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2 19:04:47
반나절을 빈둥대다가 봉두난발로 시내 대형서점에 갔다. 얼마 전 한 층을 없애고 코너를 합치는 리모델링으로 서점 분위기와 다소 멀어진 책방이다. 덩달아 내 마음도 멀어졌다. 매주 한 번은 들르던 곳인데 몇 달 만인지 모르겠다. 온라인서점이 대세이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만, 못내 아쉽다. 그럴 때면 종종 동네 책방을 찾는다. 이날도 그랬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작은 문과 더 작은 간판을 둘러싼 네온 불빛이 켜진다. 무언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오늘은 여행 작가의 특강이 있는 날이다. 다른 때보다 많은 이들이 공간을 채울 것이다. 낯익은 얼굴과 낯선 이가 한데 모여 글자가 피워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준비를 마쳤다. 공간을 떠다니는 문장으로 오늘의 기쁨과 내일 살아갈 연료를 보충한다. 이만하면 호화롭고 넉넉하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아쉽다. 더 많은 사람이 참석했더라면. 그러기엔 공간이, 한정된 자리가……. 매번 같은 생각이다. 지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아담하고 소담한 동네 책방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예전 동네 책방 행사가 작가와의 대화나 북 토크(충성 고객과 미래의 단골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알짜배기 프로그램이다.) 수준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각자 개발한 고유의 콘텐츠로 분투 중이다. 예컨대 시지에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단계별·장르별 책 읽기 프로그램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동네 책방이 있고, 예술 관련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달서구 어느 책방은 미학 관련 서적을 함께 읽고 전문가 강의를 들으며, 계절에 따라 인근 습지 탐방 시간도 가진다. 혁신도시와 앞산에는 그림책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책방도 있으며, 수성시장 인근의 서점은 영문 원서 읽는 모임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다른 얘기를 해보자. 서점에서 음료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융합의 시대에 책이라고 예외일 순 없는 노릇. 카페에 책을 얹거나 책방에 커피를 추가하는 건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니다. 어떻게든 수익의 다원화로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는 자구책일 터. 자투리 공간에 갤러리를 만들고 전시하는 일도 다반사다. 음료와는 별개로 모든 책방은 큼지막한 통유리를 통해 오가는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이룬 듯하다. 창문에 독서와 관련한 레터링이나 신간 안내 전단 등을 덕지덕지 붙인 서점은 더는 없다. 어느 때보다 개인정보와 보안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책 읽는 자신의 모습이 유리창 밖으로 비춰지고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시대. 손님은 기꺼이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주며 심지어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친밀한 인물들이 자리를 채우는 구조.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공간을 점유하여 책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지금 동네서점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민의 사랑방이자 지식과 지혜의 전달자 동네 책방. 따뜻한 공기로 채워진 공간이 주는 아늑하고 친밀한 정서는 대형서점이 흉내 내기 힘든 지점이다. 해거름 무렵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책방 풍경, 알전구가 켜진 화사한 공간에서 누군가 열심히 책을 뒤적이는 모습처럼 따뜻하고 안온한 미장센이 또 있을까 싶다. (추신) 언제부턴가 투명한 비닐봉지에 책을 담아주기 시작했다. 여전히 종이봉투를 사용하는 동네서점이 많지만. 디자인 진보로 볼지, 마케팅 측면으로 볼지, 환경문제 차원으로 볼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하긴, 책 한 권이라도 사는 게 어딘가.
2026-04-22 17:06:16
경상북도 성주는 예로부터 생명의 기운이 깃든 땅으로 불렸다. 세종대왕의 왕자들과 단종의 태실이 자리한 이곳은 오랜 세월 나라의 미래를 기원하던 공간이었고, 오늘날에는 황금빛 참외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 참외 생산의 약 85%를 차지하는 성주는 단일 작목만으로도 연간 6천억원 이상의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보기 드문 사례로 우리 농업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 지역이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성주 들녘의 비닐하우스를 채우는 노란빛은 단순한 수확의 풍경이 아니다. 한 작목을 중심으로 연구와 생산, 유통과 교육이 긴밀히 맞물리며 지역의 산업과 삶을 함께 떠받치는 현장이다. 그래서 성주참외 이야기는 곧 지역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 참외 산업은 분명한 전환점에 서 있다. 농촌의 고령화와 인력난, 기후변화에 따른 재배 환경의 불안정, 병해충의 상시화, 치열해지는 유통 경쟁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 특히 참외는 작업 특성상 허리와 무릎에 부담이 큰 작목이다. 이제는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것만으로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노동 부담은 덜고 품질과 소득은 높이는 방향으로 재배 방식과 산업 구조도 함께 바꾸어야 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경북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가 있다. 하향식 수직 재배와 포복형 수경재배는 작업 부담을 낮추고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을 넓혔다. 노동 시간은 27% 줄고, 농가 소득은 42% 느는 실질적인 지표도 만들었다. 여기에 담배가루이(노린재목 가루이과 곤충) 스마트 포획기, 접목 로봇,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 영농 관리 시스템을 더해 경험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데이터와 장비를 활용한 정밀 농업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제 성주의 농업은 AI 기반 스마트 농업으로 진화하며 농촌 소멸 위기를 극복할 근본적인 해법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은 수출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저장성과 선도 유지 기술이 확보되면서 참외는 항공 중심의 고비용 구조를 벗어나 선박 수출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17년 만에 베트남 시장 진출이 성사되었다. 현재 성주참외는 홍콩·싱가포르·호주 등 15개국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국제 규격에 등록된 'Korean Melon'(코리안 멜론)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를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경쟁력은 사람에게서 온다. 조원호 마이스터나 이명화 명인과 같은 선도 농업인이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실증하고, 후배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며 지역 전체의 역량을 높여 왔다. 이 같은 개방적 학습 문화는 위기 상황에도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 주는 자산이 되고 있다. 지역 특화작목의 성공은 좋은 품종이나 새로운 장비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을 믿고 실천하는 농업인, 성과를 함께 확산하는 공동체, 현장을 중심에 두는 연구까지 한 박자가 되어야 한다. 성주참외는 그런 의미에서 지역 특산물을 넘어 농업 혁신 사례로 읽힌다. 성주가 오랜 재배 경험과 집적된 산지 기반, 연구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참외의 미래를 다시 쓰는 것처럼, 지역 특화작목의 경쟁력 역시 그 지역의 자연과 사람, 기술이 얼마나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잘 만든 특화작목이 지역을 살리고, 그 지역의 농업은 또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성주참외가 오롯이 증명해 보였듯이.
