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완수사권 폐지, 20여 명에게 묻고 72% 찬성했다고 밀어붙였다니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지만, 그 절차는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론 수렴은 구색(具色) 맞추기에 그쳤고, 정작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반대 의견은 철저히 무시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은 지난해 사회대개혁위원회와 함께 광주에서 개최한 '검찰개혁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를 근거로 "보완수사권 폐지에 시민 72%가 동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조사는 20명 안팎의 토론회 참석자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데다, 문항과 선택지 구성도 '폐지'로 응답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회대개혁위 인사 및 해당 지역민 수십 명의 의견을 국민 여론인 것처럼 왜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진단이 국민 4천 명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조사에선 검사의 보완수사권 행사에 대한 긍정 응답이 45.4%로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34.2%)보다 많았다. 5일 조사(한길리서치·전국 1천 명)에서도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2.5%로 '필요 없다'(31.8%)의 두 배에 달했다. 절차적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추진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문위원회 회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7차례 회의 중 무려 14차례나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런데도 추진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폐지 방침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결국 자문위원 16명 중 6명이 "국민 염원을 저버렸다"며 집단 사퇴했고, 위원장도 "감정적 접근이 심각하다"면서 자리를 내려놨다. 자문위가 있으나 마나 한 요식(要式) 절차였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개혁은 절차의 정당성 위에서만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표본 20명짜리 설문으로 여론을 참칭(僭稱)하고, 자문위원 절반의 반대를 묵살한 채 강행한 입법을 두고 어찌 '개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 대통령마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는 '우격다짐 밀어붙이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됐다.
2026-08-06 05:00:00
[사설] 뒤늦은 경찰 스타벅스 압색, 대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경찰이 '탱크데이' 논란과 관련, 5일 스타벅스코리아 본사를 압수수색(押收搜索)했다. 지난 6월 이미 검찰에 의해 임의수사 우선 원칙 등을 고려해 경찰의 영장 신청이 한 차례 반려됐다. 또 모기업인 신세계 측의 사과 및 대표이사 사임, 직원 역사 교육 등으로 파문이 잦아들고 있는 시점에서 경찰의 이런 행태는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우려가 크다. 사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을 크게 야기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SNS와 국무회의, 수석보좌관회의 등을 통해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나" 등의 말로써 스타벅스가 고의(故意)적, 의도(意圖)적으로 5월 18일에 맞춰 5·18을 모욕하기 위해 '탱크데이' 텀블러 세트 판촉을 한 것으로 사실상 단정한 셈이다. 스타벅스 측은 오해(誤解)라는 입장을 거듭 설명했다. 대표이사 명의의 2차례 사과와 경영진 경질, 신세계 정용진 회장의 대국민 직접 사과 등 여러 후속 조치도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다소 무리한 듯 보이는 강제수사(強制搜査)를 강행하는 것은 정권 코드에 맞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쿠팡 사태가 대표적이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중국 유통업체 '알리' '테무', 그리고 한국 대기업들의 해킹·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과 '똑같이'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인신 모욕성 쿠팡 국회 청문회,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 등으로 인해, 미국으로부터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差別)'이라는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 하원 법사위의 쿠팡 보고서, '갈취자 입국 금지법' 발의, 통상 환경 악화, 안보 협의 차질 등 막대한 우리의 국익(國益)이 훼손(毁損)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스타벅스 역시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이다. 어떤 정치적 의도와 목적이 깔려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국익을 버리고 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2026-08-06 05:00:00
[사설] 극한 폭염은 재난, 보여 주기 식 행정은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
사상 초유의 극한 폭염이 전국을 덮치고 있다.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열대야가 이어진다. 폭염은 국민의 생명과 일상을 위협하는 재난(災難)이다. 온열질환자가 늘고 농축산업 피해도 심각하다. 그런데도 폭염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보여 주기 식 행정으로는 국민을 지킬 수 없다. 대구시가 운영하는 무더위쉼터만 봐도 그렇다. 1천196곳이라고 홍보하지만, 62%가 경로당 등 회원 중심 시설이다. 시민이 마음 편하게 이용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폭염에 취약(脆弱)한 노인들은 더위를 피해 반월당 지하상가 등 지하공간으로 내려간다. 무더위쉼터의 운영 시간도 제한적이다. 오후 6시만 되면 문 닫는 곳이 많다. 폭염은 해가 졌다고 끝나지 않는다. 전국에 9만3천 곳의 무더위쉼터가 있다. 무더위쉼터가 시행된 지 20년이 됐지만, 쉼터 운영과 이용 실태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미흡(未洽)하다. 숫자는 크게 늘었으나, 시민이 체감하는 대책은 빈약하다. 냉방이 잘되는 공공청사와 도서관, 복지시설을 야간에도 개방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쉼터는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특히 홀몸노인과 장애인, 쪽방 주민 등 폭염 취약계층을 찾아가는 보호 체계를 더욱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야외 노동자 보호도 말뿐이어서는 안 된다. 건설 현장과 농어촌 일터, 물류와 배달업 종사자들이 폭염 속에 장시간 일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특히 고령층과 이주(移住) 노동자에 대한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올여름 온열질환 누적 환자(8월 3일 기준)는 2천221명이며, 이 중 19명이 숨졌다. 65세 이상이 전체 환자의 33.8%를 차지했다. 지난 7월에만 4명의 이주 노동자가 땡볕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폭염 시간대 작업 중지와 충분한 휴식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는지 강력하게 감독해야 한다. 폭염은 태풍이나 홍수와 다름없는 재난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폭염보다 무서운 것은 안일한 탁상행정(卓上行政)이다.
