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3 19:07:29
[기고] 디지털이 이끄는 의료 전환… 대만 전인(全人) 돌봄의 새로운 장
전 세계가 고령화와 의료 인력 부족 등의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의료의 디지털 전환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대만은 '건강한 대만' 비전을 추진하며 '디지털 돌봄 구현'을 핵심으로 삼아, 빅데이터·인공지능(AI)·클라우드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의료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고, '전인 돌봄(Holistic Care)' 중심의 새로운 의료 모델로 나아가고 있다. 대만은 국가 차원의 디지털 의료 플랫폼인 '333 아키텍처'를 제시하여, 3대 공간·3대 표준·3대 AI 센터를 통합한 완전한 디지털 헬스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 체계 아래 전국 400여 개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통합을 추진하고 있으며, FHIR 등 국제 표준을 도입해 병원 간 데이터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보안 체계를 기반으로 의료 데이터가 안전하게 유통되고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책 추진의 성과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만성질환 관리 분야에서는 '가정의학 통합 플랫폼'을 통해 AI 기반 위험 예측 기능을 도입하여, 의사들이 개인 맞춤형 돌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 서비스는 단순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건강관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의료 정보 통합 분야에서는 메디클라우드(MediCloud)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진료 및 투약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검사 결과의 시각화와 의료영상 AI 판독 기능을 강화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을 높이고 있다. 개인 건강관리 측면에서는 '건강저금통(Health Bank)' 서비스의 보급률이 이미 50%를 넘어섰으며, 웨어러블 기기 데이터와의 연계를 통해 국민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암 치료 디지털화 분야에서는 FHIR 표준을 활용해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데이터를 교환함으로써, 중증질환 심사와 약제 사용 절차를 신속화하고 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또한 가상 건강보험카드, 전자처방전, 원격의료 서비스의 확대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며, 의료 취약지역과 재택 돌봄 서비스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의료 AI 발전 분야에서도 대만은 완전한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했다. 대만은 19개의 국가급 의료 AI 센터를 설립해 책임 있는 거버넌스, 임상 검증, 영향 평가 등을 수행하며, AI가 연구개발 단계부터 실제 의료 현장 적용에 이르기까지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까지 50개 이상의 의료 AI 제품이 승인을 받아 암 조기 진단, 심혈관 사건 예측, 임상 의사결정 지원 등에 활용되고 있다. 또한 대만의 13개 병원이 '뉴스위크'(Newsweek) 선정 '2026 세계 최고 스마트 병원'에 이름을 올리며 아시아 2위의 성과를 기록해 국제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와 함께 대만은 민감한 데이터를 이동시키지 않고도 기관 간·국가 간 AI 모델 검증이 가능한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미 동남아시아 협력 파트너들과 함께 신뢰 기반의 국제 데이터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질병에는 국경이 없으며,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에는 긴밀한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 대만의 실질적 경험은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WHO와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대만을 글로벌 보건 체계에 포함시켜 그 완전성과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줄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 또한 WHO 헌장의 "건강은 기본적 인권"이라는 가치와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Leave No One Behind)"는 목표를 함께 실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스충량(石崇良) 대만 위생복리부 부장(장관)
