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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풍-이용호] 57 대 0

    [세풍-이용호] 57 대 0

    1945년 7월 16일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성공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핵무기보유국이 되었고, 그 핵무기는 동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각각 강타하였다. 그 결과 양 도시가 전폐되었고, 약 34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그렇게 결사 항전을 외쳤던 일본 군부도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 앞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해악을 잉태한 핵무기의 군사적·전략적 가치로 인해, 각국은 핵무기 보유에 혈안이 되었다. 핵무기보유국은 점차 확대되어,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 구소련·영국·프랑스·중국·인도·이스라엘·파키스탄·북한 등 9개국이다. 또한 미국의 핵무기가 유럽의 5개국(네덜란드·독일·벨기에·이탈리아·튀르키예)에 배치되어 있으니, 총 14개국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셈이다. 오늘날 약 1만2천187개의 핵탄두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데, 1986년 한때 6만9천368개에 비하면, 많이 감축된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의 대량 파괴적 효과에 비추면, 여전히 인류의 운명이 핵무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동안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의 수는 대략 60~120개로 추정되었는데, 그 구체적 수치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날 북한은 드론(drone)이나 자율무기(autonomous weapons)를 활용한 자국의 핵작전능력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현대전(現代戰)의 노하우(knowhow)를 축적하고, 나아가 핵잠수함의 진수(進水) 계획을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전력(戰力)은 점차 고도화되는 데 반해,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은 뒷걸음치고 있어 우려스럽다. 북한을 공식적 핵무기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트럼프의 위험한 거래', 충분한 대비책 없이 진행되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 문제,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통합과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에서의 정치적 공약 이행을 위한 안보의 경시, 각종 한미연합훈련의 취소 또는 축소, 병력 자원의 감축, 군의 사기와 명예의 추락 등은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북한이 핵탄두를 57개나 가졌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전력이 방전되고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무덤덤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안보 불감증이다. 어쩌면 경제력 우위를 군사력 우위로 보는 착시 현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의 핵탄두 57개, 대한민국의 핵탄두 0개'라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말이다. 안보를 둘러싼 국론이 이렇게 분열되고 있다면,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계 속에서 일등 국가로 나아가려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긍정적일 수 없다. 역사의 교훈처럼, 북한 핵무기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국가 존립에 대한 방임이며, 민족에 대한 배신이다. 급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 놓인 대한민국은 이러한 흐름을 잘 예측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쟁취할 수 있듯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방어용 또는 억지용의 핵무장' 카드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힘이 없으면, 결국 힘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 평화와 자유를 잃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57 대 0'….

    2026-09-09 05:00:00

  • [사설] 호르무즈 파병 딜레마, 미국 불신 되풀이 않도록 접근해야

    미국 정부가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 자산 투입을 압박하는 가운데, 프랑스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호르무즈 파병(派兵) 문제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지금까지 파병에 대해 '실질적 기여 및 전투·비전투 등 군사적 기여 검토' '지금은 검토 단계에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민주당 일부와 진보 성향 정당과 단체들이 파병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파병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提出)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농축 및 재처리 협상,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대미 투자 프로젝트 이행과 추가 관세 압박 등 안보·통상 현안(懸案)과 파병이 얽혀 있는 만큼 진보층 여론만 고려해 미국 요구를 거부하기도 어렵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입장에서 호르무즈 상황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해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내의 주요 현안에서 그때그때 임기응변(臨機應變)식으로 대응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도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절차적 요인으로 늦어지면서 '투자 회피'라는 불신을 샀다. 신속하게 투자 절차를 진행 중인 일본·대만과 대조적이다. 이에 미국은 "기존 관세(15%)를 철회하고 최대 25%까지 인상할 수 있다" "반도체에 표적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를 두고 '대미 투자'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불신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 여러 현안에서 유리한 협상을 위해 '파병 언질'을 주고 여론을 핑계로 '빨리 파병할 수가 없다'고 미룬다면 한미 관계를 파국(破局)으로 몰아갈 수 있다. 파병이 국익이라고 판단한다면 적극적으로 여당과 지지층을 설득하고, 파병하지 않겠다고 판단한다면 상호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대안을 제시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국내 여론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국제 관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2026-09-09 05:00:00

  • [사설] 역사성·상징성 갖춘 대구가 대법원 이전 최적지다

    대법원(大法院)을 지방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 공공기관과 중앙행정기관의 지방 이전에 이어 대법원 등 헌법기관의 비수도권 이전 필요성이 여당 지도부에서 거론되면서다. 지역에서 제기된 대법원 대구 이전론이 여권과 국회 차원의 논의로 확대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법원과 부속기관을 대구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發議)한 데 이어 전용기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4일 법원조직법을 신속히 개정해 대법원의 비수도권 이전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도 대법원 등 헌법기관 이전 논의의 필요성을 밝혔다. 지역 차원의 주장이 여당 지도부의 의제로 부각된 것이다. 대구지방변호사회도 다음 달 '대법원 대구 이전 추진위원회'를 발족한다. 이제 대법원 대구 이전은 단순한 지역 정치권의 요구가 아니라, 국가균형발전과 사법 권력 분산(分散)이란 국가적 과제로 논의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구는 대법원 이전 최적지로 꼽힌다. 대구는 일제강점기에 경성·평양과 함께 복심법원(覆審法院·2심 재판을 하던 곳)이 설치됐던 도시로 사법부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법원·검찰청의 연호지구 이전 이후 활용 가능한 범어동 후적지(後跡地)는 전국적 접근성이 뛰어나다. 기존 법조 인력 및 관련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법관 증원 등으로 사법 기능과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대구는 충분히 현실적인 이전지다. 대법원의 지방 이전은 국가의 중심이 반드시 서울이어야 한다는 관성을 깨는 상징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수도권에 행정·입법·사법·경제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는 것은 공허(空虛)하다. 최고 사법기관이 지방에 자리 잡는다면 균형발전의 상징성을 확보하고, 비수도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정부·대법원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가균형발전이란 큰 틀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26-09-09 05:00:00

