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방혜선] 봉화약용작물연구소, 지역특화작목으로 균형발전 이끈다
최근 경북 봉화에 있는 경북농업기술원 '봉화약용작물연구소'를 찾았다. 1994년 설립 이래 약용작물의 명품화를 이끌어온 연구실과 시험포를 둘러보며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동력이 '지역 현장'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농촌진흥청은 전국 47개 연구소를 중심으로 69개 '지역특화작목'을 육성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각 지역 기후와 토양에 최적화된 고부가가치 작목을 발굴하고 기술개발과 인프라를 지원하는 이 사업은 지역 경제를 살리고 국가 균형발전을 이루는 핵심 열쇠다. 농진청이 전국 지역 연구소와 원팀이 되어 현장 맞춤형 연구를 전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북은 예로부터 대한민국 약용작물의 뿌리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태백산 자락의 당귀와 인삼 등이 왕실 진상 약재로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의학 유산인 '동의보감' 초판본을 목판으로 인쇄해 널리 퍼뜨린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경북은 지금도 명실상부한 약용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기준 오미자의 전국 생산량 중 경북이 40%(2천118톤)를 차지한다. 봉화약용작물연구소가 품종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다. 약용작물 연구의 핵심은 균일한 효능을 내는 표준화된 품종 개발인데 연구소는 2024년 이후 오미자 3품종, 작약 3품종을 개발하며 기술력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연구소가 선보인 오미자 신품종 '썸레드'를 포함한 3개 품종은 최근 연구를 통해 근력 개선과 체지방 감소 효과를 입증하며 특허 등록을 마쳤다. 다이어트와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은 현대인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이러한 기능성을 무기로 신품종 썸레드는 루마니아 등 까다로운 유럽 시장으로 수출길에 오르는 성과도 이루었다. 또 다른 주역인 작약의 변신은 더욱 흥미롭다. 흔히 한약재로만 생각하던 작약은 세계적인 명품 향수의 시그니처 소재일 만큼 글로벌 감성을 지닌 작물이다. 연구소가 개발한 작약 신품종들은 기존의 약용(뿌리) 범위를 넘어 화려한 시각적 가치를 지닌 관상용 '꽃작약'으로서 화훼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꽃작약은 대도시 근교 농가에서 재배될 때 도시민이 즐길 수 있는 '치유농업'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 실제로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뇌파(알파파)가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20% 이상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대구 시민이 근교 농장에서 만발한 작약꽃을 보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행복을 채울 날이 머지않았다. 동시에 연구소는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약용작물의 병해충 실태 조사와 안정 생산 기술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원료의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는 한편, 기능성 소재 활용 연구를 통해 우리 약용작물의 산업화를 견인 중이다. 지역의 특화작목이 살아야 지역 경제가 살고, 대한민국이 균형 있게 발전한다. 앞으로도 농진청은 봉화약용작물연구소와 같은 지역 연구소의 든든한 파트너로서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올여름에는 다이어트와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은 현대인에게 최고의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건강을 즐겁게 관리한다는 뜻) 소재인 오미자를 곁들여보길 권한다.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지역특화작목의 내일과 함께, 대구경북 시도민 여러분의 건강하고 활기찬 여름날을 응원한다.
2026-06-11 15:51:32
2017년 영국중앙은행은 십 파운드 지폐의 새 디자인을 공개한다. 언니 커샌드라가 스케치한 제인 오스틴의 초상. 그러나 배경이 소설을 쓰던 스티븐턴 목사관도 초턴 하우스도 아닌 오빠 에드워드의 고드머셤 파크였다는 사실에 제인 오스틴의 열혈 팬은 아연실색했다. 어쨌거나 평생 자본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소설의 태반을 돈의 사회학으로 채색한 작가가 지폐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제인 오스틴 소설의 척추인 '결혼'은 곧 당시 영국 여성의 생존권과 직결되었다. 영국은 '한정상속법'에 따라 모든 재산을 장자가 물려받게 된다. 귀족과 젠트리 계급은 딸과 미망인을 위해 지참금과 사전 상속을 마련하지만, 재산이 넉넉하지 않거나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대책이 없었다. 그나마 차남이나 남자 형제는 교육받을 기회를 얻어 군인이나 목사로 생계를 잇지만, 딸과 미망인은 장남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얘기. 제인 오스틴 소설에 빠짐없이 군인과 교구 목사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인 오스틴도 최고의 후원자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의 사망으로 생활이 힘들어지자 사우스햄턴까지 떠돌게 된다. 1808년 부잣집에 입양된 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오빠 에드워드가 초턴 코티지 한 채를 내어줌으로써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몰두하기 전까지. 제인 오스틴의 유작이자 마지막 완성작인 『설득』은 그의 작품을 통틀어 시대 배경을 밝힌 유일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배되어 참전했던 군인이 돌아오는 1814년 여름에 시작한다. 가진 것 없고 장래가 불투명한 해군 웬트워스와의 약혼을 파기한 앤. 친구의 가족 특히 대녀 앤을 보호할 마음으로 파혼을 설득한 레이디 러셀과 큰 재산을 모아 돌아온 해군 대령 웬트워스가 중심인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설득이란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하는 것'이다. 책에는 몇 차례의 설득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중 레이디 러셀은 흥미로운 존재이다. 지혜롭고 신뢰할 수 있으며 앤을 아끼는 책임감 충만한 인물인 동시에, 타인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은 욕망이 과한 사람처럼 보인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설득일지라도 타인의 인생에 대한 부당한 간섭일 수 있다. 그런데도 레이디 러셀의 충고가 악의 없다는 걸 알기에 과거사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려는 앤의 말. "설사 한때 남의 설득을 따랐던 것이 잘못이었다 해도 모험이 아니라 안전을 권하는 설득을 따랐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전 그분 뜻을 따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어요."(324쪽) 성숙한 여인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번역가 김선형은 『설득』에 대해 '말하지 못한 마음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이야기, 침묵하던 생각이 드디어 목소리가 생기는 이야기'라고 논평하면서, 첫 소설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와 『설득』의 앤을 짝으로 놓는다. 또한 "당신이 내 영혼을 관통했다."는 웬트워스의 고백을 통해 두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내 어머니는 종종 "누가 돈 괄시를 한다니?"라고 하셨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전쟁을 겪고 배고픔과 노동의 고단함을 이고 지고 살아온 세대에게 사무친 것. 돈의 힘이었다. 8년 만에 돌아온 웬트워스 대령이 이만 오천 파운드를 가진 부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지혜롭고 속 깊은 앤일지라도 다시 그와 연정에 빠질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속물인 탓인지 몰라도, 진심으로 궁금하다.
