은 말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시끄러움 속 홀로 앉아 네가 보낸 쿠폰처럼 따뜻한 사랑 하나, 오래 담는다 ​ 〈시작노트〉 너무 애쓴 네 상처였어. 마음의 엇각이 탈진한 수모였지. 세계는 얼마나 부조리한지! 피부 같은 언어의 표면과 이면, 웅크려 우는 웃음을 찾아 주고 싶었어. 곁에 있는 것처럼, 거울로 보는 것처럼, 넘어진 네 그림자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어. 쌍둥이처럼 다른 공간 같은 것이었어. 우울을 열고 들어온 문으로 밀어내 너를 단단하게 한 그날, 애썼어.

    2025-12-08 06:30:00

  • [사설] 위헌적 재판부에 위헌 제청도 무력화, 막가는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위헌 논란에 휩싸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을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내란·외환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하더라도 재판이 중지되지 않게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재판 중지 금지법)도 밀어붙일 계획이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42조는 법원이 법 조항에 대해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고 법률 심판을 제청하면 재판을 중지하게 돼 있다. 민주당이 이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 등 재판 당사자가 '내란전담재판부는 위헌'이라는 심판 신청을 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중지되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헌법에 근거 없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이어 또 다른 위헌적 법률로 위헌 제청까지 무력화하겠다는 발상(發想)이다. 위헌법률심판 제도는 재판 당사자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률이다. 민주당이 이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은 자신들 입맛에 맞는 재판 결과를 위해 국민 기본권을 말살(抹殺)하고 사법 안정성을 허물겠다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는 기소된 사건 재판도 중지하겠다더니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법에 보장된 '재판 중지'도 금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지난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킨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별도의 재판부를 설치해 윤 전 대통령이 기소된 내란 사건을 맡기겠다는 내용이다. 위헌적 특별 법원이자, 대한민국 법원이 사건 배당(配當)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사건 무작위 배당 원칙'을 허무는 것이다. 내란특별재판부는 특정 사건과 특정인을 겨냥한 '처분적 법률'로 선진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웃과 내가 다투는 상황에서 이웃의 친한 친구가 판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 사건 특별 재판부'를 만들어 반(反)이재명 성향의 법관을 임명한 후 재판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민주당은 당장 '사법 농단' '사법 내란' '사법 쿠데타'라며 들고일어났을 것이다.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이른바 '내란특별재판부'와 '재판 중지 금지법(헌재법 개정안)'이 처리될 경우, 헌재가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중에 내란특별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재판을 강행하게 된다. 특별재판부는 내란 유무죄를 따지고, 헌재는 특별재판부의 위헌성을 따지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결국 특별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 등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더라도 헌재가 '특별재판부는 위헌'이라고 결정하면 특별재판부의 판결은 무효가 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이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내란 몰이'를 위한 정략이자, 국회 의석수로 헌재 결정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傲慢)과 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이처럼 위헌적인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현재 '내란 재판'을 맡고 있는 법원(지귀연 재판부)에 윤 전 대통령 등에 대해 '내란 유죄' 판결을 내리라는 노골적인 압박일 것이다. 판사·검사 등이 법을 왜곡 적용하면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법 왜곡죄'도 마찬가지다. '법 왜곡'에 대한 정의도 모호한 이 법은 역시 민주당 입맛에 맞는 기소와 판결을 위한 법인 셈이다. 법원은 비상(非常)한 각오로 민주당의 삼권분립과 사법 근간 허물기를 막아야 한다. 국민은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의 입법을 통한 삼권분립 파괴를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2025-12-08 05:00:00

