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2 18:51:26
교정을 거닐다 나무에서 떨어진 모과를 주워 연구실에 두려고 몸을 숙였다. 들풀 사이 개미와 벌레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또 다른 세상이다. 문득 다큐멘터리에서 본 쇠똥구리 영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작은 생명체는 제 몸무게의 천 배나 되는 거대한 똥구슬을 굴리는데 머리를 땅으로 처박고 오직 뒷발로만 밀어낸다. 그렇기에 정작 나아갈 앞은 보지 못한다. 거꾸로 매달려 맹목적으로 전진하는 고독한 뒷모습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한 치 앞의 미래를 모른 채 걸어가는 우리 인간의 숙명이 겹쳐 보였다. 여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미끄러지고, 거친 풀숲에 막혀 돌아서야 한다. 이 지독한 짐을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쇠똥구리의 길은, 저마다의 상처와 수고를 지닌 인간의 삶이자 고독한 구도(求道)의 길과 다름없다. 이 미물의 걸음이 경외감을 주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길을 완전히 잃었을 때이다. 앞을 보지 못해 방향을 잃으면, 쇠똥구리는 구슬 위로 훌쩍 올라선다. 그리고 제자리를 돌며 오직 하늘을 우러러본다. 낮에는 태양의 각도로, 밤에는 은하수의 미세한 별빛 띠를 나침반 삼아 목적지를 찾아낸다. 가장 낮은 진흙탕에서 오물을 굴리지만, 삶의 방향만큼은 가장 높은 곳의 빛에서 구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고난의 한복판에서 땅 위의 집착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삶의 근원적인 이정표를 구하는 성찰이자 영성의 발현이다. 화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쇠똥구리의 섭리는 또 다른 생명의 신비로 이어진다. 수묵화의 먹은 불에 타고 남은 '재'를 모아 만든 것이다. 시커멓게 탄 재는 인간이 지은 허물과 상처일지 모른다. 쇠똥구리가 배설물을 뭉쳐 새 생명을 키워낼 요람을 빚듯, 화가는 불에 탄 재를 별빛에 갈아내듯 먹을 갈아 화폭 위에 뜻을 담은 붓질을 한다. 소멸했던 재가 화가의 손길을 거쳐 생명으로 부활하는 예술적 구원의 순간이다. 게다가 땅속 깊이 묻힌 이 구슬은 숲의 뿌리인 균사체를 키워내며 대자연을 푸르게 이어주는 상생의 시작점이 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거운 짐을 굴리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여정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둔 마지막 순간이다. 둥지로 짐을 밀어 넣기 직전의 그 가파르고 고독한 마지막 순간은 온 힘을 쥐어짜내야 하는 가장 어려운 고비다. 삶의 깊은 고난의 끝에서 마주하는 마지막 숨결처럼 말이다.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고 싶을 때 잠시 삶의 짐 위에 올라서서 밤하늘의 은하수와 태양을 바라보자.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높은 빛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있다면, 우리는 그 힘겨운 마지막 순간의 고개마저 넘어서게 된다. 고통의 재를 담아내어 저마다의 붓질로 생명의 궤적을 그려가는 삶의 주인이 되기를 축원해 본다.
2026-10-12 18:31:17
[윤명철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와 문화] 유라시아로 흩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
국가가 멸망해도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포로로 끌려가고, 복국을 꿈꾸며 탈출하고, 바다와 초원을 건너 낯선 곳에 정착한다. 7세기 동아시아 국제대전 이후 고구려·백제 유민들은 요동과 만주를 넘어 황하의 서쪽 변경, 몽골초원, 티베트고원 부근과 일본열도까지 흩어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삼국의 멸망과 신라의 통일을 전쟁의 승패, 왕조와 영토의 변화로 설명했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국경선에만 남지 않는다. 흩어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으며, 어떻게 살아남았고, 정착한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 필자가 전근대 한국사에 디아스포라라는 관점을 적용해 온 까닭이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이산과 난민 뿐 아니라 정착과 재결집, 새로운 관계망의 형성까지 살피는 개념이다. 각각의 이동 동기는 구분해야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국가가 사라진 뒤에도 주민의 경험과 기술,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설명했다. 660년 백제의 멸망, 663년 백강(백촌강)전투에서 백제·왜 연합군의 패배, 668년 고구려의 멸망에 이어 신라는 당과 7년 동안 '나당전쟁'을 벌였다. 당이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렸다고 동부 유라시아가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서쪽에서는 '토번국(티베트)'이 청해와 서역(중국 신장지역)의드)의 교통로(실크로드)를 두고 당과 충돌했고, 670년에는 대비천에서 당군을 대패시켰다. 북쪽에서는 682년 무렵 제2돌궐 카간국이 부흥했으며, 요서에서는 '거란'과 '해'가 활동했다. 만주에는 여러 말갈 집단과 고구려 유민들이 다수 남아 있었다. 전쟁의 종결은 또 다른 세력 경쟁과 주민 이동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은 정복한 땅의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일부를 군사조직에 편입시켰다. 반대로 변경의 유목세력과 지역집단은 당의 지배력에 도전했다. 한쪽에서는 주민의 강제 이산이,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결합이 진행됐다. ◆ 중국 오지로 끌려가는 고구려 유민들고구려인의 강제 이주는 멸망 전부터 시작됐다. 645년 당 태종이 침공했을 때 요동성 등에서 포로가 발생했다. 668년 평양성 함락 뒤에는 보장왕과 왕족·귀족, 장수와 관리들이 장안으로 압송됐다. 이듬해 당은 대규모의 주민을 강제 이주시켰다. 《구당서》는 2만 8200호, 《자치통감》은 3만8천200호, 《삼국사기》는 3만8천300호로 기록한다. 《신당서》의 3만이라는 수치와도 차이가 있다. 호수와 인원 단위가 다르므로 정확한 총인구를 단정할 수 없지만, 수많은 가족이 고향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들은 회하와 양자강 사이인 강회(江淮)·호북성과 사천성의 중경 일대인 산남(山南)·산서성의 태원 일대인 병주(幷州)와 감숙성의 무위 일대인 량주(涼州)의 서쪽 등 오지로 옮겨졌다. 고구려의 복국시도들을 막는 한편 노동력과 변경을 방어하는 인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677년에 당은 보장왕을 요동도독·조선왕으로 임명해 고구려유민들의 저항을 무마하려 했었다. 그러나 보장왕이 말갈과 연계해 재건을 모색하자 다시 사천성 청두 근처의 공주(邛州)로 유배했다. 주민의 일부도 하남(하남성)과 지금의 감숙성과 청해성 동부에 걸친 광대한 변경인 농우(隴右)로 옮겼다. 