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시작도 전에 각종 의혹과 위법 논란으로 몰매를 맞고 있다. 신약(新藥) 임상시험 청탁 및 브로커 양모 씨와의 관계 등을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음주운전, 주정차 위반 과태료 미납 압류, 가족 관련 의혹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쏟아지고 있다. 장관 후보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김 후보자는 억울해하는 기색이 역력(歷歷)하다. 며칠 만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최대 관심사인 양 씨와의 관계에 대해 "법조인이 자주 가는 음식점, 카페 같은 곳에서 처음 손님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앞서는 '2022년 2월 우연히 마주쳤다'고 했었다. 거짓말도, 해명도 궁색하다. 양 씨가 운영하던 강남 유흥주점 직원 퇴직금 체불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했다는 건 판결문을 통해 알 사람은 다 안다. 임상시험 청탁 의혹도 마찬가지다. 이미 기소유예를 받은 사건이고, 그것도 윤석열 정부 때 받은 처분이라 압력 행사 여지가 없었다며 당당해한다. 그런데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참작(參酌)해 재판에 넘기지는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혐의는 인정된다는 말이다. 무혐의나 무죄를 받은 게 아니다. 그러면서 화살을 청탁 의혹 제기자에게로 돌린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을 향해 '수사 자료 어디서 입수했느냐'고 따지며 청문회에 출석해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 전담 대응팀'을 꾸리고 비밀누설 등으로 한 의원을 고발했다. 물타기라 할 수 있겠다. 김승원 의원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법무부 장관은 법 집행과 법질서 확립을 총괄하는 자다. 김 후보자는 본인의 각종 범·위법 시비와 배우자·자녀 급여 논란 및 배우자 미인가 불법 학교 운영 등 가족 의혹까지 안고 있다. 역대 법무부 장관 중 전과자(前科者)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준법정신을 기대할 수 있는 후보인지, 법무부 장관 자리에 마땅한 인사인지 잘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2026-09-08 05:00:00
[사설] 고립무원 TK신공항, 지역 정치권은 정기국회서 돌파구 찾아라
군공항 이전이 핵심인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 사업이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내몰렸다. 국토교통부 TK신공항건설추진단장 자리는 두 달째 비어 있다. 국방부는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전환해달라는 지역의 요구를 거부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도 군공항 이전의 마중물로 꼽히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융자와 금융비용 지원은 반영되지 않았다. 국가안보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이 정부의 외면 속에 표류(漂流) 상태다. TK신공항 사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과 확연히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로 광주 군공항 부지를 선정했다. 또 '전격전'(電擊戰)을 강조하며 광주 군공항 기능의 임시 이전까지 지시했다. 이러니 지역에서 'TK 차별'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TK신공항 건설 지연의 핵심 원인은 막대한 재원(財源) 문제다. 지방선거 때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는 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과 함께 1조원(공자기금 5천억원·정부 특별지원금 5천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정부 지원 없이는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구시의 공자기금 융자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수십조원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국가사업'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사업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TK신공항건설추진단장의 공석(空席)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TK 정치권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사활(死活)을 걸어야 할 것이다. 공자기금 융자와 금융비용 지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시키는 데 정치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부안에 빠졌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지역 의원들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협상하고 설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정부·여당은 'TK 차별'이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공자기금 지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2026-09-08 05:00:00
[사설] 개헌 발목 잡는 대통령 연임, 5·18 전문 수록 논란 먼저 정리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대 변화와 국민 요구를 반영해 현실 가능한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5·18과 부마항쟁 헌법 전문 수록(收錄) 및 권력구조 개편을 제안했다. 현행 '87년 헌법'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데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만, 개헌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 문제'와 '5·18 전문 수록'이라는 갈등 요소를 극복하지 못하고는 진전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4년 중임·연임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 수용(受容)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친명계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 대통령 연임 적용 여부'를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고 발언해 논란을 자초했다. 이는 '임기 연장 등을 위한 개헌은 제안 당시 대통령에 효력이 없다'는 헌법 제128조 제2항과 배치(背馳)된다. 이에 야권과 언론이 '연임 않겠다'고 밝혀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대통령은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다. 그러니 개헌마저도 공소취소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재판 지우기' 용도 아니냐고 국민들은 의심하는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문제 역시 논쟁이다. 특정 정치 진영이 5·18을 독점(獨占)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5·18 왜곡 처벌법'을 만든데 이어 '조롱·모욕까지 처벌하는 법'도 만들겠다고 한다. 국회에서 5·18 관련 학술토론회를 개최한 국회의원을 제명하겠다고도 했다. 법과 처벌로 입을 막아야 할 만큼 국민들 사이에서 5·18에 대한 논란이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헌법 전문에 넣자고 하니 개헌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자면 유공자 선정 과정의 투명성 확보 및 공적 내용 공개 등 국민적 불신을 해소(解消)하는 작업이 먼저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 헌법(大韓民國制憲憲法) 이래 우리는 여러 차례 헌법을 개정해왔다. 헌법 개정이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개정의 목표는 더 나은 정치, 국민 기본권 확대,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이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개헌을 하자면 '이 대통령 연임' '5·18 이견' 문제 등이 우선 해소돼야 한다.
2026-09-08 05:00:00
[관풍루] 빚을 많이 내 집을 매수한 가구는 금리가 1%p 오르면 연체 확률이 0.81%p나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
○…빚을 많이 내 집을 매수한 가구는 금리가 1%p 오르면 연체 확률이 0.81%p나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나. 당연히 금리 인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금리 인상기인 요즘, 너무 무리한 '영끌' 내 집 매수는 위험천만. ○…용해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아이돌봄사 국가자격제 도입 반대표, 가정 밖 청소년 보호 강화 법안에는 기권. 대체 성평등가족 정책을 총괄 조정할 컨트롤타워 자격이 있는 건지. ○…실업 청년의 번아웃 경험률이 52.7%로 취업 청년(32.4%)보다 약 1.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 취업난과 고용 불안이 정신적 부담을 키우기 때문이라는데…. 월급보다 먼저 찾아온 '번아웃'!