2026-08-06 05:00:00
[관풍루] 이재명 대통령 "군사 쿠데타 재발을 막기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이재명 대통령 "군사 쿠데타 재발을 막기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검사와 변호사를 따로 근무하게 하지 말고 한 사무실에서 일하게 하면 변호사의 검사 사칭 막을 수 있겠군. ○…이 대통령 전국 폭염과 관련해 "국민 삶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 빠르고 빈틈없이 추진해 달라" 당부. 범죄자들 좋으라고 검찰 수사권 빠르고 빈틈없이 폐지해 놓고 '국민 삶 보호'? ○…정동영 "상대방 이름을 불러주는 존중이 평화공존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며 북한 호칭을 '조선'으로 변경 제안. 내친김에 김일성도 '수령님'이라고 불러야겠지?
2026-08-06 05:00:00
2026-08-05 18:36:34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이었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통일신라의 새로운 수도를 달구벌로 옮기려 했다. 비록 천도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는 대구가 오래전부터 영남의 중심 도시로 성장할 기반을 갖춘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고려를 거치며 대구의 위상은 점차 높아졌다. 조선시대에는 대구군과 대구도호부로 승격되어 영남의 행정·군사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대구의 군사적·행정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조정은 1590년(선조 23년) 임진왜란에 대비해 대구읍성을 쌓았다. 하지만 토성으로 축조된 대구읍성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크게 훼손되었다. 대구읍성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736년(영조 12년) 경상감사 겸 대구부사 민응수는 무너진 토성을 돌로 다시 쌓아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이후 1870년(고종 7년) 경상감사 김세호는 성곽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며 동장대(정해루), 서장대(주승루), 남장대(선은루), 북장대(망경루)를 세워 영남의 중심 성곽으로 완성하였다. 그렇게 되살아난 대구읍성은 대구의 중심을 지키며 시민들의 삶과 함께했다. 20세기 초, 대구읍성은 또 한 번의 비극을 맞았다. 1903년 경부선 철도 공사가 시작되면서 일본인 거주자와 상인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거류지와 상권을 넓히는 데 읍성이 걸림돌이 된다며 철거를 거세게 요구했다. 당시 고종은 철거를 불허했지만, 1906년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 박중양은 고종의 뜻을 거스르고 대구읍성을 철거하였다. 하지만 읍성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철거된 성벽 자리에는 지금의 동성로·남성로·서성로·북성로가 만들어졌고, 이어 1909년에는 성안에 십자 형태의 도로가 개설되면서 대구 도심의 기본 구조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남북으로 이어지는 중앙로와 동서로 이어지는 국채보상로는 당시 성안에 개설된 십자 도로의 흔적이다. 또한 철거된 읍성의 돌들은 민간에 1전이라는 헐값에 팔려 나갔다. 일부는 계성학교 아담스관과 청라언덕 선교사 주택의 기초석으로 사용되었고, 일부는 서문시장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오는 과정에도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서문시장 터는 원래 천황당지라는 큰 연못이었는데, 1920년대에 이를 메워 지금의 자리가 되었다. 흩어진 읍성의 돌들 하나하나에는 대구읍성이 품어온 대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 우리는 사라진 역사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구읍성을 대구의 미래 자산으로 되살리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세계에는 성곽이 남아 있는 도시가 많지만, 대구처럼 인구 230만이 넘는 대도시 도심 한복판에 읍성의 흔적과 근대문화, 오늘의 도시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곳은 드물다. 대구읍성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객이 찾고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 청라언덕, 경상감영, 진골목, 팔공산, 달성토성 등 다양한 역사·문화·관광 자원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면, 대구는 국내외 관광객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오래 머물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더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대구읍성 복원은 과거를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대구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2026-08-05 16:23:15
출근길에 차가 줄었다. 밤이면 그득그득 차던 아파트 주차장에도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문 닫은 식당과 상점이 보인다.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이 도시에 '나'만 남겨진 것 같은 위화감이 든다. 우린 이 현상을 '휴가철'이라고 부른다.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어서고 기름값도 물가도 장난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어이 떠나고야 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사실, 나는 지겹도록 여행했던 사람이다. 지금 직장에서 일하기 전, 내가 했던 일은 '아이들과 여행하는 일'이었다. 주말마다 초등학생들을 승합차에 태워 구석구석 답사를 다녔고, 방학 때는 청소년들과 배낭을 메고 해외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15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내 몸속 DNA의 절반은 여행으로 구성돼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했던 여행은 내 취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여행이었다. 일이니까 주어진 일정대로 떠났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이제 나에게 여행은 '일'이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를 고를 수 있고, 가고 싶은 시간에 떠날 수 있다. 지치면 돌아올 수도 있고 엉뚱한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취향에 따라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변한만큼 세상도 빠르게 변했다. 언제부턴가 AI가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우린 이미 AI 알고리즘의 추천 속에 살고 있다. 알고리즘이 취향에 맞는 도시를 권하고, 후기를 분석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만족한 숙소를 알려준다. 어느새 나도 앱이 골라준 숙소를 예약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른 것만 보고, 고른 사람만 만나고, 고른 의견만 듣는다. 취향은 정교해지는데 세계는 좁아진다. 실패하지 않는다.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이 대개 기대와 어긋나는 데서 시작된다고 썼다. 계획은 틀어지고, 기대한 것은 얻지 못하고, 대신 예상하지 못한 것을 얻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낯선 호텔 방에서 누리는 익명의 상태, 그러니까 자신의 직함과 역할을 잠시 벗어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경험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에 가깝다고 말한다. 검색으로 맛집을 정하고, 남들이 찍은 각도로 사진을 찍고, 실패의 여지를 미리 지워버린 여행. 어긋남을 허락하지 않는 여행은 결국 '확인'에 가깝다. 이미 본 것을 다시 보러 가는 일에는 이야기가 깃들 자리가 없다. 이번 휴가철, 멀리 가지 못해도 좋다. 근교로라도 떠난다면 일정표에 빈칸 하나 정도는 남겨두면 어떨까. 길을 잃어도 되고, 아무것도 아닌 자로 걸어도 되는.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 빈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지만, 정작 돌아와 오래 남는 것은 계획에 없던 페이지들이니까.
