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작은것에도 관심을

필자는 길을 가다 말고 우두커니 서서 보도 블록을 깔고 있는 인부들의 작업을 홀린듯이 보고 있었다. 기왕에 잘 다져진 토대위에 고운 모래를 정성껏 깔고 그것을 연장으로 다시 잘 고른위에 블록을 어김없이 갖다 얹는 작업은 기계적이면서도 정성이 담겨 있었다. 감독이 지켜보는 것도, 누가 칭찬을 하는것도 아니건만 그 인부는 예쁜 보도블록으로 금방 덮여져 가리워질 보도바닥의 모래를 해변의 어린이가 모래성을 다듬듯 그렇게도 정성스럽게 다듬으며한장 한장의 보도블록을 깔아 나가고 있었다.필자는 최근의 련천 포사격 훈련장의 예비군 참사사건을 보면서 다소 엉뚱하지만 필자가 어느 외국의 학교부근에서 본 가로 보수공사의 현장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일정한 기간내에 정해진 인원의 예비군 동원훈련을 소화해야 하는 군대가8-9명의 인원을 필요로 하는 1문의 포에 20명을 배치하고, 위험한 장약이나 고폭탄을 무경험의 타병과 출신 예비군이 다루게 한것은 이번 예비군 참사의 개연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폭약의 불완전한 보관상태, 예비군이 태우고 버린 담배꽁초로부터의 인화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연천의 예비군참사는 우리 주변에 광범하게 널려있는 갖가지 사고의 현재화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겠다.

엊그제 일어난 한강의 헬기 추락사고, 그리고 그전에 있었던 철도사고도 기실은 그 다른 외양에도 불구하고 원인은 같은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해방후 각종의 대규모 사고에 접하면서 그러한 사고의 원인이 우리의가난과 국력의 취약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그러나70년대 후반이후 우리는 정치적인 비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국력의 신장을 체감하게 되고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가난의 극복과 더불어 선진국에의 진입을호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이 시점에서는 문민정부에 기반한 정치적인 민주주의를 기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향유하고 있는경제적 부, 정치적 민주주의, 그리고 선진국으로서의 자부가 과연 내실을 갖춘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을때 우리의 대답은 주저가 앞설 수밖에 없다.우리의 가정을 가득 채운 전기-전자기기, 늘어난 도로망과 거기에 가득찬 자동차, 치솟는 고층빌딩과 일상화된 외국및 외국인과의 교류등은 우리사회의성장을 실감케한다. 그리고 아직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정치적 절차나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최근 수년간 크게 신장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같은외형과 표면을 조금만 들추고 그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엄청난 외형, 잘포장된 표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적 부조리와 무질서가 자리잡고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직도 달성해야만 할 총량과 외적 규모에만 연연할 뿐,개개 사안의 정성적 분석이나 완벽함에 대한 집착은 지극히 취약하다. 우리는 곧잘 엄청난 사업을 그렇게도 값싸게, 그리고 빨리 성취한데 자족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세심하고 완벽하게 이루어 졌느냐에 대한 장인으로서의배려에는 비교적 무심한 편이다. 그러나 경제적.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일정한 양적 수준에 이른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양적 팽창만이아닌 엄격한 질적 통제이다. 우리는 그동안 오늘날의 우리사회를 만들기 위해 좌고우면할 겨를도 없이 부지런히 달려 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들에게필요한 것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우리들이 소홀히 취급해 온 작은 것,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돌리는 일이다. 그리고 이 작고 보이지 않는 것을새삼 소중히 하면서 이것을 갈고 닦을때 우리가 이룩한 외적.양적 성취는 그소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세심하게 보살피고 북돋우는 일은그 누구도 눈여겨 보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처럼 보잘것없는 일은 센세이셔널한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매스컴이 관심을 가질일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크고 작은 사업은 결코 현상을 뛰어넘는 도약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액체가기화하기 위해서는 불등점에서의 지속적인 가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범한이치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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