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8>꿈나라는 언제든 갈 수 있는 무릉도원, 오수도
소당(小塘) 이재관의 '오수도'는 이름 없는 한 지식인의 일상을 그린 고사도(高士圖)다. 반면 고사도(故事圖)는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의 유배 때 일화를 그린 '적벽도(赤壁圖)'처럼 유명한 인물의 특별한 사건을 그린다. 유명무명의 문인들 이야기는 한자문화권 회화의 독특한 분야인 일종의 위인도다. 역사적 인물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교훈이 되기도 하고, 생활인의 일과로서 정서적 공감을 일으키기도 하는 효용성 높은 그림이다. '오수도'의 고사(高士)가 하는 행위는 낮잠이다. 한적한 서재에서 책 무더기를 베고 잔다. 책이 수북한 책상에 기대놓은 길쭉한 물건은 거문고(琴)다. 방문 좌우의 소박한 휘장, 나지막한 난간, 간소한 디딤돌 등 조촐한 격조가 있는 모자랄 것 없는 집이다. 지붕은 기와이고 솔가지를 꺾어 차양을 덧대었다. 커다란 바위 옆에서 화로에 부채질하던 동자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노송 아래 두 마리 학을 쳐다본다. 해맑게 웃고 있다. 주인은 찻물을 끓이라고 해놓곤 그 사이 잠들었나보다. 화폭의 아래와 위로 넉넉한 여백을 두어 운치를 돋우면서도 오밀조밀한 이야기를 담아 심심하지 않은 화면으로 구성했다. 전문화가 다운 숙련된 솜씨는 묘사하는 형태를 따라 자연스러우면서도 대담하게 이어지는 붓질, 슴슴한 담채에서도 드러난다. 상단에 짧은 제화를 써넣었고 인장은 '진전한화(秦篆漢畵)', '필하무일점진(筆下無一點塵)'이다. 〈strong〉새들이 지저귀며 오르내리는데 낮잠이 이제 들었네〈/strong〉 〈strong〉禽聲上下 午睡初足 小塘〈/strong〉 소동파는 잠, 곧 꿈나라야말로 언제든 입국할 수 있는 무릉도원이라는 재미있는 산문 '수향기(睡鄕記)'를 지었고 시에서도 잠을 예찬했다. '취포고면진사업(醉飽高眠眞事業)' 구절은 맛난 음식 먹고(飽), 향기로운 술에 취해(醉), 베개를 높이 베고 푹 자는(高眠)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인생이란 이 세 가지 맛을 잘 즐기는데 있을 뿐 무슨 거창한 할 일이 있겠는가라는 반문이다. 그림 속 낮잠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오수도'의 낮잠은 자족의 미학인 것 같다. 책, 음악, 술의 3종 세트에서 술 대신 차가 들어갔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2026-10-29 11:22:40
퇴근 후 저녁을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아내와 손잡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게 가을, 가을이다. 거대한 낙엽의 어느 한 지점을 조용히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한 남녀가 달려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러닝 복장을 한 부부가 숨을 몰아쉬며 지나갔다. 잠시 후 이어폰을 귀에 꽂은 한 남자가 그리고 또 한 여자가 달려와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 빼고 모두가 달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다들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 열풍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온 흐름이다. 마라톤 대회는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마감되고, 함께 모여 달리는 '러닝 크루'는 운동 모임을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공동체가 되었다. 달린 거리와 시간, 경로를 SNS에 올리는 일도 흔하다. 운동 기록을 나누고 응원하며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는다. 달리기는 이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돼가고 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하나, 사람들은 왜 달리려고 할까? 생각만 해도 숨이 차고, 다리 아프고, 고생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굳이 왜? 매일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달리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달리는 시간은 복잡한 관계에서 벗어난 혼자만의 시간이다. 누군가와 함께 달린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달리는 리듬 속에서 차츰 머릿속을 비워내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겸손하게 느껴보는 시간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달리기가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돌아오는 몇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고, 애써 준비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노력과 결과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세상에서 달리기는 드물게 정직한 활동이다. 오늘 3㎞를 뛰면 정확히 3㎞만큼 나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더 뛰면 기록은 어김없이 그만큼 나아진다. 누구의 운도, 배경도 끼어들 틈이 없다. 내 발로 내딛는 만큼, 정확히 그만큼 앞으로 나아간다. 달리기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이 시대가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를 비추는 거울 같은 게 아닐까. 혼자만의 시간,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내는 감각,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나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내일 아침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저 가을하늘 아래를 달려봐야겠다.
