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6 18:43:02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보이지 않는 예술을 발견하는 여정, 데시마 미술관
그림 한 점 없는 미술관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벽에는 캔버스도 걸려 있지 않고, 전시실에는 조각 하나 놓여 있지 않는 미술관 말이다. 만약 그런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벽면을 가득 채운 화려한 미디어 아트(Media Art)쯤을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나오시마(Naoshima)에서 배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하는 데시마(Deshima) 섬에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Nishizawa Ryue)와 예술가 나이토 레이(Rei Naito)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이 있다. 2010년 10월 문을 연 데시마 미술관은 빛, 바람, 물, 시간 등을 작품으로 들여놓은 파격적인 발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식 개관에 앞서 섬 주민들에게 먼저 공개했을 때만 해도 "미술관이라더니 그림이 하나도 없다"라는 당혹스러운 반응이 이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낯섦은 자부심으로 바뀌었고, 이제 데시마 미술관은 섬을 가장 잘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다. 데시마에 도착한 후 셔틀버스를 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자전거로 가보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10여 분 뒤 미술관 정류소에 내리자 길은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듯 이어졌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길은 사라지고 시야 끝에는 온통 세토내해(Seto Inland Sea)가 가득했다. 바다를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그 길 오른편으로 마치 하얀 비닐하우스처럼 보이는 건물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시골 초록에 폭 둘러싸인 그 건물이 바로 데시마 미술관이었다. 예약한 시간에 티켓을 확인하고 산책하면서 정해진 길로 따라갔다. 무성한 토끼풀 내음이 바람 사이로 날아들었다. 세토내해에 누워있는 긴 직선 구조물을 내려다보면서 예술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가느다란 방파제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흐리고 있었다. 데시마 섬은 그런 곳이었다. 우거진 숲을 빠져나오면 거대한 콘크리트 입구가 입을 벌리며 나타났다. 밖에서는 오직 입구만 보이는 방식이어서 그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높이 4.3m에 기둥이 하나도 없는 두꺼비 집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로 들어서자 엄청난 고요가 밀려왔다. 천장에 뚫린 두 개의 타원형 구멍을 통해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첫 작품이었다. 그날따라 거친 바람 소리는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타원형 구멍에는 가느다란 실이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이었다. 실을 따라 내 눈동자가 바삐 움직일 때, 실에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전시 관리 요원이 말했다. 뻥 뚫린 구멍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둥근 하늘과 빛이 세 번째 작품이었다. 한참을 작품 속에 빠져있을 때, 양말이 축축해졌다. 미술관 바닥에 물방울이 굴러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방울은 바닥 곳곳의 아주 작은 구멍에서 샘물처럼 퐁퐁 솟아오르며 천천히 만들어졌다. 바닥의 아주 미세한 기울기와 중력, 공기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물방울은 서로 만나 하나가 되기도 하고 다시 갈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처럼 같은 장면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며 내일 다시 살아야 할 인생의 순환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 물방울은 하나의 조형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처럼 보였다. 김창열(Kim Tschang-yeul) 화백이 수십 년 동안 캔버스 위에 머물게 했던 물방울이 이곳에서 중력을 따라 움직이고 서로 만나고 다시 흩어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빛, 물, 바람, 소리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이 미술관에서 물방울은 그 경험의 중심에 있는 가장 중요한 예술 작품이었다. 천장에 뚫린 거대한 원형의 하늘 아래로 바람이 쉼 없이 드나들었다. 숲을 흔드는 나뭇잎 소리는 건물 안으로 스며들어 메아리가 되었고, 보이지 않는 세토내해의 파도마저 공간 속을 흐르는 듯했다. 천장에 매달린 가느다란 실들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방향을 바꾸며 춤을 추었다. 마치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노는 모습 같았다. 예술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고, 스며들고, 변하면서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날 데시마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었다. 바람은 하늘과 나무, 그리고 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마케팅의 목적은 판매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데시마 미술관은 이 말을 가장 잘 증명하는 사례다. 자연과 건축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경험을 한 방문객들은 누구의 권유도 없이 "한 번쯤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며 자발적으로 입소문(Word of Mouth, WOM)을 낸다. 이제 마케팅은 광고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라는 점을 데시마 미술관은 보여 준다. 화장품 브랜드 이솝(Aesop) 역시 같은 방식으로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왔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대규모 광고와 획일적인 매장을 구축하는 동안, 이솝은 지역의 역사와 건축, 문화를 반영해 매장 하나하나를 새롭게 설계했다. 서울 매장은 서울의 문화와 건축을 담고, 도쿄 매장은 일본의 미학을, 파리 매장은 도시의 역사와 주변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매장을 복제하지 않고 지역의 맥락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 매장은 브랜드의 철학을 체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브랜딩 전문가들이 이솝을 '공간을 디자인하는 브랜드'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솝은 제품보다 장소와 경험을 브랜드의 핵심 자산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를 기억하고 스스로 이야기하게 만든다. 4월 초 봄꽃이 필 무렵 군위 사유원(思惟園)을 다녀왔던 기억이 났다. 사유원 역시 건축을 통해 감각을 깨우는 공간이다. 숲길을 따라 걷다 건축을 만나게 하는 동선, 침묵과 여백 속에서 스스로 사유하게 만드는 방식은 데시마 미술관과 닮아 있었다. 특히 알바로 시자(Álvaro Siza)가 설계한 소요헌(逍遼軒)은 화려한 형태보다 빛과 침묵 그리고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데시마의 철학과 가장 가깝다. 승효상(Seung Hyo-sang)의 명정(瞑庭)도 있다. 좁은 통로를 지나 갑자기 열린 풍경과 마주하게 하는 공간 구성은 건축을 보는 대상이 아니라 체험하는 과정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데시마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사유원이 동양철학과 한국적 사유를 자연 속에 담아냈다면 데시마 미술관은 자연 현상 자체를 예술로 삼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데서 차이점이 있다. 나오시마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데시마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얻은 시선은 섬에 남지 않았다. 그 바람 덕분에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후에 혼무라(Honmura) 지구의 이에 프로젝트(家 Project)를 찾아갔다. 오래된 민가를 예술로 되살린 공간들이었다. 카도야(Kadoya)에서는 집 안을 물로 채워놓았다. 물속에서 반복적으로 켜졌다가 지워지는 디지털 숫자가 시간을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하이샤(Haisha)에서는 폐 치과가 강렬한 색채의 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들의 삶이 예술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을이었다. 