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헌법 개정이 야당 의원 몇 명 포섭하는 꼼수로 될 일인가
이재명 대통령과 골프 회동에서 '개헌'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당내는 물론 지지층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자 일제히 "여야 합의 없는 개헌 추진(推進)에 단호히 반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임하지 않겠다고 먼저 선언해야 개헌 논의를 할 수 있다"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單任)제' 도입으로 우리는 군사독재와 특정 정치권력의 장기 집권을 막고, 민주화를 크게 진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 독점·승자 독식의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이제 '87체제'를 넘어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논의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 전제(前提)가 있다. 첫째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는 헌법 제128조 제2항 준수, 둘째 제왕적 대통령 권력 폐해를 막기 위한 분권형 권력제, 셋째 국민 기본권 확대, 넷째 지방분권 및 균형발전을 위한 강력한 자치권 등이다. 대통령 연임과 중임에 대한 논의는 물론이고 대통령제 폐지와 내각제로 전환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과 국회의장, 법제처장 등은 대통령제 존폐(存廢)에 대한 언급은 없이 '대통령 연임·중임'만 언급했다. 거기에 '골프 회동'까지 나오니 '이재명 대통령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에 동조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개헌 문제가 마치 대통령 연임안 통과 정족수(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만 확보하면 되는 '절차상 과제'처럼 비치는 것이다. 개헌과 권력구조 개편은 대통령 연임·중임 문제만이 아니다. 몇몇 야당 의원을 설득해 국회 통과에 필요한 정족 숫자를 채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여야 합의는 물론이고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야당 일부 의원들이 '야합(野合)'으로 개헌을 논의한다면 그들 모두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2026-08-18 05:00:00
[사설] 트럼프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지시, 한미동맹 이상 없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북한의 김정은과 내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미국이 오래전에 한국과의 연합군사훈련에 참가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縮小)하라고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늘 그렇듯 미국이 부담한다"고 했다.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순진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 주 시작된 '2026 을지 자유의 방패' 한미연합훈련에서 야외기동훈련(FTX)이 14건으로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측의 요구에 의해 한미연합훈련 FTX가 축소되었던 것과 뚜렷이 대비(對比)된다. 이재명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과 자주국방(自主國防)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동부전선에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침범해 우리 군이 경고 사격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엄중한 대치 상황에서 서부전선을 지키는 국군 1군단은 '빈 총 경계'를 서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삼단봉 위병소' '사관학교 통폐합' '군사 시설 경계 민간 위탁' 등 이재명 정부의 정책들은 국방력을 약화시켜 안보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호남 반도체 조기 착공을 강조한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직접 '주한미군기지 공여지 반환 지연' 문제를 강력 비판하기도 했다. 친중(親中)·친북(親北) 행보를 보이는 이(李) 정부가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 대통령에게 이란 비핵화에 우리와 함께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No thanks(괜찮다)'라고 했다"고 SNS에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축소가 반미(反美)로 가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일종의 경고(警告)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한미동맹은 부수고 약화시키면서, 말뿐인 자주국방으로 국가 안보를 무너뜨리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26-08-18 05:00:00
[사설] 연료 없는 '원전 르네상스'는 환상, 발등의 불이 된 핵연료 확보
글로벌 원전 증설 경쟁과 대(對)러시아 제재가 맞물려 원전 연료 수급에 비상(非常)이 걸렸지만, 한국만 중장기 원전 연료 확보전에서 무방비로 뒤처지고 있다.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원자력 발전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원전 연료인 농축우라늄을 구하지 못해 지어 놓은 원전마저 멈춰 설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우라늄 농축 시장은 영국·독일·네덜란드 합작사인 유렌코(Urenco), 프랑스 오라노(Orano), 러시아 로사톰(Rosatom), 중국 CNNC 등 4개 기업이 99%를 점유하는 극단적 과점 구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국가들이 세계 40%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산 수입을 막아서자, 우라늄 농축 가격이 6배가량 치솟았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가 연료를 구하지 못해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업 가동을 2년 연기한 것은 원전 연료 쇼크가 이미 현실화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서방 원전국들은 2040년대 물량까지 입도선매(立稻先賣)하며 총력전에 나섰다. 미국은 27억달러를 투입해 자국 내 공급망 확충에 나섰고, 일본은 정부 차원의 농축 능력 확대 계획을 승인했으며, 체코는 3년치 연료 비축(備蓄)을 법제화했다. 유럽연합(EU) 역시 2032년 소요량의 100%를 선점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응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안이하다. 우리의 농축우라늄 확보율은 2030년 후반 20~40% 수준으로 급락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범정부 컨트롤타워조차 없다. 더구나 우리는 1974년 미국과 우라늄 농축 금지 협정을 맺은 뒤 52년 동안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최근 미국이 원전조차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저농축 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것과 대조적이다. 연료 공급망이 담보되지 않은 원전 르네상스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정부는 원전 건설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핵연료 확보를 국가 외교·안보 전략 차원으로 격상하고 선제적 비축 제도화 등 중장기 조달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
