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0 18:50:03
오늘날 국제사회가 지켜온 규칙에 기반한 질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부 권위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기존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약화시키고 국제 규범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유엔 헌장이 천명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 사용의 금지라는 기본 원칙마저 공개적으로 도전받고 무시되는 상황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각국이 정의와 법치를 수호하고 평화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유와 민족자결,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기존의 국제질서와 함께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제1도련선은 이러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중국은 군사적 위협과 사이버 공격, 경제적 강압 등 다양한 회색지대 전술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국제적 규칙과 규범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는 역내 안보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대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그러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결코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인도·태평양 전체의 안보와 직결되며, 나아가 국제사회 공동의 평화와 번영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국제사회 역시 이러한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정상회의와 장관급 회의에서 발표한 여러 성명을 통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대만은 유엔의 회원국이 아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대한 대만의 책임과 기여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만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만은 민주주의 파트너십 강화, 집단안보 증진, 경제적 회복력 제고를 중심으로 한 '총합외교'와 '가치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해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국제사회에서 더욱 확고히 뿌리내리게 하는 한편,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만이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만의 역할은 안보와 첨단기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만은 '영방계획'을 통해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동 번영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만이 보유한 기술과 전문성, 자원을 활용해 수교국의 발전을 지원하고 현지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파라과이와 함께 통합 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에스와티니의 전략적 석유 저장시설 건설을 지원했으며, 팔라우 국립병원과 협력해 스마트 의료 시스템을 추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협력은 단순한 원조를 넘어 파트너 국가의 산업 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진정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제기구가 모든 구성원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유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건설적으로 기여하고 신뢰받을 수 있는 구성원이 정치적 이유로 부당하게 배제된다면, 국제질서를 더욱 포용적이고 공정하게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자유세계에는 대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만의 목소리와 참여가 반영되는, 강하고 신뢰받는 유엔이 필요하다. 대만과의 협력은 단순히 대만을 지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집단안보를 강화하고 경제와 첨단기술 분야의 회복력을 높이며, 권위주의적 압력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제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다. 따라서 대만이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국제사회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포용적이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는, 그리고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지금 세계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배제와 분열이 아니라 신뢰와 연대다. 대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트너로서 국제사회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국제사회도 대만이 마땅히 참여해야 할 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에서 시작된다.
2026-09-10 17:16:48
작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미일 협력 관계를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안보 정책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한국 국민들은 물론 미국도 안심시키고자 했다. 사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지칭했다. 한미동맹의 가치를 폄훼했으며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대단히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재명 정부는 미국에게 3천50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투자도 약속했고 미국 방문 직후에는 더 이상 안미 경중, 즉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라는 정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미국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못했다. 적어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재 한국 정부의 대미 정책에 대해 언행이 전혀 불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7일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게재한 글을 통해 이미 계획 중이었던 을지 프리덤 쉴드 한미연합훈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고, 한국 정부가 비핵화 등 이란 문제에 대한 미국의 협조 요청을 '노 땡큐'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트럼프는 시제만 바꾼 똑같은 글을 8월 25일 다시 게재함으로써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이 글은 대통령의 명령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을지 프리덤 쉴드 한미연합훈련은 시작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지돼 버렸다. 함께 하기로 약속됐던 한미 해병 연합 상륙작전 훈련도 취소됐다. 8월 30일 폭스뉴스의 '선데이 나잇 인 아메리카'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노골적으로 이재명 정부를 비판했다. 자신은 전혀 강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다만 한국이 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울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 때 자신은 이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는 것도 가감 없이 전했다. 트럼프의 어법상 잊지 않겠다는 말은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둘째 아들 에릭 트럼프는 최근의 저서에서 자기 아버지의 여러 가지 성품 중 하나가 '보복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동시에 김정은에게 우호적이지만 모욕적인 언급들을 통해 이란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북한 문제라는 사실도 밝혔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자신을 존경하고 있고, 그래서 도발도 자제하고 있으며 김정은과 자신은 말이 잘 통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어법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다음 차례는 너야!'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할 것이다. 동맹국이 군사훈련을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동맹관계가 망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이와는 전혀 역행하는 미국의 뚜렷한 움직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우선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3국과 함께 제주도 동남방 수역에서 진행하는 '프리덤 엣지' 훈련은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진행되는 훈련을 취소하는 한편 남해 바다에서의 훈련을 지속하는 이유는 미국이 한미동맹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가 북한 억제에서 중국 억제로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한미동맹을 더 이상 북한 수준의 허약한 적을 자제시키는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에 중국을 함께 견제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중인데 한국은 거기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는 게 한미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이다. 물론 미국의 이 같은 요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태평양지역(Pacific Area)이라고 명기돼 있다는 법적인 약속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 국방 전략의 핵심인 A2AD(Anti-Access, Area Denial, 접근금지, 지역 거부) 전략을 격파하기 위해 창설한 부대인 다영역 작전부대(MDTF)를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영역 작전부대는 미국 육군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육·해·공·우주·사이버·정보 등 모든 전장을 통합해 작전하는 미국군 최강, 최신예 기동부대다. 이 부대는 평택에서 북경까지 단 3분이면 날아갈 수 있는 마하 17의 초 고음속 미사일 블랙이글도 장착하고 있다. 순수 방어 미사일인 사드 미사일 배치 시 중국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잘 알고 있을 현 한국 정부를 향해 거대한 폭풍이 오고 있다.