  • [사설] 국보법 폐지 책동에 거센 반대 의견, 폐지론자들은 똑똑히 보라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진보당 등 범여권 의원 31명이 공동 발의한 국보법 폐지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폭주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입장 표명(表明)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입법예고 사이트에 따르면 7일 오후 4시 기준 국보법 폐지 법률안에 달린 의견 수가 9만 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간첩 활동을 조장하려는 거냐" 등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러니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했지" 등 국보법 폐지안 발의를 계기로 한 계엄 옹호 주장도 적잖다. 국민의힘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전력이 있는 이 대통령의 친북(親北) 논란을 다시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7일 논평을 통해 "1990년대부터 합헌 결정을 유지해 왔고, 7월 8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다수가 국보법 폐지에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주진우 의원은 "북한은 핵무기 개발, 가상 자산 해킹, 군사기밀 수집, 개인정보 탈취 등 적대 행위를 한 번도 멈춘 적 없다"며 "국보법 폐지는 대한민국만 무장 해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동혁 대표도 "간첩 말고는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법을 없애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간첩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보법 폐지안 발의(發議) 이유는 '냉전시대 산물인 국보법이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인권 보장의 가치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이 이미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것도 제안 이유 중 하나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빌미가 된 거 같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국보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이 있었기에 윤석열 내란 일당이 민주 헌정 파괴를 시도할 수 있었다"며 "윤석열 같은 이들이 반국가 세력 운운하며 민주 헌정을 뒤엎을 수 없도록 뿌리째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국보법은 1948년 12월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행위를 규제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모태(母胎)가 된 법률이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인 것도, 이후 지속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것도 맞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 정부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됐고 표현의 자유 침해 및 인권 문제 등으로 여러 차례 폐지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와 시민 의식이 바뀌면서 여러 차례 개정돼 왔고,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이 여전히 존재하고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현실에 맞게 개정하면 된다. 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는 법률 폐지를 무리하게 추진해 불안하게 할 이유가 없다. 앞서 정부는 대북 방송도 중단했고, 대북 전단도 막았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북한에 하나하나 다 양보하고 내주는 것 아닌가 불안함을 느끼는 국민이 적잖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도 규제해야 하고 국민의 생존과 자유도 지켜야 한다. 일방적으로 추진돼선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힘들다. 법안을 만들고 없애는 것엔 공감과 공론(公論)이 필요하다.

    2025-12-08 05:00:00

  • [관풍루]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특별감찰관 임명과 관련 "꼭 하겠다"며 "국회에서 빨리 추천해주시면 특별감찰관으로 모시겠다"고.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를 위헌 소지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대통령실과 여당 간에 이뤄져 있다고 언급. 물어봅시다. 지린 X은 X인가요 아닌가요?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특별감찰관 임명과 관련, "꼭 하겠다"며 "국회에서 빨리 추천해 주시면 특별감찰관으로 모시겠다"고. 민주당 단독 또는 범여권 짬짜미한 인사 임명할 거면 아예 말고.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 민중기 특검이 통일교의 민주당 후원을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정치적 고려나 편파 수사가 아니다"라고 주장. 입은 삐뚤어지지 않았는데 거기서 나오는 말은 혀를 차게 하네.

    2025-12-08 05:00:00

  • [날씨] 12월 8일(월)

    [날씨] 12월 8일(월) "차차 맑아짐"