  • [사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눈앞, 잠재성장률부터 끌어올려야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달러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민소득 잠정치(暫定値)에 따르면, 지난해 약 3만7천달러였던 1인당 GNI는 명목소득 증가와 환율 덕분에 올해 4만달러를 넘길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은 1994년 1만달러, 2005년 2만달러, 2014년 3만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미래의 성장 동력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를 웃돌 전망이다. 한은은 3.3%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고, KDI 전망도 3.2%다. 그런데 잠재성장률은 이미 1%대 후반까지 떨어졌고, 2040년대엔 0% 안팎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국민소득은 4만달러를 향하는데 경제 기초체력은 갈수록 약해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인구 감소만 탓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지금 출산율을 높인다고 해도 20년 이상 지나야 노동력 증가로 이어진다. 당장 여성·고령층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고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둔화된 생산성은 심각하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호황의 온기와 효율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2분기 총저축률은 45.6%로 사상 최고다. 자금(資金)이 부족한 경제가 아니다. 규제 병목을 풀어 자금이 연구개발, 신산업, 인적자본 확충 등 생산성을 높이는 곳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4만달러는 지금껏 한국 경제가 이룬 성취의 결과물이고, 잠재성장률은 이를 키워나갈 능력이다. 67달러에서 4만달러까지는 자본과 노동을 빠르게 투입하며 선진국을 맹추격한 역사였다. 그러나 노동력은 줄고 자본 투입 효과도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내건 '잠재성장률 3%·수출 세계 4강·국민소득 5만달러' 비전의 성공은 환율이나 반도체 호황이 아니라 생산성 혁신과 구조개혁에 달려 있다. 정치적 부담이 큰 개혁을 외면한 채 목표만 제시하면 국민을 현혹하는 쇼에 불과하다. 노동·교육·규제·서비스산업의 낡은 구조를 바꿔 잠재성장률을 반등(反騰)시키지 못하면 '3·4·5 비전'은 숫자 놀음일 뿐이다.

    2026-09-09 05:00:00

  • [관풍루] 프랑스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 현지서 여배우와 셀카 찍는 여유 과시

    ○…프랑스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 현지서 여배우와 셀카 찍는 여유 과시. 국내는 법무부·성평등 장관 등 2기 내각 후보자 관련 각종 의혹과 논란으로 벌집 쑤셔 놓은 듯 난린데… 아~ 출국 직전 지명한 이유가 다 있었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장 선택에 관심 집중. 청와대가 원하는 카드 받아들일 경우 '남편은 헌법재판관, 아내는 대법관' 탄생. 이 정도로 법조계에 인물이 없나? ○…지방소멸대응기금 4년간 8천억원 미집행된 것으로 확인. 누적 집행률도 75.7%에 그쳐. 다른 돈도 아니고 지방 살리자는 돈인데, 정부도 지자체도 지방 소멸 막을 의지가 있긴 한 거요.

    2026-09-09 05:00:00

  • [날씨] 9월 9일(수)

    [날씨] 9월 9일(수) "대체로 맑음"

    2026-09-08 18:39:58

  • [기고-정상환] 박정희 대통령 동상 철거 소송

    [기고-정상환] 박정희 대통령 동상 철거 소송

    오는 10월 1일, 대구지방법원은 동대구역 광장에 설치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둘러싼 민사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구조물 인도청구라는 민사소송이다. 국가철도공단은 홍준표 대구시장 시절 동대구역 광장의 소유권자인 공단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동상을 설치했으므로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 일대는 최종 준공 승인이 되면 대구시에 양여되는 공공시설물로 고시되었고, 그동안 대구시에서 실질적으로 관리하여 왔으며 다른 시설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던 공단이 굳이 박 전 대통령 동상에 대해서만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권리 남용이다"는 입장이다. 2016년 5월 13일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6-260호 '경부고속철도 대구도심2구간 건설사업 실시계획 변경 승인'으로 동대구역 고가교(광장 포함)가 대구시로 이관·양여되는 대체공공시설로 정리가 되었고, 같은 해 9월 대구시와 국가철도공단이 다시 이를 확인했다. 대구시는 2017년 11월 준공식을 거행했고 그 이후로 동대구역 광장을 실질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국가철도공단은 최종 승인과 소유권 이전을 미루었고 급기야 이번 소송에 이른 것이다. 이 사건의 실질은 동상의 존치 여부를 둘러싼 역사와 공공기억의 문제다. 절차적 흠결이라는 형식적 법률 문제로 포장한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라는 평가와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위주의 통치자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박 전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공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억의 공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 박 전 대통령 동상은 청남대와 영남대학교, 구미 생가 등에도 설치돼 있다. 수많은 시민과 국내외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공공장소의 동상은 사실상 동대구역이 유일하다. 대구의 상징적 공간에 세워진 이 동상은 특정 지역만의 기념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를 둘러싼 논의를 상징하는 공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만약 이번 소송의 결과로 동상이 철거된다면, 그 영향은 단순히 동대구역 한 곳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장소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특정 인물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기억을 형성하는 기준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동상 하나의 운명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역사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가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대한민국이 공과의 역사를 마주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동대구역 광장의 박 전 대통령 동상은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국가철도공단은 지금이라도 이 무익한 소송을 취하하기 바란다. 동대구역 광장의 실질적 관리권이 대구시에 있는데 굳이 이 소송을 계속할 실익이 없다. 설사 대구시의 처사에 다소 절차적인 하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6억원이라는 큰 자금이 투입된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건전한 상식과 시민 정서에 반한다. 대구시는 박 전 대통령 동상 보전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원은 동대구역 광장이 조성된 경위와 국토부와 대구시 간의 협의사항 및 국토부 고시, 박 전 대통령 동상이 설치된 경위와 동상이 지닌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해 형식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합리적인 판결을 할 것을 당부한다.