당의 서북 변경에는 고려병(高麗兵)이 활동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산동과 황토고원, 티베트고원 인근까지 고구려인의 발자취가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고구려의 역사와 조상들의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새삼 깨닫게 한다. 우리는 감숙과 청해를 실크로드의 역사 공간으로, 사천은 유비와 제갈공명의 촉나라의 옛 땅으로만 기억한다. 사슬과 밧줄에 묶인 그들은 가족들의 생사조차 모른 채 황토고원의 거센 바람을 맞고, 수많은 산과 강을 건넜을 것이다. ◆또 다른 운명을 개척한 고구려 유민들이주민들의 운명은 서로 달랐다. 어떤 이는 포로와 노비가 됐고, 어떤 이는 황무지를 개척하거나 당의 변경군에 편입됐다. 8세기 중엽 고구려계 군인 고선지는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 힌두쿠시산맥을 넘나들며 당의 서역전쟁을 지휘했다. 또한 안사의 난 이후 산동에서는 고구려계 이정기 일가가 강력한 군사·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이납은 782년 제왕(齊王)을 칭했다. 이들은 고구려를 복국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의 정치·군사 질서 속에서 독자적인 역사를 만든 인물들이었다. 몽골초원의 돌궐로 향한 사람들도 있었다. 고구려계 고문간은 제2돌궐의 묵철가한의 사위가 되어 '고려왕 막리지'라 불렸다. 고공의 등도 유민집단을 이끌었다. 715년 이들이 돌궐에서 당으로 귀부한 사실은 고구려계 세력이 초원정치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제2돌궐의 성장에 미친 영향은 연구할 문제이지만, 건국에 직접 참여했다는 주장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고구려인의 활동 무대를 만주에 가둘 수 없는 까닭이다. 고향과 그 주변에 남은 이들은 적극적으로 복국을 시도했다. 670년에 검모잠은 남쪽에서 고안승을 왕으로 추대해 저항했고, 보장왕도 요동에서 옛 주민을 규합했다. 그런데 696년 거란의 이진충이 '영주(조양 일대)'에서 당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자 걸걸중상과 말갈계인 걸사비우는 유민들을 모아 전투를 벌였고, 이어 대조영은 이들을 결합해 당나라와 전투를 벌이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고구려 유민들은 이렇게 이산과 저항을 하면서 동아시의 질서재편에 역할을 하는 한편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토대와 힘을 갖춰갔다.(《고구려 해양사연구》) ◆신흥 일본국 건설에 참여한 백제 유민들백제인들에게도 멸망은 대규모 이산과 망명, 난민이라는 상황을 만들었다. 660년 음력 9월 의자왕과 왕족·신료·군인·백성들이 당나라로 끌려갔다. 《삼국유사》는 압송된 사람을 1만2천807명으로 전한다. 복신·도침·부여풍 등이 부흥전쟁을 벌여 한때 당군과 신라군에 맞섰지만, 663년 음력 8월말에 벌어진 백강(백촌강) 전투와 주류성 전투에서 패배했다. 유민의 일부는 퇴각하는 왜의 배에 올라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이름이 끊어지고 조상들의 무덤을 다시 찾지 못하게 됐다는 기록이 실렸다. 또 665년에 백제인 400여 명, 669년에는 700여 명이 오미(시가현 비파호 부근)에 정착했다는 기록도 있다. 백제와 왜는 4세기 후반부터 왕실과 귀족, 승려와 기술자들을 통해 긴밀하게 교류했다. 백제 유민은 이 인적 기반을 활용해 새 사회에 정착했다. 배를 타고 건넌 사람들 가운데는 군인과 관리, 승려뿐 아니라 생활 기술을 가진 장인과 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본 조정이 필요로 하던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피난민이나 개척민에 머무르지 않았다. 왜국은 당·신라의 공격에 대비하여 규슈와 세토내해의 방어체계를 강화했다. 이 때 다자이후의 수성(水城)과 조선식 산성들을 건설하는 일을 주도한 백제계 귀족인 여러 달솔들과 기술자들은 축성술과 군사조직·행정 경험 등을 전했을 것이다. 일본이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에 걸쳐 '일본국'이라는 국호와 율령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확립하는 데에도 한반도계 주민들의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었다. 물론 이 변화는 일본 내부의 개혁과 당의 제도 수용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그들의 기여는 문화에서 더욱 뚜렷했다. 백제가 전한 불교·건축·조각·공예는 이미 아스카 문화의 형성에 깊이 참여했다. 나라시대에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불교미술과 학문이 크게 발전했다. 일본 고대문화의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백제계인 승려 행기(行基)는 민중에게 불교를 전하고 다리와 저수지 건설에 참여했으며, 도다이지 대불 조성을 돕고 대승정에 올랐다. 승려 양변(良弁)은 도다이지의 성립과 발전에 힘썼고, 기술자 가문 출신인 국중공마려(國中公麻呂)는 대불의 주조를 맡았다. 왕족 출신인 경복(敬福)은 749년 무쓰국에서 생산된 황금 900냥을 바쳐 대불의 도금에 기여했다. 신흥 일본의 국책사업인 동대사와 대불의 완성은 백제계 후손들의 지식과 기술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결과물이다. ◆일본국과 모국인 고구려(발해)를 이어준 고구려유민들고구려계 주민도 일본에 정착해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속일본기》에 따르면 716년 일본 조정은 흩어져 살던 고구려계 주민 1천799명을 무사시국에 모아 고려군(高麗郡)을 설치했다. 지금의 사이타마현 히다카에는 약광(若光)을 기리는 '고마(高麗)신사'가 남아 있다. 고구려계 소나씨의 후손들은 고려조신(高麗朝臣)이라는 성을 받았으며, '고려조신대산'은 761년, '고려조신전계'는 777년에 일본의 발해 외교에 참여했다. 일본에 정착한 고구려계 가문이발해와 일본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구체적인 사례다. 일본의 미술에도 고구려와 이어지는 흔적이 많다. 나라현 아스카의 다카마쓰총(高松塚)·기토라(キトラ) 고분에 그려진 사신도·인물도와 천문 표현은 무덤 구조와 함께 고구려 고분과 매우 연관이 깊다. 이미 6세기 말부터 7세기 초에 걸쳐 고구려계 승려 혜자·혜관·담징 등의 활동과 호류지(법륭사) 등 초기 불교미술의 전개를 함께 살펴보면, 일본 문화가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인적·문화적 교류 속에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신라인의 이동은 망국의 유민과 달랐다. 나라가 존속한 가운데 사신과 승려, 유학생·상인·선원들이 당과 일본에 진출했다. 산둥과 대운하 주변의 신라인 공동체는 통역과 교역, 운송과 종교활동을 통해 고향과 이주지를 연결했다. 9세기 장보고는 이런 인적 기반을 조직하여 신라·당·일본 사이의 해상 무역망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동아지중해 국제개전의 결과는 한민족을 강제 이산에서 자발적 이동, 시대와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로 동부 유라시아 세계로 확대됐다. ◆디아스포라로 보는 역사국가 중심의 역사에는 국경 밖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로를 추적하면 전쟁의 결과가 달리 보인다. 당의 변경군과 노예로 편입된 고구려인, 돌궐 정치에 참여한 유민, 일본국의 성곽들과 대불을 만든 백제계 인물, 발해와 일본을 왕래한 고구려계 사신, 바다를 누빈 신라인들은 새 국제질서에 참여했다. 그들은 몸과 함께 조국이 오래 축적해 온 지식과 기술, 신앙과 기억, 인적 관계까지 이동했다. 