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30 18:51:01
이재명 대통령이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전쟁과 적대의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서해 수호 영웅들이 우리에게 남긴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한 뒤, 퇴장하면서 "북한한테 사과를 받도록 노력해 달라"는 천안함 유가족의 간청(懇請)에 대해 "(우리가) 사과를 하라고 해서 (북한이) 사과를 하겠습니까?"라고 답변해 논란이다. 이재명 정부의 무기력(無氣力)과 무책임(無責任)을 보여 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탓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28일 "북한이 대화하란다고 해서 하겠느냐"면서 비꼬아 비판했다. 거듭된 대화 요청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향해 대화를 구걸(求乞)하다시피 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태도와,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북한이 사과할 리가 없으니 (이재명 정부가) 사과를 요구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며 지레 포기(抛棄)하는 듯한 행태 사이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대통령의 답변은) 남북 관계의 냉혹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면서 "정부는 영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흔들림 없는 안보(安保)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도 "대통령의 발언은 사과 요구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도발(挑發)에 책임을 묻고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방법에 대한 현실적이고 깊은 고민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겉으로는 자주국방(自主國防)을 내세우면서도 우리의 국방·안보를 훼손하는 듯한 행태가 거듭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이 눈에 띄게 축소되고, 이란 전쟁에 따른 주한미군 방공무기 반출에 대해 "대북 억지력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안보 환경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조8천억원에 달하는 국방비 미지급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던 이재명 정권은 2차 추경 심사 과정에서 또 국방 예산 900억원 이상을 삭감했다. 북한에 대한 굴종(屈從)이 평화 구축일 수는 없다.
2026-03-30 05:00:00
[사설] 7% 고금리 시대, 고금리 대출 우선 상환 등 부채 구조 변환 시급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 상단(上段)이 3년 5개월 만에 연 7%를 돌파했다. 기준금리 동결에도 대출금리가 계속 오르는 상황이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위협하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자, 시장금리 지표인 은행채(銀行債) 금리가 반응한 결과다. 은행채 금리는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고, 대출금리는 은행이 고객에게 공급할 때의 가격이다. 은행채가 오르면 대출금리는 거의 자동으로 오른다. 기준금리보다 시장금리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는 크게 약화됐고, 오히려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가계대출의 구조적 취약성이 문제다. 주담대 금리 급등으로 대출자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은 1천93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며, 이들 10명 중 6명이 3개 이상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다중(多重)채무자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금리가 0.75%p만 올라도 자영업자 이자 부담은 5조3천억원(1인당 평균 165만원) 늘어난다. 소득보다 이자가 더 빨리 늘어나는 구조인데, 금융 시스템 전반의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 가처분소득이 이자 비용으로 흡수돼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와 폐업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자산 가격도 떨어질 수 있다. 7%대 금리는 '영끌'로 지탱해 온 부동산 시장이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급매물 출현과 담보 가치 하락이 맞물리면 금융권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관리에 비상이 걸리고, 제2금융권을 시작으로 부실 채권이 급증할 수 있다. 막연한 낙관론은 금물이다. 금리 인하를 기다리며 버티기보다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시점 등을 활용해 고금리 대출부터 상환하는 부채(負責) 재조정이 시급하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단기적 완화 조치에 그쳐선 안 된다. 일시적 만기 연장이나 상환 유예는 잠재 부실을 숨겨둘 뿐이다. 모든 차주를 동일하게 지원하는 대신 회생 가능성을 기준으로 지원과 정리를 구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부채가 떠받치는 성장은 끝났다.