2026-09-10 13:06:51
더위가 옅어지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몸을 통과하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 온 동네가 들썩인다. 지역대표 축제, 별난 축제가 SNS에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손 흔들며 소리친다. 우리 이런 것도 하고, 이런 사람도 오고, 이런 추억 남길 수 있는데 정말 안 올 거야? 차 밀리고, 사람에 치이겠지만 그래도 집을 나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축제장으로 향한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올해 22회째를 맞는 불꽃축제에 무려 10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한국, 미국, 영국을 대표하는 불꽃팀이 화려한 불꽃쇼를 펼쳤다. 이번 축제에는 1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근데 불꽃축제를 앞두고 이런 뉴스들이 나왔다. 세계불꽃축제, 여의도 한강공원 '명당 돗자리' 수십만원 거래 논란. 축제 기간 여의도 일대 호텔 숙박비 수백만원에 달해. 또 바가지 논란. 행복도 돈으로 산다는 믿음이 공증받은 것처럼 뚜렷해지는 느낌이 든다. 똑같은 하늘을 바라보는데도 구분 짓기 바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라는 소설에는 마콘도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축제를 벌인다. 집시들이 낯선 물건을 들고 나타났을 때, 마을 처녀를 여왕으로 뽑는 날, 갑자기 큰 돈을 번 사람이 술과 음식을 퍼부을 때, 외지의 기업이 들어와 부유해질 때도. 그렇게 축제를 벌이지만 이상하게 마을과 부엔디아 집안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총성이 울리고 누군가는 점점 고독해진다. 타락이 그들을 멸망으로 이끈다. 어두운 밤하늘에 피어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우린 각자 어떤 생각을 했을까? 100만개의 생각. 명멸하는 불꽃 같은 그 생각이 궁금하다.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올려다보고, 옆 사람의 손을 꼭 잡는다. 70분 동안 소비되는 불꽃의 향연을 보며 아름다움에 취하고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만족감을 끌어안는다. 그 와중에도 내가 서있는 자리는 저들이 서있는 자리와 다름을 생각한다. 지금 누리는 것을 지키기 위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불꽃처럼 하늘로 자신을 쏘아 올린다. 빛이 사라진 허무한 하늘에서 또 묘한 외로움을 느낀다. 우린 고독한 운명을 타고났다. 어쩌면 그래서 축제에 끌리는 게 아닐까.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것을 바라보고, 함께 웃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고독한 사람들이 잠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곁에 나와 연결된 어떤 사람들이 산다는, 그 분명한 사실을 말이다.
2026-09-10 09:40:43
[사설] 청문회만 마치면 임명 강행하겠다는 여당의 오만
오는 15일 예정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聽聞會)가 증인 한 명 없는 맹탕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신약 로비 의혹' 관련 브로커 양모 씨 등 증인 44명과 참고인 4명의 명단을 제시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 명의 증인도 채택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이뤄진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문회 절차만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한 뒤 김 후보자에 대한 임명(任命)을 강행하겠다는 청와대와 여권의 속셈을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 후보자 의혹은 단순히 식약처 청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주가조작에 여권 인사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疑惑)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고, 공익 신고자에 대한 '살해 협박' 주장까지 나오는 현재 진행형 게이트급 사건이다. 게다가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폭로(暴露)하고 있는 한동훈 무소속 의원을 향해 9일 "검찰 내 협력자가 있거나 거짓의 유포"라면서 법적조치를 예고했고, 한 의원 또한 김 대표를 허위사실 유포로 형사조치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 관련 의혹은 민주당의 주장과 달리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국민들이 가장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사안이 됐다. 특히 김 후보자 청탁에 따라 '가짜 코로나19 치료제 신약'이 시중에 나왔을 경우 수많은 국민들의 생명에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김 후보자의 당시 행동뿐만 아니라 브로커 양 씨 발언의 신빙성, 한 의원이 공개한 자료의 취득 경위까지 한꺼번에 검증(檢證)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 국민들의 판단이다. 여론조사공정의 최근 발표를 보면 김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60.6%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이미 '부적격'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증인(證人) 없는 형식적 청문회를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국민적 심판은 더욱 매서워질 수밖에 없다.
2026-09-10 05:00:00
[사설] 민생은 뒷전, 검찰개혁 셈법 다툼에 매몰된 정치권
정기국회가 열렸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민생(民生)보다 검찰개혁에 쏠려 있다. 형사사법체계 개편과 관련된 정부 시행령 개정안 때문이다. 반발도 야권이 아니라 범여권에서 터져 나왔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공소청 직제안과 검사정원법 시행령 개정안이 '개혁 후퇴'라는 것이다. 일종의 내부 분열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다음 달 출범하는 공소청 검사 정원이 옛 검찰 정원 그대로인 2천292명으로 유지되고, 불송치 사건을 재검토하는 '사법통제부'도 신설된다. 조국혁신당은 '기상천외한 꼼수'라고 직격했고,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통제부는 모순' '사실상 상시 수사지휘'라고 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도 '수사·기소 분리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며 가세했다. 검찰 수사 업무가 통째로 없어지면 인력도 최소 3분의 1은 줄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리다. 법무부는 공판 대응 인력이 부족해 현재 검사 정원은 유지해야 하고, 사법통제부 역시 국민 인권 보호와 피해 구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반박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우려한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9일 "기득권 관점에서 과도한 조직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국회 차원에서 살펴보겠다"며 서둘러 봉합에 나섰다. 앞서 형사사법체계 개편 과정에서도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로 국론(國論)은 분열됐고 첨예한 여야 대치로 국가적 혼란을 야기했다. 그런데 이번엔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부-여권의 내부 갈등으로 또 민생이 뒷전으로 밀려날 지경이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 세력이 정책과 입법의 정점이어야 할 정기국회 첫머리부터 집안싸움으로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고물가·고금리, 경기 침체의 늪에서 신음하는 국민의 관심사는 검사 정원 몇 명 더 줄이느냐 늘리느냐가 아니다. 이미 입법예고된 시행령을 놓고 벌이는 정부와 여권의 내분(內紛)은 국민에게 한숨만 더할 뿐이다. 가뜩이나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검사 숫자가 민생 법안 심사보다 앞서야 할 사안인지 되물어보길 바란다.
