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9 18:42:59
나는 경북 의성에서 일곱 살까지 자랐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도시로 이주했지만 방학이면 종종 고향을 찾았다. 갈 때마다 친구들은 떠나고 빈집은 늘어났다. 지방소멸은 내게 통계가 아니다. 고향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지방소멸 대응의 성패는 결국 지방정부의 정책 역량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당선인이 아니라 공약이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공약은 앞으로 4년간 지역 행정과 예산을 이끌 청사진이 된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전국 인구 감소 지역 89곳 가운데 15곳이 경북에 있다. 의성·영양·봉화·청송은 모두 인구 감소 지역이자 지방소멸대응기금 지원 대상이다. 초고령화와 청년 유출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대응 전략은 조금씩 달라 지방소멸 해법을 비교하기에 적합한 사례다. 네 지역 군수 당선인의 공약은 모두 청년 유출을 지방소멸의 핵심 원인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의성은 청년주택과 창업·귀농귀촌을, 봉화는 청년 창업과 주거 지원을, 영양은 정주 여건 개선과 소득 기반 확충을, 청송은 생활밀착형 복지와 교육 환경 개선을 내세웠다. 접근은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다. 의성은 농산물 가공과 브랜드화를, 영양은 에너지 이익공유와 농업 경쟁력 강화를, 봉화는 스마트농업과 산림산업·관광을, 청송은 스마트농업과 사과 산업 고도화를 제시했다. 이는 지방소멸 대응이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넘어 지역 안에서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정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육혁신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작은 학교 경쟁력 강화와 지역 대학·산업 연계, 아이를 키우기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한 장기 전략은 부족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면 지역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진다. 부모들은 집값보다 학교를, 일자리만큼 돌봄을 본다. 결국 미래세대가 지역에 남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교육이다. 경북도교육감은 '경북형 교육 거버넌스'를 제안하며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가 함께 돌봄과 진로교육, 통학, 폐교 활용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군수 공약과도 맞닿아 있다. 지방소멸은 군수만의 과제도, 교육감만의 과제도 아니다. 주거와 일자리, 교육과 돌봄이 따로 움직여서는 사람을 지역에 머물게 할 수 없다. 정주정책과 교육정책이 하나의 전략으로 설계될 때 비로소 지역의 미래도 바뀔 수 있다. 이미 교육발전특구와 직업교육 혁신지구처럼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는 제도는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개별 사업 중심이어서 지방소멸이라는 복합 위기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지방소멸 원테이블'이 필요하다. 군수와 교육감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청년, 교육, 산업, 돌봄, 주거를 하나의 전략으로 설계하는 상설 협의체다. 여기에 지방의회와 대학, 기업, 주민 대표까지 참여해 지역의 미래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의성을 떠났지만 고향이 '사라질 지역'이 아니라 '돌아갈 수 있는 지역'이 되기를 바란다. 지방의 미래는 더 많은 정책이 아니라 정책을 연결하는 거버넌스에서 시작될 것이다.
2026-07-29 15:11:55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56>한 쌍의 잠자리와 연꽃에 담은 구애, 김홍도 '하화청정'
연꽃과 잠자리를 그린 '하화청정'은 아리따움이 넘치는 작품이다. 요염하기까지 한 홍련 한 송이가 피어있고, 그 앞으로 연못가에 흔히 보이는 잠자리 두 마리가 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니 암놈과 수놈이다. 투명한 네 개의 날개가 포옹이라도 하려는 듯 활발한 모양새여서 마주한 한 쌍의 잠자리를 빌어 활짝 핀 연꽃 같은 사랑을 구하는 연심(戀心)을 격조 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하화청정'은 조선 후기 그림 중에서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꼽자면 빠지지 않을 것 같다. 한눈에 착 들어와 감기며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런 유형의 그림이 많지 않았다. 화가들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주요 감상자, 수요자인 양반사대부들이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학자들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감정을 절제하는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중용을 미덕으로 여겼고 담담한 그림을 선호했다. 화조화의 경우도 아리따움을 가라앉힌 담백한 화풍이 많다. 그런데 김홍도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걸까? 여느 양반사대부의 감상을 위한 그림은 아니었을 듯하다. 자신의 연인을 위해서 그렸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또는 친구가 연모하는 여인을 위해 친구에게 그려준 것일까? 어느 모로 보나 남성 감상자를 위한 그림은 아닐 것 같다. 연밥과 꽃술을 감싼 꽃잎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제각각 춤추는 가운데 분홍빛 선으로 꽃잎의 방향과 뒤집어진 모양까지 윤곽선으로 세밀하게 그렸고, 그 안으로 연분홍에서 진분홍까지 색조를 조절하며 칠해 실물감을 주었으며, 꽃잎 하나하나에 농담을 얹은 가는 직선과 물결 같은 부드러운 곡선을 교대로 반복해 연꽃 특유의 질감을 표현했다. 그 선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세부를 구성한 표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호 '단원'을 활발한 획의 능숙한 초서로 써넣었고 인장은 '김홍도'다. 단(檀)자는 오른쪽이 심하게 올라간 비스듬한 형태라 날렵한 운동감이 느껴지고, 원(園)자는 여백이 많아 안정감이 있고 여유롭다. 생생한 회화미가 너무도 압도적인 작품이라 단원이라는 서명이 더욱 위대해 보인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2026-07-29 10:59:44
