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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식의 시대의 창] 노동시장 이중 구조, '큰 결단'보다 '작은 성공'부터

    [이정식의 시대의 창] 노동시장 이중 구조, '큰 결단'보다 '작은 성공'부터

    한국 노동시장은 오래전부터 내부자와 외부자가 분리된 이중 구조를 형성해 왔다. 현실은 기업 규모, 고용 형태, 산업, 숙련 수준에 따라 훨씬 복잡하지만, 대기업·공공 부문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안정적 고용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에 놓이는 경향이 뚜렷하다. 문제는 격차가 커질수록 청년은 중소기업을 기피하고, 중소기업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자동화와 숙련 투자를 미루며, 낮은 생산성은 다시 낮은 임금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악순환에 있다. 청년의 취업난과 기업의 인력난이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이 여기서 비롯된다. 인구 감소로 노동력 자체가 줄어드는 지금, 정년 연장만 따로 손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개혁을 미룰수록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왜 지금까지 풀지 못했는가. 처방을 몰라서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세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원청의 비용 절감 압력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조건으로 전가되는 구조도 격차를 고착시킨다. 정치의 시간과 정책의 시간이 어긋나고, 부처별 예산과 성과 지표로 나뉜 칸막이가 통합적 설계를 어렵게 만든다. 결국 장애물은 해법의 부재가 아니라 ▷조직된 이해관계의 저항 ▷단기 정치의 유혹 ▷조정 비용이다. 필요한 것은 목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성과를 측정할 수 있고, 이해관계 조정이 가능한 과제부터 시작해 성과와 신뢰를 쌓고, 이후 더 큰 이해 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숙련이 실제 임금과 이동 기회로 이어지는 훈련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AI 활용 교육과 디지털 전환 훈련을 단순한 수료 실적에 그치게 하지 말고, 중소기업 재직자가 현장에서 쌓은 숙련을 공통 기준으로 인증해 다른 기업으로 옮길 때도 그 경력이 인정되도록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공공 고용 서비스도 채용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역량 진단, 경력 설계, 전직까지 연결하는 경력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한다. 숙련이 축적되고 이동이 가능해질 때, 중소기업 일자리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경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 정부가 공공 부문에서 먼저 직무 중심 보수 체계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민간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임금 삭감이나 연공 서열 해체로 밀어붙이지 않고, 직무 가치를 투명하게 평가하며 전환 과정의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노동계와 국민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셋째, 이중 구조 완화는 노동정책만으로 풀 수 없다. 원청이 납품 단가와 비용만 압박하는 구조에서는 하청 기업이 임금과 훈련에 투자하기 어렵다. 납품 단가 연동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술 탈취에 대한 집행력을 강화해, 하청 기업이 여력을 갖도록 산업·공정거래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넷째, 사회안전망을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작동시켜야 한다.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산재보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단순한 노동 보호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가 불안으로 나쁜 일자리에 묶이지 않게 하는 생산성 정책이기도 하다. 다섯째, 사회적 대화는 고령자 재고용을 위한 직무 재설계처럼 이견이 적은 의제부터 다뤄 합의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도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 개혁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다뤄야 한다.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은 부처 간 칸막이를 조정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작은 합의를 축적하며, 국회는 검증된 성과를 법과 예산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중 구조가 낳는 청년의 좌절과 기업의 인력난은 이미 절박한 신호다. 과거 역사적 경험처럼 위기가 개혁을 강제하기 전에, 작은 성공부터 하나씩 축적해야 한다. 강제된 개혁은 제도의 왜곡과 현실적 부작용을 낳는다. 노동시장 개혁은 한 번의 결단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작은 성공을 축적해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더 큰 개혁으로 나아가는 긴 과정이다.

    2026-09-11 06:30:00

  • [쉽고 재미있는 사투리] <5> 무지개

    [쉽고 재미있는 사투리] <5> 무지개

    무지개는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나타나는 반원형의 일곱 빛깔의 줄을 말한다. 한 줄기 세찬 소나기가 내린 후에 예쁜 무지개가 뜬다. 음악에 비유하면 소나기가 강렬한 타악(打樂)이라면, 무지개는 부드러운 명상음악이다. 비가 온 뒤 하늘에 아름다운무지개[彩虹]가 뜨면 사람들은 누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가늘고 둥근 활 모양의 무지개[天弓]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우리 조상들은 무지개를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특별한 문이나 다리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무지개'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원을 분석하면 '물(水)+지게(戶)'의 결합이다. '지게'는 등에 짐을 지는 도구가 아니라 '방에 들어가는 작은 외짝문'을 뜻한다. 옛말에서 '호(戶)'를 '지게'라 했다. 따라서 '물지게'는 '물로 된 작은 문'이라는 뜻이다. 무지개의 둥근 모양이 마치 하늘에 걸린 문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은 무지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거나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사람 사는 땅과 신성한 하늘을 연결하는 다리로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무지개는 무지개다리[虹橋]와 의미가 통한다. 무지개의 끝이 땅에 닿는 곳에는 보물이나 행운이 있다는 믿음도 세계 여러 지역에 나타난다. 비가 온 후 운이 좋을 때는 두 개가 뜬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쌍무지개라 하는데, 빛이 곱고 맑게 보이는 것이 '수무지개'이고 빛이 없고 흐린 것은 '암무지개'이다. 그런데 '물지게'라는 형태가 실제 옛 문헌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물좀을 무좀으로 발음하듯이, '믈지게'를 '므지게'로 발음한다. 1447년에 간행된 '석보상절'과 '용비어천가'에는 '므지게'가 보인다. 이후 '므지게〉무지게〉무지개'로 형태가 변해 오늘날의 '무지개'가 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1636년의 '산성일기'에는 '무지게', 1730년의 '송광사판 유합'에는 '무지개'가 나타난다. 오늘날에는 무지개가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투리의 어형을 나누면, '무지게'계 어형과 '황고지'계 어형으로 나타난다. '무지게'계 어형은 무지게, 무지개, 무질개, 무즈개, 무저개, 무주개 등이 있다. 무지게, 무지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여러 지역에 나타난다. 무지개는 뒷날 다시 형태가 변하여 무지개〉무질개(경북), 무지개〉무즈개(전북·전남)〉무저개(경북), 무지개〉무즈개(전북·전남)〉무주개(충남)로 나타난다. 제주도에서는 무지개를 '황고지'라고 한다. '황고지'는 '한고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한(큰)+곶(꽃의 옛말)+이(접미사)', 곧 '큰 꽃'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시름, 한걱정이 큰시름, 큰걱정의 의미를 지닌 것과 같다.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육지에서는 '물로 된 작은 문', 제주에서는 '큰 꽃'으로 표현했다. 오늘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면 그냥 '예쁘다'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조상들이 그 무지개를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문이자 다리, 또는 하늘에 핀 큰 꽃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도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한국방언연구소 소장 신승원sinswon5@hanmail.net

