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6 19:26:07
고교동창회는 한때 지역사회에서 가장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였고, 세대를 관통하는 연대의 상징이었다. 선후배 간 유대는 일종의 생활문화였다. 그러나 지금, 그 결속력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며, 동창회 참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개인화의 흐름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2025년 기준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수는 약 2천300여 개, 재학생 수는 약 110만 명에 이른다. 매년 수십만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지만, 이들이 조직적 동창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비율은 갈수록 낮아진다. 외국의 사례도 다르지 않으나 주목할 점이 있다. 일부 명문고 동창회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커뮤니티 재구성, 장학사업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한 실질적 연결 강화로 새로운 활로를 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참여율 저하가 아니다. '공통의 기억과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고교 시절은 소년의 틀을 벗고 청년으로 진입하는 결정적인 시기다. 대학보다 순수하고, 이해관계보다 감정이 앞서며, 연대가 자연스러운 시절이다. 같은 교정에서 같은 교가를 부르고, 같은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같은 교복을 입었던 경험은 그 자체로 강력한 공동체적 자산이다. 고교 대항 축구, 야구 등 체육대회에 재학생과 교사, 동문이 함께 뒤섞여 응원가와 교가를 목청껏 불렀던 때가 있었다. 그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 응원을 넘어, 세대를 잇는 공동체 의식의 현장이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크게 줄었다. 고교동창회는 과거의 유산에 불과한가, 아니면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는가. 필자는 후자라고 확신한다. 다만 그 전제는 '형식의 유지'가 아니라 '내용의 혁신'이다. 첫째, 실질적 가치 제공 중심의 동창회로 전환해야 한다. 장학사업·진로 멘토링·창업 및 취업 네트워크 등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후배에게는 장학금과 멘토링을, 선배에게는 우수 인재 확보와 사회적 영향력 행사의 기회를 제공하는 '상호 호혜적 모델'이다. 둘째, 디지털 기반의 상시 연결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폐쇄적 회원제 운영을 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동문 간 소통을 일상화해야 한다. 이미 업종별 소모임이나 스타트업 투자 네트워크 형태로 동문회의 성격이 변모하고 있기도 하다. 정보와 이야기가 흐르는 곳에 공동체는 다시 살아난다. 셋째, 상징과 감성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교가와 응원가,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단체 교가 부르기 영상 공모, 동문 인터뷰 기반의 온라인 콘텐츠 발행 같은 시도는 세대 간 공감대를 넓히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고교동창회의 위기는 우리 사회 결속력과 직결된 문제다. 고교라는 공통의 뿌리를 통해 형성된 연대는 직장·이념·세대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드문 사회적 자산이다. 이 자산이 약화된다면, 사회 전체의 연결망 중 소중한 하나를 잃는 것이다. 동창회의 부흥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고교 시절의 그 순수한 연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한 학교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결속력을 회복하는 불씨가 될 것이다.
2026-04-06 18:00:05
조선 후기 인구가 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산림을 파괴하여 논밭을 조성했다. 이로 인해 비가 조금만 많이 내리면 토사로 인해 하천·강이 범람하여 자연재해가 빈발했다. 게다가 모든 토지는 국왕 소유라는 왕토사상에 젖은 조선왕조는 산림에 대한 소유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다. 산에 주인이 없다 보니 아무 산이나 자유로이 드나들며 벌채를 자행했다. 전 백성이 베다 쓰는 데만 열중했고, 누구도 나무를 심거나 가꾸는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다 보니 19세기 중반부터 민둥산 천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정약용은 1804년 송정사의(松政私議, 소나무 정책에 대한 나의 견해)란 글에서 산림이 어쩌다 이 지경으로까지 되었는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하나는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이오, 둘은 저절로 자라는 나무까지도 꺾어 땔감으로 쓰는 것이오, 셋은 화전민이 산 불태우는 일 때문이다. 심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쓰는 사람은 무궁하니 이 어찌 나무가 궁하게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19세기 말 한반도를 방문했던 영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서울 주변의 산들을 목격한 뒤 "나무 한 그루 없이 붉은 흙과 바위가 가차 없이 드러나, 마치 거대한 해골들이 늘어선 것 같다"라고 기록했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살림, 102쪽). 국수적 국사학자들은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삼림법이나 삼림령은 입법 취지가 산림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총독부가 임적 조사 과정에서 수많은 민유림을 약탈하여 총독부 소유의 국유림으로 편입시켰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일제가 한반도 북부 지역 원시림을 남벌하여 일본으로 반출했다는 '양강(압록강·두만강) 유역 원시림 수탈론'까지 등장했다. 이런 주장은 얼마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것일까? 한반도에서 인공 조림의 시동을 건 것은 통감부가 설치된 1906년부터였다. 이때부터 통감부는 최우선 사업으로 산림 녹화를 추진했고, 1910년 병합 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인공 조림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10년 병합 직후 총독부는 산에 나무가 심어져 있는 밀도를 전국적으로 조사(임적조사)하여 조선 임야분포도를 작성했다. 총독부 행정력을 동원하여 조사 결과 한반도 산림은 성림지(베어서 쓸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숲이 있는 지역)는 32%에 불과했고, 치수 발생지(시급히 나무를 심어야 하는 지역)가 42%, 무입목지(민둥산) 26%로 조사되었다. 산림 현실이 이랬는데, 무슨 산림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나섰다는 말일까? ◆산림 녹화 원조는 데라우치 총독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는 나무 심기에 비상한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치산(治山)·치수(治水)·치심(治心)을 정책 슬로건으로 내걸고 거국적으로 인공 조림 사업을 추진했다. 총독부는 병합 다음 해인 1911년 4월 3일을 식수일(植樹日)로 정해 국민 조림 운동을 전개했다. 각급 학교와 관청을 통해 애림(愛林) 사상을 고취했고, 기념식수에 앞장선 사람은 데라우치 총독이었다. 해방 후 이날을 식목일로 정하려 했으나, 하필 이날이 일본 선무 천황의 제일(祭日)이라 하여 이틀 늦춰 4월 5일을 식목일로 삼았다. 반일 정서가 일상화된 분들에겐 송구한 말씀이오나 대한민국 식목일의 원조는 조선총독부였다는 뜻이다. 