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랫동안 속도와 새로움에 매혹돼왔다. 무엇이 더 빠른가, 무엇이 더 혁신적인가를 묻는 말은 늘 시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기술과 사회 문화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변화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놓인다. 인간은 빠르게 계산하는 존재라기보다, 축적된 기록 위에서 판단하고 의미를 구성해 온 존재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다시 불러오며, 무엇을 끝내 잊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것을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기억의 가치는 양이 아니라 태도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기억의 감각은 한국의 전통 미학에서도 선명하게 확인된다. 우리는 흔히 '백의민족'이라는 말을 관습처럼 사용하지만, 흰옷이 의미하는 것은 소박함이나 결핍으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장식을 최소화한 한복의 흰 바탕은 비어 있는 상태라기보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여백이다. 시간이 흐르며 스며드는 생활의 흔적과 노동의 자국, 삶의 온기가 그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흰옷은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기록을 전제로 천천히 형성되어 온 서사의 시간이다. 그 흐름 속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쌓이는 방식을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표면의 화려함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감내해 왔는가 하는 문제다. 백지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강하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반복과 기록, 보존에 익숙해 온 문화적 배경 역시 이와 깊이 맞닿아 있다. 한국 현대미술 또한 이러한 기억의 미학 위에서 전개됐다. 단절과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개인과 집단의 기억, 역사적 시간,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응시를 지속해 왔다. 그것은 새로움을 과시하기보다는, 무엇이 잊히고 있는지를 묻는 태도에 더 가까웠다. 오늘날 예술의 역할은 이전보다 더 분명해졌다. 모든 것이 저장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예술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기억의 양이 아니라 기억의 무게를 가늠하고, 효율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를 드러내는 일이다. 무엇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끝내 지우지 않겠는가를 선택하는 태도. 연산의 시대를 지나 우리가 마주한 것은 기억의 시대다. 그리고 그 기억을 다뤄온 방식 속에서, 한국 사회와 한국의 미학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과 함께해 왔다.
2026-02-10 09:32:32
[사설] 여도 야도 권력 투쟁에 함몰, 정치 혐오증 확산할 수밖에
국민의힘이 9일 한동훈 전 대표에 이어 친한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제명(除名)했다. 언론 등에 당 지도부를 모욕하는 언행을 했다며 당 중앙윤리위가 '탈당 권유' 처분을 한 지 2주 만으로, 열흘 내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제명 처리됐다. 한 전 대표 제명 반대 서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친한계인 배현진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이다. 친한계는 즉각 '숙청 정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당내 소장파들도 '재신임 주장하려면 직을 걸라'는 장동혁 대표를 향해 '조폭식 공갈 협박' '독재적 발상'이라며 "정신 좀 차려라"고 직격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가세하며 당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참패가 뻔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주도권을 쥐기 위한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내분도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밀약설, 보완수사권, 2차 종합특검 후보 추천 등 친명(친이재명)-친청(친정청래) 갈등에 당내 분열까지 내홍이 심각한 상태다. 정청래 대표의 '자기 정치' 누적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 대표 주도의 합당 추진에 이어 특검 추천 문제까지 터지자 이재명 대통령도 쌓인 불쾌감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과 관련해서도 이 대통령이 '예외적인 인정'을 제안했지만 당은 허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반기를 들었다. 조국 혁신당 대표조차 "정부 출범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총선 공천권을 가질 당권과 차기 대권을 두고 권력 투쟁을 벌이는 집권 여당이 있었냐"고 일갈할 정도다. 양쪽이 동시에 '개판'이기도 쉽지 않은데 우열(優劣)도 가리기 힘들다. 그런 사이 국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밤낮없이 SNS로 정치·국정 운영을 하고 있겠나. 지지율을 언급하기도 민망한 제1야당, 대통령 지지율에 기댄 집권 여당, 둘 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러다 선거가 다가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앞다퉈 표 달라고 아우성칠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답답하다. 소장파 의원 말대로 제발 정신들 좀 차려라.