2026-10-29 09:19:01
[사설] 한미동맹 '굳건히'와 '물음표'…여당, 어느 쪽이 진심인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외교·안보·통일 분야 정책 수립을 점검하는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를 출범시켰다. 김민석 대표는 출범식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외교·안보 기반을 튼튼히 하고 주변국과 협력의 폭을 넓히는 것이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의장을 맡은 박정 의원은 "한미동맹이라면 일단 믿는 80년 고정관념에도 물음표를 찍겠다"고 말했다. "좀 더 관대한 대북 정책을 종북으로 모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와도 싸우겠다"고도 했다. 동맹 강화를 외친 당 대표의 말과 동맹에 대한 회의적(懷疑的) 메시지가 같은 자리에서 나온 셈이다. 동맹국에는 불필요한 오해를, 국민에게는 혼선을 줄 수 있다. 이런 혼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26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관련 질의에 답하며 "북한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러면 그런 미군은 믿을 수 있나"라고 했다. 국방부는 미국·이란 전쟁 상황을 언급한 야당 의원의 논리에 대한 반문이며 한미 신뢰를 강조하려던 취지라고 해명했다. 그렇다 해도 동맹의 군사적 신뢰를 책임지는 국방장관의 말로는 적절치 않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27일 외통위 종합감사에서 DMZ 지뢰 폭발과 관련해 '지뢰는 방어용 무기'라는 발언을 취소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북한 지뢰가 방어용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러한 논란 발언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는 앞서 국감에서도 "아직은 지뢰 공격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이 발언은 이후 김여정 북 노동당 총무부장이 책임을 부인하는 데 인용됐다. '한미동맹 고정관념에 물음표'라는 여당 자문회의 의장, '미군을 믿을 수 있느냐'는 국방장관, '지뢰는 방어용 무기'라는 통일장관. 모두 저마다의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겠지만 동맹에는 의심을, 북한 도발에는 관용을 남길 수 있는 말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이 '실용외교'를 말하려면 대북과 대미를 향한 말과 기준부터 일관돼야 한다.
2026-10-29 05:00:00
[사설] 언론·장관 탓하는 국정, 국민 공감 얻을 수 있겠나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밤부터 28일 오전까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무려 10건의 게시글을 쏟아냈다. 국민 여론과 장관들의 자제(自制) 건의에도 불구하고, SNS는 "목숨줄이자 숨구멍"이라던 이 대통령이 작정하고 대(對)국민 소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정 신문 보도를 겨냥한 듯한 "'도움이 안 된다'는 말과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은 '크게' 차이가 있다"는 게시물 등 언론을 비판한 글이 주목된다. 해당 언론이 '외국인 노동자가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이 대통령 발언을 왜곡(歪曲)했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큰' 도움은 안 되나, 도움이 되기는 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정론직필하고자 하는 언론일 것이니 기사 정정하시고 사과하실 것으로 믿는다"는 말 이외에, 기사 제목이 바뀌었다는 누리꾼 글에 "기사 제목을 바꿨으면 왜 바꿨는지 밝히고, 기사를 고칠 만큼 잘못했으면 사과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만, 이런 정도로 대통령이 마치 언론을 압박(壓迫)하는 듯한 행태가 국민들에게 바람직하게 느껴질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짜장면 좋다는 건 짬뽕 폄훼'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라는 28일 글에서는 농지 전수조사를 제안한 것이 송미령 장관이라는 것을 '농어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밝힌 것에 대해, '책임 전가'(責任轉嫁)라고 비판한 언론보도에 정면 대응했다. 책임 전가가 아니라, 장관의 제안을 오히려 칭찬한 것이라며 "공개된 국무회의 발언을 직접 보고 최소한의 보도 윤리를 가지고 쓴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농지 전수조사에 따른 온갖 부작용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대책을 마련하겠다던 이재명 정부의 책임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훌륭한 장관은 있는데 책임지는 장관도 대통령도 사라진 셈이다. "대통령이 공개회의에서 직접 조사를 지시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은 알고 있다. 그래서 '언론 탓'이 얼마나 국민적 공감(共感)을 불러일으킬지 의아스럽다.
2026-10-29 05:00:00
[사설] 국정조사와 탄핵이 민주당 강성 지지층 달래는 수단인가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달 5일 국회에 조희대 대법원장 국정조사 실시 요구서를 보고한 뒤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方針)을 밝혔다. 국정조사를 통해 조 대법원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대법원장 탄핵 사유가 차고 넘친다고 하더니, 정작 탄핵에는 나서지 못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하겠다니 앞뒤 맥락도 없다. 민주당이 당장 탄핵소추에 돌입(突入)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정치적 역풍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니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달랠 뾰족한 수가 없고, "민주당이 대법원장 탄핵과 사법 개혁의 적기를 놓치고 있다"며 공세(攻勢)를 펼치는 조국혁신당과 선명성 경쟁에서도 밀린다. 결국 국정조사를 빌미로 조희대 대법원장을 공격함으로써 지지층을 달래는 한편 조희대 대법원장이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는 '그림'을 노리는 것이다. 공직자에 대한 국정조사나 탄핵은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공직자를 벌함으로써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제도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공직자, 자신들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강성 지지층을 달래기 위한 제물(祭物)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의 대법원장 국정조사니 탄핵이니 하는 것은 '사법부 굴복시키기'와 '이재명 대통령 사법 리스크 해소' '지지층 달래기'를 위한 정치적 술수로 보일 뿐이다. 조 대법원장에게 중대한 헌법 위반이 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고, 행위를 특정해 탄핵을 추진하고 그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고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장기간 미룬 문제,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문제, 업무추진비 문제, 대선 개입 의혹 등 여론 공세만 펼친다. 정부 여당 지지율 추락(墜落)을 막고, 강성 지지층을 달래기 위해 삼권분립을 이토록 무시하는 행태가 공당으로서 할 일인가.