2026-05-13 10:55:57
#물방울의 생각 똑똑똑. 쉼 없이 부딪쳐 마침내 구멍을 냈다. 나보다 백 배 천 배는 단단한 바위를 기어이 굴복시켰다. 구멍이 넓어질 때마다 내 동료들의 규합도 쉬워진다. 역시 뭔가를 이루기 위해선 세력을 키워야 한다. 보는 게 많아 아는 것도 많은 구름이 말하길 당위성은 승리한 자의 문패 같은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바위가 완전히 쪼개져 작은 샘이 생길 것이다. 샘이 커져 저수지가 되고 나아가 광대한 호수가 될 수도 있겠지. 그렇다. 우리네 의도가 곧 정도(正道)이다. #바위의 생각 똑똑똑. 오랜 시간 눈물방울 떨구는 모습이 가여워 방 한 칸 내 주었다. 눈물방울의 몸에 꼭 맞는 둥글고 예쁜 방을. 내 겨드랑이에 해당하는 몸통 어딘가에 틈입하여 웅크리고 있다가 조금씩 떨어지는 저 연약한 감정의 부스러기들. 그런데 이 무슨. 방을 넓히는 것도 모자라 차제에 지하실이라도 내겠다는 심산인지 이즈음엔 노골적으로 칭얼거리고 두드린다. 바람이 전하는 건너편 강물의 성정은 이렇지 않았다. 물이라고 다 같은 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소나무의 생각 똑똑똑. 그 소리가 갈수록 빨라지고 커진다. 그래도 바위 틈새에 빌붙어 사는 내 신세보다는 나을 성싶다. 물방울의 꿍꿍이를 안 바위의 심기가 불편해질수록 내 불안도 커진다. 이럴 바엔 물방울의 발원지가 막혔으면 싶다가도 직박구리 가족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어미 직박구리와 새끼들이 바위의 발등에 난 움푹한 상처를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거기 고인 물로 목을 축이고 있다. 저쪽의 아픔이 이쪽의 해갈로 치환되는 경이로운 장면을 목도하는 중이다. #직박구리의 생각 똑똑똑. 다 좋은데 바위에 고인 물의 양이 찔끔찔끔, 성에 차지 않는다. 대부분 바위를 타고 흘러내려 땅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게다가 금세 말라버린다. 바위 몸통에 묻은 저것을 쪼아 마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벌레도 많고 열매도 많아 취식엔 최적의 환경인데 다만 물이 문제다. 벼락이라도 떨어져 바위가 쪼개진다면, 그리하여 콸콸 물이 쏟아지면 얼마나 좋으랴. #사람의 생각 똑똑똑.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젖히고 올려봤다. 다시 봐도 놀랍다. 저런 규모의 암벽이 있을 줄 몰랐다. 아무튼 저것 때문에 길이 막혔다. 우회해서 가기엔 지형이 너무 가파르다. 벌레가 많은 것도 저것이 드리운 그늘 때문으로 보인다. 저것만 없으면 트레킹 코스를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암벽 중턱에 붙어 있는 말라비틀어진 소나무 좀 보라지. 사람으로 치면 영락없는 중환자 몰골이다. 이거야 원, 산행할 기분이 싹 가셨다.
2026-05-13 10:45:16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46>행사기록화이자 감상화이자 집단초상화, 권대운기로연회도
'권대운기로연회도'는 핵심 장면인 두 폭만 남았으나 원래는 8폭 병풍이었을 것이다. 전체가 온전한 8폭의 또 다른 '권대운기로연회도'가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돼있기 때문이다. 같은 병풍을 여러 벌을 제작해 주요 참석자들이 각각 소장하며 일시동사(一時同事)의 기념물로 삼았을 것이다. 서울대본의 제1폭 서문과 제8폭 참석자 명단인 좌목(座目)을 통해 이 그림을 파악할 수 있다. 권대운(1612~1699)은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고위 관료이고, 기로연은 기로소(耆老所)의 잔치다. 기로소는 기로사(耆老社), 기사(耆社)라고도 했다. 나이 칠십을 넘기고 정2품 이상을 지낸 문관을 소속시켜 양로(養老)의 윤리를 실천하며 나라의 원로를 예우하는 상징적 권위를 지닌 기관이었다. 관복(官福)과 수복(壽福) 두 가지를 모두 누려야 가능한 일이므로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은 개인과 가문의 명예였다. 그림 중앙의 권대운, 목내선, 이관징, 오정위 네 분은 모두 기로소에 입소했고 같은 붕당인 남인이다. 좌우로 이들의 후손 넷이 배석했고, 제일 오른쪽은 권대운의 손자다. 상중하 삼단으로 차등을 줘 자리를 배치했고, 옷의 색깔로도 구분되게 했다. 인물도 중요도에 따라 대중소가 다른 주대종소(主大從小) 표현법이다. 여성들은 더욱 작게 그렸다. '기로연회도'로 제목이 붙여졌지만 기로연은 원래 궁궐이나 관청에서 베풀어지는 공식적인 국가 행사다. 