28일 코스피는 10% 넘게 급락해 6천 선 붕괴(崩壞)를 코앞에 뒀고, 8% 가까이 하락한 코스닥은 700선을 간신히 지켜냈다. 개장 직후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잇따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두 시장 모두 서킷브레이커까지 가동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급락으로 한 달 만에 시가총액 수천조원이 증발했다. 폭락의 직접적 계기는 27일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상장 직후 주가 급등으로, 반도체 시장의 경쟁 심화 우려를 키웠다. 중국이 반도체 필수 장비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개발에 속도를 낸다는 소식이 겹쳤고, 미국에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등 반도체주가 일제히 하락했다. SK하이닉스 실적 발표, 미국 빅테크 실적 공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둔 경계심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그러나 '검은 화요일'의 근본 원인이 중국발 악재(惡材) 탓만은 아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이 증시를 이끌 것으로 기대했는데, 변수가 생겼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추격자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메모리와 장비를 함께 키워 반도체 생태계 재조정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흔들리자 증시 전체가 무너졌다. 국가 경제와 자본시장이 특정 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적 위험성을 드러냈다.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보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AI와 반도체 경쟁에 어떻게 대응할지, 중국의 추격 속에 국내 경쟁력을 어떻게 지켜낼지, 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에 어떤 원칙으로 대처할지에 대한 분명한 정책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내놓은 것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규제 강화 정도다. 투기적 거래 억제 의미는 있지만 시장이 원하는 답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반도체 경쟁력 유지를 위한 분명한 전략과 일관된 신호를 내놔야 한다. 이번 폭락의 진짜 경고는 불안한 주가가 아니라 시장의 기대만으론 미래 경쟁력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26-07-29 05:00:00
[사설] 국회의장 李 연임 개헌 시사, 명백한 헌법 정신 부정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에 대해 "주권자 국민의 선택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통령 연임 개헌에 선(線)을 그어온 여권의 입장과 다른 발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이 대통령이 임명한 조원철 법제처장이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이 이뤄질 경우 이 대통령부터 적용될지에 대해 "국민들이 결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말한 바 있는데, 또 그런 발언이 나온 것이다. 여·야는 현직 대통령 연임에 대해 "현행 헌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重任)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정식 국회의장의 전임자인 우원식 전 국회의장 역시 "중임이나 대통령 임기 관련해서 개헌을 할 경우 당해 대통령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헌법 제128조가 헌법 개정 당시 대통령의 연임 또는 임기 연장을 금지하는 것은 장기 집권 시도(試圖)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자가 자신이나 특정 집단의 영구 집권을 위해 헌법을 고치는 폐해(弊害)가 있었고, 그 결과는 비극이었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고, 그 혜택을 스스로 누리는 것은 '이해 충돌'에 해당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연임을 포함한 개헌에 선을 긋고 있지만, 친이재명계 인사들(조정식 국회의장·조원철 법제처장)이 개헌을 언급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부적 논의가 있음을 시사(示唆)한다. 다수 국민들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조작기소 특검법 등을 '이재명 대통령 사법 리스크 지우기' 일환(一環)으로 본다. 국민 피해가 충분히 예상됨에도 오직 한 사람의 사익을 위한 법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연임 개헌을 추진한다면 그 역시 사익 챙기기로 간주될 것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연임 개헌 등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몰락을 부를 뿐이다.
2026-07-29 05:00:00
[사설] '늙은 나라'로 완전 진입, 생존 과제가 된 국가 시스템 전면 재설계
초고령·생산인구·노령화 등 3대 인구 마지노선(線)이 동시에 무너졌다. 28일 발표된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20.7%로 처음으로 20%를 넘어섰고, 일할 사람을 뜻하는 생산연령인구는 69.2%로 70% 아래로 떨어졌다. 아이 100명당 노인 수를 나타내는 노령화지수는 205.2로 200을 돌파, 유소년 인구의 두 배가 됐다. 국제 기준으로 '초고령사회'는 20%부터다. 한국은 이제 초고령사회라는 의미다. 고령인구 수가 1년 전보다 무려 5.9%나 늘었다. 문제는 속도만이 아니라 의료, 요양, 연금 등 이들 인구가 요구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고령인구 증가는 국가 재정의 고정비(固定費)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그런데 이 비용을 감당할 사람의 수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69.2%로, 201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70% 밑으로 내려갔다. 이는 단순한 '일할 사람 감소'뿐 아니라 국가 잠재성장률의 구조적 하락을 뜻한다. 유소년 100명당 고령인구는 205.2명으로, 아이 1명에 노인 2명이라는 비율도 현실이 됐다. 더 심각한 것은 변화의 비대칭성이다. 유소년 인구가 3.6% 감소하는 동안 고령인구는 5.9% 증가했다. '노년 부양비'도 29.9로, 전년보다 2.0 늘었다. 생산연령인구 3명이 고령인구 1명을 부양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더 가파르게 악화될 뿐이다. 이 세 마지노선의 동시 붕괴(崩壞)는 국가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상 마지막 경고음이다. 개별 정책 하나로 끊어낼 수 있는 고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수백조원을 투입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책의 방향이 틀렸거나 늦었거나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대응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시간이 없다. 정년 연장과 이민 정책, 세대 간 부담 재배분, 저출산 대책 등 개별적 땜질을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를 균형이 무너진 인구 구조에 맞게 하루빨리 재구성해야 한다. 손을 놓고 있을 시간은, 이미 다 썼다.