2026-09-10 05:00:00
[사설] 미래의 경제 주춧돌 청년만 고용 회복에서 빠졌다
8월 취업자가 지난해보다 18만4천 명 늘었고, 제조업과 건설업 취업자 감소 폭은 줄었다. 고용시장이 긴 부진(不振)에서 벗어나는 듯 보이지만 청년들은 예외다. 15∼29세 취업자는 14만3천 명 줄어 46개월째 감소했다. 노동시장 첫 진입을 꿈꾸는 세대들의 한숨이 깊어간다.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가 15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지만 29세 이하 가입자는 48개월 연속 감소다. 물론 취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조사에서 첫 직장을 얻은 청년 4명 중 1명꼴로 월 150만~200만원을 받았다. 주거비와 대출 이자를 갚고 나면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그럼에도 청년들에게 취업은 생활을 유지하고 미래 경력 손실을 막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청년 실업은 미래를 이끌 세대가 경력과 자산 축적의 출발 기회조차 통째로 잃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이 살아나면 청년 채용도 늘어난다는 공식조차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청년기 실업과 장기간의 비경제활동이 이후 저임금·비정규직에 머물 위험을 높이는 '상흔(傷痕)효과'를 경고한다. 첫 취업이 늦어지면 경력 축적도 늦어지고 그 격차가 임금과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시장 미진입 청년이 늘면 세수는 줄고 복지 부담은 커진다. 젊은 노동력의 출발이 막히는 것은 잠재성장률과 인구 문제를 동시에 악화시키는 일이다. 정부도 청년 일자리 회복 방안을 내놓고 첨단산업·청년 선호 분야의 인력 양성과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 정책 대상도 34세까지 확대했다. 방향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몇 명을 교육하고 몇 개 지원사업을 만들겠다는 숫자가 실제 채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는데도 청년 가입자가 감소하고, 경제가 성장하는데 노동시장 입구는 좁아지는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전체 취업자 증가 폭으로 고용시장 개선을 말해선 안 된다. 취업자 18만 명 증가와 청년 취업자 46개월째 감소의 괴리(乖離)는 심각한 문제다.
2026-09-10 05:00:00
[관풍루] 정부가 내년도 건보료율 7.19%로 동결, 당장은 반갑지만 훗날이 걱정
○…'미스터 쓴소리'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 이임식에서도 "국민 통합의 마지막 보루는 헌법 정신" "상대를 적으로 여기면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고 지적. 상식적인 발언이나 원칙이 무너진 세상엔 죽비 소리. ○…정부가 내년도 건보료율 7.19%로 동결, 당장은 반갑지만 훗날이 걱정. 올해 1분기 적자 4조원에 2029년엔 준비금 소진된다고 경고하더니, 뜬끔없는 결정. 국정 지지율 급락 때문인가. ○…학폭 피해 학생 2.9%로 역대 최고치, 6년 만에 피해 응답률은 3배로 늘어. 학폭 이슈 때마다 내놨던 그 많은 대책들은 어디 갔나? 백약무효(百藥無效)라면, 처방 자체가 문제.
2026-09-10 05:00:00
2026-09-09 18:41:58
김정수 (사)한강학회 부이사장,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상임부회장 선임
김정수 (사)한강학회 부이사장(83)이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상임부회장에 선임됐다. 김 부회장은 7일 성균관 대성전에서 상임부회장 고유례를 봉행하고 위촉장을 받았다. 경북 청송 출신인 김 상임부회장은 경주 김씨로 ▷경주 미추왕릉 48대 참봉 ▷대구향교 장의 ▷성균관 전인 ▷(사)박약회 대구지회 부회장 ▷(사)춘추회 부회장 ▷(사)담수회 부회장 ▷성균관 부관장 등을 역임했다.