    2026-09-11 06:30:00

  •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1984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제임스 브룩스의 '애정의 조건'은 엄마와 딸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리얼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영화에서 엄마 오로라는 딸이 선택한 사위가 맘에 들지 않고 그런 사위에게서 애를 셋이나 낳은 딸 엠마가 이해 안 된다.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딸의 금전 지원 요청에 냉담하지만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고 아끼는 엄마. '애정의 조건이란 무조건'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보다 더 설득력 있게 묘사한 영화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른 하나. 권위와 폭력이 몸에 밴 아버지 밑에서 학대와 억압을 받으며 자란 탓에 스무 살까지 무학에 문맹이었던 남자.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언어학자가 된 가비노 레다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빠드레 빠드로네'. '애정의 조건'을 보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실감나지만, '빠드레 빠드로네'에선 삶의 환경이 모진 부모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60년 전 우리나라 시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 자식을 농사 밑천이고, 살림 밑천이자, 노동력의 일부로 보았으니 말이다. 시작부터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룬다티 로이의 빼어난 자기성장담 '어머니 내게 오시네'를 덮자마자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가 부커상 수상자로 결정되는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희귀한 경험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응원하던 것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작가는 엄마 로이 여사를, 무척 단순하면서 입체적 인간으로 그린다. 애증의 대상이고 존경해 마지않으면서도 닮고 싶지 않은, 그러나 어느새 한 인간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를 솔직히 드러낸다.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과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엄마의 딸이니까. 내 아버지는 많이 배운 분은 아니었으나 자식 공부만큼은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언제나 아버지의 원칙에 따라야 했다. 오직 공부였다. 온화하면서도 엄격하고 단호한 분이었으니, 외려 무채색인 시절에 살았던 게 다행일 정도였다. 때론 아버지가 (상상을 초월하는 결정을 할 때면) 가족보다 교회를 더 위하는 건 아닐까, 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제자들에게 빛을 비추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려면 우리-나와 오빠-가 어둠을 흡수해야"(74쪽) 그러니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린 건 당연했다. 작가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그런 선물에 감사하고 가까이 두고 지도를 그리면서 비밀이 드러날 때까지 응시하는 법을 배운다. 결국 그것이 자유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리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와 다르게 살고자 한들, 부모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부모의 자장 안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오기 마련. 작가 역시 그랬나 보다. "갈림길에서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마다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속한 계층,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보호해주었고,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없는 선택지들을 제공해주었다."(146쪽) 얄팍한 내 글재주로는 감흥을 다 담기 힘든 책이 있다. '어머니 내게 오시네'가 그랬다. 비가 쏟아지는 노천광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기분이 이럴까. 엄마 로이 여사가 없는 세상에서의 첫날 밤, 좌표 없이 우주를 떠도는 기분이라던 작가는 "나는 그녀를 패배시키고 싶지 않았고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늘 여왕처럼 퇴장하길 바라왔다."(439쪽)며 헌사한다.

    2026-09-11 06:30:00

  •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최재목] 자승자박(自繩自縛),

    [뉴스로 보는 고사성어-최재목]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처리, '자승자박' 결과" "정부의 '자승자박'… 부동산, 주식, 국방, 안보 등 총체적 이슈" 국내외 정치권에서 제 손발을 스스로 꽁꽁 묶는 경우를 본다. 한 치 앞을 못 내다본 무지의 결과들이다. 저들 스스로 내뱉은 말이나 행동, 다수를 믿고 쉽게 통과시킨 법안들이 결국 그네 자신을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 마는 것을. 누구를 원망하랴! 자승자박(自繩自縛)은, "스스로 자, 노끈 승, 스스로 자, 묶을 박"으로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다"는 뜻이다. 스스로 한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곤경에 빠지는 경우를 가리키는 고사성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사용하며 일본에서 가끔 쓰고, 중국에서는 거의 안 쓴다. 자승자박의 '승'은 노끈 이외에 '줄/먹줄', 나아가 '법도'를 의미한다. '규구준승(規矩準繩)'의 하나다. '규'는 원을 그리는 걸음쇠(컴퍼스), '구'는 직각을 잡는 곱자(곡척), '준'은 면이 평평한지 확인하는 수준기, '승'은 직선을 그리는 먹줄을 말한다. 과거에 집을 짓는 등의 목조공사엔 필수적인 도구들이다. 자승자박은 "제 발등을 제가 찍"거나 "제 무덤을 자기 스스로 파"는 꼴로, 자업자득(自業自得), 인과응보(因果應報), 종두득두(種豆得豆: 콩 심은 데 콩 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나 자충수(自充數)라는 말들과 서로 통한다. '자승자박' 하면 으레 『한서』 「유협전」의 '자박(自縛)'이란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옳지 않다. 온전한 사자성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삼국지연의』(1522) 「제29회」에 "줄을 가져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스스로를 묶다(取繩自縛於烈日之中)"의 '취승자박(取繩自縛)'이나, 청대 심복(沈復)의 『부생육기(浮生六記)』 권6 「양생기소(養生記逍)」 등에 나오는 '작견자박(作繭自縛)'이 더 어울린다. '견'은 '고치'(누에가 실을 내어 지은 집)로, '작견자박'은 "누에가 실을 토해내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 스스로 갇히는 것"이니 '자승자박'과 같다. '자승자박'이란 사자성어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시작했다고 봐야 옳다. 예컨대 『속동문선(續東文選)』(1518) 제4권에 실린, 매월당 김시습의 「만흥(謾興)」 네 수 가운데 나온다. 누에고치 속의 나방 같은 자신의 삶을 '자승자박'으로 표현했다. 만흥이란 '흥 나는 대로 쓴' 시다. "두변세월일조과(頭邊歲月一鳥過: 머리 가에 세월이 한 마리 새처럼 지나가니), 인직백세능기하(人直百歲能幾何: 사람이 그저 백 년을 산들 얼마나 되랴만), 등등올올시수과(騰騰兀兀是誰過: 멍청하고 멀뚱하기만 한 건 이 뉘 잘못인고), 자승자박여잠아(自繩自縛如蠶蛾: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음이 누에고치 속의 나방 같구려)" 앞서 언급한, 누에가 토해낸 실로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를 그 속에 묶어버린다는 '작견자박'을 연상케 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누에고치가 스스로를 감다(蠶繭自纏縈)"라고 했고, 남송의 시인 육유(陸遊)는 "인생은 봄누에와 같아 고치를 만들어 스스로 감싼다(人生如春蠶, 作繭自纏裹)"라고 했다. 우리네 삶은 어리석어 "거미줄에 묶인 줄도 모르고… 아차 뉘우쳐도 모두가 지난 이야기"일 뿐인가. 그나마 '뉘우칠' 줄이라도 안다면, 다시 제 무덤을 파는 일을 줄이련만.

