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여성 국회의원 여럿이 한 데 모여 '남녀동수사회'라고 적힌 표어를 나눠 들고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남녀동수사회란 정치·경제·사회적 권리와 책임, 권력을 남녀가 반반씩 나눠가진 사회를 뜻한다. 이를 보고 같은 여성으로서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여성이라는 명찰 하나로 무언가를 받아내야 한다는 논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단언컨대 인위적인 여성 할당은 여성 인권 신장이 아니라 여성 역량과 인권을 스스로 추락 시키는 독이다. 여성 할당제의 가장 큰 비극은 여성 할당제가 여성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밤새 실력을 다지고 경쟁을 뚫어낸 수많은 여성이 이미 현장에 있다. 그러나 인위적인 할당은 그들의 실력이 '할당 몫' '숫자 채우기용'으로 비춰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스스로 입증해 온 여성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그 가치를 가장 모욕적으로 깎아내린다. 건강한 사회의 근간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배지는 성별로 지분을 나누는 공공재가 아니다. 유권자가 바라는 사람은 당장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일 잘하는 사람'이다. 성별이 공천과 선출의 최우선 기준이 되는 순간 국민 선택권은 오염된다. '여성 정치인'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전체의 삶을 대변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기만적이다. 정치 철학과 비전은 성별이 아닌 경험과 능력에서 나온다. 그동안 할당제로 정계에 진출한 일부 여성 정치인이 과연 평범한 여성의 고충을 제대로 대변해 왔는가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고 싶다면 의석수라는 숫자에 집착할 게 아니라 여성이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넘어 자유롭게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부터 정비해야 한다. 당장 현장만 가 봐도 각 지역 여성위원회가 당 행사 음식 준비나 수발 같은 전형적인 '주부'의 일을 도맡아서 한다. 이런 고정적인 성 역할부터 바로잡고 후진적인 공천 시스템을 선진화하는 게 맞다. 출발선의 후진성을 개선하는 게 먼저다. 결승선에서 비율을 맞추겠다고 번호표를 임의 배정하는 건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난 여자다. 여자가 여성 할당제를 비판하는 건 부담스런 일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여성 할당제라는 특별한 울타리를 고집하는 순간 나 스스로 약자 프레임에 갇히게 되며 내가 흘린 땀과 성과마저 폄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공정하게 승부를 겨뤄야 할 주체적 인격다. 인위적인 할당제에 기대지 말고 당당히 실력으로 승부해 선택 받을 때 진정한 여성 인권 향상과 사회적 존중이 완성될 것이다. 김혜지 국민의힘 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9-02 03:07:02
2026-09-01 18:48:30
[수요일 아침-하영석] 기대와 현실의 경계에 선 북극항로
지난 22일 팬스타의 내빙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PANSTAR ACRO)'가 부산신항에서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나섰다. 총톤수 3만5천708톤(t), 적재 능력 2천758TEU인 이 선박은 939TEU의 화물을 싣고 북동항로를 따라 첫 기항지인 영국의 펠릭스토우항을 향해 출항했으며, 같은 항로를 따라 10월 5일 부산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운항은 한국 해운 기업 최초로 북극항로를 이용한 컨테이너 운송 가능성을 검증한다는 점에서 의미와 기대가 크다. 2025년 기준 북극항로 이용 물동량은 약 3천800만t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국제 통과 운송 물동량은 320만t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주요 화물은 북유럽에서 아시아로 운송되는 LNG, 원유, 석유제품, 벌크화물 등이다. 현재 국제 컨테이너 운송은 중국계 선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항만과 러시아 아르한겔스크항 간의 셔틀 운송과 닝보·저우산항과 영국의 펠릭스토우항을 잇는 직항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국제 컨테이너 물동량은 2024년 1만7천400TEU에서 2025년 직항 서비스의 영향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운송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상업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북극항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운항의 연속성과 정시성이다. 일부 쇄빙 기능을 갖춘 특수 LNG선은 연중 운항이 가능하지만, 내빙 성능만 갖춘 컨테이너선은 통상 7월부터 11월까지 연간 5개월가량만 운항할 수 있다. 운항이 가능한 해빙기에도 짙은 안개와 유빙, 극심한 폭풍 등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여건으로 인해 정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운항 네트워크와 비용 구조 역시 과제다. 선사들은 출발지와 최종 목적지를 잇는 항만 네트워크를 통해 적취율과 수익성을 높인다. 반면 북극항로는 유럽행 직항 화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만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투입 선박의 규모 제한, 내빙선 건조 비용, 쇄빙선 이용료 등의 고비용 구조는 운송 거리 단축의 이점을 상쇄할 수 있다. 여기에 러시아의 통제권이 강한 항로라는 점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도 상존한다. 글로벌 선사들도 북극항로 활용에 신중한 입장이다. 머스크(Maersk)는 2018년 3천600TEU급 내빙 컨테이너선을 투입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항까지 시범 운항했다. 그러나 시범 운항 직후 "북극항로는 기존 네트워크를 대체할 상업적 대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나이키(Nike) 등 일부 글로벌 화주들도 환경 보호를 이유로 북극항로 운송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렇다고 북극항로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북극해 인근에서 생산되는 철광석, LNG, 나프타 등을 포항과 여수 지역으로 운송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쇄빙 기능을 갖춘 대형 LNG선은 북극권에서 생산된 LNG를 유럽과 아시아로 운송하고 있다. 이는 북극항로가 당장 글로벌 컨테이너선의 대체 항로로 자리 잡기는 어렵더라도, 에너지와 핵심 광물의 운송로로는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중국·일본은 북극항로를 활용해 호르무즈 해협에 집중된 에너지 수입 경로를 다변화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한국의 대응은 이러한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이번 시범 운항을 통해 운항 기술을 축적하는 동시에 항해 기간, 결빙 상태, 항만 체류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쇄빙선 이용료를 포함한 총운항 비용을 수에즈운하 이용 시와 면밀히 비교해야 한다. 결로와 한파에 따른 화물 손상·변형 가능성을 점검해 포장, 보관, 적재 기준을 마련하고 화물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글로벌 환적 항만인 부산항과 북방 물류 거점인 영일만항을 북극항로의 운항 여건에 맞춰 연계·활용하는 탄력적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노르웨이 북부와 베링해협 인근의 항만 개발 동향을 주시하고, 이들 항만과의 셔틀 서비스망 구축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특히 유럽행 직항 화물을 확보하려면 일본 항만과의 전략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북극의 해빙 현상만으로 북극항로가 상업 항로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 안전 통항 규범이 마련되고 안전성·정시성·경제성의 장벽을 넘어야 비로소 상업 항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장기간 축적해 온 북극 정보와 기술 역량이 국가적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기반이 될 것이다.
