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의 전리품 된 폴란드 헌재 사태,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폴란드 헌법재판소 앞에 진압경찰이 배치되고, 대통령과 헌재소장 측이 청사 진입을 위해 통제하는 측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순방 중 귀국한 대통령은 막아선 재판관들을 밀치고 청사로 들어가 '헌법기관이 무력으로 장악됐다'고 규정했다. 2015년 이후 헌재의 구성과 판결 효력이 정쟁(政爭)의 대상이 됐고, 헌법기관 문 앞에서 권력 다툼이 물리적 충돌로까지 번진 것이다. 사법부를 정치의 전리품으로 삼은 결과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대법원도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정면충돌하면서 대법관 한 자리가 8개월 동안 비어 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사실상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했고,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갈등은 여야 정쟁으로 번졌다. 대법원장 탄핵과 국정조사, 법원행정처 폐지까지 거론되면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해 대법원을 청와대가 원하는 구성으로 채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재제청 절차처럼 헌법과 법률에 세부 규정이 없는 부분을 정치권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폴란드 사태와 같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대법관 증원도 같은 맥락이다.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이 통과돼 2028년부터 3년간 매년 4명씩 증원된다. 상고심 적체 해소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증원분 12명에 임기 중 퇴임하는 기존 대법관 10명의 후임까지 더해 26명 중 22명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 한 정권이 대법원을 채웠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폴란드에서도 양측 모두 헌법 수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사법부 구성이 권력 다툼의 대상이 되자 헌법기관 간 견제는 상호 존중 대신 적대로 바뀌었다. 폴란드가 보여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사법부 구성을 둘러싼 보복이 한 번 시작되면 어느 쪽도 멈추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여야 합의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임명 권한의 경계, 대법관 임명 절차의 책임과 시한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2026-11-03 05:00:00
[사설] 정부 K-2 이전 사업 외면, 군공항이 대구 시민의 것인가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이 표류하고 있다. 군공항(K-2) 이전 사업이 재원을 마련 못 해 진척이 없는 바람에 민간공항 건설도 제자리걸음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부 대 양여(寄附對讓與) 방식이란 이유로 국가사업 전환 요구는 물론 공공자금관리기금 융자 요청마저 외면하고 있다. K-2 이전 사업비는 11조5천억원이다. 새 군공항을 지어 국방부에 기부하고 기존 부지를 넘겨받아 개발 수익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기부 대 양여)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대구시는 올해 2천795억원, 내년 3천324억원의 공자기금 융자를 요청했지만, 정부 예산안에서 빠졌다. 이자 보전과 후적지(後適地) 개발 수익으로 원금을 갚겠다는 최소한의 대안조차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같은 기부 대 양여 방식인 광주 군공항 이전에는 총력전(總力戰)을 펼치고 있다. 군공항 이전 부지에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을 명분으로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기존 부지를 먼저 넘겨받는 방안과 재정 지원을 검토 중이다. 부산 가덕도신공항 역시 공사비 증액 문제를 특별법 개정으로 해결하려 한다. 광주·부산에는 법과 예산을 총동원하면서, 대구에는 기부 대 양여 원칙만 내세우는 것은 명백한 지역 차별(差別)이다. 국토교통부의 태도도 황당하다. 민간공항 기본계획을 변경 고시한 뒤 "민항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 중"이라고 했다. 군공항 이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민간공항도 착공할 수 없다. 핵심 사업은 멈춰 있는데 몇 가지 행정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사업이 순항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대구 시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K-2는 대구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다. K-2는 1970년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이 김포에서 대구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군사시설이다. 6·25전쟁 때는 미군 기지 역할을 했다. 대구는 국가가 설치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운용한 시설 때문에 소음과 재산권 침해를 감내했다. 그런데도 지자체에 이전 비용을 떠넘기는 것은 국가의 횡포(橫暴)다. 군공항은 대구 시민의 것이 아니다. 이전 사업은 국가의 책임이다.
2026-11-03 05:00:00
[사설] '국가 미래' 없는 미래대응기금, 정부 쌈짓돈 되나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은 잠재성장률 반등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세수(稅收) 변동에 대응하는 혁신적 재정 안정 장치"라면서 총 820조9천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 심사를 요청했다. 정부는 반도체발 세수 호황을 계기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며 지난해보다 12.8%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확장 재정을 편성했다. 그러나 일시적 세수 증가에 도취해 국가재정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방만(放漫)한 편성이 아닌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특히 162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미래대응기금'에 대해서는 그 목적과 맞지 않는 예산 편성이 곳곳에서 지적됐다. 올해 361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청년 영화·공연·체육 관람 지원 목적의 '청년문화예술패스' 예산이 내년도 미래대응기금에는 7천925억원으로 무려 22배 폭증해 반영됐다. 또 농어촌 주민에게 월 15만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1조1천657억원이 배정됐으며, 심지어 행정 부처 지방 이전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장·차관 관사 확보에 56억7천200만원을 편성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인센티브(약 1천억원)나, 초·중·고교 냉방비 및 염전 지원(1천313억원)처럼 기존 정부 예산이나 지자체 경상비로 처리해야 할 소모성 경비까지 기금 사업으로 끌어왔다. 여기에다 구체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여유 자금을 국회 통제권 밖에서 자율 전용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두다 보니 행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하다. 반도체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가 수년 뒤 소멸했을 때 그 부담은 결국 미래 세대의 빚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바와 같이 초과 세수는 우선적으로 나랏빚을 갚고 재정 규율을 확립하는 데 투입하는 것이 상식이자 원칙이다. 이제 공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여야는 엄격한 돋보기 심사에 나서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선심성 예산을 걷어내는 데 총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회 본연의 임무다.