2026-10-29 05:00:00
[관풍루] "한미동맹 굳건히" vs "한미동맹 80년 고정관념에 물음표"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 김민석 대표 "한미동맹 굳건히", 박정 의장 "한미동맹 80년 고정관념에 물음표". 한 지붕 아래 두 목소리가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인지 몰라도, 미국은 도대체 뭔 소리인지 헷갈릴 법. ○…8월 출생아 7년 만에 최대이고, 26개월 연속 증가로 역대 최장 기록 경신했는데 인구는 6천605명 감소. 아기 울음소리 커졌지만 인구 감소 막기엔 아직도 역부족. ○…주민등록 등·초본에 '계부·계모·배우자의 자녀' 대신 '세대원' 표기 가능해져. 묻지도 않은 가족사까지 친절히 들춰주던 행정, 늦게나마 눈치라는 걸 배웠으니 다행.
2026-10-29 05:00:00
2026-10-28 18:43:49
[새론새평-배종찬] 민심 붕괴시키는 대통령의 제미나이와 SNS
이재명 대통령의 소통 방식이 민심을 들끓게 하고 있다.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빅데이터 연관어 분석(썸트렌드, 2026년 10월 19~27일 집계)을 살펴보면, 현 정국의 핵심 화두는 단연 '이재명 제미나이'와 '대통령 sns'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으로 집약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범죄수사청장과 공소청장 등 수사기관장의 국무회의 배석 문제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구글의 생성형 AI인 제미나이를 인용해 발언하면서 촉발된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최고 통치권자의 국정 의사결정 방식과 소통 철학에 대한 심각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수청장과 공소청장의 국무회의 배석 등 중대한 헌법적·법률적 국정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 검증되지 않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고 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명백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가의 사정 기관과 권력 구조 재편이라는 민감한 사안은 법제처나 헌법재판소 등 공적 기관의 엄밀한 법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제미나이와 같은 AI 챗봇의 답변을 면죄부나 정당성의 출처로 삼아 SNS에 게시한 것은, 그 출처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을뿐더러 국정을 이끌어가는 책임자의 태도로서 지나치게 가볍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편향된 질문으로 원하는 답변을 유도한 처참한 수준의 통치 행위"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야권의 나경원 의원 등 주요 정치인들이 일제히 이를 비판하고 나선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최고 책임자의 판단 기준이 검증되지 않은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모양새가 비치면서 정책 집행의 책임소재가 모호해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명목으로 쏟아내고 있는 과도한 횟수의 SNS 활동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SNS는 신속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정제되지 않은 개인적 소신이나 일방적인 주장들이 여과 없이 노출되면서 오히려 국정의 신중함과 무게감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세난과 증시 변동, 국민연금 개혁 논란 등 민생 경제가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세심하게 경청하기보다 SNS를 통한 여론전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불안감과 큰 괴리를 낳고 있다. 여론의 냉정한 반응 속에서도 SNS 공간에만 매몰된 소통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적 소통이라기보다는 일방향적 독백에 가깝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자신의 '생명줄'이라 지칭하며 여론의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행 의지를 꺾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기존의 보수·진보 기성 언론이나 제도권 정당 구조를 불신하고, 지지층과 직접 연결된 온라인 공간을 통해 정치적 동력과 정치적 자산을 유지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집착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에게 SNS는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정치적 위기 국면마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자신을 엄호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친구'이자 정치적 방어벽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여론의 싸늘한 평가나 국정 운영의 제도적 한계마저 SNS라는 가상공간의 우호적 반응으로 돌파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결국 이렇듯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제미나이 등 인공지능 기반의 국정 결정, 밤잠을 설치며 쏟아내는 폭풍 질주형 SNS, 그리고 국무회의 생중계 등에서 국무위원들마저 우려를 표명하는 파격적 행보는 민심에 치명적인 역풍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경제와 증시가 불안하고 전세난이 가중되는 시기에, 대통령의 국정 시선이 민생 현장이 아닌 인공지능이나 SNS 여론전에 쏠려 있다는 인식을 주게 되면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배가되고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신뢰는 급격히 무너질 것이다. 이는 결국 싸늘하게 식어버린 민심과 국정 동력 상실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된다. 대통령의 진정한 '생명줄'은 요란한 SNS나 알고리즘의 답변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제도를 존중하는 책임 있는 민생 행정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2026-10-28 13:21:30
