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40> 진달래 피어나는 청명한 봄날의 나들이
혜원 신윤복의 '연소답청'은 한량과 기녀의 봄나들이 모습이다. 답청은 파릇파릇 돋아난 풀을 밟고 거닐며 새봄의 자연을 즐기던 삼월삼짇날 세시풍속이다. 3.3으로 양의 수가 겹치는 양기 왕성한 날이라 남성들은 이 날을 각별히 기념했다. 우리말로는 삼질이라고 했고, 한자로는 상사(上巳), 원사(元巳), 중삼(重三), 상제(上除), 삼진일(三辰日), 답청절(踏靑節)로도 부른 명절이다. 진달래꽃을 따다 동그랗게 빚은 찹쌀 반죽에 꽃잎을 올려 기름에 지진 진달래 화전(花煎)은 빠트릴 수 없는 봄맛이다. 여린 미나리 국에 향긋한 쑥떡을 차려놓고 놓고 친구를 초대해 술자리를 함께하기도 했고, '연소답청'처럼 탈것을 마련해 기생을 동반하고 교외로 놀러 나가기도 했다. 이날 세 팀이 도성을 벗어나는 세 갈래 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생은 조랑말을 탔고, 한량과 시중꾼은 걸어간다. 두 팀은 이미 도착해 있는데 제일 아래쪽 팀이 지각이다. 말 위의 기생은 쓰개치마가 펄럭이고, 한량은 급한 걸음에 갓이 벗겨져 뒤로 넘어가 상투가 드러났고 옷자락이 휘날린다. 고삐를 잡은 소년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이들 중 리더는 제일 오른쪽 한량이다. 허벅대님을 한쪽 무릎에 맵시 있게 매었고, 겉옷은 양쪽 옷자락을 뒤로 묶어 걸음걸이를 간편하게 했으며, 그 안에 붉은색과 흰색의 길고 짧은 누비조끼를 입었다. 아직 봄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라 한량들은 모두 누비조끼를 갖추었지만 이 분은 특별히 두 벌을 겹쳐 레이어드 룩으로 멋을 냈다. 마부의 벙거지를 뺏어 쓰고 말고삐를 직접 잡으며 운전기사(?)를 자처한다. 이 분의 파트너는 벌써 긴 장죽을 물었고, 언덕의 진달래를 꺾어 머리에 꽂아 봄놀이 기분을 냈다. 한참을 기다렸나보다. 졸지에 모자를 뺏긴 견마잡이는 한손에 여전히 채찍을 든 채 다른 손에 서방님의 갓을 들고 엉거주춤 대기 중이다. 바야흐로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와 봄기운이 무성해지는 때다. 얼었던 땅이 녹아 부풀어 오르며 생명이 움트고 꽃이 피어난다. 청명한 봄이 오면, 마땅히 산과 들과 강을 찾아 이 계절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사유하는 즐거움을 누릴 일이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2026-04-03 20:11:54
[사설] 트럼프 '입'만 보는 주식시장, 신중하게 접근해야
코스피는 지난달 31일 224.84포인트(4.26%) 대폭락하면서 5,100선이 무너졌다가, 바로 다음 날인 1일 426.24포인트(8.44%) 급등하며 단숨에 5,400대를 회복했다. 그런데 2일 또다시 244.65포인트(4.47%) 급락했다. 아무리 이란 전쟁이라는 대외 불확실성이 크다고는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폭등락(暴騰落) 장세이다. 투자자와 언론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에만 너무 주목하고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는 현상이 주식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 폭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1일 폭등은 "이란의 새 정권 대통령이 방금 미국에 휴전을 요청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자유롭게 개방되고 위험이 제거된 시점에 이를 검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이 종전(終戰)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전환점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오전 대(對)국민 연설에서 이란 전쟁의 당위성과 성과를 강조한 뒤, "앞으로 2~3주 동안 (이란에 대해)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가해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했다. 투자자 및 언론의 예상(豫想)과는 전혀 다른 발언이 나오자, 코스피는 연설 도중 이미 하락세로 돌아섰다. 사실 미국은 휴전·종전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도 중동지역에 군사력을 대폭 증강시키고 있었다. 단지 대이란 압박용으로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엄청난 군사력을 집중시킨다는 해석은 비합리적이다. 전쟁 중인 정치 지도자의 말 속에는 진심과 함께 유인술·기만술도 섞여 있기 마련이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아닌, 냉정하고 종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2026-04-03 05:00:00
[사설] 중동발 물가 폭등, 26조원 추경 기름 붓지 않도록 세심한 지출 설계 필요
중동 전쟁이 물가를 뒤흔들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2%는 신호탄(信號彈)에 불과하다. 석유류 가격이 9.9% 급등해 물가를 0.39%포인트(p) 끌어올렸는데, 국제 유가는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전(開戰) 33일 차인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2∼3주에 걸쳐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하자 국제 유가는 가파른 오름세로 돌아섰다. 국책연구기관 분석에 따르면, 전쟁이 조기에 끝나도 유가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낙관적 시나리오조차 배럴당 90달러를 예상하며, 최악의 경우 170달러 이상까지 내다본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로선 끔찍한 현실에 놓이게 된다.