2026-02-10 05:00:00
[사설] 부자 해외 이탈 통계 오류가 상속세 문제를 덮을 수는 없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9일 경제 6단체 상근부회장을 소집한 자리에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속세 부담으로 국내 고액 자산가들 해외 이탈 우려(2025년 약 2천400명, 세계 4위 수준)' 보고서를 배포(配布)한 것에 대해 "(검증 안 된 자료로) 국민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훼손(毁損)하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질타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한상의 보고서를 '가짜 뉴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대한상의가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인용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책임을 묻고, 재발을 방지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속세가 외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것은 분명하다. 전체 세수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4배가 넘는다. 최고 상속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다. 최대주주 할증 과세가 적용되면 최고 상속세율은 60%로 일본보다 높다. 우리나라 상속세 부담이 외국에 비해 큰 것은 제도 때문이다. 대부분 OECD 국가의 경우 실제 상속받는 재산 기준으로 과세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전체 상속재산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받는 사람 기준'으로 바꾸는 개편을 추진 중이지만,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의 경우, 가족 기업을 상속받아 그 사업을 계속할 경우 상속세 납부를 유예함으로써 기업을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덕분에 중소기업의 고용도 유지되고 기술도 축적된다. 반면 우리 중소기업인들 중에는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잘못된 자료' 논란과 관련, 산업부는 책임을 묻고, 경제 단체들이 경제 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해 검증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나 그 속도의 반(半) 만큼이라도 기업을 옥죄는 상속세 손질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우리 기업인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2026-02-10 05:00:00
[사설] 개헌선 돌파한 日 자민당, 시험에 든 李 '실용 외교'
일본 자민당이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전체 465석 중 316석을 확보하면서 압승을 거둔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강한 일본'을 전면에 내세운 그가 우경화 행보를 한층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단일 정당이 단독으로 개헌안 발의선인 3분의 2(310석)를 넘어선 것은 전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연립 여당 파트너인 일본유신회(36석)의 의석까지 합치면 여당은 352석까지 늘어난다. 일본 정치가 사실상 '여자 아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극우 성향이 짙은 '다카이치 1강 체제'를 공고히 한 것이다. 심지어 자민당에서 미리 준비해 둔 비례대표 후보가 모자라 14석을 다른 정당에 넘겨야 할 정도였다. 이제 정치적으로 탄탄한 지지 기반을 확보한 다카이치는 '전쟁 가능 국가' 복귀 추진을 위한 헌법 제9조 개정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그간 '자위대'가 실질적인 군대로 기능하기 위해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이와 동시에 자위대 이름을 보통 군대처럼 바꾸자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당장 개헌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일본의 '군사대국화(軍事大國化)'는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긴장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여기에다 독도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인식 문제 등도 언제든 관계를 흔들 수 있는 민감한 변수다. 당장 오는 22일로 다가온 '다케시마의 날' 다카이치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카이치는 총리 취임 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중앙 정부 인사를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정상(頂上) 셔틀 외교를 회복하는 등 한일 관계에 새로운 물꼬를 트고 있지만, 자칫 너무 우호적 분위기에만 취해 민감한 이슈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허울 좋은 실용만 내세우지 말고 국익(國益)과 원칙이 걸린 문제에서는 분명한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2026-02-10 05:00:00
[관풍루] 정청래 민주당 대표, '특검 후보자 추천' 논란에 대해…혼네(本音)일까 다테마에(建前)일까?
○…정청래 민주당 대표, '특검 후보자 추천' 논란에 대해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대표인 저에게 있다"며 "대통령께 누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 혼네(本音)일까, 다테마에(建前)일까?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이어 친한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하고 역시 친한계로 사당화 논란 빚은 배현진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도 착수. 한 배에 탈 수 없다면 미리 손절하는 게 낫지. ○…김세직 KDI 신임 원장, 취임식에서 "장기 성장률 추세를 반전시키는 '진짜 성장'으로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 그러자면 대통령의 현금 살포 버릇부터 뜯어고쳐야….
2026-02-10 05:00:00
