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퇴근길, 차 안에서 가끔 라디오를 켠다. 밤공기가 유난히 고요한 날이면 더욱 그렇다. '별이 빛나는 밤에', 오래전부터 익숙한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어린 시절 라디오는 늘 누나들의 몫이었고, 숙제할 때 흘러나오던 이종환의 목소리와 이문세의 음악은 자연스레 그 밤의 배경이 되곤 했다. 진행자가 바뀌어도 프로그램의 제목은 그대로다. 느리고 단정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들려오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말에는 여전히 한 시대의 낭만이 남아 있다. 오늘날 라디오는 더 이상 시대의 중심에 있는 매체는 아니다. 원하는 음악과 이야기는 스마트폰으로 즉시 골라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라디오는 밤을 차분하게 만든다. 빠르지 않고 설명이 과하지 않아, 생각이 머무를 자리가 생긴다. 밤이라는 시간에 아직 어울리는 매체가 남아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연 '별이 빛나는 밤'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요즘 밤하늘에서 별을 본 기억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도시의 인공조명과 미세먼지, 흐린 대기 속에서 별은 이제 쉽게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천문대 자료를 보더라도 맑은 밤하늘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밤하늘은 그대로지만, 별은 어느새 우리 일상에서 멀어져 있다. 별이 사라진 자리를 불빛이 대신 채웠다. 밤은 훨씬 밝아졌지만, 하늘은 오히려 비어 보인다. 한때 일상적이던 별과 반딧불은 이제 일부러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다. 환경의 변화는 풍경을 바꾸고, 풍경의 변화는 우리의 감각과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밤하늘을 보는 습관이 사라지면서 별자리를 이야기하던 문화 역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라디오는 여전히 '별이 빛나는 밤'을 말한다. 이제 이 표현은 사실의 묘사가 아니라 바람에 가깝다. 별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에도 이 제목은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다. 사라졌기에 더 선명해진 이름이기도 하다. 라디오는 보이지 않는 별을 대신해 이야기를 띄운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느림과 여백, 상상력 같은 것들이다. 별을 보며 듣던 라디오는 이제 별을 그리워하며 듣는 매체가 되었고, 그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설명한다. '별이 빛나는 밤'은 이제 환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희망에 가깝다. 언젠가 다시 밤하늘을 보았을 때, 진정 별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바람이 아직 남아 있기에 이 프로그램의 이름도, 라디오라는 매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2026-01-13 10:52:34
[사설] 한동훈-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공방, 한심하고 한가롭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이른바 '당원 게시판 사태(당게 사태)'와 관련해 이호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장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개인정보보호법 및 국민의힘에 대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했다. 한 전 대표 측은 "다른 사람이 작성한 글들을 한동훈 전 대표 또는 가족이 작성한 것처럼 조작(造作)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는 입장이다. 당원 게시판은 당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올리는 공간이다. 당원들이 갖가지 '소음(騷音)'을 쏟아내는 공간이자, 지도부가 '소음'을 듣기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소음은 터무니없는 비방인 경우도 있지만, '작은 고장'을 알리는 경고(警告)가 되기도 한다. 적절하게 대응하면 '큰 고장'을 예방하는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애초 '당게 사태'가 논란이 됐을 때 한 전 대표는 "부적절했다"고 사과하고 매듭지었어야 했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윤리적 책임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였다. '심한 비판'을 거울삼아 정부·여당을 쇄신하고 단결하는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당게 사태'가 당시 정부·여당의 쇄신과 단결 기회가 되기는커녕 갈등(葛藤)을 증폭시키는 문제로 비화했다는 것은 국민의힘과 한 전 대표의 '한계'라고 본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부분은 한 전 대표가 이 문제를 정치 언어가 아니라 법적 논리로 돌파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치 리더라면 어려움에 처한 당이 더 이상 갈등과 분란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비판과 오해는 물론이고 때로는 억울함도 흡수(吸收)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법적으로 "누가 옳고 그르냐"로 따지려고 한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직후 국민의힘 내부에서 당 대표직 사퇴 요구가 쏟아졌을 때 한 전 대표는 "내가 비상계엄 했습니까?" "내가 탄핵 투표 했습니까?"라는 취지(趣旨)로 반문(反問)한 바 있다. 당무감사위원장을 고소한 것은 2024년 12월 대응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2026-01-13 05:00:00
[사설] 북한 무인기 침투 주장, 우리가 호들갑 떨 일인가
북한(北韓)에서 한국 무인기(無人機) 침투를 주장하면서 연초(年初)부터 남북 관계가 살얼음판이다. 이에 정부는 12일, 30여 명 규모의 '군경 합동조사 태스크포스(TF)'를 긴급 구성하고 진상규명(眞相糾明)에 착수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수사 지시 이틀 만의 일이다. 앞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작년 9월과 올 1월 4일 한국이 침투시킨 무인기를 격추(擊墜)했다"면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광태(狂態)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아울러 자신들도 무인기를 대량 투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는 이날 곧장 "우리 군에서 운용하는 기종이 아니다. 북한이 주장한 날짜에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는 동시에 이 대통령의 지시로 민간 영역까지 대상으로 '철저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북한도 상황을 일단 주시(注視)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11일 담화(談話)에서 "한국 군부가 자기들의 행위가 아니라고 밝힌 점은 그나마 연명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며 "우리 국경을 침범(侵犯)한 무인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조사 결과를 우선 지켜본 뒤에 대응 수위(水位)를 정하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당장 군사 충돌 위기는 모면했지만, 북한이 뒤늦게 무인기 침투 사실을 공개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미심쩍다. 전문가들은 군경 합동 조사 결과와 후속 설명이 향후 북한의 태도를 결정하는 분기점(分岐點)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칫하다간 북한의 추가 압박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민간 단체가 무인기를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면 우리 안보에도 치명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규명은 필수적이다. 다만 대통령까지 나서 "평화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로 규정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우리 국민이 바라는 것은 보다 신중하면서도 당당한 정부의 접근일 것이다.
