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4 18:40:29
[교육칼럼]'서류 쇼'(?)에 동원되는 95%의 들러리들, 대구경북 일반고 '학종 잔혹사'
대입 전형의 다변화라는 명목 아래 굳건히 자리 잡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소수 상위권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을 동원하는 구조적 모순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교육부의 대입 전형별 선발 비율을 보면 학종은 전체 모집 인원의 29.8%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대구 지역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상당수 학생들에게 이 전형을 강제하면서 극심한 피로감을 유발하는 모양새다. 특히 수성구와 달서구 등 이른바 교육 특구로 불리는 지역의 일반고교를 중심으로 대학의 평가 기준에 맞춘 무리한 교육과정 개설과 이에 따른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논란이 표면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역 모 고등학교의 경우, 3학년 교육과정에 일반고에서 소화하기 힘든 '고급 물리학'과 '고급 미적분' 등 전문 교과를 편성해 운용 중이다. 해당 과목들은 물리학Ⅰ이나 미적분 등 기초 과목에서 4·5등급을 받은 학생들까지 강제적으로 수강 신청을 하도록 유도되어 파행을 겪고 있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A학생(평균 3.8등급)은 지역 거점 국립대인 경북대학교의 학생부교과전형(교과우수자전형) 등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정작 매주 15시간 이상을 상위권 학생들과 함께하는 '고급 물리학' 팀 프로젝트와 수행평가 보고서 작성에 빼앗기고 있다. 한 학생은 "반에서 전교 1등을 달리는 학생이 조장을 맡은 4인 공동 연구 과제에서 단순 자료 입력이나 실험 도구 정리 같은 보조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며, "수능 최저학력기준 충족을 위해 수능 기출문제를 한 문제 더 풀어야 할 시기에 원서조차 쓰지 못할 전형을 위해 왜 밤을 새워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구조는 일선 학교들이 서울대나 의약학 계열 진학 실적을 낼 수 있는 상위 5% 이내의 핵심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나머지 95%의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결합되는 과정에서 심화된다. 수성구의 또 다른 고등학교인 F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 B씨는 학교 측이 운영하는 '멘토-멘티' 프로그램의 실상에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전교 최상위권 학생의 생기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란에 '동료 학습을 주도하고 나눔을 실천함'이라는 문구를 넣어주기 위해 내신 4.2등급인 본인의 아이가 들러리 격인 멘티로 지정됐다며, 이 프로그램이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함에도 학교는 마치 모두를 위한 진학 지도인 양 학부모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통계적 실증 자료 역시 학종의 이 같은 외형적 화려함이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수도권 중위권에 위치한 H대학교의 지난해 수시 입시 결과를 살펴보면, 학종 최종 등록자 중 일반고 출신 비율이 98.2%에 달한 반면 자사고는 0.1%(1명), 외고·국제고는 1.2%에 그쳤다. 이는 대학들이 학종에서도 결국 정량적인 내신 등급을 주된 지표로 활용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지표다. 예컨대 기계공학과 지원자라면 화려하게 치장된 탐구 보고서 서술보다 수학Ⅱ나 물리Ⅰ에서 받아온 2등급이라는 물리적 숫자가 합격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대학 입시 전문가들 역시 최근 주요 대학들이 학생부교과전형에 서류 평가를 20~30%씩 반영하거나, 정시 수능 위주 전형에 교과 평가를 도입하는 추세에 대해 냉정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정시모집 지역균형전형에서 수능 60%와 교과 평가 40%를 합산하고, 고려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가 정시 및 교과 전형에 서류 종합평가를 결합한 것은 학생들의 역량을 다각도로 평가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육부의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금'을 수령하기 위한 행정적 요식 행위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 체제 하에서도 대입의 변별력은 결국 철저한 상대평가 5등급제 내신과 수능 최저학력기준이라는 본질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지역의 많은 입시 전문가들은 일선 고교와 대학이 연출하는 서류 위주의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지역만의 철저한 내신 기출 분석과 수능 대비라는 실리적 개인기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만이 왜곡된 입시 구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조언한다. 윤경민 크라스에듀 대표
2026-06-24 16:01:36
[기고-이재혁] K-2 후적지, 또 아파트만 지을 것인가
대한민국의 산업지도가 바뀌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미래모빌리티, 첨단바이오, 첨단국방산업을 중심으로 국가의 미래 성장축이 재편되고 있다. 지역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건물을 짓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미래산업을 유치하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다. 산업을 선점한 지역은 성장하고, 그렇지 못한 지역은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라는 이중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대구는 수십 년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역사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바로 K-2 군공항 이전 사업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K-2 후적지를 대규모 택지개발사업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아파트를 공급할 것인지, 얼마나 많은 개발이익을 창출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K-2 후적지의 가치는 단순한 부동산 개발에 있지 않다. K-2 후적지는 대구의 미래 산업구조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다. 대구의 미래 50년, 나아가 100년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 논리가 아니라 산업 전략이다. K-2 후적지는 도시개발사업이 아니라 산업전략사업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전략산업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첨단국방산업, 미래모빌리티 산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 거점을 조성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반드시 검토해야 할 분야다. 반도체는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 국가 경쟁력과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산업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연구개발과 첨단기술 산업을 함께 성장시키는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다. 최근 정부의 첨단산업 정책을 보면 수도권과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중요하다. 특정 지역에만 기회가 집중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또 다른 지역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대구경북 역시 국가 첨단산업 정책의 중심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대구경북신공항이 완성되면 항공물류와 첨단제조, 연구개발 기능을 연계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K-2 후적지와 대구경북신공항은 결코 별개의 사업이 아니다. 대구경북신공항이 대한민국 남부권의 새로운 관문이라면, K-2 후적지는 그 관문과 연결된 미래산업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 신공항이 사람과 물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면, 후적지는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역 정치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를 설득해야 하고, 기업을 만나야 하며, 국가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움직여야 한다. 국회의원의 역할도 단순히 예산 확보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 산업정책의 흐름을 읽고, 기업 투자를 유치하며, 지역의 미래 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K-2 후적지 개발은 대구시와 지역 정치권의 역량을 평가받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지역의 몫이다. K-2 후적지가 단순한 아파트 단지로 기억될 것인지,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기억될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는 개발이 아니라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 미래의 중심에는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산업이 있어야 한다. K-2 후적지는 대구의 마지막 개발지가 아니라, 대구의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는 곳이어야 한다.
