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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씨] 9월 29일(화)

    [날씨] 9월 29일(화) "곳에 따라 비"

    2026-09-28 18:44:35

  • [화요초대석-전병서]

    [화요초대석-전병서] "AI 시대 희토류의 나라"가 칩 플루로 망하는 법

    지금 한국의 반도체 호황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미중의 기술 전쟁, AI 시대의 도래, 트럼프의 대중 압박이라는 세 개의 변수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이 일약 'AI 시대의 희토류'로 등극했다. 미중의 기술 전쟁 속에서 무소불위처럼 보였던 거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한국으로 오게 만들고,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미에 트럼프를 공항까지 나가 영접하게 만든 것도 결국 중국의 희토류였다. '대체 불가 광물' 하나가 세계 1위 패권국을 궁지로 몰았다. 세계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직접 서울로 날아와 닭을 튀기고 삼겹살을 굽고 러브샷을 한 것도 이유는 하나다. AI 모델의 하드웨어 인프라인 엔비디아의 GPU는 한국의 HBM 없이는 구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HBM이 '대체 불가 광물'의 딱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운과 실력은 다르다. 운은 하늘이 주지만 실력은 내가 만든다. 한국이 지금 가장 위험하게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늘이 준 운을 내가 만든 실력으로 오해하는 순간, 방심이 시작되고 몰락이 예약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돈은 불과 같다. 잘 쓰면 문명이 되지만 잘못 쓰면 집을 태우고 마을을 태우고 나라도 태운다. 한국은 지금 심각한 '칩 플루(Chip Flu)'에 걸려 있다. 코로나도, 스페인 독감도 아닌 반도체 독감(Chip Flu)이다. 1960년대 북해 천연가스 대박을 터뜨린 네덜란드가 자원 수출에 취해 제조업을 통째로 버렸다가 경제 전체가 피폐해진 것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 부른다. 100년에 한 번 오는 기술 대변혁기에 반도체 호황에 취해 다음 판을 준비하지 않으면 한국의 HBM은 네덜란드의 가스전(田) 꼴 난다. 정부는 초과 세수 나눠 쓰기에 분주하고, 노조는 성과급 더 달라 파업하고, 지역은 반도체 단지 유치 전쟁에 목숨 걸고, 주주는 배당 환원 요구로 시끄럽다. 모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데 바쁘다.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반도체 주가 하나에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청룡열차를 함께 타고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황금 비를 다이아몬드 비로 바꾸는 것은 전략이다. 반도체 4년 사이클과 100년 만의 기술 대변혁이 겹친 이 희귀한 기회를 칩 플루로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HBM 너머의 '넥스트 HBM'을 지금 확보해야 한다. HBM 독점은 영원하지 않다. 중국의 CXMT는 이미 맹추격 중이고 미국 마이크론은 보조금을 등에 업고 달려온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차세대 공정, AI 반도체 설계, 패키징 기술에 올인 투자해야 한다. 지금의 황금 거위를 다이아몬드 거위로 업그레이드하는 R&D 투자에 인색하면 10년 후 한국 반도체는 없다. 둘째, 반도체 생태계를 삼전닉스 2사 체제에서 피라미드 생태계로 확장해야 한다. 두 회사의 시총이 전체의 50%를 넘는 나라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볼모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키우고, 팹리스 설계 기업을 육성하고, AI 칩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과 하이닉스 두 회사의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구조는 국가 안보 리스크다. 셋째, 즐기되 취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와 자본시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초과 세수는 나눠 쓸 게 아니라 반도체 인재 양성과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주주 환원과 노동 분배도 단기 배당이 아닌 장기 공동 성장 계약으로 바꿔야 한다. 호황기에 냉정하게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불황기에 반도체 전체가 흔들린다. 하늘이 준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이 준 기회를 망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지금 한국에 절실한 것은 돈벼락의 갈라먹기가 아니다.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전략이다.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쉽지만 다이아몬드 거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으면 한국의 반도체 천운(天運)은 그냥 운으로 끝난다. 한국 반도체의 적은 중국도, 마이크론도 아니다. 호황에 취해 내일을 잊은 한국 자신이다.

    2026-09-28 14:30:00

  • [매일춘추-임현락] 씨줄과 날줄로 이어가는 사랑

    [매일춘추-임현락] 씨줄과 날줄로 이어가는 사랑

    추석 연휴가 지나고 다시 분주한 일상이다. 명절 전, 파란 가을 하늘로 백(白)의 선들이 날아오르는 나의 설치작품 사진에 친필로 안부를 건넸다. 가을바람을 담은 나만의 디지털 카드였다. 안부를 전하자 다정한 답장들이 밀려왔다. 그중 지인이 보낸 글귀에서 뒤늦게 차례상에 올랐던 네 가지 과일, '조율이시(棗栗梨柿)'에 담긴 속뜻을 마주했다. 무심히 대했던 제수의 의미가 이토록 시리고 아린 사랑의 대물림이었다니…. 단 하나의 씨앗으로 근본을 상징하는 대추(棗), 다 자란 뒤에도 뿌리 끝에 자신을 키워낸 씨밤을 매단 밤(栗), 그 내리사랑 옆에 백성의 순결한 심성을 닮은 속살이 하얀 배(梨)가 놓인다. 백미는 감(柿)이다. 감 씨를 심으면 고욤나무만 자라 좋은 감을 얻으려면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을 붙여야 한다. 자식을 키우려 생을 째는 고통을 감내하는 부모의 아픔이다. 게다가 감나무 속은 부모 속처럼 검은 무늬가 진하게 박혀 있다. 과일 씨앗 개수가 출세의 염원이라는 씨줄(가로)이라면, 그 안을 채운 지극한 진액은 부모의 멍든 가슴인 날줄(세로)인 것이다. 대지 위에 천을 드리워 선하나를 그어가는 나의 예술 행위가 인생을 대변하듯, 제수 음식을 정교하게 배열하는 상차림 역시 생사의 차원을 잇는 우리만의 공간 미학인 셈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이치를 시각적 공간으로 직조한 전통의 미학은, 우리네 성명(姓名)의 원리와 이어진다. 가문의 성씨가 존재의 터를 받치는 거대한 날줄이라면, 대를 잇는 항렬은 역사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씨줄이다. 그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정중앙에 부모가 축원한 이름 한 글자가 얹히며 비로소 한 인간의 좌표가 완성된다. 선과 선이 만나는 교차점은 늘 치열한 아픔이 모이는 곳이자, 동시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피어나는 중심이다. 돌이켜보면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이름을 지을 때도 나는 그 중심을 서성였다. 내 손으로 짓고 싶어 성명학 책을 탐독하다가 복잡한 주역의 괘 앞에서 백기를 들고 저자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받아온 돌림자 이름과 자유로운 후보를 두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돌림자가 예쁘지 않다는 아내 의견에 꾀를 내어 포스트잇에 이름을 적어 아기의 양팔 끝에 붙였다. 끝까지 매달린 것을 운명으로 삼자는 것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돌림자가 살아남았다. 가문의 막내라 좋은 글자는 다 선점당했지만, 나중에 사촌 형들이 어떻게 찾았냐며 부러워하던 기억 위로 미소가 번진다. 명절 소임이 끝나고 연구실에서 마음을 정돈해 본다. 생으로 째지고 타들어 간 감나무의 상처를 지나며, 우리 역시 성명 석 자라는 존재의 옷을 입고 마주한 시간이다. 이번 추석에 우리가 주고받았던 다정한 이름들과 그 교차하는 삶의 자리마다, 대를 이어 흐르는 아프고도 찬란한 사랑의 종소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퍼지고 있다.

