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식탁은 때로 역사의 심판대가 된다. 식탁 위에 올라온 나물 한 접시, 젓갈 한 종지에도 서슬 퍼런 역사의 비판과 민초들의 해학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숙주나물이다. 이 나물의 이름은 녹두에서 싹을 틔웠다 하여 '녹두나물'이라 불러야 마땅하지만 '숙주나물'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신숙주(申叔舟)의 이름이 투영되어 있다. 신숙주는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당대 최고의 천재였다. 그러나 그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 단종을 보필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수양대군(세조)의 편에 서서 권력을 잡았다. 함께 집현전에서 수학했던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死六臣)이 절개를 지키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그는 화려한 관직을 이어가며 부귀영화의 길을 택했다. 백성들은 그의 명석한 두뇌는 인정했으나,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그의 변절을 비웃었고, 쉽게 쉬어버리고 맛이 변하는 녹두나물을 보고 "신숙주의 마음처럼 잘 변한다"라고 쑥덕거렸고, 급기야 그것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 한편 '곤쟁이젓'은 남을 헐뜯고 음해하는 간신들에 대한 분노가 담긴 음식이다. 여기에는 중종 시대 기묘사화의 주동자였던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의 이름이 얽혀 있다. 당시 조광조(趙光祖)를 필두로 한 사림파의 개혁 정치에 반발한 남곤과 심정은 '주초위왕(走肖爲王, 조씨가 왕이 된다)'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꿀로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하는 간계로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백성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곤정(袞貞)'이라 불렀고, 이것의 발음이 변해 '곤쟁이'가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작고 볼품없는 곤쟁이들이 뒤섞여 삭아가는 젓갈의 모습에서, 남을 음해하여 권력을 탐하는 소인배의 비겁한 작태를 떠올린 것이다. 민초들이 이토록 가혹하게 그들의 이름을 식탁 위에 올린 이유는 무엇인가? 변절과 음해는 공동체의 근간인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변절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가치와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다. 신숙주가 보여준 선택은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꿈꾸던 동료와의 약속을 배신한 행위였다. 음해는 더욱 비열하다. 정정당당한 논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화살을 쏘는 짓이다. 남곤과 심정이 사용한 수법은 사실의 왜곡과 프레임 씌우기였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해는 한 시대의 개혁 의지를 꺾고 수많은 인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들이 남긴 독기는 결국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당쟁의 소용돌이를 격화시키는 불씨가 되었다.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숙주나물'과 '곤쟁이젓'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를 맹비난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철새처럼 진영을 옮기는 현대판 신숙주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신념은 장식품에 불과하고, 변절은 전략적 선택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된다. 디지털 세상에서의 음해는 더욱 잔인해졌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행위는 '주초위왕'보다 훨씬 빠르고 치명적이다.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좌표를 찍고 조리돌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곤쟁이젓의 짠내보다 더 지독한 악취를 맡는다.
2026-05-13 05:00:00
[사설] 일부 후보들 토론 회피, 역량·비전 검증 피하겠다는 꼼수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토론 회피'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양향자 경기도지사 후보의 토론 제안에 "상대방과 싸우지 않겠다. 시민의 불편과 싸우겠다. 정책 대결을 하겠다"거나 "상대방에 결례를 범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는 것이 정치 신뢰(信賴)를 높일 수 있는 길"이라며 토론을 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간 토론은 상대방과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공약을 유권자들로부터 검증(檢證)받는 과정이다. 토론과 질문으로 검증되지 않는 공약은 '장밋빛 공약' '선거용 구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질문과 반박 과정에서 공약을 좀 더 세련되고 구체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공약과 정치철학 토론은 유권자들에게 어느 후보가 더 적합한지 구별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런 점에서 토론 회피는 주권자를 무시(無視)하는 행태이자 '책임 있는 공약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지지율이 앞서는 후보 입장에서는 토론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단순히 승부(勝負)를 가리는 절차(節次)가 아니다. 