2026-08-18 05:00:00
[관풍루] 박용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이재명 대통령 연임 가능성에 대해 "그건 진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
○…리얼미터의 10~14일 실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평가 5주 연속 하락해 43.0%로 취임 이후 최저, 부정평가도 3주 연속 오차범위 밖에서 긍정평가보다 높아. 자작지얼(自作之孼), 자업자득(自業自得). ○…광복절 경축식에서 김구·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6명이 영상에 등장했으나,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모습은 없어. 좌파들의 애처로운 '이승만 지우기' 몸부림. ○…박용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이재명 대통령 연임 가능성에 대해 "그건 진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 '연임 않겠다' 선언 않는 이재명 생각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2026-08-18 05:00:00
2026-08-17 18:57:43
[윤명철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와 문화] 고구려의 붕괴와 동부 유라시아 질서의 변동
왜 고구려는 668년에 무너졌을까? 고구려는 수나라와 여러 차례 대전쟁을 벌여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이어 645년에는 당 태종이 직접 이끈 10만 대군의 수륙양면 공격도 막아냈다. 그런데 불과 23년 뒤에는 수도 평양성이 함락되고 700년 이상 존속한 국가가 붕괴했다. 그 원인을 찾는 일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흔히 연개소문 사후의 내분이나 나당연합군의 군사적 승리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왜 고구려가 이 시기에 무너졌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전쟁의 기본 성격이 국제대전이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고구려 해양사연구〉) 이 전쟁은 약 400년 만에 중국대륙을 통일한 세력이 동아시아의 종주권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벌인 국제대전이었다. 제1단계인 고수전쟁, 제2단계인 고당전쟁에 이어 백제·신라·왜까지 직접 개입한 제3단계가 소위 '삼국통일전쟁'이었다. 전장 역시 육지만이 아니라 황해와 강, 해안과 섬에서 동시에 펼쳐진 해륙양면전이었다. 따라서 660년 백제 멸망에서 668년 고구려 멸망까지의 전쟁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린 '삼국통일전쟁'으로만 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당에는 제국질서를 동방으로 확대하는 전쟁이었고, 신라에는 생존전쟁이었으며, 고구려와 백제에는 국가의 존망을 건 전쟁이었다. 여기에 왜까지 참전했다. 7세기 초만 해도 신흥국가인 당나라가 대 고구려 전에 모든 군사력을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북쪽에는 강력한 돌궐이 있었고 중앙아시아에도 여러 세력이 존재했다. 그러나 630년에 당나라는 동돌궐을 무너뜨렸고, 657년에는 서돌궐을 격파해 중앙아시아 동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또한 고구려 서북방에서 '피봇' 역할을 하던 '거란'과 '해(奚)' 등도 점차 당의 변경 질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당에게 유리해지는 상황 속에서 신라와 백제의 충돌이라는 변수가 개입을 시작했다. ◆백제의 공격이 신라를 당으로 밀어내다642년 백제 의자왕은 김춘추의 사위가 성주인 대야성을 비롯한 신라의 여러 성을 공격해 빼앗았다. 이렇게 신라는 서쪽에서는 백제, 북쪽에서는 고구려의 압박을 받으며 국가적인 위기에 빠졌다. 김춘추는 먼저 고구려로 가서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한강유역의 옛 고구려 영토 반환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일설에는 이때 김춘추가 왜국으로 건너가 외교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고립무원에 처한 신라는 결국 서해 너머의 당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신라는 진흥왕 때 한강유역과 경기만 일대를 확보했는데, 이 공간은 수군을 양성할수 있었고, 특히 남양반도의 당항성은 서해를 건너 중국 지역과 연결되는 국제교통의 문이었다. 신라는 비로소 고구려나 백제의 영역을 거치지 않고 중국지역과 직접 교섭할 수 있었다. 자장, 원광, 의상같은 승려들과 사신단, 그리고 김춘추와 김인문 같은 왕실의 핵심 인물들도 이 길을 이용했다. 그리고 660년 여름에는 이 항로를 이용해 당의 13만 수륙군이 건너왔다. 따라서 고구려가 한강유역과 경기만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것은 단순한 영토 상실이 아니라, 신라와 당이 직접 연결되면서 남쪽에 적대적인 국제전선이 형성될 조건을 허용한 것이었다. ◆나당동맹과 고구려의 방어체제당나라에게 신라는 지정학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645년에 태종의 친정을 비롯해 647년과 648년에도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장거리 이동과 병참선의 안정이었다. 당군은 중국 본토에서 요서를 지나 요동의 제1차 방어선을 설사 돌파했다고 해도 다시 압록강 방어체제를 넘어 평양지역까지 진격해야만 했다. 고구려는 산성과 험준한 지형, 광대한 공간을 이용해 당군을 소모시켰다. 바다에서도 요동반도 남부와 장산군도·석성열도 등의 해안·도서 방어체제와 고구려 수군 때문에 압록강이나 대동강 방면으로 직접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와 군사적으로 결합하면 사정이 달라졌다. 신라는 남쪽에서 백제와 고구려를 압박하고, 고구려군의 병력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결국 나당동맹은 서로 다른 목적의 전략적 결합이었다. 신라는 생존을 위해 당이 필요했고, 당은 고구려전쟁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라가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동서 동맹과 남북 연결이라는 해륙 십자형 국제질서가 만들어졌다. ◆660년 백제전쟁―황해가 전쟁의 바다가 되다650년대 후반 당과 신라는 고구려를 계속 정면공격하기보다 먼저 백제를 제거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660년 음력 7월 소정방은 13만의 수륙군을 이끌고 산동반도를 출항해 황해를 건넜다. 덕물도(덕적도)에서 태자 김법민이 이끄는 신라 서해함대 100척과 합류한 뒤 금강 하구로 진입해 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백제군은 금강 방어체제를 이용해 강가 강언덕에서 저항했지만 당군은 이를 돌파하고 사비성을 공격했다. 김유신이 이끄는 5만 신라군도 육로로 진격했고, 계백의 결사대는 황산벌에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돌파당했다. 백제는 해상에서 들어온 당군과 육상에서 진격한 신라군의 협공 속에 급격히 무너졌다.(〈한국해양사연구〉) 백제의 멸망은 고구려에도 치명적이었다. 남쪽의 중요한 협력세력을 잃은 반면 당은 황해를 이용한 대규모 병력수송과 상륙작전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660년의 백제전쟁은 황해가 외교와 교역의 바다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의 공간으로 전환되고, 육군과 수군이 결합하는 새로운 전쟁방식이 성공한 사건이었다. ◆황해에서 평양으로―고구려전쟁의 해륙화백제를 무너뜨린 당은 곧 고구려를 다시 공격했다. 