2026-06-11 09:23:22
지체장애아였다. 아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안쓰럽다는 말로는 부족한 심경이었다. 바짝 붙어 아이를 따라가는 아이 엄마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의 걸음이 엇박자를 낼라치면 아이 엄마는 곧바로 주의를 줬다. 아이는 헐떡거리며 소리지르다가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간간이 웃으며 뛰었다.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공원 트랙을 몇 바퀴 돌았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한 찰리 채플린의 말은 그 모자(母子)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더 비극인 듯 여겨졌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한결같이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고 말하는 저의가 이해됐다. 며칠 뒤 아이 엄마 대신 젊은 남자가 아이와 함께 뛰고 있었다. 아이 엄마의 옆자리에 슬쩍 앉아서 물었다. 물리치료사인 모양이죠? 아이 엄마는 머쓱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생인데 가끔 도와준다고 했다. 뛰고 온 아이에게 물병을 건넨 아이 엄마가 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따라가느라고 힘들었죠? 했다. 보기는 저래도 아이가 힘이 세서 속도가 제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학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방향을 바로잡아 주는 게 힘들다고. 학생의 첨언에 아이 엄마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수의적 양식이나 심신장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선택한 진로는 전적으로 본인 소관이다. 문득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는 핑계로 읽기와 쓰기에 소홀했다. 문학에 대한 갈급증을 느끼면서도 엉뚱한 곳을 좇았다. 대충 쓴 원고를 공모전에 보내 놓곤 자위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의 표지는 빛이 바랬고 낙서 수준의 습작품이 허드레 광고지처럼 쌓여갔다. 목표설정은 해와 달처럼 명확했다. 문제는 허약한 의지였다. 과거의 나태에 대한 보상 심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정한 실행 목표의 상한선은 이삼 년마다 책 한 권 내는 것이다. 문득 아이의 상한선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아이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물을 순 없었다. 짐작하건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똑바로 걷고 뛰는 것일 터이다. 하한선은 반찬을 흘리지 않고 제대로 먹는 것 정도.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내 입에서 불쑥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이가 해 낸 일에 상하한선을 맞추는 게 맞지 않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글쓰기 실행 방안에 대한 답도 될 듯싶었다. 아니 글쓰기뿐이랴,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일에 사람을 맞출 게 아니라 사람에 일을 맞출 것. 물론 사람이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 하에.
2026-06-11 09:22:06
[사설] 서울시장 재선거는 당락 문제 아닌 민주주의 정당성 문제
오세훈 서울시장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따른 서울시장 선거 무효화와 재선거 실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오 시장은 "소청(訴請)을 거쳐 선거 무효 소송까지 간다면 그 결과에 승복(承服)해야 되는 것이다. 다만 법적으로는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사유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 규정돼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또 존중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투표지 부족 사태가 생겼던 곳의 숫자라든가 이런 것을 볼 때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격차가 한 6만 표 이상 벌어졌다"며 "현실적으로는 영향을 미치기가 좀 어려운 구조인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투표지 부족 문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볼 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니 재선거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인 듯하다. 이 점에서 오 시장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價値)를 놓치고 있다고 본다. 지금 청년들의 재선거 요구는 당락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훼손된 참정권과 선거의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6만 표 차이로 낙선했더라도 오세훈 시장은 '투표지 부족 사태가 생겼던 곳의 숫자를 볼 때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재선거를 요구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재선거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정원오 후보나 더불어민주당이 재선거를 요구할 경우 선거 불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재선거 요구마저 몇몇 얼빠진 정치인들과 언론들로부터 '정치공학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참정권 훼손 문제를 치유(治癒)하고, 선거 과정의 절차적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세훈 시장이다. 오 시장이 "내 당선보다 국민 참정권이 백 배, 천 배 중요하다"며 재선거를 요구하고 나선다면 민주주의 수호천사(守護天使)로 거듭날 것이다. 반면 "투표지 부족에 대해 선관위 책임은 강하게 묻되 재선거는 논하지 말자"고 한다면 '서울시장 선거 승리'에 안주해 오염된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2026-06-11 05:00:00
[사설] 격변하는 반도체 지도, 조용하기만 한 대구경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정부는 '5극 3특' 구상을 내세워 수도권 일극(一極)을 넘어서는 국가 성장 전략을 추진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설비투자·연구개발에 89조9천억원을 투입했는데, 세계 반도체 기업 중 최대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19조원을 들여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한다. 호남권에선 첨단 패키징 공장, AI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생산 팹(FAB) 유치까지 거론된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은 "기대를 넘어설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장 출신 정은승 인수위원장은 "삼성 반도체의 혁신 DNA를 전남광주와 나누겠다"고 했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반도체 팹 유치 전략 토론회를 잇달아 열며 여론 형성과 정부 압박에 나섰다.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은 반도체 공장 유치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AI·반도체 산업 육성과 반도체 자립 생태계 구축을 외쳤다. 그런데 반도체 전략 지도가 바뀌는 중차대한 시점에 대구경북의 존재감이 없다. 관련한 전략과 실행 계획, 지역 차원의 공동 대응도 보이지 않는다. 경북에는 울진 한울원전과 경주 월성원전 등 국내 가동 원전 26기 중 12기가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장의 막대한 전력 사용량을 감안(勘案)하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다. 구미 전자산업 기반과 포항 연구개발 역량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최적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전력도, 땅도, 사람도, 물도 다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은 지방에 공장을 하나 더 짓는 문제가 아니다. 향후 20~30년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다. 광주는 정치권과 함께 바삐 움직이고, 충청은 벌써 결과를 만들고 있다. 지금 대구경북에 필요한 것은 소외(疏外)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보유한 강점을 국가 반도체 전략과 연결시킬 구체적 청사진조차 없다. 대구경북신공항 부지에 차라리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자고 외쳐야 할 만큼 절박하다.