    2026-09-08 15:34:44

  • [수요일 아침-김노주] 책 읽는 사람, 책 읽는 도시

    [수요일 아침-김노주] 책 읽는 사람, 책 읽는 도시

    9월은 독서의 달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연간 독서량은 감소했다. 2023년 19세 이상 성인의 연간 독서량이 3.9권이었던 데 비해 2025년에는 2.4권으로 줄었고 초·중·고 학생의 독서량 역시 36권에서 31.5권으로 감소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시대에 독서량이 줄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하다. 그러나 독서 문화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독서율이란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1년에 한 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20대의 독서율은 2023년 74.5%에서 2025년 75.3%로 소폭이나마 상승했다. 여기에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텍스트 힙'(Text hip)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 텍스트 힙, 즉 텍스트를 읽고 소비하는 행위를 세련된 취향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책을 바꿔 읽는 교환 독서 활동이 독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청년의 독서 목적이 변하고 있음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에는 시험을 준비하거나 스펙을 쌓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일상에서 휴식을 얻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독서가 의무에서 취향으로, 경쟁의 수단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첫째, 독서는 공부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책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험 문제 역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을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공부의 거의 전부이고 나아가서 글쓰기의 기초가 된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쓰는 것, 이것이 공부의 전부다. 대입 논술고사, 행정 및 외무고시 2차 시험, 변호사시험 등 거의 모든 중요한 시험은 주어진 글을 읽고, 이해하고, 답을 쓰는 능력을 테스트한다. 초·중·고 학생, 대학생 및 취업 준비생들이여, 책과 신문을 읽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에 맞게 쓰도록 노력하자! 둘째, 독서는 직장과 사회생활의 성공을 위해서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꾸준히 읽고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한 직종에서 퇴직까지 할 수 있는 경우가 줄고 있다. 성공적인 직장 생활과 있을 수도 있는 이직(移職)을 위해 독서는 필수이다. 셋째, 독서는 인공지능 시대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이다. AI가 만들어 내는 텍스트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 즉 '환각'이 포함될 수 있고 글의 현장성과 구체성이 대체로 부족하다. 따라서 AI가 제공하는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러한 능력은 읽고 생각하며 책 속의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접할 때 얻어진다. 넷째, 독서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삶의 동반자이고 훌륭한 노후 대책이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외로움과 허무를 느끼기 쉽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홀로 있는 시간이 도리어 즐겁다. 독서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의 상상과 경험을 접하는 길이고 노후에도 홀로서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독서는 보다 높은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 같은 제도와 이념은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제도와 이념을 초월하는 인간 존중의 인본주의, 환경보존을 실천하는 자연주의 같은 숭고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이는 우리 교육 이념이 궁극으로 지향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인류공영을 염두에 둔 삶으로 이어진다. 책 읽는 사람이 되어 책 읽는 도시, 책 읽는 나라를 만들자. 지난 6·3 지방선거 이후 대구경북은 국가 정책 결정에서 소외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신공항 및 군부대 이전, 반도체 산업 유치가 좌초돼 우울한 와중에 경북대가 '서울대 4개 만들기'에서까지 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 밀려 탈락했다. 현 정부의 대구경북 차별이 극(極)에 달했다. 이 불공정을 어떻게 넘을까? 분루(憤淚)를 삼키며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가 우리의 생각과 미래를 바꾸고, 우리 앞길을 막고 선 저 불공정의 벽도 마침내 무너트릴 것이다. 김노주(경북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2026-09-08 11:06:09

  • [사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시작도 전에 각종 의혹과 위법 논란으로 몰매를 맞고 있다. 신약(新藥) 임상시험 청탁 및 브로커 양모 씨와의 관계 등을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음주운전, 주정차 위반 과태료 미납 압류, 가족 관련 의혹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쏟아지고 있다. 장관 후보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김 후보자는 억울해하는 기색이 역력(歷歷)하다. 며칠 만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최대 관심사인 양 씨와의 관계에 대해 "법조인이 자주 가는 음식점, 카페 같은 곳에서 처음 손님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앞서는 '2022년 2월 우연히 마주쳤다'고 했었다. 거짓말도, 해명도 궁색하다. 양 씨가 운영하던 강남 유흥주점 직원 퇴직금 체불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했다는 건 판결문을 통해 알 사람은 다 안다. 임상시험 청탁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미 기소유예를 받은 사건이고, 그것도 윤석열 정부 때 받은 처분이라 압력 행사 여지가 없었다며 당당해한다. 그런데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참작(參酌)해 재판에 넘기지는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혐의는 인정된다는 말이다. 무혐의나 무죄를 받은 게 아니다. 그러면서 화살을 청탁 의혹 제기자에게로 돌린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을 향해 '수사 자료 어디서 입수했느냐'고 따지며 청문회에 출석해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 전담 대응팀'을 꾸리고 비밀누설 등으로 한 의원을 고발했다. 물타기라 할 수 있겠다. 김승원 의원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법무부 장관은 법 집행과 법질서 확립을 총괄하는 자다. 김 후보자는 본인의 각종 범·위법 시비와 배우자·자녀 급여 논란 및 배우자 미인가 불법 학교 운영 등 가족 의혹까지 안고 있다. 역대 법무부 장관 중 전과자(前科者)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준법정신을 기대할 수 있는 후보인지, 법무부 장관 자리에 마땅한 인사인지 잘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2026-09-08 05:00:00

