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투표율 높아야 정치가 긴장, 적극 투표로 TK 미래 열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再補闕)선거 본투표일이다. 오늘 유권자들의 선택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사전투표는 역대 지방선거 최고 투표율인 23.51%로 마감됐다. 지방자치와 지역 발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사전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반드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시민의 삶과 직결(直結)된다.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교육감이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경제와 교통, 교육, 복지, 문화의 수준이 달라진다. 중앙 정치가 국가의 큰 방향을 결정한다면, 지방 정치는 시민의 일상을 좌우한다.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대구경북(TK)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신공항 건설, 미래 산업 육성, 청년 인구 유출 대응 등 난제(難題)가 쌓여 있다. 지역민의 염원과 역량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그 출발은 적극적인 주권 행사다.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지역 발전 의지를 분명히 보여 줘야 정치권도 움직인다. 이번 사전투표에서 대구의 투표율은 18.65%로 최하위였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대구의 최종 투표율은 43.2%로 전국 평균(50.9%)을 크게 밑돌았다. '보수 정당의 텃밭'이란 인식 탓에 선거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는 상황이 판이하다. 특히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가 초접전(超接戰) 양상을 보이는 대구시장 선거는 전국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권자 한 표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누가 당선되느냐가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느냐도 중요하다. 투표율과 득표율은 민심(民心)의 척도다. 정치는 유권자가 깨어 있을 때 긴장한다. 투표율이 높으면 정치권은 지역 민심을 두려워하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시민의 힘이 이어지는 이유다. 지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지역의 발전을 원한다면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정치인이 아니라 지역민이 TK의 내일을 만든다.
2026-06-03 05:00:00
[사설] 경북 역대급 선거법 위반 몸살, 선거 문화 바꾸는 출발점 되길
경북이 역대급(歷代級) 선거법 위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일 선거운동이 끝난 가운데 앞선 지방선거에 비해 선거법 위반 사건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에 따르면 5월 31일 기준 경북의 선거법 위반 조치 건수는 고발 44건, 수사 의뢰 7건, 경고 131건 등 총 182건이다. 이는 지난 2022년 지선의 같은 시기 124건보다 무려 46.8% 증가한 수치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기부행위, 매수, 공무원 선거 관여, 허위사실공표와 비방 등 다양하다. 경찰도 지난달 26일 기준 고소·고발·진정 등 총 144건·304명을 수사해 이 중 16건·37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12건·239명을 수사 중이다. 16건·28명은 불송치했다. 이번 지선에서 경북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 유독 많았던 이유로는 '선거 구도의 변화'가 꼽힌다. 지금까지 보수 계열 정당의 독식 구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 선거구에 후보자를 낼 정도로 선거 구도가 다원화되면서 경쟁이 과열됐다는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의 과당(過當) 경쟁은 물론 본선에서 민주당, 무소속까지 다자간 구도가 형성되면서 각종 불탈법 행위가 급증한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 이후도 걱정이다. 경찰은 경북 지역 시장·군수 후보 등 4, 5명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거나 조만간 압수수색 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경북은 '공천이 곧 당선'이었다. 그런데 그 독점이 흔들리고 다자 구도가 형성되면서 공천을 받아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고, 공천을 못 받아도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구도가 됐다. 선거법 위반 급증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역동성을 불러오는 건전한 다자 구도 선거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발생하는 선거법 위반 증가는 반드시 감시 및 사법 처리 강화 등으로 더욱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당선 무효, 시정 공백, 보궐선거 등 선거법 위반 증가로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이 지역민들에게 돌아가게 해선 안 된다. 이번 선거가 경북의 선거 문화를 바꾸는 시발점(始發點)이 되길 바란다.
2026-06-03 05:00:00
[사설] "검찰, 잘못하면 사과·취소",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다시 불 때나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잘못하면 사과하고 취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 상식적인 말이 '자신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라'는 압박(壓迫)처럼 와닿는 것은 한국 사회의 불행이다. 상식이 상식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은 6·3 지방선거가 끝나면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라는 의구심(疑懼心) 때문이다. 민주당은 4월 발의한 '조작기소 특검법안'을 당초 5월 중 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역풍(逆風)이 불자 처리 시기를 미뤘다. 이 법이 시행되면 현재 검찰이 맡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을 이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넘겨받아 재수사하고, 공소유지 여부(공소취소 포함)를 결정할 수 있다. 법안이 발의되자 '사실상 대통령이 자기 사건을 자신이 재판하는 법안'이라는 비판과 함께 정치권력이 사법부 권한을 대신함으로써 '법치주의, 삼권분립, 평등 원칙 파괴(破壞)'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조작기소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증거를 제출해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주장만으로 재판을 받자니 '유죄 선고'가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해 공소를 취소하도록 하자니 향후 '법왜곡죄'로 처벌(處罰)받을 것이 두렵다. 그래서 특검을 출범시켜 공소를 취소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조작기소 특검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통령 사건 공소를 취소하고 사라지는 이른바 '떴다방'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대통령의 상식적인 말이 '자기 재판을 없애려는 밑밥'으로 세간(世間)의 의심을 받고, 법과 정의를 세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특검이 '떴다방' 소리를 듣는 현실, 이 모든 부조리(不條理)의 출발은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를 노린 민주당의 위헌적 행보 때문이다. 이 부조리를 바로잡는 길은 '조작기소 특검법안' 철회뿐이다.