당나라의 문학가 이상은(李商隱)은 세태를 풍자한 저서 『잡찬(雜纂)』에서 '절대 오지 않는 것' 몇 가지를 꼽았으니, '몽둥이를 손에 쥐고 부르는 개' '가난뱅이 선비가 부르는 기생' 등이다. 이후 그것을 계승한 청나라의 위광불(韋光黻)은 『잡찬신속(雜纂新續)』에서, '새장 밖으로 날아간 새' '집 나간 영특한 고양이' 등을 더하였다. 시간의 거리를 둔 중국 문인들의 통찰은 우스갯소리 같지만, 그 밑바닥에는 명철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부르는 쪽의 처지와 태도, 그리고 응해야 할 쪽의 이해관계가 어긋날 때 '부름'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위협을 품은 손짓에 응해 다가오는 생명은 없고, 소득 없는 허세의 초대에는 누구도 응하지 않으며, 억압을 뚫고 자유를 맛본 존재는 결코 과거의 질곡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신뢰와 실질이 없는 자리에 명분만 앞세워 불러들인다면, 세상 그 누구도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이나 그들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운 고비마다 입 모아 "민심을 받들겠다"라고 외치고, 민심이 돌아앉아 지지율이 떨어지면 온갖 대책을 쏟아낸다. 그러나 옛 문인의 혜안으로 본다면, 한 시절 정치권력의 '부름'이란 허망하기 짝이 없다. 혹여 손에 서슬 퍼런 사법의 몽둥이를 쥔 채 국민을 향해 "이리 오라"며 손짓으로 부르고 있지는 않나? 제 편의 비리와 과오는 온갖 궤변으로 덮어주면서 반대파나 힘없는 서민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권력 아래로 돌아올 국민은 없다. 손에 몽둥이를 숨기지도 않고 흔들어대며 오라고 윽박지르는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갈 개는 없다. 개조차 몽둥이의 살기를 알아차리는데, 눈 밝은 주권자가 그 위협을 모를 리 만무하다. 또한 나라의 곳간은 비어가고 민생 경제는 벼랑 끝에 몰렸는데, 실효성 없는 장밋빛 구호만 외치며 국민의 호응을 바라고 있지는 않나 돌아볼 일이다. 국민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줄 실질적 대책이 없는데, 공허한 명분에 응답할 민심은 없다. 위광불이 말한 '새장 밖으로 날아간 새'와 '집을 나간 영특한 고양이'는 바로 이반된 민심의 은유로 쓸 수도 있다. 한번 자유의 하늘로 날아오른 새는 결코 비좁고 탁한 새장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영특한 고양이는 집주인의 옹졸함과 박대를 견디다 못해 담장을 넘으면 다시는 그 집의 밥그릇을 쳐다보지 않는다. 국민의 인내심이 임계점을 넘어 체념과 무관심, 혹은 분노로 돌아설 때, 민심은 새장의 새처럼 미련 없이 날아가 버린다. 권력자들은 민심이 떠나갈 때마다 "국민과의 소통과 홍보가 부족했다"라고 하거나 "가짜 뉴스에 호도되었다"라며 국민의 이성을 깎아내린다. 심지어 사과한다는 말이 고작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라는 변명이다. 겉으로는 자책하며 고개를 숙이는 척하지만, 그 말의 기저에는 오만한 우월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눈높이를 맞춘다'라는 말 자체가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시선, 즉 어른이 미숙한 아이를 대할 때나 쓰는 시혜적이고 교만한 발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권력의 훈계를 들어야 할 철부지가 아니다. 몽둥이 뒤에 숨은 폭력을 응시하고, 빈 밥그릇의 무능을 심판하며, 권력의 위선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심판관이다. 오지 않는 민심을 탓하기 전에, 제 손에 들린 몽둥이와 빈 곳간, 그리고 혀끝에 밴 오만부터 반성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6-10-28 05:00:00
[사설] 사정기관장 국무회의 참석 자체로 중립성 의심 받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범죄수사청장의 국무회의 참석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화 일환"이라고 했다. 앞서 21일 중수청장과 공소청장 등 수사·공소기관장의 국무회의 참석 논란에 대해 "대통령의 행정감독권과 정부 통솔 구조를 부정하는 궤변"이라고 했는데, 앞으로도 사정기관장(司正機關長)들을 국무회의에 부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수청장과 공소청장의 국무회의 참석은 법령상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가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국무회의에 배석시키지 않았던 것은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고려해 자제(自制)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자리에서 우리 국무위원들이 사정기관장들한테 사적인 부탁을 하겠나, 아니면 부정한 지시를 하겠나"라며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오히려 적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만나 대통령의 생각과 입장을 자주 듣는 수사기관의 장이 대통령이 아끼는 권력자를 수사하거나 대통령이 바라지 않는 사건을 수사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개별 사건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무회의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발언은 중수청장과 공소청장에게 커다란 압박(壓迫)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지난 6월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참석한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검찰이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잘못하면 사과하고 취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많은 국민과 언론들은 '이 대통령 본인 사건 공소취소를 겨냥한 발언'으로 이해했다. 공소청장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부담을 가질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대통령이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발언을 받아 적는 수사기관장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수사기관이 대통령의 하명(下命)을 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수사기관이 자체 판단으로 어떤 정치인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거나 수사를 하지 않더라도 중립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이 그런 의심을 갖는 것 자체로 국익에 해롭다. 공정성은 내용만큼 외관(外觀)도 중요하다.