조선총독부는 산림행정 전담 부서를 조직했고, 양질의 목재 추출을 관리하는 영림창을 출범시켰다. 각종 임업 연구와 조림 사업을 위해 1913년 광릉(2,800ha)과 1914년 의령원(서삼릉, 73ha)에 임업 시험소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조선 각지에 심을 묘목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통감부 시절 제정한 삼림법은 국유림의 소유자 결정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무주공산의 산림에 주인을 정해 인공 조림을 책임지우려 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의 1910년 임적조사 결과 조선 삼림이 심각할 정도로 헐벗은 상태임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그 결과 새로운 삼림령을 제정했다. 총독부가 삼림령을 제정한 이유는 산림 소유권 확정은 뒤로 미루고 우선 산림 녹화에 총력전을 전개하기 위해서였다. 즉, 주인을 정하기 전에 우선 나무부터 심고 보자는 것이 새로 제정한 삼림령의 기본 입장이었다. 그 결과 산주(山主)는 물론이고, 누구라도 책임지고 산에 나무를 심는 자에게 해당 산림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하는 특전을 베풀었다. 1910년 총독부의 삼림령에 의해 조림 대부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 제도가 식민지 기간 내내 계속 사업으로 추진됐다. 이 제도는 조림 대상 산림에 성실하게 조림을 약속하면 그 사람과 임대계약을 체결한다. 계약기간이 종료된 후 조림 실적을 평가하여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면 나무 심은 사람(조림업자)에게 해당 산지를 무상 양여하는 일종의 특혜 정책이었다. 이것이 산림 녹화 주의를 제일의 정책 슬로건으로 내건 총독부 산림정책을 성공시킨 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1911년 총독부가 제정한 삼림령은 해방 후 한국 산림의 기본법으로 법적 권능을 행사하게 된다. 총독부 삼림령은 1961년 5·16 직후 신규 산림법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조림 대부 제도의 골격은 그대로 산림법에 전승되어 한국 산림정책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산림 관련 법령 마련에 앞장선 사람은 조선총독부 초대 산림과장과 영림창장을 지낸 사이토 오토사쿠(齊藤音作)다. 그는 아카시아와 포플러나무 보급에 앞장섰고, 퇴임 후에도 평생을 헐벗은 조선 산하의 녹화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학계에서는 그를 임업 근대화와 녹화에 기여한 사람이자 산림 수탈의 지휘자로 비난한다. ◆조선을 잣나무 동산으로 만들려 했던 일본인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람은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다. 그는 1914년 총독부 산림과 기사로 부임한 이래, 1931년까지 17년간 조선의 민둥산 녹화에 청춘을 바쳤다. 잣나무 양묘 기술을 연구하여 인공 조림의 37%를 잣나무 묘목으로 대체함으로써 조선의 산을 잣나무 동산으로 만들려 했던 사람이 이시카와 다쿠미다. 그는 1931년 4월 식수일 기념행사 준비로 과로가 쌓여 40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나의 유해는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총독부는 산림 녹화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종자와 묘목을 조림업자들에게 무상 제공했다. 여기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했을까? 당시 헐벗은 민둥산은 남한 지역에 훨씬 많았다. 때문에 압록강·두만강 유역 등 북쪽 지역 국유림 벌목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남한 쪽의 민둥산 녹화·사방사업에 투입했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제가 북부 원시림을 남벌하여 불법으로 일본으로 반출했다는 '양강 유역(압록강·두만강)의 원시림 수탈론'이 등장한 것이다. 1907년 통감부 시절부터 1942년까지 35년간 일본에 의한 인공 조림 실적은 236만 정보의 산야에 82억1천500만 본이 식재되었다. 1930년대 이후 일본은 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전시하의 극히 어려운 시국에도 불구하고 총독부는 산림 녹화사업을 정열적으로 추진했다. 1930년부터 1942년까지의 식수 실적이 식민지 전 기간 식수의 61.4%를 차지할 정도로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인공 조림이 전개되었다. ◆산림 파괴 주인공은 한국인 통감부와 총독부의 40년에 걸친 산림 녹화 정책 덕분에 해방 무렵 한국 산야는 호랑이가 서식할 정도의 울창한 산림으로 변모했다. 울창했던 산림이 거덜 난 것은 해방 이후였다. 총독부 해체로 산림 감시 기능, 행정 체계가 붕괴하면서 도벌·남벌이 마구 자행된 탓이다. 게다가 1공화국 시절 먹고 살기 어렵다 보니 직업 군인들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군대는 '후생사업'이란 명목으로 울창한 산림 마구 베어 군부대 운영비, 장교들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빴다. 1952년 유엔한국재건단(운크라) 소속 임업 전문가로 내한한 영국인 하워드의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으로부터 해방은 많은 사람들에게 벌목 허가증을 발부해 준 결과를 낳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어 톱과 도끼를 들고 산에 올라가 거리낌 없이 나무를 족쳐댔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한국의 산림을 망치는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라는 기록이 발견된다. 1950년대 비참한 상태로 돌아간 한국 산림이 제 모습을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박정희 정부는 1960년대 들어 강원도 탄전의 석탄으로 연탄을 만들어 전국에 보급했다. 그 결과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개막되었다. 대체 연료 보급 시스템이 구축된 후인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10년 내에 산림 녹화를 완성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이때부터 거국적인 나무 심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은 6년 만에 108만ha에 29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조기 달성했다. 1979년 시작된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도 1년 앞당겨 1987년에 달성되었다. 1973년부터 1987년까지 14년간 녹화사업 실적은 총 48억 2천만 본의 묘목을 전국 196만 정보에 심었다. 이 수치를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시절(35년간) 236만 정보에 82억1천500만 본 식재 실적과 비교해 본다. 식재 면적은 117.2%로 일정기보다 높지만, 묘목량은 86.4%로 일정기보다 적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는 "한국 하면 일제 시절부터 벌거벗은 산을 연상했다. 한번 파괴된 산림은 복구하기 곤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20년 미만의 집권 기간 중에 완전히 녹화에 성공한 것은 고도성장, 수출증대, 중화학공업 등 경제 업적보다 더 어렵고 값진 위엄"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산림 녹화에 관한 한, 박정희 이전에 총독부와 데라우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2026-04-06 14:24:31
