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3 18:49:55
[매일춘추-임현락] 선과 여백 (1) 우주의 입자와 파동을 그리다
오늘날 우리의 시각 환경은 과잉과 포화의 연속이다. 모든 공간이 디지털 기술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인공지능이 매초 쏟아내는 이미지 속에 파묻혀 산다. 그러나 이 풍요의 역설은 우리를 정형화된 디지털 격자 속에 가두어 스스로 상상하고 사유하는 힘을 잃게 하고 있다. 상상력이 고갈된 이 시대에 나는 다시 동양화의 선과 여백을 소환한다. 서양의 고전 회화가 배경까지 채워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면, 동양화의 선은 테두리를 긋는 경계선에 머물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호흡으로 그어가는 필획은 화가의 기운과 그 순간의 교감이 번져 나간 생명의 궤적이다. 선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생동하는 운동감이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선이 자유롭게 숨 쉬도록 감싸 안는 존재가 바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빈 공간, 여백이다. 조선의 화가들은 화폭 위에 가을 산의 쓸쓸함을 그릴 때, 굳이 붉고 노란 단풍을 칠하지 않았다. 먹색의 농담 몇 번, 그리고 성글게 그어진 붓질 사이에 남겨진 텅 빈 공간만으로 그곳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봄인지 겨울인지를 완벽하게 전달했다. 색을 넣지 않아도 사계절이 살아 숨 쉬었던 이유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 여백을 채우며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림은 작가가 시작하지만 완성하는 것은 온전히 감상자의 몫이다. 선과 여백의 상상력이 만나는 시선의 공유가 동양화의 본질이었다. 이처럼 시선이 닿아 완성되는 예술의 신비는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우주의 진리와 한 축으로 관통한다. 일찍이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그의 저서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통해 현대 과학이 도달한 궁극의 진리가 동양의 세계관과 일치한다고 선언했다. 양자물리학이 본 물질의 본질은 고정된 알갱이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미시 세계의 입자들은 누군가 쳐다보기 전까지는 형태가 없는 뿌연 안개 같은 '파동'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다 관찰자가 관심을 가지고 시선을 던지는 순간, 비로소 뚜렷한 실체인 '입자'로 모습을 바꾼다. 이 관찰자 효과는 동양화의 구조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화폭 위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여백(파동)'은 감상자의 주체적인 시선이 닿는 순간 비로소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의미(입자)'로 변한다. 작가의 선과 감상자의 시선이 만나 하나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빈틈없는 격자를 향한 맹목적인 시선을 돌려야 한다. 관성적인 주입에서 벗어나 매 순간 살아있음의 호흡을 실어 나만의 생명의 궤적을 그려나갈 때다. 그래야 디지털 종속을 깨고 인간 고유의 영성을 회복하는 걸음을 뗄 수 있다. 이 살아 움직이는 선과 여백의 미학은,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세상과 어떻게 얽히고 귀속되는지 거대한 우주의 비밀로 우리를 여전히 인도하고 있다.
2026-11-03 14:17:25
국제소롭티미스트 대구·경북·제주 13개 클럽, 10일 대구에서 합동 자선바자회 개최
국제 여성봉사단체인 국제소롭티미스트 대구·경북·제주 지역 13개 클럽이 오는 10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대구 호텔수성 컨벤션 B홀에서 합동 자선바자회를 연다. 이번 바자회는 김진선 총재와 김이아 DD(지역 책임자)를 중심으로 13개 클럽 회원들이 뜻을 모아 마련한 행사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소녀와 여성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장학기금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국제소롭티미스트는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제적인 여성봉사단체다. 국제소롭티미스트 대구수성클럽 김문정 회장은 "진정한 봉사는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고 그 꿈을 응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바자회가 어려운 환경의 소녀와 여성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당당하게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열린 국제소롭티미스트 청라클럽 회장 이·취임식.