2026-06-03 05:00:00
[관풍루]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 하루 앞두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겨냥해 "무능·무책임·무사안일 10년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공격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 하루 앞두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겨냥해 "무능·무책임·무사안일 10년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공격. 토론 회피가 '무능·무책임·무사안일'. ○…대검찰청, 법왜곡죄 고소·고발로부터 검찰 구성원 보호 위한 '검찰공무원 직무 보호 TF' 출범하고 관련 법리와 해외 사례 연구도 강화하기로. 민주당이 싸지른 X이 여럿 괴롭히는군. ○…월스트리트저널, 이재명 정부를 '강경 좌파'로 지칭하고, 더불어민주당에는 미국의 동맹이 없다는 미국 강경 보수 2명의 주장을 온라인판에 게재. 틀린 소리는 아닌 것 같네.
2026-06-03 05:00:00
2026-06-02 18:57:47
우리는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 애플의 사례에서 리더 한 명의 영향력을 실감한다. 스티브 잡스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상상력의 책임'을 다했다면, 팀 쿡은 복잡한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는 '지속가능성의 책임'을 완수했다. 이들의 리더십 스타일은 달랐으나,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CEO의 언행이 기업과 시장에 미치는 무게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반면, 얼마 전 우리는 국가 중요 정책 결정권자의 실언이 주식시장에 미친 파장과 이후 책임회피성 사과를 직접 목격하였으며, 선거 유세장에서도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산 검토나 타당성 조사도 없이 남발하는 '묻지 마식 개발 공약', 지역과 계층을 교묘하게 갈라치는 발언들이 대표적이다.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과 뒤늦은 수습을 보며 대중은 피로감을 느낀다. 권한을 향유하고 책임은 회피하려는 자는 기업의 CEO는 물론 공인(公人)이 될 자격도 없다. 시장과 사회의 평가는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다는 점을 리더들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많은 대구시 산하 공공기관들도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게 된다. 선거 국면마다 되풀이되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유혹이 이번에도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공공기관은 지역 산업을 육성하고 시민의 혈세를 운용하는 '공익적 책무'를 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기관 CEO 임명은 그 분야의 전문성과 혁신적인 사고를 갖추어야 함은 물론 앞에서 주는 교훈도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밖에 갖추어야 할 자질로는 첫째, '덕(德)'에 기반한 청렴과 신뢰다. 이는 민·관 모두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덕목이지만, 특히 공공기관임을 감안하면 조직원들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투명성과 인격을 갖춰야 한다.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공정한 잣대를 세우는 청렴함이 뒷받침될 때 조직 내에는 강력한 결속력이 생긴다. 둘째, 판단에 대한 '추진력(力)'과 공익적 통찰이다. 리더는 결정하는 사람이다. 대구의 미래 산업을 콘텐츠화하고 이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하는 것은 리더의 과감한 결단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추진력의 끝은 항상 사익이 아닌 지역 발전이라는 공익을 향해야 한다. 셋째, '방패'가 되어주는 무한 '책임(責)' 경영이다. 지시는 하면서 후일 책임을 두려워하는 CEO의 모습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한다. 공공기관 특유의 보수성과 복지부동을 깨는 유일한 열쇠는 리더의 책임감이므로 "실패의 책임은 내가 진다, 마음껏 창의적으로 일하라"고 선언하는 CEO가 있을 때, 구성원들로부터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더해 중요한 덕목은 애향심이다. 훌륭한 인재를 전국에서 두루 발굴하되,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잠시 자리를 구하는 사람은 아닌지 채용 과정에서 철저히 검증하여야 할 것이다. 대구의 골목을 알고 시민들의 땀방울을 이해하며 지역 발전을 위해 밤잠을 설칠 정도의 인물인지를 말이다. 왜냐하면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이 전제될 때 비로소 책임지는 용기가 발현되기 때문이다. 결국 리더십의 완성은 책임이다. CEO는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자리이다. 한 사람의 판단과 언어가 시장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깊이 자각하고, 임기 동안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경영자, 그런 리더십의 등장을 대구 시민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2026-06-02 16:44:20
[교육칼럼]중간고사 잔혹사… '상위 10%' 변별력 전쟁 시작됐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에 따른 내신 5등급제 도입이 대구 지역 고등학교 평가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2026학년도 1학기 첫 중간고사를 치른 대구 고교 전반에서 '상위 10% 변별력 확보'를 목표로 한 초고난도 출제 경향이 확인됐다. 과거 4%에 불과했던 1등급 기준이 완화되면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동점자 전원 1등급 처리'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몇몇 일선 학교들이 일제히 시험 난이도를 수능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 결과다. 이로 인해 수성구 일부 고교는 물론, 상대적으로 내신 획득이 수월하다고 평가받던 비수성구 지역 일부 고교들까지 점수 폭락 사태를 맞이하는 등 일선 교육 현장이 당황하고 있다.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인 점은 출제 범위의 파격적 확장이다. 대구에 있는 A고등학교는 이번 1학년 국어 시험에 190여 페이지에 달하는 현대 소설 단행본 한 권을 통째로 출제 범위에 포함시켰다. 단순 요약본 암기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고배점 주관식 서술형 문항이 변별력의 핵심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B고등학교의 경우 고교 입학 후 처음 치르는 영어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문항 상당수를 고난도로 채워 넣었다. 시중 학원의 내신 대비 문제집이나 학원에서 나누어주던 과거 기출 유형에만 의존했던 중·하위권 학생들은 무방비 상태로 참혹한(?) 점수를 받아들여야 했다. 내신 우회 전략을 노리고 비수성구로 진학한 상위권 출신 학생들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지역 학원가에 따르면 일부 고교들은 1학년 일부 과목 중간고사 평균 점수가 지난해 동기 대비 대폭 하락한 점수를 기록하는 곳도 있을 전망이다. 비수성구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한 수성구 출신 한 학생의 토로는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학교 시절 전교권 성적을 유지했고 고교 선행학습도 2회독 이상 마쳤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형태의 신유형 심화 문항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술형 배치 때문에 손도 대지 못한 문제가 허다했습니다." 