2026-09-09 16:12:42
한국의 문화예술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다방이란 '문화예술아지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발효한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을 수가 없었던 그 시절 예술가들은 일단 다방으로 넘어오면 온갖 허세와 허영도 번듯하게 대접을 받을 수가 있었다. '다방=예술사랑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망국의 주인공이기도 한 고종도 그런 사람이었다. 1896년 2월 11일 밤. 고종은 왕세자(순종)와 함께 일본의 눈을 피해 서울시 중구 정동 덕수궁 근처 러시아공사관(당시는 '아관'(俄館)이라 부름)으로 피신한다. 한국 다방사의 1막1장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아관에서 보낸 1년여 동안 고종은 식사 후에도 왕세자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 마니아가 된다. 고종이 스스로 커피를 찾은 건 물론 아니다. 고종에게 접근한 여성 로비스트가 있었다.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한테 발탁돼 구한말 한국 사교계에 등장한 독일 출신 손탁이었다. 고종은 자기한테 커피를 소개해주고 적적할 때 말벗까지 되어준 벽안의 여인에게 보답하기 위해 1902년 아관 옆에 2층 적벽돌조 손탁호텔까지 만들어준다. 고종의 속맘을 헤아린 손탁은 1층에 사교클럽을 겸한 커피숍을 꾸미는데, 거기가 한국 최초의 다방격인 정동구락부가 된다. 일본은 1726년쯤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커피를 소개받았고, 일본 최초의 커피숍은 1886년 도쿄에 '세수정'(洗愁亭)이다. 일본에선 다방이 '기사댕'(喫茶店)으로 불렸다. ◆서울에는 이상 대구에는 이인성 1930년대 두 명의 천재 예술가가 서울과 대구에서 다방을 개업한다. 당시 예술가에게조차 난해했던 '오감도'란 시를 발표했던 시인 이상은 1933년 서울 종로에서 '제비다방'을 연다. 대구시 중구 태평로에서 태어난 화가 이인성은 1936년 아카데미극장 옆 골목 초입에서 '아루스다방'의 문을 연다. 그는 자신의 재주를 아껴주던 대구여고보(경북여고) 교장 시라가 주키지(白神壽吉)의 중매로 남산병원장 김재명의 장녀 옥순과 결혼한다. 김 원장은 맏사위가 술독에서 빠져나와 명화를 그려주길 바라는 맘에서 병원 옥상에 그를 위한 아틀리에를 만들어준다. 대구에선 첫 화실이었다. 당시 전국적인 명사였던 이인성은 '반월당'과 함께 일제 대구의 대표적 백화점이 던 '무영당' 사장 이근무(李根茂)와 계성고교 재학시절 '뜸북새'를 작곡한 음악평론가이자 동화작가인 윤복진 등과 교유했다. 밤이 돼 무료하면 아틀리에 맞은편 고려예식장 옆 골목에 있던 민족시인 이상화 사랑채로 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아틀리에 손님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장인어른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자기 손님들을 위한 별도의 사랑방이 절실했다. 그런 필요에 의해 아루스가 탄생한 것이다. 개업 초대장을 보면 '아루스는 아담한 객실, 심령의 안식처, 예술의 전당, 가두의 도서실'이라 했다. 이듬해 겨울 백석 시인과 그 다방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그런데 그 다방에서 끔찍스러운 사건(매일신보에 기사 게재)이 1937년 10월 28일 오후 6시에 발생한다. 이인성은 선민의식이 너무 강했고 술을 먹으면 인사불성이었다. 그가 워낙 도도하게 놀자 수창소학교 선배이자 화가지망생이던 김부돌(金扶乭)이 심통을 부렸다. '너 한번 당해봐'란 심산으로 25세 때 일본제전에 입선한 400호 크기의 '한정'(閑庭)의 중앙 상단부를 칼로 30cm 이상 찢자, 분을 삼키지 못한 이인성이 김부돌의 칼을 빼앗아 선배의 가슴을 찔렀다. 그 충격으로 이인성은 한동안 다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을 찾은 이인성은 정형수술 전문의처럼 '한정'을 정성스럽게 봉합해준다. 아루스다방 탁자는 검정색이었으며, 빅타회사에서 만든 유성기, 여종업원까지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인성은 남산병원을 떠나 아루스다방 옆으로 아틀리에를 옮겼다. 하지만 그는 알코올에 중독된 듯 그림보다 술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1940년대초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으로 거처를 마련했지만 주사는 더욱 심해갔고 급기야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해 겨울, 서울 시내 술집에서 마포경찰서 교통순경 김성환과 사소한 시비를 벌이다가 피격돼 39세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인성이 대구에 남기고 간 아루스다방은 중앙로 YMCA 바로 북편 아루 제과점을 낳았으며, 이화진 등이 다방의 명맥을 잇다가 1960년대 의학박사 박태환이 인수해 다방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박내과를 세웠다. ◆50년대 다방의 추억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도 대구와 인연이 깊다. 1951년 대구시 중구 북성로 31, 그가 모나미 다방에 등장했다. 죽순문학회(광복 직후 대구에서 태동한 한국 첫 문학회) 주최 한솔 이효상 시집 '바다' 출판기념회를 빛내기 위해서다. 그날의 사진 속에는 공초와 청록파의 한 사람이었던 조지훈, 구상시인, 죽순문학회의 산파역 이윤수 시인 등이 축하객으로 자리했다. 공초가 대구에서 머문 기간은 20여년. 공초는 일제 때 서울 남산에서 수주 변영로, 횡보 염상섭과 대낮에 발가벗고 스트립쇼를 벌여 살아가는 재미를 잃은 한국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었다. 1927년 약전골목 구일당 한약방 주인이자 아나키스트였던 방한상(方漢相) 집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그는 장발이었다. 남산동의 한 여관에 진을 친 공초는 고월 이장희·이상화·백기만 시인과 교우했고 상주 출신 퇴기 덕분에 주막 상주집 골방을 차고앉을 수 있었다. 