2026-06-11 05:00:00
[사설] 검찰개혁자문위도 '보완수사권 폐지' 반대, 여당은 듣고 있나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가 "검사의 보완(補完)수사는 제한적으로나마 필요하며, 이를 폐지한다면 전건(全件) 송치 제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가 구성한 자문기구조차 보완책 없는 보완수사권 폐지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9일 자문위는 "검사의 수사권 전면 박탈이라는 목표에 매몰된 나머지 제도적 공백과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형사사법 제도의 근간을 재편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보완수사권이 사라질 경우 경찰 등 1차 수사기관의 확증편향(確證偏向)이나 사실관계 왜곡을 교정할 장치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개혁을 하더라도 형사사법 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형사사법 절차의 최종 목적은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민의 권익 보호에 있다. 검사가 기소(起訴) 여부 결정을 위한 기록 검토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나 사실관계를 발견했는데도, 이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다시 경찰에 사건을 돌려보내야 한다면 수사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공직선거법 사건이나 구속 사건처럼 신속성이 중요한 사건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검경(檢警)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보완수사권까지 폐지한다면 경찰 수사에 대한 사후 점검 기능은 크게 떨어진다. 자문위가 전건 송치 제도 복원(復元)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한적인 보완수사권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선 "국회 논의에 맡기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무책임한 발언이다. 검찰·사법 개혁 논의에 야당의 의견이 반영된 적이 있었나.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를 여당의 강경파(強硬派)에게 맡기면 안 된다. 검찰 개혁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범죄 대응 역량을 높이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체 수단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다.
2026-06-11 05:00:00
[관풍루] 이재명 대통령, 국정 운영 긍정 평가 하락하고 부정 평가는 상승해 오차범위 내로 좁혀진 여론조사 결과에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하게… 하겠다"고 언급
○…이재명 대통령, 국정 운영 긍정 평가 하락하고 부정 평가는 상승해 오차범위 내로 좁혀진 여론조사 결과에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하게… 하겠다"고 언급. 자기 죄 자기가 임명한 특검이 지우게 하는 법 포기하는 게 그 시작. ○…국방부, 방첩사령부 해체해 방첩 정보 기능을 신설 예정인 국방부 산하 국방방첩본부로 이관해 사령부를 '본부' 수준으로 축소키로. 외국 간첩, 남한 토착 간첩 활개 칠 공간 활짝 열리겠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6·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를 두고 "단순한 실수가 아닌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고 선관위 질타. 선거철에 집단 휴가 가는 무사안일 집단, 해체가 답.
2026-06-11 05:00:00
2026-06-10 18:50:29
여름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낮 기온이 30℃를 넘나드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벌써부터 가파르게 오르는 기온을 보며 올여름 폭염이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비단 날씨만이 아니다. 중동발 지정학적 불안과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에너지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이제 에너지 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집 식탁 물가와 직결된 현실적인 생존 과제가 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범국민 에너지 절약과 함께 효율 중심의 소비구조 전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전력 역시 국민들의 자발적인 절약을 유도하고 취약 부문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한 체감도 높은 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에너지 절감 지원책은 일반 가정의 참여를 이끄는 '주택용 에너지 캐시백'이다. 가정에서 전기 사용량을 과거보다 일정 수준 이상 줄이면 절감량만큼 현금으로 돌려받는 제도다. 예를 들어 한 달에 332㎾h를 사용하는 가정이 사용량을 10% 줄이면 요금 절감액과 캐시백을 더해 약 1만원의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에너지 안보 위기에 대응해 지급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혜택을 늘린다. 기존에는 직전 2개년 평균 사용량 대비 3% 이상 절감해야 했으나, 올해 7~12월 검침분까지는 1%만 줄여도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 지급 단가 또한 상향해 절감률에 따라 1㎾h당 최대 120원까지 캐시백을 지급한다. 2022년 도입된 이 제도는 올해 4월 말 기준 가입자 179만 가구를 돌파했다. 지난해 절감한 전력량만 총 337GWh에 달하는데, 이는 대구 서구 전체 가정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보다 큰 수치다. 일상 속 작은 실천이 모여 거대한 에너지 절감이라는 결실을 본 셈이다. 이와 더불어 한전은 노후 설비를 고효율 제품으로 교체해 근본적인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꾸는 '고효율 기기 지원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전 대구본부는 올해 총 84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LED 조명과 인버터 등 총 20개 품목에 대한 교체를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에너지 취약 부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 5월 18일부터 한시적으로 소상공인, 뿌리기업, 농사용 고객,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고효율 기기 교체 지원 단가를 기존보다 2배 상향하고, 사회복지시설에 대해서는 기기 구매 가격의 70%까지 지원 폭을 대폭 확대 운영 중이다. 