2026-06-24 15:56:52
꽤 오랫동안 골목이 있는 동네에서 살아서인지 골목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낯선 도시를 방문할 경우 골목부터 찾는 것도 체화된 습성일 터이다. 빈 종이박스를 골목 입구에 내놓고 돌아오다가 한 집 건너에 사는 할머니를 만났다. 인사를 나눈 뒤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내게 할머니는 고마운 분이다. 오래전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섬망 증세로 한겨울에 맨발로 골목을 헤매다가 그 집 대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따로 살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할머니가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 할머니가 어머니를 거두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홀로 집을 지키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할머니는 애잔한 눈빛으로 섭생을 당부한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보고 내심 놀랐다. 한 달 전에 비해 더 해쓱해진 것 같았다. 하긴 할머니도 여든을 넘겼다. 돌아가실 즈음의 어머니 연배가 된 것이다.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어머니와 함께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 골목의 잡초를 뽑은 일이며 민들레나 뽀리뱅이를 건사한 일이며 공원에 운동하러 가거나 장보러 간 일, 더러 전을 부쳐 나눠 먹은 일까지. 나는 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의 입을 통해 어머니를 만나는 셈이었다. 무슨 말끝에 할머니가 말했다. 어머니 꿈을 꾼 적이 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워낙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꿈에서도 매무새가 깨끔한 걸 보면 좋은 곳에 가신 듯허이."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감나무를 올려다봤다. 꿈에서도 매무새가 깨끔했다. 그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잘 익은 감을 꿈꾸듯 바라보던 어머니. 그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꿈이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었다. 할머니가 말한 것과 다른 의미에서의 꿈. 어머니 생전에 나는 어머니께 꿈이 뭔지 물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라고 꿈이 없었겠는가. 가슴이 저렸다. 오늘이 마지막 칼럼이다. 일년간 부족한 글을 진득하게 지켜봐 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떠나면서 남기고 싶은 말은 사랑하는 이에게 가끔 꿈이 뭔지 물어 보라는 것이다. 꿈을 묻는 것과 꿈을 이루는 건 별개의 문제다. 꿈을 묻는 건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 것이고 그것은 공유면적에 나무 한 그루 심는 일이다. 가끔은 그 나무까지 걸어가 보시라. 나무 아래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각자 품어온 것을 나누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리고 기억하시길. 언젠가 당신이 무척 외로울 때, 그때 당신은 나무가 들려주는 꿈 얘기에 분명 미소 지을 것이다.
2026-06-24 13:17:43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2>조선 감상화의 차원을 바꾼 변상벽의 사실주의 동물화
그의 고양이, 닭 그림이 너무도 실감나 본 사람들이 '변고양이', '변닭'이라고 했던 영조 때 화원화가 화재(和齋) 변상벽의 '자웅장추'이다. 병아리 9마리와 암탉, 수탉 일가족이 종이 위에 생생해 그런 별명을 붙였던 사람들에게 공감이 간다. 대상 자체의 객관성에 근거한 전례 없는 화풍을 보여준 변상벽은 사실주의 동물화의 대가다. 검은빛 수탉은 번쩍이는 깃털과 활기찬 두 가닥 꼬리, 새빨간 볏에 사나운 눈매로 위풍당당하게 정면을 향하고, 옆모습인 흑갈색 암탉은 부리에 벌 한 마리를 물고 새끼들에게 먹이려는 참이다. 수탉 뒤로 흰색 암탉이 한 마리 더 있다. 닭은 일부다처! 배경은 연두빛 풀이 잔잔한 마당이다. 표암(豹菴) 강세황은 그림 속에 써넣은 화평에서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精工神妙) 옛사람이 미치지 못한 바다(古人所不及)'라고 했다. '신묘'하다는 감탄대로 이렇게 집요하게 관찰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그림은 예전의 화가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선배라면 개를 잘 그린 남리(南里) 김두량(1696~1763)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영조가 총애한 화원화가다. 구구구~ 소리가 들릴 듯한 변닭 변상벽의 그림에서 닭이 오덕(五德)을 갖춘 덕금(德禽)이니, 닭이 새겨진 종묘의 제기 계이(鷄彛)니, 닭의 볏이 벼슬을 상징하니, 화보의 닭 그림이니 등등을 떠올리는 것은 무용하다. 조선 회화의 차원이 달라졌다. 말로만 듣던 변상벽의 닭 그림을 직접 본 다산 정약용이 지은 제화시 '제변상벽모계령자도(題卞尙璧母鷄領子圖)'가 무려 200자에 달하는 5언 40구의 장시인 것은 이 그림의 새로움에 그만큼 감동했기 때문이다. 산수든, 화조든, 영모든 그림의 뜻을 중시하고, 사실(寫實)보다 사의(寫意)를 선호한 조선의 감상화 전통을 변상벽이 바꿔 놓았다는 사실을 '실학(實學)'의 집대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정약용은 누구보다도 잘 알아봤던 것이다. '자웅장추'는 1937년 3월 28일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간송 전형필 선생이 구입했다. 전형필은 이듬해 성북동 언덕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열었다. 지금의 간송미술관이다. 오래전 보화각 입구로 향해가는 뜰의 왼쪽에 있었던 닭장에서 꼭 이렇게 생긴 수탉을 보고 그 위용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6-24 11:28:01
[사설] 언제 적 '세계 속의 패션 대구'인데 아직도 대구 관문에