    2026-09-28 14:25:34

  • [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고구려의 살수는 어디인가(2)

    [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고구려의 살수는 어디인가(2)

    지난 호에서는 고구려 살수의 위치에 대한 중국과 남북한 학계의 관점을 두루 살펴보았다. 이제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료에 근거한 필자의 견해를 말해보려고 한다. 다만 1,40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살수의 위치를 밝히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싣기로 한다. ◆선비족 후예 보육여견(普六茹堅)의 수나라 건국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 541~604)은 수나라의 개국 황제이다. 그러나 『수서(隋書)』 고조기(高祖紀)에 따르면 양견은 풍익(馮翊) 즉 지금 중국 섬서성의 반야사(般若寺)라는 절에서 태어났고 본래의 성은 양씨가 아니라 보육여씨(普六茹氏)였다. 북주 시기에 그의 아버지가 선비족의 성을 하사받았는데 나중에 양견이 수나라 황제로 즉위한 뒤 동한 태위 양진(楊震)의 14손이라고 자칭하며 양씨로 성을 바꾸었다. 그의 아내 독고가라(獨孤伽羅)는 서위, 북주시기 명장 선비족 독고신(獨孤信, 503~557)의 딸인데 수양제 양광은 바로 독고가라가 낳은 아들이다. 당태종의 아버지 이연(李淵)은 그의 조부가 이병(李昞)이고 이병의 아내는 선비족으로서 양견의 아내 독고가라와 자매지간이었다. 그러므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혈통은 순수한 한족이라기보다는 선비족의 피가 절반쯤은 섞여 있었다. 양견의 아버지 양충(楊忠)은 서위, 북주의 개국공신으로 대사공(大司空)을 역임하고 수국공(隋國公)에 봉해졌는데 양충 사후에 양견이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양견의 딸 양여화(楊麗華)가 북주 선제(宣帝)의 황후가 되었는데 선제가 죽자 나이 겨우 8세 밖에 되지 않은 정제(靜帝)가 즉위하였고 양견이 외척의 신분으로 정제를 보좌하며 점차 군정 대권을 장악해 나갔다. 581년 양견이 북주의 정제를 협박하여 선양(禪讓)의 형식을 빌어 황제에 즉위하였고 국호를 수(隋)로 바꾸었다. 대흥성(大興城) 오늘날의 서안에 도읍을 정하고 연호를 개황(開皇)이라고 하였다. ◆중원의 강자 수문제를 선제공격한 동북방의 강자 고구려 영양왕 589년에 300여 년 동안 분열되어 있었던 위진남북조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중국을 통일하는 데 성공한 수문제 양견은 자만심이 극에 달한 나머지 590년 고구려 평원왕에게 수나라에 복종하지 않으면 쫓아낼 수도 있다는 다소 모욕적인 조서를 보냈다. 평원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고구려 영양왕은 수문제의 무례한 행위를 괘씸하게 여기고 598년 수나라의 요서군(遼西郡)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삼국사기』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영양왕이 말갈의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침공하자 영주총관(營州摠管) 위충(韋冲)이 고구려 군사를 공격하여 물리쳤다. 수나라 문제가 이 사실을 듣고 크게 격노하여 한왕(漢王) 양(諒)과 양세적(王世績)을 아울러 원수로 임명하여 수군과 육군 30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여름 6월에 한왕 양의 군대가 임유관(臨渝關)까지 왔을 때 장마로 인하여 군량 수송이 이어지지 못해 군중에 양식이 결핍되었고 또한 전염병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주라후(周羅睺)는 동래(東萊)로부터 바다를 이용해 평양성으로 오다가 역시 풍랑을 만나서 많은 선박들이 표류하거나 침몰되었다. 가을 9월에 수나라 군사가 되돌아갔는데 죽은 자가 십 중 팔구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자연재해로 인해 수나라 군사가 패전하여 회군한 것으로 되어 있고 전쟁의 발생 배경과 전투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어딘지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쟁에 참전한 수나라 군인 중 살아 돌아간 숫자가 열에 팔 구명이었다면 그 참상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데, 수군의 참패를 숨기기 위해 이런 식으로 기록을 생략한 것은 아닐까. ◆중국 사료가 숨긴 제1차 수, 고 전쟁에서의 수나라 참패 원인『수서』 고제기에서는 수나라가 전쟁에 실패한 원인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수서』 동이전 고구려조항에서는 자연재해를 수나라가 패전한 이유로 들었는데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수나라 군대가 패전한 요인의 전부일까.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 임유관전역(臨渝關戰役)에서 "고구려 장군 강이식(姜以式)이 유수(渝水)에서 추격하여 수나라의 전군을 거의 섬멸하고 무수한 군수품을 획득하여 개선했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정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주강씨족보』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 실려서 베일에 가려진 옛 역사의 진상을 전해주고 있다. ◆수, 고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 가운데는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수문제가 중원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589년 고구려가 선제공격 할 당시 수나라는 통일한 지 채 10년이 안 된 신생국가였다. 또한 수나라의 군대는 보병이 위주여서 기병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에는 많은 약점이 있었다. 반면에 고구려는 최초로 병기와 투구를 개발한 병신(兵神) 치우천왕을 시조로 하고,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고주몽을 국조로 모신 후예들로서, 600년 가까이 존속하며 무적의 군대와 선진 무기를 자랑하는 동북방의 군사 최강국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고구려의 철갑기병, 창수, 궁수들의 늠름한 모습은 막강의 최정예 기병 부대를 거느렸던 고구려의 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구려는 광개토 태왕 시기에 중원이 남북조시대를 맞아 혼란에 처한 기회를 틈타 한무제 때 상실된 발해유역의 고조선 고토를 전부 회복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광개토 태왕 비문에 보이는 "주력부대 이외의 일부 군대를 파견하여 숙신, 상곡을 관찰하게 했다(敎遣偏師 觀肅愼上谷)"라는 내용은 고구려의 영토가 서쪽으로 하북성 상곡군 지역까지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광개토 태왕 이후 영양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186년 동안 왜, 북위, 북제, 거란, 돌궐 등 이민족 세력들과 군사적 충돌은 다소 있었지만 광개토 태왕이 개척한 광대한 영토와 강인한 국력은 축소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므로 589년 고구려가 수나라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했던 것은 영양왕의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승리를 계산한 준비된 공격이었다. 수나라가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반격했지만 실패의 쓴잔을 마신 것은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 예정된 참패였다. ◆고구려는 어떻게 수나라를 선제공격하는 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는가 수문제는 고구려를 침공하여 참패를 당한 이후 죽을 때까지 더 이상 고구려와의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당시 고구려는 어떻게 수나라를 선제공격하고 또 그들의 대대적인 반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침공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게 되었을까. 다음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가 왜 수나라 때 대륙을 공포에 떨게 한 강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비록 한나라와 위나라의 토벌에 의해 저들의 소굴이 잠시 기울어졌지만 난리 통에 가로막힌 경우가 많다 보니 저들 종족 부락들이 다시 모여들게 되었다. 지난 시대에는 냇가나 연못가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널리 전파되고 또 번성하고 있다. 저들은 중국의 강토를 였보고 있으며 중국 땅을 떼어다가 동이족 무리의 것으로 만들었다.(雖復漢魏誅戮 巢穴暫傾 亂離多阻 種落還集 萃川藪於往代 播寔繁以訖今 睠彼華壤 翦爲夷類)" 이것은 수양제가 수문제를 뒤이어 제1차 고구려 정벌에 나서면서 전국에 반포한 조서(詔書) 가운데 나오는 내용이다. 한나라 시대로부터 수나라 시대까지 고구려가 걸어온 변천사를 압축적으로 한눈에 보여준다. 여기서 "한나라와 위나라가 토벌했다(漢魏誅戮)"는 것은 한무제의 고조선 침략과 위나라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노룡새를 지나서 동북방 오환을 공격한 사실을 가리킨다. "중국 땅을 떼어다가 동이족 무리의 것으로 만들었다(翦爲夷類)"라는 것은 고구려에 광개토 태왕이 출현하여 잃어버린 고조선의 한사군 땅을 회복하고 조조에게 침공당한 동북지역을 다시 원상 복구한 것 등을 말한다. 수, 당시기의 고구려는 광개토 태왕이 강역을 확대하고 고토를 완전히 회복한 뒤로서 그때 고구려의 강역은 한반도 북쪽에 국한되지 않고 중원대륙 깊숙이 들어가 지배하였다는 사실은 중국의 수양제도 인정하였다. 다만 여기서 수양제는 "중원 땅이 동이족에 의해 잘려나갔다"라고 말했지만 동이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구려가 중국 땅을 무단 점령한 것이 아니라 한무제가 탈취해간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나라 요서군은 하북성 동남지역, 살수가 북한의 청천강이 될 수 없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고구려 왕이 말갈의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침공했다(王率靺鞨之衆萬餘 侵遼西)"라고 기술하고 있고 『수서』 동이전 고구려 조항에는 "고구려 왕 고원이 말갈의 군사 만여 명의 기병을 인솔하고 요서를 공격하였다(元率靺鞨之衆萬餘騎 寇遼西)"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서』와 『삼국사기』의 기록은 얼핏 보면 내용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김부식의 기록은 아주 중요한 한 글자를 빠뜨렸다. 기병이란 기(騎) 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김부식이 엄청난 실수를 범한 것이다. 전쟁에서 기병 1만 명과 보병 1만 명이 갖는 위력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고구려 군대가 수나라 군대를 상대로 싸울 때마다 번번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바로 고구려가 보유한 무적의 철갑기병 때문이었다. 고구려가 수나라 요서군을 침공할 때 말갈 기병 만 명을 동원했다고 말했는데 정작 전쟁의 당사국인 고구려군은 한 명도 참가하지 않고 구경만 했을 리는 만무하다. 고구려 기병의 참가자는 적어도 2만 명 내지 3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때 고구려가 공격한 수나라의 요서군은 오늘날의 어디에 있었는가. 송나라 때 낙사가 쓴 『태평환우기』는 하북도 평주(平州) 조항에서 "춘추시대의 고죽국 지역이 진(秦)나라, 한나라, 진(晋)나라 때의 요서군 땅이고 수나라 때는 우북평군으로 바뀌었다"라고 적고 있다. 평주 노룡현 조항에서는 "고죽성, 조선성, 요서성 유적이 있다"라고 하였다. 『태평환우기』 하북도 영주(營州) 조항에서는 "은나라 때 고죽국 지역이고 진나라, 한나라 때는 요서군 지역인데 수나라 개황 3년 즉 수문제 양견 때 여기에 영주를 설치했다"라고 말하였다. 오늘날의 요녕성을 중심으로 그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로 나누는 것은 거란족이 그 지역을 점령하여 요나라를 건국한 이후에 생겨난 개념이다. 『태평환우기』를 비롯한 송나라 이전의 모든 중국 사료에는 한, 수, 당 시대의 요서군은 하북성 평주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수나라 영주를 요녕성 조양시로 인정하는 현대적 시각 또한 잘못된 것이다.고구려가 수나라에 결정적 타격을 안긴 살수대첩의 전장을 북한의 청천강으로 보는 관점은, 고구려 평양성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고 서쪽 국경선은 압록강이었다고 인정하는 논리적 토대 위에서만 성립이 가능하다. 만일 고구려가 수나라 요서군을 선제공격했는데 그 지역이 하북성 평주 노룡현 일대였다면 수나라와 고구려가 국경을 마주했던 곳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서쪽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수나라 때 고구려의 살수는 하북성 노룡현 부근에 있는 어떤 강이어야 하며 결코 북한 대동강 서쪽의 청천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2026-09-28 11:05:23

