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2 18:45:31
[사설] 초광역특구법, '책임 없는 특례' 돼선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방 주도 성장을 위한 '초광역특구법'을 발의(發議)했다. 여러 지자체를 하나의 광역 경제권으로 묶어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투자와 일자리를 유치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지역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키울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그 지원 방식과 책임 구조를 두고 우려가 적잖다.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법안이라는 의구심도 나온다. 법안은 320여 개의 '메뉴판식' 규제특례와 40여 개의 정책지원 패키지를 담아 기업과 지방정부가 필요한 특례를 골라 쓸 수 있도록 했다. 특구기업에 대한 특별보조금과 금융지원·신용보증 우대, 조세·부담금 감면 근거도 마련했다. 특례를 고르는 주체가 기업과 지방정부인 만큼 정부 지원은 선별적·개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선별 지원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선별 기준과 사후(事後) 책임이 불분명하면 특혜 시비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특례를 받은 기업이 약속한 투자와 고용을 이행했는지 평가하고, 특례와 보조금을 거둬들이는 사후관리 장치도 법률에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법안은 당초 '메가특구특별법'으로 추진되다 초광역특구법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호남 특혜' 우려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름을 바꾼다고 의구심이 가시지는 않는다. 법안은 비수도권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출발점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 지원이었다는 점은 변함없다. 특구 지정 기준과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이유다. 취지는 좋지만, '규제는 덜고, 지원은 많이 하고, 책임은 흐릿한' 구조라면 초광역특구는 지역 균형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특례의 크기가 클수록 책임의 장치도 촘촘하고 엄격해야 한다. 특정 지역 특혜 논란을 덜려면 특구 지정 요건을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기준과 지원 내역, 특례 적용 성과를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법안 소관을 두고 상임위 변경 및 별도 특위 구성까지 거론되면서 심사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나오는 만큼 국회의 엄정한 심사도 요구된다.
2026-10-22 05:00:00
[사설] 부활하는 특별감찰관, 국민은 '성역 없는 감찰' 바란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이 10년 만에 부활한다. 여야가 최길수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합의하면서 긴 공백(空白)을 끝낼 길이 열렸다. 권력형 비리를 예방할 제도가 다시 가동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중요한 점은 실질적인 감찰의 가능 여부다. 특별감찰관법은 2014년 제정됐다. 그러나 2016년 초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찰하다 청와대와 충돌 끝에 사퇴한 뒤 후임자가 없었다. 정권이 두 번 바뀌면서도 대통령과 정치권은 특별감찰관 임명에 소극적이었다. 정치적 이해득실(利害得失)을 앞세운 탓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특별감찰관 임명을 추진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스스로 견제를 받겠다'는 약속이 정치적 수사(修辭)로 그쳐선 안 된다. 대통령 가족과 측근의 비위를 감시하려면 '불편한 감찰'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감시망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감찰 대상은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급 이상의 공무원으로 제한된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부당하게 인사나 국정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해도, 직급이 낮으면 감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세(實勢)인데도 감찰 대상이 아니라면, 그 자리는 사각지대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힘은 인사 관여 의혹을 받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에 대한 감찰 필요성을 제기했다.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고려해 감찰 대상을 정비해야 한다. 조사 권한과 감찰 기간이 제한적인 점도 문제다. 대통령 주변의 비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에 비해 감시망은 촘촘하지 않다. 감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외압(外壓)을 막을 장치도 보강해야 한다. 특별감찰의 실효성을 높이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최 후보자는 "외압이나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는 여당의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특별감찰관은 정치적 중립(中立)을 지킬 의무와 책임이 있다. 국민은 권력의 가장 가까운 곳에도 정의(正義)가 바로 서길 바란다.
