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소년 SNS 이용 제한, '연령 빗장'보다 '중독적 설계' 규제부터
청소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및 인공지능(AI) 과의존 문제를 둘러싼 국가적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해외 사례와 여론 조사를 언급하며 청소년의 SNS 이용 제한 방안에 대해 세밀하고 신속한 논의를 지시했다. 플랫폼의 폐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단순한 연령 제한이라는 직관적 해법으로 직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칫 본질을 비켜간 채 실효성 없는 규제 논쟁으로 시간만 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청소년의 디지털 과의존은 개인이 자제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사용자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려는 플랫폼 기업의 고도화된 '중독적 설계'에서 비롯된다. 끝없이 콘텐츠를 피드에 띄우는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끊임없는 푸시 알림과 알 수 없는 추천 알고리즘은 청소년의 뇌를 강박으로 몰아넣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채 숫자상 연령 기준만 높이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접근이다. 더욱이 일률적인 '연령 빗장'은 제도적·법률적 한계가 명확하다. 과거 한국이 성급하게 도입했다가 실효성 논란 속에 폐지된 '게임 셧다운제'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가 섣부른 연령 제한을 도입했다가 위헌 판결을 받은 사례에서 보듯, 강제적 격리는 법적 마찰을 부르고 정작 시급한 플랫폼 책무 강화를 지연시킬 위험이 크다. 또한, 청소년의 디지털 접근을 통째로 막는 방식은 학습과 창작 등 디지털 기술이 가진 긍정적 외연(外緣)까지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와 국회가 집중해야 할 정공법은 규제의 타깃을 이용자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로 전환하는 것이다. 영국과 유럽연합(EU)처럼 사업자에게 청소년에 미칠 위험을 사전에 평가하도록 의무화하고, 장시간 이용을 유도하는 중독적 설계 기능을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유해한 환경 자체를 사전 차단하는 한국형 온라인 안전법 제정이 시급하다.
2026-11-06 05:00:00
[사설] 조작기소 특검법 속전속결 처리…차라리 특검청 만들어라
'조작기소 특검법'이 5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전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법사위를 통과한 지 하루 만이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반 만에 7번째 특검이 된다. 역대 정부 최다 기록이다. 이 정부는 수사·기소 분리를 명분으로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고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꿨다. 그런데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쥔 특검은 줄줄이 만든다. 국민은 경찰 수사와 검사 기소가 분리된 절차를 따르는데, 현직 대통령이 당사자인 사건을 수사·기소 결합 특검이 맡는 것은 특혜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앞선 6개 특검의 성적도 신통치 않다. 3대 특검이 기소한 일부 사건에서는 무죄 판결이 잇따르며 무리한 기소 논란이 일었다. 3대 특검의 남은 의혹을 맡은 2차 종합특검은 58명을 기소했지만 구속영장 기각률이 65%에 달했고, 양평고속도로 등 핵심 의혹은 규명하지 못했다. 쿠팡 상설특검은 90일 동안 핵심인 검찰·쿠팡 유착(癒着)을 객관적 증거로 확인하지 못해 일각에선 특검 무용론까지 나왔다. 선관위 특검은 지금도 수사 중이다. 이번 특검법은 더 문제다. 대장동·위례·백현동, 위증교사 등 수사 대상 중 상당수가 이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이다. 여기에 문재인 전 대통령 사위 취업 관련 뇌물수수 등 전(前) 정권 사건까지 포함됐다. 조작 수사 여부를 가린다면서 전·현직 대통령 관련 사건을 대거 묶었다. 민주당은 공소취소 조항을 뺐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검이 공소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리면 진행 중인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특검은 3당이 추천한 후보 중 대통령이 고르는데, 그 대통령이 수사 대상 사건의 당사자다. 특검은 예외적이고 긴급한 국정 스캔들에서 신뢰를 얻기 위한 장치여야 한다. 그러나 특검이 예외가 아니라 상시 수사 체계가 돼가고 있다. 검찰의 수사 기능을 없앴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수사·기소를 모두 쥔 특검을 만들어 검찰이 하던 일을 맡긴다. 이럴 거면 차라리 '특검청'을 만들어라.
2026-11-06 05:00:00
[사설] 미국 선거에 흔들린 반도체, 한국 경제의 불안한 호황
한국 경제 성장 전망은 연이어 상향 조정되는데 정작 성장을 주도하는 반도체 부문 주가는 급락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8곳이 예상한 올해 성장률은 평균 3.7%로, 7개월 연속 상향이다. 반도체 수출 호조(好調)와 예상을 웃돈 3분기 성장 실적을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압승하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대한 규제 강화 우려로 반도체 주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텍사스와 조지아 등 데이터센터 건설이 활발한 지역에서 전력·용수 사용과 전기요금 상승에 반발하는 주민 여론을 등에 업은 민주당 후보들이 승리했는데, 골드만삭스는 계획 중인 미국 내 데이터센터 용량의 약 45%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경제가 이런 외부 충격에 대처할 만큼 균형 잡힌 성장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덕분에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도 국내총생산(GDP)의 19.4%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이례적 수출 호황에도 내수와 고용, 중소기업의 생산·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더 큰 위험은 반도체 경기 흐름이 바뀔 때 드러난다. 메모리 수요 둔화(鈍化)로 가격이 하락하면 수출과 기업이익은 물론 설비투자와 세수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도 미국 선거 결과에 성장 전망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을 경제 전반의 경쟁력 회복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당장 논란 중인 162조3천억원 규모 미래대응기금부터 그렇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 성장동력과 청년·지역 지원에 활용하겠다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9년부터 핵심 재원인 추가 세수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기금 사업비의 46.7%는 매년 반복해 지출해야 한다. 호황이 끝나면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은 줄이기 어렵다. 3.7% 성장 전망치에 환호할 때가 아니다. "놀랄 정도로 떨어진" 것은 서울 집값이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들의 주식 잔고(殘高)다.
