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9 18:54:44
[수요일아침-하영석] 해운 초대형화 경쟁, HMM의 성장전략은?
글로벌 컨테이너해운 시장의 지형을 뒤흔들 대형 인수합병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5위 독일 선사인 하팍로이드(Hapag-Lloyd)가 세계 10위 이스라엘 선사 ZIM을 약 42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선사 간 초대형화 경쟁이 재점화됐다. 인수가 승인되면 하팍로이드의 선복량은 309만 TEU로 늘어나며, 세계 비중은 8.9% 수준으로 높아진다. 현재 컨테이너해운 시장은 3대 얼라이언스와 단독 운항사인 MSC가 주도하고 있다. CMA CGM·코스코·에버그린의 '오션 얼라이언스'는 1천10만 TEU로 세계 선복량의 29.3%를 차지한다. 머스크와 하팍로이드의 '제미니 협력체(Gemini Cooperation)'는 713만 TEU로 20.6%를, ONE·HMM·양밍이 참여하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는 398만 TEU로 11.5%를 점유한다. 세계 1위 선사인 MSC는 745만 TEU로 세계 선복량의 21.6%를 보유하고 있다. 선사의 초대형화가 진행되는 배경은 분명하다. 지정학적 위기의 상시화, 운임 변동성 심화, 탄소 배출 규제에 따른 친환경 전환 비용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 10대 선사의 시장점유율은 2016년 74%에서 2026년 85% 수준으로 높아졌다. 300만 TEU 이상을 보유한 선사도 1개사에서 4개사로 늘었으며, 이번 인수가 성사되면 5개사가 된다. 하팍로이드의 ZIM 인수는 단순한 선복량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ZIM이 경쟁력을 가진 북미동안, 지중해, 남미 특화 항로가 하팍로이드의 서비스망에 편입되면 '제미니 협력체'의 서비스 다양성과 완결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는 화주 유치 경쟁과 얼라이언스 간 세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규모와 항로 다양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향후 얼라이언스 경쟁력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서비스 안정성과 항로 유연성 확보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거래의 최대 변수는 이스라엘 정부다. 이스라엘 정부는 국가 안보와 경제적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황금주(Golden Share)'를 보유하고 있다. ZIM을 일반 민간 기업이 아니라 국가 공급망과 안보를 뒷받침하는 전략 자산으로 판단할 경우, 인수 승인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국방부와 노동계가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팍로이드는 이를 의식해 ZIM의 일부 기능을 분사해 이스라엘에 남기고, 주요 교역국과의 직항 서비스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해야 할 점은 세계 50위권 수출국인 이스라엘조차 자국 선사의 전략적 가치와 공급망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6위권 수출국인 한국은 유일한 글로벌 국적 선사인 HMM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HMM을 재무적 자산으로만 다루는 접근은 장기적으로 국가 공급망의 안정성과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하팍로이드의 성장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팍로이드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었지만,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전환했다. 2014년 칠레 CSAV, 2017년 아랍에미리트 UASC를 인수하며 선대와 항로 네트워크를 확대했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글로벌 초대형 선사로 도약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계 물류기업 퀴네앤드나겔의 대주주인 클라우스미하엘 퀴네의 개인적인 역할도 컸다. 그는 하팍로이드가 해외에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 투자회사를 통해 지분 30%를 인수했다. 이는 단순한 재무 투자가 아니라 독일의 글로벌 선사를 유지·성장시키기 위한 장기 자본의 역할이었다. HMM의 매각에도 이 같은 시각이 필요하다. HMM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본다면, 핵심 과제는 '얼마에 매각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103만 TEU 규모의 선사를 글로벌 해운 플랫폼으로 성장시킬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인수 주체 역시 해운산업의 구조적 특성과 공급망의 전략적 중요성을 이해하고 장기 투자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해운업계는 '민관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해 실질적인 성장 전략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해운선사의 본사 이전과 같은 비본질적인 논쟁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
2026-09-29 14:30:00
'맹자'에는 시대를 뛰어넘어 정치 관료를 부끄럽게 만드는 우화가 실려 있다. "어떤 사람이 날마다 이웃집의 닭을 한 마리씩 훔쳤는데, 어떤 이가 '그런 짓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따졌다. 그러자 도둑은 '닭을 훔쳐 먹는 횟수를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만 훔치다가, 내년이 되면 완전히 그만두겠다'라고 대꾸하였다." 악행인 줄 알면서도 '점진적 중단'이라는 기만책을 내놓은 도둑을 향해 맹자는 "옳지 않은 줄 알았다면 속히 그만둘 일이지, 어찌 내년까지 기다린단 말인가?"라고 질타하였다. 맹자가 이 비유로 겨눈 과녁은 백성의 삶을 옥죄는 세금 제도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국정 형편상 당장은 어렵고, 점차 세율을 낮추다가 내년에 폐지하겠다"라며 핑계 대던 당시의 통치자였다. 맹자는 국가 권력이 오류로 판명 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미루는 행위를 '공권력이라는 외피를 두른 제도적 약탈'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통치 행위의 오류를 방치하는 일과 이웃의 재산을 훔치는 절도 사이의 본질적 유사성을 짚어낸 것이다. 현대 행정 국가의 정책은 선한 의도와 가치 있는 명분을 표방하기에, 정의·형평·안정·복지와 같은 숭고한 가치가 법안의 서두에 놓인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현실의 변수 속에서 모든 정책이 설계자의 의도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진짜 문제는 그 오류가 명백히 드러난 이후에 벌어진다. 정책 실패의 징후가 확인되었을 때, 통치 기구가 취하는 태도는 닭 도둑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즉각 방향을 선회하기보다는 "정책의 취지는 옳았다" "제도 안착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 진통이다"라는 궤변을 앞세운다. 닭을 훔친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번에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착륙"이나 "단계적 보완"이라는 점진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든다. 그러나 이미 방향이 어긋난 정책의 점진적 개선이란, 정책 당국자의 정치적 부담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국민에게 피해를 '달력을 넘겨 가며 쪼개어 지불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인 닭 절도는 '자비로운 배려'처럼 보일지 모르나, 여전히 매달 닭을 잃어야 하는 이웃에게는 지속적인 침탈일 뿐이다. 명백한 실정을 인지하고도 철회를 망설이는 것은 공직 윤리의 근본인 '염치'의 상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우화의 또 다른 주체에 주목해야 하니, 도둑을 질타한 '어떤 이'이다. 만약 어떤 이의 준엄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도둑은 닭을 훔치는 행위에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고, 도둑질을 줄이겠다는 시늉조차 안 했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떤 이'의 역할은 바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주어진다. 국정 시스템이 스스로 무오류의 환상에서 벗어나 과오를 바로잡기만 마냥 기다릴 수 없다. 관료제와 권력은 본능적으로 관성을 유지하려 하고, 실패를 가리려 드는 생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책의 오류를 먼저 감지하고 "지금 당장 멈추라!"라고 단호히 요구할 수 있는 감시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성숙한 국민의 책무는 주기적인 투표로 권력을 위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권력이 내놓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은 실질적 폐해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점진적 보완'이라는 이름의 유예가 권력자의 시간 끌기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행정과 정치가 무오류의 신화에서 벗어나 잘못을 인정하는 염치를 갖추게 만드는 동력은 공론장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 사회의 깨어 있는 목소리이다.