2026-10-22 05:00:00
[사설] AI 인용한 李의 주장, 과연 국민이 납득하겠나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고, "배석 불가론은 위헌적 억지"라고 했다. 중수청장과 공소청장의 국무회의 참석 논란을 지적한 시민의 게시글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 또 "공소청장과 중수청장의 국무회의 참석(參席)을 배제하라는 주장은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행정감독권과 정부 통솔 구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궤변"이라는 등 제미나이의 답변을 실었다. AI(인공지능)는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책임 행정과 준사법적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中立性)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AI의 단순 답변을 근거로 SNS에서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공개한 답변의 타당성(妥當性)을 제미나이에게 다시 물어보니, "법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상반된 답변이 돌아왔다. "제시된 주장은 법적 가능성(배석할 수 있다)을 근거로 정치적 규범적 당위성(배석을 막는 것은 위헌이다)까지 비약시킨 측면이 있어 법리적으로 절반만 타당하다"는 것이 제미나이의 설명이었다. 이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중립성을 존중해 기관장을 국무회의에 부르지 않은 역대 정부의 관행(慣行)에 대해 "수사기관을 특별기관으로 취급하고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주장한 것 또한 '대법관 재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의 논리'와 어긋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에 앞서 해온 사전 협의 관행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재제청(再提請)을 요구했던 이 대통령이, 역대 정부가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해 지켜온 관행에 대해선 "잘못됐다"고 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수사기관의 독립성 훼손, 정치적 하명 수사 위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권한을 분산하고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를 내세운 검찰 개혁 논리와 모순(矛盾) 등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배제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
2026-10-22 05:00:00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실 국감에서 '경기·성남 라인 인사 개입' 등 따지겠다며 야당이 요구한 김현지·김용범·강훈식 증인 채택 거부. 의혹 규명 요구마다 '정쟁'이라며 막아서니, 이쯤 되면 국정감사 아니라 국정감싸기. ○…코스피, 미국 AI 기업 신용위험에 폭락했다가 다른 AI 기업 실적 호조에 반등하며 롤러코스터. 한국 증시 운전대는 외국인이 잡고, 개미들은 안전벨트도 없이 멀미하느라 혼비백산. ○…미국 11월 중간선거 패배 우려에 트럼프는 희생양 찾고, 백악관 참모들은 서로 끌어내리며 탈출구 찾느라 아수라장. 선거는 뒷전이고 패배 책임자 뽑는 경선부터 치르는 백악관.
2026-10-22 05:00:00
2026-10-21 19:02:23
대구 달성군에는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과 호국의 역사,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자연자원, 농촌체험자원, 국가산업단지라는 산업기반이 함께 존재한다. 2010년 농촌개발사업 일환으로 충효체험관, 한옥촌까지 건립되었고, 달성군이 2022년 말에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자원을 하나의 관광경제권으로 연결하는 종합적인 전략이 미진한 상태다. 이제 달성 관광의 패러다임을 '개별관광지 개발'에서 역사·문화·레저·농촌·산업을 융합하는 체류형 관광경제권 조성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그 중심축이 세계문화유산 도동서원과 홍의장군 석문산성 일원의 역사자원–낙동강 수변공간이다. 여기에 농촌체험·치유관광과 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하여 장기적으로 '1천만 관광도시 달성' '글로벌 문화관광도시 대구'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도동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 9곳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도동서원 관광도 단순 관람형에서 선비문화체험, 청소년 인성교육, 전통예절교육, 역사해설, 국제교육문화 교류 등을 접목한다면 도동서원은 '보는 문화재'를 넘어 '배우고 체험하는 세계유산'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도동서원의 선비정신을 홍의장군 의병정신과 석문산성 일원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평시에는 학문과 인격을 닦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정신은 선비문화와 의병문화를 하나로 연결하는 훌륭한 관광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 홍의장군 역사문화 콘텐츠, 의병체험 프로그램, 역사탐방로와 트레킹 코스, 청소년 나라사랑 교육, 문화축제 등을 개발한다면 이 일대는 전국적으로 차별화된 '선비정신·의병정신' 역사교육·호국관광권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1천만 관광객 시대를 지향하려면 역사문화관광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외 관광객이 반복해서 찾아올 수 있는 체험형·체류형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 해답이 낙동강 종합레저스포츠·역사문화관광단지다. 낙동강 수변공간을 활용하여 수상레저, 카누, 자전거, 트레킹, 캠핑, 가족휴양, 생활스포츠, 수변·문화공연과 축제 등을 종합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무조건 새로운 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관광·레포츠 시설과 역사문화자원을 연결하고 부족한 시설을 보완하여 하나의 관광 동선,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관광경제권으로 만드는 것이다. 관광산업도 이제 '몇 명이 왔느냐'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를 지역에서 소비했느냐'로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 도동서원에서 배우고, 석문산성에서 의병정신을 체험하고, 농촌체험장에서 자연과 농업을 경험하고, 낙동강에서 레저스포츠를 즐기고, 지역에서 먹고 숙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달성 남부권에는 도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낙동강 인접 농촌경관과 다양한 농업체험 자원이 있다. 과수 수확체험, 농촌문화, 생태교육, 산림치유 프로그램, 어린이 자연학습 등을 도동서원·석문산성 관광과 연결하면 가족과 학생들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다. 여기에 달성의 또 하나의 강점인 국가산업단지를 접목해야 한다. 산업단지를 방문하는 기업인·바이어·근로자·가족과 기업연수단을 역사문화관광, 농촌 힐링, 낙동강 레저스포츠와 연결한다면 달성만의 독특한 산업관광·기업연수·MICE 관광상품을 만들 수 있다. 낙동강 종합레저스포츠·역사문화관광단지라는 미래 프로젝트를 세워야 한다. 전 세계인이 몰려오는1천만 관광도시 달성을 만들어보자.