2026-02-09 18:44:01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동이족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장강 하류도 동이족 문화의 땅1월에 장강(양자강) 중·하류 지역을 답사하고 왔다. 놀랍게도 장강 중·하류 유역 곳곳에도 동이족 선조들의 유적이 널려 있다.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중국학자들이 제시한 견해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이화(易華)는 "동아시아 신석기시대의 모든 문화는 이(夷)문화이다(『이하선후설』, 2021)"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발굴을 하면 할수록 이(夷)문화 유물은 많이 나오지만, 한족(漢族)의 문화라는 하(夏)문화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동이문화는 무엇이고, 동이족은 어떤 지역에서 살았을까? 지역으로 나누면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한반도와 동북 3성(길림·흑룡강·요녕) 지역의 동북방지역, 황하 상·중류 및 황하 하류 및 산동반도의 중원지역, 그리고 장강 중·하류지역이다. 각 지역마다 대표적인 문화가 존재한다. 동북 지역은 홍산문화(紅山文化, BC4500~BC3000), 황하 중상류 지역은 앙소문화(仰韶文化, BC5000~BC), 황하 중하류 지역은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BC4300~BC3000)가 대표적이다. 장강 중·하류 지역은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 BC5000~BC4500)와 양저문화(良渚文化, BC3300~BC2300)가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동이족 문화인데, 산맥과 큰 강 같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동이족 선조들은 물길을 이용해 서로 교류하였다. 그 결과 넓은 지역에 분포한 동이족 선조들은 비슷한 문화적 특징을 공유할 수 있었다. ◆동이문화의 공통 특징과 상징체계동이문화의 공통된 특징은 하늘 숭배신앙이다. 태양 숭배, 새 숭배, 조상 숭배, 용 숭배, 돼지 숭배와 옥기(玉器), 점복(占卜) 문화, 부호(符号) 문자 등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장강 하류의 상산문화(上山文化, BC9400~BC8600)에서는 태양 무늬가 새겨진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오래전부터 동이족들이 태양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상산문화 이후의 하모도문화에서는 새가 태양을 등에 지고 날아가는 모습을 새긴 상아 조각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무늬의 상아 조각이 산동반도의 대문구문화에서도 출토되었다. 동이족들은 해가 뜨고 지는 현상을 새가 태양을 나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태양과 새를 함께 그린 예술 작품들을 남겼다. 고대 동이족은 태양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무늬를 사용했다. 그중 하나가 팔각형 모양이다. 황하 중상류의 앙소문화와 산동 지역의 대문구문화에서는 팔각형의 무늬 그릇이 많이 보인다. 또 남경(南京) 남서쪽의 능가탄문화(凌家灘文化 BC3800~BC3300) 유적에서는 새가 태양을 품고 날아가는 모습을 새긴 옥기가 발견되었다. 새의 몸통에는 팔각형 모양의 태양이 그려져 있고, 새의 양쪽 날개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돼지머리가 달려있다. 동이족들은 또 돼지를 북두칠성과 연결해서 생각했다. 북두칠성의 기운이 흩어져 돼지가 되었다고 믿은 것이다. 하모도문화에서 해를 품은 하늘 돼지 문양의 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돼지를 하늘과 관련된 존재로 여겨졌음을 말해준다. 새는 태양과 같은 존재이자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상징으로 생각했다. 강소성(江苏省)의 양저문화인 조릉산 유적(赵陵山遗址)에서는 사람 머리 위에 새가 하늘을 향하는 모양의 옥 장식이 발견되었다. 새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로 여겨졌음을 말해준다. 해와 새, 북두칠성은 모두 하늘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해, 새, 돼지는 하늘을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되었다. 이처럼 장강하류지역 문화의 상징체계는 동이족의 상징체계와 동일하다. 따라서 장강하류지역 문화도 동이족 문화임을 알 수 있다. ◆능가탄 사람들의 우주관장강 하류 지역의 능가탄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옥기이다. 이곳에서는 옥으로 만든 도끼와 새(鳥) 신인(神人), 거북이 모양의 장식(玉龟甲), 호랑이 머리 옥황(虎首璜), 옥룡(玉龍) 등이 발견되었다. 능가탄 박물관에는 이 옥기들의 원류는 북방의 홍산문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옥으로 만든 거북이 장식인 '옥귀갑(玉龟甲)'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대 동이족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고 생각했다. 등은 둥글고 배는 평평한 거북을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다. 옥귀갑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끈을 연결해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발굴 당시 인골의 허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옥귀갑의 둥근 부분에 뚫려 있는 네 개의 구멍은 북두칠성의 머리인 북두를 상징한다. 옥귀갑 안에는 네모난 옥판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팔각형 문양이 있고, 그 바깥에는 원과 네모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 무늬에 대해 어떤 학자는 팔괘(八卦)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또 어떤 학자는 사계절과 절기를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옥귀갑은 고대 동이족이 하늘의 뜻을 묻거나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으로 보인다. 능가탄에서 발견된 신인상은 쭈그리고 앉아 두 팔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이 모습은 홍산문화에서 나온 옥 신인상과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능가탄 신인상의 머리가 납작하다는 것이다. 머리를 납작하게 만드는 '편두(褊頭)'는 동이족의 풍습이다. 대문구문화와 능가탄문화 사람들도 편두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韓)'조에는 진한 사람들이 편두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동이족의 오랜 풍습임을 알 수 있다. 