도시의 첫인상은 관문(關門)에서 결정된다. 공항과 역, 고속도로 나들목은 외지인이 그 도시를 처음 마주하는 공간이다. 첨단산업과 문화, 혁신과 미래의 이미지를 아무리 강조해도 관문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그 도시는 브랜드 마케팅에 실패한 것이다. 대구의 대표 관문인 북대구IC가 그런 사례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 들어서는 운전자들은 비탈면에 설치된 '푸른 대구 밝은 미래, 세계 속의 패션 대구'란 문구를 보게 된다. 2000년 설치된 이 홍보물은 당시 대구의 주력 산업이던 섬유·패션산업의 위상(位相)을 상징했다. 그러나 현재 대구의 산업 지형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래모빌리티, 로봇, 의료산업, ABB(AI·빅데이터·블록체인),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이 도시 성장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대구의 얼굴 역할을 하는 관문은 과거에 멈춰 있다. 대구시는 북대구IC 일대 경관(景觀) 개선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고속도로와 맞닿은 급경사면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수억원의 예산 때문에 개선 작업이 번번이 무산됐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의 관문은 도시 브랜드와 경쟁력을 보여 주는 공공(公共) 자산이다. 기업과 관광객 유치에 목을 매면서도 정작 수많은 방문객이 가장 먼저 보는 공간을 방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대도시들은 관문 경관을 도시 경쟁력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 서울은 한강 교량과 주요 진입도로의 야간 경관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며 수도의 상징성을 강화하고 있다. 부산은 광안대교와 북항 일대를 도시 브랜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발전시켰다. 반면 대구는 오랫동안 관문 경관 관리에 소극적이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북대구IC 비탈면의 홍보물을 철거하거나 새로운 구호(口號)로 교체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대구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공공 디자인, 야간 경관 조명, 디지털 미디어아트, 녹지 경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래산업도시 대구, 혁신도시 대구, 문화도시 대구의 정체성(正體性)을 관문 공간에 담아내야 한다.
2026-06-24 05:00:00
[사설] 모호한 선관위원 역할과 책임, 이제라도 분명히 해야
헌법 제114조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입법·사법·행정부로부터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원은 단순히 자문에 응하는 자리가 아니라 선거 행정을 최종 결정하고 책임지는 국가 최고위 공직자다. 위원장 포함 9명으로 구성되고 이 중 8명이 비상임 위원이다. '공명선거추진활동비'라는 명목으로 매달 위원장은 290만 원, 위원은 215만 원을 받는다. 출무(出務)수당, 안건검토수당 등을 합하면 매달 300만~500만 원 정도 된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23일 열렸다. 그러나 증인으로 채택된 중앙선관위원 9명 중 7명이 무더기 불출석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오후 늦게 출석하는 촌극을 빚었다. 출석요구서가 촉박하게 송달(送達)되긴 했지만, '명예·수당 등 혜택은 다 받고 책임은 회피하려 했느냐'는 지적을 면하긴 어렵다. 여야 의원들이 '국민에 대한 집단 항명' '국민 무시 처사'라며 한목소리로 질타한 것도 과하다고 할 수 없다. 비상임이지만 6년 임기의 헌법기관 위원이 된다는 건 민주주의 근간(根幹)인 선거를 엄정하게 관리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선거 관리에 구멍이 뚫려 국민의 참정권이 훼손됐다면 국회에 나와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논의하는 게 도리다. 잘못된 게 없다면 출석해 떳떳하게 밝히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다. '평소 출근하지 않는 비상임'이라며 뒤로 물러나선 안 된다. 이제라도 선관위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행법은 권한을 규정하고 있지만 위원의 의사결정 책임, 관리·감독 의무 위반 시 법적 제재는 모호(模糊)하다. '비상임'이 책임 회피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위원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법제화해야 한다. 비상임 위원 제도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 9명 중 8명이 비상임인 구조에서는 사무처를 제대로 지휘·감독하기 힘들고, 실질적인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최고 명예와 수당만 취하고 정작 책임질 땐 '비상임' 뒤에 숨는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2026-06-24 05:00:00
[사설] 또 증인 없는 총리 후보 청문회라니, 이러고도 '국민주권정부'인가
[사설] 또 증인 없는 총리 후보 청문회라니, 이러고도 '국민주권정부'인가 25∼26일로 예정된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증인과 참고인 없이 치러질 전망(展望)이다. 국민의힘이 11명을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신상 털기 증인 신청'이라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는 다주택자였으나 총리 지명을 전후해 주택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250억원대에 달하는 본인과 모친의 재산 형성 과정, 해외 주식 보유 논란, 헐값 임대 의혹 등 궁금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총리는 행정 각부를 통할(統轄)하고,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가지며,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을 맡는 등 막중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공직과 사회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주로 총리직을 맡았다. 한 후보자는 민간기업인 네이버에 근무하다가 이재명 정부 들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拔擢)됐다. 약 1년간 장관직을 수행했지만 공직 역량과 국가관·도덕성·위기관리 능력 등이 검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후보에 대한 야당의 검증을 막고 있다. 청문회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총리 인사청문회가 2000년에 도입된 이후 증인·참고인 없이 열린 것은 지난해 김민석 총리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배추밭 투자' 등 김 총리의 재산 증식과 관련해 의혹이 많았음에도 후보의 변명(辨明)만 듣고 끝났다. 그리고 또 증인과 참고인 없는 청문회가 진행된다. 이번에도 김 총리 청문회처럼 시간만 때우고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러고도 국민주권정부라고 자칭(自稱)한다. 6·3 지방선거 이후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자 청와대와 민주당은 "엄중히 받아들이고 국민이 무엇을 걱정하고 바라는지 더욱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성숙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드러낸 태도를 보면 "정권을 잡고 있고,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는 오만(傲慢)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불만은 점점 분노로 바뀔 것이다.