  • [사설] 국제 망신·국민 불안 키우는 李 정부의 北 눈치 보기 안보

    러·우전 북한군 포로 송환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살인자" "반역자(매국노의 오역)"로 비난했다고 러시아 언론 매체들이 왜곡·보도하면서, 두 대통령 사이의 진실(眞實) 공방은 국제적 관심사로 비화하고 있다. 자칫 두 나라 대통령 중 한 명은 "거짓말쟁이"라는 국제적 망신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UN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전쟁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전격 공개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다음 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안보와 국익을 고려해 비공개(非公開)하기로 합의했으나 우크라이나가 이를 어겼다"고 비판했다. 또 국내 비판 세력을 향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고 했다. 러시아 언론들이 국내 야권 정치인들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발언처럼 왜곡한 것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북한군 포로 송환 정보를 비공개하겠다고 한국 정부와 약속하거나 합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反駁)에 재반박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측이 UN총회 연설 전 북한군 포로 송환을 언급하겠다고 한국 정부에 사전 통보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속 '비공개 양해(합의)를 어긴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통보 내용 자체가 명료하지 않았다"는 모호한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북한군 포로들은 공개적으로 한국행(귀순) 의사를 밝혀왔고, 한국 정부 역시 송환 추진을 알렸던 만큼, 북한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북한군 포로 송환(送還)을 비공개로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는 포로의 안전과 인도주의적 원칙을 내세우지만 '알려진 상황'에서 설득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 눈치 보기 의혹은 지난 21일 서부전선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 사고에서도 나타난다. 유엔군사령부가 신속한 조사를 위해 사고 다음 날 보디캠 영상, 부상자 인터뷰, 현장 출입을 요청했지만 우리 군(軍)이 거절한 것이다. 장병들의 트라우마 회복과 현장 안전 조치를 내세웠다. 북한군이 최근 MDL(군사분계선)을 지속적으로 남하해 지뢰 매설 추정 행위를 벌였지만 실질적 대응을 하지 않았던 우리 군이 갑자기 '현장 안전 조치'를 강조하면서 사실상 사고 조사를 지연시키는 듯한 행태를 벌인 것이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마저 "왜 적극 행정을 하지 않고 뒤로 숨는가. 닥치고 설명 못 하는가"라며 북한군 송환과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한 이재명 정부 행태(行態)를 비판했을까. 무엇이 두려워 국민들에게 숨기고 감추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지 이재명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2026-09-28 05:00:00