2026-11-03 13:41:39
[수요일 아침-김노주] 상화(尙火)문학관 건립의 당위성
대구는 애국 계몽운동에서 항일 투쟁을 거쳐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에 확실한 자취를 남겨왔다. 그 중심에는 나라 잃은 아픔을 노래하고 실천한 시인 이상화(1901~1943)가 있다. 그의 삶과 문학을 보존·연구하며 그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대구 정신을 고양시키려는 상화문학관 건립을 온 마음을 다해 지지한다. 1904년 설립된 우현서루는 대구 계몽운동의 토대였다. 상화의 백부 이일우는 이곳에서 인재 양성과 계몽 활동에 힘썼고, 이 서루를 장지연, 박은식, 이동휘 등 150명 이상의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가 거쳐 갔다. 1911년 일제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상화는 성장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경제적 자주를 지켜 국권을 회복하려는 시민들의 애국 운동이었다. 백부가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기부금을 내는 모습을 상화는 목격하며 자랐다. 상화의 항일 정신은 1919년 대구 3·8만세운동에서 구체화됐다. 그는 백기만과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했고, 백기만은 대구고보(경운중·경북고), 상화는 계성학교 학생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이상화의 집을 연락 거점으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경찰의 추적을 받은 상화는 추적을 피해 도보로 서울까지 피신했다. 그에게 독립은 행동으로 응답해야 할 시대적 과제였다. 그의 저항 정신은 문학, 사회활동, 교육으로 이어졌다. 1922년 '백조' 창간호에 발표한 '말세의 희탄(欷嘆)'은 나라 잃은 아픔을 백열(白熱)된 쇠처럼 오열했다. 1926년 '개벽'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식민지 현실의 고통과 국권 회복의 염원을 담았는데 작품 속 '들'은 삶의 터전일 뿐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상징한다. 1926년 초봄, 상화는 앞산 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보리밭을 걷고 걸으며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시작해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로 끝나는, 지난 100년간 우리 가슴을 울렸던 이 시를 완성했다. 1927년 초봄엔 대구로 귀향해 신간회 대구지회 출판 간사로 활동했고, 1928년엔 무장 항일 투쟁을 목적으로 한 'ㄱ당 사건'과 관련돼 구금되기도 했다. 1933년 8월에서 1939년 3월까지 교남학교(대륜중고)에서 영어·작문·조선어 교육에 힘썼고 교가도 작사했는데 대륜중고에서 지금도 불리고 있다. 1943년 광복 직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문학과 실천은 대구 정신의 큰 획이 되었다. 그의 저항 정신은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투쟁과도 맞닿아 있는데 1946년엔 미군정의 지나친 쌀 강제 수집과 제한 배급 정책에 항거한 10월 항쟁으로, 자유당 정부 12년간은 야당 도시로, 1960년엔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궐기한 2·28민주운동으로 발현됐다. 특히 2·28민주운동은 발발 쉰하루 만에 4·19혁명이라는 꽃을 피웠다. 항일 운동, 10월 항쟁, 그리고 2·28민주운동은 시대는 달랐지만 모두 자유와 인권을 주창했던 것이다. 상화문학관은 이러한 역사와 문학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공공의 공간이 될 것이다. 작품과 발표 지면, 관련 기록을 수집·보존·연구하고, 상화의 항일운동과 교육 및 사회활동을 함께 조명해야 한다. 개인과 가족, 대학, 소장자에게 흩어진 자료를 조사하고 출처와 진위를 확인해 원본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 아카이브도 구축해야 한다. 상화 고택이 시인의 흔적을 전한다면 문학관은 자료 보존과 연구, 전시 및 교육을 담당할 것이다. 문학관은 미래세대를 위한 배움의 터전이기도 하다. 청소년 작품 읽기와 역사 탐방, 시민 문학 강좌와 시 낭송, 연구자를 위한 자료 제공 등을 꾸준히 진행하면 시민들은 상화 문학과 정신의 토대 위에서 현재를 성찰하게 될 것이다. 금년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발표 100주년을 맞는 해다. 대구방송국(TBC)은 이상화 시리즈를 제작·방영했고 상화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8일 학술 포럼을 열었으며 대구시에 건립을 적극 건의하고 있다. 대구시가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학축제를 열어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고양시키고 대구 정신을 정립시키면 시민들은 보다 큰 자긍심을 느끼며 달구벌대로를 활보하게 될 것이다. 김노주(경북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2026-11-03 10:55:28
[사설] 정치의 전리품 된 폴란드 헌재 사태,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폴란드 헌법재판소 앞에 진압경찰이 배치되고, 대통령과 헌재소장 측이 청사 진입을 위해 통제하는 측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순방 중 귀국한 대통령은 막아선 재판관들을 밀치고 청사로 들어가 '헌법기관이 무력으로 장악됐다'고 규정했다. 2015년 이후 헌재의 구성과 판결 효력이 정쟁(政爭)의 대상이 됐고, 헌법기관 문 앞에서 권력 다툼이 물리적 충돌로까지 번진 것이다. 사법부를 정치의 전리품으로 삼은 결과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대법원도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정면충돌하면서 대법관 한 자리가 8개월 동안 비어 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사실상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했고,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갈등은 여야 정쟁으로 번졌다. 대법원장 탄핵과 국정조사, 법원행정처 폐지까지 거론되면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무력화해 대법원을 청와대가 원하는 구성으로 채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재제청 절차처럼 헌법과 법률에 세부 규정이 없는 부분을 정치권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폴란드 사태와 같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대법관 증원도 같은 맥락이다. 대법관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이 통과돼 2028년부터 3년간 매년 4명씩 증원된다. 상고심 적체 해소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증원분 12명에 임기 중 퇴임하는 기존 대법관 10명의 후임까지 더해 26명 중 22명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 한 정권이 대법원을 채웠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폴란드에서도 양측 모두 헌법 수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사법부 구성이 권력 다툼의 대상이 되자 헌법기관 간 견제는 상호 존중 대신 적대로 바뀌었다. 폴란드가 보여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사법부 구성을 둘러싼 보복이 한 번 시작되면 어느 쪽도 멈추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여야 합의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임명 권한의 경계, 대법관 임명 절차의 책임과 시한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2026-11-03 05:00:00