그가 진을 치고 있던 골방은 아무리 많은 지인이 찾아와도 모두 수용할 수 있어 일명 '고무줄방'으로 불렸다. 매일 얻어먹고 사는 자신이 한스러웠던지 공초는 상화의 도움을 받아 '아세아'란 이름의 술집을 경영한다. 그러나 공초와 돈의 관계는 물과 기름과 같았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몇 달 만에 빚을 안고 폐업을 하고 만다. 아세아와 거래한 주류도매점 안동옥의 사장은 그가 유명 시인이란 사실을 알고 이색 제안을 한다. 안동옥 광고문안을 빚을 청산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공초도 흔쾌히 허락한다. '거품과 같은 인생이다. 어둡고 헛되게 살 것인가. 불안한 세상을, 짧은 인생을 웃으며 명랑하게 살자. 새 봄이다. 명랑한 인생이다. 부라보. 희망의 잔을 비워라. 강하게 즐겁게 짧은 인생을 즐기자.' ◆백조다방의 이삼근 해방 직후 대구에서 처음으로 모던한 다방이 있다. 북성로 초입의 '백조'이다. 북성로 1가 21번지. 2020년까지만 해도 옛 향촌동 상업은행 대구지점에서 뉴대구호텔을 향해 170여 보를 걸으면 북성로 길과 만나고 좌회전해서 20여m 가면 오른편에 신진이발기구상회가 보였다. 거기가 47년 1월 1일 개업한 백조다방 자리다. 신진상회 바닥엔 바둑알만한 갈색 타일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었고, 20개의 나무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당시 주인 이삼근이 생활했던 10여평 규모의 거실도 먼지에 쌓인 채 보존돼 있었다. 일제 때 백조 자리엔 바이올린을 잘 켰던 주인 무라세가 경영했던 찻집 '아오이'(靑)가 있었다. 독신인 무라세는 음질이 좋은 빅타 축음기와 다량의 SP레코드판을 갖고 있었고 가끔 동산병원 옆에 자리했던 개신교 선교사 자녀들에게 바이올린 레슨도 했다. 아오이는 골기와 지붕이 인상적인 현재 유풍문구사 맞은편 가게츠(花月), 송죽극장 맞은편 쓰바사(翼)와 함께 일제시대 대표적 스낵형 다방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삼근은 도쿄에서 바이올린 연주회를 가져 대구의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었다. 그는 깔끔하고 독선적이며 프라이드가 매우 강해 언뜻 무사적 풍모도 엿보였다. 당시 대구에선 이삼근 자체가 화제의 인물이었다. 복장도 매우 파격적이었고 늘 빨간 스카프, 베레, 지팡이가 늘 3박자로 따라다녀 행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45∼46년 아오이는 잠시 술집으로 변했다가 이삼근이 '낭만의 백조시대 '를 연다. 가게 이름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의 백조에서 따왔다. 1층은 다방, 2층은 거실로 사용됐다. 2층 외벽은 모두 42개의 유리창으로 치장됐다. 홀에는 12개 정도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앞뒤로 머리까지 기댈 수 있는 높은 등받이 의자 4개가 놓여있었다. 손님들은 장방형 구조에 홀 양편으로 흡사 열차 객실처럼 의자를 배치해 백조를 '열차다방'이라고 불렀다. 백조는 상업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손님이 들어와도 이삼근은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커피와 주스, 우유만 팔고 술은 팔지 않았다. 담갈색 양 벽엔 김법룡 등 선전(鮮展) 입상작, 기증한 일본 화가 마츠우라 히데오(松浦秀雄)의 그림, 한 소련인이 그린 그림 '코카서스 부인의 성장' 등 68년 당시 모두 14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음악애호가였던 이삼근은 시끄럽다며 축음기도 멀리했다. 다만 피아니스트인 외아들 이공주(李公主)를 위해서는 그랜드 피아노를 마련했다. 이 피아노가 오랫동안 대구의 명물이 된다. 1965년 연주차 대구에 들른 독일 피아니스트 루스 스렌치스카도 연습 후 사인을 남겼고 안동에서 태어난 대구의 1세대 음악가로 60년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한 권태호(1903∼72), 계산동에서 태어나 46년 그 유명한 노래의 날개, 금잔디를 작곡한 김진균(1925∼86), 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 등 내로라하는 음악가와 효성여대·계명대 음대 학생들의 연습공간으로 애용됐다. 미국 여성과 결혼한 이공주는 가끔 백조에서 아버지의 바이올린 반주에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이삼근과 점점 멀어졌고 결국 미국으로 귀화하고 만다. 이공주는 연주인으로 대성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조율사로 살아갔다. 이삼근의 말년은 무척 쓸쓸하고 고독했다. 급증하는 고급 다방한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2년쯤 문을 닫는다. 훗날 제2의 백조다방이 생겼지만 도심재개발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만사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wind3099@hanmail.net
2026-09-09 13:49:07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1>평상심의 미학인지, 현실도피인지 모를 낮잠 '수하오수도'
버드나무 아래 평상에서 낮잠 자는 인물을 그린 김홍도의 '수하오수도'이다. 책 더미를 베개 삼아 그 위에 팔을 얹은 채 한쪽 무릎을 세운 우아한 포즈로 잔다. 머리맡엔 필통으로 활용한 중국 고동기(古銅器) 고(觚)가 놓여있고, 발치엔 삽병이 있는 고급스런 배경이다. 화가들은 오수도를 종종 그렸다. 김홍도의 선배인 공재 윤두서, 후배인 소당 이재관의 명작이 있다. 예로부터 뜻이 높은 고사(高士)의 낮잠은 그냥 잠이 아니라 고도의 문화적 제스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잠, 잠이 예술로 승화돼 회화로, 문학으로 나타났다. 낮잠 그림으로 '삼국지연의'의 삼고초려에서 유래한 제갈량의 초당춘수도(草堂春睡圖)가 있고, 문학으로 소동파의 '수향기(睡鄕記)'가 있다. '잠의 나라'인 수향, 곧 잠이야말로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무릉도원이라는 위트가 넘치는 산문이다. 조선의 문인들도 잠을 예찬한 '수향기'를 즐겨 지었다. 