    2026-09-11 06:30:00

  • [사설] 부산 외국인 관광객 300만 시대, 대구도 달라져야

    정부가 대구공항을 대구~경주~안동을 잇는 '지방공항 중심 5대 관광권'에 선정했다. 내년부터 5개 관광권에 국비와 지방비 935억원을 투입해 국제선과 교통·결제, 관광 콘텐츠를 함께 키운다. 2029년 지방공항 입국객 500만 명이 목표다. 대구에는 반가운 기회지만 현실부터 직시(直視)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을 넘어 지방으로 빠르게 발길을 넓히는 동안 대구는 경쟁 도시들에 크게 뒤처져 있다. 올해 8월까지 부산 방문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어섰는데, 대구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당장 상반기 입국 외국인만 비교해도 김해공항 101만 명, 대구공항 5만7천여 명이다. 물론 도시별 관광객 집계 방식이 달라서 절대 비교는 어렵다고 해도 격차는 뚜렷하다. 올해 상반기 방한 외국인은 1천71만 명으로 사상 처음 1천만 명을 넘겼다. 2분기 서울 외 지역 방문율도 35%에 육박한다. 부산은 국제선과 숙박·미식·쇼핑·의료·축제로 연결해 독자적 여행지로 만들었다. 대구는 동성로와 서문시장, 의료관광 등 자원을 갖고도 외국인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아직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구공항 입국 외국인이 상반기 대구에서 쓴 카드 소비액은 145억여원으로 13%가량 증가했다. 부산의 7천400억여원에 비해 미미하지만 대구의 방문객 증가율보다는 훨씬 높다. 사람만 오면 소비로 이어질 여지(餘地)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5대 관광권 선정을 계기로 국제선 증편과 함께 공항에서 도심과 의료관광으로 이어지는 체류(滯留) 동선을 만들고, 경주·안동과의 편리한 교통체계도 갖춰야 한다. 특히 경주는 김해공항 관광권에도 들어 있다. 대구 자체의 매력이 약하면 관광객은 김해공항으로 들어와 부산에만 묵고 경주를 찾는다. 대구가 그저 통과 지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관광지 몇 곳을 더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외국인이 대구에서 하루 더 머물고 지갑을 열게 만드는 관광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5대 관광권 간판만 얻고 정작 관광객은 부산에 내준다면 허울뿐인 성과로 끝날 수 있다.

    2026-09-11 05:00:00

  • [사설] "연임 안 한다"는 말, 무엇 때문에 못 하나

    이재명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프랑스 동포 간담회에서 "저의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연임(連任) 개헌' 논란이 시작된 올해 7월 이후 이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임기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성향 언론에서는 '연임 가능성에 이 대통령이 직접 선을 그은 것'이라는 식의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헌법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규정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런 말장난 같은 논란(論難)이 좀처럼 숙지지 않는 것은, 이 대통령이 "연임 안 한다"는 말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 측 인사들의 발언도 불신(不信)을 확산시켰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올해 7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 문제는 결국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헌법을 무시하고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비록 SNS를 통해 '오해에 유감'을 표시했지만, 친(親)이재명계 조 의장의 말 속에 속셈이 숨어 있다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 본인의 언행(言行) 또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개헌에 대해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 또는 4년 연임제로 변경해 중간 평가를 통한 책임 정치가 가능하도록 하자"고 했을 뿐 임기 제한은 거론하지 않았다. 이달 4일 연임 질문에도 "도둑질 안 하겠다고 하라는 것과 같은데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하느냐"며 핵심을 피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고, 한성숙 국무총리는 '현 정부의 국정 목표 1번이 무엇이냐'는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개헌"이라고 답했다가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로 정정(訂正)했다.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의 머릿속에 온통 개헌뿐이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연임 개헌 음모론을 사라지게 하는 확실한 방법은 "연임 안 한다"는 이 대통령의 한말씀이다.

    2026-09-11 05:00:00

  • [사설] "생떼와 억측"이라며 사퇴 요구 일축한 용혜인 후보자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요구를 일축(一蹴)했다. 제기된 각종 의혹을 "억측과 악선동"이라며 반박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억울함의 호소가 아니라,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남 탓 뒤에 숨어 궤변을 늘어놓는 용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당의 농장·자택 등 시·도당 사무실 등록, 정치자금 기부를 통한 세금 감면 등을 둘러싼 의문은 논쟁(論爭)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적법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 떳떳하다면 관련 자료를 공개해 입증하면 된다. '작은 정당의 현실'이란 사정도 검증의 잣대를 낮출 이유가 될 수 없다.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라면 규모와 관계없이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용 후보자는 장관과 비례대표 의원직 겸직(兼職) 문제 역시 법률상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적인 허용'과 '정치적인 올바름'은 별개의 문제다. 과거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에 지명되면 의원직을 내려놓았던 관례를 '자리 나눠 먹기'로 몰아가는 것도 부적절하다. 겸직이 주권자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따져 보는 게 먼저다.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용 후보자 지명을 '잘못한 인선(人選)'이라고 답한 비율이 60%를 넘었다. 여론조사가 후보자의 적격(適格) 여부를 결정하는 척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부정적 여론이라면 후보자가 적극 나서 의혹을 해소시켜야 마땅하다. 그런데 용 후보자는 '국민의힘의 생떼'와 '악선동에 휩쓸리는 민주당 일각'을 탓하며 사퇴 요구를 일축하기만 했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이런 생각과 자세로 어떻게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사 청문회(聽聞會)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해명을 미루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결백하다면, 청문회 전이라도 모든 의혹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을 자청(自請)해야 한다. 비판 세력을 향한 비난과 반박보다 자료와 증거로 국민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사퇴하는 게 맞다. 그게 국민을 향한 예의다.

