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1 18:46:48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이집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 알렉산드리아에서 홍해까지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에 의해 건설된 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의 시작점이었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길목에서 번성했던 이 도시에 찬란하게 피어났다가 짧게 스러지고 마는 붉은 양귀비꽃 같은 삶을 살았던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VII)가 있었다. 짙은 아이라인과 검은 머리칼 그리고 황금빛으로 번지는 얼굴로 각인된 그녀는 미인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반면,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를 만나기 위해 양탄자 속에 몸을 숨긴 채 궁전으로 들어갔다는 일화는 그녀의 담대함을 보여준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며 정치와 감정을 동시에 움직일 줄 알았던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의 마지막을 목도(目睹)한 파라오였다. 그래서일까 알렉산드리아 여행은 한 여인의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는 파로스 등대(Pharos Light house)가 있었다. 거대한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적의 배를 태웠다는 등대는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 전설 같은 이야기 위에 카이트베이 요새(Fort Qaitbey)가 세워져 바다를 지키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이 항구로 들어왔을 수많은 배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로마의 두 인물, 카이사르(Caesar)와 안토니우스(Antonivs)도 있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지중해가 실어 온 그들을 선택하여 이집트의 운명을 걸었다. 지중해 어딘가에는 클레오파트라의 궁전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수중 고고학자들이 왕궁을 계속 찾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의 명성을 말해주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찾아갔다. 건물은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원반의 모습이었다. 지중해에서 막 떠오르는 태양처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지를 담은 듯했다. 도서관 외벽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낯선 기호들 사이에서 한글을 발견한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또 다른 한글을 찾기 위해 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관람자'가 아니라 보물찾기하는 '참여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 뇌는 필요 없는 정보는 과감히 걸러내지만, 자신과 연결된 정보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로도 설명할 수 있다.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이나 관심 있는 이야기에만 귀가 쏠리는 현상처럼, 광고 역시 개인과의 접점이 생기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 사례로 넷플릭스(Netflix)의 콘텐츠 썸네일(Thumbnail)의 개인화를 들 수 있다. 이용자의 시청 이력과 선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같은 작품이라도 사용자마다 다른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각자의 취향에 먼저 말을 건다. 이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자극해 클릭과 시청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정교한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나와의 거리'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단 하나, '이건 나와 관련 있다'라는 감각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라는 낯선 곳에서 한글은 나를 향해 다가오는 신호가 되었다. 한글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멈추고, 바라보고, 기억하려 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원반형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공간을 환하게 채우고 있었다. 차곡차곡 채워진 책들과 곳곳에 놓인 조각상들, 그리고 조용히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풍경이었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 있었던 자리로서의 의미가 크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 1세는 "지구에 있는 모든 민족의 책을 모으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양피지로 70만 두루마리, 요즘 책 기준으로는 약 1억1천만권에 이르는 인류의 지식이 이곳에 쌓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활발히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은 이 지성의 전당을 불태웠다. 그 불길 속에 사라진 것은 종이가 아니라 고대인들의 사유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의 어딘가에 클레오파트라 7세가 있었다. 그녀는 이집트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영민함을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를 지켜 내려 했던 그녀의 지략은 도서관의 지식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녀가 이 도서관에 앉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지성은 분명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공기 속에서 길러졌을 것이다. 지중해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홍해를 따라 흘러온 보이지 않는 부의 물줄기가 있었다. 홍해에 위치한 후르가다(Hurghada)는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호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이집트 휴양지로 유명하다. 햇빛에 따라 홍해는 투명한 푸른빛을 띠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에메랄드로 변하기도 했다. 나는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천천히 홍해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호초와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바닷속으로 잘게 부서져 내려오는 빛을 발견하고는 숨이 차올라 물 위로 올라왔다. 해변으로 돌아와 말을 타며 홍해를 감상하기로 했다. 사막 끝 모래가 홍해로 밀려와 말의 발굽이 바닷물을 가르며 절벅절벅 소리를 냈다.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바닷물이 튀고 다리와 옷자락을 젖었다. 조금 낯설었던 망설임이 즐거움으로 부서졌다. 나는 잠시 말을 늦추고 물 위에 보였다가 사라지는 발자국을 내려다보았다. 금세 사라지는 것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애쓰는 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해 질 녘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홍해 바다 서쪽으로 조금 이동하니 나일강과 홍해 사이에 펼쳐진 동부 사막이 나타났다. 이곳은 일반적인 모래사막과는 다른 지형으로 바위산과 계곡이 거친 풍경을 만들어 냈다. 지프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배두인(Bedouin) 마을에 도착했다. 마침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동쪽으로는 우유빛 보름달이 떠오르고 서쪽으로는 붉은 태양이 지고 있었다. 밤의 시작과 낮의 끝이 동시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사막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무엇이든 더 또렷하게 보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광고 속에서도 사막을 찾아볼 수 있다. 2025년 아디다스(Adidas)는 사막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했다. 전통적인 광고판 없이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근 패션 광고도 사막을 자주 선택한다. 불필요한 것이 없는 배경이 옷과 사람을 더 또렷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품의 장점을 직접 설명하는 기존 광고의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스스로에게 해석을 유도하는 컨텍스트 마케팅(Contextual Marketing) 방식이다. 또한 사막은 현대 설치 미술이 가장 솔직해지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1997년 사막의 숨결(Desert Breath)은 이집트 홍해 인근 사막에 조성된 대규모 작품이었다. 