2026-10-21 15:49:46
[새론새평-곽수종] 세계 국가 부채 약 49경원의 시대
전 세계 국가 부채가 2026년 상반기 기준으로 약 365조 달러(약 49경 원)다. 글로벌 부채 급증과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주요국의 재정 악화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원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 및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내려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향후 한국은행의 금리정책과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통화정책뿐 아니라 국제유가, 국내 경기,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먼저 국제금융협회(IIF) 등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현재 세계 부채는 약 365조 달러다. 부채가 많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높은 금리와 맞물려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경기 부양과 국방비, 사회복지 지출 등을 충당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세수가 따라오지 못하면 재정적자가 커지고,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해야 한다. 여기에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까지 겹치면 정부의 이자 부담이 더욱 증가한다.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늘려야 하는 구조가 굳어지면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둘째,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이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다.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에는 미국 국채가 있다. 미국 국채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자 각국의 채권 금리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다른 국가의 자금 조달 비용도 함께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거나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압력을 받아들이면 시장은 높은 금리가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판단한다. 현재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릴 태세인 데다, AI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도 채권 공급을 늘리면서 금리 상승 압력이 커지게 한다. 당장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대를 위협하면서 9월 미국 주택매매계약은 전월 대비 4% 감소했고, 이는 팬데믹 기간을 제외할 경우 2014년 이후 최저치다. 미국 국채 금리가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달러 자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신흥국 통화와 원화에는 약세(절하)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달러 강세가 심해지면 원유와 원자재 등 달러로 거래되는 수입품의 원화 기준 가격도 상승하게 된다. 셋째, 유럽의 재정 불안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정부 부채와 재정적자가 주요 위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 전체가 동일한 재정위기에 빠졌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지만, 국가별 부채 구조와 재정 여력, 중앙은행의 대응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주요 선진국의 재정 부담이 동시에 커질 경우 세계 금융시장이 의지해 온 안전판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경계 대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이 개별 국가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고금리, 유럽의 재정 불안, 중국의 성장 둔화, 국제유가와 지정학적 위험이 동시에 나타나면 세계 경제는 하나의 충격을 다른 충격으로 증폭시키는 복합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것이 한국 경제에 특히 부담스러운 이유다. 한국 경제는 대외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반도체 하나로 명목 GDP가 크게 올랐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실제 통계를 비틀어 놓기 때문이다. BIS 기준으로 2026년 상반기 현재 2천374조원의 가계부채와 2천907조1천억원의 기업 부채는 금리가 조금만 상승해도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금리를 내리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줄고 소비와 투자가 회복될 수 있지만, 주택 구입과 대출이 다시 늘어나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금리를 올리면 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가계 소비 위축과 기업의 자금난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와 환율만 보고 금리를 결정할 수도 없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 주택가격, 건설업 부실, 기업의 상환 능력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게 딜레마다.