2026-04-22 15:02:04
절집음식. 질박할 수밖에 없다. 고기도 없고 늘 짠지에 된장, 두부, 괜찮은 날에는 국수에도 감동한다. 승가에서는 그 국수를 자신들을 미소짓게 한다 해서 '승소'(僧笑)라 한다. 참 운치가 있는 말이다. 초근목피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그 절간음식이 국민힐링식, '사찰음식'으로 가광을 받고 있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 때문이다. 웨이브(Wavve)의 웰니스 야심작 '공양간의 셰프들'이다.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백수저'로 TOP7에 오른 선재 스님과 '셰프의 테이블'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정관 스님을 비롯해 계호·적문·대안·우관 스님까지 내로라하는 6인의 사찰음식 명장이 모인 탓이다. ◆사찰음식 신드롬 사찰음식은 '약선음식' 붐과 함께 연동돼 발진됐다. 대한민국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스님이 물꼬를 텄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붐을 일으키던 1993년. 간경화 말기로 시한부 진단을 받았지만 식습관을 바꿔 사찰음식을 통해 몸이 건강해진 스님이 덕분에 사찰음식 대중화에 매진할 수 있었다. 사찰음식이란 용어가 처음 공론화 되기 시작한 건 1990년부터. 그해 서울 리베라·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전국비구니스님이 모여 사찰음식 잔치를 벌였다. 국내 사찰음식의 선풍을 일으킨 선재 스님은 1994년 9월부터 불교TV에서 '선재스님의 푸른 맛 푸른 요리'란 프로를 진행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친다. 그해 펴낸 '선재스님의 사찰요리'(디자인하우스 간)도 일조한다. 이어 경남 산청 금수암 주지 대안 스님이 등장한다. 금당사찰음식문화원 원장인 대안 스님은 동국대에서 '사찰음식이 대중화 방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때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옆 사찰음식 전문점의 총책임자가 된다.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정관 스님은 백양사 천진암에서 사찰음식세계화에 일조하고 있다. 얼마전 나온 그의 삶과 요리를 담은 책 '정관스님 나의 음식'(윌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80년대 서울 인사동에 전국 첫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이 생긴다. 적묵 스님이 론칭을 한 것이다. 경주의 사찰음식점 향적원의 혜연 스님도 일명 '채소육개장'으로 불리는 '채개장'에 일가견이 있다. ◆사찰음식은 뭐가 다른가 사찰음식은 일반 음식과 어떻게 다른가. 부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음식을 크게 유정(有精)과 무정(無精)으로 나눈다. 유정은 동물이고 무정은 식물, 무정 위주의 식사를 하라고 가르친다. '중일 아함경'에 관련 문구가 나온다. 음식이 각각 성품이 다르다고 적는다. 동적 식품으로는 육식과 생선, 어패류와 '오신채'(五辛菜, 파·마늘·달래·부추·흥거)가 대표적이다.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심이 나고 날로 먹으면 성을 잘 내게 된다고 해서 승려들은 요리할 때 사용하지 않는다. 이 음식이 동적인 식품으로 분류되는데 술, 조미료, 설탕, 인스턴트 음식도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니 동적 식품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럼 정적인 식품은 어떤 건가. 주로 채소류이다. 특히 콩과 두부는 훌륭한 식물성 단백질이다. 정적 식품은 다시 탁한 것과 맑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탁한 건 밀가루와 고추, 잣이나 호두 같은 기름진 것이다. 맑은 건 당연히 차(茶)다. ◆먹을 때 폼새 사찰음식은 먹을 때 자세가 평소와 좀 달라야 한다. 그냥 혀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부처는 3000년 전에 이미 신토불이를 강조하셨다. 사람은 무릇 자신이 태어난 곳의 것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건강할 때는 100리 안의 것을 먹지만 몸이 조금 안 좋을 때는 70리 안에서, 더 많이 아플 땐 30리 안의 것만을 먹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특히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가까운 자연에서 나는 산물이 가장 효력이 좋다. 절간에는 정말 각종 장류를 숙성시키는 옹기가 많다. 발효음식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조선 때 궁중 어의였던 허준은 조선 임금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40대에 세상을 뜨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누가 장수하는지를 찬찬히 살폈다. 스님들이 가장 오래 사는 걸 알게 된다. 그들에게 장수 비결을 물어봤는데 스님들은 좀처럼 알려주질 않았다. 자기들이 먹는 음식 때문이라고 하면 진상품으로 분류될까 염려가 된 것이다. '절대 진상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스님들이 가리킨 것은 바로 장독대였다. 직접 담근 된장·고추장·간장이 바로 장수의 열쇠였던 거다. 이 때문에 장류 말고 메주는 진상품에 들어가게 된다. ◆발우공양사찰은 장류과학의 출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음식에 오신채를 쓰지 않는 만큼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장이 필수적이다. 사찰에서 담그는 김치는 고춧가루 외에 간장으로 맛을 낸다. 파·마늘·부추는 물론 액젓도 쓰지 않으니 맛을 내는 유일한 조미료가 장류인 셈. 둘째는 보관이다. 먹을거리가 한정된 사찰에선 한겨울에도 채소의 영양분을 부족함 없이 채우기 위해 장아찌 같은 저장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에너지 문제다. 육식을 하지 않는 스님들이 채식으로만 힘을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충해 주는 것이 발효음식인 장류인데 특히 콩으로 만든 메주는 질 좋은 단백질의 보고이기도 하다. 절집안만의 전통 식사법이 있다. 바로 '발우공양'(鉢盂供養)이다. 일반인은 발우공양이 언감생심. 고작 템플스테이를 통해 단기출가를 하면 그 과정의 일단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발우공양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다. 예상보다 꽤 공양 과정이 무척 디테일하고 의미심장하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두 우바새(여성 신도)로부터 최초의 공양을 받는다. 이때 사천왕이 돌그릇을 각기 하나씩 부처님께 드렸고, 부처님은 이 발우 네 개를 포개어 사용했다고 한다. 그 후 부처님 제자들도 부처님을 따라 네 개의 발우를 써서 공양을 하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발우'(鉢盂)는 뭔가. 스님들이 쓰는 그릇을 말한다. '발'(鉢)은 범어로 '응량기'(應量器)라 번역된다. 이는 '수행자에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란 뜻이다. '우'(盂)는 '밥그릇'이라는 뜻의 한자이다. 발우는 포개지는 네 그릇으로 구성된다. 큰 순서대로 어시발우·국발우·청수발우·찬발우이다. '어시발우'에는 밥을 담고, '청수발우'에는 '청수'라고 불리는 물, '국발우'에는 국, '찬발우'에는 반찬류를 담는다. 공양 할 때는 발우를 들고 입이 보이지 않게 먹으며 떠들거나 씹는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공양을 다 마칠 때쯤에 숭늉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발우에 묻은 기름기를 제거하기에 좋다. 남겨놓은 무 조각이나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발우를 깨끗이 닦아 숭늉을 마시고 맨 처음에 받았던 청수발우의 물을 어시발우에 부어서 국·찬발우 순서로 차례차례 물을 옮겨가며 손으로 닦는다. 공양을 다 마칠 때쯤에 숭늉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발우에 묻은 기름기를 제거해야 된다. 