아울러 생활 속 에너지 절약 문화 확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전 대구본부는 지난 3월부터 지자체 및 유관 기관과 함께 반월당과 동대구역 등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중심으로 에너지 절약 거리 캠페인을 전개하며 직접 현장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위기는 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한다. 이제는 단순히 아껴 쓰는 '참는 절약'의 시대를 넘어 낭비되는 에너지를 차단하고 똑똑하게 사용하는 '효율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냉난방 온도 1℃ 조정, 미사용 플러그 뽑기와 같은 생활 속 작은 실천에 노후 설비를 고효율 기기로 바꾸는 효율 향상 노력이 더해질 때 우리 사회의 에너지 체질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다가올 무더위 속에서 이번 에너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대구경북 시·도민 여러분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에너지 소비 실천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2026-06-10 16:35:41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0>겸재 금강전도 선면화, 최고의 부채바람 겨울 금강산
겸재 금강전도 선면화다.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금강산은 이름이 많다. 사계절로는 금강, 봉래, 풍악, 개골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풍악산은 '삼국유사'에 나오고, 문헌으로는 '삼국사기'의 개골산, 상악산이 가장 오래다. 봉우리의 뼈가 다 드러난 개골(皆骨), 멧부리가 서리처럼 흰 상악(霜岳)은 바위산이라는 말이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노랫말처럼 많고 많은 명소 중에서도 금강산의 핵심은 만이천봉 바위봉우리다. 풍악, 개골, 상악은 철따라 모습이 바뀌는 시각적 인상에서 나왔다. 금강(金剛), 기달(怾怛), 열반(涅槃), 중향성(衆香城)은 불교에서 나왔고 봉래(蓬萊), 선산(仙山), 해악(海嶽)은 신선사상과 연관된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풍악'을 불교적 이름인 '금강'보다 선호했다. 그래서 '풍악전면'이 처음엔 가을 금강산인가 했더니 자세히 보니 겨울 금강산이다. 정선의 드문 겨울 금강전도인 것은 은빛이 나는 특수한 선면인데다 가로 60센티미터가 넘는 크기의 귀한 부채였기 때문이다. 겨울 금강산의 삼엄한 골기(骨氣)가 어울리는 어느 귀현(貴顯)을 위해 그렸을 것이다. 특별한 겨울 금강전도라 정선의 여느 금강전도와 달리 골산(骨山)이 압도적이다. '풍악전면'은 둥글게 펼쳐지는 파노라마식 부채꼴을 따라 만이천봉이 솟아오르며 토산(土山)을 압도하는 상하 구도다. 정선은 은빛 선면의 겨울 금강산이든, 보통의 선면이든, 화첩이든, 두루마리든, 족자든 자유자재로 대금강산을 그렸다. 정선의 금강전도 부채에 대한 찬사가 순조 때 금위대장을 지낸 금석(錦石) 박준원의 시로 전한다. 〈strong〉만이천봉 한손에 들었으니 / 겸재옹의 신필 여기에서 더욱 뛰어나네 / 개성사람 손에 들어갔다고 탄식하지 마시게 / 지극한 보배가 결국 나라 안에 있으니〈/strong〉 〈strong〉萬二千峰一把中 謙翁神筆此尤工 莫嘆落在松人手 至寶終應在我東〈/strong〉 신필(神筆)로 추앙받은 만년작 중에서도 만이천봉을 한손에 쥐는 금강전도 선면화가 지보(至寶)로 여겨졌는데 개성사람이 사갔다. 서울에선 더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나라 안에 있으니 다행이라고 한 것은 외국으로도 팔렸기 때문이다. 겸재 금강전도 선면화인데 겨울 금강산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시원한 부채바람이었을 듯.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6-10 11:12:58
[세풍-강민구] 영서연설(郢書燕說)과 자의적 해석의 덫
중국 초나라 영(郢)에 사는 어떤 사람이 밤늦게 연(燕)나라 재상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방이 어두워지자, 그는 촛불을 든 하인에게 무심코 "촛불을 높이 들어라"라고 명하였다. 어이없게도 옆에서 구술(口述)을 받아 적던 이가 이 말까지 편지의 내용으로 오인해 그대로 기록해 버렸다. 그런데 편지를 받은 연나라 재상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그는 '촛불을 높이 들어라'라는 말을 '밝음을 숭상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한술 더 떠서 '현자(賢者)를 발탁해 임용하라'는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로 오독하여 왕에게 보고하였다. 왕 역시 이 견강부회(牽強附會)를 받아들여 인재를 고루 등용했고, 결과적으로는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영(郢) 땅의 사람이 쓴 편지를 연(燕)나라 사람이 해설하다'라는 의미인 '영서연설(郢書燕說)'의 이야기이다. 결과만 보면 해피엔딩 같지만, 한비자의 본뜻은 다른 데 있었다. 한비자는 본래의 맥락과 완전히 딴판으로 글을 뜯어 맞추고, 존재하지도 않는 숭고한 의미를 천착하는 학자와 정객(政客)의 허위의식을 통렬히 비판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영서연설'의 덫에 걸려 있다. 본래의 맥락과 의도는 사장된 채, 저마다의 이념과 이익에 맞춰 가공한 자의적 해석과 아전인수(我田引水)가 공론(公論)의 장을 지배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분야는 단연 정치권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말꼬리 잡기'와 '자의적 해석'의 경연으로 전락하였다. 어떤 정치인의 발언이나 정책적 제언의 본질은 간데없고, 상대 진영은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왜곡한다. 국민이 겪는 실질적인 고통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정책을 둘러싼 명분론적 해석만 무성하다. 한비자가 지적했듯, 잘 다스려진 것은 우연한 다행일 뿐, 편지의 본래 의도가 아니다. 나쁜 결과를 좋다고 우기거나 요행에 기대는 정치는 본질적 문제들을 시야에서 가려 버린다.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하는 것은 미디어 환경이다. 스마트폰과 알고리즘은 대중을 저마다의 '영서연설'이라는 확증편향 속에 가두어 버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에서 '오독(誤讀)'은 일상이 된다. 누군가 던진 평범한 글귀나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거치며 순식간에 맥락이 난도질당하거나 극단적으로 찬양받는다. 타인의 말과 글을 그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에 맞춰 과도하게 축소하거나 부풀린다. 