2026-08-05 10:01:26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7>당당한 성찰적 눈동자, 수염의 정교한 사실성 '이채 초상'
1802년(추정) 58세의 화천(華泉) 이채(1745~1820)를 그린 '이채 초상'은 명작이 즐비한 조선의 초상화 중에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첫눈을 사로잡는 것은 정면을 응시하는 당당하면서도 성찰적인 눈동자, 흰색이 다된 콧수염 턱수염의 정교한 사실성, 이목구비의 빈틈없는 묘사, 안정감 있는 평정한 모습 등이다. 명작 초상화는 주인공이 지닌 심신(心身)의 고유성에 화가의 실력이 더해졌을 때 탄생하는 것 같다. 이어서 얼굴보다 큰 투명한 검은빛 모자가 풍기는 권위, 곧은 선(襈)을 검은 천으로 옷깃에 댄 희고 풍성한 겉옷의 흑백이 대비되는 엄정한 품위, 가슴께에 맨 띠의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그 위에 묶어 고정시킨 알록달록한 끈의 장식성 등이 눈에 들어오면서 주인공의 위의(威儀)가 존경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얼굴 좌우에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주인공 스스로 설명한 글과 지인 두 분의 글이 있다. 초상화는 주인공이 모델로서 관찰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며 개입하는 그림이다. 이채 선생은 정면상을 선택했고 반신상으로 그리게 했다. 정자의 관(冠)을 썼고 주자의 심의(深衣)를 입었다고 하며 의관으로 중국 송나라 정자(程子), 주자(朱子)와 같은 무리임을 표상했다. 심의는 '주자가례'에 모양과 치수를 정해 놓았다. 종교 집단도 아닌데 모자 하나, 겉옷 하나까지 자신들만의 것을 주장한 성리학이다. 순정(醇正)과 반신수덕(反身脩德)의 이념을 지닌 성리학자들은 초상화에 까다로웠다.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으로 불렸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은 초상화 남기기를 거부했다. 명재(明齋) 윤증도 거부했으나 제자들이 화가를 몰래 잠입시켜 가까스로 스승의 모습을 남길 수 있었다.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라는 '일호불사(一毫不似) 편시타인(便是他人)'의 일호불사론, 초상화는 모름지기 정신을 전해야 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론, 마음까지 그려내야 한다는 사심(寫心)론 등의 초상화론이 화가를 압박했다. '이채 초상'에 있는 3편의 화상찬(畵像贊)은 글을 지은 사람, 글씨를 쓴 사람 6명을 모두 알 수 있지만, 끝내 알 수 없는 것은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다. 지금 이토록 우리의 눈을 매혹하는 화가의 솜씨는 필요했지만 그의 이름을 기록할 필요는 느끼지는 못했다니 아이러니하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8-05 09:50:19
[세풍-강민구] 이해(理解)의 체급(體級), 정보의 강을 코끼리처럼 건너기
'체급'이란 권투나 유도 같은 스포츠에서 경기자의 체중에 따라 매겨진 등급을 뜻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텍스트를 읽고, 사리를 분별하는 '이해'에도 체급이 존재한다. 우리는 매일 정보의 폭포를 맞는다. 어떤 이가 정보를 발전시켜 새로운 통찰을 끌어낼 때, 어떤 이는 맥락(脈絡)을 왜곡하며 갈등을 일으킨다. 정보의 강물에서 유영(遊泳)하는 이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옛글이 있다. 세 마리의 짐승이 강을 건넌다는 뜻의 '삼수도하(三獸渡河)'가 그것으로, 부처의 설법을 듣고 깨닫는 사람의 깊이 차이를 설명하며, 토끼와 말, 코끼리가 강을 건너는 모습에 비유했다. 토끼가 하수(河水)를 건너면 몸이 물 위에 떠서 쓸려가고, 말이 하수를 건너면 몸의 반쯤은 물에 잠겨 애를 먹고, 오직 커다란 코끼리만 강 밑바닥에 당당히 발을 딛고 거센 물결을 가르며 건너간다는 이 이야기는 현재 정보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은유로 삼을 수 있다. 여기서 강을 건너는 행위는 정보나 진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거센 강물의 흐름은 정보의 폭주와 세상의 복잡성이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 세 동물의 체구는 각 개인이 가진 이해의 체급이다. 오늘날의 정보 지형에서 '토끼 체급의 이해'를 가진 이들은 자극적이고 짧은 형식의 영상이나 단편적인 머리기사만 쫓아다니며 휩쓸리는 수준이다. 정보의 맥락을 깊이 파악하지 못하고 표면에 떠서, 말단적 논란이나 가짜 뉴스라는 물살에도 쉽게 떠내려간다. 반면 '말 체급의 이해'는 겉으로 보이는 팩트나 텍스트는 이해하지만, 정보 이면에 숨겨진 맥락이나 구조적 본질까지는 파악하지 못한다. 반쯤 물에 잠긴 채 애를 쓰며 강을 건너듯 지식을 소비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에 유기적으로 체화하거나 확장하지는 못하는 수준이다. 반면 '코끼리 체급의 이해'로, 고(高) 체급의 분별력을 가진 이들은 정보의 물살이 아무리 거세고 복잡해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쏟아지는 주장 속에서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며, 정보의 밑바닥에 탄탄한 비판적·발전적 사고의 발을 내디딘다. 물결을 헤치고 거침없이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정보를 두고도 사람마다 이해의 체급이 달라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맥락 없는 한 줄의 문장, 자극적인 한 장면만 잘라 소비하는 습관 탓에 생긴 '맥락 파악 능력의 결여'이다. 여기에 믿고 싶은 것만 취하는 확증 편향과, 복잡한 사안을 깊이 고민하기보다 빠르게 결론 내리려는 조급함이 더해져 사유의 깊이를 얕게 만든다. 결국 정보의 강에서 휩쓸려가는 토끼에 머무르지 않고, 강바닥을 딛고 서는 코끼리로 성장하려면 사유의 체급을 올리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단편적인 정보를 대충 훑는 습관을 줄이고, 길고 복잡한 글을 끝까지 읽어내며 "이 정보의 전제와 맥락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반문해야 한다. 고전이나 깊이 있는 텍스트를 읽는 것은 사유의 체중을 늘려 이해의 체급을 올리는 가장 확실한 훈련이다. 또한,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연습도 필수적이다. 출처를 확인하고 반대편의 시각은 어떠한지 검증하는 수평적 독해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가 딛고 선 강바닥이 단단한 진실인지, 아니면 푹 꺼지는 모래톱인지 발로 밟아보듯 검증하는 태도가 코끼리의 발걸음을 만든다. 이렇게 얻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사회와 삶을 발전시키는 에너지를 창출해야 한다.