    2025-12-07 18:41:43

  • [매일춘추-김혜령] 무대 뒤의 예술가들

    [매일춘추-김혜령] 무대 뒤의 예술가들

    무대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연주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든다. 무대에서 연주자가 받는 박수는 언제나 밝고 뜨겁다. 그러나 공연이 끝날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대 뒤의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관객이 보지 못한 곳에서 묵묵히 하루의 공연을 완성해 주는 이들. 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지만 공연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예술가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무대 감독님이다. 공연 며칠 전부터 그는 무대 사용 계획을 묻고, 조명 위치와 악기 배치, 연주자의 동선을 꼼꼼히 확인한다. 단순한 체크가 아니라 실제 연주 장면을 상상하며 필요한 빛과 움직임까지 미리 설계한다. 당일에는 누구보다 먼저 홀에 도착해 조명을 맞추고 바닥을 정리하며, 연주자가 원하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한 환경을 완성한다. 연주자가 편안히 숨을 고르고 무대로 나설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보이지 않는 준비 덕분이다. 음향팀의 하루는 그보다 더 길다. 관객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녹음 파일을 정리하고, 며칠에 걸쳐 편집·노이즈 제거·음량 균형 조정 등 후속 작업을 이어간다. 이 작업 덕분에 음악은 순간을 넘어 기록이 되고, 다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 무대에서는 한 번도 주목받지 않지만, 공연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예술가들이다. 공연기획팀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어느 날 갑자기 무대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며, 수개월 전부터 기획자들의 고민과 조율 속에서 구조를 갖춘다. 프로그램 선정, 예산 배분, 연주자 섭외, 스태프 구성, 홍보 일정까지 공연의 방향은 이들의 손에서 결정된다. 나는 이 과정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들은 단순한 행정인력이 아니라 공연의 메시지를 설계하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가라고. 기획이 없다면 예술은 관객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명·음향·무대 스태프 등 이름 없는 기술자들도 공연을 완성시키는 존재들이다. 조명팀은 활의 각도와 손끝의 떨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찾아내고, 음향 기술자는 객석 전체의 울림을 계산한다. 무대 스태프들은 악기 이동부터 동선 관리까지 공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움직임 하나까지 조심스러워한다. 공연의 자연스러운 호흡 뒤에는 이들의 정확하고 사려 깊은 손길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대에 서는 사람만이 예술가일까?" 답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조명을 설계하는 사람도, 무대를 지켜주는 기술자도, 공연의 방향을 만드는 기획자도, 하루 종일 공연을 준비하는 무대 감독님도 모두 예술가다. 공연은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손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공동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역 예술의 가치는 결국 이 '보이지 않는 예술가들'에게서 나온다. 작은 공연장일수록, 예산이 부족할수록 이들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름은 조용히 남지만 예술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는 누구보다 확실한 이들이다. 이 글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연주할 수 있었고, 관객은 감동할 수 있었다고. 무대 위의 박수는 연주자에게 향하지만, 그 박수의 절반은 언제나 당신들의 몫이라고.