또 능가탄에서 발견된 호랑이 머리 모양의 옥장식은 호랑이 숭배사상을 보여 준다. 훗날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濊)'조에도 예 사람들이 호랑이를 신으로 여기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호랑이 숭배사상은 동이족의 중요한 전통 가운데 하나였다. ◆양저문화와 국가형성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와 태호평원(太湖平原)의 장강하류 일대 양저문화에서는 호랑이와 돼지, 사람의 얼굴이 합해진 신인수면문(神人獸面紋) 옥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안이 둥글고 밖은 네모난 옥종(玉琮)과 둥그런 옥벽(玉璧), 옥 도끼의 옥월(玉鉞) 3종 세트가 처음으로 같이 발견되었다. 안은 둥글고 밖은 네모난 옥종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데, 여기 새겨진 신의 형상에는 커다란 눈이 부각되어 있다. 눈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존재, 느낄 수 있지만 묘사는 할 수 없는 존재인 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신의 얼굴이 홍산문화의 옥저룡와 매우 닮아있다. 옥월에는 신과 새가 동시에 새겨있는데 이는 왕이 하늘과 직접 소통하는 천명(天命)을 받은 존재임을 나타낸다. 양저문화는 능가탄문화와 하모도문화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형성된 문화이다. 하모도 문화에서 이미 물을 다스려 농사짓던 흔적이 보이는데, 이런 수리 기술은 양저문화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 양저문화의 중심인 양저고성(良渚古城)은 계획도시이다. 양저고성은 제사 공간과 귀족 묘지, 옥기 제작 공방, 대규모 취락 등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중심부에는 귀족이 거주하고, 내성에는 제사구역과 수리시설이 갖추어진 3중 구조의 도시로서 국가의 형성을 보여준다. 양저문화는 약 5천 년 전에 제방과 운하, 저수지 등을 만들어 홍수를 막고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했으며, 물길을 이용해 운송과 수자원도 관리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의 수리시설을 갖춘 문화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양저문화를 계획도시이자 세계 최초의 수리 국가, 그리고 신권 국가로 평가하며 동아시아 최초의 국가급 문명으로 본다. 그리고 201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신권정치와 천손사상양저문화의 지배층 무덤에서는 다양한 머리 장식용 옥기가 많이 발견된다. 국가 조직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줄 정체성과 신앙이 필요하다. 그 신앙은 하늘과 조상,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믿는 생각이었다. 이를 눈에 보이게 보여주는 수단이 바로 귀한 옥기였다. 옥으로 만든 머리 장식은 착용한 이가 하늘과 조상과 연결된 존재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강력한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권장(权杖 지팡이)에는 신인수면문과 새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다. 이는 왕이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이자 세상의 질서를 다스리는 신성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새 숭배 사상은 하늘의 자손이 알로 태어난다는 난생 신화로 이어졌다. 동이족의 조상숭배가 하늘 숭배와 연결되는 것은 자신들의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 베트남에까지 분포하고 있는 난생사화는 동이족의 시조가 모두 하늘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보여 준다. ◆절강성에 있는 고인돌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이번 답사에서 놀라운 사실은 절강성(浙江省) 남쪽의 고인돌들이다. 절강성(浙江省) 서안(瑞安)의 기반산(棋盘山)과 평양(平阳)현의 용산두(龙山头) 및 창남(苍南) 동교(桐桥) 일대에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었다. 중국에서는 고인돌을 '석붕묘(石棚墓)'라고 부르면서 상(商), 주(周) 시대에서 춘추전국시대의 장례풍습으로 보고 있다. 또한 중국의 고인돌 문화가 일본과 한국 등 주변 지역의 무덤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선정해 보호하지만 과거에는 주민들이 윗돌이나 받침돌을 떼어 건축 자재로 사용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고인돌은 거의 없다. 고인돌은 고조선의 표지유물이기도 한 데 북쪽에는 요동반도와 산동반도에 남아 있다. 절강성 남쪽 끝의 고인돌은 동이족의 유적은 분명한데, 그 성격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다원일체'설명과 그 한계현재 중국에서는 수많은 선사유적들이 발굴되는데 그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런 선사유적들을 "별이 가득한 하늘(滿天星斗)"에 비유하는데, 대다수 문화가 동이족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앙소문화, 대문구문화, 굴가령문화(屈家岭文化), 석가하문화(石家河文化), 능가탄문화, 홍산문화, 양저문화, 도사문화 등 여덟 개를 중화문명의 기원과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문화로 설명한다. 특히 양저문화는 중화문명의 초기 문명이며, 여러 요소가 하나로 합쳐진 '다원일체'의 특징을 지닌다고 말한다. 56개 민족연합국가라는 현 중국의 다민족 국가 형성이 양저문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중국 동북방문화뿐만 아니라 중원문화와 장강의 중하류의 선사문화는 동이족 문화이며 "양저문화는 동이문명의 정점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6-02-09 14:00:00
〈파 대궁*〉 고요한 직선 속에 비바람의 언어와 시간의 무게가 새겨져 있다 땅속 어둠을 찢고 칼끝처럼 하늘 향해 솟는 단 하나의 선율 푸르고 곧게 가야 할 그 하나의 길은 똑바로 서는 것 숨 참는 시간을 버티며 하늘 닮은 꽃 피울 준비를 하는 저 대궁의 심오한 철학 *'대'의 방언 〈시작 노트〉 대파가 따뜻한 봄의 공기를 타고 딱딱한 대를 내밀었다. 겨울 동안 품고 있던 속을 티 나지 않게 하늘 향해 밀어 올리지만 그 속엔 꼿꼿하고 단단한 직선의 곧음이 있다. 비운다는 것은 '수용, 유연함, 단단함' 등의 철학이다. 속을 비워야 벙그는 꽃을 피울 수 있는 파 대를 보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본다.
