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사

  • [사설] 포퓰리즘·방만한 재정 운용 불치병 된 프랑스, 남의 일 아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졌다. 발단(發端)은 정부의 예산 감축에 반발한 고교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 요구였고, 물가와 생계난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합류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 17일 시위에는 정부 추산 약 55만 명이 참가했고, 2천400명가량이 체포됐으며 상점 1천500곳이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재정 압박 속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공공부채가 올해 GDP의 119.3%, 내년 121.7%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고, 총리는 540억유로를 절감하지 않으면 내년 적자가 GDP의 6.5%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감축의 고통은 학교 같은 일상의 현장에서 체감됐고, 연금 등 지출을 키우는 근본 요인 대처는 더뎠다. 큰 폭의 감축은 의회에서 잇따라 막혔다. 앞서 바르니에 내각은 긴축(緊縮) 예산안으로 불신임을 당했고, 바이루 총리도 긴축 예산안 신임 투표에서 졌다. 긴축이 답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사회적·정치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거나 미루는 사이 감축은 점점 급해지고 반발도 커졌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태를 한국에 그대로 투영(投影)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는 교육, 물가, 생계난이 겹친 복합적 사건이고 한국의 부채 비율은 프랑스의 절반에 못 미친다. 정치·사회 구조도 다르다. 그러나 위험 신호, 즉 지출 압력과 규율의 약화는 한국에서도 보인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9%로 재정준칙 상한 3%를 2020년부터 6년째 넘었다. 내년 예산안은 총지출이 12.8% 늘어 역대 최고 증가율이다. 정부는 재정지표가 개선된다고 설명하지만 반도체 호황으로 국세수입이 늘어난 덕이다. 부채 비율이 50% 안팎이라는 데 안도(安堵)해선 안 된다. 재정준칙 법제화, 연금 구조개혁 로드맵, 초과 세수를 항구적 지출 확대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등을 위기 전에 합의해야 한다. 프랑스는 합의 없이 개혁을 밀어붙이거나 미루기를 반복했고, 반발과 교착 속에 큰 위기를 맞았다. 한국은 합의를 먼저 만들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에 서 있다.

    2026-10-20 05:00:00

  • [사설] 졸속 도입 확인된 단일종목 ETF, 진상규명 뒤따라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졸속(拙速) 심사(審査)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4월 중순인가 금융위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일정을 정책적으로 발표한 게 있다. 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통상 ETF 종목 상장 시 한국거래소 예비 심사와 금감원 심사 등 두 단계를 거치는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경우 예비 심사가 끝나기도 전에 심사를 했다며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를 묻자 이 원장은 "저희가 확인해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답변했다. 금감원 부원장보 이상 간부 13명 중 단일종목 ETF 출시에 찬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가 발표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일은 지난 5월 27일이다. 국내 증시를 인위적(人爲的)으로 부양시켜 6·3 지방선거 때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졸속 도입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금융당국의 무능과 무책임 아래 도입됨으로써 개인 투자자들이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 변동성 심화, 금융당국의 제도적 실패라는 엄청난 후폭풍에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중순까지 개인 투자자의 확정 처분 손실만 2조3천242억원에 달하고, 주가 급락에 따른 평가 손실까지 합산할 경우 전체 국민 피해 규모는 최대 54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分析)까지 제기되고 있다. 10월 현재 주요 레버리지 상품들은 상장가 2만원 안팎 대비 5분의 1 수준인 6천~7천원대 신저가로 추락했다. 국민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이번 사태를 그냥 묵과(默過)할 수는 없다. 금감원장의 국정감사 증언으로 무모하고 무책임한 정책 실패가 확인된 만큼,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규명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對)국민 사과 역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26-10-20 05:00:00

  • [사설] 소장한 친일파 글씨 '셀프 전시'한 유홍준 관장은 사퇴하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자신의 소장품(所藏品)을 전시에 내놓고, 친일파의 글씨를 애국지사의 작품으로 소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검증 부실을 넘어 소장품의 가치를 높이려는 '작품 세탁'이란 의혹까지 나온다. 문제의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 유묵(遺墨)은 유 관장이 경매에서 5만원에 구입한 개인 소장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직접 추천해 특별전에 출품했다. 박물관은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했지만, 재검증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으로 결론 났다. 친일파의 글씨를 독립운동가의 작품으로 잘못 소개한 것은 중앙박물관의 권위에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유 관장과 박물관은 전시품 검증이 부실했다며 사과하면서도 '관장의 소장품'이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전시 기획이 자신이 부임하기 2년 전에 이뤄졌다는 해명(解明)도 궁색하다. 관장 자신의 물건을 전시에 내놓으면서 이해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독립적인 검증을 거쳤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중앙박물관 전시 이력은 소장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애국지사의 작품으로 소개된 과정이 의도적인 '작품 세탁'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별도의 조사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19일 국정감사에서도 여야의 질타(叱咤)가 쏟아졌다. 야당은 사퇴를 요구했다. 여당에서도 소장자 신분을 뒤늦게 밝힌 경위를 따졌다. 유 관장은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누가 작품을 선정했고, 어떤 근거로 진위(眞僞)를 판단했으며, 관장의 추천이 검증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야 한다. 논란은 또 있다. 유 관장의 부인이 기증한 조선시대 돌 호랑이 조각도 넉 달 동안 홈페이지에 게시되지 않은 채 일부가 전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증 심의위원장이 남편인 관장이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利害衝突) 논란까지 불거졌다. 박물관의 내부 통제와 윤리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중앙박물관의 무너진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방법은 유 관장의 사퇴뿐이다.

    2026-10-20 05:00:00

  • [관풍루] 올해 초반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 나타냈던 한국 증시, 이달 들어서만 무려 17% 하락하면서 올해 누적 상승률 1위 자리도 내줘

    ○…'소방 재정 빨대' 발언으로 거센 파장 불러온 추미애 경기도지사, 26억5천만원의 소방차량 25대 구입 예산 삭감해 놓고 자신은 새로운 관용차 구매해. 재정 파탄 상황에도 새 관저와 새 차는 포기 못 하나 보지? ○…올해 초반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 나타냈던 한국 증시, 이달 들어서만 무려 17% 하락하면서 올해 누적 상승률 1위 자리도 내줘. 경제 기초 체력이 허약한데 숫자만 뛸 수 있나. ○…자녀를 둔 청년 맞벌이 가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하루 평균 1시간 43분 더 가사와 돌봄 노동에 매달리는 것으로 조사돼. 같이 벌고 세월이 흘러도 집안일은 여전히 '엄마 몫'인걸.