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도 변수다. 저소득층, 소상공인·자영업자, 수출기업 등의 유류비·물류비 부담을 덜어 줘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다만 기존 예산 재배치 등을 제외해도 시장에 추가로 풀리는 20조원대의 돈이 가져올 물가 상승 압력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인플레이션 불안 요인은 다층적(多層的)이다. 전쟁이 불러온 원자재 비용 상승, 고환율로 인한 수입물가 압력, 재정이 촉발하는 물가 인상이 한꺼번에 닥치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벌어진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충격을 흡수할 장치가 필요하지만 재정 지출은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금 살포(撒布)가 아니라 공급망 안정과 에너지 효율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정책 방향에 따라 향후 물가 추이가 결정된다. 자칫 중동 전쟁이 가져온 위기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2026-04-03 05:00:00
[사설] 장동혁 "판사가 국민의힘 사건 골라 맡아", 법원 해명 필요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국민의힘 관련 가처분 사건을 잇따라 인용(認容)하고 있는 서울남부지법 권성수 재판장을 향해 "골라먹기 배당(配當)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는 신청 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가 2개 있는데 국민의힘 관련 가처분 신청 사건은 유독 권 재판장이 있는 민사합의 51부에만 계속 배당돼 왔다"며 남부지법에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더니 '사건이 접수되면 권 재판장이 국민적 관심이 높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사건은 일단 본인에게 배당하고 나머지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배당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사건 임의 배당 원칙' 파괴(破壞) 논란이 나오는 배경에는 얼마 전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각각 제기한 당원권 정지 징계 효력 가처분 신청과 최근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권 판사가 맡았고, 이들 사건을 모두 인용했다는 점이 깔려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에서 컷오프된 주호영 의원이 낸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경북 포항시장 공천에서 컷오프된 박승호 전 시장과 김병욱 전 의원 사건도 권 판사가 맡았기 때문이다. 특정 판사에게 국민의힘 가처분 신청 사건이 줄줄이 배당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남부지법은 장동혁 대표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의힘 관련 사건이 특정 판사에게 집중(集中) 배당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을 경우 법원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당의 공천에 대해 법원이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당사자야 답답한 심정에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겠지만, 법원은 '기각'(棄却·형식 요건은 갖췄지만, 실질적으로 인정할 만하다 보기 어려울 때) 또는 '각하'(却下·요건 자체가 안 된다고 판단할 때)했어야 한다고 본다. 정당의 공천은 각 당의 전략적 판단이고, 그런 공천으로 그 당이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그 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프로야구팀 감독이 특정 선수를 경기에 출전(出戰) 배제했다고 해서 법원이 "그 선수를 출전시켜야 한다"거나 "그 결정은 적절했다"고 판결하는 격이다. 지금까지 법원이 판결하면 국민들은 비록 납득하기 어려워도 수긍(首肯)했다. 법원 결정마저 부정할 경우 우리나라 '법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법원의 '정치인 관련 사건' 판결은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판결이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1심과 2심 판사에 따라 다른 결론(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나오기도 했다. 동일한 사건이 판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공정한 판결'이 아니라 '편파적 두둔'으로 비칠 뿐이다.
2026-04-03 05:00:00
[관풍루]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지지 선언…
○…"우리는 석유가 넘쳐 나니 미국에서 석유를 사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 수급 차질 겪는 국가에 미국 석유 구입을 해법으로 제시. 전쟁 속내가 이거였나?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지지 선언.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는데…. 당신은 타협이 되는 사람이었고?!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을 제외하면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역성장했다는데…. 6,000까지 치솟았던 지수는 모두 거품이었던가.