  • [사설] 고립무원 TK신공항, 지역 정치권은 정기국회서 돌파구 찾아라

    군공항 이전이 핵심인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 사업이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내몰렸다. 국토교통부 TK신공항건설추진단장 자리는 두 달째 비어 있다. 국방부는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전환해달라는 지역의 요구를 거부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도 군공항 이전의 마중물로 꼽히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융자와 금융비용 지원은 반영되지 않았다. 국가안보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이 정부의 외면 속에 표류(漂流) 상태다. TK신공항 사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과 확연히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로 광주 군공항 부지를 선정했다. 또 '전격전'(電擊戰)을 강조하며 광주 군공항 기능의 임시 이전까지 지시했다. 이러니 지역에서 'TK 차별'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TK신공항 건설 지연의 핵심 원인은 막대한 재원(財源) 문제다. 지방선거 때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는 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1조원(공자기금 5천억원·정부 특별지원금 5천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정부 지원 없이는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구시의 공자기금 융자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수십조원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국가사업'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사업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TK신공항건설추진단장의 공석(空席)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TK 정치권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사활(死活)을 걸어야 할 것이다. 공자기금 융자와 금융비용 지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시키는 데 정치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부안에 빠졌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지역 의원들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협상하고 설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정부·여당은 'TK 차별'이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공자기금 지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2026-09-08 05:00:00

  • [사설] 개헌 발목 잡는 대통령 연임, 5·18 전문 수록 논란 먼저 정리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대 변화와 국민 요구를 반영해 현실 가능한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5·18과 부마항쟁 헌법 전문 수록(收錄) 및 권력구조 개편을 제안했다. 현행 '87년 헌법'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데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만, 개헌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 문제'와 '5·18 전문 수록'이라는 갈등 요소를 극복하지 못하고는 진전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4년 중임·연임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 수용(受容)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친명계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 대통령 연임 적용 여부'를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고 발언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는 '임기 연장 등을 위한 개헌은 제안 당시 대통령에 효력이 없다'는 헌법 제128조 제2항과 배치(背馳)된다. 이에 야권과 언론이 '연임 않겠다'고 밝혀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대통령은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다. 그러니 개헌마저도 공소취소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재판 지우기' 용도 아니냐고 국민들은 의심하는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 역시 논쟁이다. 특정 정치 진영이 5·18을 독점(獨占)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5·18 왜곡 처벌법'을 만든데 이어 '조롱·모욕까지 처벌하는 법'도 만들겠다고 한다. 국회에서 5·18 관련 학술토론회를 개최한 국회의원을 제명하겠다고도 했다. 법과 처벌로 입을 막아야 할 만큼 국민들 사이에서 5·18에 대한 논란이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헌법 전문에 넣자고 하니 개헌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자면 유공자 선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 및 공적 내용 공개 등 국민적 불신을 해소(解消)하는 작업이 먼저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 헌법(大韓民國制憲憲法) 이래 우리는 여러 차례 헌법을 개정해왔다. 헌법 개정이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개정의 목표는 더 나은 정치, 국민 기본권 확대,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이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개헌을 하자면 '이 대통령 연임' '5·18 이견' 문제 등이 우선 해소돼야 한다.

    2026-09-08 05:00:00

  • [관풍루] 빚을 많이 내 집을 매수한 가구는 금리가 1%p 오르면 연체 확률이 0.81%p나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

    ○…빚을 많이 내 집을 매수한 가구는 금리가 1%p 오르면 연체 확률이 0.81%p나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 당연히 금리 인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금리 인상기인 요즘, 너무 무리한 '영끌' 내 집 매수는 위험천만. ○…용해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아이돌봄사 국가자격제 도입 반대표, 가정 밖 청소년 보호 강화 법안에는 기권. 대체 성평등가족 정책을 총괄 조정할 컨트롤타워 자격이 있는 건지. ○…실업 청년의 번아웃 경험률이 52.7%로 취업 청년(32.4%)보다 약 1.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 취업난과 고용 불안이 정신적 부담을 키우기 때문이라는데…. 월급보다 먼저 찾아온 '번아웃'!

    2026-09-08 05:00:00

  • [날씨] 9월 8일(화)

    [날씨] 9월 8일(화) "맑음"

    2026-09-07 18:55:16

  •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따로 또 하나, 동이족의 조상숭배와 제천의식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따로 또 하나, 동이족의 조상숭배와 제천의식