2026-11-06 05:00:00
[관풍루] 美 중간선거에서 2년 전 트럼프에 승리 안긴 MZ세대·라틴계 대거 민주당으로 변심한 것으로 드러나
○…美 중간선거에서 2년 전 트럼프에 승리 안긴 MZ세대·라틴계 대거 민주당으로 변심한 것으로 드러나. '민심의 바다'는 쉽게 배를 뒤집는데 민심무시·무소불위의 한국 여당 무섭지 않나? ○…이재명 대통령 5일부터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유튜브 프로그램 '대통령의 Y' 개시.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작한 '민주당TV'의 전철 밟지 않기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 5일 12·3 비상계엄 전 '햄버거 회동' 한 군인 8명 1심 무죄에 불복해 항소. 햄버거 가게에서 내란을 모의하는 군인들도 있나?
2026-11-06 05:00:00
[이정식의 시대의 창] 두코바니 원전, 결국 사람이 짓는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이 시공사 선정 문제로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지난달 29일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 컨소시엄과의 시공계약 협상이 결렬돼 새 시공사를 찾기로 했다. 2018년부터 협력해온 '팀코리아' 내부에서 균열이 드러난 것이다. 공사비와 설계 구체화 과정에서 발생할 추가 비용 및 위험 부담을 둘러싼 이견이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한수원은 내년 7월까지 새 시공사를 정하겠다지만 일정은 빠듯하다. 이번 결렬을 원청과 시공사의 돈 다툼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원전은 설계도와 자금만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원자로 배관 용접 하나에도 자격과 품질보증 기록이 따라붙고, 그런 숙련 인력을 길러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품질 문화가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2012~2013년 원전 부품 품질 서류 위조 사태로 이미 겪었다. 원전 경쟁력의 토대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국내 원전 건설 축소와 탈원전 정책 기조가 이어진 기간, 원전 산업의 일감과 인력 기반은 함께 위축됐다. 원전 공급업체 매출은 2016년 5조5천억원에서 2020년 4조원으로 4분의 1 넘게 줄었다. 원자력 관련 학과 재학생도 2017년 2천777명에서 2021년 2천165명으로 22% 감소했다. 일감이 줄자 숙련공은 조선·플랜트 등 다른 산업으로 이동했고, 젊은 인력의 유입도 위축됐다. 한번 끊긴 숙련의 사슬은 예산을 붓는다고 금세 이어지지 않는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된 뒤에도 중소 협력업체들이 일감 부족을 호소하는 이유다. 원전 공급업체의 90% 가까이가 중소기업이어서 일감 공백을 버틸 여력도 크지 않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비용 압박이 흘러가는 방향이다. 원청의 공사비 절감 압박은 중층 하도급을 거쳐 현장 노동자의 임금과 안전 비용으로 전가될 수 있다. 체코 현지 조건에 맞춰 설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도 추가 비용은 생길 수 있다. 이런 위험을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계약으로는 안정적인 사업 수행도, 숙련 인력 확보도 어렵다. 더구나 두코바니는 장기간 유럽 현장에서 일할 기술자를 필요로 한다. 현지의 노동시간과 산업안전 기준을 지키며 공기를 맞춰야 하는 만큼, 무리한 야간·초과근로에 기대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처우와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누가 가족과 떨어져 해외 현장으로 떠나겠는가. 팀코리아의 균열은 우리 노동시장의 오랜 숙제와도 닮았다. 원청은 비용을 줄이고 하청은 위험을 떠안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사람에 투자하기 어렵다. 숙련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가 함께 길러야 하는 공공재다. 독일이 이원화 직업훈련과 산업별 숙련 체계로 제조업 경쟁력을 지켜온 것도 같은 이치다. 정부가 할 일은 금융과 외교에 그치지 않는다. 첫째, 용접·배관·비파괴검사·품질관리 등 원전 핵심 직무를 체계적으로 길러내야 한다. 업계와 함께 직무별 숙련 기준을 세우고 국가기술자격과 직업훈련을 연계해야 한다. 향후 10년의 원전 인력 수요를 정기적으로 전망해 학교와 훈련기관이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현장을 떠난 숙련공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정년을 넘긴 원전 기술자가 계속 일하며 후배를 가르치는 도제 경로를 열어 고령 숙련자의 기술과 청년의 현장 경험을 이어야 한다. 셋째, 원·하청이 위험을 공정하게 나누는 계약 관행을 세워야 한다. 새 시공사를 고를 때 가격만이 아니라 인력 확보 계획과 하도급 관리 능력까지 따져야 한다. 원전 업계 노사와 정부가 숙련 인력 양성을 위한 협약을 맺는 것도 방법이다. 2029년 11월 착공까지 남은 시간은 꼭 3년이다. 원전 한 기를 완성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듯, 그 원전을 책임질 숙련 인력을 길러내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든다. 지금 당장 훈련을 시작해도 결코 이르지 않다. 두코바니에서 증명해야 할 것은 기술이나 가격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원전을 지을 사람을 지속적으로 길러낼 수 있는 나라인지도 함께 시험받고 있다.