2026-04-03 05:00:00
2026-04-02 18:41:47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 나일강과 람세스 2세, 흐름과 멈춤 사이
거대한 돌기둥처럼 서 있던 람세스(Ramesses) 2세 입상. 2025년 개관한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중심으로 옮겨진 그는 여전히 완벽한 통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를 올려다보았다. 감탄보다 먼저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거대해야 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했기에 이렇게 남겼을까? 수많은 돌 위에 새겨진 업적과 그의 이름은 언제나 승자의 언어이다. 나는 그 글자 밖에 있는 침묵 속 여백을 듣고 싶었다. 그 순간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떠올랐다. 평화로운 강 위에서 진실을 숨겨두었던 '나일강의 죽음(Death on the Nile)'이 인간의 욕망을 추적했던 것처럼 나도 나일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돌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천천히 물어보기 위해서. ◆나일강, 그 오랜 흐름을 타고 나일강 크루즈는 생각보다 오래된 여행 방식이다.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이집트 고대 유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을 위한 나일강 크루즈가 등장했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에게도 이집트는 기원 이전에 존재한 더 오래된 세계였다. 고고학자와 외교관, 작가와 귀족들이 이 배를 타고 문명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호기심으로 사람들은 크루즈에 몸을 싣고 나일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을 바라본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인들의 무한 신뢰를 받아온 나일강을 따라서. ◆브랜드로 각인된 람세스 2세를 찾아서 사막은 거대한 광고판 같았다. 그리고 그 위에 가장 크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인물이 있었다. 바로 람세스 2세다. 평균 수명이 40세 안팎이던 시대에 그는 67년 동안 왕위에 올랐고, 건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증명했다.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 카르낙 신전(Karnak Temple), 룩소르 신전(Luxor Temple)은 종교 시설이 아니라 '브랜드 터치 포인트'였다. 많은 석상은 조각품이 아니라 거대한 옥외광고(OOH, Out of Home Advertising)였다. 곳곳에 반복적으로 새겨진 람세스 2세는 오래 기억되는 자가 오래 통치한다는 믿음 아래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돌 대신 LED를, 파피루스 대신 SNS를 활용할 뿐이다. CI(Corporate Identity) 매뉴얼을 떠올려보자. 람세스 2세가 같은 서체, 같은 상징, 같은 위엄을 엄격히 사용했듯이 현대 기업은 색상을 통일하고, 로고 비율을 규정하며, 사용 방식을 관리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100년 넘게 붉은색과 곡선 로고를 유지하는 코카콜라(Coca-Cola), 멀리서도 단번에 인식되는 맥도날드(McDonald's)의 황금 아치를 예로 들 수 있다. 브랜드는 기억의 전쟁이다. 시각적 반복은 신뢰를 만들고, 익숙함은 심리적 지배력으로 이어진다. 광고는 설득이 아니라 각인이 되는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왜 네페르타리를 같은 높이로 세웠을까? 아부심벨에는 대신전과 소신전이 있다. 대신전 입구에 앉아있는 거대한 석상 4개는 모두 람세스 2세다. 시선을 압도하는 석상 무릎 아래에는 왕비와 자녀들의 조각상이 작은 크기로 놓여 있다. 권력의 서열이 한눈에 보이는 높이였다. 그러나 바로 옆 소신전에서 이 규칙이 깨졌다.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 석상이 람세스 2세와 거의 같은 크기로 서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권력은 거대함으로 말하지만 그 거대함도 사랑 앞에서는 달라지는 예외를 보여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을 만들어준 람세스 2세 이집트 아스완(Aswan)에서 나일강은 멈추었다. 수단(Sudan)에서 내려오던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을 만나 거대한 나세르호(Lake Nasser)를 만들었다. 이 호수는 국경을 넘어 남쪽 아부심벨까지, 200킬로미터 넘게 이어진다. 20세기, 이집트가 세계 최대 규모의 하이댐, 수력발전과 수자원이라는 현실을 선택했을 때, 유네스코는 "아부심벨의 수몰은 이집트만의 손실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손실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아부심벨 신전은 1,000여 개로 분해되어 원래 자리보다 65미터 위로 옮겨진 곳에서 다시 조립되었다. 1년에 두 번, 태양이 신전 깊숙이 들어와 람세스 2세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 역시 그대로 재현되었다. 과거는 이렇게 유네스코에 의해 처음으로 구조되었다. 197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이 탄생했고 유산은 더 이상 한 나라의 과거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책임지는 현재가 되었다. ◆낙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람세스 2세의 이름과 얼굴이 반복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 건축 단지 카르낙 신전이다. 대열주실 벽과 기둥에는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 장면이 새겨졌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Hittites)와의 전투에서 수천 명의 적을 물리친 영웅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무승부에 가까웠지만, 신전의 벽은 패배를 기록하지 않는다. 