2026-10-21 14: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7>보름달과 벽오동, 삽사리와 소년의 가을 정취
긍재 김득신은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3대 풍속화가로 꼽힌 영조~순조 때 화원화가로, 나이는 김홍도보다 9년 아래다. 큰아버지가 유명한 화원인 복헌 김응환이고 친가, 외가, 처가에 화원이 많은 화원 명문가다. 아무 인맥 없이 자신의 재능만으로 나라의 최고가는 전문화가인 화원으로 입신한 평지돌출의 김홍도와 딴판인 경우다. 그러나 두 분 다 실력은 최고였다. 김득신은 감식안이 높았던 정조로부터 부채그림이 "김홍도와 백중(伯仲)할만하다"라는 평가를 들었고, 정조 때 대수장가 김광국은 김홍도의 화법을 모두 터득해 이따금 능가하기도 했다고 했다. 순조 때 영의정을 지낸 남공철의 시를 보면 '화사성졸언소과(畫史性拙言笑寡)'라고 해 평소 말이나 웃음이 적은 조용한 성품이었던 것 같다. 44년 이상 화원으로 나라의 그림 업무를 맡았다. 주도적으로 참여한 대표작으로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를 그린 '화성원행도병'(리움미술관 소장)이 있다. 문밖에 나가 달을 본다는 '출문간월도'는 키 큰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며 짖어대는 삽살개와 소년을 그렸다. 보름달 뜬 달밤의 광경이다. 풍속화로는 흔치않게 인장이 6방이고 화풍은 묵법 위주의 성근 필치인 문인화풍이다. 판독되는 인장은 '현보(賢甫)', '김득신인(金得臣印)', '촌심천고(寸心千古)', '함영저화(含英咀華)'다. 제화는 이렇다. 〈strong〉개 한 마리가 짖자, 다른 개가 짖고, 만 마리가 이 한 마리를 따라 짖는다. 아이 불러 문밖에 나가 보라했더니 달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 있다 하네. 긍재〈/strong〉 〈strong〉一犬吠 二犬吠 萬犬從此一犬吠 呼童出門看 月卦梧桐第一枝 兢齋〈/strong〉 원래 이 이야기는 한 마리가 짖자 온 동네 개들이 영문도 모른 채 무작정 따라 짖어대는 걸 두고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어리석음을 꾸짖는 뜻이었다. 그러나 '출문간월도'는 그런 교훈그림이 아니다. 벽오동 위로 환한 달이 둥실 떠오르자 주인집을 지키던 충실한 삽사리가 깜짝 놀라 짖는 모습과 천진스런 소년으로 달밤의 사건을 가을 정취로 버무렸다. 오동잎은 가을이 되면 제일먼저 낙엽이 된다. 풍속화의 해학에 계절의 서정을 더한 김득신의 실력이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2026-10-21 10:05:04
[사설] 북한 핵무기는 방어용·지뢰 도발은 사고라는 민주당 정권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는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최후 방어 무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는 '핵무기는 방어용일 뿐 남한을 향해 쏠 일이 없다'는 과거 북한의 말과 흡사(恰似)하다. 북핵 맨 앞에 노출돼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식이라기에는 대단히 안이하고 우려스럽다. 북한이 2022년 9월 만든 '핵무력정책법'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선제 핵 공격이 가능하다'고 명시(明示)하고 있다. 특히 '전쟁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주도권을 장악(掌握)하기 위해 작전상 필요한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필요하면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전쟁 위협이 가장 높은 지역에 있다. 그나마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전쟁 억지력(抑止力)을 유지한 덕분에 70년 이상 전쟁이 없었다. 그런 만큼 대한민국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 북한 핵 위협 증가에 따라 우리도 핵무장을 하거나 한·미동맹 및 한·미·일 연합훈련 강화 등 전쟁 억지력을 키워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북핵은 실전용이 아니라'며 북한 입장을 감싸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 정부 고위 인사들의 인식은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 집권층인지, 북한 대변인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지뢰 도발에 국군 장병들이 발목을 잃는 등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아직 지뢰 공격으로 특정(特定)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불의의 사고"라고 했다. 눈앞에서 도발과 위협이 이어지는데도 민주당 인사들은 '북한은 우리 주적(主敵)'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시작전권 환수와 한미연합훈련 축소, 9·19 군사합의 등 국방안보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민주당 정권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의심스럽다.