2026-09-01 16:02:06
로봇산업의 진화가 심상치 않다. 과거 로봇은 미리 입력된 명령에 따라 공장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자동화 기계였다. 지금은 다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이 로봇과 결합하면서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데이터를 학습하며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물리적 AI(Physical AI)'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대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대구가 로봇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선택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비롯한 지원 인프라와 기계·자동차부품 등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고,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구축을 통해 실증 기반도 확보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자산을 어떻게 연결해 대구만의 산업 경쟁력으로 만들 것인가이다. 여기서 전시산업의 전략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대구의 대표적인 미래기술 전시회인 미래혁신기술박람회(FIX)는 모빌리티·로봇·AI·ICT 등 다양한 미래산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종합 플랫폼이다. 이러한 통합형 전시회는 미래기술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로봇산업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Physical AI 시대의 로봇은 더 이상 기계산업의 한 분야가 아니다. AI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되는 핵심 산업이다. 그렇다면 로봇산업을 종합 박람회의 한 전시 분야로 계속 묶어두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 이제 대구가 FIX와 로봇산업전(ROBEX)의 투 트랙 전략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본다. FIX는 미래산업의 종합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쇼케이스로 발전시키고, ROBEX는 로봇 제조·부품·AI·소프트웨어·SI 기업과 수요 기업, 투자자, 해외 바이어가 만나 실제 거래와 실증을 만들어내는 전문 B2B 플랫폼으로 특화할 필요가 있다. FIX가 미래를 보여주는 무대라면, ROBEX는 미래를 거래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FIX를 축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두 전시회의 역할을 분명히 나눠 각각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로봇을 독립적인 산업 플랫폼으로 육성해야 FIX의 종합성도 살아나고 ROBEX의 전문성도 강화될 수 있다. 특히 대구의 로봇 전략은 다른 지역과 달라야 한다. 대구에는 자동차부품·기계·금속 등 오랜 제조업 기반이 있다. 따라서 단순히 외부 로봇기업을 유치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 제조업 자체를 로봇과 AI를 통해 다시 산업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자동차부품 공장에 로봇을 넣고, 기계 가공 현장에 AI를 접목하고, 섬유·물류·서비스 현장에 자율화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지역 기업이 로봇을 구매하고 실증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로봇 수요 시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ROBEX도 단순한 제품 전시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시, 수출 상담, 투자유치, 기술이전, 실증사업, 정책포럼이 하나로 연결되는 산업 플랫폼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물론 로봇 전시회를 독립시킨다고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전시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FIX와 ROBEX의 브랜드와 전문 프로그램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후 해외 로봇기업과 바이어를 적극 유치해 국제성을 높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대구의 제조기업이 로봇을 도입하고, 로봇기업이 기술을 실증하며, 투자와 수출이 연결되는 '대구 로봇산업 주간'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2026-09-01 15:21:45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책장 가득 꽂아두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나 또한 가끔 그런 상상을 했지만 아쉽게도 이루지 못했다. 대신 도서관에서 일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요즘 들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대출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같이 일하는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민음사빵 모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민음사가 빵도 만드나?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 서둘러 검색했다. 민음사빵은 'GS25'와 '민음사', '오늘의 귀여움'이 협업해 만들었다고 한다. 기사를 훑어봤다. 민음사빵 5일 만에 10만개, 2030 유행. 품절! MZ 넘어 '아재'들도 열광한 민음사빵. 좀 더 검색해 보니, 누적 판매 12만개 돌파 민음사빵, 직원도 못 먹어봤어요. 라는 기사 제목도 보였다. 2030 난리 난 빵의 정체는? 나는 난리는커녕 이름도 처음 들은 아재라서 그 모든 게 신기했다.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오픈런하는 사람도 있고, 빵 봉지에 든 책갈피 굿즈를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에 거래하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기사 대부분이 '텍스트힙' 트렌드가 반영된 문화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독서라는 취향을 소비하는 세대, 특히 2030 여성들이 그 흐름을 주도한다고. 누군가는 이걸 발터 벤야민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민음사라는 문화적 '아우라'가 복제되면서 예술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고. 그게 아니면 르네 지라르식으로 해석할 수도. 민음사라는 대상 자체를 욕망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는 모방 욕방의 개념으로. 참 어렵다. 절에 가면 불교 경전을 외우지 않아도 경전을 깨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있다. 나무 탑처럼 생긴 장치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를 밀면 된다. '윤장대'라는 이 장치는 어려운 불교의 가르침에 쉽게 닿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경전을 모른다고 절에 못 가는 게 아니듯 책을 읽지 않았다고 민음사빵을 못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제 책장에 민음사빵이 꽂혀 있는 걸 상상해본다. 오늘은 '사랑에 대하여'를 먹고, 내일은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먹어야지. 모레는 '오만과 편견'을 먹을 예정이다. 그렇게 빵을 냠냠 먹으며 투명 책갈피를 모은다. 레미제라블 책갈피, 이걸 어디 쓸까. 레미제라블에 끼워볼까. 물론 잠깐의 유행일지도 모른다. 금방 사그라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28년 동안 394개 작품을 소개하며 올해 500권째 책을 출간했다. 긴 시간 이것을 이어온 누군가의 노력이 없었다면, 민음사빵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생겼을까. 세상에 우연은 없다.