2026-07-29 05:00:00
[관풍루]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검찰 직접수사권 존치 주장은 정치 검찰과 국민의힘 결탁의 증거"라며 국힘을 저격
○…정교유착 비리 의혹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 4개월 전 "신천지 간부가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도 가입하라'고 했다"는 진술 확보하고도 수사 안 해. '여당 봐주기'란 비난을 들어도 싸다 싸.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검찰 직접수사권 존치 주장은 정치 검찰과 국민의힘 결탁의 증거"라며 국힘을 저격. 보완수사권 폐지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들도 국힘과 한통속이란 뜻? ○…쉴 틈 없는 폭염으로 올여름 현재까지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 역대 1위, 대구는 다음 달 1~7일 '기록적인 더위' 예고. 뭐라고? 더위가 이제 시작이라고!
2026-07-29 05:00:00
2026-07-28 18:47:14
대구 도심에서 참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작년 여름 문득 깨달았다. 올해도 참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작년에는 앞산 근처에서 겨우 몇 번 들었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제 도심 한복판이 아닌 산자락과 가까운 서늘한 곳에 가야만 참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대표적인 매미가 참매미다. 정겨운 "맴~ 맴~" 소리를 내는 참매미는 한반도 서식 14종 중 가장 친숙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구 도심과 아파트 단지에는 "빼액- 빼액-" 고성을 지르는 말매미 소리만 가득하다. 간혹 털매미나 애매미 소리가 섞여 들릴 뿐, 예전처럼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온종일 울려 퍼지던 참매미 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어릴 적 경북 상주의 시골에서 여름이면 비닐봉지 매미채로 매미를 잡으러 다니던 기억이 선하다. 곤충채집 숙제 덕에 매미나 잠자리를 잡는 게 일상이었다. 당시 잡던 것은 주로 참매미와 쓰름매미였다. 미루나무 높은 곳의 말매미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손이 닿는 높이의 참매미나 쓰름매미를 잡아 다리에 실을 묶어 두었다가 밤에 날려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아들, 딸과 아파트 단지나 학교에서 함께 매미를 잡고 놀았다. 그 덕분에 어릴 땐 못 잡던 말매미와 애매미도 잡아 보았다. 하지만 옛날에는 흔하던 쓰름매미가 대구 도심에서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예천 곤충생태원에 가서야 오랜만에 쓰름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많던 대구 도심의 참매미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원인은 '도심 내 참매미 개체군의 급감'에 있을 것이다. 실제 대구 도심에서는 말매미만 발견될 뿐, 참매미 성체나 허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기후변화와 도심 열섬현상이 가져온 생태계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고온에 강한 말매미가 열대야와 높은 지열 속에서 부화율과 생존율을 폭발적으로 높이며 도심을 점령했고, 덜 높은 기온을 좋아하는 참매미는 고온 스트레스와 열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도심 서식 밀도가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구처럼 더운 도시에서는 참매미가 서늘한 산자락에나 겨우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보내온 목동 도심 동영상 속에는, 대구보다 기온 상승이 덜한 덕분인지 참매미와 쓰름매미, 유지매미 소리까지 선명히 담겨 있다. 매미는 선조들이 귀하게 여겼던 곤충이다. 왕과 신하들이 쓰던 익선관(翼善館)과 사모(紗帽)의 뒷날개 모양은 매미 날개를 본뜬 것이다. 나무 수액만 먹어 청빈하고, 때를 맞춰 울며, 염치를 안다는 '매미의 오덕(五德)'을 정사의 귀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한 매미는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애벌레가 지상으로 나오며 뚫는 구멍은 흙에 산소를 공급해 토양을 건강하게 만든다. 개체 수가 많아 애벌레와 성충은 새, 두더지, 개구리 등의 먹이가 되고, 사체는 흙으로 돌아가 유기물 거름이 된다. 땅속 유충 시절에는 뿌리를 적절히 자극해 식물의 자생력을 돕는다. 과거 흔했던 쓰름매미 소리를 대구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듯, 이러다간 대구 도심에서 참매미 소리마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기후변화는 우리 집 앞 나무 위의 생태계 지도를 조용히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도심 녹화와 에너지 절약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우리 모두의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다음 여름에는 정겨운 참매미 소리가 대구 도심에 다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6-07-28 15:20:10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04년 서울에서 총선에 출마했다가 석패(惜敗)한 뒤 서울시 부시장을 거쳐 18대 총선에 재도전한 끝에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후 2012년 총선에서 다시 고배를 마셨고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역임 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당선됐다. 재선 시장에 이어 지난 2024년 22대 총선에서 당선, 두 번째 의원 배지를 달았다. 두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지자체장, 두 번의 낙선, 그리고 서울시 부시장과 부원장. 이 정도면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의 정치인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 그가 자신이 속한 당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는 심각한 우(愚)를 범했다. 후반기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을 둘러싼 당 지도부와의 갈등 과정에서 멱살잡이와 막말을 한 것이다. 화가 날 순 있다. 권 의원 본인뿐 아니라 이번 상임위 배분을 두고 적잖은 의원들이 '원칙 없는 배정'에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다른 의원들을 대신해 항의하러 간 것이라고 항변도 했다. 총대를 메고 갔다가 감정이 격해져 우발적으로, 어쩌면 의도적으로 과격한 언행(言行)을 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권 의원의 언행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더군다나 제1야당 의원들을 대표하는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은 것에 대해선 그 어떤 정당성도, 변명의 여지도 없다. 베테랑 정치인으로서 할 행동은 더더욱 아니다. 당연히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도 차갑다. 권 의원에 대해 자진 탈당을 권유한 뒤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식으로 징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윤리위원회를 열어 제명을 포함한 최고 수준의 징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진 탈당을 할지, 징계를 받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와 상관없이 권 의원은 해명도, 변명도, 하소연도 다 내려놓고 무조건 용서부터 구해야 한다. 국민 앞에 백배사죄하고 원내대표에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용서를 빌고, 필요하다면 무릎이라도 꿇어라. 석고대죄하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해 성숙한 정치인으로서의 품격과 소양을 갖추길 바란다.