고구려와 백제는 멸망했지만 그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는 다른 나라에서 새 역사를 만들었고, 일부는 옛 국가의 회복을 꿈꾸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옛 영역에서는 698년 훗날 발해로 이름을 바꾼 또 하나의 고구려가 탄생했다. 그 건국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이산·탈출·재결집을 거쳐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부활시키는 과정이었다. 옛 땅을 회복한다는 '다물'의 역사적 지향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의 세계와도 연결된다. 현재 약 800만 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들이 세계 곳곳에서 살아간다. 중국·일본·중앙아시아와 미주를 비롯해 그들이 정착한 지역도, 떠난 이유와 시기도 서로 다르다. 고대의 강제 이주와 현대의 이민을 같은 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낯선 사회에 적응하면서 고향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한다는 점은 함께 생각할 가치가 있다. 재외동포는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이 아니라 거주국의 구성원이자 독자적 삶의 주체이다.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상실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이동한 한민족들이 어떻게 새 공동체를 만들었는지 이해하고, 오늘의 공존과 협력, 미래의 유라시아 연결 가능성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대 교수
2026-10-12 13:43:57
[사설] 정년 연장 논의, 세대 간 충돌 피하려면 '일본식 재고용' 참고해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11일 일본의 고령자 고용 정책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일률적인 법정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 중심의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提言)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고령자 고용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과제지만, 임금체계 개편이나 노동유연성 확보 없이 법정 정년만 무작정 늘릴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청년 일자리 위축이라는 거센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면서 고령자 고용 제도를 안착시킨 일본의 지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 고령자 고용 확대를 추진하면서 법정 정년을 60세로 고정한 채 '재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중 하나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대다수 기업은 재고용 제도를 택했고, 노사는 경영 환경을 감안해 선별 기준을 도입하는 등 타협안을 모색(摸索)했다. 근로자는 임금 삭감을 일부 수용하고, 기업은 65세까지의 단계적 고용을 보장하며, 정부는 임금 감소분을 일부 보전하는 등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했다. 2000년 노력 의무화로 시작해 2025년 희망자 전원 재고용 적용에 이르렀다. 반면 우리의 노동 시장은 여전히 경직된 고용 구조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정 정년을 65세로 일률 연장한다면,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청년층 구직 장기화와 '쉬었음' 인구 급증이라는 심각한 청년 취업난을 겪고 있다. 노동 시장의 체질 개선 없는 무리한 정년 연장은 고령층과 청년층 간의 '일자리 제로섬 게임'을 부추기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한층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고령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도 청년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재고용 중심의 유연한 고용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노동계 역시 일률적인 정년 연장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고용 유지와 직무·임금체계 유연화를 주고받는 현실적인 타협에 나서야 한다. 노사정이 자율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상생(相生)의 지혜를 모을 때다.
2026-10-12 05:00:00
[사설] 여권 내부 분열에 외교 갈등까지…SNS 골몰할 때 아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일 임은정 광주지방중수청장에 대한 감찰 착수를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를 공개 비판해 온 것이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김 후보자를 직격해 온 추미애 경기지사 등을 겨냥한 듯 "서민들의 혈세로 온갖 호사는 다 누리면서 힘없는 서민들에는 더 가혹하고, 소액의 서민 복지 예산을 거리낌 없이 삭감하는 사람들…"이라며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앞서 9일에도 "인사나 국가정책까지 자기 뜻대로 하려다가 잘 안 되니 대의명분 삼아 급진 개혁을 내세우며 내부 공격을 한다"는 글을 게시한 바 있다. 추 지사는 일곱 번이나 반대 입장을 밝혔고, 김용민 의원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심각한 상황이다. 대미 관계 등 바깥 상황도 악화 일로(惡化一路)다. 합참의장은 8일 국감에서 미국과의 북핵 정보 공유가 일부 제한되고 있다고 인정했고, 국정원 직원들의 미국 비자 발급과 외교관 신분 승인이 보류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 6월 열린 한미일 사이버 안보 실무그룹회의에서는 미국 측의 배제 요구로 국정원 관계자들이 회의에 참석조차 못 한 사실도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와는 북한군 포로 이송의 비공개 합의를 둘러싼 공방 끝에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불러들이는 등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어려울수록 SNS로 직접 소통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11일에도 글을 올려 계정 차단 논란을 해명하며 SNS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듭된 경고에도 여권 내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은 것은 메시지만으로는 수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집안싸움에 여권이 분열되고 외교 갈등에 동맹과의 관계도 위태로운 내우외환(內憂外患) 상황이다. SNS에 골몰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SNS 메시지가 아니라 장관들의 엇갈린 발언을 정리하고 한미 정보 협력을 복원하며 인선 논란을 청문회로 매듭지을 단호한 결정과 행동이다.