부조는 기록이자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어가 아닌 글자와 숫자로 새겨진 낙서를 여러 차례 발견했다. 처음에는 문화재를 훼손한 것으로 보여 얼굴이 찌푸려졌다. 수천년을 버텨온 돌 위에 함부로 새겨진 자국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보존과 훼손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낙서 또한 잠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굴된 채 남겨진 유적지가 또 다른 시간의 층이 되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흔적이 의미를 갖는 순간은 마케팅에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트잇이다. 3M의 연구원이 강력 접착제를 만들려다 '너무 약하게 붙는' 접착제를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실패로 보였던 결과였지만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사용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강점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포스트잇은 아이디어를 붙이고 이동시키는 손쉬운 도구가 되어 업무 문화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처음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의 방향일 수도 있다. ◆죽음의 방향, 왕가의 계곡 나일강 서쪽은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향이다. 약 34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번성기를 통치했던 아멘호테프(Amenhotep) 3세가 멤논(Memnon)의 거상이 되어 룩소르 남쪽 왕가의 계곡으로 향하는 나를 환영해주었다. 피라미드는 사라지고 왕들은 산맥 사이 골짜기에 숨어 들었다. 왕가의 계곡을 조성하면서 도굴을 막기 위해 수직 갱도를 만드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투탕카멘(Tutankhamun) 무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무덤이 도굴당하고 말았다.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작은 무덤이기도 한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먼저 찾아갔다. 화려한 외형을 기대했으나 놀랍게도 아주 작은 푯말 하나가 위치를 알려줄 뿐이었다. 짧은 통로와 작은 방은 투탕카멘의 갑작스런 죽음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이 이어진 길이였다. 투탕카멘은 미라(mummy)가 되어 검게 누워있었다. 죽은 자가 저승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한다는 사자의 서가 보였다. 태양신 라의 배, 심장의 무게를 재는 장면과 반복되는 상형 문자들. 영혼이 통과해야 할 절차대로 오랜 시간을 견딘 주문들이 울리고 있었다. 존재감 없는 소년 왕 투탕카멘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되었다. 사람들은 람세스 2세의 기록된 업적보다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스토리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여백의 미, 참여형 마케팅으로 테슬라(Tesla)는 신차 발표 때 세부 기술 설명보다 미래 비전과 티저 영상(Teaser Advertising)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택했다. 특히 2026년 테슬라 사이버트럭 공개 당시, 파격적인 외형만으로 논쟁과 추측을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모든 답을 주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이 생성되었고, 그 질문이 곧 관심과 화제가 되었다. 설명은 이해를 돕지만, 여백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암시적 메시지 전략(Implicit Messaging)이라고 할 수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남겨둔 수수께끼처럼, 브랜드 역시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자동차 엠블럼이 된 독수리 그 작은 무덤에서 나온 뒤에야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세티(Seti) 1세의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얀 벽면에 새겨진 그림 문자들을 보면서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밤이 깊어졌다. 밤하늘을 형상화한 청색 천장 아래 여신 이시스(Isis)는 독수리가 되어 푸른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왕의 영혼을 보호하던 그 날개가 수천 년을 건너 자동차 엠블럼(Emblem) 속에서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영국 자동차 밴틀리(Bentley)와 현대 자동차 제네시스(Genesis)의 엠블럼이 되어 도로 위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벤틀리의 날개 달린 B 엠블럼은 속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포지셔닝(Positioning)된 선택받은 자의 품격을 상징한다. 제네시스 역시 날개를 펼친 엠블럼을 사용한다. 안정감을 주는 방패와 좌우 날개의 도약으로 시각화하여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에 성공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프리미엄 브랜드 로고는 세티 1세의 천장에서 시작된 독수리 날개였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세티 1세의 무덤을 보고 나니 투탕카멘 무덤이 턱없이 작다는 것이 피부로 다가왔다. 