인위적 재료 없이 사막의 모래만을 사용하여 풍화와 침식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도록 설계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희미해지는 형태를 시간의 흐름에 맡겨두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예술도 광고도 하나의 방식으로 남는다. 비어 있는 세계 위에 단 하나의 이미지를 새기는 일, 그것은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배두인들이 이끌어주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잠시 거닐었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그들이 내어준 따뜻한 차를 마셨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지프차 뒤로 흩날리는 흙먼지와 사라져가는 저녁 빛이 겹치며 이집트 사막 특유의 이질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여행의 마지막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 나일강 위에 떠 있는 듯한 필레 신전(Philae Temple)이었다. 나일강 위에 자리한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Isis)를 위해 지어진 성소로, 나일의 흐름 속에서 유난히 고요한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크게 확장되었으며 그 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신전 벽에는 클레오파트라 7세가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문득 이곳이 그녀와 안토니우스가 서로를 선택했던 시절, 사랑과 정치가 교차하던 시간과도 겹쳐 보였다. 기록은 그것을 신혼여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 위에 떠 있는 신전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마치 한 시대의 사랑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과 믿음을 이끌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하나의 상징으로 세웠던 클레오파트라 7세를 2004년 펩시(Pepsi)가 3명의 팝스타로 다시 불러냈다. 상징적인 브랜딩(Iconic Branding)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권력과 카리스마는 비욘세(Beyonce), 대중적 영향력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반항적 에너지는 핑크(Pink)로 치환했다. 펩시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움직이는 힘으로 인식하게 했다. 나는 필레 신전이 내어주는 그늘을 따라 걸으며 끝나지 않은 상징이 된 클레오파트라를 그려보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외벽의 한글을 떠올리며, 나는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미래로 흐른다는 감각을 느꼈다. 책은 정보를 넘어서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로서 여전히 살아 있다. 지중해가 보이는 도서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나는 책 대신 나 자신을 읽었다. 클레오파트라의 흔적은 지중해와 홍해를 지나 나일강 필레 신전에서 더욱 또렷해졌고 스쳐 간 모든 장면들은 또 다른 이야기로 남아 나를 부른다. 오래된 바람이 불어오듯이 그 기억은 조용히 나를 향해 돌아온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2026-05-21 16:26:42
대구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이자 뿌리 깊은 영남 소리의 본향이다. 하지만 화려한 명성에 비해 우리 전통문화의 현주소는 초라하다. 현재 대구에는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문화예술회관 등 서양 음악과 다목적 공연장은 도심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대구시립국악단을 비롯해 1천여 명에 달하는 국악 전공자들이 마음 놓고 연습하고 공연할 '국악 전용 극장'은 단 한 곳도 없다. 서양 예술 전용 인프라 대비 국악 인프라 비중은 사실상 '0%'에 가깝다. 장르 간 비대칭은 지역 문화 생태계를 왜곡하고 국악 전공자들의 역외 유출을 가속화하는 주범이다. 차기 대구 시정은 도시의 유휴 공간을 재해석하고, 예술인의 삶을 지탱할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첫째, 대구의 뿌리이자 역사적 성지인 '달성공원'을 'K-전통문화 랜드마크'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대구의 상징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토성인 달성공원은 국악당 건립의 최적지다. 동물원이 이전하고 남은 유휴 부지에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국악 전용 공연장과 한국식 정원 조성, 문화재 전수관 등 전통문화예술의 집결지로 대구전통문화예술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대구의 역사성과 예술성, 서문시장, 근대골목투어 등이 결합된 독보적인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이는 서구화된 대형 공연장들과는 차별화된 대구만이 가질 수 있는 '전통의 현대적 자산화'의 시작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업의 재검토를 소망한다. 둘째, 2순위 대안으로 '경북도청 후적지'를 전통과 현대의 융합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달성공원이 역사적 상징성이 있다면 산격동 도청 부지는 압도적인 도심 접근성과 확장성을 갖춘 곳이다. 이곳은 국악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한 'K-컬처 인큐베이팅'의 산실로 적합하다. 1천여 명에 달하는 지역의 전통예술 전공자들이 마음 놓고 연습하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현대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젊은 층과 관광객이 발길을 멈추지 않는 '살아있는 전통예술의 메카'로 조성하고 다양한 상설 공연을 통해 예술인들이 정당한 수익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예술인 기회소득을 넘어 스스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다. 셋째, 실질적 전통예술인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 국악은 단순히 듣는 음악을 넘어 춤, 소리, 연희가 어우러지는 '판'의 예술이다. 서양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이 철저히 관람 중심이라면 국악은 시민이 직접 추임새를 넣고 어우러지는 '참여와 교육'에 특화되어 있다. 대구 130여 개 읍·면·동에 리더 국악 예술사를 배치하고 다양한 장르의 전통예술 공연과 교육이 있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추진해 참여 예술인에게는 500개 이상의 안정적인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고품격 전통문화 복지를 돌려주어야 한다. 문화는 한 도시의 품격이며 전통은 박물관에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동시대 시민과 호흡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살아있는 에너지여야 한다. 전통예술공원에 울려 퍼질 우리 소리는 대구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며, '1동 1국악사'는 전통예술인이 시민의 삶 속에서 존중받으며 일하는 도시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차기 대구시정이 문화가 밥이 되고, 전통이 힘이 되는 대구의 미래를 과감히 선택하기를 기대한다.
2026-05-21 15:26:48
'감사의 정원' 설치를 반성해야 하는 이유 [가스인라이팅]
광화문 광장에 '감사의 정원'이라는 돌기둥이 하나둘 섰다. 논란도 함께 따라붙었다. 예산 낭비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선거용 사업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세종대왕상 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나는 그 기둥을 바라보다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깊은 감사의 마음 그리고 깊은 부끄러움이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 참전기념관 벽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지도 못한 사람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짧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겨우 찾아낼 아시아의 작은 나라, 그곳의 이름 모를 사람을 위해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 6·25 전쟁에서 유엔군 사망자는 5만여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미군만 3만3천여 명이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총 54만여 명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영국에서도 왔고 캐나다와 터키, 호주, 심지어 에티오피아에서도 젊은이가 달려왔다. 그들은 한국어를 알지 못했고 한국 땅조차 밟아본 적 없던 젊은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왔고 싸웠으며 결국 죽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가 됐다. 단 한 명의 사망 사고만 발생해도 뉴스에서 대서특필된다. 국가는 나서서 사과한 뒤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재발 방지책을 논의한다. 