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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씨] 9월 15일(화)

    [날씨] 9월 15일(화) "대체로 맑음"

    2026-09-14 18:47:02

  • [화요초대석-이정훈] '제청'과 '사퇴'와 '不동의'의 정치학

    [화요초대석-이정훈] '제청'과 '사퇴'와 '不동의'의 정치학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에 '명픽'으로 투입된 전 국무총리 김민석 후보는 과반을 얻지 못하고 '친명'인 3위 후보 표의 '2차 선택'을 보탠 결선 집계로 겨우 당선됐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두 명의 '친명' 후보가 이재명 대통령의 '오른팔'인 김용 후보 지지를 밝히며 사퇴했는데도, 김 후보는 낙선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이진숙·한동훈 의원의 '아웃'이 어려울 것 같자, '국회의원 직무정지'를 넣은 쪽으로 국회법을 개정해 이들의 의정 활동을 정지시키고자 할 정도로 반야(反野) 투쟁에 '너무' 열심이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던' 용혜인 후보 사건은 그의 사퇴로 뱉을 수'는' 있게 됐다. 하지만 '보약'으로 보고 삼킨 것도, '독약'으로 알고 뱉은 것도 그들이었으니, 이를 잘했다고 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 대통령 지지율이 축축 처지고 있다. 이런 사태를 가속한 계기는 '제청'이라고 본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김승원·용혜인 후보자에 대한 '제청'은 자신이 했다고 밝혔다. 헌법은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은 총리의 고유 권한으로 해놓았다(87조 ①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리가 제청한 국무위원은 누구도 거부할 수가 없다. 국회는 청문회를 열지만 '통과의례'일 뿐이다. 대통령은 임명을 늦출 수는 있어도 거부하진 못한다. 헌재가 한덕수·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적법한 과정으로 선정된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것을 위헌·위법으로 판단했으니, 대통령은 '지나친 임명 지연'도 할 수가 없다. 헌법에는 재제청에 대한 규정이 없어, 제청한 것은 물릴 수도 없다. 방법은 '단 하나' 후보자의 사퇴뿐인데, 용 후보자는 이를 해 당황한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가 사퇴하지 않았다면 이 대통령은 '무조건' 그를 장관에 임명했다가, 헌법 87조 ③항에 따라 한 총리가 '해임 건의'를 해주면 이를 받아들여 해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국무위원을 '사실상' 결정하는 제청권이 총리에게 있다면, 피(被)제청 인물을 추천해 주는 조직도 총리에게 있어야 하는데, 없다. 총리 산하의 인사혁신처는 장관 후보자를 추천하지 못한다. 이 추천은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실의 인사수석이 맡고 있다. 대통령의 참모인 인사수석이 국무총리에게 장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놀랍게도 우리의 헌법과 법률은 국무총리가 추천해 주는 기관도 없이 사실상 국무위원을 정하는 '제청권'을 독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해놓았다. 한 총리는 이를 행사했다가 용혜인 사퇴라는 망신을 당하고 정권에 부담을 줬으니, 대통령과 여당은 그에게 책임을 묻고 총리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데, 희한하게도 없다. 이와 매우 다른 것이 대법관 제청이다. 대법관은 헌법 104조 ②항에 따라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국회는 동의·부동의로 판단을 하고, 국회가 동의했으면 대통령은 '무조건' 임명하게 돼 있다.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이 제청된 대법관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임명을 막는 것은 국회의 부동의뿐이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은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처럼 '막' 하지도 않는다. 법원조직법 41조의 2 등에 따라 행정부의 법무부 장관도 참여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여러 곳에서 천거한 이를 검토해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한다. 대법원장은 피추천된 이들만 놓고 대법관 회의를 열어 한 사람을 골라 제청한다. 대법관 후보자는 국무위원 후보자보다 훨씬 더 엄격한 과정을 거쳐 제청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법적 근거를 밝히지 않고 두 차례나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법원은 우회적으로 '재체청 불가'를 밝히며 거부했다. 양쪽은 헌법에 있는 제청에 대한 해석을 놓고, '지면 무너질 수도 있는' 대단한 기싸움에 들어간 것이다. 이 대립을 피하려면 제청된 후보자의 사퇴나 유고 또는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의 '부동의'가 있으면 되겠지만, 그 후폭풍은 만만찮을 것이다. 헌재에서도 대통령의 재제청이 묵살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더 큰 후폭풍이 일 것이다. '낮은 지지율'의 대통령이 제청권 행사에 실패한 총리는 놔두고 적법하게 대법관을 제청한 대법원장에 다시 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논리 모순이자 법 위반이며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2년 전처럼 '겪어보지 못한' 정치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26-09-14 18:30:00

  • [기고-박민지] 용광로가 식으면 청년도 떠난다

    [기고-박민지] 용광로가 식으면 청년도 떠난다

    용광로의 도시 포항을 뜨겁게 달궜던 온기가 식어가며 사람들의 마음마저 차갑게 가라앉히고 있다. 포스코가 창사 58년 만에 첫 파업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업은 11일 오전 끝났지만, 이것으로 모든 갈등이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포항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죽도시장 한복 골목에서 로컬 편집숍을 운영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고 있다. ​포스코에서 일하지 않지만 이번 사태가 결코 '남의 회사'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미 또래 친구 대다수가 포항을 떠났다. 포스코 말고는 일할 만한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역설적이게도 이 도시에는 '그래도 포스코는 남아 있다'는 믿음이 오랜 세월 깔려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죽도시장으로 출근할 때마다 피부로 와닿는 서늘함이 있다. 불황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매출로, 손님 수로 느껴진다. 주변 상인들의 깊어지는 한숨은 상경하지 않기로 결심한 청년에게 남의 일이 아닌, 어느 순간 나의 한숨이 된다. ​그래서 지금 포스코 노사 갈등을 지켜보는 마음은 더 절박하다. 뉴스 한 줄에 도시 전체가 술렁인다. 노사 갈등은 어느새 한 기업과 노조 사이의 문제를 넘어 포항 전체를 흔드는 불안이 됐다. 두 주체만의 문제였다면 온 도시가 이토록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포스코의 갈등은 이미 이 도시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노동조합에 무조건 양보하라는 뜻은 아니다. 정당한 권리를 말하는 노조의 입장은 존중해야 마땅하다. 동시에 회사가 처한 현실 역시 모른 척할 수 없다. ​다만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2차 파업 소식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이 싸움이 누구 하나 이기지 못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길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떻게든 버텨온 포스코마저 더 휘청인다면 '그래도 포스코는 있다'는 믿음마저 얇아질 것이다. 청년들이 이 도시에 남을 이유 역시 하나씩 사라진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상처 입는 것은 노사 양측만이 아니다. 명절 대목을 앞둔 죽도시장 상인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버텨보려는 청년들의 마음도 함께 얼어붙는다. ​포스코에도 전하고 싶다. 회사는 오랜 세월 지역사회가 보내준 묵묵한 신뢰 위에서 성장했다. 재무제표에 기록되지는 않지만, 회사를 지탱해 온 가장 튼튼한 뿌리였을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걸림돌로만 여긴다면 그 뿌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 뿌리가 흔들리면 고향에 남기로 한 청년들의 결심 역시 함께 흔들린다. ​쇳물을 녹이는 뜨거운 용광로는 식더라도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 하지만 한 세대가 이 도시를 등지기로 마음먹은 뒤에는 그 마음을 되돌리기가 훨씬 어렵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순진하거나 이기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말하고 싶다. 죽도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상경 대신 포항에 남기로 한 청년으로서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포항이 청년에게 떠나야 할 이유를 보태는 도시가 아니라, 남아도 괜찮은 도시였으면 한다. ​용광로의 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불빛을 바라보며 이 도시에 남기로 한 청년들의 마음까지 함께 식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포항이 그저 수확 가득한 가을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6-09-14 16:30:00