오수도의 잠은 삶의 가치를 안빈낙도에 둔 달관의 경지이기도, 평상심의 미학을 은유하기도, 세상사에 눈감는 의도적 외면이기도, 현실로부터의 도피인 수은(睡隱)이기도 하다. 자신만만하게 휘날리며 커다랗게 쓴 제화와 나이든 단원인 '단옹(檀翁)' 서명에서 김홍도의 문인(文人) 의식이 엿보인다. 시는 당나라 왕유의 '전원의 즐거움(田園樂)'이다. 2구만 썼지만 전체를 보면 시의 붉은 복사꽃, 푸른 버드나무, 울고 있는 꾀꼬리, 잠자는 인물이 그림에 그대로 나온다. 〈strong〉복사꽃은 밤비 머금어 더욱 붉고/ 버들가지는 아침 안개 둘러 한층 푸르네〈/strong〉 〈strong〉꽃이 져도 아이는 쓸 생각 않고/ 꾀꼬리 울어도 손님은 여전히 잠 속이네〈/strong〉 〈strong〉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 花落家童未掃 鶯啼山客猶眠〈/strong〉 '수하오수도'는 초연한 유유자적인지, 현실도피의 소극적 저항인지 모를 낮잠을 그린 오수도인 동시에 시정을 회화로 공유한 시정화의(詩情畵意)의 시의도(詩意圖)이다. 김홍도의 호 중에 오수당(午睡堂), '낮잠 자는 집(Nap House)'이 있다. 그저 낮잠이나 잘 뿐이라니 참 무심하고 평온한 이름인 것 같지만 오수, 오수도의 의미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9-09 10:31:16
1945년 7월 16일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성공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핵무기보유국이 되었고, 그 핵무기는 동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각각 강타하였다. 그 결과 양 도시가 전폐되었고, 약 34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그렇게 결사 항전을 외쳤던 일본 군부도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 앞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해악을 잉태한 핵무기의 군사적·전략적 가치로 인해, 각국은 핵무기 보유에 혈안이 되었다. 핵무기보유국은 점차 확대되어,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 구소련·영국·프랑스·중국·인도·이스라엘·파키스탄·북한 등 9개국이다. 또한 미국의 핵무기가 유럽의 5개국(네덜란드·독일·벨기에·이탈리아·튀르키예)에 배치되어 있으니, 총 14개국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셈이다. 오늘날 약 1만2천187개의 핵탄두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데, 1986년 한때 6만9천368개에 비하면, 많이 감축된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의 대량 파괴적 효과에 비추면, 여전히 인류의 운명이 핵무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동안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의 수는 대략 60~120개로 추정되었는데, 그 구체적 수치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날 북한은 드론(drone)이나 자율무기(autonomous weapons)를 활용한 자국의 핵작전능력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를 뛰어넘어 전 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현대전(現代戰)의 노하우(knowhow)를 축적하고, 나아가 핵잠수함의 진수(進水) 계획을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전력(戰力)은 점차 고도화되는 데 반해,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은 뒷걸음치고 있어 우려스럽다. 북한을 공식적 핵무기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트럼프의 위험한 거래', 충분한 대비책 없이 진행되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 문제, 육·해·공군 사관학교의 통합과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에서의 정치적 공약 이행을 위한 안보의 경시, 각종 한미연합훈련의 취소 또는 축소, 병력 자원의 감축, 군의 사기와 명예의 추락 등은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북한이 핵탄두를 57개나 가졌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전력이 방전되고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은 무덤덤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안보 불감증이다. 어쩌면 경제력 우위를 군사력 우위로 보는 착시 현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의 핵탄두 57개, 대한민국의 핵탄두 0개'라는 현실을 도외시한 채 말이다. 안보를 둘러싼 국론이 이렇게 분열되고 있다면,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계 속에서 일등 국가로 나아가려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긍정적일 수 없다. 역사의 교훈처럼, 북한 핵무기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국가 존립에 대한 방임이며, 민족에 대한 배신이다. 급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 놓인 대한민국은 이러한 흐름을 잘 예측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쟁취할 수 있듯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방어용 또는 억지용의 핵무장' 카드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힘이 없으면, 결국 힘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 평화와 자유를 잃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57 대 0'….