    2026-09-11 05:00:00

  • [관풍루] 올해 초·중·고교 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2.9%를 기록하며 6년 연속 상승

    ○…올해 초·중·고교 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2.9%를 기록하며 6년 연속 상승. 맨몸으로 맞붙는 이른바 '스파링'과 '야차룰'이 놀이 문화처럼 확산한다는데. 공교육이 학생들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부터 바로잡아야. ○…오픈AI의 최신 AI 모델 'GPT-6 아스트라'가 인터넷상에서 사람과 로봇을 구별하는 '인간 인증 시스템(CAPTCHA)'을 완벽히 통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류의 대응 능력을 훨씬 앞질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5'에서 한국 학생 읽기 점수가 501점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유독 뒤처졌다는데. 숏폼 중독이 문제.

    2026-09-11 05:00:00

  • [날씨] 9월 11일(금)

    [날씨] 9월 11일(금) "차차 구름 많아짐"

    2026-09-10 18:50:03

  • [기고] 신뢰 회복과 자유 세계 속 대만의 위상

    [기고] 신뢰 회복과 자유 세계 속 대만의 위상

    오늘날 국제사회가 지켜온 규칙에 기반한 질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부 권위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기존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약화시키고 국제 규범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유엔 헌장이 천명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 사용의 금지라는 기본 원칙마저 공개적으로 도전받고 무시되는 상황이다. 지금 국제사회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각국이 정의와 법치를 수호하고 평화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유와 민족자결,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기존의 국제질서와 함께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제1도련선은 이러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중국은 군사적 위협과 사이버 공격, 경제적 강압 등 다양한 회색지대 전술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국제적 규칙과 규범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는 역내 안보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대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다. 그러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결코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인도·태평양 전체의 안보와 직결되며, 나아가 국제사회 공동의 평화와 번영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국제사회 역시 이러한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정상회의와 장관급 회의에서 발표한 여러 성명을 통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대만은 유엔의 회원국이 아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대한 대만의 책임과 기여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만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만은 민주주의 파트너십 강화, 집단안보 증진, 경제적 회복력 제고를 중심으로 한 '총합외교'와 '가치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해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국제사회에서 더욱 확고히 뿌리내리게 하는 한편,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만이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만의 역할은 안보와 첨단기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만은 '영방계획'을 통해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동 번영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만이 보유한 기술과 전문성, 자원을 활용해 수교국의 발전을 지원하고 현지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파라과이와 함께 통합 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에스와티니의 전략적 석유 저장시설 건설을 지원했으며, 팔라우 국립병원과 협력해 스마트 의료 시스템을 추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협력은 단순한 원조를 넘어 파트너 국가의 산업 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진정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제기구가 모든 구성원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유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건설적으로 기여하고 신뢰받을 수 있는 구성원이 정치적 이유로 부당하게 배제된다면, 국제질서를 더욱 포용적이고 공정하게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자유세계에는 대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만의 목소리와 참여가 반영되는, 강하고 신뢰받는 유엔이 필요하다. 대만과의 협력은 단순히 대만을 지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집단안보를 강화하고 경제와 첨단기술 분야의 회복력을 높이며, 권위주의적 압력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제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다. 따라서 대만이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국제사회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포용적이고 안전하며 회복력 있는, 그리고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지금 세계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배제와 분열이 아니라 신뢰와 연대다. 대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트너로서 국제사회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국제사회도 대만이 마땅히 참여해야 할 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배제가 아니라 포용에서 시작된다.

    2026-09-10 17:16:48

  • [광장-이춘근] 약화되는 한미동맹, 강화되는 주한미군

    [광장-이춘근] 약화되는 한미동맹, 강화되는 주한미군

    작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미일 협력 관계를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안보 정책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한국 국민들은 물론 미국도 안심시키고자 했다. 사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지칭했다. 한미동맹의 가치를 폄훼했으며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대단히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재명 정부는 미국에게 3천50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투자도 약속했고 미국 방문 직후에는 더 이상 안미 경중, 즉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라는 정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미국을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못했다. 적어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재 한국 정부의 대미 정책에 대해 언행이 전혀 불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7일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게재한 글을 통해 이미 계획 중이었던 을지 프리덤 쉴드 한미연합훈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고, 한국 정부가 비핵화 등 이란 문제에 대한 미국의 협조 요청을 '노 땡큐'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트럼프는 시제만 바꾼 똑같은 글을 8월 25일 다시 게재함으로써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이 글은 대통령의 명령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을지 프리덤 쉴드 한미연합훈련은 시작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지돼 버렸다. 함께 하기로 약속됐던 한미 해병 연합 상륙작전 훈련도 취소됐다. 8월 30일 폭스뉴스의 '선데이 나잇 인 아메리카'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노골적으로 이재명 정부를 비판했다. 자신은 전혀 강압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다만 한국이 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울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 때 자신은 이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는 것도 가감 없이 전했다. 트럼프의 어법상 잊지 않겠다는 말은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둘째 아들 에릭 트럼프는 최근의 저서에서 자기 아버지의 여러 가지 성품 중 하나가 '보복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동시에 김정은에게 우호적이지만 모욕적인 언급들을 통해 이란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북한 문제라는 사실도 밝혔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자신을 존경하고 있고, 그래서 도발도 자제하고 있으며 김정은과 자신은 말이 잘 통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어법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다음 차례는 너야!'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할 것이다. 동맹국이 군사훈련을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동맹관계가 망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만 이와는 전혀 역행하는 미국의 뚜렷한 움직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우선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3국과 함께 제주도 동남방 수역에서 진행하는 '프리덤 엣지' 훈련은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진행되는 훈련을 취소하는 한편 남해 바다에서의 훈련을 지속하는 이유는 미국이 한미동맹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가 북한 억제에서 중국 억제로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한미동맹을 더 이상 북한 수준의 허약한 적을 자제시키는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에 중국을 함께 견제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중인데 한국은 거기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는 게 한미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이다. 물론 미국의 이 같은 요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고 태평양지역(Pacific Area)이라고 명기돼 있다는 법적인 약속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 국방 전략의 핵심인 A2AD(Anti-Access, Area Denial, 접근금지, 지역 거부) 전략을 격파하기 위해 창설한 부대인 다영역 작전부대(MDTF)를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영역 작전부대는 미국 육군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육·해·공·우주·사이버·정보 등 모든 전장을 통합해 작전하는 미국군 최강, 최신예 기동부대다. 이 부대는 평택에서 북경까지 단 3분이면 날아갈 수 있는 마하 17의 초 고음속 미사일 블랙이글도 장착하고 있다. 순수 방어 미사일인 사드 미사일 배치 시 중국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잘 알고 있을 현 한국 정부를 향해 거대한 폭풍이 오고 있다.