2026-10-12 05:00:00
[사설] 북에 이용당하고 한미동맹까지 흔든 정동영 통일부 장관
국무위원의 말 한마디가 외교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북한의 도발(挑發)에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동맹국 미국과는 불필요한 마찰을 빚으면서 정작 북한으로부터는 조롱과 거부를 당하고 있다. 지난 8일 유엔에서 벌어진 일은 대북·외교 정책의 참사(慘事)다. 차지훈 주유엔 대사는 유엔총회에서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이 북한군의 의도적인 매설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며,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을 규탄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 대표는 정 장관의 발언을 끌어와 반박했다. 정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지뢰 폭발을 북한의 고의적 공격으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한 발언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장도 "정동영도 스스로 고백했다"며 북한의 책임을 회피했다. 정 장관의 발언이 외교 무대에서 북한의 선전(宣傳)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합동 조사 결과와 군 장병 3명의 부상이라는 엄중한 현실 앞에서 정 장관은 북한의 책임을 흐리는 발언을 했다. '평화'란 명분이 국민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더구나 북한은 정 장관의 대화 제의에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망상"이라고 일축하고, 조롱을 퍼부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 북한도 화답할 것'이란 기대가 허망(虛妄)한 일인지 몰랐던가. 한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정 장관이 지난 3월 국회에서 북한 구성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언급한 뒤, 미국의 정보 공유 제한 논란이 불거졌다. 정보 협력 경색(梗塞)과 안보 공조의 균열을 우려하는 보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적'을 '위협'으로 바꾸고, 남북 관계를 '두 국가'로 규정하자는 그의 주장도 우려스럽다. 대화와 긴장 완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호칭을 바꾸고 적대의 언어를 거둔다고 북한의 핵과 도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는 선의(善意)의 표현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억지력과 원칙, 동맹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입장을 대신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2026-10-12 05:00:00
[관풍루]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11일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를 비판한 임은정 광주중수청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
○…"품격 없다 권위 없다 비난하겠지만 SNS 계속할 것"이라던 이재명 대통령, 11일 엑스에 "서민 혈세로 호사 누리면서, 소액 복지 예산 삭감하는 사람들"이라며 추미애 경기지사 겨냥한 듯 글 올려. 여권 분열 진원지는 대통령?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11일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를 비판한 임은정 광주중수청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 사냥개의 운명은 결국 가마솥, 그래서 토사구팽은 만고(萬古)의 진리. ○…더불어민주당, 한동훈 무소속 의원을 겨냥 "딸 논문 케냐인이 대신 썼나"라면서 연일 공세. 고소·고발, 국정조사·특검이 전문(專門)인 민주당이 왜 한동훈에겐 의혹만 제기할까.
2026-10-12 05:00:00
2026-10-11 18:42:38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시작된 검찰개혁은 '검수완박'을 거쳐 마침내 검찰 폐지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조직이 어떻게 바뀌든 그동안 검찰이 수행해 온 공익 수호자(public attorney) 기능은 유지되어야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 부와 권력 앞에 희생되는 일이 생긴다면 이번 검찰 폐지는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평가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입만 열면 검찰의 조작 기소를 폐지의 이유로 들었다. 과연 그런가. 70년 검찰 역사에 조작 기소가 왜 없었겠나. 특히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전에는 권력에 의한 조작 기소가 적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많았어도 검찰이 수행한 공익 수호보다 많을 수는 없다. 조작 기소의 뒤에는 반드시 정치권력이 있었기에 조작의 주체는 권력이지 검찰이 아니었다. 또 조작에 가담한 극소수 검사들 때문에 검찰을 폐지해야 한다면, 조작 수사가 수없이 드러난 경찰은 폐지해도 진작에 폐지해야 했을 것이다. 조작의 대상이 오로지 대통령과 민주당 관련자들뿐이라는 것도 해괴한 일이다. 검찰의 조작이 왜 민주당 관련 사건과 관련자들로 한정됐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조작 주장 자체가 타당성을 잃는다. 백보를 양보해 조작됐다고 해도 그 진위는 결국 법원에서 판사에 의해 최종 판단되어야 한다. 만일 조작됐다면 당연히 공소는 기각될 것이다. 그것이 삼권분립을 보장한 근본 이유다. 그런데 검찰 폐지 과정에서 조작 여부의 판단은 대통령이 직접 했고, 민주당 의원들이 맞장구쳤다. 그것도 자기들이 기소된 사건들에 대해서만. 결국 형사 피고인들이 자신의 범죄를 기소한 검찰을 폐지한 것이다. 법원에서는 여러 특검이 기소한 사건들이 무죄 판결이 나고 있다. 판결은 판사의 몫이고, 특검이 만능은 아니니 그럴 수 있다. 대통령의 논리를 따르면 이것들도 모두 조작 기소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특검은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 대장동 사건의 1심 판결에 피고인의 이익을 따라야 한다면서 항소 포기를 강요한 대통령이 왜 1심 혹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윤석열을 비롯한 피고들의 사건은 항소 또는 상고하게 두는가. 왜 대통령과 민주당이 기소된 사건은 조작 기소이고, 전 대통령이나 그 가족, 오세훈, 추경호 등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기소된 사건은 정당한 기소인가.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조작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번 검찰 폐지야말로 권력의 형사사법 체계 장악을 공식화한 최악의 결정이다. 검찰 폐지 후 열흘이 넘었어도 아직 조직 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초대 공소청장과 중수청장(후보자 지명)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경찰청장은 1년 넘게 공석이다. 조직의 안정화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건 수사와 국민 보호의 책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발생할 수사 및 기소 지연의 피해는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대통령은 지난 10월 6일, 제43회 국무회의에 새로 출범한 공소청장·중수청장·경찰청장 직무대행들을 배석시켜 일장 훈시를 했다. 그들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수사 및 기소를 책임진 기관의 장을 대행하는 사람들로서 대통령과 정치의 영향력은 마땅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국무회의에 배석시켜 받아쓰기를 시킨 대통령의 인식은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대통령이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과 다름이 없다. 검찰이 때때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권력기관보다는 독립적이었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한 준사법기관으로서의 검찰총장이라는 직책 때문이었다. 역대 검찰총장들은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서슬 퍼런 검찰에 의해 수사되고 기소된 부패 정치인들이 수없이 많았고, 그것이 곧 국민과 국익을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검찰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찰을 폐지한 나라도 없다.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나라는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폐지의 최종 책임은 그를 선택한 국민에게 있다. 두고 보자. 검찰 폐지가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최악이었는지.