남겨놓은 무 조각이나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발우를 깨끗이 닦아 숭늉으로 마신다. 맨 처음에 받았던 청수발우의 물을 어시발우에 부어서 국·찬발우 순서로 차례차례 물을 옮겨가며 손으로 닦는다. 청수물로 찬발우까지 다 닦았으면 청수통에 찌꺼기 없이 맑은 청수물만을 부어서 모아놓는다. 이때 만약 모아놓은 청수물에 작은 찌꺼기라도 있으면 그 청수통에 물을 부은 줄에 앉은 모두에게 다시 청수물을 나눠 마시게 한다. 마지막으로 '해탈주(解脫呪)'를 외면 공양이 끝난다. 발우공양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다. ◆공양간 미학 규모에 따라 전국에 지역별로 25개 본사(큰 사찰)가 있고, 각 본사 관할 구역에 소속되어 있는 말사(작은 사찰)가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은 지역별로 서울 280여 개, 경기 490여 개, 강원 200여 개, 충청 460여 개, 경상 1천420여 개, 전라 470여 개다. 물론 그 절마다 고유한 공양간 문화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절 업무가 워낙 많아 스님이 다 감내하기 어렵다. 속인의 힘을 빌려야 할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공양간을 책임지는 공양주도 예전에는 스님의 몫인데 이젠 세인의 몫이 되고 있다. 몇 년 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수도산 북쪽 불령동천 암반에 깃든 청암사. 거기에 멋진 '공양간'을 취재하고 온 적이 있다. 공양주는 일단 밥을 짓기 전에 정성을 올린다. 공양간을 굽어 살피고 있는 부뚜막신인 조왕께 올리는 조왕경을 읊으며 불을 지핀다. 물론 공양간 부뚜막 위에 조왕단이 설치돼 있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민화다. 조왕신을 가운데로 하고 왼쪽 '담시역사'(擔柴力士)는 땔감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양간 소임 용어는 참 재밌고 흥미롭다. 스님들은 맡은 일에 따라 직책이 주어진다. '공양주'(供養主)는 밥, '채두'(菜頭)는 반찬, '갱두'(羹頭)는 국, '정두'(淨頭)는 해우소, '욕두'(浴頭)는 목욕물 소임이다. '불목하니'는 땔감 나르고 불 때는 머슴인데 요즘은 행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공양주는 일명 '반두'(飯頭)라고도 한다.
2026-04-22 14:33:05
대체 뭣 때문에. 민수 씨는 한숨을 내쉽니다.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좀 떨어진 카페에 와서 블랙커피와 베이글을 주문했습니다. 블루베리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베이글은 아무 맛도 없습니다. 단 걸 먹으면 좀 나을까 싶어 딸기 케이크를 추가 주문했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민수 씨의 입맛이 이처럼 뚝 떨어진 건 연희 씨 때문입니다. 지지난 주 소개팅에서 만난 연희 씨와 엊그제 세 번째 데이트를 했습니다. 비록 두 시간 남짓의 짧은 데이트였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취향도 비슷했습니다. 둘 다 앙드레 가뇽의 연주를 좋아했고 청국장을 좋아했으며 심지어 셍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은 횟수도 같았습니다. 두세 번도 아니고 여덟 번이나 읽을 정도면 감성 또한 닮은꼴이라 여겼습니다. 그 생각을 밝혔을 때 연희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근데 대체 뭣 때문에. 문득 여행 얘기를 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지난달 영월에 갔다 왔습니다. 민수 씨는 영월의 동강을 동편제로, 서강을 서편제로 묘사했습니다. 내가 좀 잘난체했나? 하지만 그때 연희 씨는 근사한 비유라며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했더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굳이 한 가지 들자면 무슨 말끝에 "연희 씨, 말귀가 되게 어두운데요?"라고 했던 것. 연희 씨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여행을 갈 형편이 못 된다는 연희 씨의 말에 "저는 가벼워진 주머니를 여행에서 얻은 감동으로 채워 넣지요"라고 했습니다. 연희 씨가 영월에 못 갈 정도로 가난하다 여기지 않았으므로 '형편'을 슬쩍 '주머니 사정'으로 비틀었던 것입니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연희 씨가 민수 씨의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문자나 메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수 씨는 애가 탔습니다. 똥볼을 찬 게 분명해.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민수 씨는 퇴근 후 소개팅을 주선한 지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연희 씨가 혹 여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트라우마는 무슨. 연희 씨는 여행 갈 형편도 못 돼. 사실 소개팅도 시간이 없다는 걸 간신히 설득한 거야" 연희 씨가 했던 말과 비슷했습니다. "형편이 못 된다니?" 민수 씨의 물음에 지인은 "참 안됐어" 그 말부터 꺼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민수 씨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농담이라는 경기의 골대 규격은 골키퍼의 조건에 맞춘다는 것. '이제 어쩌지?' 지인이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돌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어머니가 청각장애인가봐. 언어장애도 있는 데다 요즘 거동이 불편하다지 아마"
2026-04-22 10:49:05
시대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德目)이 있다. 국가의 번영은 그러한 덕목을 갖춘 지도자가 국민과 함께 자신들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때 달성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능력의 극대화'는 신의(信義)를 바탕으로 해야만 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의 번영을 도모하려면 신의에 기반한 사회의 구축이 급선무이다. 그래서 예부터 신의는 최고의 가치를 갖는 사회 원리로 작동해 온 것이다. 요즈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청와대 오찬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적어도 그의 입장에서는 '밑지는 장사'는 아닌 듯싶다. 정계를 은퇴한 사람에게 큰 관심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홍준표는 5선 국회의원, 경남도지사, 대구시장을 비롯하여 한나라당과 자유한국당 대표, 자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제19대 대선) 등을 지낸 거물 정치인이다. 비록 "당이 나를 버렸다"고 선언하면서 정계(政界)를 떠나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보수의 큰 자산이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영향력 있는 원로이자 지도자이다. 가설적이긴 하지만 홍준표만 한 인물이 국민의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과연 그 당이 오늘과 같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한 모습을 보일까 반문해 본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그는 '보수의 아이콘'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둔갑하려고 한다. 그는 '인간의 정'과 'TK신공항 건설'을 이유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처럼 그가 보수 진영과 영원한 작별을 고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수의 재건을 위한 마지막 충정인가, 지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받은 섭섭함의 극단적 표출인가, 아니면 국무총리 자리라는 반대급부(反對給付)가 도사리고 있는가. 