2026-06-24 05:00:00
[관풍루]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선도적으로 이행하기 위해"라고 보유 주택 2채 처분 이유를 설명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선도적으로 이행하기 위해"라고 보유 주택 2채 처분 이유를 설명. 그럴까? 대통령이 처분하라고 했거나 인사청문회에서 박살나는 게 두려워 그랬지 않을까?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국정수행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여론조사 결과 나오자 여권 내에서 책임 소재 놓고 공방. 이재명이 정청래를 누를지 정청래가 이재명을 넘을지 흥미진진. ○…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 멕시코전에서 손흥민 조기 교체 논란에 대해 "동점을 만들고 싶은 생각에서"라고 설명. 무슨 소리야? 동점 못 만들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해야지.
2026-06-24 05:00:00
[날씨] 6월 24일(수) "흐리고 곳에 따라 소나기"
2026-06-23 19:02:14
[기고-성태문] 시민이 체감하는 경제회복, 소상공인부터
민선 9기 대구시장이 곧 취임할 예정이다. 새로 선출된 대구시장은 우리나라 경제 수장 출신의 경제 전문가라는 점에서 경제 활력 회복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 굵직굵직한 경제 현안 이면에 취임 직후 가장 먼저 들여다보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대구 경제의 모세혈관이자 민생의 뿌리인 '소상공인'의 위기다. 현재 대구의 경제지표 곳곳에는 경고등이 켜져 있다. 그중에서도 고물가와 고금리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은 이들은 다름 아닌 지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다. 다행히 새 시장이 취임 직후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하고 민생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다. 그러나 소상공인 대책이 과거와 같은 단기성 자금 지원이나 현상 유지형 처방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이고 체질적인 개선을 유도하는 '소상공인 경제 대개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금융 지원의 패러다임을 '단기 연명'에서 '체질 개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소상공인들이 꼽은 가장 큰 정책과제는 단연 금융지원 확대(22.1%)였다. 현장의 자금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지만, 지금까지의 관행처럼 무조건적인 대출 확대나 만기 연장 중심의 융자 지원보다는 '소상공인 맞춤형 신용평가 모델 구축' '선제적 부채관리 및 컨설팅 연계' '한계 소상공인을 위한 출구전략 마련' 등 향후 금융지원은 단순 자금 공급을 넘어, 소상공인의 부채 연착륙을 돕고 자생력을 키우는 정밀한 금융 스크리닝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전환을 넘어 '청년 창업 생태계 환경 지원'을 통한 젊은 지역 경제 성장동력 확보가 시급하다. 유통과 소비환경이 디지털 중심으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소상공인 지원 체계만으로는 청년세대의 창업 수요와 혁신을 담아내기 어렵다.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청년 특화 디지털 혁신 창업공간 및 인프라 확충' '실전형 창업교육 및 밀착형 멘토링 강화' 등 촘촘한 '청년 창업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도록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신용보증재단 등 유관기관과 연계한 종합 지원 컨트롤타워가 비상경제상황실 내에 작동해야 한다. 셋째, 골목상권별 특성을 살린 로컬 브랜드 육성이다. 단순히 생계형 창업을 연명시키는 구제책을 넘어, 대구관광기업지원센터 구축, 글로벌 도시 대구 브랜드 재구축 등 대구만의 문화와 스토리를 입힌 골목 상권을 브랜드화하여 대구 시민은 물론 외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재편해야 한다. 넷째, 첨단 산업 낙수효과와 소상공인 생태계의 '상생 고리' 형성이다. 대구가 추진하는 로봇, 신공항, 메디컬 등 미래 산업 유치는 장기적으로 대구의 먹거리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스타트-업 기업의 참여 기회 제공, 지역 소상공인 자재 우선 구매, 상생 협력 기금 조성 등 골목 경제로 온기가 흘러 들어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촘촘하게 재설계해야 한다. 민선 9기 시정이 추진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는 매주 단순한 현황 보고에 그치지 않고, 현장과 소통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실질적인 협의체가 되어야 한다. 대구 경제의 기초 체력은 결국 수많은 소상공인들의 활력에서 나온다. 새 시장이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맞잡고 민생 경제의 골든타임을 지켜내기를 대구 시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26-06-23 15:29:21
"요즘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선거 결과가 정치권의 예상과 어긋날 때마다 기성 정치권이 내세우는 단골 핑계다. 특히 2030 세대가 자신들의 진영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표심을 보일 때, 이른바 '민주화 세대'는 청년들을 '무지하거나 극우화된 세대'로 낙인찍곤 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정치권과 언론을 덮은 '2030 극우화론'이 대표적이다. 기성 평론가들은 보수 성향 후보에게 표를 던진 청년들을 민주주의의 가치를 모른다며 비판했다. 불평등한 판을 수용하고 기득권의 질서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2030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민주화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기를 기대하고, 그 궤도를 이탈하는 즉시 세대 전체를 결함 있는 집단으로 몰아세운다. 이는 현상을 왜곡하는 단편적인 진단이다. 한 예로, 6.3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와 대구시장 선거에서 20대와 30대는 각각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엇갈리는 표심을 보여주었고,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그런 현상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의 변동성을 '극우화'라는 단 하나의 낙인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현상의 본질을 가리는 기만이다. 청년 세대의 표심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사회적 환경을 파악해야 한다. 2030은 학창 시절부터 기성세대가 설계한 획일적 가치관을 주입받았고, 사회에 진출해서는 특정 방향의 페미니즘이나 진보적 거대 담론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수용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기성세대의 도덕적 가이드라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공론장에서 쉽게 배제되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도덕적 훈계를 주도해 온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세력이 이제는 이 사회의 공고한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던 이들이 조국 사태나 주요 정치인들의 성 비위 사건에서 보여준 태도는 권위주의적이고 위선적이었다. 말로는 도덕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특권을 누리는 이중성에 청년들은 깊은 환멸을 느꼈다. 2030의 이탈은 단순한 우경화가 아니라, 정답을 강요하며 기득권화된 진보 진영의 오만에 대한 논리적인 반격이다. 이제 분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왜 2030이 극우화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그들이 기존의 낡은 정치 문법을 거부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청년들의 '기성질서' 이탈은 방관이 아니다. 자신들을 권력 유지의 동원 수단이나 '장기말'로 소비해 온 기성 정치 체제를 향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주체적 이탈이다. 뉴미디어와 대안 플랫폼의 확산은 기성 언론의 스피커에 의존하지 않는 진정한 정치적 독립을 견인하고 있다. 최근 정국에서 2030이 보여준 즉각적인 행동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광장으로 나선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훼손'과 '국가 시스템의 불공정'을 직관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법리적 해석과 절차를 두고 소모적인 공방을 벌일 때, 2030은 정파적 이익이 아닌 '상식의 파괴'라는 본질에 주목했다. 2030은 하나의 획일화된 집단이 아니다. 왜곡된 정치적 지형 속에서 각자의 생존과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주체적인 저항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다. 2030이 극우화됐다고 주장하기 전에, 자신들이 수구화된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김채훈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2026-06-23 11:40:56