2026-11-06 00:30:00
앞글(등겨1)에서 등겨의 어원을 밝혔다. 이번에는 표준어 등겨의 다양한 방언형을 다루고자 한다. 고운게(경기), 고운딩게(충북), 곤딩기(전북)는 '곱-(細, 형용사)+은(관형사형 어미)+겨/등겨(명사)'가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고운겨〉고운게'로 변했다, '고운등겨〉고운딩게'로, 그것의 음절이 줄어서 '곤딩게〉곤딩기'가 되었다. 두불제(전남) 두불체(제주), 두불딩기(경남)는 '두불(二, 수사)+겨/등겨'가 결합된 것으로, '두불겨〉두불져〉*두불졔〉두불제(전남)〉두불체(제주)'로 변화되었다. 두불딩기는 '두불+등겨'의 변화형으로 겉겨를 아시등게(경상도)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몽근저(전북), 몽강저(전북), 몽근지(전북), 몽근재(전남), 몽곤지(전북), 몽근딩기(전북), 몽군딩기(전북)가 보인다. 이들 어휘는 '몽글-(細, 형용사)+은+겨/등겨'에서 만들어진 '몽근겨. 몽근등겨'에서 변화되었다. 몽글다는 가루 따위가 미세하고 곱다는 뜻이다. '몽근겨〉몽근져〉몽근저(전북)〉*몽간저〉몽강저(전북)', '몽근겨〉몽근져〉*몽근졔〉*몽근제〉몽근지(전북)', '몽근겨〉몽근져〉*몽근졔〉*몽근제〉몽근재(전남)'로 변화되었다. 이 밖에 몽근딩기(전북), 몽군딩기(전북)는 몽근등겨에서 바뀌었다. '보드라분등겨(경남), 살딩기(경남), 참딩기(경남), 헨밋딩기(경남), 민미끼(경남)'가 있다. 보드랍-(細, 형용사)+은+등겨, 살(米, 명사)+등겨, 참(眞, 접두사)+등겨, 현미(玄米, 명사)+ㅅ(관형격 조사)+등겨, 매(매통, 명사)+밑(內, 명사)+겨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중 '민미끼'는 '매밑겨〉*매미껴〉*메미께〉미미끼(경남)〉민미끼(경남)'로 변했다. 함북 방언의 나박게, 나백제 어휘가 눈에 띈다. '나박(명사, 마지막 것)+겨'로 분석된다. 나박겨에서 나박게, 나백제로 변화되었다. 속겨에서 변한 속재(전남)가 보인다. 속(內, 명사)+겨로 분석된다. 제주방언의 ᄌᆞᆷ진체, 보미 어휘에 눈이 간다. 'ᄌᆞᆷ질-(細小, 형)+ㄴ(관형사형 어미)+겨'로 분석되며, 'ᄌᆞᆷ진겨〉ᄌᆞᆷ진져〉*ᄌᆞᆷ진쳬〉ᄌᆞᆷ진체'로, 보미는 '보늬(內皮, 명사)〉보니〉보미'로 변화되었다. 분껴(경기)는 분(粉, 명사)+겨(명사)로 이루어져 있고, 분겨가 변해 분껴가 되었다. 어원이 '이(米, 명사)+ㅅ(관형격 조사)+겨/등겨'로 이루어진 잇겨(충남), 잇딩기(충북)가 보인다. 쌀죽제(전남), 죽제(경남, 전북, 전남)는 '(쌀)죽(명사)+겨'로, 단등게(경북)는 '달-(甘, 형용사)+ㄴ(관형사형 어미)+등겨'로 분석된다. 지금까지 표준어 등겨의 전국 방언(사투리)형을 살펴보았다. 어원이 고유어로 이루어진 것과 한자어와 고유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고유어로 이루어진 것으로는 당가리/ 당가루계 어형, 고운겨/고운등겨계 어형, 두불겨/ 두불둥겨계 어형, 몽근겨/몽근등겨계 어형, 보드라분등겨계 어형, 쌀등겨계 어형, 참등겨계 어형, 매밑겨계 어형, 나박겨계 어형, 속겨계 어형, ᄌᆞᆷ진겨계 어형, 보미계 어형, 쌀(죽)겨계 어형, 단등겨계 어형이 있다. 한자어와 고유어로 이루어진 것은 분겨계 어형, 잇겨계 어형, 현밋등겨계 어형이 있다. 한국방언연구소장 신승원 sinswon5@hanmail.net
2026-11-06 00:30: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온다"
〈strong〉DMZ·조희대·與 내분·집값·트럼프까지…'사면초가' 복합위기〈/strong〉 나라가 온통 사면초가 타령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는 "넉 사, 방면(쪽) 면, 초나라 초, 노래 가"로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는 뜻이다.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여 고립돼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고립무원) 상태를 가리키며,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애용하는 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사면초가'는 『사기』 「항우본기」에 나온다.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두고 최후의 결전을 벌인 해하(垓下) 전투의 일이다. 즉 천하를 두고 다투던 초나라의 항우가 한나라의 유방과 한신의 군대에 포위되었다. 항우의 군사들이 지쳐가고 식량이 부족해지자, 한나라 군대는 초나라 포로와 탈영병들을 시켜 밤마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하는[四面皆楚歌] 심리 작전을 썼다. 이에 초나라 군사들은 고향 생각에 사기가 꺾여 탈영하거나 흩어졌다. 항우는 놀라서 말했다. "한나라 군대가 이미 초나라를 손에 넣었단 말인가? 어찌 이리도 초나라 사람들이 많단 말인가?" 절망한 그는 노래[=해하가]를 지어 불렀고, 이후 결전을 치러 패한 뒤 자결했다. 초나라 사람을 활용하여 초나라 군대의 기세를 죽이는 식의 전략은 전쟁이나 정치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사면초가 같은, 자신을 위축시키는 비난이나 부정적인 여론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 우수(근심・걱정)의 짐보따리를 잔뜩 지고 살아간다(人之生也, 與憂俱生)" 인생의 기초 공통 과목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일 아닌가. 그다음 전공 과목으로 '인간관계, 처세'가 있다. 이를 수료하지 못하면 불안・우울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니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격으로 새벽에 벌떡 일어나 SNS로 남들을 귀찮게 하는 사람도 있다. 김정설이란 분은 스무 살 즈음에 '시·공간이 무엇인가?' 등의 철학적 문제로 고민하다 기운이 위로 치솟아[上氣] 4년간 불면증에 시달렸단다. 그땐 "눈만 감으면 쥐가 수백 마리 발밑으로 지나가고 또 머리까지 올라가는 듯했다"고 했다. 그런데 발밑에 시계를 두고, 눈을 감고, 째깍대는 시계 소리를 들으면 잠이 왔단다. 자신만의 수양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는 "언제든지 정신은 비워두어야 한다… 허(虛)하여야 한다"라며 조언한다. 진퇴양난에 이르렀을 땐, 우선 머리에 찬물이라도 내려 상기된 상태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텅 비우고 냉정하게 '상황 파악'부터 해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했다. 그다음엔 '정면 돌파' '각개격파' '무시' '포기(항복)' '주제 전환(패스)' '외부 지원 요청' 등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말처럼, 사면초가라는 것도 우리가 벗어나야 할 하나의 알=세계이다. 늘 빛과 어둠, 선과 악이 대립하는 번뇌의 터전, '어둠인 동시에 빛'인 이 세상의 온전한 모습이다. 문제는 늘 바깥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이분법적인 편견'이다. 알을 깬 새가 앉을 자리는 바로 그 날카로운 양날의 마음이 사라진, 텅 빈 마음자리이다.