2026-09-29 14:29:30
[기고-윤철환] 국가 생존을 위한 제2차 공공기관 이전
지금 대한민국은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일극 체제의 한계 속에서, 국가 소멸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절벽과 고령화,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끊이지 않는 행렬은 단순히 지방의 쇠락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치명적인 경고음이다. 이 거대한 구조적 대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대한민국의 명운을 바꿀 국정 과제가 바로 정부가 추진 중인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단순한 행정 부처의 물리적 이동이나 지역 간 몫나누기 식의 타협안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것은 국가 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끊어내며, 미래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는 고도의 정무적 결단이자 국가 생존 전략이어야 한다.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이란 서울과 지방의 소모적인 대립이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공동체가 함께 살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거시적인 상생의 방정식이다. 만약 이번 제2차 공공기관 이전마저 명확한 객관적 기준과 원칙 없이 정치적 셈법이나 단발성 미봉책에 그친다면, 수도권 집중의 병리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대한민국은 글로벌 경제의 거대한 정체기 속에서 돌파구를 잃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 남부권의 중심이자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대구를 주목해야 한다. 대구는 오랜 세월 동안 기계, 금속, 자동차부품 등 탄탄한 전통 제조업의 뿌리 위에서 국가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나아가 최근에는 AI·로봇, 미래모빌리티, 헬스케어, 반도체 등 5대 미래신산업으로의 산업구조 대전환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명실상부한 첨단 산업 도시로 체질을 개선해 왔다. 수성알파시티의 ICT 혁신 생태계,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과 혁신 인프라가 이미 완비되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우수한 인재와 열정 넘치는 기업들이 숨 쉬고 있는 최적의 베이스캠프다. 대구의 준비된 역량은 단순히 한 지역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대구에 국가 미래를 견인할 핵심 공공기관이 이전해 온다면, 이는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 성장 동력을 지피는 가장 확실한 기폭제가 될 것이다. 진정한 정무적 설득력과 국가적 비전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수도권에만 밀집되어 비효율을 낳고 있는 자원과 기능을, 각 지역이 가진 고유한 산업적 강점과 혁신 역량이라는 국가 발전의 혈관 속으로 고루 수혈하는 것만이 지방 소멸을 막고 대한민국을 다시 역동적으로 뛰게 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정부는 시혜적 배분이라는 낡은 틀을 깨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원칙에 입각하여 각 지역의 잠재력을 국가적 자산으로 온전히 승화시켜야 마땅하다.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은 지방에 희망을, 청년에게 미래를, 대한민국에 글로벌 초일류 국가로 도약할 기회를 선물하는 역사적 과업이다. 대구 250만 시민의 뜨거운 염원은 결코 지역 이기주의의 발현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더 나은 내일과 국가 경쟁력 강화를 향한 충정 어린 외침이다. 정부의 공정하고 조속한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하며, 우리 모두가 사심 없는 뜻을 모아 대한민국 재도약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할 중차대한 분수령에 서 있다.
2026-09-29 10:30:00
영화 '암살자(들)'가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배후를 명확히 지목하진 않았지만, 극 중 일부 인물들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 측 또는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계획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는 장면이 담겨서다. 허진호 감독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감춰졌던 진실이나 배후를 밝혀내는 영화로 접근하지는 않았다"며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은 28일 '암살자(들)'에 대해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어, 마치 육영수 여사 피격의 진짜 배후는 고 박정희 대통령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며 "명백한 사실을 비틀어 역사를 왜곡하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썼다. 그는 "아직도 살이 에이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패륜 행위이고, 우리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도 했다. 영화가 특정한 관점을 갖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에는 다양한 인물과 이해관계, 당시의 사회적 조건이 존재한다. 역사적 인물을 오늘날의 정치적 가치관에 맞춰 영웅 또는 악인으로 재구성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호오(好惡)를 유도해서는 안 된다. 영화 창작자는 상상력을 발휘할 자유가 있고,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권리도 있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역사적 사실을 자의적으로 바꾸고,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주입하는 것까지 정당화하는 만능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창작의 자유는 비판받을 자유까지 포함할 때 완성된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는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다.