2026-11-03 05:00:00
[관풍루] 최근 2년 동안 교도소와 구치소 수감자 7만 명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고유가 피해지원금 받았다고
○…밤잠 없는 이재명 대통령, 북한의 집속탄두(강철비) 위력 과시, 우리 군 최전방 GP와 미군 전차 모형에 자폭 드론 공격 사진 공개 등 도발엔 침묵. 다문화 가정 지원·외국인 근로자·대미 관세 등 언론 보도엔 폭풍 SNS. ○…이재명 대통령 "정치적 올바름이 오늘날 대중의 반발과 피로감에 부딪힌 이유는 이를 주창하는 태도에 내재된 '언행 불일치'와 '내로남불'에 있다"고. 절절한 자기 고백? ○…최근 2년 동안 교도소와 구치소 수감자 7만 명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고유가 피해지원금 받았다고. 성실히 일해서 돈 버는 사람에겐 안 주고, 죄지은 사람에겐 주는 한국형 복지.
2026-11-03 05:00:00
2026-11-02 19:03:27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0일(10월 16일)이 지났다. 대통령 취임 500일은 기대의 정치가 경험의 평가로 바뀌는 시점이다. 집권 초기에는 새 정부에 대한 희망과 전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지지율을 떠받친다. 그러나 500일이 지나면 국민은 인사와 정책, 위기 대응과 소통 방식을 충분히 경험한다. 이제 대통령은 무엇을 약속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바꾸었는지로 평가받는다. 여론조사는 정부의 성과 설명과 국민의 생활 경험 사이의 거리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추세와 강도, 지지 연합의 변화다. 추세는 신뢰가 움직이는 방향을, 강도는 지지와 반대의 단단함을, 지지 연합은 국정을 떠받치는 기반의 변화를 드러낸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10월 4주 조사(19~23일)에 따르면, 이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5.3%, 부정 평가는 62.3%였다. 지난 6월 1주와 비교하면 긍정 평가(55.2%)는 약 20%포인트 급락했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전체 부정 평가자 가운데 '매우 잘못한다'(51.6%)는 '강한 부정'의 비중이 약 83%에 이른다. 불만이 단순한 실망을 넘어 굳어진 반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지 연합의 변화도 주목을 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지지 기반인 40대와 50대에서조차 부정이 각각 61.4%와 53.1%로 긍정 평가(36.3%와 44.8%)를 압도했다. 이런 기류는 일시적 악재보다 정책과 통치 방식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반드시 평가해야 할 지표가 국정 방향성이다. 직무 평가가 지금 일을 잘하는지를 묻는다면, 방향성 평가는 정부가 이끄는 미래를 신뢰하는지 묻는다. 전국지표조사(NBS)의 국정 방향성 평가(10월1주)에 따르면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율은 43%인 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50%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3월 4주 때와 비교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비율이 6개월 만에 무려 25%포인트 증가했다. 정부는 이 격차를 국정의 진로를 점검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생활 전망은 정부 불신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준다. 한국갤럽 조사(10월 27∼29일)에서 향후 1년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응답은 53%, 내릴 것이라는 응답은 14%였다. 전월세 등 주택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66%였고, 내릴 것이라는 전망은 7%에 그쳤다. 이는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이 국민의 기대를 충분히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또한, "부동산 정상화는 계곡 정비보다 휠씬 쉽다"고 호언장담한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여론조사 결과, 현재의 성과와 미래의 방향, 생활의 전망이 함께 흔들린다는 것은 이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으로 반등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유시민 작가는 지난 7월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을 두고 "필연적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심지어 최근엔 "극단적인 경우에는 박근혜나 윤석열처럼 임기를 채우지 못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유 작가의 예견은 적중할까? 민심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재명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뺏긴 치명적인 한계가 그대로 재연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 첫째, 정책 무능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데 "일은 잘할 것 같아서" 대통령으로 뽑아 줬는데 이제 국민들은 이재명이 "일을 참 못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한국갤럽이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4개월 되는 시점에 실시한 분야별 긍정 평가에서 부동산 19%, 인사 20%, 대북 24%로 최하위로 나타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둘째, 위선이다. 집권 세력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들먹이지만 '선출된 권력 우위론'에 도취돼 국회에서 다수의 폭정을 일삼고, 사법부를 압박하면서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있다. 셋째, 권력의 사유화다. 조작 기소 특검 추진과 같이 권력을 이용해 대통령 재판 공소 취소에 혈안이 돼 있다. 이제라도 이 대통령은 폭정을 멈추고 '누가, 왜 신뢰를 거두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국민의 비판을 이겨야 할 논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야권 비판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반박하는 것은 소통과 설득을 포기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보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행동이다. 이 대통령이 민심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자신은 성공한다"는 허황된 확신에 빠지면 레임덕이 아니라 데드덕의 길로 빠르게 접어들 것이다.