2026-07-28 05:00:00
[사설] 건보료 상·하한선 동시 인상, 새는 곳은 왜 안 막나
정부가 건강보험료 부과(賦課)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초고소득 가입자의 보험료 상한선을 높이고, 최저 보험료 하한선을 현실화한다. 또 월급 외 소득(이자·임대 소득 등)에서 빼주는 공제 금액이 줄어들면서 부수입이 있는 직장가입자의 건보료 부담도 는다. 부담 능력에 맞게 보험료를 조정해 형평성(衡平性)을 높이고, 고갈 우려가 커지는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국민에게 보험료 부담을 더 지우기에 앞서 정부는 건보 재정이 새는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 건보 재정은 올해 5조원대 적자로 돌아선 뒤, 2035년이면 적자가 39조5천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 기반을 확충하려면 제도 개선이 불가피할 수 있다. 문제는 국민 부담이다. 저소득 가입자의 최저 보험료는 두 배 이상 오를 전망이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지만, 취약계층(脆弱階層)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건보 재정 누수를 방치한 채 보험료부터 올리려는 편의주의(便宜主義)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돈이 새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의료 쇼핑'은 여전히 심각하다. 과잉 진료, 허위·부당 청구도 끊이지 않는다. 사무장병원의 불법 수급(受給)은 물론 외국인의 단기 체류 후 고액 진료만 받고 출국하는 '먹튀 진료' 문제도 반복된다. 이런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보험료를 더 거두려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정책이다. 건보를 정치적 인기 영합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청년층 탈모 치료의 건보 적용 확대처럼 재정 여건과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추진되는 포퓰리즘 정책은 건보 재정을 더욱 악화시킨다. 건강보험은 국민 모두가 함께 유지하는 사회안전망이다.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면 국민도 일정 부분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정부가 재정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신뢰다. 의료 쇼핑, 과잉·불법 청구, 부정 수급, 선심성(善心性) 보장성 확대를 차단하는 것이 먼저다.
2026-07-28 05:00:00
[사설] 尹 선거법 위반 1심 유죄, 李 파기환송심은 어떻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재판장 조순표)는 2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1심 판결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宣告)했다. 20대 대선 후보 시절 "건진법사 진성배 씨를 만난 적 없다"는 취지의 말과, "과거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이 모 변호사를 소개한 사실이 없다"고 발언한 것이 유죄라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국민의힘은 대선 선거비용 보전금 등 약 397억원을 선관위에 반환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전직 대통령이든 현직 대통령이든 일반 시민이든 법(法)은 모든 이에게 평등(平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만인(萬人)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의구심이 생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과 이재명 대통령 사건을 대하는 법원의 태도가 크게 다른 탓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의해 "김문기 모른다. 호주 출장 중 함께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발언과,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이 박근혜 정부 국토부의 "협박과 압박 때문"이라는 국정감사에서의 거짓말이 공직선거법상 유죄(有罪)로 사실상 확정됐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가 재판을 지연하지 않았다면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출마조차 불가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약 434억원을 선관위에 반환(返還)해야 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또 대통령 당선 이후 이재명 피고인에 대해 헌법 84조(대통령의 형사상 소추 제한)를 적용해 재판을 중단하고 '기일추후지정(추정)' 결정(決定)을 내렸다. 이 같은 판단은 헌법 68조 2항 '(대통령이) 판결 등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할 때에는 60일 이내에 선거한다'는 규정에 비춰볼 때, 억지스럽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는 권력에 고개 숙이고, 죽은 권력에는 가혹한 듯한 사법부의 판단이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法治主義)와 민주공화국의 가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2026-07-28 05:00:00
[관풍루] 청와대 관계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공식적인 사의 표명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해
○…청와대 관계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공식적인 사의 표명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해. 그러나 정 장관은 국회에서 "검찰 개혁 대부분 끝났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라며 사의 표명 시인. 미리 입 좀 맞추지. ○…중앙선관위, 2024년 총선 때도 투표수·투표율 전산 조작 의혹 있다는 내용의 국민감사청구를 별다른 조사 없이 두 차례에 걸쳐 기각·각하했다고. 덮지 않으면 안 될 거대한 음모의 냄새.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처리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27일부터 3~4일간 여름휴가 떠나. 무사안일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2026-07-28 05:00:00