2026-08-05 05:00:00
[사설] 세금 폭탄만 있고 주거복지는 실종, 무엇을 누구를 위해 이러나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026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라며 거주(居住) 중심의 주택 시장을 정착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비(非)거주 1주택자와 이른바 '똘똘한 한 채' 보유자를 타깃으로 한 세수(稅收) 증대에 집중했을 뿐,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 서민 주거복지를 위한 세입자 배려는 거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개편안에 따르면,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공제액은 현재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줄어든다. 반면에 실거주 시에는 종부세 공제(控除) 규모가 14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또한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의 보유 기간 공제 역시 거주 기간 공제로 대체된다. 주택을 세입자에게 임대할 필요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정책이다. 당연히 집주인은 기존의 임차인(賃借人)을 내보내고 실거주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줄어드는 전·월세 물량 감소에 대한 대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거주를 강조하는 이번 세제 개편이 중장기적으로 전·월세 매물 감소를 부추기면서 임차인의 내 집 마련 수요(需要)를 오히려 자극(刺戟)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월세 시장 불안이 매매 수요를 부추기고, 이로 인해 중저가 주택 위주로 가격이 크게 오르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집주인들의 자기 집 입주로 밀려난 임차 수요가 다시 전·월세 시장에 유입되면 전·월세 가격을 밀어올리게 된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결국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비(住居費) 부담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핵심 지역에는 내 집을 가진 집주인들만 살게 되고, 집 없는 세입자들은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는 구조 역시 공고해질 전망이다. '집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 '집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차별화(差別化)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보유세 폭탄이 임대료에 전가되는 움직임이 확산할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세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비거주 1주택자, 고가 주택 소유자, 다주택자 등에게 세금 폭탄을 부과함으로써 아파트를 매물(賣物)로 내놓으라는 '매물 출회 유도'를 목표로 하고 있을지 몰라도, 토지거래허가제·대출 규제 등 각종 규제로 인해 현금 부자가 아니면 집을 내놔도 실제로 구매하기 어렵다. 정부는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낮춘다는 명분으로 월세 세액공제(稅額控除)의 연간 한도를 1천만원에서 1천200만원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이번 세제 개편안에 포함시켰다. 특히 15~34세 청년의 경우 연봉과 관계없이 2029년 말까지 공제율 17%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학생 등 수입이 전혀 없거나, 개인소득세를 내지 않는 최저임금 수준의 알바생 청년 등은 폭등한 월세를 부모나 본인 스스로가 오로지 감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과 관련, '세제 합리화' '세 부담 정상화'라는 용어를 사용해 합리화하고 있다. 마치 세수 증대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집 없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과 주거 안정에는 관심 없었다는 고백(告白)으로 들린다.
2026-08-05 05:00:00
[사설] '형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않겠다', 대통령은 누구 편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검사의 수사권 전면 폐지와 법원의 '공소기각(公訴棄却) 사유 확대'가 포함된 형사소송법(이하 형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수 국민의 반대와 범죄 피해자들의 절규(絕叫), 야당의 강한 반대에도 범여권은 형소법 개정안을 밀어붙였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 법안의 부작용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권유(勸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회피해 버렸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번 형소법 개정 강행에 대해 '검찰의 무소불위(無所不爲) 권한을 없애야 한다'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이 법으로 이제 경찰이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경찰이 수사 독점권을 갖게 됨으로써 부실(不實) 수사 또는 고의로 범죄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더라도 이를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최근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 보듯 경찰의 부실 수사를 검찰이 보완수사해 진실을 밝힌 경우는 수없이 많다. 이제 이 법이 시행되면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는 홀로 싸워야 할 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논란이 있으나 이 법률안이 위헌이라거나 행정부의 고유한 권한을 침해하는 등 (부작용)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의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부권 행사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협이 되거나 헌정 질서에 위반이 될 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법률안이 위헌성이 있을 때, 행정부 고유 권한을 침해할 때뿐만이 아니다. 법률안이 ▷국익과 국민 대다수의 편익(便益)에 반(反)하거나 공공의 이익을 해칠 가능성이 큰 경우 ▷여야 합의나 수용 절차 없이 강행 처리되었거나,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및 숙의(熟議)가 극도로 부족한 경우에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게다가 야당과 학계, 법조계는 ▷보완수사권까지 완전히 폐지할 경우 수사 부실화나 범죄 대응력 약화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 책무를 다하지 못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공소기각 확대에 대해서도 요건의 명확성(明確性)이 부족해 재판부마다 해석이 달라져서 사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형소법 개정 법안이 시행(施行)될 경우 이익을 볼 사람과 피해를 볼 사람은 분명하게 갈린다. 국회의원 등 정치권력자, 일부 향찰(鄕察)과 결탁한 토호(土豪), 고액의 변호사를 얼마든지 선임할 수 있는 부자, 지능형 범죄자들은 죄를 지어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길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반면 사회적 약자·인맥도 권력도 돈도 없는 사람들은 범죄 피해를 당해도 국가의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나아가 공소기각 확대는 이재명 대통령 면소(免訴)를 위한 '우회로'라는 비판도 많다. 본지는 7월 27일 자 칼럼 '야고부'에서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 책상에 올라왔을 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느냐, 않느냐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편인지, 범죄자 편인지, 현 정부가 국민주권 정부인지, 사익(私益) 추구 집단인지 알게 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국민들은 분명하게 알게 됐다.