[사설] 정부 K-2 이전 사업 외면, 군공항이 대구 시민의 것인가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이 표류하고 있다. 군공항(K-2) 이전 사업이 재원을 마련 못 해 진척이 없는 바람에 민간공항 건설도 제자리걸음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부 대 양여(寄附對讓與) 방식이란 이유로 국가사업 전환 요구는 물론 공공자금관리기금 융자 요청마저 외면하고 있다. K-2 이전 사업비는 11조5천억원이다. 새 군공항을 지어 국방부에 기부하고 기존 부지를 넘겨받아 개발 수익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기부 대 양여)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대구시는 올해 2천795억원, 내년 3천324억원의 공자기금 융자를 요청했지만, 정부 예산안에서 빠졌다. 이자 보전과 후적지(後適地) 개발 수익으로 원금을 갚겠다는 최소한의 대안조차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같은 기부 대 양여 방식인 광주 군공항 이전에는 총력전(總力戰)을 펼치고 있다. 군공항 이전 부지에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을 명분으로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기존 부지를 먼저 넘겨받는 방안과 재정 지원을 검토 중이다. 부산 가덕도신공항 역시 공사비 증액 문제를 특별법 개정으로 해결하려 한다. 광주·부산에는 법과 예산을 총동원하면서, 대구에는 기부 대 양여 원칙만 내세우는 것은 명백한 지역 차별(差別)이다. 국토교통부의 태도도 황당하다. 민간공항 기본계획을 변경 고시한 뒤 "민항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 중"이라고 했다. 군공항 이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민간공항도 착공할 수 없다. 핵심 사업은 멈춰 있는데 몇 가지 행정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사업이 순항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대구 시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K-2는 대구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다. K-2는 1970년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이 김포에서 대구로 이전하면서 조성된 군사시설이다. 6·25전쟁 때는 미군 기지 역할을 했다. 대구는 국가가 설치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운용한 시설 때문에 소음과 재산권 침해를 감내했다. 그런데도 지자체에 이전 비용을 떠넘기는 것은 국가의 횡포(橫暴)다. 군공항은 대구 시민의 것이 아니다. 이전 사업은 국가의 책임이다.
2026-11-03 05:00:00
[사설] '국가 미래' 없는 미래대응기금, 정부 쌈짓돈 되나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은 잠재성장률 반등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세수(稅收) 변동에 대응하는 혁신적 재정 안정 장치"라면서 총 820조9천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 심사를 요청했다. 정부는 반도체발 세수 호황을 계기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며 지난해보다 12.8%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확장 재정을 편성했다. 그러나 일시적 세수 증가에 도취해 국가재정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방만(放漫)한 편성이 아닌지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특히 162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미래대응기금'에 대해서는 그 목적과 맞지 않는 예산 편성이 곳곳에서 지적됐다. 올해 361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청년 영화·공연·체육 관람 지원 목적의 '청년문화예술패스' 예산이 내년도 미래대응기금에는 7천925억원으로 무려 22배 폭증해 반영됐다. 또 농어촌 주민에게 월 15만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 1조1천657억원이 배정됐으며, 심지어 행정 부처 지방 이전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장·차관 관사 확보에 56억7천200만원을 편성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인센티브(약 1천억원)나, 초·중·고교 냉방비 및 염전 지원(1천313억원)처럼 기존 정부 예산이나 지자체 경상비로 처리해야 할 소모성 경비까지 기금 사업으로 끌어왔다. 여기에다 구체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여유 자금을 국회 통제권 밖에서 자율 전용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두다 보니 행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하다. 반도체 호황에 기댄 세수 증가가 수년 뒤 소멸했을 때 그 부담은 결국 미래 세대의 빚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바와 같이 초과 세수는 우선적으로 나랏빚을 갚고 재정 규율을 확립하는 데 투입하는 것이 상식이자 원칙이다. 이제 공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여야는 엄격한 돋보기 심사에 나서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선심성 예산을 걷어내는 데 총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회 본연의 임무다.
2026-11-03 05:00:00
[관풍루] 최근 2년 동안 교도소와 구치소 수감자 7만 명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고유가 피해지원금 받았다고
○…밤잠 없는 이재명 대통령, 북한의 집속탄두(강철비) 위력 과시, 우리 군 최전방 GP와 미군 전차 모형에 자폭 드론 공격 사진 공개 등 도발엔 침묵. 다문화 가정 지원·외국인 근로자·대미 관세 등 언론 보도엔 폭풍 SNS. ○…이재명 대통령 "정치적 올바름이 오늘날 대중의 반발과 피로감에 부딪힌 이유는 이를 주창하는 태도에 내재된 '언행 불일치'와 '내로남불'에 있다"고. 절절한 자기 고백? ○…최근 2년 동안 교도소와 구치소 수감자 7만 명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고유가 피해지원금 받았다고. 성실히 일해서 돈 버는 사람에겐 안 주고, 죄지은 사람에겐 주는 한국형 복지.