2026-11-02 13:54:24
[사설]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환자 안전 위협하는 과도한 수사 아닌가
생명이 오가는 응급실의 특수성을 무시한 강제수사(強制搜査)가 과연 정당한가. 경찰의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을 둘러싼 반발과 비판은 '수사의 정당성과 환자의 안전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라는 원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아주대병원에서 치료받던 영아 사망 사건 수사를 위해 9월 30일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압수수색했다. 영장(令狀)에 따른 집행이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경찰이 진료 현장에 들어가 의료진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구하는 등 수사 과정에서 진료 차질과 의료진의 위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전문의들과 센터장이 사의(辭意)를 밝혔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등은 필수의료 현장의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불가피한 경우 사전 협의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진료에 미칠 영향이 적은 수사 방법을 우선하도록 하는 내용의 '응급실 보호법' 발의에 나섰다. 의료사고 의혹을 받는 의료진은 조사받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수사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진료기록은 전산으로 관리되고, 수정 이력도 남는다. 자료 제출 요구나 전자정보 확보 등 덜 침해적인 방법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응급실에 직접 진입하는 강제수사를 했다. 이게 최선이었나. 정부는 이번 사태가 초래할 의료 공백(空白)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의사가 수사와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필수의료 현장을 떠난다면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
2026-11-02 05:00:00
[사설] 동맹 강화 외치면서 미국에 뒷발질만 하는 외교·안보 정책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국회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뒤늦게나마 미 국무부가 비자를 발급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예정대로 (1일) 출국하여 미 태평양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와 대한민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양국의 안보협력(安保協力) 강화와 미래지향적 동맹 발전 방안을 충실히 논의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크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1일 애틀란타 G20 외무장관 회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국회의원들의 미국 비자 발급이 차질을 빚은 데 대해 "(주한미군 철수 주장, 국가보안법 위반 등) 해당 의원의 수십 년 전 행적과 관련된 이슈 때문"이라며 "양국 간 협의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한미동맹(韓美同盟)을 중시하는 한국 측 인사들과 미국 내 친한파의 노력 덕분에 '진성준 비자 문제'는 일단 해결되었지만 한미 간 갈등(葛藤)은 진행형이란 분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정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 최근 언행 등을 근거로 안보·국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는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15명 안팎에 대해 리스트를 만들어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25년도 한국인의 미국 비자 거절률은 24.73%로 급등하면서 비자 면제 협정국도 아닌 중국(20.21%)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한국은 더 이상 신뢰(信賴)할 수 있는 동맹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 약속 이행이 지지부진한 데다, 한국이 대중국 견제에서 이탈하며 제1도련선 회의 및 한미일 연합훈련에서 배제되는 등 한미동맹이 급격이 붕괴(崩壞)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서운해하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미동맹의 약화는 곧바로 한국의 안보·외교 위기(危機)로 비화된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드론 전시회를 열고 최대 30여 종의 드론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쌓은 드론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을 향해 본격적으로 드론 무력(武力)을 과시한 셈이다. 불행하게도 한국군은 북한 드론을 무력화시킬 전자전기 한 대 없고, 한국산 드론은 스마트폰 전파에도 추락하는 창피를 공개적으로 당했다. 한국산 공격형 드론 역시 단 한 대도 없는 실정이다. 주한미군의 도움 없이 북한군의 최신 드론 공격을 막아낼 수단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안보 협력 강화" "동맹 발전"이라는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입에 발린 말로 현재 우리가 처한 한미동맹 파탄(破綻)과 심각한 외교·안보 위기를 감춘다고 해서 숨겨질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정권의 진영(陣營) 논리에 따른 외교·안보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익을 위한 외교·안보 정책으로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교·안보는 '국민이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2026-11-02 05:00:00
[사설] 군 간부 전원 무죄…단순 연루 아닌 목적과 고의 증명해야
12·3 비상계엄 관련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 간부 8명이 1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30일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 방정환 전 국방혁신기획관 등에 대한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갑작스럽게 하달(下達)된 임무의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과 국헌 문란 목적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을 계엄의 위법성을 부정한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군인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판결의 요체(要諦)는 내란죄의 핵심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내란중요임무종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형이 무거운 만큼 개인의 책임은 직책이나 임무 수행 사실이 아니라 목적과 고의에 대한 증거로 가려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지휘한 자, 위법을 알면서 집행한 자는 엄벌해야 한다. 다만 처벌의 정당성은 기소 범위를 넓히는 데서 나오지 않고 입증의 정밀함에서 나온다. 이번 판결은 계엄에 연루됐다는 사실만으로는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신호다. 내란특검은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부의 판단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반박했다. 2차 종합특검은 내란특검이 불기소 또는 불입건했던 일부 인물과 사건까지 기소 범위를 넓혔다. 그만큼 입증 부담도 커졌다. 내란특검은 이후 재판에서, 2차 종합특검은 자신들이 기소한 군인들의 재판에서 피고인 각자가 계엄의 목적을 알고 가담(加擔)했는지를 증거로 보여줘야 한다. 판결을 탓하기 전에 증명하는 것이 기소한 쪽의 몫이다.
2026-11-02 05:00:00
[관풍루] 여야의 격한 공방 속에 820조 9천억원 규모 2027년도 예산안 심사
○…여야의 격한 공방(攻防) 속에 본격화된 초유의 820조9천억원 규모 2027년도 예산안 심사. 정부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선심성·현금성 지출이 과도하게 팽창했다는 지적 줄 이으며 민생 회복이라는 명분을 무색하게 해. ○…검찰의 수사권 폐지 이후 경찰의 수사 역량에 대한 우려 이어지며 경찰대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신설하는 방안 거론된다고. 이럴 거면 애초에 형사소송법을 굳이 개정한 이유가 뭔지. ○…이재명 대통령이 잦은 해외 순방을 지적하는 야당을 향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반박하자, 국민의힘 발끈. 아무리 SNS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 대통령의 언어 품격은 유지돼야.