[사설] 재판 중 사건 국조가 잘못인가, 증인 선서 거부가 잘못인가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3일 '조작 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했던 박상용 검사에게 (증인 선서〈宣誓〉를 거부했다는 등 이유로) 퇴장(退場)을 명했다. 이후 서 위원장은 5일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증인 선서를 거부할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며 박 검사에 대한 법적 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정조사에서 국회는 증인에게 선서를 요구할 수 있고, 증인은 선서 의무가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선서 또는 증언을 거부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선서를 거부한 증인이 처벌받지 않으려면 이유를 소명(疏明)해야 한다. 박 검사가 "선서 거부 이유를 소명하겠다"고 하자 서 위원장은 "선서를 거부했는데 마이크를 줄 이유가 없다"며 퇴장시켰다. 박 검사에게 소명 기회를 제대로 주지도 않아 놓고, 오히려 법적 조치 운운한 것이다. 민주당은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통령의 명령이더라도 위법하면 따르지 않았어야 한다며, 계엄 명령을 수행한 많은 군인과 경찰을 잡도리했다. 그에 따라 수많은 경찰과 군인들이 파면, 해임, 감봉 등 징계를 받거나 감옥에 갇혔다. 지금 국회의 '조작 기소 국조'는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사건 등 총 7개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 국조에 현직 고검장, 지검장 등 많은 검사들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의 2는 '국정조사는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차후 이번 국조가 '특정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국조에서 특정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검사들 역시 위법한 국회 행위에 복종했다는 추궁(追窮)을 받을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때려잡고, 이재명 대통령을 구하겠다고, 민주당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탓이다.
2026-04-06 05:00:00
[사설] 일·프랑스 선박 호르무즈 통과, 우리도 이란과 접촉 나서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 '마감 시한'을 두고 "지옥문이 열릴 때까지 48시간 남았다"고 다시 한번 경고한 가운데, 이란이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봉쇄(封鎖) 가능성을 시사했다.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전장(戰場)이 홍해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곳은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10%가 통과하는 곳으로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막히면 국제유가 급등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홍해 봉쇄 시나리오의 핵심은 친(親)이란 무장단체인 예멘의 후티 반군의 작전 수행 여부다. 후티 반군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함께 이른바 '저항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일 프랑스 선주 소유 컨테이너선 한 척이 서유럽과 연관된 선박으로는 처음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고, 일본 해운사 선박 2척도 최근 해협을 통과한 바 있다. 또 이란은 이라크에 대해서도 호르무즈 해협에 부과한 어떤 제약에서도 제외된다고 밝히며 유화적(宥和的)인 태도를 보이고 나섰다. 이에 반해 우리 선박 26척 137명의 선원은 전쟁 발발 이래 호르무즈 해협에 계속 억류 중이다. 이란 의회는 지난달 30일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해 배럴당 1달러(선박당 약 30억원) 통행료를 부과하는 조항이 담긴 새 관리 계획안을 승인한 바 있지만, 최근 해협을 통과한 이들 선박이 통행료를 지불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특히 과거 이란의 인프라 건설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는 한국은 1977년 6월, 서울과 테헤란의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강남의 삼릉로 일대를 '테헤란로'로, 그리고 테헤란에는 '서울로'를 조성하기도 했다. 중동의 전황이 격랑(激浪)에 휘말린 상황에서 우리는 이란과의 과거 친분을 바탕으로 우리 선박의 안전한 통과를 위한 물밑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존(生存)을 위한 실리다.
2026-04-06 05:00:00
[사설] 공급자 중심 의료 정책, 환자 중심으로 전환하라
환자 권리를 제도로 보장하는 '환자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관련 업무를 전담(專擔)할 조직(환자안전과)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오랫동안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고려하면, 이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환자기본법은 1년 뒤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법 취지에 맞게 정책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동안 의료 정책은 병원, 의사, 제약사, 정부와 건강보험공단 등 공급자의 효율성과 편의를 중심으로 설계돼 온 측면이 많았다. 환자는 진료 시간, 의료 접근성(接近性), 치료 결정 과정 등에서 수동적인 입장에 놓였던 게 사실이다. 의료 정책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고, 의료 서비스의 최종 수혜자는 환자다. 그런데도 국민과 환자의 목소리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1년 넘게 이어진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醫政) 갈등 사태 때도 정책의 이해 당사자인 환자들은 소외됐다. 환자기본법은 이 같은 제도 및 현실적 한계를 바로잡기 위한 출발점이다. 환자의 알권리, 자기결정권, 안전권 등을 명문화(明文化)하고, 이를 국가가 보장해야 할 책무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의료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설명의무 강화는 환자를 '치료의 대상'이 아닌 '치료의 주체'로 전환하는 핵심 장치다. 환자기본법이 환자 중심 의료의 구현(具現)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충분한 의견 수렴, 하위 법령 제정 및 정책 개편 등이 뒤따라야 한다. 복지부가 추진 중인 전담 부서 설치도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환자 정책 전담 조직 신설은 환자 단체의 숙원이었다. 환자 단체들은 환자안전과와 피해구제과 등을 두는 '환자정책국'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신설 조직은 환자 권익 보호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책 조정 권한과 독립성을 갖춘 기구로 설계돼야 한다. 고령화(高齡化)로 의료 수요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환자 중심 의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2026-04-06 05:00:00
[관풍루]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 신고 재산 82억 중 외화 자산이 절반 이상으로 이해충돌 논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대구시장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에 대해 "대구도 이 위원장 필요하겠지만 국힘 전투력 위해 국회에 더 필요하다"고. 장 대표의 정확한 진단. 이제 처방전 발부하고, 약 먹고 일어나야죠.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 신고 재산 82억원 중 외화 자산이 절반 이상으로 이해충돌 논란. 부동산 정책 논의에서 다주택자 배제가 원칙이면, 외환 정책 결정에서 대규모 외화 자산 보유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이란 군사작전 도중 F-15기 추락으로 실종됐던 미군 1명의 구출 사실을 공식 확인. 하마터면 인질전으로까지 번질 뻔했던 위기 가까스로 모면.