[날씨] 7월 28일(화) "대체로 맑고 곳에 따라 소나기"
2026-07-27 18:51:39
한국의 역사학자 중 누구도 사실을 말하지 않지만, 병자호란은 명백하게 조선이 도발한 전쟁이다. 조선 사신 나덕헌과 이확이 청 태종 홍타이지의 황제 즉위식에서 배례를 거부하여 행사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청 황제의 국서를 숙소에 팽개치고 온 후폭풍이 병자호란이었다. 조선 지도부는 침략을 자초하고도 아무 준비도 없이 도낏자루 썩히다 기습을 당했다. 불과 50여 일 만에 소중화 문명국 조선 국왕이 '오랑캐'로 멸시하던 여진족 추장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三跪九叩頭禮) 항복했다. 조선 국왕의 항복으로 모든 사안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청군은 철수 과정에서 조선 백성 60만 명을 포로로 끌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이 수치는 크게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청의 수도 심양의 인구 규모와 배후지 생산력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60만 명의 신규 인구를 수용 통제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했다. 게다가 청군 주력 부대가 포로 60만 명을 한양에서 700km 떨어진 심양까지 이동시키는 것은 병참학적으로 불가능했다. 학자들은 청군의 행군 속도, 포로 탈출율, 심양 포로 시장의 거래 규모를 추적한 결과 조선 포로 규모를 최소 5만, 최대 10만 명으로 추산한다. 청나라는 조선 지배층에 충성을 강요하고, 심리적 굴욕감을 주기 위해 고위 관료나 사대부 집안 부녀자들을 집중적으로 잡아갔다. 이들이 후일 '환향녀' 담론의 중심이 된 존재들이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는 왕실과 사대부 가족들의 피난처였다. 청군이 강화도를 함락하고 피난 온 왕실·사대부 가문 여성들을 대거 포로로 잡았다. 청군에 끌려가는 지체 높은 집안 부녀자들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치욕스럽게 잡혀가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강화도 앞바다에 투신한 부녀자도 상당수에 달했다. 병자호란 당시 청의 인구는 만주족·몽골인·한인 모두 합쳐 200만~300만 내외에 불과했다. 영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다 보니 가임기의 젊은 양인·천민 여성도 다수 끌고 가 씨받이로 이용했다. 무엇보다 청은 만주의 광활한 영토를 개간하여 식량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육체노동이 가능한 남성 포로는 청나라 귀족이나 군인에게 분배되어 노예로 부려먹었다.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겪은 일상을 관원들이 기록한 『심양일기』에는 조선 남성 포로들이 굶주린 채 채찍질 당하며 일하는 모습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혹한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다 붙잡히면 발뒤꿈치나 코를 베는 잔혹한 형벌이 가해졌다. 목숨 걸고 탈출하여 고향으로 돌아와도 그것으로 비극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는 탈출 포로에 대한 환수권을 강력 주장했다. 무능한 조선 조정은 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탈출해 온 자국민을 잡아다 청에 넘겨주는 추쇄를 자행했다. 다시 끌려가는 포로 중 일부는 압록강 국경 근처에서 집단 자살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본처 학대 시달리다 자결한 조선 여성 명나라 공략을 앞둔 청은 조선 포로 중 조총병을 우대했다. 이들은 만주팔기 내 솔호 니루의 화력 강화에 투입되었다. 또 대포·화약 등을 만드는 무기 기술자, 축성 기술자 등 특별한 기술을 보유한 장인들은 선별하여 귀화시켰다. 제지 기술자, 인쇄 장인은 서적 출판을 위한 종이 제조에 투입했고, 은(銀) 제련 기술자는 만주 은광 개발에 동원하여 재정 확보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청은 명나라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결전에 조선 포로를 대거 동원했다. 이들은 성벽 쌓는 공병, 보급품을 운반하는 수송병, 최전방 조총수, 보병으로 활용되었다. 제지 기술자, 은 제련사, 조총 제작 장인은 청나라 황실·고위층에 편입되어 높은 예우 받아가며 여진족을 위해 일했다. 조선은 각 분야의 장인·기술자 유출로 퇴보를 면치 못했고, 청은 조선 기술자를 대거 흡수하여 대제국의 기틀을 닦는 데 성공했다. 조선 장인들은 고국에선 노비·천민으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실용성을 중시한 청은 조선의 기술자·장인을 극진히 예우하여 그들의 기술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조선과 청나라 중 누가 더 현명했는지는 그 후의 역사가 증명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포로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병자호란 후 청의 수도 심양 성문 밖에는 대규모 포로수용소와 노예시장이 문을 열었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인신매매 시장이 국가 주도로 개설된 것이다. 조선 출정 군인들은 자기가 잡아 온 포로를 노예시장에 내놓고 구매자들과 흥정을 벌였다. 포로는 나이·외모·건강 상태·기술(바느질, 길쌈 등)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다. 구매자들은 물건 고르듯 치아를 살피거나 몸을 만져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포로 중에서 젊고 용모 뛰어난 여성은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 여성을 놓고 구매자 여러 명이 나서면 즉석에서 경매가 벌어졌다. 