2026-08-05 05:00:00
[관풍루] 정부 증시 정책마다 잡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로 폭락장 만들더니 국민 대표 절세 계좌 ISA도 퇴보된 개편 추진해 개악 우려
○…정부 증시 정책마다 잡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로 폭락장 만들더니 국민 대표 절세 계좌 ISA도 퇴보된 개편 추진해 개악 우려. 건보료 소득공제 기준도 절반으로 낮추는 방안 검토, 말만 '밸류업' 정책은 '역주행'. ○…형사소송법 개정안 국무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형사사법체계 정상화하는 첫 출발점" 강조. 문제는 누구를 위한 정상화인데, 대통령? 권력자? 정치인? 재벌? 서민? ○…일본 정부, 4일 발간한 방위백서에도 독도를 자국 고유 영토라고 주장. 동시에 한국을 '중요한 이웃 나라'로 표현. 중요한 이웃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걸 뭐라고 한다? 도둑놈 심보!
2026-08-05 05:00:00
2026-08-04 18:39:57
[기고-김종수] "면장님, 사람부터 살 수 있게 해 주이소"
"면장님, 법과 규정은 난 모르겠고 당장에 사람부터 살 수 있게 해 주이소." 1999년 전국 최연소 의성군 신평면장으로 첫 보직을 받았을 때 한 어르신이 내게 건넨 말이다. 처음에는 법을 어겨서라도 '해결해 달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나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현장을 누비면서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주민들이 바란 것은 특혜가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며, 법과 제도 안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주는 공직자였다. 그 이후 나는 늘 마음속에 한 문장을 새겼다. "행정(行政)은 인정(人情)이다." 인정은 원칙을 훼손하는 온정주의가 아니다. 법과 원칙은 엄정하게 지키되,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시선과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민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끝까지 경청하며, 제도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자세가 행정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공정함과 따뜻함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행정의 두 축이었다. 지난 30여 년 농업·보건복지·문화관광·자치행정·안전·지방의회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치며 이러한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FTA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던 농업 현장에서는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았고, 미국 투자통상주재관으로 근무하면서는 해외기업 투자유치와 지역 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해 발로 뛰었다. 영천 부시장 시절에는 지역의 미래 성장동력을 고민했고, 문화관광 분야에서는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통해 경북을 세계와 연결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자 했다. 보건복지와 안전 분야에서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고, 지방의회에서는 의원 한 분 한 분의 목소리 속에 담긴 주민들의 뜻을 행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책은 책상에서 만들 수 있지만, 좋은 정책은 언제나 현장에서 완성됐다. 현장은 행정의 출발점이자 정책의 종착점이었다. 가장 공감했던 행정철학은 이철우 경상북도지사가 강조해 온 "답은 현장에 있다", 그리고 "출근하지 마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파격적으로 들렸지만, 그 뜻은 분명했다. 공무원의 진정한 출근지는 청사가 아니라 주민이 있는 현장이라는 의미였다. 보고서보다 주민의 목소리가 먼저이고, 책상보다 삶의 현장이 먼저라는 철학이었다. 중요한 정책일수록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주민의 목소리를 들을 때 문제의 본질이 보였고, 해결의 방향도 분명해졌다. 현장을 떠난 행정은 현실과 멀어지고, 주민과 함께하는 행정은 신뢰를 얻었다. 행정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문서를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주민의 삶을 변화시켰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현장에서 배웠다. 행정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많은 업무는 기술이 대신할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희망을 전하는 일만큼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다. 행정의 중심은 시스템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을 향한 행정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후배 공직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법은 엄정하게 집행하되, 사람은 따뜻하게 대하라. 그리고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공정함은 행정의 기본이고, 공감은 행정의 품격이다. 여기에 현장성이 더해질 때 비로소 주민은 행정을 신뢰한다. 30여 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결국 하나다. 행정은 '行政'이 아니라 '行情'이다.