투탕카멘의 그 작은 무덤에서 5000여점의 화려한 부장품이 나왔다고 하니, 이곳 세티 1세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았더라면 그 규모는 엄청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무덤의 크기나 장식이 기억의 깊이를 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큰 무덤은 준비된 죽음을 말하고 작은 무덤은 남겨진 시간을 말해주었다. 세티 1세의 깊은 밤을 지나 나는 비로소 투탕카멘의 짧은 밤을 이해했다. ◆계획이라는 말이 무색한 우연과 영원 AI라는 현대적 헤브라이즘(Hebraism)이 일상 깊숙이 스며든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수천 년 전의 석상 앞에 멈춰서서 한참을 올려다본다. 람세스 2세는 거대한 신전과 석상에 이름을 새기며 영원을 계획했고 투탕카멘은 뜻밖의 발견으로 시간을 건너와 우연히 영원이 되었다. 결국 영원은 의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케팅이 상품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설계하는 기술이라면, 고대의 왕들 또한 시간을 상대로 한 거대한 브랜드 전략을 실행한 셈이다. 그러나 그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묻는 순간,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된다. 멈춤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남겨질 만한 것인가?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2026-04-02 15:07:04
◆이번주 베스트셀러(2026년 3월 27일~4월 2일 기준) 1. 왕과 사는 남자 각본집/ 황성구, 장항준 2.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3.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유시민, 김세라 4.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신영준, 고영성 5. 중국어 명대사 필사집/ 김소희 6.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7. 완벽한 원시인/ 자청 8. 2026 큰별쌤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1,2,3급) 상/ 최태성 9.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14/ 최설희 10. 박태웅의 AI 강의 2026/ 박태웅
2026-04-02 10:29:41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오래된 것들 사이사이에 다방이 있었네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스쿠터를 타고 전국의 다방을 다닌 남자가 있다. 사찰기행도 아니고 문화유산과 비경이 아니라, 하다못해 오래된 책방이나 식당이 아니라, 다방이라니. '여행 생활자' 유성용의 『다방기행문』은 오래된 것들에 대한 헌사이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다방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쇠락하는 풍경을 담은 사진집 같은 무엇이다. 작가는 출발에 앞서 대형카메라를 팔아 스냅 카메라로 바꾸고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불을 빨아 말려두고, 신발을 정리했으며, 인터넷 약정을 끊고 일기를 숨기고 편지를 태운다. 먼길 떠나는 여행자의 거룩한 의식 같은 것. 길 위에서 멈출지도 모를 삶에 대한 정갈한 정리다. 그렇게 전국의 다방을 찾아 나선 길고 긴 여정은 최북단 대진의 〈초양다방〉에서 시작해 전태일 동상이 세워진 청계천 〈명보다방〉에서 끝난다. 다방 기행이라고 여급들과 시시덕거리면서 커피나 홀짝이는 팔자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는 곳마다 아프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연이 즐비하고 한 시대를 넘어선 질곡의 역사가 피어오른다. 예컨대 태백시 〈향록다방〉에서 트럭 운전사 사내의 울음소리에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밖으로 나왔을 때, 펑펑 내린 눈이 스쿠터에 쌓인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은 가히 절창이다. 경북 춘양의 〈앵두다방〉과 영양 〈향수다방〉에서 50년 넘은 역사를 보았지만, 애초의 흔적이 남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대개 스스로도 제 기억을 잃는 법이다." 초창기 다방은 원두를 직접 갈아 필터식 커피를 썼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PX를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들어왔고, 소위 다방커피라 불리는 인스턴트커피가 주종을 이룬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예전처럼 필터식 원두커피를 내는 집을 '맹물다방'이라고 불렀다는 것. 너무 연해 맹물 같은 커피 맛이라서. 작가가 경주시 불국동에서 만난 〈맹물다방〉은 그러나, 인스턴트커피를 내는 집이었다. 인상 깊기로는 삼천포 〈은파다방〉도 못지않다. 어시장과 횟집들의 북적임이 한풀 꺾일 즈음 빨간 간판이 걸린 거짓말같이 아름다운 이름 은파(銀波). 그래서 그는 이렇게 카페인을 권한다. "은빛 물결 반짝이는 봄날, 봄바다 마주하고 저승 갔다 온 마음아, 언제 그곳에 들러 커피 한잔하시오. 나는 거기서 아가씨들과 수다 떨며 연거푸 여러 잔 커피 마셨다가 심장이 붕 떠서 골로 갈 뻔했다오." 유성용은 스쿠터로 전국의 다방을 헤집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마을 사람과 길손과 자신과 비슷한 여행자들. 낯선 이들과 뒤섞이며 커피 한 잔에 희로애락을 쏟아내는 다방. 그곳에서 본명도 아닌 이름을 가진 송 양, 하 양, 김 양, 이 양 등 많은 레지를 만났고, 가끔 나풀거리는 인생들끼리 나누는 별것 아닌 시간이 정답고 좋았다고 적는다. 그네들의 사연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걸 나그네의 예의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다방기행문』이 신파로 흐르지 않고 단단한 기행문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신) 포항 인근 청진항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청진이용원〉. 언젠가 이곳에서 머리를 깎아 보리라 다짐했으나, 인터넷 검색에 안 뜨는 걸 보니 문을 닫은 모양이다.