  • [사설] 與 대법원장에 집중포화…검찰 다음 법원인가

    대법관 재제청을 거부한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여권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자진 사퇴 및 탄핵소추안 압박, 국회 증인·청문회 출석 요구, 사법 쿠데타·내란적 성격 규정 등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희대의 난' '위헌·위법적·내란적 재제청 거부' '희대의 내란 잔불' '내란 세력의 마지막 외톨이의 돌출 행동' '이미 탄핵소추안 마련' 등 온갖 독설을 쏟아냈다. 심지어 대법원장에게 '법을 하나도 모른다'고까지 했다. 원하는 인물을 대법관으로 앉히기 위해 대법원장을 깔아뭉개는 망발(妄發)이다. 10월 2일, 78년 역사의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한다. 이번 주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개편이 끝나는 것이다. 검찰 해체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사법부 개편을 위한 '눈엣가시' 대법원장 제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검찰에 이어 '이번엔 법원 차례'라는 계획된 수순으로 비칠 수 있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마저도 검찰처럼 정부 산하 기관쯤으로 취급하고 있는 오만한 행태다. 그런데 이는 악수(惡手)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5월 60%대에서 최근 30%대까지 급락했다. 유시민 작가·추미애 경기도지사 등 여권 내 분열도 커지고 있다. 지지 기반이 갈라지고 지지율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사법부 수장까지 힘으로 굴복시키고 사법 독립 훼손까지 시도한다면 남은 국민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 행정·사법·입법 간 균형과 견제, 존중이 깨지고 최소한의 상식이 무너졌다고 받아들여서다. 그 대가는 국민의 심판으로 돌아온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2026-09-28 05:00:00

  • [사설] 200조 미래기금, 정부 재량 키우고 국회 통제 줄였다

    정부가 내년에 신설하는 미래대응기금이 2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당초 기금 예정액 162조3천억원에 50조원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 초과 세수를 더한다면 212조3천억원에 이른다. 규모만 놓고 보면 내년 정부 총지출(820조9천억원)의 4분의 1이 넘는다. 그런데 기금 운용에 대한 견제 강화는커녕 정부 재량(裁量) 범위만 넓어지고 있다. 내년 기금 사업 예산이 45조4천억원인데, 순수 지출사업 131건 중 119건은 부처별 요구액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출사업을 제대로 검토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정부는 국회 사전 통제 없이 돈을 쓸 길까지 넓히고 있다. 정부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기금 주요 사업비를 30% 이내에서 조정할 경우 국회에 변경안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세수 부족 시 기금을 정부 일반 살림살이를 메우는 데 옮겨 쓸 경우도 사전에 국회 변경안을 거치지 않는다. 사용 내역을 국회에 사후 보고한다. 지방 보조 사업비는 불가피한 사유로 쓰지 못한 돈을 최장 3년에 걸쳐 사용하도록 이월(移越) 규정까지 완화한다. 기금은 본예산보다 운용이 유연한 만큼 훨씬 엄격한 통제가 필요한데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사업비의 95%를 부처 요구대로 반영하면서, 정부가 국회의 재심의조차 없이 사업비를 조정할 수 있는 범위까지 넓혔다. 초과 세수는 정부가 창출한 재원이 아니라 경기와 기업 실적이 예상보다 좋아 국민과 기업이 더 낸 세금이다. 2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정부가 더 쉽게 움직이고 국회는 뒤늦게 들여다보는 구조라면, 재정 운용 유연성이 아니라 통제 무력화(無力化)라는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2026-09-28 05:00:00

  • [관풍루] 더불어민주당 "추석 연휴 가장 뼈아픈 목소리는 민생이었다"더니 정작 '비수 꽂고 뒤통수쳤다'며 대법원장 비판

    ○…추석 연휴 새벽에 식당 침입해 집기 파손·매장 내 페인트칠하고, 농약 추정 물질 식재료에 뿌린 중국인 용의자 4명 범행 후 출국. 이런데도 중국인 무비자 입국 계속 허용, 조선에 이어 21세기에도 만절필동(萬折必東)일세. ○…더불어민주당 "추석 연휴 가장 뼈아픈 목소리는 민생이었다"더니 정작 '비수 꽂고 뒤통수쳤다'며 대법원장 비판. '국민 하소연'보다 대통령 마음대로 대법관 인사 안 되는 게 더 안타깝죠.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 "기업 팔을 비튼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니다"고. 기업 팔 비트는 수준 아니고 기업 몸통 쥐어짜는 혼신 다했는데, 평가가 야박하다는 말씀?

    2026-09-28 05:00:00

  • [날씨] 9월 28일(월)

    [날씨] 9월 28일(월) "대체로 구름 많음"