2026-10-11 18:30:00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고, 부산에서는 영화제가 시작됐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에 이어, 올해는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를 개막작으로 지난 6일 막을 올렸다. 한국 3대 영화제라고 하면 봄의 전주국제영화제, 여름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을의 부산국제영화제가 먼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로 4년째 개근 중인데 매년 수많은 사람으로 활기가 넘친다. 영화제에 가면 평소 영화관을 찾는 것과 다른 설렘이 있다. 보고 싶던 영화를 누구보다 먼저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점도 좋지만, 평소 좋아하던 감독과 배우를 관객과의 대화(GV)나 야외 무대인사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영화제만의 매력이다. 굿즈를 구경하고 행사 부스도 둘러보다 보니 하루가 짧았다. 그동안 주말이 지난 평일에 영화제를 찾았던 터라 미처 즐기지 못했던 체험을 이번에는 하나씩 즐겼다. 생각해보면 이 역시 하나의 축제다. 지난번 축제에서 '지역'은 뭘까 고민했던 칼럼이 떠오른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초창기 남포동 쪽에서 시작해 현재는 영화의 전당이 있는 센텀으로 중심을 옮겼다. 지금은 남포동에서 '커뮤니티 비프'를, 부산 곳곳에는 '동네방네 비프'를 진행하고 있다. 관객이 만드는 프로그램부터 야외 상영까지 각각의 특색을 갖추면서도 영화제라는 큰 틀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올해로 31회를 맞은 축제는 이제 확연한 자기 색깔을 갖춘 듯하다. 문득 공연 축제를 기획할 때 만났던 한 관객의 말이 떠오른다. 같은 시간에 여러 공연이 있으니 놓치는 공연이 많다는 하소연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영화로 시간표를 짜다 보니 그때 관객의 마음이 살짝은 이해가 가면서도, 정해진 대관과 구성이라는 현실적인 조건을 알다 보니 주최 측의 고충도 이해가 갔다. 기획자로서는 정해진 제약 안에서 프로그램을 배치하지만, 관객에게는 그 시간표가 축제 전체의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축제에는 늘 선택이 따른다. 그것은 만드는 기획자도 즐기는 관객도 마찬가지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만큼 영화관 밖에서 보낸 시간도 즐거웠다. 영화 상영이 영화제의 중심이라면, 그 주변에 놓인 경험들은 축제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기획자가 축제를 만들 때 단순히 성과뿐 아니라 관객이 축제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지 세심하게 생각한다면 조금 다른 질문이 생길지 모르겠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했는가를 넘어, 관객이 그 안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돌아가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2026-10-11 06:46:03
[사설] 한국 '러' 석유 지원설, 국제적 고립 도화선 우려된다
영국 가디언이 선박 추적 자료 등을 분석해 '올해 7~8월 울산·여수 등 한국 항구에서 유조선 7척이 14차례에 걸쳐 17만6천 톤 이상의 경유 등 석유 제품을 싣고 러시아로 향했다'고 보도하면서 국제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한국이 러시아 연료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서 의혹(疑惑)을 사실화하고 있다. 우-러 전쟁으로 국제적 대(對)러 제재가 시행되는 만큼, 러시아 지원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또는 미국·EU(유럽연합)처럼 독자 제재 법안을 마련한 국가들로부터 '관세 최고 100% 부과' 등을 당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거래 주체와 원산지, 최종 구매자 등 핵심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개별 거래를 근거로 한국이 러시아의 연료난과 정제 능력 상실 효과 완화에 도움을 줬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부적절하다"고 했다. 명확하게 '러시아에 석유류를 제공한 적이 없다'고 확인(確認)하는 게 아니라, 에두른 표현이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어서 대단히 부적절하다. 특히 '북한군 포로 한국 송환' 관련 비공개 합의 위반 여부로 한-우 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한국이 러시아에 석유를 제공했는지 여부는 국제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지원은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 및 러시아의 뒷배가 되고 있는 중국 등과 함께 한국이 반(反)자유주의 진영에 서고 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는 이재명 정부를 친중(親中)으로 규정하고 면밀한 모니터링 필요성을 미 국무부에 강조했고, 쿠팡 관련 국정원 요원과 주미한국대사관 파견 국정원 직원 등의 미국 비자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의 미국 방문까지 거부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상상 이상으로 깊다는 의미이다. 어떤 진영으로부터도 신뢰받지 못하는 애매하고 모호한 줄타기 외교는 자칫 국익을 크게 해치고 국가의 운명을 나락(那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2026-10-09 05:00:00
[사설] 공수처 만든 손으로 공수처 권한 빼겠다는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대상을 판·검사와 경찰 등 사법 공직자로 축소하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경찰에 넘기는 방안 추진에 나섰다. 그제 관련 토론회를 연 법사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다음 달 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할 방침이다. 공수처는 2021년 민주당이 국민의힘 반대에도 출범시킨 기관이다. 명분은 최고 권력까지 성역 없이 수사하는 독립기구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수사를 떼어내겠다고 한다. 난리 끝에 만든 기관의 존재 이유를 만든 쪽이 스스로 뒤엎는 격이다. 더 큰 문제는 수사 권한이 옮겨 가는 곳이다. 중수청과 경찰은 행정안전부 소속이고 그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민주당의 작품인 공수처조차 대통령 지휘 계통(系統)의 기관에 수사를 맡기는 것은 견제 구조의 퇴보(退步)라고 반발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도 행안부 장관 지휘를 받는 중수청이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여당 의원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수사 대상 중복과 공수처의 부진한 성과다. 한 의원은 무능하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무능이 문제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역량 강화다. 그럼에도 공수처가 지난 8월부터 요구한 정원 확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수사 대상을 줄인다고 한다. 설사 수사 대상이 중복된다 하더라도 정리 방향이 틀렸다. 대통령과 고위직 수사는 정부 지휘 계통 밖의 독립기관이 맡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당은 반대로 독립기관의 대상은 줄이고 정부 산하 기관의 몫을 키우려 한다. 공수처법이 고위공직자로 가장 먼저 꼽은 이도 대통령이다. 최근 검찰청이 폐지되고 중수청과 공소청이 정식 수장(首長)도 없이 출범했다. 이어 공수처 수사 권한까지 옮기려고 한다. 권력 수사의 신뢰는 수사 대상과 수사기관 사이의 거리에서 나온다. 그 거리를 좁히는 개편을 개혁이라 부를 수 없다. 민주당은 발의에 앞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수사의 독립성을 어떻게 담보할지부터 답해야 한다.
2026-10-09 05:00:00
[사설] "5·18에 관해 어떤 질문도 의문도 갖지 말라"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發議)한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나경원·김태규 의원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 원내대표는 유공자 명단 공개는 개인정보 침해와 2차 가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와 그 자녀는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학 입시, 공무원·공공기관 취업 및 인사상 우대 등 지원을 받는다. 금전 보상(補償)과 대학 및 대학원 수업료 면제, 의료 혜택, 주거 지원, 금융 및 세제 혜택 등의 지원도 있다.(단 유공자의 구분 및 상이등급, 등록 시점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음) 법적·제도적 행위는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피해 배상의 경우 배상해야 할 행위의 범주(範疇), 피해 크기, 시효(時效) 등이 명확해야 한다. 국가유공자 역시 대상과 근거, 범위가 분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5·18 가짜 유공자' 의혹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예산과 제도로 지원하는 만큼 가짜 유공자가 있다면 가려내야 마땅하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은 독재에 저항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5·18을 둘러싼 민주당의 행태(行態)는 그와 정반대다. '5·18 왜곡 처벌법'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더니, 조롱·모욕을 처벌하는 법도 만들겠다고 했다. 날짜를 세심히 챙기지 못한 스타벅스의 '탱크 데이 텀블러' 행사를 '저질 장사치의 막장 행태'로 몰아 불매운동을 펼쳤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철없는 응원'을 문제 삼아 진로를 막았다. 그러더니 이제 '5·18에 관해서는 어떤 질문도 하지 말라'며 국회의 학술활동·입법활동까지 틀어막고 처벌하겠다고 한다. 5·18 옹호(擁護)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립시키는 것이다. 5·18 유공자들과 광주 시민들은 민주당의 이런 행태가 국민에게 5·18을 어떤 모습으로 비치게 하는지, 5·18 정신을 얼마나 훼손(毁損)하는 짓인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2026-10-09 05:00:00
[관풍루]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으로 징역 7년 8개월 확정된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석방해 달라'며 강한 불만 표출했다는데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으로 징역 7년 8개월 확정된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석방해 달라'며 강한 불만 표출했다는데. 맡긴 돈 내놓으라는 듯 이토록 당당하게 가석방 요구하는 배경에는 분명 뭔가 있겠군. ○…'미래' 위해 만든다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에 기본소득 시범사업부터 장·차관 관사 확보까지 포함. '미래대응'이라 쓰고 '일단 다 담기'라 읽을까 걱정. ○…결혼식 올린 부부 5쌍 중 1쌍꼴로 혼인신고 1년 넘게 미뤄. 맞벌이가 정책대출 등에서 오히려 불리해서라는데, 저출생 대책의 경쟁 상대가 정부 정책이라니.