청나라 귀족의 본처들은 조선 여인들이 용모와 바느질·요리 솜씨가 뛰어나 남편의 총애를 받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들은 첩이 된 조선 여성 얼굴에 끓는 물을 부어 화상을 입히거나, 낙인을 찍어 외모를 망가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질투에 눈먼 여진족 본처들이 조선 여성의 코나 귀를 베는 일이 심양 거리 곳곳에서 목격될 정도로 흔했다. 본처의 학대에 시달리던 조선 여성들은 죽더라도 고국에서 죽겠다고 작심하고 탈출하거나, 심양성 밖 혼하(渾河)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이런 모습을 목격한 조선 사신들이 피눈물을 흘렸으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항의 한 번 못 했다. 소현세자 수행원들은 "성 안팎의 나무마다 목을 맨 조선 여인들이 매달려 있고, 강물에는 시신이 끊이지 않으니 그 원한이 하늘을 찌른다. 주인 처의 매질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코를 베인 여인이 길가에서 구걸하며 고국의 소식을 묻는 모습은 지옥의 풍경과 다름없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포로 몸값 치솟아 청나라가 조선 포로를 대거 잡아간 이유는 포로는 곧 '돈'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렵 국제 무역 결제 수단은 은(銀)이었다. 여진족 청은 명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총·화약·대포 구입과 용병 고용비, 명군 회유를 위한 뇌물용 은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대거 조선 포로를 잡아간 것이다. 양국은 협상 과정에서 포로 몸값(속환금)을 1인당 은 10~30냥으로 정했다. 이 와중에 조선 양반들 사이에 가족 송환 경쟁이 벌어졌다. 청 입장에선 꽃놀이패를 손에 쥔 셈이 되었다. 부녀자 한 명 몸값으로 은 500~1천 냥, 심지어 1,500냥을 불러도 조선 사대부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조선 정부의 연간 은 보유액은 수만 냥에 불과했다. 청이 명나라 공격을 위한 전비(戰費)를 조선 백성의 몸값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면서 조선은 국부(國富)를 탈탈 털렸다. 결국 조선 포로의 몸값이 명청 교체라는 나비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속환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위화감'도 심각한 문제였다. 권문세가는 가족을 데려오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지만, 돈 없는 백성은 속수무책이었다. 인조실록에 의하면 속환비는 평민 1년 치 생활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조선 조정은 포로 송환 협상에 난항을 겪자 각자도생을 선언했다. 국가는 백성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데다가, 포로 구제를 개인 능력에 맡겼다. 백성들이 사비를 털어 심양까지 가서 몸값 지불하고 구해오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전란의 고통을 백성의 골수까지 짜내 해결하라고 방치한, 무책임 정치의 끝판왕이었다. 심양 노예시장은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백성을 가족들이 개인 돈으로 사와야 하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유전생환(有錢生還)이요, 무전포로(無錢捕虜)의 비정한 현실은 조선 사회의 내부 결속력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637년 승정원 사관 한이겸은 끌려간 아내를 구하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심양으로 향했다. 심양 노예시장에서 아내를 찾아냈으나, 청나라 주인은 몸값으로 준비해 간 은의 몇 배를 요구했다. 간신히 빚을 내 아내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으나 더 큰 환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절개 잃은 여성에 대한 문중의 압박과 성리학적 명분론에 시달려 아내와 이혼한 것이다. 한이겸의 아내처럼 돌아온 여성들이 마주한 것은 남편과 시댁의 냉대였다. 주화파 현실론자 최명길은 "국가가 힘이 없어 백성을 지키지 못했는데, 사지로 끌려갔다 돌아온 부녀자들에게 정절을 묻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항변했다. 그는 전란의 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인정하고, 피해자 여성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기했다. 인조는 이 제안을 수용하여 "홍제천 물에 몸을 씻으면(洗心) 과거의 일을 묻지 말라"라는 어명을 내렸다(인조 16년 3월 11일). 이 조치에 김상헌을 필두로 한 주자성리학 탈레반들이 강력 반발했다. "몸을 더럽힌 부녀자에게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할 수는 없다"라며 어명을 거부한 것이다. 사대부 집안에서는 홍제천 목욕 후에도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별당에 가두거나, 자결을 강요하는 사적 제재가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전란의 책임을 통감해야 할 수컷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해 여성의 정절을 절대 가치로 격상시켰다. 중화(中華)를 계승했다는 소중화 의식이 강해질수록 오랑캐와 접촉한 자들에 대한 혐오는 비이성적으로 강화되었다. 조선은 외적(청나라)에게 입은 상처를 내부의 약자(환향녀·호로자)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치유하는 병리적 사회로 퇴행했다. 백성을 지키지 못한 추악한 사대부들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온 여성들을 주자성리학적 명분론으로 타살한 것이다. 갈 곳 잃은 여성들은 도성 밖 성북동·홍제원 근처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경기도 인근 청룡사·보문사 등 비구니 사찰이 이들의 안식처였다. 여성들은 포로 시절 익힌 바느질·길쌈으로 연명하거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것이 훗날 화냥년의 어원이 된다. 청나라에서 임신하여 돌아온 후 낳은 아이들의 운명은 더 비참했다. 그들은 호로자(胡虜子)라 하여 사회적 최하층민으로 전락했다. 이것이 '후레자식'의 어원이다.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2026-07-27 13:51:10