2026-02-09 06:30:00
[사설] 퇴직연금 기금화, 정권의 '쌈짓돈' 오용 막을 장치 필수
노·사·정 태스크포스(TF)는 지난 6일 기존 퇴직금 제도를 폐지하고 퇴직연금(退職年金)으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뿔뿔이 흩어진 퇴직연금을 모아 별도 법인이 맡아 운영하는 '기금형'도 가능해진다. 2005년 처음 도입된 퇴직연금의 적립금은 현재 430조원 규모이고, 퇴직연금이 의무화될 경우 2050년쯤 국민연금(國民年金, 현재 약 1천500조원)을 추월할 전망이다. 퇴직연금 의무화의 가장 큰 명분은 노후 소득 확대(老後所得擴大)이다. 일시금이 아니라 연금으로 받게 되면 노후 안전 장치가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지난 10년간 퇴직연금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2.07%로 국민연금 5~6%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것도 '퇴직연금 기금화' 필요성의 근거가 되고 있다. 가장 큰 쟁점(爭點)은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처럼 정권의 목적을 위해 '쌈짓돈'같이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민연금을 이용해 국민 모르게 고환율을 방어하고 국내 주식시장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노사정 합의문(合意文)은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 생활을 위한 급여이므로, 이를 기금화해 운영하는 수탁 법인은 오직 가입자의 이익만을 위해 기금을 운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국민의 노후 생활을 위한 공동 자산'이다. '오직 가입자인 국민의 이익만을 위해 기금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정치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을 이용하고 있다는 불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의 '잘못된 길'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과 확신이 없다는 뜻이다. 이번 노사정 합의가 시행되려면 국회의 입법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만큼, 충분한 논의와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국민과 노동자의 노후 재산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국가적 범죄(犯罪) 행위나 다름없다.
2026-02-09 05:00:00
[사설] 실망스러운 한동훈 토크 콘서트, 출마 선언할 결기도 없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8일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다. 여기서 한 전 대표는 "제가 제풀에 꺾여서 그만둘 것이란 기대를 가지신 분들은 기대를 접으라"라며 "저는 그런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국익을 키우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친한계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세(勢)를 과시했지만, 6·3지방선거 출마 또는 신당 창당 등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향후 행보(行步)에 관한 직접적 언급은 없었다. 실망스럽다. 한 전 대표 제명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일부 의원들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장동혁 대표를 향해 "재신임 투표" 또는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장 대표가 "재신임 투표로 당 대표직은 물론이고 의원직까지 걸겠다. 재신임을 요구하는 의원 및 단체장도 '정치적 생명'을 걸라"고 요구했다. 직(職)을 걸고 "재신임 투표" 또는 "사퇴"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안에서 고함만 지를 뿐,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싸울 결기가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6·3지방선거에서 대패하더라도 한 전 대표가 복귀하고,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국민의힘 지지층에 반(反)한동훈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와 친한계 의원들은 결기를 보여야 한다.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 대패" 운운하며 국민의힘 안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고 승부(한동훈 깃발을 세운 신당 창당)를 보라는 말이다. 지금처럼 '방구석 여포 식' 태도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하물며 더불어민주당과 싸움에서는 백전백패(百戰百敗)가 뻔하다. 내부 분열로 6·3지방선거, 2028 총선뿐만 아니라 향후 오랫동안 민주당 집권만 돕게 될 것이다. 한 전 대표가 본인 말대로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익을 키우기 위해 정치를 한다'면 친한계를 이끌고 '한동훈 당'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힘 복귀'를 기다리는 것은 보수 우파 국민들에게도 한동훈 및 친한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만 좋을 뿐이다.