2026-04-02 09:39:39
눈처럼 희다고 설산(雪山)이다. 누군가는 지상의 가장 고귀한 왕관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자연의 눈부신 드레스라고 예찬한다. 인도 티베트 네팔 파키스탄 부탄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국가의 경계에 걸친 히말라야 산맥은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미터 이상의 봉우리를 14개 이상 품은 명실공히 '세계의 지붕'이다. 안전 간격의 부족과 난기류 형성의 위험 때문에 항로 설정을 꺼린다는 그 곳은 대표적인 설산이다.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산맥 중 산악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2011년 박영석 씨의 실종으로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다. 해발고도 8091m,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인 안나푸르나는 가뜩이나 험한 지형에다 변화무쌍한 기후와 눈사태로 악명이 높다. 험준하기는 지형뿐만이 아니다. 자료를 찾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간신히 찾은 자료도 케케묵은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이곳의 사망률이 에베레스트나 K2보다 높다는 것과 현재까지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꽤 많다는 정도이다. 시신이란 말을 곱씹다 보면 설산에 대한 이미지는 급전직하, 거의 잿빛으로 변한다. 안나푸르나를 산스크리트어로 풀이하면 '풍요의 여신'이라고 한다는데 안나푸르나가 기르는 바람과 구름의 시점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시점에서는 어불성설이다. 그 것뿐이라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잿빛에 암갈색을 더하는 정보가 또 있다. 사실 산악인들의 실종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에 속한 것이므로 설산의 이미지를 깎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순 없다. 문제는 병, 깡통, 플라스틱 따위의 쓰레기들이다. 그것들은 경관을 해치는 수준을 넘어 자연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산악인들 스스로가 저지른 '사사로운 일들'중 하나라는 게 충격이다. 언론에서 취재한 자료를 보면 여태도 그것을 '일탈행위'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산소통을 메고 악전고투 끝에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는 산악인의 모습은 '인간승리' 혹은 '불굴의 의지'로 표상되기 마련이다. 그런 설정이 사리에 벗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일부 산악인들의 무분별한 행위로 인해 '의지'의 의미가 훼손되고 깃발의 감흥이 퇴색되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산이 저 지경에 이르도록 몰랐던 것도, 여느 사건보다 더 크게 와 닿았던 것도 결국은 설산의 광휘(光輝) 때문이다. 그런데 눈부신 빛이 설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설산 같은 대상이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등성이를 오르면 닿는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흠모의 마음으로 거기에 올랐는지, 거기서 뭘 잃어버린 건 없는지, 실은 버린 게 아닌지. 심강우 시인·소설가
2026-04-02 09:38:08
[사설] 헌재 재판소원 모두 각하, '4심제' 부작용 불식되기를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訴願) 제도 시행 이후 두 번째 사전 심사에서 48건의 청구를 모두 각하(却下)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사전 심사에서도 26건 모두 각하됐다. 재판소원 제도가 지난달 12일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도 헌재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헌재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재판소원은 입법 과정에서 야당과 법조계의 큰 반발을 샀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제가 시행되면 사실상 '4심제'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재판소원 청구(請求)가 잇따르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느라 판결의 최종 확정이 지연되고, 재판 비용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컸다. 헌재는 재판소원 청구가 연간 1만~1만5천 건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재판소원의 남발(濫發)은 헌재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물론 긴급한 국민 기본권 침해 사건에 대한 결정을 늦출 수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재판소원의 오남용(誤濫用)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법원 판결 과정에서 헌법적인 가치가 훼손됐을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특히 헌재는 두 차례 사전 심사를 통해 '막연하고 추상적인 주장'이나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한 경우 기본권 침해가 명백히 소명되지 않았다면 청구할 수 없다'는 기준을 거듭 강조했다. 재판소원은 일반 법원의 확정판결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될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최후의 헌법적 장치다. 헌재가 이번에 모든 사건을 각하한 것은 단순한 절차적 판단을 넘어 제도의 방향성(方向性)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헌법적 쟁점이 아닌 단순한 사실관계 다툼이나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한 청구까지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재판소원은 '상고심(上告審) 이후의 또 다른 상고심'으로 변질된다. 이는 사법 자원의 낭비와 함께 사법 혼란을 초래한다. 헌재는 앞으로도 사전 심사에서 엄격한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 유력 정치인 관련 사건도 예외일 수 없다.