2026-04-06 05:00:00
2026-04-05 18:58:55
돈을 푼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돈을 받고 싶지 않다. 당장 몇십만 원이 들어오는 것이 기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다. "이 돈, 결국 누가 갚는 걸까" 요즘 환율은 1500원을 훌쩍 넘었고, 곧 1600원 이야기도 나온다. 이 숫자는 단순한 경제 뉴스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 남편이 해외출장을 가면 예전처럼 돈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똑같은 커피를 사도, 같은 식사를 해도 머릿속으로 계속 원화를 계산하게 된다고 한다. 이건 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돈의 가치가 줄어들었다는 감각, 그 불안이 먼저 몸에 반응하는 것이다.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같은 월급을 받아도 실제로는 더 가난해지는 것과 같다. 장을 보며 느껴지는 물가와 흔들리는 자산, 줄어드는 체감 소득까지, 경제는 이미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다시 지원금을 풀겠다고 한다. 고유가와 물가 상승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명분이다. 그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물어야 한다. 이 지원금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지, 아니면 잠시 덮어두는 것인지. 경제는 결국 시간의 문제다.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지금 쓰는 돈은 언젠가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세금이든, 미래 세대의 부담이든, 혹은 보이지 않는 방식이든. 결국 우리는 지금의 편안함을 위해 미래의 시간을 끌어다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이런 장면도 낯설지 않다. 대구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연주자들이 큰 홀에서 공연을 열어도, 공연을 며칠 앞두고 좌석이 많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스타 연주자의 공연은 여전히 빠르게 매진된다. 하지만 그 외의 많은 공연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관객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지금 돈을 써도 되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미뤄지는 것이 바로 문화다. 지갑이 닫히는 순간, 예술은 가장 먼저 멀어진다. 이 변화는 관객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요즘은 지역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예전처럼 사비를 들여 독주회를 여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한 번의 무대를 올리기 위해서는 대관, 연주자, 홍보 등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그 부담은 더 크게 느껴진다. 결국 무대는 줄어들고, 연주는 기회가 아니라 감수해야 할 위험이 되어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얼마를 나눠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람들은 숫자보다 감정으로 움직인다. "지금은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이 감정이 퍼지는 순간, 경제는 빠르게 식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계속 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지원금을 거부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받지 않아도 되는 나라, 받지 않아도 괜찮은 경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몇십만 원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방향과 믿을 수 있는 내일일 것이다.
2026-04-05 08:40:07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40> 진달래 피어나는 청명한 봄날의 나들이
혜원 신윤복의 '연소답청'은 한량과 기녀의 봄나들이 모습이다. 답청은 파릇파릇 돋아난 풀을 밟고 거닐며 새봄의 자연을 즐기던 삼월삼짇날 세시풍속이다. 3.3으로 양의 수가 겹치는 양기 왕성한 날이라 남성들은 이 날을 각별히 기념했다. 우리말로는 삼질이라고 했고, 한자로는 상사(上巳), 원사(元巳), 중삼(重三), 상제(上除), 삼진일(三辰日), 답청절(踏靑節)로도 부른 명절이다. 진달래꽃을 따다 동그랗게 빚은 찹쌀 반죽에 꽃잎을 올려 기름에 지진 진달래 화전(花煎)은 빠트릴 수 없는 봄맛이다. 여린 미나리 국에 향긋한 쑥떡을 차려놓고 놓고 친구를 초대해 술자리를 함께하기도 했고, '연소답청'처럼 탈것을 마련해 기생을 동반하고 교외로 놀러 나가기도 했다. 이날 세 팀이 도성을 벗어나는 세 갈래 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생은 조랑말을 탔고, 한량과 시중꾼은 걸어간다. 두 팀은 이미 도착해 있는데 제일 아래쪽 팀이 지각이다. 말 위의 기생은 쓰개치마가 펄럭이고, 한량은 급한 걸음에 갓이 벗겨져 뒤로 넘어가 상투가 드러났고 옷자락이 휘날린다. 고삐를 잡은 소년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이들 중 리더는 제일 오른쪽 한량이다. 허벅대님을 한쪽 무릎에 맵시 있게 매었고, 겉옷은 양쪽 옷자락을 뒤로 묶어 걸음걸이를 간편하게 했으며, 그 안에 붉은색과 흰색의 길고 짧은 누비조끼를 입었다. 아직 봄추위가 가시지 않은 때라 한량들은 모두 누비조끼를 갖추었지만 이 분은 특별히 두 벌을 겹쳐 레이어드 룩으로 멋을 냈다. 마부의 벙거지를 뺏어 쓰고 말고삐를 직접 잡으며 운전기사(?)를 자처한다. 이 분의 파트너는 벌써 긴 장죽을 물었고, 언덕의 진달래를 꺾어 머리에 꽂아 봄놀이 기분을 냈다. 한참을 기다렸나보다. 졸지에 모자를 뺏긴 견마잡이는 한손에 여전히 채찍을 든 채 다른 손에 서방님의 갓을 들고 엉거주춤 대기 중이다. 바야흐로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와 봄기운이 무성해지는 때다. 얼었던 땅이 녹아 부풀어 오르며 생명이 움트고 꽃이 피어난다. 청명한 봄이 오면, 마땅히 산과 들과 강을 찾아 이 계절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사유하는 즐거움을 누릴 일이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2026-04-03 20:11:54
[사설] 트럼프 '입'만 보는 주식시장, 신중하게 접근해야
코스피는 지난달 31일 224.84포인트(4.26%) 대폭락하면서 5,100선이 무너졌다가, 바로 다음 날인 1일 426.24포인트(8.44%) 급등하며 단숨에 5,400대를 회복했다. 그런데 2일 또다시 244.65포인트(4.47%) 급락했다. 아무리 이란 전쟁이라는 대외 불확실성이 크다고는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폭등락(暴騰落) 장세이다. 투자자와 언론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에만 너무 주목하고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는 현상이 주식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 폭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1일 폭등은 "이란의 새 정권 대통령이 방금 미국에 휴전을 요청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자유롭게 개방되고 위험이 제거된 시점에 이를 검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이 종전(終戰)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전환점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오전 대(對)국민 연설에서 이란 전쟁의 당위성과 성과를 강조한 뒤, "앞으로 2~3주 동안 (이란에 대해)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가해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했다. 투자자 및 언론의 예상(豫想)과는 전혀 다른 발언이 나오자, 코스피는 연설 도중 이미 하락세로 돌아섰다. 사실 미국은 휴전·종전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도 중동지역에 군사력을 대폭 증강시키고 있었다. 단지 대이란 압박용으로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엄청난 군사력을 집중시킨다는 해석은 비합리적이다. 전쟁 중인 정치 지도자의 말 속에는 진심과 함께 유인술·기만술도 섞여 있기 마련이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선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아닌, 냉정하고 종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2026-04-03 05:00:00