2026-02-09 05:00:00
[사설] 건강보험 적자 비상, 과잉 진료·의료 쇼핑 차단하라
국민건강보험 재정(財政)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건보) 수지(收支)가 흑자일 때 적립한 준비금의 고갈 시점을 2030년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의 "당기수지 흑자 감소와 지출 증가의 간극을 메우지 않으면 재정 고갈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급여비 지출은 1997년 건보 체제 출범 후 최대인 101조7천억원이었다. 재정 악화의 핵심 원인은 '과잉 진료'와 '의료 쇼핑'이다. 고령화에 따른 진료 횟수 증가가 건보 지출을 늘리는 주된 요인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의료 행위의 가격 및 개수가 급여비(給與費) 급증의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환자가 진료를 받을 때 검사와 처치가 많을수록 병·의원의 수입이 늘어나는 행위별 수가제(行爲別 酬價制)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독감 환자에게 성병 검사까지 포함한 수십 가지 검사가 이뤄졌다는 사례는 제도의 허점을 보여준다. 실손보험을 통한 의료 쇼핑도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건보가 지원하는 급여 진료와 실손보험금을 받는 비급여 진료를 결합한 '혼합 진료'가 성행하고 있다. 병·의원들의 '영리 추구'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맞물린 결과다. 건보공단이 '적정진료추진단'을 꾸려 과잉 진료를 탐지(探知)하고 의료계 자문을 거쳐 계도와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꼭 필요한 조치다. 이를 통해 건보료 인상 요인의 일부라도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과잉 진료 관리가 의료 현장의 위축이나 환자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투명한 기준과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의료기관별 진료비 정보 공개와 불법 '사무장 병원'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위한 특별사법경찰 도입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건보는 사회적 연대(連帶)의 상징이며, 국민 삶의 안전망이다. 건보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미래 세대에 돌아간다. 과잉 진료를 바로잡고, 비효율을 걷어내고, 개혁을 통해 건강보험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2026-02-09 05:00:00
[관풍루] 정청래 민주당 대표, 2차 종합특검 후보 추천 관련 '당 인사 검증 실패로 누 끼쳐 죄송하다'며 이 대통령에게 간접 사과.
○…정청래 민주당 대표, 2차 종합특검 후보 추천 관련 '당 인사 검증 실패로 누 끼쳐 죄송하다'며 이 대통령에게 간접 사과. 이 대통령 연관된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재판 전 쌍방울 회장의 변호인 추천했다는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죠? ○…조국당과의 합당 관련해 민주당 내홍 깊어지자 조국 대표 "정부 출범 1년도 안 돼 당권과 차기 대권 두고 권력투쟁 벌이는 집권 여당 있었냐"며 일침. 조 대표가 얘기할 정도면 권력투쟁 맞는 듯. ○…빗썸의 대규모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로 온 나라가 난리벅구통. 존재하지도 않은 코인이 뿌려졌는데 장부상엔 정상 거래로 기록됐다고. 왜 미국의 금과 달러가 떠오르는 건지….
2026-02-09 05:00:00
2026-02-08 19:00:50
세계적인 연주자들 중에는 연주 당일까지 레퍼토리를 공개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음악의 흐름을 열어두는 선택이다. 안드라스 쉬프는 독주회에서 사전 프로그램을 고정하지 않거나, 연주 당일에야 곡의 구성을 밝히는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게 음악은 미리 완성된 계획이라기보다, 그날의 악기와 공간, 그리고 연주자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과정에 가깝다. 유자 왕 역시 연주자는 그날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태도로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다뤄왔다. 이들에게 프로그램은 고정된 약속이 아니라, 음악이 향하는 방향을 느슨하게 가리키는 표식에 가깝다. 화가들 역시 작품을 완성한 뒤에야 제목을 붙인다. 제목은 작업을 이끄는 설계도라기보다, 끝난 뒤 따라붙는 설명에 가깝다.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의미보다 작업의 과정을 이야기할 때 더 편안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습하는 동안 감정은 변하고 해석은 이동한다. 즉흥성과 유동성은 예술을 살아 있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독주회를 준비하며 나는 이 감각이 제도와 자주 어긋난다는 것을 느꼈다. 대관이나 지원사업을 위해 제출하는 서류 속에서 공연의 주제와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고정된다. 이후의 변화는 예외로 취급되고, 다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 사이 예술가는 계속 연습하고 새로운 영감을 만나지만, 서류 속 공연은 이미 멈춰 있다. 문제는 세부 조정의 폭이 아니다. 공연의 큰 주제가 한 번 정해지는 순간, 예술의 방향 자체가 묶인다는 점이다. 준비 과정에서 전혀 다른 감정이나 사유에 도달하더라도, 이미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예술의 타이밍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로 이월되는 셈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예술가는 스스로를 조정하게 된다. 더 나은 방향이 떠올라도, 이미 제출한 기획 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생각을 정리한다. 조심스러움은 미덕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많은 가능성은 시도되지 못한 채 남는다. 그래서 질문은 달라진다. 공연의 주제와 세부 내용보다, 예술가가 어떤 질문을 던져왔고 어떤 선택을 반복해왔는지를 먼저 신뢰하는 방식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 시간의 축적이야말로 하나의 기획서보다 더 정확하게 예술가를 설명해주지는 않을까. 예술은 본래 예측 가능한 결과를 목표로 움직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창작은 진행 중에 방향을 바꾸고, 계획과 다른 얼굴로 도착한다. 만약 제도가 공연 하나의 완성도를 먼저 증명받기보다, 예술가가 쌓아온 시간과 선택을 신뢰의 단위로 삼을 수 있다면 창작의 풍경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계획을 통제하기보다 시간을 존중하고, 결과를 관리하기보다 과정을 신뢰하는 방식 말이다. 예술을 관리하는 대신 예술가를 믿는 일. 그것은 방임이 아니라, 예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예술은 언제나 계획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고, 질문은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제도 역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지 않을까.