2026-10-21 05:00:00
[사설] 국민 건보료는 철저히 정산, 정부 재정 책임은 누가 묻나
건강보험 당국이 건강보험료 소득 정산(精算) 제도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 그리고 직장가입자의 월급 외 소득에 대해선 과거 소득 자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소득 감소 등을 이유로 조정을 신청한 경우만 사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앞으로는 가입자의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국세청 확정 소득을 확인해 매년 보험료를 다시 계산하겠다는 것이다. 소득 증가가 확인되면 보험료를 더 걷고, 소득이 줄었다면 돌려준다. 건보공단이 지역가입자를 대상으로 분석했더니 394만 세대가 약 3조3천억원을 추가 납부하고 232만 세대는 1조8천억원가량을 환급받으며, 건보 재정은 1조5천억원가량 늘 것으로 추산됐다. 가입자들의 소득 증가분을 보험료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정부도 역할을 다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건보 지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금액은 19조4천억원을 넘는다. 보험료 부담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강조하려면 정부부터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건보 재정은 2030년까지 매년 수조원대 영업적자가 우려된다. 보험료율이 매년 1.49%씩 인상된다는 가정 아래 만든 시나리오에서도 막대한 적자가 불가피한데, 정부는 내년 보험료율을 7.19%로 동결(凍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지원과 의료 보장 확대에는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다. 물론 보험료율 동결과 소득 정산 확대가 모순되는 정책은 아니다. 보험료율을 유지하면서 실제 소득에 맞게 보험료를 걷을 수 있지만 소득 정산 확대에 따른 1조5천억원의 재정 확충만으로는 구조적 불균형 해결이 요원(遙遠)하다. 정부는 국고 지원 기준에 부합하는 재원 확보, 보험급여 확대, 의료수가 인상에 따른 중장기 지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정산 과정에서 한꺼번에 큰 금액을 내야 하는 가입자 부담을 완화할 방안도 필요하다. 국민 부담 보험료는 한 푼까지 따져 계산하면서 정부 재정 책임은 방만하게 다루는 태도로는 건강보험에 대한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
2026-10-21 05:00:00
[사설] '성역 없는 수사' 하라면서 중수청·공소청장 국무회의 배석시키나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은 임명장을 받은 다음 날(20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배석(陪席)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고려해 불문율처럼 지켜온 불참(不參) 관례가 깨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부처 소속 외청(外廳)도 참석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구자현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중수청과 공소청, 경찰청의 직무대행들도 배석해 왔다. 수사기관의 정식 수장(首長)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등을 근거로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제도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별개다. 대통령의 지휘·감독 권한이 수사기관의 중립성보다 앞설 수는 없다. 수사기관은 대통령과 장관들도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공소기관 역시 권력자의 사건이라고 해서 기소(起訴)와 공소 유지를 주저해선 안 된다. 그런데 수사·공소기관 수장이 국무회의에 배석해 국정 방향과 정부 방침을 공유한다면 어떻겠는가. 구체적인 사건 지시가 없더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립성은 실제로 외압(外壓)이 있었는지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외압이 작동할 수 있다는 의심까지 차단해야 중립성이 확보된다. 중수청법과 공소청법에 지휘·감독 제한 규정을 둔 취지도 권력의 수사 개입을 막으려는 데 있다. 오죽하면 참여연대가 '수사·공소 유지 기관장의 국무회의 정례 참석'을 반대했겠나. 정부는 수사·기소의 독립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검찰청을 없애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출범시켰다. 그런데 이들 기관이 출범부터 논란에 휘말린 것이다. 권력과 수사기관 사이엔 분명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독립성·중립성 확보의 필수 조건이다. 김 중수청장은 취임 일성(一聲)으로 '수사의 정치화 청산'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국무회의 참석 문제에서도 독립성을 지킬 원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참모 조직이 아니다.
2026-10-21 05:00:00
[관풍루] 코스피가 하락장을 이어가면서 '빚투'한 사람들의 주식 강제 처분 금액이 4거래일 연속 500억원을 넘어서
○…李 대통령, 20일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산재 사망 감소' 보고에 "노동자가 장관 한 효과다. 박수만 치지 말고 포상도 하고 격려도 하라"고 주문. 그러면 대통령 자리엔 어떤 인사를 앉혀야 국민이 행복하고 잘 살 수 있을까. ○…코스피가 하락장을 이어가면서 '빚투'한 사람들의 주식 강제 처분 금액이 4거래일 연속 500억원을 넘어서. 결혼·전세자금 날린 민초들 곡(哭)소리 하늘을 찌르네. ○…北 김여정 노동당 부장 19일 군사분계선(MDL) 침범 시 한국군의 경고사격 조치에 반발하며 "군사력 증강 배치와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 검토" 담화 발표. 적반하장도 유분수.