2026-11-03 05:00:00
2026-11-02 19:03:27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0일(10월 16일)이 지났다. 대통령 취임 500일은 기대의 정치가 경험의 평가로 바뀌는 시점이다. 집권 초기에는 새 정부에 대한 희망과 전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지지율을 떠받친다. 그러나 500일이 지나면 국민은 인사와 정책, 위기 대응과 소통 방식을 충분히 경험한다. 이제 대통령은 무엇을 약속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바꾸었는지로 평가받는다. 여론조사는 정부의 성과 설명과 국민의 생활 경험 사이의 거리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추세와 강도, 지지 연합의 변화다. 추세는 신뢰가 움직이는 방향을, 강도는 지지와 반대의 단단함을, 지지 연합은 국정을 떠받치는 기반의 변화를 드러낸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10월 4주 조사(19~23일)에 따르면, 이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5.3%, 부정 평가는 62.3%였다. 지난 6월 1주와 비교하면 긍정 평가(55.2%)는 약 20%포인트 급락했다. 더욱 주목할 대목은 전체 부정 평가자 가운데 '매우 잘못한다'(51.6%)는 '강한 부정'의 비중이 약 83%에 이른다. 불만이 단순한 실망을 넘어 굳어진 반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지 연합의 변화도 주목을 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지지 기반인 40대와 50대에서조차 부정이 각각 61.4%와 53.1%로 긍정 평가(36.3%와 44.8%)를 압도했다. 이런 기류는 일시적 악재보다 정책과 통치 방식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반드시 평가해야 할 지표가 국정 방향성이다. 직무 평가가 지금 일을 잘하는지를 묻는다면, 방향성 평가는 정부가 이끄는 미래를 신뢰하는지 묻는다. 전국지표조사(NBS)의 국정 방향성 평가(10월1주)에 따르면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율은 43%인 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50%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3월 4주 때와 비교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비율이 6개월 만에 무려 25%포인트 증가했다. 정부는 이 격차를 국정의 진로를 점검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생활 전망은 정부 불신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여준다. 한국갤럽 조사(10월 27∼29일)에서 향후 1년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응답은 53%, 내릴 것이라는 응답은 14%였다. 전월세 등 주택 임대료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66%였고, 내릴 것이라는 전망은 7%에 그쳤다. 이는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이 국민의 기대를 충분히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또한, "부동산 정상화는 계곡 정비보다 휠씬 쉽다"고 호언장담한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여론조사 결과, 현재의 성과와 미래의 방향, 생활의 전망이 함께 흔들린다는 것은 이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으로 반등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유시민 작가는 지난 7월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을 두고 "필연적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심지어 최근엔 "극단적인 경우에는 박근혜나 윤석열처럼 임기를 채우지 못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유 작가의 예견은 적중할까? 민심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재명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뺏긴 치명적인 한계가 그대로 재연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 첫째, 정책 무능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데 "일은 잘할 것 같아서" 대통령으로 뽑아 줬는데 이제 국민들은 이재명이 "일을 참 못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한국갤럽이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4개월 되는 시점에 실시한 분야별 긍정 평가에서 부동산 19%, 인사 20%, 대북 24%로 최하위로 나타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둘째, 위선이다. 집권 세력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들먹이지만 '선출된 권력 우위론'에 도취돼 국회에서 다수의 폭정을 일삼고, 사법부를 압박하면서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있다. 셋째, 권력의 사유화다. 조작 기소 특검 추진과 같이 권력을 이용해 대통령 재판 공소 취소에 혈안이 돼 있다. 이제라도 이 대통령은 폭정을 멈추고 '누가, 왜 신뢰를 거두고 있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국민의 비판을 이겨야 할 논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야권 비판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반박하는 것은 소통과 설득을 포기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보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행동이다. 이 대통령이 민심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자신은 성공한다"는 허황된 확신에 빠지면 레임덕이 아니라 데드덕의 길로 빠르게 접어들 것이다.
2026-11-02 13:54:24
[사설] 소아응급실 압수수색, 환자 안전 위협하는 과도한 수사 아닌가
생명이 오가는 응급실의 특수성을 무시한 강제수사(強制搜査)가 과연 정당한가. 경찰의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을 둘러싼 반발과 비판은 '수사의 정당성과 환자의 안전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라는 원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아주대병원에서 치료받던 영아 사망 사건 수사를 위해 9월 30일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압수수색했다. 영장(令狀)에 따른 집행이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경찰이 진료 현장에 들어가 의료진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구하는 등 수사 과정에서 진료 차질과 의료진의 위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전문의들과 센터장이 사의(辭意)를 밝혔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 등은 필수의료 현장의 압수수색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불가피한 경우 사전 협의와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는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진료에 미칠 영향이 적은 수사 방법을 우선하도록 하는 내용의 '응급실 보호법' 발의에 나섰다. 의료사고 의혹을 받는 의료진은 조사받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수사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진료기록은 전산으로 관리되고, 수정 이력도 남는다. 자료 제출 요구나 전자정보 확보 등 덜 침해적인 방법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응급실에 직접 진입하는 강제수사를 했다. 이게 최선이었나. 정부는 이번 사태가 초래할 의료 공백(空白)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의사가 수사와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필수의료 현장을 떠난다면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간다.