2026-11-06 00:30:00
2026-11-05 19:01:13
최근 미국 육군은 두 건의 전략 및 작전 관련 문서를 발표했다. 하나는 '미국 육군의 방위각'(方位角·The Army Azimuth)이라는 2페이지 분량의 짧은 전략 지침으로 지난 8월 19일 미 육군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됐다. 다른 하나는 지난 10월 12일 발간된 것으로 '육군은 어떻게 싸우는가'(How the Army Fights)라는 46페이지짜리 보고서인데 두 문건 모두 미국 육군 부참모총장(Vice Chief of Staff of the Army)인 크리스토퍼 C. 라네브(Christopher C. LaNeve) 육군 대장의 명의로 발표됐다. 2차 대전 이후 미국군의 주력은 점차 육군으로부터 해군과 공군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베트남전쟁에서 패전한 이후 미국은 지상군보다는 해군과 공군력에 크게 의존하기 시작했고 걸프전쟁, 이라크전쟁, 그리고 최근 이란전쟁 등은 해군과 공군력만으로도 웬만한 적국을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물론 이 같은 견해가 모든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미국 최고의 국제정치학자로서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 시카고 대학 교수인 죤 J. 미어샤이머 박사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이라는 명저의 한 장 제목을 '육군력의 우위'(Primacy of Landpower)라고 부쳤을 정도로 미국 국방부의 해군과 공군력 강조를 비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오로지 육군만이 적국을 신속하게 파괴할 수 있는 군사력이기 때문에 육군은 해군 및 공군력을 압도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국가의 공격 잠재력은 주로 육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며 한나라가 군사적으로 강대국이냐의 여부는 그 나라 육군의 규모에 의거해서 평가돼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육군 방위각'은 미국의 국가 대전략, 즉 미국이 가장 우선적으로 상대해야 할 가상 적국을 수정주의 국가, 불량 국가, 그리고 미국과 힘이 맞먹는 동급의 국가로 분류한다. 이란, 북한, 중국 등이 세 가지 범주에 속하는 나라들인데 이 지침은 특히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과의 싸움은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이며, 미국 본토도 결코 성역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전제함과 동시에 중국과의 전쟁에 참전하게 될 통합군(육해공군과 해병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될 군사력은 지상군(육군과 해병대)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미국에서 나온 비상식량을 준비하라는 보도, 미국군이 전사자를 매장하는 훈련을 실시했다는 보도 등은 모두 이 전략 지침이 상정하는 중국과의 전쟁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육군은 어떻게 싸우는가'라는 보고서는 육군 방위각에서 상정한 전략을 어떻게 수행할 것이냐에 관한 작전 지침들을 기술하고 있는 전쟁 교범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교범은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전략은 미국이 상정한 일본, 대만, 필리핀, 보르네오 섬을 연결하는 제1 도련선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격퇴한다는 소위 A2AD(접근 방지, 지역 거부·Anti Access, Area Denial) 전략이었으며 이를 위해 중국은 각종 무기들을 개발 배치했고 그 결과 서태평양 지역에서 전략 균형은 중국에 유리하게 변했다고 분석한다. 동 보고서는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A2AD 전략을 격파하기 위해 MDO(다영역 작전·Multi Domain Operation) 개념을 개발했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MDTF(다영역 전투부대)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미국 육군은 소련 붕괴 후 없앴던 사단을 다시 복구하고 사단 아래의 여단 규모를 축소했지만 전투력을 대폭 증강시킨 부대로 재편했다. 미국 육군의 각종 소규모 부대들은 모두 공격력과 기동성이 대폭 증강됐다. '육군은 어떻게 싸우는가' 교범은 미국이 최근 경험한 현대전들로부터 얻은 교훈에 의거, 미국은 "전진 배치된 병력과 장비를 유지해야만 하고,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정기적으로 훈련해야 하며, 작전 및 기동에 능숙한 부대를 중국에 가장 가까운 곳들에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범은 우리(미국)는 중국인민해방군, 즉 우리를 추격하는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 훈련시키며,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을 지상전으로 치를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반도, 일본을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삼는다. 한반도에서 벌어질 전쟁을 중국과 싸울 세계 대전급 전쟁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미국은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요구를 '지금은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춘근(국제정치학자)
2026-11-05 13:40:49
[매일춘추-서효봉]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날마다 하는 고민이다. 고민한다고 뭔가 획기적인 메뉴가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민하지 않을 순 없다. 배고프니까. 요즘 너무 반찬가게 메뉴에 의존하는 것 같아서 한 가지는 해 먹기로 했다. 아내가 내게 '환상의 계란찜'을 주문했다. 이럴 땐 유튜브를 실행한다. '계란찜'이라고 검색하고 제일 조회수 높은 영상을 터치. '환상의 계란찜'이 뭐냐고 묻는다면 푸딩처럼 탱글탱글한 계란찜이다. 내가 만들고도 감탄한, 아내마저도 인정한 촉촉함이 핵심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 끼를 잘 먹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먹는 일은 이제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다. 사람들은 유튜버들의 먹방을 몇 시간씩 지켜보고, 요리사들의 대결에 열광하고, 맛있는 음식을 좇아 다른 도시의 축제까지 찾아간다. 떡볶이 축제, 김밥 축제, 라면 축제, 만두 축제 같은 먹거리 축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린 왜 이토록 먹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걸까. 먹는다는 것은 바깥 세계를 내 몸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햇볕을 받고 자란 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이 입을 거쳐 내 살과 피가 된다. 보고 듣는 건 내 몸 밖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지만, 먹는 건 세상을 직접 받아들여 나의 일부로 만드는 일이다. 맛은 저장할 수도, 미리 당겨 쓸 수도 없어서 먹는 동안 우리는 오직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내가 이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고를 당한 아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부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끝내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동네 빵집 주인은 갓 구운 빵을 내밀며, 이럴 때 뭘 좀 먹는 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부부는 빵 냄새를 맡고, 먹을 수 있는 만큼 먹는다. 그리고 세 사람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린 상상할 수 있다. 멈춰 있던 그들의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요즘 사람들이 먹는 일에 끌리는 것도 어쩌면 이런 힘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일들이 화면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에서, 먹는 일은 온몸으로 직접 겪는 행복이며 위로다. 집도, 일자리도, 노후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에 맛있는 한 끼는 오늘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확실한 기쁨이다. 먹방과 요리 프로그램, 음식 축제는 그 기쁨을 여럿이 함께 확인하는 자리다. 결국 먹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불안을 이겨내고 어떻게든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다.