시간이 흐르면 사과할 일이 줄어들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미안한 사람은 늘어난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나고 나서야 보이기 때문이다. 옳다고 믿었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사진가로 살아오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먼 나라의 고려인과 체르노빌 사람들,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가는 이웃의 삶을 담았다. 좋은 사진을 꿈꾸며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사진보다 사람이 먼저였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을 빼앗겨 상대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 적도 있다. 스치는 표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너무 가까이 다가서기도 했다. 사진은 남았지만 관계는 소원해졌다.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시를 준비하고 프로젝트를 끝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늘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 곁에 충분히 머물지 못했다. 연락을 기다렸을 사람에게 답하지 못했고, 함께 나눌 시간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언젠가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후회는 대개 지나간 뒤에 찾아온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모든 결과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선의가 있었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다. 꿈을 말했고 계획을 세웠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다음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말의 무게를 알게 됐다. "미안합니다.", "그때 내가 부족했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라는 짧은 말들.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앞에서는 변명도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했다. 생각해 보면 고백과 고해는 닮은 듯 다른 말이다. 고백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나 고해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놓친 것과 미처 살피지 못한 마음 앞에 오래 머무는 일이다. 고백이 말이라면 고해는 침묵에 가깝다. 어느 순간부터 이루지 못한 일보다 놓쳐버린 사람들이 먼저 떠올랐고, 잘한 일보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이 더 오래 남았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은 달라질 수 있다. 후회가 자책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더 깊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결국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이루어낸 것보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2026-06-23 11:27:07
[사설] 보유세·양도세 동시 강화라니, 지방 주택시장 고사 재촉하나
정부가 보유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강화하는 부동산 과세(課稅) 조치를 예고하고 나서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보다 유독 높은 부동산 거래세가 이미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 상황에서, 보유세까지 동시에 올리는 정책은 매도 유인을 완전히 차단해 시장을 얼어붙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거래세와 보유세는 한쪽을 높이면 다른 한쪽은 낮춰 상호 보완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두 세금을 동시에 인상하는 것은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결국 전·월세 가격 상승 등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막무가내다.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SNS를 통해 반도체 호황 등으로 발생한 시중 유동성의 부동산 유입을 막기 위해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앞서 이재명 대통령 역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보유세가 낮다며 증세 시그널을 냈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오는 7월 말 발표할 세제 개편안에 다주택자 및 고가 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안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유력하다.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보유세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 단골로 내세우는 지표가 실효세율이다. '토지+자유 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33%)의 절반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보유세 실효세율은 부동산 가격 대비 실제로 내는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비율이다. 하지만 이 통계는 학계는 물론 국회예산처마저도 올 3월 국가별로 상이한 부동산 자산가치 산정 방식을 무리하게 대입해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면 국제적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율을 보면 한국은 0.87~1.0% 수준으로 OECD 평균(0.95%)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취득세 등 거래세(GDP 대비 1.5%·세계 1위)와 양도소득세(0.66%·세계 3위)를 모두 더한 전체 부동산세 부담은 GDP 대비 3.03%로 세계 최상위권으로 결코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지방에 있다. 다주택자를 무조건 투기 세력으로 규정하는 일률적인 규제가 가뜩이나 심각한 지방 주택시장의 침체를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주택학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다주택자의 상당수는 서울 강남이 아닌 지방의 아파트나 비아파트(연립·다세대 등)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2, 3주택자의 절반은 지방 주택만 소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주택자라는 이유로 획일적인 양도세 중과와 대출 규제를 적용하다 보니, 매수층이 급감한 지방 주택시장은 고사(枯死) 직전에 몰리고 수도권의 '똘똘한 한 채' 쏠림 현상만 심화했다.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발상은 역대 정부에서 예외 없이 실패했다. 시장 안정은 수요·공급 원리 회복이 먼저다. 정부는 보유세 인상 논의에 앞서 과도한 취득세와 양도세 등 전체 부동산 세제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선행해야 하며, 지역과 주택 유형별 특성을 세밀하게 반영한 데이터 기반의 차등(差等)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과거의 정책적 실수를 되풀이하기에는 서민 경제가 마주한 전·월세 시장의 불안과 지방 경기 침체의 골이 너무나 깊다.