이제 전통적인 요서―요동―압록강의 육상축과 함께 산동―황해―대동강―평양의 해상축이 본격적으로 활용됐고, 신라가 남쪽에서 압박하는 제3의 축까지 결합했다. 660년 말부터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고구려는 임진강 방면 신라의 전방거점인 칠중성(적성면)을 공격하고, 왜국에도 사신을 보내 공동대응을 모색했다. 661년 4월에 소정방은 수군을 이끌고 황해를 건넜다. 8월에는 대동강인 패강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하고 마읍산을 점령한 뒤 평양성을 포위했다. 당 수군은 앞바다의 섬을 교두보로 이용해 수도로 접근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이 정병 수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방어했고, 설필하력이 지휘한 당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전쟁의 구조가 달라진 것이다. 요동으로 들어오는 육상군, 황해와 대동강으로 진입하는 수군, 남쪽에서 압박하는 신라군이 고구려를 향해 수렴했다. 고구려가 과거 수와 당의 침공을 막을 때 활용했던 광대한 전략적 종심과 적의 긴 병참선이라는 이점도 약화됐다. 전쟁은 육상 중심의 정면전에서 해상수송과 상륙작전, 남북협공이 결합한 해륙복합·다면전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고구려가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아니었다. 662년 정월 방효태의 군대는 평양 일대에서 작전을 벌이다 사수전투에서 연개소문의 고구려군에게 괴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방효태도 아들 13명과 함께 전사했다. 당은 다시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전쟁은 한동안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남쪽에서 백제부흥군과 왜가 당과 신라의 군사력을 붙잡아두고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백제복국전쟁과 663년 백강의 국제해전백제의 왕성이 함락됐지만 지방의 성과 군사집단까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복신·도침·흑치상지 등을 중심으로 복국군이 조직되어 순식간에 200여성을 탈환했고, 이어 여러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왜국도 백제복국세력을 지원했다. 661년 8월에 군사와 무기, 식량 등을 보냈고, 9월에는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풍이 5천명의 군사와 함께 귀국해 백제복국전쟁을 이끈다. 백제가 완전히 사라지면 당과 신라의 세력이 일본열도 가까이 진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남쪽에서는 나당 연합군과 백제·왜 동맹국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북부와 만주에서는 당군이 거느린 다국적군과 말갈을 동원한 고구려군 간 공방전이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계속됐다. 이 단계에서 소위 '삼국통일전쟁'은 이미 한반도 내부의 전쟁을 넘어선 국제전쟁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663년 8월 백강구, 즉 백촌강전투였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해역에서 당나라는 170척으로, 왜군은 1000척이 참여했고, 백제군은 언덕에서 배를 지켰고, 탐라의 수군도 참전한 동아시아 국제해전이었다. 결국 백왜군은 400여 척의 왜선이 불타고, 2만7천여 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했다. 부여풍은 고구려로 도주했고, 백제 유민과 왜군은 일본열도로 탈출했다. 고구려는 나당세력을 견제할 가능성을 잃었고, 왜도 적극적인 대륙 개입에서 물러났다. 왜국은 나당 수군의 본토 상륙을 막기 위해 664년에 다자이후(太宰府)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이어 대마도, 규슈, 세토 내해를 거쳐 나라 지역까지 백제식 산성을 구축했고, 당과 화친 교섭을 시도했다.(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밖에서는 고립되고 안에서는 분열되다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고구려 내부에 치명적인 분열이 일어났다. 665년에 연개소문이 죽은 뒤 아들들 사이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대막리지였던 큰 아들 연남생은 당으로 넘어가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왔고, 남쪽에서는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신라로 투항했다. 밖에서는 백제와 왜라는 견제축이 무너지고 당과 신라의 포위망이 좁아지는 위기 상황속에서 안에서는 최고 지배층이 갈라진 것이다. 여기에 고수전쟁 이후 약 70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소모도 누적됐다. 군사를 동원하고 성을 건설·보수하며 군량과 물자를 공급하는 부담은 국력과 백성의 삶을 소진시켰다. 667년 9월 당은 다시 총공격을 시작했다. 이세적이 지휘하는 당군은 요동에서 진격했고 압록강 방어선도 공격받았다. 고구려는 여러 성을 중심으로 저항했지만 내부세력의 이탈까지 겹치면서 방어망이 흔들렸다. 668년 당군은 압록강을 넘어 평양 방면으로 진격했고, 신라군도 남쪽에서 북상했다. 결국 음력 9월. 평양성은 당군의 육상·해상 공격과 신라군의 남방 압박을 동시에 받았고, 성 안의 분열과 이탈까지 겹치면서 결국은 함락됐다. ◆668년―동아시아 국제대전의 한 단계가 끝나다.고구려의 멸망은 단순한 내분이나 나당연합군의 승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중국대륙과 한반도, 몽골초원과 중앙아시아, 황해와 일본열도의 국제관계가 서로 움직인 동부 유라시아 국제질서 변동의 결과였다. 소위 '삼국통일전쟁'은 실제로 여러 국가와 종족, 육지와 바다가 함께 얽혀 벌어진 동아시아 국제대전의 제3단계였던 것이다. 특히 660년부터 668년까지는 당에 유리한 조건들이 한꺼번에 겹친 짧고 특별한 시기였다. 그러나 백제와 고구려라는 두 나라가 사라진 순간, 그들을 공동의 적으로 삼았던 신라와 당의 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멸망은 동아시아 국제대전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질서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대 교수
2026-08-17 14:21:23
[사설] 통상본부장 전격 '깜깜이' 경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주말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직권면직됐다"며 "인사권자의 결정이라 구체적인 배경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여 본부장을 경질(更迭)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나라의 운명이 달린 이재명 정부의 대미 관세(關稅) 및 투자 협상이 난항(難航)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미국은 '강제 노동'을 빌미로, 지난달 무역법 301조(슈퍼 301조)에 따라 12.5% 관세를 한국에 부과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추가적인 관세가 붙을 수 있다"고 했다. 