    2026-09-27 18:46:48

  • [신창환 칼럼] 시끄러운 대학다운 대학

    [신창환 칼럼] 시끄러운 대학다운 대학

    대학다운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좋은 건물과 첨단 연구시설이 있는 대학, 취업률이 높고 연구비가 많은 대학을 떠올릴 수도 있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학다움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대학에는 기업이나 정부기관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조금 엉뚱한 생각도 허용되는 곳이어야 한다. 당장 쓸모를 증명하기 어려운 연구를 하는 교수도 있고, 전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학생도 있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겠다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능으로 평가받아서도 안 된다. 정답을 빨리 찾는 것보다 기존의 정답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존중받는 곳, 그것이 대학다운 대학의 모습이 아닐까. 황당한 실패, 엉뚱한 질문, 어리석은 도전이 시도되는 공간인 대학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도 충분히 시끄럽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학과를 개편하고,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계획서를 만들고,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전공을 만든다. AI가 중요해지면 AI를, 반도체가 중요해지면 반도체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대학이 시끄러운 이유이다. 새로운 생각과 실험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길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끄럽다는 데 있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 대학들은 빠르게 움직인다. 평가 기준이 만들어지면 그 기준에 맞추고, 새로운 사업이 나오면 비슷한 조직과 교육과정을 만든다. 대학마다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혁신의 모습은 서로 닮아간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조금 더 빨리 달리는 것을 혁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에는 효율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백이 필요하다.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효율과 성과를 추구해야 하고 공공기관도 정해진 절차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대학마저 모든 활동을 단기간의 성과와 숫자로 판단한다면 새로운 생각이 자라날 공간은 줄어든다. 새로운 학문과 기술, 문화는 이미 정해진 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따라간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질문을 던진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개성이 넘치는 공간이어야 한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음악을 연주하는 학생도 만나고, 낯선 주제로 토론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공학자가 예술가를 만나고 사회과학자가 의학자와 대화하며, 학생이 교수에게 거리낌없이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전공, 세대가 부딪히고 섞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대학의 다양성은 관리해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자산이다. 대학은 지역의 문화적 중심이기도 하다. 좋은 대학이 있다는 것은 좋은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연과 전시, 강연과 토론이 열리고 새로운 생각과 생활양식이 지역사회로 퍼져나가는 지적·문화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정부나 기업이 당장의 현실 때문에 시도하기 어려운 해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곳이 대학이라면, 대학은 그 자체로 지역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공간은 실패할 자유도 필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교수와 학생의 작은 아이디어에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충분히 검증된 일만 허용한다면 그것은 혁신이라기보다 관리에 가깝다. 실패하지 않는 대학보다 실패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대학이 더 대학다울 수 있다. 대학다운 대학은 조용하고 완벽하게 정돈된 대학이 아니다. 조금은 시끄럽고, 엉뚱하며,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고 아직 답을 알 수 없는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대학의 경쟁력은 다른 대학과 얼마나 비슷해졌는가가 아니라 그 대학에서만 가능한 생각과 계획이 얼마나 많이 시도되고 있는가에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에는 더 많은 시끄러움이 필요하다. 다만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 위한 시끄러움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한 시끄러움이어야 한다.

    2026-09-27 14:30:00

  • [매일춘추-조대흠] 우리집

    [매일춘추-조대흠] 우리집

    명절이 됐다. 거실에서 부모님의 이야기가 들린다. "명절인데 TV에 볼 게 없네." 어렸을 때,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TV 편성표를 외웠다. 특선영화가 언제 하는지 확인하고, 명절 특집 프로그램이 있으면 방송 시간을 기억해뒀다. 부모님은 TV 편성표를 외우는 나에게 TV에서 재밌는 걸 하냐고 물었고, 리모컨은 내가 보고 싶은 채널을 향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편성표를 외우지 않는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OTT를 통해서 보고 싶은 시간에 보면 되니, 굳이 명절을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다 이번 명절에 우연히 추석 특선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봤다. 마블 영화가 명절 특선영화가 된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OTT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니 이제 특선영화라는 희소성은 사라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특선영화라고 하면 TV에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특별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이 매년 찾아오는 고전도 있었지만, 특선영화라는 말에는 극장에서 흥행했던 영화를 TV로 볼 수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명절 특집 프로그램도 그렇다. 예능에선 특집이라며 명절에 맞는 에피소드를 기획했고, 특집 프로그램 또한 명절을 기반으로 방영됐다. 그러다 아이돌이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면서 '아이돌 육상 대회' 같은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고, 최근에는 트로트 열풍과 함께 트로트 가수들이 이끄는 쇼가 명절 프로그램이 됐다. 생각해보면 명절의 TV는 그 시대의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당시 흥행한 영화가 특선영화가 되고, 현재 인기 있는 트로트가 명절 특집 프로그램을 차지하는 걸 보아, 시대마다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방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TV는 특별히 보여줄 것이 없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많아져서 무엇을 특별하게 보여줄지 어려워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적 명절이면 할머니 집으로 친척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 얘기를 하고, 밥을 먹고, 화투를 치다 다들 거실 TV 앞으로 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본다. 한 자리에 모여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TV에 볼 게 없다.'라는 말은 정말 볼 게 없다는 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볼 것은 많은데, 함께 볼 것이 없는 것 아닐까.

    2026-09-27 08:45:06

  • [사설] 대법관 재제청 근거는 제시 않고 욕설과 협박 늘어놓은 민주당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를 제시해 달라"며 거부하자 청와대는 "국민이 다 아는 반려(返戾) 사유를 유독 대법원장만 '공문에 그 내용이 없으니 모르겠다'고 하는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 쿠데타"라며 "탄핵"을 촉구했고, 김기표 의원은 "요설(妖說)", 김민석 대표는 "반헌법적, 내란적 사고"라며 "바보인가, 난독증인가"라고 퍼부었다. 재제청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온갖 자극적이고 험악한 수사(修辭)를 동원해 정치 공세를 펼친 것이다. 오죽하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재차 '명확한 재제청 요청 사유를 제시하라'고 했을까. 법원조직법 제41조 2는 대법관 후보 추천에 관한 절차를 이렇게 규정한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제2항) 추천위원회는 제청할 대법관 1명마다 3배수 이상 후보자를 추천해야 한다.(제6항) 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제8항) 청와대 요구대로 대법원장이 기존 추천위가 추천한 후보군(群)에서 다른 한 명을 골라 '재제청'한다면 법원조직법 위반이다. 대법원장 징계 사유감인 것이다. 법이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음에도 청와대와 민주당이 새 추천위를 구성하지 말고, 기존 후보 중 1명을 재제청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청와대가 원하는 후보를 제청하라"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교체 요구(要求)를 반복할 경우 사법부 독립과 국회 동의권은 무의미해진다. 삼권분립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반헌법적·내란적 사고'라고 본다. 다수 국민들은 작금(昨今)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를 대통령 재판 지우기 일환(一環)으로 본다. 이럴수록 이재명 정권에 대한 국민 불신과 분노만 커질 뿐이다.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지우기 위해 사법체계를 허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2026-09-24 05:00:00

  • [사설] 경제지표만 풍성, 추석 경기 더 팍팍하다

    경제지표만 보면 어느 때보다 풍성해야 할 추석 명절이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보다 3.7% 성장했고,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3%로 높였다. 수출과 기업 실적도 호조(好調)다. 23일 발표된 9월 소비자심리지수도 106.6으로 반등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살림살이를 평가하는 '현재생활형편' 지수는 92에 그쳤다. 경기는 좋아진다는데 체감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통계는 풍성하지만 추석 민심에는 걱정과 한숨이 가시지 않는다. 장바구니부터 무겁다. 8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생활물가는 3.2% 올랐다. 정부가 성수품(盛需品) 공급을 늘리고 할인 지원에 나섰지만 체감 물가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다. 2분기 말 가계신용은 2천19조8천억원으로 석 달 새 25조9천억원 늘었다. 7월 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연 4.64%, 신용대출은 5.97%까지 치솟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0%로 올린 뒤 가계의 금리 상승 전망도 크게 높아졌다. 9월 금리수준전망지수는 128로 3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대출금을 갚고 장바구니 물가까지 감당한 뒤 남는 돈으로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분기 가구 실질소득은 1.5% 증가했지만 실질소비지출은 0.4% 증가에 그쳤다. 높은 물가와 대출이자가 소득을 잠식(蠶食)하고, 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이 저축을 강요하고 있다. 명절마다 성수품을 풀고 할인쿠폰과 정책금융을 늘리는 것으로 되풀이되는 민생 불안을 끊을 수 없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은 820조9천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늘었다. 국회는 추석 뒤 예산심사에서 경기부양 명목의 일회성 현금 지원과 선심성 사업부터 걸러내야 한다. 한국은행은 물가 잡겠다며 금리를 올리는데 정치권이 소비를 자극하겠다며 재정을 무차별적으로 풀면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 페달을 밟는 꼴이다. 추석 민심이 뼈아픈 까닭은 경제가 좋아졌다는데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져서다. 다음 명절에도 수치만 풍성해서는 안 된다.