이 연회는 서울 남산 아래 권대운의 집에서 열린 사적인 잔치였다. 화의(畵意)가 특이하다. 행사를 기록한 그림이면서, 참석자 각각의 얼굴이 분명하고, 고사인물화의 감상성까지 중첩시켰으며, 한중이 섞였다. 집은 조선 기와집이고, 도홍색(桃紅色) 관복을 비롯해 9명의 남성은 분명 현장의 당사자들인데 정원의 조경과 집기, 시중드는 10명의 여성은 중국 고사화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당 아래 뜰에서 한 여성이 술잔을 올리며 권주가를 부르는 장면으로 그렸다. '권대운기로연회도'는 행사기록화인 동시에 길상적인 감상화이고, 참석자들의 얼굴이 모두 8분면으로 정면을 향하는 집단 초상화인 다기능적인 교묘한 작품이다. 윗분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만족시킨 숙종시대 화원화가의 실력 만세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5-13 10:18:07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끝내 편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콜롬비아는 1819년 독립을 얻은 뒤에도 내전이 100년 넘게 이어지면서 다양한 세력 변동과 합종연횡이 난무했다. 기만과 배신과 모략이 비일비재한 세월 동안 적과 동지의 구분이 모호하고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지 않으며 전쟁 명분조차 불분명한 시간이었다. 역사적 순차적 정리가 거의 불가능한 사건들. 현실과 사실과 역사를 정리하는 질서가 와해된 부조리와 혼란 속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탄생한다. 마르케스의 외할아버지는 오랜 내전을 겪은 퇴역 육군 대령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대부분을 정부를 위해 싸웠다. 외할아버지가 퇴역한 후 벌어진 일은 끊임없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정부는 제대 후 거액의 연금을 약속했고, 그 연금이 할아버지에게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불하기로 약속한 연금은 아예 지불할 수 없었고 지불할 계획도 없었다. 앞의 전쟁이 뒤의 전쟁을 불렀고, 그 전쟁이 멈췄을 때 그것을 대신한 것은 끝도 없는 기다림이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마르케스가 외할아버지의 삶을 재현한 초기 걸작이다. 매주 금요일 낡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우편물을 기다리지만 "대령님에게 온 것은 하나도 없군요."(20쪽) 라는 대답만 듣고 돌아오는 대령이 기다리는 건, 연금 수령 통지서였다. 대령은 혁명군 군수사령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혁명 자금을 넘기고 친필 서명이 담긴 인수증을 근거로 자격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내전이 끝나고 56년 동안, 기다리는 연금 수령 통지서는 오지 않는다. 마르케스의 외할아버지 역시 내전을 두루 겪고 바나나 농장에 정착해 매일같이 끝내 오지 않을 연금을 기다리던 노인이었다. 대령의 삶은 전쟁과 죽음을 딛고 이어온 시간과 연금을 기다리는 시간, 말하자면 멈추고 갇힌 시간이었다. 콜롬비아의 지난한 내전과 끝나지 않은 정치 혼란을 드러내는 몇 개의 문장은 인상적이다. "오랜만에 보는 자연사"(11쪽) "어떤 소식도 다음 달보다 더 놀랍지 않았다."(25쪽) 급기야 변호사 교체를 결심한 대령에게 변호사가 답하는 대목. "최근 십오 년 동안 관리들이 수없이 바뀌었습니다. 일곱 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대통령마다 적어도 열 차례는 내각을 교체했고, 장관마다 적어도 백 번은 직원들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십시오."(40쪽) 마르케스는 소설에 수탉 한 마리를 끼워 넣어 콜롬비아 민중의 명예와 자존심의 상징으로 삼는다. 몇 달 뒤 투계장에서 승리하면 900페소를 받을 수 있는 녀석이지만, 대령과 그의 부인에겐 당장 내일 먹을 양식조차 없는 상황. 아내는 천식을 앓고 연금통지서는 오지 않는다. 뒤늦게 (내전의 달콤한 과실을 획득해 부자가 된) 사바스에게 수탉을 넘기려고 하나 뜻대로 될 리 없다. 현실적인 아내와 대의와 명분을 지키려는 대령의 대화, 즉 사바스가 당뇨로 죽어간다며 연민을 보이는 대령에게 "당신은 선거에서 등골이 부서지도록 일했고, 그래서 한자리 얻을 권리가 있어요. 내전에서 목숨을 건 후 참전 용사 연금을 받을 권리도 있어요. 이제 모두 확실하게 보장된 삶을 사는데 당신은 완전히 혼자서 배를 곯고 죽어 가요."라며 응수하는 아내의 절망 섞인 푸념은 몹시 처량하다. 문학을 잘 아는 이들이야 소설이 지향하는 명예로운 태도에 감동어린 찬사를 바칠 수도 있겠으나, 전리품을 독식하는 혁명동지에게 의리를 지키려는, 인내심이 바닥 친 아내 앞에서조차 자존심과 품위를 앞세우는 대령의 처신이 정말 감동적인지, 난 잘 모르겠다.