고 1, 2 자녀를 둔 일부 학부모들의 불안감 역시 고조되고 있다. 1등급 비율이 기존 4%에서 10%로 확대되면서 내신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 기대했던 학부모들은 배신감을 감추지 못한다. 수성구의 한 학부모는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전교 등수 안에 들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1등급이 10%로 늘어난다고 해서 내신 부담이 줄어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등급 인플레이션에 따른 '동점자 양산'을 막기 위해 시험을 완전히 수능형으로 꼬아서 출제했습니다. 단순히 성실하게 교과서를 외우는 수준의 공부로는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인플레이션 차단용 불내신' 현상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향후 2028 대입 고교 평가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라 진단한다. 정량적인 텍스트 장악 능력과 낯선 지문을 현장에서 즉각 분석해내는 본질적인 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진학 이후 내신 경쟁에서 어쩔 수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예비 고등학생 시기인 중학교 3학년 과정에서 단순 유형 반복 학습이나 진도 빼기식 공부보다는 호흡이 긴 텍스트 독해와 수능형 심화 추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체질 개선이 선행되어야만 향후 내신 공방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경민 크라스에듀 대표
2026-06-02 14:01:33
'꼬'라는 이름의 물건이 있었다.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애착 대상이었다. 초등학생이 돼서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꼬'는 '꼬질이'에서 앞 글자를 따온 이름이다. 담요의 모서리를 손바닥만 하게 잘라 만든 작은 천 조각. 오래 만지고 닳아 꼬질꼬질해진 모습 그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아이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잠들었고, 그 작은 조각에 마음을 기대고 있었다. 어느 날, 그 '꼬질이'를 잃어버렸다. 아이는 한동안 상심했고, 집 안에는 묘한 애도의 기운마저 감돌았다. 나는 같은 담요의 다른 모서리를 잘라 비슷한 모양으로 다시 만들어줬다. 촉감도 색도 거의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이건 꼬가 아니야." 같은 물건이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그 꼬가 아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 단순한 명명이 아니라는 것을. 이름은 대상과 맺는 관계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그 아이는 지금도 이름 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애완견은 '시끌이', 내가 타는 자동차는 '둥이', 지우개는 '느림보'와 '빠름보'라 부른다. 청소기에는 '봉봉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유치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행위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름에는 애정이 스며들고, 기억이 쌓이며, 관심이 머문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자, 그 존재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이름 없는 사물이 관계의 대상으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비로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수많은 사물과 공간, 사람을 스쳐 지나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고 감정을 나눈 대상만이 오래 남는다. 이름은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며 관계를 지속시키는 장치다. 때로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흩어진 경험을 하나의 질서로 묶어준다. 이름이 붙는 순간 사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담은 존재가 된다. 문화 또한 이러한 이름짓기의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도시의 거리와 공간,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의미가 쌓이고 기억이 공유되며 하나의 감정이 축적된다. 이름을 가진 존재는 특별해진다. 그 이름 속에는 함께한 시간과 기억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일. 어쩌면 인간은 이름을 붙이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2026-06-02 11:06:54
[사설] 형소법 개정 임박, 검사 보완수사권 유지는 필수
검찰청을 없애고 공소청 체제로 전환하는 법 시행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후속(後續) 입법인 형사소송법 개정이 지방선거 이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러나 제도 개편이 속도에만 매몰돼 '국민의 권리 보호와 범죄 대응'이란 형사사법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쟁점은 검사의 보완(補完)수사권이다. 여당은 보완수사권을 없애려 하고, 야당과 법조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법무부 입장도 여당과 다르다. 1일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는 보완수사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 중 44.3%가 검찰의 보완수사를 거쳤다는 내용이다. 이는 검사가 경찰의 최초 수사에서 놓친 증거를 확보하고, 피해자 진술을 보강하며,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실관계를 재확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최근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특별사법경찰관들이 '검사 수사 지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점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일수록 보완수사의 중요성은 커진다. 성범죄, 아동학대 등은 피해자 진술만으로 사건을 판단하기 어렵고, 초기 수사의 작은 허점이 무죄 판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범죄와 첨단범죄의 경우 디지털 증거 확보와 자금 흐름 추적, 공범 관계 입증 등 전문성이 필요하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더라도 공소 유지(公訴維持)의 책임을 지는 검사에게 최소한의 보완수사권이 없다면 범죄 입증 능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고 보완수사요구권이나 보완조사권만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어정쩡한 절충안(折衷案)이다.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만 있고, 직접 수사를 할 수 없다면 사건은 기관 간 떠넘기기로 시간만 끌게 된다. 보완조사권 역시 피해자 면담이나 기록 확인 수준에 그쳐, 재판에서 증거로 쓰지도 못한다. 검찰 개혁의 목적은 무조건적인 권한 축소가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고 범죄 대응 역량을 높이는 데 있어야 한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꼭 유지돼야 한다.