그만큼 오늘날 인명의 무게는 묵직하게 다뤄진다. 수만 명의 외국 젊은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를 위해 이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건 어떻게 다뤄져야 옳은 것일까. 현재의 감각으로 환산하면 할수록 그 희생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만약 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6개 정치범수용소에는 약 19만 명이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출신인 국제사법재판소 판사는 "북한 수용소는 내가 어린 시절 나치 수용소에서 겪었던 것보다 더 끔찍하다"고 할 정도다. 북한에선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외부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불만을 입 밖에 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수용소에 끌려간다. 우리 이야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엔 반드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다양한 사건이 있다.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이름조차 몰랐던 나라의 자유를 위해 수만 명이 스스로의 몸을 내던진 이 희생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들은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죽으러 온 젊은이였다. 지금에서야 광화문에 세운 걸 반성해야지 정쟁 따위를 할 대상이 아니다. 이종길 국군권익포럼 대표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05-21 13:24:38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월든의 소로와 의자 이야기
하나. 1981년도였던가. 대입 예비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184점을 받은 학생이 서울법대에 입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통상 서울법대 커트라인이 310점 선이었음을 고려할 때 경악할 노릇이지만, 이는 그해 서울대 경쟁률이 미달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언론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고 그때마다 그는 남들은 비웃어도 보란 듯이 졸업하고 사법고시도 패스할 것, 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입학 첫해를 못 넘기고 자퇴하고 말았다. 법학 서적 한쪽 읽기 위해 일일이 옥편을 찾아봐야 하는 힘들고 지루한 과정에 무너졌기 때문. 탄탄한 기본 없이 요행으로 이룬 성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상누각이다. 둘. 1845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근처 월든 호숫가로 떠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세 개의 의자를 만든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또 하나는 '친구'를 위해 나머지 하나는 '사교'를 위해. 소로가 만든 의자는 각각 자기성찰, 우애, 환대를 상징한다. 셋. 1948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저가 가구 국제 공모전에서 찰스 임스는 유리섬유를 가공하여 등받이와 시트가 하나로 이어진 플라스틱 의자를 선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74만 원대에 판매되는 이 의자의 최초 판매가격은 6달러 17센트. 당시 신소재로 떠오른 유리섬유는 가볍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가죽이나 나무 의자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학교, 공항, 사무실 등 공공시설에 빠르게 보급되었다. 게다가 플라스틱은 가장 미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주역이었다. 임스는 혁신적 디자인을 추구했고, 사용자 중심 접근방식을 채택했으며, 예술과 공학을 접목해 창의와 기능을 극대화했다. 그러니까 임스의 의자는 모던하고 편안한 기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넷.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 수트를 입은 기쁨에 천방지축 사고나 치고 다니던 피터 파커는 수트를 회수하려는 토니 스타크에게 수트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며 읍소한다. 이때 토니 스타크의 단호한 대답. "수트가 없어서 아무것도 아니면 더더욱 수트를 입으면 안 돼" 기초체력 없이 기술만 연마하거나, 내공 없이 초식만 장착하면 협객이 아니라 자객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의자란 권력의 상징인 동시에 근대화의 산물이다. 사람마다 자기 자리가 있기 마련. 학창시절 선생님이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라고 할 때의 자리는, 자기 의자를 말한다. 적어도 학생 때는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는 순간, 안타깝게도 자리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 어떤 이는 자리가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데 반해 애초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또 어떤 이는 높고 크고 화려한 의자만을 꿈꾸다가 평생 제대로 된 자리 하나 얻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기도 한다. 이때 의자는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은유다. 이문재는 자신의 시 〈소로의 오두막〉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의자 두 개를 마주 놓고, 나그네들이 오면 의자를 다 내놓았다고 합니다. 홀로 고독을 즐길 때는 의자가 하나만 필요했겠지요. 미루어 짐작건대 소로가 혼자 앉아 있을 때도 의자 두 개가 비어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라고 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친구를 아끼고 타인에게도 기꺼이 손 내밀 수 있을 터. 세 개의 의자가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삶도 온전해지리라 믿는 시인의 마음을 살며시 빌려온다.
2026-05-21 10:14:10
낙타, 사자, 어린아이는 니체가 말한 인간 발전의 세 단계이다. 니체가 말한 낙타는 순종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카라반의 주축은 낙타였다. 그냥 걷기도 힘든 열사(熱沙)의 행로. 무거운 짐까지 지고 걷는 낙타는 그야말로 의무와 책임의 표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호구지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데에 영일이 없는 이 시대 장삼이사들을 낙타의 후예라 하면 망발일까. 물론 내공을 다지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불에 달궈진 시우쇠를 두들기고 찬물에 집어넣는 대장장이의 의도는 명백하다. 좀더 강한 도구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모나 교사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이나 사회규범은 노회한 대장장이다. 주목할 점은 시우쇠가 되든 낙타가 되든 공히 수동태에 속한다는 것이다. 사자는 저항 정신 혹은 꿋꿋한 줏대를 상징한다. 이 단계에 이른 인간은 일방적 지시나 폭압적 행위를 거부하는 용기와 기존체계를 뒤엎는 전복적 사고를 지녔다. 자유의 신봉자인 사자형 인간은 하지만 아쉽게도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하면 의지를 지켰으되 의리를 상실했으며 실존적 자유는 지켰으되 공존을 깨뜨리는 우를 범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요컨대 그 자신이 극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니체는 가장 바람직한 변신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유형을 든다. 어린아이는 한마디로 말해 긍정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가 사자라면 어린아이는 놀이하는 존재이다. 칼이나 송곳 같은 흉기를 들이대도 어린아이는 놀이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웃는다. 주어진 게 무엇이든 기성인이 예상치 못한 방식의 놀이를 시현한다. 어린아이는 비교를 통해 자신을 억압하는 폐단에서 자유롭다. 한마디로 말해 어린아이는 창조와 긍정의 아이콘인 것이다. 니체의 의도를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어린아이처럼 긍정하고 창조하면서 살자는 게 왜 나쁜가. 그러니 니체의 말에 어깃장을 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 상황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니체 역시 작금의 세계를 목도한다면 수긍할 것이다. 그러니까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는 더 이상 없다는 것. 일곱 살도 늦다며 네다섯 살 때부터 어학 공부를 시키고 천재는 만들기 나름이라는 기치 아래 아직 말이 어눌한 아이에게 건반을 누르게 하는 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건 일부 계층의 이야기라고? 그렇다면 주말이면 보충수업이다 학원숙제다 해서 평일보다 더 바쁜 어린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니체는 잘못이 없다. 물론 어린아이들도 잘못이 없다. 그렇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독자 여러분 스스로 답을 구해 보시기 바란다.
