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로 접어들면 햇살의 입사각이 달라진다. 칼질에 따라 음식 물성이 달라지듯 계절도 그렇다. 하늘에 머물던 습기도 거의 말라버린다. 구름이 설 자리가 없다. 애국가 3절의 서두,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의 심도가 그대로 전해진다. 그 삽삽하고 냉랭한 심사의 끝자락을 절묘하게 건드리는 예술가가 있다. 그가 바로 '시인'(詩人)이다. 그래서 그럴까, 11월 1일은 '시의 날'. 아무튼, 그 시절 시인들은 집이 있으나 마나였다. 다들 다방에 '짱박혀' 있었다. 시인이 다방과 동격이 된 시절인 탓이리라. 그 언저리에서 '시인다방'의 추억은 낭만의 속도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시인다방은 '예술치외법권구역'이었다. 시인에게 기행은 작품만큼이나 소중했다. 하나의 '멋'으로 통용됐다. '형용사의 가을'이란 시를 적은 이재행은 '폭압적 기행'으로 신출귀몰했다. 지금 같으면 문제가 됐을 수도 있는 일인데도 당시는 '시인이니깐'이라며 넘어갔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장정일, 그의 뮤즈이기도 했던 박기영은 중앙파출소 옆에 있었던 심지다방을 축으로 야성의 원형질을 좇아다녔다. 그 옆에는 늘 시인다방이 '호위무사'로 엄호했다. ◆왕비다방과 김춘수 "왕비, 정확한 이름은 커피숍 왕비. 2층에 기성세대, 어둡고 칙칙한 3층은 20대 청춘. 2층을 통과해야 3층이 나온다" 소설가 박일문의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왕비를 아십니까?'의 초입부이다. 훗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장편소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박일문은 본영당 서점 옆 왕비다방 3층에서 그 소설을 구상했다. 왕비는 60년대와 80년대 다방문화의 가교였다. 50~60년대 유명했던 예술가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던 고풍스런 다방들도 고급 시설을 앞세운 세련된 젊은이 취향의 다방군에 밀려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갈 곳이 마땅찮았던 예인들을 향해 왕비가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그 축은 김춘수였다. 그는 마담과 여종원을 '장미'로 봤다. 그만의 연심(戀心)이 시심(詩心)으로 싹틔운 공간이었다. '가고파'의 작사자 노산 이은상도 대구에 오면 여기서 사람을 자주 만났다. 1996년 파동에서 한정식당을 오픈한 김옥주 사장이 왕비의 산파역이다. 1976년쯤 도산 직전의 호다방을 인수해 왕비로 재탄생시켰다. 레이디 퍼스트 원칙을 고수했다. 비슷한 또래의 손님이 들어오면 여성한테 먼저 주문하고 커피도 여성한테 먼저 주었다. 제대로 대접 받고 있지 못하는 여성들을 최고를 모신다는 취지로 다방 이름까지 '왕비'로 정했다. 커피잔도 좀 특별난 걸로 구입했다. 남성용은 좀 투박한데 비해 여성용은 당시 최고급 커피잔으로 평가받고 있던 행남자기 브랜드로 정했다. 2층은 늙은 손님들, 3층은 대학생 등 젊은이들의 공간이었다. 왕비의 전통은 1979년쯤 대백에서 중앙파출소로 가는 길 오른편 아세아 다방으로 옮겨간다. 2년 정도 머물다가 1981년쯤 대백에서 동아양봉원 가는 길에 있었던 클래식 전문 다방 '예전'으로 이동한다. ◆심지로 달려간 시인들 1980년대 대구는 '시의 벙커'였다. 동인지 활동하던 진보적 시인들의 거점은 다방이었다. 코리아백화점 옆 '왕비', 대구백화점 옆 '유경', 동성로 은하·아세아·맥향·심지 등지로 분산돼 포진하기 시작한다. 왕비·유경에는 나이든 시인, 아세아에는 룸펜스타일의 시인, 예술지상주의파들은 중앙파출소 옆 '심지', 그리고 '올림푸스' 등으로 모여들었다. 원래 60년대 생겨 히피문화의 산실이었던 서울 명동에 있었던 심지(1972년 폐업)의 기운이 대구로 틈입한 것이다. 1978년쯤 박덕규, 박기영, 박상봉, 권태현 등 59년생 지역 문학청년들이 모여 결성한 오구(烏口) 동인들도 심지로 모여든다. 부산의 이산하, 훗날 영화평론가로 더 잘 알려진 하재봉, 서울에선 명상서적 전문 출판가로 잘 알려진 류시화, 그리고 이문재, '입속의 검은 혀'란 시집로 잘 알려진 기형도 등이 마치 성지순례코스처럼 심지를 거쳐갔다. 연이어 장정일, 이인화, 안도현, 구광본, 이정하 등도 소문을 듣고 거기로 모여든다. 1983년 4월 박기영·장정일·안도현·박상봉·권태현·김상윤이 심지에서 국시동인을 결성한다. 그 시절 심지는 삶의 행로를 찾지 못한 지역 문학청년들에겐 '해방구'였다. 광장은 탄압받고, 대신 골목문화가 활기를 띨 수밖에 없었다. 각종 시동인지가 '자유의 바람'을 몰고 온다. '자유시', '형상', '오늘의 시, 자연시, '국시' 등이 질경이처럼 태동한다. 1980년 어름 시청 옆에 있다 바로 사라진 대안 복합문화공간이었던 '분도소극장'과도 연동된다. 심지는 정식 허가받은 업소가 아니었다. 지하 주차장 한켠을 막아 다방으로 불법개조했다. 한낮에도 심지는 어두컴컴했다. 일반 손님들이 그곳을 좋아할 리 만무했지만 혈기방장한 문인들에게 적격이었다. 박기영은 그곳을 그리스 신하에 등장하는 지하세계 '하데스'로 명명했다. 그곳에 가면 주인 몰래 공짜 커피를 주는 덧니 난 20대 초반의 레지 이양이 그들을 살갑게 대해주었다. 하지만 바뀐 주인이 그들의 열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심지파들은 거처를 옮긴다. 2000년쯤 취재를 위해 심지를 찾은 날의 기억이 새롭다. 그 자리에는 협성교육재단측이 신축중인 지하 1층 지상 11층 높이의 우봉빌딩이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대구 시인다방 연대기 요즘 전국적 가맹점으로 연결된 시 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시' 북토크 행사를 리드하고 있는 박상봉도 한때 '시인다방파'였다. 어머니한테 급전을 받아 보증금 500만원, 월세 25만원 조건으로 그 공간을 얻는다. 그렇게 해서 문화공간 '시인'(중구 봉산동 30의 1)이 태동한다. 배용균 감독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젊은 스님 역으로 나온 신원섭, 조감독 강충구도 단골이었다. 당시 기자였던 이하석도 병풍처럼 후배 문인들을 감싸주었다. 동성로 길 중간에서 박상봉을 만난 그는 시인다방이 문 닫기 직전이란 말을 듣고 직접 액자까지 만들어주면서 이기철, 이성복, 이태수 등을 동원 '확인될 수 없는 시화전'이란 제목의 10인 시화전까지 진두지휘했다. 장정일은 온종일 시인다방 출입문 앞자리를 독점, 바둑에 매몰됐다. 시인이란 간판만 보고 다 방에 들어온 일반 손님들은 기원인 줄 알고 그만 밖으로 나갈 정도였다. 박상봉은 애써 손님을 잡지 않았다. ◆남은 건 빚 700만원 시인다방 1년 만에 남은 건 빚 700만원이었다. 박상봉은 이 바닥을 뜨려고 했는데 "그건 인생 실패를 의미한다"면서 박기영 등 선·후배들이 앞장서 시인다방 살리기에 열을 올리는 걸 보고 다시 힘을 낸다. 그런 연유로 1986년 5월 당시 한미은행 맞은편 골목 2층에 60여석 규모의 문화동 시인다방(중구 문화동 10의 53)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금은 엉성하지만 정성 가득한 '주간시인'도 발간했다. 1987년 '홀로서기 1'로 베스트셀러작가로 급부상 중이던 서정윤도 기웃거렸다. 하지만 시인다방은 양분되고 만다. 박상봉이 시인다방 시인의 식구 회장이었던 박인수에게 넘기고 1988년 상경했다. 한 언저리에 2개의 시인다방. 옥에 티였다. 박상봉이 떠난 시인다방은 예전 같지 않았다. 박인수도 시인다방을 포기하고 말았다. 철공소 사장이던 허남기, 마지막엔 계명대 철학과 출신 김은희가 전통찻집 스타일로 시인다방 명맥을 이어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1999년쯤 불이 나 소장된 절반의 책이 불타 없어지면서 시인다방도 추억의 뒷장으로 밀려난다. 그 와중에 박상봉은 89년 10월 중앙초등 맞은편에 '그리운 시인'을 열어 팸플릿형 소식지 '괴로운 시인'도 발간하고 1990년부터 안도현, 문형렬, 박연소 등을 초청해 '시인과 독자와의 만남'을 약 20차례 꾸려나가다가 21세기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문닫고 만다. ◆마메종을 아시나요 그 흐름을 잘 흡수한 두 카페가 있었다. 바로 '두레'와 '마메종'(뒤에 나무노래). 두레는 김지하 시인이 무척 아끼던 곳이다. 특히 마메종은 '문화카페'나 마찬가지였다. 