2026-10-28 05:00:00
[사설] 국민소득 4만달러 자랑보다 국민 살림부터 살펴라
경제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깜짝 성장했다.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0%로 당초 전망치(0.3%)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화려한 성적표의 이면을 보면 민간소비는 0.2% 감소했고, 서비스업 성장률은 0.2%에 그쳤다. 문제는 이런 괴리가 산업과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에서 기인(起因)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은 26일 반도체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과 인공지능(AI) 확산, 경직적인 노동시장이 청년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진단했다. 불안정 일자리에서 안정적 상용직으로 이동하는 청년 비율은 2014~2019년 3.5%대에서 2023~2024년 1.6%로 떨어졌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성장의 결과인가. 대외 부문과 내수경제의 괴리도 뚜렷하다. 2분기 경상수지 흑자(黑字)는 1천166억달러로 독일과 일본 흑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경상흑자를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전망했다. 그러나 내수 부진과 고금리 부담에 신음하는 서민들에겐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10월 소비자심리지수, 취업기회전망지수는 하락했고, 중소기업 금융을 떠받치는 기업은행의 3분기 말 연체율은 1.04%로 2011년 관련 자료 공개 이후 가장 높다. 소비 부진이 기업 경영을 악화시키고, 기업의 고용·투자 축소가 가계소득과 소비를 옥죄는 악순환마저 우려된다. 정부는 이날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달러대 진입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반도체 기업의 현금 배당(配當)과 내년 1분기 성과급 지급이 민간소비를 회복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이른바 낙수효과나 곁불 쬐기로 내수를 회복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성장의 온기가 모든 국민의 삶에 퍼지도록' 노력하겠다지만 고용·소득 격차 해소 대책은 현실감이 전혀 없다. 반도체 호황의 혜택이 저절로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경제정책도 아니다. 심각한 성장 불균형을 뻔히 알면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깜짝 성장률은 정부 성적표가 아니라 정책 한계를 드러내는 숫자에 불과하다.
2026-10-28 05:00:00
[사설] 국립의대 신설, 정치적 고려 아닌 객관적 잣대로 결정해야
교육부가 지역 국립의대 신설 대학을 11월 초까지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경북의 경국대와 전남광주권의 순천대가 후보다. 지역 의료 격차(隔差)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이라는 사업 취지를 고려하면, 어느 대학을 선정하느냐는 지역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두 지역 모두 의료 취약성이 심각하다. 그러나 의료 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실만으로 의대 신설의 당위성을 충족할 수는 없다. 의료 공백(空白)의 정도와 시급성, 대학의 준비 수준, 교육·수련 여건, 부속병원 설립 계획, 지역 의료체계와 연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경국대는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 경북은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가 전국 평균에 못 미치고, 22개 시·군 중 18곳이 의료 취약지로 분류될 정도로 의료 기반이 빈약하다. 상급종합병원도 없어 중증(重症)·응급환자의 적절한 치료에 어려움이 크다. 경국대는 준비 상황에서도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북도와 안동시, 예천군, 대학은 의대 설립을 오랫동안 추진하면서 부지 확보와 수련병원 건립, 교원 확보 등을 면밀히 준비했다. 지역의 의료·바이오 산업과 연계해 교육·연구·진료가 함께 이뤄지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반면 전남광주권은 목포대와 순천대 사이의 유치 갈등을 겪은 끝에 후보를 정했다. 준비 기간과 사업 추진 여건의 차이를 선정 평가에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려되는 점은 정치적 고려가 평가에 개입하는 일이다. 전남광주권에 추가 추천 기회를 부여한 과정부터 공정성(公正性) 논란이 제기된 만큼 정부는 선정 기준과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어느 지역이든 정치적 배려로 혜택이나 불이익을 받는다는 의심을 사면 정책의 신뢰는 무너진다. 지역 간 형평성(衡平性)이란 준비 수준과 의료 수요의 차이를 무시하고 결과를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실제 필요와 사업 역량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진정한 형평성이다.
2026-10-28 05:00:00
[관풍루] 이재명 대통령, 유럽 국가의 대규모 시위에 "근본 원인은 저성장에 있다"며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
○…급여 소득자들, 월급 받은 지 하루가 지나면 평균적으로 급여의 57%만 남고, 닷새 뒤에는 35%, 열흘 후에는 22%, 한 달 후에는 3%만 남는 것으로 분석. 역시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란 우스갯소리가 진짜였네. ○…이재명 대통령, 유럽 국가의 대규모 시위에 "근본 원인은 저성장에 있다"며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 알면 뭐 하나. 경기 침체 해결이라는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니 문제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 자동차 기업을 향해 최대 50%의 관세 인상 가능성을 다시 경고. 캐나다에 50% 관세 물렸다가 그렇게 정치적 역풍을 맞고도 뻑하면 어깃장을 놓긴.