2026-06-23 05:00:00
[사설] '전건 송치'는 '공룡 경찰' 견제·국민 보호 위한 최후의 보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검찰 개혁의 마침표는 보완(補完)수사권 완전 폐지"라고 못 박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예외적인 경우까지 모두 봉쇄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최소한의 보완수사권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정 대표는 당내 강경파와 강성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대통령과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권(黨權) 경쟁에 나선 정 대표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보완수사권 폐지를 핵심 의제로 앞세운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민주당발(發) 검찰 개혁의 핵심 과제인 수사·기소 분리가 사실상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검찰의 권한(權限)을 축소하고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재설계하겠다는 게 민주당이 내건 검찰 개혁의 목표다. 그러나 검찰 개혁은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변질됐다. 개혁이 수사기관의 견제·균형을 통한 국민 권리 보호가 아니라, 검찰에 대한 정치적 보복에 방점(傍點)을 찍은 듯하다. 특정 기관의 권한을 뺏어 다른 기관에 넘겨주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다. 개혁은 권한의 이동만이 아니라 새로운 권한에 대한 통제 장치까지 함께 설계될 때 완성된다. 검찰 권한을 줄이고 경찰 권한을 과도하게 늘리면, 이는 또 다른 권력 집중이다. 국민들은 과거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국가 권력기관의 개혁 과정 때마다 이와 비슷한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숱하게 겪었다. 경찰은 이미 수사권 조정을 통해 독자적인 수사 개시권과 상당한 범위의 수사 종결권을 확보했다. 여기에 국가정보원의 대공(對共)수사권까지 넘겨받았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검사의 보완수사권마저 사라진다면, 경찰은 최대 수사기관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이렇게 비대해진 경찰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수사권 독점(獨占)은 없는 사건을 만들거나, 있는 사건을 묻어 버릴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이 불송치(不送致) 결정을 내릴 경우 사건은 사실상 종결된다. 지난해 경찰의 불송치 사건 60만 건 가운데 이의신청이 제기된 사건은 5만여 건, 검사가 재수사를 요청한 사건은 1만여 건이다. 대부분의 사건은 추가 검증 없이 그대로 종결됐다. 경찰이 기소권만큼 강력한 '불기소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은 수사기관의 판단 오류나 부실 수사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없어지면, 구제받을 통로는 더 좁아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전건(全件) 송치' 제도다. 전건 송치는 경찰이 처리한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한 차례 더 법률적 검토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검찰 권한 확대라고 볼 일은 아니다. 검사가 직접 수사하자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판단을 독립적으로 재검토하는 절차를 두자는 것이다. 사건 누락(漏落)과 오판(誤判) 가능성을 줄이자는 취지다.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이중 안전장치는 필수 요소다. '검사 무력화(無力化)'가 검찰 개혁의 목적이 되면, 이는 국민이 원하는 개혁이 아니다. 검찰 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권력 남용(濫用)을 방지하면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검사의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강행하겠다면, 이에 상응하는 견제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대안은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전건 송치의 부활이다.
2026-06-23 05:00:00
[관풍루] 조갑제, 국민의힘 사전투표 폐지 법안에 "편리한 사전투표를 왜 폐지하나
○…24년째 월드컵 본선 진출 못 한 중국, 자국 심판이 월드컵 주심으로 뛰자 "중국 축구가 FIFA 엘리트 시스템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증거"라고 대서특필. 중국의 '정신 승리'는 월드컵 우승하고도 남을 것. ○…조갑제, 국민의힘 사전투표 폐지 법안에 "편리한 사전투표를 왜 폐지하나. 이는 참정권 제한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 편리보다 선거 투명성 우선을 참정권 제한으로 이해하는 수준의 논객? ○…정청래 민주당 대표 6·3 선거 단체장 당선인 워크숍에서 "에베레스트산이 높은 이유는 히말라야 산맥에 얹혀 있기 때문"이라고. 당선인들에게 한 말인지, 대통령에게 한 말인지.
2026-06-23 05:00:00
2026-06-22 18:44:58
[윤명철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와 문화] 동아시아 국제대전 고수전쟁 -70년 전쟁을 보는 새로운 시각
중국을 통일한 강력한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을지문덕이라는 영웅의 활약으로 살수대첩에서 승리했고 침략을 막아냈다. 이후 당 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양만춘이 지휘하는 안시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고 당군은 철수했다. 한편 신라는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심으로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를 멸망시켰고, 남북에서 협공을 받은 고구려는 끝내 멸망했다. 그 결과 삼국은 통일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배운 역사이며, 오랫동안 역사학계가 설명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 전쟁의 성격과 구조, 그리고 동아시아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왜 수나라는 막대한 국력을 소모하면서까지 고구려를 거듭 공격했는가? 왜 당나라는 안시성 패배 이후에도 고구려를 포기하지 않았는가? 왜 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았으며, 그 결과 동아시아의 질서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기존 해석의 한계와 새로운 연구 틀기존의 설명은 이러한 질문들에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실 자체보다 사실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동아시아와 우리 역사의 운영 메카니즘을 오해했으며, 중화사관의 편향성이 강했다. 