2026-10-21 05:00:00
'콜 오브 듀티'가 까뒤집은 그들의 내로남불 [가스인라이팅]
오는 23일 출시되는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는 북한의 남침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무너지는 전선에서 조국을 지키는 국군 '박 이병'이다. 그런데 좌익 진영 일각에서 이 게임이 북한을 악마화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가 악마화일까. 먼저 이중잣대부터 짚자. 그동안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사실관계를 비틀 때마다 좌익 진영은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를 방패 삼았다. 실존 인물을 마음대로 각색하고 역사적 평가를 한쪽으로 끌고 가도 예술이니 관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이 침공하는 가상의 시나리오 앞에서는 갑자기 엄격한 윤리를 들이댄다. 창작의 자유가 진영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편의다. 설령 그 잣대를 인정하더라도 이번 비판은 성립하지 않는다. 악마화란 없는 악을 덧씌우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상상이 아니라 역사이자 현재다. 1950년 북한은 탱크를 몰고 내려왔다. 2010년 천안함을 침몰 시켜 46명의 장병을 앗아가고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었다. 김정은은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헌법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명시하라고 지시했다. 불과 한 달 전에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묻어둔 지뢰에 정상 작전 중이던 우리 장병이 다쳤고 한 장교는 발목을 잃었다. 이미 저지른 일을 게임에 묘사한 게 악마화일 수 없다. 오히려 이 게임은 우리가 잊고 사는 사실을 일깨운다. 휴전은 종전이 아니다. 70년 넘게 이어진 불안한 평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서울이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외면한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즐기는 게임이 한반도의 위협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그것은 비극의 소비가 아니라 위협의 환기다. 전쟁을 다루는 창작물은 늘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신중함과 침묵은 다르다. 북한의 위협을 그리는 것조차 '악마화'로 낙인 찍는 태도야말로 우리의 안보 의식을 무디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오락이다. 원종현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strong〉*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strong〉 〈strong〉**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strong〉
2026-10-21 02:28:10
2026-10-20 19:01:48
예전의 대구는 한강 이남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거리마다 청년들의 활력이 넘쳐나고 일자리가 풍부했던 도시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성장의 시계가 멈추고,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하나둘 고향을 떠나며 도시의 온기가 조금씩 식어가고 있다. 지방의회의 일원이자 이 도시를 깊이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쇠락해 가는 현실 앞에 무거운 책임감과 마음 깊은 자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우리 대구를 다시 살리고 가슴 뛰는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그 첫걸음은 단연 유망 기업을 유치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들이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 경제적 토대를 다지는 일이다.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된 수성알파시티의 디지털·AI 중심 신산업 생태계 육성이나 미래 성장동력 확보는 도시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일자리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기 어렵다. 단지 '일하러 오가는 공간'을 넘어, 누구나 한 번쯤 꼭 와보고 싶고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대구만의 특색 있는 문화시설과 감성적인 콘텐츠가 채워져야 한다. 해 질 녘 수성못을 조용히 거닐어 본다. 아늑한 저녁노을이 앞산 자락에 걸치면서 잔잔한 수면이 따스한 붉은빛으로 물들어진다. 수변 카페마다 따듯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버스킹 음악 소리와 산책하는 시민들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어우러진다. 이곳이야말로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참된 휴식과 감성을 선사하는 '도심 속 문화 휴식처'이다. 이 정겨운 수성못 일대에 머지않아 국제적 수준의 문화 인프라가 들어설 예정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2천 석 규모의 관람석을 갖춘 '수성못 수상공연장'이 연내 착공에 들어가면, 품격 높은 글로벌 시그니처 공연과 다채로운 축제가 펼쳐지며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여기에 수성못과 들안길 먹거리타운, 들안예술마을을 잇는 경관보도교인 수성브리지와 문화거리가 완성되면, 이동과 관람·체류가 하나로 이어지는 독창적인 문화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유원지에 머물던 수성못 일대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지로 크게 발돋움하는 순간이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대구의 미래 지도를 새로 그릴 대형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다. 제2작전사령부, 제5군수지원사령부, 방공포병학교 등 군부대가 떠난 자리에 대학병원과 연구기관이 연계된 종합 의료 클러스터, 금융 중심 도심복합타운, 글로벌 에듀파크(교육 특화지구) 등이 조성되면 의료·금융·교육·첨단산업이 상호 연계하는 도시의 신성장축으로 발전할 예정이다. 아울러 K-2 군공항 이전에 따른 '대구 공항후적지'에 첨단 산업과 문화, 글로벌 관광, 상업 거점이 어우러진 미래형 수변도시가 건설되면 대구의 도심 지형을 크게 바꿀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십 년간 단절되었던 도심 공간이 청년들이 일자리를 가지고 문화를 즐기는 첨단 의료와 교육,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대구는 생기와 기품이 넘치는 '젊고 힙한 매력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위대한 대전환은 한 사람이나 특정 기관의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정부와 대구시, 그리고 지방의회가 긴밀히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 시민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예전의 활력 넘치던 대구,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대구를 향해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2026-10-20 15:55:32