2026-11-02 05:00:00
2026-11-01 18:51:55
[김용삼의 한국 반도체산업 비하인드] 4MD램 반도체 개발의 숨은 주역은 전두환 대통령
한국 반도체 업계의 숙원 과제는 차세대 메모리인 '4MD램'의 국내 독자 개발이었다. 반도체 분야의 최첨단 기술인 4MD램을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한다면, 한국 전자산업은 미·일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길을 걷게 된다.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4MD램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았다. 이 분야 선두 주자인 삼성이 64KD램·256KD램을 출시하며 그룹 전체가 풍비박산 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적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를 불안하게 여긴 정부 내에서 강력한 반대 목소리가 끝없이 제기되었다. 반도체산업에 찬성하는 부처인 체신부·과학기술처·상공부는 저마다 부처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개발 주도권을 자기가 맡아야 한다며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혼란의 와중인 1985년, 국가 연구개발 정책을 총괄하는 과기처 연구개발조정실장에 박승덕이 임명되었다. 그는 육사를 졸업(12기)하고 소대장 생활을 마친 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 기계공학 석사, 캐나다 오타와대학교에 국비 유학하여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모교인 육사 교수, 한국기계연구소장, 과기처 기술정책실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을 역임한 한국형 테크노크라트의 전형이었다. 며칠 후 육사 11기 출신 김성진 과기처 장관이 육사 1년 후배인 박승덕 실장을 집무실로 불렀다. 당시 과학기술계 최대의 화두는 '4MD램 반도체 개발'이었다. 뜻은 간절했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가 요구되는 분야인 데다가 최첨단 기술 분야여서 누구도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국내 3대 반도체 기업(삼성·금성·현대)은 심각한 적자의 수렁에서 신음하며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김성진 과기처 장관의 결단 강진구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업 단독으로 4MD램 개발은 자살적 모험의 길"이라며 국가의 도움을 절실히 호소하고 나섰다. 김성진 장관은 육사 후배 박승덕 실장에게 결연하게 입을 뗐다. "4MD램 반도체 연구개발은 대기업이 하는 사업이어서 정부가 지원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평시가 아닌 비상 상황이오.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보시오." 당시 정부의 국가 전체 연구개발 예산은 고작해야 연간 600억 원으로, 당장 발등의 불인 기초연구 과제와 영세 중소기업을 지원할 연구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대기업에 국민 세금으로 거액의 연구비를 몰아주는 것은 특혜 시비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게다가 4MD램 개발비는 정부 특정연구개발비를 통째로 털어 넣어도 모자랄 정도로 거액이 요구되었다. 박 실장은 여러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 김 장관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피 말리는 반도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도체 기업들을 도와 기술 자립을 이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승덕 실장도 심정적으로는 김 장관과 같은 입장이었다. 다만 한정된 재원과 여론의 향배가 걸림돌이었다. 만약 반도체가 기술 자립을 못 하면 한국의 미래 산업은 영원한 기술 종속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다. 특단의 타개책이 필요했다. 오랜 고민 끝에 박 실장은 정부와 민간, 학계와 연구소 공동 연구개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4MD램 개발을 국가와 민간 공동 연구 사업으로 추진하되, 과기처의 특정연구개발사업을 컨트롤타워로 삼아 지원하는 방안이었다. 이 안을 가지고 이해가 엇갈리는 상공부·체신부·경제기획원 실무자들을 설득했고, 관계 부처가 합의하여 돌파구가 열렸다. ◆"4MD램 연구개발비 정부 부담" 선언한 전두환 4MD램 반도체 개발은 3년의 세월과 당시 국가 연구개발 1년 치 예산을 초월하는 총 879억 원(당시 환율로 1억 달러)이 투입되는 단군 이래 최대의 과학기술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자존심 강한 라이벌 기업이자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삼성·금성·현대가 공동개발에 참여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일본은 D램 제조사만 10개가 넘었다. 이들은 한편에선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른 편에선 공조하여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한국이 반도체 전쟁에서 생존하려면 반도체 3사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야만 반도체 생산 장비 국산화도 가능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공동연구를 하려면 '절대적인 국가적 권위'가 필요했다. 박승덕 실장은 고심 끝에 이 과제를 '대통령 프로젝트'로 격상시켜 통치권자의 서명을 받아내기로 결심했다. 1986년 8월 22일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안)'을 보고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단호하게 이 서류에 서명했다. 879억 원이란 초유의 국가 연구개발비가 걸린 프로젝트가 국가 최우선 국책과제로 탄생한 것이다. 이날 전 대통령은 결재 서류 여백에 "전자통신연구소장은 전 연구원의 인사권을 장악해야 하며, 3사(삼성·금성·현대)는 공동운명체로서 연구소장의 지휘에 순응 협조해야 함"이란 메모를 남겼다. 국책연구소장에게 사기업 연구원을 지휘하는 전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3대 대기업에겐 "기업 이기주의를 버리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공동운명체'로 복종하라"는 통치권자의 엄중한 명령이었다. 당시 반도체 3사는 서로의 입장이 크게 달랐다. 사용 장비와 공정 방식이 달랐고, 해외 기술 도입선과 보유 기술력도 격차가 컸다. 삼성은 수년간 피눈물 나는 적자를 감수해 가며 1MD램 개발을 마친 상태였다. 기술적으로 월등히 앞서 있던 삼성이 후발주자인 현대·금성과 핵심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동개발에 선뜻 나설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전 대통령은 반도체 3사 회장을 청와대로 전격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4MD램 개발비는 얼마가 들든 정부가 책임지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과제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성공시켜야 한다면서 3사가 한마음으로 뭉칠 것을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나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 구자경 금성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반도체 공동개발을 권유했다. 