  • [윤명철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와 문화] 동아시아 국제대전의 대단원

    [윤명철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와 문화] 동아시아 국제대전의 대단원

    지금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군대가 파미르를 넘어 점령했던 파키스탄의 소발률국(길기트)을 보고 쿤자랍 패스를 넘어 카슈카르를 거쳐 투르판에 와있다. 당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직전인 640년에 멸망시켰던 고창국의 수도이다. 이제는 우리 역사를 거시적으로, 유라시아 세계와 연동시켜 해석해야 한다. ◆나당전쟁과 동부 유라시아 질서의 재편 668년 음력 9월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는 끝내 붕괴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수나라를 공격한 598년부터 이어진 동아시아의 그레이트 게임도 끝난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백제와 고구려가 사라지자 그 빈 공간을 누가 차지하고 어떤 질서를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공동의 적을 공격했던 신라와 당은 곧 적으로 돌아섰다. 670년부터 676년까지 벌어진 '나당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을 신라와 당 두 나라가 한반도의 영토를 놓고 싸운 전쟁으로만 이해하면 본질을 놓친다. 고구려 유민과 백제계 주민들이 참여했고, 당은 말갈과 거란 등 동북방 여러 집단의 군사력을 동원했다(서영교). 경기만과 금강 하구에서는 수군이 맞섰다. 같은 시기 서쪽에서는 왕이 바뀐 토번이 당을 압박했고, 북방에서는 돌궐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663년 백강전투에서 패한 왜국도 국가체제를 재편하면서 670년에 '일본'이라는 새 국호로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결국 나당전쟁은 고수전쟁, 고당전쟁, 소위 삼국통일 전쟁의 뒤를 이은 동아시아 국제대전의 제4단계이자 대단원이었다.(고구려해양사연구) ◆승전한 동맹국들은 왜 다시 싸웠나신라와 당은 처음부터 목적이 달랐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박에서 살아남고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당과 손을 잡았다. 반면 당은 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요동과 한반도를 제국의 동방질서 안에 편입시키려 했다. 당은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했고, 고구려 멸망 뒤에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었다. 신라에도 계림대도독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신라는 당의 제국질서에 들어갈 것인가, 세계제국과 다시 싸울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고, 결국은 후자를 선택했다. 670년에 신라 장군 설오유와 고구려의 고연무는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오골성(단동 외곽의 봉황성) 방면으로 진출했다. 불과 2년 전에 신라는 당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이제는 고구려 유민과 손잡고 당과 싸웠다. 적과 동맹의 조합이 뒤집힌 것이다. 나당전쟁은 단순한 양국전이 아니라 국제전쟁의 또 다른 재편 국면임을 보여준다. ◆멸망한 고구려가 다시 전쟁의 주체가 되다국가는 멸망했지만 터와 사람과 기억, 군사경험과 정치적 의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검모잠·고안승·고연무 등을 중심으로 고구려 복국전쟁이 일어났고, 신라는 보장왕 의 서자인 고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해 익산인 금마저에 자리 잡게 했고, 이어 보덕국으로 재편했다. 신라가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인 데에는 현실적인 전략이 강했다. 고구려인들은 오랫동안 수·당과 싸우며 성곽전과 산악전, 장거리 방어전에 익숙했다. 그들의 대당 적대감과 경험은 신라에게 중요한 전쟁자산이었다. 이 때문에 나당전쟁은 고당전쟁의 연속이기도 했다. 고구려라는 국가는 사라졌지만 고구려인의 대당전쟁은 신라와 결합해 계속되었다. 신라는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반자로 바꾸었다. 군사적 필요에서 시작했지만 이것은 훗날 고구려·백제계 주민들을 신라 체제 안에 받아들이는 통합으로 연결됐다. ◆말갈과 거란, 또 다른 전쟁 주체당군도 단일한 중국인 군대가 아니었다. 당은 광대한 제국을 운영하면서 돌궐·철륵·거란·말갈 등 여러 집단을 군사력으로 활용했다. 나당전쟁에서도 말갈군은 당군과 함께 신라와 싸웠고, 거란계 병력도 동북방 군사체제에 동원됐다. 실제 전쟁구도는 '신라 대 당'보다 훨씬 복합적이었다. 신라군과 고구려계 세력, 백제 옛 지역의 주민들이 한쪽에서 움직였고, 다른 쪽에서는 당의 정규군과 안동도호부 세력, 말갈·거란 군사집단이 움직였다. 7세기 동북아시아는 오늘날의 고정된 국경과 민족 범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종족·다중심 세계였다. 이때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결합은 뒤에 발해를 건국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나당전쟁은 이미 다음 시대의 동북아 질서를 품고 있었다. ◆670년, 동서 양쪽에서 동시에 흔들린 당신라가 당을 상대로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더 큰 유라시아 국제정세가 있었다. 7세기 중반 당의 세력은 절정에 올랐다. 630년 동돌궐을 무너뜨렸고 657년 서돌궐마져 격파해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했다. 동쪽에서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켰다. 그 절정기에 균열이 일어났다. 토번이 성장해 청해 지역과 타림분지로 진출했고, 670년 당군은 대비천 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당연히 안서 4진의 지배권도 흔들렸다. 놀랍게도 이 해가 나당전쟁이 본격화된 해다. 동쪽에서는 신라와 고구려 유민이 당에 도전했고, 서쪽에서는 토번이 중앙아시아의 당 질서를 흔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토번 때문에 신라가 이겼다"고 할 수는 없다. 당은 670년대에도 대규모 병력을 한반도에 투입했다. 토번은 신라 승리의 직접 원인이라기보다 당이 한반도에 모든 힘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 중요한 국제적 조건이었다. ◆돌궐과 유라시아 질서의 재편돌궐 문제는 연대를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제1돌궐제국은 630년에 무너졌고 서돌궐도 657년 크게 해체됐다. 