때문에 고구려는 일방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로 규정됐고, 국력과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수행했던 주체적인 역할 등은 주목받지 못했다. 둘째, 영웅 중심의 역사관 때문에 을지문덕과 양만춘, 김춘추와 김유신 등의 역할을 많이 부각시켰다. 때문에 일반 주체들의 역할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셋째, 국제대전을 고구려와 수나라, 신라와 백제라는 양국 관계의 차원으로 축소했다. 따라서 동맹, 균열, 재결합 등 유기적이고 유동적인 동아시아의 상황을 충분하게 검토하지 못했다. 넷째, 대전쟁을 외교와 경제, 산업과 물류를 포함한 총력전의 관점보다는 정치적·군사적 충돌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국제 전쟁의 원인과 전개, 결과 등의 복합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몇 가지 방식으로 이 전쟁들을 분석하고 규정했다. 우선 전쟁이 발생한 목적과 배경과 원인 등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파악했다. 영토 분쟁이나 지배자의 성격과 가치관, 집단의 정서 등 내부 사정을 넘어 국제질서의 재편, 무역권의 확보, 외교망의 구축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이해관계로 파악한다. 전쟁하는 주체의 다양성과 역할 등을 동아시아 전체라는 '틀(frame)'에서 복합적으로 파악한다. 직접 당사국들은 물론이고, 백제, 신라, 돌궐, 거란, 말갈, 왜 등의 주변세력, 이어 서역(신장 지역), 토번(티베트) 및 중국 외곽의 민족 세력 등의 역할과 위상을 파악하고, 나아가 유라시아 세계의 움직임도 함께 고려한다. 공간에 대한 시각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고구려와 수·당 사이의 대결, 이후에 전개된 신라와 백제·왜 연합군의 대결 등은 육상전 만이 아니었다. 외교와 군사, 물류와 산업의 측면에서 바다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실제로 『수서』와 『당서』, 『자치통감』 등에 나타난 기록들은 대규모 함대의 건조와 운용, 해상수송과 해양작전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전쟁은 '해륙양면전'으로 분석한다. 또 하나 시간의 문제가 있다. 1단계 고수전쟁, 2단계 고당전쟁, 그리고 삼국통일전쟁을 각각 독립된 개별전쟁으로 보지 않는다. 장기적인 틀에서 전쟁의 목적과 배경, 참가국들, 과정과 전쟁의 결과 등을 고려하면 고수전쟁은 발발, 고당전쟁은 전개 과정, 삼국통일전쟁은 동아시아 신질서가 완성되는 대단원이었다. 598년부터 668년까지 70여 년에 걸쳐 전개된 유기적인 역사적 과정이었다. 이러한 해석틀에서 나는 30여 년전부터 '동아시아 국제대전'이라고 규정하였다.(윤명철, 『고구려 해양사연구』) 이제 첫 단계인 동아시아 국제대전의 서막이 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을 살펴본다. ◆東아시아의 중핵국가인 고구려고구려는 5세기 이래 동아시아 세계의 중심핵으로서 중국의 남북조·북방초원의 유연(후에는 돌궐)과 4각축을 이루고, 주변에 백제·신라·거란 그리고 왜 및 말갈 등을 놓고 다원적인 세력 균형을 유지해 왔다. 경제적으로는 랴오둥(遼東) 지방을 가운데 두고 만주의 동부 지역과 대·소 흥안령산맥의 북부 지역, 화북평원으로 이어지는 요서(遼西) 지역 등을 이어 주면서 북방무역망을 형성했다. 또한 일본 열도·제주도·양쯔강 유역의 남조정권들과 해양무역망을 운영했다. 이러한 해륙적 시스템 속에서 중계무역을 활용했다. 잘 알려진 안시성, 요동성 지역은 동아시아에서 최대의 철생산지였다. 고구려는 우수한 철들을 흥안령 지역의 선비족인 남실위에 수출했다. 그 대신 말과 담비가죽 같은 북방의 특산품들을 수입했다. 당시 중국 지역은 남북국가로 분단돼 무역망이 끊어진 상태였으므로 북방에서 수입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 수도권인 상해 주변지역으로 수출하였다. 고구려는 중계무역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고, 이것을 군시력 증대에 활용했을 것이다.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치질서와 두 강대국의 충돌그런데 6세기 말이 되면서 분단됐던 중국 지역이 400년 만에 선비족의 수나라로 통일되었다. 수나라는 동아시아 세계의 종주권을 회복하고, 불필요해진 군사력과 내부에서 들끓고 있는 정치적인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시켜야 했다. 한편, 북방 초원에서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뛰어난 돌궐 제국이 수나라를 수세에 몰아넣고, 고구려의 영향권에 속했던 요서의 거란과 동북만주의 말갈이 있었다. 한편 고구려의 압박을 200년 동안 받아온 백제와 신라는 수나라와 신속하게 교섭을 시도했고, 공동 전선의 구축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수나라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왜국은 백제와 우호적인 관계였지만, 고구려는 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승려들을 보내 내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사가 건축될 때 영양왕은 수나라와 전쟁이 임박했음에도 황금 300냥을 보냈다. 이 상황에서 고구려가 북방초원의 유목민인 돌궐과 동맹을 맺고, 내부에 있는 말갈, 거란 등을 동원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면 수나라를 위협할 수 있다. 실제로 수군으로 발해를 건너 요서지방과 화북의 해안과 산동의 해안에 상륙한 다음, 즉 수륙양면작전으로 하북 지역을 일시에 공격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국제 질서 속에서 동서 두 강대국의 충돌은 불가피했으며, 주변국가들은 자국의 운명과 연결될 수 있는 상황 파악에 주력했다. 결국 598년 2월, 고구려와 말갈(혹은 거란)의 혼성군이 요하를 넘어 수나라의 임유관을 선제 공격했다. 수군은 요동반도의 비사성을 출항하여 발해 안쪽의 요서해안을 공격했다. 그러자 준비했던 수나라의 문제는 곧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그런데 산동 해안을 출항한 수군 6000명은 대풍을 만나 표몰했다. 이 궤멸은 자연환경보다는 고구려가 요동반도의 해안선과 섬들에 구축해놓은 해양방어체제와 수군의 공격때문이다.(윤명철, 『고구려 해양방어체제(해성)연구』)고구려가 승리한 것이다. 사진 자료. 4 5 6 수나라의 2대 황제가 된 양제는 북경시 외곽에서 절강성의 항주에 이르는 대운하 공사에 들어갔다. 정치적으로 통일하고, 물류 체계를 활성화시켜 유기적인 경제권을 만드는 정책이었다. 더불어 고구려와 대결전에 필요한 남방의 군량미와 인력들을 운송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륙양면작전을 대비해 적함, 루선(다락배) 등 수만 척의 배들을 건조했는데, 주력 전선인 '오아(五牙)'는 다락이 5층이고, 군사 800인을 태울 수 있는 거대 전함이었다. ◆세계 전사상 유례없는 승리, 살수대첩612년, 1,133,800명이라는 수나라의 대군대가 베이징(北京) 근처의 대운하 종점인 탁군을 출발했다. 세계의 전사상에서 가장 큰 단일 전쟁으로 총 24군 편제이며, 그 중 11개 군이 수로군 편제였다. 길이가 수 백 리에 뻗칠 정도의 많은 함대들이 동원된 수군의 작전 범위는 압록강 하구와 대동강 하구, 경기만까지였다. 육군인 친정군은 요하 도하작전을 성공시킨 후에 부수도격인 요동성(오열홀. 요양시)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대군과 당거(바퀴 달린 이동용 수레)·충거(성벽을 공격하는 기구)· 높은 사닥다리 등 신무기들을 동원했고, 심지어는 땅굴(地道)까지 팠다. 하지만 수양제는 끝내 요동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채 퇴각했다. 