합의한 '관세 15% 상한선'이 깨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대미 투자를 서두르지 않으면 관세를 올리겠다"고 한국을 압박(壓迫)한 것으로 알려졌고, 청와대는 지난 13일 관계 부처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바로 다음 날 대미 관세 협상의 실무 핵심 총책이라고 할 수 있는 여 본부장을 전격 경질한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선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7월 31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대대적으로 선전(宣傳)했고, 그해 8월 25일 워싱턴 제1차 한미 정상회담 때 양국 간 합의를 재확인했으며, 또 10월 29일 경주 APEC 때 열린 제2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미 3천500억달러(현금 2천억달러) 투자'에 대한 세부 조항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11월 14일에는 '관세·안보 패키지 최종 타결 및 팩트시트 발표'가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은 10개월째 대미 투자와 관련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본이 텍사스 에너지 시설, 오하이오 가스 발전소, 조지아 핵심 광물 개발 등 투자 1차 패키지를 확정(確定), 이행(履行)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애당초 이(李) 정부가 '한미 관세협상 타결, 대성공'을 선전할 때마다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체 이 정부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국민은 불안(不安)하다. 밝힐 것은 밝히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당당히 책임지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2026-08-17 05:00:00
[사설] 가계신용 2천조 시대에 금융당국은 대출 관리 완화 역주행
우리나라 가계신용이 사상 처음 2천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1분기 말 1천993조1천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는데, 2분기 증가 속도는 더 빨라졌다. 금융위원회 집계로만 4~6월 가계대출이 21조1천억원 늘었다.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도 증가했다. 특히 2분기 주가 상승세 속에 '빚투'가 확산하면서 일반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잔액(殘額)이 급증했다. 5대 시중은행의 6월 말 개인 마이너스통장 연체율은 0.22%로 높아졌고, 잔액이 8%대 증가하는 동안 연체액은 33% 이상 늘었다. 20대 이하와 60대 이상의 연체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취약 차주(借主)부터 충격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번 통계는 7월 증시 급락(急落)의 충격을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증권담보대출의 담보가치가 낮아지고, 추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반대매매로 이어진다. 투자 손실이 대출 부실로 번지는 통로가 열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지난 13일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관리 목표를 불과 넉 달 만에 1.5%에서 3%로 두 배 높였다. 가계신용이 2천조원에 육박하고 빚투 부실 조짐까지 나타난 시점에 전체 대출 관리 목표를 완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의심하게 한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설명 역시 무책임하다. 지난해 말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88.6%로 미국 68.1%, 일본 61.1%보다 훨씬 높았다. 명목 GDP가 커져 비율이 낮아지는 것과 가계빚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부동산 대신 주식에 투자하라며 국민을 부추기고, 급기야 세계에서 유래(由來)를 찾기 힘든 단일종목 ETF까지 만들어 주식시장을 도박판처럼 만든 정부가 가계부채마저 위태롭게 만든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인상한 데다 이르면 이달 추가 인상 전망까지 나온다. 자칫 부실 확대가 경제 전반을 뒤흔들 판이다. 생산적 금융 운운하기 전에 근본 대책부터 신속히 내놔야 할 때다.
2026-08-17 05:00:00
[사설] '李 연임 없다' 약속 없이 개헌 추진은 '임기 연장' 시도일 뿐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 4년 중임(重任) 또는 4년 연임(連任)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 단축이 필요하다면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조원철 법제처장과 대표적 '친명계'로 알려진 조정식 국회의장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이 이뤄질 경우 이 대통령부터 적용될지에 대해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고 한 발언이 국민과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민주당과 청와대가 선을 그었지만, 정작 이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라고 할 뿐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의힘 몇몇 의원들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 개헌안 통과 정족수(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확보를 위한 행보로 보일 수밖에 없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28조가 헌법개정 당시 대통령의 연임 또는 임기 연장을 금지하는 것은 장기 집권 시도(試圖)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시대 변화에 맞게 헌법을 고치더라도 특정 권력자나 특정 정당의 장기 독재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연임 않겠다"는 말이 없다. 1987년 도입한 '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單任) 제도'는 독재를 막고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도드라졌다. 선거에서 승리한 쪽은 권력을 독차지해 전횡(專橫)을 일삼고, 패한 쪽은 권력을 잡기 위해 집권 세력이 실패하도록 국정 발목을 잡고, 국민 분노와 갈등을 키우는 데 혈안이었다. '1987헌법' 개정은 꼭 필요하다. 그러자면 현재 권력이 헌법 제128조를 분명히 지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개헌 논의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이 대통령이 개헌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도 '연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않는다면 자신의 재판을 없애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재명 연임'을 위해 '87체제'를 허문다면 누가 동의하겠나.
2026-08-17 05:00:00
[관풍루] 국가교육위원회, 수능에 서술·논술형 평가 도입 방안을 놓고 공론화에 속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르면 이달 새로운 주주환원 방침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그 규모가 양사 합산 연간 3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끝없이 추락하던 한국 증시에 다시 날개가 달릴 수 있으려나. ○…국가교육위원회, 수능에 서술·논술형 평가 도입 방안을 놓고 공론화에 속도. 그러나 AI 채점은 채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대안이 불투명하다는 논란은 어떻게 해결하려나.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재명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44%로 취임 이후 가장 낮은 데 비해 부정 평가 46%로 처음으로 부정이 긍정을 넘어서. 6·3 지방선거의 경고는 벌써 잊었나?