따라서 나당전쟁에서 독립된 돌궐제국이 신라를 직접 도왔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북방의 불안정은 계속됐다. 679년 이후 돌궐계 반란이 커졌고 682년에 제2돌궐 제국이 성립했다. 나당전쟁 직후에 당의 북방질서도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서남의 토번, 북방의 돌궐, 동북의 고구려 유민·말갈·거란, 동쪽의 신라가 각자의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660년대 당이 거의 완성한 듯 보였던 일극적 유라시아 질서는 다시 다극화됐다. ◆백강의 패전과 '일본'의 등장일본열도의 변화도 이 국제대전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663년 백강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은 나당연합군에게 참패했다. 이후 왜국은 대마도·이키·규슈와 세토내해의 방어를 강화하고,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계 기술자와 지식인을 활용했다. 외침의 공포는 중앙집권과 율령국가 건설을 재촉했다. 그리고 670년 전후 '일본'이라는 국호가 국제기록에 나타난다. 백강 패전과 백제·고구려 멸망이 왜국의 국가 정체성 재편에 강한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7세기 국제대전은 한반도의 국경만 바꾼 것이 아니라 바다 건너 왜국의 정치체제와 대외정체성도 변화시켰다. ◆신라는 어떻게 세계제국을 막았나신라는 처음부터 승리한 것이 아니다. 672년 석문(황해도 서흥)전투에서는 크게 패했다. 이후에 전쟁방식을 바꾸었다. 당군과 넓은 평지에서 정면결전을 하기보다 산성과 강, 좁은 통로를 활용하면서 장기전으로 전환했고, 당의 병참과 이동로를 끊는 데 힘을 쏟았다.당군은 요동과 평양을 거쳐 남하하거나 산동반도에서 황해를 건너야 했다. 말·무기·식량을 긴 거리로 공급해야 했다. 반면 신라는 자기 생활권에서 싸우며 산성과 하천·산악로·해안을 활용할 수 있었다. 고구려가 수와 당을 상대로 사용했던 '거리와 병참의 전쟁'을 신라도 이어받은 것이다. 675년 매소성(경기 연천) 전투는 분수령이었다. 『삼국사기』는 이근행의 당군을 20만 명으로 기록한다. 숫자의 정확성은 검토가 필요하지만 대규모 원정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신라는 당군을 물리치고 많은 군마와 무기를 노획했다. 동시에 서해에서도 당 수군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676년에는 금강 하구인 기벌포에서 해전이 벌어졌다. 신라 수군은 여러 차례 격전 끝에 당군을 물리쳤다. 660년 당 수군이 이 서해와 금강 하구를 이용해 백제를 공격했는데, 16년 뒤에는 신라가 같은 바닷길에서 당군을 막아낸 것이다. 매소성과 기벌포는 육지와 바다의 서로 다른 전투였지만 하나의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 신라는 북방 육상 진입축과 황해 해상축을 동시에 차단했다. 나당전쟁의 승리는 성 하나를 지킨 승리가 아니라 당의 해륙 복합전선을 끊어낸 승리였다. ◆전쟁과 외교를 함께 사용하다신라의 승리에는 외교도 중요했다. 신라는 당과 싸우면서도 외교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았다. 문무왕은 설인귀와 서신을 주고받고 당 황제에게 사죄사절도 보냈다. 674년 당의 고종이 문무왕의 관작을 빼앗고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삼아 압박했을 때에도 신라는 군사적으로 저항하면서 외교적 출구를 열어두었다. 싸우되 관계를 끊지 않고, 저항하되 상대의 체면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았다. 신라는 당보다 국력이 강해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공간에서 전쟁 지속능력을 높이고, 고구려 유민을 끌어들이며, 해륙의 병참로를 끊고, 국제정세와 외교를 함께 이용해 상대의 힘을 분산시켰다. 약소국이 대제국을 상대할 때 필요한 것은 상대보다 더 큰 힘이 아니라 힘이 작동하는 조건을 바꾸는 전략이었다. ◆군사적 승리에서 사람의 통합으로676년 당군을 밀어냈다고 통일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전쟁은 국토를 황폐하게 했고 백제·고구려·신라 사람들 사이에는 적대와 불신이 남았다. 이제 신라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영토보다 사람이었다. 신라는 우선 고구려와 백제 유민에게 관직을 주고 군사체제에 편입시켰다. 뒤에 정비된 9서당에는 신라인뿐 아니라 고구려·백제계와 말갈계 사람들도 포함됐다. 지방제도도 확대된 영토와 주민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재편됐다. 불교와 사찰, 원효·의상 등의 사상 활동 역시 전쟁 뒤 사회를 통합하고 공동의 정신세계를 만드는 데 작용했다. 신라의 통일은 두 단계로 볼 필요가 있다. 첫 단계는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군사적 통합이었다. 두 번째는 나당전쟁을 거쳐 외부의 직접지배를 막고 서로 적대했던 주민들을 하나의 정치공동체에 편입시키는 과정이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통일의 끝이 아니라 통합의 시작이었다. ◆한민족사와 동아시아사에서 무엇을 남겼나한민족사의 장기 흐름에서 나당전쟁의 가장 큰 의미는 당의 한반도 직접지배를 저지한 데 있다. 신라는 이 전쟁을 통해 독립적인 정치공간을 지켰고, 고구려와 백제의 사람들을 새 체제 안에 받아들이면서 후대 한국사의 중요한 공동체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를 완전한 민족통일로 과장해서도 안 된다. 고구려의 요동과 만주 지역 대부분은 신라 영역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곳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세력이 다시 결집해 698년 발해를 세웠다. 따라서 나당전쟁은 통합의 완성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분화의 출발점이었다. 남쪽에서는 신라가 삼국 주민을 포괄하는 국가로 발전했고, 북쪽에서는 발해가 성장했다. 598년 수의 고구려 공격에서 시작된 전쟁은 당의 고구려 공격, 660년 백제전쟁, 663년 백강전투, 668년 고구려 붕괴를 거쳐 670~676년 나당전쟁으로 이어졌다. 약 80년에 걸쳐 적과 동맹은 끊임없이 바뀌었고, 전쟁의 범위는 요동과 한반도에서 황해·일본열도·몽골초원·타림분지와 티베트고원까지 연결됐다. 676년 기벌포의 파도가 잦아들면서 이 장기 국제대전도 한 시대의 막을 내렸다. 고구려와 백제는 사라졌지만 당의 일극적 동아시아 지배도 완성되지 못했다. 신라는 새로운 통합을 시작했고, 북방에서는 발해가 태어날 조건이 마련됐다. 왜국은 일본으로 변신했고 토번과 돌궐은 유라시아의 강국으로 다시 등장했다. 나당전쟁은 단순한 신라의 대당 승리가 아니다. 한반도의 독자적인 정치공간을 지켜낸 전쟁이면서, 동부 유라시아가 하나의 제국질서로 수렴되지 않고 여러 중심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새로운 동아시아가 시작되고 있었다.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대 교수