2026-09-08 05:00:00
2026-09-07 18:55:16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따로 또 하나, 동이족의 조상숭배와 제천의식
◆흥륭와문화의 주거지 매장과 조상숭배 지금은 많이 퇴색했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가장 경이로왔던 것 중 하나가 한국인들의 효문화였다. 살아있는 부모뿐만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들도 살아있는 존재처럼 기일 때마다 온 종족이 모여 제사를 모시는 모습은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서양인들에게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런데 중원의 동이족 문화 답사를 다녀보면 우리 효문화의 뿌리가 신석기 시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동이족 효문화는 직접적인 조상숭배와 하늘에 대한 제천의식이 결합되었는데, 나는 조상숭배와 제천의식을 '따로 또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이족들이 왜 조상을 숭배하고, 제천의식을 치렀는지를 보면 이 둘이 별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상숭배부터 보자. 중국 내몽골 자치구 오한기(敖漢旗)에 있는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B.C. 6200~B.C.5200)는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동이족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데, 최초의 환호(環濠), 즉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둥글게 도랑을 판 해자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흥륭와 사람들은 집안에 시신을 묻고 껴묻거리로 돼지를 같이 묻기도 했다. 집안에 시신을 묻은 것은 죽음은 삶의 연속이라는 사상이며, 조상들이 저 세상에서도 자신들을 지키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는 생명의 원기가 나오는 북두로 여겨 죽은자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간다고 여겼기에 함께 묻었다. ◆홍산문화의 여신묘와 제천의식흥륭와문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배가 풍만한 여신상이다. 동이족 흥륭와문화는 조보구문화(趙寶構文化:B.C 5000~B.C.4400)로 연결되고, 조보구문화는 유명한 홍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3000)로 계승된다. 홍산문화에 속하는 우하량(牛河梁) 유적은 1983년에 발견되었는데, '단(壇:제단)·묘(廟:사당)·총(塚:무덤)'이 함께 발굴되어 중국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단·묘·총(壇廟塚)'이 갖추어진 것은 이미 고대 국가가 존재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하량 유적에서는 동이족 특유의 모계사회 전통에 따라서 여신묘가 발굴되었는데 흙으로 빚은 여신의 얼굴이 있고, 여신의 왼쪽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새 부조와 발톱이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곰의 발을 형상화한 상징물이 출토되었다. 하늘(새)을 숭배하는 부족과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결합한 부족의 조상신으로 여겨진다. 한국인들이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단군은 하늘 부족인 환웅과 곰 부족인 웅녀의 혼인으로 태어나 고조선을 세운 우리민족의 건국시조이다. 우하량 여신묘를 만든 동이족은 곧 단군의 선조들로 해석할 수 있고, 이 국가는 단군조선 이전의 신시(神市)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하량 제2지점에서는 3단으로 쌓은 둥근 원형(圓形) 제단과 네모난 방형(方形) 제단이 발견되었다. 원형은 하늘을, 방형은 땅을 상징하는데, 이 제단 위에 군장이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면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지인(天地人)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산문화와 대문구 문화사람들이 중시한 새 중원의 동이족 유적으로 이동해 보자. 1972년 하북성 무안현(武安縣)의 자산문화(磁山文化: B.C. 6400~B.C. 5400) 유적에서는 원통모양의 그릇(통형우{筒形盂})과 이를 받치는 새 머리 모양의 받침다리가 발견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자산문화를 원시(原始) 한장족(漢藏族) 문화라면서 고대 한족(漢族)과 연관있는 것처럼 우기지만 새를 조상으로 여긴 동이족 문화유적이다. 산동성 태안(泰安)에서 발견된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B.C. 4300~B.C. 2500) 역시 동이족 문화인데, 중국에서 황하문명의 핵심으로 꼽는 용산문화(龍山文化:B.C. 3000~B.C. 1900)로 이어진다. 현 중국의 동이문화 답사를 다녀보면 도대체 한족(漢族)문화는 어디에 있는지 저절로 궁금해질 정도로 동이문화 천지다. 이 대문구문화에 대해서는 중국에서도 소호금천씨 부족의 유적이라고 시인한다. 소호 금천씨는 김유신 비문에서도 나오는 김씨의 조상인데, 새를 신성하게 여기는 새토템사상을 갖고 있었다. 산동반도는 원래 동이족의 무대였는데 그 중심지는 공자(孔子)의 고향이었던 북부 곡부(曲阜)와 중부의 임기(臨沂)시였다. 이 임기시에 춘추시대 담국(郯國)이 있었는데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었다. 『춘추좌전』에는 소호씨가 즉위할 때 봉황이 나타났으므로 새를 벼리로 삼아 관직명을 정했다는 담국의 군주 담자(郯子)의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산동지역에서는 많은 새 모양의 그릇과 의기가 출토되었다. 한편 대문구문화에서는 돌구슬을 물고 있는 유골이 출토되었다. 유골에는 양쪽 어금니 잇몸을 깎고, 이를 발치한 흔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입모양을 새처럼 뾰족하게 만들려고 한 것으로서 잇몸을 깎는 큰 고통을 감수하고 평생 이를 참아 낸 이유는 새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신화집이자 인문지리서인 『산해경』에서는 사람과 새가 결합된 새사람에 대한 묘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러한 묘사들은 새 숭배사상, 난생신화 등과 연관되어 있다. ◆난생신화의 주제는 천손사상난생신화는 여지없는 동이족 건국신화이다. 중국 하·은·주(夏殷周)의 하나였던 은나라 시조 설(契)도 난생신화다. 『사기』 「은본기」는 '제곡(帝嚳)의 차비 간적(簡狄)이 냇가에 목욕을 하러 갔는데, 하늘에서 현조(玄鳥)가 날아오더니 알을 하나 떨어뜨렸다. 간적은 그 알을 먹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은나라 시조 설(契)이다'라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신화와 같은 난생신화로서 이는 은나라 사람들도 자신들을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었음을 말해준다. 중국의 신화학자 원가(袁珂, 1916~2001)와 장광직(張光直, 1931~2001)은 난생신화는 동이족 신화라고 인정했다. 난생신화에는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사상이 담겨 있는데, 대표적인 천손은 단군이다. 단군은 환인의 서자 환웅이 신시(神市)에 내려와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다. 천제(天帝) 환인의 서자 환웅은 풍백, 운사, 우사 등 무리 3천 명과 함께 하늘에서 신시로 내려와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 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시조가 하느님이라고 믿는 집단에게 하늘에 대한 제사는 곧 시조와 조상에 대한 제사였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에서도 이러한 흔적이 보이는 것 또한 이들도 천손(天孫)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나라 정월을 사용한 부여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고구려에는 동맹(東盟), 부여에는 영고(迎鼓)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다. 고구려의 동맹은 10월이었는데, 부여의 영고는 은정월(殷正月)이었다. 은정월은 은(殷)나라의 정월을 뜻하는데, 하(夏)나라는 음력 1월, 은나라는 음력 12월, 주(周)나라는 음력 11월이 정월이었다. 부여가 은 정월에 영고를 지냈다는 것은 곧 은나라의 달력을 사용했다는 뜻인데,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중국 학자들도 모두 인정한다. 영고 때는 몇일 동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였으며, 형벌과 옥사가 중단되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고 「동이전」에서 전한다. ◆마가요문화의 집단무와 제의 현 중국 서북부 감숙성(甘肅省) 임조(臨洮)현의 마가요문화(馬家窯文化: B.C. 3300~B.C.2000)는 1923년 스웨덴의 지질학자 앤더슨이 발굴했는데, 신석기시대 채도(彩陶)문화로서 후기에는 청동기가 나타난다.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집단으로 춤추는 모습과 새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그려진 무도문채도분(舞蹈纹彩陶盆)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감숙성 무위(武威)시와 청해성 대통현(大通县)과 동덕현(同德县) 종일유지(宗日遗址) 등에서 집단으로 손잡고 춤추는 무도문(舞蹈纹)이 발견되었다. 