2026-09-01 08:57:41
[사설] 고금리 시대 대출 확대식 포용금융, 취약계층엔 덫 될 수도
한국은행이 긴축 필요성을 내세우며 기준금리를 연 3%까지 끌어올렸다.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로 이어지고, 빚에 허덕이는 금융 취약계층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제때 빚을 못 갚아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이 2022년 12만여 명에서 지난해 18만9천여 명으로 급증했는데, 올 상반기 벌써 9만7천여 명에 이른다. 연체 초기에 이뤄지는 신속채무조정은 3배 이상 늘었고, 70대 이상에선 7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채무조정이 재기(再起)의 발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빚을 조정받고 성실하게 갚던 사람이 생활비에 쪼들려 소액대출을 신청한 건수가 상반기에만 2만6천여 건이다. '대출-채무조정-재대출'의 악순환이다. 그런데 정부 처방은 다시 대출 확대다. 제2금융권의 중금리(中金利)대출 증가분을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서 제외해 고금리나 불법 사금융 의존을 막겠다지만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한다면서 취약차주 대출을 늘린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먹고살 돈이 없어 제2금융권을 찾아가는데, 중금리인들 제때 갚을 수 있겠나. 채무조정 후 생계비 대출에 의존하고, 60·70대 생활형 부채가 늘어나고, 폐업 자영업자가 생계를 걱정하는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 금융 규제를 완화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최근 기초연금 개편안 사전설명회가 발표 직전 취소된 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노인층 반발과 정치적 부담 탓에 저소득 노인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개편안 발표를 주저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한된 재원을 선별적으로 배분하고 혜택을 조정하는 개혁은 물론 쉽지 않다. 반면 대출 확대는 빠르고 당장 민심에 반영되며, 채무조정 확대도 금융 취약계층의 박수를 받기 쉽다. 그러나 빚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출 확대는 과감하면서 이해관계 조정이 절실한 구조개혁을 주저하면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취약계층을 끌어안겠다는 정부의 포용(包容)금융이 급한 불 끄기에만 급급하다면 결국 후대에 부담만 떠넘기는 이기적인 정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2026-09-01 05:00:00
[사설] 개각에 지지율 노린 셈법만 도드라지고, 쇄신 의지 안 보여
개각은 국정 쇄신(刷新) 의지를 보여주려는 조치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이번 개각에 국정 변화와 쇄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다수 국민들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졸속 도입으로 투자자들에게 피눈물을 안긴 김용범 정책실장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김용범을 살리고 구윤철 경제부총리를 쳐냈다. 경제부총리에 이형일 현 재정경제부 1차관을, 국토교통부 장관에 홍지선 현 국토부 2차관을 지명(指名)했다. 법무부 장관에는 더불어민주당 '공소취소를 위한 의원 모임' 공동대표 출신 김승원 의원을 지명했다. 경제·부동산·대통령 공소취소 등 악재로 평가받는 정부 정책과 사안을 그대로 이어 가겠다는 뜻이다. 개각에 변화와 쇄신 의지는 약한 반면 지지율 추락을 잡겠다는 계산만 도드라져 보인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극단적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며 '성평등'과 거리가 먼 인물로 평가받는다. 민주당 주도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두 번이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꼼수 제명을 통해 기존 정당으로 돌아갔다. 공무가 아니라 가족 여행을 가면서 공항 귀빈실을 이용해 특권(特權) 논란도 거셌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환영했던 인물이 여성과 피해자의 권리를 책임질 적임자인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를 지명한 것은 당장 진보층 지지율을 올려 보려는 이벤트성 인선(人選)이라고 본다.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낙선(落選)한 하정우 전 청와대 AI수석을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에 지명한 것은 또 무엇인가? 하정우의 잠시 실직도 안쓰러운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친노-친문)를 대통령 정무특보에 임명한 것은 친청계 껴안기,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비례대표)을 AI수석에 임명한 것은 친문을 향한 구애로만 보일 뿐이다. 이해민이 의원직을 내려놓을 경우 문재인 정부 법제처장 출신인 김형연 후보가 의원직을 승계(承繼)하니 말이다. 정치에 계산과 공학이 배제될 수는 없지만, 계산과 정치공학만으로는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다.
2026-09-01 05:00:00
[사설] '건강권' 명목 새벽배송 규제… 택배 기사들 생존권 위협
새벽배송 기사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겠다며 정치권이 추진 중인 규제 법안이 오히려 현장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야간작업 시간을 일일 최대 10시간, 주당 최대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연속 작업 3일 초과 금지 및 월 야간작업 횟수를 최대 12회로 틀어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근로자 보호' 취지라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오히려 획일적 입법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역설적(逆說的) 상황이다. 쿠팡 배송 기사 대리점 연합단체인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소속 택배 기사 3천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6%가 작업 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에 반대했다. 월 업무 일수를 12일로, 주당 작업 시간을 30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무려 98%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규제대로라면 한 달에 겨우 120시간, 주당 28시간 남짓만 일하라는 의미다. 저마다의 다양한 사정 속에서 일한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보고 야간 배송을 선택한 기사들에게 강제로 일거리를 뺏고 소득을 토막 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소득 감소 시 응답자의 절반(48.8%)은 다른 일을 병행하는 '투잡'을 뛰겠다고 했고, 절반 이상은 이직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67.5%는 야간 물량이 주간으로 집중돼 주간 기사들의 과로를 유발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와 자율적인 소득 활동을 과도하게 침해(侵害)하는 입법이다. 현장이 원하는 것은 실질적인 여건 개선이다. 주 5일 업무제 도입, 자유로운 휴무 보장, 정기적인 건강검진 지원 등 기본권을 보호하면서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은 충분히 존재한다. 당사자들이 압도적으로 반대하는 규제를 '선(善)'으로 포장해 강행하는 것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탁상행정일 뿐이다. 정치권은 '근로자 보호'라는 명분 뒤에 숨어 현장의 목소리를 묵살해서는 안 된다. 입법을 즉각 중단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에 나서라.