1983년 대구시 중구 동산양봉원에서 동인호텔 가는 중간에서 태어난다. 당시 카페 상호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영어로 갈 때 그 카페는 프랑스어를 앞세운다. 바로 '마메종'. 우리말로 옮기면 '나의 집' . 가난했던 소설가 장정일은 허구한 날 외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리가 있었다. 김수영 문학상을 받자, 즉각 육필 사인이 들어간 시집 사이에 외상값이 든 편지봉투를 집어넣어 정 사장에게 건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마메종의 무서운 아이였던 이재행은 툭 하면 싸움질에 돈 구걸을 일삼았다. 그런데 그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신문보도를 접한 한 단골이 그를 위해 50만원을 쾌척, 그를 위한 모금운동이 이 카페에서 전개됐다. 배용균 감독도 마메종을 지독히 사랑했다. 그의 영화 '검으나 땅, 희나 백성' 촬영 장소 중 하나로 마메종을 집어넣었다. 소설가 이문열은 여기서 대취하면 늘 '잠수타기에 안성맞춤인 술집'이라고 좋아했다. 생태학적 무정부주의자인 영남대 박홍규 교수도 마메종을 거점으로 특유의 독설을 난사했다. 하지만 마메종은 추억카페였다. '주점카페' 시대를 넘지 못한다. 두산오거리 근처로 옮겨 '나무노래'로 복귀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낭만성이 '댓글리즘'에 압사해버리고 있는 시절인 것 같다. 그래서 열어 본, 조금은 짠하고 아련한 가치가 나름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의 '훈담'이었다. wind3099@hanmail.net
2026-10-07 10:39:59
[세풍-이용호] 정치판 못 바꾸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오늘날 세계는 뭔가 터질 듯한 조마조마한 순간의 연속이다.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력사용까지도 불사한다.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든 것인가!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20세기 초의 정황과 흡사하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리더로서 전후 세계질서를 담보했던 미국이 경찰국가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점이나, '무력사용금지원칙'과 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흔들린 점 등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패권국 미국과 패권 도전국 중국 간의 사활을 건 혈투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만 독립 문제, 경제전쟁, 파나마 운하·그린란드의 지배권 문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압송 사태, 이란 전쟁 등은 패권을 둘러싼 양국 간 충돌의 대표적 사례이다. 세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가려고 하는가, 아니면 지역 패권을 수용·승인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려고 하는가! 이러한 '힘의 지배로의 회귀'라는 세계적 큰 흐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초과 세수라는 당장의 이익에 도취되어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 벌이는 선무당의 칼춤은 점입가경이다. 국가 발전이나 미래 세대를 위한 고뇌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러다간 국가의 미래를 송두리째 잃을지도 모른다는 국민의 탄식만이 커지고 있을 뿐이다. 일찍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대한민국의 정치를 4류(四流)라고 평가한 바 있다. 요즈음의 정치는 4류라는 평가조차도 후한 점수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정치에는 '국가와 민족의 번영'과 같은 공동체에 대한 가치가 없다. 그저 그들 집단과 개인의 이익만 존재할 뿐이다. 국가가 망하든, 지방이 소멸하든, 경제가 저성장의 구조에 빠지든, 그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만 침해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에는 품위가 없다. 정치인이 내뱉는 언어는 천박하기 그지없다. 젊은이들이 배울까 두렵다. 대한민국의 정치에는 상생(相生)이라는 조화가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 분열과 진영 논리만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에는 정치력이 없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면, 결국 스스로 법에 묶여 어떠한 정치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에는 시대를 읽는 안목도, 최소한의 도덕도, 지도력을 갖춘 정치인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연금·노동시장·교육 개혁, 저출생, 고령자, 국가재정 건전성 등 핵심 국가과제의 해결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민국의 정치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많다.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와 같은 권력 구조의 개편, 국회의원 특권의 폐지·축소,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을 통한 제3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의 확대, 부정선거 문제의 명확한 규명, 정치력 복원, 국가기간산업의 균형 발전 등은 꼭 있어야 할 것들이다. 대한민국의 희망인 우리 자식들이 엄동설한에 찬물로 샤워를 해야만 하는 고달픈 시대로 되돌아간다면, 과연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어떠한 경우에도 과거의 대한민국으로 추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바꿔야 하는 이유이다. 이념에 갈려서, 무상정책에 현혹되어서, 정치에 무관심해서 등등의 이유로 정치판을 바꾸는 일을 내일로 미룬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지금 당장,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2026-10-07 05:00:00
[사설] 억지스럽고 모욕적인 질의에 당당히 맞선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원장이 6일 국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국회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에 관여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침묵을 깨고 작심(作心) 발언을 했다.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 대법원장에게 일반 증인으로 선서하고 증언하라고 요구했지만, 조 대법원장은 삼권분립과 사법 독립 원칙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조 대법원장은 헌법 104조를 들며 '대법관 제청권은 대법원장의 권한'이라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국회와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관여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사법부 독립'이란 헌법 원칙을 상기(想起)시켰다. 또 비상계엄 당시 법원이 협조를 거부한 경위와 서부지법 사태 당시 대응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여권이 제기한 의혹에 당당히 맞섰다. 