2026-06-02 05:00:00
[사설] 정청래, 李·朴 욕하기 앞서 조작기소 특검법부터 철회하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이른바 '감옥 3인방'으로 지칭하며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공격했던 세력이다. 역사 속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이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격전지 유세(遊說)에 나선 것을 지적한 것이다. 정 대표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의 행보(行步)가 민주당의 6·3 지방선거에 위협적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지만, 정작 민주당의 가장 큰 악재(惡材)는 '조작기소 특검법 추진'이다. 당초 민주당 압승이 예상됐던 지방선거 분위기가 '혼전(混戰)'으로 바뀐 것은 민주당이 지난 4월 30일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을 발의하고, 5월 중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특검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대장동·대북 송금 등 이 대통령 사건에 대한 재수사와 공소 취소 권한을 갖는 법이다. 이는 정치권력이 사법부 권한을 대신하는 것으로 '삼권분립, 평등 원칙 파괴(破壞)'에 다름 아니다. 야당은 물론이고 친민주당 성향 언론과 시민단체들까지 반발하고, 지방선거 지지율이 흔들리는 등 역풍(逆風)이 거세자 민주당은 '5월 중에 특검법안을 처리한다'던 당초 일정을 지방선거 이후로 미뤘다. 법안을 철회해야 마땅함에도 법안 처리 시기만 잠시 늦춰 국민을 속인 셈이다. 민주당 주장대로 이 대통령이 무죄이고, 검찰이 조작기소했다면 증거를 제시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된다. 그 쉽고 합리적인 절차를 두고 별도 법을 만들어 대통령 재판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민주당도 '이재명 유죄'를 인정한다는 고백(告白)에 다름 아니다. 정청래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공격했다'고 주장하지만, 조작기소 특검법안이야말로 헌법 파괴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지금 정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조작기소 특검법안을 철회하고, 다시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2026-06-02 05:00:00
[사설] 반도체가 가린 우리 경제 실상, 직시하고 보완책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 수출이 새 이정표(里程標)를 세웠다. 5월 수출액은 877억5천만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3월 800억달러 첫 돌파 후 두 달 만의 기록 경신이다. 올해 1~5월 누적 무역수지흑자만 1천19억달러로, 연간 최대 무역흑자였던 2017년 952억달러마저 훌쩍 넘어섰다. 올해 수출 9천억달러를 넘어 조만간 꿈의 1조달러 가능성도 언급된다. 1964년 수출 1억달러 달성을 디딤돌 삼아 중화학공업 육성과 무역 확대에 박차를 가한 한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고, 지난해 세계 여섯 번째로 연간 수출 7천억달러를 넘어섰다. 섬유와 가발, 철강과 조선, 자동차가 성장의 주역이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반도체 특수가 수출 지형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수출액 중 반도체 비중이 무려 42.3%다.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때보다 훨씬 높다. 1분기 수출 증가분의 82.8%를 상위 5대 기업이 차지했다. 이는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기업 간 성과 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 사상 최고 수출 지표에도 체감경기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AI 확산(擴散)의 성과가 일부 산업과 기업에 집중된다고 경고했다. 자동차 수출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현지 생산 확대, 중동 지역 물류 차질 등의 영향으로 감소세다. 중동전쟁 장기화는 유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을 여전히 자극한다. 산업 경쟁력을 굳이 저평가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거센 추격에도 한국은 비(非)IT 제조업 분야에서 독일·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냈다. 화장품, 식품, 바이오헬스, 전력기기 등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규모의 확대와 구조의 건전성은 다른 문제다. 반도체라는 성장 엔진이 강할수록 차체와 바퀴 상태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자동차, 석유화학, 중소기업 수출 어려움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경고 신호다. 사상 최대 수출액에 도취(陶醉)되기 전 이런 성과를 떠받치는 산업 기반이 얼마나 넓고 튼튼한지 재점검해야 한다.