지난 17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홍준표는 "국민을 위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마음으로 나라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말들을 나누었으며…TK신공항 지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법적 제한 해결, 손학규 선배 관련 등의 부탁을 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국무총리가 되어 대한민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라는 고백처럼 들림은 왜일까? 홍준표는 "30년을 당에 충성하는 정치를 했으니, 이제 나머지 인생은 국익에 충성하며 살기로 했다"라고 말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누구나 국가에 헌신해야 할 책무를 진다. 그런데 그의 이념과 그가 누려 온 보수 정당에서의 소임(본인은 혜택을 받은 바 없고, 자신의 가치로 당선되었다고 주장함)을 감안한다면, 30년 동안이나 자신이 몸담았던 보수 진영에 헌신하는 형태로 국익에 충성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신의에 맞지 않을까. 그는 "한국의 정치가 국가의 이익을 위한 다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감(私感)으로 다툼을 한다"고도 하며 아쉬워했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국민의힘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그가 국가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보수의 원로로서, 어느 경우든 '이 지경이라는 한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홍준표가 스스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는 존경받는 지도자의 모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국익에 충성하겠다'는 그의 말, '신의를 저버린 배신자'라는 비판, 어느 쪽이든 결국 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2026-04-22 05:00:00
[사설] 정보 공유 제한 한·미 갈등 증폭시켜 무엇을 얻겠다는 건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북한 '구성시 핵(核) 시설' 언급으로 비롯된 미국의 정보 공유 제한 조치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상응 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21일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관련 정보는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미국에 제공하는 부분도 있어 양측 간에 상호 보완적인 성격도 있다. 미국의 조치에 대해 우리 측도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론에 말했다. 갈등(葛藤) 해소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확대·증폭하는 셈이다. 당사자인 정 장관은 20일 "정책 설명을 정보 유출로 모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오히려 반발했다. 하지만 굳이 '구성시'를 언급하지 않고도 충분히 정책 설명을 할 수 있었다. 또 각종 국제 보고서·논문 등에서 "구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해명하지만, 학계 등에서 추정(推定)하는 것과 정부 고위 당국자가 비밀 북핵 시설이 있는 지역을 특정해 확인(確認)하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정 장관은 북핵 관련 기밀 정보를 공개적으로 발언함으로써 북한에 우리가 이만큼 알고 있다는 정보 역량(力量)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이를 바탕으로 보안 체계를 점검하고 한·미 스파이 색출에 나설 수 있다. 국가 안보 훼손(毁損) 행위로 비판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인도를 국빈 방문 중임에도 불구하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정 장관이 '미국이 알려 준 기밀을 누설'했음을 전제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잘못"이라며 두둔하고 나섰다. 미국을 향한 '어디 한번 해보자'는 식의 정부 태도는 이 같은 정 장관과 이 대통령의 인식(認識)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올해만 7차례나 탄도미사일을 쐈고, 지난 19일에는 단 한 발로 축구장 18개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집속탄과 파편지뢰 탄두를 장착한 전술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안보를 우선하는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어느 때보다 한미동맹(韓美同盟)을 중요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2026-04-22 05:00:00
[사설] 사건 뭉개고 질질 끄는 경찰, 검찰청 폐지 후 일상이 될 풍경
경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사건 관계인에게 접대를 받고 수사를 무마(撫摩)하는 등의 일이 터지자, 경찰청이 '비위(非違) 경보'까지 발령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질질 끌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내부 비위와 수사 불신이 겹쳐지면서, 권한이 집중된 경찰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20일 경찰청은 "최근 경찰의 스토킹 부실 대응, 수사 정보 유출 등 비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며 비위 경보를 발령했다. 이날 검찰은 인플루언서의 사기 사건을 덮은 혐의를 받는 서울 강남경찰서 간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검찰이 피고소인 남편의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다 포착(捕捉)됐다. 검찰의 별도 수사가 없었다면 사건 무마 의혹은 묻힐 수 있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수사권은 물론 수사 종결권(終結權)까지 쥐면서 경찰 단계에서 사건을 덮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특정 사건의 처리 속도도 불신을 키운다. 뇌물 수수 등 13가지 의혹을 받는 김병기 의원(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는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수사도 5개월을 끌다가, 21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지난 1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산업재해 은폐(隱蔽) 의혹을 집중 수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공권력의 핵심은 국민 신뢰다. 경찰은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최근의 기강(紀綱) 해이(解弛)는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다. 조직의 윤리와 통제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특정인에 대한 수사 지연은 '봐주기 수사'란 의혹을 낳고 있다. 법 집행의 공정성은 신뢰의 출발점인데,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함께 민주당 강경파의 뜻대로 검찰의 보완수사권까지 사라지면, 경찰은 수사뿐 아니라 사건의 종결까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 억울한 국민은 어디서 하소연하나.