2026-01-13 05:00:00
[사설] 가계부채 역대 최고, 대출 규제만으로는 해결 어려워
가계빚 부담이 심각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잔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9천721만원으로 역대 최고였다. 40대는 1억1천467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이하와 50대 모두 최대치를 경신했다. 대출자는 크게 늘지 않았지만, 전체 대출 잔액은 6분기 연속 증가해 가계부채의 양적(量的) 확대가 두드러졌다. 가계부채는 GDP 대비 90%대로 매우 높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가 민간 소비와 경제 성장에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시건전성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가계부채 증가와 경제 구조 취약성을 거론하며, 중장기적으로 부채 리스크가 큰 부담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가계부채는 단지 규모뿐 아니라 대출 상환 능력, 소득 여건, 고용 상황과 결합될 때 심각한 취약성을 드러낸다. 정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새출발기금'과 장기 연체자 지원을 위한 '새도약기금' 등 채무 조정·탕감(蕩減)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이들은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감사원 감사에서 새출발기금은 변제 능력이 충분한 차주에게도 원금 감면이 적용된 사례가 확인됐다. 새도약기금도 심사 체계 한계로 도박·투기성 채무를 가려내지 못하는 문제가 드러났다. 정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강화와 대출 총량 관리 등 규제 수단도 가동했다. 그러나 가계부채를 금융 규제의 문제로만 다루는 접근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런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만 벌고 있을 뿐이다. 대출은 조였지만 상환 능력은 회복되지 않았고, 부채 위험은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민간에서 공공으로 옮겨가고 있다. 소득 정체와 고용 불안, 자영업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는데 규제만 강화하면 가계에 '버티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코스피 '불장'에 '빚투' 규모도 사상 최대다. 주식 대박에 기댄 아슬아슬한 빚잔치는 결코 영원할 수 없다. 당장의 자산시장 호황이 부채의 균열을 가려주는 동안 근본적 처방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까 두렵다.
2026-01-13 05:00:00
[관풍루] 檢개혁추진단, 공소청 수장 명칭을 '검찰총장' 그대로 유지하기로.
○…檢개혁추진단, 공소청 수장 명칭을 '검찰총장' 그대로 유지하기로. 검찰(檢察)의 사전적 의미는 '범죄를 수사하고 그 증거를 모으는 일'인데, 검찰 없는 검찰총장의 출현이라서 상당히 기괴한 느낌. ○…대구지법 김미경 부장판사, 비뇨기과에서 간호조무사에게 "내보다 뚱뚱한 것이"라며 소란을 피운 60대 여성에게 벌금 150만원 선고. 올해 살 빼야 하는 이유 하나 더 추가. ○…중국에서 1인 가구 생사 확인을 위한 스마트폰 앱 '죽었니'가 인기 폭발이라고 홍콩 성도일보 보도. '살아있니'로 명칭 변경을 고려 중이라는데, 잘 사는 것이 인간 모두의 바람.
2026-01-13 05:00:00
[날씨] 1월 13일(화) "대체로 맑겠고 지역에 따라 한때 눈 비"
2026-01-12 18:53:42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하늘을 나는 돼지
오늘날 돼지는 길상과 흉조를 함께 상징하는 동물이다. '돼지같이 먹는다'라거나 '돼지 같은 욕심'이라는 말에서 흉조의 의미가 드러나며, 지저분한 모습을 빗대어 '돼지우리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돼지 돈(豚)자'에 복(福)이란 뜻도 있는 것처럼 돼지는 복과 행운을 가져오는 동물로도 여겨진다. 그래서 돼지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고대 우리 동이족들은 돼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시신을 매장할 때 돼지를 껴묻거리로 함께 묻는 풍습에서 동이족이 돼지를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껴묻거리 돼지 뼈는 내몽골 오한기(敖漢旗)지역의 동이족 유적인 흥륭와(興隆洼, 서기전 6200~서기전 5200)문화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고조선 선조들의 집 안 무덤과 돼지의 비밀흥륭와 문화에서는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가 많이 발견되었으며, 약 400~600명이 함께 생활한 가장 이른 시기의 대형 취락지구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흥륭와 사람들은 집 안에 시신을 매장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또 껴묻거리로 돼지를 함께 묻기도 했다. 이는 흥륭와 사람들이 돼지를 길들여 가축으로 사용했음을 알려 준다. 집 안에 시신을 묻는 것은 조상들이 후손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삶과 죽음이 서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음을 뜻한다. 특히 시신과 함께 돼지를 묻었다는 점에서, 돼지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사후 세계와 관련된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동이족 문화에서 돼지가 매우 중요한 상징적 동물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흥륭와문화에서 시작된 돼지껴묻기 풍습은 이후에도 오래 동안 이어졌다. 이 전통은 고조선 유적인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层文化, 서기전 2000~서기전 1500)에 이르기까지 계속 확인된다. 한편 우리나라 통영 욕지도에서는 약 6000년 전의 돼지 토우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홍산문화의 옥저룡(玉猪龍)은 돼지의 귀와 코를 가진 용의 모습이어서 용의 기원이 돼지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돼지는 동이족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돼지를 중시하는 동이족의 인식은 중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까. 이제 시선을 중원 지역으로 옮겨 그곳 사람들이 돼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자. ◆중원으로 이어지는 돼지의 상징하북성 한단(邯鄲)시에서 1972년 발견된 자산문화(磁山文化)에서도 돼지를 껴묻는 풍속이 확인되는데 이는 서기전 약 5900년 무렵의 일이다. 