이어 찾은 나오시마 신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은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최근 작품으로, 그의 건축 철학이 집약된 새로운 문화 공간이다. 외관은 일본 전통 석회 회반죽 마감인 싯쿠이(漆喰)를 사용해 부드러운 흰빛을 띠며, 섬 풍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이곳에서는 아시아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역동적인 전시를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차이궈창(Cai Guo-Qiang)의 '정면충돌(Head On)'은 99마리의 늑대들이 거대한 곡선을 그리며 유리 벽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거침없이 달려가면서도 결국 같은 벽에 부딪히는 모습은 집단의 맹목성과 반복되는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서도호(Do Ho Suh)의 '허브(Hub)'는 작가가 세계 여러 도시에서 살았던 집들을 반투명 천으로 연결한 작품이었다.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어지는 기억의 통로가 되었다. 은은한 색감의 집들은 신기루처럼 겹쳐 지고 사라지며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는 17세기 교토를 그린 '낙중낙외도(洛中洛外圖)'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일본의 전통 회화와 대중문화, 애니메이션적 상상력이 한 화면에서 충돌하면서도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작품마다 정답은 없었다. 대신 저마다 다른 질문을 건넸고 그 질문은 미술관을 나온 뒤에도 오래도록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나오시마 여행의 마지막은 지중미술관(Chichu Art Museum)이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건물 대부분을 땅속에 숨겨 자연의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 입장 시간 전까지 정원을 먼저 걸었다. 모네가 사랑했던 지베르니(Giverny)를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빗방울이 연못 위에 떨어지고 수면은 흐린 하늘과 나무 그림자를 천천히 흔들었다. 선명하지 않은 색들은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젊은 시절에는 선명한 것만 아름답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흐릿함 속에서도 색을 발견한다. 노안(老眼)으로 세상이 조금씩 부드럽게 번져 보이는 지금, 나는 비로소 모네의 그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기 전부터 이미 그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미술관 안에는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만 감상하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 다섯 점과, 금박을 입힌 거대한 조각으로 공간을 채운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작품, 그리고 빛으로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바꾸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오픈 필드(Open Field)'와 '오픈 스카이(Open Sky)'가 자리하고 있다. 작품들은 해의 위치와 날씨에 따라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흐린 하늘은 그림을 환하게 비추지는 못했지만, 대신 빗 빛 속의 수련은 더욱 고요하고 깊어 보였다. 비와 그림은 같은 호흡으로 서로를 완성하고 있었다. 나오시마를 떠나 다카마쓰(Takamatsu)로 향하는 배 위에서 데시마 미술관을 떠올렸다. 그림 한 점 없는 미술관을 이상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곳을 섬의 자부심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술은 벽에 걸린 그림만이 아니었다. 바람과 빛, 물방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까지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이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2026-07-16 17:35:36
지속적인 경영난으로 지난해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던 홈플러스가 운영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13일부터 전 점포 휴업에 돌입했다. 폐업이 코앞이다. 민주당은 홈플러스의 붕괴를 두고 국회 청문회를 통해 진상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노조는 대주주인 사모펀드에 책임을 묻는 대규모 투쟁을 예고했다. 다른 이해관계자도 앞다퉈 서로 책임 씌우기에 혈안이 돼 있다. 홈플러스 사태의 원인을 두고 각계의 진단은 엇갈린다. 우선 노동계는 대주주인 MBK와 메리츠증권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에 이들 기업이 7조 원이 넘는 막대한 빚을 내 홈플러스를 무리하게 인수했고 그 후 점포 매각과 배당금 회수에만 급급했던 것이 이 사태의 화근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강성 노조에 이끌려 다니며 유연한 인력 재배치나 구조조정조차 제때 할 수 없었던 환경을 파국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다.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홈플러스가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가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제약했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정부의 규제 족쇄 아래에서 오늘날 한국의 대형마트 산업 전체가 고사 직전의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해 월 2회 의무휴업일 지정과 심야 영업시간 제한이라는 촘촘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는 과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실제 시장에서 작동한 방식은 전혀 달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진행한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시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소비자 비율은 고작 8.3%에 그쳤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이 4년간 서울시의 대형마트 66개 주변 카드결제액을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보다 휴무하는 일요일에 오히려 소상공인 매출이 1.7% 감소했다고 한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만든 규제가 정작 전통시장은 살리지도 못한 채 시민의 삶에 불편함만 더한 것이었다. 이런 탁상공론식 규제의 사각지대 속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한 건 다름 아닌 쿠팡과 같은 온라인 이커머스 기업이었다. 이들은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팔다리가 묶인 틈을 타 '새벽배송'을 무기로 무섭게 몸집을 키웠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영업시간 제한까지 더해지자 오프라인 소비 수요는 고스란히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졌다. 2020년만 해도 대형마트 3사의 매출 합계는 27.3조 원으로 쿠팡 13.3조 원의 두 배가 넘었는데 그 후 4년 간 격변이 일어났다. 대형마트 3사 매출이 28조 원대에 갇혀 있는 사이 수요를 흡수한 쿠팡은 41조 원 수준까지 성장했다. 한때 절반 수준이었던 쿠팡 매출이 이제는 대형마트 3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커진 것이다.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낡은 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며 대형마트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 시켰고 대체재인 거대 이커머스가 시장 주도권을 독식하는 자양분이 되어준 셈이다. 정부는 홈플러스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자 긴급히 TF를 구성하여 회생 절차를 지원했고 4천400억 원 규모의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파산이 가시화된 상황에서도 정부여당은 여전히 기업에 대한 책임론만 강조하거나 노동조합의 민원을 달래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에만 골몰하고 있을 뿐 사태를 키운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수명이 다해가는 기업에 뒤늦게 인공호흡기를 붙여주는 것이 아니다. 변화한 유통 환경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온·오프라인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건 시장과 그 시장의 진짜 주인인 소비자다. 정부가 할 일은 규제로 기업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7-16 12:44:42