    2025-12-07 13:44:59

  • 빵의 인문학 상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빵의 인문학 상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밥의 좌우에 떡과 빵이 있다. 밥이 태양이라면 떡은 '지구', 빵은 그 둘레를 도는 '달'인 것 같다. 아무튼, 어느 날 빵이 '달의 서자'로 발탁돼 한 시절 우주의 맨 끝 방에서 갈대처럼 웅숭그렸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빵의 연대기가 포르투갈을 찍고 프랑스와 일본을 만나 '브레드토피아'(Breadtopia)를 그려냈다. 빵이란 용어는 포르투갈어인 '팡'이 일본에서 변형돼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생겼다. 빵은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발효한 뒤 구워서 만든다. 여기에 달걀·설탕·곡물 등 첨가하는 성분을 달리할 수 있다. 영국은 '브레드'(bread), 프랑스는 '뺑'(pain), 스페인은 '팡'(pan), 독일은 '브로트'(brot). 그리스어 '파'(pa) 또는 라틴어 '파니스'(pani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빵과 비슷한 과자, 차이는 뭘까? 빵은 발효균인 '이스트'가 들어가고 과자는 없다. ◆한국 빵의 시원2003년 '한국빵·과자문화사'를 집필한 조승환(한국제과협회 초대회장)은 한국 빵의 첫 단추를 1653년 표류하던 하멜이 제주도에 불시착했을 때로 본다. 1885년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빵을 내민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버전이다. 이들은 밀가루 반죽을 숯불로 구워 먹었다. 부풀어 오른 빵 모양이 소의 고환을 닮았다. 사람들은 이를 '우낭'(牛囊)떡이라 했다. 1902년 러시아 초대공사 베베르의 처형인 독일 여인 손탁이 러시아 공관 옆에 정동구락부를 개설하고 커피와 빵을 내밀었는데 보통 빵은 '면포', 카스텔라는 '설고'라 했다. 1884년 이미 인구 19만 명의 한성에 무려 3천여 명의 청나라 상인, 1천500여 명의 일본 상인이 자리를 잡는다. 한국에 빵이 소개된 건 일본을 통해서였다. 그 빵은 유달리 단맛이 강했다. 달콤한 팥앙금을 넣은 단팥빵, 설탕과 우유로 맛을 낸 카스테라가 대표적이다. 일본인들이 개발한 빵으로 서양에는 없는 종류였다. 1910년 일본의 빵 기술자가 한국에 온다. 1914년에 경복궁에서 '공진회'라는 명칭으로 과자박람회가 열린다. 이때 모두 993점의 각종 과자류가 선보인다. 일본 총독부 조사자료에 따르면 1926년 경성 내 과자점포는 66개 정도인데 한국 업소는 전무했다. 1920년 한국 최초 양과자점인 '메이지야'(明治屋)가 서울 충무로에 등장한다. 물론 중국도 호떡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본의 찹쌀모찌와 단팥빵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일본 군인들의 비상식이 구멍 두 개 뚫린 건빵인데 후에 단팥빵과 함께 한국 군인들이 가장 즐긴 간식이 된다. 과자는 국가별로 달리 불리는데 우리의 전통과자는 '한과', 일본 전통과자는 '화과자'(和菓子), 중국 과자는 '중화과(中華菓子), 그밖의 서양과자는 '양과(洋菓子)로 불린다. 1962년 남한 내 제과업소는 모두 800여개로 집계됐다. 1963년 1월8일 〈사〉대한빵과자협회가 창립되고 1968년 과자회보가 창간된다. 그리고 1973년에는 서울 신길동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가 설립된다. 1979년 전국 제과점은 5천811개소로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이 무렵 조선인에게 참 흥미롭게 다가선 빵이 있다. 바로 '소보로'이다. 으깬 닭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양념해 볶은 음식을 뜻하며 소보로빵이 된다. 일명 '곰보빵'. 그리고 중국인이 만든 '공갈빵'도 재밌었다. ◆한국 최고의 제빵왕은 누구일까? 조승화, 신창근, 이봉상, 한정희, 이건배, 박병주, 이홍경 등 쟁쟁한 인물들도 있지만 단연 김충복(1934~1995)을 꼽는다. 초기 제과명장은 그의 제자가 싹쓸이한다. 2000년 1호 제과명장 박찬회 화과자 대표, 권상범 리치몬드제과 회장과 서정웅 코른베르그과자점 대표다. 경북 봉화 출신인 권 명장은 그의 수제자다. 1963년 18세의 나이로 대구에서 상경, 풍년제과에서 기술을 익혔고 그의 소개로 들어간 나폴레옹제과에서 제과점의 꽃인 공장장에 올랐다. 대구를 딛고 서울로 가서 대성한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영모다. 그는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칠곡군 왜관에서 자랐다. 대구고 2학년 때 중퇴하고 대구 시내 최가네 빵집에서 기술을 익혔다. 