2026-09-09 05:00:00
[사설] 호르무즈 파병 딜레마, 미국 불신 되풀이 않도록 접근해야
미국 정부가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 자산 투입을 압박하는 가운데, 프랑스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호르무즈 파병(派兵) 문제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는 지금까지 파병에 대해 '실질적 기여 및 전투·비전투 등 군사적 기여 검토' '지금은 검토 단계에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민주당 일부와 진보 성향 정당과 단체들이 파병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파병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提出)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농축 및 재처리 협상,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대미 투자 프로젝트 이행과 추가 관세 압박 등 안보·통상 현안(懸案)과 파병이 얽혀 있는 만큼 진보층 여론만 고려해 미국 요구를 거부하기도 어렵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입장에서 호르무즈 상황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해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내의 주요 현안에서 그때그때 임기응변(臨機應變)식으로 대응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도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절차적 요인으로 늦어지면서 '투자 회피'라는 불신을 샀다. 신속하게 투자 절차를 진행 중인 일본·대만과 대조적이다. 이에 미국은 "기존 관세(15%)를 철회하고 최대 25%까지 인상할 수 있다" "반도체에 표적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를 두고 '대미 투자'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불신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 여러 현안에서 유리한 협상을 위해 '파병 언질'을 주고 여론을 핑계로 '빨리 파병할 수가 없다'고 미룬다면 한미 관계를 파국(破局)으로 몰아갈 수 있다. 파병이 국익이라고 판단한다면 적극적으로 여당과 지지층을 설득하고, 파병하지 않겠다고 판단한다면 상호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대안을 제시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국내 여론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국제 관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2026-09-09 05:00:00
[사설] 역사성·상징성 갖춘 대구가 대법원 이전 최적지다
대법원(大法院)을 지방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 공공기관과 중앙행정기관의 지방 이전에 이어 대법원 등 헌법기관의 비수도권 이전 필요성이 여당 지도부에서 거론되면서다. 지역에서 제기된 대법원 대구 이전론이 여권과 국회 차원의 논의로 확대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법원과 부속기관을 대구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發議)한 데 이어 전용기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4일 법원조직법을 신속히 개정해 대법원의 비수도권 이전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도 대법원 등 헌법기관 이전 논의의 필요성을 밝혔다. 지역 차원의 주장이 여당 지도부의 의제로 부각된 것이다. 대구지방변호사회도 다음 달 '대법원 대구 이전 추진위원회'를 발족한다. 이제 대법원 대구 이전은 단순한 지역 정치권의 요구가 아니라, 국가균형발전과 사법 권력 분산(分散)이란 국가적 과제로 논의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구는 대법원 이전 최적지로 꼽힌다. 대구는 일제강점기에 경성·평양과 함께 복심법원(覆審法院·2심 재판을 하던 곳)이 설치됐던 도시로 사법부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법원·검찰청의 연호지구 이전 이후 활용 가능한 범어동 후적지(後跡地)는 전국적 접근성이 뛰어나다. 기존 법조 인력 및 관련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법관 증원 등으로 사법 기능과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대구는 충분히 현실적인 이전지다. 대법원의 지방 이전은 국가의 중심이 반드시 서울이어야 한다는 관성을 깨는 상징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수도권에 행정·입법·사법·경제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는 것은 공허(空虛)하다. 최고 사법기관이 지방에 자리 잡는다면 균형발전의 상징성을 확보하고, 비수도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정부·대법원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가균형발전이란 큰 틀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26-09-09 05:00:00
[사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눈앞, 잠재성장률부터 끌어올려야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달러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민소득 잠정치(暫定値)에 따르면, 지난해 약 3만7천달러였던 1인당 GNI는 명목소득 증가와 환율 덕분에 올해 4만달러를 넘길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은 1994년 1만달러, 2005년 2만달러, 2014년 3만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미래의 성장 동력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를 웃돌 전망이다. 한은은 3.3%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고, KDI 전망도 3.2%다. 그런데 잠재성장률은 이미 1%대 후반까지 떨어졌고, 2040년대엔 0% 안팎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국민소득은 4만달러를 향하는데 경제 기초체력은 갈수록 약해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인구 감소만 탓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지금 출산율을 높인다고 해도 20년 이상 지나야 노동력 증가로 이어진다. 당장 여성·고령층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고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둔화된 생산성은 심각하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호황의 온기와 효율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해야 한다. 2분기 총저축률은 45.6%로 사상 최고다. 자금(資金)이 부족한 경제가 아니다. 규제 병목을 풀어 자금이 연구개발, 신산업, 인적자본 확충 등 생산성을 높이는 곳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4만달러는 지금껏 한국 경제가 이룬 성취의 결과물이고, 잠재성장률은 이를 키워나갈 능력이다. 67달러에서 4만달러까지는 자본과 노동을 빠르게 투입하며 선진국을 맹추격한 역사였다. 그러나 노동력은 줄고 자본 투입 효과도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내건 '잠재성장률 3%·수출 세계 4강·국민소득 5만달러' 비전의 성공은 환율이나 반도체 호황이 아니라 생산성 혁신과 구조개혁에 달려 있다. 정치적 부담이 큰 개혁을 외면한 채 목표만 제시하면 국민을 현혹하는 쇼에 불과하다. 노동·교육·규제·서비스산업의 낡은 구조를 바꿔 잠재성장률을 반등(反騰)시키지 못하면 '3·4·5 비전'은 숫자 놀음일 뿐이다.
2026-09-09 05:00:00
[관풍루] 프랑스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 현지서 여배우와 셀카 찍는 여유 과시
○…프랑스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 현지서 여배우와 셀카 찍는 여유 과시. 국내는 법무부·성평등 장관 등 2기 내각 후보자 관련 각종 의혹과 논란으로 벌집 쑤셔 놓은 듯 난린데… 아~ 출국 직전 지명한 이유가 다 있었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장 선택에 관심 집중. 청와대가 원하는 카드 받아들일 경우 '남편은 헌법재판관, 아내는 대법관' 탄생. 이 정도로 법조계에 인물이 없나? ○…지방소멸대응기금 4년간 8천억원 미집행된 것으로 확인. 누적 집행률도 75.7%에 그쳐. 다른 돈도 아니고 지방 살리자는 돈인데, 정부도 지자체도 지방 소멸 막을 의지가 있긴 한 거요.