    ◆흥륭와문화의 주거지 매장과 조상숭배 지금은 많이 퇴색했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가장 경이로왔던 것 중 하나가 한국인들의 효문화였다. 살아있는 부모뿐만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들도 살아있는 존재처럼 기일 때마다 온 종족이 모여 제사를 모시는 모습은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서양인들에게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런데 중원의 동이족 문화 답사를 다녀보면 우리 효문화의 뿌리가 신석기 시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동이족 효문화는 직접적인 조상숭배와 하늘에 대한 제천의식이 결합되었는데, 나는 조상숭배와 제천의식을 '따로 또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이족들이 왜 조상을 숭배하고, 제천의식을 치렀는지를 보면 이 둘이 별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상숭배부터 보자. 중국 내몽골 자치구 오한기(敖漢旗)에 있는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B.C. 6200~B.C.5200)는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동이족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데, 최초의 환호(環濠), 즉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둥글게 도랑을 판 해자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흥륭와 사람들은 집안에 시신을 묻고 껴묻거리로 돼지를 같이 묻기도 했다. 집안에 시신을 묻은 것은 죽음은 삶의 연속이라는 사상이며, 조상들이 저 세상에서도 자신들을 지키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는 생명의 원기가 나오는 북두로 여겨 죽은자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간다고 여겼기에 함께 묻었다. ◆홍산문화의 여신묘와 제천의식흥륭와문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배가 풍만한 여신상이다. 동이족 흥륭와문화는 조보구문화(趙寶構文化:B.C 5000~B.C.4400)로 연결되고, 조보구문화는 유명한 홍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3000)로 계승된다. 홍산문화에 속하는 우하량(牛河梁) 유적은 1983년에 발견되었는데, '단(壇:제단)·묘(廟:사당)·총(塚:무덤)'이 함께 발굴되어 중국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단·묘·총(壇廟塚)'이 갖추어진 것은 이미 고대 국가가 존재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하량 유적에서는 동이족 특유의 모계사회 전통에 따라서 여신묘가 발굴되었는데 흙으로 빚은 여신의 얼굴이 있고, 여신의 왼쪽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새 부조와 발톱이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곰의 발을 형상화한 상징물이 출토되었다. 하늘(새)을 숭배하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결합한 부족의 조상신으로 여겨진다. 한국인들이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단군은 하늘 부족인 환웅과 곰 부족인 웅녀의 혼인으로 태어나 고조선을 세운 우리민족의 건국시조이다. 우하량 여신묘를 만든 동이족은 곧 단군의 선조들로 해석할 수 있고, 이 국가는 단군조선 이전의 신시(神市)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하량 제2지점에서는 3단으로 쌓은 둥근 원형(圓形) 제단과 네모난 방형(方形) 제단이 발견되었다. 원형은 하늘을, 방형은 땅을 상징하는데, 이 제단 위에 군장이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면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지인(天地人)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산문화와 대문구 문화사람들이 중시한 새 중원의 동이족 유적으로 이동해 보자. 1972년 하북성 무안현(武安縣)의 자산문화(磁山文化: B.C. 6400~B.C. 5400) 유적에서는 원통모양의 그릇(통형우{筒形盂})과 이를 받치는 새 머리 모양의 받침다리가 발견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자산문화를 원시(原始) 한장족(漢藏族) 문화라면서 고대 한족(漢族)과 연관있는 것처럼 우기지만 새를 조상으로 여긴 동이족 문화유적이다. 산동성 태안(泰安)에서 발견된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B.C. 4300~B.C. 2500) 역시 동이족 문화인데, 중국에서 황하문명의 핵심으로 꼽는 용산문화(龍山文化:B.C. 3000~B.C. 1900)로 이어진다. 현 중국의 동이문화 답사를 다녀보면 도대체 한족(漢族)문화는 어디에 있는지 저절로 궁금해질 정도로 동이문화 천지다. 이 대문구문화에 대해서는 중국에서도 소호금천씨 부족의 유적이라고 시인한다. 소호 금천씨는 김유신 비문에서도 나오는 김씨의 조상인데, 새를 신성하게 여기는 새토템사상을 갖고 있었다. 산동반도는 원래 동이족의 무대였는데 그 중심지는 공자(孔子)의 고향이었던 북부 곡부(曲阜)와 중부의 임기(臨沂)시였다. 이 임기시에 춘추시대 담국(郯國)이 있었는데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었다. 『춘추좌전』에는 소호씨가 즉위할 때 봉황이 나타났으므로 새를 벼리로 삼아 관직명을 정했다는 담국의 군주 담자(郯子)의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산동지역에서는 많은 새 모양의 그릇과 의기가 출토되었다. 한편 대문구문화에서는 돌구슬을 물고 있는 유골이 출토되었다. 유골에는 양쪽 어금니 잇몸을 깎고, 이를 발치한 흔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입모양을 새처럼 뾰족하게 만들려고 한 것으로서 잇몸을 깎는 큰 고통을 감수하고 평생 이를 참아 낸 이유는 새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신화집이자 인문지리서인 『산해경』에서는 사람과 새가 결합된 새사람에 대한 묘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러한 묘사들은 새 숭배사상, 난생신화 등과 연관되어 있다. ◆난생신화의 주제는 천손사상난생신화는 여지없는 동이족 건국신화이다. 중국 하·은·주(夏殷周)의 하나였던 은나라 시조 설(契)도 난생신화다. 『사기』 「은본기」는 '제곡(帝嚳)의 차비 간적(簡狄)이 냇가에 목욕을 하러 갔는데, 하늘에서 현조(玄鳥)가 날아오더니 알을 하나 떨어뜨렸다. 간적은 그 알을 먹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은나라 시조 설(契)이다'라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신화와 같은 난생신화로서 이는 은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을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었음을 말해준다. 중국의 신화학자 원가(袁珂, 1916~2001)와 장광직(張光直, 1931~2001)은 난생신화는 동이족 신화라고 인정했다. 난생신화에는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사상이 담겨 있는데, 대표적인 천손은 단군이다. 단군은 환인의 서자 환웅이 신시(神市)에 내려와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다. 천제(天帝) 환인의 서자 환웅은 풍백, 운사, 우사 등 무리 3천 명과 함께 하늘에서 신시로 내려와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시조가 하느님이라고 믿는 집단에게 하늘에 대한 제사는 곧 시조와 조상에 대한 제사였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에서도 이러한 흔적이 보이는 것 또한 이들도 천손(天孫)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나라 정월을 사용한 부여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동맹(東盟), 부여에는 영고(迎鼓)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다. 고구려의 동맹은 10월이었는데, 부여의 영고는 은정월(殷正月)이었다. 은정월은 은(殷)나라의 정월을 뜻하는데, 하(夏)나라는 음력 1월, 은나라는 음력 12월, 주(周)나라는 음력 11월이 정월이었다. 부여가 은 정월에 영고를 지냈다는 것은 곧 은나라의 달력을 사용했다는 뜻인데,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중국 학자들도 모두 인정한다. 영고 때는 몇일 동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였으며, 형벌과 옥사가 중단되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고 「동이전」에서 전한다. ◆마가요문화의 집단무와 제의 현 중국 서북부 감숙성(甘肅省) 임조(臨洮)현의 마가요문화(馬家窯文化: B.C. 3300~B.C.2000)는 1923년 스웨덴의 지질학자 앤더슨이 발굴했는데, 신석기시대 채도(彩陶)문화로서 후기에는 청동기가 나타난다.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집단으로 춤추는 모습과 새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그려진 무도문채도분(舞蹈纹彩陶盆)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감숙성 무위(武威)시와 청해성 대통현(大通县)과 동덕현(同德县) 종일유지(宗日遗址) 등에서 집단으로 손잡고 춤추는 무도문(舞蹈纹)이 발견되었다. 이런 집단무는 공동체가 함께 행한 제의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집단무와 새와 관련된 상징은 동북지역에서부터 중원 지역뿐만 아니라 남쪽의 장강 유역, 그리고 서쪽의 감숙성 일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기와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과 다른 시기에 동일한 문양이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버드대 중국계 고고학자인 장광직은 성읍국가 건설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광직은 하·은·주 삼대의 제도를 통해서 성읍국가가 어떻게 건설되었나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씨족이 있다고 치면 그 씨족한테는 본래 선조, 즉 원시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시조의 자손들이 후손에 후손을 낳으면서 인구가 불어나게 된다. 이때 원시조의 계승권이 없는 후손이 이주를 해서 새로운 씨족을 만드는데, 이주할 때 원시조를 계승한 인물에게서 무리와 영토를 분배받고, 그 영토의 관할권과 성읍의 이름도 부여받는다. 또한 원시조와의 관계를 보증해주는 의식부호나 도구를 받아 새로운 땅으로 이주한다. 이렇게 원시조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땅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스스로를 상징하는 부호를 만들어 새로운 부족의 창립을 공표한다"는 것이다. ◆조상은 지위와 신분의 보증수표 장광직의 이론은 우리 단군신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환웅은 환인의 서자인데 서자는 장남을 제외한 자식을 말한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신시에 내려올 때, 환인으로부터 그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천부인 세 개를 받아서 내려와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했다. 그런데 환웅이 신시에 내려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홍산문화에 남아 있는 여러 제단들을 볼 때, 제단을 쌓고 조상에게 고하는 일부터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주자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더라도 본래 자신이 속했던 원시조 집단의 서열을 유지한다. 새로운 성읍국가들 사이에서도 이 서열은 지켜지기 때문에 계보가 매우 중요해진다.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조상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조상은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보증해 주는 강력한 보증수표로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조상숭배와 제천의식, '따로 또 하나' 동이족에게 조상은 단순히 죽은 선조가 아니었다. 조상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 주는 존재였고, 새로운 집단을 세울 수 있는 권위와 정통성의 근원이었다. 동이족들은 자신들의 최초 조상, 즉 시조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늘에 이르게 된다. 은나라의 시조 설이 현조의 알에서 태어나고, 단군의 조상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실례를 보여준다. 따라서 시조가 하늘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조상에 대한 제사와 하늘에 대한 제사는 별개의 의례일 수 없었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조에 이르고,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이족에게 조상숭배와 제천의식이 '따로 또 하나'였던 이유이다.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2026-09-07 14:49:05