2026-04-22 05:00:00
[사설] 고용노동부도 헷갈리는 '사용자성', 노봉법 이대로는 안 된다
편의점 씨유(CU)의 경남 진주 물류센터 앞에서 화물연대 경남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차량 출입을 저지하려다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20일 발생했다. 사태의 핵심은 원청(原請)의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대립에 있다. 화물연대 측은 배송 지침이나 운송료 등 노동조건을 원청인 BGF리테일이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으므로 '진짜 사장'이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측은 배송기사들이 개별 물류센터와 계약한 협력 운송사 소속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므로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고용노동부마저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저녁 설명자료를 내고 화물연대가 노조법상 노동조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번 사태가 노란봉투법에 따른 원·하청 교섭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미 최근 법원에서는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임을 인정하는 추세인데도 말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화물차주에 대해 "계약 형식과 무관하게 전속성·지휘통제·소득 의존성이 인정되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CU 화물노동자들은 다단계 하청(下請) 구조 때문에 장시간 운송과 저운임에 시달려 왔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원청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노동위원회나 법원의 사용자성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지난 7일부터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시차(時差)의 문제는 있더라도 결국 이 갈등의 본질(本質)은 노란봉투법의 핵심인 '사용자성 확대'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사고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동시에, 갈등의 근원(根源)인 노란봉투법의 미비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국무총리조차 사용자성 인정 범위의 법적 보완 필요성을 시인한 만큼, 원점 재검토를 포함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2026-04-22 05:00:00
[관풍루]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 "1주택자 장특공 폐지 논의한 적 없어…국힘 거짓 공세"라며 실거주자 보호 강조.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 "1주택자 장특공 폐지 논의한 적 없어…국힘 거짓 공세"라며 실거주자 보호 강조. 범여권 발의 법안 어디에도 실거주자 관련 조항 없는데, 야당의 악의적 프레임으로 덮어씌우는 근거는? ○…가족 국적, 외화 자산, 고려대 편입학, 증여세 논란 속에 이재명 대통령,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임명안 재가. 통화정책 수장 공백 없어야겠지만 과연 논란 덮을 만한 '업적' 내놓을지 지켜봐야. ○…BTS 소속사인 하이브 방시혁 의장에 대해 경찰, '1천900억원 부당이득 혐의'로 수사 착수 16개월 만에 구속영장 신청. 늑장 수사 비판에도 꿈쩍 않다가 하필 BTS 월드투어 시작하자 갑자기?
2026-04-22 05:00:00
2026-04-21 19:06:51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 탄생 481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 세계는 러·우 전쟁에 이어 미·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사태로 대혼란에 빠진 상황이다. 이 혼란한 시기에 전쟁을 대비한 선각자이자 영웅인 이순신 제독의 애국·애민 리더십을 떠올리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년 11월 28일 광복 80주년과 이충무공 탄신 48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은 무려 96일간 이어졌다. 지난 3월 3일까지 전시되었던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은 영웅 이순신의 진중함과 함께 인간 이순신의 애국·애민 실천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충무공의 후예로 한때 해군 장교로서 바다를 누볐던 나에게도 무척 의미심장했다. 이 특별전에서 이순신 제독의 선견지명과 애국·애민 정신은 현재의 전쟁 상황과 맞물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예측 불가한 국제 정세를 내다보고 나라의 위기를 굳건히 지켜낸 공의 유비무환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 제독은 1591년 2월 정읍현감에서 일약 전라좌수사로 승진한다. 전쟁을 예상하고 대비했던 서애 류성룡이 이충무공을 최적의 해상 지휘관으로 추천한 것이다. 공은 부임하자마자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전라좌수영 예하의 5관(官) 5포(浦)에 대해 철저히 점검한다. 이런 사전 준비 덕분에 적을 바다에서 무찌를 수 있었다. 공의 애국·애민 정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되고 백의종군이란 시련 속에서도 계속된다. 원균이 이끌던 수군이 칠천량에서 전멸하자 전라도의 안전도 위험에 빠졌고, 백성들은 피란길에 올랐다. 그러나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13척의 판옥선으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리더십을 발휘,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한다. 우리는 공의 명량대첩의 임전(臨戰) 정신으로 미·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사태를 돌파해야 할 것이다. 국제정세의 요동에서 우리 산업의 젖줄인 원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진정 우리는 '우리들의 이순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 생존력을 위한 해상교통로 보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선 해군의 역할이 더욱 절박하다. 해상교통로 확보가 절실한 오늘날의 바다 환경은 우리의 국가 생존에 필요충분의 생명선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해양 강국이 되어야 한다. 안전한 해상교통로는 국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7광구와 관련, 2028년 6월이면 만료되는 공동탐사 계약을 일본과 즉각 논의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급박함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일본과의 협상으로 조약의 연장을 비롯해 석유 탐사에 필요한 모든 행위를 서둘러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으로 인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지척인 7광구의 석유 탐사를 통해 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이순신이 명나라 군대를 상대로 설득·감복하게 한 외교력을 본받아야 한다. 이순신 사후,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공의 죽음에 대해 조선군과 명나라 군사까지도 통곡했고, 백성들도 상여를 붙들고 애통했다고 한다. 우리는 나라가 위기일 때마다 공의 불굴의 정신을 불러내곤 한다. 공은 성웅(聖雄)으로서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이순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리더십은 지금 우리 위정자들이 반드시 학습하고 따라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의 위대한 리더를 생각하면서, 이 난국을 이겨내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2026-04-21 15:42:25
봄은 늘 낮은 곳,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길을 걷다 문득 스쳐온 라일락꽃 향기는 눈에 띄지도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향은 오래된 기억을 불러낸다. 어느 오후, 이름조차 희미해진 골목에서 기우는 햇살이 담벼락에 길게 늘어지듯 봄은 그렇게 스윽 다가선다. 시선을 조금만 낮추면 봄은 더 분명해진다. 잔디 사이로 번지는 청보랏빛의 봄까치꽃, 길가에 조용히 줄지어 핀 제비꽃,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민들레. 이 작은 꽃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계절을 완성하는 힘이 있다.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더 또렷해지는 색과 결. 봄은 높은 가지 끝이 아니라 발밑에서부터 조용히 차오른다. 대구의 봄도 다르지 않다. 동백이 뚝뚝 떨어지면 목련이 두툼한 꽃잎으로 분지의 온도를 바꾼다. 개나리는 골목과 언덕을 누비고, 진달래는 타오르듯 봄의 깊이를 더한다. 그러나 이 도시의 봄을 지탱하는 것은 따로 있다. 텃밭 가장자리와 골목 귀퉁이, 공원의 빈터에서 자라는 이름 없는 풀들이다. 달래와 머위, 그리고 쉽게 스쳐 지나치는 야생초들이 봄의 대지를 채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 작고 여린 생명들이 대구의 봄을 완성한다. 그 봄은 입안으로도 스며든다. 어린 쑥을 뜯어 쌀가루와 함께 버무려 찐 쑥버무리는 오래된 대구의 봄맛이다. 은은한 향과 쌉싸름한 맛은 소박하지만 두텁고 깊다. 한때 그것은 끼니를 잇기 위한 음식이었고, 허기진 봄을 버티기 위한 방식이었다. 김이 오르는 시루에서 퍼지는 쑥 향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그 향과 쓴맛은 우리 안에 스며들어 끈질긴 생의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지금 봄은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봄은 더 이상 생동을 느끼는 계절이 아니라 통과의례처럼 소비되는 무대 위의 한 장면이 되었다. 꽃은 오브제가 되고, 계절은 배경이 된다. 우리는 봄을 누리기보다 기록하고, 경험하기보다 남기기에 바쁘다. 그렇게 우리의 감각은 얇아지고, 계절은 실체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봄은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작은 것들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라일락의 향기, 들풀의 강인함, 쑥의 쌉싸름한 맛은 변하지 않는다. 바람이 스치고 빛이 낮게 번지는 자리에서 이들은 매년 같은 방식으로 계절을 이어간다. 다만 그것을 감각하는 우리의 시간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계절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다. 봄은 여전히 곁에 있고 매년 돌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앞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발밑에서 시작되는 것들의 작은 외침을 다시 느끼는 일이다.