민주당을 비롯한 여권 의원들의 질의 중에는 억지와 모욕(侮辱)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장 개인 업무추진비로 고가의 술을 구매한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조 대법원장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망신을 주기 위한 허술한 의혹 제기였다. 손솔 진보당 의원의 "제2의 윤석열을 꿈꾸느냐"는 질문도 부적절했다. 헌법기관의 수장에게 정치적 낙인을 찍는 듯한 표현을 던지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질문인가.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격을 겨냥한 모욕과 정치적 조롱(操弄)까지 국회의원의 권한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지만 사법부를 굴복(屈伏)시킬 권한은 없다. 국정감사는 큰소리와 모욕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는 정치 공세의 무대가 아니다. 질문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비판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2026-10-07 05:00:00
[사설] 빈총 경계·지뢰 도발, 군 수뇌부의 대북 환상이 초래했다
두 달 전 육군 제1군단에서 '빈총 경계'가 드러난 데 이어 육군 2·3·5군단, 22사단 GP, 해안과 한강 하구(河口)를 경계하는 해병대 2사단 등 동부·서부 전선을 가리지 않고 전방 부대 전반에서 삽탄하지 않고 경계 근무를 서 온 사실이 국방부 감사 결과 추가로 드러났다. 전방 부대의 '빈총 경계'는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2023년 12월 이후 시작됐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2024년부터 군사분계선(MDL)을 수시로 침범하며 지뢰를 매설(埋設)했고, 지난달에는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폭발로 우리 군 장교가 발목을 잃는 등 3명이 크게 다쳤다. 상황이 이럼에도 북한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한국의 자작극"이라 비난하고, 극초음속 미사일 도발로 우리를 압박(壓迫)했다. 문재인·이재명 정부가 "싸우지 않는 평화" 운운하며 북한을 옹호(擁護)하고 군 수뇌부도 정권 입맛대로 북한 눈치보기식 대응을 하다 보니 우리 군 기강은 해이해지고, 북한은 우리를 깔보는 것이다. 우리 군의 미온적 대응은 문재인 정부의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서 기인한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지대로 조성하겠다며 남북 각각 1㎞ 이내에 위치한 GP(감시초소) 11개 철수, 군사분계선(MDL) 일대 육상·해상·공중에 완충지대(緩衝地帶) 설정으로 적대 행위 및 군사훈련 금지, 비행금지 등에 합의했다. 이는 우수한 정찰 자산(항공·위성)을 가진 우리 군의 대북 감시 능력을 약화시킨 반면 정찰 자산이 부족한 북한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접경지역 훈련 제한으로 한미 연합 대비태세가 약화됐지만 북한은 창린도 해안포 사격(2019년), 전방 GP 총격(2020년), 무인기 침범(2022년) 등 합의를 지속적으로 위반했다. 결국 우리 정부가 2023년 11월 9·19 군사합의 중 '비행금지구역(제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하자 북한은 9·19 군사합의를 전면 파기(破棄)했다. 이후에도 오물 풍선 살포, GPS 교란 등 북한의 도발이 계속됐고 우리 정부는 2024년 6월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을 정지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가 세계 5위 군사 강국"임을 강조한다. 안규백 전 국방부 장관은 "내일 전시작전권을 회수해도 스스로 지키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군사력이 세계 5위면 뭐 하나. 전방 부대는 '빈총 경계'를 서고, 북한군이 지뢰로 우리 군인의 발목을 잘라도 대북 방송이나 대북 확성기 재개 등 북한에 타격(打擊)을 주는 실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대통령은 북한군 '도발'을 '불의의 사고'라 부르고 있다. 누구나 남북 긴장 완화와 한반도 평화를 바란다. 그러나 북한 정권에 대한 환상만으로 그 소망을 달성할 수 없다. 상호 비례 원칙에 의거(依據)해 단호하게 대응해야만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2026-10-07 05:00:00
[사설] 금융권마저 뚫렸는데, 정부는 이제야 '패러다임 혁신'
금융권이 무차별적 사이버 공격을 받고 있다. 신한·KB국민·하나·BNK부산은행 등 7개 금융사에서 침해 사고가 확인됐고 다른 금융업권에도 공격 시도가 이어졌다. 아직까지 예금 인출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가장 안전해야 할 금융권마저 뚫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은 크다. 금융권 공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어 기반 인공지능(AI) 침투 도구 'ARTEX AI'는 전 세계 약 600개 IP에서 운영 흔적이 확인됐다. 특정 국가 배후(背後)를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이번 사이버 위협을 단지 기업 보안 사고가 아니라 국가안보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사태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부터 고성능 AI의 보안위협을 논의했고 7월에는 대응 요령까지 배포했다. 정부가 6~9월 민간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과 상용 소프트웨어, 오픈소스를 AI로 점검했더니 취약점이 523건이나 발견됐지만 여기에 대응한 별도(別途) 예산은 없었다. 위험을 알고도 대응 강도와 실행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6일 AI 시대에 맞는 보안 패러다임의 전면 혁신을 주문했고,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도 범부처 침해 대응과 매뉴얼 표준화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금융권이 뚫린 뒤에야 '패러다임 혁신'과 '범부처 대응'을 말한다. 정부는 위험을 알고 권한과 예산도 확대해 왔다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필요한 것은 뒤늦은 지시와 약속이 아니라 취약점을 상시 찾아내고 즉시 차단하는 실전 방어체계다. AI 공격은 시작됐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수준의 국가 대응이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26-10-07 05:00:00
[관풍루] 李 대통령 6일 국무회의에서 농지조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농지 전용해 태양광사업 하면 몇배 소득, 지금이 기회"라고 강조
○…李 대통령 6일 국무회의에서 농지조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농지 전용해 태양광 사업 하면 몇 배 소득, 지금이 기회"라고 강조. 문재인·이재명 정부의 태양광(신재생에너지) 사랑은 이심전심의 'DNA'. 중국만 노나겠네. ○…김정관 산업부 장관 6일 국정감사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는 기업의 결정"이라 밝혀. 정작 정부는 다급한데 삼전-닉스는 왜 느긋하지? 주객전도(主客顚倒). ○…9일은 '한글날 100돌'. 해외 세종학당 273곳서 연간 12만 명이 수강하고 한글 활용한 제품도 인기. K-컬처의 주역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 같은 분 환생(還生)은 없나.
