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위원장 권노갑최고위원)는 12일 오후 서울마포 가든호텔에서 장태완당시수경사령관과 김진기전육본헌병감으로부터 신군부의 12.12쿠데타계획과 당시정황에 대한 공개증언을 들었다.이날 증언은 민주당에서 권위원장을 비롯해 장기욱 강창성 강철선 김옥두 제정구의원등이 질문을 하고 증언자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예정시간보다 1시간여가 넘게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12.12는 어떻게 일어났다고 보는가.
*장태완전수경사령관=정권찬탈이 목적이었다. 전두환씨는 5.16당시 대위로육사생도들의 지지데모를 주도하는등 정치군인으로 일관하며 하나회를 결성했다. 공화당정권 18년동안 하나회회원들은 대통령경호실 수경사 특전사 보안사중앙정보부 등에 배치돼 정치훈련을 받았고 통치권력이 취약한 시기에 정권장악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따라서 12.12는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전단계로서 군권을 장악한 것이며 광주사태를 통해 명분을 축적한뒤 정권을 장악했다.
-12월6일 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이 12월12일 장사령관을 만찬에 초대한 것은장사령관을 비롯, 정승화총장의 측근들을 묶어두려는 사전음모라고 생각하는가.
*그때는 보안사 특전사 수경사령관등 핵심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잘 몰라 상호교류의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던 차에 전장군이 초대해 사전계획인지 몰랐다.-전두환씨가 12.12를 전후해 돈을 펑펑 썼다는데 사실인가.*김진기전육본헌병감=촌지를 보내 나도 1백만원을 받은적이 있다.*장전사령관=전씨는 하나회를 중심으로 영관시절부터 기고만장했다. 재벌들이 뒷받침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전장군이 5년선배인 나에게 김장에쓰라고 돈을 준데 대해 그가 통이 크거나 좀 돈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강창성의원(전보안사령관)은 10.26이후 10개월동안 보안사정보비는 약5백억원으로 추정되며 이 자금은 청와대의 비자금금고와 정보부장서리로서의 정보비 매월 많으면 20억원 그리고 기타 업자들로부터 받은 돈등이라고 말했다)-당시 신군부가 총장공관에 들이닥치면서 노재현국방장관이 행적을 감추었다.그의 행적을 알고 있었는가. 그의 태도를 어떻게보는가.
*12.12반란을 저지하지 못한것은 최규하당시 대통령의 군통수권을 보좌해야할 노장관이 이를 회피하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는 한남동공관에서 총소리가 들리자 담을 넘어 단국대강당으로 몸을 피한뒤 국방부에 들어갔다가 미8군으로 도망갔다. 결국 1공수단에 의해 붙잡혔다. 그는 또 내가 전화로 병력출동을 요구하자 [장태완이, 너 왜 자꾸 싸우려고 해, 말로 해]라며 허가하지않았다.
-사법처리를 역사에 맡기는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12.12가 반란이라면 마땅히 사법처리돼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역사의 심판은 그 당시부터 시작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법처리함으로써 이같은 반란행위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전방을 지키라고 준 탱크를 빼내 서울로 진격했고 3개공수여단을 동원했으며육군소장이 대통령을 협박했다. 이는 이적행위일 뿐아니라 군사반란이며 집단항명이다. 이런 행위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법치국가라고도 문민정부라고도할 수 없다.
-12.12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국가위기가 초래됐다고 보는가.*당시는 18년간의 군정이 종식되고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시기였다. 따라서 위기는 절대 없었다. 일각에서 군의 개입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정승화계엄사령관은 [군은 절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헌병감의 직책에서도 쿠데타음모를 사전에 알수 있지 않은가.*김전헌병감=범죄수사단이 합수부에 파견돼 이들로부터 정보보고를 받을수있었으나 수사단장이던 우경윤대령이 반란군에 가담해 정보가 차단됐다.-10.26직후 김재규체포는 누가 했는가.
*정총장의 지시를 전사령관과 함께 내가 받았으며 보안사병력을 지원받아 내가 체포해 보안사로 신병을 인계했다.
-당시 군내부에서 우군끼리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많았다는데.*장전사령관=나라를 훔치는 것보다 더 큰죄가 어디있느냐. 피가 아니라 생명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지켜야한다. 나는 당시 군사력을 동원, 반란군의 초토화를 지시했었다. 수십만명의 정부군이 총한발 쏘지않고 무너진데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
-노태우전대통령은 87년 관훈토론회에서 [상관에게 행한 불경한 짓보다 더한명분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들이 정권장악음모를 꾸민것보다 더 위급한 일은 없었다.-자살한 정병주특전사령관의 죽음에 의혹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정장군과 김진기장군 그리고 나 3인이 언젠가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살아야한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그리고 내가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에정장군이 12.12문제로 글을 쓰느라 건강을 해치지 말고 우선 살아야한다는 편지를 보냈는데 유서 한장없이 자살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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