2026-06-02 05:00:00
[관풍루]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李·朴 전 대통령의 국민의힘 후보 지원 유세에 이·박·尹 전 대통령을 싸잡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웠던 세력"이라고 비난고 비난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李·朴 전 대통령의 국민의힘 후보 지원 유세에 이·박·尹 전 대통령을 싸잡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웠던 세력"이라고 비난. 실력 들통날까 토론 회피한 주제에 입은 살아서. ○…김민석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유튜버 김어준 비판한 SNS 게시글에 '좋아요' 눌렀다가 논란되자 취소했다고. 차기 당 대표 놓고 정청래와 경쟁 관계, 적의 적은 나의 친구….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노산군에서 복위된 단종처럼 거짓과 모함으로 덧씌워진 멍에를 벗고 제자리로 복위될 것"이라고. 박근혜 정치 재개 군불 때기?
2026-06-02 05:00:00
2026-06-01 18:50:21
지난 5월 19일 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경북의 역사·문화·관광 자산을 세계에 알린 뜻깊은 계기가 됐다. 선유줄불놀이와 종가음식 전계아, 가양주 태사주 등 지역 고유의 전통문화와 미식 콘텐츠는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경북 관광의 잠재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지난해 경주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경북이 다시 국제무대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국내외 관심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지역 관광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경북도는 이를 위해 일본 특화 관광 마케팅과 문화교류 후속 사업 등을 속도감 있게 준비하고 있다. 먼저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관광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온라인 여행사(OTA)와 연계한 관광상품 기획전, 현지 로드 마케팅, 인플루언서 초청 팸투어 등을 통해 일본 관광객 맞춤형 마케팅을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정상회담 친교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선유줄불놀이는 개최 횟수 확대와 관광상품 연계를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간 관광 콘텐츠로 육성해 나갈 예정이다. 경북도와 일본 나라현 간 문화교류도 한층 확대된다. 전통예술 교류 공연과 청년 창작자 협력, 웹툰 창작 교류 프로젝트, 전통음식·전통주 교류 등을 통해 정상외교의 성과를 민간 중심의 지속 가능한 교류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상호 간의 문화적 공감대를 넓히고 관광·경제 협력으로 이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관광 활성화는 마케팅과 행사 개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체류형 관광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통과 숙박, 관광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광역 관광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일본의 오사카-교토-나라 관광 벨트처럼 대구를 관문으로 경주와 안동을 잇는 대구경북 관광권역이 구축된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초광역 관광 모델로 성장할 수 있다. 경북도는 지난 2월 대통령 주재 제11차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제시된 초광역 지역 특화 관광권 조성 정책에 발맞춰 대구국제공항·영일만항·동대구역을 중심으로 관광객 유입과 이동 동선을 연계하고 대구경북 권역 특화 관광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고택과 종가를 활용한 하이엔드 숙박 모델인 '한국형 파라도르'를 조성하는 한편, 주민이 주체가 되어 관광 수용 태세를 개선하는 '관광 새마을운동'을 통해 현장 중심의 친절·환대 문화 정착에도 힘을 쏟고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먼저 대구공항과 해외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인바운드 항공 노선 확대가 필요하다. 경북을 방문하고자 하는 해외 관광객들이 인천공항이나 김해공항을 경유해야 한다면 접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대구공항과 경북의 주요 관광지를 유기적으로 잇는 광역 교통체계 구축도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부는 올해 초 해외 관광객의 수도권 집중을 극복하고 지역 관광 활성화를 통해 2030년까지 방한 관광객 3천만 명 달성이라는 국가 목표를 수립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형성된 국제적 관심을 실질적인 관광 성과로 연결해 경북이 지역 관광의 선도 모델을 제시할 시점이다. 한일 정상회담 in 안동이 경북 관광 대도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는 속도감 있는 실행이 필요하다.