주권자가 누구에게 권한을 맡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후보자는 국민 앞에 자신의 비전과 정책, 철학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지지율이 높으니 검증을 최소화하겠다면, 민주주의 본질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토론은 후보의 준비 수준과 정책 이해도, 위기 대응 능력, 상대 의견을 경청(傾聽)하는 태도까지 종합적으로 드러나는 자리다. 토론을 통해 유권자는 공약집이나 일방적 홍보물로 알기 어려운 후보의 실제 역량(力量)을 판단한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비판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등 지도자의 자질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토론 회피는 국민에게 필요한 판단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2026-05-13 05:00:00
청와대는 12일 언론 공지(公知)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내일(13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예방을 받고 접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을 방문한 베선트 장관은 당초 13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곧바로 베이징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이 미·중 재무장관 회담의 장소만 제공할 뿐, '패싱'당하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고위 관료가 동맹국(同盟國)을 찾으면서 협의 일정을 전혀 소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異例的)인 외교적 결례로 비칠 수 있었던 탓이다. 특히 14일 미·중 공식 정상회담에선 대중(對中) 관세 및 무역·투자위원회 신설, 미국산 농산물·보잉기 구매를 비롯한 양국 간 현안뿐만 아니라, 이란전쟁·국제 에너지 수급 문제 등 글로벌 현안(懸案)이 함께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미 간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1일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4월에 베선트 장관과 만나 충분히 할 이야기를 다 했고 베선트 장관과는 수시로 소통(疏通)하고 있다"면서 "얼마든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만나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의 회동 일정도 잡힌 것이 없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도 지난 10일 SNS를 통해 "일본을 12일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을 만난다"고 알렸지만, 방한 일정에서 한국 측 인사와의 면담 계획은 없었다. '한국 패싱 논란'이 확산하면서 이재명 정부가 서둘러 청와대 만남을 주선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推論)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눈치 보기 '셰셰 외교'로 인해 한미동맹(韓美同盟)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뒤늦은 '깜짝 회담'은 이재명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외교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2026-05-13 05:00:00
[사설] 기업 지방 투자 촉진, 더 파격적 세제 지원 절실하다
한국 경제가 1분기 1.7% 성장하며, 현재까지 성장률을 발표한 주요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열풍 속 반도체 수출이 폭증했고, 설비투자도 살아났다. 코스피는 8천 선에 육박하고 수출은 사상 최대 수준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산업 현장과 지역 경제는 여전히 힘겹다. 중소기업들은 자금난과 인력난을 호소하고, 지방 산업단지는 공실(空室)이 늘고 있다. 일부 업종에서는 구조조정과 무급휴직까지 이어진다. 과거 제조업은 지역 경제와 협력업체, 고용시장까지 함께 살려냈다. 그러나 반도체 등 초고자본·초자동화 산업은 투자와 수출 효과만 클 뿐 고용 유발은 제한적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은 살아나지 않고, 수출 호조에도 지역 경제는 냉랭한 이유다. 최근 정부는 지방 투자 기업에 대해 법인세·재산세 감면(減免)을 확대하고, 인구감소지역 고용 기업에 추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지방 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과 비수도권 청년 고용 지원책도 확대하고 있다. 기업과 청년을 수도권 밖으로 보내지 않으면 경제 불균형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만 깎아준다고 기업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다. 세율도 중요하지만 기업은 인재와 시장, 협력업체와 인프라를 본다. 대기업 한 곳을 유치한다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시대도 아니다. 지방에 공장을 세워도 연구개발과 고급 일자리는 수도권으로 돌아간다. 세제 혜택을 통한 '공장 유치'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복원이 필요하다. 중견 제조업과 지역 부품업체, 연구개발 기능, 대학과 인력 양성 체계를 연결해야 한다. 서비스업 생산성과 소비 기반까지 함께 키우지 못하면 지역 경제는 수도권과 반도체 산업의 하청(下請) 구조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반도체가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가 계속될수록 경제 복원력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낮은 성장률이 아니라 성장의 연결이 특정 분야와 지역에만 몰리는 게 문제다. 숫자는 좋아졌지만 경제의 저변(底邊)은 좁아지고 있다. 그것이 1분기 깜짝 성장률이 던진 무거운 경고다.