2026-05-13 10:14:18
탐날 만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6년 영업이익은 2025년 대비 많게는 500조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니까 말이다. 실효 법인세율 감안하면 약 100조원 이상의 법인세가 걷히는 셈이다. 게다가 두 기업의 2027년 영업이익은 2026년보다 200조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단순 계산해도 추가로 40조원 세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한국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세수 전망치가 390조원에 불과하니 정부 입장에선 군침이 흐를 수밖에 없다.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면 뭔가 과시하고 싶은 게 정치인의 습성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페이스북 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는 된다. 김 실장은 12일 "AI 인프라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끌어낸 결과가 아니다"라며 이를 시민에게 환원하기 위한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다. 안타깝게도 시장은 김 실장뿐 아니라 현 정부 누구에게도 그 돈을 자기 쌈짓돈처럼 펑펑 쓸 권리가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7999.67까지 치솟았던 12일 코스피 지수가 장중 5% 이상 폭락한 것을 두고 김 실장의 발언이 원인이었다는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왜일까. 갑자기 목돈이 들어오더라도 정부는 이 돈이 해마다 들어올 것이란 망상에 기초해 정책을 만들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돈은 한국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돈이다. AI 덕에 반도체가 기존의 사이클을 벗어나 구조적 호황 산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원래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었다. 공급은 계단식으로 늘어나고 수요는 일정하게 늘어나기에 기업은 호황과 불황 때마다 '초과 이익'과 '적자'를 넘나들었다.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만 살아남아 과점에 따른 사상 초유의 이익이 난 것이다. 성경 속 재미난 얘기가 떠오른다. 이집트 파라오는 살찐 소 7마리가 나오는 꿈을 꾸다 이내 비쩍 마른 소 7마리에게 살찐 소가 모두 잡아 먹히는 꿈을 꾼다. 요셉은 이 꿈을 "7년 풍년 뒤 7년 흉년이 올 것"이라고 내다보며 "7년의 풍년 동안 다가올 7년의 흉년을 대비해 곡물을 비축할 것"을 조언한다. 파라오는 요셉을 총리로 임명하고 풍년 7년 동안 곡물의 일부를 세금처럼 거둬서 저장했고 이는 이집트 국력이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한국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인구 급감에 따른 생산성 위축과 고령화에 따른 건강 비용, 장기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일에 대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25년 6월부터 2030년 6월까지 한국의 곳간을 맡아서 관리하는 곳간지기일 뿐이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근시안적인 이익 공유로 탕진해 버리지 않길 바란다. 탐나겠지만 당신 돈이 아니다. 최재리 자산운용사 팀장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5-13 07:30:00
우리의 식탁은 때로 역사의 심판대가 된다. 식탁 위에 올라온 나물 한 접시, 젓갈 한 종지에도 서슬 퍼런 역사의 비판과 민초들의 해학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숙주나물이다. 이 나물의 이름은 녹두에서 싹을 틔웠다 하여 '녹두나물'이라 불러야 마땅하지만 '숙주나물'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신숙주(申叔舟)의 이름이 투영되어 있다. 신숙주는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당대 최고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필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수양대군(세조)의 편에 서서 권력을 잡았다. 함께 집현전에서 수학했던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死六臣)이 절개를 지키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는 화려한 관직을 이어가며 부귀영화의 길을 택했다. 백성들은 그의 명석한 두뇌는 인정했으나,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그의 변절을 비웃었고, 쉽게 쉬어버리고 맛이 변하는 녹두나물을 보고 "신숙주의 마음처럼 잘 변한다"라고 쑥덕거렸고, 급기야 그것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 한편 '곤쟁이젓'은 남을 헐뜯고 음해하는 간신들에 대한 분노가 담긴 음식이다. 여기에는 중종 시대 기묘사화의 주동자였던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의 이름이 얽혀 있다. 당시 조광조(趙光祖)를 필두로 한 사림파의 개혁 정치에 반발한 남곤과 심정은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된다)'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꿀로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하는 간계로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백성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곤정(袞貞)'이라 불렀고, 이것의 발음이 변해 '곤쟁이'가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작고 볼품없는 곤쟁이들이 뒤섞여 삭아가는 젓갈의 모습에서, 남을 음해하여 권력을 탐하는 소인배의 비겁한 작태를 떠올린 것이다. 민초들이 이토록 가혹하게 그들의 이름을 식탁 위에 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변절과 음해는 공동체의 근간인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변절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가치와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다. 신숙주가 보여준 선택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꿈꾸던 동료와의 약속을 배신한 행위였다. 음해는 더욱 비열하다. 정정당당한 논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화살을 쏘는 짓이다. 남곤과 심정이 사용한 수법은 사실의 왜곡과 프레임 씌우기였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해는 한 시대의 개혁 의지를 꺾고 수많은 인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들이 남긴 독기는 결국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당쟁의 소용돌이를 격화시키는 불씨가 되었다.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숙주나물'과 '곤쟁이젓'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를 맹비난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철새처럼 진영을 옮기는 현대판 신숙주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신념은 장식품에 불과하고, 변절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된다. 디지털 세상에서의 음해는 더욱 잔인해졌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행위는 '주초위왕'보다 훨씬 빠르고 치명적이다.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좌표를 찍고 조리돌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곤쟁이젓의 짠내보다 더 지독한 악취를 맡는다.