이런 집단무는 공동체가 함께 행한 제의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집단무와 새와 관련된 상징은 동북지역에서부터 중원 지역뿐만 아니라 남쪽의 장강 유역, 그리고 서쪽의 감숙성 일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기와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과 다른 시기에 동일한 문양이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하버드대 중국계 고고학자인 장광직은 성읍국가 건설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장광직은 하·은·주 삼대의 제도를 통해서 성읍국가가 어떻게 건설되었나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씨족이 있다고 치면 그 씨족한테는 본래 선조, 즉 원시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원시조의 자손들이 후손에 후손을 낳으면서 인구가 불어나게 된다. 이때 원시조의 계승권이 없는 후손이 이주를 해서 새로운 씨족을 만드는데, 이주할 때 원시조를 계승한 인물에게서 무리와 영토를 분배받고, 그 영토의 관할권과 성읍의 이름도 부여받는다. 또한 원시조와의 관계를 보증해주는 의식부호나 도구를 받아 새로운 땅으로 이주한다. 이렇게 원시조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땅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스스로를 상징하는 부호를 만들어 새로운 부족의 창립을 공표한다"는 것이다. ◆조상은 지위와 신분의 보증수표 장광직의 이론은 우리 단군신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환웅은 환인의 서자인데 서자는 장남을 제외한 자식을 말한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신시에 내려올 때, 환인으로부터 그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천부인 세 개를 받아서 내려와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했다. 그런데 환웅이 신시에 내려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홍산문화에 남아 있는 여러 제단들을 볼 때, 제단을 쌓고 조상에게 고하는 일부터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주자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더라도 본래 자신이 속했던 원시조 집단의 서열을 유지한다. 새로운 성읍국가들 사이에서도 이 서열은 지켜지기 때문에 계보가 매우 중요해진다.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조상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조상은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보증해 주는 강력한 보증수표로서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조상숭배와 제천의식, '따로 또 하나' 동이족에게 조상은 단순히 죽은 선조가 아니었다. 조상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 주는 존재였고, 새로운 집단을 세울 수 있는 권위와 정통성의 근원이었다. 동이족들은 자신들의 최초 조상, 즉 시조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늘에 이르게 된다. 은나라의 시조 설이 현조의 알에서 태어나고, 단군의 조상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실례를 보여준다. 따라서 시조가 하늘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조상에 대한 제사와 하늘에 대한 제사는 별개의 의례일 수 없었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조에 이르고, 시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늘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이족에게 조상숭배와 제천의식이 '따로 또 하나'였던 이유이다.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2026-09-07 14:49:05
[사설] 노조의 블랙리스트 협박과 조폭 행태, 뿌리 뽑아야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위원장이 10만여 명의 개인정보를 몰래 빼내 이른바 '노조 미가입자 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든 혐의로 최근 검찰에 송치(送致)됐다. 지난 4월 사내 시스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노조 간부와 공모해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빼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성과급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던 당시 최 위원장이 유튜브 방송에 출연,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명단으로 관리하겠다. 향후 강제 전환 배치나 해고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들을 우선 검토하겠다"고 했다. 동료 직원인 노동자들을 향한 사실상 협박(脅迫)이다. 노조가 마치 독재 정권의 권력기관이나 된 듯한 그릇된 만행(蠻行)이 아닐 수 없다. 최 위원장은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법을 위반하면서 개인정보를 훔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죄질(罪質)이 나쁘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사내 시스템에 접속해 노조 가입 여부 등을 무단 조회한 노조 조합원 4명도 검찰에 넘겼다. 노조의 불법 행위가 일상화되었던 셈이다. 오죽하면 친노(親勞) 성향인 이재명 대통령마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권리 행사인지, 불법 부당한 행위인지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가려봐야 한다"고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겠나.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졌던 건폭(建暴)이 다시 나타나 월례비와 웃돈 요구, 조폭식 밥그릇 빼앗기 등 건설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권 출범 이후, 폭력을 휘두른 건설 노동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이 대통령 본인이고, 건폭 단속(團束)에 손을 놓았던 것이 이재명 정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노조의 정당한 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 경제 질서에 따른 법과 원칙은 노사(勞使) 모두에서 엄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특정 노조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거대 조폭 같은 범죄 조직화 한다면, 그 피해자는 일반 노동자와 기업, 국민 모두가 될 수밖에 없다.
2026-09-07 05:00:00
[사설] 내각 인선 총체적 난국…인사 검증 실패에 인력풀도 문제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신약(新藥) 임상시험 청탁 의혹을 둘러싼 통화 녹취록의 잇따른 공개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의원직 겸직 논란에 배우자의 정당 유급 당직 급여 의혹까지 겹쳐 공정성 시비에 휩싸였다.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자신이 직접 설계·발표한 '실거주 중심' 부동산 세제 개편과는 반대로 4억여 원 주고 산 아파트에 4개월만 살고 5배 넘는 시세차익을 보고 있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대출과 가족 차용금을 동원한 '영끌 매수' 의혹을 받고 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군 복무 시절 위장전입으로 철거민 자격을 얻어 특별분양으로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부정 취득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재명 정부 2차 내각 구성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인사 난맥상이다. 앞서도 1차 내각에서 보좌진 갑질 의혹으로 현직 의원 출신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자진 사퇴했고, 또 다른 후보자는 위장 미혼 청약(請約)과 갑질 의혹이 겹쳐 지명 28일 만에 낙마한 바 있다. 이쯤 되면 인사 검증 실패 등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인지 이 대통령의 인력풀에 함량 미달 인사들만 가득한 건지 의문이다. '검증 부실'이든 '인력풀 부족'이든 책임은 인사권자에게 있다. 게다가 똑같은 사태가 반복된다는 건 인사 검증 라인을 맹신하거나 방치하고 있다는 것인데 둘 다 문제다. 이 정부는 검증 기준·절차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보통 인사 검증은 당사자 진술, 관계 기관 검증, 평판(評判)·현장 조회 등의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웬만한 흠결은 걸러져야 정상이다. 대통령이 부적격 요소를 알고도 후보자로 지명했다면 달리 인재가 없거나 보고를 무시했다는 것이고, 몰랐다면 검증 보고 체계가 무너졌다는 얘기다. 어느 쪽이든 검증이 무력화된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부실 인사 검증과 임명 강행이 반복된다면 국민은 더는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해도, 적응도 아니다. 관심과 기대를 거뒀다는 의미다. 이 정부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그때가 왔다는 것이다.