2026-09-01 05:00:00
[관풍루] 민주당, 31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조희대 대법원장 부친상으로 취소
○…민주당, 31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조희대 대법원장 부친상으로 취소. 전쟁 중에도 상대가 상을 당하면 예를 갖추는 게 동서양 막론한 도리인 만큼 적절한 대처. 대법관 임명 제청 사태 원만한 해결 위한 고인의 선물이길. ○…국회 예결위 출석한 안규백 국방부 장관, '영창 갔다 온 적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 중이어서 말씀드리기가 제한된다"고 답변. 갔으면 갔고, 안 갔으면 안 간 건데 뭐가 이렇게 어렵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용혜인 의원, 장관 임명 시 의원직 사퇴 거부 의사 밝혀. 법상 겸직은 가능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의 입각 시 사퇴는 관례인데, '관례' 깨면 난리 나는데….
2026-09-01 05:00:00
2026-08-31 18:53:52
[화요초대석-전병서] 정책 엇박자의 피해는 약한 자에게 먼저 간다
목욕탕에 두 종류의 손님이 있다. 한 명은 "물이 뜨겁다"며 온수 밸브를 잠그고, 다른 한 명은 "탕이 차갑다고"며 온수를 콸콸 튼다. 둘 다 진지하고, 둘 다 자기 논리가 있다. 결과는 온도도 수위도 제멋대로인 불쾌한 혼탕. 지금 한국 경제가 딱 이 꼴이다. 한국은행은 8월 27일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3.0%로 올렸다. 두 달 연속 '백투백 인상'으로 역대 처음이다. 소비자물가 3%대, 가계부채 2천조 원 돌파, 들썩이는 집값과 환율을 보면 중앙은행이 브레이크를 밟는 건 교과서적으로 맞다. 문제는 바로 그 순간 정부가 반대편에서 액셀을 밟는다는 것이다. 내년 예산은 사상 최대 800조 원+α, 두 자릿수 지출 증가율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대통령은 "재정 수치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라며 확장재정에 공개적으로 면죄부를 줬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동시에 밟는 차는 앞으로 가지 않는다. 타이어만 탈 뿐이다. 프리드먼은 경고했다. 통화정책이 실물에 효과를 미치기까지 평균 18개월의 시차가 있다고. 그 사이 800조 원이 풀리면 한은이 죄는 돈줄을 정부가 다시 열어젖히는 꼴이다. 결국 한은은 금리를 더 올려야 하고, 정부의 경기 부양 효과는 증발한다. 두 정책이 서로의 발목을 잡아 둘 다 효과를 잃는 정책 자충수다. 슈퍼 예산이 풀리면 국채 발행이 늘고 대출금리는 다시 뛴다. 정부가 살포한 돈이 금융 비용으로 돌아와 결국 서민 지갑을 털어 가는, 씁쓸하고 잔인한 아이러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한국은행의 KPI(핵심 성과 지표)는 물가 안정 하나다. 기재부의 KPI는 성장률·고용률·민생 지지도·대통령 공약이다. 두 기관이 같은 방향을 볼 구조적 이유가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선거 시계와 경제 시계의 불일치다. 재정 확대의 체감 효과는 즉각 나타난다. 청구서, 즉 물가 재상승과 금리 추가 인상과 국채금리 폭등은 1~2년 뒤에 날아든다. 지금의 달콤함을 취하고 고통의 청구서는 미래 세대에 넘기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재정정책의 가장 흔한 배신이다. 컨트롤 타워도 없다. 대통령실·기재부·한국은행이 각자의 논리로 각자의 정책을 집행한다. 한은 총재가 "재정이 미래 성장 투자에 쓰인다면 엇박자가 아닐 수 있다"고 한 발언은 조율의 결과가 아니라 사후 합리화에 가까웠다. 이쯤에서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이것이 몰라서 벌어지는 일인가, 알면서도 표를 위해 선택하는 일인가. 후자라면 그것은 하이에크의 언어를 빌리면 '치명적 오만'이다. 재정 숫자만으로 경기를 설계할 수 있다는 착각, 지금 뿌리는 돈이 지금 효과를 낸다는 착각, 그 착각이 쌓여 정책 실패가 된다. 정부의 반론도 있다. 800조 원이 R&D와 미래 산업에 투입된다면 성장잠재력을 높여 물가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틀린 논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전제가 맞으려면 얼마가 미래 투자이고 얼마가 현금 살포인지 먼저 밝혀야 한다. 정부의 재정 집행 관성을 보면, 낙관하기 어렵다. 피해는 언제나 약한 자에게 먼저, 가장 깊이 간다. 주담대금리는 이미 최고 7%대를 넘어섰고, 추가 인상 시 8%대 진입도 시간문제다. 예금자는 금리가 오를수록 이자 수익이 불어난다. '영끌족'과 다중채무 자영업자는 매달 늘어나는 이자 앞에 무너진다. 금리 상승은 이자 수익자와 이자 부담자를 갈라놓고, 그 갈라진 틈을 양극화라 부른다. 목욕탕에서 온수와 냉수를 동시에 트는 바보는 탕 하나를 망친다. 그러나 경제에서 이 실수를 저지르면 2천만 가계가 망가진다. 해법은 간단하다. 재정의 규모보다 용처를 먼저 공개하라. 투자냐 살포냐를 국민이 판단하게 하라. 통화·재정 정책 조율 회의를 제도화하라. 정책의 정합성은 선택이 아니라 서민의 생존 조건이다. 한은 총재가 던진 공은 한국은행이 아닌 정부 쪽 코트에 떨어져 있다. 재정이 미래를 향한 투자라면 역사가 정부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현금 살포와 표 구매에 쓰인다면, 그 청구서는 고스란히 서민의 이자 부담과 다음 세대의 국가부채로 돌아올 것이다.