2026-05-13 05:00:00
[사설] 일부 후보들 토론 회피, 역량·비전 검증 피하겠다는 꼼수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토론 회피'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양향자 경기도지사 후보의 토론 제안에 "상대방과 싸우지 않겠다. 시민의 불편과 싸우겠다. 정책 대결을 하겠다"거나 "상대방에 결례를 범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는 것이 정치 신뢰(信賴)를 높일 수 있는 길"이라며 토론을 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간 토론은 상대방과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공약을 유권자들로부터 검증(檢證)받는 과정이다. 토론과 질문으로 검증되지 않는 공약은 '장밋빛 공약' '선거용 구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질문과 반박 과정에서 공약을 좀 더 세련되고 구체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공약과 정치철학 토론은 유권자들에게 어느 후보가 더 적합한지 구별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런 점에서 토론 회피는 주권자를 무시(無視)하는 행태이자 '책임 있는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지지율이 앞서는 후보 입장에서는 토론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단순히 승부(勝負)를 가리는 절차(節次)가 아니다. 주권자가 누구에게 권한을 맡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후보자는 국민 앞에 자신의 비전과 정책, 철학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지지율이 높으니 검증을 최소화하겠다면, 민주주의 본질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토론은 후보의 준비 수준과 정책 이해도, 위기 대응 능력, 상대 의견을 경청(傾聽)하는 태도까지 종합적으로 드러나는 자리다. 토론을 통해 유권자는 공약집이나 일방적 홍보물로 알기 어려운 후보의 실제 역량(力量)을 판단한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비판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등 지도자의 자질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토론 회피는 국민에게 필요한 판단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2026-05-13 05:00:00
청와대는 12일 언론 공지(公知)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내일(13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예방을 받고 접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을 방문한 베선트 장관은 당초 13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곧바로 베이징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이 미·중 재무장관 회담의 장소만 제공할 뿐, '패싱'당하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고위 관료가 동맹국(同盟國)을 찾으면서 협의 일정을 전혀 소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異例的)인 외교적 결례로 비칠 수 있었던 탓이다. 특히 14일 미·중 공식 정상회담에선 대중(對中) 관세 및 무역·투자위원회 신설, 미국산 농산물·보잉기 구매를 비롯한 양국 간 현안뿐만 아니라, 이란전쟁·국제 에너지 수급 문제 등 글로벌 현안(懸案)이 함께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미 간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1일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4월에 베선트 장관과 만나 충분히 할 이야기를 다 했고 베선트 장관과는 수시로 소통(疏通)하고 있다"면서 "얼마든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만나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의 회동 일정도 잡힌 것이 없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도 지난 10일 SNS를 통해 "일본을 12일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을 만난다"고 알렸지만, 방한 일정에서 한국 측 인사와의 면담 계획은 없었다. '한국 패싱 논란'이 확산하면서 이재명 정부가 서둘러 청와대 만남을 주선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推論)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눈치 보기 '셰셰 외교'로 인해 한미동맹(韓美同盟)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뒤늦은 '깜짝 회담'은 이재명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외교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2026-05-13 05:00:00
[사설] 기업 지방 투자 촉진, 더 파격적 세제 지원 절실하다
한국 경제가 1분기 1.7% 성장하며, 현재까지 성장률을 발표한 주요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열풍 속 반도체 수출이 폭증했고, 설비투자도 살아났다. 코스피는 8천 선에 육박하고 수출은 사상 최대 수준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산업 현장과 지역 경제는 여전히 힘겹다. 중소기업들은 자금난과 인력난을 호소하고, 지방 산업단지는 공실(空室)이 늘고 있다. 일부 업종에서는 구조조정과 무급휴직까지 이어진다. 과거 제조업은 지역 경제와 협력업체, 고용시장까지 함께 살려냈다. 그러나 반도체 등 초고자본·초자동화 산업은 투자와 수출 효과만 클 뿐 고용 유발은 제한적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은 살아나지 않고, 수출 호조에도 지역 경제는 냉랭한 이유다. 최근 정부는 지방 투자 기업에 대해 법인세·재산세 감면(減免)을 확대하고, 인구감소지역 고용 기업에 추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지방 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과 비수도권 청년 고용 지원책도 확대하고 있다. 기업과 청년을 수도권 밖으로 보내지 않으면 경제 불균형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만 깎아준다고 기업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다. 세율도 중요하지만 기업은 인재와 시장, 협력업체와 인프라를 본다. 대기업 한 곳을 유치한다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시대도 아니다. 지방에 공장을 세워도 연구개발과 고급 일자리는 수도권으로 돌아간다. 세제 혜택을 통한 '공장 유치'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복원이 필요하다. 중견 제조업과 지역 부품업체, 연구개발 기능, 대학과 인력 양성 체계를 연결해야 한다. 서비스업 생산성과 소비 기반까지 함께 키우지 못하면 지역 경제는 수도권과 반도체 산업의 하청(下請) 구조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반도체가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가 계속될수록 경제 복원력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낮은 성장률이 아니라 성장의 연결이 특정 분야와 지역에만 몰리는 게 문제다. 숫자는 좋아졌지만 경제의 저변(底邊)은 좁아지고 있다. 그것이 1분기 깜짝 성장률이 던진 무거운 경고다.