아울러 막대한 개발 비용의 상당액을 정부에서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중략) 반도체산업은 국가경쟁력 확보와 경제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따라서 난관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극복해 나가면 되는 것이라고 나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전두환 지음, 『전두환 회고록(2): 청와대 시절 1980-1988』, 자작나무숲, 2017, 223쪽) 통치권자의 확고한 의자와 파격적인 재정 지원 약속에 3사 회장은 흔쾌히 "국가적 대업에 동참하겠다"라고 화답했다. 연구개발 기간은 1986년 8월부터 1989년 3월까지 총 30개월. 정부는 불퇴전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이 사업의 공식 명칭을 '대통령 프로젝트'로 못 박았다. 마침내 한국 반도체 역사를 바꿀 4MD램 개발의 거대한 엔진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공교롭게 4MD램 반도체 개발에 앞장선 김성진 장관, 박승덕 실장, 전두환 대통령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육사 출신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 이처럼 비장한 4MD램 공동개발이 시작된 다음 해인 1987년부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미국 PC 시장이 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면서 세계 반도체 경기가 들썩인 것이다. 글로벌 PC 메이커들은 성능은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싼 1MD램 대신, 경제성 뛰어난 256KD램을 주력 메모리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일본 반도체 업계는 256KD램 생산량을 크게 줄이고, 1MD램을 주력으로 삼아 공급 중이었다. 이 미묘한 타이밍이 뒤늦게 256KD램 시장에 뛰어든 삼성에 결정적 기회로 작용했다. 삼성 반도체의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당 1달러였던 256KD램 가격이 12달러, 개당 50센트였던 64KD램마저 6달러로 껑충 뛰었다. 삼성은 1988년 한 해 동안 64KD램 5천만 개와 256KD램 8천만 개를 싹쓸이 판매했다. 그 결과 1988년 한 해에 무려 1천649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래 5년여 쌓였던 누적 적자 1천200억 원을 단숨에 털어내고도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관료들의 반대 속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용단으로 수도권 규제를 뚫고 일궈낸 기흥 256KD램 전용 제2라인이 마침내 한국 반도체 역사상 최초의 흑자라는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11-01 14:06:30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에 가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배우는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객석에 앉아 같은 시간을 함께한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집이나 영화관에서도 뮤지컬과 연극을 볼 수 있다.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의 공연 실황 프로그램 NT Live를 비롯해, 토니상 4관왕에 빛나는 뮤지컬 '메릴리 위 롤 어롱(Merrily We Roll Along)'도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공연 실황은 현장 공연과 다르다. 영상은 무대 전체를 보여주다가도 배우의 얼굴을 가까이 비춘다. 객석 뒤쪽에 앉았다면 놓쳤을 배우의 세밀한 연기를 카메라가 포착한다. 영화처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칼에 찔려도 피를 흘리지 않는 무대적 허용이 화면에 어색하게 보일 때나 조명으로 강조된 장면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 관객이 무대에서 무엇을 볼지 선택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연극을 처음 배울 때 현장성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는 공연장에 관객이 모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온라인 공연 실황 중계가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팬데믹 시기 공연을 만들기 위해 나 또한 중계를 시도한 적이 있다. 평소라면 아카이빙을 위해 스마트폰으로만 촬영했겠지만, 당시에는 유튜브 송출을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했다. 음향 녹음 장비와 실시간 중계를 위한 끊김 없는 인터넷 환경도 필요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던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결국 생중계는 포기하고 녹화한 영상을 송출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들을 다시 편집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당시 몇십 명이 시청했던 걸 생각하면 들인 노력에 비해 아쉬운 결과였다. 이렇게 팬데믹을 기점으로 공연의 영상화는 여러 방면으로 활발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DVD 제작이나 공연 기록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공연 실황 자체를 유료 콘텐츠로 판매하거나 새로운 관객을 유입하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쓰임새가 더 넓어지고 있다. 공연 실황이 현장 공연을 대신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대구에 사는 나도 공연 실황을 통해 브로드웨이와 런던, 서울 대학로의 무대를 볼 수 있고, 이미 막을 내린 공연도 다시 관객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공연 실황은 무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가 관객을 만나는 또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2026-11-01 09:17:53
[사설] 의혹·불신만 더 키운 선관위 특검의 투표지 검증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29일 선관위 특검의 6·3 부정선거 의혹 투표지 검증(檢證)과 관련, "선관위와 특검이 투표함을 경찰과 무슨 작전이라도 하듯, 야반도주하듯 들고 사라졌다"면서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것 이외에 "또 다른 부정선거 증거들이 남아 있다" "국민의 소중한 한 표를 살려낼 증거들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특검은 '수사 대상이 되는 투표지는 선별된 것이 한정된 것'이라며 나머지에 대해선 '권한'이 없다고 선관위에 넘겼다는 설명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6·3 지방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이번 검증이 특검의 수상하고 부적절한 행태로 인해 오히려 의혹과 불신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우선 국민의 알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검증 과정 생중계를 금지하고, 국힘 주진우 의원의 참관을 불허한 것은 비상식적이다. 특히 부정선거 의혹 피의자(被疑者)라고 할 수 있는 선관위 직원들(500여 명)의 도움을 받아 검증한다는 것부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특검이 선관위와 짜고 무언가를 숨기려 한다는 의심을 스스로 산 셈이다. 