2026-10-09 05:00:00
오는 13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실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도마에 오른다. 지난해 한국 취업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천833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97시간 길다. 시간제 비중이 높은 독일과의 단순 비교는 조심해야 하지만, 주 40시간 전일제 노동자 비율이 53.1%로 독일(30.9%)이나 프랑스(12.5%)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은 일하는 방식의 선택지가 그만큼 좁다는 뜻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8개국 중 30위다. 오래 일하는 것만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고, 건강권과 일·가정 양립도 지킬 수 없다. 투입 시간을 줄이는 것과 함께 일하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할 때다. 정부는 2030년 1천700시간대 진입을 약속했다. 고용노사관계학회 보고서는 단축 정책이 적극 추진된다는 전제 아래 2030년 1천739시간을 전망했다. 같은 해 OECD 평균 예상치(1천682시간)와는 여전히 57시간 차이다. 주 52시간제 등으로 장시간 근로 비중이 줄어든 효과가 상당 부분 소진된 만큼, 추가 노력 없이는 감소세가 이어지기 어렵다. 현장의 실험은 시작됐다. 임금 감소 없이 노동시간을 줄인 기업을 지원하는 '워라밸+4.5 프로젝트'에 상반기 224곳이 참여했고, 3분의 2가 50인 미만 기업이었다. 모든 중소기업에 같은 방식을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조건만 갖춰지면 가능하다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관건은 세 가지다. 첫째, 숨은 노동부터 드러내야 한다. 포괄임금 오남용은 공짜 노동이 발생하는 대표적 통로다. 4월 시행된 지도지침에 대해 경영계는 노사정 합의 위반이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실제 일한 시간을 기록하고 그만큼 지급하라는 것은 현행법의 기본 원칙이다. 쟁점은 원칙이 아니라 범위다. 업무 특성상 시간 산정이 어려운 직무는 예외 요건을 좁고 분명하게 정하고, 영세 사업장에는 출퇴근 기록 시스템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법 개정으로 기준을 명확히 해야 분쟁도 줄어든다. 둘째, '연결되지 않을 권리'로 쉬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 직장인 48.8%가 휴가 중 업무 연락을 받았고, 그중 절반 이상이 실제로 일을 처리했다. 근무시간 외 전화·메신저 업무지시를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년째 국회에 묶여 있다. 긴급 대응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정상적인 휴식시간까지 업무의 연장으로 만드는 관행은 바꿔야 한다. 자율 도입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에서 출발해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부터 의무화하는 단계적 입법이 현실적이다. 기록되지 않는 노동이 남아 있는 한 통계상의 단축은 착시에 불과하다. 셋째, 단축을 임금·생산성 체계와 묶어야 한다. 벨기에는 2022년 주 38시간을 나흘에 몰아 일할 권리를 도입했지만, 2024년 민간 정규직 이용률은 0.75%에 그쳤다. 총량은 그대로 둔 채 하루 근무를 늘린 '압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슬란드는 공공부문 실험에서 주 35~36시간으로 '단축'하며 업무 절차를 재설계했고, 생산성은 대체로 유지되거나 개선됐다. 차이는 출근일수가 아니라 시간의 총량을 줄이면서 일의 방식을 함께 바꿨느냐에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초과근로가 소득의 중요한 원천인 임금구조에서는 단축이 오래가기 어렵다. 기본급 비중을 높이고, 호봉급 중심에서 직무와 숙련을 보상하는 체계로 단계적으로 옮겨가야 한다. 노동계는 임금 삭감을,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을 우려하는 만큼 사업장 여건에 맞춘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총량은 엄격히 규율하되 그 안의 배분은 노사가 유연하게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합의의 정당성은 대표성 있는 근로자대표제에서 나온다. 노동시간 정책의 성패는 구호가 아니라 장부에서 갈린다. 기록되는 시간, 지켜지는 휴식, 보상받는 생산성이다. 노사정은 지난해 말 공동선언으로 방향에 뜻을 모았다. 이번 국감이 로드맵의 화려함이 아니라 이 세 가지의 이행을 따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덜 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르게 일할 것인가'다. 그 답이 제도가 될 때, 노동시간 단축은 비로소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이 된다.