2026-10-28 05:00:00
2026-10-27 18:45:59
[기고-이재홍] 순국선열의 날, 대구의 역사를 다시 기억한다
11월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을 맞을 때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범한 일상은 이름 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순국선열의 날은 과거를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는 날이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은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다. 그런 점에서 대구는 깊이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독립운동의 역사를 품은 도시다. 대표적인 사례는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이다. 일본에 진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으며, 많은 시민이 패물과 재산을 내놓으며 뜻을 모았다.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적 위기 앞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관련 기록물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또한 1915년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가 결성됐고, 1919년 서문 밖 장날에는 3·8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이후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장진홍 의사의 폭탄 의거와 1941년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다혁당 결성 등 다양한 항일투쟁도 이어졌다. 2026년 8월 말 기준 대구의 독립유공자 등록 인원은 227명으로 서울 다음으로 많을 뿐 아니라, 대구형무소 순국자도 225명으로 서대문형무소의 195명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돼 대구가 독립운동의 치열한 역사와 희생을 간직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역사가 시민의 기억 속에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대구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비롯한 관련 유적이 있지만, 자료와 공간이 흩어져 있어 독립운동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고 체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산재한 역사를 모아 시민 누구나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종합적인 역사 공간이 필요하다. 국회에서는 독립기념관 분원 설치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구시도 향후 법 개정에 대비해 분원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분원은 단순한 시설 건립을 넘어 대구와 영남권의 독립운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큰 흐름을 조명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름난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이름 없이 행동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삶과 선택도 담아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사진과 문서, 구술 자료를 수집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한다면 역사는 박제된 과거를 넘어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를 여는 살아 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순국선열의 날은 희생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 정신을 실천으로 잇는 날이다. 독립기념관 분원 건립을 추진하는 일은 오래된 과거를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이름 없는 영웅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대구의 새로운 선택을 시작하는 일이다.
2026-10-27 14:47:45
한국은 2025년 기준 세계 6위의 수출국이자 9위의 수입국이다. 무역의존도가 92.8%에 이르는 전형적인 수출주도형 통상 국가다. 올해는 반도체 수출 호황에 힘입어 수출 1조 달러를 달성하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5위 수출 대국이 될 전망이다. 2026년 9월까지의 누적 수출액은 8천147억 달러로, 이미 2025년 연간 수출액 7천90억 달러를 앞질렀다. 그러나 수출 규모 확대가 곧 통상 강국의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국 수출의 상위 5개국 비중이 2025년 55.7%에서 2026년 63.5%로 높아지면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체 수출의 42%를 반도체가 차지하는 등 수출 품목의 구조적 취약성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교역 상대국 다변화와 통상 생태계 확장을 위해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추진해 온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글로벌 통상 국가가 갖추어야 할 핵심 자산은 국가 차원의 '제도적 신뢰'와 기업 차원의 '거래적 신뢰'다. 제도적 신뢰는 투명하고 일관된 통상정책과 국제 규범 준수를 통해 확보된다. 거래적 신뢰는 공급망 관리, 지속가능 경영, ESG 역량 위에 세워진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농수산업계 반발로 CPTPP 가입 추진이 갑자기 재검토되는 상황은 우려할 만하다. 본격화되던 가입 논의가 국내 정치적 사정에 따라 흔들린다면, 교역국들은 한국의 통상정책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인식할 것이다. 이는 장기적 통상 확대 전략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전 EU 통상집행위원장 피터 맨델슨(Peter Mandelson)은 "정치가 운전대를 잡고 경제가 뒷좌석에 앉을 때, 통상정책은 항상 첫 번째 코너에서 전복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도하개발라운드(DDA) 협상에서 프랑스 등 EU 농업 강국이 자국 농가의 표심을 의식해 농산물 관세와 보조금 인하에 저항하던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한국에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CPTPP는 단순한 관세 인하 협정이 아니다. 일본·호주·멕시코·캐나다·베트남 등 주요 회원국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과 경제 안보 강화를 추구하는 다자간 경제협력 체제다. 유럽 국가 최초로 영국이 12번째 회원국이 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진 CPTPP는 전 세계 GDP의 약 15%를 차지하며, 5억 명 이상의 인구를 포괄한다. 관세 철폐를 넘어 회원국 간 공급망 연계와 협력을 심화하고 있는 이 협정은, 자원이 부족하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통상 파트너로서의 신뢰를 높이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통상 인프라다. 특히 CPTPP 회원국인 멕시코는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거점이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니어쇼어링 전략의 핵심 후보지이자 한국의 10대 수출국이기도 하다. 한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멕시코는 2026년 1월부터 협정 미체결국을 대상으로 1천463개 품목에 대해 최대 50%까지 관세를 인상하는 등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CPTPP 가입을 통한 관세 혜택이 시급한 시점이다. 대러시아 석유제품 수출 문제 역시 국제 규범에 비춰 다뤄져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해당 품목이 국내 수출 통제 품목에 해당하지 않아 국내법상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운송에 투입된 선박이 영국·EU 제재 대상이고, 최종 도착지가 불분명한 상황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국제 사회의 제재 대상 물자를 불법 또는 비공식적으로 운송하는 '그림자 선대(shadow fleet)'가 동원된 수출은, 비록 국내법상 위반이 아니더라도 서방 우방국의 대러 제재 효과를 약화시키고 지정학적 마찰을 초래할 소지가 크다. '신뢰할 수 있는 우방'이라는 한국의 이미지를 지키려면, 우방국들이 공유하는 규범과 제재의 취지에 부합하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정학적 위기의 상시화, 미국 관세정책의 불확실성, 공급망 무기화 속에서 글로벌 통상 환경은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기에 CPTPP 가입 추진 중단과 대러 제재 회피 논란은 한국의 신뢰를 훼손할 위험이 크다. 한국이 단순한 수출 규모를 넘어 글로벌 통상 및 공급망 규범을 선도하는 진정한 '통상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정책의 일관성이 담보된 '제도적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우방국과의 신뢰 확보가 그 출발점이다.