2026-04-21 09:35:33
[사설] 시민 생명을 지키지 못하면서 '메디시티 대구'라고 할 수 있나
한강 이남 최고의 역량을 자랑했던 대구의 의료가 위축되고 있다. 각종 의료 지표가 악화되면서 '메디시티 대구'란 슬로건이 무색하게 됐다. 최근 잇따른 임산부 응급 이송 지연(遲延) 문제는 지역 의료 체계의 허점을 드러냈다.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는 암 환자들도 늘고 있다. 응급의료 통계는 대구 의료의 취약성을 보여 준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대구의 지난해 기준 '응급의료 수용곤란' 건수는 2만311건으로 서울(2만1천355건)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부산은 1만3천509건이었다. 최근 5년(2021~25년)간 대구의 응급의료 수용곤란 건수는 1만5천727건 늘었다. '증가율 전국 1위'란 불명예를 기록한 것이다. 응급의료 수용곤란은 병상(病牀) 부족이나 전문 의료진 부재 등으로 인해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대구의 응급의료는 119구급대의 병원 도착 지연, 재이송 증가, 장시간 관외(管外) 이송 등에서도 부실하다. 특히 2시간 이상 걸리는 관외 이송이 늘고 있다는 점은 응급의료의 본질이 무너지는 징후다. 중증 환자의 역외 유출(流出)도 심각하다. 대구의 암 환자 20%가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위해 수도권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수도권 병원의 의료진과 의료기기가 우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중입자·양성자 등 첨단 암 치료 장비는 물론 항암제 임상시험(臨牀試驗)의 9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게 사실이다. 암 환자의 유출 증가는 환자의 부담 가중은 물론 지역 의료 역량의 약화로 이어진다. 대구시와 지역 의료계는 중증 응급환자 이송·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필수의료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인적·물적 투자의 확대와 시스템 개선이다. 필수의료 전문의와 병상 확충, 병원 간 배후(背後) 진료 협력체계가 전제되지 않으면 응급의료 개선은 요원(遙遠)하다. 암 환자의 유출을 최소화하려면 우수 의료진 유치와 첨단 장비 도입에 주력해야 한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데 어찌 의료관광, 의료산업을 얘기한단 말인가.
2026-04-21 05:00:00
[사설] 성과급 논란에 노노 갈등까지, 이기심에 잠식당할 미래 성장 잠재력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지급 요구가 관철(貫徹)되지 않으면 오는 23일 경기 평택공장 앞에서 4만 명이 참여하는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5월 21일부터 18일간 반도체 전체 사업장을 점거하는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노조 측은 파업 진행 시 사측에 최소 20조∼30조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SK하이닉스에서 영업이익의 10% 지급으로 시작된 '천문학적 성과급 나눠 갖기'가 대기업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순이익 10조3천648억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도 3조1천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성과급 규모가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보니 직장인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기업 직원들 사이에 노노(勞勞) 갈등마저 빚어지고 있다. 최근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평생 공부한 박사가 호황기 산업의 생산직 성과급의 10분의 1밖에 못 받고 있다"며 "획일적 보상이 이공계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주장이 올라와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반도체 부문과 타 부문 간 갈등 조짐이 커지고 있고, 벌써부터 성과급 과실만 따 먹은 뒤 이직하는 인력 유출에 대한 우려까지 터져 나온다. 기업의 호실적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 보상은 기업의 영속성과 미래의 경쟁력을 유지 가능한 범위에서 이뤄져야 마땅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5년 뒤 한국의 1인당 GDP가 대만에 1만달러나 뒤처질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을 내놨다. 대만이 앞서가는 핵심 동력은 반도체의 압도적 경쟁력이다. 노조의 파업으로 산업 현장이 멈춰 서고, 미래를 위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에 들어가야 할 비용이 성과급 요구에 밀린다면 한국 경제의 추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지금은 성과급 잔치로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을 더욱 키우는 데 집중할 때다.