2026-09-29 05:00:00
[사설] 민심은 국정 쇄신 요구하는데, 지지층 결집에 호소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X(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일상 속에서 댓글로, 메시지로, 전화로, SNS 글로 언론이 외면하고 유튜브가 조작하는 숨겨진 진실과 팩트를 알리고, 남의 글 기사 댓글에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도 우리가 원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실천이다. 나 혼자로는 역부족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참여와 작은 실천이 개혁 세상을 만든다." 최근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지지층 결집과 정부·여당 응원을 독려(督勵)한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국정 운영 방향과 불공정한 인사 등에 대한 국민의 경고인데, 이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 원인을 언론이 외면(外面)하고, 유튜브가 진실과 팩트를 조작(造作)한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국정 운영 기조를 수정하고 참모진을 쇄신해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는 노력 대신 지지자들의 결집과 응원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라 특정 정치 진영 리더의 언어에 가깝다. 취임사나 1주년 기념사도 아닌데 개혁과 반칙·특권 없는 세상을 강조한 것도 적절치 않다. 자신과 지지층을 개혁의 주체(主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개혁으로 기득권을 잃게 되는 집단'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으며, 반대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 없고, 설득할 필요도 없다, 돌파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歸結)될 수밖에 없다. 앞서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포로를 한국에 보낸 사실을 왜 숨겼느냐는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대해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안보를 해치는 살인자, 매국노"라고 한 것 역시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인식의 표출이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층 결집 호소가 아니다. 국정을 반성하고, 야당과 대화하며, 본인 특혜(조작기소 특검법)를 포기하는 등 대대적 쇄신(碎身)이다. 자신들은 '빛의 전사'이고 상대방은 '기득권을 고집하는 악당'이라고 인식한다면 국정 동력은 점점 떨어질 뿐이다.
2026-09-29 05:00:00
[사설] 北 지뢰 확인 뭉갠 사단장이 '빈총 경계' 군단장 됐다니
'빈총 경계' 지침으로 직무 배제된 한기성 1군단장이 사단장 시절이었던 지난해 지뢰 폭발 사고 현장 일대에 대한 확인 및 북한군의 작업 동향을 직접 관찰하라는 군 당국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의혹(疑惑)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재명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군인(政治軍人)에게 '별'을 더 달아주며 국방과 안보를 파탄(破綻) 상태로 내몰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지난 21일 발생한 북한 목함지뢰로 의심되는 폭발 사고는 우리 군이 북한 지뢰 매설 의심 지대를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25사단 곳곳에서 북한 지뢰지대가 군사분계선(MDL) 남측으로 조성되는 정황은 지난해부터 위성 등을 통해 포착(捕捉)됐고, 합참 또한 '지형 변화가 포착됐다'며 이를 시인했다. "북한의 지뢰 매설 작업 초반부터 군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북한이 더 공세적으로 작업에 나설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DMZ) 내 작전을 요구하는 합참과 지상작전사령부의 명령을 회피하는 등 소극적 자세로 일관했다" "DMZ 내 작전을 피하다 보니 북한의 작업 정황을 포착하고도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이 언론에 전한 실상이다. 해당 지뢰 매설 의심 지대는 우리 군 감시 사각지대에 있어 북한군이 MDL을 넘어오는 것을 살필 방법이 없고, 경고 방송·사격도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전임 사단장이 북한의 도발을 방치(放置)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우리 장병 3명이 큰 부상을 당하는 참사(慘事)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런 무책임한 정치군인이 오히려 승진해 별을 추가한 뒤, '빈총 경계'라는 희대의 안보 해체 지침을 내렸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쏟아지는 국방·안보 파탄 의혹을 해소하고 마땅한 책임을 묻기 위한 진상 조사 및 국정조사, 특검 등의 조치가 시급하다.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라면 국방·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이다.
2026-09-29 05:00:00
[관풍루] 청와대에 김승원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내부 고발 탄원서 보냈던 전직 보좌관 "이번 주에 충격적인 내용 언론 통해 발표될 것"이라고
○…청와대에 김승원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내부 고발 탄원서 보냈던 전직 보좌관 "이번 주에 충격적인 내용 언론 통해 발표될 것"이라고. 법무부 장관 되려다가 의원직까지 위태? 그러게 너무 큰 '먹이'는 삼키는 게 아닌데. ○…청와대 "북한군 포로 송환 비공개 합의 위반" 또 주장하며 우크라이나에 해명·사과 요구 입장문 발표. 주장·요구만 하는 걸 보니 공식 '비공개 합의문'은 없는 듯.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석 민심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질타 컸다"고. 아무리 작게 잡아도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대표에 대한 질타가 100배는 더 컸지 싶은데….
2026-09-29 05:00:00
2026-09-28 18:44:35
[화요초대석-전병서] "AI 시대 희토류의 나라"가 칩 플루로 망하는 법
지금 한국의 반도체 호황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다. 미중의 기술 전쟁, AI 시대의 도래, 트럼프의 대중 압박이라는 세 개의 변수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이 일약 'AI 시대의 희토류'로 등극했다. 미중의 기술 전쟁 속에서 무소불위처럼 보였던 거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한국으로 오게 만들고,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미에 트럼프를 공항까지 나가 영접하게 만든 것도 결국 중국의 희토류였다. '대체 불가 광물' 하나가 세계 1위 패권국을 궁지로 몰았다. 세계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직접 서울로 날아와 닭을 튀기고 삼겹살을 굽고 러브샷을 한 것도 이유는 하나다. AI 모델의 하드웨어 인프라인 엔비디아의 GPU는 한국의 HBM 없이는 구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HBM이 '대체 불가 광물'의 딱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운과 실력은 다르다. 운은 하늘이 주지만 실력은 내가 만든다. 한국이 지금 가장 위험하게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늘이 준 운을 내가 만든 실력으로 오해하는 순간, 방심이 시작되고 몰락이 예약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돈은 불과 같다. 잘 쓰면 문명이 되지만 잘못 쓰면 집을 태우고 마을을 태우고 나라도 태운다. 한국은 지금 심각한 '칩 플루(Chip Flu)'에 걸려 있다. 코로나도, 스페인 독감도 아닌 반도체 독감(Chip Flu)이다. 1960년대 북해 천연가스 대박을 터뜨린 네덜란드가 자원 수출에 취해 제조업을 통째로 버렸다가 경제 전체가 피폐해진 것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 부른다. 100년에 한 번 오는 기술 대변혁기에 반도체 호황에 취해 다음 판을 준비하지 않으면 한국의 HBM은 네덜란드의 가스전(田) 꼴 난다. 정부는 초과 세수 나눠 쓰기에 분주하고, 노조는 성과급 더 달라 파업하고, 지역은 반도체 단지 유치 전쟁에 목숨 걸고, 주주는 배당 환원 요구로 시끄럽다. 모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데 바쁘다.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반도체 주가 하나에 천당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청룡열차를 함께 타고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황금 비를 다이아몬드 비로 바꾸는 것은 전략이다. 반도체 4년 사이클과 100년 만의 기술 대변혁이 겹친 이 희귀한 기회를 칩 플루로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HBM 너머의 '넥스트 HBM'을 지금 확보해야 한다. HBM 독점은 영원하지 않다. 중국의 CXMT는 이미 맹추격 중이고 미국 마이크론은 보조금을 등에 업고 달려온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차세대 공정, AI 반도체 설계, 패키징 기술에 올인 투자해야 한다. 지금의 황금 거위를 다이아몬드 거위로 업그레이드하는 R&D 투자에 인색하면 10년 후 한국 반도체는 없다. 둘째, 반도체 생태계를 삼전닉스 2사 체제에서 피라미드 생태계로 확장해야 한다. 두 회사의 시총이 전체의 50%를 넘는 나라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볼모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키우고, 팹리스 설계 기업을 육성하고, AI 칩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과 하이닉스 두 회사의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구조는 국가 안보 리스크다. 셋째, 즐기되 취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와 자본시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초과 세수는 나눠 쓸 게 아니라 반도체 인재 양성과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주주 환원과 노동 분배도 단기 배당이 아닌 장기 공동 성장 계약으로 바꿔야 한다. 호황기에 냉정하게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불황기에 반도체 전체가 흔들린다. 하늘이 준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이 준 기회를 망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지금 한국에 절실한 것은 돈벼락의 갈라먹기가 아니다.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전략이다.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은 쉽지만 다이아몬드 거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으면 한국의 반도체 천운(天運)은 그냥 운으로 끝난다. 한국 반도체의 적은 중국도, 마이크론도 아니다. 호황에 취해 내일을 잊은 한국 자신이다.