    2026-10-20 05:00:00

  • [날씨] 10월 20일(화)

    [날씨] 10월 20일(화) "대체로 흐리고 가끔 비"

    2026-10-19 18:50:34

  • [김용삼의 근대사] 자유주의 밑거름

    [김용삼의 근대사] 자유주의 밑거름

    최근 영화 〈암살자(들)〉의 제목을 차용하여 현대사의 세 지도자(이승만·박정희·전두환)를 단죄하는 『독재자(들)』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한국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이런 류의 책들이 제기하는 핵심 이슈는 개발연대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인권을 무시하고 헌법을 짓밟았으며, 독재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두 가지 치명적 오류가 숨어 있다. 첫째는, 서구 선진국들도 수백 년 걸렸던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안착 과정을 이제 갓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에 억지로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필요충분조건들이 갖춰져야만 하는데, 이 점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란 저서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갖춰진 사회가 열린 사회이며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서구 선진국들이 포퍼가 말한 '평화적 정권 교체'와 성별·계급·인종 차별 없는 온전한 보통 선거권을 확립한 시점은 17~18세기 명예혁명이나 미국 독립, 프랑스 혁명기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원형 국가인 영국에서 성인 남녀 모두에게 차별 없이 1인 1표 투표권이 주어진 시기는 1928년이었다. 미국은 1920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줬으나 흑인에게까지 차별 없이 투표권이 주어진 시기는 1965년이었다. 프랑스는 1944년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되어 1945년 처음 행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은 1949년 서독 기본법 제정과 총선을 통해 입헌적 자유민주 질서가 구축되었다. 스위스의 경우, 연방 차원에서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것은 1971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처럼 서구 선진국조차 최소 200~300년 유혈 혁명과 내전, 파시즘과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와 시장경제'라는 뿌리가 내려졌다. 한국은 어떤가. 1945년 8월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3년여 미군정을 거쳤다. 1948년 8월 건국된 지 2년 후 미증유의 전쟁을 겪으며 전 국토의 80%가 초토화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 내외의 절대빈곤과 폐허,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에 시달리는 신생국에서 "왜 건국 초부터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온전히 구가하지 못했느냐"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시대착오적 폭력이다. ◆민주주의는 아무 곳에서나 꽃피지 않는다 근대화 이론이나 민주주의 연구의 석학들은 자유민주주의는 아무 곳에서나 무작위로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사회경제적 토대'와 '제도적 국가 역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엄중한 연구와 통계, 사료를 통해 밝혀냈다. 정치학의 거두 시모어 마틴 립셋은 "경제 발전과 두터운 중산층 형성 없이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는 자생할 수 없다"라는 근대화 이론을 세운 학자다. 민주주의는 도덕적 선언이나 이념적 열망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생산력과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안착할 수 있는 제도적 상부구조라는 사실을 학문적으로 증명해 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립셋의 가설'이다. 정치학자 아담 프셰보르스키와 페르난도 리몬지는 1950~1990까지 135개국 데이터를 정밀 분석하여 립셋의 가설이 사실임을 증명해 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가난한 나라에서도 독재자 사망, 외적 충격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될 수는 있다. 하지만, 1인당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시작된 민주주의는 예외 없이 경제난과 쿠데타로 무너졌다. 프셰보르스키 연구에 따르면, 1인당 GDP가 당시 구매력 기준 6천 달러 이상에 도달한 민주 국가는 세계사에서 단 한 번도 독재로 회귀하지 않았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국민의 빈곤을 퇴치하고 사법부 독립과 재산권 등 법치주의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선거만 치르면, 거의 100% 확률로 독재자나 선동가가 권력을 장악하는 '비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전락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적 번영과 법치적 기반이 먼저 다져져야 비로소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성숙한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 낸 학자로 유명하다. 민주주의의 석학(碩學)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달도 "준비되지 않은 가난한 토양에 성급히 이식된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내전·독재의 파멸로 귀결된다"라고 설파했다. 이것이 그가 20세기 신생국들을 연구한 결과 내린 섬뜩한 결론이다. '정치 발전의 올바른 순서'를 주창한 학자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다. 그는 건전한 근대 국가가 작동하기 위한 3대 요소로 ①강력하고 유능한 국가기구(관료제·치안·인프라), ②재산권 보장과 권력을 제한하는 법치, ③정기 선거를 통한 민주적 책임성을 꼽았다. 후쿠야마는 ①과 ②가 정착되기 전에 ③을 먼저 도입하면, 국가는 포퓰리즘, 부패, 종족 갈등의 지옥으로 추락한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중동·남미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실패는 바로 이 '순서의 역전'이 낳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아시아국가인 한국·대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성공한 이유는 국가기구와 법적 질서, 경제적 번영을 먼저 닦은 후 민주화를 안착시킨 덕분이라고 설파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후쿠야마는 "물적 토대와 국가 역량 없이 급진적으로 도입된 민주주의는 축복이 아니라 국가를 파멸로 이끄는 독약"이라는 사실을 준엄하게 경고했다. 새뮤얼 헌팅턴도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정치질서』에서 '물질적 토대 없는 급진적 민주화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갓 독립한 신생국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즉각적 흉내'가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국가 권위와 행정 통제력"이라고 주장했다. 질서와 성장을 먼저 확보한 후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수용한 한국식 개발독재가 최선의 현실적 모델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학자가 헌팅턴이다. ◆엄격한 조건 갖춰져야 민주주의 정상 작동 이런 학자들의 분석 틀을 한국에 대입하면 좌파 진영의 이승만·박정희 폄훼는 이론적 무지를 바탕으로 한 선전 선동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948년 한국은 립셋이나 로버트 달이 경고한 "경제 토대 없는 상황에서 급진적 민주주의 도입"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만약 1인당 소득 60달러의 극빈 상황에서 한국이 서구식 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했다면 대지주 과두제와 빈곤을 해결하지 못해 중남미형 독재로 추락했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이승만 시기에 열정적인 농지개혁과 문맹 퇴치, 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박정희 시기에 경부고속도로·제철·조선·중화학공업을 육성했으며(제1의 성장동력), 전두환 시기에 IT산업(제2의 성장동력), 원자력 국산화(제3의 성장동력), 물가 안정과 3저 호황으로 물적 토대 건설에 성공했다. 탄탄한 중산층과 고학력 시민을 배양해 낸 후인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로 이행한 덕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고히 성공할 수 있었다.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는 도덕적 구호나 이념의 촛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산업화·근대화로 창출된 두터운 중산층과 고등 교육의 토대 위에서만 작동하는 신비로운 제도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는 밭을 갈고 거름 주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열매 맺기 위한 토양을 준비한 시기였다. 그런 과도기의 지도자들을 향해 "독재자" 운운하는 비난은 현대 정치학의 기본 원리조차 무지한 사람들의 패륜 행위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10-19 14:26:27