2026-06-01 16:36:08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과 조계사 사이에 수송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3·1운동 민족대표 중의 하나인 이종일 동상이 서 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터, 숙명여학교 옛터, 중동학교 옛터, 대한매일신보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Thomas Bethell)이 창간한 항일 신문으로 알려져 있다. 베델은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정의의 필봉을 휘두르다 37세의 나이에 요절한 애국적 항일 언론인으로 회자되고 있다. 미안하고 서글픈 얘기지만, '역사적 사실(historical)'은 이와는 너무도 다르다. 통감부의 비밀 수사보고서, 영국 상해고등법원의 재판 기록과 금융 거래 추적을 통해 '펜으로 일제에 맞선' 항일 영웅 베델의 신화를 발가벗겨 본다. 1872년 영국 항구도시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베델은 고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10대 후반, '기회의 땅' 일본에 진출한다. 고베에서 영국산 면직물·잡화 무역상으로 일했으나 치열한 경쟁에 밀려 파산 위기에 처한다. 1904년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던 시기에 발발한 러일전쟁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icle) 특파원으로 취업하여 한반도로 건너왔다. 당시 대한제국은 격동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불안한 정세, 어리숙한 지도부, 문란한 사회 질서의 틈새에서 망국의 기운이 싹 터 올랐다. 일본과 영일동맹을 체결한 영국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전폭 후원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봉쇄했다. 러일전쟁 종료 후 을사보호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게 넘어가고 통감부가 설치되었다. 일본은 대한제국과 1904년 제1차 한일협상을 체결하고 일본의 재정 전문가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郎)가 대한제국 재정 고문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대한제국 황실은 국고를 사유화했고, 공직과 지방 수령 자리는 매관매직으로 채워졌다. 뇌물을 주고 벼슬을 산 지방 수령들은 아전들과 결탁해 과세 농지 경작면적을 고의로 축소 신고하여 세금을 대거 착복했다. 그 결과 세입의 3분의 2가 탐관오리 주머니에 들어가 정부 재정은 완전 초토화 상태였다. 여기서 철저히 이권을 좇아 움직이는 베델의 모험가적 상인 기질이 제 세상을 만나게 된다. ◆고종과 베델의 공생 관계 메가타 고문은 1906년 10월, 조세징수 규정을 공포하여 지방 수령과 아전의 징세권을 박탈했다. 세금은 중앙정부가 새로 작성한 과세대장을 바탕으로 직접 징수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그 결과 지세 수입이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대한제국의 치명적 문제는 극도로 문란해진 화폐 제도였다. 조정은 당백전·당오전·백동화 등을 미친 듯이 발행하여 황실 비자금으로 전용했다. 특히 화폐 제조권을 막대한 돈을 받고 민간 업자에게 넘겨 밀수입 위조 화폐가 판을 쳤다. 1905년 국내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무려 576종에 달했는데, 그중 태반이 밀조된 위조 화폐였다.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메가타 고문은 대한제국 조폐 업무를 폐지하고, 1905년 1월 화폐조례를 공포해 일본 제일은행권을 법정 화폐로 유통시켰다. 여기서 역사적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세금 제도와 화폐 개혁은 백성들 입장에서는 황실과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를 끝장내는 축복이었다. 황실과 양반 관리 입장에서 보면 백성들을 등쳐먹는 '젖과 꿀이 흐르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날벼락이었다. 게다가 고종이 국고를 빼돌려 곳곳에 숨겨놓은 황실 비자금을 추적하여 압류에 나서자 고종은 통감부 견제 여론을 조성해줄 인물을 찾던 중 베델과 조우하게 된다. 통감부가 재정 개혁으로 숨통이 조여오자 고종은 막대한 비자금을 제공하여 반일 의병 봉기를 부추겼고, 통감부를 공격할 언론을 물색했다. 베델은 박봉에 시달리며 현장에서 박박 기는 특파원(종군기자)으로 고생하느니 황실의 자금을 지원받아 '항일 언론' 포장을 씌운 신문을 창간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을 마쳤다. 베델은 자신의 영국 국적과 치외법권을 무기 삼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고종에게 거액의 창간 및 운영자금을 요구했다. 비밀 자금 전달의 중간 창구는 러시아 여성 손탁이었다. 고종은 이 돈을 매개로 베델에게 청부 항일 기사를 요구했고, 베델은 황실 비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고종이 원하는 논조의 기사를 써주는 언론 청부업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어두운 거래의 실체는 사료로 증명된다. 정진석 등의 연구에 따르면, 고종이 베델에게 건넨 비자금은 약 2만 원에 달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최소 15억에서 20억 원에 이르는 액수였다. 통감부 경무국은 밀정을 통해 베델이 정기적으로 황실 측근들로부터 영수증 없이 거액의 뭉칫돈(내탕금)을 수령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실제로 비자금을 배달하던 중간 연락책이 체포됐고, 그가 전모를 자백하면서 고종과 베델 간의 비밀 거래 실체가 드러났다. 베델은 고종에게 받은 자금을 신문사 공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빼돌렸다. 영국 상해고등법원의 조사 결과, 베델은 이 돈을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개설된 개인 계좌에 예치해 두고, 호화로운 귀족식 생활을 영위하는 데 탕진했다. 그는 시내 한복판 정동 인근에 대저택을 매입해 여러 명의 조선인 하인을 거느렸고, 최고급 위스키와 정찬을 즐기며 사교계의 거물로 행세했다. 베델의 '항일 기사'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한 숭고한 구국 정신이 아니라, 황실의 검은 비자금을 받고 써 준 일종의 청부 기사였다. ◆국채보상금 횡령의 주범, 베델 베델의 파렴치 행각은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성금 유용에서 절정에 달한다. 민초들은 술·담배 끊고 끼니 굶어가며 모은 눈물겨운 성금을 대한매일신보사에 예치했다. 