2026-09-28 14:30:00
추석 연휴가 지나고 다시 분주한 일상이다. 명절 전, 파란 가을 하늘로 백(白)의 선들이 날아오르는 나의 설치작품 사진에 친필로 안부를 건넸다. 가을바람을 담은 나만의 디지털 카드였다. 안부를 전하자 다정한 답장들이 밀려왔다. 그중 지인이 보낸 글귀에서 뒤늦게 차례상에 올랐던 네 가지 과일, '조율이시(棗栗梨柿)'에 담긴 속뜻을 마주했다. 무심히 대했던 제수의 의미가 이토록 시리고 아린 사랑의 대물림이었다니…. 단 하나의 씨앗으로 근본을 상징하는 대추(棗), 다 자란 뒤에도 뿌리 끝에 자신을 키워낸 씨밤을 매단 밤(栗), 그 내리사랑 옆에 백성의 순결한 심성을 닮은 속살이 하얀 배(梨)가 놓인다. 백미는 감(柿)이다. 감 씨를 심으면 고욤나무만 자라 좋은 감을 얻으려면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을 붙여야 한다. 자식을 키우려 생을 째는 고통을 감내하는 부모의 아픔이다. 게다가 감나무 속은 부모 속처럼 검은 무늬가 진하게 박혀 있다. 과일 씨앗 개수가 출세의 염원이라는 씨줄(가로)이라면, 그 안을 채운 지극한 진액은 부모의 멍든 가슴인 날줄(세로)인 것이다. 대지 위에 천을 드리워 선하나를 그어가는 나의 예술 행위가 인생을 대변하듯, 제수 음식을 정교하게 배열하는 상차림 역시 생사의 차원을 잇는 우리만의 공간 미학인 셈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이치를 시각적 공간으로 직조한 전통의 미학은, 우리네 성명(姓名)의 원리와 이어진다. 가문의 성씨가 존재의 터를 받치는 거대한 날줄이라면, 대를 잇는 항렬은 역사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씨줄이다. 그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정중앙에 부모가 축원한 이름 한 글자가 얹히며 비로소 한 인간의 좌표가 완성된다. 선과 선이 만나는 교차점은 늘 치열한 아픔이 모이는 곳이자, 동시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피어나는 중심이다. 돌이켜보면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이름을 지을 때도 나는 그 중심을 서성였다. 내 손으로 짓고 싶어 성명학 책을 탐독하다가 복잡한 주역의 괘 앞에서 백기를 들고 저자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받아온 돌림자 이름과 자유로운 후보를 두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돌림자가 예쁘지 않다는 아내 의견에 꾀를 내어 포스트잇에 이름을 적어 아기의 양팔 끝에 붙였다. 끝까지 매달린 것을 운명으로 삼자는 것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돌림자가 살아남았다. 가문의 막내라 좋은 글자는 다 선점당했지만, 나중에 사촌 형들이 어떻게 찾았냐며 부러워하던 기억 위로 미소가 번진다. 명절 소임이 끝나고 연구실에서 마음을 정돈해 본다. 생으로 째지고 타들어 간 감나무의 상처를 지나며, 우리 역시 성명 석 자라는 존재의 옷을 입고 마주한 시간이다. 이번 추석에 우리가 주고받았던 다정한 이름들과 그 교차하는 삶의 자리마다, 대를 이어 흐르는 아프고도 찬란한 사랑의 종소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퍼지고 있다.