  • [사설] 호르무즈 우회 파병 논란, 장병 안전은 충분히 고려됐나

    국방부가 올 연말 임무가 끝나는 청해부대 파견을 연장하면서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해협과 연결되는 오만만까지 확대하고, 해상초계기 등 전력도 보강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군함 파견 압력과, 한국 내 좌파의 파병(派兵) 반대 사이에서 이재명 정부가 '우회 꼼수 파병'으로 정치적 난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주말 "호르무즈 상황과 관련해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 전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적 입장하에 우리 국민 보호, 우리 경제 이익 수호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검토해 나가고 있으며, 현재까지 결정된 바 없다"고 입장문을 냈다. 대통령 국방특보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대통령께서도 '파병은 전쟁에 개입하는 파병은 아니다. 그렇지만 청해부대에서 방어력(防禦力) 보강은 필요하다'고 전에도 말씀하셨다.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의 이 같은 접근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오만만과 곧바로 이어져 있는 호르무즈해협에서는 최근 2주 사이 한국 선사 소유 선박을 포함해 무려 24척의 민간 선박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 민간 상선에 대해서조차 무차별 공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청해부대 군함(軍艦)이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청해부대는 대(對)해적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2009년부터 소말리아 아덴만 지역으로 파견된 부대로서, 4천400톤급 구축함 1척과 해상작전헬기 1대, 고속단정 3척 이내로 구성된 소규모이다. 해상초계기 전력이 보강되더라도 중동의 군사 강국인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해외 파병에 따른 국내외 압력을 회피하기 위해 우리 장병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절대 안 된다. 파병 문제는 '꼼수' '편법'이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할 때만이 이해 당사국들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다.

    2026-10-19 05:00:00

  • [사설] 정권 위기 자초하는 대법원장 탄핵 추진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이다. 한국갤럽의 10월 셋째 주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가 39%로 하락세를 겨우 멈추긴 했지만 여전히 위태(危殆)롭다. 내리막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다. 지금 여권이 본격화하려는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추진이 그렇다. 민주당의 대법원장 탄핵 압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급기야 김민석 대표는 지난 주말 탄핵을 포함한 모든 경로를 검토 중이라며 탄핵 논의를 공식화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도 18일 "모호한 메시지를 멈추고 본회의 탄핵안 표결 날짜를 내놓으라"며 민주당을 몰아붙였다. 지금의 다툼은 대법관 후보 제청(提請)을 둘러싼 권한 갈등이다. 제청권과 임명권이 맞선 상황이지만 협의를 통한 정리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는 순간 싸움의 성격이 바뀐다. 갈등 정도가 아닌 다수 의석을 쥔 권력이 사법부 수장을 쫓아내는 일이 된다. 이 정권은 이기든 지든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하면 무리한 탄핵을 밀어붙인 정권이 된다. 인용돼도 사법부를 압박하고 삼권분립을 훼손한 정권이란 오명(汚名)을 피하기 어렵다. 어차피 내년 6월 정년을 맞는 대법원장을 탄핵하려고 정부 여당이 국정을 낭비했다는 비판도 불가피하다. 게다가 여권 일각이 거론해 온 탄핵 사유에는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의 파기환송도 있다. 대통령 본인의 재판 결과도 대법원장 탄핵의 근거가 됐다는 의혹은 어떤 해명으로도 씻기 힘들다. 소추가 의결되면 대법원장은 헌재 결정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제청 절차가 사실상 멈춘다. 상고심은 밀리고 재판받을 권리는 지연된다. 대법관 공백 책임은 탄핵을 밀어붙인 쪽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앞서 제청권 사태를 사법개혁의 방아쇠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총구가 대법원장이 아닌 대통령과 여당을 향할 수 있다. 내리막에서 가속 페달을 밟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2026-10-19 05:00:00

  • [사설] 47개월째 줄어든 청년 취업, 청년 위한 구조 개혁부터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가 석 달 연속 10만 명대 증가세를 이어갔음에도 15~29세 청년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4만7천 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47개월 연속 감소다. 청년 고용률은 44.0%로 29개월째 내림세를 보였고, 실업률은 5.4%로 올랐다. 정부가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에 맞춰 청년 범위를 15~34세로 넓혀 추가 공표한 지표에서도 취업자는 9만8천 명 감소해, 기준을 넓혀도 고용 한파(寒波)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구직을 아예 포기한 '쉬었음' 청년이 20대 후반까지 확산하며 경제의 역동성(力動性)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 공백 장기화는 개인이 경력을 쌓고 재도전할 기회를 앗아갈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잠재성장률을 저하시키는 심각한 구조적 위기다. 그럼에도 그간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 고용 대책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최근 3년간 고용노동부의 청년일자리 사업 예산은 7조5천억원에 육박했고, 참여 인원도 누적 200만 명을 넘겼다. 그러나 알선취업률과 고용유지율 등 실질적인 성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의 청년 알선취업률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일반고 학생 대상 직업훈련은 취업률이 70%를 넘으면서도 6개월 고용유지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중소기업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 역시 조기 퇴사자가 속출하고 불용액이 발생하는 등 현장과의 이극(二極)을 드러냈다. 단순히 예산을 늘리고 참여 인원을 채우는 방식의 단기·일회성 지원이 가져온 한계다. 정부는 기존 고용 정책 전반을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처음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시장에서 이탈한 청년, 장기 비취업자 등 대상별 특성에 맞춘 맞춤형 직무 훈련과 일 경험, 고용 연계 프로그램을 재설계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책의 평가 기준 또한 단순 집행률이 아닌 '지속 가능한 고용 유지'에 둬야 마땅하다. 또 과도한 규제를 대폭 걷어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2026-10-19 05:00:00