2026-05-13 05:00:00
[관풍루] 권영세 의원, 출마 기자회견 당시 '영상기자가 무대서 추락한 것 몰랐다'는 한동훈에 "나무호 피격 정부가 모른다는 것과 같다"고 직격
○…권영세 의원, 출마 기자회견 당시 '영상기자가 무대서 추락한 것 몰랐다'는 한동훈에 "나무호 피격 정부가 모른다는 것과 같다"고 직격. 미워하는 심정은 알겠는데 '오버'한 견강부회가 아닐지…. ○…비싼 교복 가격이 논란이 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교복 가격 담합' 과징금 강화하겠다고 으름장. 이재명 대통령의 '등골 브레이커' 언급에 따른 조치, 봄마다 고개 드는 적폐가 이번엔 사라질까. ○…미 월가에 '타코(TACO)' 이어 '나초(NACHO)'까지 등장.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우려 속에 '개방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라는데. 이런 추세면 트럼프, 멕시코 음식으로 한 상 차려 먹을 듯.
2026-05-13 05:00:00
2026-05-12 18:43:15
학창 시절 16년을 보내고도 그 후로 35년, 나는 아직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며 학교로 향하는 교사이다. 언제나 5월이 되면 마치 사랑에 빠진 듯 온통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하던 초임 시절의 풋풋했던 마음이 떠오른다. 예전에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면 비밀번호 분실 시 확인할 질문을 선택하고 그 답을 기입하는 절차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이라는 질문에 별 고민 없이 내 이름을 적어줄 수 있는 제자가 몇이나 될까? 혼자서 궁금해하던 때도 있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그 개념마저 '조용한 소멸'을 맞이하고 있는 요즘, 나는 다시 나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스승의 날을 맞아 과연 나는 그들의 삶 속에 작은 울림으로 남을 수 있는 흔적을 남겼는지,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사명감을 지닌 교사로 살아왔는지 자문하게 된다. 오래전 한 방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묻는 설문이 있었다. 결과는 의외로 교생 선생님이 1위를 차지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간직한 스승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한 분쯤은 평생 잊히지 않는 스승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선생님' 하면, 자연스럽게 40여 년 전 나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 한 분이 떠오른다. 그분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몸소 가르쳐 주셨다. 연말이 되면 지인들에게 보내는 연하장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손으로 써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모습은 '관계는 정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없이 일깨워 주었다. 지금 나는 손 편지 대신 SNS로 안부를 전한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진심을 담아 보내는 인사는 여전히 그때 배운 가르침 위에 서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관계를 이어주고 신뢰를 지켜주는 힘은 결국 이러한 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소중한 배움은 지금껏 나를 지탱하는 삶의 큰 기둥이 되고 있다. 나도 나의 루틴 중 하나가 아이들의 인생에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사로 마지막까지 자리하고 싶다는 게 큰 욕심이 아니길 바라본다. 최근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소명에 헌신하고 있다. 결국 교사라는 길은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 그것은 학생들과의 끊임없는 공감과 소통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제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 한 명 한 명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교사의 작은 실천 하나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교실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스승은 직업이 아니라 관계이며, 존재로 남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오늘도 교실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지고 있다. 푸르른 오월 어느 하루,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그 마음을 기억하는 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더라도 우리가 잘 지키고 이어 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우리 사회가 꼭 기억했으면 한다.