    2026-09-10 13:06:51

  • [매일춘추-서효봉] 축제의 본질

    [매일춘추-서효봉] 축제의 본질

    더위가 옅어지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몸을 통과하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 온 동네가 들썩인다. 지역대표 축제, 별난 축제가 SNS에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손 흔들며 소리친다. 우리 이런 것도 하고, 이런 사람도 오고, 이런 추억 남길 수 있는데 정말 안 올 거야? 차 밀리고, 사람에 치이겠지만 그래도 집을 나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축제장으로 향한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올해 22회째를 맞는 불꽃축제에 무려 10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한국, 미국, 영국을 대표하는 불꽃팀이 화려한 불꽃쇼를 펼쳤다. 이번 축제에는 1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근데 불꽃축제를 앞두고 이런 뉴스들이 나왔다. 세계불꽃축제, 여의도 한강공원 '명당 돗자리' 수십만원 거래 논란. 축제 기간 여의도 일대 호텔 숙박비 수백만원에 달해. 또 바가지 논란. 행복도 돈으로 산다는 믿음이 공증받은 것처럼 뚜렷해지는 느낌이 든다. 똑같은 하늘을 바라보는데도 구분 짓기 바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라는 소설에는 마콘도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축제를 벌인다. 집시들이 낯선 물건을 들고 나타났을 때, 마을 처녀를 여왕으로 뽑는 날, 갑자기 큰 돈을 번 사람이 술과 음식을 퍼부을 때, 외지의 기업이 들어와 부유해질 때도. 그렇게 축제를 벌이지만 이상하게 마을과 부엔디아 집안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총성이 울리고 누군가는 점점 고독해진다. 타락이 그들을 멸망으로 이끈다. 어두운 밤하늘에 피어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우린 각자 어떤 생각을 했을까? 100만개의 생각. 명멸하는 불꽃 같은 그 생각이 궁금하다.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올려다보고, 옆 사람의 손을 꼭 잡는다. 70분 동안 소비되는 불꽃의 향연을 보며 아름다움에 취하고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만족감을 끌어안는다. 그 와중에도 내가 서있는 자리는 저들이 서있는 자리와 다름을 생각한다. 지금 누리는 것을 지키기 위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불꽃처럼 하늘로 자신을 쏘아 올린다. 빛이 사라진 허무한 하늘에서 또 묘한 외로움을 느낀다. 우린 고독한 운명을 타고났다. 어쩌면 그래서 축제에 끌리는 게 아닐까.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것을 바라보고, 함께 웃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고독한 사람들이 잠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곁에 나와 연결된 어떤 사람들이 산다는, 그 분명한 사실을 말이다.

    2026-09-10 09:40:43

  • [사설] 청문회만 마치면 임명 강행하겠다는 여당의 오만

    오는 15일 예정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聽聞會)가 증인 한 명 없는 맹탕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이 '신약 로비 의혹' 관련 브로커 양모 씨 등 증인 44명과 참고인 4명의 명단을 제시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 명의 증인도 채택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이뤄진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문회 절차만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한 뒤 김 후보자에 대한 임명(任命)을 강행하겠다는 청와대와 여권의 속셈을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 후보자 의혹은 단순히 식약처 청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주가조작에 여권 인사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疑惑)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고, 공익 신고자에 대한 '살해 협박' 주장까지 나오는 현재 진행형 게이트급 사건이다. 게다가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폭로(暴露)하고 있는 한동훈 무소속 의원을 향해 9일 "검찰 내 협력자가 있거나 거짓의 유포"라면서 법적조치를 예고했고, 한 의원 또한 김 대표를 허위사실 유포로 형사조치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 관련 의혹은 민주당의 주장과 달리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국민들이 가장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사안이 됐다. 특히 김 후보자 청탁에 따라 '가짜 코로나19 치료제 신약'이 시중에 나왔을 경우 수많은 국민들의 생명에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김 후보자의 당시 행동뿐만 아니라 브로커 양 씨 발언의 신빙성, 한 의원이 공개한 자료의 취득 경위까지 한꺼번에 검증(檢證)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 국민들의 판단이다. 여론조사공정의 최근 발표를 보면 김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60.6%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이미 '부적격'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증인(證人) 없는 형식적 청문회를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국민적 심판은 더욱 매서워질 수밖에 없다.

    2026-09-10 05:00:00

  • [사설] 민생은 뒷전, 검찰개혁 셈법 다툼에 매몰된 정치권

    정기국회가 열렸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민생(民生)보다 검찰개혁에 쏠려 있다. 형사사법체계 개편과 관련된 정부 시행령 개정안 때문이다. 반발도 야권이 아니라 범여권에서 터져 나왔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공소청 직제안과 검사정원법 시행령 개정안이 '개혁 후퇴'라는 것이다. 일종의 내부 분열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다음 달 출범하는 공소청 검사 정원이 옛 검찰 정원 그대로인 2천292명으로 유지되고, 불송치 사건을 재검토하는 '사법통제부'도 신설된다. 조국혁신당은 '기상천외한 꼼수'라고 직격했고,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통제부는 모순' '사실상 상시 수사지휘'라고 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도 '수사·기소 분리 취지가 훼손될 것'이라며 가세했다. 검찰 수사 업무가 통째로 없어지면 인력도 최소 3분의 1은 줄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리다. 법무부는 공판 대응 인력이 부족해 현재 검사 정원은 유지해야 하고, 사법통제부 역시 국민 인권 보호와 피해 구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반박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우려한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9일 "기득권 관점에서 과도한 조직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국회 차원에서 살펴보겠다"며 서둘러 봉합에 나섰다. 앞서 형사사법체계 개편 과정에서도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로 국론(國論)은 분열됐고 첨예한 여야 대치로 국가적 혼란을 야기했다. 그런데 이번엔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부-여권의 내부 갈등으로 또 민생이 뒷전으로 밀려날 지경이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 세력이 정책과 입법의 정점이어야 할 정기국회 첫머리부터 집안싸움으로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고물가·고금리, 경기 침체의 늪에서 신음하는 국민의 관심사는 검사 정원 몇 명 더 줄이느냐 늘리느냐가 아니다. 이미 입법예고된 시행령을 놓고 벌이는 정부와 여권의 내분(內紛)은 국민에게 한숨만 더할 뿐이다. 가뜩이나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검사 숫자가 민생 법안 심사보다 앞서야 할 사안인지 되물어보길 바란다.