  • [관풍루] 대미 무역흑자 사상 첫 1천억달러 돌파 눈앞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관세 앞세워 알래스카 LNG 투자 압박

    ○…소방 예산을 '재정 빨대' 비유했던 추미애 경기지사, 순직 소방관 빈소 찾아 "사과 바라시니 사과드린다"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경기 도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사퇴' 바라시니까 '사퇴'하라"고 맹공 퍼부을 만하군. ○…대미 무역흑자 사상 첫 1천억달러 돌파 눈앞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관세 앞세워 알래스카 LNG 투자 압박. 한국 기업들 미국서 돈 벌면 청구서는 중간선거 앞둔 백악관에서 날아오는 상황. ○…검찰청 폐지 후 중수청·공소청 출범했지만 법무부 장관 54일, 검찰총장 474일째 공석이고 경찰청장마저 676일째 비어. 소위 개혁은 속전속결인데 인사는 감감무소식이니 간판만 덩그러니.

    2026-10-19 05:00:00

  • [노인영의 부자 풍수, 장수 풍수] (1)초일류기업 삼성의 산실, 호암산과 장내(墻內)마을

    [노인영의 부자 풍수, 장수 풍수] (1)초일류기업 삼성의 산실, 호암산과 장내(墻內)마을

    옛말에 "작은 부자는 노력해서 되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한때 세간에서 '돈병철'이라 불릴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부가 되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초일류 기업 삼성을 탄생시킨 근원은 무엇일까. 전통 풍수의 관점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 본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의 호암산. 필자는 이 산의 산줄기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李秉喆, 1910~1987) 회장의 생가와 선영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장내마을 내 생가가 자리하고,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는 종조부와 계(繼)증조모 묘소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생가 터와 선영의 형세를 하나의 지리적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어떤 풍수적 해석이 가능할까. 풍수에서는 주산의 형체가 대단히 중요하다. 주산인 호암산은 후부한 토성체(土星體)로, 귀(貴)보다는 부(富)의 기운이 강하다. 따라서 음택과 양택 모두 부의 기운이 우세할 것이다. 호암(湖巖)이란 호도 이 호암산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호암이 태어난 생가를 살펴본다. 생가는 이 회장의 조부가 전통 한옥 양식으로 가래형 명당 터에 지은 천석꾼 부잣집이다. 가래는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농기구를 말한다. 호암은 이 집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고, 결혼한 뒤 분가하기 전까지 살았기에 이 부자 터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았을 것이다. 생가 안채 뒤편 산등성이와 건물 지붕은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청룡 방의 바위가 안채를 살짝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그런데 이 바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일반적인 주택에서는 볼 수 없는 형상이다. 이 형상을 금괴를 쌓아 놓은 모습이나 콩 가마니를 쌓아 놓은 형상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이 형상이 생가가 부자 터임을 보여 주는 증표다. 또 장내마을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정곡천과 마을 왼쪽에서 흘러오는 월현천이 합류하는 지점에는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 노적봉 형상의 동산(해발 59.5m)이 있다. 경방(庚方)의 삼태성(三台星) 사격 등도 이 마을이 예사롭지 않음을 시사한다. 생가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많은 사람이 부자 터의 기운을 받고자 이 바위들을 만지다 보니 훼손되고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어 현재는 바위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화단을 조성해 놓았다. 재벌이 되기 위해서는 생가 터도 중요하지만 조상의 음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호암의 조부 이홍석(李洪錫, 1838~1897)은 유학자로 문산정(文山亭)에서 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유학자들은 대체로 천문과 지리 관련 학문을 접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회장의 조부도 풍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을 터이니, 집터는 물론 부친의 묘소를 명당에 마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언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부친이 작고하자 10년 넘게 명당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내던 중 마을에서 가까운 산사의 스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이 스님은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명사였고, 조부의 정성에 감동해 특별한 명당을 알려 주며 그곳에 부친을 모시라고 권했다. 이에 현재의 자리에 모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스님이 점지했다는 이 회장 증조부의 묘소로 가 보자. 이 자리는 호암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맺은 곳으로 해발 약 240m의 높은 산 중턱에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묫자리를 잡을 때는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이곳은 사신사(四神砂)가 잘 감싸 안고, 골짜기로 불어오는 바람은 묘소 아래 큰 바위들이 잘 갈무리하고 있어 좋은 자리가 될 요건을 갖추었다. 이곳 묘소의 형상은 일반 묘소와는 사뭇 다르다. 경사가 급하다. 경사가 너무 급해 묫자리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자리는 급하게 내려오는 맥을 잡아 주는 바위가 좌우에 박혀 있고, 그 아래에는 거대한 바위가 맥을 거두어 주고 있어 명당이 형성됐다. 필자가 전국의 여러 명당을 간산해 보았지만 이런 지형과 지세를 본 적이 없다. 특이한 점은 묘소 아래 집채만 한 큰 바위 위에 궤짝이나 금고를 연상시키는 네모지고 두툼한 바위가 올라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자리의 핵심이다. 큰 부자의 탄생을 예견하는 하늘의 표식이다. 이 형상을 풍수 용어로 '고궤요성'(庫櫃曜星·돈이나 곡식을 넣어 보관하는 궤짝 모양의 바위)이라 한다. 묘소의 형국은 좌우에 박혀 있는 바위틈에 나비가 앉아 나풀거리는 형상인 비아부벽형(飛蛾附壁形)의 대명당이다. 다만 입향(立向·향을 바르게 놓는 것)이 아쉽다. 입향이 틀어지면 흉화가 따른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태어날 때 집터의 기운과 함께 조상 선영의 좌향(坐向), 파구, 주변 사격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증조부 묘소의 입수와 좌향을 고려하면, 이 회장은 증조부 묘소의 영향으로 부자가 될 기운을 타고났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회장도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한 적이 있고, 조부처럼 풍수지리를 신봉했기에 선조들을 명당에 모시고자 애썼다. 그리하여 친증조모의 묘는 남양주로, 조부모와 부모의 묘는 수원 이목동으로 이장했으나 증조부 묘는 명당이라 여겨 옮기지 않았다. 최근에는 남양주에 있던 증조모 진양 강 씨의 묘소를 문산정 뒤편 산 중턱으로 다시 이장했다. 호암은 아버지 이찬우(李纘雨)와 어머니 권재림(權在林) 사이에서 2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방황하기도 했고 사업에서도 몇 차례 실패했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린 뒤 처가가 있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시작으로 제당·섬유·무역·비료 사업 등에 뛰어들어 삼성을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말년에는 반도체와 조선업 등 제조업에도 진출해 삼성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할 토대를 닦았다. 그는 1987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향년 77세로 생을 마감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안에 있다. 오늘날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이 회장 본인이 사업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전 임직원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풍수학적 관점에서 보면, 삼성은 이 회장의 증조부 묘소와 수원으로 이장한 조부모 묘소 등 여러 명당을 얻고 생가 터의 기운까지 더해져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이자 기업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정해 본다. 노인영 철학박사 / (사)한국음양지리학회 전임강사