2026-05-13 05:00:00
[관풍루] 권영세 의원, 출마 기자회견 당시 '영상기자가 무대서 추락한 것 몰랐다'는 한동훈에 "나무호 피격 정부가 모른다는 것과 같다"고 직격
○…권영세 의원, 출마 기자회견 당시 '영상기자가 무대서 추락한 것 몰랐다'는 한동훈에 "나무호 피격 정부가 모른다는 것과 같다"고 직격. 미워하는 심정은 알겠는데 '오버'한 견강부회가 아닐지…. ○…비싼 교복 가격이 논란이 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교복 가격 담합' 과징금 강화하겠다고 으름장. 이재명 대통령의 '등골 브레이커' 언급에 따른 조치, 봄마다 고개 드는 적폐가 이번엔 사라질까. ○…미 월가에 '타코(TACO)' 이어 '나초(NACHO)'까지 등장.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우려 속에 '개방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라는데. 이런 추세면 트럼프, 멕시코 음식으로 한 상 차려 먹을 듯.
2026-05-13 05:00:00
2026-05-12 18:43:15
학창 시절 16년을 보내고도 그 후로 35년, 나는 아직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며 학교로 향하는 교사이다. 언제나 5월이 되면 마치 사랑에 빠진 듯 온통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하던 초임 시절의 풋풋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예전에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면 비밀번호 분실 시 확인할 질문을 선택하고 그 답을 기입하는 절차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이라는 질문에 별 고민 없이 내 이름을 적어줄 수 있는 제자가 몇이나 될까? 혼자서 궁금해하던 때도 있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그 개념마저 '조용한 소멸'을 맞이하고 있는 요즘, 나는 다시 나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스승의 날을 맞아 과연 나는 그들의 삶 속에 작은 울림으로 남을 수 있는 흔적을 남겼는지,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명감을 지닌 교사로 살아왔는지 자문하게 된다. 오래전 한 방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묻는 설문이 있었다. 결과는 의외로 교생 선생님이 1위를 차지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간직한 스승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한 분쯤은 평생 잊히지 않는 스승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선생님' 하면, 자연스럽게 40여 년 전 나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한 분이 떠오른다. 그분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몸소 가르쳐 주셨다. 연말이 되면 지인들에게 보내는 연하장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손으로 써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모습은 '관계는 정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없이 일깨워 주었다. 지금 나는 손 편지 대신 SNS로 안부를 전한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진심을 담아 보내는 인사는 여전히 그때 배운 가르침 위에 서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관계를 이어주고 신뢰를 지켜주는 힘은 결국 이러한 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소중한 배움은 지금껏 나를 지탱하는 삶의 큰 기둥이 되고 있다. 나도 나의 루틴 중 하나가 아이들의 인생에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사로 마지막까지 자리하고 싶다는 게 큰 욕심이 아니길 바라본다. 최근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소명에 헌신하고 있다. 결국 교사라는 길은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 그것은 학생들과의 끊임없는 공감과 소통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제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 한 명 한 명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교사의 작은 실천 하나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교실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스승은 직업이 아니라 관계이며, 존재로 남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오늘도 교실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지고 있다. 푸르른 오월 어느 하루,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그 마음을 기억하는 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더라도 우리가 잘 지키고 이어 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우리 사회가 꼭 기억했으면 한다.
2026-05-12 11:16:56
전쟁의 시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장기화되고, 중동의 충돌은 세계를 다시 긴장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국가와 이념, 종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정세 속에서 평화는 점점 추상적인 언어가 돼간다. 뉴스 속 전쟁이 반복될수록 참혹함에 대한 감각은 오히려 무뎌진다. 죽음과 파괴가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공존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1967년, 미국의 젊은 세대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총 대신 꽃을 들었고, 머리에 꽃을 꽂았다. 스콧 맥킨지의 노래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려거든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이 짧은 가사는 전쟁과 폭력에 맞서는 평화주의의 선언이 됐다. 꽃은 나약한 장식이 아니라 폭력에 저항하는 가장 순수한 상징이었다.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라 불린 이 반전운동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질서와 폭력적 권력 구조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었으며, 예술과 음악, 패션과 행동이 결합된 거대한 사회적 메시지였다. 이 움직임은 미국을 넘어 동유럽으로 확산됐고, 프라하의 봄과 같은 민주화의 현장에서도 자유를 염원하는 몸짓으로 이어졌다. 머리에 꽃을 꽂는다는 행위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인간 존엄과 화해를 향한 보편적 언어가 됐다. 오늘의 세계는 다시금 '머리에 꽃을'이라는 오래된 상징을 불러낸다. 전쟁은 더욱 복잡해졌고 갈등은 한층 정교해졌지만 인간의 생명과 평화를 향한 열망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예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쟁의 참혹한 현실 앞에서 예술은 무기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의 감정을 흔들고, 무뎌진 양심을 깨우며, 시대의 상처를 기억하게 한다. 정치가 현실을 조율한다면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움직인다. '플라워 운동: 머리에 꽃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머리에 꽃을 꽂은 아이의 순진한 이미지는 낭만이 아니라 폭력 이전의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선언이다. 순수함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저항일 수 있다. 국적과 이념을 넘어 공존을 이야기하는 일 역시 그러하다. 평화는 거대한 외교의 결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폭력보다 존엄을 선택하려는 작은 몸짓에서 시작된다. 머리에 꽃을 꽂는다는 것은 결국, 전쟁의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무기가 아니라, 다시 꽃을 머리에 꽂을 용기다. 그 몸짓이야말로 때로는 가장 오래된 저항의 언어가 된다.