[사설] 중동발 물가 폭등, 26조원 추경 기름 붓지 않도록 세심한 지출 설계 필요
중동 전쟁이 물가를 뒤흔들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2%는 신호탄(信號彈)에 불과하다. 석유류 가격이 9.9% 급등해 물가를 0.39%포인트(p) 끌어올렸는데, 국제 유가는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전(開戰) 33일 차인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에서 2∼3주에 걸쳐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하자 국제 유가는 가파른 오름세로 돌아섰다. 국책연구기관 분석에 따르면, 전쟁이 조기에 끝나도 유가는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낙관적 시나리오조차 배럴당 90달러를 예상하며, 최악의 경우 170달러 이상까지 내다본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로선 끔찍한 현실에 놓이게 된다.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도 변수다. 저소득층, 소상공인·자영업자, 수출기업 등의 유류비·물류비 부담을 덜어 줘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다만 기존 예산 재배치 등을 제외해도 시장에 추가로 풀리는 20조원대의 돈이 가져올 물가 상승 압력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인플레이션 불안 요인은 다층적(多層的)이다. 전쟁이 불러온 원자재 비용 상승, 고환율로 인한 수입물가 압력, 재정이 촉발하는 물가 인상이 한꺼번에 닥치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벌어진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충격을 흡수할 장치가 필요하지만 재정 지출은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금 살포(撒布)가 아니라 공급망 안정과 에너지 효율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정책 방향에 따라 향후 물가 추이가 결정된다. 자칫 중동 전쟁이 가져온 위기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2026-04-03 05:00:00
[사설] 장동혁 "판사가 국민의힘 사건 골라 맡아", 법원 해명 필요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국민의힘 관련 가처분 사건을 잇따라 인용(認容)하고 있는 서울남부지법 권성수 재판장을 향해 "골라먹기 배당(配當)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는 신청 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가 2개 있는데 국민의힘 관련 가처분 신청 사건은 유독 권 재판장이 있는 민사합의 51부에만 계속 배당돼 왔다"며 남부지법에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더니 '사건이 접수되면 권 재판장이 국민적 관심이 높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사건은 일단 본인에게 배당하고 나머지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배당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사건 임의 배당 원칙' 파괴(破壞) 논란이 나오는 배경에는 얼마 전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각각 제기한 당원권 정지 징계 효력 가처분 신청과 최근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권 판사가 맡았고, 이들 사건을 모두 인용했다는 점이 깔려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에서 컷오프된 주호영 의원이 낸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경북 포항시장 공천에서 컷오프된 박승호 전 시장과 김병욱 전 의원 사건도 권 판사가 맡았기 때문이다. 특정 판사에게 국민의힘 가처분 신청 사건이 줄줄이 배당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남부지법은 장동혁 대표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국민의힘 관련 사건이 특정 판사에게 집중(集中) 배당됐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을 경우 법원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당의 공천에 대해 법원이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당사자야 답답한 심정에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겠지만, 법원은 '기각'(棄却·형식 요건은 갖췄지만, 실질적으로 인정할 만하다 보기 어려울 때) 또는 '각하'(却下·요건 자체가 안 된다고 판단할 때)했어야 한다고 본다. 정당의 공천은 각 당의 전략적 판단이고, 그런 공천으로 그 당이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그 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프로야구팀 감독이 특정 선수를 경기에 출전(出戰) 배제했다고 해서 법원이 "그 선수를 출전시켜야 한다"거나 "그 결정은 적절했다"고 판결하는 격이다. 지금까지 법원이 판결하면 국민들은 비록 납득하기 어려워도 수긍(首肯)했다. 법원 결정마저 부정할 경우 우리나라 '법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법원의 '정치인 관련 사건' 판결은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판결이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1심과 2심 판사에 따라 다른 결론(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나오기도 했다. 동일한 사건이 판사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공정한 판결'이 아니라 '편파적 두둔'으로 비칠 뿐이다.
2026-04-03 05:00:00
[관풍루]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지지 선언…
○…"우리는 석유가 넘쳐 나니 미국에서 석유를 사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 수급 차질 겪는 국가에 미국 석유 구입을 해법으로 제시. 전쟁 속내가 이거였나?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부겸 전 국무총리 지지 선언.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는데…. 당신은 타협이 되는 사람이었고?!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을 제외하면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역성장했다는데…. 6,000까지 치솟았던 지수는 모두 거품이었던가.