현장 참관인(參觀人)들에 따르면 검증 과정에서 ▷일명 벽돌 투표지 ▷3, 4장 붙은 투표지 ▷2장 붙은 투표지 8쌍 이상 ▷색깔이 다른 투표지 ▷여백 없는 투표지 ▷봉인지가 훼손·수정·재가공된 보관함 등 정상적인 선거에서는 나올 수 없는 투표지들이 다량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은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권한(權限)이 없다면서 '추가 분석이 필요한 투표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투표지를 부정선거 의혹 당사자인 선관위에 넘겼다. 수사기관이 범죄 피의자에게 증거인멸하라고 증거물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협의 중이던 특검·선관위·국힘·시민단체 동행하에 경기 파주 모처로 투표함을 이송하는 방안은 무시됐다고 한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선관위 특검은 부정선거와 관련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스스로 새로운 음모론(陰謀論)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26-10-30 05:00:00
[사설] 반도체만 웃는 성장, 중소기업은 고금리·저수익 이중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3분기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두 회사 영업이익 합계만 190조원 이상이다. 반도체 호황이 경제를 이끌지만 중소기업 현실은 딴판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29일 자료에 따르면 3분기 중소기업 수출도 역대 3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8월 중소제조업 생산은 지난해 동월 대비 4.0% 줄었고, 11월 경기전망지수도 두 달 연속 하락했다. 반도체와 화장품 수출은 급증했지만 자동차 등 다른 업종은 부진(不振)을 면치 못했다. 수출 호황이 산업 전반의 생산과 고용 회복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불균형이다. 기업 규모별 수익성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6.7%로 올랐으나 중소기업은 2.8%로 하락해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 비중도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설상가상 고금리 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9월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연 4.63%로 한 달 새 0.25%포인트(p) 올랐다. 대기업보다 금리도 높고 상승폭도 컸다. 가계대출 금리 역시 5%에 육박(肉薄)한다. 기업은 금융비용 증가로 투자와 고용 여력이 줄고, 가계는 이자 부담으로 소비를 줄이면 내수기업 매출까지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이날 중소 제조기업의 디지털·인공지능(AI)·로봇 전환을 위해 2030년까지 5조원 이상 투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매출 감소와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기업들이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자금력 있는 기업만 정부 지원을 활용해 기술혁신에 나서고 취약(脆弱) 기업은 뒤처지는 양극화도 걱정스럽다. 정부는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정상 기업의 금융 부담을 덜고, AI 도입에 필요한 자기 부담금과 인력·운영비 지원을 기업 여건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수익성 격차가 미래 기술 격차로 굳어진다면 중소기업 경쟁력 회복은 더 어렵다. 5조원 이상을 쏟아부어도 2030년 AI 도입 중소 제조기업은 전체의 10%에 그친다. 나머지 90%의 경쟁력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2026-10-30 05:00:00
[사설] 대법관 2배수 제청 의무화…삼권분립 침해 우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임명 인원의 2배수 이상 제청(提請)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26일 발의됐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 11명이 발의한 이 법안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선 권한을 견제하고 대통령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국민의힘은 29일 제청권을 박탈하는 위헌 법안이라며 철회를 촉구했고, 삼권분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이 '제청'권을 줬을 뿐 '1명만 제청'할 권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헌법이 대법원장 제청권을 둔 취지는 행정권력이 사법부 구성을 일방적으로 좌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현행 구조에서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3배수 이상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중 1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제청한다.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에 대한 임명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법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장이 정한 한 명을 대통령이 승인하던 구조가 대통령이 둘 중 고르는 구조로 바뀐다. 대법원장의 제청은 대통령이 선택할 후보군을 올리는 절차에 가까워지고 대통령이 실질적 선택권을 쥐게 된다. 인선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 현행법이 제청 관련 세부 사항을 정하지 않아 공백이 있다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그 해법이 대통령으로의 권한 이동이어서는 안 된다. 제청 관련 규정 정비 등 사법부 독립을 해치지 않으면서 집중과 공백을 보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헌법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인사청문과 동의로 검증하며,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 삼권(三權)이 모두 대법관 인사에 관여하게 하고 있다. 이 중 제청은 사법부가 목소리를 내는 통로다. 그 통로가 후보 명단을 전달하는 절차로 약해지면 대법관 인선은 사실상 행정부가 좌우하는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 여당은 법안을 재고하고 국회는 충분한 공론화부터 거쳐야 한다.
2026-10-30 05:00:00
[관풍루] 남한의 우발 충돌 방지 위한 군사회담 제안 6일 만에 북한 '탄도미사일 10여 발' 발사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재명 정부에서 성남·경기 라인은 서류심사 꼴찌, 면접 꼴찌여도 (공기관) 최종 1등으로 합격한다"고. 경기(景氣)가 좋을 땐 동네 강아지도 5만원짜리를 물고 다니지. ○…미국, 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방문 비자 발급 거부. 진 의원 개인의 전과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장악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불신 아닐까? ○…남한의 우발 충돌 방지 위한 군사회담 제안 6일 만에 북한 '탄도미사일 10여 발' 발사. 말로만 평화·협력 운운하지 말고 돈을 달라는 말이겠지.