2026-11-02 05:00:00
[사설] 동맹 강화 외치면서 미국에 뒷발질만 하는 외교·안보 정책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국회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뒤늦게나마 미 국무부가 비자를 발급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예정대로 (1일) 출국하여 미 태평양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와 대한민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양국의 안보협력(安保協力) 강화와 미래지향적 동맹 발전 방안을 충실히 논의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크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1일 애틀란타 G20 외무장관 회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국회의원들의 미국 비자 발급이 차질을 빚은 데 대해 "(주한미군 철수 주장, 국가보안법 위반 등) 해당 의원의 수십 년 전 행적과 관련된 이슈 때문"이라며 "양국 간 협의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한미동맹(韓美同盟)을 중시하는 한국 측 인사들과 미국 내 친한파의 노력 덕분에 '진성준 비자 문제'는 일단 해결되었지만 한미 간 갈등(葛藤)은 진행형이란 분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정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 최근 언행 등을 근거로 안보·국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는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15명 안팎에 대해 리스트를 만들어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25년도 한국인의 미국 비자 거절률은 24.73%로 급등하면서 비자 면제 협정국도 아닌 중국(20.21%)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한국은 더 이상 신뢰(信賴)할 수 있는 동맹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 약속 이행이 지지부진한 데다, 한국이 대중국 견제에서 이탈하며 제1도련선 회의 및 한미일 연합훈련에서 배제되는 등 한미동맹이 급격이 붕괴(崩壞)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서운해하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미동맹의 약화는 곧바로 한국의 안보·외교 위기(危機)로 비화된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드론 전시회를 열고 최대 30여 종의 드론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쌓은 드론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을 향해 본격적으로 드론 무력(武力)을 과시한 셈이다. 불행하게도 한국군은 북한 드론을 무력화시킬 전자전기 한 대 없고, 한국산 드론은 스마트폰 전파에도 추락하는 창피를 공개적으로 당했다. 한국산 공격형 드론 역시 단 한 대도 없는 실정이다. 주한미군의 도움 없이 북한군의 최신 드론 공격을 막아낼 수단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안보 협력 강화" "동맹 발전"이라는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입에 발린 말로 현재 우리가 처한 한미동맹 파탄(破綻)과 심각한 외교·안보 위기를 감춘다고 해서 숨겨질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정권의 진영(陣營) 논리에 따른 외교·안보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익을 위한 외교·안보 정책으로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교·안보는 '국민이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2026-11-02 05:00:00
[사설] 군 간부 전원 무죄…단순 연루 아닌 목적과 고의 증명해야
12·3 비상계엄 관련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 간부 8명이 1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30일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 방정환 전 국방혁신기획관 등에 대한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갑작스럽게 하달(下達)된 임무의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과 국헌 문란 목적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을 계엄의 위법성을 부정한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군인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판결의 요체(要諦)는 내란죄의 핵심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내란중요임무종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형이 무거운 만큼 개인의 책임은 직책이나 임무 수행 사실이 아니라 목적과 고의에 대한 증거로 가려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지휘한 자, 위법을 알면서 집행한 자는 엄벌해야 한다. 다만 처벌의 정당성은 기소 범위를 넓히는 데서 나오지 않고 입증의 정밀함에서 나온다. 이번 판결은 계엄에 연루됐다는 사실만으로는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신호다. 내란특검은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부의 판단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반박했다. 2차 종합특검은 내란특검이 불기소 또는 불입건했던 일부 인물과 사건까지 기소 범위를 넓혔다. 그만큼 입증 부담도 커졌다. 내란특검은 이후 재판에서, 2차 종합특검은 자신들이 기소한 군인들의 재판에서 피고인 각자가 계엄의 목적을 알고 가담(加擔)했는지를 증거로 보여줘야 한다. 판결을 탓하기 전에 증명하는 것이 기소한 쪽의 몫이다.
2026-11-02 05:00:00
[관풍루] 여야의 격한 공방 속에 820조 9천억원 규모 2027년도 예산안 심사
○…여야의 격한 공방(攻防) 속에 본격화된 초유의 820조9천억원 규모 2027년도 예산안 심사. 정부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선심성·현금성 지출이 과도하게 팽창했다는 지적 줄 이으며 민생 회복이라는 명분을 무색하게 해. ○…검찰의 수사권 폐지 이후 경찰의 수사 역량에 대한 우려 이어지며 경찰대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신설하는 방안 거론된다고. 이럴 거면 애초에 형사소송법을 굳이 개정한 이유가 뭔지. ○…이재명 대통령이 잦은 해외 순방을 지적하는 야당을 향해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반박하자, 국민의힘 발끈. 아무리 SNS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 대통령의 언어 품격은 유지돼야.