    2026-09-24 05:00:00

  • [사설] 李 정부의 황당무계한 국방·안보 정책, 국민은 불안하다

    육군 1군단 25사단 직할 수색대대 대대장의 발목이 절단되고 2명의 장병이 심각한 부상을 당한 지난 21일 폭발 사고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온 북한군의 지뢰 매설(埋設) 의심 지대 확인을 위한 수색로를 만들다 발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리 군과 이재명 정부의 대북 굴종(屈從)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사건 직후 군(軍)은 "미상의 폭발" "폭발 장소는 북한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곳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식으로 발표, 북한을 오히려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폭발 사고는 북한군 지뢰 매설 의심 지역에서 불과 10~30m 거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지난 10일 "북한군 조성 의심 지뢰지대 등 6곳이 MDL을 10~15m 넘어섰다"고 했고, 나흘 뒤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됐으나 "보안상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었다. 국방부와 군의 안이하고 무책임(無責任)한 대북 유화적 접근 및 대처가 이번 참사를 불러왔다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출국하면서 X(옛 트위터)에 "지뢰 폭발로 우리 장병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형식적 쾌유를 기원한 것이 전부였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膺懲) 언급은 전혀 없었다. '남의 나라 일 보듯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22일 북한 전투기가 2022년 이후 처음 전술조치선을 넘어 남하했고, 조선중앙통신은 극초음속 추정 신형 미사일 발사 사실을 선전했다. 이런데도 이 대통령은 UN 연설 등에서 "대북 제재, 실효성 없다"면서 북핵 개발을 중단하면 제재를 풀자고 했다.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고 한국은 핵 공격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자주국방(自主國防)을 내세우던 이재명 정부의 황당한 국방·안보 정책의 실체를 보며 국민들은 불안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26-09-24 05:00:00

  • [관풍루] 김민석 민주당 대표,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 거절을 '희대의 내란'으로 규정

    ○…배현진 의원, 이 대통령 한남동 관저 1년 수도요금 및 사용량이 개 수영장·용왕굿 의혹 제기된 윤 전 대통령 첫 1년보다 오히려 20% 안팎 더 많다는 자료 공개하며 설명 요구. 어쩌다 관저 물 사용까지 대통령 평가 잣대가 됐누. ○…김민석 민주당 대표,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 거절을 '희대의 내란'으로 규정.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내란이라는 '희대의 정의', '희대의 내란 조희대 물러나라' 현수막 걸겠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개회식 혹평에 이어 애국가 아닌 북한 국가 연주, 중화민국 오인 소개, 선수단 버스 노쇼·배차 오류 등 각종 운영 미숙과 황당한 실수 연발. 우리가 알던 그 일본 맞나요?

    2026-09-24 05:00:00

  • [날씨] 9월 24일(목)

    [날씨] 9월 24일(목) "오후부터 구름 많음"

    2026-09-23 18:46:44

  • [기고-김영진]  특수교사의 수고를 돌아보며

    [기고-김영진] 특수교사의 수고를 돌아보며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지난 수십 년간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은 꾸준히 늘었고, 장애 학생이 일반 학급에서 또래와 함께 배우는 통합교육도 확대됐다. 교육권 보장과 사회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양적 확대가 곧 질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특수교육의 질과 학생의 실제 삶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특수교사의 하루는 수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개별화 교육 계획 수립과 교과교육은 물론 생활지도, 행동 중재, 식사와 이동 지원, 학부모 상담, 진로·직업교육, 과중한 행정 업무까지 담당한다. 어떤 학생에게는 옷 입기와 화장실 사용, 대중교통 이용과 또래와의 의사소통을 익히는 것 자체가 중요한 교육이다. 결국 특수교육의 목표는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학생이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적응 능력과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교육적 요구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반면 특수교사와 특수교육 지원 인력, 치료·상담·행동 중재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장거리 통학, 부족한 교육 공간과 지원 체계도 현장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대구 지역 특수학교 선생님들이 겪는 어려움도 이와 다르지 않다. 편도 1시간 이상 통학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하는 학생이 다수 존재하며, 입학 유예 학생 비율 역시 타 시도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 내 활용도가 낮아진 폐교 등을 활용해 생활권 단위의 소규모 단설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통합교육도 단순히 같은 교실에 배치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함께 수업을 설계·운영하는 협력 교수제를 확대하고, 상담·치료·행동 중재 전문가가 학교 현장에 적시에 개입할 수 있는 지원망을 구축해야 한다. 또 특수교육 현장에서 학생의 돌발 행동을 교육적으로 중재하는 교사가 민원이나 법적 분쟁을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명확한 행동 중재 기준과 실질적인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생활 밀착형 지원도 촘촘해져야 한다. 돌발 행동 가능성이 높은 통학 차량에는 최소 2인 이상의 보조 인력을 의무 배치하고, 학생 급식 및 이동 지원 강화를 위해 유급 자원봉사자나 초단기 근로자를 적극 확충해야 한다. 아울러 통학과 외부 활동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비해 특수교육의 특성을 반영한 학교안전공제 보상 기준 강화도 뒤따라야 한다. 특수교육을 학교만의 책임으로 남겨두어서도 안 된다. 의료·재활·심리·복지·돌봄 서비스가 학교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교육청과 지자체, 보건·복지기관이 함께하는 지역 기반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교육의 품격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특수교육은 특정 학생을 위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공존을 바라보는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수없이 반복되는 생활 훈련을 함께하며, 교과를 넘어 삶을 가르치고, 아이의 한 걸음 한 걸음의 성장을 돕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마음을 다하는 특수교사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수고로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제는 특수교육의 어려움을 교사 개인의 부담으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특수교사의 노력이 교육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국가와 교육청이 책임 있게 뒷받침해야 한다. 오늘도 아이들의 교육과 자립을 위해 묵묵히 애쓰는 모든 특수학교 선생님께 깊은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26-09-23 16:33:40

  •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 세체다(Seceda)와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 트레킹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 세체다(Seceda)와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 트레킹