2026-03-30 05:00:00
[사설]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 유럽에서 효과 검증된 고유가 대응책
중동 전쟁으로 인한 유가 고공(高空) 행진 장기화 우려에 따라 에너지 절약 및 국민 이동권 마련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국제 유가는 배럴당 60달러대에서 110달러대까지 치솟았고,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ℓ(리터)당 2천원 안팎까지 급등한 상태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계속 이어질 경우 배럴당 150달러, 심지어 200달러에 달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정부는 고유가에 따른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류세 인하와 최고가격제 등 정책을 발 빠르게 시행했지만 역부족이다. 자가용 자제 및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인 정책이 필요하다. 독일은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 당시 3개월간 전국 대중교통을 월 9유로(1만2천원대)에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9유로 티켓'을 도입했다. 3개월간 총 5천200만 장이 팔렸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180만t 감소, 물가 상승률 0.7%p 억제,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라는 성과를 거뒀다. '당분간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기 위해 이 티켓을 구입했다'고 답한 이용자가 43%에 달했다. 오스트리아도 같은 해 '클리마티켓' 연간 패스를 대폭 할인하며 대중교통 이용률을 끌어올렸다. 조국혁신당 대표가 29일 제안한 '출퇴근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 지원'도 같은 맥락(脈絡)이다. 유류세 보조금 폭이나 대상 등 조정을 통해 대중교통 무료 이용 재원(財源)을 확보하면 예산 부담을 덜 수 있다. 교통 소외 지역 주민에 대한 공유 셔틀 서비스 확대 등 별도의 보완책도 병행돼야 한다. 현 정부의 포퓰리즘 논란이 없지 않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유가 급등에 따른 한시적 대중교통 무료 이용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해선 안 된다. 자가용 이용 억제, 민생 보호, 에너지 절감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정책이다. 나아가 유가가 진정 국면으로 돌아선 뒤에도 기존 및 신규 유인책을 통해 장기적인 대중교통 활성화로 이어갈 필요도 있다.
2026-03-30 05:00:00
[관풍루]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구시장 이진숙'이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홈 개막전에 나타나.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고환율 이중고 항공사들, 운항 편 줄이고 각종 요금을 올리며 수익성 방어 나서. 항공유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30%에 달하기 때문이라는데. 이러다 하늘길도 막힐라. ○…정부, 담배·주류 가격 인상을 위한 건강증진부담금 확대·신설 방안 공개 하루 만에 "당장 검토하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서. 6·3 지방선거 지나고 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대구시장 이진숙'이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홈 개막전에 나타나. '컷오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갈 길 간다?".
2026-03-30 05:00:00
2026-03-29 18:55:47
나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았다. 그 선택은 곧, 다수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 선택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당시 정부는 백신이 안전하다고 했고 접종을 강하게 권했다. 사실상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나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맞지 않기로 했다. 그 이후의 생활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어딜 가든 접종 여부를 확인해야 했고, 식당이나 카페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제약이 있었다. 출근과 연주를 앞두고는 3일에 한 번씩 보건소를 찾아 항원검사를 받아야 했다. 몇 달 동안 이 과정을 반복했고, 검사 결과지를 들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됐다. 같은 시기, 누군가는 출근을 위해 백신을 맞았고, 누군가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선택을 바꿨다. 각자의 상황과 판단 속에서 내린 선택이었고, 그 선택 자체를 옳고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그 선택을 둘러싼 조건은 같지 않았다. 가장 부담이 컸던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나는 늘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안 맞았다고요? 왜요?"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라기보다 판단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 존중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관계에서 더 크게 다가왔다. 가족들도 대부분 백신을 맞았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감염병 상황에서 공동체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우리는 정말 선택을 하고 있었던 걸까. 형식적으로는 권고였지만, 실제로는 접종 여부에 따라 일상의 범위가 달라졌다. 선택하지 않을 경우 감수해야 하는 제약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개인의 선택을 제한했다면, 정책의 근거와 과정은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충분히 설명됐어야 한다. 