2026-05-12 09:44:39
[사설] 추미애 '조작기소 특검법 당연', 그러면 '6·3 선거 대표 공약'으로 내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조작기소 특검법안'에 대해 "수사를 통해 조작기소 실체가 명명백백히 밝혀진다면 억울하게 피해를 본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작기소 특검법안'의 독소 조항을 모르는 사람이 추 후보의 말을 듣는다면 특검법 반대가 억울한 피해 구제에 반대하는 줄 알겠다. '조작기소 특검법안'이 비판을 받는 것은 피고인인 이재명 대통령이 자기 사건을 재수사하고, 공소 취소까지 할 수 있는 특검을 자신이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뻔히 알면서도 추 후보는 사실을 호도(糊塗)하고 있다. 민주당이 주도한 '조작기소 국정조사'가 끝난 후 청와대는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共感帶)가 형성되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어떤 공감대가 형성됐고, 어떤 실체가 드러났나? 오히려 국정조사에서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증언(證言)은 기존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었다. 많은 법조인들과 언론, 야당은 물론이고 친민주당 성향의 언론들도 '조작기소 특검법'을 비판한다. 정의당·경실련 등 진보 단체들조차 위헌성을 비판한다. 민주당이 국정조사 증인 중 31명을 위증 등 혐의로 공수처와 경찰에 고발했다는 것은 국정조사에서 자신들이 기대했던 '조작 관련'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는 방증(傍證)일 것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만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관련 사건이나 김만배, 남욱 등의 대장동 사건이 검찰의 조작기소임이 드러났다면 재심을 청구해 억울한 피해를 바로잡으면 된다. 이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이 검찰의 조작기소라면 재판에서 그 증거를 제시하면 무죄 판결이 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확립된 법 절차를 외면(外面)하고, 조작기소 특검법으로 해결(解決)하려고 한다. 추 후보 주장처럼 '조작기소 특검법안'이 정당하다면 민주당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특검법안 처리를 민주당 대표 공약으로 내서 국민 선택을 받아 보라.
2026-05-12 05:00:00
[사설] 이제야 호르무즈 피격 확인이라니, 뭘 주저하는가
외교부는 10일 브리핑을 갖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HMM '나무호'의 폭발이 외부 공격(攻擊)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상의 비행체 2기가 HMM 나무호 선미 좌현 평형수 탱크 외판을 약 1분 간격으로 2차례 타격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또 질문에 답변하면서 "드론인지, 미사일인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했다. 사건 발생 6일 만에 겨우 '외부 공격'만을 확인한 셈이다. '드론 또는 미사일에 의한 피격'을 '미상의 비행체에 의한 공격'이라고 얼버무린 것부터 정부 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 비행체 엔진 잔해를 수거했는데도, 전문가로 구성되었다는 정부 합동 조사단이 드론과 미사일 엔진조차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특히 나무호 선미에 '5x7m'의 상당히 큰 파공(破空)이 발생했음에도 이재명 정부가 '내부 화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사건을 호도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초 피격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밝힌 이유에 대해 외교부는 "육안 확인만으로는 파공(구멍)을 식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解明)하지만, 정황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약하다. 사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에 의한 한국 선박 피해'를 확정하는 SNS 글을 올렸다. 인근 해역에서 프랑스·중국·UAE 선박 또한 이란의 공격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와 국영 IRNA통신은 "해상 규정을 위반한 한국 선박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마땅히 한국 정부는 '이란에 의한 피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망원경을 동원해서라도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아직도 가해 주체가 '이란'이라고 말하지 못한 채 뚜렷한 대책도 없다. '대통령 특사를 보내고,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50만달러를 주고도 오히려 두들겨 맞았다'는 비난(非難)이 두려운 탓일까. 정권 체면보다 나라의 주권·명예가 더 중요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우리 선박 26척과 선원들의 안전이 먼저다.