2026-04-02 05:00:00
[사설] 중동발 경제 위기 틈탄 담합, 파렴치한 대국민 범죄행위
중동 전쟁이 촉발한 고유가와 원자재 공급난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 나프타와 에너지 가격 상승, 물류비 급등으로 경제 전반이 위태롭다. 비상 상황에 경제 주체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하지만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도 모자라 가격을 짜맞추는 '담합(談合)'이 기승을 부린다. 올해 1분기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 7천억여원은 지난해 연간 부과액의 2배 수준인데, 전체 과징금의 98%가량이 담합에 쏠려 있다. 특히 서민 생활과 직결된 필수재가 문제다. 설탕 가격을 4년 넘게 모의해 온 제당 3사는 물론,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전분당(澱粉糖) 업계의 담합 의혹 규모는 10조원대에 달한다. 국민들에게 전가된 부당 비용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어렵다. 기업들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을 말하지만 위기를 틈타 경쟁자와 손잡고 가격을 짜맞추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최근 가격을 일제히 올린 페인트 업계나 유가 상승기를 노린 정유사들에 대한 전방위 조사는 '비용 전가(轉嫁)형 담합'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반영한다. 정부가 과징금 부과 기준율 상향이라는 강수를 둔 것은 시의적절하다. 이달 말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에 따라 담합 적발 시 매출액의 최대 18% 이상을 환수하고, 반복 위반 시 가중치를 대폭 높이기로 한 것은 '법을 위반해도 남는 장사'라는 비뚤어진 계산법을 깨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도 강화로는 부족하다. 특정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끼리 장기간 은밀하게 카르텔을 유지하는 행태를 뿌리 뽑으려면 당국의 철저한 모니터링과 함께 자진 신고나 내부 고발을 유도하는 제도를 보강해야 한다. 경제 주체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식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면 시장 신뢰는 무너진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지만 공정 경쟁이라는 원칙을 결코 어겨선 안 된다. 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담합 기술이 아니라 거센 파고를 함께 넘기 위한 상생의 정신이다. 정부와 사정 당국 역시 추호의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시장경제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2026-04-02 05:00:00
[사설] 대장동 사건 등 국정조사, 범죄자들과 '거래'로 비치는 까닭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조작 기소 의혹 국정조사' 특위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과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채택(採擇)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그의 변호인·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이상 대북송금 사건), 김만배·남욱·정영학(이상 대장동 사건) 등이 포함됐다. 이 사건들을 수사한 검사들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요구한 증인(한동훈 전 대표·설주완 변호사 등)은 채택을 거부(拒否)했다. 수사 검사를 국회로 불러 조사하는 것은 명백히 사건 소추에 관여하는 것이며, 현행법 위반이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공소 취소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 의원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推進)을 위한 모임까지 결성한 만큼 삼척동자라도 국정조사 목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 소속 국조 위원 중에는 김동아, 양부남, 이건태 의원 등 이재명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 참여하고 있다. 피고인을 변호했던 사람들이 수사했던 검사들을 조사하겠다는 것을 '사실을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로 볼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대장동 일당은 1심에서 횡령·배임·뇌물수수 혐의 등에서 일부 또는 전부 유죄를 선고받아 각각 최소 징역 4~8년을 선고받았고, 현재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대로 형이 확정(確定)될 경우 장기 징역을 살아야 한다. 이들이 국정조사 증인으로 나와 사건 관련자이자 자신들을 사면(赦免)해 줄 수 있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어떤 증언을 하겠나? '국정조사'가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 및 재판 흔들기 목적의 '거래'로 보이는 까닭이다. 민주당이 대장동·대북 송금 등 사건을 조작 기소라고 믿는다면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신속히 재개해 '사실'을 밝히면 된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재판 흔들기' '공소 취소 노림수' 비판을 받지 않고도 사법 리스크를 해소(解消)할 수 있다. 그 쉬운 길을 두고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입법 권력의 사법 개입으로 볼 수밖에 없다.
2026-04-02 05:00:00
[관풍루] 전날 4.26% 폭락했던 코스피는 1일 8% 이상 급등…이게 바로 살인적 도박.
○…1일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 에너지·핵심 광물·원전 등 협력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을 언급할 비상 상황이라면 원유·가스 확보 '계약' 체결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날 4.26% 폭락했던 코스피는 1일 8% 이상 급등하며 역대 두번째 큰 상승폭 기록. 급등락 속에 누군가는 피눈물을, 또 누군가는 미소 짓는 한국 증시. 이게 바로 살인적 도박. ○…지난해 5월 해상초계기 추락 사고 피해 포항 주민들, 아직 "보상 하세월" 울분. 확장 예산에 추경까지 돈 뿌리기 거듭하는 이재명 정부, 유독 군(軍) 관련 예산 집행에만 인색.
2026-04-02 05:00:00
[날씨] 4월 2일(목) "대체로 맑겠고 지역에 따라 한때 비"
2026-04-01 19:12:11
[사설] 범죄 혐의·재판 중에도 출마 등 활개 치는 민주당 인사들의 후안무치
통일교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收受)한 혐의를 받는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수사가 관련 진술이 나오고 7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결론 없이 진행되고 있다. 전 의원 의혹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작년 8월 민중기 특검팀 면담에서 처음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민중기 특검은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 경찰에 사건을 넘기지도 않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압수수색 등 수사에 나섰지만 '시간 벌어 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전 의원 사건을 이첩(移牒)받고 3개월이 지난 3월 19일에야 전 의원을 불러서 조사했다. 그리고 또 열흘 이상 지났지만 이렇다 할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위법 증거로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결백' 입증이 아니라 '증거 수집 절차' 때문이었다. 이후 검찰의 상고(上告) 포기로 무죄가 확정됐고, 송 전 대표는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대장동 민간 업자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6억원을 받은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보석(保釋)으로 풀려나 전국을 돌며 북 콘서트를 열었다.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자숙은커녕 보란 듯이 전국을 누비고, 민주당 각 지역에서는 너도나도 모시겠다고 나선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에게서 드러나는 이처럼 비상식적인 행태(行態)와 관련,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용 전 부원장의 행보에 대해서 노골적인 대법원 압박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여당 지지율을 믿고 오만(傲慢)하다는 것이다. 이 비정상을 바로잡자면 국민들이 투표로 응징할 수밖에 없다.