2026-05-12 11:16:56
전쟁의 시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장기화되고, 중동의 충돌은 세계를 다시 긴장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국가와 이념, 종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정세 속에서 평화는 점점 추상적인 언어가 돼간다. 뉴스 속 전쟁이 반복될수록 참혹함에 대한 감각은 오히려 무뎌진다. 죽음과 파괴가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공존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1967년, 미국의 젊은 세대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총 대신 꽃을 들었고, 머리에 꽃을 꽂았다. 스콧 맥킨지의 노래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려거든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이 짧은 가사는 전쟁과 폭력에 맞서는 평화주의의 선언이 됐다. 꽃은 나약한 장식이 아니라 폭력에 저항하는 가장 순수한 상징이었다.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라 불린 이 반전운동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질서와 폭력적 권력 구조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었으며, 예술과 음악, 패션과 행동이 결합된 거대한 사회적 메시지였다. 이 움직임은 미국을 넘어 동유럽으로 확산됐고, 프라하의 봄과 같은 민주화의 현장에서도 자유를 염원하는 몸짓으로 이어졌다. 머리에 꽃을 꽂는다는 행위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인간 존엄과 화해를 향한 보편적 언어가 됐다. 오늘의 세계는 다시금 '머리에 꽃을'이라는 오래된 상징을 불러낸다. 전쟁은 더욱 복잡해졌고 갈등은 한층 정교해졌지만 인간의 생명과 평화를 향한 열망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예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쟁의 참혹한 현실 앞에서 예술은 무기력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의 감정을 흔들고, 무뎌진 양심을 깨우며, 시대의 상처를 기억하게 한다. 정치가 현실을 조율한다면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움직인다. '플라워 운동: 머리에 꽃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지닌다. 머리에 꽃을 꽂은 아이의 순진한 이미지는 낭만이 아니라 폭력 이전의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선언이다. 순수함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저항일 수 있다. 국적과 이념을 넘어 공존을 이야기하는 일 역시 그러하다. 평화는 거대한 외교의 결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폭력보다 존엄을 선택하려는 작은 몸짓에서 시작된다. 머리에 꽃을 꽂는다는 것은 결국, 전쟁의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무기가 아니라, 다시 꽃을 머리에 꽂을 용기다. 그 몸짓이야말로 때로는 가장 오래된 저항의 언어가 된다.
2026-05-12 09:44:39
[사설] 추미애 '조작기소 특검법 당연', 그러면 '6·3 선거 대표 공약'으로 내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조작기소 특검법안'에 대해 "수사를 통해 조작기소 실체가 명명백백히 밝혀진다면 억울하게 피해를 본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작기소 특검법안'의 독소 조항을 모르는 사람이 추 후보의 말을 듣는다면 특검법 반대가 억울한 피해 구제에 반대하는 줄 알겠다. '조작기소 특검법안'이 비판을 받는 것은 피고인인 이재명 대통령이 자기 사건을 재수사하고, 공소 취소까지 할 수 있는 특검을 자신이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뻔히 알면서도 추 후보는 사실을 호도(糊塗)하고 있다. 민주당이 주도한 '조작기소 국정조사'가 끝난 후 청와대는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共感帶)가 형성되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어떤 공감대가 형성됐고, 어떤 실체가 드러났나? 오히려 국정조사에서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증언(證言)은 기존 수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었다. 많은 법조인들과 언론, 야당은 물론이고 친민주당 성향의 언론들도 '조작기소 특검법'을 비판한다. 정의당·경실련 등 진보 단체들조차 위헌성을 비판한다. 민주당이 국정조사 증인 중 31명을 위증 등 혐의로 공수처와 경찰에 고발했다는 것은 국정조사에서 자신들이 기대했던 '조작 관련'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는 방증(傍證)일 것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만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관련 사건이나 김만배, 남욱 등의 대장동 사건이 검찰의 조작기소임이 드러났다면 재심을 청구해 억울한 피해를 바로잡으면 된다. 이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이 검찰의 조작기소라면 재판에서 그 증거를 제시하면 무죄 판결이 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확립된 법 절차를 외면(外面)하고, 조작기소 특검법으로 해결(解決)하려고 한다. 추 후보 주장처럼 '조작기소 특검법안'이 정당하다면 민주당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특검법안 처리를 민주당 대표 공약으로 내서 국민 선택을 받아 보라.
2026-05-12 05:00:00
[사설] 이제야 호르무즈 피격 확인이라니, 뭘 주저하는가
외교부는 10일 브리핑을 갖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HMM '나무호'의 폭발이 외부 공격(攻擊)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상의 비행체 2기가 HMM 나무호 선미 좌현 평형수 탱크 외판을 약 1분 간격으로 2차례 타격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또 질문에 답변하면서 "드론인지, 미사일인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했다. 사건 발생 6일 만에 겨우 '외부 공격'만을 확인한 셈이다. '드론 또는 미사일에 의한 피격'을 '미상의 비행체에 의한 공격'이라고 얼버무린 것부터 정부 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 비행체 엔진 잔해를 수거했는데도, 전문가로 구성되었다는 정부 합동 조사단이 드론과 미사일 엔진조차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특히 나무호 선미에 '5x7m'의 상당히 큰 파공(破空)이 발생했음에도 이재명 정부가 '내부 화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사건을 호도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초 피격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밝힌 이유에 대해 외교부는 "육안 확인만으로는 파공(구멍)을 식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解明)하지만, 정황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약하다. 사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에 의한 한국 선박 피해'를 확정하는 SNS 글을 올렸다. 인근 해역에서 프랑스·중국·UAE 선박 또한 이란의 공격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와 국영 IRNA통신은 "해상 규정을 위반한 한국 선박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마땅히 한국 정부는 '이란에 의한 피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망원경을 동원해서라도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아직도 가해 주체가 '이란'이라고 말하지 못한 채 뚜렷한 대책도 없다. '대통령 특사를 보내고,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50만달러를 주고도 오히려 두들겨 맞았다'는 비난(非難)이 두려운 탓일까. 정권 체면보다 나라의 주권·명예가 더 중요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우리 선박 26척과 선원들의 안전이 먼저다.