2026-11-02 05:00:00
2026-11-01 18:51:55
[김용삼의 한국 반도체산업 비하인드] 4MD램 반도체 개발의 숨은 주역은 전두환 대통령
한국 반도체 업계의 숙원 과제는 차세대 메모리인 '4MD램'의 국내 독자 개발이었다. 반도체 분야의 최첨단 기술인 4MD램을 우리 기술로 독자 개발한다면, 한국 전자산업은 미·일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길을 걷게 된다.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4MD램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았다. 이 분야 선두 주자인 삼성이 64KD램·256KD램을 출시하며 그룹 전체가 풍비박산 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적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를 불안하게 여긴 정부 내에서 강력한 반대 목소리가 끝없이 제기되었다. 반도체산업에 찬성하는 부처인 체신부·과학기술처·상공부는 저마다 부처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개발 주도권을 자기가 맡아야 한다며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혼란의 와중인 1985년, 국가 연구개발 정책을 총괄하는 과기처 연구개발조정실장에 박승덕이 임명되었다. 그는 육사를 졸업(12기)하고 소대장 생활을 마친 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 기계공학 석사, 캐나다 오타와대학교에 국비 유학하여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모교인 육사 교수, 한국기계연구소장, 과기처 기술정책실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을 역임한 한국형 테크노크라트의 전형이었다. 며칠 후 육사 11기 출신 김성진 과기처 장관이 육사 1년 후배인 박승덕 실장을 집무실로 불렀다. 당시 과학기술계 최대의 화두는 '4MD램 반도체 개발'이었다. 뜻은 간절했지만,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가 요구되는 분야인 데다가 최첨단 기술 분야여서 누구도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국내 3대 반도체 기업(삼성·금성·현대)은 심각한 적자의 수렁에서 신음하며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김성진 과기처 장관의 결단 강진구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업 단독으로 4MD램 개발은 자살적 모험의 길"이라며 국가의 도움을 절실히 호소하고 나섰다. 김성진 장관은 육사 후배 박승덕 실장에게 결연하게 입을 뗐다. "4MD램 반도체 연구개발은 대기업이 하는 사업이어서 정부가 지원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평시가 아닌 비상 상황이오.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보시오." 당시 정부의 국가 전체 연구개발 예산은 고작해야 연간 600억 원으로, 당장 발등의 불인 기초연구 과제와 영세 중소기업을 지원할 연구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대기업에 국민 세금으로 거액의 연구비를 몰아주는 것은 특혜 시비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게다가 4MD램 개발비는 정부 특정연구개발비를 통째로 털어 넣어도 모자랄 정도로 거액이 요구되었다. 박 실장은 여러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 김 장관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피 말리는 반도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도체 기업들을 도와 기술 자립을 이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승덕 실장도 심정적으로는 김 장관과 같은 입장이었다. 다만 한정된 재원과 여론의 향배가 걸림돌이었다. 만약 반도체가 기술 자립을 못 하면 한국의 미래 산업은 영원한 기술 종속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다. 특단의 타개책이 필요했다. 오랜 고민 끝에 박 실장은 정부와 민간, 학계와 연구소 공동 연구개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4MD램 개발을 국가와 민간 공동 연구 사업으로 추진하되, 과기처의 특정연구개발사업을 컨트롤타워로 삼아 지원하는 방안이었다. 이 안을 가지고 이해가 엇갈리는 상공부·체신부·경제기획원 실무자들을 설득했고, 관계 부처가 합의하여 돌파구가 열렸다. ◆"4MD램 연구개발비 정부 부담" 선언한 전두환 4MD램 반도체 개발은 3년의 세월과 당시 국가 연구개발 1년 치 예산을 초월하는 총 879억 원(당시 환율로 1억 달러)이 투입되는 단군 이래 최대의 과학기술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자존심 강한 라이벌 기업이자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삼성·금성·현대가 공동개발에 참여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일본은 D램 제조사만 10개가 넘었다. 이들은 한편에선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른 편에선 공조하여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한국이 반도체 전쟁에서 생존하려면 반도체 3사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야만 반도체 생산 장비 국산화도 가능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공동연구를 하려면 '절대적인 국가적 권위'가 필요했다. 박승덕 실장은 고심 끝에 이 과제를 '대통령 프로젝트'로 격상시켜 통치권자의 서명을 받아내기로 결심했다. 1986년 8월 22일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안)'을 보고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단호하게 이 서류에 서명했다. 879억 원이란 초유의 국가 연구개발비가 걸린 프로젝트가 국가 최우선 국책과제로 탄생한 것이다. 이날 전 대통령은 결재 서류 여백에 "전자통신연구소장은 전 연구원의 인사권을 장악해야 하며, 3사(삼성·금성·현대)는 공동운명체로서 연구소장의 지휘에 순응 협조해야 함"이란 메모를 남겼다. 국책연구소장에게 사기업 연구원을 지휘하는 전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3대 대기업에겐 "기업 이기주의를 버리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공동운명체'로 복종하라"는 통치권자의 엄중한 명령이었다. 당시 반도체 3사는 서로의 입장이 크게 달랐다. 사용 장비와 공정 방식이 달랐고, 해외 기술 도입선과 보유 기술력도 격차가 컸다. 삼성은 수년간 피눈물 나는 적자를 감수해 가며 1MD램 개발을 마친 상태였다. 기술적으로 월등히 앞서 있던 삼성이 후발주자인 현대·금성과 핵심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동개발에 선뜻 나설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전 대통령은 반도체 3사 회장을 청와대로 전격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4MD램 개발비는 얼마가 들든 정부가 책임지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과제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성공시켜야 한다면서 3사가 한마음으로 뭉칠 것을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나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 구자경 금성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반도체 공동개발을 권유했다. 