또 황하 유역 중·상류에 속한 섬서성 서안시 임동(临潼)에 위치한 강채유지(姜寨遗址)는 약 5천~6천 년 전의 유적으로 앙소문화(仰韶文化, 기원전 5000~3000년) 초기 단계에 속한다. 강채유지에서는 '돼지 얼굴무늬 작은 입 채도 병'이 출토되었는데, 돼지 눈과 얼굴 그리고 특유의 코가 검은색으로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유물은 당시 사람들이 돼지를 매우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긴 존재, 즉 토템을 일상에서 쓰는 그릇에 새겨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돼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관련된 존재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돼지를 숭배했다고?"하고 의아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돼지 그 자체를 숭배했다기보다 돼지가 지닌 의미와 상징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은 생각이나 신적인 존재를 돼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런 돼지 형상은 당시 사람들의 공동체 정체성과도 깊이 이어져 있다. ◆전욱의 아버지는 왜 돼지일까?돼지를 신앙적 존재로 인식한 흔적은 고고학 유물뿐 아니라 신화와 문헌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이족의 인문·지리서이자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이다. 『산해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유사(流沙)의 동쪽, 흑수(黑水)의 서쪽에 조운국(朝雲國)과 사국(司國)이 있다. 황제(黃帝)의 아내 뇌조(雷祖)가 창의(昌意)를 낳았는데 창의는 약수(若水)에 내려와 살며 한류(韓流)를 낳았다. 한류는 길쭉한 머리에 근이(謹耳), 사람의 얼굴에 돼지 주둥이, 비늘 돋힌 몸에 통뼈로 된 (굵은) 다리, 돼지의 발을 하고 있는데 촉산씨의 자손인 아녀(阿女)를 아내로 맞아 전욱(顓頊)임금을 낳았다."( 『산해경』 「해내경(海內經)」) 이 글에서 주목할 점은 『산해경』에서 동이족인 전욱의 아버지 한류가 돼지의 형상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왜 하필 돼지였을까? 이에 대한 단서는 한(漢)나라 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 주석을 달은 『춘추설제사(春秋說題辭)』에서 찾을 수 있다. 『춘추설제사』에는 "북두칠성의 정기가 흩어져 돼지가 되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당나라 때 현종의 치세와 궁정 생활을 잡록 형식으로 쓴 역사·일화집 『명황잡록(明皇雜錄)』에서도 돼지를 북두칠성에 비유하고 있다. 서진(西晉)시대 역사가인 황보밀(皇甫謐, 215~282)이 쓴 『제왕세기(帝王世紀)』 에는 북두칠성의 일곱째 별빛이 여추를 감응시켜서 임신한 결과 전욱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전욱의 아버지는 북두칠성이라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북두칠성의 신비한 힘, 별의 정기를 돼지로 상징했을 정도로 돼지를 높였다. 그래서 전욱의 아버지인 한류를 돼지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러 시대의 문헌이 공통적으로 북두칠성과 돼지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인식이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대만의 생각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유된 상징 체계였음을 보여준다. 또 신화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존재를 동물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한류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창의의 아들이자 전욱의 아버지로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 즉 교신자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돼지 이제 시야를 황하의 중·하류에 자리한 대문구문화(大汶口, 서기전 4300~서기전 2600)로 옮겨 보자. 대문구문화는 중국에서도 인정한 동이족 문화이다. 대문구문화에서는 '돼지 모양의 규(猪鬹)'가 발견되었다. 이 돼지 규(鬹)는 붉은 몸체를 하고 있고, 등에는 아치형의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손잡이 뒤쪽에는 술이나 물을 붓는 구멍이 있다. 내용물은 돼지가 벌린 입을 통해 흘러나오도록 만들어졌다. 돼지 규는 입을 벌리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무엇인가를 하늘에 호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모습으로 볼 때, 돼지 규는 일상용 그릇이 아니라 하늘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예기(禮器)였을 것이다. ◆태양조의 날개는 왜 돼지일까이제 장강 중하류로 이동하자. 안휘성(安徽省)에 위치한 능가탄(凌家滩) 유적지에서는 옥으로 만든 새 장식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의 몸통에는 태양이 새겨져 있고, 활짝 편 양쪽 날개는 돼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새는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조이다. 한편 『산해경(山海經)』 「해외남경(海外南經)」에는 "병봉(幷封)이 무함(巫咸)의 동쪽에 있는데, 그 생김새가 돼지 같으며 앞뒤로 다 머리가 있고 검다"고 표현했다. 이 병봉의 모습은 태양조의 양 날개가 돼지로 표현된 것처럼 앞뒤에 모두 돼지가 있어서 몸통이 이어진 형상과 닮아 있다. 즉 병봉은 태양조의 날개를 표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태양조의 날개는 돼지일까? 여러 책에서 북두칠성의 정기(精氣)가 돼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고대 동이족에게 북두는 생명의 근원이었고,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북두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이런 인식 속에서 돼지는 죽음이나 끝을 뜻하는 동물이 아니라, 영혼을 하늘로 되돌려 보내는 생명의 매개체였다. 태양조의 양 날개가 돼지로 표현된 것은, 이 새가 죽은 이의 영혼을 북두로 인도한다는 믿음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동이족은 일찍이 돼지를 껴묻거리로 사용했고, 돼지 토우를 만들어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했다. 