2026-05-12 05:00:00
[사설] 40년 '고속도로 휴게소 비리 카르텔', 국토부는 책임 없나
한국도로공사(도공) 퇴직자 단체인 '도성회'를 둘러싼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권 특혜 의혹이 결국 경찰 수사로 번졌다. 국토교통부는 11일 감사 결과 드러난 입찰 정보 사전 유출과 가격 담합 정황을 토대로 관계자 5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도성회 자회사인 H&DE는 입찰 공고가 나기도 전에 이미 용역 상황과 제안 일정 등 내부 정보를 확보해 이사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는 공정 경쟁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違背)한 행위다. 더욱이 낙찰 가격이 다른 참여자들의 평균가와 거의 일치했다는 점은 가격 담합이나 정보 공유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경악스러운 것은 이러한 비위가 지난 40여 년간 '전통'처럼 굳어져 왔다는 점이다. 도성회는 '비영리법인'이라는 지위를 방패 삼아 휴게소를 사실상 독점 운영하며 배당 잔치를 벌였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8억8천만원의 배당금을 확보했고, 이 가운데 약 4억원을 생일 축하금 명목으로 회원들에게 지급했다. 지난해 말 기준 도성회 예금 적립금도 약 25억원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탈세 의혹까지 불거졌다.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가 본연의 임무는 방기한 채 퇴직자들의 '평생 연금' 창구로 변질(變質)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도로공사의 방조와 특혜 제공은 카르텔의 공고함을 증명한다. 도공은 기존 운영 원칙까지 뒤집으며 수의계약을 맺어주는가 하면, 계열사 입찰 제한 규정을 무력화해 도성회 측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관리·감독의 주체가 되어야 할 공기업이 오히려 퇴직 선배들의 뒷배 노릇을 자처한 꼴이다. 이런 유착 관계 속에서 휴게소 운영의 효율성이나 서비스 질 향상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뒤늦게라도 '카르텔 척결' 의지를 밝힌 것은 다행이지만 단순히 몇몇을 징계하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독점적 운영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부당한 개입이 불가능한 투명한 입찰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고착화된 전관 특혜와 비리 사슬을 끊어내야 할 것이다.
2026-05-12 05:00:00
[관풍루] 2024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응급의료 헬기 이송 결정을 '공무원행동강령 위반'이라고 했던 국가권익위, 2년 전 판단은 부적정했다고 번복.
○…2024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응급의료 헬기 이송 결정을 '공무원행동강령 위반'이라고 했던 국가권익위, 2년 전 판단은 부적정했다고 번복. 정권에 따라 뒤집는 국가 행정기관의 판단, 민망함은 국민의 몫. ○…민주당 "尹 어게인 청산" VS 국민의힘 "李 대통령 공소 취소 논란" 부각, 6·3 지방선거 총력전 돌입. '지방'은 소멸되고, '정쟁'만 난무하니, 태평연월(太平煙月)은 꿈이런가. ○…8천까지 근접한 코스피, '불장'에 1만까지 도달 가능하다는 국내외 증권사 전망치 속출. 주가 상승 랠리에서도 고물가·취업난·빚투로 곳곳서 곡소리, 환호 뒤엔 짙은 먹구름.