타인의 의도를 지나치게 좋거나 나쁘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소통이 단절된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공론의 장은 사라지고, 서로를 향해 "내 해석이 옳다!"고 외치는 확성기의 소음만 가득하다. 연나라가 영 사람의 편지로 인해 일시적인 번영을 누렸을지언정, 그것은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우연에 기댄 행정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고, 본질을 비껴간 소통은 결국 오해와 갈등의 불씨를 남기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억지로 꿰맞춘 거창한 해석이 아니라,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직시(直視)의 용기'이다. 정치인은 상대의 말을 왜곡해 공격하기 전에 그 정책이 지닌 진짜 문제와 효과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대중은 자의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타인의 목소리를 맥락 속에서 온전히 들어야 한다. 맥락이 사라진 사회는 가짜 풍요 속에서 눈이 멀어버릴 뿐이다.
2026-06-10 05:00:00
[사설] 지방선거 투표 의혹, 특검 않으면 민주주의 수호 의지 없다는 것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 등과 관련해 "특검을 실시하고, 재투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의 말에 공감한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투표소를 처음에는 14곳이라고 했다가 91곳이라고 밝혔다. 투표용지를 추가로 송부했던 투표소도 140곳이나 됐다. 인천광역시장 선거에서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유정복 국민의힘 후보의 관내 사전투표 득표율이 송도1동 3천30표 대 1천440표, 송도2동 3천30표 대 1천440표로 일치(一致)했다. 광주·전남에서도 후보 간 득표수가 일치하는 지역이 10곳이나 됐다. 선관위는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解明)하지만, 통계학상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 수긍할 수 없다. 특검으로 밝혀야 할 사안은 간단하다. 선관위가 전체 유권자 110% 분량의 투표용지를 인쇄하겠다며 예산을 확보하고도 50% 수준으로 인쇄한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투표지를 충분히 인쇄하고도 배포(配布)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일각에서는 투표용지를 빼돌린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이 부분을 밝혀야 한다. 인천과 광주·전남 일부 선거구에서 후보들 득표수가 끝자리까지 일치한 것이 우연인가. 아니면 조작인가? 해당 선거구 사전 투표자들을 전수(全數)조사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인천 송도1동과 2동의 사전 투표자들을 합해도 9천 명이 안 된다. 하루, 이틀이면 전수조사할 수 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부정선거론'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흔든다. 지금 드러난 6·3 지방선거 의혹을 특검을 통해 명확히 정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특정인의 당선과 낙선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느냐, 허무느냐의 문제다. 선관위가 외부에 위임해 실시하는 조사, 정부 지휘를 받는 검경 수사로는 불신(不信)을 해소할 수 없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추천하는 특검을 임명해 수사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와 관련한 특검을 추진하겠다면서 6·3 지방선거 의혹을 특검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파괴 세력임을 자인(自認)하는 것이다.
2026-06-10 05:00:00
[사설] 서울은 과열 지방은 침체, 부동산 정책은 지역 맞춤형이어야
이재명 정부가 오는 7월 부동산 세제(稅制) 개편에 나선다. 실거주 중심 과세 원칙 아래 다주택자 부담을 늘리고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손질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여러 채를 보유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에 상응하는 부담은 져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을 투기보다 거주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서울 집값은 재상승 압력을 받고, 전세시장 불안은 커진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동기보다 크게 올랐고, 입주 물량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지방은 수요 부족이 문제다. 미분양 적체와 거래 부진이 심각하다. 최근 발표된 분양전망지수에서도 대구·부산·광주 등 비수도권 지역의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보유세 강화나 양도세 혜택 축소 등이 서울 과열 억제(抑制)에는 일정 부분 효과를 내겠지만 지방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도 곱씹어야 한다. 당시 정부는 다주택자 규제, 세제 강화, 대출 규제 등을 수차례 내놨지만 서울 집값 급등과 전세시장 불안을 막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서울과 지방, 실수요와 투자 수요, 공급과 수요를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한 채 하나의 시장으로 접근하면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는 공급 확대를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공사비 상승 탓에 사업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에는 공급 확대와 투기 억제 병행 대책이, 지방에는 미분양 해소를 넘어 일자리와 산업, 인구 기반을 회복하는 성장 전략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증시 부양과 수출 호조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되찾아줄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규제 강도가 아니라 정책의 정교함으로 증명해야 한다. 서울의 문제는 가격이고 지방의 문제는 수요다. 전혀 다른 현실을 하나의 잣대로 재단(裁斷)하는 순간 시장 왜곡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서울과 지방의 현격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부동산 정책의 출발점이다.