최근 감사 결과를 보면 그 과정이 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물 신고 처리와 대응 과정에서 투명성이 부족했고, 보다 신중한 조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책이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면,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설명할 책임이 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왜 더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은 신뢰가 아니라 순응에 기반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다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설명이 필요한 존재로 보기 시작했을까.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의 판단보다 집단의 흐름이 더 빠르게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선택은 쉽게 배제된다. 그때의 문제는 선택 자체라기보다, 서로의 선택을 바라보는 방식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쉽게 나뉜다. 다수와 소수, 옳고 그름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 기준이 항상 충분히 검토된 결과였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백신을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2026-03-27 13:39:32
[사설] 또 대법원장 탄핵 겁박 민주당, 이 정도면 습관성 질병이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소추안 초안을 공개했다. 초안에는 "조 대법원장의 행위는 사법 농단이자 총칼 대신 판결문을 동원한 '현대판 사법 쿠데타'"라며 "별동대를 동원해 직권 남용(濫用)을 하고 내란 사태에 동조했다"고 적시(摘示)했다.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과정에서 사법권을 남용했으며, 12·3 내란에 동조하고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사퇴 압박(壓迫)은 작년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래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장 청문회를 추진했고, 숱하게 사퇴를 공개 요구했다. 법왜곡죄, 재판소원 허용(사실상 4심제) 등 이른바 '사법 3법'에 대해 조 대법원장이 우려를 표시하자 또 사퇴 및 탄핵 겁박(劫迫)을 했다. 민주당이 사법 3법을 강행 처리하고, 대법원장 사퇴와 탄핵을 겁박하는 것은 결국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대한 복수이자, 현재 중지돼 있는 이 대통령 관련 재판들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작년 9월 민주당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여론이 악화되자 청와대는 "대법원장 거취 문제를 논의한 적 없고, 앞으로 그럴 계획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민주당의 계속되는 대법원장 사퇴 및 탄핵 압박에도 대통령은 침묵(沈默)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및 탄핵 압박이 대통령 뜻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민주당의 조 대법원장 탄핵 추진을 제지해야 한다. 만약 청와대 뜻이 탄핵에 있다면 민주당은 국회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과연 조 대법원장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違反)했는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과 민주당이 분명히 져야 한다. 도대체 국회가 민주주의 근간(根幹)인 삼권분립을 이토록 흔들고 무시하는 경우가 우리 헌정사에 또 있었는가. 지금 민주당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2026-03-27 05:00:00
[사설] 대구 동성로 복합청사와 호텔 건립, 원도심 부활의 마중물 되려면
대구의 대표 상권인 동성로가 재도약의 기로(岐路)에 섰다. 중구청이 청사 문제 해결을 위해 대구백화점(대백) 본점 부지로의 이전을 검토하고, 인근에 중형급 관광호텔 건립도 진행 중이다. 2021년 폐점 이후 동성로 쇠락(衰落)의 상징이던 대백 본점 활용이 핵심이다. 중구청이 구상하는 '복합청사'는 행정 공간을 넘어 상업·문화 기능을 결합한 형태다. 다만 대백 본점 매입을 위한 막대한 예산 확보와 기존 청사 부지 활용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 낼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 7천억원가량의 사업비를 전액 예산 대신 민간 자산관리공사(KAMCO) 등의 위탁 개발로 충당한 서울 서초구 사례처럼, 가용 기금이 1천400억원 수준인 대구 중구가 1천억원이 훌쩍 넘는 대백 본점 매입과 건립비를 감당하려면 민관 복합 개발을 통한 재정 효율화가 필수다. '롯데스퀘어(롯데시티) 호텔' 건립 추진도 고무적이다. 동성로는 숙박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관광객을 체류형(滯留型) 소비로 이끄는 데 한계가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 수요를 흡수할 4성급 호텔의 등장은 야간 상권 활성화와 의료 관광 등의 동반 성장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해결 과제도 남아 있다. 호텔 건립은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입지 문제로 교육청과 법적 공방 중이다. 최근 1심에서 시행사가 승소하며 사업에 속도가 붙었으나 항소심이 진행 중인 만큼 최종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공동화(空洞化)로 기능을 잃어 가던 원도심을 행정과 관광이 어우러진 복합 거점으로 재편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27%에 육박하는 동성로 건물 공실률은 민간에만 맡겨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임계점에 도달했다. 동성로에 필요한 것은 단편적 경관 개선이 아니라 상권의 체질을 바꾸는 근본적 혁신이다. 추진 중인 '동성로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연계해 공공 청사, 관광 숙박, 문화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원도심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대구시와 중구청은 동성로가 대구의 자부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 집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2026-03-27 05:00:00