    2026-09-14 11:25:40

  • [사설] 용혜인 후보 사퇴, 특혜와 꼼수 정치 바로잡는 계기 되기를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비례대표 의원 겸직(兼職) 논란 등이 불거지며 비판 여론이 비등(沸騰)하고, 야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사퇴 압박이 나왔다. 사퇴에 앞서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원과 장관 겸직을 두고 국민적 공감대가 넓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후보자가 결단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용 후보자는 국회의원 쪽을 택했다. 평소 여성과 평등을 내세웠지만 결국 '딸린 식구들(기본소득당)'과 '돈'을 생각한 셈이다. 여성과 평등에 관한 정책을 펼치는 데는 1석의 기본소득당보다 성평등가족부 장관직이 효과적임에도 그 직(職)을 포기했으니 말이다. 용혜인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후 의석수 감소를 피하기 위해 만든 범야권 비례위성정당(2020년엔 더불어시민당, 2024년엔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로 두 번 국회의원이 됐고, 당선된 후 꼼수 제명을 통해 원소속 당인 기본소득당으로 돌아갔다. 애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 통과를 위한 야합(野合·패스트트랙 공조)이었고, 그 야합을 깨고 만든 또 다른 야합이 비례위성정당 창당이었고, 거기서 또 '꼼수 제명'을 통해 용혜인을 기본소득당으로 돌려보냈다. 야합에 야합에 야합이 범벅된 결과물이 비례대표 용혜인 의원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비례대표 의원들은 장관이 되면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는 비례대표제의 의미(후보가 아니라 정당 정책 지지)와 의원직 계승으로 비례대표제의 연속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의원 직무와 장관 직무(職務) 간 충돌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용 의원은 '국회의원과 장관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는 원칙'이라며 겸직 특혜를 누리겠다고 나섰다가 역풍(逆風)을 맞았다. '용혜인 논란'이 우리나라 정치에서 각종 '꼼수'와 '특혜'를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 시작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 사퇴이다.

    2026-09-14 05:00:00

  • [사설] 외교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 남의 손에 생명줄 맡기려 하나

    호르무즈 파병을 두고 이재명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이다. UAE에 파견됐던 정부 실사단이 귀국하는 등 실무 작업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정부는 '검토' 단계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과 국내 좌파 세력의 파병 반대 사이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한 셈이다. 그런데 조현 외교부 장관은 최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호르무즈 파병(派兵)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앞서 7일(현지 시간) X(옛 트위터)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한글로 경고한 바 있다. 조 장관의 발언은 이란 측에 '한국이 파병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만일 파병을 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협박(脅迫)에 굴복하는 꼴이 되고, 파병을 한다면 이란이 느끼는 배신감(背信感)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항행이 조속히 회복되는 게 중요하다"는 원칙만 거듭 강조했어야 한다. 지난 12일 540여 개 좌파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은 호르무즈 파병 반대 집회를 열고, 주한미국대사관을 거쳐 청와대까지 행진을 벌였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도 "파병 검토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오직 국민과 국익(國益)에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며 그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렇다. 파병 여부의 핵심(核心)은 국익이다. 호르무즈 해협 분쟁은 '남의 일'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원유의 70% 이상이 통과하는 생명줄을 온전히 남의 나라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파병의 결과 못지않게 파병하지 않았을 때의 제재와 국제적 지위 하락 등 국익 손실(損失) 역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2026-09-14 05:00:00

  • [사설] 대구경북 행정통합 재추진…지역 의견 통합부터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14일 'TK 행정통합 킥오프 회의'를 갖고 국회 계류(繫留) 중인 통합 특별법 처리에 다시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 2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하고도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해 7월 통합특별시 출범 계획이 무산된 지 반년 만이다. 추경호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TK신공항 건설과 2차 공공기관 유치 등 지역 핵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합이 우선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를 위해 9월 정기국회 통과와 2028년 총선 시 통합자치단체장 선출 및 통합특별시 출범에 의견을 모았다. 이에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통합 특별법의 통과를 위해 국회 설득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설득을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지역 내 합의다. 지난번 통합 무산의 표면적인 이유도 '지역 내 이견(異見)'이었다. 당시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대구시의회가 통합 추진을 말아 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전남광주를 먼저 통합하고, 시간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TK는 내부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아무리 국회 설득에 힘을 쏟아도 지역 내 이견 문제 해결이 선행되지 않으면 결과는 똑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민투표 없이 시·도의회 의결과 여론조사만으로 통합을 추진한 절차에 대한 반발도 여전하다. 국회를 설득하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반대 지역을 설득해 의견을 모으는 작업이 우선이다. 지역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국회 설득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물론 반대 지역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는 현실적 한계는 있다. 그렇다 해도 반대하는 주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당한 절차를 밟고, 행정통합으로 피해를 보는 지역이 있다면 최대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마음을 얻어야 한다. 정부 여당 입장에서 '지역 내 이견'보다 더 확실한 반대 명분은 없다. '지역 차별'이라고 아무리 외치고 반발해 봐도 '지역 합의'가 안 되면 또 무산이다. 이번엔 그 명분을 다시 제공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2026-09-14 05:00:00

  • [관풍루] 성평등부 수장, 다음 낙점자는 과연 누구?

    ○…여성가족부·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 후 낙마한 인사, 김행·강선우 이어 용혜인까지 3명으로 늘어. '현역 의원 불패 공식'도 안 통하는 성평등부 수장에 도전할 다음 낙점자는 과연 누가 되려나? ○…두 달 새 10% 넘게 떨어진 원·달러 환율로 수입 물가는 내려가서 안심, 반도체 등 수출업체는 수익성 악화로 고심. 정작 걱정은 환율 수준보다 롤러코스터 변동 폭. ○…5년 새 초·중·고 학생 자살 65% 증가했고, 2~4.7배 늘어난 지역도 있다고. 2035년까지 10대 자살률 절반 줄이겠다며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 제대로 작동하나?