2026-10-07 05:00:00
2026-10-06 18:45:57
[사설] 정치권의 일방적 형사사법 체계 개편 결과 보여준 공수처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대상을 사법기관(판사 및 공소청 검사, 군사법원 판사)과 수사기관 근무자(경찰, 중수청 수사관, 특별사법경찰관 등)로 축소(縮小)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공수처는 검찰의 독점적 권한을 견제(牽制)하고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수사하겠다며 설립했으나 출범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다. 수사 대상이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군 장성 등 고위공직자들인데,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구성에서 정치적 중립성 보장 장치가 훼손(毀損)돼, 정권이 야당을 표적 수사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모든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수 있지만, 직접 기소할 수 있는 대상은 판·검사 및 경무관 이상 경찰에 한정돼 수사를 마친 후에는 검찰에 사건을 넘겨야 하는 등 절차상 낭비 문제도 노출됐다. 그 결과 2021년 공수처 출범 후 접수한 1만4천여 사건 중 재판에 넘긴 것은 8건에 불과했고 이들 중 유죄가 확정된 사건은 단 1건이었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등에 대한 수사 권한을 현행 공수처에서 행정안전부 산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넘기겠다고 한다. 야당 탄압 등 수사 중립성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아가 공수처가 판사와 공소청 검사 등 사법 공직자에게 수사 역량(力量)을 집중하는 것은 제2의 사법부 압박(壓迫)이 될 가능성도 크다. 형사사법 체계 개편의 목적은 수사 전문성과 신속성, 정치 중립성을 바탕으로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정치적 이유로 공수처를 설립하는 바람에 '공수처(空手處)'가 되고 말았다. 검찰을 폐지하고 만든 중수청과 공소청도 마찬가지다. 경찰 부실 수사와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크지만, 정부·여당은 중수청장 후보를 둘러싸고 "친윤이니 반윤이니" 하며 '우리 편인가 아닌가'만 따지고 있다. 공수처 출범,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립 등 형사사법 체계 개편에 따른 국민 불안과 비판은 언제든 분노로 바뀔 수 있다.
2026-10-06 05:00:00
지방의 의료 붕괴(崩壞)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의사 수가 늘고 있다지만 정작 지방은 의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사정이 더 심각하다.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가 113명에 불과한 가운데 이들 중 78.8%가 서울에 몰려 있다. 경북을 비롯한 6개 시·도에는 전공의가 한 명도 없다. 지방의 의료 현장은 한계에 이르렀다. 경북 영양군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專門醫)가 아예 없고, 청송·청도·고령·봉화·울진·울릉군에는 한 명뿐이다. 이들 지역은 전문의가 휴가를 가거나 자리를 떠나면 소아 진료가 사실상 중단된다. 보건복지부의 '제2차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활동 의사(전국 평균 219.8명)는 서울이 364.1명인 반면 경북은 137.9명에 그쳤다. 무려 2.6배 차이다. 지방 의사들의 고령화(高齡化)도 수도권보다 빠르다. 경북 의사의 평균 연령은 50.8세로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 대구의 의료 현실도 위기 상황이다. 대구의료원의 의사 충원율(充員率)은 67.2%로 전국 지방의료원 중 두 번째로 낮다. 경북대병원은 정원 705명 중 388명만 근무해 충원율이 55%에 그쳤고, 칠곡경북대병원의 충원율도 65.3%다. 대구의 대표 의료기관마저 의사를 채우지 못하고 있으니, 비수도권 시·군의 사정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지방 의료를 시장경제(市場經濟)에만 맡기면 안 된다. 의사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을 개인의 선택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낮은 보상과 열악한 근무 환경, 교육·생활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국가가 필수·지역의료에 대한 직접 보상을 강화하고, 전공의 수련비 지원, 지역 정착형 의사 양성책 등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지역에서 양성한 의료 인력이 지역에 머물 수 있도록 획기적인 유인책(誘引策)이 필요하다. 지역의사제 등 기존 대책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수련·복무·정착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야 한다. 지방 의료가 무너지면 지방 소멸도 막기 어렵다.
2026-10-06 05:00:00
[사설] "광주와 대구는 다르다"는 정부, 국민도 다르다는 말인가
기가 찰 노릇이다. 군 공항 이전을 둘러싼 정부의 입장이 그렇다. 강대식 의원실에 따르면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대구시, 경북도는 지난 29일 실무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기획처는 "광주는 국가 필요 사업, 대구는 지자체 요구 사업으로 추진 배경에 차이가 있다"며 선을 그었다. 똑같은 사업인데 지자체가 요구하면 안 되고 국가가 필요로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말 속에는 국민이 없다. 수십 년간 전투기 소음에 시달리고 고도(高度) 제한에 따른 재산권 행사 피해를 입은 대구 시민은 이 구분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사업은 같은 법의 쌍둥이다. 대구와 광주의 군 공항 이전은 모두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한 기부 대 양여 사업이다. 국방부는 2023년 12월 대구시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했고 2025년 1월에는 사업계획까지 승인했다. 국방부가 지정하고 승인한 사업을 '지자체 요구'로 규정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밟아 온 절차를 부정하는 것이다. 광주는 2025년 12월 정부 3개 부처가 참여한 6자 협의체에서 정부 지원 의지를 담은 합의문을 냈고, 올해는 군 공항 부지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청와대 발표도 나왔다. 대구는 부지 확정이 먼저였고 사업도 앞서 있지만 군 공항 이전 재원 조달은 여전히 지역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토부도 뒷짐이다. 강 의원실이 홍지선 장관의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때 서면(書面)으로 받은 답변서엔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에 국토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기는 어렵다'는 입장이 담겼다. 군 공항 이전이 핵심인 만큼 국토부 차원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국방부 몫이라 하고, 기획처는 지자체 사업이라며 거리를 두니 실무협의체가 열려도 속도가 날 리가 없다. 군 공항 소음과 재산 피해는 광주 시민에게나 대구 시민에게나 다르지 않다. 그 고통 앞에서 '필요'와 '요구'를 나누는 것은 국가를 앞세워 국민을 나누는 일이다. 같은 고통을 겪은 국민에게 같은 기준으로 답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2026-10-06 05:00:00
[관풍루] 李 대통령 5일 엑스(X)에서 "檢 개혁 빙자해 사심으로 인사 좌우하려 해선 안 돼"라고 여권 내부의 강경파를 겨냥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5일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페이스북에 "영화 비판은 비평과 관객의 몫, 정치가 나서서 배우까지 탓해서야 되겠나"라고 비판. '건국전쟁' 감독을 국정감사장에 불러 세운 정치는 어느 당이 했나? ○…李대통령 5일 엑스(X)에서 "檢 개혁 빙자해 사심으로 인사 좌우하려 해선 안 돼"라고 여권 내부의 강경파를 겨냥. '장군' 했으니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멍군'도 기대. ○…필리핀 당국이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POGO)을 단속해 사기·불법 입국 알선·성매매 등의 범죄를 저지른 중국인 240여 명을 체포. 이러니 '민폐 국가'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지.