2026-10-09 00:30:00
아침저녁으로 사늘한 바람이 분다. 상쾌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 걸까? 봄에는 샛바람으로 동풍, 여름에는 마파람으로 남풍, 가을에는 하늬바람으로 서풍, 겨울에는 된바람 또는 높바람으로 북풍이 불어온다. 표준어 하늬바람의 전국적인 방언형을 살펴본다. 하늬바람의 어원은 무엇일까? 하늬바람은 하늘바람에서 하늬바람이 되었다. '하늘〉하늬'로 변하는 것은, 달구(達句〉대구(大邱). 굴뚝〉뀌뚝(전남 방언), 불살〉불새(붉은 햇살, 즉 노을, 경북 방언), 살미〉새미(떡, 제주 방언)와 같이 'ㄹ〉ㅣ'로 변화를 겪은 것이다. 하늘바람의 고형은 하ᄂᆞᆳᄇᆞᄅᆞᆷ(1451년, 두시언해 초간본 7권 16쪽)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하ᄂᆞᆯ(天, 명사)+ㅅ(관형격 조사)+ᄇᆞᄅᆞᆷ(風, 명사)으로 분석된다, 하늬바람은 '하ᄂᆞᆯᄇᆞᄅᆞᆷ〉하늘바람〉하늬바람'으로 변화되었다. 전국적인 방언형의 어원은 (가)'하늘바람' 계 어형 (나)'하늬바람' 계 어형 (다) '서갈바람' 계 어형 (라)'가을바람' 계 어형 (마)'곧은바람' 계 어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가)의 하늘바람 계 어형은 (a)하ᄂᆞᆯᄇᆞᄅᆞᆷ〉하늘바람(경북)〉하늘바램(경북) (b)ᄒᆞᄂᆞᆯ바람〉하늘바람〉하널바람(경남) (c)ᄒᆞᄂᆞᆯᄇᆞᄅᆞᆷ〉하늘바람(경북)〉하눌바람(평북)으로 나타난다 . (나)의 '하늬바람' 계 어형은 (a)ᄒᆞᄂᆞᆯᄇᆞᄅᆞᆷ〉하늘바람(경북)〉하늬바람(표준어)〉하뉘바람(함북)〉하누바람(강원,전북, 전남) (b)ᄒᆞᄂᆞᆯᄇᆞᄅᆞᆷ〉하늘바람(경북)〉하늬바람(표준어)〉하네바람(전남)〉한네바람(전남) (c)ᄒᆞᄂᆞᆯᄇᆞᄅᆞᆷ〉*하늘보롬〉하늬보롬(제주)으로 나타난다. (가)와 (나)의 어형을 통하여 '하늬바람'은 하늘바람의 후대형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의 '서갈바람'의 어원은 '서(西)+갈(秋, 가을)+ᄇᆞᄅᆞᆷ(風)'으로 분석되며, 그 의미는 가을에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a) *서갈ᄇᆞᄅᆞᆷ〉서갈보롬(제주)〉섯갈보롬(제주) (b) *서갈ᄇᆞᄅᆞᆷ〉서갈보름(제주)〉섯갈보름(제주) (c)*서갈ᄇᆞᄅᆞᆷ〉*서갈바름〉섯갈바름(제주)으로 나타난다. (라)의 '가을바람'의 어원은 '가을(秋)+ᄇᆞᄅᆞᆷ(風)'으로 분석되며 그 의미는 가을에 부는 바람이다. 가을ᄇᆞᄅᆞᆷ〉가을바람(표준어)〉가일바람(경북)으로 나타난다. (마)의 '곧은바람'의 어원은 '곧-(형용사 어간)+은(관형사형 어미)+ᄇᆞᄅᆞᆷ(風)'으로 분석된다. '곧은바람'은 경북에만 보인다.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늬바람은 국어사전에는 서풍을 말하지만, 한자어로 天風(천풍)이며, 중국에서는 서풍이나 북서풍을 말한다(조항범, 개정판 국어어원론). 어느 학자는 서풍, 북풍을 의미한다고 한다(김광해, 유의어 반의어 사전). 북한에서는 서북쪽이나 북쪽에서 부는 바람의 뜻으로 쓰인다(이기문, 어원사전). 여기서는 서풍이냐 북서풍이냐 서북풍이냐 북풍이냐는 그 지역의 지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부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다. 하늬바람의 선대형인 하늘바람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하늘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경북에서 부르는 '곧은바람'의 정확한 의미는? (*는 특정시대의 언어를 바탕으로 추정하여 설정하는 재구형을 의미함) 한국방언연구소장 신승원 sinswon5@hanmail.net
2026-10-09 00:30: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동족방뇨(凍足放溺), "언 발에 오줌 누기"
많이 듣던 속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말이 나돈다. 이 말을 한자로 바꾼 것이 동족방뇨(凍足放溺)라는 사자성어이다. "얼 동, 발 족, 눌 방, 오줌 뇨"로, "언 발에 오줌을 누다"라는 뜻이다. 뇨(溺)는 보통 "빠질 닉(익)"으로 읽지만 "오줌/오줌을 누다"라는 뜻으로도 새긴다. 그래서 '오줌 뇨(尿)' 자로 대체하여 '동족방뇨(凍足放尿)'로도 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쓰지 않는 우리 고유의 속담이다. 동족방뇨는 당면한 문제를 잠시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계책이기에 "부녀자[姑]나 어린아이[息]가 꾸미는 계책[計]" 즉 '고식지계(姑息之計)'와도 같다. 임시적 안정을 위해, 우선 당장 편리한 것으로 둘러대는 잔꾀를 이른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임시방편적 변통이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의 『순오지(旬五志)』에서다. 이 책은 1678년, 저자가 15일[='열흘 순(旬) 다섯 오(五)'] 동안 병석에서 누워, 시화・고사・일화・속담 등 잡다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15일 만에 완성했다 하여 '십오지(十五志)'라고도 한다. 이 책에는 "동족방뇨(언인고식지계)"[凍足放尿(言人姑息之計)]로 되어 있다. "사람들의 '고식지계'를 말한다"는 뜻이다. 이후 동족방뇨는 김유(金楺, 1653~1719)의 『검재집(儉齋集)』(?), 이간(李柬, 1677~1727)의 『외암유고(巍巖遺稿)』(1760), 송남(松南)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이 지은 백과사전적 성격의 책[類書]인 『송남잡지(松南雜識)』(1855), 조선 시대 우리말 속담집인 『동언해(東言解)』(편저자 미상, ?) 등에 수록돼 전한다. 과거에는 가난해서 양말이 부실했다. 추운 겨울 길을 나서면 발이 꽁꽁 얼어붙어 동상에 걸리기도 한다. 하도 발이 시려 언 발을 데우려고 오줌이라도 눠 보는 것이다. 우선은 따뜻했을지 모르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될 뿐이다. 우리 근대기에도 '동족방뇨'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1906년 5월 29일 자 『황성신문』, 1908년 9월 25일 자 『기호흥학회월보』 제2호, 1923년 12월 1일 자 『개벽』 제42호, 1924년 8월 1일 자 『개벽』 제50호에서는 동족방뇨(凍足放溺)로, 1923년 3월 1일 자 『개벽』 제33호에서는 동족방뇨(凍足放尿)로, 각기 근시안적인 당시의 시책들을 질타했다. 지난 8월 5일 경기도청에서 추미애 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추 지사는 도 재정이 "사실상 부도"임을 솔직히 밝혔다. "마른 땅에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다"며 지난해 발행 한도의 99.6%에 이르는 지방채 발행을 강하게 비난했다. 앞선 도지사들이 발이 얼어 터지는 줄도 모르고 '언 발에 오줌 누기'를 계속해왔다는 말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는 낮은 단계에서는 개인적 안목 부족이라 눈감을 수도 있겠으나 높은 단계가 되면 심각한 사회적, 집단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은 대개 정치적 이념 노선이나 권력의 편향성에서 비롯되나 폐해는 가볍지 않다. 동상에 걸려 발 전체를 잃을 수 있듯이 오줌 누기 전에 먼저 언 발의 상태와 그 제대로 된 처리를 '숙의'해 봐야 할 일이다.