2026-09-07 05:00:00
[사설] 국가채무 1천700조원 시대, 반도체 호황에 취해선 안 돼
2030년 국가채무가 1천73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50.6%에서 49.0%로 낮아진다. 빚은 300조원 이상 늘어나는데 부채비율은 개선되는 기묘한 상황은 반도체 호황으로 경제 규모가 커져서 생긴 착시(錯視)다.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는 1천312조원까지 늘어나고, 국가채무 이자비용도 50조원을 넘어선다. 국가보증채무와 주요 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잠재적 부담은 1천15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재정지출 구조조정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연금·복지·이자 등 의무 지출은 2030년 전체 재정지출의 절반을 넘어선다. 경기 상황에 대비할 여력이 사라지게 된다. 반도체 호황으로 8월 수출은 크게 늘었지만 소비는 위축되고 실질소득은 감소했다. 정부가 국가채무비율 49%를 근거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지만,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고 성장이 둔화해 명목 GDP가 줄면 채무비율은 치솟는다. 세수(稅收)는 경기와 기업 실적에 민감하지만 연금·복지·이자 같은 지출은 경기와 관계없이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구조적인 재정 여력으로 착각하면 불황이 닥쳤을 때 재정은 수입 감소와 지출 증가라는 폭탄을 동시에 맞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2006년 이후 매년 공개해 온 적자성 채무 전망을 올해 국가채무관리계획에서 뺀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국제비교 등 새 자료를 추가했다지만, 재정 위험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를 빼는 것이 국민과 국회의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재정이 건전하다면 오히려 불편한 지표까지 공개하는 것이 옳다. 낙관론이 위험한 것은 현재의 좋은 숫자가 미래에 닥칠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반도체 호황에 취해 있는 동안 적자성 채무와 이자 부담, 의무지출은 꾸준히 쌓이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숫자를 재정 확장 면허(免許)로 삼는다면, 이재명 정부는 성장의 과실을 미래 세대의 빚으로 바꾼 정부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2026-09-07 05:00:00
[관풍루]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이 재논의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 재논의. 맞벌이 가구의 돌봄 공백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아이들 발달 단계를 외면한 채 정규 수업 연장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될 일. ○…서울 주택 매수용 증여·상속 자금이 석 달 새 2조원 늘어난 4조3천181억원에 달했는데 이 중 절반은 30대가 조달한 것으로 나타나. '부모 찬스' 없으면 도저히 집 장만 힘든 '헬조선' 세상. ○…오는 14일부터 코스피·코스닥 상장주식 대부분을 정규장 마감 이후인 오후 8시까지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는 한국거래소(KRX) 애프터마켓 개장. 저녁 거래 판 커진다. 정신줄 꼭 잡아야.
2026-09-07 05:00:00
2026-09-06 18:50:26
[김용삼의 한국 반도체 비하인드] 전두환의 결단, 기흥·이천 반도체공장 탄생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은 국내외에 평지풍파를 몰고 왔다. 미국의 인텔은 삼성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라고 비꼬았고,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협소한 내수시장, 연관 산업 취약,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투자자금 조달 능력 의문, 빈약한 기술 덕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비난과 반대의 소용돌이 와중에 1983년 10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이 삼성의 부천 반도체공장을 방문했다. 이날 김광호 삼성전자 이사가 "이병철 회장이 도쿄 선언을 통해 VLSI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한 지 9개월 만에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라는 내용을 보고했다. 김광호 이사의 보고를 받은 전 대통령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때까지 64KD램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미국 4개 사, 일본 6개 사에 불과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 대열에 올랐다. 이것이 한국 첨단산업 개발사에서 중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날 전 대통령은 "외국의 견제가 들어올지 모르니 홍보를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진출을 막기 위해 덤핑 공세를 할 수도 있으니, 우리가 시장을 개척해 쫓아갈 수 있는 단계가 될 때 알려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이병철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이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것까지 간섭하는가"라며 서운하게 생각했다. 결국 삼성은 대통령의 조언을 무시하고 1983년 12월 1일, 64KD램 개발 성공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1983년 연말 전 대통령은 재계 원로들을 부부 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하여 만찬을 함께 했다. 이때 이병철 회장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64KD램 개발 때 대통령께서 광고하지 말도록 권유했다는 얘기를 듣고 납득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대통령께서 우려하신 대로 흘러갔다. 전 대통령은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는데, 나보다 뛰어난 사업 감각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삼성은 반도체 생산을 부천의 낡은 한국반도체 시설을 그대로 사용했다. 구시대적 설비로 미래 수요에 대비하기 어렵게 되자 이병철 회장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 신설을 결정했다. 업의 특성상 대단히 까다로운 입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 깨끗한 공기와 풍부한 물, 물류가 용이한 지역을 집중 탐색한 끝에 용인군 기흥읍 농서리 일대에서 반도체 공장부지로 적합한 땅을 발견했다. ◆대통령이 눈 딱 감고 용도 변경 허가 삼성이 반도체공장을 지으려고 매입한 기흥 일대 40만 평의 땅은 청와대가 신도시 건설 부지로 검토했던 곳이다. 문제는 이곳이 산림보존 지역, 경지 지역, 상수도 보호지역이어서 공장을 지으려면 용도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대한 애로가 발생했다.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주장하는 상공부는 "기술 발전과 경제도약을 위해 해당 지역의 용도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라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농수산부는 "쌀이 부족한 마당에 농지를 공장용지로 용도 변경하면 쌀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다"라며 강력 반대했다. 