2026-10-30 05:00:00
◆정산 없이 나온 퇴원길 캐나다 의료를 이야기하면 "돈은 안 들지만 오래 기다린다"는 말부터 나온다. 진료나 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있고, 그 때문에 제도의 평가도 엇갈린다. 다만 대원칙으로서 환자의 상태가 얼마나 중하고 위급하냐에 따라 진료의 순서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친하게 지내는 한 지인의 아들이 크게 아팠다. 가족 주치의 소견서를 들고 종합병원에 갔고, 곧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밤낮으로 집중치료가 이어졌지만 좀처럼 차도가 나지 않았다. 두 달 넘게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겼고, 몇 주를 더 보내고서야 퇴원했다. 거의 석 달이었다. 퇴원하는 날, 지인은 간호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아들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어디에 들러야 하나 둘러보았지만, 넓은 로비에는 안내 데스크만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병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지인은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의 치료까지 석 달 가까이 입원했는데 이렇게 그냥 가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 청구서가 오면 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공공의료체계가 필수적인 병원 치료비를 부담한다는 사실을 지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원 중에는 '혹시 큰돈이 나오면 집을 팔아서라도 감당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머리로는 '무료'임을 알았지만, 오랜 치료에도 자신이 낼 돈이 없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청구서는 오지 않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는 2020년부터 주민에게 부과하던 의료보험료도 폐지했다. 쉽게 말해, 매달 내는 의료보험료도 없다는 이야기다. ◆치료비보다 아이에게 마음을 쏟도록 최근 서울대병원 소아심장외과 김웅한 교수의 인터뷰를 보았다. 수술을 앞둔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가 살 수 있는지와 함께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도 반드시 묻는다고 한다. 은퇴를 앞둔 김 교수는 그 부모들에게 무엇보다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치료비 걱정은 나라에 맡기고 아이에게 마음을 쏟으라." 우리나라에도 건강보험이 있고, 중증질환의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가 있다. 그럼에도 치료가 급한 순간에 부모가 비용까지 물어야 한다면, 그 가족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당장 낼 돈인지, 앞으로 감당할 돈인지, 제도의 도움을 어디까지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불안일 수도 있다. 부모가 치료비 걱정을 덜고 아이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조건을, 사회가 자신의 과제로 삼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살리는 의술과 함께 그 가족을 지탱할 제도도 필요하다. ◆국가를 믿게 하는 경험 "형편이 되면 나중에 이 병원에 꼭 기부해야겠다." 지인이 내게 직접 한 말이다. 아들이 돌아온 안도감과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 담겨 있었을 것이다. 집을 팔 각오까지 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그 병원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아픈 순간에 사회가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경험이, 그 사회를 믿고 돕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국에서 그가 경험한 사회의 보호였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 치료가 길어져도 가족의 삶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가 보장할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필수의료비를 환자가 부담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 국가가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 국민이 함께 정해야 한다. 이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국가 운영의 철학에 관한 문제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책임이 한 사람의 삶에 실제로 닿을 때, 국가를 믿으라는 말도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나라에 재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놓치고 있는 것은 어디에 먼저 쓸 것인가라는 우선순위가 아닐까. 모든 의료비를 당장 국가가 감당하기는 어려워도, 국민의 생명과 가족의 삶을 지키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목표를 구체화한다면, 해마다 계획을 세워 그 목표를 단계적으로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2026-10-30 00:30: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이파리"
〈strong〉금융·보험·여행주 '추풍낙엽' 〈/strong〉 〈strong〉미그-29, 국산 KF-21 앞선 '추풍낙엽'〈/strong〉 '추풍낙엽(秋風落葉)'은 "가을 추, 바람 풍, 떨어질 낙, 이파리 엽"으로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어떤 세력이나 세태가 힘을 잃고 급격히 몰락하는 현상을 비유한다. 즉 '권력이나 정치 세력의 급격한 몰락', '법적 처벌과 사정 정국의 효과', '경제적 위기와 기업·증시의 급락',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추세의 변화)'을 가리킨다. 한·중·일에서 다 사용하며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과 상반되는 뜻이다. '추풍낙엽' 하면 예전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여기를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해서 피했다는 추풍령도 생각난다. 가을바람엔 역시 "섬돌 앞의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낸다"(階前梧葉已秋聲)처럼 낙엽 지는 소리가 으뜸. 게다가 '귀뚜라미 우는 소리', '으악새(=억새) 슬피 우는 소리'도 빠질 리 없다. 가을엔 "간다고 서럴(서러워를) 마소… 추풍낙엽 휘돌아 치는…"(이화자 「추풍낙엽」. 1940) 같이 서러움을 담은 노래도 허다하다. 이파리가 있는 한 떨어질 건 정해진 이치라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때맞춰 떨어져 내려 뿌리로 돌아가는 게 대자연의 순리 아닌가. '낙엽'은 모든 걸 휩쓸어 버리는 거대한 기운을 상징한다. '추풍낙엽'은 중국 당나라 번성기의 시인 이기(李頎, 690~751)가 지은 「행로난(行路難)」에 "추풍낙엽폐중문(秋風落葉閉重門: 추풍낙엽에 겹겹이 닫힌 문)"으로 처음 보인다. 이후 남송의 홍매(洪邁, 1123~1202)가 엮은 『이견을지(夷堅乙志)』에 화려한 권세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허망함을 노래할 때 쓰였다. "금빛 굴레와 털 안장을 한 명마들이 빛을 내며 저잣거리를 환하게 비추지만, 3년 뒤에는 절뚝거리는 나귀 한 마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추풍낙엽'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거로구나." 추풍낙엽은 당연히 우리나라의 여러 자료에도 등장한다. 고려 말의 목은 이색(1328~1396)은 "인청추풍낙엽성(忍聽秋風落葉聲: 추풍낙엽 소리를 차마 듣는단가)"(『목은시고』제6권)이라고 했다. 세월을 건너뛰어 근대기에도 자주 보인다. 권배근(權培根)은 「노자의 유토피아」(『삼천리』제10권 제1호/1938.1.1.)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인류의 아름다운 몽상은 추풍낙엽(秋風落葉)이 되었다… 아, 괴롭다! 어디로 갈 거냐?… 그렇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대사상가 노자(老子)의 말이다." 맞다. 추풍낙엽은 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만물의 진풍경이다. 이 점을 잘 짚은 것이 농암 이현보였다. "추풍낙엽합귀근(秋風落葉合歸根: 추풍낙엽은 마땅히 뿌리로 돌아간다네"( 『농암집』제1권). 이를 이어받아 퇴계 이황은 "귀근낙엽진상리"(歸根落葉儘常理: 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은 모두 영원한 이치이거니!"라고 하였다. 고정불변이란 없다. 아름답든 추하든 귀하든 천하든, 어느 하나 추풍낙엽의 처지를 피해 갈 수 있을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 이렇듯 추풍낙엽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가가 관건이리라.