2026-08-31 16:23:10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 대중을 통해 흐르던 오래된 이 노랫말은 우리 시대의 이면을 풍자한다. 세상은 빠르게 기회를 포착하고 이익을 취하는 이들의 속도에 맞춰 그들 편에 서 있다.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걸음에는 어느새 뒤처졌다는 씁쓸한 시선이 머문다.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지표를 향해 질주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세상의 빠른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못난 시선들'이 있다. 남들이 세상의 속도에 영리하게 앞서나갈 때, 제 방식을 고수하는 변방의 노포(老鋪) 같은 이들이다. 투박한 손으로 매일 새벽 반죽을 치대며 거친 시대의 밑바닥을 온몸으로 받쳐내는 서툰 삶의 주인공들. 때 묻지 않은 인간성의 본질은 이처럼 우직한 곳에 숨어 있다. 변해가는 세상의 가치 기준에 엮이지 못하는 이들의 꿈처럼, 어쩌면 우리 삶과 예술의 시선도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동화 백설공주의 왕비와 닮았다. 마치 왕비의 거울처럼 매일 스마트폰 화면 뒤로 자신의 불안을 소모하며 가상의 가치에 취해 살아간다. 지하철 광고판마다 일률적인 모습의 성형 후 얼굴 역시 이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외모가 경쟁이 되는 사회에서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치유였을 성형이 자본의 메커니즘 속에서 기묘하게 복제되며 미의 기준을 비틀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의 기술이 고유성을 살려내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얼굴의 표정은 박제돼 간다. 정작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마법의 거울이 말한 미(美)의 진실이다. 거울이 왕비 대신 백설공주의 손을 들어준 것은,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의 순수함'이 더 소중한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선조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선을 돌아보자. "터럭 하나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던 조선 초상화의 사실 정신이 그렇다. 우리 초상화는 '외모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 내면의 정신을 드러내는 창이자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임에도 선천적 사시(斜視)라는 결점을 숨기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담은 조선의 정승 채제공의 초상화를 보라. 이 당당함은 권력자의 특권일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변방의 치열한 삶을 사는 이들의 주름진 얼굴과 닮았다. 삶의 굴곡을 포장 없이 온전히 수용하는 이들에게서는 생긴 그대로의 정직한 존엄이 드러난다. 본래 얼굴이란 정신의 고유한 숨결인 '얼'이 드나드는 '굴'이다. 겉만 정교하게 빚어낸 얼굴이 마네킹처럼 서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외형적 집착 뒤에 숨은,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해묵은 결핍 같은 깊은 쓸쓸함이다. 우리 안의 상처와 신기루를 걷어내고, 자신만의 고유한 궤도를 지키려는 주체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줄 '못난 이들의 거울'이 더없이 절실하다.
2026-08-31 15:55:18
정부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재원 구조를 바꾸려 하고 있다.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일정한 내국세 총액의 20.79%와 교육세 일부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재원으로 정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현행 내국세 연동 방식 대신 전년도 교부금을 기준으로 최근 3년 평균 경상성장률과 학령인구 변화율 등을 반영해 교부금 규모를 산정하는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교육재정도 변화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학생 수 감소를 교부금 규모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교육은 학생 수만으로 비용을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 줄어도 학교 건물과 급식실, 냉난방시설은 그대로 유지해야 하고 교직원과 행정 인력도 필요하다. 통학과 돌봄, 급식, 특수 교육 등 기본적인 교육 서비스 역시 계속 제공해야 한다. 특히 경북은 상황이 다르다. 도시와 농어촌, 산간 지역이 공존하고 학교가 넓은 지역에 분산돼 있다. 학생 수가 감소해도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공간은 줄지 않는다. 오히려 소규모 학교를 유지하고 먼 거리를 통학시키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학교는 지역의 정주 기반이기도 하다. 작은 학교가 사라지면 통학 여건이 나빠지고 자녀를 둔 가정의 지역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학생이 줄어 학교가 약해지고, 학교가 약해져 사람이 떠나 다시 학생이 줄어드는 지방 소멸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학령인구 감소를 교부금 감소와 직접 연결하면 지방 소멸 위험이 큰 지역이 오히려 더 불리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저출생과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발전특구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교육재정 기반을 축소한다면 정책의 방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줄었기 때문에 교육 투자를 줄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줄고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한 명 한 명에게 더 책임 있게 투자해야 한다. 교육 수요도 달라지고 있다. AI·디지털 교육과 늘봄·돌봄, 특수 교육, 학교 안전, 다문화 학생 지원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학생 수만으로 교육재정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교육재정의 비효율은 개선해야 한다. 불필요한 사업과 반복되는 이월·불용을 줄이고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 효율화와 안정적인 재원 기반을 약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교육재정 개혁은 '축소'보다 '정교한 배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내국세 연동을 통한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유지하되 학생 수뿐 아니라 소규모 학교 비율, 학교 분산도, 통학 여건, 도서·산간 지역 등 지역 특성을 교부금 배분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경북의 어느 산골에 단 한 명의 아이가 남아 있더라도 그 아이의 교육권과 교육의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다. 학생이 줄었다는 이유로 국가의 책임까지 줄어서는 안 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은 교육청의 예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 살든 모든 아이가 동등한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다. 줄이는 것이 개혁은 아니다.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도록 바꾸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2026-08-31 15:09:38