    2026-10-19 00:30:00

  • [매일춘추-조대흠] 그 남자의 책 198쪽

    [매일춘추-조대흠] 그 남자의 책 198쪽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 곡식은 수확의 계절을 맞이했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10월에는 도서관에서 저자 초청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전국에서는 북페어 소식이 들려온다. 이전에 개인 에세이와 희곡으로 독립출판물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는 여러 북페어를 돌아다니며 완판을 꿈꿨지만, 나의 내향성 때문에 손님을 끌지 못했고 수줍게 앉아만 있었다. 결국 남은 책은 온라인으로 팔게 됐고, 지금까지 많은 양이 재고로 남았다. 이처럼 북페어는 나에게 패배감을 안겨 줬지만, 구매자로 가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이번 주만 해도 대구인디도서전에 들러 SF소설 당선집을 하나 구매했고, 주말에는 책 나눔마켓에 다녀왔다. 전자는 SF소설이란 장르가 재밌어 보여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기분으로, 후자는 제목을 봤을 때 읽어보고 싶었던 책 위주로 골랐다. 책은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잘 나타낸다. 나는 소설만 유난히 골라 읽는 편식이 있었다. 지금은 에세이도 좋아하지만, 시집이나 자기 계발 서적은 어렵다. 또 책날개를 이용하기보다는 얇은 종이를 책갈피로 꽂고,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따로 옮겨 적는다. 책에 밑줄을 긋거나 모서리를 접지 않는다. 이렇듯 한 사람의 책을 보면 고르는 방식, 습관까지 알 수 있다. 이번에 다녀온 책 나눔마켓은 그런 취향이 한자리에 모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가져가서 다른 사람의 책과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누군가에게 익숙한 장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일 테고, 어떤 사람이 지나친 책은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던 책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책을 고르면서도 내가 가져간 책을 누가 가져갈지 살폈다. 내 손을 떠난 책을 다른 사람이 읽는다면 그 사람은 어떤 부분을 좋아하게 될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일 수도, 혹은 같은 대목을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책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마음 같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읽기만 해도 좋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책을 만들자 막상 욕심이 생겼다. 이 책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나아가 글이 좋아서 내가 쓴 공연을 보러 와주기를 바랐다. 지금 쓰는 칼럼도 마찬가지다. 매주 시간을 내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다녀온 책 나눔마켓은 모두가 읽는 하나의 큰 책장 같았다. 앞서 말한 욕심처럼 내 책장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책장에서 다른 누군가의 책장으로 옮겨가는 건 경험하기 어려운 일일 테니까.

    2026-10-18 08:31:53

  • [사설] 캐면 캘수록 드러나는 선관위 부정, 대체 어디까지인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을 수사하는 이태한 특별검사팀이 종전 합동수사본부가 확인한 5개 지역 외에 전국 25개 지역 선관위에서도 선거관리 시스템과 투·개표 보고 시스템에 시간대별 투표자 수를 허위(虛僞)로 입력한 정황을 확인하고 압수수색에 나섰다. 시간대별 허위 입력한 투표율이 실시간 투표율로 국민들에게 공표된 것은 선거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하고,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 불신을 초래한 중대한 범죄다. 실시간 허위 투표율은 이후 투표율 및 타 지역 투표 경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선거 개입일 수 있다. 정해진 절차(節次)에 따르지 않고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율을 임의로 입력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면 최종 투표 숫자도 조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부정선거론에 선관위가 기름을 부어준 꼴이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투표자 수 허위 입력과 조작은 실무자들의 직무 기강 해이(解弛)로 볼 일이 아니다. 특검은 전산 조작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느 범위까지 이루어졌는지, 최종 투표 결과를 바꾼 사실은 없는지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태한 특검의 수사 범위(範圍)는 지난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족 및 투표 통계 관련 의혹, 입찰 비리 및 수의 계약 특혜, 부정 채용·승진 특혜 등 의혹, 외유성 출장 등 12개 건이다. 이 정도 수사 범위로는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잠재울 수 없다. 선관위 관련, 빳빳한 투표용지, 쌍둥이 득표, 투표 통계 조작, 선거인명부 누락(漏落), 후보들 간 득표수 바꿔 입력 등 여러 의혹과 논란이 있다. 합동수사본부와 이태한 특검의 수사로 의혹들 중 일부가 사실로 드러났다. 앞으로 더 캐면 무엇이 더 드러날지 알 수 없다. 부정선거 의혹을 뿌리 뽑자면 이태한 특검이 끝난 후 새로운 특검이 수사 범위를 넓혀 2020년 총선 이래 불거졌던 각종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실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정 선거 의혹 자체를 일소(一掃)하지 않고는 민주주의 건전성을 회복하기 어렵다.