2026-05-21 10:08:30
[사설] 하청 노조 성과급 요구 봇물, '노봉법' 강행의 예견된 결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부품 등 물류(物流) 담당 하청 업체 피앤에스로지스 노조가 원청인 SK하이닉스가 성과급·임금 등을 논의할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며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한다. SK하이닉스가 하청업체의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피소(被訴) 등 법적 분쟁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SK하이닉스 하청 업체 뿐만 아니라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등 다른 대기업 하청 노조도 원청과 같은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 업체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제2·3조=사용자 범위를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원청까지 확대하고, 쟁의에 따른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것)'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으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커진 만큼 이제 기업들은 하청 및 협력 업체의 성과 분배 요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성과급을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간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이재명 대통령은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좋은데, 그것도 적정한 선이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일 때 이미 제기(提起)됐던 우려였다. 대통령이 연대와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노란봉투법으로 노조 활동 우위를 보장해놓은 마당에 적정한 선, 연대와 책임을 강조해봐야 공염불(空念佛)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사는 대립 관계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공동 주체다. 근로자는 정당한 보상(報償)과 안전한 근로환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업 역시 지속적인 투자와 혁신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경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처럼 최첨단 산업은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투자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 반짝 성과로 끝나지 않으려면 투자가 우선이다. 노조의 절제(節制)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 노란봉투법을 재개정해 문제를 바로잡아야 생산 차질과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한국 산업 경쟁력 약화를 피할 수 있다.
2026-05-21 05:00:00
[사설] 우리 경제 약한 고리 흔들 고금리 충격, 정부 위기 대책을 묻는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환율 불안, 예상보다 강한 성장률 반등이 겹치면서 금리 인상이 가시화하고 있다. 국고채 금리는 발작(發作)에 가까울 정도로 치솟았다. 3년물 금리는 연 3.8%대에 육박하고, 미국과 일본 국채의 장기금리도 이른바 역대급 수준까지 올랐다. "금리 인상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한국은행 내부의 발언도 나왔다. 다가올 고금리 충격은 전례없는 방식으로 경제를 흔들 가능성이 크다. 수치와 다른 경제 이면의 취약한 고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은 호황이고, 코스피는 급등세이며, 은행과 금융지주의 실적 전망도 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의 뒤에서 중소기업, 자영업자, 지방경제 체력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3개월 이상 원리금(元利金)을 못갚아 사실상 부실로 분류되는 대출인 은행권 고정이하여신(NPL)은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대기업의 8배 이상이다. 일부 지방은행의 제조업과 도소매업 연체율은 코로나 위기 수준을 넘어섰다. 건설 생산 감소세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지방 미분양도 증가 흐름이다. 서민들은 "경제가 좋아졌다는데 왜 체감은 더 어렵냐"는 푸념을 쏟아낸다. 코로나 시기 저금리와 대출 만기 연장에 기대 버텨왔던 자영업·중소기업 대출의 만기가 돌아오고, 고유가와 고환율로 원자재 가격과 비용 부담은 급등했는데 내수는 가라앉았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p(포인트)만 올라도 자영업자들의 연간 이자 부담은 약 1조8천억원 증가한다. 이들은 지역 상권의 고용주이고 소비자이며, 지방경제를 떠받치는 순환 고리다. 이들이 버티지 못하면 소비 위축과 폐업 급증, 지역 부동산 침체와 금융 부실 등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반도체·증시 중심의 긍정적인 지표만 강조하면서 서민·지방·중소기업의 체감경기 악화를 과소평가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경제 약자들의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여 보다 정교(精巧)한 내수·지역경제 대책을 내놔야 한다.
2026-05-21 05:00:00
[사설] 민주당 간사도 이란의 나무호 공격 인정, 정부는 왜 입 다물고 있나
더불어민주당은 20일 국회 외통위에서 '나무호 피격 사건'에 대해 '공격(攻擊) 주체를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신중한 대응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을 두둔하기 바빴다. 민주당 이재강 의원은 "강대국들조차 충분한 증거 없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며 "우리 정부의 신중한 기조는 분쟁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외교의 보편적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도 했다. 사건의 본질(本質)을 호도하는 황당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뜻은 이란의 나무호 공격에 대해 즉각 군사적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건을 저지른 이란에 대해 사과(謝過)와 피해 배상 및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은 주권 국가의 당연한 권리(權利)이다. 아직도 우리 선박 26척과 160여 명의 선원들이 페르시아만 안에 갇혀있다. 일본은 이미 이란의 동의 아래 차례로 풀려나고 있다. 왜 이란에게 한국 선박과 선원들의 호르무즈 해협 '안전한 통과'를 보장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지 못했나. 사건 발생 16일이나 지난 20일 겨우 한국 국적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전해졌을 뿐이다. 신중론만 앞세우고 아무런 실질적 조치를 못하는 정부·여당 탓에 애꿎은 우리 선원과 기업들이 고통(苦痛)받고 있다.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은 19일 '나무호'를 공격한 주체는 이란이라고 정부가 판단(判斷)하고 있으며, '조준 공격'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7일 이란 외무장관에게 이란 측 입장을 요구했고, 다음날 이란 외무부는 "역내 어떤 행위자가 이 일을 저질렀는지 우리도 의문"이라며 '조사(調査) 중'이라고 했다. 이란 측 공격이 아니다라는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발사체 엔진과 CCTV 등 증거가 명확한 상황에서 이란도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 만으로도 정부는 이에 합당한 항의와 대책 요구를 이란 측에 했어야 한다. 신중론을 내세워 무능(無能)과 무책임(無責任)을 덮으려는 계속된 시도는 비겁함을 보여줄 뿐이다.
2026-05-21 05:00:00
[관풍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이벤트와 관련, 5·18 조롱하면 처벌받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언급
○…이재명 대통령, 국내 의류 쇼핑몰의 2019년 광고 문구 두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조롱"이라며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 있나"라고 비난. 자기 죄를 자기가 지우려는 것은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이벤트와 관련, 5·18 조롱하면 처벌받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언급. 5·18 공개 찬양 않으면 처벌하는 법도 만들지 그래? ○…경제 매체 블룸버그, 삼성전자 파업 위기를 두고 "가진 자와 더 가지려는 자의 이익 분배 충돌"이라고 진단. 더 가지려는 자가 평균적인 한국인 시선에서는 이미 가진 자라는 게 문제.