    2026-09-14 05:00:00

  • [날씨] 9월 14일(월)

    [날씨] 9월 14일(월) "맑음"

    2026-09-13 18:45:56

  • [홍성걸 칼럼] 추석 민심? 오만과 편견!

    [홍성걸 칼럼] 추석 민심? 오만과 편견!

    추석이 불과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면 절반이 넘는 국민이 대이동하면서 이런저런 소식과 소문이 나라 전체에 퍼진다. 정치권으로선 추석 밥상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정국 흐름이 변화할 수 있어 경쟁적으로 추석 민심 잡기에 나선다. 올 추석 민심의 주제로는 부동산 문제와 일부 장관 후보자의 부적절성,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 등이 꼽힌다. 부동산은 지금보다 어려운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심각하다. 청년들은 잔금 대출은 물론, 전세금 상환 연장도 안 돼 살던 곳에서 쫓겨날 판이다. 소위 강남 3구는 주춤하지만, 대신 풍선효과로 서울과 수도권, 특히 삼전닉스 직원들이 많이 산다는 용인, 동탄 지구는 천정부지다. 각종 정책을 쏟아 내면서 계곡 정비나 주식시장보다 쉽다고 큰소리치던 대통령은 대부분의 정책을 철회했지만 이미 미친 듯이 올라간 가격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 놓고도 국민에게 사과는커녕 바꾸라 해서 바꿨는데 날 보고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고 오히려 국민을 나무란다. 오만의 극치가 아니면 이럴 수는 없다. 국정 지지도의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소폭 수요가 있던 상황에서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일부 장관 후보자가 말썽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다. 지난 2019년,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 소수당의 지원이 필요했던 민주당이 그들이 원하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이를 반대하던 당시 자유한국당은 위성정당 출현을 경고했고, 실제로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원 배분에 참여했다.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진보좌파 진영의 소수 정당과 정치세력을 연합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선거 후 위성정당을 합당하고, 당선된 비례대표 중 소수 정당 출신들을 제명해 그들이 원소속 정당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국민은 기본소득당에 투표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편법으로 기본소득당 등 일부가 원내 정당이 됐고, 그들은 국민 세금으로 매년 막대한 선거 및 정당 지원비를 받았다. 용혜인 의원은 남편까지 당직자로 만들어 가족회사가 세금을 착취한 꼴이 됐다. 그것도 모자라 장관에 지명되자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겸직하겠다고 선언해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국회법에 의원직과 국무위원을 겸직할 수 있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인데, 그럼 왜 그동안 비례대표 의원들이 장관직에 기용되면 사퇴했을까. 지역구 의원이 사퇴하면 보궐선거를 해야 하고 그동안 해당 지역의 주민 대표성이 제한된다. 그러나 비례대표는 바로 승계가 가능해 관례적으로 겸직하지 않았다. 용혜인 의원은 욕심에 눈이 멀어 입법 의도를 살피지 못하고 생떼를 부린 것이고, 그 책임은 오롯이 임명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에게 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도 많은 보도가 나오고 있어 짧은 칼럼에서 반복할 필요가 없지만 그나마 날짜가 잡힌 인사청문회에 증인은 한 명도 없이 후보자 본인만을 대상으로 질문한다니 이런 '팥소 빠진 찐빵'이 있는가? 아무튼 추석 밥상에서 '승원 오빠'는 꽤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 틀림없다. 심각한 물가와 금리 상승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및 천무 II 등 대공 방어시스템의 우크라이나 지원 요구, 3천500억 달러 대미 투자 구체화, 반도체의 미국 내 생산 요구, 심상치 않은 북한 핵 및 미사일 도발과 북러 밀착,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초과 세수에도 국가 채무를 갚지 않고 사상 최대 규모로 편성한 내년도 예산 등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이것들 대신 부동산과 장관 인사가 추석 밥상의 주메뉴가 된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집권 후 첫 고비가 될 것이다. 만초손(滿招損)이요, 겸수익(謙受益)이다. 오만하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제라도 국민 앞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실패한 정책과 부적절 인사를 철회함으로써 민의를 반영하는 진솔한 노력을 보인다면, 그리고 민주당이 독단적 국회 운영을 중단하고 야당과 협치를 회복한다면 국민은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분노는 다음 선거에서 재앙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2026-09-13 18:30:00

  • [매일춘추-조대흠] 젤리피쉬

    [매일춘추-조대흠] 젤리피쉬

    오랜만에 배리어프리 연극인 '젤리피쉬'를 봤다. 예전에는 수어로 진행되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의 공연이었다. 공연을 보기 전 안내문에서 '릴렉스드 퍼포먼스'라는 말을 만났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릴렉스드 퍼포먼스'는 공연을 보는 동안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것이 허용되는 공연이다. 신경 다양성을 가진 관객을 포함한 모든 관객이 편안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관람 환경을 제공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관객의 행동이나 감각적인 반응을 공연 일부로 수용하고, 객석 조명을 어둡지 않게 유지하며 객석의 출입과 이동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시체관극'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연계에서 '릴렉스드 퍼포먼스'라는 말은 꼭 이단아같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공연은 꽤 많은 것을 요구한다. 정해진 시간에 와야 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야 한다. 식음료를 먹어선 안 되고, 촬영도 금지된다. 무대에서도 정해진 대사와 동선에 따라 배우가 움직이고 맞춰둔 약속에 맞춰 조명과 음악, 무대 장치가 움직인다. 그런데 '젤리피쉬'를 보면서 조금 다르게 해도 공연은 계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객석에서 소리를 내도, 잠시 밖을 나갔다 돌아와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배우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도 무대 일부가 된다. 원래라면 숨기려고 했을지도 모를 것들이 이 공연에서는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공연장 곳곳 릴렉스존을 마련해두거나, 안정을 위해 말랑한 공과 인형이 놓여 있었다. 공연을 보는 방법뿐 아니라 공연장에 머무는 방법까지 조금씩 달랐다. 배리어프리라는 말은 장벽이 없는 공연이라는 뜻이지만, 장벽이라는 건 듣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장에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규칙도 누군가에게는 장벽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예전에 봤던 수어 공연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무대 위 두 명의 배우를 따라다니며 수어가 이어졌고, 나는 배우의 연기와 함께 수어를 바라봤다. 그때도 묘한 따뜻함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를 특별히 배려하는 모습이라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기 위해 공연의 모양을 바꿨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에게도 공연을 편하게 보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면, 그때 공연이 나를 받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공연에 맞추기보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길. 그리고 이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공연들의 시도가 계속되면 좋겠다.