장강 하류의 하모도(河姆渡, 서기전 5000~서기전 3000)에서 발견되는 토기에는 배 속에 태양을 품은 돼지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 역시 하늘의 신성과 연결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돼지는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동이족은 그 풍요의 근원이 바로 북두에 있다고 믿고 그 힘을 돼지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했다. 이렇게 볼 때, 돼지는 동이족의 세계관에서 하늘·생명·영혼·풍요를 잇는 핵심적인 상징 동물이었다. ◆『삼국사기』에 남은 돼지 신앙내몽골, 한반도, 하북성, 황하의 중·상류, 산동반도, 양자강 중·하류 지역에서는 돼지를 함께 매장하거나 돼지 토우를 만들어 묻는 공통된 풍습이 널리 나타난다. 이러한 행위는 동이족이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물음의 답이자,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돼지를 껴묻고, 돼지를 형상화하며, 돼지를 우주 질서와 연결해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단순한 생활 풍습이 아니라, 동이족의 세계관과 사후관을 담은 신앙 체계였다. 그러한 신성 인식에서 동이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돼지를 신성하게 여긴 의식은 시간이 흘러도 그 흔적이 남아 우리 역사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유리왕 때의 일화가 전한다.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제사에 사용할 교시(郊豕:제사에 사용하는 돼지)가 달아나자, 탁리(託利)와 사비(斯卑)가 돼지를 붙잡으며 다리의 힘줄을 끊었다. 유리왕은 "하늘에 제사지낼 희생에 어찌 상처를 입혀야 하겠느냐?"라고 꾸짖으며 두 사람을 처형했다. 이는 돼지가 하늘에 대한 제사에 제물로 사용되는 신성한 희생물로 여겨졌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유리왕 21년에 교시가 달아나자 설지(薛支)를 보내 그 뒤를 쫓게 했는데, 설지는 국내성 위나암에서 돼지를 붙잡아 민가에 맡겨 기르게 한 뒤 돌아와서 그 곳의 지형과 자원이 풍부하다며 천도를 건의했다. 이 일화는 돼지가 단순한 제물이 아니라, 국가의 도읍을 정하는 데까지 관여하는 신성한 힘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돼지에 대한 신성 인식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내는 납일에 납향(臘享)의 제물로 돼지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돼지는 우리 동이족이 제천의식을 행할 때 바친 가장 신성한 희생물 가운데 하나였으며, 하늘·생명·공동체를 잇는 상징적 존재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오늘날 돼지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배경은 주로 서구의 오래된 역사와 종교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히브리 전통에서 돼지는 불결한 동물로 규정했고 이후 무슬림 사회의 『코란』에서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돼지를 신성시한 것이 아니라 기피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인식이 근대에 들어 우리 사회로 전해지면서, 돼지는 점차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동물로 인식되게 되었다.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비록 돼지해는 아니지만, 한때 우리 동이족이 신성하게 여겼던 돼지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본다. 풍요와 생명, 번성을 상징했던 그 의미를 되새기며, 새해에는 넉넉함과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돼지꿈을 대신해 본다.
2026-01-12 14:00:00
〈압화〉 여수 동백숲 휜 길을 지나온 늑골 안에는 파도치는 바다가 살고 있었다 동백꽃 송이째 따서 꽃잎에 이른 이랑을 헤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한 잎 두 잎 되살아나는 책갈피 속 소금기 밴 기억의 무게에 짓눌린 나날들 물기 증발한 그리움으로 설레다가 속절없고 그립다가 덧없는 동백의 빛깔을 바다는 헤고 있을까 오랜 세월 짓눌려야만 아름다운 무늬로 되살아 남은 책갈피 넘기는 흰 손은 알고 있을까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폭설이 퍼부어 대는 지금 동백 숲 건너온 바람을 저며 차린 저녁 밥상 앞에 그대 목소리 지운다 이제 야위어진 가슴에 일렁이는 홍잣빛 동백 꽃잎 아닌 나는, 〈시작 노트〉 눈 내리는 날 야생 동백꽃 우거진 숲길 걸으며 눈 속에서 들리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천지간 안개 자욱한 원시의 나라에서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026-01-12 06:30:00
[사설] 민주당의 강력한 '김병기 탈당 요구', 청와대 입장은 무엇인가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이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향해 "애당(愛黨)의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시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자진 탈당을 요구한 것이다. '자진 탈당하지 않을 경우 제명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답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자진 탈당' 요구가 정청래 대표와 논의된 바라고 밝혔다. 김병기 의원을 둘러싼 의혹은 금품 수수·탄원서 묵살·기업 압박·자녀 대학 편입학 등 10건 이상이다. 그럼에도 김 의원은 "제명당하더라도 자진 탈당은 안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과 정치평론가들은 "믿는 구석(이재명 대통령)이 있으니 버티는 것이다"는 평가와 "강선우 녹취록 외에도 다른 의원들 약점도 쥐고 있을 테니 당이 김병기를 제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가 '자진 탈당'을 강력히 요구한 것은 그 나름 '계산'이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은 김 의원을 '이재명 대통령 호위 무사' 또는 '블랙 요원'으로 칭(稱)한다. 