미술관 관람은 늘 새로운 감동을 준다. 오래전 런던 코톨드 갤러리에서의 일화다. 벽면을 빽빽이 이중으로 채운 서양 고전 초상화들 사이를 걸으며 문득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규칙과 격식으로 가득 찬 어두운 배경의 초상들이 나를 일제히 노려보는 듯해 온몸이 짓눌리는 답답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무거움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인상파 그림들이었다. 자유롭고 생생한 붓 자국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19세기 사진술의 발명으로 대상의 재현이라는 오랜 의무에서 해방된 화가들은 화면 속에서 자신만의 숨 쉴 공간을 찾아냈다. 대상과 마주하며 느낀 주관적 감응을 중시한 인상파의 태동은 서양 미술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이 대전환의 여정에는 동서양의 뜻밖의 문화적 조우도 있었다. 19세기 중반 유럽으로 흘러든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는 원래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상자 안에 구겨 넣었던 충격 흡수용 종이였다. 머나먼 이국땅의 화가들은 이 하찮은 포장지에 새겨진 파격적인 여백과 간결한 선, 대담한 구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유럽을 강타한 일본 문화 열풍을 미술사에서는 '자포니즘(Japonism)'이라 부른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이 매혹 속에서 갈대 펜으로 풍경화 '생트 마리 해변의 어선들'을 그렸다. 물결을 따라 요동치는 선과 여백은 동양 수묵화의 오랜 정신과 깊이 공명한다. 이처럼 인간의 보편적 감각인 점과 선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맞닿아 있었다. 과거 서구가 동양 미학을 흡수한 '자포니즘'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세계가 K-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약의 이면을 냉정히 짚을 필요가 있다. 식민과 급격한 서구화를 거치며 우리의 내면이 기묘하게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박물관 속 '순수한 한국성'이라는 박제에 갇혀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빌보드 순위나 할리우드의 찬사 같은 서구의 평가에 과도하게 연연한다. 이처럼 타자의 시선에만 매달리는 태도는 우리의 독창적인 시야를 스스로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문화와 미학은 본래 흐르고 섞이는 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 형태를 바꾸며 조화롭게 스며들면서도, 생명력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외부의 자극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 중심을 지켜내는 단단함이 진짜 한국성의 힘이다. 과거 도자기 포장지가 동양의 선을 전했듯,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놀이터로 삼은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새로운 문화적 주역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의 주체적 중심을 단단히 세우고 더 과감하게 세계의 문법과 섞이며 선명하게 흐를 때, 우리 문화의 깊은 뜻은 비로소 세계 무대 위에 단단히 서게 될 것이다.
2026-07-27 11:18:19
[사설] 정부가 구호만 외쳐서는 '생산적 금융' 정착 어렵다
가계와 기업의 대출 부실이 동시에 악화하고 있다. 5대 은행의 2분기 말 가계대출 연체율은 0.33%로 2016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았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도 올해 5월 1.00%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5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固定以下與信), 즉 3개월 이상 연체돼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는 대출은 1년 새 1조원 이상 늘어 7조4천억여원에 달했다. 부실은 더 커질 조짐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5대 은행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최대 1.34%p(포인트) 상승해 7.5%를 넘어섰다. 여기에 내수 부진과 원자재 가격 상승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상환 능력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 빚을 내 투자한 개인의 신용대출 부실도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동산 등으로 쏠린 자금을 미래산업과 성장기업으로 돌리겠다며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나섰다. 금융기관에 담보와 보증보다 기업 성장성을 보고 대출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5대 은행이 올해 6월까지 생산적 금융 차원에서 중소기업에 집행하거나 약정(約定)한 대출 42조6천억여원 중 78.5%가 담보·보증대출이었다. 신용·기타 대출은 21.5%에 그쳤다. 반면 대기업은 76.5%가 신용대출이었다. 은행만 탓할 수는 없다. 정부가 성장 가능성을 보고 대출할 것을 주문한다고 해서 부실 대출에 따른 손실까지 책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생산적 금융이 정부 생색내기로 전락해선 안 된다. 담보 부족을 이유로 성장기업이 자금난에 허덕이지 않도록 기술력, 사업성, 현금 흐름을 평가하는 금융 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발생 가능한 손실의 분담 주체와 기준도 명확히 제시해야 성공할 수 있다. 연체율이 오르고 부실채권이 늘어나는데 신용대출 확대를 무작정 다그칠 수 없다. 정부가 진정 생산적 금융을 원한다면 대출 목표액부터 제시할 게 아니라 위험을 평가하고 분담(分擔)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은행에 미래를 보라고 요구하려면 정부부터 미래 투자 위험을 어떻게 진단하고 대처할지 답해야 한다.