    2026-09-10 05:00:00

  • [사설] 미래의 경제 주춧돌 청년만 고용 회복에서 빠졌다

    8월 취업자가 지난해보다 18만4천 명 늘었고, 제조업과 건설업 취업자 감소 폭은 줄었다. 고용시장이 긴 부진(不振)에서 벗어나는 듯 보이지만 청년들은 예외다. 15∼29세 취업자는 14만3천 명 줄어 46개월째 감소했다. 노동시장 첫 진입을 꿈꾸는 세대들의 한숨이 깊어간다.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가 15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지만 29세 이하 가입자는 48개월 연속 감소다. 물론 취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조사에서 첫 직장을 얻은 청년 4명 중 1명꼴로 월 150만~200만원을 받았다. 주거비와 대출 이자를 갚고 나면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그럼에도 청년들에게 취업은 생활을 유지하고 미래 경력 손실을 막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청년 실업은 미래를 이끌 세대가 경력과 자산 축적의 출발 기회조차 통째로 잃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이 살아나면 청년 채용도 늘어난다는 공식조차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청년기 실업과 장기간의 비경제활동이 이후 저임금·비정규직에 머물 위험을 높이는 '상흔(傷痕)효과'를 경고한다. 첫 취업이 늦어지면 경력 축적도 늦어지고 그 격차가 임금과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시장 미진입 청년이 늘면 세수는 줄고 복지 부담은 커진다. 젊은 노동력의 출발이 막히는 것은 잠재성장률과 인구 문제를 동시에 악화시키는 일이다. 정부도 청년 일자리 회복 방안을 내놓고 첨단산업·청년 선호 분야의 인력 양성과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 정책 대상도 34세까지 확대했다. 방향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몇 명을 교육하고 몇 개 지원사업을 만들겠다는 숫자가 실제 채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는데도 청년 가입자가 감소하고, 경제가 성장하는데 노동시장 입구는 좁아지는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전체 취업자 증가 폭으로 고용시장 개선을 말해선 안 된다. 취업자 18만 명 증가와 청년 취업자 46개월째 감소의 괴리(乖離)는 심각한 문제다.

    2026-09-10 05:00:00

  • [관풍루] 정부가 내년도 건보료율 7.19%로 동결, 당장은 반갑지만 훗날이 걱정

    ○…'미스터 쓴소리'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 이임식에서도 "국민 통합의 마지막 보루는 헌법 정신" "상대를 적으로 여기면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고 지적. 상식적인 발언이나 원칙이 무너진 세상엔 죽비 소리. ○…정부가 내년도 건보료율 7.19%로 동결, 당장은 반갑지만 훗날이 걱정. 올해 1분기 적자 4조원에 2029년엔 준비금 소진된다고 경고하더니, 뜬끔없는 결정. 국정 지지율 급락 때문인가. ○…학폭 피해 학생 2.9%로 역대 최고치, 6년 만에 피해 응답률은 3배로 늘어. 학폭 이슈 때마다 내놨던 그 많은 대책들은 어디 갔나? 백약무효(百藥無效)라면, 처방 자체가 문제.

    2026-09-10 05:00:00

  • [날씨] 9월 10일(목)

    [날씨] 9월 10일(목) "대체로 구름많음"

    2026-09-09 18:41:58

  • 김정수 (사)한강학회 부이사장,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상임부회장 선임

    김정수 (사)한강학회 부이사장,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상임부회장 선임

    김정수 (사)한강학회 부이사장(83)이 성균관 유도회 총본부 상임부회장에 선임됐다. 김 부회장은 7일 성균관 대성전에서 상임부회장 고유례를 봉행하고 위촉장을 받았다. 경북 청송 출신인 김 상임부회장은 경주 김씨로 ▷경주 미추왕릉 48대 참봉 ▷대구향교 장의 ▷성균관 전인 ▷(사)박약회 대구지회 부회장 ▷(사)춘추회 부회장 ▷(사)담수회 부회장 ▷성균관 부관장 등을 역임했다.