2026-05-21 05:00:00
2026-05-20 18:45:14
식객(食客)은 누굴까? 식도락가와 미식가, 그리고 여행작가의 유전자를 가진 '낭만나그네'라 할 수 있다. 산해별미를 맛보며 산천 경계를 넘나든다. 그 지역의 예인들과 야심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나름대로 가늠하는 자가 아닐까 싶다. 봉이 김선달과 방랑시인 김삿갓도 그런 축에 넣어줄 수 있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한국 식객의 원류는 누구일까. 다들 허균(1569~1618)을 꼽는다. 그리고 고려의 이색,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수운잡방'이란 고조리서를 집필한 김유, 실학파의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정약용·정약전 형제, 추사 김정희 등도 식객의 범주에 넣는 식품사학가들도 있다. ◆ 한국의 첫 미식가이드북…도문대작 허균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이기도 하고 강릉 경포대 옆 초당순두부 탄생의 주역이 되기도 한 초당 허엽의 아들이다. 또 누이는 여류시인 난설헌이었다. 그는 1611년에 우리나라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책 '도문대작'(屠門大嚼)을 펴낸다. 도문대작은 '고기를 먹을 형편이 못 되어 푸줏간의 문이나 바라보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달랜다'는 뜻으로 유배된 처지로 음식을 부러워하는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국내 첫 팔도 맛 평가서로 불리는 이 책은 그가 전북 익산시 함열읍으로 귀양 갔을 때 쓴 책으로 귀양지에서 거친 음식을 먹게 되자 전에 먹었던 좋은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허균은 서문에서 '조선시대 남성 학자들이 식생활에 대해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며 경계의 글을 남겼다. 당시의 먹거리를 병이지류(餠餌之類·떡류), 과실지류(果實之類·과일류), 비주지류(飛走之類·날짐승류), 해수족지류(海水族之類·어패류), 소채지류(蔬菜之類·푸성귀) 등으로 나눠 모두 134가지 음식을 소개했다. ◆요리했던 선비 한국 첫 한글 고조리서로 기록된,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가 1670년 지은 '음식디미방'보다 130년 앞서 안동의 한 선비가 통과의례식에 대한 레시피를 총정리한다. 바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다. 안동 군자마을(안동시 용상동) 출신인 탁청공 김유가 지은 요리책이다. 2012년 5월14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35호로 지정됐다. '수운(需雲)'은 격조를 지닌 음식문화를 뜻하며, '잡방(雜方)'은 여러 가지 방법을 뜻한다. 즉 '풍류를 아는 사람들에게 걸맞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의미한다. 상·하권 두 권에 술 빚기 등 안동 지방 121가지 음식의 조리법을 담고 있다. 사실 선비는 맛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꺼렸다. 음식 자체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그 시절, 그들은 배부른 걸 부덕하고 민망스럽게 여겼다. 허기를 조금 면하면 수저를 놓고 밥상을 수하에게 물린다. 더 배고플 것 같은 수하에게 밥상을 너무 양보하는 바람에 더없이 수척할 수밖에 없다. 그 형상을 유림에서는 '양상수척'(讓床瘦瘠)이라 해서 선비의 미덕으로 존수했다. 안동 반가에선 양상수척을 '체면치레'로 봤다. 나라에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재난이 들면 왕 역시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아예 밥상을 물리는 '감선'(減膳), 또는 고기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철선'(撤膳), 신하들과 당파싸움을 다스리기 위해 이른바 단식투쟁인 '각선'(却膳)도 불사했다. 이런 마당에 선비가 전국의 진미를 찾아 천하를 돌아다닐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기록을 보면 선비들도 끼리끼리 모인 자리에선 '식탐'도 있었다. 특히 좋은 차를 마시고, 좋은 술을 마시고 싶어 했다. 심지어 불교가 절정이었던 고려 시대 때도 한국 불고기의 원형으로 지목받는 '설야멱'(雪夜覓)을 즐겼다. 연암 박지원의 '연암일기'에도 '눈 오는 날 친구와 뜨거운 화로 위에 번철을 놓고 조미한 쇠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를 즐겼다는 대목이 나온다. 새해 첫날 임금 앞에서 '단향회'(檀香會)를 벌이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단향회란 '박달나무 숯불에 구운 대나무꼬치를 먹는 모임'이다. 설야멱의 선배는 고조선발 '맥적'(貊炙), 이것이 근대화 과정에 '너비아니'란 이름을 갖게 된다. ◆식객이란 누구인가 특정 식당의 특정 메뉴가 다른 고장의 음식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소상하게 비교·설명할 수 있는 평론가급 안목과 입맛을 가져야 한다. 음식에 비교와 비판이 가미되어야 식객의 글이다. 식객도 '전국파'와 '로컬파'로 분류된다. 일단 전통요리 연구가부터 알아보자. 광복 직후에는 한국 고조리서의 계보를 학문적으로 천착해 나간 이성우 교수, 그리고 조선궁중요리 부문 인간문화재가 된 고 황혜성이 한식문화의 한 축을 형성했다. 또한 안동소주 장인인 안동의 조옥화도 안동반가음식의 한 흐름을 잡고 있다. 조옥화 덕분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1999년 자신의 생일상을 안동 하회마을에서 받을 수 있었다. 식객문화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준 TV프로그램이 있다. 2002년 5월에 등장한 KBS2 'VJ특공대', 현재는 SBS '생활의 달인'과 KBS '생생정보통', 그리고 최불암으로 인기를 얻은 장수 프로 '한국인의 밥상'이다. 그렇다면 광복 직후 국내 첫 음식칼럼니스트는 누구로 볼 것인가. 어떤 사람은 소설가 백파 홍성유를 꼽는다. 그는 '식도락 별미기행'의 선구자였다. 또 어떤 사람은 동아일보 전 편집장으로 국내에서 구어체 버전의 칼럼시대를 연 홍승면을 꼽는다. 홍승면은 1950~60년대 독일·홍콩특파원이었고 견문이 넓어 동서양의 음식계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49년 합동통신사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가 기념비적인 음식관련 연재를 시작한다. 76년부터 83년까지 월간 '주부생활'을 통해 연재된 '100미(味) 100상(想)'이란 음식칼럼이었다. 그의 연재물은 이후 삼우반 출판사에 의해 2권(1권은 '대밭에서 초여름을 씹다', 2권은 '꿈을 끼운 샌드위치')의 책으로 묶여나온다. 또한 독학으로 만화를 터득한 뒤 월간 산을 통해 '뫼뿌리'를 연재한 조주청. 그는 다양한 직군을 돌아다닌 만화가이면서 세계여행작가로도 유명하다. 85년부터 신동아에 '조주청과 함께하는 지구촌기행', 이어 문화일보에 '조주청의 맛기행'을 연재한다. 한국의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한식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안동 출신의 산당 임지호(작고). 2013년 여행과 요리를 곁들인 방송 SBS '방랑식객- 식사하셨어요?', 토크 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적 있다. 그리고 24년간 조선일보 월간 산에 '산따라 맛따라'를 연재하고 그걸 토대로 '전국산촌미락회'를 결성시킨 우촌 박재곤도 한 역할을 했다. 식객 돌풍의 주인공, 만화가 허영만.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2002년 9월 2일부터 2008년 12월 17일까지 총 116개의 이야기가 1천438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했고 SBS에서 24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는 자전거·바다·캠핑맛길의 신지평을 열었고 현재도 '백반기행'으로 맹활약 중. 