2026-06-10 05:00:00
[사설] 대입 검정고시 위한 자퇴 증가, 고장 난 공교육
검정고시 출신 2026학년도 수능 접수자는 2만2천355명으로, 1995학년도 이후 3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0년 1만2천439명이었던 수치가 6년 만에 1.8배로 불었다. 이는 고등학생 자퇴 증가와 궤(軌)를 같이한다. 학교 내신에 시간을 쏟는 것보다 자퇴 후 검정고시를 거쳐 수능에 '올인'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고교 1학년생 중 학업을 중단한 학생이 사상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섰다. 종로학원이 전국 일반고 1천703곳의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5년 고1 학업중단자는 전년도보다 6% 이상 증가한 1만450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5천15명에서 불과 5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정부는 내신 부담을 완화해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며 기존 9등급제를 5등급제로 개편(改編)했다. 상위 4%만 받던 1등급을 10%까지 늘려 숨통을 틔워 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교육 현장에선 학생들의 숨통을 더 죄어 자퇴와 검정고시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5등급제하에선 전국 내신 1등급 학생 수가 '인서울 대학' 모집 정원보다 많다는 분석도 나왔다. 1등급을 받고도 서울 4년제 대학에 못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자칫 2등급으로 밀려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이 내신을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는 이유다. '학교 밖 입시 루트'가 예외적 선택이 아닌 하나의 입시 전략이 된 것이다. 이를 입시 전략의 다변화(多邊化)로 봐선 안 된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의 결과다.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더 치열하게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것이다. 학교라는 제도가 대입이라는 목표 달성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국가가 만든 입시 구조가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는 학교에서 꿈을 키워야 할 학생들이 '제도 밖 탈출'을 꾀하게 해선 안 된다. 제도 때문이라면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학교를 돌려줘야 한다.
2026-06-10 05:00:00
[관풍루] 김민석 국무총리,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대책 회의에서 서민 생활 안정과 물가 관리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 달라
○…김민석 국무총리,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대책 회의에서 서민 생활 안정과 물가 관리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관계부처에 지시.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좀 배우시라. 고물가는 '성공의 비용'이라 잖소! ○…국민의힘 의원 모임 대안과미래, 지방선거 결과 분석 토론회 열고 이번 선거 결과를 '패배'로 규정하고 장동혁 지도부 책임론 거론. 패배 막기 위해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고? ○…경찰청, 투표용지 부족 항의 집회 현장에 투입된 경찰이 "우리나라 경찰"이라며 "외국 경찰" "가짜 경찰" "중국 경찰"이라는 루머 일축. 그렇다면 왜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두건까지 두르고 신분 숨겼지?
2026-06-10 05:00:00
유럽 왕자 아일랜드, 아시아 환자 한국 [이재홍 칼럼]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가가 걷어 국민에게 뿌린다"는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아이디어로 한국 주식시장은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외신은 이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청와대는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를 말한 것이었다"며 "세금을 걷어 나눠 주자는 것이지 기업의 이윤을 징발해서 뿌리자는 말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둘러댔다. 세금을 뿌리는 게 이윤을 뿌리는 것보다 좀 낫다고 생각했다니 꽤나 웃긴 대목이다. 우리와 정반대의 길을 택해 빈국에서 부자가 된 나라가 있다. 바로 아일랜드다. 원래 아일랜드는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국가의 체질을 뿌리부터 뒤집는 만고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1인당 GDP가 세계 2위인 부자 나라다. 유럽의 병자라는 오래된 별명을 떼어내고 이제 명실상부한 유럽의 왕자로 거듭났다. 대체 어떻게 이들은 환자에서 왕자가 됐을까. 최근 아일랜드에는 기괴한 소송이 있었다. EU 집행위원회는 2016년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에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며 애플에 한화 21조원에 해당하는 130억유로의 법인세 납부를 명령했다. 애플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애플이 승소하면 아무 일이 없고 애플이 패소하면 돈방석에 앉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일랜드 정부는 괴상한 짓을 했다. "애플은 불공정한 조세 혜택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애플 편에 서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소송에 참여한 것이다. 아일랜드는 그 돈을 받지 않기 위한 변호사비로만 147억 원을 썼다. 수백조원을 흥청망청 뿌려대는 한국의 시각에서 21조원이면 큰 돈이 아닌 것 같지만 아일랜드 인구는 한국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애플과 아일랜드 정부는 패소했다. 그런데 뜻밖의 횡재로 벌어들인 21조원을 바라보는 아일랜드 정부·정치권 시각은 한국과 완벽하게 대조됐다. 총선을 앞두고 아일랜드 일각에서도 이 돈을 현금 지원으로 뿌리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재무부 장관, 인프라부 장관에 이어 총리까지 나서서 딱 잘라서 거절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 돈은 횡재일 뿐이다.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돈이기에 일상 소비에 사용해선 안 된다. 장기 인프라 투자에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내 그 횡재를 오직 주택과 에너지, 상하수도, 도로, 네 가지 인프라에만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뿐 아니다. 아일랜드는 법인세수를 다 쓰지 못하도록 하고 일정액을 의무적립 하도록 법으로 정해놨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기금과 불황기에 인프라 투자를 유지하기 위한 기금 등 미래를 위해 온갖 대비를 다 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역사상 유례 없는 호황기를 지나고 있지만 이 호황은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미래를 대비한다. 