2026-05-12 05:00:00
[사설] 40년 '고속도로 휴게소 비리 카르텔', 국토부는 책임 없나
한국도로공사(도공) 퇴직자 단체인 '도성회'를 둘러싼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권 특혜 의혹이 결국 경찰 수사로 번졌다. 국토교통부는 11일 감사 결과 드러난 입찰 정보 사전 유출과 가격 담합 정황을 토대로 관계자 5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도성회 자회사인 H&DE는 입찰 공고가 나기도 전에 이미 용역 상황과 제안 일정 등 내부 정보를 확보해 이사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는 공정 경쟁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違背)한 행위다. 더욱이 낙찰 가격이 다른 참여자들의 평균가와 거의 일치했다는 점은 가격 담합이나 정보 공유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경악스러운 것은 이러한 비위가 지난 40여 년간 '전통'처럼 굳어져 왔다는 점이다. 도성회는 '비영리법인'이라는 지위를 방패 삼아 휴게소를 사실상 독점 운영하며 배당 잔치를 벌였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8억8천만원의 배당금을 확보했고, 이 가운데 약 4억원을 생일 축하금 명목으로 회원들에게 지급했다. 지난해 말 기준 도성회 예금 적립금도 약 25억원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탈세 의혹까지 불거졌다.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가 본연의 임무는 방기한 채 퇴직자들의 '평생 연금' 창구로 변질(變質)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도로공사의 방조와 특혜 제공은 카르텔의 공고함을 증명한다. 도공은 기존 운영 원칙까지 뒤집으며 수의계약을 맺어주는가 하면, 계열사 입찰 제한 규정을 무력화해 도성회 측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관리·감독의 주체가 되어야 할 공기업이 오히려 퇴직 선배들의 뒷배 노릇을 자처한 꼴이다. 이런 유착 관계 속에서 휴게소 운영의 효율성이나 서비스 질 향상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뒤늦게라도 '카르텔 척결' 의지를 밝힌 것은 다행이지만 단순히 몇몇을 징계하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독점적 운영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부당한 개입이 불가능한 투명한 입찰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고착화된 전관 특혜와 비리 사슬을 끊어내야 할 것이다.
2026-05-12 05:00:00
[관풍루] 2024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응급의료 헬기 이송 결정을 '공무원행동강령 위반'이라고 했던 국가권익위, 2년 전 판단은 부적정했다고 번복.
○…2024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응급의료 헬기 이송 결정을 '공무원행동강령 위반'이라고 했던 국가권익위, 2년 전 판단은 부적정했다고 번복. 정권에 따라 뒤집는 국가 행정기관의 판단, 민망함은 국민의 몫. ○…민주당 "尹 어게인 청산" VS 국민의힘 "李 대통령 공소 취소 논란" 부각, 6·3 지방선거 총력전 돌입. '지방'은 소멸되고, '정쟁'만 난무하니, 태평연월(太平煙月)은 꿈이런가. ○…8천까지 근접한 코스피, '불장'에 1만까지 도달 가능하다는 국내외 증권사 전망치 속출. 주가 상승 랠리에서도 고물가·취업난·빚투로 곳곳서 곡소리, 환호 뒤엔 짙은 먹구름.
2026-05-12 05:00:00
2026-05-11 18:47:57
[사설] 점심값조차 부담, 고비용 사회 피해 계층 보호정책 마련 나서야
코스피는 8,000선을 바라보고, 수출은 역대 최고 수준을 이어가며, 반도체·방산·조선·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은 호황을 구가(謳歌)한다. 수치만 보면 한국 경제는 순항 중인데 정작 시민들은 김밥 한 줄 가격과 점심값을 걱정한다. 패스트푸드점과 실속 뷔페형 식당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자산시장과 생활경제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낯선 국면이다. 가격은 유지한 채 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에 이어 재료 수준과 품질을 낮추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까지 등장했다. 통계상 물가 상승률보다 체감물가가 훨씬 높게 느껴지는 이유다. 중동전쟁 이후 국제유가 급등으로 비료·사료·물류·포장 비용이 동시에 뛰고 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3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고, 유지류(油脂類)와 곡물 가격도 상승세다. 식용유와 밀가루, 닭고기와 김밥 가격까지 밀어 올린다. 반도체와 AI 중심의 수출 호황은 대기업 실적과 자산시장을 부풀리지만, 국민 생활 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주가는 글로벌 유동성과 미래 기대가 밀어 올리지만 식사비는 국제유가와 곡물 가격, 환율이 결정한다. 현재 물가 상승을 단순한 경기 흐름 문제가 아니라 고비용 사회로의 구조적 전환 신호로 보는 까닭이다. 정부가 내놓은 유류세 인하, 최고가격제 등의 정책은 충격을 늦추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가격을 과도하게 억누르면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만 커질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가격 통제가 아니다. 전기·교통·급식 같은 생활 필수 비용을 안정시키고, 취약계층과 중산층의 실질 구매력 하락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초점을 옮겨야 한다. 물가와의 전쟁이라는 구호(口號)가 아니라 싸고 풍요롭던 시절이 끝나가는 지금, 누구를 먼저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현실적 선택이 시급하다. 코스피는 최고치를 향해 가는데 시민들은 점심값을 걱정하는 사회.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2026-05-11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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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 63%대36%는 부정선거 증거?···선관위 "일부 수치 확대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