2026-11-05 11:07:20
선관위 특검은 4일 6·3지방선거 투표록을 위·변조한 혐의로 중앙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했다. 투표록(投票錄)은 투표지 관리·교부 및 투표 상황 등을 기록한 공문서로서, 일단 작성하면 당선인 임기 종료 때까지 보존해야 하는 중요 공문서이다. 충격적인 것은 중앙선관위가 투표록 조작(造作)이라는 국기문란적 범죄를 직접 지시했다는 점이다. 또 '무번호 투표용지'가 140여 곳의 투표소에 배포돼 실제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는 일련번호가 인쇄돼 있어야 한다. 선관위가 '불법 투표용지'를 무단 사용한 셈이다. 이쯤되면 선관위는 거대한 범죄 조직(犯罪組織)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선관위 특검은 이날 또 '459억원대 사전투표지 발급기 사업' 비리(非理) 혐의로 중앙선관위와 제작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중앙선관위는 사업계획을 특정업체에 사전 유출했을 뿐만 아니라, 성능평가 이후 발급기를 임의 개조한 것을 묵인했으며, 소모품의 독점 공급 구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내부 지침까지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적 규모의 투표록 조작은 선관위 최고위직이 아니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범죄이다. 수백억원대 입찰 비리 역시 실무자 몇몇의 짓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규모 부정채용 논란을 샀던 선관위는 이달 초 공명선거추진활동비 부당지급 의혹 등으로 중앙선관위원장실을 비롯한 18개 부서가 동시다발로 압수수색 당하는 수모(受侮)를 겪었다. 각종 비리·범죄는 마구 저질렀지만 결코 부정선거(不正選擧)만은 하지 않았다고 우긴다고 해서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26-11-05 05:00:00
[사설] 미국 의회 권력 교체, 투트랙 국익외교 펼쳐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을 탈환하고 하원까지 장악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獨走)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물가와 생활비 부담, 이란 전쟁 등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표출된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동안 야당의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된다. 트럼프의 일방적 관세와 동맹국 압박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지만, 이재명 정부가 트럼프와 협력해 온 대북정책과 안보·통상 합의가 민주당 의회의 견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에선 입장 차이를 드러낸 바 있다.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여건을 만든다며 연합훈련을 일방 축소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그의 노력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9월 하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그레고리 믹스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2명은 트럼프에 공개서한을 보내 사전 협의도 없는 훈련 축소가 한반도의 군사적 대비태세와 대북 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조기 전환이 능사(能事)는 아니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방위 책임, 주한미군이 중국 견제를 위한 역내 작전에 투입될 경우 방위 공백 등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한미 합의 군사적 조건과 연합방위태세에 대한 검증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대중 관계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이재명 정부는 미국 민주당과도 결이 맞지 않다. 도리어 민주당은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역할과 한국군 부담,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통제 등에서 한국의 선택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제조업 보호와 중국 공급망 의존도 축소는 민주당의 목표이다. 한국산 자동차·철강에 대한 관세 부담과 반도체 수출통제, 미국 내 생산 확대 요구가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합의가 의회의 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 미 의회조사국은 이 합의가 의회 승인을 받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공식 수정(修整)인지, 별도 합의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와 합의했더라도 미 의회 감독과 관련 입법에 따라 이행 과정에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정부는 한미관계를 냉철히 재점검해야 한다. 최근 여권 인사와 정부 관계자들의 미국 비자 발급에 차질(蹉跌)이 빚어지는 등 양국 공조를 의심케하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마저 한미 간 통상·안보 갈등이 공개적 충돌로 번질 위험을 경고했다. 백악관은 물론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 의회 상임위원회까지 아우르는 대미 외교체계를 갖추고, 대북정책과 주한미군의 역할, 통상 합의 이행 조건부터 재점검해야 한다. 미국 정치의 권력 교체에 더해 한미 간 신뢰마저 흔들린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돌아온다.
2026-11-05 05:00:00
[사설] 경북에 국립의대 신설, 의료격차·지방소멸 해소 계기로
교육부가 4일 국립경국대 의대 신설을 결정했다. 국립의대와 상급종합병원이 없던 경북 북부지역의 의료 환경을 바꿀 기회가 마련됐다. 의료 여건이 나쁘면 주민들이 떠나고, 인구가 줄면 의료기관도 외면한다. 국립의대 신설은 이 악순환(惡循環)의 고리를 끊을 중요한 계기다. 신설 의대는 정원 40명 규모로 2030년 개교를 목표로 한다. 의대 신설이 곧 의료격차 해소(解消)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정 확보와 우수 교원 유치, 교육병원 건립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정부와 경북도는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과 단계별 추진 일정을 마련해 개교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역에서 양성한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처우와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기존 의료기관과 협력해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의대 유치는 '경북 북부권의 재도약'이란 시너지 효과로 이어져야 하겠다. 의대와 대학병원은 양질의 일자리와 인구 유입을 이끌 성장 기반이다. 여기에 5성급 호텔 등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고, 산업단지 활성화와 기업 유치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의료·바이오 연구와 산업을 연계하고 관광과 문화가 지역 소비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도청 신도시를 중심으로 인근 시·군의 교통망과 관광자원, 산업단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광역(廣域) 발전 전략도 필요하다. 그래야 의대 유치 효과가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북부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국립의대 유치는 의료격차와 지방소멸을 해소하는 동시에 경북 북부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기회다. 정부와 경북도, 지역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힘을 모아야 한다.
2026-11-05 05:00:00
[관풍루] 美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상·하원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확실시되면서 신규 데이터센터 인허가 및 건설 속도를 제어할 가능성이 높아져
○…美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상·하원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확실시되면서 신규 데이터센터 인허가 및 건설 속도를 제어할 가능성이 높아져. AI 붐의 최대 수혜를 입어온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가장 큰 직격탄 맞을 듯. ○…정부가 당초 세제개편안에서 제외했던 완성 전기차를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국회와 적극 논의하기로 기류를 선회. 이미 국내 전기차 시장에 중국차가 가득 포진한 후에? ○…경찰이 최근 잇따른 관계성 범죄에 대응해 전국 사건 4만4천540건을 전수 점검한 결과, 수사 중인 사건 3건 중 1건가량이 고위험 사건으로 분류. 수많은 목숨 잃기 전에 미리 예방 좀 하지.