10월도 중순이 지났다. 2026년은 이제 두 달 반 정도 남았다. 새해 첫날에 세웠던 계획을 떠올려 보자. 난 올해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더 많이 하기로 결심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 '출력'보다는 '입력'에 힘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따로 독서할 시간은 없으니 틈새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어야 했다. 책 들고 다니는 것도 무거워서 전자책 리더기까지 샀다. 출근할 때, 점심시간, 자기 전에 책을 읽기로 했지만, 실행한 날보다 어영부영 지나간 날이 더 많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리하여 올해 세운 계획은 폭삭 망했다고 생각하며 한숨 쉬고 있는데 아내가 카카오톡으로 기사 링크를 하나 보냈다. 기사 제목은 '여든 이후 1천400권 읽은 87살'이었다. 강릉에 사는 87살 박정옥 할머니는 여든이 되던 2018년에 마음을 먹었다. 이제 일할 나이도 지났으니 죽기 전에 책 1천 권을 읽자는 것이었다. 그 뒤 8년 동안 하루 평균 5시간씩 책을 펼쳤고, 읽은 책은 어느새 1천400권을 넘었다. 80대 가운데 책을 읽는 사람이 열에 하나 남짓이고 한 해 평균 독서량이 한 권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생각하면, 남들이 책을 덮는 나이에 오히려 책을 펼친 셈이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에게 독서는 사치였다. 국민학교를 마친 뒤 보험 영업과 한복 바느질로 일흔다섯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은퇴 후에야 얻은 시간을 할머니는 책으로 채웠다. 소설과 철학, 종교, 뇌과학까지 가리지 않고 읽었다. 읽은 책마다 번호를 매겨 적은 독서 노트는 열 권이 됐고, 딸이 이를 엮어 지난달 '늦은 나이는 없다'라는 책으로 펴냈다. 책은 할머니의 생각을 바꾸기도 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평생 품어 온 믿음을 고쳐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사람이 겸손해지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독서를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일'에 빗댄다. 물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자라듯, 읽은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조금씩 자신을 키운다는 것이다. 시작이란 무엇일까. 한자로 시작(始作)은 '처음 시(始)'와 '지을 작(作)'이 만난 말이다. 무언가를 처음 짓는다는 뜻이다. 몸을 움직여야 일어나는 일, 그러니까 결심이 아니라 행동이다. 한번이 아니라 매일 다시 하는 일이며, 결과를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는 소박한 믿음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늦은 시작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 듯하다. 시작은 언제나 '지금'에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망했다고 생각한 나를 들여다본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 그것만으로도 어깨를 토닥여 줄 만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가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마음먹은 걸 시작할 때'다. 늦은 시작이란 없다.
2026-10-20 15:41:46
최근 빈소를 차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는 '무빈소 가족장'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타인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이자 경제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살아서도 빽빽한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살던 현대인은, 죽어서도 작은 상자로 켜켜이 쌓인 '납골당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 효율성에 인류가 가꿔온 죽음에 대한 예의와 낭만은 지극히 납작하게 생략돼 버렸다. 과연 인간의 마지막 자리는 이토록 간소하게 지워져도 괜찮은 것일까. 그 쓸쓸함의 끝에서 천오백 년 전, 죽음을 거대한 우주적 대화로 마주했던 고구려인들의 무덤 천정을 떠올린다. 찬란한 벽화고분은 귀족들의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만주 집안(集安) 지역에 산재한 무려 1만 2천여 기의 큰 무덤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고구려 고분은 여러 개의 방에서 하나의 방 구조로 변해갔지만, 시선의 설계만큼은 일관됐다. 벽면에는 주인공이 생전에 누렸던 지상의 삶을 그렸고, 천정에는 죽음 이후 맞이할 영원의 세계를 펼쳐놓았다. 경이로운 점은 피장자가 누워 천정을 바라볼 때, 그 눈길이 닿는 우주가 정면으로 마주 보이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무덤은 어두운 매장지가 아니라, 누워서 영원히 하늘을 감상하는 '사후의 극장'이었다. 고분에는 사후 세계를 상상하던 고구려인들의 취향과 희망이 서려 있다. '별자리 무덤'인 덕화리 고분이 대표적이다. 팔각형의 평행 고임과 거북이 등딱지 모양의 기하학적 구조 속에서 누워 바라보는 천정은 온통 별자리로 가득하다. 추상적이고도 완벽한 짜임은 흡사 은하계를 관측하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무용총의 천정 또한 회화적 아름다움의 극치다. 신선과 영물, 음악을 연주하는 선인들이 단순하면서도 유연한 선과 색으로 그려져 있다.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자유롭게 비상하는 영혼의 낙원이었다. 인간의 육신을 독수리의 먹이로 내어주며 영혼을 온전히 하늘로 보내는 티베트의 '천장(天葬)'처럼, 고구려인들 역시 무덤의 천정을 통해 영혼이 하늘 세계로 이어지기를 갈망했다. 천정이 영원한 우주로 열린 숨구멍이었던 셈이다. 반면 효율적인 행정 절차로만 끝나는 현대인의 죽음에는 하늘을 우러러볼 천정이 사라졌다. 사후 세계의 상상력과 낭만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죽음은 너무나 가난하다. 치열한 삶을 끝내고, 우리가 돌아갈 마지막 자리가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콘크리트 수납함에 갇히더라도 영혼만은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덕화리 고분 벽화의 천정 별자리처럼, 무용총의 선인 풍경처럼 드넓고 자유로운 새 우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소망한다. 죽음 이후 미지의 여정마저도 인간이 갈구하는 희망과 영성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하늘이 있는 삶과 죽음'의 여백을 생각해 본다.