김 의원은 2024년 총선 과정에서 '비명횡사' 공천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그가 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것 역시 이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의 신임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반대로 정 대표와는 공개적으로 충돌한 적이 있다. 작년 9월 김병기 원내대표가 국민의힘과 '3대 특검법 개정안'에 합의하자 정 대표는 "지도부의 뜻과 다르다"며 재협상을 지시했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사과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정황(情況)으로 볼 때 김 의원에 대한 당 지도부의 '자진 탈당' 요구는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내 '권력 투쟁' 일환(一環)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의 김 의원 탈당 요구에 대한 이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일까. 과연 민주당은 김 의원의 자진 탈당을 관철(貫徹)하거나 제명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공천헌금' 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가늠자이자 여권 내 권력 투쟁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
2026-01-12 05:00:00
[사설] 강제경매 역대 최다, 정부의 주거 안정 대책은 무기력하기만
지난해 전국에서 법원에 강제경매 개시 결정 등기 신청이 이뤄진 집합건물(아파트, 오피스텔, 빌라, 상가 등)이 3만8천여 채에 달했다. 빚을 감당 못 해 주거권이 법적 강제집행의 대상으로 전락(轉落)한 사례가 201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였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서민 체감 경제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등이다. 강제경매 급증의 이면에는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로 퇴로가 막힌 임차인들의 피눈물이 있다. 보증금 회수가 불가능해진 세입자들이 마지막 자구책으로 법원 문을 두드리며 소중한 보금자리는 법적 분쟁으로 내몰렸다. 임의경매도 증가세다. 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하자 은행이 담보로 맡긴 집을 경매에 넘기는 것인데, 계약서 조항에 따라 법원 판결 없이 진행된다. 임의경매에 의한 소유권 이전 등기 신청 집합건물은 3년 연속 증가세로, 지난해 2만4천여 채에 달했다. 채무 불이행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경매 신청부터 실제 매각까지 통상 6개월에서 1년의 시차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기록적인 경매 물량은 과거 충격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다. 지난해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초래하는 진짜 위기는 올해 훨씬 가혹한 형태로 서민 일상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다. 강제경매 최다 기록은 우연이 아니다. 금리 급등, 소득 정체(停滯), 취업 불안, 주거비 상승이 동시에 닥친 상황에서 정부 대책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전세 사기 이후에도 임차인 보호는 사후 대응에 머물렀고, 고금리 국면에서 가계 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할 금융·주거 정책은 작동하지 못했다. 주거는 자산이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생활 기반이다. 이를 지키지 못한 부동산 정책의 한계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한다. 한시적 세액공제나 사후 약방문식 지원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단기적인 경제지표 관리에 치중할 때가 아니다. 금리·부채·주거를 함께 묶는 현실적인 안전망 재설계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정책 성과는 통계에만 남고, 서민의 삶은 경매로 밀려날 것이다.
2026-01-12 05:00:00
[사설] 2% 성장 목표, 기업 친화적 환경 조성 않으면 어려울 것
재정경제부는 '새해 경제성장 전략'을 발표하며 올해 성장률(成長率) 전망치를 지난해 8월 전망(1.8%)보다 0.2%포인트 높은 2%로 제시했다. 한국은행·국제통화기금(IMF)·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올해 전망치 1.8%보다 다소 높은 이 수치는 사실상 성장 목표나 다름없다. 유엔(UN)이 전망한 세계 경제 올해 평균 성장률 2.7%에는 못 미치지만, 지난해 성장률의 두 배나 되는 정부의 긍정적 전망 배경에는 반도체 호황(好況)이 있다. AI(인공지능) 열풍으로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차세대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이에 따라 관련 설비 투자와 공장 등의 건설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대중교통비 환급 확대, 아동수당 인상, 전기차 전환금 100만원 추가 지원 등 재정(財政)으로 돈을 푸는 효과가 민간 소비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또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40만 명이 넘는 청년"을 언급하며 청년 고용 문제 해결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말'에는 그에 합당한 '행동'이 뒤따라야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초호황기)의 실적(實績)을 생색내기로 활용해 온 한국 정부는 반도체 특별법조차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전력 등 인프라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다. 추격하는 미국·일본·중국은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한발 앞선 한국은 초격차 유지·확대보다 과실 따먹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가 경제의 견실한 성장과 고용 창출은 기업과 국내외 투자자의 호응(呼應) 없인 불가능하다. 미·일 등 글로벌 경쟁 대상 국가들보다 우월하거나 최소한 동등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는 어렵다는 뜻이다. 노란봉투법·중대재해법·개정 상법 등 온갖 불합리한 기업 규제를 겹겹이 세워둔 채 '성장의 달콤한 열매'를 약속하는 것은 공허(空虛)한 말잔치일 뿐이다.
2026-01-12 05:00:00
[관풍루] 민주당, 김병기에 "애당(愛黨)의 길 고민해 달라"며 사실상 탈당 호소…이럴거면 진작 국민 눈높이 맞추지!