2026-11-05 05:00:00
2026-11-04 19:00:49
한국 힙합의 개척자로 불리던 서태지와 아이들, 1992년 3월, '난 알아요'란 곡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뒤흔든다. 대구커피계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바로 '커피명가'를 창업한 안명규이다. 달달하고 정체 불명의 '믹스커피시대'에 핸드드립에 기반한 원두커피문화를 전파했다. 1990년 경대북문에서 시작, 1992년 삼덕동 본점(2021년 33년 역사를 끝으로 철수), 이어 2010년부터는 커피박물관 스타일의 '라핀카'를 거쳐 2022년 경상시 압량읍 금구리 과수원존으로 이전, 완전체가 된 제3기 커피명가 본점시대를 론칭한다. 대구를 '커피의 도시'라고 말할 때 그의 외길 인생을 빼놓을 수는 없다. 현재 전국적 파급력을 가진 국내파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은 커피명가를 비롯, 부산의 '모모스', 강릉의 '박이추보헤미안'과 김용덕이 판을 깔아놓은 '테라로사'가 대표격이다. 부산커피의 자존심을 한껏 올려준 모모스(Momos), 2007년 온천장의 작은 테이크아웃커피점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주말 알바생으로 출발한 바리스타 전주연이 2019년 선풍을 일으킨다.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들컥 우승을 차지한 것. 모모스는 부산의 4개 직영점만 고수할 뿐 서울로 상경하지 않았다. 영도가 커피특구급으로 급부상되고 크루즈까지 머물다 가니 굳이 상경할 필요도 없다는 분석이다. 직접 부산으로 사람을 불러모으겠다는 전략이다.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들게 하는데 일조한 테라로사도 첫 시작은 소박했다. 김용덕은 1998년 21년간 일했던 조흥은행에서 명퇴, 2002년 강릉 구정면 학산리에 커피 로스팅 공장 겸 매장을 오픈한다. 꼭 부산 수영구 고려제강 부지를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인 'F1963' 스타일이다. 그들은 커피에 복합문화를 접목해 커피점을 하나의 문화관광지로 특화시켜 전국화에 성공한다. 그런 김용덕인데 최근 자신의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테라로사를 떠났다. 아무튼, 지난달 26일, 대구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5층에 테라로사 대구점이 오픈됐다. ◆1서3박한국 커피 1세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속설이 있다. '1서 3박'이다. 한국 커피의 리더로 불리는 '서정달·박원준·박상홍·박이추'를 말한다. '꼭 그들인가'라며 이설을 건네는 이들도 적잖다. 박이추(72)를 제외한 3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형국이다. 박이추는 지금 강릉에서 보헤미안이란 브랜드를 갖고 자신만의 커피왕국을 지키고 있다. 일본 규슈 오이타에서 태어난 일본교포2세인 그는 1974년 한국으로 건너와 목장업을 하다가 접고 이어 경기도 포천, 문막 등지를 떠돌다가 1986년 일본 도쿄로 커피유학을 떠난다. '일본커피연구소'의 가라사와 소장한테 레슨을 받는다. 1988년 서울 혜화동에서 '가배보헤미안'을 오픈한다. 이후 10여년 서울의 대표격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으로 자릴 잡는다. 2000년초 강릉으로 거점을 옮긴다. 연곡면 영진리 보일 듯 말 듯한 언저리에 깃을 튼다. 목요일부터 일요일에만 '단골찬스'를 위해 자기 아지트 팩토리에서 직접 드립을 해준다. 보헤미안 유전자 탓일까, 강릉 시절을 접고 울진으로 떠날 모양이다. ◆커피명가대구 커피의 탈근대화는 커피명가로부터 시작된다. 안명규. 한때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커피마니아로 인정받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경북대 북문 언저리에 닻을 내리고 대구의 커피 품격을 붐업시킨다. 1991년 커피에 공연문화를 결부시키고 실내금연 원칙까지 고수한다. 커피명가는 뽕짝판에 불쑥 등장한 '재즈' 같았다. 1992년 본점을 삼덕1가로 이전한다. 이후 커피명가의 행보는 한국 커피산업의 신기원이다시피 했다. 1992년 자가 로스팅을 필두로 1995년에는 커피숍으로서는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1997년에는 로스팅 머신 개발, 2001년에는 바리스타 교육시스템, 2002년부터는 생두를 산지에서 직구(직접구입)한다. 2003년에는 컨설팅 시스템을 구축하고 2007년부터 프랜차이즈를 시작한다. 라 핀카는 안명규를 위한 '커피뮤지엄' 같은 곳이다. 1991년부터 그는 국내에서는 희소성이 있는 커피묘목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재차 총력을 집중시켜 총사령부를 경산시 임당의 한 과수원 구역에 세운다. 멀리서 보면 미술관 같다. 여기에 참으로 귀중한 소장품이 하나 있다. 세상에 몇 대 없는 브라질 현지에서 사용하다 방치된 100년 넘은 빈티지 생두선별기다. 그가 보물이다 싶어 수송료만 무려 1억원 들여 갖고 왔다. 자본의 격랑을 타면서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심'(初心) 때문이다. 자본의 얼굴에 문화의 탈을 씌워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2009년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K) 초대회장이 된다. 요즘은 2022년 창립된 대구커피협회를 이끌며 대구커피페스타 축제를 국제화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정말 엄선된 마니아를 위한 오마카세 스타일의 원두파티를 살롱음악회처럼 진행하려고 한다. 필자도 그의 초대를 받아 4종류의 각기 다른 드리퍼를 통해 스며 나온 스페셜티 커피향을 맡아보고 왔다. 딸기케이크에서 진화한 무화과케이크도 여전히 진기를 뿜고 있었다. ◆이병규 커피클럽 꾼들 사이에는 '미스터 게이샤'로 불리는 이병규. 올해 일흔이다. 숱한 도시를 두고 굳이 대구에 눌러살고 있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본능적으로 대구였던 모양이다. 그는 '은둔고수 '같다. 좀처럼 대세에 섞이지를 않는다. 그냥 '고고청청'한달까. 1서3박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사실 한국의 '원조담론'은 자못 무협지 무공다툼 같은 구석이 없진 않으니깐. 그는 스스로 '뻘짓'하다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팔색조 같은 사내다. 건축사, 그리고 재즈마니아, 미술계의 흐름을 좋고 그러면서도 내면은 빈티지오디오광의 기운으로 충일하다. 그리고 이 흐름을 하나로 묶어주는 건 단연코 커피다. 그것도 여느 커피보다 수십 배 비싸고 계통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기 힘든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만을 무슨 '신앙'처럼 고집한다. 간판도 없다. 알아서 오는 단골뿐이다. 이웃들도 도대체 저 공간이 무엇에 쓰는 건지를 가늠할 길이 없다. 기본 3만원부터 시작하는 한 잔 가격에 대해 단골들은 토를 달지 않는다. 정말 구색을 갖춘 하이브리드급 한 잔은 8만원. 18g짜리 1인분 포장지를 뜯어 430cc를 내려준다. 어잉! 한 모금 맛을 보니 기존 커피라인이 아니다. 노랑과 황색의 경계를 파고드는 빛. 홍차, 아니 산미가 감도는 보이차 같은 향취도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그 향을 재스민과 오렌지꽃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꽃향으로 분류한다. '너무 묽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으니 그는 그게 게이샤 만의 진미(眞味)란다. 