[교육칼럼]단군 이래 최대(?) 역대급 반수생 합류… 9월 모평이 가르는 수시 지원의 향방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최종 풍향계가 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모의평가가 오는 9월 2일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이번 시험은 이미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확인된 역대급 재수생 흐름에 더해, 대학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이나 자퇴를 선택한 반수생들까지 대거 전선에 뛰어드는 시점이다. 특히 이번 모평은 사흘 뒤인 9월 7일부터 개막하는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목전에 두고 치러져 사실상 배치표의 절대적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인 2026학년도 수능 당시 대구·경북 지역의 수험생 총수는 4만6천351명(대구 2만5천494명, 경북 2만857명) 수준이었으며, 이 중 졸업생 비율이 약 31.4%에 달해 이미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올해 6월 모의평가 전국 N수생 접수자가 9만6천931명으로 2011학년도 이래 가장 많았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 9월에는 대구 수성구와 달서구 일대 학원가를 중심으로 유입되는 학령인구가 최고조에 달해 본수능 졸업생 비율이 23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수험생들이 여전히 성적표를 받지 못한 '깜깜이' 상태에서 수시 카드를 던져야 한다는 점이다. 9월 모의평가의 실제 성적 통지일은 수시 접수가 모두 마감된 이후인 9월 29일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시험 직후 당일 밤부터 쏟아지는 입시기관의 가채점 표준점수와 등급컷 추정치에만 의존해 6개의 수시 지원 대학을 결정해야 한다. 대구 수성구 소재 A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K 학생은 전 영역 전 범위가 처음으로 출제되는 이번 시험에서 수학 미적분과 과학탐구 지구과학의 가채점 등급컷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털어놨다. K 학생은 "지난해 대구 지역에서 내신 1등급대 중반을 유지하고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추지 못해 고배를 마신 선배들을 많이 봤다"라며 "이번 9월 모평 직후 가채점 원점수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면 수시 납치나 최저 미달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할 수 있어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9월 모평을 8월로 앞당기는 제도가 도입되지만, 현 고3 수험생들에게는 당장 가채점의 정확도가 합격을 가르는 유일한 열쇠다. 올해 입시 지형은 지역의사제 신설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연계 반도체 계약학과의 강세, 그리고 KAIST·DG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AI대학 신설로 인한 400명 증원 등이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대구 달서구의 B 고등학교에 자녀를 둔 학부모 J씨는 대구·경북권 의대들의 지역인재 전형 비율이 대폭 변화하고 첨단학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존의 합격선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된 느낌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J씨는 "아이가 평소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백분위 96% 안팎을 유지해 왔지만, 대구 지역 상위권 N수생들이 대거 합류하는 9월 모평에서 이 점수가 유지될지 의문"이라며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하향 안전 지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소신 지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크라스에듀의 최상영 이사는 "가채점 결과를 활용해 '수시 납치'를 피하고 성공적인 대입 전략을 세우려면, 본인의 수능 예상 성적으로 정시 지원 가능 대학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 수시 목표 대학의 마지노선을 설정해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최 이사는 "가채점 점수가 평소 모의고사보다 낮다면 정시로 합격하기 어려운 상향 대학 위주로 수시 카드를 구성하고, 반대로 성적이 잘 나왔다면 정시 지원을 우선 고려해 수시 지원을 최소화하거나 적정·소신 카드를 적절히 분배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조언했다. 이번 9월 모의평가는 국어, 수학, 영어 등 전 영역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출제되며 EBS 연계율은 50% 수준의 간접 연계 방식을 유지한다. 공교육 정상화 방침에 따라 사교육 기술을 배제한 변별력 확보가 예고된 만큼, 철저한 출제 기조 분석과 객관적인 자기 위치 파악이 대구 지역 수험생들의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윤경민 크라스에듀 대표
2026-07-16 10:32:05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복수 끝에 해피엔딩, 짜릿하잖아
중세는 물론이고 근대 초기만 해도, 아무리 허구의 세계라도 '강력한 여성 복수자'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황당무계한 언어도단이었다. 여성 복수자는 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제와 순종적 돌봄이로 대변되는 여성의 성 역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개념이었다. 사적 복수가 금지된 시대. 그러나 법이 공정하지 않고 약자를 대변하지 않을 때, 기댈 곳은 사적 복수뿐이다. 사적 복수를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사적 복수의 대리자로 잃을 것 없는 범죄자나 조선족 등을 고용하는 건 이 때문. 그런 점에서 뇌 전문의 프리다 맥파든의 『하우스메이드』는 독특한 여성 복수극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미모의 아내와 사랑스런 딸과 함께 사는 젊은 갑부 앤드류 윈체스터. 친절하고 다정하고 완벽한 미소를 지닌 앤드류에 비해 여주인 니나는 변덕스럽고 괴팍하고 폭력적이다. 살인죄로 10년을 복역하고 가석방된 밀리가 윈체스터 저택에 입주가정부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나가 정한 입주가정부 조건은 간명하다. "일단 예뻐야 했다. 무조건 나보다 예뻐야 했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일부러 외모를 관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보다 어려야 했다. 앤디가 그토록 원하는 아이를 낳으려면 나보다는 어려야 했다."(303쪽) 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제부터 작가는 두 여성의 시점을 구분하고 장을 나눈 다음 플래시백으로 각각의 심리를 밀도 있게 묘사할 것이다. 공권력과 이웃은 정의와 진실에 무관심하기 마련이다. 억울함을 풀고 진상을 밝히며 복수하는 건 대개 피해자의 몫이다. 심지어 여성인 피해자의 복수는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여성주인공(남성 가해자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 이미지로 전락한)이 성공리에 복수를 마치고 행복한 미래까지 계획하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 복수하는 여성이 법의 심판을 받거나, 경찰 총에 죽거나, 자살하거나 등의 비극으로 치닫는 건 이 때문이다. 기괴하고 변태적인 인물의 추락을 보며 새삼 확인하는 사실 하나. 공적 처벌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힘없는 자의 선택은 법 밖으로 가해자를 퇴출하는 것뿐, 즉 죽음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남성이 존경하고 여성이 흠모하는 지역사회 명망가를 무슨 수로 법정에 세울 수 있겠냐는 말이다. "내 말을 믿어줄 경찰과 이웃은 없어"라는 니나의 하소연은 재력과 권력을 가졌고 법적 처벌에서(법 덕분에) 자유로운 가해자가 활보하는 현실 세상에 대한 은유이다. 킬링타임용 영화가 있다면 책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자투리 시간을 내어 읽는 책들. 예컨대 추리, 탐정, 하드보일드 유의(특정 장르를 폄훼하려는 의도 없다.) 소설이며 가벼운 에세이들. 나는 그중에서도 1차원적 캐릭터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에만 집중하면서 만사형통인 이야기를 쓰는 작가, 작가의 손끝만 따라가면 다 알 수가 있는 이야기, 영화로 치면 롱테이크로 끌고 가는 작품을 좋아한다. 『하우스메이드』가 딱 그렇다. 단조롭고 단순한 플롯으로 시작하지만, 인물 내면을 각자의 파트로 장을 분할하면서 처절한 복수 끝에 찾아온 달콤한 해피엔딩을 맛보게 하는 건 또 다른 쾌감이다. 무더위에 읽는 심리스릴러라니, 이만한 호사도 없을 터다.