무과수제과점 등을 거쳐 1982년 지인이 운영하던 강남구 서초동 빵가게를 인수해 김충복처럼 자기 이름을 내건 김영모과자점을 오픈해 훗날 돈방석에 앉게 된다. 전북 군산의 이성당(李姓堂)은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과자점 '이즈모야'(出雲屋)를 인수해 발전시킨 것이다. 다음 주자는 1934년 천안에서 태어난 학화할머니호두과자(창업자 조귀금·심복순), 5년 뒤 1939년 경주 황남동에서 시작된 '황남빵'(창업자 최영화), 튀김소보로로 유명한 대전 '성심당'은 1956년 탄생한다. 80년대 대구의 빵은 전국 최강이었다. 바로 뉴욕·뉴델·런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90년대의 스텔라베이커리(김호상), 2000년대 전국 첫 케이크 전문점 최가네(최무갑), 폐업 직전의 삼송빵집(박명호)은 '마약빵'으로 전국구에 등극한다. 이후 밀밭베이커리의 멜론빵, 그리고 반월당 고로케, 근대골목단팥빵 등 때문에 대구는 졸지에 '빵지순례의 고장'으로 등극된다. 2009년부터 대구에도 프랑스 유학파 제과전문가(파티셰)가 '디저트카페 시대'를 연다. 2010년에는 달서구 상인동 '오월의 아침'(김상중)과 도원동 '뺑드캄파뉴'(박영태)가 건강빵의 대명사인 천연발효종빵 , 반월당 '행복빵'은 첨가제 없는 쌀빵을 출시한다. 점차 빵집과 커피숍은 '베이커피카페'로 합쳐졌다. 비슬산 오퐁드푸아, 팔공산 헤이마, 칠성동 빌리웍스, 남산동 남산제빵소, 우즈 등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창베카'(창고형 베이커리카페) 시대를 열어 서울이 벤치마킹을 할 정도가 됐다. 2017년은 대구빵이 국제급 브레드시티의 신지평을 여는 해였다. '르배베이커리'의 배재현, '빵장수쉐프 단팥빵'의 박기태, '데일리호스국브라운'의 배재호.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미니어처 같은 꿈의 작품 '다크 나이트'가 2017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월드페이스트리컵'에서 주목을 받는다. 현재 대구·경북에는 무려 130여명의 막강파워 제과기능장이 있다. 한때 한강이남 최고의 빵공장 중 하나로 불렸던 '수형당'(秀亨堂)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보자. ◆대구빵의 첫 단추 수형당 광복 전 북성로 미나카이 백화점 옆 이마사카(今阪) 제과점이 대구 제빵 1세대를 배출한다. 대표주자가 영천 출신의 진병수인데 그는 이마사카를 나와 중구 남산동에서 빵 장사를 해서 번 돈을 재투자해 광복 직후 중구 문화동 2번지 교동시장 내에서 수형당을 창업해 공장빵의 신지평을 연다. 수형당은 1946년쯤 등장했다. 1950~60년대만 해도 해태·삼립제과와 어깨를 겨룰 정도였다. 수형당은 대구 제빵산업의 기틀을 잡아준 기업이다. 훗날 뉴욕제과의 이점석, 뉴델제과 최종수, 런던제과 조원길, 지역의 첫 케이크 전문점 최가네케익의 최무갑, 스텔라베이커리 , 풍차베이커리 등 대구의 메이저급 제과점 관계자들 상당수는 수형당의 영향을 받았다. 상호도 대충 만들지 않았다. 자기 이름 중에 '수'자, 동생(형수) 이름 중 '형'자를 합쳐 '수형당'을 만들 정도의 감각을 가졌다. 진 사장은 당시 경영자로선 드물게 신문광고도 적극 활용했다. 수형당은 '등록상표 제12418호, 경상북도 및 대구시지정 분식 빵 제조공장, 빵의 생명은 신선미, 건강제일의 분식빵으로'란 광고문구를 지역 일간지 광고란에 실었다. 처음에는 사업운이 있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군인 세상'이었다. 6·25한국전쟁 직후 대구로 피란 온 육본과 2군사령부 등 각급 군부대가 포진해 있어 식빵과 단팥빵, 건빵 등을 공급하기 쉬웠고 '독점군납' 덕분에 브랜드 파워를 키운다. 심지어 양질의 밀가루도 군이 독차지했다. 물론 그 밀가루는 미국과 UN의 원조품이었다. 군뿐만 아니라 교도소에도 수형당 빵이 들어갔다. 예식장 답례품용 찹쌀떡과 카스텔라까지 개발한다. 사탕보다 더 맛있는 카라멜(마산땅콩캐러멜도 대구 브랜드임)도 만들었고 70년대초엔 동아백화점 식품코너에도 진출한다. 수형당은 빵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건설·전자산업에도 진출한다. 육군본부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 육본을 따라서 상경, 서울 삼각지로터리에 서울공장을 짓는다. 68년 9월엔 국내 최고급 식빵 공급 업체로 발돋움한다. 대구시 서구 평리동에 2천여평 넓이의 수형당 제3공장도 설립한다. 수형당의 식구는 한창 때 300여명이 넘었다. 그럴듯한 직장이 별로 없던 시절, 수형당은 대구상고 졸업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형당은 80년대로 진입하면서 치명타를 맞고 침몰한다. 70년대 뉴욕, 런던, 뉴델 등 쟁쟁한 제과점들도 수형당의 아성을 마구 뒤흔든다. 세상이 변했고 사람들의 입맛도 변했지만 수형당은 그걸 재빨리 읽지 못한 것이다. '달구벌의 혀'를 즐겁게 해줬던 선장도 86년쯤 타계한다. 이 수형당을 새롭게 부활시킨 브랜드가 바로 근대골목단팥빵을 만든 '홍두병'이다. 수형당 동대구역점을 통해 '대구능금빵'을 론칭했다.