아울러 막대한 개발 비용의 상당액을 정부에서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중략) 반도체산업은 국가경쟁력 확보와 경제 성장 동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따라서 난관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극복해 나가면 되는 것이라고 나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전두환 지음, 『전두환 회고록(2): 청와대 시절 1980-1988』, 자작나무숲, 2017, 223쪽) 통치권자의 확고한 의자와 파격적인 재정 지원 약속에 3사 회장은 흔쾌히 "국가적 대업에 동참하겠다"라고 화답했다. 연구개발 기간은 1986년 8월부터 1989년 3월까지 총 30개월. 정부는 불퇴전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이 사업의 공식 명칭을 '대통령 프로젝트'로 못 박았다. 마침내 한국 반도체 역사를 바꿀 4MD램 개발의 거대한 엔진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공교롭게 4MD램 반도체 개발에 앞장선 김성진 장관, 박승덕 실장, 전두환 대통령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육사 출신들이 대한민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 이처럼 비장한 4MD램 공동개발이 시작된 다음 해인 1987년부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미국 PC 시장이 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면서 세계 반도체 경기가 들썩인 것이다. 글로벌 PC 메이커들은 성능은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싼 1MD램 대신, 경제성 뛰어난 256KD램을 주력 메모리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일본 반도체 업계는 256KD램 생산량을 크게 줄이고, 1MD램을 주력으로 삼아 공급 중이었다. 이 미묘한 타이밍이 뒤늦게 256KD램 시장에 뛰어든 삼성에 결정적 기회로 작용했다. 삼성 반도체의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당 1달러였던 256KD램 가격이 12달러, 개당 50센트였던 64KD램마저 6달러로 껑충 뛰었다. 삼성은 1988년 한 해 동안 64KD램 5천만 개와 256KD램 8천만 개를 싹쓸이 판매했다. 그 결과 1988년 한 해에 무려 1천649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래 5년여 쌓였던 누적 적자 1천200억 원을 단숨에 털어내고도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관료들의 반대 속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용단으로 수도권 규제를 뚫고 일궈낸 기흥 256KD램 전용 제2라인이 마침내 한국 반도체 역사상 최초의 흑자라는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11-01 14:06:30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에 가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배우는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객석에 앉아 같은 시간을 함께한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집이나 영화관에서도 뮤지컬과 연극을 볼 수 있다.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의 공연 실황 프로그램 NT Live를 비롯해, 토니상 4관왕에 빛나는 뮤지컬 '메릴리 위 롤 어롱(Merrily We Roll Along)'도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공연 실황은 현장 공연과 다르다. 영상은 무대 전체를 보여주다가도 배우의 얼굴을 가까이 비춘다. 객석 뒤쪽에 앉았다면 놓쳤을 배우의 세밀한 연기를 카메라가 포착한다. 영화처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칼에 찔려도 피를 흘리지 않는 무대적 허용이 화면에 어색하게 보일 때나 조명으로 강조된 장면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 관객이 무대에서 무엇을 볼지 선택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연극을 처음 배울 때 현장성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는 공연장에 관객이 모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온라인 공연 실황 중계가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팬데믹 시기 공연을 만들기 위해 나 또한 중계를 시도한 적이 있다. 평소라면 아카이빙을 위해 스마트폰으로만 촬영했겠지만, 당시에는 유튜브 송출을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했다. 음향 녹음 장비와 실시간 중계를 위한 끊김 없는 인터넷 환경도 필요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던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다. 결국 생중계는 포기하고 녹화한 영상을 송출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들을 다시 편집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당시 몇십 명이 시청했던 걸 생각하면 들인 노력에 비해 아쉬운 결과였다. 이렇게 팬데믹을 기점으로 공연의 영상화는 여러 방면으로 활발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DVD 제작이나 공연 기록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공연 실황 자체를 유료 콘텐츠로 판매하거나 새로운 관객을 유입하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쓰임새가 더 넓어지고 있다. 공연 실황이 현장 공연을 대신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대구에 사는 나도 공연 실황을 통해 브로드웨이와 런던, 서울 대학로의 무대를 볼 수 있고, 이미 막을 내린 공연도 다시 관객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공연 실황은 무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가 관객을 만나는 또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2026-11-01 09:17:53