2026-09-28 14:25:34
[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고구려의 살수는 어디인가(2)
지난 호에서는 고구려 살수의 위치에 대한 중국과 남북한 학계의 관점을 두루 살펴보았다. 이제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료에 근거한 필자의 견해를 말해보려고 한다. 다만 1,40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살수의 위치를 밝히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싣기로 한다. ◆선비족 후예 보육여견(普六茹堅)의 수나라 건국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 541~604)은 수나라의 개국 황제이다. 그러나 『수서(隋書)』 고조기(高祖紀)에 따르면 양견은 풍익(馮翊) 즉 지금 중국 섬서성의 반야사(般若寺)라는 절에서 태어났고 본래의 성은 양씨가 아니라 보육여씨(普六茹氏)였다. 북주 시기에 그의 아버지가 선비족의 성을 하사받았는데 나중에 양견이 수나라 황제로 즉위한 뒤 동한 태위 양진(楊震)의 14손이라고 자칭하며 양씨로 성을 바꾸었다. 그의 아내 독고가라(獨孤伽羅)는 서위, 북주시기 명장 선비족 독고신(獨孤信, 503~557)의 딸인데 수양제 양광은 바로 독고가라가 낳은 아들이다. 당태종의 아버지 이연(李淵)은 그의 조부가 이병(李昞)이고 이병의 아내는 선비족으로서 양견의 아내 독고가라와 자매지간이었다. 그러므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혈통은 순수한 한족이라기보다는 선비족의 피가 절반쯤은 섞여 있었다. 양견의 아버지 양충(楊忠)은 서위, 북주의 개국공신으로 대사공(大司空)을 역임하고 수국공(隋國公)에 봉해졌는데 양충 사후에 양견이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양견의 딸 양여화(楊麗華)가 북주 선제(宣帝)의 황후가 되었는데 선제가 죽자 나이 겨우 8세 밖에 되지 않은 정제(靜帝)가 즉위하였고 양견이 외척의 신분으로 정제를 보좌하며 점차 군정 대권을 장악해 나갔다. 581년 양견이 북주의 정제를 협박하여 선양(禪讓)의 형식을 빌어 황제에 즉위하였고 국호를 수(隋)로 바꾸었다. 대흥성(大興城) 오늘날의 서안에 도읍을 정하고 연호를 개황(開皇)이라고 하였다. ◆중원의 강자 수문제를 선제공격한 동북방의 강자 고구려 영양왕 589년에 300여 년 동안 분열되어 있었던 위진남북조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중국을 통일하는 데 성공한 수문제 양견은 자만심이 극에 달한 나머지 590년 고구려 평원왕에게 수나라에 복종하지 않으면 쫓아낼 수도 있다는 다소 모욕적인 조서를 보냈다. 평원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고구려 영양왕은 수문제의 무례한 행위를 괘씸하게 여기고 598년 수나라의 요서군(遼西郡)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삼국사기』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영양왕이 말갈의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침공하자 영주총관(營州摠管) 위충(韋冲)이 고구려 군사를 공격하여 물리쳤다. 수나라 문제가 이 사실을 듣고 크게 격노하여 한왕(漢王) 양(諒)과 양세적(王世績)을 아울러 원수로 임명하여 수군과 육군 30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여름 6월에 한왕 양의 군대가 임유관(臨渝關)까지 왔을 때 장마로 인하여 군량 수송이 이어지지 못해 군중에 양식이 결핍되었고 또한 전염병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주라후(周羅睺)는 동래(東萊)로부터 바다를 이용해 평양성으로 오다가 역시 풍랑을 만나서 많은 선박들이 표류하거나 침몰되었다. 가을 9월에 수나라 군사가 되돌아갔는데 죽은 자가 십 중 팔구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자연재해로 인해 수나라 군사가 패전하여 회군한 것으로 되어 있고 전쟁의 발생 배경과 전투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어딘지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쟁에 참전한 수나라 군인 중 살아 돌아간 숫자가 열에 팔 구명이었다면 그 참상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데, 수군의 참패를 숨기기 위해 이런 식으로 기록을 생략한 것은 아닐까. ◆중국 사료가 숨긴 제1차 수, 고 전쟁에서의 수나라 참패 원인『수서』 고제기에서는 수나라가 전쟁에 실패한 원인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수서』 동이전 고구려조항에서는 자연재해를 수나라가 패전한 이유로 들었는데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이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수나라 군대가 패전한 요인의 전부일까.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 임유관전역(臨渝關戰役)에서 "고구려 장군 강이식(姜以式)이 유수(渝水)에서 추격하여 수나라의 전군을 거의 섬멸하고 무수한 군수품을 획득하여 개선했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정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주강씨족보』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 실려서 베일에 가려진 옛 역사의 진상을 전해주고 있다. ◆수, 고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 가운데는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수문제가 중원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589년 고구려가 선제공격 할 당시 수나라는 통일한 지 채 10년이 안 된 신생국가였다. 또한 수나라의 군대는 보병이 위주여서 기병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에는 많은 약점이 있었다. 반면에 고구려는 최초로 병기와 투구를 개발한 병신(兵神) 치우천왕을 시조로 하고,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고주몽을 국조로 모신 후예들로서, 600년 가까이 존속하며 무적의 군대와 선진 무기를 자랑하는 동북방의 군사 최강국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고구려의 철갑기병, 창수, 궁수들의 늠름한 모습은 막강의 최정예 기병 부대를 거느렸던 고구려의 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구려는 광개토 태왕 시기에 중원이 남북조시대를 맞아 혼란에 처한 기회를 틈타 한무제 때 상실된 발해유역의 고조선 고토를 전부 회복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광개토 태왕 비문에 보이는 "주력부대 이외의 일부 군대를 파견하여 숙신, 상곡을 관찰하게 했다(敎遣偏師 觀肅愼上谷)"라는 내용은 고구려의 영토가 서쪽으로 하북성 상곡군 지역까지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광개토 태왕 이후 영양왕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186년 동안 왜, 북위, 북제, 거란, 돌궐 등 이민족 세력들과 군사적 충돌은 다소 있었지만 광개토 태왕이 개척한 광대한 영토와 강인한 국력은 축소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므로 589년 고구려가 수나라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했던 것은 영양왕의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승리를 계산한 준비된 공격이었다. 