    2026-09-13 10:55:04

  • [이정식의 시대의 창] 노동시장 이중 구조, '큰 결단'보다 '작은 성공'부터

    [이정식의 시대의 창] 노동시장 이중 구조, '큰 결단'보다 '작은 성공'부터

    한국 노동시장은 오래전부터 내부자와 외부자가 분리된 이중 구조를 형성해 왔다. 현실은 기업 규모, 고용 형태, 산업, 숙련 수준에 따라 훨씬 복잡하지만, 대기업·공공 부문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안정적 고용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에 놓이는 경향이 뚜렷하다. 문제는 격차가 커질수록 청년은 중소기업을 기피하고, 중소기업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자동화와 숙련 투자를 미루며, 낮은 생산성은 다시 낮은 임금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악순환에 있다. 청년의 취업난과 기업의 인력난이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이 여기서 비롯된다. 인구 감소로 노동력 자체가 줄어드는 지금, 정년 연장만 따로 손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개혁을 미룰수록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왜 지금까지 풀지 못했는가. 처방을 몰라서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세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원청의 비용 절감 압력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조건으로 전가되는 구조도 격차를 고착시킨다. 정치의 시간과 정책의 시간이 어긋나고, 부처별 예산과 성과 지표로 나뉜 칸막이가 통합적 설계를 어렵게 만든다. 결국 장애물은 해법의 부재가 아니라 ▷조직된 이해관계의 저항 ▷단기 정치의 유혹 ▷조정 비용이다. 필요한 것은 목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성과를 측정할 수 있고, 이해관계 조정이 가능한 과제부터 시작해 성과와 신뢰를 쌓고, 이후 더 큰 이해 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숙련이 실제 임금과 이동 기회로 이어지는 훈련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AI 활용 교육과 디지털 전환 훈련을 단순한 수료 실적에 그치게 하지 말고, 중소기업 재직자가 현장에서 쌓은 숙련을 공통 기준으로 인증해 다른 기업으로 옮길 때도 그 경력이 인정되도록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공공 고용 서비스도 채용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역량 진단, 경력 설계, 전직까지 연결하는 경력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한다. 숙련이 축적되고 이동이 가능해질 때, 중소기업 일자리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경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정부가 공공 부문에서 먼저 직무 중심 보수 체계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임금 삭감이나 연공 서열 해체로 밀어붙이지 않고, 직무 가치를 투명하게 평가하며 전환 과정의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노동계와 국민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셋째, 이중 구조 완화는 노동정책만으로 풀 수 없다. 원청이 납품 단가와 비용만 압박하는 구조에서는 하청 기업이 임금과 훈련에 투자하기 어렵다. 납품 단가 연동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술 탈취에 대한 집행력을 강화해, 하청 기업이 여력을 갖도록 산업·공정거래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넷째, 사회안전망을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작동시켜야 한다.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산재보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단순한 노동 보호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가 불안으로 나쁜 일자리에 묶이지 않게 하는 생산성 정책이기도 하다. 다섯째, 사회적 대화는 고령자 재고용을 위한 직무 재설계처럼 이견이 적은 의제부터 다뤄 합의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도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 개혁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다뤄야 한다.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은 부처 간 칸막이를 조정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작은 합의를 축적하며, 국회는 검증된 성과를 법과 예산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중 구조가 낳는 청년의 좌절과 기업의 인력난은 이미 절박한 신호다. 과거 역사적 경험처럼 위기가 개혁을 강제하기 전에, 작은 성공부터 하나씩 축적해야 한다. 강제된 개혁은 제도의 왜곡과 현실적 부작용을 낳는다. 노동시장 개혁은 한 번의 결단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작은 성공을 축적해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큰 개혁으로 나아가는 긴 과정이다.

    2026-09-11 06:30:00

  • [쉽고 재미있는 사투리] <5> 무지개

    [쉽고 재미있는 사투리] <5> 무지개

    무지개는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나타나는 반원형의 일곱 빛깔의 줄을 말한다. 한 줄기 세찬 소나기가 내린 후에 예쁜 무지개가 뜬다. 음악에 비유하면 소나기가 강렬한 타악(打樂)이라면, 무지개는 부드러운 명상음악이다. 비가 온 뒤 하늘에 아름다운무지개[彩虹]가 뜨면 사람들은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가늘고 둥근 활 모양의 무지개[天弓]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우리 조상들은 무지개를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특별한 문이나 다리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무지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원을 분석하면 '물(水)+지게(戶)'의 결합이다. '지게'는 등에 짐을 지는 도구가 아니라 '방에 들어가는 작은 외짝문'을 뜻한다. 옛말에서 '호(戶)'를 '지게'라 했다. 따라서 '물지게'는 '물로 된 작은 문'이라는 뜻이다. 무지개의 둥근 모양이 마치 하늘에 걸린 문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무지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거나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사람 사는 땅과 신성한 하늘을 연결하는 다리로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무지개는 무지개다리[虹橋]와 의미가 통한다. 무지개의 끝이 땅에 닿는 곳에는 보물이나 행운이 있다는 믿음도 세계 여러 지역에 나타난다. 비가 온 후 운이 좋을 때는 두 개가 뜬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쌍무지개라 하는데, 빛이 곱고 맑게 보이는 것이 '수무지개'이고 빛이 없고 흐린 것은 '암무지개'이다. 그런데 '물지게'라는 형태가 실제 옛 문헌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물좀을 무좀으로 발음하듯이, '믈지게'를 '므지게'로 발음한다. 1447년에 간행된 '석보상절'과 '용비어천가'에는 '므지게'가 보인다. 이후 '므지게〉무지게〉무지개'로 형태가 변해 오늘날의 '무지개'가 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1636년의 '산성일기'에는 '무지게', 1730년의 '송광사판 유합'에는 '무지개'가 나타난다. 오늘날에는 무지개가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투리의 어형을 나누면, '무지게'계 어형과 '황고지'계 어형으로 나타난다. '무지게'계 어형은 무지게, 무지개, 무질개, 무즈개, 무저개, 무주개 등이 있다. 무지게, 무지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여러 지역에 나타난다. 무지개는 뒷날 다시 형태가 변하여 무지개〉무질개(경북), 무지개〉무즈개(전북·전남)〉무저개(경북), 무지개〉무즈개(전북·전남)〉무주개(충남)로 나타난다. 제주도에서는 무지개를 '황고지'라고 한다. '황고지'는 '한고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한(큰)+곶(꽃의 옛말)+이(접미사)', 곧 '큰 꽃'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시름, 한걱정이 큰시름, 큰걱정의 의미를 지닌 것과 같다.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육지에서는 '물로 된 작은 문', 제주에서는 '큰 꽃'으로 표현했다. 오늘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면 그냥 '예쁘다'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조상들이 그 무지개를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문이자 다리, 또는 하늘에 핀 큰 꽃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도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한국방언연구소 소장 신승원sinswon5@hanmail.net