    2026-10-16 05:00:00

  • [사설] 지방 주택시장 침체, 미봉책으로 막을 단계 지났다

    5년 새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12%가량 오르는 동안 대구는 약 30% 내렸다. 변동률 격차가 40%포인트에 이르면서 대구는 집값 하락, 미분양 적체(積滯), 거래 부진 속에 허우적대고 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의 72.3%가 비수도권에 몰려 있다. 같은 나라 주택시장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부동산 정책은 서울 집값 잡기에 몰두해 있다. 서울 집값이 오르면 대출과 공급 정책을 총동원하면서, 지방 장기 침체에는 세제 혜택을 찔끔 늘리고 금융 규제 강화를 늦추는 땜질 처방만 되풀이한다. 지방 집값 하락은 그저 참고 견뎌야 할 문제인가.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을 지켜보는 지역민들이 품을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건설업이 위축되면 하청업체, 자재업체, 일자리와 소비도 직격탄을 맞는다. 게다가 주택시장 침체는 건설사와 임대 사업자 자금난을 거쳐 공공 부문 부담으로 확산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법인 임대 사업자의 임대 보증금 보증 사고액은 1조103억원으로, 2022년의 20배에 달했다. 사고액의 92.6%가 비수도권에서 생겼다.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HUG를 통한 미분양 매입 지원에 나섰지만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LH의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 매입 실적은 4차 공고까지 20가구뿐이고, HUG의 지방 미분양 안심 환매(還買) 사업도 6천 호 목표에 매입 승인 실적은 972호(16%)에 그친다. 대구시는 올 들어 9월까지 8차례나 정책 개선을 요청했고, 최근에도 금융·세제·주택정책 개선을 재차 건의했다. 지방은 거듭 비명을 지르는데 정부는 미봉책으로 일관한다. 당면(當面) 과제는 거래 정상화와 미분양 해소, 건설·금융 부실의 확산 방지다. 지역 상황에 맞춰 금융·세제·공급 정책을 실질적으로 이원화해야 한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 중심을 서울에만 두는 한 지방 주택시장 침체는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아니라 무관심하게 내팽개쳐진 지역민의 고통일 뿐이다.

    2026-10-16 05:00:00

  • [사설] 국민연금 정략적 이용 의혹, 반드시 규명하고 처벌해야

    국내 주식 시장(코스피)이 최근 1천 포인트 이상 하락한 뒤, 이달 13일 5.46% 하락해 겨우 6천 선을 지켰지만 15일 7.57% 대폭락(大暴落)을 거듭하며 5천500선으로 밀렸다. 특히 올해 들어 국내 주식 비중을 크게 높인 국민연금이 지난 7월 한 달간 180조원의 평가손실을 입은 데 이어 추가적인 주가 폭락에 따라 평가손실액은 천문학적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의 핵심 목적은 소득 활동을 할 때 기금을 적립해 두었다가 국민의 노령·장애·사망에 따른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 생활의 안정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기금 운용은 전체 수익률 변동성과 손실 위험을 허용 범위 내로 유지하여 기금의 안정성(安定性)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금 운용의 독립성(獨立性) 원칙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연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이 너무 낮다"는 취지의 이재명 대통령 발언 이후, 올해 1월 국내 주식 투자 목표 비중을 14.4%에서 14.9%로 인상한 데 이어, 5월에는 20.8%까지 대폭 확대했다. 리밸런싱(자산 비중 재조정)도 6월 말까지 유예하고 국내 주식 허용 범위 역시 한시적으로 더 넓혔다. 리밸런싱 유예를 의결한 기금운영위원회 회의록은 2030년까지 비공개(非公開)로 처리했다. 이재명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재산인 국민연금을 투입해 국내 주식 시장을 인위적(人爲的)으로 부양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자칫 국민연금의 과다한 국내 주식 투자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을 경우 국민의 노후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의혹(疑惑)과 관련, "리밸런싱 유예와 국내 주식 비중 확대에 이견이 없었다. 1월과 5월 결정 모두 만장일치였고, 표결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민 개개인의 노후와 재산에 관한 중대한 문제인 만큼 '국민연금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2026-10-16 05:00:00

  • [관풍루] 국회,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15일 채택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과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쇼크라는 대외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검은 목요일 된 한국 증시. 추락의 끝도, 반등 가능성도 안 보이니 개미들은 어쩌나. ○…농지 전수조사 반발에 '농지은행' 대안 제시했던 정부. 그러나 올 8월 말 기준 농지은행에 접수된 매입 신청 면적 중 실제 매입이 이뤄진 비율은 37.9%에 불과해. 농심 갈 곳이 없네. ○…국회,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15일 채택.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야당보다 더 거세게 김 후보자의 검사 시절 행적을 문제 삼았던 건 여당 아니었나!