[사설] "한조(韓朝) 관계"라니, 가볍기 짝이 없는 통일부 장관의 종북 망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 학술회의(學術會議) 개회사에서 "대한민국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남북 관계이든, 한국-조선 관계, 한조(韓朝) 관계이든,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서 남과 북이 함께 공동 이익을 창출해 나가길 강력히 희망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이 공식 석상에서 남북 관계를 '한조 관계'라는 표현으로 처음 사용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확정한 이후 기존의 대남 단절 기조를 반영해 새롭게 쓰고 있는 '조한(朝韓) 관계'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조한 관계로 부르는 것은 민족적 동질성을 무시하고 남한 체제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맞서 기존의 '평화적 두 국가론'을 강조하려는 뜻이었다고 해명(解明)할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노림수에 말려들었다' 또는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다'는 힐난을 면하기 어렵다. '적대적 두 국가론'이든 '평화적 두 국가론'이든, 남북한이 완전히 서로 다른 별개의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이미 잇따른 종북(從北)적 주장으로 물의를 빚어 왔다. 우리 헌법 제3조(영토 조항) 및 제4조(평화통일정책)를 위배하면서까지 "남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으로 두 국가"라며 통일부의 명칭을 '평화통일부' '한반도부'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은 이재명 정부가 왜 수용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역겨운 자기모순(自己矛盾)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한 묶음으로 묶어 "남북 관계 적대 행위 사과"를 내세우고, 9·19 군사합의 복원 전 우리의 군사훈련을 먼저 중지하자고 주장한 것도 정 장관이다. 대한민국 공직자인지, 북한 대변인인지 모를 지경이다. 내부의 적(敵)만큼 무서운 안보 위기(安保危機)는 없다.
2026-03-27 05:00:00
[관풍루]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 "한국은 비적대국"이라고 규정하며…석유 수급 숨통 돌릴까?
○…자산 다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고 벌이의 40% 넘는 돈을 대출 상환에 쓰는 고위험 가구가 1년 만에 20% 가까이 증가. 이 중 2030이 3명 중 1명이라고. 무리한 '영끌' '빚투'의 무서움 알아야.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 "한국은 비적대국"이라고 규정하며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위해선 이란과의 사전 협력과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고. 석유 수급 한숨 돌릴까? ○…지방선거 앞두고 국민의힘이 진행 중인 청년 인재 발굴 프로그램에 이혁재가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잡음. '음주 폭행·체납' 전력에 과연 오디션 참가자들이 심사 결과 받아들일는지.
2026-03-27 05:00:00
2026-03-26 19:01:58
[사설] 원전 포함 에너지 수급 방안 전면 재검토 불가피해졌다
세계 8위의 에너지 다소비국(多消費國)인 우리나라가 미-이란전으로 인해 심각한 에너지 안보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우리 수입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그 99%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높은 의존도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곧 대한민국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음을 간과한 측면이 크다. 특히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전기·가스 요금에 유가와 천연가스 요금 등 원가 상승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를 내포(內包)하고 있어 화석 연료를 물 쓰듯 하는 소비 습관에 오래 길들어 있다. 당장 석유와 천연가스도 문제지만 비닐봉지, 포장 용기, 택배 물품, 물티슈 등 일상생활 속 사용 물품 공급의 연쇄 타격이 예상돼도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단순히 전쟁으로 인한 일시적 공급 절벽을 걱정할 일이 아니라 우리 에너지 정책에 있어 '안보'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제기되는 이유다. 그나마 한국이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은 세계적 수준으로 떠오른 원자력 발전 기술이지만, 과거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가동 역량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다. 정비 중인 5기를 포함해 국내 원전 26기 중 10기가 멈춰 있으니,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진 것이다. 뒤늦게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카타르가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공급 불가를 선언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율을 줄이기 위해서 원전 가동률을 80%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LNG는 장기(長期) 비축(備蓄)이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이번 전쟁으로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라는 관점에서 전체 화석 연료와 원자력, 신재생 에너지의 적정한 수급 계획을 재점검해야 한다. 지금 중동 전쟁이 휴전된다고 해도 파괴된 에너지 설비가 완전히 회복돼 정상화되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망이 휘청거려선 안 될 일이다.