2026-05-12 05:00:00
2026-05-11 18:47:57
[사설] 점심값조차 부담, 고비용 사회 피해 계층 보호정책 마련 나서야
코스피는 8,000선을 바라보고, 수출은 역대 최고 수준을 이어가며, 반도체·방산·조선·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은 호황을 구가(謳歌)한다. 수치만 보면 한국 경제는 순항 중인데 정작 시민들은 김밥 한 줄 가격과 점심값을 걱정한다. 패스트푸드점과 실속 뷔페형 식당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자산시장과 생활경제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낯선 국면이다. 가격은 유지한 채 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에 이어 재료 수준과 품질을 낮추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까지 등장했다. 통계상 물가 상승률보다 체감물가가 훨씬 높게 느껴지는 이유다. 중동전쟁 이후 국제유가 급등으로 비료·사료·물류·포장 비용이 동시에 뛰고 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3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고, 유지류(油脂類)와 곡물 가격도 상승세다. 식용유와 밀가루, 닭고기와 김밥 가격까지 밀어 올린다. 반도체와 AI 중심의 수출 호황은 대기업 실적과 자산시장을 부풀리지만, 국민 생활 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주가는 글로벌 유동성과 미래 기대가 밀어 올리지만 식사비는 국제유가와 곡물 가격, 환율이 결정한다. 현재 물가 상승을 단순한 경기 흐름 문제가 아니라 고비용 사회로의 구조적 전환 신호로 보는 까닭이다. 정부가 내놓은 유류세 인하, 최고가격제 등의 정책은 충격을 늦추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가격을 과도하게 억누르면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만 커질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가격 통제가 아니다. 전기·교통·급식 같은 생활 필수 비용을 안정시키고, 취약계층과 중산층의 실질 구매력 하락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초점을 옮겨야 한다. 물가와의 전쟁이라는 구호(口號)가 아니라 싸고 풍요롭던 시절이 끝나가는 지금, 누구를 먼저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현실적 선택이 시급하다. 코스피는 최고치를 향해 가는데 시민들은 점심값을 걱정하는 사회.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2026-05-11 05:00:00
[사설] 또 중앙선관위 개인정보 유출, 지방선거 관리 믿을 수 있겠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30일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사과문(謝過文)을 게재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보공개 청구인 4명에게 제공한 '2025년도 조국혁신당 중앙당 정기회계 보고 자료'에 가림 처리가 되지 않아 개인정보가 포함되었다는 설명이다. 유출(流出)된 개인정보는 641명의 이름, 생년월일 235개, 주민등록번호 121개, 휴대전화번호 415개, 주소 181개, 계좌번호 203개, 이메일주소 30개 등이다. 중앙선관위는 지난달 27일 해당 정보가 재유출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청구인 중 3명에게 제공한 파일을 바로 삭제했으며,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삭제 및 유출 금지를 위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사무 관리 등을 책임지는 핵심 국가기관인 선관위에서 이처럼 터무니없는 행정 착오(行政錯誤)가 발생한 것에 대해 한심스럽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관위의 보안 부실은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2023년 10월 외부 세력의 사이버 공격으로 추정되는 직원 업무용 PC 해킹이 있었고, 2024년 6월에는 선관위 직원 3천여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부에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고 있지만, 선관위의 설명과 해명은 부정선거 의혹을 완전히 불식(拂拭)시키기에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관위의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과 사무 관리 부실(不實)은 '과연 현재 선관위가 선거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기는 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6·3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사실상 우편투표나 다름없는 사전투표의 경우 엄격한 관리가 쉽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관위는 괜한 오해와 불신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모든 업무를 확실하고 명확하게 처리함으로써 논란의 여지를 사전에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선관위는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한다.