    2026-10-16 05:00:00

  • [캐나다에 비춰 본 한국] 사회는 나에게… 청소 노동자와 엔지니어

    [캐나다에 비춰 본 한국] 사회는 나에게… 청소 노동자와 엔지니어

    마흔셋에 캐나다로 갔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경력을 쌓은 뒤였다. 나는 소위 '라떼' 세대다. 돈을 보고 일하기보다는 헌신하면 보상이 따라온다고 배웠다. 퇴근 시간은 별 의미가 없었고,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었으며, 연차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러다 연봉제가 들어왔다. 호봉 대신 매년 평가받았지만 급여는 여전히 '일'보다 '사람'에게 매겨졌다. 성취뿐 아니라 얼마나 인정받았는지도 연봉에 섞였다. 일은 곧 그 사람이었고, 보수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였으며, 직급은 계급이었다. 캐나다에서 처음 시급을 체험했을 때는 매우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사람의 노력과 헌신을 시간당 얼마로 잘라 계산하다니. 사람은 보지 않고 일만 보는 방식 같았다. 그런데 오래 지내고 보니 정반대였다. '시급문화'가 오히려 사람을 보는 제도처럼 보였다. ◆청소 노동자와 엔지니어의 시급 캐나다 정부의 잡뱅크에는 직종과 지역별 임금이 시간당 금액으로 공개된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쓰레기 수거원 시급은 20~36.95달러, 구조 엔지니어는 32.48~72.12달러다. 전체적인 임금 수준에는 차이가 있지만 일부 구간은 겹친다. 임금에는 수요와 노동시장 여건뿐 아니라 일의 난이도와 위험, 숙련과 책임, 경험도 반영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 되었든 노동에 붙는 가격이지 사람에게 매기는 등급은 아니다. 시급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에 제공한 '일'에 대한 값이다. BC주는 채용공고에 임금이나 임금 범위를 적도록 한다. 노동의 값이 몇몇 사람의 막연한 판단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가 함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채용공고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맡을 일과 임금이다. 캐나다의 일터에서는 직종이 달라도 '시간당 얼마를 받는가'가 노동의 가격을 가늠하는 공통 언어처럼 쓰였다. 월급이나 연봉을 받는 일도 근무시간으로 나눠 시급으로 환산해 이야기하곤 했다. 어떤 직함인지는 그 다음 문제였다. 그런 계산법 속에서 하루 이틀, 1년, 10년을 살다 보니 직업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분리해 보게 된다. 청소 노동자든 엔지니어든, 그 이름은 각자가 '근무시간' 동안 맡은 역할을 말할 뿐이다. 직업은 그가 하는 일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거나 신분을 나타내는 표지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캐나다에도 직업에 따른 편견과 차별은 존재하며, 모든 임금이 완벽하게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노동시간과 대가를 분명히 계산하는 습관은 내가 직업의 차이를 사람의 차이로 해석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일을 일로, 사람을 사람으로 처음에는 시급이 사람의 노력과 헌신을 시간으로 잘라 생계수단으로 격하한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시간으로 계산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노동이었다. 일한 시간과 숙련·책임의 차이를 보상하고, 계산이 끝난 자리에서는 다시 사람을 사람으로 돌려놓는 방식이었다. 근무시간에는 역할과 책임을 묻지만, 직업이 삶 전체를 규정하지는 않았다. 고용주가 사는 것은 정해진 시간의 노동과 책임이지 사람 자체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과 설계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일을 할 뿐, 사람으로서 높고 낮은 존재가 아니다. 일을 사람과 분리하지 못하면 낮은 임금은 낮은 사람의 표지가 되고, 높은 연봉은 높은 사람의 증명처럼 읽히기 쉽다. 시급제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캐나다의 시급 문화는 일과 사람을 분리해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우리의 조직문화에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개인의 시간과 헌신을 조직의 성과와 한데 묶어온 경험이 배어 있다. 그 과정의 성취를 부정할 수도 없고, 그때 굳어진 인식을 하루아침에 지울 수도 없다. 그래서 일을 사람에게서 떼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일의 가치와 사람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 직업은 계속 신분이 되고, 보수는 사람의 등급표가 된다. 쉽지 않더라도 일을 일로, 사람을 사람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시급 문화가 내게 가르쳐준 새로운 계산법이다.

    2026-10-16 00:30:00

  •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역린(逆鱗),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역린(逆鱗),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 나 있는 비늘"

    공정 역린 건드린 개각, 유시민 발언… 역린 건드려, "정권은 짧다" 발언 역린 건드려… 역린(逆鱗)은 "거스를 역, 비늘 린"으로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 나 있는 비늘"이란 뜻이다. 즉 건드리지 말아야 할 권력자나 상대방의 치명적인 약점 혹은 극도의 노여움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발작 버튼'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버튼은 누르기만 하면 곧바로 급발진하거나 폭발하게 되니, 가속 페달이거나 지뢰라고 봐도 되겠다. 이 말은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 편에 나온다. 신하가 군주를 설득하기 어려움을 서술한 대목이다. 즉 "무릇 용이란 동물은 유순하여 익숙해지면 탈 수 있다. 그러하나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인 거꾸로 난 비늘[逆鱗]이 있어서,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린다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人主]에게도 역시 역린이 있으니, 유세하는[說] 자가 임금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거의 성공한 것이다." 참고로 '유세할 세' 자는 '말씀 설, 기뻐할 열, 벗을 탈'로도 읽을 수 있는 좀 까다로운 글자이다. 『본초강목』 「린지일(鱗之一)」의 '용' 조목에 보면, 용은 "비늘 있는 동물의 우두머리[鱗蟲之長]"로 81개의 비늘을 갖는다고 했다. 이것은 양(陽)의 가장 큰 수인 9를 두 번 곱한 수(9×9=81)이다. '역린'은 그 가운데 턱 아래(목덜미) 위치한 비늘이다. 아울러 중국에서 '용'은 전통적으로 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용의 발가락 수는 권력의 서열에 따라 달랐다. 황제(천자)는 5개, 책봉받은 왕(제후)은 4개 또는 3개였다. 어쨌든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군주는 대개 성질이 제멋대로라서, 아부가 아닌 간언하고 설득하는 것이 참 어렵다. 신하가 군주에게 말을 잘못했다가는 자칫 그 성질을 건드려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용을 잘 길들이면 그 등에 올라탈 수도 있듯이 군주 또한 잘 다루어야 한다. 용의 목 아래쪽에 있는 역린을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되듯, 군주의 격노 버튼만 누르지 않고 잘 다루면 일이 수월하게 풀려간다. 이렇듯 권력자의 비위를 맞춰 가며 신하 노릇 하기란 힘든 일이다.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문집에 '역린'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용은 임금, 그리고 윗사람을 상징한다. 모든 '갑'들은 역린이라는 분노 버튼을 갖는다. 한편 세상의 모든 '을'은 역린 대신에 원한(르상티망·ressentiment)을 품는다. 나아가 일제강점기의 역린은 "일본의 역린에 불촉(不觸)코…"(동아일보, 1936.8.5)처럼 당시의 식민지배자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미국일 수도 중국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사성어가 유래한 『한비자』로 돌아가 보면 역린의 초점은 용이 아니라 군주의 분노였다. 옛날은 옛날일 뿐. 지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거대한 역린은 무엇인가. 군주? 제국? 아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이 배를 띄울 수도 뒤집어엎을 수도 있듯, 국민은 대통령을 만들 수도 주저앉힐 수도 있다. 묵묵히 참고 견디는 국민의 역린을 자꾸 건드리지 말자. 돈을 푼다고 가라앉을 일도 아니다.

    2026-10-16 00:30:00

  • [남정욱의 별별시선]

    [남정욱의 별별시선] "너는 내가 봤고 나는 네가 봤다."