2026-10-27 13:30:00
'우리는 매일 죽는다' 처음 이 문장을 마주하면 지독한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의 신체와 일상은 이미 이 거대한 대자연의 순환 주기를 가장 정직하게 증거하고 있다. 밤이 오면 우리는 잠이라는 고요한 소멸의 심연 속으로 침잠한다. 낮 동안 치열하게 앓았던 번뇌와 집착, 마모된 세포들을 밤의 어둠 속에 온전히 묻는 '매일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오면 눈부신 빛과 함께 눈을 뜬다. 어제의 내가 죽고, 새로운 호흡을 부여받는 경이로운 '매일의 부활'인 셈이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염색체의 끝단, '텔로미어(Telomere)'의 비밀도 바로 이 지극한 순환 속에 숨어 있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는 이 생물학적 시계는, 화가가 화폭 위에 묵직한 필획을 그을 때마다 닳아가는 먹의 길이와 닮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텔로미어의 마모를 막고 수명의 시계를 지켜내는 몸속의 효소가 지구가 자전하는 24시간의 생체 리듬, 즉 밤의 고요한 휴식 속에서만 가장 활발하게 깨어난다는 점이다. 대자연의 주기에 순명하여 매일 밤 온전히 소멸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세포는 비로소 내일을 살아갈 치유의 힘을 얻는다. 이 대목에서 문득 관습적으로 폄하되던 '하루살이의 삶'을 떠올린다. 물속 진흙에서 몇 년이나 되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거친 하루살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 허락받는 시간은 고작 단 하루, 길어야 사흘 남짓의 찰나다. 언뜻 미래가 없는 하루살이의 덧없는 삶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삶의 가장 정직한 정답일지도 모른다. 성충이 되는 순간 입마저 완전히 퇴화시킨 채, 먹지도 않고 오직 날갯짓과 사랑이라는 생의 본질적인 소명에만 온 존재를 던지는 눈물겨운 비행을 한다. 이 지극한 몰입은, 100년 가까이 살아가면서도 늘 내일을 핑계로 오늘을 유예하는 인간의 관성을 부끄럽게 만든다. 결국 인간의 삶 역시 하루라는 고유한 점(點)이 쌓여서 이어지는 선(線)이다. 하루살이가 입을 비우고 날아오르듯, 우리 역시 매일 밤 어제의 묵은 집착을 담담하게 비워내야만 새로운 아침의 거룩한 붓질을 시작할 수 있다. 자본의 속도에 맞춰 밤낮없이 달리는 현대인들은 어쩌면 스스로의 텔로미어를, 삶의 선을 이루는 이 소중한 하루의 점들을 너무 빨리 지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에 목숨을 거는 저 하루살이보다도 더 조급하고 무감각하게 말이다. 화폭 위에 먹물이 닿는 1초의 찰나, 그 순간을 위해 나는 긴 숨을 고른다. 오늘 아침 마주한 하루는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어제의 연장선이 아니다. 어젯밤 담담하게 소멸을 받아들인 내가, 오늘 아침 기적처럼 다시 눈을 떠 온 호흡을 다해 새로 그어내야 할 생(生)의 첫 번째 점이자 가장 눈부신 첫 획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산다'
2026-10-27 10:45:49
[사설] 선례 없고 사퇴했고 근거 없다며 증인 채택 안 하는 청와대 국감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가 29일 열릴 예정이지만 관심을 모았던 김현지 제1부속실장, 김용범 전 정책실장 등은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운영위가 이들을 제외한 채 증인 출석요구안을 여당 주도로 의결해서다. 한병도 운영위원장 등 민주당이 내세운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부속실장이 국감에 나온 선례가 없고, 전직 참모는 사퇴했으며, 야당의 요구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모두 국감의 존재 이유와 충돌한다. 먼저 선례가 없다는 말은 면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국감이 따지는 것은 직책이 아니라 그 자리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이다. 야당이 김현지 실장을 부르려는 것은 '성남·경기 라인 인사 개입' 의혹 때문이다. 야당의 인사 개입설이 사실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국회의 확인이 필요하다. 더욱이 대법원장을 일반증인으로 채택했던 여당이 선례를 운운하며 김현지 실장의 출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법사위는 '이번에는 사안이 다르다'며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었다. 김용범 전 실장 증인 제외 이유도 그렇다. 급격한 증시 변동 원인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과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하는 국회가 사퇴했다고 증인에서 제외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ETF를 둘러싼 투자자 손실 논란이 이어지는 만큼 국회는 김 전 실장이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해야 할 책무가 있다. 사퇴가 면책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근거가 없다'는 것도 증인 제외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국감은 확정된 사실을 낭독하는 곳이 아니라 제기된 의혹을 검증하는 자리다. 근거를 먼저 대라는 요구는 국감의 순서를 뒤집는 것이다. 의혹이 허구라면 직접 나와 답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명이다. 출석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인데 증인 채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의혹을 더 키우고 있다. 여당이 특정 인물을 보호하려는 것으로 비칠수록 그 비용은 결국 정권이 치른다.