    2026-09-09 16:12:42

  • [이춘호의 미각기행] 다방르네상스 이야기

    [이춘호의 미각기행] 다방르네상스 이야기

    한국의 문화예술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다방이란 '문화예술아지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발효한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을 수가 없었던 그 시절 예술가들은 일단 다방으로 넘어오면 온갖 허세와 허영도 번듯하게 대접을 받을 수가 있었다. '다방=예술사랑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망국의 주인공이기도 한 고종도 그런 사람이었다. 1896년 2월 11일 밤. 고종은 왕세자(순종)와 함께 일본의 눈을 피해 서울시 중구 정동 덕수궁 근처 러시아공사관(당시는 '아관'(俄館)이라 부름)으로 피신한다. 한국 다방사의 1막1장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아관에서 보낸 1년여 동안 고종은 식사 후에도 왕세자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 마니아가 된다. 고종이 스스로 커피를 찾은 건 물론 아니다. 고종에게 접근한 여성 로비스트가 있었다. 당시 러시아 공사 베베르한테 발탁돼 구한말 한국 사교계에 등장한 독일 출신 손탁이었다. 고종은 자기한테 커피를 소개해주고 적적할 때 말벗까지 되어준 벽안의 여인에게 보답하기 위해 1902년 아관 옆에 2층 적벽돌조 손탁호텔까지 만들어준다. 고종의 속맘을 헤아린 손탁은 1층에 사교클럽을 겸한 커피숍을 꾸미는데, 거기가 한국 최초의 다방격인 정동구락부가 된다. 일본은 1726년쯤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커피를 소개받았고, 일본 최초의 커피숍은 1886년 도쿄에 '세수정'(洗愁亭)이다. 일본에선 다방이 '기사댕'(喫茶店)으로 불렸다. ◆서울에는 이상 대구에는 이인성 1930년대 두 명의 천재 예술가가 서울과 대구에서 다방을 개업한다. 당시 예술가에게조차 난해했던 '오감도'란 시를 발표했던 시인 이상은 1933년 서울 종로에서 '제비다방'을 연다. 대구시 중구 태평로에서 태어난 화가 이인성은 1936년 아카데미극장 옆 골목 초입에서 '아루스다방'의 문을 연다. 그는 자신의 재주를 아껴주던 대구여고보(경북여고) 교장 시라가 주키지(白神壽吉)의 중매로 남산병원장 김재명의 장녀 옥순과 결혼한다. 김 원장은 맏사위가 술독에서 빠져나와 명화를 그려주길 바라는 맘에서 병원 옥상에 그를 위한 아틀리에를 만들어준다. 대구에선 첫 화실이었다. 당시 전국적인 명사였던 이인성은 '반월당'과 함께 일제 대구의 대표적 백화점이 던 '무영당' 사장 이근무(李根茂)와 계성고교 재학시절 '뜸북새'를 작곡한 음악평론가이자 동화작가인 윤복진 등과 교유했다. 밤이 돼 무료하면 아틀리에 맞은편 고려예식장 옆 골목에 있던 민족시인 이상화 사랑채로 마실을 나가기도 했다. 아틀리에 손님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장인어른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자기 손님들을 위한 별도의 사랑방이 절실했다. 그런 필요에 의해 아루스가 탄생한 것이다. 개업 초대장을 보면 '아루스는 아담한 객실, 심령의 안식처, 예술의 전당, 가두의 도서실'이라 했다. 이듬해 겨울 백석 시인과 그 다방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그런데 그 다방에서 끔찍스러운 사건(매일신보에 기사 게재)이 1937년 10월 28일 오후 6시에 발생한다. 이인성은 선민의식이 너무 강했고 술을 먹으면 인사불성이었다. 그가 워낙 도도하게 놀자 수창소학교 선배이자 화가지망생이던 김부돌(金扶乭)이 심통을 부렸다. '너 한번 당해봐'란 심산으로 25세 때 일본제전에 입선한 400호 크기의 '한정'(閑庭)의 중앙 상단부를 칼로 30cm 이상 찢자, 분을 삼키지 못한 이인성이 김부돌의 칼을 빼앗아 선배의 가슴을 찔렀다. 그 충격으로 이인성은 한동안 다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을 찾은 이인성은 정형수술 전문의처럼 '한정'을 정성스럽게 봉합해준다. 아루스다방 탁자는 검정색이었으며, 빅타회사에서 만든 유성기, 여종업원까지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인성은 남산병원을 떠나 아루스다방 옆으로 아틀리에를 옮겼다. 하지만 그는 알코올에 중독된 듯 그림보다 술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1940년대초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으로 거처를 마련했지만 주사는 더욱 심해갔고 급기야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그해 겨울, 서울 시내 술집에서 마포경찰서 교통순경 김성환과 사소한 시비를 벌이다가 피격돼 39세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인성이 대구에 남기고 간 아루스다방은 중앙로 YMCA 바로 북편 아루 제과점을 낳았으며, 이화진 등이 다방의 명맥을 잇다가 1960년대 의학박사 박태환이 인수해 다방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박내과를 세웠다. ◆50년대 다방의 추억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도 대구와 인연이 깊다. 1951년 대구시 중구 북성로 31, 그가 모나미 다방에 등장했다. 죽순문학회(광복 직후 대구에서 태동한 한국 첫 문학회) 주최 한솔 이효상 시집 '바다' 출판기념회를 빛내기 위해서다. 그날의 사진 속에는 공초와 청록파의 한 사람이었던 조지훈, 구상시인, 죽순문학회의 산파역 이윤수 시인 등이 축하객으로 자리했다. 공초가 대구에서 머문 기간은 20여년. 공초는 일제 때 서울 남산에서 수주 변영로, 횡보 염상섭과 대낮에 발가벗고 스트립쇼를 벌여 살아가는 재미를 잃은 한국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었다. 1927년 약전골목 구일당 한약방 주인이자 아나키스트였던 방한상(方漢相) 집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그는 장발이었다. 남산동의 한 여관에 진을 친 공초는 고월 이장희·이상화·백기만 시인과 교우했고 상주 출신 퇴기 덕분에 주막 상주집 골방을 차고앉을 수 있었다. 그가 진을 치고 있던 골방은 아무리 많은 지인이 찾아와도 모두 수용할 수 있어 일명 '고무줄방'으로 불렸다. 매일 얻어먹고 사는 자신이 한스러웠던지 공초는 상화의 도움을 받아 '아세아'란 이름의 술집을 경영한다. 그러나 공초와 돈의 관계는 물과 기름과 같았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몇 달 만에 빚을 안고 폐업을 하고 만다. 아세아와 거래한 주류도매점 안동옥의 사장은 그가 유명 시인이란 사실을 알고 이색 제안을 한다. 안동옥 광고문안을 빚을 청산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공초도 흔쾌히 허락한다. '거품과 같은 인생이다. 어둡고 헛되게 살 것인가. 불안한 세상을, 짧은 인생을 웃으며 명랑하게 살자. 새 봄이다. 명랑한 인생이다. 부라보. 희망의 잔을 비워라. 강하게 즐겁게 짧은 인생을 즐기자.' ◆백조다방의 이삼근 해방 직후 대구에서 처음으로 모던한 다방이 있다. 북성로 초입의 '백조'이다. 북성로 1가 21번지. 2020년까지만 해도 옛 향촌동 상업은행 대구지점에서 뉴대구호텔을 향해 170여 보를 걸으면 북성로 길과 만나고 좌회전해서 20여m 가면 오른편에 신진이발기구상회가 보였다. 거기가 47년 1월 1일 개업한 백조다방 자리다. 신진상회 바닥엔 바둑알만한 갈색 타일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었고, 20개의 나무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당시 주인 이삼근이 생활했던 10여평 규모의 거실도 먼지에 쌓인 채 보존돼 있었다. 일제 때 백조 자리엔 바이올린을 잘 켰던 주인 무라세가 경영했던 찻집 '아오이'(靑)가 있었다. 독신인 무라세는 음질이 좋은 빅타 축음기와 다량의 SP레코드판을 갖고 있었고 가끔 동산병원 옆에 자리했던 개신교 선교사 자녀들에게 바이올린 레슨도 했다. 아오이는 골기와 지붕이 인상적인 현재 유풍문구사 맞은편 가게츠(花月), 송죽극장 맞은편 쓰바사(翼)와 함께 일제시대 대표적 스낵형 다방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삼근은 도쿄에서 바이올린 연주회를 가져 대구의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인지도가 있었다. 그는 깔끔하고 독선적이며 프라이드가 매우 강해 언뜻 무사적 풍모도 엿보였다. 당시 대구에선 이삼근 자체가 화제의 인물이었다. 복장도 매우 파격적이었고 늘 빨간 스카프, 베레, 지팡이가 늘 3박자로 따라다녀 행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45∼46년 아오이는 잠시 술집으로 변했다가 이삼근이 '낭만의 백조시대 '를 연다. 가게 이름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의 백조에서 따왔다. 1층은 다방, 2층은 거실로 사용됐다. 2층 외벽은 모두 42개의 유리창으로 치장됐다. 홀에는 12개 정도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앞뒤로 머리까지 기댈 수 있는 높은 등받이 의자 4개가 놓여있었다. 손님들은 장방형 구조에 홀 양편으로 흡사 열차 객실처럼 의자를 배치해 백조를 '열차다방'이라고 불렀다. 백조는 상업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손님이 들어와도 이삼근은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커피와 주스, 우유만 팔고 술은 팔지 않았다. 담갈색 양 벽엔 김법룡 등 선전(鮮展) 입상작, 기증한 일본 화가 마츠우라 히데오(松浦秀雄)의 그림, 한 소련인이 그린 그림 '코카서스 부인의 성장' 등 68년 당시 모두 14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음악애호가였던 이삼근은 시끄럽다며 축음기도 멀리했다. 다만 피아니스트인 외아들 이공주(李公主)를 위해서는 그랜드 피아노를 마련했다. 이 피아노가 오랫동안 대구의 명물이 된다. 1965년 연주차 대구에 들른 독일 피아니스트 루스 스렌치스카도 연습 후 사인을 남겼고 안동에서 태어난 대구의 1세대 음악가로 60년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한 권태호(1903∼72), 계산동에서 태어나 46년 그 유명한 노래의 날개, 금잔디를 작곡한 김진균(1925∼86), 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 등 내로라하는 음악가와 효성여대·계명대 음대 학생들의 연습공간으로 애용됐다. 미국 여성과 결혼한 이공주는 가끔 백조에서 아버지의 바이올린 반주에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이삼근과 점점 멀어졌고 결국 미국으로 귀화하고 만다. 이공주는 연주인으로 대성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조율사로 살아갔다. 이삼근의 말년은 무척 쓸쓸하고 고독했다. 급증하는 고급 다방한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2년쯤 문을 닫는다. 훗날 제2의 백조다방이 생겼지만 도심재개발 때문에 사라지고 말았다. 세상만사 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wind3099@hanmail.net