    2026-09-11 06:30:00

  •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1984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제임스 브룩스의 '애정의 조건'은 엄마와 딸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리얼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영화에서 엄마 오로라는 딸이 선택한 사위가 맘에 들지 않고 그런 사위에게서 애를 셋이나 낳은 딸 엠마가 이해 안 된다.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딸의 금전 지원 요청에 냉담하지만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고 아끼는 엄마. '애정의 조건이란 무조건'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보다 더 설득력 있게 묘사한 영화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른 하나. 권위와 폭력이 몸에 밴 아버지 밑에서 학대와 억압을 받으며 자란 탓에 스무 살까지 무학에 문맹이었던 남자.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언어학자가 된 가비노 레다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빠드레 빠드로네'. '애정의 조건'을 보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실감나지만, '빠드레 빠드로네'에선 삶의 환경이 모진 부모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60년 전 우리나라 시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 자식을 농사 밑천이고, 살림 밑천이자, 노동력의 일부로 보았으니 말이다. 시작부터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룬다티 로이의 빼어난 자기성장담 '어머니 내게 오시네'를 덮자마자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가 부커상 수상자로 결정되는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희귀한 경험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던 것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작가는 엄마 로이 여사를, 무척 단순하면서 입체적 인간으로 그린다. 애증의 대상이고 존경해 마지않으면서도 닮고 싶지 않은, 그러나 어느새 한 인간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를 솔직히 드러낸다.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과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엄마의 딸이니까. 내 아버지는 많이 배운 분은 아니었으나 자식 공부만큼은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언제나 아버지의 원칙에 따라야 했다. 오직 공부였다. 온화하면서도 엄격하고 단호한 분이었으니, 외려 무채색인 시절에 살았던 게 다행일 정도였다. 때론 아버지가 (상상을 초월하는 결정을 할 때면) 가족보다 교회를 더 위하는 건 아닐까, 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제자들에게 빛을 비추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려면 우리-나와 오빠-가 어둠을 흡수해야"(74쪽) 그러니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린 건 당연했다. 작가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그런 선물에 감사하고 가까이 두고 지도를 그리면서 비밀이 드러날 때까지 응시하는 법을 배운다. 결국 그것이 자유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와 다르게 살고자 한들, 부모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부모의 자장 안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오기 마련. 작가 역시 그랬나 보다. "갈림길에서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마다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속한 계층,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보호해주었고,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없는 선택지들을 제공해주었다."(146쪽) 얄팍한 내 글재주로는 감흥을 다 담기 힘든 책이 있다. '어머니 내게 오시네'가 그랬다. 비가 쏟아지는 노천광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기분이 이럴까. 엄마 로이 여사가 없는 세상에서의 첫날 밤, 좌표 없이 우주를 떠도는 기분이라던 작가는 "나는 그녀를 패배시키고 싶지 않았고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늘 여왕처럼 퇴장하길 바라왔다."(439쪽)며 헌사한다.

    2026-09-11 06:30:00

  •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최재목] 자승자박(自繩自縛),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최재목]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처리, '자승자박' 결과" "정부의 '자승자박'… 부동산, 주식, 국방, 안보 등 총체적 이슈" 국내외 정치권에서 제 손발을 스스로 꽁꽁 묶는 경우를 본다. 한 치 앞을 못 내다본 무지의 결과들이다. 저들 스스로 내뱉은 말이나 행동, 다수를 믿고 쉽게 통과시킨 법안들이 결국 그네 자신을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 마는 것을. 누구를 원망하랴! 자승자박(自繩自縛)은, "스스로 자, 노끈 승, 스스로 자, 묶을 박"으로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다"는 뜻이다. 스스로 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곤경에 빠지는 경우를 가리키는 고사성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사용하며 일본에서 가끔 쓰고, 중국에서는 거의 안 쓴다. 자승자박의 '승'은 노끈 이외에 '줄/먹줄', 나아가 '법도'를 의미한다. '규구준승(規矩準繩)'의 하나다. '규'는 원을 그리는 걸음쇠(컴퍼스), '구'는 직각을 잡는 곱자(곡척), '준'은 면이 평평한지 확인하는 수준기, '승'은 직선을 그리는 먹줄을 말한다. 과거에 집을 짓는 등의 목조공사엔 필수적인 도구들이다. 자승자박은 "제 발등을 제가 찍"거나 "제 무덤을 자기 스스로 파"는 꼴로, 자업자득(自業自得), 인과응보(因果應報), 종두득두(種豆得豆: 콩 심은 데 콩 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나 자충수(自充數)라는 말들과 서로 통한다. '자승자박' 하면 으레 『한서』 「유협전」의 '자박(自縛)'이란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옳지 않다. 온전한 사자성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삼국지연의』(1522) 「제29회」에 "줄을 가져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스스로를 묶다(取繩自縛於烈日之中)"의 '취승자박(取繩自縛)'이나, 청대 심복(沈復)의 『부생육기(浮生六記)』 권6 「양생기소(養生記逍)」 등에 나오는 '작견자박(作繭自縛)'이 더 어울린다. '견'은 '고치'(누에가 실을 내어 지은 집)로, '작견자박'은 "누에가 실을 토해내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 스스로 갇히는 것"이니 '자승자박'과 같다. '자승자박'이란 사자성어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시작했다고 봐야 옳다. 예컨대 『속동문선(續東文選)』(1518) 제4권에 실린, 매월당 김시습의 「만흥(謾興)」 네 수 가운데 나온다. 누에고치 속의 나방 같은 자신의 삶을 '자승자박'으로 표현했다. 만흥이란 '흥 나는 대로 쓴' 시다. "두변세월일조과(頭邊歲月一鳥過: 머리 가에 세월이 한 마리 새처럼 지나가니), 인직백세능기하(人直百歲能幾何: 사람이 그저 백 년을 산들 얼마나 되랴만), 등등올올시수과(騰騰兀兀是誰過: 멍청하고 멀뚱하기만 한 건 이 뉘 잘못인고), 자승자박여잠아(自繩自縛如蠶蛾: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음이 누에고치 속의 나방 같구려)" 앞서 언급한, 누에가 토해낸 실로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를 그 속에 묶어버린다는 '작견자박'을 연상케 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누에고치가 스스로를 감다(蠶繭自纏縈)"라고 했고, 남송의 시인 육유(陸遊)는 "인생은 봄누에와 같아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 감싼다(人生如春蠶, 作繭自纏裹)"라고 했다. 우리네 삶은 어리석어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아차 뉘우쳐도 모두가 지난 이야기"일 뿐인가. 그나마 '뉘우칠' 줄이라도 안다면, 다시 제 무덤을 파는 일을 줄이련만.