주무 부처인 건설부는 신도시 건설 운운하며 청와대의 눈치만 살폈다. 보고를 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농사지어 얻은 쌀과 산업의 쌀 중 무엇이 더 큰 국익인가? 반도체라는 산업의 쌀을 만들어 수출해야 쌀도 사 먹고, 나라도 부강해질 것 아닌가"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의 결심을 전해 들은 건설부는 1983년 7월 5일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일대를 삼성반도체공장 부지로 용도 변경을 허가했다. 삼성은 9월 12일 기흥에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대단위 VLSI 생산공장 기공식을 거행했다. 기흥공장 제1라인은 64KD램 반도체를 월 600만 개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 이병철 회장은 이날 선진국에선 18개월 걸리는 공사를 6개월 내에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공장 건설 책임자인 성평건 공장장은 이 어려운 임무를 맡아 기한 내에 완공했다. 건설 공정과 시운전 과정을 지켜본 미국 인텔과 IBM, 일본 전문가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첨단 공장을 6개월 만에 완공한 기술진의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1984년 5월 17일 기흥에서 VLSI 공장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도 반도체공장 건설을 위해 경기도 이천 부발읍 지역의 토지를 매입했다. 공장용지 한가운데 절대농지와 초지가 포함돼 있어 삼성보다 상황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곳이었다. 현대도 전두환 대통령의 결단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983년 9월 17일 용도 변경 허가를 완료했다. 당시 법률과 관료주의 잣대로 규제를 고수했다면, 삼성의 기흥 라인 6개월 준공 신화나 현대전자의 이천 반도체공장은 불가능했다. 최고 지도자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라는 큰 틀에서 과감한 특혜성 용도 변경을 단행한 결단이 오늘날 K-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토대를 닦은 것이다. 64KD램 개발·생산이 국내에서는 축제였을지 몰라도, 경영 차원의 현실은 참담했다. D램의 제품 수명주기는 평균 3년이다. 64KD램은 1981년 처음 시중에 출시되었다. 삼성의 64KD램 개발 시기는 이 제품의 끝물에 해당했다. 삼성이 천신만고 끝에 64KD램을 개발한 것과 거의 비슷한 1983년 말, 일본 히타치는 256KD램을 출시했다. ◆천문학적 적자 불구, 반도체 계속 지원 삼성이 64KD램 개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삼성을 짓밟기 위해 무자비한 덤핑 공세를 벌였다. 1985년 개당 3달러 50센트였던 64KD램의 국제가격이 불과 몇 달 만에 50센트로 곤두박질했다. 당시 64KD램의 제조원가는 1달러 70센트였으나, 판매가는 50센트에 불과했다. 삼성은 개당 1달러 20센트씩 손해를 봐야 했다. 삼성은 64KD램 출시 첫해인 1985년 428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986년과 1987년에도 적자가 계속되어 1984년 이래 누적적자가 무려 1천159억 원에 이르렀다(강진구,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 고려원, 1996, 239쪽). 국제적으로 PC 시장에 불황이 닥치면서 256KD램 가격도 31달러에서 3달러로 대폭락했다. 삼성이 64KD램을 출시한 후 고전을 면치 못하자 반도체 반대 세력들은 "이러다 삼성 망한다"라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심각한 상황이 되자 전두환 대통령은 비서실에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실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렸다(『전두환 회고록(2): 청와대 시절』, 자작나무숲, 2017(2), 221쪽). 전두환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믿고 반도체 산업을 계속 지원하라고 밀어붙였다. 삼성은 1984년 10월, 64KD램보다 기억량이 4배 늘어난 256KD램 개발에 돌입했고, 그로부터 10개월 후 개발에 성공했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병철 회장은 이날 연구소를 찾아가 개발진을 얼싸안고 기뻐하며 일일이 격려했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09-06 14:53:32
팝업에 다녀왔다. 그것도 부산까지. 요즘 SNS를 보다 보면 가고 싶은 팝업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감각적으로 꾸며진 체험 공간과 갖고 싶은 굿즈,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까지. 뷰티, 공연, 음식 할 것 없이 분야도 가지각색이다. 관련된 릴스 몇 개를 보고 있으면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민음사 팝업에 다녀왔다. 서울 용산 이후 부산 팝업이라니. 지난번 민음사 빵을 먹고 가지게 된 투명 책갈피와 세트를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 빠르게 움직였더니 예약 마감 전에 시간을 고를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늦은 입장 시간을 고른 터라 사고 싶은 물건이 충분하지 않았다. 인기 물품들은 일찌감치 솔드아웃이었다. 보통 팝업은 당일마다 판매 수량을 따로 뺀다고 하니 오픈 시간이 가장 인기라는 거다. 역시 처음 팝업에 가본 티가 난다. SNS에서 보던 모습은 꽤 넓어 보였는데, 실제로 가보니 사람들로 엄청나게 북적였다. 그러나 나는 팝업을 즐기기보다 화면으로 봤던 것과 실제가 얼마나 비슷한지 확인하고 있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릴스를 통해 공간을 보고, 사람들이 무엇을 사는지 확인하고, 갖고 싶은 굿즈를 골라놓았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그곳에 머문 시간은 짧았다. 그때 알아차렸다. '아! 어쩌면 나는 가기 전부터 이미 그곳을 다 즐긴 거였구나.' 얼마 전 다녀온 여행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블로그를 검색하며 여행 정보를 찾았다면, 지금은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영상들이 유튜브에 넘쳐났다. 관광지부터 맛집까지 정보를 얻는 건 좋지만, 비슷한 영상 열댓 개를 보다 보니 이미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랜선 집사, 방구석 탐험가가 왜 생기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물론 직접 가서 경험하는 것과 영상을 보는 것을 비교할 수는 없다. 지난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길을 혼자 걸을 때 마주한 한적함이었으니까. 이렇듯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예상하지 못한 풍경, 실제로 봤을 때 더 마음에 드는 굿즈처럼 경험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미리 검색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찾아보는 것으로 시행착오는 줄어든다. 하지만 그만큼의 처음도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만 스포 금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옛말처럼 몰라야 재밌는 게 분명히 있다. 다음엔 조금 덜 찾아보고, 조금 덜 알고, 우연에 기대어 어딘가 한번 다녀와 봐야겠다.