2026-02-07 10:06:46
[사설] 행정통합 성공시키려면 '지방분권 개헌' 필요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6·3 지방선거를 계기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 설 전후 국민투표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는 국민투표가 불가능하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 투표권을 제한한 국민투표법에 대해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 결정을 내린 이후, 국회가 법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이나, 급변한 현실과 시대정신을 담기에는 낡고 미흡하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주요 정당은 모두 개헌(改憲)을 공약했고, 이재명 정부의 1호 국정 과제도 개헌이다. 그러나 개헌 논의는 정치권의 끝없는 정쟁으로 뒷전으로 밀려났고, 국민투표법 개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명백한 국회의 직무 유기(職務遺棄)다. 개헌이 요구되는 이유는 권력구조 개편, 국민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地方分權) 등 여러 가지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을 촉구했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행정수도 개헌'을 언급했다. 시급(時急)한 것은 지방분권 개헌이다. 현재 추진 중인 행정통합의 성공을 위해서도 균형발전 정신을 담을 지방분권 개헌이 필요하다. 현행 헌법은 2개 조항을 통해 지방자치의 존재만을 선언적으로 규정할 뿐,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행정통합이 성공하려면 재정권, 조직권, 입법에 준하는 자치권 등 강력한 지방 권한(權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는 개별 법률이나 정부 방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헌법에 '지방분권 국가'를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의 권한 배분 원칙을 분명히 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지방선거와 지방분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하는 방안은 의미가 크다. 지역 일꾼과 함께 지역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투표법 개정이라는 첫 단추를 신속히 끼우고, 지방분권을 핵심 가치로 한 개헌 논의를 책임 있게 완수(完遂)해야 한다. 지금은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를 헌법에 새겨 넣을 절호의 기회다.
2026-02-06 05:00:00
[사설] 일본의 '전쟁 가능 국가' 개헌 움직임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
오는 8일 중의원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일본 열도(列島)가 '전쟁 가능 국가' 전환점에 섰다. 일본 총리 다카이치 열풍을 타고 개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전후 체제의 종언'을 향한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4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선 출마자의 55%가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개헌에 찬성했다. 특히 집권 자민당 98%, 일본유신회 100%, 제2야당인 국민민주당 91%가 개헌 지지 의사를 밝혀 개헌 찬성 세력의 '개헌선' 확보 가능성이 높아졌다. 패전 후 80년간 유지된 '평화헌법' 체제가 해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헌법 9조에 자위대의 근거 규정을 명기하고 '교전권 부인'의 빗장을 푸는 데 있다. 일본은 중국의 대만 공격을 '존립 위기'로 규정하며 재무장의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 여기에 중국 방어 역할을 요구하는 미국의 전략적 묵인까지 더해지며 일본의 '군사 대국화(大國化)'가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국민적 거부감이 컸으나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과의 마찰로 '안보 불안'이 확산돼 개헌 찬성 여론도 높아졌다. 개헌이 현실화돼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도 자위대의 개입이 가능해진다. 독도 영유권 분쟁과 맞물린 일본의 해상 전력 강화는 우리 해양 주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과의 갈등에 따른 동북아 군비(軍備) 경쟁도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크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주권적 사안이지만 평화헌법 정신은 유지돼야' 등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원칙론적 대응만으로는 안 된다. 일본 내 개헌 반대 정당 및 의원, 평화주의 시민사회 등과 개헌을 막기 위한 연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막을 수 없다면 '한국 동의 없는 자위대의 한반도 영역 진입 불가'를 국제적으로 공식화하는 '안보 가이드라인' 준비에 나서야 한다. 일본의 군사적 팽창에 대응해 독자적인 억제력을 고도화하는 실질적 대비책 마련도 마찬가지다.