2026-03-26 05:00:00
[사설] 에너지 절감 국민 협조 얻으려면 정부도 역할 제대로 해야
정부는 2011년 이후 15년 만에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승용차 5부제를 25일 시행했다. 4회 이상 상습 위반자는 징계(懲戒)가 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라" "노인 대중교통 무료, 출퇴근 시간엔 제한 연구해 보라"고 한 만큼, 조만간 민간 부문의 자동차 운행 제한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1991년 걸프전 이후 35년 만이다. 정부는 또 국내 석유 사용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위 50개 기업에는 절감 계획을 요구할 방침이다. 국민적 불편(不便)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번 조치로 절약되는 석유는 국내 하루 소비량의 0.1% 수준인 3천 배럴 정도다. 미-이란 전쟁에 따른 원유 대란으로 빚어진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절감 규모 자체보다 민간의 자발적 절약을 유도하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강제적 차량 운행 제한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조만간 도입할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 석유 최고가격제를 실시해 석유를 마음 놓고 쓸 수 있도록 한 것은 근시안적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정부는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줄이기 위해 5월 중순까지 정비 중인 원전 5기를 재가동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탈원전(脫原電) 정책에 발목 잡힌 원전 5기가 놀고 있다. 미국(60년, 80년), 프랑스(60년), 일본(60년+α) 등은 원전 운전을 연장하는데, 유독 한국만 40년 만에 원전을 폐쇄하려고 고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정부가 에너지 대란(大亂)을 자초하는 셈이다. 일본 다카이치 정부는 중앙아시아·남미·캐나다·미국 등지에서 그동안 원유 확보를 위한 노력에 성과를 거두고 26일부터 비축유(備蓄油)를 방출, 차량 운행 제한 없이 위기를 넘기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이날 뒤늦게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TF(태스크포스)를 본격 가동한 것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제 역할(役割)을 제대로 해야만 민간의 자발적 에너지 절약 노력도 보람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2026-03-26 05:00:00
[사설] 대통령 사건 '위법 국조'에 대통령 전 변호인까지 동원이라니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하는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가 이재명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를 무죄로 만들기 위한 '빌드 업' 작업이라는 비판과 함께 "위헌"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조사 대상 7개 사건에 '이재명 대통령이 관련된 대장동·위례 신도시 사건,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등이 포함돼 있어 민주당이 입법부 권한을 악용해 공소 취소 관철(貫徹) 또는 재판에 노골적으로 영향을 끼치려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 소속 국조 위원 중에는 김동아, 양부남, 이건태 의원 등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 참여하고 있어 "변호사는 법정에서 변론을 해야지 왜 대통령 재판과 관련된 국정조사를 벌이느냐" "이러려고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총선에서 공천했나"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과 법조계의 비판에도 민주당은 "적법한 국정조사" "진실 규명을 위한 당연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의 2는 '국정조사는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적법한 국정조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진실 규명'을 원한다면 중지돼 있는 재판을 신속하게 재개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면 된다. 재판으로 유무죄를 따지면 될 사안임에도 사건 관련 검사, 판사 등을 비롯해 쌍방울, 호반건설 등 기업들을 샅샅이 조사하겠다는 것은 '재판 흔들기'로 보일 뿐이다. 이번 국정조사 강행과 관련해 민주당은 "견제받지 않은 검찰의 기획 수사와 표적(標的) 수사를 국회 차원에서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推進)을 위한 모임까지 결성한 만큼 국정조사가 '재판에 관여할 목적'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조 자체가 위법 소지가 큰 것이다. 나아가 만약 국조 특위가 특정 사건에 대해 '무죄'라고 규정한다면 그 자체가 재판부에 대한 압박으로 또 하나의 '위법'이 될 수 있다.
2026-03-26 05:00:00
[관풍루] 중동 전쟁 불똥 '노령층 무임승차' 논란으로 튀어…노령층에 양해·협조부터 구하는 게 우선.
○…중동 전쟁 불똥 '노령층 무임승차' 논란으로 튀어. 이재명 대통령 '출퇴근 시간대 노령층 무료 이용 제한 방안' 지시 후 심리적 위축감 호소하는 고령자 적잖아. 노령층에 양해·협조부터 구하는 게 우선.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 컷오프 논란에 이정현 공관위원장, "공천 결과로 평가받겠다"고 밝혀. 소신·변화·경쟁·전략 다 좋은데 그 결과가 김부겸이면 어떻게 하실라고? ○…트럼프 미 대통령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군함 파병 요구한 가운데 이란은 사전 협의한 '비적대적 선박'에 대해서만 해협 통과 허용 방침 밝혀. 이수일이냐 김중배냐, 실용 외교 참 어렵네.