2026-09-06 09:28:49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0>또 하나의 나를 그려 친구 삼는 고독한 김용준
동아시아에서 초상화는 국가의 또는 가족이나 집단의 기념과 의례를 위한 사회적 기록물이어서 자화상의 전통이 미미했다. 서양미술사에서는 르네상스 때부터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많은 대가들이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은 화가의 자기 객관화이자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운 근원 김용준의 1930년 유화 자화상이 남아있고 동양화로 전향한 후에도 종종 자화상을 그렸다. '선부고독'은 '근원수필'(1948년)에도 실린 스케치 풍 자화상이다. 쌍둥이처럼 보이는 양복 차림의 두 남성이 풀밭에 같은 자세로 나란히 앉아 있다. 중절모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이 둘은 같은 김용준이다! 나를 알아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 또 하나의 나를 그려 친구로 삼는 고독한 김용준. 기발한 자화상이고 쓰라린 자화상이다. 왜색(倭色)과 양풍(洋風)이 휘몰아치는 1930년대 전환기의 시공에서 우리 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자각한 김용준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인 '선부고독'의 선부(善夫)는 경북 선산 출신인 김용준의 자(字)다. 자를 호처럼 활용하며 자신이 사실은 선부가 아니라 불선부(不善夫)인 악부(惡夫)이기 때문에 이를 반전시키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호를 짓는 장난도 일종의 풍류"라며 하나하나의 호에 깊은 사색을 담았다. 인장은 '우산(牛山)'이다. 우산 호는 "선가(禪家)에서 애송하는 '심우송(尋牛頌)'이 하도 좋아서" 지었다. 아무리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도 "소란 놈이 오죽 좋으냐" 싶어서였다. 이중섭의 슬픈 '황소'가 떠오른다. 우(牛)는 소의 머리모양을 음각으로, 산(山)은 전서를 양각으로 새겼다. '우산'은 모든 인장이 그렇듯 작품 속의 작품인 전각예술이다. 상형문자인 한자의 이미지성을 살린 초형인(肖形印)이자 음각과 양각을 섞은 주백상간인(朱白相間印)이며 두 글자를 띄워 새긴 연주인(聯珠印)이라 마치 초소형의 미니 그림 같다. 이길 수 없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고독한 김용준은 김정희를 사숙하며 이렇게 호에, 전각에 몰입했다. 김용준의 자화상, 김용준의 호에는 서세동점의 압도적 외세에 짓눌리며 자존을 열망한 근대기 지식인의 고뇌가 묻어있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9-04 10:10:21
[캐나다에 비춰 본 한국] 사회는 나에게… "놀 때도 경쟁했다"
캐나다에서 자동차를 살 때 찾는 사양이 없으면 같은 판매상의 다른 매장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그 판매상이 보유한 차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국은 다르다. 매장에 샘플 몇 대만 있어도 원하는 사양의 차를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다. 차이는 제조업이다. 캐나다의 자동차와 옷, 가전은 상당수가 수입품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이 훨씬 크다. 인구도 많지 않고 교통의 요지도 아닌 분단국가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공장이 들어섰을까. 품질은 말할 것도 없다. 이만한 제조업을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캐나다에 비춰 보다 보면 이런 부분은 정말 우리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어느 날 하나의 가설을 품었다. 혹시 이 모든 것이 경쟁 때문이 아닐까. 캐나다에서 만난 많은 사람은 일이 끝나면 쉬고 놀았다. 돌아보니 우리는 놀 때조차 경쟁하는 데 익숙했다. 찻잔 앞에서도 ▷자녀 ▷성공 ▷주식 ▷땅 판 이야기가 오갔다. 등산복이 유행하면 산에 가지 않아도 샀고, 골프가 유행하면 나도 쳐야 했다. 그랜저 정도는 타야 하고, 아파트는 있어야 했다. 졸업장만으로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대졸'이라는 자격을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이 목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과시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차이는 과시의 유무가 아니다. 사회의 다수가 "그건 좋은 삶이 아니다"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그래도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가의 차이다. 2021년 퓨리서치가 17개 선진국에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14개국에서는 가족이 가장 많이 언급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물질적 안정이 첫자리에 올랐다. 일을 언급한 응답은 6%로 가장 낮았다. 한 번의 조사로 한 사회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좋은 삶의 조건으로 여겨왔는지는 진지하게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의 삶의 만족과 주관적 행복으로 눈을 돌려 보자. 2010년 '삶의 만족'은 OECD 26개국 중 가장 낮았다. 2016년 주관적 행복지수도 비교 대상 22개국 중 가장 낮았고, 2021년에도 같은 자리였다. 올해 발표된 2026년 조사에서는 주관적 행복지수가 22개국 중 17위로 올랐지만, 세부 지표인 '삶의 만족'은 여전히 가장 낮았다. 오랜 조사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연구의 분석에는 부모가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아이의 삶의 만족도를 크게 가른 것은 부모와의 관계였다. 같은 성적이어도 부모와 사이가 좋은 아이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경쟁 자체 못지않게, 그 안에서 부모가 아이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를 경쟁으로 밀어 넣은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강요하지 않았고 다 잘 되라고 한 일이라고. 그러나 경쟁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아이가 그 안에서 지쳐가는 모습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였다면, 부모인 우리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인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갉아먹히는 것은 감당하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라 하자. 그러면 묻자.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학교와 직장은 물론, 차를 마시고 운동하고 쇼핑하고 캠핑할 때도 경쟁하며 살기를 바라는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치열한 경쟁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쟁이 학교와 직장을 넘어 휴식과 소비, 인간관계까지 지배하는 동안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오랫동안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경쟁이 그 모든 결과를 낳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성공의 동력이라 여겨온 경쟁이 아이들의 삶까지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일은 부모의 몫이다. 지금 나는 아이에게 성취를 향해 노력하는 힘과 함께, 사람의 가치까지 경쟁의 결과로 매기는 삶을 물려주고 있지는 않은가.