베델은 자사에 예치된 성금 20만 원 중 3만 원(현재 가치로 약 20억~30억 원)을 횡령했다.이 돈을 미국인 전기사업 투기꾼 콜브란의 회사와 광산 관련 주식을 매입했고, 호텔을 운영하던 프랑스어학교 교사 에밀 마르텔에게 담보 없이 고율의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불법 대출해주었다. 쉽게 말하면 국채보상금을 빼돌려 고리대금업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 수익은 국채보상기성회에 보고하지 않고 베델의 개인 주머니로 들어갔다. 1909년 5월 베델이 사망하면서 이 돈은 회수 불가능해졌다. 민초들이 밥 굶고 담배 끊어가며 모은 돈을 횡령하여 베델과 콜브란, 마르텔은 정동의 고급 사교클럽에서 샴페인을 홀짝이며 성금을 나눠먹은 것이다. 베델의 횡령 실태는 1908년 6월, 영국 상해고등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통감부가 제출한 베델의 금융 거래 내역과 압수 수색 자료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영국 법원은 베델에게 '선동 및 치안 문란' 혐의로 3주간의 금고형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한매일신보의 양기탁이 재판 과정에서 무죄 방면된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금의 실질적 통제권과 계좌 관리 주권이 영국인 베델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자금을 위탁받은 지도층의 심각한 내부 부패와 이방인 사기꾼의 파렴치한 횡령으로 자멸한 역사적 참극이었다. ◆베델의 사후 일본에 신문사 팔고 먹튀 베델은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로 1909년 5월 1일 37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국내에서는 그가 죽으면서 "나는 죽을지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급사한 사람이 유언을 남길 시간이나 있었는지 의심이 가지만, 그 내용이 더욱 가관이다. 남편이 죽자마자 부인 메리 게일(Mary Maud Gale)은 가장 먼저 남편의 개인 계좌 잔고와 신문사 자산을 사유 재산으로 확보했다. 메리는 남편이 빼돌린 국채보상 성금을 유족 생활비와 변호사 비용으로 유용했다. 성금 반환 요구가 빗발치자 메리는 "남편이 조선을 위해 일하다 사망하여 입은 손해를 성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반박했다.베델의 미망인 메리와 대한매일신보의 운영권자인 영국인 알프레드 만함(Alfred W. Marnham)은 통감부 외무국장 고마쓰 미도리(小松緑)와 비밀리에 매각 협상을 벌였다. 메리는 매각 대금으로 16만 원(현재 가치로 150억~200억 원)을 요구했고, 일본 측은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 통감부가 거액을 들여 이 신문을 매입하는 조건이 흥미진진했다. 첫째, 매각 대금 수령과 동시에 영국인 전 직원은 즉시 한국을 떠나고, 향후 언론 활동에 관여하지 않는다. 둘째, 신문사의 제반 시설은 물론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 일체를 통감부로 이관한다. 셋째, 통감부는 베델 일당이 그동안 저지른 국채보상금 횡령 및 유용에 대해 일체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죄상을 덮고 막대한 현금을 챙긴 베델의 유족과 영국인 동료들은 매각 절차가 완료된 1910년 6월 14일, 본국으로 튀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메리는 신문사 팔아 챙긴 돈, 빼돌린 국채보상 성금으로 풍족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남편 베델을 "약소국의 인권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고결한 언론 영웅"으로 포장했다. 한일병합 다음 날인 1910년 8월 30일, 대한매일신보는 제호를 '매일신보'로 바꿔 조선총독부 공식 기관지로 데뷔했다. 어제까지 고종 비자금을 받아 '항일' 선동 기사를 썼던 기자들은 하룻밤 사이 총독부의 월급쟁이 기자로 돌변했다. 이들은 해방될 때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하는 나팔수로 맹활약했다. 펜앤마이크 대기자
2026-06-01 11:25:03
[사설] 이공계 인재 양성 목표 영재학교 경쟁률 최고치, '메디컬 쏠림' 바뀌나
이공계(理工系) 인재 양성이 목표인 영재학교의 2027학년도 경쟁률이 6.21대 1을 기록했다. 전국 8개 영재학교(1곳 제외) 669명 모집에 4천155명이 지원, 전년도에 비해 지원자 수가 8.6%나 증가했다. 지원자 수도 역대 최대 규모이고 경쟁률 역시 영재학교 간 중복 지원이 금지된 2022학년도 이후 가장 높다. 수치보다 중요한 건 맥락이다. 2027학년도부터 지역의사제가 도입돼 의대 진학이 다소 유리해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영재학교 경쟁률이 오히려 상승해서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에 반도체 또는 하이닉스를 더한 '의치한약수반'이나 '하의치한약수'라는 신조어(新造語)로도 설명 가능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과 파격적인 성과급에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기존 '메디컬'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최태원 SK그룹·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최근 "많은 분들은 의사로 사는 게 공대를 나와 엔지니어로 사는 것보다 윤택할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 인식이 틀렸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AI 시대에는 수학자가 의사보다 훨씬 더 돈을 많이 버는 환경이 올 수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이공계 르네상스'의 서막(序幕)일지,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한 경기 사이클에 편승한 또 하나의 쏠림일지는 판단하기 이르다. 반도체 계약학과 인기가 결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라는 두 회사를 향한 취업 경쟁으로 수렴된다면, 그것 역시 '메디컬 쏠림'과 다를 바 없는 '반도체 쏠림'일 뿐이다. 진짜 변화는 따로 있어야 한다. 반도체뿐 아니라 공학계열, 수학·물리 같은 기초과학으로 확산될 때 더 큰 의미가 있다. 기초과학은 당장의 취업 보장도, 억대 성과급도 없다. 그럼에도 그 토양 없이는 반도체도, AI도, 다음 세대의 산업도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영재학교로 몰리는 학생들이 그 가치를 알고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참에 연구 환경과 처우 개선에 공(功)을 쏟아야 한다. 그건 정부의 몫이다.