2026-10-27 05:00:00
[사설] CPTPP 가입 갈등·부작용 해결이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한 '농어민과의 대화'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과 관련 "제 임기 안에 최종 타결이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면서도 "대한민국 국가 전체를 위해서는 일부 비난, 비판이 있더라도 해 놔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올해 안에 가입 신청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方針)을 재확인하면서도 우리는 무역 국가인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가입에 필요한 절차는 진행해야 한다로 풀이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한민국은 무역에 의존(依存)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수출 시장 확대를 위해 FTA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농지 전수조사로 농민 반발이 거센 가운데 CPTPP 가입 추진으로 반발이 더욱 거세자 이달 6일 "원점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26일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가입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농어민 피해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겠다'에 방점(傍點)을 찍었다. 성난 농어민을 달래는 동시에 국익을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CPTPP 가입 시 제조업 생산 유발 효과는 15년간 연평균 6조3천억~6조7천억원이다. 다만 농산물 관세 철폐율이 90% 이상으로 다른 FTA(관세 철폐율 70%대)보다 높아 농어업 생산은 연평균 7천900억~8천5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입장에서 CPTPP 가입은 '찬반 논쟁'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가입이 늦어질수록 수출 경쟁력(競爭力)은 떨어진다. 또 CPTPP는 이미 가입한 나라의 개별 동의(만장일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신청이 늦어질수록 가입 절차(節次)가 복잡해진다. 문제는 농어민 피해다. 논의의 초점은 CPTPP 가입 찬반이 아니라 개방에 따른 농어민 우려 및 피해 최소화와 수출 이익 최대화에 맞춰져야 한다. 갈등 조정, 피해 최소화, 경쟁력 강화 등 국가적 범위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부와 대통령의 역할이다.
2026-10-27 05:00:00
[사설] 300배로 벌어진 주택 자산 격차, 주거 사다리 복원 시급하다
자산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가 보유·거주하는 주택 가격 격차가 300배에 육박하며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가데이터처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 하위 20%(1분위) 가구의 자가 거주 주택 평균 가격은 239만 원으로 1년 새 9.1% 하락한 반면, 자산 상위 20%(5분위) 가구는 6억9천341만 원으로 7.7% 올랐다. 이로 인해 두 집단 간 주택 가격 배율은 290.1배로 벌어졌고, 전체 자산 격차 역시 68.6배로 커졌다. 부동산을 매개로 한 자산 양극화가 날로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격차 폭증의 가장 큰 원인은 하위 계층의 자가 거주 비율 급감과 상위 계층의 자산 가치 상승이 겹쳤기 때문이다. 자산 1분위의 자가 거주 비율은 6.6%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고가 아파트 가격 상승은 상위층의 자산 보유액을 대폭 끌어올렸다. 거주 주택 외에 상위층이 보유한 임대·투자용 부동산까지 합산할 경우 실제 체감하는 자산 불평등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자산 양극화가 부의 세습(世襲)과 신분 고착화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病弊)가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가계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집중된 한국 경제의 특성상, 주택 자산의 불평등은 청년·신혼부부 등 미래 세대의 주거 사다리를 완전히 끊어놓고 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솟구치는 집값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망감(絕望感)은 노동 의욕을 꺾고 저출생과 인구 감소를 가속화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그동안의 집값 잡기식 단기 대책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주거 안정과 자산 양극화 해소를 위한 종합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주거 취약계층과 무주택 서민을 위한 실효성 있는 주거 안정망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분양 및 장기 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임차 가구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2026-10-27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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