이 밖에 '한국음식의 뿌리를 찾아서'(백산출판사)란 책을 낸 김영복, 마산 출신으로 '식탁 위의 한국사'로 더욱 유명해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 베이징 특파원을 거쳐 매일경제를 은퇴한 윤덕노는 2007년 출간한 '음식잡학사전'으로 유명해졌다. 여성지 기자 출신으로 후에 이탈리아로 가서 요리를 배우고 국내로 온 셰프 겸 요리연구가인 박찬일, 일간지 기자 중에는 조선일보 김성윤, 한겨레 박미향, 지금은 은퇴한 중앙일보 유지상이 있으며 시인으로는 송수권, 소설가로는 김중혁, 한창훈, 성석제, 요즘은 예천에 자리를 잡은 안도현 시인도 푸드스토리텔링을 잘한다. 필자도 지역권 첫 음식전문기자로 활동했다. 삼천포 출신의 박정배도 넓은 보폭을 가진 음식원류 연구가이다. 20대 중반부터 식객의 삶을 산다. 그 무렵 NHK의 '다큐서울 아시아는 지금' 제작에 간여하면서 일본 출장을 많이 다닌다. 이후 2013년 한길사에서 나온, 음식의 유래를 찾아가는 박정배의 '음식강산'으로 주목을 받는다. 얼마 전에는 만두 전문서를 펴내기도 했다. ◆1인5역의 근성파 식객 홍승면과 홍성유 이후 가장 승부근성이 강한 식객은 김순경이다. 동아일보에 사진기자로 입사, 1975년 동료 기자 112명과 함께 해직된다. 1984년 편집 이사를 맡았던 월간 자동차생활 창간호부터 칼럼을 쓴다. 이후 전국을 파고들어 찾아낸 숨은 맛집을 축으로 엮은 '한국의 음식명가 1300집'은 일본에서도 출간돼 화제였다. 전국을 종횡무진 누빈 명실상부한 음식칼럼니스트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 아까운 인재가 세상을 떠났다. 김순경처럼 지난 40여년 족히 5천여 곳 이상의 식당을 전전한 황광해이다. 80년대 바캉스 부록으로 전국의 맛집 시리즈를 낼 때 그는 전국을 아홉 번 정도 일주했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스타급으로는 백종원이 단연 압도적이다. 경남 마산 출신의 두 명의 음식 전문가가 있다. '식탁 위의 한국사'로 더욱 유명해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그리고 2010년 '미각의제국'이란 저서로 유명해져 이후 맛칼럼니스트의 신지평을 열고 최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이 된 황교익이다. 황교익은 농민신문 재직 시절 전국 식재료 흐름을 추적했고 맛집보다는 맛의 원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후 백종원과 함께 TV채널을 쥐락펴락하는 유명인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먹거리X파일'의 주인공 이영돈 PD도 국내 음식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한 바 있지만 광고출연 문제로 낙마를 했다. 그리고 이색 '팔도식객'이 모여 형성한 '한국음식문화포럼'도 있다.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양용진(작고)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부산경남권을 커버하는 최원준 시인, 통영 및 남해안권은 이상희 통영음식문화연구소장, 대구·경북은 필자, 전라도권은 '섬 인문학자'인 김준, 강원도권은 황영철 등이 커버하고 있다.
2026-05-20 14:37:07
[세풍-이용호] 삼성전자의 '돈 잔치'는 이류(二流)의 징표
대한민국도 배고팠던 시절이 있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치미 속의 무쪽으로 배고픔을 달래며 보냈던 날이 여럿이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일상(日常)이었지만, 그래도 각 공동체는 사랑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참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부족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1달러짜리 햄버거 하나로 한 끼를 때워야만 했던 외국 생활이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부자 나라들에 널려 있는 잔디 구장을, 대형 마트에 가득 채워진 넘쳐나는 생필품을 보면서, 언젠가는 조국 대한민국에도 이러한 풍요로움이 함께하길 기도했다. 독일로 갔던 간호사와 광부들, 베트남전에 파병(派兵)되었던 군인들, 중동에서 땀 흘렸던 근로자들을 위시한 선배 세대의 피땀과 노력 덕분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곳곳에는 잔디 구장이, 대형 마트에는 물자가 넘쳐난다. 그토록 바랐던 물질적 풍요를 이룬 것이다. 기도가 통했나, 운이 좋았나, 손놀림이 정확하고 빠른 덕분인가! 아무튼 대한민국의 시대가 온 듯하다. 부자 나라가 되면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물질을 지키고 나눠야 하는 큰 고민이 추가로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옛날에 없었던 물질적 풍요가 생기니, 옛날에 있었던 행복이 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물질적 풍요는 넘쳐나는데, 사랑과 희망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이런 풍요의 시대를 거꾸로 돌려버리면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결국 오늘날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의 지속과 함께 정신적 가치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 놓였다. 또 한 번 대한민국과 그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즈음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에 큰 고민이 생겼다. 그들이 엄청난 영업이익을 거둔 탓이다. 삼성전자의 노조는 상한을 폐지한 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업이익에 대한 자신들의 기여를 반영하라는 요구이다. 즉 '돈 잔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민주사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소한 삼성전자의 '돈 잔치'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약간의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주 52시간제 포기'나 '고용유연제 실시'와 같은 노동 약자 보호를 위한 권리의 포기(抛棄)도 동시에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전자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했던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반도체 산업에 공헌한 과학자들 등등 수많은 기여자들의 헌신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공정에 부합하지 않을까! 삼성전자는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글로벌 일류 기업"이라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노조의 작금(昨今)의 행태는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 미래에 대한 투자 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싶다. 그저 자신의 '물질만능주의'의 표출 정도로만 비친다. 삼성전자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그토록 소망했던 일류의 당당한 문화를 뒤로하고, 이류(二流)로 곤두박질치는 서글픈 자화상 앞에 섰다. 그렇게 잘나갔던 ㈜소니(SONY) 그룹이 쇠락(衰落)하리라고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로 학자인 김형석 교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고, 주변과 더불어 행복할 때 가능하며, 이때 그 의미도 커진다."