2026-10-06 05:00:00
2026-10-05 18:51:11
어느새 가을이다. 강의가 끝난 오후, 햇살 가득한 교정에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들풀들은 온몸을 흔들며 말을 건다. 연구실을 나와 산책하다 경북대학교 미술관의 '표준 사용법' 전시 제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학 안에 번듯한 미술관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서울대 미술관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지역 거점 대학미술관으로서 지닌 내실과 저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언젠가 방명록에서 본 '학교 안 유일하게 숨 쉴 곳'이란 글귀처럼, 이 전시는 숨구멍의 가치를 증명한다. 과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순회전이 작품을 나열하는 백화점식 전시에 그쳤다면, 이번 기획은 그 관성을 유쾌하게 배반한다. 현대인의 초상을 '세탁기의 세 가지 작동 매뉴얼'이라는 영리한 비유 속에 직조해 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생경한 연두색 커튼과 바닥의 안내 글귀가 상식을 뒤집는다. 그 자체로 규격 밖의 자유를 지향하는 몸짓이다. 세탁기 모양의 전시 안내 영상을 지나 만난 첫 번째 풍경은 '자동 모드'이다. 작품마다 각각의 비유로 편리한 매뉴얼에 몸을 맡긴 현대인을 보여준다. AI 알고리즘 속에서만 선택하면서도 정작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의 맹목적 순응을 꼬집는다. 항공사진에 지번 정보를 명기한 김지은의 '부동산적 풍경화'는 공간을 둘러싼 제도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두 번째는 '고속 모드'의 폭주다. 표준적 생산성에 도달하기 위해 한정된 시간 안에서 무섭게 탈수하듯, 현대인은 영혼과 에너지를 바짝 쥐어짜 낸다. 거대한 에너지 드링크 캔과 카페인 치사량이 새겨진 박소라의 알약 조각은 이러한 속도전을 서글픈 해학으로 폭로한다. 전시의 정점은 가이드를 끄고 삶의 매개변수를 스스로 조정하는 '사용자 모드'다. 매뉴얼 밖으로 걸어 나와 나만의 궤적을 스스로 그려가는 주체적인 모습이다. 김승영의 작품 '뇌'는 쇠사슬로 뇌를 만들어 빛바랜 저울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 무게는 '0'을 가리킨다. 인간의 감정과 삶의 무게는 숫자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묵화를 그리고 나면 화폭 한편에 빨간 도장을 찍듯, 전시의 낙관을 찍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객들의 작품이 숨은 그림처럼 전시에 동참하고 있는 광경은 이 전시의 또 다른 백미이다. 미술관을 나와 교정을 바라본다. 취업과 스펙이라는 매뉴얼을 쥐고 바쁘게 오가는 청춘들의 뒷모습이 전시장 속 풍경과 겹친다. 인간의 사유마저 복제하는 AI의 시대라 할지라도, 세상의 표준이 강요하는 궤도를 무조건 추종하며 숨 가쁘게 회전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빽빽한 필선도 사이에 여백이라는 숨구멍이 있어야 비로소 그림이 살아난다. 치열한 삶의 규격 사이에 맑은 쉼표를 찍고, 저마다의 독창적인 붓질로 인생의 다이얼을 돌리는 '사용자 모드'의 주인이 되기를 축원해 본다.
2026-10-05 17:01:30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만천성두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홍산문화에서 단군신화까지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수도가 있던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시 언사구(偃師區)에는 이리두유지박물관(二里頭遺址博物館)이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은 이리두를 하·은·주(夏殷周) 3대의 첫 머리인 하나라의 도읍 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대한 박물관 벽면에 '만천성두(滿天星斗)'라는 글을 써놓았다. '만천성두'는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중국 현대 고고학의 핵심 인물인 소병기(蘇秉琦)가 중국 각지에 산재한 신석기 문화를 묘사한 말이라 한다. 그러나 북두칠성을 뜻하기도 하는 "두(斗)자"는 하나라를 의미할 것이다. 중국의 수많은 신석기문화가 하(夏)나라로 귀결되어 중국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한국(남한) 역사학계는 고조선의 시조 "단군부인"에 진심인 반면 중국 역사학계는 하(夏)나라를 실존했던 국가로 만드는 데 진심이다. 그래야 한족(漢族)으로 시작되는 중국사를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앙소문화의 발견과 서래설1921년 스웨덴의 고고학자 요한 군나르 안데르손(Johan Gunnar Andersson)이 하남성 민지현(澠池縣) 앙소촌(仰韶村)에서 앙소문화를 발굴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는 신석기문화가 없다고 여겼다. 앙소촌에서 채도문화가 발굴되자 중국인들은 한족(漢族)의 기원을 밝혀줄 단서가 나왔다고 흥분했다. 오늘날에도 자기 조상이 어디에서 왔으며, 자신들의 역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명확히 아는 나라나 민족은 극히 드물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인들은 서양학자들의 주장처럼 한족은 서쪽 바빌론이나 이집트에서 왔다고 여겼는데, 이 서래설(西來說)을 증명해 줄 유물들이 쏟아졌으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안데르손은 앙소문화가 서쪽에서 왔다는 믿음을 가지고 중국 서북부 감숙성(甘肅省)과 청해성(靑海省) 일대를 탐사했는데 감숙성 마가요(馬家窯)촌에서 마가요문화를 발굴했다. 그는 마가요의 채도(彩陶)문화가 앙소문화의 채도문화보다 앞선 것으로 여겼으나 오늘날에는 월러드 리비(Willard Libby)의 탄소연대측정법을 통해 앙소촌 문화가 마가요촌 문화보다 앞선 것으로 그 선후관계가 바로잡혔다. ◆용과 봉황, 그리고 한족은 어디에서 왔는가중국 여러 지역에서 신석기문화들이 발굴되면서 적어도 고고학자들은 중국문화가 중국에서 자생했다고 보기 시작했다. 이는 한족(漢族)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변화였다. 문제는 이런 신석기문화들을 한족문화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흔히 용과 봉황을 중국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용·봉황과 관련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과 유적은 한족(漢族)문화권이 아니라 이적(夷狄)의 땅으로 여겼던 내몽골 지역에서 발견된다. 사해문화(查海文化 BC 6000~BC 5000)에서는 돌을 쌓아 만든 석소룡(石塑龍)과 용 형상의 부조가 발견되었다. 봉황도 마찬가지여서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 BC 5000~BC 4400)에서 출토된 봉황모양의 토기는 가장 이른 시기의 봉황 형상이다. 중국 각지의 신석기문화를 한족의 문화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지자 한족의 기원을 둘러싼 또 다른 견해가 등장했다. 한족의 조상이 청동기시대에 서쪽에서 왔다는 것이다. 신석기문화를 동이족의 문화로 보고, 청동기시대에 서쪽에서 이동해 온 집단이 이리두(二里頭) 문화를 기반으로 하나라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에서 용산문화(龍山文化)를 거쳐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흐름인데 유독 이리두문화만 한족문화로 구분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한족과 동이족을 별개의 집단으로 전제하는 한 한족의 기원은 계속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만천성두에서 다원일체로중국 각지에서 신석기문화가 속속 발굴되기 전까지 중국 고고학계는 중원의 선진문화가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여겼다. 하지만 발굴이 거듭될수록 각 지역에서 중원보다 선진적인 신석기문화들이 속속 확인되었다. 이에 소병기는 각 지역의 문화가 독자적으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는 구계유형론(區系類型論)을 제시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기 성장한 문화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형성되었다는 중국 문명의 다원적 기원설을 제시한 것이다. 소병기의 다원론은 '다원일체(多元一體)'라는 틀 속에서 중국의 여러 지역문화를 하나의 중국문명 형성과정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현재 중국이 각 지역에 산재한 56개 민족이 오랜 세월 교류하고 융합하면서 '중화민족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주장하는 고대판 '다원일체'가 소병기가 말한 '만천성두'인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고고학과 고대사도 현재의 중국을 하나로 묶는 학문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홍산문화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중국에게 북방의 홍산문화(紅山文化)는 큰 골칫덩어리이다. 