2026-07-16 10:21:19
[사설] 주먹구구식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 언제까지 이럴 건가
내년도 최저임금이 3.7% 인상된 시간당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16.3% 올린 1만2천원을 요구한 노동계도, 올해 최저임금 1만320원 동결안을 내놓은 경영계도 만족하지 못했다. 올해 역시 노사 합의는 불발됐고 법정 심의 기한을 넘겼으며 결국 표결이었다. 노동계는 "사실상 동결", 경영계는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부담"이라며 반발한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40년 가까이 달라진 것이 없다. 매년 소모적(消耗的) 대립만 거듭하는 현행 구조는 수명을 다했다.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노사 대표와 공익위원이 줄다리기를 벌이고, 막판에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 촉진 구간을 중심으로 표결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됐다. 최저임금은 주휴수당, 구직급여, 산업재해 보상, 사회보장 급여와 국가 보상금 등 27개 법률의 기준이 된다. 국민 생활과 기업 경영, 정부 재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실상 사회적 기준가격이다. 이처럼 파급력이 큰 숫자가 명확한 산정(算定) 공식도 없이 노사 힘겨루기와 공익위원 판단에 좌우되고 있다.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합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하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과 비교해도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에서 뒤처진다. 노동생산성, 물가, 경제성장률, 업종별 지불 능력 등 객관적 지표를 반영한 산정 기준을 제도화하고, 위원회 규모와 구성, 회의와 결정 방식까지 전면 재설계해야 할 때다. 공익위원들마저 제도 개선을 공식 권고하고 나섰다. 도급제(都給制)·플랫폼 노동자 적용 문제와 업종별 구분 적용을 비롯해 최저임금 결정 기준과 적용 대상 전반을 검토하는 추진단 설치를 제안했다. 현 시스템의 한계를 최저임금위원회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재명 정부도 국정 과제로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더 이상 문제를 방치할 단계는 지났다. 정부는 최저임금 제도 개선안을 서둘러 구체화하고, 국회는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내년에도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면 정치의 직무유기다.
2026-07-16 05:00:00
이재명 정부가 '5극3특'(5대 초광역권·3개 특별자치도)을 내세워 국가균형발전을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수도권 일극(一極) 체제를 깨고 지역을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균형발전은 구호가 아닌 제도로 뒷받침돼야 한다. 지방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수년씩 지연되는 현실을 방치한 채 지방 발전을 말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은 예타 제도의 비효율적인 운영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5년간 완료된 철도 건설 예타 21건 중 12개월(지침상 원칙) 안에 끝난 사업은 1건뿐이다. 3분의 2(14건)는 최대 기한인 24개월마저 넘겼다. 평택~부발 단선전철은 45개월, 삼척~강릉 고속화 사업은 36개월 걸렸다. '불가피한 경우 최대 24개월'이란 지침은 사문화(死文化)됐다. 중앙정부가 스스로 만든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 예타가 늦어질수록 기본계획 수립과 설계, 착공이 줄줄이 밀린다. 기업 투자와 인구 유입, 일자리 창출 등 지역 발전 기회는 지연되거나 사라진다. 지방은 하루가 급한데, 정부는 느긋하기만 하다. 구조적인 불황과 소멸(消滅) 위기에 놓인 지방은 정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예타가 정부의 '지방 통제 수단'처럼 작동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구경북의 현실은 더 답답하다. TK 광역철도는 2019년 국가철도망 계획 반영을 추진한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예타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2024년 6월 예타에 착수했으나, 24개월이 지난 13일 재정투자평가 분과위원회 종합 평가를 마쳤다. 결과 발표와 후속(後續) 일정은 안갯속이다. 달빛철도는 특별법까지 만들어 예타 면제를 추진했지만 결론은 감감무소식이다.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인지, 시간만 끄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말하기 전에 예타 제도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법과 지침에 따른 조사 기한을 엄격히 준수하고, 불가피한 지연 사유와 진행 상황을 공개하는 것은 최소한의 책무(責務)다.
2026-07-16 05:00:00
[사설] 여당 내 보완수사권 일부 허용 의견, 권력형 범죄는 왜 빼나
각계의 반대에도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골자(骨子)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해 오던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변하고 있다.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 이후 경찰이 수사를 독점하고 수사 종결권까지 가질 경우 회복(回復)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黨論)으로 의결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보완수사권을 반대했던 박지원 의원도 "사회적 약자, 청소년, 여성, 장애인 범죄 등에 대해선 (검찰이) 보완수사권을 갖는 것이 옳다"고 입장을 바꿨다. 홍기원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 10여 명은 특정강력범죄와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 보이스피싱 등 민생침해범죄, 공소시효 임박 사건 등에 한해 검찰의 보완수사를 허용하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 없이 경찰의 수사 자료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공소 유지 또한 난관(難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에서 보완수사권 허용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보완수사권 논의가 여성·사회적 약자·스토킹·민생 범죄 등에 한정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전문적 법률 지식이 필요한 인공지능(AI), 금융, 조세·관세 등 범죄를 경찰이나 특사경이 전담하는 것은 국민 권익 향상 및 법치 실현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정치 권력형 거악(巨惡) 사건은 현재 검찰도 수사가 어렵다. 하물며 경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다고 믿을 국민은 드물 것이다. 검찰의 정치인 표적(標的) 수사는 막아야 하지만, 권력형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원천 차단된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거악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검사의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는 최종적으로 법원이 재판으로 판단할 수 있다. 권력형 범죄에도 검찰 보완수사권이 허용되어야 한다. 보완수사권 논의는 검찰 입장, 정치인 입장, 경찰 입장이 아니라 오직 국민과 법치, 민주주의를 수호(守護)한다는 목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2026-07-16 05:00:00
[관풍루] 지난 13일 집중호우와 높은 파도로 제주 가파도에 고립된 관광객이 드론으로 전달해 준 긴급 의약품 덕분에 생존
○…스트레이트뉴스 여론조사, "한동훈 복당, 국민의힘과 보수에 도움 안 돼" 과반 웃도는 57%, 특히 서울과 인천·경기 및 부산·울산·경남의 부정적 의견 크게 높아. 복당도 창당도 곤란한 진퇴양난 외톨이? ○…대전지검 서산지청, 고무보트를 이용해 중국을 탈출, 밀입국해 수사를 받은 반체제 인사 둥광핑에게 기소유예 처분. 중국에 강제 송환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 ○…지난 13일 집중호우와 높은 파도로 제주 가파도에 고립된 관광객이 드론으로 전달해 준 긴급 의약품 덕분에 생존. 이제 정말로 드론·AI·로봇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펼쳐지는 듯.