2026-04-21 05:00:00
[사설] 1주택 '장특공' 축소 우려, 정치적 프레임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장기보유특별공제(장특공)는 투기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집값 급등이라는 변화 속에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보유 및 거주 요건을 충족할 경우 양도차익의 최대 80%까지 공제되는 구조는 고가 주택일수록 절세 효과가 커지는 결과를 낳았고, 자산소득이 근로소득보다 유리하다는 불만을 키웠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장특공을 사실상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수준이다. 평생 공제 한도를 2억원으로 제한하고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은 단순한 보완(補完)이 아니라 세제 구조의 근본적 전환에 가깝다. 일부 고가 주택의 경우 세 부담이 9천400만원에서 4억원 수준으로 급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 메커니즘과의 충돌도 문제다. 세금은 가격이 아니라 행동을 바꾼다. 양도세 부담이 커지면 세후(稅後) 수익이 줄고, 매도 시점은 늦춰지며 거래는 위축된다. '매물 잠김' 탓에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공급을 줄일 가능성도 배제(排除)하기 어렵다. 과거 양도세 강화 국면에서 거래 절벽이 먼저 나타났던 경험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입법예고 과정에서 접수된 약 1만3천여 건의 의견 중 85%가 반대였고, 이후 집계에서 1만5천 명 이상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장특공 개편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을 "논리 모순이자 명백한 거짓 선동"으로 단정한 것은 문제다. 급격한 세 부담 증가와 거래 위축 등에 대한 우려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단순화해선 안 된다. 더구나 대통령 메시지와 입법 시도가 엇갈리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민주당은 "당에서 (장특공제) 세제 개편은 검토한 바가 없다"고 밝히며 양도소득세 중과유예 폐지와 관련한 대통령 의중(意中)을 강조했다. 선거를 앞둔 여론 잠재우기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고 감수해야 할지 밝혀야 한다. 그런 설명 없이 추진하는 개편은 방향이 옳아도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2026-04-21 05:00:00
[관풍루] 이재명 대통령이 요청한 특별감찰관 후보와 관련해 국민의힘 "야당 추천 인사를 수용하라", 개혁신당 "3명을 야당과의 합의로 선정하자"고 해
○…이재명 대통령이 요청한 특별감찰관 후보와 관련해 국민의힘 "야당 추천 인사를 수용하라", 개혁신당 "3명을 야당과의 합의로 선정하자"고 해. 자기 사건 자기가 수사·재판하는 아무개 씨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 ○…김민석 국무총리, '고유가 피해 지원금'이 계획대로 이달 말부터 지급되도록 지방정부가 관련 추경을 신속히 편성하라고 관계 부처에 독려 당부. '퍼주기' 생색내기에 재정 여력 없는 지자체는 죽을 지경. ○…서영교 국회 검찰 조작기소 진상특위 위원장 겸 법사위원장, 자신이 대중적 인기가 있다며 자신의 장점으로 '목소리'와 '외모'를 꼽아. 이 말 듣고 배꼽 탈 날 사람 많겠군.
2026-04-21 05:00:00
2026-04-20 19:09:10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죽음 이후,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동이족 선조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 너머를 묻다생로병사,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간단하게 표현한 말이다. 죽음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 인간에게는 삶의 연장이자 통과의례의 하나이다. 오늘날은 산자와 죽은 자의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장례식장이 따로 있지 않았다. 사자(死者)는 동네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매장지로 향했다. 사자를 함께 배웅하는 일은 마을공동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길고 짧을 뿐, 태어나서 나이 먹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겪는 일이다. 그렇다면 죽음 너머에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답을 찾는 일은 저 까마득한 옛날, 인류의 시작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옛사람들, 특히 동이족 선조들의 매장 풍습을 통해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동이족과 요화문명권동이족의 활동 권역은 크게 한반도를 포함한 요하문명권, 황하 중상류 유역권, 황하 하류 및 산동반도 유역권과 장강 중하류유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동이족 사후 세계관을 알려주는 문명은 요하문명권의 흥륭와문화(BC6200~BC5200)이다. 요하문명권은 홍산문화를 대표 문화로 하며, 위도 40°N에서 45°N 사이에 있다. 만 년 전 이곳의 기온은 점점 상승했고 BC 6500~ BC1000 사이에 가장 따뜻한 대온난기를 맞이했다. 때문에 이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 되었다. 특히 위도 42°N 부근에는 요하문명권의 핵심지역인 내몽골 홍산(紅山)이 있는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시라무렌강(西拉木伦河)과 서요하(西遼河) 사이에 노합하(老哈河), 교래하(敎來河)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요하문명권의 동이족들은 따뜻한 날씨, 풍부한 물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점차 먹고 사는 걱정을 넘어 정신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홍산의 동쪽, 조금 더 낮은 위도에 있는 내몽골 오한기(敖漢旗)에서 동북쪽으로 2~3시간가량 차를 타고 이동하면 흥륭와문화 유적지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이족의 정신세계, 특히 사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한 세계흥륭와 사람들은 시신을 집안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거실장·居室葬 풍습). 이때 껴묻거리로 돼지를 같이 매장했다. 돼지는 새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동이족의 문화상징이다. 돼지는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고, 모든 생명의 원기가 나온다고 여겨진 북두칠성의 북두를 상징하기도 한다. 거실장 풍습은 삶과 죽음을 나누지 않은 세계관의 반영이다. 조상과 후손이 같은 공간에 공존할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뜻이다. 또 거실장 풍습은 죽은자가 그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곁에 남아서 그들을 보호해 준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것이 초기 조상숭배 사상의 모습으로서 제사와 의례의 기원이 되었다. 거실장 풍습은 요녕성(遼寧省) 부신(阜新)시 사해문화(査海文化 BC6000~BC5500)로 이어진다. 사해문화의 한 거주지에서 발견된 무덤의 어린아이는 목과 복부에 두 쌍의 대·중·소 옥비 (玉匕)를 차고 있었다. 어린아이 시신에 옥을 부장한 것은 그 아이가 특별한 존재, 즉 제사의 대상이었음을 말해준다. 옥의 부장은 신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실장의 풍습은 황하유역에서도 나타난다. 황하유역 앙소문화 대하촌 유적지에서 출토된 옹관묘는 대부분 어린아이의 매장에 사용되었다. 옹관묘는 주거지 안이나 씨족 공동묘지 안에서 발굴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옹관묘 중앙이나 하단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 구멍은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가 어린아이 영혼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려고 뚫었을 것이다. 일찍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들은 아이의 영혼이 구멍으로 드나들면서 나와 소통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에서 구멍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편 사해문화 유적지에는 환호(環壕·해자)로 둘러 쌓인 크고 작은 거주지가 있다. 가장 큰 거주지는 개방된 중앙 광장을 마주하고 있고, 광장에는 돌로 쌓은 거대한 용, 즉 석소룡이 자리했다. 마을 중앙 광장에 석소룡이 있다는 것은 용을 매우 숭상했음을 잘 보여준다. 사해문화에서 발굴된 도자기 파편에는 '부조 용 문양'이 있었다. 