    영화 '암살자(들)'은 영부인 오발 저격 사건이라는 오래된 괴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진실을 추적한다는 게 제작자와 감독의 설명인데 여기서 문제는 진실 여부가 아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그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이 자유를 맘껏 누리지는 않는다. 아니, 자발적으로 않는다. 존 F. 케네디의 사생활은 난잡함을 넘어 충격적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독일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자고 나서 케네디가 물었다. "우리 아버지하고도 했어요?"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대꾸했다. "요구는 받았지만 거절했어요." 케네디는 환하게 웃었다. "그 '개자식'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난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요." 케네디 장례식 때의 이야기다. 영부인이 작별의 의미로 관의 중간에 입을 맞추자 이를 티브이로 지켜보던 마틴 루터 킹이 이죽거렸다. "그래, 저기가 그녀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지." 이 내용들은 '카더라' 수준이 아니라 대부분 신빙성 있는 증언들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걸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진영을 넘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누르면 안 되는 버튼이란 게 있다는 말씀이다. '암살자(들)'과 관련해서 국회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국민의힘에서 '부엉이 바위'를 언급하자 더불어민주당에서 바로 "인간이 돼라"고 소리를 질렀다. 본편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부엉이 바위 괴담이 뭐냐고? '히틀러의 주치의들'이라는 책이 있다. 의사 선생님이 쓴, 권력자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야기인데 해당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노무현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산을 오른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한단다. 저 바위가 그 바위냐고. 부엉이 바위는 봉하산 7부 능선에 있는 동생 격이고 정상에 있는 바위는 사자 바위다. 사자 바위를 부엉이 바위로 오해해 저게 거기냐고 묻는 것인데 실제로 사자 바위는 30m 높이의 부엉이 바위에 비해 10m 이상 높을 뿐 아니라 수직에 가깝다. 선택지로는 훨씬 더 적합하다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파보겠다며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출연하겠다고 나설 배우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 이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괴담으로 치면 진짜 '톱티어'는 따로 있다. '5·18 괴담'이다. 40여 년이 지나 사방으로 뻗은 끝에 이제는 괴담계의 아름드리나무가 됐다. 돌아다니는 내용을 보자.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다. "5·18은 김대중의 전형적인 성동격서 전술로 발생한 사건이다" "북한 살인기계 600명이 광주에 파견돼 광주교도소를 공격하다가 490명이 하룻밤에 몰살당했다"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여대생의 가슴을 도려냈다" "원한 가진 시민이 같은 광주 시민을 뒤에서 쐈다" 하나같이 끔찍하다. 단 한 개도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진짜 5·18 괴담은 따로 있다. '5·18 유공자 괴담'이다. 당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 '증언에 의한 입증', '인우보증' 등으로 유공자를 선정했다는 소문이다. 그냥 말이 전부인 것이다. 이런 식이다.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와 투석전이 있었는데 거기서 내가 이 사람을 봤다" 그러면 나는? "나는 그 사람이 봤다" 이런 식의 상호부조로 둘 다 유공자가 되었다는 진짜, 정말 믿기 싫은 이야기다. 우리는 이 말의 확장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 "했다고 들었다." 여기에 더해 심지어 거짓 증언을 해 주고 '수수료'를 받았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성스러운 민주화 운동에 이 무슨 개 같은 괴담이란 말인가. 엄밀하게 이는 괴담도 아니다. 얼마든지 투명하게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괴담 넘치는 사회, 이런 시시한 괴담부터 좀 줄여나가자.

    2026-10-16 00:30:00

  • [매일춘추-서효봉] 밤을 들여다보는 두 사람

    [매일춘추-서효봉] 밤을 들여다보는 두 사람

    올해 노벨문학상은 캐나다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앤 카슨에게 돌아갔다. 역시나 수상 소식 이후 그녀의 작품에 관심이 집중됐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이지만, 국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은 따로 있다. 오빠를 잃은 뒤 쓴 '녹스'다. 녹스는 라틴어로 '밤'이라는 뜻이다. 카슨의 오빠 마이클은 22년 동안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살았다. 그러다 2000년 덴마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은 것은 사진과 편지 몇 장이었다. 카슨은 수첩에 그 사진과 편지를 하나하나 오려 붙였는데 그게 책이 됐다. 펼치면 병풍처럼 되는 아코디언 형태의 책이다. 책 내용 옆에 2천년 전 로마의 시인 카툴루스가 죽은 형제를 위해 쓴 시를 넣었다. 시의 단어를 하나씩 뜻풀이해 나갔다. 형제를 잃은 시인의 말을 한 단어씩 붙들고, 자신의 오빠를 이해해 보려 한 것이다. 카슨은 끝내 그 시를 원하는 번역으로 옮기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오빠를 이해하는 일도 그랬을 것이다. 하나씩 짚어 가도 끝내 닿지 못한 일이다. 이 책에 한강 작가는 "밤을 들여다보는 책이 왜 이렇게 눈부신 걸까? 사무치게 진실한 것은 어둠을 꿰뚫는 빛이 되고 마는 것일까?"라는 추천사를 썼다. 그 물음은 한강 작가의 책 '흰'을 떠올리게 한다. '흰'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책이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언니를 향해, 작가는 강보와 배내옷, 소금과 눈 같은 흰 것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간다. 두 작가는 가족을 잃었다. 죽은 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두 책은 슬픔을 하나의 이야기로 매끈하게 정리하지 않았다. '녹스'는 사진과 편지의 조각으로, '흰'은 짧은 단상들로 이뤄져 있다. 끝내 다 알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완성하지 않고, 남은 조각들을 하나씩 곁에 놓아뒀다. 두 작가에게 애도란 빈자리를 메우는 일이 아니라 빈자리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인 듯하다. 어쩔 수 없이 슬픔이 다가올 때, 우린 그것이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슬퍼하는 사람에겐 그냥 얼른 잊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둘러 덮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고여 있기 마련이다. 두 작가는 잊는 대신 들여다보고, 그 들여다봄을 기록했다. 그렇게 남긴 조각들 속에서 떠난 사람은 지워지지 않고 우리 곁에 남는다. 카슨은 왜 이 책에 '밤'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우리에게도 서둘러 지나온 밤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이번 가을에는 그 밤을 조금 오래 들여다보면 어떨까. 빛바랜 사진 한 장, 편지 한 줄에서 시작해도 좋다. 한강 작가가 말했던 그 눈부심은 어쩌면 밤을 끝까지 바라본 사람에게만 보이는 빛일지도 모른다.

    2026-10-15 08:25:43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당선 이후 12억2천만원 상당의 관사를 전세 계약하고 7천700만원의 관용차를 새로 구입한 것에 대해 야당의 지적에 반박...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대구가 '수축사회'로 전환하면서 인구 감소와 함께 공업용수 및 폐기물 소비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지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의 아리마 데쓰오 교수는 한국이 이제 일본보다 부유해졌다고 주장하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보유했던 재산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에 ..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