2026-09-04 06:30:00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 설상가상(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가 더해진다"
▷강진 위력…'설상가상(雪上加霜)' 일본 덮친 위기 ▷영국…'설상가상' 가뭄 선포 ▷물 폭탄 맞은 중국 '설상가상' ▷미국 설상가상, 호흡기 바이러스 유행 ▷경기도 재정난 설상가상 지금 국내외 이곳저곳은 기후 위기의 자연재해에다 경제 등 인위적 재난으로 '설상가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최근 국내 상황은 가관이다. 6.3 선거 여파에다 부동산 혼란, 살얼음판 주식시장에다 자영업 몰락, 고물가・고금리에다 불황・폐업…. 불안불안하다. 요즘 입에 오르내리는 세금 시리즈는 서민들의 시름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사자니 취득세, 살자니 종부세, 보유하니 보유세, 팔자니 양도세, 주자니 증여세, 죽자니 상속세, 안 사자니 전월세, 아파트값 급등세…." 설상가상(雪上加霜)은, "눈 설, 위 상, 더할 가, 서리 상"으로, "눈 위에 서리가 더해진다"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엎친 데 덮친 격",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 깨진다"처럼, 좋지 않은 일이 겹쳐 일어남을 뜻한다. 유사한 말로는 "병을 앓는 동안에 또 다른 병이 겹쳐 생긴다"라는 '병상첨병(病上添病)'이 있다. 반대어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라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설상가상이란 말은 송나라의 도원(道原)이 편찬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그리고 『벽암록(碧巖錄)』 같은 불교 서적에 나온다. 『경덕전등록』은 선종(禪宗)의 역사와 사상을 체계화한 책이다. 즉 "비유하건대, 하나의 등불이 백천 개의 등불을 켜서, 어두운 것을 모두 밝히되 그 밝음은 끝내 다하지 않는다(譬如一燈, 燃百千燈, 冥者皆明, 明終不盡)"라는 불법의 전승 계보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벽암록』은 송나라의 설두 중현(雪竇 重顯)이 옛 공안 100가지를 고르고 송(頌: 시)을 지은 것에, 원오 극근(圜悟 克勤)이 평창(評唱: 비평과 설명)을 붙여 완성한 선종 문헌이다. 영미권에서는 『푸른 절벽의 기록』(Blue Cliff Record)이라 번역한다. 『경덕전등록』 제8권에서 대양 화상(大陽和尚)은 이 선사(伊禪師)와의 문답을 통해 수행자의 편협한 시각과 거듭되는 집착을 짚어준다. "너는 앞만 볼 줄 알고 뒤를 돌아볼 줄 모르는구나!"라는 대양 화상의 꾸짖음에, 이 선사는 "눈 위에 서리를 더한(설상가상) 격이군요"라며 대꾸한다. 그리고 같은 책 19권에서도, 진리를 안다며 군더더기 말을 덧붙이는 행위를 경계하기 위한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승려들이여, 설사 너희들에게 무슨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여전히 눈 위에 서리를 더한(설상가상) 격이다…." 한편 『벽암록』 제28칙에 보면, 백장이 남전에게 "내가 너에게 너무 말해버렸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에 대해 원오 극근이 "눈 위에 서리를 더한(설상가상) 격이다…"라고 멘트를 달았다. 이처럼 설상가상은 긁어 부스럼 내듯, 자꾸 일을 저질러 안 좋은 일이 잇달아 일어남을 뜻한다. 진리를 깨닫는 데 의미의 과잉이 문제이듯, 나라 다스림에도 쓸데없는 헛짓거리가 문제다. 설상가상을 금상첨화로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계속 사고를 치고 또 치는 그 맥락을 얼른 알아차리고 속히 벗어나는 일이다. 앞뒤를 돌아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2026-09-04 06:30:00
전북특별자치도에서 동학농민혁명 참가자의 후손들에게 연 12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한 세기도 더 지난 132년 전 일을 소급해서 돈을 나눠주겠다니 도(道) 앞에 '특별'이니 '자치'같은 수사가 그냥 붙는 게 아닌 모양이다. 다 좋은데, 따져봐야 할 게 좀 있다. 독립유공자가 있으면 반대편에 친일인명사전이 있는 것처럼 동학혁명군도 홀로 보국안민(輔國安民)하면 어딘지 그림이 안 예쁘다. 이들을 짓밟은 반(反)민중 세력이 있어야 짝이 맞는다는 얘기다. 쉬울까. 명료한 케이스도 있다. 가령 학정의 대명사 고부(지금의 정읍) 군수 조병갑이다. 조선 말, 백성은 땅을 밭으로 삼고 관리는 백성을 밭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은 밭'으로 여겨진 땅이 아들을 낳아 호남에서 벼슬을 살 게 하는 게 최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산이 풍부했던 호남이다. 그 호남에서도 최대 곡창이자 곡물 집산지가 고부였으니 거기서 제일 먼저 민란이 터진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1893년 빈혈이 날 정도로 빨리고 털린 끝에 꼭지가 돈 전봉준 등이 고부 관아로 몰려가 진정서를 넣는다. 돌아온 답은 전원 투옥.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전라감사는 조병갑을 익산 군수로 발령 낸다. 재미있는 것은 후임이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정에서는 한 달 새 다섯 명을 고부 군수로 임명했지만 하나같이 이 핑계 저 사연을 대며 자리를 고사했다. 갑자기 고부에 역병이라도 돌아서? 아니다. 좋은 밭을 남에게 넘겨주기 싫었던 조병갑이 그 자리로 컴백하려고 미리 사방으로 손을 써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정은 다음 해 조병갑을 다시 고부 군수로 임명한다. 학정은 재연됐고 기어이 전봉준이 봉기한다. 고부를 접수한 전봉준의 세력은 급격하게 불어났고 임오군란 때 민비를 업고 뛴 홍계훈의 중앙군을 격파하는 등 잠시 위세를 떨치지만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신화는 끝난다. 반면 조병갑은 이후에도 꽃길을 걸었다. 법무 민사국장(4품)을 거쳐 고등재판소 판사에 임명된 조병갑이 제일 먼저 손 본 것은 동학 교주 최시형이었다. 최종심에서 최시형에게 교수형을 평결하는 것으로 조병갑은 앙금을 풀었다. 전봉준의 동지이자 전라좌도 동학군 사령관이었던 김개남은 이웃의 신고로 체포되어 목이 잘린다. 밀고자 임병찬은 당연히 죽일 놈이고 단죄의 대상이 되어야 맞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오묘해진다. 대가로 임실 군수를 제수 받았지만 임병찬은 이를 사양한다. 보상이 시시해서가 아니다. 그는 성리학적 국가 질서 사수가 골수에 박힌 유림이었다. 왕실의 보전을 위해 임병찬은 김개남을 친구에 앞서 역적으로 여겨 고발했던 것이다. 이후는 더 점입가경이다. 한반도를 향한 일본의 발톱이 드러나자 임병찬은 '무려' 의병을 준비한다. 을사늑약 직후 최익현이 의병을 모으자 그는 바로 대열에 합류했고 군량 확보와 군사훈련까지 도맡았다. 결국 최익현과 함께 체포된 임병찬은 대마도에 유배되지만 해배(解配) 후 회개는커녕 전국적인 항일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또 다시 일제에 검거되어 고초 끝에 1916년 사망한다. 자, 이 임병찬은 대체 어떻게 볼 것인가. 인민의 배반자이자 독립유공자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달아줄 것인가. 임병찬뿐이 아니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동학을 토벌했다. 그러면서도 동학군 김구를 숨겨줬다. 선악이 불분명하고 온통 뒤죽박죽이었던 당시를 전북특별자치도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예산도 문제다. 6·25 참전유공자에 대한 보훈수당 지급액은 광역지자체 중 최하위다. 재정 자립도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꼴찌다. 자립도 못하는 처지에 역사 소환 포퓰리즘이라는 이 어이없는 아이디어를 대체 어떤 인간이 냈는지 정말 궁금하다.