2026-06-01 05:00:00
[사설] "투표 포기는 국민 속이고 사익 취하는 자에게 기회 주는 것"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1일 새벽 엑스(옛 트위터)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라며 "정치 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경구를 소개하면서 "주권자의 침묵과 투표 포기는 국민을 속이고 사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며 나와 가족의 삶을 망치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오는 3일 예정된 지방선거 본투표(本投票)를 독려하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유권자인 국민은 단순히 투표하는 기계가 아니다. 유권자 개개인이 원하는 후보자를 선택(選擇)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 민주 국가의 주권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알권리'의 충족은 민주 선거의 전제 조건이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6·3 지방선거의 경우 일부 후보자들이 의도적으로 TV 토론(討論)을 회피(回避)하는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권자들에게 '기계적 바보 투표'를 유도한 셈이다. 특히 서울시장 후보 TV 토론은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의 거부로 사전 투표 개시 5시간 전 단 1회로 끝났다. 개혁신당 김정철 후보가 토론 제안 거부 내역이 적힌 '정원오 토론 도망 달력'을 들고나와 공격할 정도였다. 정 후보는 "주제와 관계없는 흑색선전, 네거티브로 점철될 게 뻔한데 왜 (토론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권자(有權者)는 흑색선전과 네거티브의 '진실'도 알권리가 있다. 떳떳하다면 토론을 통해 거짓 선전의 진실을 밝히면 그만이다. 토론을 회피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전 투표 용지 노출에 따른 선거법 위반 논란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순 해프닝이라고 해명(解明)하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도 이런 적은 없었다. 당장 국민의힘은 "노골적인 관권선거이자 심각한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 발신이라는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부적절한 행위로 민주 선거의 4대 원칙 중 하나인 비밀투표를 훼손했다는 논란을 자초(自招)했다는 사실이다.
2026-06-01 05:00:00
[사설] "살고 싶다"는 전화마저 먹통인 현실, 이대로는 안 될 일
보건복지부가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의 응대율(應對率)을 높이기 위해 전문 상담 인력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최근 상담 전화 연결이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국가 구성원이 죽겠다고 전화했는데 전화가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상담 전화 응대 체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 이후 나온 후속 조치다. 복지부는 109 상담 인력을 현재 103명에서 300명까지 순차적으로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2024년 기준 자살은 한국의 10~49세 사망 원인 1위다. 또한 청년 자살률은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참혹한 오명(汚名)을 23년째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이나 저출생 대응에는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나라가,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지키는 일에는 왜 이렇게 인색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자살예방상담전화 번호를 2024년 109로 통합한 뒤 그 이용이 크게 증가했다. 2023년 21만9천650건이던 상담 인입(引入) 건수는 2024년 32만2천116건으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5만2천914건까지 늘었다. 109 번호 도입 이후 상담 수요가 46% 급증한 셈이다. 하지만 상담 인력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하루 평균 1천118건의 전화가 걸려 왔지만, 실제 응대는 532건으로 절반 이상의 전화를 놓치고 있었다. 특히 감정이 예민해지는 야간 시간대에 전체 상담의 절반 이상이 한꺼번에 쏠리면서 통화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말과 의지만으로는 단 하나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다운 예산과 정책이 함께 동반돼야 실효적인 현장 개선이 가능하다. 오늘 밤, 어두운 방구석에서 109를 누를 우리 이웃의 간절한 전화에 반드시 따뜻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응답할 수 있기를, 정부는 모든 재정과 역량을 쏟아부어 증명해야 할 것이다.
2026-06-01 05:00:00
[관풍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 사흘 앞두고 전남 찾아 "미우나 고우나 민주당"이라며 지지를 당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 사흘 앞두고 전남 찾아 "미우나 고우나 민주당"이라며 지지를 당부. 일부 지역 판세 불안에 "민주당이 호남에 효도 정치를 잘하겠다"고 호소, '불효자'의 읍소? ○…공정위,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가짜 전문가가 광고에 등장하면 '가상 인물' 표시토록 지침 개정. '효과 없으면 전 재산 건다'는 황당한 광고 없애려면 광고주 재산이라도 걸도록 법제화해야.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닮은 위험 교량(D·E등급), 전국에 117개. 예산 없어 다리를 새로 설치하지 못하고 민원 때문에 통제도 못 한다는 어이 없는 해명, 여전히 안전은 뒷전.
2026-06-01 05:00:00
2026-05-31 1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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