2026-08-04 14:40:20
정부가 3일 발표한 부동산 세제(稅制) 개편안은 실거주 1주택자 세 부담은 덜고, 비거주 주택과 다주택자 보유 부담은 높이고, 양도세 중과는 한시적으로 완화해 매도 기회를 열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합부동산세도 주택 수가 아니라 총자산 가액 중심으로 바꾸는 게 골자다. 정부는 종부세 기준을 공시가격 14억원으로 높여 전국 공동주택의 97.7%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하지만 종부세 대상의 90%가량이 서울에 몰려 있다. 서울은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을 걱정하지만 지방은 미분양, 거래 실종, 인구 감소로 신음한다. 비거주 주택과 다주택자의 보유 부담이 커지면 투자 가치가 낮은 지방 주택부터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수도권 집중 완화는커녕 지방 자산의 가치와 투자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방 부동산 시장은 과열이 아니라 침체를 걱정한다. 미분양이 쌓이고 거래가 끊긴 시장에 보유 부담까지 높아지면 지방의 자산가치 회복은 더 어렵다. 이는 단순히 집값 문제가 아니다. 담보가치 하락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건설·금융·자영업을 비롯한 지역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결국 청년층의 수도권 유출이 가속되고 지방 소멸(消滅)도 더 빨라질 수 있다. 서울의 집값을 잡겠다며 지방 경제의 기반까지 흔드는 정책이라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국정 목표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으로 시장을 바꾸려 했지만 집값 안정에 실패했고, 수도권과 지방 양극화만 가중시켰다. 이재명 정부는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출범했는데 집권 첫 부동산 세제 개편에서 세금을 시장 조정(調整)의 중심에 두었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다는 말인가. 지방 현실을 외면한 채 서울 중심으로 설계한 세제는 결국 '문재인 정부 시즌 2'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별 시장 여건을 반영한 차등화된 세제와 공급 정책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에 따른 세수 증가 규모를 2027~2029년 합계 2조2천억원으로 추산했다. 결국에 돌고 돌아서 증세다.
2026-08-04 05:00:00
[사설] 법률 부작용 뻔한데 "대통령 거부권 권유 못 해", 무책임한 정성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국회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의결에 대해 "이렇게 빛의 속도로 빨리 개정된 건 처음일 것이다. 만약 부작용이 생긴다면 빨리 고쳐야 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에 대해서는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고,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거부권 행사를 권유(勸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정 장관은 줄곧 신중하고 부정적 입장을 취해 왔다. 개혁은 검찰의 권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안전을 지키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黨論)으로 정하고 밀어붙였지만, 정 장관은 국회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부작용과 혼란을 크게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 국민들이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반대하고, 피해자들은 절규(絕叫)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 장관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한다. 국민이 입게 될 피해보다 대통령이 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을 더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 의결로 법률 제정 절차를 종결(終結)하지 않고, 국무회의 심의·의결과 대통령 재가(裁可) 과정을 거치도록 한 것은 삼권분립 원칙을 지키고, 국민과 국익에 반하는 법률 제정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형사사법·인권 보호·법령 검토 등 국가의 법무 행정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이 헌법 정신에 위배(違背)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형사사법 체계에 심각한 공백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것이 국무위원의 직무상 당연한 권한이자 책임이다. 이 당연한 헌법적 의무를 정 장관은 지금 회피하고 있다. 부작용을 뻔히 예상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면 고쳐야 한다'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미끌미끌'한 말이나 늘어놓는 것이 장관이 할 말인가.
2026-08-04 05:00:00
[사설] 귀국 李 대통령 앞 산적한 난제, 시험대 오른 해결 능력
이재명 대통령이 11일간의 순방을 마치고 3일 귀국했다. 미국에서는 오픈AI·엔비디아·앤트로픽 등 글로벌 AI 빅테크 수장들과 잇달아 회동하며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했고,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에서는 희토류·리튬·구리 등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다지는 외교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국내에선 증시 폭락과 사법 체계 개편 후폭풍, 여당발 개헌 논란 등 대형 난제(難題)가 쏟아졌다. 순방 기간 중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7월 한 달 동안에만 코스피가 33% 넘게 급락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큰 역대급 월간 낙폭(落幅)이다. 정부가 '국장 활성화'를 명분으로 도입을 주도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발 쏠림과 변동성이 급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도, 개미투자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까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원성과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검찰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최종 재가 여부에도 이목이 쏠려 있다. '피해자 구제 기능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도 별다른 보완 조치 없이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국민 신뢰를 잃는 등 적잖은 저항에 부딪힐 수 있어서다. '연임 개헌' 논란도 마찬가지다. 순방 기간 중 국회의장이 지핀 현직 대통령 연임 가능성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명확하게 선을 긋는 등 직접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개헌 얘기가 나올 때마다 국민적 의심 및 정국 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3주 연속 하락해 취임 후 최저치인 45.9%까지 떨어졌다.(리얼미터·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부정 평가가 50%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현안을 국민 눈높이에 맞춰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이 대통령의 리더십이 치명상(致命傷)을 입을 수 있다. 향후 원활한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임기가 1년 남짓 지났다. 이들 문제에 발목 잡혀 남은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2026-08-04 05:00:00
[관풍루] 유승민 전 의원,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하고 이 나라를 중국 공안과 똑같은 경찰의 공화국으로 만드는 것이 노무현 정신이냐"고 일갈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찾아 보완수사권 폐지 개정 형사소송법 바친 김용민 민주당 의원에게 "지옥에나 가세요"라고 해. 어찌 김용민만이겠나. 김용민 외 찬성표 던진 174명도 가야지. ○…유승민 전 의원,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하고 이 나라를 중국 공안과 똑같은 경찰의 공화국으로 만드는 것이 노무현 정신이냐"고 일갈. 노무현이 하늘에서 탄식하고 있을 것.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한국 증시에 대해 "국가 자본주의와 시장 투기의 극단을 결합한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진단. 정부가 국민에게 증시 도박 부추긴 필연적 결과.