  • [사설] 노조의 블랙리스트 협박과 조폭 행태, 뿌리 뽑아야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위원장이 10만여 명의 개인정보를 몰래 빼내 이른바 '노조 미가입자 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든 혐의로 최근 검찰에 송치(送致)됐다. 지난 4월 사내 시스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노조 간부와 공모해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빼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성과급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던 당시 최 위원장이 유튜브 방송에 출연,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명단으로 관리하겠다. 향후 강제 전환 배치나 해고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들을 우선 검토하겠다"고 했다. 동료 직원인 노동자들을 향한 사실상 협박(脅迫)이다. 노조가 마치 독재 정권의 권력기관이나 된 듯한 그릇된 만행(蠻行)이 아닐 수 없다. 최 위원장은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법을 위반하면서 개인정보를 훔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죄질(罪質)이 나쁘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사내 시스템에 접속해 노조 가입 여부 등을 무단 조회한 노조 조합원 4명도 검찰에 넘겼다. 노조의 불법 행위가 일상화되었던 셈이다. 오죽하면 친노(親勞) 성향인 이재명 대통령마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권리 행사인지, 불법 부당한 행위인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가려봐야 한다"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겠나.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졌던 건폭(建暴)이 다시 나타나 월례비와 웃돈 요구, 조폭식 밥그릇 빼앗기 등 건설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권 출범 이후, 폭력을 휘두른 건설 노동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이 대통령 본인이고, 건폭 단속(團束)에 손을 놓았던 것이 이재명 정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노조의 정당한 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 경제 질서에 따른 법과 원칙은 노사(勞使) 모두에서 엄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특정 노조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거대 조폭 같은 범죄 조직화 한다면, 그 피해자는 일반 노동자와 기업, 국민 모두가 될 수밖에 없다.