2026-03-26 05:00:00
2026-03-25 18:53:28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39>역사적 서사로 승화된 다산의 가족사, 매조도
매화나무 가지가 화폭 안으로 살짝 드리워졌고 그 아래는 모두 글씨다. 봄이 오니 녹색 여린 햇가지가 묵은 가지에서 새로 뻗어 나왔다. 가지 끝에는 벌써 꽃이 져버린 자주색 꽃받침도, 활짝 핀 흰 매화도, 반쯤 핀 꽃봉오리도, 이제 겨우 맺힌 봉오리도 있다. 한 나무의 같은 가지에서도 꽃송이들은 제각각의 속도로 꽃을 피운다. 그 한 가지에 앉은 두 마리 새. 봄이면 익숙하게 눈에 들어오는 매화요, 새다. 붉은 부리에 연한 갈색조인 새의 깃에는 푸른색, 흰색, 검은색이 섞였다. 우리나라 산야에서 흔히 보이는 참새목에 속하는 방울새 또는 멧새 계열의 작은 들새다. 다정한 새 두 마리는 머리는 같은 방향인데 눈동자는 서로 다른 쪽을 향한다. 유려한 솜씨는 아니지만 세심하게 관찰했고 정성껏 표현했다. 이 '매조도'는 다산(茶山)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객 생활을 한 강진에서 13년째 되는 해에 그렸다. 정약용의 시서화와 그의 가족 사랑이 한 폭에 다 들어있다. 시와 발문으로 이루어진 글씨에 그림을 슬쩍 얹은 구성도 남다르다. 굳이 그림을 더한 것은 딸에게 남긴 기념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바탕은 부인 홍씨가 강진으로 보내온 시집올 때 가져온 치마였다. 이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겐 훈계의 말을 쓴 글씨첩을 만들어주었고 외동딸에게는 이 작품을 줬다. 정약용의 6남 3녀 중 2남 1녀만 장성했다. 자신의 마음이 담긴 시를 핵심으로 하면서 꽃과 새 그림을 더해 딸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축원했다. 잔글씨로 덧붙인 설명은 자신의 가족 이야기인 동시에 지금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적 서사다. 〈strong〉가경 18년 계유(1813년) 7월 14일 열수옹이 다산 동암에서 쓰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지 몇 해 지나 부인 홍씨가 헌 치마 6폭을 보내왔다. 세월이 오래돼 붉은색이 바랬다. 잘라서 4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로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남긴다.〈/strong〉 〈strong〉嘉慶十八年 癸酉七月十四日 冽水翁書于茶山東菴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敝裙六幅 歲久紅渝 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strong〉 '매조도'는 정약용의 이름값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다산 시서화의 백미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3-25 10:22:04
그림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윤에게 미술 교사는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권했다. 하지만 윤은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윤도 아르바이트를 관둘 수 없었다. 어머니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지만 윤은 어머니의 짓무른 눈을 보면서 "아녜요. 어머니, 그림은 나중에 그려도 돼요." 라고 말했다. 윤은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된 때문이었다.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도 돌봐야 했다. 다행히 병역판정검사에서 생계 사유가 인정돼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은 윤은 물류센터의 배달기사로 취직했다. 윤의 어깨는 멍이 든 것처럼 거무죽죽했다. 하루 두세 번은 5층까지 걸어서 배달했다. 지하실에 이르는 계단은 왜 그렇게 가파른지 생수 서너 박스를 옮기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사달이 났다. 배달하던 박스를 떨어뜨렸는데 하필이면 개당 가격이 10만원을 상회하는 수입 식기였다. 그럴 경우 배상액을 월급에서 제하는 것으로 계약서에 명기돼 있었다. 근무평점이 떨어질 건 불문가지였다. 그는 고객에게 개인적인 보상을 제안했다. 당신 월급으로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걸 깨뜨려? 고객이 내지른 말이 그의 뼈를 때렸다. 거듭 용서를 빌었지만 고객은 끝내 고객센터에 신고했다. 근무평점이 하락하는 것보다 차가운 세태가 그를 아프게 했다. 심신이 피폐해진 윤은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윤이 전전한 직종은 스무 개가 넘었다. 