다른 문화는 중화문명의 틀에 넣어서 설명해도 누구도 반발하지 않지만 홍산문화는 대한민국의 민족사학계에서 동이족 문화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소병기는 국가의 발전을 고국(古國)→방국(方國)→제국(帝國) 단계를 거친다고 보았는데, 홍산문화 후기는 이미 초기국가인 고국(古國)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았다. 홍산문화 후기의 대표적 유적 중 하나가 우하량(牛河梁) 유적인데, '제단(壇)·여신묘(廟)·적석총(塚)' 등의 '단·묘·총'이 함께 발견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국가권력과 제의(祭儀)가 결합된 홍산문화를 만든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여신묘(女神廟)는 능원시(凌源市) 건평현(建平縣) 우하량의 주산(猪山) 정상 부근에 위치한 십자형 구조의 묘이다. 돼지산이라는 뜻의 저산(猪山)을 현지에서는 주산이라고 부른다. 주산은 세 개의 독립된 산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신묘에서 바라보면 마치 옥저룡(玉猪龍)처럼 보인다. 홍산문화 사람들에게 이 산은 매우 신성한 산이었을 것이다. 여신묘에는 점토로 빚은 실물 크기에 가까운 여성의 두상이 출토되었으며, 눈에는 옥 구슬이 박혀 있었다. 여신상은 묘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 좌우에는 새의 날개와 발톱의 조형물과 곰의 발바닥의 형상물이 출토되었다. 하늘을 상징하는 새와 곰을 숭상했던 집단의 신앙이 결합된 모습으로 본다면, 여신묘는 공동의 신성한 존재를 모셨던 조상묘이다. 이 또한 한족의 문화라기보다는 동이족의 문화이기 때문에 근래 중국에서는 한국인들의 우하량 단체 관람을 금지시켰다는 말이 떠돈다. 고대 역사유적을 현재의 정치권력의 필요성에 따라서 해석하는 것이 무리임을 스스로 실토하는 격이다. ◆홍산문화의 옥기와 풍백·운사·우사반면 홍산문화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은 천손족을 상징하고, 웅녀는 곰을 토템으로 삼은 부족을 상징한다. 우하량 여신묘에 나타나는 여성, 새, 곰의 상징은 단군신화의 천손족과 곰부족이 결합한 단군신화와 일치하는 내용으로 모계사회 흔적을 보여준다. 홍산문화를 포함한 중국 동북 각 지역의 여성숭배 사상은 매우 오래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적봉(赤峰)시 오한기(敖漢旗) 일대의 흥륭와 문화에서도 여신상이 발견되었는데 이후 조보구문화와 홍산문화로 전승된다. 여신상의 복부가 풍만한 것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것이다. 우하량 근처의 적석총에서는 옥저룡을 비롯하여 옥거북·옥벽(玉璧)·옥월(玉鉞) 등 다양한 옥기가 출토되었다. 홍산문화 사람들이 옥을 껴묻거리로 사용한 것은 옥을 신과 소통하는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옥으로 신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관념이 이후에 "예제(禮制)의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홍산문화를 예옥지방(禮玉之邦), 즉 '옥으로 제사를 행하는 나라'라고 부른다. 청나라말 은나라 갑골문을 해석한 왕국유(王國維 1877~1927)는 '예(禮)'의 본래 뜻이 '옥으로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해석했는데, 홍산문화 사람들이 옥으로 장례를 치르는 풍습과 딱 맞아떨어진다. 우하량의 적석총에서는 비, 구름, 바람 등을 상징하는 옥기들도 출토되었는데 이 옥기들은 피장자의 가슴과, 손, 복부 부분 등에 놓여 있었다. 소호 금천씨가 새를 숭상해서 관직명까지 새이름으로 지었듯이, 천손족인 환웅족은 하늘과 관계있는 비, 구름, 바람을 관직명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래서 비 모양의 옥기는 우사(雨師), 구름 모양은 운사(雲師), 바람 모양은 풍백(風伯)의 관직명을 가리킨 것은 아닐까? 또한 홍산문화의 내만기(奈曼旗) 유적지에서는 옥인장(玉印章) 2개가 나왔는데, 중국문물학회 옥기 연구회 이사인 손수도(孫守道 1931~2004)는 홍산문화의 옥인장이 맞다고 했다. 이 옥인장의 크기는 2~4cm이며 목이나 허리에 매달 수 있게 구멍이 있고, 인장 표면에는 글자와 붉은 안료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부호가 새겨진 옥저룡 등도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부호와 인장이 말해주는 것은 당시에 글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인장이 국가 행정 기관이 권한을 행사하는 상징적 도구라는 점에서 국가가 존재했음도 유추할 수 있다. ◆홍산문화와 고조선의 연결성우리 동이족의 주요한 특징은 조상숭배와 제천의식이다. 천손인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당연히 제천의식을 치렀다. 요령성 객좌현(喀左縣) 동산취(東山嘴) 유적지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원(圓) 위에 땅을 상징하는 방형(方形)의 제단이 있다. 그 위에 사람이 제사를 지내면 동이족 전통의 천·지·인(天地人) 사상이 구현된다. 우하량 제2지점에도 이와 유사한 제천의식의 터가 있다. 하가점하층문화는 홍산문화를 계승한 문화이다. 윤내현(尹乃鉉, 1939~2025) 교수는 하가점하층문화를 고조선의 문화로 보았다. 그렇다면 그에 앞선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전사(前史)이자 배달족의 문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요서는 물론 중국 각지의 신석기문화를 일군 주체는 동이족이었다. 특히 홍산문화에 나타난 제의와 옥기, 하늘과 동물에 대한 관념은 후대의 역사와 신화 속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단군신화 속에는 고조선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문화적 기억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홍산문화와 단군신화는 고조선 건국의 이야기인 동시에 고조선 이전의 역사를 비추어 보는 전사(前史)의 창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2026-10-05 13:54:44
국정감사가 6일 시작된다. 이번 국감은 이재명 정부의 지난 1년간의 국정 운영을 사실상 처음으로 검증하는 자리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책·민생 국감'을 내세우며 국정과제 성과를 부각할 태세다. 그러나 국감의 본질은 정권의 치적(治績) 홍보가 아니다. 정부가 국정을 제대로 운영했는지 따지고 잘못을 바로잡는 게 국감의 목적이다. 부동산 정책을 면밀히 짚어야 한다. 수도권 집값 및 전·월세 불안, 비수도권 시장 침체 등이 가중(加重)되는 상황에서 정책이 시장에 미친 여파를 따져야 한다. 여당이 전 정부 탓만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명하려 한다면 국감은 '면피의 장'으로 전락한다.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면 왜 그랬는지, 국민 부담을 키운 대목은 없는지 밝혀야 한다. 안보 불안도 심각하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들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북한은 발뺌하며 미사일을 쏘는 등 도발(挑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의 대북 대화 기조가 안보 태세를 약화시키지 않았는지, 대북 경계 체계에 허점은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인사 문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장관 후보자 낙마(落馬)가 잇따르고, 인사 의혹도 제기됐다. 인사는 국정 운영 능력의 척도다. 누가 추천했고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 왜 논란이 반복되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밝혀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통령실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갈등은 핵심 쟁점(爭點)이다.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충돌하는 사안인 만큼 어느 한쪽의 정치적 주장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헌법과 법률에 비춰 누가 어떤 권한을 행사했고 절차상 문제가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사법부 독립이 흔들리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야권은 국감을 정쟁(政爭)의 무대로 만들면 안 된다. 정치적 구호나 감정적 공격만 반복하면 '정쟁 국감' 프레임에 갇힌다. 자료와 수치, 정책 결과를 바탕으로 집요하게 실정을 파고들어야 한다.