2026-09-09 05:00:00
2026-09-08 18:39:58
오는 10월 1일, 대구지방법원은 동대구역 광장에 설치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둘러싼 민사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구조물 인도청구라는 민사소송이다. 국가철도공단은 홍준표 대구시장 시절 동대구역 광장의 소유권자인 공단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동상을 설치했으므로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 일대는 최종 준공 승인이 되면 대구시에 양여되는 공공시설물로 고시되었고, 그동안 대구시에서 실질적으로 관리하여 왔으며 다른 시설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던 공단이 굳이 박 전 대통령 동상에 대해서만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권리 남용이다"는 입장이다. 2016년 5월 13일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6-260호 '경부고속철도 대구도심2구간 건설사업 실시계획 변경 승인'으로 동대구역 고가교(광장 포함)가 대구시로 이관·양여되는 대체공공시설로 정리가 되었고, 같은 해 9월 대구시와 국가철도공단이 다시 이를 확인했다. 대구시는 2017년 11월 준공식을 거행했고 그 이후로 동대구역 광장을 실질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국가철도공단은 최종 승인과 소유권 이전을 미루었고 급기야 이번 소송에 이른 것이다. 이 사건의 실질은 동상의 존치 여부를 둘러싼 역사와 공공기억의 문제다. 절차적 흠결이라는 형식적 법률 문제로 포장한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라는 평가와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위주의 통치자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박 전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공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억의 공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 박 전 대통령 동상은 청남대와 영남대학교, 구미 생가 등에도 설치돼 있다. 수많은 시민과 국내외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공공장소의 동상은 사실상 동대구역이 유일하다. 대구의 상징적 공간에 세워진 이 동상은 특정 지역만의 기념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를 둘러싼 논의를 상징하는 공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만약 이번 소송의 결과로 동상이 철거된다면, 그 영향은 단순히 동대구역 한 곳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장소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특정 인물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기억을 형성하는 기준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동상 하나의 운명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역사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가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대한민국이 공과의 역사를 마주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동대구역 광장의 박 전 대통령 동상은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국가철도공단은 지금이라도 이 무익한 소송을 취하하기 바란다. 동대구역 광장의 실질적 관리권이 대구시에 있는데 굳이 이 소송을 계속할 실익이 없다. 설사 대구시의 처사에 다소 절차적인 하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6억원이라는 큰 자금이 투입된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건전한 상식과 시민 정서에 반한다. 대구시는 박 전 대통령 동상 보전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원은 동대구역 광장이 조성된 경위와 국토부와 대구시 간의 협의사항 및 국토부 고시, 박 전 대통령 동상이 설치된 경위와 동상이 지닌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해 형식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합리적인 판결을 할 것을 당부한다.
2026-09-08 15:34:44
9월은 독서의 달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연간 독서량은 감소했다. 2023년 19세 이상 성인의 연간 독서량이 3.9권이었던 데 비해 2025년에는 2.4권으로 줄었고 초·중·고 학생의 독서량 역시 36권에서 31.5권으로 감소했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시대에 독서량이 줄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하다. 그러나 독서 문화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독서율이란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1년에 한 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20대의 독서율은 2023년 74.5%에서 2025년 75.3%로 소폭이나마 상승했다. 여기에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텍스트 힙'(Text hip)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 텍스트 힙, 즉 텍스트를 읽고 소비하는 행위를 세련된 취향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책을 바꿔 읽는 교환 독서 활동이 독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청년의 독서 목적이 변하고 있음에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에는 시험을 준비하거나 스펙을 쌓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일상에서 휴식을 얻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독서가 의무에서 취향으로, 경쟁의 수단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첫째, 독서는 공부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책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험 문제 역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을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공부의 거의 전부이고 나아가서 글쓰기의 기초가 된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쓰는 것, 이것이 공부의 전부다. 대입 논술고사, 행정 및 외무고시 2차 시험, 변호사시험 등 거의 모든 중요한 시험은 주어진 글을 읽고, 이해하고, 답을 쓰는 능력을 테스트한다. 초·중·고 학생, 대학생 및 취업 준비생들이여, 책과 신문을 읽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에 맞게 쓰도록 노력하자! 둘째, 독서는 직장과 사회생활의 성공을 위해서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꾸준히 읽고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한 직종에서 퇴직까지 할 수 있는 경우가 줄고 있다. 성공적인 직장 생활과 있을 수도 있는 이직(移職)을 위해 독서는 필수이다. 셋째, 독서는 인공지능 시대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이다. AI가 만들어 내는 텍스트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 즉 '환각'이 포함될 수 있고 글의 현장성과 구체성이 대체로 부족하다. 따라서 AI가 제공하는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러한 능력은 읽고 생각하며 책 속의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접할 때 얻어진다. 넷째, 독서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삶의 동반자이고 훌륭한 노후 대책이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외로움과 허무를 느끼기 쉽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홀로 있는 시간이 도리어 즐겁다. 독서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의 상상과 경험을 접하는 길이고 노후에도 홀로서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독서는 보다 높은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 같은 제도와 이념은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제도와 이념을 초월하는 인간 존중의 인본주의, 환경보존을 실천하는 자연주의 같은 숭고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이는 우리 교육 이념이 궁극으로 지향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인류공영을 염두에 둔 삶으로 이어진다. 책 읽는 사람이 되어 책 읽는 도시, 책 읽는 나라를 만들자. 지난 6·3 지방선거 이후 대구경북은 국가 정책 결정에서 소외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신공항 및 군부대 이전, 반도체 산업 유치가 좌초돼 우울한 와중에 경북대가 '서울대 4개 만들기'에서까지 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 밀려 탈락했다. 현 정부의 대구경북 차별이 극(極)에 달했다. 이 불공정을 어떻게 넘을까? 분루(憤淚)를 삼키며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가 우리의 생각과 미래를 바꾸고, 우리 앞길을 막고 선 저 불공정의 벽도 마침내 무너트릴 것이다. 김노주(경북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2026-09-08 1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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