2026-08-04 05:00:00
2026-08-03 18:43:11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공후(箜篌)는 고조선에서 만들어진 현악기다
◆동아시아의 음악 선진국 단군조선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 대홍수가 나서 중국이 도탄에 빠졌는데 이때 우(禹)가 치수(治水)의 공로를 인정받아 순임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夏)의 우왕은 신왕조의 건립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했는데 그 내용이 『좌전(左傳)』 애공 7년 조항에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우임금이 도산에서 제후들과 회합을 가졌는데 옥백을 가지고 참석한 나라가 만국이었다(禹會諸侯于塗山 執玉帛者萬國)" 중국 하나라 우왕 시대는 바로 우리민족의 단군조선 시기로서 단군왕검은 태자 부루(夫婁)를 보내 도산(塗山)에 가서 회합에 참가하도록 했다. 그에 관한 내용은 조선왕조 『세종실록』에서 『단군고기』를 인용하여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단군은 당나라 요임금과 동일한 시기에 건국했다. 우왕이 도산에서 회합을 개최함에 이르러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참석하도록 했다(檀君 與唐堯 同日而立 至禹會塗山 遣太子夫婁 朝焉)" 한양조선의 『승정원일기』 영조 46년 2월 6일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임금이 말하기를, '단군 시대에 증거가 될만한 사적이 있는가.' 종수(鍾秀)가 말하기를, '7년에 아들 부루를 파견하여 하나라 회합에 참가하게 한 문헌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청사고(淸史稿)』에는 "조선이 단군으로부터 개국했는데 시기는 제요(帝堯) 25년 무진이다. 하나라의 우왕이 도산에서 제후들과 회합을 가질 때 단군이 아들 부루를 보내서 참여하게 했다"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상의 자료들에 따르면 단군조선의 태자 부루가, 중국 하나라 국조 우왕이 개국을 경축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 참가했다는 것은 중국과 한국의 고대 문헌이 모두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습유기(拾遺記)』에 서주(西周)시대의 부루국(夫婁國)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온갓 연극의 음악을 갖추고 있다.(備百戲之樂)" "중국의 악부가 부루국 배우들의 기예를 전수 받았다(樂府皆傳此伎)"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습유기』는 1,600여 전 남북조시대 동진 안양현(安陽縣) 지금의 감숙성 천수(天水) 출신 왕가(王嘉, 약 325~390)가 지은 책인데 그의 생애를 다룬 왕가열전이 중국의 정사인 『진서(晉書)』에 실려 있다. 정사에 열전이 실릴 정도라면 그가 당시를 대표하는 저명한 인물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자치통감』 105권에는 왕가를 가리켜서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있어 당시 진나라사람들이 신비하게 여겼다(有異術 能知未然 秦人神之)"라고 말한 것을 본다면 왕가는 포박자 갈홍과 유사한 신선 도가 계통의 인물로 여겨진다. 1,600여 년 전 왕가와 같은 권위 있는 인물의 저서에서 단군의 부루국을 가리켜 "온갓 연극의 음악을 갖추고 있었다(備百戲之樂)"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이를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다. 이는 바로 단군조선이 음악 선진국으로서 중국 서주에 음악을 전파한 사실을 알려주는 문헌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후한서』 동이전에는 하(夏)나라 임금 소강(小康) 이후에 동이의 사람들이 "음악과 무용을 헌상했다(獻其樂舞)"라는 기록이 보인다. 동이 국가에서 하나라 때 중국에 음악 무용을 헌상했다면 온갓 음악을 갖추고 있었던 단군의 부루국에서 서주국에 음악 무용을 전수해주었다는 『습유기』의 기록은 역사적인 사실과 부합된다고 할 것이다. 한양조선 『승정원일기』 영조 41년 12월 8일 조항에는 "기물과 복식의 제도가 다 단군에서 시작되었다(器服之制 皆始於檀君)"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물(器)은 인간이 창조한 여러 문명적 도구, 기구를 지칭한 것으로서 당연히 악기도 포함된다. 이는 한양조선에서 우리나라 악기의 원류를 단군조선 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인식을 보여준다. 『증보문헌비고』 악고(樂考)에는 "기자가 동쪽으로 조선에 올 때 중국 사람 5천 명이 따라 왔는데 시서, 예악, 의무, 음양, 복서, 백공, 기예가 다 함께 왔다"라고 하였다. 단군조선에서 시작된 음악을 비롯한 여러 동이 문화는 기자의 동래를 통해서 중원의 상나라 문화와 만나 융합을 이룸으로써 보다 풍성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삼한(三韓)에서는 "비파를 타고 가무를 즐겼다(鼓瑟歌舞)"라는 기록이 중국의 여러 기록에 나타나는데 이는 우리나라 음악이 삼한에 이르러서는 매우 수준 높은 차원에 도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미국 영화계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골든 글로브, 그래미 수상에 이어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케이컬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음악 케이팝은 이제 한국만의 음악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군조선으로부터 우리민족의 피속을 타고 수천년을 흐르는 가무의 DNA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고조선 민요 공후인(箜篌引)의 공후는 어느 나라 악기일까 김부식은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음악조항에서 신라음악, 고구려음악, 백제음악으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신라음악은 『신라고기(新羅古記)』, 『금조(琴操)』, 『석명(釋名)』, 『풍속통(風俗通)』 등 여러 책을 인용하여 비교적 상세히 설명한 반면 고구려, 백제 음악에 대해서는 두우의 『통전』을 인용하여 간단히 소개하는 데 그쳤다. 김부식이 현금(玄琴), 가야금, 비파 즉 신라의 3대 현악기 중 하나인 현금을 설명하면서 거문고 곡조를 수집하여 기록한 책인 동한의 채옹이 지은 『금조』를 인용했는데, 고조선 사람이 조선진을 무대로 창작한 가요 공후인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김부식은 『금조』를 인용하여 신라의 현금을 설명하면서 거기 함께 수록된 고조선 민요 공후인에 대해서는 쏙 빼놓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공후인을 짧게라도 인용했더라면 고조선 민요가 한국 고대 문헌에는 수록되지 않은 수모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 김부식이 인용한 『신라고기』라는 책도 책명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비단 현금의 제작 과정뿐 아닌 『삼국사기』에 전하지 않는 수많은 신라의 옛 정보들이 담겨 있었을 것인데 지금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삼국사기』 신라음악 조항에는 공후가 보이지 않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 부분에는 모두 공후가 고유한 악기로서 기재되어 있다. 