2026-07-16 05:00:00
2026-07-15 19:04:16
교육감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교육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다양한 교육 철학과 그를 반영한 정책이 경쟁했지만, 당선 이후의 교육은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순수한 미래의 학생들을 향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교육의 영역에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교육 본연의 가치와 목적이 오히려 등한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새로이 각 시·도 교육의 막중한 책임을 맡으신 교육감께서 무엇보다도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행정을 펼쳐주시기를 기대한다. 강원도 횡성에서 대한민국의 우수한 미래 인재를 길러냄에 노력하여 온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교장으로서, 그리고 마찬가지로 교육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세 가지의 구체적인 방향을 부탁드리고자 한다. 첫째, 올바른 민주시민 교육의 확립을 지향해 달라. 올바른 민주시민 교육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기초 질서관과 예절, 공동체 의식과 애국심, 책임감과 배려, 봉사 정신 등의 보편적 가치들은 시대가 변하고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교육이 놓쳐서는 안 될 보편적인 덕목들이다. 민족사관고등학교는 개교 이래 '민족주체성 교육'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 충(忠), 효(孝)로 대표되는 책임 의식을 학생들에게 길러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온고지신의 자세 속에서 전통적으로 계승해 온 인성과 현대 시민으로서의 올바른 관점을 함께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계속하여 강조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넘어 인간 존중에 바탕한 휴머니즘, 인류애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지향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가 갖추어야 할 가장 보편적인 민주시민 교육의 출발점일 것이다. 둘째, 기초학력 보장의 실질적인 강화를 꾀하여 달라. 최근 학교 현장은 학생 간 학력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음을 체감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가정환경, 경제적 여건, 지역 간 교육 인프라의 차이 등이 학업 성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 환경·조건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책임 있게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공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기초학력은 최소한의 성취 수준이 아닌, 모든 배움의 출발선이다. 기초학력이 충분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심화교육이나 창의교육 역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모든 학생들이 기본 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다 함께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해갈 수 있도록 기초학력 보장 정책과 공평한 지원 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마련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모두의 교육적 출발선이 단단해질 때 나아가 국가 경쟁력과 수준 역시 함께 높아질 것이다. 셋째, 교사의 교육활동과 인권에 대한 보호를 고심해 달라. 학생 인권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학교는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권위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중받고 균형 있게 상호작용하는 분위기 위에서 만들어진다. 오늘날 많은 교사들은 과도한 민원의 부담 속에서 정작 중요한 교육 활동을 준비하고 수행할 시간, 여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에서 비롯된다.
2026-07-15 17:31:14
한국 발효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입구만 있고 나오는 문은 없는 것 같다. 파고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젓갈 등이 코리아 발효식의 리더격. 그 속을 파고드는 두 음식이 있다. 바로 식혜(食醯)와 식해(食醢). 발음이 비슷해 참 구분하기 힘들 것 같다. 한자로만 적어놓으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식혜는 단술, 감주 등으로 불리는 '음청류', 식해는 생선을 베이스로 발효시킨 '젓갈류'로 보면 된다. 생선, 소금, 곡물, 엿기름물을 써서 만든 '어식해'에서 생선과 소금을 빼고 곡물과 엿기름에 물을 많이 써서 만들어 달인 것은 '감주', 밥알을 건져두고 물만 달여 식혀서 여기에 생강즙, 고춧가루, 밥알과 잘게 썬 무 등을 넣어 삭힌 게 식혜다. 전라도는 '젓갈의 본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경상도로 넘어오면 '장아찌' 문화로 변주된다. 젓갈도 동해안권으로 오면 식해로 상응된다. 현재 속초의 가자미식해, 영덕의 홍치 밥식해가 투톱을 이룬다. 서해안권이 '새우젓갈', 동해안권, 특히 감포권은 '멸치젓갈', 울진권은 '꽁치젓갈'이 강세를 보인다. ◆식해 연대기 한국의 식해는 워낙 기반이 탄탄해 일본 식문화에 영향을 준다. 음식사학자들은 한국의 젓갈이 일본 스시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훗날 붕어초밥의 일종인 '후나즈시'로 변형되고 그게 현재 일본의 상징격인 '니기리스시'로 정착된다. 식해와 관련되어 전해 내려오는 일화 하나가 있다. 1079년 중국 송나라 때의 대표적인 시인인 소동파가 필화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게 됐다. 아들과 상의해 옥에 밥을 넣을 때 생명이 위태로우면 식해를 들여보내 위기를 통보키로 사인을 주고받았다. 살림이 궁핍해진 아들은 돈을 빌리려고 친척에게 옥바라지를 부탁하고 먼길을 떠난다. 그런데 이 친척이 전후 사정도 모른채 식해를 옥에 들여보낸다. 소동파는 절망한다. 그는 당시 황제였던 신종에게 시 두 수를 올린다. 그런데 신종이 감화해 소동파의 죄를 감해 좌천한다. 잘 못 들어간 식해가 오히려 전화위복 소동파를 살린 셈이다. ◆젓갈에서 식해로 조선 때는 이 식해를 '어자'(魚鮓), 혹은 '자'(鮓)로도 불렀다. 