2026-05-11 05:00:00
[사설] 대구 법조타운 조성 사업 표류, '검찰 개혁'이 이유 될 수 없어
대구 연호지구 법조타운 조성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2018년 후보지 선정 이후 8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준공 예측조차 힘든 상황이다. 법원 이전 일정은 설계·예산 협의 지연 등으로 2028년에서 2029년, 2030년으로 잇따라 연기되더니 최근엔 청사 주차장 배치를 두고 기관 간 불협화음으로 2031년으로 또 미뤄질 처지다. 검찰 청사 건립은 더욱 암담(暗澹)하다. 검찰 개혁을 이유로 이전 계획 자체가 설계 단계에서 사실상 중단 상태다. 그러는 사이 대구가 치러야 할 사회적 기회비용(機會費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단순히 건물 몇 동짜리 법원·검찰 청사 이전이 지연되는 문제가 아니다. 법조타운은 수성알파시티와 대구대공원을 잇는 동부권의 앵커 시설이자 연호지구라는 거대한 도시 생태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연호지구 사업의 핵심인 법조타운 조성이 표류하다 보니 인근 상업·업무 용지의 분양도 잘될 리 없다. 저조한 분양률과 유찰 등으로 상당수가 미분양 상태다. 조성 지연으로 가중되는 공사비와 사업성 악화는 말할 것도 없다. 이에 연호지구 사업 만료 일정도 당초 올 연말에서 2028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최근 법원 청사 건립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주차장 배치 문제다. 장기적 안목으로 도시 미관을 고려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해당 기관 간 협의로 해결 가능함에도 연속 부결된 건 납득하기 힘들다. 검찰청이 폐지되는 상황에서 청사 건립을 계속 추진하는 게 조심스러운 것도 맞다.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는 것은 책임 있는 행정이 아니다.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체제 전환은 이미 입법까지 된 상태다. 조직의 이름이 뭐가 됐든 업무 공간은 필요하다. 규모 확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작정 멈춰 있을 게 아니라 가변형 설계라도 도입해 일단 사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 검찰 개혁이 사업 지연의 면죄부(免罪符)는 아니다. 법조타운 조성은 지금도 넘치도록 일정이 지연됐다. 이제 더는 불협화음과 불확실성 뒤에서 '연기'만 남발해선 안 된다.
2026-05-11 05:00:00
[관풍루] 코스피 7,000 시대를 맞아 '빚투' 심리가 커지면서 주요 은행 마이너스통장의 실제 사용된 대출액(잔액)이 40조원을 넘어서.
○…코스피 7,000 시대를 맞아 '빚투' 심리가 커지면서 주요 은행 마이너스통장의 실제 사용된 대출액(잔액)이 40조원을 넘어서. 1만피 장밋빛 전망만 쳐다보지 말고 돌다리 두들기는 심정으로 투자해야 할 때. ○…여론조사 방식에 따라 국민의힘 지지율이 엇갈리는 현상이 반복되자, '샤이 보수'라는 해석과 고관여층 목소리 과대 표집 등 해석 엇갈려. 결국 선거는 뚜껑 열어봐야 아는 법. ○…"청춘의 오늘을 지켜 주십시오". 어린이날 새벽 '묻지 마' 흉기 사건으로 희생된 광주 여고생 사건에 대한 재발 대책 촉구하는 고교생 SNS 성명문 봇물. 정부가 사회안전망 강화로 답해야지!
2026-05-11 05:00:00
2026-05-10 18:53:28
공립박물관에서 청춘을 바치며 일해온 필자는 어느 도시에 있든지 그곳 박물관에 관심이 많다. 도시에서 박물관이 가지는 중요성과 역할 등을 시민에게 알리고, 박물관을 그 도시의 살아있는 핵심 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박물관으로 행복한 도시'를 꿈꾸고 있다. 우리나라 박물관 관련 법령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으로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 진흥을 목적으로 제정돼있다. 박물관은 설립 및 운영 주체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한다. 국가가 설립한 국립과 지방자치단체가 설립·운영하는 공립, 개인이 설립한 사립, 대학이 설립한 대학박물관이 있다. 이 가운데 필자가 몸담아 왔던 곳은 공립박물관이다. 정부는 국립뿐만 아니라, 전국 공립·사립·대학박물관도 시야에 넣어 골고루 발전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공립박물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구부립박물관(대구시립박물관)이다. 1947년 5월 15일 달성공원에서 대구부립박물관이 개관했다. 잘 알다시피 달성공원은 일제강점기부터 대구·경북을 대표하던 공원이었다. 공원 중심부에는 대구신사(大邱神社)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동쪽에는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이 있었다. 해방 이후 이 건물들은 바로 철거되지 않았다. 대구부는 1946년 초부터 '대구부박물관' 기성회를 구성해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 국체명징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개편하여 대구부립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이때 대구 시민들은 후원회를 만들어 박물관을 적극 지원했다. 인천부립박물관이 1946년 개관했기에 대구부립박물관은 우리나라 제2호 공립박물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이후 대구부가 시로 승격돼 이름을 대구시립박물관으로 바꿨다. 대구향토역사관 근처에는 흙바닥이 잘 정비된 테니스장이 있다. 그곳에 대구부립박물관 건물이 있었다. 