    산이 이렇게 날카로울 수 있을까. 오르티세이(Ortisei)에서 케이블카에 올랐다. 푸르네스(Furnes)에서 한 번 갈아타고 다시 올라 세체다(Seceda)에 내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푸른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거대한 암봉(巖峰)들. 마치 누군가 압도적인 규모의 바위산을 잘라 세워놓은 듯, 톱날처럼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한 치의 틈도 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실제 산이라기보다 공들여 바위를 깎아놓은 조각작품 같았다. 왼쪽 오르막길을 따라 조금 걷자 해발 2,519m 능선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나타났다. 돌로미티(Dolomiti)의 산정에서 만나는 십자가는 이제 낯설지 않은데도 또 한 번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십자가 앞에 서자 비로소 세체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에즈 -오들러(Puez-Odle) 산군을 비롯해 사스롱고(Sassolungo), 셀라(Sella) 산군이 360도 파노라마를 만들었다. 그중 고딕 성당의 첨탑처럼 뾰족한 오들러 산군이 세체다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약 2억 년 전, 이곳은 바다였다. 바닷속에서 쌓인 지층과 산호초가 지각의 융기와 오랜 침식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세체다 모습이 되었다. 한때 바다였던 곳에 지금은 구름보다 높은 바위가 서 있는 것이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발끝 하나 잘못 디디는 순간 아찔할 것 같은 절벽이 이어졌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날카로운 암벽 아래로 초록빛 여름이 초원이라는 이름으로 생동감을 나눠주고 있었다. 거칠고 날카로운 암벽과 부드럽고 평온한 초원.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풍경이 나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동시에 즐겁게 하면서 세체다의 첫인상을 만들어냈다. 초원을 따라 천천히 하산 트레킹을 시작했다. '리푸지오 피렌체(Rifugio Firenze)'라고 적힌 팻말을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한참을 내려 오들러 산군으로 향하는 갈림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5유로의 통행료를 받는 안내 요원이 길을 막고 있었다. 조금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길에 가격표를 붙여놓은 셈이었다. 잠시 망설였다. 눈앞에 펼쳐질 풍경을 돈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썩 개운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 대가 없이 걸을 수 있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풍경에 붙은 또 다른 가격표를 만났다. 돌로미티 수퍼썸머패스(Super Summer Pass)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2026년부터 세체다는 패스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결국 별도의 케이블카 티켓을 구입해야 했다. 한때 산악인과 트레커들에게 더 익숙했던 세체다에 2023년 9월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애플(Apple)이었다. 애플은 신형 아이폰의 카메라 성능을 보여주며 돌로미티의 세체다 풍경을 화면에 띄웠다. 누군가에게는 한 장의 아름다운 사진이었지만, 세체다에게는 세계인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광고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SNS에 세체다 사진이 넘쳐났고 어느새 세계적인 셀피(Selfie) 명소가 되어 있었다. 2024년 여름에는 하루 약 4,000명이 몰렸다는 현지 보도까지 있었다. 아름다움이 유명세를 얻은 뒤 세체다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는 새로운 고민까지 떠안게 되었다. 수퍼썸머패스에서 제외된 것은 관광객 과밀의 한계를 넘어 더 많은 관광객보다는 세체다만의 가치를 찾는 여행자들을 선택하겠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세체다가 건네는 또 다른 풍경에 마음을 맡긴 채 걸음을 이어갔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풍경을 바라보기를 여러 번. 거대한 암봉이 어느새 멀어지고 있었는데 산 정상에서 마주했던 세체다의 날카로움은 맑은 하늘 속 뭉게구름이 쓰다듬어 주었는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누군가 커다란 붓을 들고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을 그려준 것일까? 라는 착각에 빠질 만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을 보느라 하산하는 걸음이 느려졌다.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풍경이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트레킹 길에는 생각보다 돌이 많았다.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에 조금씩 부담이 느껴졌다. 마음은 자꾸 앞서가고 싶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세체다가 보였다. 걷다가 뒤돌아보고, 또 걷다가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그렇게 세체다는 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피렌체 산장이 가까워지자 거대한 암봉은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데 피렌체 산장에 도착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높은 암벽에 둘러싸인 산장은 멋진 풍경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콜라이저(Col Raiser)로 내려가야 했다. 케이블카 표식은 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케이블카 승강장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건 아닐까?' 내려오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갔어야 했나? 멋진 풍경에 정신을 빼앗겨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산장 레스토랑에서 쉬고 있던 트레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케이블카 타는 곳이 어디예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하로 내려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아, 지하라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피렌체 산장은 원래 잠시 쉬어 가야 할 곳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온통 '혼동의 도가니'로 남아있다.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부랴부랴 콜라이저로 내려갔다. 콜라이저에서 352번 버스를 타고 오르티세이(Ortisei)로 돌아왔다. 산 위에서 몇 시간 동안 걸었던 길을 버스 안에서 다시 바라보고 싶었지만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창밖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미 그 길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오르티세이로 돌아와 점심을 먹으며 묵직해진 다리를 풀었다. 발가르데나(Val Gardena)의 목각 전통을 잇는 목조 조각부터 물 주전자를 든 청동상, 하늘을 향해 솟은 장미 한송이 조각까지. 오랜 전통과 현대 미술이 꽃과 색색의 건물에 어우러진 오르티세이는 동화책처럼 작고 다정한 마을이었다. 마을을 잇는 세틸 보행자 다리(Ponte Pedonale Setil)를 건너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로 향하는 곤돌라에 올랐다. 곤돌라에 함께 올라탄 낯선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다. 폴란드에서 일하고 있는데 잠시 휴가를 내어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끝이 흐려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전쟁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폴란드에서 일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저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곤돌라가 높이 오르자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의 물결에 우리 모두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그 초록의 풍경은 무거웠던 대화를 잠시 멈추게 하고 굳어 있던 공기를 풀어주었다. 우리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약속이나 한 듯 만국 공통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해발 약 2,000m에 이런 광활한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멀리서 바라보니 초원 사이로 그냥 들어가 걷고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알페 디 시우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고산 목초지 가운데 하나다. 약 800종에 이르는 꽃과 양치식물이 자라고 있어 특히 여름이면 초원 전체가 거대한 정원처럼 변한다고 한다. 멀리서부터 어서 오라고 계속 손짓했다. 세체다에서는 자꾸만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페 디 시우시에 들어서자 시선은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향했다. 작은 꽃과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초원의 고요를 깨워주는 워낭소리. 군데군데 자리한 작은 초원의 집들은 마치 누군가 풍경 속에 살짝 올려놓은 그림 같았다. 처음에는 끝없이 평평해 보였다. '여기라면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좋겠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초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알페 디 시우시도 역시 돌로미티였다. 평평해 보이던 초원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자꾸 웃음이 났다. 폭신한 초록 융단을 밟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발끝에 닿는 풀잎의 감촉마저 기분 좋았다.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풀쩍 뛰어보기도 했다. 손을 뻗으면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조각구름 하나쯤은 금세 잡힐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는 트레킹에 온전히 몰두하기보다 발걸음을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고, 초원에 앉아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걷는 시간보다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멀리 이어지는 산, 한가롭게 풀을 뜯는 가축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트레커가 아니라, 자연과 어울려 한바탕 놀고 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말하는 '경험이 곧 콘텐츠가 되는 여행'일 것이다. 누가 만들어준 광고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걷고, 느끼고, 찍은 순간이 다시 누군가의 여행 욕구를 자극한다. 알페 디 시우시에서는 여행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미디어가 된다. 하루 동안 두 개의 돌로미티를 만났다. 하나는 날카로운 암봉을 올려다보게 했고, 다른 하나는 발밑의 작은 꽃을 바라보게 했다. 세체다가 찍고 싶은 풍경이라면 알페 디 시우시는 마음껏 머물고 싶은 자유를 가져다 준 풍경이었다. 두 풍경을 떠올리며 최근 네팔을 휩쓴 홍수의 참혹한 장면이 문득 겹쳐 졌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산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후변화로 변해가는 산이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그 아름다운 풍경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2026-09-23 15:42:03