2026-04-03 05:00:00
2026-04-02 18:41:47
[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 나일강과 람세스 2세, 흐름과 멈춤 사이
거대한 돌기둥처럼 서 있던 람세스(Ramesses) 2세 입상. 2025년 개관한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중심으로 옮겨진 그는 여전히 완벽한 통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를 올려다보았다. 감탄보다 먼저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거대해야 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했기에 이렇게 남겼을까? 수많은 돌 위에 새겨진 업적과 그의 이름은 언제나 승자의 언어이다. 나는 그 글자 밖에 있는 침묵 속 여백을 듣고 싶었다. 그 순간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떠올랐다. 평화로운 강 위에서 진실을 숨겨두었던 '나일강의 죽음(Death on the Nile)'이 인간의 욕망을 추적했던 것처럼 나도 나일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돌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천천히 물어보기 위해서. ◆나일강, 그 오랜 흐름을 타고 나일강 크루즈는 생각보다 오래된 여행 방식이다.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이집트 고대 유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을 위한 나일강 크루즈가 등장했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에게도 이집트는 기원 이전에 존재한 더 오래된 세계였다. 고고학자와 외교관, 작가와 귀족들이 이 배를 타고 문명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호기심으로 사람들은 크루즈에 몸을 싣고 나일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을 바라본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인들의 무한 신뢰를 받아온 나일강을 따라서. ◆브랜드로 각인된 람세스 2세를 찾아서 사막은 거대한 광고판 같았다. 그리고 그 위에 가장 크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인물이 있었다. 바로 람세스 2세다. 평균 수명이 40세 안팎이던 시대에 그는 67년 동안 왕위에 올랐고, 건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증명했다.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 카르낙 신전(Karnak Temple), 룩소르 신전(Luxor Temple)은 종교 시설이 아니라 '브랜드 터치 포인트'였다. 많은 석상은 조각품이 아니라 거대한 옥외광고(OOH, Out of Home Advertising)였다. 곳곳에 반복적으로 새겨진 람세스 2세는 오래 기억되는 자가 오래 통치한다는 믿음 아래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돌 대신 LED를, 파피루스 대신 SNS를 활용할 뿐이다. CI(Corporate Identity) 매뉴얼을 떠올려보자. 람세스 2세가 같은 서체, 같은 상징, 같은 위엄을 엄격히 사용했듯이 현대 기업은 색상을 통일하고, 로고 비율을 규정하며, 사용 방식을 관리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100년 넘게 붉은색과 곡선 로고를 유지하는 코카콜라(Coca-Cola), 멀리서도 단번에 인식되는 맥도날드(McDonald's)의 황금 아치를 예로 들 수 있다. 브랜드는 기억의 전쟁이다. 시각적 반복은 신뢰를 만들고, 익숙함은 심리적 지배력으로 이어진다. 광고는 설득이 아니라 각인이 되는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왜 네페르타리를 같은 높이로 세웠을까? 아부심벨에는 대신전과 소신전이 있다. 대신전 입구에 앉아있는 거대한 석상 4개는 모두 람세스 2세다. 시선을 압도하는 석상 무릎 아래에는 왕비와 자녀들의 조각상이 작은 크기로 놓여 있다. 권력의 서열이 한눈에 보이는 높이였다. 그러나 바로 옆 소신전에서 이 규칙이 깨졌다.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 석상이 람세스 2세와 거의 같은 크기로 서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권력은 거대함으로 말하지만 그 거대함도 사랑 앞에서는 달라지는 예외를 보여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을 만들어준 람세스 2세 이집트 아스완(Aswan)에서 나일강은 멈추었다. 수단(Sudan)에서 내려오던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을 만나 거대한 나세르호(Lake Nasser)를 만들었다. 이 호수는 국경을 넘어 남쪽 아부심벨까지, 200킬로미터 넘게 이어진다. 20세기, 이집트가 세계 최대 규모의 하이댐, 수력발전과 수자원이라는 현실을 선택했을 때, 유네스코는 "아부심벨의 수몰은 이집트만의 손실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손실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아부심벨 신전은 1,000여 개로 분해되어 원래 자리보다 65미터 위로 옮겨진 곳에서 다시 조립되었다. 1년에 두 번, 태양이 신전 깊숙이 들어와 람세스 2세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 역시 그대로 재현되었다. 과거는 이렇게 유네스코에 의해 처음으로 구조되었다. 197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이 탄생했고 유산은 더 이상 한 나라의 과거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책임지는 현재가 되었다. ◆낙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람세스 2세의 이름과 얼굴이 반복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 건축 단지 카르낙 신전이다. 대열주실 벽과 기둥에는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 장면이 새겨졌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Hittites)와의 전투에서 수천 명의 적을 물리친 영웅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무승부에 가까웠지만, 신전의 벽은 패배를 기록하지 않는다. 부조는 기록이자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어가 아닌 글자와 숫자로 새겨진 낙서를 여러 차례 발견했다. 처음에는 문화재를 훼손한 것으로 보여 얼굴이 찌푸려졌다. 수천년을 버텨온 돌 위에 함부로 새겨진 자국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보존과 훼손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낙서 또한 잠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굴된 채 남겨진 유적지가 또 다른 시간의 층이 되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흔적이 의미를 갖는 순간은 마케팅에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트잇이다. 3M의 연구원이 강력 접착제를 만들려다 '너무 약하게 붙는' 접착제를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실패로 보였던 결과였지만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사용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강점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포스트잇은 아이디어를 붙이고 이동시키는 손쉬운 도구가 되어 업무 문화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처음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의 방향일 수도 있다. ◆죽음의 방향, 왕가의 계곡 나일강 서쪽은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향이다. 약 34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번성기를 통치했던 아멘호테프(Amenhotep) 3세가 멤논(Memnon)의 거상이 되어 룩소르 남쪽 왕가의 계곡으로 향하는 나를 환영해주었다. 피라미드는 사라지고 왕들은 산맥 사이 골짜기에 숨어 들었다. 왕가의 계곡을 조성하면서 도굴을 막기 위해 수직 갱도를 만드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투탕카멘(Tutankhamun) 무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무덤이 도굴당하고 말았다.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작은 무덤이기도 한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먼저 찾아갔다. 화려한 외형을 기대했으나 놀랍게도 아주 작은 푯말 하나가 위치를 알려줄 뿐이었다. 짧은 통로와 작은 방은 투탕카멘의 갑작스런 죽음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이 이어진 길이였다. 투탕카멘은 미라(mummy)가 되어 검게 누워있었다. 죽은 자가 저승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한다는 사자의 서가 보였다. 태양신 라의 배, 심장의 무게를 재는 장면과 반복되는 상형 문자들. 