약배전의 묘수였던 걸까? 그래서, 6천~7천원에 길들여진 일반인들은 가격도 그렇고 해서 여기 올 확률이 낮다.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에도 그는 혼자 잘 논다. 반세기 함께 해온 플레이리스트로 묶어놓은 곡들을 샘물처럼 퍼올린다.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고 쿵짝이 맞는 꾼들과 '묻지마 뻘짓파티'를 하자는 게 이 클럽의 모토다. 필요 경비는 건축일을 해서 대충 충당한다. 그의 커피 이력은 올해로 38년, 그의 사부는 도쿄 긴자의 뒷골목에 있는 '카페 드 란브르'를 사수한 1914년생 '세키구치 이치로'였다. 24년 전, 포항시청 근처에서 핸드드립 전문 '커피 아뜨리에'를 오픈한다. 2008년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게이샤' 씨앗을 갖고 들어왔다. 2010년 1월 수확 때 에스메랄다 농장주 피터슨가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도 했다. ◆게이샤란 '게이샤'. 일본 기생(藝者) 이름이 아니다.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서남쪽 카파의 숲인 '겟차(Gecha)'의 영어식 발음(Geisha)이다. 케냐 탄자니아와 코스타리카를 거쳐 '파나마 게이샤'란 이름으로 유명해진다. 원래 에티오피아 게이샤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그렇고 그런 종자였었다. 파나마로 건너와 돌연변이를 일으켜 독특한 향을 갖게 되면서 '세계 스페셜티 커피의 여왕'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게이샤는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1936년 영국 영사 리처드 월리가 에티오피아 종자를 수집해 연구용으로 관리한다. 당시에는 병충해, 특히 커피 녹병에 대한 저항성이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 종자는 훗날 코스타리카의 한 농업 연구기관에 보존된다. 파나마 농가들도 병해 저항성을 기대하며 이 품종을 들여온다. 이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주역이 바로 '에스메랄다' 이다. ◆에스메랄다란 에스메랄다는 파나마 보케테 지역에서 게이샤 종자를 키우는 농장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원래 소 목축지였던 농장을 1967년 스웨덴계 미국인 은행가 루돌프 피터슨이 인수 1997년 피터슨 가족이 고지대의 자라미요 농장을 확보한다. 마구잡이로 키우지 않고 고도·품종·가공방식별로 농장을 특화시켜나갔다. 현재 자라미요를 비롯 '카냐스 베르데스', '엘 벨로' 등 3개 구역으로 농장이 분산돼 있다. 파나마 게이샤(세계 최고로 평가받았을 때 품종은 '게이샤 스페셜')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결정적 해는 2004년으로 'BOP'(Best of Panama)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1파운드(453.5g) 당 21달러. 일반 커피보다 무려 40배 비싸게 팔려 난리가 난다. 참고로 지난해 게이샤 스페셜 최고 경매가는 한 로트(20kg)에 60만4천80달러. 이때 한국 로스터기 제조사 '스트롱홀드'가 공식 로스팅머신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그해 두바이의 한 매장에서는 이 커피를 한 잔에 980달러, 당시 환율 기준 약 130만~140만원. wind3099@hanmail.net
2026-11-04 14:46:51
윤용희 경북대 명예교수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 출간
윤용희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공화당 트럼프와 민주당 해리스 대결)'를 이달 초 출간했다. 윤 교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대통령제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며 이 책의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2026-11-04 13:54: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9>민영익과 허련, 운림산방과 광주비엔날레…김정희의 유산
휘날리는 점획의 활력적인 붓질과 시커먼 먹빛으로 사나워 보이는 돌덩이를 대담하게 그린 '괴석' 대련은 민영익이 '죽동궁 주인'으로 불리던 20세 전후의 작품이다. '소년세도'라고 했던 젊은 민영익의 기세등등한 권세를 필묵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민영익의 집안은 그가 태어났을 때 만해도 가세가 보잘 것 없었으나 인척인 고종비 명성황후 민씨(1851~1895)가 권력을 잡으면서 아버지 민태호, 숙부 민규호가 벼슬길에 올랐고 집안이 피기 시작한다. 민영익은 외아들이었으나 16세 때 명성황후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황후의 친정 제사를 받드는 조카이자 고종의 외사촌이 돼 순식간에 민씨 외척 세력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민영익은 아버지와 숙부가 진외가의 당숙인 김정희 문하에서 글씨를 배워 서예의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글씨를 잘 썼다. 19세 때 소치 허련(1808~1893)을 죽동궁 사랑채에 머물게 하며 그림을 그리게 한 일이 있다.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으며 18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정3품 당상관인 이조참의가 돼 조정의 인사권을 모두 쥐었을 때다. 민영익은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붓을 잡았을 만큼 서화를 사랑했다. 민영익은 김정희의 애제자인 노대가 허련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나이 차가 무려 50여 년일 뿐 아니라 신분도 하늘과 땅 차이이고 필묵적 개성 또한 너무도 다르다. 그러나 농담의 짧은 터치를 중첩시키며 수직으로 높이 솟은 괴석을 마치 땅 위에 심어놓은 듯 그린 것은 허련의 영향이다. 허련의 '괴석도' 두 폭이 2026 광주비엔날레 제3전시실에 나왔다(11월 15일까지). 진도 출신인 허련은 스승이 작고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위한 여행을 하며 만년을 보냈다. 운림산방은 호남 남종화의 진원지가 돼 허씨 집안에서 화가를 연이어 배출하며 순수미술의 저변을 넓혔다. 올해 31주년이 되는 광주비엔날레는 허련과 운림산방으로부터 200여 년을 이어져온 김정희의 유산이다. 2026년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릴케의 시구인 '너는 네 삶을 바꿔야한다'이다. 김정희가 서예의 혁신을 이룬 방법론은 고전의 바다로 들어가 자신만의 면목(面目)으로 나온 입고출신(入古出新)이었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2026-11-04 09:40:20