2026-04-01 05:00:00
[사설] 1500원 넘는 게 뉴노멀 된 환율, 정부의 대응은 안이하기만
미국과 이란의 강 대 강(强對强) 대치가 이어지며 31일 원·달러 환율이 1,530.1원으로 장을 마감하며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날 야간 거래에서 1,520원을 돌파한 데 이어 이날 14.4원 또 상승해 원화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도 닷새 연속 올라 100선을 넘어섰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환 당국이 상방 변동성 완화를 위해 미세조정에 나서더라도 1차 사수 라인은 1,520원이 될 것"이라는 추정을 내놨다. 이미 1,500원은 뉴노멀이 되어 버린 상황이다. 문제는 원화 가치 하락이 다른 나라 통화보다 훨씬 가파르다는 데 있다. 3월 들어 27일까지 원화 가치 하락 폭은 4.7%로 유로(-2.6%)와 일본 엔(-2.5%), 영국 파운드(-1.6%), 스위스 프랑(-3.7%) 등 주요국 중 가장 큰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원화 가치가 끝없이 추락하는 배경에는 단지 중동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외 충격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과 이로 인한 유가 급등, 높은 대외 의존도, 증시의 외국인 자금 이탈 등 복합 리스크가 한꺼번에 작용해 우리 환율 시장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지만 딱히 이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이날 "현재 달러 유동성(流動性) 부분이 양호한 만큼 예전처럼 환율과 금융 불안을 직결시킬 필요는 지금 없는 것 같다"고 답변하긴 했지만, 고환율은 당장의 서민 살림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수수방관(袖手傍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연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내 사소한 사안들까지 시시콜콜 대국민 메시지를 던져 온 이재명 대통령은 정작 환율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 관해서는 관심을 놓고 있다. 우리 정부의 확고하고 뚜렷한 통화·재정 정책 메시지를 통한 환율 방어가 필요하다.
2026-04-01 05:00:00
[사설] '2027 수능'도 '적정 난이도'와 '변별력 확보' 사이에서 헤맬 건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31일 2027학년도 수능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의 골자(骨子)는 예년과 다르지 않다.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고 EBS 교재로 보완하면 풀 수 있도록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험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 평가원은 해마다 같은 말을 반복해 왔고 결과도 '역시나'였다. 발표와 결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고, 불신만 쌓일 뿐이었다. 평가원이 이날 밝힌 '적정 난이도'와 '변별력 확보'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적정 난이도에 집중하면 변별력이 떨어지고,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소수만 풀 수 있는 고난도 문항이 필요하다. 평가원은 해마다 이 모순 앞에서 갈팡질팡하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린 결과를 내놨다. 2024학년도 수능이 이른바 '킬러 문항' 배제 지시로 '물수능'이 됐을 때의 혼란, 지난해 영어 1등급 비율 3.11%로 역대급 '불수능'이 됐을 때의 충격을 직접 목도(目睹)한 이번 수험생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반수(半修)생과 재수생의 대거 합류도 변수다. N수생 비율이 역대급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폭 개편된 교육 과정이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은 N수생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어 이번이 현행 체제에서 마지막 대입 기회로 여기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그래서 이번 수능에서의 난이도 조절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기본계획 발표도 예년과 다를 바 없었다. 하나 마나 한 수능 가이드라인은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EBS 연계율 50%'라는 통계 수치가 아니다.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예년과 같은 수준의 발표가 아닌 의대 증원 및 교육 과정 개편 등에 따른 대규모 N수생 유입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어떻게 변별력을 담보(擔保)하고 적정 난이도를 확보할 것인지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적정'과 '변별' 극복 방안을 담은 추가 발표가 필요하다.
2026-04-01 05:00:00
[관풍루] 이재명 대통령, 중동 전쟁발 경제 위기와 관련…여당 의석이 못할 것이 없는 절대 다수인데 그것도 부족해서?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구청장 재직 때 여성 직원과 단둘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출장 서류에 직원의 성별을 '남성'으로 기재했다는 의혹 제기돼. 출장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상상력 자극하는군. ○…이재명 대통령, 중동 전쟁발 경제 위기와 관련, "긴급할 경우에는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명령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 여당 의석이 못 할 것이 없는 절대다수인데 그것도 부족해서? ○…총 4조8천억원 들여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 대상 1인당 10만~60만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2026년 추가경정예산안' 국무회의 통과. 李정부가 제일 잘하는 일, 돈 뿌리기.
2026-04-01 05:00:00
2026-03-31 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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