자는 '젓'이란 의미다. 젓갈이 각종 어패류와 소금이 생산되는 해안지방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젓갈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전통 벼농사문화권에서 상용되면서 식해로 건너간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밥이 사용되면 '식해', 소금이 축을 이루면 '염해'(鹽醢)로 구별했다. 염해는 젓갈이다. 식해는 10%의 소금에 엿기름과 밥 등 곡물에다 고춧가루·무를 섞어 담근 거다. 전분이 발효하면서 유산이 생기고, 신맛이 나면서 부패가 방지된다. 젓갈은 소금과 생선이 충돌하면서 생겨나는데 식해로 건너가려면 쌀의 전분이 꼭 필요하다. 곡식 '식'(食)·젓갈 '해'(醢) 자가 합쳐 식해가 된다. 우리의 염장법은 단순히 어패류에 국한하지 않고 육류와 조류 등도 사용됐다. 정조 때는 '해식중미'라는 젓갈도 있었다. 돼지고기로 젓갈을 담근 뒤 그 위에 쌀밥을 얹어 발효시킨 거다. 젓갈은 기능성 장류와도 연동되게 된다. 어패류를 이용한 '어장'(魚醬), 육류를 이용한 '육장'(肉醬), 어패류와 육류를 같이 넣고 담근 '어육장'(魚肉醬) 등으로 나뉘게 된다. 그 가짓수가 무려 14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현재 남도밥상에서는 세 종류의 젓갈이 빠지면 맹탕이 된다. 첫째 민물 새우로 담그는 '토하젓', 전어 내장으로 만드는 '밤젓', 마지막은 '황석어젓갈'이다. 굴로 담근 양대 젓갈로는 서해안 '어리굴젓', 그리고 통영권의 '진석화젓'. 한 국에는 참으로 다양한 식해가 많았다. 한국음식사학자 이성우에 따르면 한국의 식해 전통은 1600년대의 음식 문헌에 등장한다고 한다. 함경도에선 가자미, 강원도에선 북어, 황해도에선 도루묵, 강원도 속초 등지에선 오징어로도 만들었다. ◆영덕밥식해 2000년을 넘어서면서 느닷없이 강구 밥식해가 전국적 선풍을 일으킨다. 이게 포항 죽도시장 별미로도 정착을 하게 된다. 영덕밥식해는 지역민에게는 안동식혜 정도로 로컬리티를 갖고 있다. 이 식해는 동해에서 잡은 횟대(홍치), 가자미, 오징어 등을 주재료로 만드는 동해안 전통음식으로 겨울철 별미. 생선의 물기를 말려 적당한 크기로 썰고 엿기름으로 하루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시킨 다음 기장 고두밥과 채썬 무, 다진 마늘, 생강, 소금,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려 다시 숙성시키는 이중 발효과정을 거친다. 엿기름은 생선의 뼈를 부드럽게 해 뼈를 통째로 먹을 수 있도록 삭히는 역할을 한다. 이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부재료다. 그 맛이 '삼콤'하다고 한다. 달콤‧새콤‧매콤한 맛이다. 엿기름 성분의 달콤한 맛과 고춧가루의 매콤함, 발효과정에서 새콤한 맛이 형성된다. 이 식해는 한동안 세인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영덕 강구농협 농가주부모임의 노력 덕분이다. 강구농협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한다. 횟대밥식해로 시작해 가자미·오징어 밥식해로 늘어났다. ◆일본 스시한테도 영향 고온 다습한 동남아시아에도 염장법이 발달하였다. 말레이시아의 '벨라찬', 인도네시아의 '트라시', 필리핀의 '바고옹 알라망'과 '바고옹 이스다'는 모두 새우젓이다. 액젓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케첩 이칸', 말레이시아의 '부두', 베트남의 '느억맘', 태국의 ''남쁠라', 필리핀의 '파티스', 미얀마의 '응아피' 등이 있다. 초창기 일본 스시는 바다 생선이 아니고 민물에 사는 붕어를 밥을 넣고 삭혀 꼭 식해같았다. 이걸 후나즈시라고 하는데 일본 사가현의 대표적 전통음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후나즈시류가 요리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패스트푸드형으로 진화된 게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초밥집에서 먹는 니기리스시이다. '니기리'란 일본말로 '쥔다'는 말인데 다시 말해 '손으로 밥알갱이를 먹을만한 크기로 꽉 쥐어 만든 스시'란 의미다. 곽에 넣어 모양을 만들어내면 '하코스시', 배모양으로 만들면 '밧데라스시'. ◆안동식혜 식혜의 경우 여느 고장에서나 맛볼 수 있지만 유독 '안동식혜'가 좌장격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두 음식은 발효과학이 들어 있고 결국 오늘의 김치류의 저력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특히 식혜는 이렇다 할 음료수가 없었던 그 시절 어른들에게는 숭늉과 함께 사랑받은 디저트 구실을 한다. 믹서커피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었다. 안동의 길흉사에서 절대 없어서 안되는 게 식혜다. 특히 안동, 영주, 봉화가 바로 '안동식혜권'이라 보면 된다. 안동식혜는 만드는 방법부터가 대중적 식혜와 차별화된다. 고두밥에다 가로·세로 0.5㎝ 정도로 잘게 썬 무를 잔뜩 넣고 고춧가루 물에 다진 생강을 넣은 후 맥아 가루(엿기름)를 풀고 항아리에 담아 하룻밤 삭혀 식히면 시원하고도 매콤한 안동식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혜는 엿기름으로 고두밥을 삭혀내 가마솥에 달여서 밥알이 동동 뜨게 만든 달콤한 음료수와 비슷하다. 식혜는 삭히고 단술은 끓여야 되는 게 차이점이다. 단술은 모계사회 제사풍습에서 유래한다. 술을 못 드시는 조상에겐 제사상에 술 대신 단술을 올렸다. 실학자 이익은 식혜를 제수로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얼마전 안동 향토음식연구가인 조선행 여사를 와룡면 자택에서 만났다. 실제 만드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푹 찐 찹쌀 지에밥(찐밥)에 체에 밭친 엿기름물과 잘게 썬 무와 생강즙, 고춧가루 우린 물을 넣고 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아 저온 발효시킨다. 무를 설탕으로 버무려야 하고 생강이 중심에서 간을 맞춘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밥알이 뭉쳐지면 발효가 어려워진다. 일일이 잘 분리해줘야 한다. 다 발효되면 밥알은 신기하게 삭아서 없어진다. 그 자리에 단맛이 스며든다. 특히 겨울철의 절식으로 쓰였던 것은 감주 계열 식혜와 같이 끓이지 않으므로 삭힌 후 급히 냉각하지 않으면 변질되므로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겨울이 아니면 만들 수가 없었다. 지금은 계절과 관계없이 만들 수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이 자신의 예순살 생신상을 안동 하회마을에서 받았는데 그때도 안동식혜를 먹었다. 그때 생신상을 차린 분은 '안동의 황혜성'으로 불리는 조옥화이다. 한때 전주의 1회용 비빔밥 같은 '안동식혜캔'을 개발하려고 했는데 기대했던 맛이 아니라 개발을 포기한다. 여름의 서기(暑氣)가 뼛속까지 파고들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의 식혜와 식해의 맛은 더욱 절정으로 치닫을 것이다.