2026-08-17 05:00:00
2026-08-16 18:46:33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백운암이 빚어낸 거대한 자연, 돌로미티 트레킹
나는 왜 돌로미티(Dolomiti)에 가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돌로미티를 처음 만난 곳은 이탈리아(Italia)가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이었다. 요즘 트렌드가 그렇듯 나 역시 여행지를 고를 때 먼저 다녀온 여행자의 사진과 영상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많다. 어느 날부터인가 유튜브(YouTube)와 인스타그램(Instagram)을 넘길 때마다 낯선 풍경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초록빛 초원 뒤로 칼날처럼 솟아오른 회백색 봉우리, 에메랄드빛 호수, 그리고 거대한 암봉(岩峰) 사이를 걷는 트레커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세체다(Seceda)를 찾다 보면 트레치메(Tre Cime)가 나타났고, 브라이에스 호수(Lago di Braies)를 검색하면 코르티나담페초(Cortina d'Ampezzo)가 따라왔다. 한 장의 사진과 15초짜리 영상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여행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영상 대부분이 이탈리아 관광청이나 여행사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여행자들이 여행 중 직접 찍어 올린 것이었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UGC(User Generated Content), 즉 '사용자가 만들어낸 콘텐츠'라고 부른다. 소비자가 다른 소비자의 경험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다. 누군가의 여행 기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가장 설득력 있는 광고가 된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몇 번이고 바라보았던 돌로미티를 실제로 마주한 순간,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더 이상 멋진 여행 콘텐츠만이 아니었다.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북동부와 오스트리아(Austria) 국경을 따라 펼쳐진 알프스 동부의 거대한 산악지대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기암괴석과 거대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돌로미티(Dolomiti)'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주요 암석인 백운암(白雲岩), 돌로마이트(Dolomite)에서 비롯됐다. 이 암석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아침에는 분홍빛, 한낮에는 은백색으로 빛나며, 해 질 무렵에는 붉은빛으로 노을 진다. 산이 스스로 색을 바꾸는 듯한 이 현상은 돌로미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Austro-Hungarian Empire)과 이탈리아 왕국(Kingdom of Italy)이 맞붙었던 전장이었다. 지금도 산 곳곳에는 참호와 포대, 터널과 진지가 남아 있다. 돌로미티를 걷는다는 것은 때때로 바위 틈에서 전쟁의 흔적을 마주하며 그곳에서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걷는 일이기도 하다. ◆트레치메 트레킹 돌로미티를 대표하는 풍경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다. '트레 치메'는 '세 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치마 피콜라(Cima Piccola), 치마 그란데(Cima Grande),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가 거대한 성벽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돌로미티를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풍경이면서 수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레킹은 아우론조(Auronzo) 산장에서 시작한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트레치메를 바라보고, 로카텔리(Locatelli) 산장 뒤편의 동굴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왕복 약 3시간의 코스다. 출발할 때만 해도 하늘은 맑았다. 완만한 길을 따라 보랏빛 야생화가 초원을 수놓고 있었다. 왼편 사면에서는 하얀 자갈이 햇빛을 받아 눈처럼 반짝였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세 개의 봉우리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는 이제 진짜 돌로미티 속으로 들어선다는 설렘이 일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자 트레치메의 뒷모습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직으로 솟은 절벽은 점점 더 거대해졌다. 언제나 그렇듯 사진으로 보았던 산과 눈앞의 산은 전혀 달랐다. 그 규모 앞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꺼냈다. 그런데 트레치메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하늘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검은 구름 하나가 봉우리 위에 걸리더니 이내 다른 봉우리까지 삼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암벽은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작은 바위 위에 올라 셀카(selfie)를 찍고 있던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두 사람은 무척 반가워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사진도 찍었다. 폴란드에서 온 부녀였다. 흐려지는 트레치메 앞에서 두 사람은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로카텔리 산장에 도착할 무렵 첫 빗방울이 떨어졌다. 산장 뒤편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동굴과 참호가 남아 있다. 특히 동굴 입구 너머로 보이는 트레치메를 액자처럼 담을 수 있는 포토 스팟(Photo Spot)이 유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날의 트레치메는 끝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먹구름은 산 전체를 집어삼켰고, 조금 전까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던 트레치메는 구름에 잠겼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서둘러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천둥이 산을 여러 번 뒤흔들었다. 번개가 능선을 가르고 굵은 빗줄기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박까지 퍼붓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야생화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길이었다. 비바람과 추위에 떨며 돌아가던 길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계절처럼 느껴졌다. 돌로미티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온몸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친퀘 토리 트레킹 친퀘 토리(Cinque Torri)는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탑'이라는 뜻이다. 다섯 개의 거대한 백운암 바위기둥과 주변의 암석이 어우러져 돌로미티에서도 특히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코이아톨리(Scoiattoli) 산장에 오르자 친퀘 토리를 한 바퀴 도는 짧고 편안한 트레킹 코스가 한 눈에 잡혔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산바람은 차가웠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아기자기한 바위섬처럼 보였던 친퀘 토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바위기둥이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 있었다. 급경사의 바위 계단을 내려서고 완만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암석 바로 아래까지 다가간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끝이 보이는 바위기둥 위에는 소나무가 뜬금없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트레일 옆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참호와 진지가 남아 있었다. 한 세기 전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걸었던 길을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걷고 있었다. 암벽 곳곳에 암벽등반가들이 매달려 있었다. 손끝으로 작은 돌출부를 더듬고 발끝을 간신히 디디며 수직 암벽을 오르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멀리 이탈리아 국기가 펄럭이는 스코이아톨리 산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는 몬테 아베라우(Monte Averau)가 거대한 병풍처럼 든든하게 둘러서 있었다. ◆라가주오이 산장 전망대 트레킹 파소 팔자레고(Passo di Falzarego)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가파른 암벽을 따라 케이블카가 빠르게 올라갔다.