    2026-09-07 05:00:00

  • [사설] 내각 인선 총체적 난국…인사 검증 실패에 인력풀도 문제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신약(新藥) 임상시험 청탁 의혹을 둘러싼 통화 녹취록의 잇따른 공개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의원직 겸직 논란에 배우자의 정당 유급 당직 급여 의혹까지 겹쳐 공정성 시비에 휩싸였다.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자신이 직접 설계·발표한 '실거주 중심' 부동산 세제 개편과는 반대로 4억여 원 주고 산 아파트에 4개월만 살고 5배 넘는 시세차익을 보고 있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대출과 가족 차용금을 동원한 '영끌 매수' 의혹을 받고 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군 복무 시절 위장전입으로 철거민 자격을 얻어 특별분양으로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부정 취득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재명 정부 2차 내각 구성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인사 난맥상이다. 앞서도 1차 내각에서 보좌진 갑질 의혹으로 현직 의원 출신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자진 사퇴했고, 또 다른 후보자는 위장 미혼 청약(請約)과 갑질 의혹이 겹쳐 지명 28일 만에 낙마한 바 있다. 이쯤 되면 인사 검증 실패 등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인지 이 대통령의 인력풀에 함량 미달 인사들만 가득한 건지 의문이다. '검증 부실'이든 '인력풀 부족'이든 책임은 인사권자에게 있다. 게다가 똑같은 사태가 반복된다는 건 인사 검증 라인을 맹신하거나 방치하고 있다는 것인데 둘 다 문제다. 이 정부는 검증 기준·절차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보통 인사 검증은 당사자 진술, 관계 기관 검증, 평판(評判)·현장 조회 등의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웬만한 흠결은 걸러져야 정상이다. 대통령이 부적격 요소를 알고도 후보자로 지명했다면 달리 인재가 없거나 보고를 무시했다는 것이고, 몰랐다면 검증 보고 체계가 무너졌다는 얘기다. 어느 쪽이든 검증이 무력화된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부실 인사 검증과 임명 강행이 반복된다면 국민은 더는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해도, 적응도 아니다. 관심과 기대를 거뒀다는 의미다. 이 정부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그때가 왔다는 것이다.

    2026-09-07 05:00:00

  • [사설] 국가채무 1천700조원 시대, 반도체 호황에 취해선 안 돼

    2030년 국가채무가 1천73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50.6%에서 49.0%로 낮아진다. 빚은 300조원 이상 늘어나는데 부채비율은 개선되는 기묘한 상황은 반도체 호황으로 경제 규모가 커져서 생긴 착시(錯視)다.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는 1천312조원까지 늘어나고, 국가채무 이자비용도 50조원을 넘어선다. 국가보증채무와 주요 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잠재적 부담은 1천15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재정지출 구조조정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연금·복지·이자 등 의무 지출은 2030년 전체 재정지출의 절반을 넘어선다. 경기 상황에 대비할 여력이 사라지게 된다. 반도체 호황으로 8월 수출은 크게 늘었지만 소비는 위축되고 실질소득은 감소했다. 정부가 국가채무비율 49%를 근거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지만,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고 성장이 둔화해 명목 GDP가 줄면 채무비율은 치솟는다. 세수(稅收)는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하지만 연금·복지·이자 같은 지출은 경기와 관계없이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구조적인 재정 여력으로 착각하면 불황이 닥쳤을 때 재정은 수입 감소와 지출 증가라는 폭탄을 동시에 맞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2006년 이후 매년 공개해 온 적자성 채무 전망을 올해 국가채무관리계획에서 뺀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국제비교 등 새 자료를 추가했다지만, 재정 위험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를 빼는 것이 국민과 국회의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재정이 건전하다면 오히려 불편한 지표까지 공개하는 것이 옳다. 낙관론이 위험한 것은 현재의 좋은 숫자가 미래에 닥칠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반도체 호황에 취해 있는 동안 적자성 채무와 이자 부담, 의무지출은 꾸준히 쌓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숫자를 재정 확장 면허(免許)로 삼는다면, 이재명 정부는 성장의 과실을 미래 세대의 빚으로 바꾼 정부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2026-09-07 05:00:00

  • [관풍루]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이 재논의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 재논의. 맞벌이 가구의 돌봄 공백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아이들 발달 단계를 외면한 채 정규 수업 연장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될 일. ○…서울 주택 매수용 증여·상속 자금이 석 달 새 2조원 늘어난 4조3천181억원에 달했는데 이 중 절반은 30대가 조달한 것으로 나타나. '부모 찬스' 없으면 도저히 집 장만 힘든 '헬조선' 세상. ○…오는 14일부터 코스피·코스닥 상장주식 대부분을 정규장 마감 이후인 오후 8시까지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는 한국거래소(KRX) 애프터마켓 개장. 저녁 거래 판 커진다. 정신줄 꼭 잡아야.

    2026-09-07 05:00:00

  • [날씨] 9월 7일(월)

    [날씨] 9월 7일(월) "대체로 맑음"