중국의 고고학자 소병기는 이곳을 '용의 고향, 문명의 발원지'라고 했다. ◆영혼을 하늘로 이끄는 존재, 용 용은 물과 관련되어 있으면서 스스로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이 있다. 92세의 노모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도 그런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산골에 살았던 노모는 배추를 팔러 새벽시장을 가는 중이었다. 노모는 둑을 따라 한참을 가는 데, 어느 순간부터 안개가 끼더니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개가 풍덩하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고 걷혔는데, 어른들이 노모의 말을 듣고 "용이 승천할 때 사람이 보면 안되는데 네가 지나가서 용이 승천을 못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노모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근현대까지도 용은 하늘로 올라가는 동물로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물과 지하 세계이며, 영혼이 올라가는 곳은 생명이 시작되는 곳, 하늘이다. 『산해경』에는 이수(伊水)와 양수(陽水) 속에 사는 명사(鳴蛇)와 화사(化蛇)가 나온다. 『산해경』에 따르면 명사는 뱀 같으나 네 개의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화사는 새의 날개를 가졌으나 뱀처럼 기어다닌다. 즉 명사나 화사는 뱀과 새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뱀은 땅 속을 드나드는 지하 세계를 상징하고, 날개는 하늘을 나는 새의 속성을 나타낸다. 이처럼 지하 세계와 하늘을 넘나드는 속성이 결합된 명사와 화사는 일종의 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죽음 이후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존재로 여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흥륭와문화에서 생겨난 돼지숭배 풍습은 이후 사해문화에서 나타난 용과 결합되어 홍산문화에서는 용과 돼기가 결합된 옥저룡이 된다. 그들의 세계관으로 볼때 생명의 원기가 나오는 북두의 상징이 돼지이고,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 간다고 믿은 용의 결합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이족들은 죽음 이후에 영혼은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흥륭와문화와 사해문화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삶의 방식은 홍산문화에서 변화된다. 사회가 분화되고, 조상숭배 사상에서 의례가 강조되고 또 신앙이 발달하면서 거실장 풍습은 점차 사라지고 죽은 자들의 집은 새로운 장소에 지어지게 되었다. ◆죽음 이후, 하늘로 돌아가는 길홍산문화의 무덤군은 대부분 높은 산에 위치하며,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과 땅을 상징하는 방형 형태의 재단도 산에 조성되어 있다. 홍산문화인들이 무덤을 돌로 만든 것은 영원성을 상징한다. 돌로 만든 적석묘 묘장 문화는 흥륭와 문화에서부터 내려오는 홍산문화 사람들의 묘장 전통이며,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묘장문화이다. 묘장문화는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과 깊이 맞닿아 있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산문화는 고조선의 선조들인 배달족이 이룬 문화이다. 적석묘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채도 통형 토기는 내부가 비어 있고, 바닥이 없는 붉은 토기이다. 이 토기는 검은색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매우 규칙적이다. 또 '탑'형 토기도 있는데 바닥이 없고 몸통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무늬가 새겨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것을 용비늘무늬(龙鳞纹)라고 한다. '탑'형 토기도 통형 토기처럼 적석묘 위에 올려졌다. 탑형 토기는 수량도 적고 형태도 복잡하다. 이 토기가 적석묘에 올려진 위치는 네 방향의 중앙이나 묘의 정중앙으로서 묘주를 더 존귀한 존재로 돋보이게 한다. 이 독특한 토기들은 홍산문화 장례에서만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다. 적석묘에 놓여 있고, 바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로 여긴 것 같다. 그런데 이 탑형의 무늬가 용비늘무늬라는 점으로 볼 때, 홍산문화 사람들은 용을 사후에 신과 연결 해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리라. ◆하늘과 통하는 옥기고조선의 선조들, 즉 배달족이 만든 홍산문화의 무덤군이 대부분 높은 산에 있는 이유는 하늘과 더 가까이 닿고자 한 바람에서였다. 배달족 선조들은 이때부터 부장품으로 옥만을 묻었다. 옥은 신과 소통하는 도구였다. 옥기들은 거북, 새, 물고기, 삼련옥벽(三联玉璧), 구름형 옥기 등을 포함하여 20여 종에 이른다. 거북과 새와 물고기가 동시 출토된 호두구유적(胡头沟遗址)은 한 묘역에 한 가문, 두 개의 무덤(一冢二墓)만 있으며, 방형과 원형이 결합된 배치 구조를 보인다. 거북은 세계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물고기는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새는 영혼을 운반한다고 여기는데, 거북-물고기-새는 영혼이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대 우리 동이족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말에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한다. 옥으로 장례를 치르는 풍습은 옥으로 신을 섬기기 때문이다. 민국(民國) 시절의 중국의 저명한 학자 왕국유(王国维:1877~1927)는"예(禮)의 본래 의미는 '옥으로 신을 섬기는 것(以玉事神)"이라고 했는데, 홍산문화인의 장례 풍습이 이 말에 딱 맞는 말이다. 중국인들이 예로부터 동이족인 우리나라를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일컫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옥으로 신을 섬기는 나라라는 뜻일 것이다. 옥장례 풍습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했던 동이족 선조들의 하늘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보여준다.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2026-04-20 14:21:05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6·3 지방선거와 함께 열리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경기 안산갑 출마(出馬)를 선언했다. 안산갑 보궐선거는 양문석 전 민주당 의원이 '대출 사기'로 지난달 의원직 상실형을 확정받아 치러지게 됐다. 출마를 선언하면서 김남국은 '민주당의 귀책 사유로 치러지는 선거에는 민주당이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의식한 듯 "공천 당시에 발견될 수 없던 사유(事由)라든지 확정되지 않은 사실 관계로 사후에 재·보궐선거가 발생한 경우까지 공천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책임 정치에 반(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양문석 전 의원은 이미 '딸 명의 편법 대출' 의혹으로 큰 논란이 됐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공천 취소는커녕 "훨씬 심한 저쪽 후보는 언급하지도 않는다"고 거든 바 있다. 그런데 김남국은 자신의 출마가 오히려 책임 정치라고 주장한다. 김남국은 국회의원 시절 이태원 참사 관련 상임위 회의 중에 몰래 코인 거래를 하다가 들켜 국회의원 제명(除名)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용서를 빌며 탈당했다. 그러더니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자 대통령 비서관으로 돌아와 "현지 누나, 훈식이 형" 운운하며 청탁 논란에 휩싸이자 사퇴했다. 이런 사람이 민주당 잘못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민주·진보 진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으로 2심에서 징역 5년형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통일교로부터 명품 시계와 금품 수수(收受) 의혹 속에 출마를 선언했고,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되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감옥에 갔는데, 사면·복권받아 경남도지사에 출마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입시 비리로 감옥에 갔으나 형기(刑期)를 절반도 안 채우고 사면·복권됐고,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이것이 민주·진보 진영의 얼굴이다.
2026-04-2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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