[사설] 의혹·불신만 더 키운 선관위 특검의 투표지 검증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29일 선관위 특검의 6·3 부정선거 의혹 투표지 검증(檢證)과 관련, "선관위와 특검이 투표함을 경찰과 무슨 작전이라도 하듯, 야반도주하듯 들고 사라졌다"면서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것 이외에 "또 다른 부정선거 증거들이 남아 있다" "국민의 소중한 한 표를 살려낼 증거들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특검은 '수사 대상이 되는 투표지는 선별된 것이 한정된 것'이라며 나머지에 대해선 '권한'이 없다고 선관위에 넘겼다는 설명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6·3 지방선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이번 검증이 특검의 수상하고 부적절한 행태로 인해 오히려 의혹과 불신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우선 국민의 알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검증 과정 생중계를 금지하고, 국힘 주진우 의원의 참관을 불허한 것은 비상식적이다. 특히 부정선거 의혹 피의자(被疑者)라고 할 수 있는 선관위 직원들(500여 명)의 도움을 받아 검증한다는 것부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특검이 선관위와 짜고 무언가를 숨기려 한다는 의심을 스스로 산 셈이다. 현장 참관인(參觀人)들에 따르면 검증 과정에서 ▷일명 벽돌 투표지 ▷3, 4장 붙은 투표지 ▷2장 붙은 투표지 8쌍 이상 ▷색깔이 다른 투표지 ▷여백 없는 투표지 ▷봉인지가 훼손·수정·재가공된 보관함 등 정상적인 선거에서는 나올 수 없는 투표지들이 다량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은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권한(權限)이 없다면서 '추가 분석이 필요한 투표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투표지를 부정선거 의혹 당사자인 선관위에 넘겼다. 수사기관이 범죄 피의자에게 증거인멸하라고 증거물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협의 중이던 특검·선관위·국힘·시민단체 동행하에 경기 파주 모처로 투표함을 이송하는 방안은 무시됐다고 한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선관위 특검은 부정선거와 관련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스스로 새로운 음모론(陰謀論)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26-10-30 05:00:00
[사설] 반도체만 웃는 성장, 중소기업은 고금리·저수익 이중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3분기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두 회사 영업이익 합계만 190조원 이상이다. 반도체 호황이 경제를 이끌지만 중소기업 현실은 딴판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29일 자료에 따르면 3분기 중소기업 수출도 역대 3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8월 중소제조업 생산은 지난해 동월 대비 4.0% 줄었고, 11월 경기전망지수도 두 달 연속 하락했다. 반도체와 화장품 수출은 급증했지만 자동차 등 다른 업종은 부진(不振)을 면치 못했다. 수출 호황이 산업 전반의 생산과 고용 회복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불균형이다. 기업 규모별 수익성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6.7%로 올랐으나 중소기업은 2.8%로 하락해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 비중도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설상가상 고금리 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9월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연 4.63%로 한 달 새 0.25%포인트(p) 올랐다. 대기업보다 금리도 높고 상승폭도 컸다. 가계대출 금리 역시 5%에 육박(肉薄)한다. 기업은 금융비용 증가로 투자와 고용 여력이 줄고, 가계는 이자 부담으로 소비를 줄이면 내수기업 매출까지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이날 중소 제조기업의 디지털·인공지능(AI)·로봇 전환을 위해 2030년까지 5조원 이상 투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매출 감소와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기업들이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자금력 있는 기업만 정부 지원을 활용해 기술혁신에 나서고 취약(脆弱) 기업은 뒤처지는 양극화도 걱정스럽다. 정부는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는 정상 기업의 금융 부담을 덜고, AI 도입에 필요한 자기 부담금과 인력·운영비 지원을 기업 여건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수익성 격차가 미래 기술 격차로 굳어진다면 중소기업 경쟁력 회복은 더 어렵다. 5조원 이상을 쏟아부어도 2030년 AI 도입 중소 제조기업은 전체의 10%에 그친다. 나머지 90%의 경쟁력은 어떻게 높일 것인가.
2026-10-30 05:00:00
[사설] 대법관 2배수 제청 의무화…삼권분립 침해 우려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임명 인원의 2배수 이상 제청(提請)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지난 26일 발의됐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 11명이 발의한 이 법안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인선 권한을 견제하고 대통령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국민의힘은 29일 제청권을 박탈하는 위헌 법안이라며 철회를 촉구했고, 삼권분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이 '제청'권을 줬을 뿐 '1명만 제청'할 권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헌법이 대법원장 제청권을 둔 취지는 행정권력이 사법부 구성을 일방적으로 좌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현행 구조에서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3배수 이상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중 1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제청한다.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에 대한 임명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법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장이 정한 한 명을 대통령이 승인하던 구조가 대통령이 둘 중 고르는 구조로 바뀐다. 대법원장의 제청은 대통령이 선택할 후보군을 올리는 절차에 가까워지고 대통령이 실질적 선택권을 쥐게 된다. 인선 권한이 대법원장에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 현행법이 제청 관련 세부 사항을 정하지 않아 공백이 있다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그 해법이 대통령으로의 권한 이동이어서는 안 된다. 제청 관련 규정 정비 등 사법부 독립을 해치지 않으면서 집중과 공백을 보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헌법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인사청문과 동의로 검증하며,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 삼권(三權)이 모두 대법관 인사에 관여하게 하고 있다. 이 중 제청은 사법부가 목소리를 내는 통로다. 그 통로가 후보 명단을 전달하는 절차로 약해지면 대법관 인선은 사실상 행정부가 좌우하는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 여당은 법안을 재고하고 국회는 충분한 공론화부터 거쳐야 한다.
2026-10-3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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