2026-10-09 00: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5>하양현감 겸재 정선이 그린 대구 '달성원조도'
드디어 대구간송미술관 '겸재 정선' 특별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 기념 '겸재 정선'전이 열렸을 때 함께 기획됐던 특별전이다. 올해는 겸재 정선의 탄신 350주년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 모두 겸재 선생을 주인공으로 모셨으나 구성과 출품작은 다르다. 영남의 진경산수를 별도 공간으로 마련해 지역과의 인연을 보여주는 대구간송미술관 '겸재 정선'전은 4부로 이뤄졌다. 1부는 정선이 나고 자라며 평생 화가의 삶을 이어간 수도 한양과 한양의 젖줄인 한강 주변 풍경이다. 2부는 정선이 하양현감과 청하현감을 지내며 둘러보았던 명승명소를 비롯한 서울 이외의 진경산수다. 하양은 지금의 경산이고, 청하는 포항이니 두 곳에서 7년여 를 보낸 겸재 선생은 경상도와 인연이 무척 깊다. 3부는 유명 또는 무명의 위인들 이야기를 그린 고사인물화와 아름다운 꽃과 새, 동물 그림인 화조영모화다. 4부의 핵심은 정선의 상징과도 같은 금강산 그림이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정선의 작품 중 먼저 가슴에 꼭꼭 담는다면 국보 '금강전도'가 되겠지만, 대구사람으로서 '달성원조도'도 꼽고 싶다. 대구를 그린 조선시대 작품 중 정선의 손자인 정황(1735-1800?)의 '대구달성도'는 영남대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달성원조도'는 직접 볼 기회가 흔치 않다. 사실은 대구간송미술관에 전시 중인 216점 하나하나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보배이다. 정선의 작품은 사진이나 교과서로 익숙하지만 실물을 내 눈으로 마주 대했을 때 원작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감동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나라 화가의 최고봉인 화성(畵聖)으로 불리는 겸재 정선이다. 달성, 곧 대구를 멀리서 조망한 '달성원조도'는 하양현감 시절 그렸을 것이다. 산들이 첩첩하고 산과 언덕으로 둘러싼 가운데 우아한 담채로 경관을 원근감 있게 표현했다. 앞쪽의 소나무 아래 높은 곳에 갓 쓰고 도포 입은 인물들이 달성을 바라본다. 임진왜란 때 파괴된 대구읍성이 다시 축성되기 이전이라 정황의 '대구달성도'와 달리 성벽이 없고 경상감영의 높직한 기와지붕과 문루, 빼곡한 집들만 보인다. 희귀하게도 조손(祖孫) 두 분이 대구를 그림으로 남겼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기운이 통한다는 '조손일기(祖孫一氣)'라는 말이 실감난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2026-10-08 21:39:56
2026-10-08 18:42:15
2026년은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예외적으로 빈번히 만나는 해가 됐다. 이미 5월과 9월 베이징과 워싱턴에서 트럼프-시진핑 간 공식 양자 정상회담이 열렸고, 다가오는 11, 12월 다자적 국제회의에서 두 정상이 또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세계 패권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는 두 나라가 한 해 동안 네 번씩이나 만난다니 외교사상 신기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월과 9월의 정상회담은 미중 관계의 본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미국과 중국 사이에 진짜 존경과 우정이 존재하며 두 나라 사이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했다고 믿을 만큼 휘황찬란한 모습을 연출해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진핑 주석에 대한 지극한 환대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미국의 비평가들은 왜 공산주의 독재자에게 붉은 융단을 깔아주며 환대했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겉모습만 보기에 지난 9월 하순의 미중 정상회담은 세계에 평화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고 시진핑 주석은 극진한 환영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겉모습과 본질은 언제라도 다르다. 외교관들은 거짓말에 능통하며 외교는 그 같은 거짓을 마치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500년 전 영국의 유명한 외교관이었던 헨리 와튼 경은 "대사(大使)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라고 외국에 파견된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기막힌 정의를 내린 바 있었다. 오늘날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과거 대사가 하던 일을 대통령, 주석 등이 직접 행하고 있다. 대부분 평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9월 하순의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을 진정 융숭하게 대접했던 것처럼 보도하고 분석하지만, 실상을 다시 상세하게 분석해 본다면 트럼프는 9월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을 모욕하고 멸시했다고 평하는 게 오히려 더욱 타당하게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은 겉으로는 화려한 외교 무대를 펼치는 듯했지만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미중관계의 불편한 본질들이 노골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표현됐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현안 문제들을 돌파하는 데 아무런 결정적 기여를 하지 못했으며 두 나라 사이에 이루어진 몇 가지 약속들도 대개는 기왕에 양국 간 이루어졌던 약속들의 재탕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교묘하게, 그러나 누가 보아도 분명하게 시진핑을 능멸했다. 회담이 끝난 후 열린 만찬장에서부터 트럼프는 시진핑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주려고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논의해서 만들었다는 조각품은 미국을 상징하는 흰머리 독수리상이었다. 흰머리 독수리는 '자유를 향해 비상(飛上)하는 미국의 정신'이라고 해석되는 미국의 국조(國鳥)다. 시진핑은 이 선물을 어디에 가져다 놓아야 할까?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흥을 돋우기 위해 동원된 미국 해병대 군악대는 시진핑에게 더욱 기막힌 노래와 음악을 부르고 연주했다. 대만의 대중가요, 프랑스 혁명을 묘사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내일이면(One Day More)'이라는 혁명의 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의 대중가요로 '옛날이 좋았다'라고 해석되기도 하는 노래가 그것이다. 김정은을 초대해 놓고 대한민국의 유행가를 불러준 꼴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노래는 중공에 반대하는 홍콩의 시위대가 매일 부르던 반항의 노래로서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금지곡으로 지정한 바 있었다. 백악관 만찬에서 불려진 중국 가요는 후진타오, 원자바오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래들로 중국의 반시진핑 세력이 좋아하는 노래다. 마지막 날 트럼프는 시진핑을 국립문서보관소로 초청, 미국의 보물들인 독립선언서 원본, 헌법 원본 등을 보여 주었다. 독립선언서의 내용은 첫째,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둘째, 정부는 이 같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다. 셋째 국민은 이 같은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정권을 축출할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시진핑은 트럼프가 이 문서들을 자신에게 보여준 의도가 무엇인지를 잘 알 것이다. 시진핑은 피곤을 핑계로 겨우 10분 정도 머물다 국립문서보관소를 떠났다. 미국은 정상회담 직후 대만에 대한 F-16 V 전투기 제공, 일본 기지에 공격용 미사일 공식 배치, 지구 공급망에서 중국 배제 등 중국을 분노케 하는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2026-10-08 10: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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