2026-02-06 05:00:00
[사설] 대기업 300조 지방 투자, 정부도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화답하라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10대 그룹 총수(總帥), 경제 단체 대표들과 만나 지방 투자와 청년 채용 확대를 당부하자, 재계가 향후 5년간 약 300조원 규모의 지방 투자를 약속했다. 매년 60조원이 수도권 외 지방 경제에 투입되는 셈이다. 또 소외된 지방 청년들에게 신규 채용 기회를 제공하겠다고도 밝혔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영업 실적이 많이 올라 더 채용할 여력이 생겼다고 한다. 나날이 쪼그라들어 가는 지역 경제 입장에서는 이 같은 대규모 투자 약속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희소식이다. 경북 구미의 데이터센터와 안동의 바이오 백신 공장 증설, 포항의 포스코그룹 등 대구경북 권역도 이런 대규모 투자의 수혜(受惠)를 누릴 수 있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대구경북 소재 대학 졸업생들이 더 많은 취업의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투자만으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한계(限界)가 분명하다. 과거 공공기관 이전만 해도 사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傍證)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혁신도시를 형성하고 공공기관을 이전시켰지만, 주말만 되면 서울·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떠나는 '유령도시'로 20년째 방치되고 있다. 지역 인재 채용을 내세웠지만 쪼개기 채용 등의 꼼수를 통해 할당 비율 30%를 채우기는커녕 실제 고용 인원은 17%에 불과한 것이 얼마 전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재계의 통 큰 협력 약속에 대해 '투자할 만한 도시' 여건을 형성하는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5극3특' 발전 방안에 발맞춰 지역 경제를 심폐 소생시키려면 우선 대구경북 통합 메가시티 구축을 지원하고, 표류하고 있는 통합 신공항의 조기 조성을 통한 물류 허브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탄탄한 배후지 조성으로 정주 여건을 쾌적화하고, 지역 인재 할당 확대를 통해 지역 대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은 돈이 되지 않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2026-02-06 05:00:00
[관풍루] 김민석 국무총리, 관세 25% 뒤통수 맞은 주제에 입은 살아서….
○…오세훈 서울시장,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 요구하는 의원·단체장은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데 대해 "실망스럽다"고 언급. 멋대로 질러 놓고 책임은 안 지겠다? 조폭 사회도 그렇지는 않지. ○…김민석 국무총리, "정부의 여러 일을 소홀함이 없도록 챙기는 '군기 반장' 역할을 하겠다"고 재차 강조. 밴스 미 부통령과 '핫라인' 구축했다고 했으나 관세 25% 뒤통수 맞은 주제에 입은 살아서…. ○…더불어민주당, 정책 의원총회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은 폐지하고 공소청에 보완수사요구권만 허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쇼'하고 있네,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 거부하면 그만인데.
2026-02-06 05:00:00
[날씨] 2월 6일(금) "대체로 구름 많겠으며 울릉도 독도는 눈"
2026-02-05 18:40:12
[기고-박영석] 2·28민주운동 정신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가 지난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번 지방선거 때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원포인트 개헌'도 하자고 제안했다. 한 원내대표의 말대로 만약 개헌이 이뤄진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 정신도 반드시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 2·2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는 주장과 노력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역 각계가 주축이 돼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18년 3월에는 대구시의회가 '2·28민주운동 헌법 전문 수록 촉구 건의문'까지 채택했고, 이것을 당시 청와대와 국회의장, 총리실 및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사)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도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주요 5당 대표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개정 헌법 전문에 2·28민주운동 전문 명시를 건의하고 건의문을 전달했다. 2·28기념사업회는 건의문에서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에 국민들이 지키고 이어가야 할 소중한 민주적 가치가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민주운동을 말하지 않고 민주적 가치를 말하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만큼이나 허약하다"고 강조했다. 권영진 전 대구시장도 2020년 5월 18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45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국회 헌법 개정 논의 때 2·28민주운동의 정신도 반드시 헌법 전문에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 지도자들이 대구 두류공원에 있는 2·28민주운동기념탑을 찾아 '2·2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공감하며 했던 약속들도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전문의 4·19혁명은 바로 1960년 2월 28일 경북고 등 대구시 내 8개 국공립 고교 학생 2천200여 명이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부정에 항거하며 일어난 2·28민주운동이 그 효시가 되었다. 2·28은 1960년 3월 15일 실시될 예정이던 대통령·부통령선거를 앞두고 2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민주당 장면 부통령 유세장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인데도 학생들을 강제로 등교시킨 것이 발단이 돼 고등학생들이 합세해 들고일어난 사건이다. 2·28은 이후 3·15의거,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2023년에는 2·28 시위 사진 등 당시의 기록물들이 4·19혁명 기록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2·28민주운동의 숭고한 정신의 역사적 계승을 위해 정부는 늦은 감이 있지만 2018년 2월 6일 2·28민주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때부터 해마다 기념행사도 정부가 주관한다. 다가오는 2·28은 올해 66주년을 맞는다. 10대 나이로 시위에 참여했던 2·28 주역들도 이제는 팔순 중반의 나이가 됐고 유명을 달리한 분도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 2·28이 하루빨리 헌법 전문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 본다.
2026-02-05 15: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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