2026-10-20 11:24:01
[사설] 포퓰리즘·방만한 재정 운용 불치병 된 프랑스, 남의 일 아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졌다. 발단(發端)은 정부의 예산 감축에 반발한 고교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 요구였고, 물가와 생계난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합류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 17일 시위에는 정부 추산 약 55만 명이 참가했고, 2천400명가량이 체포됐으며 상점 1천500곳이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재정 압박 속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공공부채가 올해 GDP의 119.3%, 내년 121.7%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고, 총리는 540억유로를 절감하지 않으면 내년 적자가 GDP의 6.5%에 육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감축의 고통은 학교 같은 일상의 현장에서 체감됐고, 연금 등 지출을 키우는 근본 요인 대처는 더뎠다. 큰 폭의 감축은 의회에서 잇따라 막혔다. 앞서 바르니에 내각은 긴축(緊縮) 예산안으로 불신임을 당했고, 바이루 총리도 긴축 예산안 신임 투표에서 졌다. 긴축이 답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사회적·정치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거나 미루는 사이 감축은 점점 급해지고 반발도 커졌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태를 한국에 그대로 투영(投影)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는 교육, 물가, 생계난이 겹친 복합적 사건이고 한국의 부채 비율은 프랑스의 절반에 못 미친다. 정치·사회 구조도 다르다. 그러나 위험 신호, 즉 지출 압력과 규율의 약화는 한국에서도 보인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9%로 재정준칙 상한 3%를 2020년부터 6년째 넘었다. 내년 예산안은 총지출이 12.8% 늘어 역대 최고 증가율이다. 정부는 재정지표가 개선된다고 설명하지만 반도체 호황으로 국세수입이 늘어난 덕이다. 부채 비율이 50% 안팎이라는 데 안도(安堵)해선 안 된다. 재정준칙 법제화, 연금 구조개혁 로드맵, 초과 세수를 항구적 지출 확대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등을 위기 전에 합의해야 한다. 프랑스는 합의 없이 개혁을 밀어붙이거나 미루기를 반복했고, 반발과 교착 속에 큰 위기를 맞았다. 한국은 합의를 먼저 만들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에 서 있다.
2026-10-20 05:00:00
[사설] 졸속 도입 확인된 단일종목 ETF, 진상규명 뒤따라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졸속(拙速) 심사(審査)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4월 중순인가 금융위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일정을 정책적으로 발표한 게 있다. 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통상 ETF 종목 상장 시 한국거래소 예비 심사와 금감원 심사 등 두 단계를 거치는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경우 예비 심사가 끝나기도 전에 심사를 했다며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를 묻자 이 원장은 "저희가 확인해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답변했다. 금감원 부원장보 이상 간부 13명 중 단일종목 ETF 출시에 찬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가 발표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일은 지난 5월 27일이다. 국내 증시를 인위적(人爲的)으로 부양시켜 6·3 지방선거 때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졸속 도입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금융당국의 무능과 무책임 아래 도입됨으로써 개인 투자자들이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 변동성 심화, 금융당국의 제도적 실패라는 엄청난 후폭풍에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중순까지 개인 투자자의 확정 처분 손실만 2조3천242억원에 달하고, 주가 급락에 따른 평가 손실까지 합산할 경우 전체 국민 피해 규모는 최대 54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分析)까지 제기되고 있다. 10월 현재 주요 레버리지 상품들은 상장가 2만원 안팎 대비 5분의 1 수준인 6천~7천원대 신저가로 추락했다. 국민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이번 사태를 그냥 묵과(默過)할 수는 없다. 금감원장의 국정감사 증언으로 무모하고 무책임한 정책 실패가 확인된 만큼,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규명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對)국민 사과 역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26-10-2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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