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해발 2,700m가 넘는 라가주오이(Lagazuoi)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과 끝없이 펼쳐진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라가주오이는 그야말로 돌로미티의 거대한 전망대였다. 라가주오이 산장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음식과 카푸치노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높은 산 위에서 마시는 따뜻한 음료는 낯선 풍경이라는 특별한 디저트와 함께하니, 그 맛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전쟁은 라가주오이도 피해가지 못했다. 곳곳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참호와 터널, 진지가 남아 있었다. 해발 2,700m가 넘는 험준한 산 위에서 병사들은 바위 속을 파고 들어가 터널을 만들고 진지를 구축했다. 특히 벼랑 끝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편안하게 조성되어 있어 휠체어도 이동할 수 있는 구간이었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몰자를 추모하는 예수상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도 그 줄에 섰다. 바로 앞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가족 트레커들이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어느새 함께 모여 기념사진까지 찍게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사진 한 장으로 삶의 풍경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예수상 아래에는 전쟁 당시 사용했던 포탄과 금속을 모아 만든 조형물과 방문객들이 글을 남길 수 있는 노트도 놓여 있었다. ◆사쓰 포르도이 트레킹 파소 포르도이(Passo Pordoi)로 오르는 길은 좀처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180도에 가까운 회전과 연이어 나타나는 헤어핀 커브(Hairpin curve)가 산허리를 감아 돌며 이어졌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까마득한 풍경에 눈을 빼앗기면서도 굽이굽이 이어지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파소 포르도이에서 케이블카에 올랐다. 단 4분 만에 약 700m를 올라 돌로미티의 테라스에 닿았다. 그리고 해발 2,950m의 사쓰 포르도이(Sass Pordoi)에 나를 내려놓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돌로미티 특유의 밝은 암벽이었다. 햇빛을 받은 바위는 하얀 눈이 내려앉은 듯 눈부시게 빛났다. 이 높은 곳에는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조차 희미했다. 거대한 암벽과 황량한 땅 사이를 걸으며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내려 탐사를 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철골로 세워진 십자가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더 오래 붙잡은 것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바위 다리였다. 다리 아래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그 구멍 아래로 조금 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던 포르도이 고개가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바위 다리 위에 올라섰다. 단단하고 웅장해서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암교(岩橋) 역시 언젠가는 바람과 비에 깎여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험준한 사쓰 포르도이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와 사진을 찍고 풍경을 바라보지만, 한때는 이 높은 산과 절벽 사이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나는 절벽 끝의 바위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까마득한 아래로 짙은 청록색 호수가 작게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암벽과 푸른 하늘, 짙은 초록빛 산과 호수가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오래 바라보아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정면으로는 사쓰롱고(Sassolung) 산군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 너머로 돌로미티의 최고봉 마르몰라다산(Marmolada)과 빙하가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셀라 산군(Sella group)의 최고봉 피즈 보에(Piz Boè)가 우뚝 솟아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암벽의 줄무늬였다. 살구빛과 회백색, 진회색과 갈색이 겹겹이 섞인 암벽에는 선명한 가로줄이 새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퇴적과 침식이 반복되며 만들어진 지층이었다. 층층이 쌓인 암석의 단면은 마치 거대한 책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켜켜이 포개진 한 겹 한 겹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긴 시간이 새겨져 있다. 한 겹이 쌓이고 또 한 겹이 쌓이는 동안 바다는 사라지고 산이 솟아났으리라. 그 순간 문득 내 삶도 이 암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의 내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과 잊고 싶은 순간,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이 한 겹 한 겹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산의 지층이 오랜 시간의 기록이라면 사람의 삶에도 보이지 않는 지층이 있는 것이 아닐까? 돌로미티에서는 가는 곳마다 1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수억 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산 앞에서, 불과 100여 년 전 이곳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산 아래로 내려가기 전, 나는 발밑의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의 돌은 작고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들어 있었다. 수억 년의 시간을 품은 산 앞에서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짧았다. 그런데도 뉴스 화면 속에서는 여전히 포성이 울리고 있다. 나는 돌로미티의 산을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 말이 없는 돌로미티. 어쩌면 그 침묵 속에 우리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2026-08-16 15:40:21
[사설] 외국 세력의 온라인 여론 조작,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선거철에는 악성 댓글 활동이 51% 증가했다. 저는 이미 온라인 댓글 국적 표시제 도입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나라를 특정한 것도 없는데 혐중(嫌中)이라고 펄펄 뛴다. 댓글 부대가 중국이라고 아예 공인하는 것이냐. 여론 조작(輿論造作) 외국 세력의 공범(共犯)임을 자백하는 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이든 어디든 그게 어떤 나라든 여론 조작을 통해서 선거 개입을 시도한다면 반드시 막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댓글 논란은, 전날 KAIST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국제 공동연구 팀이 10년치 네이버 댓글 1억1천200만여 건을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전수 분석(分析)한 결과 외국 세력과 연계된 악성 계정 2만4천여 개가 확인됐다는 보도로 촉발됐다.이번 연구는 댓글에 외국 개입을 의심할 만한 표현과 맥락이 있는지, 도덕적 비난이나 갈등을 키울 수 있는 감정이 누구를 향하는지를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계정의 활동 기간, 빈도, 다른 의심 계정과의 연관성(聯關性)을 따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의심 계정 판정 결과와 함께 판단 근거가 된 댓글 표현까지 제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만큼 연구의 신뢰성과 타당성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중국의 댓글 부대 운영 등 정치 공작형 여론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드루킹 사건으로 대선 여론 조작의 실체 일부가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 세력 개입설은 실체적으로 규명되지 못한 채 음모론(陰謀論)으로만 남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 공동연구 팀의 과학적 방법을 통해 외국 세력의 여론 조작 실체가 일부나마 드러난 만큼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민주당은 실효성 부족, 과도한 규제, 혐오 정서 자극 등 기존의 반대 논리에서 벗어나 '댓글 국적 표시제' 입법(立法)에 동참하길 바란다.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네티즌의 지역별 IP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적 마찰 우려와 '혐중' 주장은 터무니없다.