이는 고구려 백제가 지리적으로 고조선을 직접 계승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공후(箜篌)는 거문고 비파와 같은 현악기에 속한다. 공후인은 고조선 시대에 조선하 나루터에서 공후라는 고대 현악기를 타면서 고조선인이 지어 부른 노래다. 그러면 이 공후라는 고대 현악기는 과연 어느 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일까. ◆공후를 중국 한나라 악기로 본 이병도의 주장 이병도는 『한국고대사연구,1979』 낙랑군고에서 "공후와 같은 한(漢)의 악기가 유행하여 하층사회의 부녀들 중에도 명탄수(名彈手), 명창자가 있었다는 것과 당시 한의 문명이 우리 토착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쳐주었는가 등을 상상케 한다"라고 말하였다. 이병도는 공후를 중국 악기로 보았고 고조선 사회에서 이를 받아들여 하층사회에까지 널리 유행한 것은 중국 한 문명이 고조선 사회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반영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리지린은 이와 의견을 달리했다. "공후를 타면서 불렀던 공후인이라는 가사는 서기전 2세기 이전의 고조선 작품임은 물론, 당시에 서민층에 까지 널리 보급되어 있었던 공후라는 현악기도 고조선의 악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고조선연구』,1963》 한국의 윤내현도 "이러한 리지린의 견해는 매우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하면서 리지린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고조선연구』,1999》 ◆공후는 고조선에서 만들어진 우리민족 고유의 현악기다 공후가 중국 악기인가 고조선의 고유한 악기인가 하는 것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문헌을 통한 고증이 필요하다. 『수서』 권15 음악 조항에는 "와공후(臥箜篌), 수공후(豎箜篌)가 고구려의 악기로 소개되어 있다. 『구당서』 권29 음악 조항에는 공후가 백제의 악기에 포함되어 있다. 『북사』 백제전, 『통전』 고구려음악 조항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고구려와 백제에 공후라는 현악기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부터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악서(樂書)』 권158 사이가(四夷歌) 백제 조항에서 "백제의 악기에 쟁(箏)과 적(笛), 공후 등이 있었는데 당나라 때 이적(李績)이 설인귀를 인솔하고 백제를 멸망시켜 백제의 음악을 얻은 다음 당나라 조정에 바쳤다"라고 말하였다. 즉 당나라 고종 때 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의 악기 공후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 공후가 고구려, 백제의 토속적인 고유한 악기냐 아니면 중국의 악기를 받아드린 외래의 악기냐 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40 악률(樂律) 조항에 나오는 다음 기록을 살펴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지금 고려의 음악에는 두 부문이 있는데 좌부는 당악(唐樂)으로 중국 음악이고 우부는 향악(鄕樂)으로 동이의 음악이다. 중국 음악은 악기가 중국제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향악에는 고(鼓), 판(版), 생(笙), 우(芋), 필률(觱篥), 공후(箜篌), 오현금(五絃琴), 비파(琵琶), 쟁(箏), 적(笛) 등이 있는데 그 모양과 제도가 중국과는 차이가 있다.(今其樂 有兩部 左曰唐樂 中國之音 右曰鄕樂 蓋夷音也 其中國之音 樂器 皆中國之制 惟其鄕樂 有鼓版笙芋 觱篥 箜篌 五絃琴 琵琶 箏笛 而形制差異)" 여기서 당악은 중국 음악, 향악은 고려의 토속적인 음악을 가리킨다. 그런데 송나라 사신이 저술한 『고려도경』에서 공후를 고려의 토속적인 고유한 악기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송나라 사신이 고려에 와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쓴 책 『고려도경』에서 공후를 중국의 악기가 아닌 고려의 토속적인 악기로 분류한 것은 공후가 우리민족의 고유한 악기였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고 여긴다. 그런데 사마천 『사기』 효무본기의 "공후슬(箜篌瑟)"에 대한 응소(應劭)의 주석을 보면 "한무제가 음악인 후조(侯造)에게 명하여 비로소 공후를 제조했다.(武帝令樂人侯調 始造箜篌)"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공후는 한무제 때 최초로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무제라는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무제는 고조선을 공격했던 인물이다. 공후인이 한무제 이전에는 중국에 없다가 한무제 때 비로소 중국에 등장했다면 한무제 유철이 고조선을 공격할 당시 공후인을 가져다가 중국에서 그것을 모방하여 제조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공후는 단군조선에서 창조되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다가 조, 한 전쟁을 계기로 중국에 최초로 유입되었고 중국이 이를 모방하여 제조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백수 광부(白首狂夫)의 아내도 공후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고 조선 진졸(朝鮮津卒)의 아내 여옥 또한 공후를 타면서 노래를 부른 것을 본다면 고조선에서는 거의 집 집마다 공후를 한 대씩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무제 때 비로소 중국에서 만들어진 공후가 고조선에 전래되었다면 시간적으로 볼 때 고조선의 일부 상류층에서 유행한다는 것은 몰라도 전국적으로 민간에까지 널리 보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고조선에서는 일반 백성의 아낙네들까지 그것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를 만큼 공후를 능숙하게 다루었는데 한무제 때 중국에서 수입했다면 결코 이렇게 빨리 대중화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후는 중국 악기가 아니라 고조선에서 만들어진 우리민족 고유의 현악기로서 고구려, 백제에 전승되었으며 그것이 중국에 최초로 전해진 시기는 고조선을 침공한 한무제 때였다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하겠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2026-08-03 15: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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