    2025-12-05 06:30:00

  • [사설] 환율 불안 가중시킬 일본 금리 인상, 정부 대책은 무엇인가

    1,470원대를 오가는 원·달러 환율이 경제를 전방위(全方位)에서 압박하고 있다. 고환율은 물가 불안을 야기하고, 수입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기업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2% 중반대 물가 상승세는 내년에 더 커질 전망이다. 환율 상승은 통상 3~6개월 간극을 두고 물가에 반영되는데, 최근 환율 변동으로 내년 상반기부터 물가가 들썩일 수 있다. 결국 가계 실질소득이 줄고 소비가 위축돼 내수가 주저앉을 수 있다. 수입 원자재·부품 가격이 오르면 기업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완제품 가격을 올려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의 충격은 훨씬 더 크다. 고환율과 고물가 악순환 우려에 고금리까지 가세할 수 있다. 국민연금과 650억달러 외환스와프 연장 추진 등 정부 대책에도 불구, 환율과 물가 불안이 계속되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 경제는 내수 폭락 시절로 회귀(回歸)한다. 가계의 금리 부담은 급격히 커지고, 코스피 5,000 달성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긴다면 사상 초유의 일이 된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 달러로 환산한 국내총생산(GDP)은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GDP 2조달러, 1인당 GDP 4만달러 달성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불안한 외환시장에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은 시한폭탄이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엔화를 빌려 고금리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노리는 전략인데, 금리차가 줄거나 엔화 강세, 시장 불안이 우려되면 막대한 자금이 회수돼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인다. 만약 미국의 금리 인하, 글로벌 위험회피 확대까지 가세하면 엔캐리 청산(淸算)이 본격화해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고환율 원인을 두고 입씨름을 할 때가 아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해외 투자가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가 불안해서다. 너무도 당연한 답이지만 우선 정책 신뢰도와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고환율에 맞춘 경제정책을 새로 수립해야 충격을 줄일 수 있다.

    2025-12-05 05:00:00

  • [사설] 가덕도신공항 국비 지원은 되고 TK신공항 융자는 안 되나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에 필요한 공공자금관리기금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돼 후폭풍이 거세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원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한 충격과 실망뿐 아니라 부산, 호남 등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은 원안대로 건설사업 예산 6천889억원 전액 가결됐고, 전남 SOC 사업비는 전년보다 29.2% 증가한 1조4천99억원이 반영됐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신공항 건설에 필요한 초기 사업비를 빌려주면 갚겠다'며 2천795억원 융자(融資)를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금융비용 87억원 지원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임차보증금 51억원과 한국노총 노후 시설 개선 사업비 등은 증액까지 해서 102억원이 반영된 것과도 대비된다. 이는 '민간 공항(가덕도신공항)은 국비로 지원하고 군 공항(대구경북신공항·민간 통합)은 알아서 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노총 챙기기, 특정 지역 편중이 극심한 전형적(典型的) 포퓰리즘 예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4일 "지역별 예산 배분의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 대구경북 지역은 철저히 외면한 불균형적 편성"이라며 "지역 균형발전 원칙 실종"이라고 비판했다. 관련 시민단체는 이와 관련해 이달 중 대통령실을 찾아 국비 지원을 공식 요청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민간 공항인 가덕도신공항 예산은 모두 살리고 호남 신규 사업은 무더기 신설하면서, '갚겠다'며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에게 '빌려달라' 간절히 호소(呼訴)한 대구경북신공항 융자 예산은 쏙 뺀 이유와 근거가 궁금하다. 만약 대구경북신공항 사업을 국비로 추진하기 위해 융자 지원을 예산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면 환영한다. 그러나 국가 사업으로 하려는 것도 아니면서 대구경북의 융자 요청을 거절한 것이라면 지역민을 납득시킬 설명이 필요하다. 국회·대통령·정부는 토지 보상비 증가, 배후 신도시·물류 인프라 조성 등 착공 지연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2025-12-05 05:00:00