2026-07-27 05:00:00
[사설] 선관위 직원 메신저·이메일 수색 영장 기각한 법원, 왜 이러나
선관위의 '투표율 전산 조작' 의혹과 관련, 법원이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청구한 압수수색 대상 중에서 핵심인 메신저와 이메일에 대한 영장을 기각(棄却)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확산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메신저와 이메일은) 선관위 직원들의 공모와 조작 범위를 밝힐 가장 중요한 증거"라면서 "합수본 수사로는 안 된다, 법원조차 믿기 어렵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국민 특검(特檢)만이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관위 투표율 전산 조작은 합수본이 직원들의 메신저를 살펴보던 중에 확인됐다. 경기선관위 직원이 관내 투표소의 투표자 수를 잘못 입력한 사실을 내부 메신저로 중앙선관위 직원에게 알리자 "충청지역 등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허위) 입력했다"고 답한 내용이 포착(捕捉)되었다는 것이다. 당초 알려진 경기지역 2곳에 이어, 충청지역에서도 투표율 조작이 이뤄졌고, 또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사례가 있을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원에서 메신저와 이메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함으로써 수사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영장 청구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법원이 자체 판단에 따라 영장을 기각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확실한 것은 투표율 조작이 가능하다면, 다른 전산 조작 또한 가능하고, 이것이 부정선거(不正選擧)의 실체를 밝혀줄 단서(端緖)가 될 수 있는데도 법원이 제동을 건 모양새가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 선관위와 사법부(법원)는 '한 몸'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중앙선관위와 16개 시·도 선관위, 255개 구·시·군 선관위 위원장을 대법관·지방법원장·부장판사가 관례적으로 맡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근 위원장을 맡은 법관(法官)들의 역할은 '거수기'에 불과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수기들이 선관위 무법천지(無法天地)의 방패막이 노릇을 한 셈이다. 선관위의 부정은 더이상 감출 수 없다. 이제 사법부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2026-07-27 05:00:00
[사설] TK신공항 사업 대구시·경북도 공동 추진도 엇박자, 이럴 일인가
대구경북신공항 사업이 수년 동안 재원(財源)의 벽에 막혀 헛돌고 있다. 지난해 1월 군 공항 이전 사업계획이 승인되며 속도를 내는 듯했지만 사업비를 지자체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기부 대 양여' 구조 앞에서 멈춰 섰다. 종전 부지 개발이익으로 비용을 회수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이 방식으로는 사실상 재원 마련이 힘들어져서다. 이에 대구시는 사업비를 저리로 빌리고 이자만 국비로 지원해 달라며 공공자금관리기금 융자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광주의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광주 군 공항 이전 사업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800조원 규모 투자 발표를 계기로 재원 조달 실마리를 단숨에 찾았다. 비슷하게 진행돼 온 군 공항 이전 사업을 놓고 한쪽은 국가적 관심 속에 탄력을 받고 다른 한쪽은 정부의 미온적 태도 속에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와 경북마저 해법(解法)을 두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사업 추진 동력 약화 우려가 나온다. 경북도는 도지사를 군 공항 이전 사업의 공동 시행자로 참여시키고 재원을 함께 조달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 지원만 기다리다간 사업 자체가 자칫 무산될 수도 있는 만큼 특별법 개정을 통해 경북도도 공동 사업자로 넣어 토지보상비 등 지방 재정을 선투입해 물꼬를 터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대구시는 국가 안보 사업인 군 공항 이전을 국가 주도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체 사업비의 2% 수준에 불과한 토지보상비를 지자체가 부담하게 되면 나머지 사업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접근 모두 그 나름의 일리(一理)는 있다. 그러나 대구와 경북이 엇박자를 내면 정부 외면으로 가뜩이나 힘든 사업이 더욱 표류하게 된다. 정부 입장에서도 지역의 갈라진 목소리보다 더 좋은 사업 보류 명분도 없다. 집안 갈등이 노출되면 사업은 보나 마나다. 각각의 딴소리가 외부로 먼저 나와선 안 된다. 박탈감·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시도민을 더욱 불안하게 할 뿐이다. 당장 만나 조율부터 하라.
2026-07-27 05:00:00
[관풍루] 더불어민주당 '보완수사권 폐지' 당론 확정, 정성호 법무부 장관 사퇴 표명에 이어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사퇴 저울질
○…더불어민주당 '보완수사권 폐지' 당론 확정, 정성호 법무부 장관 사퇴 표명에 이어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도 사퇴 저울질. 검찰청 폐지 등 형사사법 체계 개편 앞두고 수뇌부 공백 우려, 반발인가 회피인가? ○… '장윤기 사건'으로 심판대에 오른 향찰(鄕察), 경감·경위 중 한 경찰서 10년 이상 근무자 1만7천 명. 향찰은 치안 안정에 도움이 되나 유착 문제로 말썽, '양날의 검'은 잘 다루는 게 상책. ○…대구와 경산, 경주, 포항 등 곳곳에 폭염중대경보, 극한 더위의 연속. 폭염 중심지가 '대프리카'를 넘어 경북 전역으로 확산되는 양상, TK가 행정 통합은 안 되고 '폭염 통합'이라니.
2026-07-27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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