반면 한국은 조금이라도 공돈이 생기면 그 돈을 뿌려 매표할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아일랜드는 세금을 적게 받는 것이야말로 경제의 에너지이자 조세 경쟁력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법인세를 안 받겠다고 소송까지 불사한다. 반면 한국은 누가 장사를 잘하면 온 국민이 나서서 거기 숟가락을 들이댄다. 돈이 생기면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 놓는 아일랜드와 있는 돈 다 쓰고 미래 세대 이름으로 빚까지 내서 더 쓰는 한국의 미래, 그 차이는 무척 자명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나날이 환자가 돼 가고 있는 한국과 나날이 부자가 되고 있는 아일랜드의 격차다. 마시멜로를 안 먹고 기다린 아이가 모든 면에서 마시멜로를 먹어버린 아이보다 더 성공한다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는 눈앞 마시멜로를 얼른 삼켜버리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그도 모자라 남의 마시멜로까지 탐을 내면서 말이다. 이재홍 프리드먼연구원장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6-09 23:05:51
2026-06-09 18:47:49
[교육칼럼] 의대 입시 문호 넓어진 대구경북, 수시 역대 '최고' 경쟁률 예상
최근 고1, 2를 대상으로 한 대구경북 지역 고교 교육현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대입 전형 시행계획에 따르면 오는 2028학년도 전국 39개 의과대학의 총 모집인원 3천599명 중 수시모집 선발 인원은 2천628명으로 전체의 7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과거 의대 합격의 절대적 돌파구로 여겨졌던 정시모집 비율은 27.0%인 971명에 그쳐 과거 38.0%대를 상회하던 정시 비중이 10%포인트 이상 급감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이 전체 단일 전형 중 가장 높은 37.1%(1천336명)까지 치솟았고 학생부교과전형 역시 32.9%(1천183명)로 뒤를 이으면서, 단순 수능 표준점수 나열식 선발에서 벗어나 고교 3년간의 학교생활 기록과 내신 정성평가가 당락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이 같은 구조적 변화는 대구 수성구 명문 고교들과 달서구, 북구 등 지역 일반고 학생들에게 전례 없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비수도권 의대 전체 모집인원인 2천519명 가운데 무려 67.4%에 달하는 1천698명이 지역인재 전형으로 묶이면서 기존의 61%대 선발 기조를 완전히 넘어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2028학년도부터 본격 가동되는 지역의사제 물량이 전국적으로 610명에 달하며 대구경북권 대학들에 집중 배치된다. 거주지와 출신 고교 제한을 두는 광역권과 세부 진료권 분할 선발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전형은 졸업 후 로컬 내 의무 근무를 조건으로 하고 있어 수도권 초고득점 N수생들의 무분별한 지방 원정 지원을 원천 차단하는 방어막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 대구경북 지역 거점 대학들의 세부 모집요강을 살펴보면 지역 학생 선발에 대한 집중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총 143명을 선발하는 경북대학교의 경우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69.9%인 100명까지 끌어올렸으며, 이 중 33명을 학생부종합전형 형태의 지역의사제로 선발한다. 경북대는 대구경북 광역권에 10명을 배정하고 구미시 7명, 경주시 6명, 포항시 5명, 안동·영주시 각 2명 등 진료권별로 인원을 촘촘하게 쪼개어 대구 일반고 학생들의 합격 확률을 대폭 높였다. 경북대 지역의사제는 1단계에서 서류 100%로 모집정원의 500%를 걸러낸 뒤 2단계에서 면접 평가 30%를 반영하며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수학을 포함한 3개 영역 등급 합 5 이내로 설정됐다. 총 95명을 모집하는 계명대학교 역시 65.3%인 62명을 지역인재로 채우며 학생부교과(광역권 6명)와 학생부종합(진료권 13명)을 동시 가동한다. 계명대 교과 지역의사는 수능 최저 기준이 3개 합 4로 높게 형성된 반면 종합 전형은 3개 합 5로 낮아 내신과 서류가 탄탄한 지역 고3 학생들의 전략적 공략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학교 또한 전체 92명 중 64.1%인 59명을 지역인재로 뽑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는 56명 중 67.9%에 달하는 38명을 지역 전형에 할당해 학생부교과 광역권 3개 합 4, 학생부종합 진료권 3개 합 5의 수능 최저를 요구한다. 경주에 위치한 동국대학교 와이즈캠퍼스도 55명 중 60%인 33명을 지역인재로 묶고 진료권별로 1명씩 의무 배치하는 등 지역 밀착형 선발을 고착화했다. 바뀐 입시 지형을 바라보는 교육 수요자들의 셈법도 분주해졌다. 지역 고교생들 사이에서는 "정시 문턱이 20%대로 좁아지고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이 37%를 넘어가다 보니 이제는 수능 한판 승부보다 매 학기 중간·기말고사와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관리가 곧 의대 프리패스권이 된 것 같다. 대구 지역 고교 출신들만 경쟁하는 지역의사제나 70%에 육박하는 지역인재 전형을 노린다면 굳이 재수를 선택하지 않고도 수시에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과거에는 수능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만 의대 구경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수시 선발이 73%까지 확대되었다는 통계를 보니 내신과 비교과 활동의 정성평가 대비가 최우선이라는 확신이 든다. 특히 경북대나 계명대처럼 대구경북권 학생들만 진입할 수 있는 로컬 전형이 세분화되어 있어 수도권 상위권 학생들과의 정면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 같은 영남권 의대 중심의 역대급 수시 확대 기조는 인근 부산·울산 지역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비수도권 의대 입시의 판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부산대학교가 지역의사제 학생부종합전형으로만 38명을 대거 흡수하고 동아대학교는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무려 85.7%까지 격상시켜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울산대학교는 면접 반영 비율을 50%까지 확대해 인성 검증을 강화하는 추세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의과대학 정원 변화와 맞물린 이번 2028학년도 전형이 대구 영남권 학생들에게 단군 이래 가장 유리한 구도를 제공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충족을 위한 전략적 수능 공부를 병행하되 3학년 2학기까지의 철저한 내신 등급 확보와 학교 수업 내 발표 및 탐구 보고서를 통한 학생부 세특 기록 고도화만이 67%의 지역인재 문턱을 넘는 가장 확실한 열쇠라는 분석이다. 윤경민 크라스에듀 대표
2026-06-09 17:29:40