2026-10-30 00:30:00
[남정욱의 별별시선] 로마에서 보낸 10·26과 카이사르
유럽을 몸으로 느껴보겠다고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를 한 달 남짓 돌았던 적이 있다. 해외여행을 괜히 사나흘만 가는 게 아니었다. 집 떠나고 열흘 지나니까 사지(四肢) 안 아픈 데가 없고 배는 고픈데 입에 맞는 건 없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구미(歐美)를 배워보겠다며 2년 가까이를 타향으로 떠돈 일본 메이지 시대 사절단이 얼마나 독한 인간들이었는지 그때 실감했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가 이탈리아 로마였다. 딱 이맘때였는데 저녁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머리 희끗한 주인에게 부탁을 했다. 오늘(10월 26일)은 조선의 카이사르가 부하에게 살해당한 날인데 그가 마지막 마신 술로 추념하고자 하니 위스키 잔을 좀 빌릴 수 있겠냐고. 주인은 선선히 잔을 내줬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오야붕을 배신한 놈은 맷돌로 갈아버려야 해." 이 양반, 누가 이탈리아 사람 아니랄까 봐 단테의 '신곡' 정도는 기본으로 뗀 모양이다. 책의 제34곡을 보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 루시퍼가 있는데 세 얼굴과 세 입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입은 죄인 하나씩을 쉬지 않고 씹고 있다. 그중 둘이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와 실행자다. 카이사르 인생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 로마 '공화정'의 종말을 앞당긴 거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원로원의 눈물 어린 만류에도 카이사르는 뜬금없는 주사위 핑계를 대며 도강(渡江)을 감행했다. 우호적인 사람들은 그가 공화정 말기의 혼란을 수습했다고 말한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제정(帝政) 야욕에 불타 공화정을 붕괴시켰다고 말한다. 분명 같은 사건인데, 그렇다면 대체 카이사르의 공화정 타격은 공(功)일까 과(過)일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돈만 밝힐 줄 알았지 법에는 무지했던 한 유대인 영감을 이른바 배웠다는 놈들이 털어먹는 이야기다. 빌린 돈을 못 갚으면 살 1파운드로 빚을 대신하겠다는 신체 포기 각서를 오로지 '살'만 1파운드로 몰아가면서 골탕을 먹이는 것이다. 푸줏간에서 삼겹살 한 근을 달라고 하면 그 한 근에는 당연히 소량의 피(血)가 섞여 있다. 그러니까 살 1파운드는 마침 그 지점을 통과하던 혈액 일부까지를 포함하는 게 상식이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를 꺼낸 건 공적(功績)과 과오(過誤)가 대부분 동전의 앞뒷면이고 한 몸인 까닭이다. 공적은 대부분 과오에 의해 가능하고 과오의 대가가 바로 공적이기 때문이다. 느려 터진 원로원의 시스템으로는 나날이 불어나는 제국의 몸집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공화정을 고집했더라면 제국은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진즉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죽이는 대신 로마를 살렸다. 흔히 박정희 시대를 군사 독재라고 부른다. 그러나 군인도 아니었고 야당도 있었다. 말장난하자는 게 아니다. 독재라고 하기엔 자격 미달이었다. 비슷한 시기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제대로 된 독재자들에게 배워도 한참 배워야 했다. 박정희의 시대는 '유보의 시대'였다. 민주주의는 시대를 앞질러 너무 일찍 왔고 국민들에게는 자유의 향유보다 한 그릇의 밥이 더 중요했다. 이 시차 부조화를 박정희는 '나중에'라는 방식으로 돌파했다. 그리고 그 유보 덕에 대한민국은 중공업이라는 걸 했고 북한과의 군사적인 격차를 좁혔다. 박정희가 머리와 위장의 욕구 사이 간극을 메우는 과정은 아름답지 않았다. 일방통행도 있었고 폭력도 있었다. 그래서 가능했던 거다. 1970년대 초반,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90위권 전후였던 대한민국에 필요했던 리더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내세웠던 모호한 마키아벨리스트였을까 아니면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손에 온갖 더러운 것을 기꺼이 묻히고 직진한 카이사르였을까.
2026-10-30 00:30:00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돼지 눈엔 돼지만…링거 맞고 코피 터지는 일정" 해외순방 비판에 반박
李대통령 "고속도로 휴게소 카르텔 반드시 청산"…경기지사 때 '계곡 식당' 정비 재현할까?
李 대통령 '기본소득' 확대 의지 밝혔지만…농촌 지자체는 재정 골치
李가 띄운 '다문화 우대' 논쟁에 귀화 정치인 아이수루가 꺼낸 '파독 광부·간호사'
李대통령 "돼지 눈엔 돼지만 보여"에 장동혁 "국민이 돼지로 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