2026-07-15 15:26:14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5>백자 달항아리 같은 김홍도 선(線)의 아름다움, '총석정'
'총석정'은 크지 않은 화첩그림이지만 김홍도의 금강산도 중에서 빠지지 않을 명작이다. 총석정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 바닷가에 늘어선 거대한 돌기둥들인 총석(叢石)과 동해를 감상하는 정자다. 화면의 오른쪽 언덕 꼭대기에 그려져 있다. 금강산의 바다 쪽 절경으로, 관동팔경의 제1경으로 꼽혀 겸재 정선부터 많은 화가들이 총석정도를 남겼다. '한국회화소사'(1972년)의 저자인 독시재(讀時齋) 이동주(1917~1997) 선생은 김홍도 명작의 특징을 그의 고유한 필묘(筆描) 자체에서 느껴지는 품격과 아름다움인 선(線)의 맛, 붓을 대지 않은 여백 공간을 창출하고 활용하는 주도면밀한 공간 경영, 화폭에 은은히 감도는 시적 정취, 자신의 주변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이 그림 속에 녹아든 현실감각을 들었다. '총석정'의 특징이기도 하다. 김홍도는 주제에 호응하는 선을 창출해냈고 그 선미(線美)는 화가로서의 성숙도에 따라 진화했다. 초기의 신선도는 강약과 농담의 변화가 많은 옷자락이 크게는 중국풍이면서 자신만의 가락이 있었고, 30대부터 유명했던 풍속화는 수수하고 질박한 윤곽선 위주이다. 인물화가 김홍도가 산수화가로 도약한 계기는 정조대왕의 어명이었다. 금강산 탐승 열풍에도 직접 가볼 수 없었던 정조는 화원인 김응환과 김홍도를 보내 그림으로 샅샅이 담아오게 했다. 임금을 대신해 금강산과 관동의 명소를 유람하며 그림으로 보고하는 특별하고도 막중한 임무를 맡은 것이다. 한양에서 출발해 50여 일에 걸친 대 역사(役事)였다. 명소 명소마다 스케치를 남겼으며 완성본은 긴 두루마리의 채색화였다. 정조는 금강산을 그림으로 유람했다. 이때의 스케치로 여겨지는 국중박의 '해동명산도첩'은 일필일획이 현장에 육박하고자 한 정성 어린 사실의 세밀한 묘사적 선이다. '총석정'은 이로부터 7년 후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농담으로 전후의 공간감을 암시한 스스럼없는 바위, 녹색 담채의 물결, 파도가 바위에 부딪친 꼬불꼬불한 물거품, 해풍에 젖은 듯 휘날리는 늘씬한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담백하면서도 무한한 깊이가 느껴지는 선의 향연이다. 타원형 머리도장은 '심취호산수(心醉好山水)'. 백자 달항아리의 어진 맛 같은 김홍도의 필선을 따라 총석의 절경에 심취해본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7-15 11:09:24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경제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국가 이익을 우선시한 선배 세대의 피땀과 노력 덕분이다. '잘사는 조국'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열망처럼, 현재의 풍요와 긍지가 미래 세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잘사는 나라'가 되기만 하면,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질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웬걸,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정신적 가치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다 보니, 걱정은 오히려 늘고 있다. 특히 근년에 두드러지는, 정치가 비정치적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정치 과잉'은 새로운 걱정거리이다. 정치가 대한민국 전체를 집어삼키는 형국이다. 지난달 30일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대 '호남 반도체 투자'에 대해, "차별의 고통과 설움을 견뎌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 국민적 보상으로 생각하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투자의 입지 선정은 경제적 원리에 따른 결정이며, 억압 또는 강요는 아니며, 좋게 말하면 '유도', 좀 심하게 말하면 '유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이 투자 결정이 정치 논리에 기초하였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경제에 정치 논리가 작동한 것이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 내지 안보 전문가의 의견 수렴 절차를 생략한 채 이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고 있다. 안보에 정치 논리가 투영된 것이다. 배재고 야구부의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응원이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한 것으로 비치면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정치권이 문제를 확대하고 있는데, 특히 지역 정치인의 꼴사나운 훈수는 당혹스럽다. 이미 교육감 선거가 정치의 장으로 변모된 지도 오래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스포츠 정신의 이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 교육이 담당해야 할 영역에 정치가 끼어든 것이다.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관련한 파장도 그렇다. 지난달 28일 이 대통령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32강 진출이 좌절되자, "능력보다 네 편 내 편을 더 중시해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라는 글을 공유하였다. 정치권도 이 사태와 관련하여 국회 청문회를 통해 전반적 의문을 밝히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고발 조치니, 연봉 회수니 하는 주장은 지나치다.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 축구 관련 문제에 정치가 가세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 과잉'이 잦아지면 국가경쟁력의 추락 등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다. 요즈음 흥행하고 있는 넷플릭스 '참교육'이라는 드라마에서의 통쾌한 해결처럼, 모든 문제가 도깨비방망이처럼 일격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는 경제 논리로, 안보는 안보 논리로, 교육은 교육 논리로 접근해야 경제도, 안보도, 교육도 최상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정치가 국정 전반과 연관된다고 하더라도 정치는 절제되어야 하며, 책임 정치라는 울타리 내에서 기능해야 한다. 마치 정치가 만능 키(key)라도 되는 것처럼 부풀려져 작동하기 시작한다면, 그 관여에 따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를 사류(四流)라고 한다. 경쟁력이 없고, 대안도 없으며, 자기 이익에만 골몰하며 싸움질만 하는 정치, 이제 더 이상 사류 정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사류 정치에 대해 '노'(No)라고 행동할 때이다.
2026-07-15 05:00:00
[사설] 초과 세수로 나랏빚부터 갚는 게 후대를 위한 진정한 미래 대응
정부가 반도체 세수 호황에 힘입어 내년 총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10% 이상 늘린 800조원 플러스 알파(+α)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두 자릿수 증가율이자,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이미 고물가와 부동산 가격 불안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이처럼 천문학적인 재정을 시장에 쏟아붓는 확장 재정 정책은 물가 상승 압력의 임계점(臨界點)을 넘기는 기폭제가 될 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기록하며 국민이 체감하는 인플레이션 고통이 심각한 지경이다. 여기에 지자체의 전시성 사업, 역대급 경상흑자까지 맞물려 시중의 유동성은 과잉 상태다. 이런 시점에 정부까지 가세해 역대급 확장 재정을 펼친다면 물가 자극과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 반도체 사이클에만 나라 살림을 맡기는 계획 역시 무모(無謀)하다. 반도체 호황이 꺾이면 비대해진 지출 구조는 고스란히 국가채무와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기획예산처의 '재정 동향' 7월호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1천345조 2천억원으로, 불과 1년 새 127조 4천억원(10.4%)이나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향후 5년간 한국의 부채비율이 연평균 3%씩 상승해 비기축통화국 중 두 번째로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저출생·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생산 인구 감소로 중장기 세수 전망은 어둡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히는 지금 같은 호황기야말로 나랏빚을 미리 갚을 골든타임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초과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소진하기보다 재정 안전판을 두텁게 하는 신중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법정 최저 기준인 30%만 겨우 맞춰 국채를 상환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 의무상환비율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후세와 다음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을 남겨두는 것 자체가 가장 확실한 미래 대비 전략임을 명심해야 한다.