2026-09-04 06:30:00
[사설] 김승원 "공소취소 지휘 않겠다" 소신 변화인가, 속임수인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논란에 대해 "개별 사건 공소 유지는 공판검사가 권한을 갖고 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총장을 통해 (공소 취소를) 지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소 취소 모임' 공동 대표로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야말로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조치라고 주장해 왔다. 그랬던 사람이 '소신(所信)'을 바꾼 것인가? 아니면 야당의 '공소 취소 담당 장관' '이재명 방탄 인사' 등 공세가 거세니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인가. 장관 지명 후 그 짧은 기간에 오래된 소신이 변했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김 후보자는 초선 의원이던 2021년 10월 지인의 요청을 받고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특정 제약회사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臨牀試驗)을 챙겨봐 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연락 후 2주 만에 식약처는 해당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했다. 같은 기간 제약회사 측이 김 후보자의 정치후원금 계좌로 500만원을 보내려 한 정황도 나왔다. 검찰은 이에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무혐의가 아니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제반 사정을 고려해 기소하지 않는 처분이다. 법무부 장관은 국가 형사사법 행정을 총괄(總括)하는 수장이다. 누구보다 엄격한 법적·도덕적 책임이 요구된다. 이재명 정부는 그런 자리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한다. 인물이 그렇게 없나. 김 후보자는 정파적(政派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입법 활동을 적극 추진해 왔고,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만약 '공소 취소를 지휘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 인사청문회를 위한 '임기응변'이라면 그 후과(後果)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부동산 세제 정책, 기초연금 개선, 원전 정책, 검찰 보완수사권 존폐 문제 등 이재명 정부의 임기응변식 발언과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작금의 지지율 폭락은 한두 가지 정책 문제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총체적 불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2026-09-04 05:00:00
[사설] 공공기관 이전·통폐합, 진정한 지역 발전 디딤돌로 만들어야
정부가 수도권 공공기관 350여 개의 지방 이전에 시동을 걸었다. '잔류 최소화' 원칙에 따라 4분기 이전계획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이전에 착수한다. 이번엔 1차 이전의 한계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 지난 2005년 정부는 10개 혁신도시를 조성해 수도권 공공기관 150여 개를 옮겼다. 그러나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혁신도시를 지역 성장거점으로 만들지 못했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격차는 오히려 커졌다. 따라서 2차 이전의 핵심은 이전 기관 숫자가 아니라 '무엇을 어디에 묶느냐'여야 한다. 정부가 '나눠먹기식' 배분을 지양(止揚)하고, 기존 혁신도시 중심으로 관련 기관을 집적해 지역 성장거점의 힘을 키우겠다고 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2차 이전은 대구·경북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다. 정부는 대경권 성장엔진으로 미래모빌리티·로봇·반도체·2차전지를 선정했다. 공공기관 이전도 지역의 미래 성장 산업지도를 완성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추경호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각자 몇 개 기관을 가져오느냐보다 대경권 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역량(力量)을 집중하기 바란다. 미래모빌리티와 로봇은 대구의 제조·서비스 기반과 경북의 소재·부품 및 제조 기반을 연결하고, 반도체와 2차전지는 구미·포항 등 산업거점과 연구·인재 기능을 결합하는 식의 공동 청사진을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2차 이전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지역 안배(按排)가 돼선 안 된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8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추진되고, '서울대 10개 만들기' 첫 집중지원 대상에서 경북대가 제외되면서 대구·경북에서는 국가적 대형 프로젝트에서 지역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차 이전은 ▷객관적 기준 ▷지역 산업 경쟁력 ▷성장 가능성에 맞춰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대구·경북 민심을 그저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해서는 결코 안 된다. 공공기관 이전이 특정 지역 챙기기가 아니라 미래 성장축의 재편임을 이재명 정부는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2026-09-04 05:00:00
[사설] '영업이익 성과급·경영 결정' 쟁의 불가, 노동부 지침 합당
고용노동부가 3일 노동조합의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나 '공장 신설 반대' 등은 의무적 교섭 및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시행지침을 발표했다.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산업 현장에서 극심한 갈등과 혼선이 이어져 온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뒤늦게나마 준거(準據)를 제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까지 쟁의 대상이 확대되면서 소모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노조가 매출액·영업이익·당기순이익 등 기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 요구하거나,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같은 국가적 대규모 투자 결정 자체를 반대하며 파업권을 주장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노동부의 판단은 노사관계의 본질을 바로잡는 합리적 선(線)이다. 영업이익 등 기업 이익은 R&D 투자와 설비 확충, 유동성 위기 대응을 위한 재원이라는 점에서 이를 성과급으로 먼저 떼어내 배분하라는 요구는 기업의 영업의 자유와 투자자(주주) 등 제3자의 권익을 본질적으로 제약한다. 특정 연도의 실적 상승이 시장 사이클과 대규모 투자 등 복합적 요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다. 경영상 결정에 따른 근로조건 변동 역시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정리해고나 순환배치 등이 '명확히 예상'되는 시점부터 교섭 대상이 된다고 명시한 점도 중요하다. 공장 신설·이전, 사업 매각, 신기술 도입 결정 그 자체를 반대하는 쟁의는 불가능하며, 근로조건 변동이 객관적으로 구체화되는 때에는 의무적 교섭 대상이 된다. 특히 정부가 노동위원회의 조정 기능을 동원해 지침의 실효성(實效性)을 담보하기로 한 점은 의미가 크다. 부당한 요구안에 대해 노동위가 변경을 권고하고, 불응 시 행정지도를 통해 쟁의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준거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노사 양측은 명확해진 기준틀 안에서 상생과 타협의 단체교섭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2026-09-04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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