2026-08-14 05:00:00
[사설] 서울 공급 불안도, 비수도권 침체도 해답 못 낸 부동산 대책
정부가 수도권에 신규 택지 10만 가구를 포함해 23만 가구 이상을 추가 공급하고, 공공택지 착공 기간을 68개월에서 37개월로 단축하는 등의 '8·13 부동산·금융 종합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23만 가구 중 상당수는 인허가와 지역 반발 등으로 지연(遲延)된 기존 사업의 일정을 앞당기는 물량이다. 신규 택지도 실입주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전월세난과 매매가격 불안을 잠재울 즉효 약이라기보다 중장기 공급 계획에 가깝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관리 목표를 기존 1.5%에서 3.0% 수준으로 두 배 높였다. 불과 넉 달 전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를 강조했던 금융당국이 시장 상황과 실수요자 불편을 이유로 말 바꾸기를 한 셈이다. 집값을 억제하겠다면서 빚을 내 집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모순이다. 대구경북 등 비수도권은 시장 침체와 준공 후 미분양이 여전히 문제다. 장기 공급 중단에 따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듯 보이지만 인구 유출과 일자리 부족 등 구조적 수요 부진(不振)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서 비수도권 대책은 사실상 거의 없다.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개발부담금 완화나 비아파트 공급 지원 등이 제시됐을 뿐이다. 지방에 이미 쌓여 있는 미분양 물량을 어떻게 소화하고, 지역 인구와 일자리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요 대책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모순투성이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 집값 불안을 잡겠다는 공급 물량은 상당 시간이 필요하고, 가계부채를 강하게 관리하겠다던 금융당국은 넉 달 만에 총량 증가율 목표를 두 배로 높였다. 수도권에는 공급 부족을 이유로 택지를 푸는데, 지방에는 이미 지어진 집이 팔리지 않는 해묵은 문제가 남아 있다. 8·13 대책이 보여주는 것은 공급 숫자의 해결이라기보다 주택시장을 바라보는 정책의 흔들리는 좌표(座標)다. 집값 안정, 실수요자 지원, 가계부채 관리, 지방 주택시장 회복이라는 복합적 과제가 한꺼번에 얽혀 있는데 정부 해법은 헛다리만 짚고 있다.
2026-08-14 05:00:00
[사설] 尹 탄핵 표결 불참 반대도 내란죄로 처벌하려 하나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이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내란죄 종료 시점을 계엄이 해제된 2024년 12월 4일이 아닌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12월 14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1차 탄핵 표결에 불참해 체포 방해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질의서를 보내 불참 이유와 의사결정 과정도 추궁(追窮)하고 나섰다. 계엄 해제 이후 이뤄진 정치권의 국정 수습 논의와 국회의원의 헌법상 표결 행위까지 '내란 연장선'으로 묶어 형사처벌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형법상 내란죄는 국헌을 문란(紊亂)할 목적으로 다수인이 결합해 폭동에 이르는 것을 핵심 요건으로 한다. 이 폭동 상태가 사라지면 범죄도 종료됐다고 본다. 앞서 같은 사건을 수사한 내란특검팀이 "비상계엄에 따라 동원된 군·경을 철수시키고 계엄 해제를 공표한 때엔 국헌문란 목적이 계속됐다고 보기 어렵고 비상계엄 자체의 협박적·폭동적 효력도 소멸했다"고 공개 반박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는 내란죄를 '상태범'으로 본 대법원 판례(判例)와도 어긋난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12·12와 5·18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상태범'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일정한 강도에 이르는 순간 범죄가 완성되는 유형으로 명시했다. 그 이후 위법한 상태가 이어진다고 해서 범행 자체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종합특검은 '국헌문란 목적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객관적 장애로 달성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범행이 계속된다'는 논리로 내란죄를 사실상 '계속범'처럼 다루려 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원의 자유위임과 표결권(表決權)에 대한 침해도 문제다. 정치적 판단·소신에 따라 탄핵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반대표를 던진 것은 헌법상 부여된 고유한 의정 활동이다. 아무리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 해도 헌법적 가치와 법치주의의 원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정치적 행위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면, 이는 법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또 다른 정치 보복으로 보일 뿐이다.
2026-08-14 05:00:00
[관풍루] 남부 지역이 극한 가뭄으로 농가는 폐농 위기에 생활 용수마저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호남 반도체 속도전 내겠다는 정부
○…남부 지역이 극한 가뭄으로 농가는 폐농 위기에 생활 용수마저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호남 반도체 속도전 내겠다는 정부, 심각한 가뭄 대비한 하루 65만t의 수자원 확보 방안은 있나?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이 2주 전보다 4%포인트 하락해 취임 후 최저치인 49%로 내려앉아. 누더기 부동산 세제 개편안과 주택공급책 보아하니 더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인 듯. ○…스타벅스 코리아, 직전 분기 29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2분기 184억원 영업손실. 대통령과 여권의 '스타벅스 때려잡기'에 우중(愚衆)이 영합한 결과?