2026-05-20 05:00:00
[사설] 남북이 두 국가라면 통일은 왜 하며 통일부는 왜 있나
통일부의 통일백서에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인 두 국가 관계'로 전환(轉換)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처음으로 명시됐다. 통일·대북 정책 정부 공식 문서인 통일백서에 이 같은 입장이 담긴 것은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에 동의(同意)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재명 정부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영해 헌법까지 개정한 북한 김정은 정권에 발맞춰 '두 국가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남북 두 국가론'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와 명백히 배치된다. 통일부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통해 서로의 정치적 실체를 존중하는 특수 관계임을 받아들였던 역대 정부의 입장을 계승한 것"이라며 "헌법과 배치된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歪曲)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실체를 존중하는 것'과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재명 정부는 역으로 '대만은 중국과 별개의 주권 국가'라고 국제사회에 선언할 수 있나. 남북이 '별개(別個)의 국가'라면 왜 통일을 추진하나. 한겨레라는 말도 '딴겨레'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나. 사실을 왜곡하는 주체는 바로 이재명 정부이다. 백악관은 지난 14일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 '팩트시트(설명 자료)'를 통해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유된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통일백서에 '북한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와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사용한 것과 대비된다. 이재명 정부의 말처럼 '한반도 두 국가론'이 제도화된다면, 북핵(北核) 문제에서 한국은 '당사국'이 아닌 '주변국'으로 밀려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국제사회에서 남북 문제에 관한 입지를 스스로 훼손(毁損)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이번 통일백서에서는 또 '북한 인권'은 288회에서 47회로, '자유'는 118회에서 16회로 각각 급감했다. '통일' 또는 '평화통일'이라는 단어도 1천305회에서 899회로 줄었다. 도대체 뭘 하자는 이재명 정부의 통일백서인지 묻고 싶다.
2026-05-20 05:00:00
[사설] 국립오페라단은 역사·인프라 탄탄한 대구에 오는 게 맞다
국립오페라단 대구 유치(誘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엔 '국립오페라단 대구 유치를 위한 오페라를 사랑하는 대구시민 100인 선언'이 발표됐다. 전직 대구시장, 역대 시의회 의장 등 각계 인사 134명이 참여했다. 이 선언은 윤석열 정부 때 '문화한국 2035' 정책의 하나로 논의됐던 국립오페라단의 대구 이전 사업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대구는 2년 전 단독으로 현장 실사를 받았지만, 진전(進展)이 없다. 이런 와중에 부산도 내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부산은 이미 국립부산국악원·국립청년연희단 등 5개 국립문화기관 및 단체를 갖고 있다. 반면 대구는 국립대구박물관 1곳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립오페라단이 부산으로 간다면, 두 도시 간 문화 인프라 불균형은 더 커진다. 이재명 정부는 '5극 3특' 체제 기반의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국립예술단체·기관 이전 및 협력 모델 재구축' 정책은 실행돼야 마땅하다. 특히 국내 유일 오페라 제작 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있는 대구는 정책 논의 초기부터 유력지로 검토됐다. 대구는 '오페라 도시'로 불릴 정도로 역사적 토대와 역량을 갖고 있다. 국내 최초의 창작 오페라인 '춘향전'을 작곡한 현제명은 대구 출신이다. 국내 성악 교육도 대구에서 시작됐다. 23년 역사의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대구를 'K-오페라의 메카'로 성장시켰다. 공연·창작 생태계(生態系)를 갖췄다는 의미다. 이는 단기간의 예산 투입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문화 자산이다. 국립오페라단 이전 논의는 상당 부분 진척됐다. 대구는 현장 실사까지 받았고, 정책 검토 과정에서도 유력 후보지로 평가됐다. 그런데 정권 교체와 지역 간 경쟁 구도 속에서 정책의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 문화 정책은 정치적 유불리(有不利)에 좌우되면 안 된다. 국립오페라단은 오페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곳에 이전돼야 한다. 대구는 역사적 자산, 인프라, 시민들의 열정을 모두 갖춘 곳이다. 국립오페라단은 대구에 오는 것이 맞다.
2026-05-20 05:00:00
[사설] '잘 해보자' 듣기만 좋은 합의에 그친 안동 한일 정상회담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경북 안동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서로의 고향을 오가며 나눈 전례 없는 '고향 셔틀 외교'는 한일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공식 합의 내용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크다. 핵심 성과로 제시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에너지 안보 협력, 즉 LNG·원유 분야 협력 강화 및 정보 공유 채널 심화(深化)다. 다른 하나는 1942년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현장에서 발굴된 강제 동원 피해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 협력이다. 인도주의적 의미에서 후자(後者)는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발표하지 않은 뭔가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이게 전부라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여섯 번째, 다카이치 총리와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 거둔 수확치고는 초라하다. 에너지 협력도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란 전쟁이 촉발한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 속에서 원유 수입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일 양국이 협력 채널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당연한 수준의 얘기다. 구체적 공유 범위도, 공동 대응 기준도, 이행 시한도 없는 '정보 공유 채널 심화'는 합의라기보다 합의 의향서에 가깝다. 위기는 이미 닥쳤는데 정보 공유 수준의 합의 정도로는 에너지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 군사 분야도 아쉽다. 한미일, 한중일 협력 공감대가 언급된 정도였다. 안보정책 협의회 차관급 격상이 거론되긴 했으나 군사협력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AI·우주 탐사·바이오 첨단기술 등 미래 협력 논의와 역사 문제도 구체적인 이행 각서나 실행 타임라인 없이 선언(宣言)적 공감대 수준으로만 짧게 나열되는 데 그쳤다. 셔틀 외교가 정착된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만남의 빈도가 성과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만날수록 불편한 의제(議題)를 꺼내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선물하는 하회탈엔 웃는 얼굴과 화난 얼굴이 모두 담겨 있다. 실용 외교라면 아름다운 장면과 함께 불편한 장면도 함께 담았어야 했다
2026-05-20 05:00:00
[관풍루] 친명-친청 지지층 갈등 확산 기사에 정청래 민주당 대표 "내가 가장 강력한 친명" 주장.