  • [새론새평-곽수종] 인공지능 시대, 불확실한 AI 미래에서의 전략과 권력

    [새론새평-곽수종] 인공지능 시대, 불확실한 AI 미래에서의 전략과 권력

    2016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nternational Mathematical Olympiad)에서 준우승과 이듬해 동메달을 수상했던 영국 출신 27세의 청년이 앤트로픽에 사직서를 던졌다. 10년 안에 AI(인공지능)가 인류를 파멸시킬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다. 이 젊은 청년은 앤트로픽(Anthropic)을 제발로 걸어 나왔다. 오랜 번민이 있었던 듯하다. 퇴사를 발표할 때가 되었을 때 콕슨(Jacob Coxon)은 친구 네이선 칼빈(Nathan Calvin)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모두가 AI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기술이 초지능(superintelligence), 즉 이전의 그 어떤 기술도 넘어서는 시대적 변화를 가져올 강력한 AI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다른 이들은 AI가 생산성과 과학적 발견을 촉진하겠지만, 더 불균형하고 잠재적으로 덜 드라마틱한 경로를 따를 것이라고 한다.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콕슨과 의견이 다른 부분보다 동의하는 부분이 더 많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Jensen Huang)은 콕슨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지만 미래에 대한 그의 주장에 의문을 표하고 지구 종말에 대한 예측을 무책임하다고 했다. 심지어 토크쇼 중간에 이미 짠 시나리오처럼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서부영화 'The Good, The Bad, The Ugly(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기술적 돌파구가 얼마나 쉽게 복제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어떤 이들은 경쟁자들이 빠르게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추격이 더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들게 되어 선점자에게 지속적인 이점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중국(China)이 프런티어 분야에서 미국을 꺾기로 결심했다고 확신한다. 적어도 미국이 온갖 고생을 해서 만들어 내면 단지 최고의 기술만 복사하거나 따라하면 그만이라고도 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중국이 기존 기술의 배포에 집중하면서 미국의 첨단 혁신이 나타나면 이를 추출하고 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나름 각자 확신에 찬 모든 정책적 주장은 이러한 이야기들 중 어느 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숨겨진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프런티어 혁신을 우선시하는 이들은 돌파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가정하는 반면, 미국 시스템을 해외로 퍼뜨리는 데 집중하는 이들은 종종 그 반대를 가정한다. 만약 그러한 가정들이 틀렸다면, 그 위에 세워진 전략들은 자원을 낭비하고 미국이 갖고 있는 선점자의 지위를 잃게 만들 수 있다. 단 하나의 이야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매혹적이지만 위험할 수 있다. 불확실성 시대에서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방법, 즉 여러 가능한 미래 전반에 걸쳐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AI 시대의 형태가 드러남에 따라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AI의 미래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펼쳐지든, 우리의 전략은 성공에 대한 명확한 정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가 안보, 광범위하면서도 지속적인 번영, 그리고 국내와 동맹국 사이의 정의로운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AI를 사용해야 한다. 공공의 이익과 일치할 때, AI는 삶을 개선하기 위한 과학적, 기술적 진보를 이끌 수 있고, 공중보건, 개발,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매우 실제적인 위험들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면서 이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느냐에 있다. AI 시대의 지정학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훈련된 사고방식이 없다면 전략은 숨겨진 가정과 의제들의 무게에 눌려 무너질 것이다. 가능한 세계들과 그것들이 요구하는 선택들을 매핑(mapping)함으로써 이 프레임워크는 안개를 헤치고 나갈 방법을 제공한다. 정책 입안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AI를 단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지형으로 다루어야 한다. 만약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갖는다면, 우리는 어떤 AI 시대가 나타나든 이를 정의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이들이 우리를 대신해 그렇게 할 것이다.

    2026-09-23 14:56:12

  •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3>이육사, 아름다운 이름이야말로 무궁한 수명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3>이육사, 아름다운 이름이야말로 무궁한 수명

    '육사 이선생상'으로 표제를 쓰고 '산정(山丁) 등하(鐙下) 모병기(摹幷記)'라고 한 서세옥의 스케치풍 이육사(1904~1944) 초상화다. 사진을 보고 그려 '베낄 모(摹)'라고 했다. 흑백의 사진만으로도, '이육사'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의 온도가 높아지지만, 단 한 붓도 허투루하지 않는 청량하고 적확한 수묵 초상화도 각별하다. 서세옥의 타고난 재(才)와 닦아서 얻어진 능(能)이 조화로운 솜씨이다. 나이 차가 불과 25년인 두 분은 청년기를 대구에서 보냈다. 서세옥은 대구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해방 후 서울로 진학해 동양화를 전공했다. 이육사는 안동시 도산면에서 태어나 1920년 17세 때 가족이 모두 대구로 이사 왔다. 당시 대구의 거장 석재(石齋) 서병오에게 6형제가 모두 서화를 배웠다. 그중 셋째 두인(斗人) 이원일(1906~1955)은 1922년 서병오가 창립한 교남시서화연구회에서 서화가로 활동한다. 육사도 서예를 잘 했고 묵란에 솜씨가 있었다. 이육사가 걸었던 대구의 길들을 다니며 자란 서세옥이라 육사의 찬란한 생애에 더욱 감정이 이입됐을 것 같다. '이육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1927년)으로 1년 7개월간 수감됐을 때 대구형무소 수인번호 '264'에서 나왔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고, 이활(李活)이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대구이육사(大邱二六四), 이육사(二六四), 육사(六四), 육사(戮史), 육사(肉瀉), 육사(陸史)로 자신을 나타냈다. '죽일 육(戮)'의 육사는 치욕의 시대를 항일투쟁으로 일관한 그가 끝내는 중국 북경의 일본제국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 불굴의 이름이다. '고기 육(肉)', '쏟을 사(瀉)'의 육사는 살점이 뜯겨 나가는 혹독한 고문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던 강인한 이름이다. '뭍, 육지, 언덕 육(陸)'의 육사(陸史)는 39년 짧은 생애 동안 17번이나 체포, 투옥됐던 불꽃같은 삶 속에서도 시인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역사에 우뚝한 이름이다. 아름다운 이름이야말로 불멸의 무궁한 수명이다. 명시무궁수(名是無窮壽)! 시인 이육사는 아름다운 서정과 강인한 의지가 담긴 시로 암울한 현실 속의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전해줬다. 〈strong〉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strong〉 〈strong〉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strong〉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2026-09-23 09: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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