식당 주방보조, 창고 물품정리, 공사장 막일, 과수원 농약 살포, 빌딩 경비, 채낚기어선 오징어잡이, 도로포장 차선도색, 이삿짐센터 인부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였다. 그러니 본격적인 그림 공부는 언감생심이었다. 전시회 한 번 가기가 아버지 산소 가는 것보다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윤은 꿈을 잃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크로키와 데생을 했다. 어떤 일을 하든 그의 필수품은 작은 무지노트와 연필이었다. 그림 공부를 위해선 잠과 휴식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윤은 그제야 어깨를 폈다. '지나온 풍경' 이란 제목으로 첫 전시회를 기획하던 그때 윤의 나이는 66세였다. 유화로 그린 작품들의 소재는 다양했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그림만 봐도 그의 이력을 짐작할 터였다. 담당 큐레이터가 리플릿에 기입할 한 줄짜리 부제목을 물었을 때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뗐다. "이 그림들은 온전히 나라는 튜브를 짜서 그렸습니다."
2026-03-25 10:18:06
매년 연말이면 영화전문가와 매체들이 꼽은 그해 최고 영화를 발표한다. 대개 10위까지 순위를 매기지만 상위 서너 편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 역시 순위를 매기곤 하는데 2025년 내가 꼽은 1위는 '기차의 꿈'이었다. 고민할 여지가 없었고, 이전까지 본 모든 영화를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찾아보니 원작이 있었다. 2002년 출간 이래 평단과 독자에게 변함없이 호평 받은, 2024년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데니스 존슨의 '기차의 꿈'이다. "미국 철도의 중요한 업적은 미국이 강대국으로 발돋움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고, 게다가 그것을 한 인간의 일생보다 짧을 정도로 단기간에 이뤄냈다."(크리스티안 월마·철도의 세계사) 철도는 단지 승객을 많이 끌어들인 것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미국인들은 강을 건너고 숲을 헤치고 사막을 건너 대륙 반대편에 이르는 장대한 철도를 꿈꿨다. 미국의 꿈에 일조한 숱한 노동자들 가운데 1886년 그레이트 노던 철도를 타고 아이다호까지 온 (친부모를 잃고 생일도 알지 못하는) 소년이 있었다. 고모 손에 자라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벌목공이 됐고 철도 공사장에서 일했으며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 그는 글래디스 올딩과 결혼을 했고 어여쁜 딸 케이트도 얻었다. 그러나…. 행복의 크기와 무관하게 예기치 않은 상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불의의 화재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 그런데도 그레이니어에게 슬픔은 늘 거기 있던 것처럼 삶의 무게로 자리 잡는다. 즉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 자체를 인정한다. 글래디스와 케이트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유령 같은 고립된 일상이 이어질 때 슬픔은 조용히 그레이니어의 오두막에 내려앉는다. 이 짧은 소설이 가진 힘과 근력이다. 132쪽에 불과한 소설이 이토록 큰 울림으로 다가온 까닭은 단순하면서도 외로운 단어들에 있을 터. 그러므로 책의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그레이니어의 인생을 수식하는 문장은 하나의 가치를 품고 살아온 한 인간에게 바치는 최대한의 예의로 읽힌다.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자주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129쪽) '기차의 꿈'은 19세기에 태어나 20세 중반까지 산 남자, 벌목공으로 철도 시대의 주역이었으며 비행기를 타봤고 텔레비전을 통해 우주 시대가 열리는 장면도 목도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슬픔과 고독을 이기려 애쓰지 않으면서 비탄에 빠져 생을 버리지도 않은 나무 같은 사내,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과 그가 견딘 시간에 대한 헌사다. 기차가 지나간 뒤에 풍경이 달라지지 않듯이 인간의 삶도 그렇게 계속된다는 엄연한 진실. 작가 데니스 존슨의 전언일 것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2026-03-25 1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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