○…친명-친청 지지층 갈등 확산 기사에 정청래 민주당 대표 "내가 가장 강력한 친명" 주장.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한 줄 알더라"는 경지의 이재명 대통령이 그 말을 믿겠나. ○…12·3비상계엄 '정치인 체포' 대통령 지시 폭로했던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입건. 자승자박인지 토사구팽인지…민주당 논리라면 내란종식이겠고. ○…고용노동부, 추경 활용해 대구(섬유) 20억원 등 고용둔화지역에 예산 130억원 투입. 중동전쟁 피해 우려 업종 종사자에 생활·주거 안정금 명목이라는데, 새발의 피는 이럴 때 쓰는 말.
2026-05-20 05:00:00
2026-05-19 19:02:55
[기고-신홍식] 대구읍성 복원, 대구 경제의 미래를 열다
선거철만 되면 각 정당과 후보들은 대기업 유치와 공공기관 이전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투표함이 닫히고 나면 그 화려한 약속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일쑤다. 대구는 30년 가까이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으며, 지역경쟁력지수(RCI) 또한 8개 대도시 중 꼴찌 수준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외부의 시혜에만 매달리는 방식으로는 지방의 자립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대구가 이미 가진 독보적인 자산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 핵심은 관광산업이며, 국립공원 팔공산과 함께 대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구읍성'의 복원이 그 해답이다. 대구읍성은 선조 23년(1590년)에 축성되어 500년 넘게 영남의 중심을 지켜온 심장이었다. 성벽 총연장 약 2.7㎞, 높이 3.8m, 폭 8m에 달했던 이 거대한 성곽은 영남제일문(남문)을 비롯한 4대문과 2소문, 4장대와 망루를 갖춘 장엄한 요새였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샤를 바라(Charles Varat)가 그 위용을 극찬했을 만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 손색이 없었으나, 1906년 친일파 박중양의 주도로 불법 철거되는 비운을 겪었다. 지금 동성로 바닥에 깔린 화강암 장대석은 그 끊어진 맥박을 상징한다. 관광산업은 이제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국가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이웃 나라 일본은 2030년 외국인 관광객 6천만 명 유치와 관광 수입 15조엔(약 135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으며, 우리 정부 역시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천만 명 시대를 공약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대구가 내·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선택은 명확하다. 일각에서는 전주 한옥마을이나 경주 황리단길의 성공 사례를 말한다. 물론 그들의 상권 활성화 방식은 참고할 만하다. 하지만 대구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대구만이 할 수 있는 '시간의 적층(Layer)'이라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대구에는 이미 전국적인 명소가 된 '근대문화골목'이 있다. 대구읍성 복원은 단순히 성벽을 쌓는 작업이 아니라, 조선 시대의 읍성과 구한말의 근대 건축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역사 융합형 관광 벨트'를 만드는 작업이어야 한다. 성곽 라인을 따라 걷다 보면 조선의 관아인 경상감영을 만나고, 그 길의 끝에서 다시 근대의 계산성당과 선교사 주택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대구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대구의 근대 자산을 살리되, 성벽 라인을 따라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들이 읍성의 역사적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경관 협정'을 통해 유도하면 된다. 낮은 스카이라인 아래 근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상권이 형성된다면, 대구는 전 세계 관광객이 주목하는 '시간 여행의 도시'로 재탄생할 것이다. 팔공산의 자연과 대구읍성의 역사가 어우러진 콘텐츠는 대구 경제를 살릴 확실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500년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대구의 자부심을 바로 세우는 일인 동시에, 경제 꼴찌라는 불명예를 씻어낼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제는 바닥에 그어진 차가운 화강암 선 위로 대구의 뜨거운 미래를 다시 세워 올려야 할 때다.
2026-05-19 15:12:56
요즘 K팝과 K드라마, 이른바 K컬처의 확산은 눈부시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가 섞인 노래가 울려 퍼지고, 한국의 서사는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빠르게 확장된다. 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나 문화적 자부심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 K컬처는 세계 문화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학창 시절, 나에게 가장 강렬했던 세계는 AFKN과 홍콩 영화였다. 왕가위의 '중경삼림'과 '화양연화', 그리고 진가신의 '첨밀밀' 같은 작품들은 사춘기의 감정과 맞물려 깊은 흔적을 남겼다. 느슨한 서사와 오래 머무는 시선, 그리고 인물들 사이를 흐르던 낯선 정서는 영화 이상의 경험이었다. 그 영화들에는 당시 홍콩이 겪고 있던 시대의 변화와 자본주의의 물결,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스며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잘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 한 사회의 내면과 현실을 담아낸 문화적 서사였다. 이후 일본 영화와 음악이 이어졌다. 특히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일본 정서를 세계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국 영화 역시 자신만의 결을 만들어갔다. '올드보이'를 비롯한 작품들은 기억과 복수, 억압된 상흔을 강렬하게 각인시키며 고유한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문화의 흐름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반복됐고, 오늘날 그 중심에는 K컬처가 서 있다. 기술과 자본, 플랫폼을 기반으로 K컬처의 완성도는 높아졌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문법 또한 한층 정교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려도 남는다. 세계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우리만의 색과 결을 희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때 우리 영화에는 분명한 한국적 정서가 있었다. '쉬리'의 분단 시대가 품은 긴장감, '접속'의 체념과 고독, '태극기 휘날리며'의 비극적 형제애, '웰컴 투 동막골'의 이념을 초월한 공동체성. 이 작품들은 서사의 완성도를 넘어 한국 사회의 체온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속엔 작지만 소중한 삶,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 특유의 감정선이 살아 있었다 문화는 결국 '차이'에서 힘을 얻는다.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 말하고 따라 할 때, 문화는 더 이상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이야기의 기준이 되는 순간, 문화는 균질해진다. K컬처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시장만이 아니라 우리만의 서사다. 홍콩 영화가 한 시대를 풍미했듯, 어떤 문화도 영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지속의 밀도는 다를 수 있다. 결국 문화의 지속성은 우리만의 서사를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세계가 소비하기 쉬운 콘텐츠가 아니다. 세계가 궁금해하는 한국의 이야기다.
2026-05-19 08: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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