○…'경북대 반도체연구소'는 예산 부족으로 사업 선정 2년 넘도록 첫 삽 못 떴는데, 수도권에만 620조원 투자 몰빵하는 정부. 세수 급증에 경기 남부 지자체들은 함박웃음이라는데, 지방도 같이 좀 먹고살면 안 되겠소? ○…더불어민주당, 김병기에 "애당(愛黨)의 길 고민해 달라"며 사실상 탈당 호소. 갈수록 여론 악화하자 당 윤리심판원 결정 단 하루 앞두고 뒤늦게 자진 탈당 카드. 이럴 거면 진작 국민 눈높이 맞추지! ○…독불장군 도널드 트럼프.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법 필요 없어… 내 도덕성만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발언. 결국 국제 질서는 무시한 힘의 논리, 같은 논리인데 러·중이 사용해도 되고?
2026-01-12 05:00:00
[날씨] 1월 12일(월) "대체로 맑겠고 지역에 따라 한때 눈"
2026-01-11 18:45:09
〈저녁 안부〉 오랫동안 안부를 전하지 못했어 아침은 언제나 밖으로 열리고 낯선 하루를 맞이하느라 바쁘기만 했지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그들이 내게 먼저 안부를 물어왔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내 답은 달라졌어 하루여 나를 싣고 가는 하루여 오늘은 내게 안부를 묻고 싶네 어둠에 머리를 누이고 여름 숲같이 무성한 날들을 떠 올리면 항아리 속 김치처럼 곰삭은 시간들 잘 익었다고 칭찬해 주고 싶네 이제는 가시를 빼고 부드러워져야만 해 가시는 내 속에 있지만 투명 인간처럼 훤히 드러나 살아가는 날을 부끄럽고 야위게 만들어 서늘한 눈빛으로 익어가는 가을 나무들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제 몸을 치장하며 겨울 속으로 걸어가는 이 시간 오늘은 낯선 하루에게 몇 번이나 웃어주었는지 묻고 싶네 〈시작 노트〉 나는 꽃과 나무와 계절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구도자의 삶처럼 인내하고 기도하며 숨죽이다가 어느 순간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서 눈부신 활동을 보여준다. 유월에서 칠월로 건너가는 초여름의 숲은 뜨거운 태양 아래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가는 고난의 행군처럼 보인다. 오로지 초록이라는 일념으로 흔들림 없이 숲을 키우는 나무를 보며 우리가 지나온 젊은 날도 저 여름 숲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만 보고 걸어온 시간, 그게 삶의 전부인 줄 알았다. 퇴직하고 난후 뒤돌아보니 참 유월의 숲처럼 뜨겁고 잔인한 시간을 건너왔네. 젊은 날의 풋풋한 생기가 항아리 속 김치처럼 곰삭아서 제대로 맛이 들었네. 참, 장하구나. 연민의 아픔보다 위로와 칭찬의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마도 나이 듦이 주는 여유가 아닐까! 이제는 분별심을 버려야 한다. 분별심은 나를 괴롭히는 가장 무서운 흉기다. 그토록 치열하던 생존의 유월 숲도, 가을이 오면 다 버리고 겨울을 맞이한다. 이제부터 낯선 하루에게 날마다 웃어주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약력 -2002년 동방문학 신인상 등단 -2025년 최우수예술가상(문학) -대구문인협회 홍보국장, 여성문인협회 회원, 한국예술가곡연합회 감사 -시집 '내 마음의 다락방' ' 저녁 안부' -가곡 음반 '매화 연가' 대표곡(매화 연가,물한리 만추,아름다운 섬진강)
2026-01-09 06:30:00
〈모과나무가 있는 집〉 김해 외곽 주동 마을 노인 혼자 사는 집 삼백 살 모과나무 명줄이 곤곤한데 할머니 그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절하신다 나보다 세 배나 더 살아오신 목신인데 나와 함께 가자는 듯 시름시름 앓는다며 때 되면 물 뿌려 드리고 거친 껍질 다듬는다 가는 길 깔끔해야지 훌훌 털고 가야지 태평가 가사를 외며 흥에 겨운 할머니 더러는 먼 길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시작 노트〉 늙은 모과나무와 할머니의 존엄한 생의 동행 이 작품의 모티브는 한 그루의 나무 앞에 서 있는 삼백 살 먹은 모과나무의 존재를 대하는 인간의 자세, 곧 자기 삶의 끝을 대하는 질문으로부터 이 시조는 시작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몸으로 견뎌온 시간의 산증인이었다. 그래서 말보다는 모과나무와 인간의 내면을 행간에 표현하려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무, 그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절하는 할머니의 몸짓과 숨결이 시어가 되었다. 절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이자 오래 살아남은 것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모과나무를 관찰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모과나무 앞에 선 할머니의 태도 "두 손 모아 절하"는 장면에서, 인간이 자연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를 보았다. 그것은 신에게 올리는 절이 아니라 온갖 것으로부터 생을 견뎌온 시간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몸의 언어이다. 그것은 말보다 몸짓이 앞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과나무를 '몸신'이라 표현한 이유는, 신성함을 초월적인 개념에서 끌어내리고 싶었다. 오래 견뎌온 생의 두께, 반복된 계절을 통과한 몸의 기억을 통해 할머니보다 세 배나 더 살아온 존재 앞에서 삶의 길이를 다시 재는 순간,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이 하나로 겹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명줄이 곤곤하다"는 표현을 통해 생의 쇠약함과 함께 끝을 앞둔 존재가 지닌 고요한 위엄을 함께 담고자 했으며, "나와 함께 가자는 듯 시름시름 앓는다"는 구절을 통해, 죽음은 먼저 살아온 존재가 뒤따르는 이를 부르는 제안이며,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동행의 길을 의미한다. 또한 물을 뿌리고 "거친 껍질을 다듬는" 일은 생을 붙들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떠나는 길을 단정히 준비하는 의식의 하나다. 