2026-08-14 05:00:00
2026-08-13 18:57:21
800조 원 규모의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유례(類例)없는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29일 산업입지정책심의회 심의·의결을 거쳐 광주 군 공항 부지를 후보지로 확정했고, 하루 뒤인 3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예비사업시행자로 지정했다. LH는 지정 당일 곧바로 조사설계용역 사전규격공고를 냈다. 통상 107일 걸리는 용역업체 선정 기간을 58일로 줄이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반도체 경쟁력이 시간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진행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속도'의 이면(裏面)에서 절차가 무시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실에 따르면, LH는 국토부의 공식 사업 참여 요청 공문이 나오기도 전인 7월 27일 자체 후보지 선정 경영투자심사위원회를 개최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의 참여 요청은 7월 30일이었다. 산업입지정책심의회의 후보지 심의·의결(7월 29일)보다도 이틀이나 앞서,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지도 않은 LH가 내부적으로 투자 심사를 사실상 마쳐 놓은 셈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공식 요청도 없는 사업에 LH가 무슨 근거로, 누구의 지시로 위원회부터 소집했는지, 청와대와 국토부의 움직임을 미리 예견한 것인지, 비공식적으로 사전 조율이 있었던 것인지 등 짚어야 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 사업일수록 초기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훗날 정치적 부담이나 특혜 시비, 나아가 감사원 감사나 수사로 비화(飛火)할 소지를 줄일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가 안팎의 우려 섞인 말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국토부와 LH는 7월 27일 위원회 개최 경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어떤 근거로, 누구의 요청이나 지시로 회의가 열렸는지, 심의 내용이 이후 정식 절차와 어떻게 연결됐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밝히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식으로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2026-08-13 05:00:00
[사설] 군사기밀 빼간 중국인이 '간첩'이 아니게 된 기막힌 현실
군(軍) 비행장과 주한미군사령부가 있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훈련 상황 등 정보를 수집한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 출신 중국인 2명이 경찰에 의해 구속된 것이 알려졌다. 그런데 이들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가 간첩죄(間諜罪)가 아닌 일반이적죄라는 점이 국민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행법상 간첩죄가 적용되려면 이들의 행위가 '적국(敵國)'인 북한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 등 외국을 위한 군사기밀 유출 등 행위는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간첩죄는 법정형이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인 반면에 일반이적죄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이 훨씬 가볍다. 올해 2월 국회 본회의에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시행은 다음 달 13일부터이다. 인민해방군 출신 중국 간첩들이 늦장 입법의 혜택(惠澤)을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원래 간첩법 개정안은 21대 국회(2020~2024년) 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 의해 발의됐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국가기밀의 범위가 모호하다"면서 지연시켜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22대 국회 초기에는 여야 합의로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까지 통과됐으나, 민주당 지도부의 갑작스러운 '신중론(愼重論)' 제기로 전체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지난해 초에는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또 "공청회를 먼저 개최해야 한다"면서 처리를 늦췄다. 민주당과 좌파 시민단체의 거듭된 발목 잡기가 아니었다면, '중국 간첩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첩죄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국가 안보보다 간첩의 입장을 더 생각하는 황당한 대한민국 국회였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개정 간첩 조항의 엄격한 적용으로, 흔들리는 국가 안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간첩 혐의 피고인들에게 온정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사법부 역시 성찰(省察)이 요구된다.
2026-08-13 05:00:00
[사설] 3% 성장에도 청년은 일자리가 없는 역설, 정부는 보고만 있을 건가
7월 취업자가 전년 동기 대비 10만8천 명 늘었다. 숫자만 보면 4~6월 대비 고용(雇用) 사정이 나아진 듯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15세 이상 고용률은 넉 달째 하락, 20대 취업자는 20만여 명 감소다. 반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23만여 명 늘었다. 취업자 증가를 고령층이 떠받친 셈이어서 고용 여건(與件) 자체가 개선되고 있다는 판단은 섣부르다. 특히 청년 고용률은 44.2%로 27개월째 내림세이고, 실업률은 6.8%로 1.3%p(포인트) 올랐다. 실업률 상승 폭은 2021년 1월 이후 5년 6개월 만에 최대이고, 실업률 자체도 2022년 이후 4년 만에 최고다. 청년 실업자, 취업 준비생, '쉬었음' 인구를 합치면 101만2천 명이다. 청년 8명 중 1명꼴로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 했다. 성장과 고용의 괴리(乖離)는 심각하다. 경제는 반도체 덕분에 올해 3% 안팎 성장이 예상된다. 그런데 제조업 취업자는 6만8천 명 줄어 25개월째 감소, 건설업 취업자도 5만7천 명 줄어 27개월째 감소다.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취업자마저 4만4천 명 줄었다. 예상치를 뛰어넘는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의 주요 산업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올해 취업자가 10만3천 명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증가 폭(19만3천 명)의 절반 수준이고, 지난해 말 전망치(21만 명)보다 크게 낮다. 고용 비중이 큰 내수(內需)와 비반도체 부문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다. 정부는 7월 증가세를 이어가기 위해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업자 증가 폭을 두고 고용 회복 여부를 판단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게다가 10만8천 명 증가의 이면(裏面)에 청년 취업자 19만1천 명 감소와 수개월째 내리막인 제조업과 건설업 일자리가 있다. 이를 외면한 채 월별 취업자 증가를 목표로 삼는다면 고용정책은 선전용 숫자 관리에 불과하다. 고용을 이끌지 못하는 3% 경제 성장은 특정 분야와 계층의 독점일 뿐이다. 첫 일자리조차 못 구한 청년들을 결국 '폐기 버스'로 내몰 셈인가.
2026-08-13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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