수나라가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반격했지만 실패의 쓴잔을 마신 것은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 예정된 참패였다. ◆고구려는 어떻게 수나라를 선제공격하는 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는가 수문제는 고구려를 침공하여 참패를 당한 이후 죽을 때까지 더 이상 고구려와의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당시 고구려는 어떻게 수나라를 선제공격하고 또 그들의 대대적인 반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침공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게 되었을까. 다음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가 왜 수나라 때 대륙을 공포에 떨게 한 강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비록 한나라와 위나라의 토벌에 의해 저들의 소굴이 잠시 기울어졌지만 난리 통에 가로막힌 경우가 많다 보니 저들 종족 부락들이 다시 모여들게 되었다. 지난 시대에는 냇가나 연못가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널리 전파되고 또 번성하고 있다. 저들은 중국의 강토를 였보고 있으며 중국 땅을 떼어다가 동이족 무리의 것으로 만들었다.(雖復漢魏誅戮 巢穴暫傾 亂離多阻 種落還集 萃川藪於往代 播寔繁以訖今 睠彼華壤 翦爲夷類)" 이것은 수양제가 수문제를 뒤이어 제1차 고구려 정벌에 나서면서 전국에 반포한 조서(詔書) 가운데 나오는 내용이다. 한나라 시대로부터 수나라 시대까지 고구려가 걸어온 변천사를 압축적으로 한눈에 보여준다. 여기서 "한나라와 위나라가 토벌했다(漢魏誅戮)"는 것은 한무제의 고조선 침략과 위나라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노룡새를 지나서 동북방 오환을 공격한 사실을 가리킨다. "중국 땅을 떼어다가 동이족 무리의 것으로 만들었다(翦爲夷類)"라는 것은 고구려에 광개토 태왕이 출현하여 잃어버린 고조선의 한사군 땅을 회복하고 조조에게 침공당한 동북지역을 다시 원상 복구한 것 등을 말한다. 수, 당시기의 고구려는 광개토 태왕이 강역을 확대하고 고토를 완전히 회복한 뒤로서 그때 고구려의 강역은 한반도 북쪽에 국한되지 않고 중원대륙 깊숙이 들어가 지배하였다는 사실은 중국의 수양제도 인정하였다. 다만 여기서 수양제는 "중원 땅이 동이족에 의해 잘려나갔다"라고 말했지만 동이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구려가 중국 땅을 무단 점령한 것이 아니라 한무제가 탈취해간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나라 요서군은 하북성 동남지역, 살수가 북한의 청천강이 될 수 없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는 "고구려 왕이 말갈의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침공했다(王率靺鞨之衆萬餘 侵遼西)"라고 기술하고 있고 『수서』 동이전 고구려 조항에는 "고구려 왕 고원이 말갈의 군사 만여 명의 기병을 인솔하고 요서를 공격하였다(元率靺鞨之衆萬餘騎 寇遼西)"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서』와 『삼국사기』의 기록은 얼핏 보면 내용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김부식의 기록은 아주 중요한 한 글자를 빠뜨렸다. 기병이란 기(騎) 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김부식이 엄청난 실수를 범한 것이다. 전쟁에서 기병 1만 명과 보병 1만 명이 갖는 위력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고구려 군대가 수나라 군대를 상대로 싸울 때마다 번번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바로 고구려가 보유한 무적의 철갑기병 때문이었다. 고구려가 수나라 요서군을 침공할 때 말갈 기병 만 명을 동원했다고 말했는데 정작 전쟁의 당사국인 고구려군은 한 명도 참가하지 않고 구경만 했을 리는 만무하다. 고구려 기병의 참가자는 적어도 2만 명 내지 3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때 고구려가 공격한 수나라의 요서군은 오늘날의 어디에 있었는가. 송나라 때 낙사가 쓴 『태평환우기』는 하북도 평주(平州) 조항에서 "춘추시대의 고죽국 지역이 진(秦)나라, 한나라, 진(晋)나라 때의 요서군 땅이고 수나라 때는 우북평군으로 바뀌었다"라고 적고 있다. 평주 노룡현 조항에서는 "고죽성, 조선성, 요서성 유적이 있다"라고 하였다. 『태평환우기』 하북도 영주(營州) 조항에서는 "은나라 때 고죽국 지역이고 진나라, 한나라 때는 요서군 지역인데 수나라 개황 3년 즉 수문제 양견 때 여기에 영주를 설치했다"라고 말하였다. 오늘날의 요녕성을 중심으로 그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로 나누는 것은 거란족이 그 지역을 점령하여 요나라를 건국한 이후에 생겨난 개념이다. 『태평환우기』를 비롯한 송나라 이전의 모든 중국 사료에는 한, 수, 당 시대의 요서군은 하북성 평주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수나라 영주를 요녕성 조양시로 인정하는 현대적 시각 또한 잘못된 것이다.고구려가 수나라에 결정적 타격을 안긴 살수대첩의 전장을 북한의 청천강으로 보는 관점은, 고구려 평양성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고 서쪽 국경선은 압록강이었다고 인정하는 논리적 토대 위에서만 성립이 가능하다. 만일 고구려가 수나라 요서군을 선제공격했는데 그 지역이 하북성 평주 노룡현 일대였다면 수나라와 고구려가 국경을 마주했던 곳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서쪽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수나라 때 고구려의 살수는 하북성 노룡현 부근에 있는 어떤 강이어야 하며 결코 북한 대동강 서쪽의 청천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2026-09-28 11:05:23
[사설] 국제 망신·국민 불안 키우는 李 정부의 北 눈치 보기 안보
러·우전 북한군 포로 송환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살인자" "반역자(매국노의 오역)"로 비난했다고 러시아 언론 매체들이 왜곡·보도하면서, 두 대통령 사이의 진실(眞實) 공방은 국제적 관심사로 비화하고 있다. 자칫 두 나라 대통령 중 한 명은 "거짓말쟁이"라는 국제적 망신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UN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전쟁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전격 공개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다음 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안보와 국익을 고려해 비공개(非公開)하기로 합의했으나 우크라이나가 이를 어겼다"고 비판했다. 또 국내 비판 세력을 향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고 했다. 