[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고구려의 살수는 어디인가(1)
◆동아시아 전쟁사 상 가장 빛나는 승리 고구려의 살수 대첩 서양 전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쟁은 서기전 216년 이탈리아 칸나이 평원에서 한니발이 로마군을 포위 섬멸한 칸나이 전투를 들 수 있다고 본다. 동양 전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쟁은 어떤 전쟁을 꼽을 수 있을까. 중국 역사상에는 항우가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극단적인 퇴로 차단의 방법을 통해 5만의 군대로 진(秦)나라의 장감(章酣)이 이끄는 40만 대군과 싸워 이긴 거록(巨鹿) 전쟁, 조조가 2만의 군대로 원소(袁紹_)의 10만 대군을 격파한 관도(官渡) 전쟁, 동한 말년 손권, 유비가 연합군을 형성하여 장강의 적벽에서 화공(火攻)을 통해 5만의 군대로 조조의 20만 대군을 몰살시킨 그 유명한 적벽대전 등 수많은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동양 역사상 병력 동원의 규모 면에서 최대의 전쟁을 꼽는다면 수양제 양광이 발동한 고구려와의 전쟁을 들 수 있다. 중원을 통일한 수양제는 612년(고구려 영양왕 23년) 동북방의 강자 고구려를 복속시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호왈 200만, 실제는 30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친정(親征)에 나섰다. 『수서(隋書)』 양제본기는 그 당시 수군의 병력 규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총 113만3천800명으로 호왈 200만이라고 하였다. 거기에 보급부대는 그 배나 되었다. 계미일에 제1군이 출발하였는데 군사가 모두 출발하는 데만 무려 40일이나 걸렸다.(總一百一十三萬三千八百 號二百萬 其餽運者倍之 癸未第一軍發 終四十日 引師乃盡)" 이는 당시 수나라의 전투병력이 113만3천800명이고 후방의 보급부대까지 모두 합치면 300만 대군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군이 출발하는 데만 40일이 걸렸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동양 전쟁사 상 유례가 없는 대군의 동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살수(薩水)에서 고구려군에게 대패를 당한 것이다. 살수대첩이란 수양제의 제1차 고구려 침공 당시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이 수나라 별동대 즉 요즘으로 말하면 특전사 같은 부대를 살수에서 수장시켜 거둔 대승을 말한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가 평양성을 치기 위해 건너온 살수의 상류에 보를 쌓아 물길을 막고 강을 건너 퇴각하던 수나라 군대가 강의 중앙에 도달하자 막았던 보를 터뜨려 수공(水攻) 작전을 펼쳤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은 정사에는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한니발이나 제갈공명 못지않은 전략이 뛰어난 장수였다. 패전을 가장해 평양성 가까이 수나라 군대를 유인하였고, 저들이 꼬임에 빠진 것을 자각하고 퇴각하여 살수에 이르렀을 때 이미 매복해두었던 고구려 군대를 발동하여 맹공을 퍼부어 수나라 별동대는 이로 인해 거의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이때 수나라의 특수부대 병력은 30만5천명이었는데 살아서 돌아간 군인은 겨우 2천700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그 참상은 가히 짐작이 간다. 살수대첩에 참여한 고구려 군인의 정확한 숫자가 얼마인지는 고대 문헌에 밝혀져 있지 않은데 현대 중국의 역사학계는 약 1만여 명이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최치원이 당나라 태사 시중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구려 백제가 전성기에 "강력한 군대가 100만이었다.(强兵百萬)"라고 말한 것을 본다면 적어도 몇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살수대첩은 최소의 군대로 최대의 적군과 맞서 싸워 이긴 동아시아 전쟁사 상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 역사상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고구려 살수의 위치 한양조선의 충무공 이순신은 1597년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에서 배 13척으로 왜적선 133척을 물리치는 장거를 이룩했다. 그래서 우리는 충무공의 동상을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 민족의 표상으로 추앙한다. 그러나 중국의 300만 수나라 대군을 상대로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고구려, 그 승리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살수대첩은 한국의 전쟁사를 넘어 세계전쟁사에 빛나는 위대한 승리이다. 강대한 고구려제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살수대첩은 우리 한민족의 자랑으로서 두고두고 칭송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사의 가장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살수대첩은 오늘날까지 그 정확한 전투 위치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아래에서 먼저 살수의 위치에 대한 한, 중 역사학계의 지금까지 관점을 살펴보고 이어서 필자의 견해를 『사고전서(四庫全書)』 사료를 바탕으로 제시함으로써 한국사 최대 미스터리 살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한다. ◆살수에 대한 중국 역사학계의 입장 중국의 현대 역사학계는 고구려의 살수를 북한의 청천강으로 본다. 웅무일(熊武一), 주가법(周家法)이 편찬한 『군사대사해(軍事大辭海)』(장성출판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612년 6월 수양제는 우문술을 파견하여 여러 장수와 30만 대군을 이끌고 요수(遼水)를 건너가 압록강 서쪽에 집결한 다음 수군(水軍)과 함께 합세하여 고구려의 평양성을 협공하도록 하였다. 압록강 서쪽에 이르렀을 때 고구려에서 대신 을지문덕을 보내 거짓으로 항복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가 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들을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 싸우면 번번이 패배하여 달아났다. 따라서 우문술 등은 하루에 일곱 번을 싸워 다 이겼다. 그러나 수나라의 병졸들은 지쳐있었고 평양성은 험고하여 공격해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을지문덕의 항복을 받아들여 퇴각하게 되었다. 7월 24일 살수를 건너는데 수나라 군대가 절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후미를 공격했고 여기서 수군은 궤멸을 당하였다." 이는 압록강을 수나라와 고구려의 국경선, 살수를 평양성과 압록강 사이에 있는 청천강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 역사학계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살수에 대한 한국 반도사학의 주장 한국 반도사학의 살수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면 이병도는 『한국사-고대편-』(을유문화사) 『한국고대사연구』(박영사) 등에서 모두 "살수(청천강)" 즉 고구려의 살수는 북한의 청천강이라고 주장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양왕조를 번역할 때는 "패수는 지금의 대동강이고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이다"라고 주석하였다. 이기백과 이기동 역시 고구려의 살수를 지금의 청천강으로 인정하였다. 