삶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 "가는 길은 깔끔해야지"라는 구절을 통해, 오래 사는 법이 아니라 어떻게 떠날 것인가에 대한 나에 대한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삶의 마지막을 붙잡지 않고, 정리하려는 마음이 생을 존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수 종장, 할머니가 "먼 길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라는 표현은, '할머니→모과나무→함께 가는 시간'은 결국 나 자신이 도착하게 될 자리, 미래에 대한 열린 기다림 속에서, 나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이 시는 죽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오래 살아남은 존재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마음과 태도를 표현하고자 했다. 모과나무와 할머니는 함께 늙어가고, 함께 떠날 준비를 한다. 그 조용한 동행의 감각이 이 시의 출발이자 도착점이다. ◆약력 ‐2009년 '시조세계' '대구문학' 신인상 등단 ‐점자 겸용시조집 '본다, 물끄러미' 2018년 '대구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받음, 동시조집 '별이 된 별별 이야기' 등 ‐제6회 전국도동시비문학상, 제26회 대구시조문학상, 2025 서울 지하철공모전 선정 등 다수 ‐대구시조시인협회 부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대구문인협회 이사 등
2026-01-09 06:30:00
〈누굴까〉 왼쪽 오른쪽 고개를 갸웃갸웃 오른발로 콧수염을 쓱쓱 문지르다가 왼발로 눈을 싹싹 비비다가 살금살금 다가왔다가 두리번거리는 길고양이 - 단지 내 고양이 밥 주지 마세요! 이 푯말 새로 세운 입주자회의 대표가 누구일까 〈시작 메모〉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니다 보면 곳곳에 붙어 있는 경고문이 자주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라는 문구는 그 글씨의 딱딱함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냉정함을 함축하는 듯하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파트는 자산적 가치가 우선되는 '우리만의 영토'다. 더더욱 쾌적하고 안전해야 하는 이유이다. 담장 밖 늘어나는 길고양이는 위생과 소음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아파트 환경을 해치는 방해물일 뿐이다. 집안의 고양이는 '애기'지만, 집 밖의 길고양이는 척결할 대상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조차 못마땅하다. 경고문 앞을 지나가면서 이 글을 읽는 어린이를 여러 번 상상해 보았다. 길고양이를 만난 아이는 가만히 서서 기다린다. 제 가까이 올 때까지. 눈치를 보던 고양이가 긴장을 풀고 살금살금 다가오자마자 아이는 아예 쪼그려 앉아 손을 내민다. 그 순수한 마음을 붉고 딱딱한 고딕 글씨가 앗아갔다. 화자가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콧수염을 싹싹 비비는 것은 이런 모순된 상황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동물보호라는 엄청난 환경 문제나 아파트의 자산적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고 소통하고자 한다. 그래서 경고문을 향해 천진하게 되묻는다. 그 푯말의 주체인 입주자회의 대표가 누구냐고. 동시를 쓰면서 우리들 사는 모습의 앞면과 뒷면을 함께 보려고 애썼다. '진실은 밝은 달의 뒷면에 있다. 그렇다고 보이는 앞면이 틀린 것은 아니다'는 마음으로 어른의 세계도 함께 보면서 말이다. ◆약력 -2000년 '아동문학평론' 동시로 등단, 2004년 같은 잡지에 평론 발표 -동시집 '뚝심' '한여름 눈사람', 평론집 '포스트휴먼 시대 아동문학의 윤리' 등 출간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 한국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계절문학상 수상
2026-01-09 06:30:00
[사설] 민주당 '공천 헌금', 전수조사로 안 되고 특검 수사 불가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당내 공천 헌금 의혹을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이라며 전수조사에 선(線)을 긋는 가운데, 2022년 지방선거 공천 상황을 전수조사하자는 주장(한병도·김용민 의원)이 민주당에서 나왔다. 강선우 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병기 의원(당시 민주당 공천관리위 간사)에게 "살려달라"며 자신의 보좌관이 김경 서울시의원 측으로부터 1억원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보좌관은 자신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강 의원이 돈을 직접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排除)할 수 없는 만큼 수사로 밝혀야 한다. 강 의원은 또 '자신의 지역구와 관련된 논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전직 서울시 동작구의회 의원 2명이 김병기 의원에게 3천만원을 건넸다가 돌려받았다는 탄원서(歎願書)를 2023년 12월 접수하고도 진상규명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탄원서가 적절히 처리되기는커녕 의혹 당사자인 김 의원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 이수진 전 민주당 의원의 주장이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당시 수백 건의 탄원·민원·제보가 들어왔는데, 기록과 자료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김 의원이 배우자의 동작구의회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내사(內査) 중인 동작경찰서장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는 김 의원 전 보좌진의 주장도 나왔다. 김 의원이 경찰서로부터 이 사건 내사 자료까지 건네받았다는 것이다. 보좌관 주장대로 수사받는 사람과 수사하는 사람이 통화하고, 내사 자료를 주고받았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강 의원의 해명은 '거짓'으로,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개인 일탈'이라는 민주당 주장은 시스템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수사 대상에게 내사 자료까지 넘긴 것으로 의심받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리라고 믿기도 어렵다. 특검이 아니고는 권력 핵심부의 공천 범죄 실체를 밝힐 수 없다.