한편 수양제의 작전 지시로 30만 명의 별동대는 요하전선을 북으로 우회하여 고구려의 내부 깊숙이 전진했다. 별동대는 을지문덕군에게 유인당해 승리(?)를 거듭하면서 평양성 근처까지 갔다. 한편 래호아가 지휘한 수군 함대는 산둥 해안을 출발하여 서해를 횡단한 후에 대동강 상륙 작전을 성공시키고 평양성을 향해 진격했다. 하지만 평양성 60리 밖에서 영류왕이 된 고건무 장군의 공격을 받고 궤멸당했다. 이렇게 해서 수륙협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별동대는 황급하게 퇴각했고, 결국 살수(압록강 또는 청천강)에서 을지문던 군에게 전멸 당했다. 기록에 따르면 요하를 건너서 돌아간 수나라군은 2,7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이후 수양제는 613년과 614년에도 요하전선을 공격했지만 전과는 없었고, 결국 건국한 지 30년 만인 618년에 멸망했다. 중국의 학자들은 수나라가 멸망한 원인을 내부 반란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무리한 전쟁 준비에 따른 경제적 파탄과 전쟁의 패배가 큰 원인이다. 고구려의 대승리는 동아시아 세계는 물론이고, 유라시아 세계 곳곳에 알려졌을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고구려가 수나라가 멸망한 직후인 618년 8월에 왜국에 사신과 함께 수나라 포로 2명과 악기·무기·낙타 등의 노획물을 보낸 사실이 기록됐다. 왜에게 승전 소식을 전하고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사진 자료, 1 ◆우리 민족의 생존권을 방어한 고수 전쟁 이 전쟁은 동아시아 세계의 모든 종족들과 크고 작은 국가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했고, 심지어는 돌궐, 실크로드 지역의 소국가 등 유라시아 세계와도 연동된 국제대전이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종주권과 무역권을 둘러싸고 운명을 걸고 대결한 양대 질서의 전면적인 대결이었고,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장이었다. 가정을 해본다. "만약 고구려가 졌다면 우리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필시 고당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 후의 결과와 동아시아 세계의 메카니즘을 고려하면 백제와 신라는 승전국인 수나라 질서에 편입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민족의 생존권은 상실되었을 수도 있다. 고수전쟁은 동아시아는 질서가 정치 재편되는 상황 속에서 국제대전의 성격을 띄울 수밖에 없었으며, 육지뿐 만 아니라 해양질서가 정치나 외교에서 얼마나 중요했으며, 본격적인 해양전의 시대에 돌입했음을 깨닫게 했다. 이러한 역학관계와 양상들은 멸망해버린 수나라를 이어받은 당나라와 고구려가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대 교수
2026-06-22 14:59:49
[사설] 중동·러우 전쟁 수혜자 북한, 정부 대응책을 묻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는 북한이다. 미사일 등 무기 실전 경험도 쌓았고, 파병(派兵)과 탄약 지원의 대가로 경제적 이득도 챙겼다.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중국으로부터는 최근 시진핑의 방북 때 사실상 핵 용인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들 전쟁을 통해 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걸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은 북한의 실전 훈련장이었다. 러시아에 공급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수백 발은 실전에서 발사되면서 착탄(着彈) 오차·요격 회피 궤도·전자기 간섭 영향 등 어떤 모의실험으로도 얻기 힘든 데이터를 얻었고, 정확성을 높였다.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은 드론 전술과 현대식 지휘통신 체계를 습득했다. 중동 전쟁을 통해선 핵을 가져야 협상 테이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핵으로 버티면 협상 당사자로 인정받고 제재 완화, 경제 보상까지 받을 수 있다는 이란의 선례를 목도(目睹)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G7에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 '북한도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기 전 단계에서 뭔가 가능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못 해서 아쉽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북한은 늦었다'는 자백(自白)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핵 능력을 가진 이란의 선례를 봤다. 트럼프의 한계도 봤다. 러우·중동 전쟁은 북한에 많은 걸 줬다. 핵 보유의 당위성, 실전 경험, 미사일 정확성, 중러와의 관계 강화까지. 그러면서 한반도 안보는 더 위험해졌다. 지금은 양국 정상의 '아쉽다'는 한탄이 아닌 긴밀하고 실질적인 대응책이 필요할 때다.
2026-06-22 05:00:00
[사설] 중동 전쟁 끝나도 물가는 고공 행진, 정부는 보고만 있을 건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소식이 들려오지만 일단 미국과 이란의 종전(終戰)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국제유가는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국내 원유 도입량의 7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06달러에서 73달러대로 떨어졌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최악을 벗어나고 있으나 체감 현실은 다르다. 주유소 기름값은 2천원 안팎에 머물고, 물가는 좀처럼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제유가 상승에는 즉각 반응하지만 하락 반영까지는 2~3주 이상 걸린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시차(時差)가 아니다. 국제유가 하락에도 해상과 항공 화물 운임은 여전히 비싸서 기업들의 물류비 부담은 줄지 않았다. 건설공사비지수도 상승했고, 아스콘과 아스팔트 제품 가격은 1년 새 30%가량 뛰었다. 유가가 안정돼도 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지금껏 물가 상승의 원인을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 외부 변수(變數)에서 찾았는데, 외부 충격이 사라진 뒤에도 물가가 높은 수준에 머문다면 원인 분석부터 달라야 한다. 과거 석유와 원자재 가격이 좌우했던 물가는 외식, 물류, 금융, 의료, 교육 등 서비스 비용에 움직인다. 금융·보험 서비스 비용도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일부 대기업 성과급 잔치가 부동산 시장마저 흔들고 있다. 물가는 유가보다 더디게 움직이고, 한 번 오른 가격은 내려오지 않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물가는 유령처럼 떠돈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 아니라 저물가가 당연했던 시대가 마침내 끝나가는 신호일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2026-06-2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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