2026-10-05 05:00:00
[사설] 성 착취물 '그놈' 잡고 보니 경찰, 우려가 현실로?
AI(인공지능)로 성적 영상을 만들어 대화방에서 공유하던 범죄 피의자(被疑者)를 잡고 보니 현직 경찰로 밝혀져 충격이다. 구속된 서울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장 A씨는 나체 허위 영상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직접 제작하는가 하면, 여성 신체도 몰래 촬영한 것이 확인됐다. A씨는 허위 영상물 2천600여 개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1천600여 개, 불법 촬영물 1천300개 등 모두 5천600여 개의 불법 영상물을 소지했다. 놀라운 사실은 A씨가 2024년 4월 경찰(警察)로 근무하기 전에도 동일한 종류의 범죄로 수사받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런 파렴치한 범죄자가 어떻게 대한민국 경찰이 될 수 있었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A씨의 범죄는 장시간에 걸친 부산경찰청의 '신분 위장 잠입 수사'로 밝혀졌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검사 수사권 완전 박탈'에 따라, 지난 2일부터 검찰청이 없어지고 공소청과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경찰은 일반 형사사건 수사의 전권(全權)을 갖는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게 됐다. '광주 여고생 살해 장윤기 사건' '제주 장미란 씨 실종 허위 종결 사건' 등을 겪은 국민은, 만일 A씨 사건을 A씨가 속한 동대문경찰서나 서울경찰청에서 맡았거나 범죄 피의자가 A씨처럼 말단 경찰관이 아닌 고위 경찰 간부였다면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었을까 하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외부 감시·통제 없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암장(暗葬)할 수 있는 게 현재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인 탓이다. 또한 형사사법체계의 견제(牽制)와 균형(均衡)이 무너진 틈을 타고 범죄꾼들이 경찰에 위장 취업해 경찰 조직을 범죄의 방패로 삼거나, 경찰의 일손 부족과 조직적 한계 등으로 범죄를 방치하더라도 국민들은 속절없이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수완박 졸속 시행'에 따른 모든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 되겠지만, 국민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묻고야 말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2026-10-05 05:00:00
[사설] 대법원장, 국감 불출석 의견서 제출…증인석이 답은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6일 대법원 국정감사를 앞두고 증인 출석이 어렵다는 의견서를 국회 법사위에 냈다. 대법관 인사에 대한 대통령과의 협의 내용 등 민감한 사항을 공개하기 어렵고, 제청권 행사와 관련해 고발이 이뤄져 수사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가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인 제청권(提請權) 행사에 대해 증언하게 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권 독립에 반한다는 주장도 담겼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반박했다. 서영교 법사위원장은 4일 일반 증인으로 채택된 만큼 증언감정법상 출석 의무가 있고 불출석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장은 성역이 아니고 사법부 독립은 위헌 행위에 대한 침묵의 방패가 아니라고도 했다. 동행명령, 고발 등 후속 조치도 거론된다. 성역이 아닌 것은 맞다. 그러나 성역이 아니라는 것과 증인석에 세워도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회가 묻겠다는 것은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독립적으로 맡긴 제청권의 행사 과정이다. 청와대와의 협의 과정이 얽혀 있고 수사 가능성까지 겹친 상황에서 증인으로서의 답변은 정치 공방과 형사 절차 양쪽에서 쓰일 수 있다. 법사위는 지난달 21일 대법원을 국정감사 기관 증인으로 의결(決議)한 데 이어 28일에는 조 대법원장을 특정 현안의 일반 증인으로 추가 채택했다. 대법원장의 증인 출석 의무 여부를 두고 여당은 증언감정법을, 대법원은 대법원장에게 출석·답변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국회법 121조의 취지를 든다. 해석이 갈리는 만큼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에 불출석을 위법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 대법원장의 불출석은 국회 무시가 아니라 제청권 행사를 정치적 신문(訊問)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읽어야 한다. 대법원장의 일반 증인 출석 여부도 헌법기관 간 힘겨루기가 아닌 법의 판단으로 가릴 문제다. 국회가 검증을 포기할 수 없듯 대법원장도 제청권의 독립을 포기할 수 없다.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일은 대법원장 개인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국민이 기댈 안전판을 지키는 일이다.
2026-10-05 05:00:00
[관풍루] 이재명 대통령은 4일 또 엑스(X·옛 트위터)에 "개혁은 선명함을 드러내 주목받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밝혀
○…김성동 공소청 감찰부장이 3일 공소청 내부망 올린 글에서 李대통령 사건 재조사하는 검찰미래위 진상조사단 활동에 대해 "검사 직무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문제 제기. 자리 보전 제대로 할 수 있을라나. ○…이재명 대통령은 4일 또 엑스(X·옛 트위터)에 "개혁은 선명함을 드러내 주목받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밝혀. 김어준이 SNS 좀 중단하라 했는데…. ○…신한은행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서 AI 침투 흔적 발견. AI가 '도구'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로 진화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 속출할 듯.