테니스장 흙바닥을 고르는 롤러를 자세히 보면, 옛 대구신사 입구 기둥(도리이)을 잘라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 대구부립박물관 역사를 알려주는 작은 표석이나 안내판을 설치하면 좋겠다.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달성공원에 우리나라 제2호 공립박물관이 있었던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박물관 연표에 이 사실이 반영돼야 한다. 필자는 초기 단계의 대구시립박물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최근 대구향토역사관 1층 상설전시실 일부를 개편하며 대구부립박물관 설립과 관련 역사를 전시했다. 1950년 8월, 전쟁 비상 상황에서 육군이 박물관 건물을 사용함에 따라 박물관 문을 닫고, 소장유물은 대구시립도서관으로 옮겨졌다. 이후 1958년 11월 대구시는 소장유물 1천300여 점을 경북대로 위탁했으며, 1959년 5월 경북대도서관 내에 경북대박물관을 개관했다. 군인이 떠난 국체명징관 건물은 한동안 대구시립도서관 달성분관으로 사용되다가 철거됐다. 필자는 해마다 5월에는 직원들과 테니스장 근처를 걸으며 우리나라 제2호 공립박물관 존재를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하곤 한다. 현재 대구에는 필자가 총괄하는 대구근대역사관·대구방짜유기박물관·대구향토역사관이 시립박물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3곳 전문박물관 규모로 대구 역사문화를 다 담을 수 없어 박물관인으로서 늘 아쉽게 생각하지만, 언젠가 대구시립종합박물관이 만들어지길 꿈꾸며 각 관별로 업무 범위와 역할을 구분해 대구 지역사와 전통문화를 최대한 담아내고 조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6-05-10 11:40:23
어버이날 아침, 나는 한 요양병원을 찾았다. 지인인 의사 선생님의 초대로 작은 음악회를 열게 된 것이다. 병원 공연은 오랜만이었다. 오늘은 또 음악이 어떤 마음들에 닿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바이올린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작은 강당에는 환자들과 의료진까지 서른 명 남짓 모여 있었다. 클래식과 영화음악, 그리고 한국 가곡들을 준비했다. 따뜻하고 익숙한 곡들이었다. 그런데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객석의 표정들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무겁고 굳어 있었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분들도 있었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몸이 불편하시거나 공연이 낯설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음악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얼굴이 풀리고, 조용히 박자를 맞추는 손이 보였다. 어떤 분은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고, 어떤 분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곡이 끝났을 때는 한 어르신이 크게 "브라보!"를 외쳤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다.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어머니는 공연을 보시다 눈물을 흘리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 안에 따뜻한 변화가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의사 선생님과 식사를 하며 그날 아침 있었던 일을 듣게 되었다. 새벽에 한 환자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공연 전 병동에 흐르던 무거운 공기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음악회 덕분에 환자분들의 표정이 정말 많이 밝아졌다고,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평소에는 딸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오늘 음악회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언젠가는 딸의 손을 잡고 공연장에 가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함께 음악을 듣고 같은 감동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문화를 가장 화려한 곳에서 찾는다. 좋은 공연장, 세련된 공간, 유명한 무대들.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날 요양병원에서 연주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문화의 향기가 먼저 닿아야 하는 곳은 오히려 이런 곳들이 아닐까 하고. 병원, 돌봄센터, 자립시설, 호스피스 같은 곳들. 외로움과 지침이 오래 머무는 공간들 말이다. 예술은 병을 낫게 하지도, 죽음을 막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어떤 음악은 사람을 다시 웃게 만들고, 잠시라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돌려준다. 그날 요양병원에서 내가 본 것은 단순한 공연의 성공이 아니었다. 음악을 통해 다시 환하게 살아나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마지막 브라보의 울림을 잊지 못한다.
2026-05-10 11: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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