예컨대 『한국사강좌1』(일조각) 고대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구려가 수양제의 대규모 침략군을 살수(청천강) 전투에서 격멸하여 이를 격퇴시켰다." 이병도, 이기백, 이기동은 한국의 반도사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이 광복 후 제도권 사학을 주도하였으므로 한국의 중,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살수는 청천강이라는 반도사학의 견해를 따라 그대로 기술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살수에 대한 한국 민족사학의 주장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 제9편에서 「살수전(薩水戰)」이란 제목으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을 비교적 상세히 다루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을지문덕은 이때 이미 대동강 싸움에서의 승전보를 들었고 또 우문술 등 수군에 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미 필승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수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하루 동안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패하니 우문술 등은 크게 기뻐하면서 '고구려사람들은 하잘 것이 없구나'하며 내리 길게 몰아쳐 와서 살수(청천강)를 건너 평양에 이르렀다." 위의 기록에서 민족사학자 단재는 반도사학과 동일하게 패수를 대동강, 살수를 청천강으로 인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민족사학자 위당 정인보의 견해는 어떠했는가. 위당의 『조선사연구, 상』(연세대학교출판부)을 살펴보면 살수에 대한 언급이 여러 군데서 보이는데 살수의 위치에 대하여 "살수는 지금 안주(安州) 청천강이다"라고 말하였다. 민족사학을 대표하는 단재 신채호와 위당 정인보가 모두 살수를 지금의 북한 청천강으로 인식하여 반도사학과 큰 차이가 없음을 볼 수 있다. 민족사학을 계승한 윤내현은 『한국고대사신론』(일지사)에서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이다"라고 말하여 역시 반도사학과 동일한 견해를 나타냈다. 반도사학과 각을 세우며 민족사학의 입장을 따르고 있는 이덕일 또한 2003년 발행한 『살아있는 한국사1』(휴머니스트)에서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사를 한반도 안으로 끌어들였다"라고 말하고 이어서 "살수는 청천강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하였다. 다만 이덕일은 최근 『대한민국역사교과서』(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라는 이름으로 펴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살수의 위치를 지금의 청천강이라고 보지만 수군이 살수를 남쪽으로 건넜던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 건넜다는 점에서 동서로 흐르는 청천강이 아니라 남북으로 흐르는 대륙의 강에서 찾아야 한다. 북한학계는 요동반도에서 바다로 흐르는 대양하(大洋河)의 지류인 소자하(哨子河·초자하)로 보고 있는데, 이보다 더 서쪽의 강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학계는 『조선전사 3』(과학백과사전출판사) 중세편 고구려사 조항에서 "적장 우문술이 살수를 건널 때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넜던 만큼 살수는 평양 서쪽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이었다. 살수는 대양하의 큰 지류 소자하로 볼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덕일은 북한 학계의 주장을 받아들여 기존에 청천강을 살수로 추정했던 견해를 수정하였다. 그러나 북한학계는 살수를 소자하로 추정한데 반하여 이덕일은 "이보다 더 서쪽의 강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하고 살수가 구체적으로 지금의 어느 강인지 그 위치를 단정하진 못했다. 이는 살수가 북한의 청천강이나 요녕성의 소자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떤 강이 살수인지 꼭 집어서 말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해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중국의 역사학계와 한국의 반도사학은 고구려의 살수를 북한의 청천강으로 보는 견해가 확고하다. 한국의 민족사학 또한 반도사학과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북한학계에서는 살수는 평양 서쪽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 청천강 살수설을 반대하고 요녕성 대양하의 지류인 소자하 살수설을 제기했다. 한국의 이덕일은 청천강 살수설에 반론을 제기하되 아직까지 자료의 뒷받침을 통해서 반도사학의 주장을 뒤집을 만한 확고한 자기 관점은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2026-08-31 14:30:00
[사설] 국정 기조 변화 없는 개각, 민심 못 돌이킨다
이재명 대통령이 2기 내각 구성을 위한 중폭 개각(改閣)을 했다. 최근 국정 지지율 하락세를 돌파하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인사로 보인다. 경제·국방·법무 등 핵심 부처의 수장을 바꾸고 범여권 인사까지 기용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국민이 요구하는 국정 기조의 변화와 쇄신을 담은 개각인지 의문이 든다. 경제 정책 변화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로 이형일 현 재정경제부 1차관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홍지선 현 국토부 2차관을 지명했다. 이는 '경제·부동산 정책 불변(不變)'이란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다. 경제와 집값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면 정책을 성찰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이번 인사는 정책의 변화보다 책임의 연속성(連續性)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ETF 사태'의 책임론이 제기됐던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유임됐다.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책 조정의 핵심 참모를 그대로 두면 쇄신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법무부 장관 인사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 대장동 사건 변호인 출신으로 알려진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공정성과 국민 신뢰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김 후보자는 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公訴) 취소를 주장해 온 이른바 '공소 취소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야당이 "결국 본인 재판 취소에 총대를 멜 법무부 장관을 낙점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정 기조의 쇄신이다. 국민은 집값 등 경제 문제와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책임 있는 변화, 권력의 사적이해(私的利害)와 거리를 둔 공정한 인사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핵심 경제 참모를 유임하고, 주요 경제 부처에는 기존 차관을 승진시켰다. 법무부 장관에는 대통령 재판과 관련해 논란이 될 수 있는 인사를 낙점했다. 개각은 민심에 호응하는 정치적 메시지여야 한다. 국민이 이번 개각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까.