러시아 언론들이 국내 야권 정치인들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발언처럼 왜곡한 것이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북한군 포로 송환 정보를 비공개하겠다고 한국 정부와 약속하거나 합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反駁)에 재반박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측이 UN총회 연설 전 북한군 포로 송환을 언급하겠다고 한국 정부에 사전 통보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속 '비공개 양해(합의)를 어긴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통보 내용 자체가 명료하지 않았다"는 모호한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북한군 포로들은 공개적으로 한국행(귀순) 의사를 밝혀왔고, 한국 정부 역시 송환 추진을 알렸던 만큼, 북한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북한군 포로 송환(送還)을 비공개로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는 포로의 안전과 인도주의적 원칙을 내세우지만 '알려진 상황'에서 설득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 눈치 보기 의혹은 지난 21일 서부전선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 사고에서도 나타난다. 유엔군사령부가 신속한 조사를 위해 사고 다음 날 보디캠 영상, 부상자 인터뷰, 현장 출입을 요청했지만 우리 군(軍)이 거절한 것이다. 장병들의 트라우마 회복과 현장 안전 조치를 내세웠다. 북한군이 최근 MDL(군사분계선)을 지속적으로 남하해 지뢰 매설 추정 행위를 벌였지만 실질적 대응을 하지 않았던 우리 군이 갑자기 '현장 안전 조치'를 강조하면서 사실상 사고 조사를 지연시키는 듯한 행태를 벌인 것이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마저 "왜 적극 행정을 하지 않고 뒤로 숨는가. 닥치고 설명 못 하는가"라며 북한군 송환과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한 이재명 정부 행태(行態)를 비판했을까. 무엇이 두려워 국민들에게 숨기고 감추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지 이재명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2026-09-28 05:00:00
대법관 재제청을 거부한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여권이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자진 사퇴 및 탄핵소추안 압박, 국회 증인·청문회 출석 요구, 사법 쿠데타·내란적 성격 규정 등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희대의 난' '위헌·위법적·내란적 재제청 거부' '희대의 내란 잔불' '내란 세력의 마지막 외톨이의 돌출 행동' '이미 탄핵소추안 마련' 등 온갖 독설을 쏟아냈다. 심지어 대법원장에게 '법을 하나도 모른다'고까지 했다. 원하는 인물을 대법관으로 앉히기 위해 대법원장을 깔아뭉개는 망발(妄發)이다. 10월 2일, 78년 역사의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한다. 이번 주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개편이 끝나는 것이다. 검찰 해체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사법부 개편을 위한 '눈엣가시' 대법원장 제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검찰에 이어 '이번엔 법원 차례'라는 계획된 수순으로 비칠 수 있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마저도 검찰처럼 정부 산하 기관쯤으로 취급하고 있는 오만한 행태다. 그런데 이는 악수(惡手)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5월 60%대에서 최근 30%대까지 급락했다. 유시민 작가·추미애 경기도지사 등 여권 내 분열도 커지고 있다. 지지 기반이 갈라지고 지지율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사법부 수장까지 힘으로 굴복시키고 사법 독립 훼손까지 시도한다면 남은 국민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 행정·사법·입법 간 균형과 견제, 존중이 깨지고 최소한의 상식이 무너졌다고 받아들여서다. 그 대가는 국민의 심판으로 돌아온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2026-09-28 05:00:00
[사설] 200조 미래기금, 정부 재량 키우고 국회 통제 줄였다
정부가 내년에 신설하는 미래대응기금이 2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당초 기금 예정액 162조3천억원에 50조원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 초과 세수를 더한다면 212조3천억원에 이른다. 규모만 놓고 보면 내년 정부 총지출(820조9천억원)의 4분의 1이 넘는다. 그런데 기금 운용에 대한 견제 강화는커녕 정부 재량(裁量) 범위만 넓어지고 있다. 내년 기금 사업 예산이 45조4천억원인데, 순수 지출사업 131건 중 119건은 부처별 요구액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출사업을 제대로 검토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정부는 국회 사전 통제 없이 돈을 쓸 길까지 넓히고 있다. 정부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기금 주요 사업비를 30% 이내에서 조정할 경우 국회에 변경안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세수 부족 시 기금을 정부 일반 살림살이를 메우는 데 옮겨 쓸 경우도 사전에 국회 변경안을 거치지 않는다. 사용 내역을 국회에 사후 보고한다. 지방 보조 사업비는 불가피한 사유로 쓰지 못한 돈을 최장 3년에 걸쳐 사용하도록 이월(移越) 규정까지 완화한다. 기금은 본예산보다 운용이 유연한 만큼 훨씬 엄격한 통제가 필요한데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사업비의 95%를 부처 요구대로 반영하면서, 정부가 국회의 재심의조차 없이 사업비를 조정할 수 있는 범위까지 넓혔다. 초과 세수는 정부가 창출한 재원이 아니라 경기와 기업 실적이 예상보다 좋아 국민과 기업이 더 낸 세금이다. 2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정부가 더 쉽게 움직이고 국회는 뒤늦게 들여다보는 구조라면, 재정 운용 유연성이 아니라 통제 무력화(無力化)라는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2026-09-28 05:00:00
[관풍루] 더불어민주당 "추석 연휴 가장 뼈아픈 목소리는 민생이었다"더니 정작 '비수 꽂고 뒤통수쳤다'며 대법원장 비판
○…추석 연휴 새벽에 식당 침입해 집기 파손·매장 내 페인트칠하고, 농약 추정 물질 식재료에 뿌린 중국인 용의자 4명 범행 후 출국. 이런데도 중국인 무비자 입국 계속 허용, 조선에 이어 21세기에도 만절필동(萬折必東)일세. ○…더불어민주당 "추석 연휴 가장 뼈아픈 목소리는 민생이었다"더니 정작 '비수 꽂고 뒤통수쳤다'며 대법원장 비판. '국민 하소연'보다 대통령 마음대로 대법관 인사 안 되는 게 더 안타깝죠.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 "기업 팔을 비튼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니다"고. 기업 팔 비트는 수준 아니고 기업 몸통 쥐어짜는 혼신 다했는데, 평가가 야박하다는 말씀?