  • [사설] '실세 김현지' 암시한 인사 청탁, 김남국 사퇴로 끝낼 일인가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민간 협회장 인사 청탁(請託)을 받고 답한 문자 대화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 비서관은 이틀 만에 사직했지만,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문 의원은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비서관에게 "남국아, 우리 중(앙)대 후배고 대통령 도지사 출마 때 대변인도 했고 자동차산업협회 본부장도 해서 회장 하는 데 자격은 되는 것 같은데 아우가 추천 좀 해줘"란 휴대전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또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 좀 해줘 봐"라고 했다. 김 비서관은 "넵 형님. 제가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부속실장)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장했다. '비선(秘線)·정실(情實) 인사' 의혹이 짙은 이 장면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대통령실은 관련 보도가 나간 뒤 김 비서관에 경고 조치했다. 김 비서관은 4일 사직서를 제출했고, 대통령실은 수리(受理)했다. 민주당은 문 의원에게 엄중 경고했다. 이번 사태는 '경고'나 '당사자 사직'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대통령실은 민간 협회 인사에 개입하면 안 된다. 게다가 인사 업무와 무관(無關)한 김현지 부속실장이 언급됐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문 의원과 김 전 비서관은 '만사현통'(인사는 김현지를 통해야만 풀린다)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알린 셈이다. 또 특정 대학 출신 인사들이 부적절한 경로를 통해 끌어 주고 밀어 주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 줬다. 대통령실은 실현되지 않은 청탁이란 이유로 '경고 조치'로 끝내려 했고, 민주당은 관련자들을 감쌌다. 전현희 의원은 두 사람의 문자 대화에 대해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 때 인사 청탁은 '국정 농단'이고, 현 정권의 인사 청탁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인가. 대통령실은 김 비서관의 사퇴로 이번 일을 덮으면 안 된다. 이 사안의 본질은 비선·정실 인사와 민간 협회에 대한 부당한 인사 개입이다. 대통령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 인사 시스템을 특별 점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25-12-05 05:00:00

  • [관풍루] 이재명 대통령, "(산재 사망 사고가)취임 이후에 전체적으로 오히려 조금 더 늘었다"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해.

    ○…이재명 대통령, "(산재 사망 사고가) 취임 이후에 전체적으로 오히려 조금 더 늘었다"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해. 북한에 우리 국민 최소 6명이 억류돼 있는 것도 모르던데 도대체 아는 게 무엇인지….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 사직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의 인사 청탁 사실에 대해 "범죄 행위와 연관된 성격의 것은 아니다"라고 해설. 두꺼운 얼굴 가죽이 이 집단의 공통 형질이라고 해야겠지. ○…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준강제추행 혐의로 피소된 사실이 보도된 이후 지금까지 국내 주요 여성 단체 7곳 중 5곳이 침묵하고 있다고 매일신문이 보도. 국민의힘 의원이 그랬다면 벌써 난리가 났겠지.

    2025-12-05 05:00:00

  • [날씨] 12월 5일(금)

    [날씨] 12월 5일(금) "대체로 맑겠음"

    2025-12-04 18:55:12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통일교가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윤영호 통일교 전 본부장은 민주당 의원에게 수천만 원...
CJ ENM이 배우 조진웅의 은퇴 선언으로 주가가 하락하며 개미 투자자들의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경북 지역의 체류인구 유입이 전국에...
방송인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로 인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KBS 2TV '1박2일 시즌4'에서 자진 하차한다고 밝혔다. 소속사 A2...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