    2026-09-09 13:49:07

  •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1>평상심의 미학인지, 현실도피인지 모를 낮잠 '수하오수도'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1>평상심의 미학인지, 현실도피인지 모를 낮잠 '수하오수도'

    버드나무 아래 평상에서 낮잠 자는 인물을 그린 김홍도의 '수하오수도'이다. 책 더미를 베개 삼아 그 위에 팔을 얹은 채 한쪽 무릎을 세운 우아한 포즈로 잔다. 머리맡엔 필통으로 활용한 중국 고동기(古銅器) 고(觚)가 놓여있고, 발치엔 삽병이 있는 고급스런 배경이다. 화가들은 오수도를 종종 그렸다. 김홍도의 선배인 공재 윤두서, 후배인 소당 이재관의 명작이 있다. 예로부터 뜻이 높은 고사(高士)의 낮잠은 그냥 잠이 아니라 고도의 문화적 제스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잠, 잠이 예술로 승화돼 회화로, 문학으로 나타났다. 낮잠 그림으로 '삼국지연의'의 삼고초려에서 유래한 제갈량의 초당춘수도(草堂春睡圖)가 있고, 문학으로 소동파의 '수향기(睡鄕記)'가 있다. '잠의 나라'인 수향, 곧 잠이야말로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무릉도원이라는 위트가 넘치는 산문이다. 조선의 문인들도 잠을 예찬한 '수향기'를 즐겨 지었다. 오수도의 잠은 삶의 가치를 안빈낙도에 둔 달관의 경지이기도, 평상심의 미학을 은유하기도, 세상사에 눈감는 의도적 외면이기도, 현실로부터의 도피인 수은(睡隱)이기도 하다. 자신만만하게 휘날리며 커다랗게 쓴 제화와 나이든 단원인 '단옹(檀翁)' 서명에서 김홍도의 문인(文人) 의식이 엿보인다. 시는 당나라 왕유의 '전원의 즐거움(田園樂)'이다. 2구만 썼지만 전체를 보면 시의 붉은 복사꽃, 푸른 버드나무, 울고 있는 꾀꼬리, 잠자는 인물이 그림에 그대로 나온다. 〈strong〉복사꽃은 밤비 머금어 더욱 붉고/ 버들가지는 아침 안개 둘러 한층 푸르네〈/strong〉 〈strong〉꽃이 져도 아이는 쓸 생각 않고/ 꾀꼬리 울어도 손님은 여전히 잠 속이네〈/strong〉 〈strong〉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 花落家童未掃 鶯啼山客猶眠〈/strong〉 '수하오수도'는 초연한 유유자적인지, 현실도피의 소극적 저항인지 모를 낮잠을 그린 오수도인 동시에 시정을 회화로 공유한 시정화의(詩情畵意)의 시의도(詩意圖)이다. 김홍도의 호 중에 오수당(午睡堂), '낮잠 자는 집(Nap House)'이 있다. 그저 낮잠이나 잘 뿐이라니 참 무심하고 평온한 이름인 것 같지만 오수, 오수도의 의미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9-09 10: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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