2026-09-28 05:00:00
2026-09-27 18:46:48
대학다운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좋은 건물과 첨단 연구시설이 있는 대학, 취업률이 높고 연구비가 많은 대학을 떠올릴 수도 있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학다움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대학에는 기업이나 정부기관과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조금 엉뚱한 생각도 허용되는 곳이어야 한다. 당장 쓸모를 증명하기 어려운 연구를 하는 교수도 있고, 전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학생도 있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겠다는 시도가 실패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능으로 평가받아서도 안 된다. 정답을 빨리 찾는 것보다 기존의 정답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존중받는 곳, 그것이 대학다운 대학의 모습이 아닐까. 황당한 실패, 엉뚱한 질문, 어리석은 도전이 시도되는 공간인 대학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도 충분히 시끄럽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학과를 개편하고,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계획서를 만들고,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전공을 만든다. AI가 중요해지면 AI를, 반도체가 중요해지면 반도체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대학이 시끄러운 이유이다. 새로운 생각과 실험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길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시끄럽다는 데 있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면 대학들은 빠르게 움직인다. 평가 기준이 만들어지면 그 기준에 맞추고, 새로운 사업이 나오면 비슷한 조직과 교육과정을 만든다. 대학마다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혁신의 모습은 서로 닮아간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조금 더 빨리 달리는 것을 혁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에는 효율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백이 필요하다.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효율과 성과를 추구해야 하고 공공기관도 정해진 절차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대학마저 모든 활동을 단기간의 성과와 숫자로 판단한다면 새로운 생각이 자라날 공간은 줄어든다. 새로운 학문과 기술, 문화는 이미 정해진 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따라간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질문을 던진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개성이 넘치는 공간이어야 한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음악을 연주하는 학생도 만나고, 낯선 주제로 토론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공학자가 예술가를 만나고 사회과학자가 의학자와 대화하며, 학생이 교수에게 거리낌없이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전공, 세대가 부딪히고 섞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대학의 다양성은 관리해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자산이다. 대학은 지역의 문화적 중심이기도 하다. 좋은 대학이 있다는 것은 좋은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연과 전시, 강연과 토론이 열리고 새로운 생각과 생활양식이 지역사회로 퍼져나가는 지적·문화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정부나 기업이 당장의 현실 때문에 시도하기 어려운 해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곳이 대학이라면, 대학은 그 자체로 지역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공간은 실패할 자유도 필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교수와 학생의 작은 아이디어에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충분히 검증된 일만 허용한다면 그것은 혁신이라기보다 관리에 가깝다. 실패하지 않는 대학보다 실패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대학이 더 대학다울 수 있다. 대학다운 대학은 조용하고 완벽하게 정돈된 대학이 아니다. 조금은 시끄럽고, 엉뚱하며,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고 아직 답을 알 수 없는 시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대학의 경쟁력은 다른 대학과 얼마나 비슷해졌는가가 아니라 그 대학에서만 가능한 생각과 계획이 얼마나 많이 시도되고 있는가에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에는 더 많은 시끄러움이 필요하다. 다만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 위한 시끄러움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한 시끄러움이어야 한다.
2026-09-27 14:30:00
명절이 됐다. 거실에서 부모님의 이야기가 들린다. "명절인데 TV에 볼 게 없네." 어렸을 때,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TV 편성표를 외웠다. 특선영화가 언제 하는지 확인하고, 명절 특집 프로그램이 있으면 방송 시간을 기억해뒀다. 부모님은 TV 편성표를 외우는 나에게 TV에서 재밌는 걸 하냐고 물었고, 리모컨은 내가 보고 싶은 채널을 향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편성표를 외우지 않는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OTT를 통해서 보고 싶은 시간에 보면 되니, 굳이 명절을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다 이번 명절에 우연히 추석 특선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봤다. 마블 영화가 명절 특선영화가 된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OTT에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니 이제 특선영화라는 희소성은 사라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특선영화라고 하면 TV에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특별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이 매년 찾아오는 고전도 있었지만, 특선영화라는 말에는 극장에서 흥행했던 영화를 TV로 볼 수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명절 특집 프로그램도 그렇다. 예능에선 특집이라며 명절에 맞는 에피소드를 기획했고, 특집 프로그램 또한 명절을 기반으로 방영됐다. 그러다 아이돌이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면서 '아이돌 육상 대회' 같은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고, 최근에는 트로트 열풍과 함께 트로트 가수들이 이끄는 쇼가 명절 프로그램이 됐다. 생각해보면 명절의 TV는 그 시대의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당시 흥행한 영화가 특선영화가 되고, 현재 인기 있는 트로트가 명절 특집 프로그램을 차지하는 걸 보아, 시대마다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방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TV는 특별히 보여줄 것이 없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많아져서 무엇을 특별하게 보여줄지 어려워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적 명절이면 할머니 집으로 친척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만나 얘기를 하고, 밥을 먹고, 화투를 치다 다들 거실 TV 앞으로 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본다. 한 자리에 모여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TV에 볼 게 없다.'라는 말은 정말 볼 게 없다는 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볼 것은 많은데, 함께 볼 것이 없는 것 아닐까.
2026-09-27 08:45:06
[사설] 대법관 재제청 근거는 제시 않고 욕설과 협박 늘어놓은 민주당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를 제시해 달라"며 거부하자 청와대는 "국민이 다 아는 반려(返戾) 사유를 유독 대법원장만 '공문에 그 내용이 없으니 모르겠다'고 하는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 쿠데타"라며 "탄핵"을 촉구했고, 김기표 의원은 "요설(妖說)", 김민석 대표는 "반헌법적, 내란적 사고"라며 "바보인가, 난독증인가"라고 퍼부었다. 재제청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온갖 자극적이고 험악한 수사(修辭)를 동원해 정치 공세를 펼친 것이다. 오죽하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재차 '명확한 재제청 요청 사유를 제시하라'고 했을까. 법원조직법 제41조 2는 대법관 후보 추천에 관한 절차를 이렇게 규정한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제2항) 추천위원회는 제청할 대법관 1명마다 3배수 이상 후보자를 추천해야 한다.(제6항) 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제8항) 청와대 요구대로 대법원장이 기존 추천위가 추천한 후보군(群)에서 다른 한 명을 골라 '재제청'한다면 법원조직법 위반이다. 대법원장 징계 사유감인 것이다. 법이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음에도 청와대와 민주당이 새 추천위를 구성하지 말고, 기존 후보 중 1명을 재제청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청와대가 원하는 후보를 제청하라"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교체 요구(要求)를 반복할 경우 사법부 독립과 국회 동의권은 무의미해진다. 삼권분립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반헌법적·내란적 사고'라고 본다. 다수 국민들은 작금(昨今)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를 대통령 재판 지우기 일환(一環)으로 본다. 이럴수록 이재명 정권에 대한 국민 불신과 분노만 커질 뿐이다.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지우기 위해 사법체계를 허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2026-09-24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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