영혼이 통과해야 할 절차대로 오랜 시간을 견딘 주문들이 울리고 있었다. 존재감 없는 소년 왕 투탕카멘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되었다. 사람들은 람세스 2세의 기록된 업적보다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스토리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여백의 미, 참여형 마케팅으로 테슬라(Tesla)는 신차 발표 때 세부 기술 설명보다 미래 비전과 티저 영상(Teaser Advertising)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택했다. 특히 2026년 테슬라 사이버트럭 공개 당시, 파격적인 외형만으로 논쟁과 추측을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모든 답을 주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이 생성되었고, 그 질문이 곧 관심과 화제가 되었다. 설명은 이해를 돕지만, 여백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암시적 메시지 전략(Implicit Messaging)이라고 할 수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남겨둔 수수께끼처럼, 브랜드 역시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자동차 엠블럼이 된 독수리 그 작은 무덤에서 나온 뒤에야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세티(Seti) 1세의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얀 벽면에 새겨진 그림 문자들을 보면서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밤이 깊어졌다. 밤하늘을 형상화한 청색 천장 아래 여신 이시스(Isis)는 독수리가 되어 푸른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왕의 영혼을 보호하던 그 날개가 수천 년을 건너 자동차 엠블럼(Emblem) 속에서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영국 자동차 밴틀리(Bentley)와 현대 자동차 제네시스(Genesis)의 엠블럼이 되어 도로 위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벤틀리의 날개 달린 B 엠블럼은 속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포지셔닝(Positioning)된 선택받은 자의 품격을 상징한다. 제네시스 역시 날개를 펼친 엠블럼을 사용한다. 안정감을 주는 방패와 좌우 날개의 도약으로 시각화하여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에 성공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프리미엄 브랜드 로고는 세티 1세의 천장에서 시작된 독수리 날개였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세티 1세의 무덤을 보고 나니 투탕카멘 무덤이 턱없이 작다는 것이 피부로 다가왔다. 투탕카멘의 그 작은 무덤에서 5000여점의 화려한 부장품이 나왔다고 하니, 이곳 세티 1세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았더라면 그 규모는 엄청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무덤의 크기나 장식이 기억의 깊이를 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큰 무덤은 준비된 죽음을 말하고 작은 무덤은 남겨진 시간을 말해주었다. 세티 1세의 깊은 밤을 지나 나는 비로소 투탕카멘의 짧은 밤을 이해했다. ◆계획이라는 말이 무색한 우연과 영원 AI라는 현대적 헤브라이즘(Hebraism)이 일상 깊숙이 스며든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수천 년 전의 석상 앞에 멈춰서서 한참을 올려다본다. 람세스 2세는 거대한 신전과 석상에 이름을 새기며 영원을 계획했고 투탕카멘은 뜻밖의 발견으로 시간을 건너와 우연히 영원이 되었다. 결국 영원은 의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케팅이 상품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설계하는 기술이라면, 고대의 왕들 또한 시간을 상대로 한 거대한 브랜드 전략을 실행한 셈이다. 그러나 그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묻는 순간,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된다. 멈춤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남겨질 만한 것인가?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2026-04-02 15:07:04
◆이번주 베스트셀러(2026년 3월 27일~4월 2일 기준) 1. 왕과 사는 남자 각본집/ 황성구, 장항준 2.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3.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유시민, 김세라 4.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신영준, 고영성 5. 중국어 명대사 필사집/ 김소희 6.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7. 완벽한 원시인/ 자청 8. 2026 큰별쌤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1,2,3급) 상/ 최태성 9.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14/ 최설희 10. 박태웅의 AI 강의 2026/ 박태웅
2026-04-02 10:29:41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오래된 것들 사이사이에 다방이 있었네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스쿠터를 타고 전국의 다방을 다닌 남자가 있다. 사찰기행도 아니고 문화유산과 비경이 아니라, 하다못해 오래된 책방이나 식당이 아니라, 다방이라니. '여행 생활자' 유성용의 『다방기행문』은 오래된 것들에 대한 헌사이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다방을 찾아다니면서 함께 쇠락하는 풍경을 담은 사진집 같은 무엇이다. 작가는 출발에 앞서 대형카메라를 팔아 스냅 카메라로 바꾸고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불을 빨아 말려두고, 신발을 정리했으며, 인터넷 약정을 끊고 일기를 숨기고 편지를 태운다. 먼길 떠나는 여행자의 거룩한 의식 같은 것. 길 위에서 멈출지도 모를 삶에 대한 정갈한 정리다. 그렇게 전국의 다방을 찾아 나선 길고 긴 여정은 최북단 대진의 〈초양다방〉에서 시작해 전태일 동상이 세워진 청계천 〈명보다방〉에서 끝난다. 다방 기행이라고 여급들과 시시덕거리면서 커피나 홀짝이는 팔자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는 곳마다 아프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연이 즐비하고 한 시대를 넘어선 질곡의 역사가 피어오른다. 예컨대 태백시 〈향록다방〉에서 트럭 운전사 사내의 울음소리에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밖으로 나왔을 때, 펑펑 내린 눈이 스쿠터에 쌓인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은 가히 절창이다. 경북 춘양의 〈앵두다방〉과 영양 〈향수다방〉에서 50년 넘은 역사를 보았지만, 애초의 흔적이 남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대개 스스로도 제 기억을 잃는 법이다." 초창기 다방은 원두를 직접 갈아 필터식 커피를 썼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PX를 통해 인스턴트커피가 들어왔고, 소위 다방커피라 불리는 인스턴트커피가 주종을 이룬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예전처럼 필터식 원두커피를 내는 집을 '맹물다방'이라고 불렀다는 것. 너무 연해 맹물 같은 커피 맛이라서. 작가가 경주시 불국동에서 만난 〈맹물다방〉은 그러나, 인스턴트커피를 내는 집이었다. 인상 깊기로는 삼천포 〈은파다방〉도 못지않다. 어시장과 횟집들의 북적임이 한풀 꺾일 즈음 빨간 간판이 걸린 거짓말같이 아름다운 이름 은파(銀波). 그래서 그는 이렇게 카페인을 권한다. "은빛 물결 반짝이는 봄날, 봄바다 마주하고 저승 갔다 온 마음아, 언제 그곳에 들러 커피 한잔하시오. 나는 거기서 아가씨들과 수다 떨며 연거푸 여러 잔 커피 마셨다가 심장이 붕 떠서 골로 갈 뻔했다오." 유성용은 스쿠터로 전국의 다방을 헤집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마을 사람과 길손과 자신과 비슷한 여행자들. 낯선 이들과 뒤섞이며 커피 한 잔에 희로애락을 쏟아내는 다방. 그곳에서 본명도 아닌 이름을 가진 송 양, 하 양, 김 양, 이 양 등 많은 레지를 만났고, 가끔 나풀거리는 인생들끼리 나누는 별것 아닌 시간이 정답고 좋았다고 적는다. 그네들의 사연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걸 나그네의 예의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다방기행문』이 신파로 흐르지 않고 단단한 기행문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신) 포항 인근 청진항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청진이용원〉. 언젠가 이곳에서 머리를 깎아 보리라 다짐했으나, 인터넷 검색에 안 뜨는 걸 보니 문을 닫은 모양이다.