    2026-09-11 06:30:00

  • [사설] 부산 외국인 관광객 300만 시대, 대구도 달라져야

    정부가 대구공항을 대구~경주~안동을 잇는 '지방공항 중심 5대 관광권'에 선정했다. 내년부터 5개 관광권에 국비와 지방비 935억원을 투입해 국제선과 교통·결제, 관광 콘텐츠를 함께 키운다. 2029년 지방공항 입국객 500만 명이 목표다. 대구에는 반가운 기회지만 현실부터 직시(直視)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을 넘어 지방으로 빠르게 발길을 넓히는 동안 대구는 경쟁 도시들에 크게 뒤처져 있다. 올해 8월까지 부산 방문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어섰는데, 대구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당장 상반기 입국 외국인만 비교해도 김해공항 101만 명, 대구공항 5만7천여 명이다. 물론 도시별 관광객 집계 방식이 달라서 절대 비교는 어렵다고 해도 격차는 뚜렷하다. 올해 상반기 방한 외국인은 1천71만 명으로 사상 처음 1천만 명을 넘겼다. 2분기 서울 외 지역 방문율도 35%에 육박한다. 부산은 국제선과 숙박·미식·쇼핑·의료·축제로 연결해 독자적 여행지로 만들었다. 대구는 동성로와 서문시장, 의료관광 등 자원을 갖고도 외국인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아직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구공항 입국 외국인이 상반기 대구에서 쓴 카드 소비액은 145억여원으로 13%가량 증가했다. 부산의 7천400억여원에 비해 미미하지만 대구의 방문객 증가율보다는 훨씬 높다. 사람만 오면 소비로 이어질 여지(餘地)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5대 관광권 선정을 계기로 국제선 증편과 함께 공항에서 도심과 의료관광으로 이어지는 체류(滯留) 동선을 만들고, 경주·안동과의 편리한 교통체계도 갖춰야 한다. 특히 경주는 김해공항 관광권에도 들어 있다. 대구 자체의 매력이 약하면 관광객은 김해공항으로 들어와 부산에만 묵고 경주를 찾는다. 대구가 그저 통과 지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관광지 몇 곳을 더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외국인이 대구에서 하루 더 머물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관광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5대 관광권 간판만 얻고 정작 관광객은 부산에 내준다면 허울뿐인 성과로 끝날 수 있다.

    2026-09-11 05:00:00

  • [사설] "연임 안 한다"는 말, 무엇 때문에 못 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프랑스 동포 간담회에서 "저의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연임(連任) 개헌' 논란이 시작된 올해 7월 이후 이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임기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성향 언론에서는 '연임 가능성에 이 대통령이 직접 선을 그은 것'이라는 식의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헌법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규정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런 말장난 같은 논란(論難)이 좀처럼 숙지지 않는 것은, 이 대통령이 "연임 안 한다"는 말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 측 인사들의 발언도 불신(不信)을 확산시켰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올해 7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 문제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헌법을 무시하고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비록 SNS를 통해 '오해에 유감'을 표시했지만, 친(親)이재명계 조 의장의 말 속에 속셈이 숨어 있다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 본인의 언행(言行) 또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개헌에 대해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 또는 4년 연임제로 변경해 중간 평가를 통한 책임 정치가 가능하도록 하자"고 했을 뿐 임기 제한은 거론하지 않았다. 이달 4일 연임 질문에도 "도둑질 안 하겠다고 하라는 것과 같은데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하느냐"며 핵심을 피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고, 한성숙 국무총리는 '현 정부의 국정 목표 1번이 무엇이냐'는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개헌"이라고 답했다가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로 정정(訂正)했다.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의 머릿속에 온통 개헌뿐이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연임 개헌 음모론을 사라지게 하는 확실한 방법은 "연임 안 한다"는 이 대통령의 한말씀이다.

    2026-09-11 05:00:00

  • [사설] "생떼와 억측"이라며 사퇴 요구 일축한 용혜인 후보자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요구를 일축(一蹴)했다. 제기된 각종 의혹을 "억측과 악선동"이라며 반박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억울함의 호소가 아니라,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남 탓 뒤에 숨어 궤변을 늘어놓는 용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당의 농장·자택 등 시·도당 사무실 등록, 정치자금 기부를 통한 세금 감면 등을 둘러싼 의문은 논쟁(論爭)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적법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 떳떳하다면 관련 자료를 공개해 입증하면 된다. '작은 정당의 현실'이란 사정도 검증의 잣대를 낮출 이유가 될 수 없다.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라면 규모와 관계없이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용 후보자는 장관과 비례대표 의원직 겸직(兼職) 문제 역시 법률상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적인 허용'과 '정치적인 올바름'은 별개의 문제다. 과거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에 지명되면 의원직을 내려놓았던 관례를 '자리 나눠 먹기'로 몰아가는 것도 부적절하다. 겸직이 주권자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따져 보는 게 먼저다.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용 후보자 지명을 '잘못한 인선(人選)'이라고 답한 비율이 60%를 넘었다. 여론조사가 후보자의 적격(適格) 여부를 결정하는 척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부정적 여론이라면 후보자가 적극 나서 의혹을 해소시켜야 마땅하다. 그런데 용 후보자는 '국민의힘의 생떼'와 '악선동에 휩쓸리는 민주당 일각'을 탓하며 사퇴 요구를 일축하기만 했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이런 생각과 자세로 어떻게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사 청문회(聽聞會)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해명을 미루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결백하다면, 청문회 전이라도 모든 의혹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을 자청(自請)해야 한다. 비판 세력을 향한 비난과 반박보다 자료와 증거로 국민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사퇴하는 게 맞다. 그게 국민을 향한 예의다.

    2026-09-11 05:00:00

  • [관풍루] 올해 초·중·고교 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2.9%를 기록하며 6년 연속 상승

    ○…올해 초·중·고교 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2.9%를 기록하며 6년 연속 상승. 맨몸으로 맞붙는 이른바 '스파링'과 '야차룰'이 놀이 문화처럼 확산한다는데. 공교육이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부터 바로잡아야. ○…오픈AI의 최신 AI 모델 'GPT-6 아스트라'가 인터넷상에서 사람과 로봇을 구별하는 '인간 인증 시스템(CAPTCHA)'을 완벽히 통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류의 대응 능력을 훨씬 앞질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5'에서 한국 학생 읽기 점수가 501점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유독 뒤처졌다는데. 숏폼 중독이 문제.

    2026-09-11 05:00:00

  • [날씨] 9월 11일(금)

    [날씨] 9월 11일(금) "차차 구름 많아짐"

    2026-09-10 18: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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