    2026-09-06 18:50:26

  • [김용삼의 한국 반도체 비하인드] 전두환의 결단, 기흥·이천 반도체공장 탄생

    [김용삼의 한국 반도체 비하인드] 전두환의 결단, 기흥·이천 반도체공장 탄생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은 국내외에 평지풍파를 몰고 왔다. 미국의 인텔은 삼성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라고 비꼬았고,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협소한 내수시장, 연관 산업 취약,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자금 조달 능력 의문, 빈약한 기술 덕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비난과 반대의 소용돌이 와중에 1983년 10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이 삼성의 부천 반도체공장을 방문했다. 이날 김광호 삼성전자 이사가 "이병철 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VLSI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한 지 9개월 만에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라는 내용을 보고했다. 김광호 이사의 보고를 받은 전 대통령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때까지 64KD램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미국 4개 사, 일본 6개 사에 불과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 대열에 올랐다. 이것이 한국 첨단산업 개발사에서 중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날 전 대통령은 "외국의 견제가 들어올지 모르니 홍보를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진출을 막기 위해 덤핑 공세를 할 수도 있으니, 우리가 시장을 개척해 쫓아갈 수 있는 단계가 될 때 알려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이병철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것까지 간섭하는가"라며 서운하게 생각했다. 결국 삼성은 대통령의 조언을 무시하고 1983년 12월 1일, 64KD램 개발 성공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1983년 연말 전 대통령은 재계 원로들을 부부 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하여 만찬을 함께 했다. 이때 이병철 회장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64KD램 개발 때 대통령께서 광고하지 말도록 권유했다는 얘기를 듣고 납득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대통령께서 우려하신 대로 흘러갔다. 전 대통령은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는데, 나보다 뛰어난 사업 감각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삼성은 반도체 생산을 부천의 낡은 한국반도체 시설을 그대로 사용했다. 구시대적 설비로 미래 수요에 대비하기 어렵게 되자 이병철 회장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 신설을 결정했다. 업의 특성상 대단히 까다로운 입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 깨끗한 공기와 풍부한 물, 물류가 용이한 지역을 집중 탐색한 끝에 용인군 기흥읍 농서리 일대에서 반도체 공장부지로 적합한 땅을 발견했다. ◆대통령이 눈 딱 감고 용도 변경 허가 삼성이 반도체공장을 지으려고 매입한 기흥 일대 40만 평의 땅은 청와대가 신도시 건설 부지로 검토했던 곳이다. 문제는 이곳이 산림보존 지역, 경지 지역, 상수도 보호지역이어서 공장을 지으려면 용도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대한 애로가 발생했다.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주장하는 상공부는 "기술 발전과 경제도약을 위해 해당 지역의 용도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라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농수산부는 "쌀이 부족한 마당에 농지를 공장용지로 용도 변경하면 쌀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다"라며 강력 반대했다. 주무 부처인 건설부는 신도시 건설 운운하며 청와대의 눈치만 살폈다. 보고를 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농사지어 얻은 쌀과 산업의 쌀 중 무엇이 더 큰 국익인가? 반도체라는 산업의 쌀을 만들어 수출해야 쌀도 사 먹고, 나라도 부강해질 것 아닌가"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의 결심을 전해 들은 건설부는 1983년 7월 5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일대를 삼성반도체공장 부지로 용도 변경을 허가했다. 삼성은 9월 12일 기흥에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대단위 VLSI 생산공장 기공식을 거행했다. 기흥공장 제1라인은 64KD램 반도체를 월 600만 개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병철 회장은 이날 선진국에선 18개월 걸리는 공사를 6개월 내에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공장 건설 책임자인 성평건 공장장은 이 어려운 임무를 맡아 기한 내에 완공했다. 건설 공정과 시운전 과정을 지켜본 미국 인텔과 IBM, 일본 전문가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첨단 공장을 6개월 만에 완공한 기술진의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1984년 5월 17일 기흥에서 VLSI 공장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도 반도체공장 건설을 위해 경기도 이천 부발읍 지역의 토지를 매입했다. 공장용지 한가운데 절대농지와 초지가 포함돼 있어 삼성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곳이었다. 현대도 전두환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983년 9월 17일 용도 변경 허가를 완료했다. 당시 법률과 관료주의 잣대로 규제를 고수했다면, 삼성의 기흥 라인 6개월 준공 신화나 현대전자의 이천 반도체공장은 불가능했다. 최고 지도자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라는 큰 틀에서 과감한 특혜성 용도 변경을 단행한 결단이 오늘날 K-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토대를 닦은 것이다. 64KD램 개발·생산이 국내에서는 축제였을지 몰라도, 경영 차원의 현실은 참담했다. D램의 제품 수명주기는 평균 3년이다. 64KD램은 1981년 처음 시중에 출시되었다. 삼성의 64KD램 개발 시기는 이 제품의 끝물에 해당했다. 삼성이 천신만고 끝에 64KD램을 개발한 것과 거의 비슷한 1983년 말, 일본 히타치는 256KD램을 출시했다. ◆천문학적 적자 불구, 반도체 계속 지원 삼성이 64KD램 개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삼성을 짓밟기 위해 무자비한 덤핑 공세를 벌였다. 1985년 개당 3달러 50센트였던 64KD램의 국제가격이 불과 몇 달 만에 50센트로 곤두박질했다. 당시 64KD램의 제조원가는 1달러 70센트였으나, 판매가는 50센트에 불과했다. 삼성은 개당 1달러 20센트씩 손해를 봐야 했다. 삼성은 64KD램 출시 첫해인 1985년 42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986년과 1987년에도 적자가 계속되어 1984년 이래 누적적자가 무려 1천159억 원에 이르렀다(강진구,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 고려원, 1996, 239쪽). 국제적으로 PC 시장에 불황이 닥치면서 256KD램 가격도 31달러에서 3달러로 대폭락했다. 삼성이 64KD램을 출시한 후 고전을 면치 못하자 반도체 반대 세력들은 "이러다 삼성 망한다"라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심각한 상황이 되자 전두환 대통령은 비서실에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실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렸다(『전두환 회고록(2): 청와대 시절』, 자작나무숲, 2017(2), 221쪽). 전두환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믿고 반도체 산업을 계속 지원하라고 밀어붙였다. 삼성은 1984년 10월, 64KD램보다 기억량이 4배 늘어난 256KD램 개발에 돌입했고, 그로부터 10개월 후 개발에 성공했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병철 회장은 이날 연구소를 찾아가 개발진을 얼싸안고 기뻐하며 일일이 격려했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09-06 14: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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