2026-04-02 09:39:39
눈처럼 희다고 설산(雪山)이다. 누군가는 지상의 가장 고귀한 왕관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자연의 눈부신 드레스라고 예찬한다. 인도 티베트 네팔 파키스탄 부탄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국가의 경계에 걸친 히말라야 산맥은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천미터 이상의 봉우리를 14개 이상 품은 명실공히 '세계의 지붕'이다. 안전 간격의 부족과 난기류 형성의 위험 때문에 항로 설정을 꺼린다는 그 곳은 대표적인 설산이다.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산맥 중 산악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2011년 박영석 씨의 실종으로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다. 해발고도 8091m,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인 안나푸르나는 가뜩이나 험한 지형에다 변화무쌍한 기후와 눈사태로 악명이 높다. 험준하기는 지형뿐만이 아니다. 자료를 찾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간신히 찾은 자료도 케케묵은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이곳의 사망률이 에베레스트나 K2보다 높다는 것과 현재까지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꽤 많다는 정도이다. 시신이란 말을 곱씹다 보면 설산에 대한 이미지는 급전직하, 거의 잿빛으로 변한다. 안나푸르나를 산스크리트어로 풀이하면 '풍요의 여신'이라고 한다는데 안나푸르나가 기르는 바람과 구름의 시점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시점에서는 어불성설이다. 그 것뿐이라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잿빛에 암갈색을 더하는 정보가 또 있다. 사실 산악인들의 실종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에 속한 것이므로 설산의 이미지를 깎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할 순 없다. 문제는 병, 깡통, 플라스틱 따위의 쓰레기들이다. 그것들은 경관을 해치는 수준을 넘어 자연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산악인들 스스로가 저지른 '사사로운 일들'중 하나라는 게 충격이다. 언론에서 취재한 자료를 보면 여태도 그것을 '일탈행위'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산소통을 메고 악전고투 끝에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는 산악인의 모습은 '인간승리' 혹은 '불굴의 의지'로 표상되기 마련이다. 그런 설정이 사리에 벗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일부 산악인들의 무분별한 행위로 인해 '의지'의 의미가 훼손되고 깃발의 감흥이 퇴색되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산이 저 지경에 이르도록 몰랐던 것도, 여느 사건보다 더 크게 와 닿았던 것도 결국은 설산의 광휘(光輝) 때문이다. 그런데 눈부신 빛이 설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설산 같은 대상이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등성이를 오르면 닿는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흠모의 마음으로 거기에 올랐는지, 거기서 뭘 잃어버린 건 없는지, 실은 버린 게 아닌지. 심강우 시인·소설가
2026-04-02 09:38:08
[사설] 헌재 재판소원 모두 각하, '4심제' 부작용 불식되기를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訴願) 제도 시행 이후 두 번째 사전 심사에서 48건의 청구를 모두 각하(却下)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사전 심사에서도 26건 모두 각하됐다. 재판소원 제도가 지난달 12일 시행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도 헌재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헌재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재판소원은 입법 과정에서 야당과 법조계의 큰 반발을 샀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제가 시행되면 사실상 '4심제'가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재판소원 청구(請求)가 잇따르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느라 판결의 최종 확정이 지연되고, 재판 비용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컸다. 헌재는 재판소원 청구가 연간 1만~1만5천 건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재판소원의 남발(濫發)은 헌재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물론 긴급한 국민 기본권 침해 사건에 대한 결정을 늦출 수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재판소원의 오남용(誤濫用)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법원 판결 과정에서 헌법적인 가치가 훼손됐을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특히 헌재는 두 차례 사전 심사를 통해 '막연하고 추상적인 주장'이나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한 경우 기본권 침해가 명백히 소명되지 않았다면 청구할 수 없다'는 기준을 거듭 강조했다. 재판소원은 일반 법원의 확정판결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될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최후의 헌법적 장치다. 헌재가 이번에 모든 사건을 각하한 것은 단순한 절차적 판단을 넘어 제도의 방향성(方向性)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헌법적 쟁점이 아닌 단순한 사실관계 다툼이나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한 청구까지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재판소원은 '상고심(上告審) 이후의 또 다른 상고심'으로 변질된다. 이는 사법 자원의 낭비와 함께 사법 혼란을 초래한다. 헌재는 앞으로도 사전 심사에서 엄격한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 유력 정치인 관련 사건도 예외일 수 없다.
2026-04-02 05:00:00
댓글 많은 뉴스
대구시장 이러다 '4파전'?…갈라진 보수 틈 비집는 '김부겸 바람'[금주의 정치舌전]
李대통령 지지도 61.2%로 1%p 하락…"고환율·고물가 영향"
이진숙 "기차 떠났다, 대구 바꾸라는 것이 민심"…보궐선거 출마 사실상 거절
"바람처럼 살겠다"…홍준표, 정치권 향해 "진영논리 멈춰야"
"선거비용 보전도 못할까봐"…국힘, 이대론 득표율 15%도 위태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