2026-07-15 05:00:00
[사설] 검찰·경찰 수장 장기 공백,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검찰과 경찰이 장기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경찰의 경우 2024년 12월 조지호 경찰청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파면은 2025년 12월) 이후 청장 직무대행 1년 7개월째로 역대 최장 기간 수장(首長) 공백 상태다. 검찰총장도 1년째 대행 체제를 지속하고 있다. 치안과 법질서를 책임지는 국가 핵심 기관이 리더십 부재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검경(檢警) 수장의 장기 공백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조직의 리더십 부재는 정책 추진력을 떨어뜨린다.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도 어렵다. 경찰은 형사소송법 개정, 보완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개편 등 굵직한 현안들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검찰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오는 10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출범시키겠다고 한다. 조직의 대전환(大轉換)을 앞두고 있는데도 검찰총장 자리를 1년이나 비워 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공소청법 역시 공소청의 장을 검찰총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총장을 임명해 조직 개편을 이끌게 하는 게 순리다. 인선(人選) 지연을 둘러싼 뒷말도 무성하다. 경찰의 경우 청장 후보군인 치안정감들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한 계급 아래인 치안감을 승진시켜 청장에 앉히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검찰 역시 직무대행 체제를 장기화해 법무부를 통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란 시선이 적지 않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의심이 확산되는 것 자체가 청와대 인사의 실패다. 직무대행은 비상시의 한시적(限時的) 장치다.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과 다음 인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직무대행의 권한과 위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대행 체제가 길어질수록 조직은 책임 있는 결정을 미루게 된다. 구성원들은 눈치 보기와 복지부동(伏地不動)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민생 치안과 범죄 수사, 국민 안전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2026-07-15 05:00:00
[사설] '3·4·5 경제 대도약', 구조 개혁 없이는 헛구호
정부가 잠재성장률 3%, 수출 세계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달성을 내건 '3·4·5 경제 대도약'을 제시했다. 국가는 당연히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거창한 목표 숫자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궁금하다. 정부가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높인 배경은 인공지능(AI) 투자 확산에 따른 반도체 가격 급등과 사상 최대 수출이다.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외생변수(外生變數)가 빚어낸 호황에 성장률을 내맡긴 셈이다. 잠재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는 황당할 정도다. 국내외 기관들이 1%대를 전망하는데 정부는 2배가량의 목표를 내놓으면서 노동과 자본, 생산성, 교육, 규제, 산업구조, 인구구조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방안이 없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2.0%에서 3.0%로 올리면서 취업자 증가 전망은 오히려 낮췄다. 반도체 중심 성장이 GDP를 끌어올려도 고용과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국민 체감 경제는 성장률보다 일자리와 소득, 소비에서 결정된다. 성장률 3%보다 당장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와 얼어붙은 지역 경제를 어떻게 되살릴지가 국민에게는 훨씬 절실(切實)한 과제다. 게다가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기상이변과 지정학적 갈등에 흔들리는 식량 가격도 큰 변수다. 석유 최고가격제나 식품 할인 행사로 대처할 사안이 아니다. 국가 경쟁력은 그럴싸한 숫자만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 기업 투자 환경 개선, 노동과 교육 혁신, 지역 경제의 경쟁력 등이 축적돼야 잠재성장률도 올라간다. 이런 청사진 없는 '3·4·5'는 국민에게 의문만 품게 한다. 출범 1년을 넘긴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호황, 증시 회복, AI 투자 확대를 경제 성과로 제시하지만 국민이 마주한 현실은 높은 생활비, 부진한 내수, 활기를 잃어 가는 골목상권이다. 뜬구름 같은 비전 제시에 호응(呼應)할 여유조차 없다. 정부가 내놔야 할 것은 '3·4·5'가 아니라 국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구체적 실행 방안이다.
2026-07-15 05:00:00
[관풍루]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 관련, 부실 수사 및 증거 인멸 등 혐의로 광주 광산경찰서장·형사과장·강력팀장 등 줄줄이 입건 또는 구속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 관련, 부실 수사 및 증거 인멸 등 혐의로 광주 광산경찰서장·형사과장·강력팀장 등 줄줄이 입건 또는 구속. 민중의 지팡이인 줄 알았는데, 범죄자 도우미였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명예훼손' 혐의 방송인 김어준 1심서 벌금 2천만원. 아무리 그래도 그의 말이라면 '복음'처럼 믿는 신도들이 널렸으니 변함없이 '썰'을 풀겠지.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 배우자 동반 해외 출장비 2억여원 본인이 '셀프 결재'한 것으로 드러나. 단순 실수 또는 관행이지 부정은 아니라고 둘러대겠지.
2026-07-15 05:00:00
[날씨] 7월 15일(수) "비 그친 후 차차 맑아짐"
2026-07-14 18:50:36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황지우 시인의 시 '거룩한 식사'의 전반부이다. 교육비, 생활비, 대출금 등 빠듯한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질 때, 허기진 속을 라면 한 그릇으로 채우는 이의 마음에는 어떤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을까? 그래도 꼬박꼬박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안도감과, 적지만 때맞춰 나오는 급여가 주는 약간의 만족감이 쓰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게 아닐까? 현대사회에서 개인 생존의 가장 큰 버팀목은 직업이고, 어떤 일이든 생계를 책임진다는 면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참으로 진실되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을 제 날짜에 받지 못하는 막막함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까? 중동 전쟁으로 전 국민과 기업들이 힘든 상황을 겪어왔다. 특히 영세한 기업과 그 종사자들에게는 이번 전쟁 여파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대구시는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지역 섬유산업 근로자의 고용안정 지원을 위해 20억원 규모의 '버팀이음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대구 섬유산업 사업체 수는 4천682개, 종사자 수 2만2천947명으로 비수도권 1위, 서울·경기에 이어 전국 3위를 차지하며 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력 산업 중 하나다. 그러나 중동 전쟁의 영향으로 수출 물류비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원료 공급 부족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번 '버팀이음 프로젝트'는 섬유산업의 3년 이상 근속자에게 최대 100만원을 지원하는 근로자 안심 패키지와,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대상 근로자에게 최대 150만원을 지원하는 고용유지 생활지원금으로 구성된다. 8월 21일까지 온·오프라인을 통해 신청을 받고, 섬유 코디가 직접 사업체를 방문하여 사업 참여 전반을 지원한다. 지원금은 지역화폐(대구로페이)로 지급되어 골목상권 활성화도 도모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이탈리아 출신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저서에서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고 이야기한다. 기초 대사량에 턱없이 부족한 식량으로 아사 위기에 내몰리던 그에게, 매일 조금씩 빵을 나눠 주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손길이 다가왔다. 로렌초라는 사람의 인간다운 행위가 자신이 말하는 조그만 행운에 더해져 홀로코스트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진정 필요한 도움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정말 적절한 때에 가장 절실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시도해 본 대화에서 AI는 "「버팀」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행운과 기회가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AI가 이렇듯 아름다운 글로 사람을 위로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사람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변화와 성장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힘차게 대구시정을 시작한 추경호 시장은 제1회 비상경제 대책회의에서 버팀이음 프로젝트를 보고받고 신속한 집행을 지시했다. 민생 안정을 최우선하는 민선 9기 시정 출범과 함께 시작하는 이 사업이 힘든 이들에게 계속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작지만 확실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
2026-07-14 16: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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