2026-01-09 05:00:00
"(미국에) 와서 제일 심각하게 생각한 것이 자율주행(自律走行) 분야다. 이렇게까지 처져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미국, 중국에 많이 뒤처져 있기 때문에 획기적(劃期的)인 지원을 하거나, 뭔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위기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올해 'CES 2026'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소개하며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피지컬 인공지능(AI) 맞춤형인 차세대 슈퍼칩과 함께 자율주행 플랫폼 '알파마요'를 공개한 것이다. 이 플랫폼은 자율주행 차량이 카메라를 통한 사실 감지(感知)를 넘어 앞으로의 일을 추론(推論)해 동작하도록 고안됐다. 골목길을 주행하다 공이 굴러가는 게 감지되면 이후 어린이가 공을 주우러 올 것까지 예상하는 식이다. 알파마요가 최초로 탑재(搭載)된 벤츠 모델이 1분기 내 미국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우리는 아직 '레벨3'(조건부 자율주행) 단계의 시범 운행조차 쉽지 않은 반면, 미국과 중국에서는 레벨 4단계(완전 자율주행) 택시가 이미 상용화했다. 미국과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앱으로 로보택시를 불러 이용하는 게 일상이다. 이 같은 격차는 겹겹의 규제(規制)에 발목 잡힌 한국 기업 생태계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고 시 책임 문제로 인한 무인 운행 불가, 개인정보보호법에 묶여 데이터 확보 어려움, 과도한 택시 보호 정책, 보험 정책 미비, 인프라 부족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山) 넘어 산일 지경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몇몇 제한된 시범 사업(示範事業)이 고작일 뿐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은 테스트조차 쉽지 않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글로벌 기술을 선도하긴커녕, 이들이 주문한 제품이나 만드는 '하청 국가(下請國家)'로 전락할 판국이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낡은 법과 제도의 틀을 바꾸는 과감한 개혁이 시급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규제 만능(萬能)에 발목 잡혀 있을 것인가.
2026-01-09 05:00:00
[사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걸 탓해야", 3심제 부정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7일 방중(訪中) 동행 기자단 감단회에서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抗訴) 포기 논란과 관련, "법원이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다고 판결하면 우린 통상적으로 잘못 기소한 검찰을 비판한다"며 "그런데 희한하게 거기에 이재명이나 민주당이 관계되면 법원 판단이 잘못됐다고 검찰을 두둔한다"고 지적했다. 항소 포기에 대한 야당의 비판과 검찰 내 반발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사법제도의 근간인 3심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3심제는 한 사건에 대해 여러 판사들의 거듭된 판단을 거치면서 하급심(下級審)에서 놓치거나 오해한 사실을 상급심(上級審)에서 바로잡는 절차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이상하지 않으냐. 왜 항소 안 했냐고 따진다"며 "기소한 걸 탓해야지, 왜 법원이 판결을 잘못했다고 항소해서 법원이 판결을 뒤집으라고 하느냐"고 했다. 검사가 기소를 잘못했는지, 판사가 오판했는지를 상급심에서 따져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자는 게 3심제의 취지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의 본질은 검찰의 항소 포기로 인해 범죄 수익 7천400억원을 대장동 일당에게 흘러들게 한 데 있다. 또 검찰은 항소를 포기하고, 피고인들은 항소했기에 항소심에서는 1심 재판부가 선고한 징역 4~8년이 이들에 대한 처벌 상한선(上限線)이 됐다. 이런 문제 때문에 검사들이 검찰 지휘부의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했다. 대장동 사건은 이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으로 민간 업자들과 별도로 기소돼 1심 재판을 받던 중 대통령에 취임했다. 해당 재판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遵守)하고 사법 정의를 지킬 의무가 있다. 특히 자신은 물론 가족, 측근이 관련된 재판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이재명이나 민주당이 관계되면 법원 판단이 잘못됐다고 검찰을 두둔한다"는 지적은 '내로남불'이다. 그동안 여권은 사법부의 판결이 불리하게 나오면, 판사 탄핵(彈劾)과 대법원장 사퇴 요구로 사법부를 압박하지 않았나.
2026-01-09 05:00:00
[관풍루] 김병기·강선우 공천헌금 수수 의혹 진통중인 더불어민주당, 6·3 지방선거 시도당 위원장의 공천 관련 기구 참여 금지키로.
○…김병기·강선우 공천헌금 수수 의혹 진통 중인 더불어민주당, 6·3 지방선거 시도당 위원장의 공천 관련 기구 참여 금지키로. 이해관계자의 공천 심사 배제 원칙도 밝혔는데, 지금껏 온갖 이해관계에 휘둘렸다는 자백? ○…농민 돈 펑펑 쓰고 성추행 직원 봐주기 징계, 특별 수당 1억5천만원 즉석 결정, 810억원 손실 농협경제지주는 임원 성과금. 농식품부 특별 감사로 드러난 재계 10위권 농협중앙회의 믿기 힘든 난맥상. ○…3월 시행 예정 '학생맞춤통합지원', 교원단체 반발로 진통. 가정 방문해 변기 뚫고 학생 아침밥 챙겼다는 지원 사례 알렸는데, 이런 방식으로 학생 마음 건강 돌보겠다는 교육 당국의 발상이 기가 막힐 따름.
2026-01-0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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