2026-08-31 05:00:00
[사설] 43조 청년 예산, 현금성 지원보다 '양질의 일자리'가 우선
정부가 지난 28일 내년 청년 예산을 올해보다 54% 대폭 늘린 43조3천억원으로 편성하고 전방위(全方位) 지원책을 담은 '청년 성장단계별 종합투자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생애주기 전체를 아우르는 이번 정책은 0세부터 34세까지 장학금과 공공임대·월세 지원, 자산 형성 적금은 물론 혼인과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까지 단계별로 최대 2억원을 지원하는 혜택이 담겼다. 취업 지연이 결혼과 출산, 자산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한 듯 보이지만, 이번 대책 역시 과도한 현금성 지원과 일회성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정부가 제시한 혜택의 70% 이상이 18세 이전의 아동·출산 관련 현금성 지원에 집중됐고, 기업 채용장려금 확대를 비롯한 일자리 보조금 정책 또한 지원이 끊기면 사라지는 단기 처방에 그칠 위험이 크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청년 일자리 대책의 질적(質的) 한계다. 지난달 구직 활동을 그만두고 그냥 쉬는 '쉬었음' 청년이 65만 명에 달하고, 청년 인구 감소 속에서도 실업자 수는 10년 전보다 24만 명이나 늘었다. 미취업 청년 5명 중 1명은 3년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장기 '니트(NEET)' 상태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3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중 3분의 2가 세금 체납 관리 같은 한시적 공공 일자리와 창업 육성에 편중돼 있다. 최근 4년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대다수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된 만큼, AI 시대에 발맞춘 신산업 교육과 채용 연계형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집중해야 마땅하다. 자립의 출발점은 결국 양질의 일자리다. 기업 투자와 신산업 성장을 촉진해 민간 채용 수요부터 키워야 한다. 규제 혁파(革罷)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기업이 투자에 나서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정부는 퍼주기식 현금 지원이라는 착시(錯視)에서 벗어나 민간 중심의 고용 생태계를 통해 튼튼한 '자립 사다리'를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2026-08-31 05:00:00
[사설] '관행 무시' 비판하더니 전례 없는 '재제청'은 뭔가
대법관 임명 제청 사태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을 받아들여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는 관행을 깨고 '재제청'을 요청하면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관례를 지키지 않고 서면 제청했다며 질책하더니 진짜 지켜져야 할 절차적 관행을 깨버린 것이다. 1987년 현행 헌법 체제가 출범한 이래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거부하고 반려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이 사전 협의 관행을 저버려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렇다고 쳐도 무게가 다르다. 대법원장이 어긴 게 '지켜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정치적 관행'이라면, 청와대가 어긴 것은 '절차적 관례'다. 재제청을 단순히 다시 임명 제청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헌법, 법원조직법 어디에도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권'이나 거부당한 대법원장이 밟아야 할 '재제청 절차'에 대한 규정이 없다.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를 처음부터 다시 열어야 하는지, 기존 추천 후보군 중에서 재선정을 해야 하는지 법적 가이드라인이 모호하다. 게다가 대법원장의 제청권뿐 아니라 국회의 임명동의권까지 침해한 것이라는 반발도 크다. 위헌(違憲) 논란과 야권의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청구 움직임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을 두고 '전례 없는 일'이라는 여권의 사퇴와 탄핵 압박이 거셌다. 그런데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을 거부하는 진짜 전례 없는 조치가 취해졌는데도 여권은 조용하다. 관례도 누가 어기느냐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권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규정도 없는 재제청을 강행하며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충돌하는 사이 그 피해는 대법관 장기 공석(空席)에 따른 재판 지연 등 국민에게 돌아간다.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의 대원칙을 흔들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초헌법적 재제청 요구를 거두고, 사법부 독립과 헌법 정신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2026-08-31 05:00:00
[관풍루] 지지율 하락세, 반전 기미 없이 30%대로 떨어지자 고심 깊어가는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 반전 기미 없이 30%대로 떨어지자 고심 깊어가는 민주당. 부동산 세제, 주식 침체, 경찰 부실수사, 조희대 때리기에 내부 갈등까지 뻔한 원인 두고 슈퍼 예산으로 민심 회복 기대한다니 국민들 한숨만.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출국하려던 구윤철 장관, 인천공항서 교체 소식 듣고 출장 취소했다가 참석으로 번복. 결국 주요국 인사들 만나 작별 인사 나누는 출장 되겠군. ○…월 468만원 소득자도 받는 노인 기초연금 전면 개편하려는 정부, 사전 설명회 1시간 전 돌연 취소. 수급 대상 축소와 노인 표심 두고 막판 조율하나 본데, 장고(長考) 끝 악수(惡手) 나올라.
2026-08-31 05:00:00
2026-08-30 18:45:29
출시 3일 만에 5만 개, 약 1억5천만 원의 매출. GS25 전체 빵 상품 가운데 매출 1·2위 차지. 2030 세대의 포켓몬 빵이 되어버린 민음사 빵이 인기다.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을 찾아다니고, 앱으로 재고를 확인하고, 입고 시간을 물어보고, 원하는 책갈피가 나올 때까지 빵을 뜯는다. 빵을 사는 일이 어느새 수집의 과정이 돼버렸다. 그렇다. 우리가 찾는 건 빵이 아니다. 기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과 시집을 모티브로 만든 20개의 책갈피를 원할 뿐이다. SNS에는 20개를 다 모았다는 사람부터 자신에게 없는 책갈피나 원하는 책갈피를 교환하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 역시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 빵을 구매했지만 아쉽게도 내가 원하던 책갈피는 나오지 않았다. 무려 3개나 샀음에도 말이다. 정작 다른 사람이 내가 원했던 책갈피를 뽑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부러워 죽겠다. 직접 겪어 보니 알겠다. 사람들은 책갈피가 아니라 취향을 모으고 있는 거란 걸. 어렸을 적 포켓몬 빵을 먹고 스티커를 모으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는 피카츄나 메타몽을 모았고, 지금은 '동물농장'이나 '레미제라블'을 모은다. 달라진 것은 캐릭터 스티커가 아닌 책갈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독서를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소비하는 현상을 '텍스트 힙'이라고 한다. 어쩌면 지금의 민음사 책갈피는 이 신조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이 아닐까. 책갈피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책을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과 같은 책갈피 혹은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것을 원한다. 목적이 읽기 위함이 아니라 소유하기 위해서라는 게 확연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지 않는다.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고, 가지고 있으면 기분 좋은 것들을 산다. 지금은 책갈피가 인기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운동화나 시계, 피규어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좋아하는 가수의 CD나 여행지나 공연을 보고 산 마그넷처럼 말이다. 수집이란 물건을 모으기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민음사 빵 대란을 두고 독서 열풍이라고 하기엔 조금 과장일 것이다. 얘기했듯 빵을 먹는다고 책을 읽은 게 아니고, 책갈피를 모은다고 독서를 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괜찮다. 책을 좋아하는 방법이 하나일 이유는 없지 않은가.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모은 책갈피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 책을 읽고 싶어질지 모른다. 콜렉터의 다음 수집품은 책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2026-08-30 09: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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