투표용지가 모자랐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선거 현장에서,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았으나 국가는 그 한 표를 받을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가장 엄숙한 현장에서 국가기관이 국민 앞에 드러낸 중대한 헌법적 실패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심장이다. 국민은 투표소에서 한 장의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국가권력의 향방을 정한다. 그 종이 한 장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다. 헌법 제1조가 선언한 국민주권의 증서이고, 헌법 제24조가 보장한 선거권의 현실적 형태다. 그런데 그 투표용지가 부족했다. 이는 물품 관리의 실수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 앞에서 국가의 준비와 긴장이 무너진 사건이다. 헌법상 선거권은 국민 개인의 권리인 동시에 민주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공적 가치다. 선거의 정당성은 개표 결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불안과 혼란 없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야 비로소 선거는 정당하다. 절차가 흔들리면 결과도 상처를 입는다. 투표용지가 부족한 선거는 그 자체로 선거관리의 가장 기초적인 신뢰를 무너뜨린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이 특별히 설치한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독립은 책임을 피하는 방패가 아니다. 독립은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하는 헌법적 명령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말은 국민 앞에서도 독립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선관위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정권도, 정당도, 언론도 아니다. 오직 국민이어야 한다. 행정부와 정치권도 책임에서 비켜설 수 없다. 선거가 흔들리면 국가 전체의 정당성이 흔들린다. 정부와 국회는 선관위를 압박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재정비할 책임이 있다. 독립기관의 책임과 국가의 책임은 서로를 지워주는 관계가 아니다. 국민 앞에서는 모두가 함께 답해야 한다. 선관위의 전면 쇄신을 요구하는 국민의 분노를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뼈를 깎는 각성이다. 중앙선관위는 문제 발생 투표소별 준비 수량, 부족 발생 시각, 추가 이송 시각, 대기 인원, 투표 포기 신고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책임자 문책은 형식적 경고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회는 투표용지 작성·보관·배분·긴급 이송 체계를 법률과 규칙 차원에서 재점검해야 한다. "투표용지가 모자라 투표를 못 했다"는 말이 다시는 대한민국 선거에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그리고 법을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이 사건은 참담하다. 국민은 거창한 특권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정해진 날 투표소에 가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국가는 그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흔들었다. 국민이 "이게 나라냐"고 탄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탄식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헌법적 절규다. 민주주의는 선거일 하루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선거일 하루가 무너지면 민주주의 전체가 의심받는다. 투표용지가 모자란 선거는 행정 실패를 넘어 국민주권에 남은 깊은 상처다. 선관위는 국민 앞에 고개 숙이는 데서 그치지 말고, 뼈를 깎는 제도 개혁으로 답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 국민의 한 표 앞에서 국가는 다시 겸손을 배워야 한다.
2026-06-09 14:46:42
모 방송국 PD에게서 뜻밖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진작가인가요, 사진가인가요. 어떻게 표기하는 게 좋을까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두 표현은 모두 익숙했지만 그 차이를 명확히 설명해 본 적은 없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그 질문은 다시 나 자신을 향해 되돌아왔다. 사진을 매체로 삼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다. 사진가, 사진작가, 포토그래퍼, 다큐멘터리스트, 때로는 미디어 아티스트. 큰 의미에서는 모두 작가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름을 쓴다. 흥미로운 점은 영미권에서는 이런 구분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포토그래퍼(photographer)'라는 말로 통칭하고 필요할 때만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퍼(documentary photographer)', '파인아트 포토그래퍼(fine art photographer)' 혹은 '아티스트(artist)'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영어의 포토그래퍼(photographer), 페인터(painter), 라이터(writer)는 모두 끝에 '-er'를 붙여 만든 말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이름이다. 반면 아티스트(artist)는 조금 다르다. 기술과 숙련을 뜻하는 라틴어 ars에서 비롯된 이 말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보다, 어떤 사람인가를 가리킨다. 행위를 설명하는 이름과 존재를 설명하는 이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는 '사진가인가 사진작가인가'를 구분하기보다 '포토그래퍼인가 아티스트인가'를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이름을 더 세분화한다. 직업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싶은가에 대한 문화적 습관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사진의 역사적 맥락을 떠올리면 이러한 혼재는 낯설지 않다. 사진은 오랫동안 기록과 기술의 영역에 가까웠고, 미술의 범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진작가'라는 말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사진을 예술의 언어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에서 나온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혼용은 혼란이라기보다 그 과정을 지나온 흔적에 가깝다. 오늘날 사진은 더 이상 유형이나 사건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와 파인아트, 설치와 영상이 뒤섞이며 경계는 느슨해졌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셔터를 누르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사진가인가, 사진작가인가. 작업의 현장에서 그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기록과 표현, 예술과 기술은 늘 겹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이 어렵다. 어쩌면 예술은 어떤 이름을 갖느냐보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26-06-09 1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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