2026-10-05 05:00:00
2026-10-04 18:39:32
[김용삼의 한국 반도체 비하인드] 1천억 적자의 벼랑 끝에 선 한국 반도체
1983년 12월 31일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공포되었다. 수도권으로의 폭발적인 인구·산업 집중과, 휴전선에서 가까운 수도권의 안보적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강력한 억제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법 제정 덕분에 삼성은 된서리를 맞았다. 삼성은 이미 기흥에 막대한 투자를 하여 첨단 반도체 1라인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 바로 옆에 256KD램 생산을 위한 제2라인 건설을 준비하려던 참에, 신규 공장 건설이 전면 금지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256KD램을 개발하고도 양산하지 못하게 된다. 유일한 탈출구는 법적 규제를 푸는 용도 변경과 업종 특례뿐이었다. 이 문제는 건설부·상공부·과기처·경제기획원 등 거의 모든 경제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주무 부처인 건설부는 "어느 누구도 관련법에 손대지 못한다"라며 강력 반대했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가장 적극적인 열의를 가진 부서는 상공부였다. 상공부는 삼성전자와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를 모색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도 삼성전자를 적극 도왔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서 반도체와 PC 두 업종은 예외를 인정하자는 내용으로 반대하는 부처들을 설득했다. 끝까지 완강하게 반대한 사람은 김성배 건설부 장관이었다. 김 장관을 대신해 차관이 서명하는 방식으로 동의를 얻어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4년 3월, 반도체와 PC 두 업종을 수도권정비계획의 공장 신증설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문서에 전격 재가했다. 대통령 권한으로 기흥 2라인 건설의 법적 족쇄를 풀어준 것이다. 대통령의 특단의 조치로 부지 문제가 해결되자 삼성은 1984년 8월 기흥 2라인 건설공사에 착공했고, 1985년 5월 준공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삼성의 기흥 2·3라인 건설 시기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극도로 암담하던 때였다. 일본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덤핑 공세로 삼성은 그룹 전체가 도산 위기에 내몰렸다. 반도체 사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절박한 처지에서 256KD램 양산공장을 완공하기까지는 이병철 회장의 결단, 그리고 행정 규제의 벽을 일거에 허물어준 통치권자의 결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도체 때문에 망할 뻔했던 삼성 반도체 생산 라인은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건설비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다. 삼성의 기흥 제1라인(64KD램) 건설에는 1억 5천만 달러, 제2라인(256KD램)에는 2억 5천만 달러가 투입됐다. 제3라인(1MD램) 건설에는 무려 3억 4천만 달러가 필요했다. 이미 천문학적인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제3라인까지 무리하게 추진하다가는 그룹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공포가 팽배했다. 제3라인 투자와 관련해 이병철 회장의 집무실에 쌓인 타당성 검토 보고서는 어른 키 높이에 달했다. 이 회장은 그 방대한 자료를 일일이 밑줄을 그어가며 숙독했다. 그는 "3라인을 하루빨리 착공해야 한다"고 재촉했으나, 주변에서는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판국에, 또다시 천문학적 설비투자를 감행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이 피땀 흘려 64KD램을 출하하자마자 미·일 선발 업체들은 곧바로 256KD램으로 도망치며 64KD램 가격을 폭락시키는 덤핑 공세를 퍼부었다. 256KD램을 개발해 내놓았을 때도 똑같은 치킨게임이 되풀이됐다. 1MD램을 생산한다 해도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삼성의 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 일각에서는 "삼성 반도체를 국영화(공사화)하거나, 차라리 이 시점에서 사업을 접게 해야 한다"는 비관론이 쏟아졌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청와대 경제비서관실은 "그래도 반도체는 계속해야 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삼성을 밀어줘야 한다"는 보고서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올렸다. 전 대통령은 관료들의 반대를 누르고 경제팀 건의를 수용했다. 청와대는 삼성의 제3라인 건설을 돕기 위해 1억 달러 규모의 외자 차관 도입을 전폭 주선하고 승인해 주었다. 덕분에 1987년 8월 7일, 마침내 기흥 3라인 건설이 개시되었다. 기흥 3라인 착공식은 이병철 회장이 참석한 생애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착공 3개월 뒤인 1987년 11월 19일, 그는 7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반도체 사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으나, 생전에는 단 한 번도 반도체 호황의 결실을 맛보지 못한 채 떠난 것이다. 미·일 반도체 전쟁이 절정에 달했던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삼성은 무려 1천159억 원의 막대한 누적 적자에 허덕였다. 당시 자본금 규모를 감안하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수준이었다. 삼성이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면 오늘날 세계를 제패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없었을 것이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벼랑 끝에 몰려 있던 한국 반도체 산업에 극적인 반전의 전기가 찾아온 것은 일본 덕분이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막강한 경쟁력으로 미국 시장을 장악하면서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고, 미국 반도체 업계는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1984년 14%에 달했던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세전 수익률은 1985년 마이너스 10%로 곤두박질쳤고, 공장 가동률 역시 70%에서 45%로 주저앉았다. 인텔마저 D램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1985년 6월 24일,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일본 7대 반도체 회사를 반덤핑 혐의로 전격 제소했다. 존폐 기로에 선 미국 반도체 업계는 총결집하여 대일 공세에 나섰다. 반도체가 미국의 무역 적자를 유발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일본에 대한 반감이 부글부글 끓던 시기에, '도시바 게이트'가 터졌다. 소련은 초정밀 가공기술이 부족해 전략핵잠수함의 추진기 소음이 심했다. 그 결과 미 해군 소나(음파탐지기)가 200마일 밖에서도 식별이 가능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소련 잠수함이 10마일 이내로 접근해도 탐지되지 않을 정도로 소음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은 정보망을 총 가동하여 추적에 나섰다. 그 결과 일본 도시바기계가 공산권 수출이 금지된 최첨단 공작기계 8대와 수치제어 소프트웨어를 소련에 밀수출한 사실을 적발했다. 소련은 이를 타이푼 급 전략핵잠수함의 추진기 프로펠러 가공에 투입하여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격분한 미 의회는 도시바 제품의 미국 내 수입 금지를 포함한 대일 무역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1986년 3월, 일본산 반도체에 최소 21.7%에서 최대 188%의 가혹한 덤핑 마진율을 매겼다. 궁지에 몰린 일본 정부는 1986년 7월 31일, 미국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여 제1차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일본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25% 이상 강제 감산했다. 또 미 상무부가 분기별로 제조원가를 산정해 그 이하로는 판매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공정시장가격(Fair Market Value) 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본 기업들의 무기였던 '저가 덤핑'을 못하도록 묶어버린 것이다. 이 조치로 일본산 D램 공급이 급감했고, 1987년 말부터 국제 시장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칩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일본 제품 가격이 공정시장가격에 묶인 틈을 타고 삼성은 재빨리 세계 시장을 파고들었다.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이듬해인 1988년, 글로벌 PC 보급 붐으로 D램 가격이 폭등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서만 무려 3천200억 원이라는 경이적인 순이익을 기록했다. 5년 동안 회사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던 1천억 원대의 누적 적자를 단숨에 털어내고 천문학적인 흑자로 돌아섰다. 통치권자의 결단으로 규제를 뚫고 세운 기흥 공장, 그룹의 명운을 걸었던 기업가의 고독한 결단, 냉전의 파고 속에서 터진 미·일 반도체 전쟁의 반사이익이 맞물리며, 한국이 세계 반도체 패권을 거머쥐는 거대한 기적이 시작되었다. 김용삼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10-04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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