2018년 11월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있었다. 시작은 유류세(油類稅) 인상에 대한 반발이었다. 마크롱 정부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유류세를 인상했다. 그러나 서민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농촌이나 중소도시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마크롱 정부는 금융자산 과세를 줄였다. 결과적으로 부유층은 세금을 덜 내고 서민은 더 내게 됐다. 시위대는 생활비 부담과 소득 불평등 문제까지 제기했다. 2026년 9월 프랑스 고등학교 교사들이 파업했다. 교사 부족과 교육 환경 악화가 원인이다. 이번에도 에너지 가격과 생활비 상승에 따른 경제적 불만이 표출됐다. 아니 폭발했다. 프랑스 재정 적자는 심각하다. 복지 지출이 GDP의 30%나 된다. 다른 선진국보다 연금을 일찍 받고 액수도 크다. 개인이나 국가나 빚을 줄이는 방법은 같다.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증세(增稅)는 노란 조끼 시위를 초래했다. 긴축 재정으로 나빠진 공교육은 폭동의 방아쇠가 됐다. 유럽과 미국의 강경 우파는 이민자 가정의 무슬림 청년들이 과격 시위를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증거는 없다. 이번 시위가 파리 외곽에서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이 지역에는 청년과 이민자가 많다. 이민자 상당수는 무슬림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하다. 이번 시위의 동력은 생활고다. '레미제라블'이 주동자다. 가난한 사람들은 증세를 감당하지 못한다. 세금 낼 돈이 없다. 공공서비스 축소도 견디기 어렵다. 더 나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부유층 증세를 주장해 왔다. 그는 조세 불공정을 노란 조끼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해결책으로 '국민연대세'를 제안했다. 순자산 1억 유로 초과분에 연 5%, 10억 유로 초과분에 연 10% 세율을 적용하는 안이다. 이 돈을 교육, 연구, 의료, 에너지 분야에 투자하자고 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덜 싫어할 뿐이다. 민주당에서는 민주사회주의자들이 돌풍을 일으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민주사회주의의 세(勢)가 커졌다.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선전했다. 맘디니는 뉴욕 시장에 당선됐다. 이번에는 워싱턴 D.C. 시장도 배출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체스카 홍은 위스콘신 주지사 민주당 경선에서 0.41%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한국계 싱글맘이다. 바텐더이자 요리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민주사회주의가 인기를 얻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소득 불평등은 지금 가장 심각한 재앙이다. 자산 1조 달러 이상인 '조만장자'가 탄생하는데 위스콘신주 최저임금은 시간당 7.3달러다. 점진주의는 무책임하다. 큰 위기에는 큰 해결책이 필요하다." 버니 샌더스는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고 하지만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온건하다.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력 집중을 교정하는 것이 목표다. 점진주의자다. 반면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자체를 문제시한다. 복지 확대와 소득재분배로는 부족하다. 목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자본주의 너머에는 사회주의가 있다. 결국 민주사회주의는 사회주의다. 다만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한다. 민주사회주의의 부상(浮上)은 사회민주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샌더스식 개혁조차 좌절되자 이제 사람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생겼다. 이는 그저 남의 나라 일인가? 우리나라에서도 조짐이 보인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가?"라는 질문에 30대 73%, 20대 6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응답자 65%는 우리나라도 생활비 상승과 교육 환경, 공공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여당의 한 의원은 폐버스를 개조해 청년 주택으로 쓰자고 했다. 국토부는 고시원에 욕조 설치를 허용하는 안을 내놨다. 현실과 거리가 먼 정책들이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30대 77%, 20대 70%로 나타났다. 이유 있는 불만이다.
2026-11-04 09:37:50
[사설2] 물가 잡았다는 정부, 각 부문 가격 상승 압력 더 거세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년째 3% 안팎을 맴돌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인데, 석유류 가격은 14.9% 급등했고,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根源物價)마저 2.8% 올랐다. 농산물 가격 하락(-7.5%)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갈수록 거세진다는 뜻이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등 정책 효과를 내세우며 물가가 주요국보다 안정적이라고 자평(自評)하지만 중동전쟁발 비용 상승 압력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가공식품이나 외식 가격은 원자재 가격이 안정돼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비용 충격의 전이, 수요측 압력 증대 등으로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며, 11월에도 소비자물가 2%대 후반 상승을 내다봤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지속하고, 김장철을 앞두고 역대 최대인 640억원 규모의 할인·공급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가격을 억누르거나 재정을 투입해 할인하는 방식으로 생산·유통 과정에 누적된 비용 상승분까지 없앨 수는 없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동안에도 물가 압력이 누적(累積)되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경고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물가 불안이 지속되면 결국 한국은행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지난 8월 기준금리를 연 3.00%로 올린 데 이어 이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3.25%로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자영업자는 고물가와 고금리 충격에 훨씬 취약(脆弱)하다. 정부가 물가 정책 성과를 자랑하는 동안 국민은 비싼 생활비와 무거운 이자 부담에 짓눌릴 처지다. 정부는 일시적 할인 지원이나 가격통제에 매달릴 게 아니라 유통비용 절감과 공급망 안정, 시장 경쟁 촉진 등 가격 상승의 구조적 요인을 해결해야 한다. 재정지출이 물가 압력을 키우지 않도록 우선순위도 따져야 한다. 물가를 잡겠다며 늘린 재정 부담에다 금리 비용까지 국민이 떠안게 된다면 과연 성공한 물가정책이라고 평할 수 있겠는가.
2026-11-04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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