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미 관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고위회담에서 관계개선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와 그주변의 질서 전반이 개편될것으로 보임에 따라 특집 시리즈를 마련, 게재한다.북.미간 제네바 합의를 발판으로 추진될 양측의 전반적인 관계개선에 영향을 미칠 요인들은 크게 북.미 쌍방 문제와 한국 등이 연계되는 다원적인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사안에 따라 상호 연계되는 측면도 강한 이같은 분류는 최대 변수인 핵문제를 비롯해 정치.경제 등 모든 부문에 해당되는 얘기다. 또 북.미 쌍방 현안의연장선상에서 미국내 견해와 이해 조정이란 제 3의 측면도 북.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임이 물론이다.

여기에 북한의 권력 향방과 이에 따른 대미 정책 결정이란 또다른 변수가 대두될 수 있다. 그러나 북.미간에 화해.공존 쪽으로 이미 큰 흐름이 잡힌 마당에 파국을 얘기하지 않는한 이같은 {북한 변수}는 적어도 현시점에서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떨어진다는게 중논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관련해 무엇보다 주목되는 사안은 휴전협정 처리 문제다.

북.미간은 물론 한국과 중국이 직접 당사자로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위상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미묘한문제다.

이에 대한 한.미 관계자들은 지난 70년대 미.중 관계개선이 이뤄질 당시 취해졌던 방식이 원용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본다.

양측은 한국전 주요 참전국으로 휴전 협정에 북한과 함께 직접 서명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이 문제를 어물쩡 넘겼음을 한국 고위인사는 상기시켰다.

법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전쟁 상태지만 적대 관계가 사실상 청산됐다는 현상을 감안해 이 문제를 건너뛰기로 미.중간에 묵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미.중 관계정상화에 관한 공개 기록 등에 이 문제가 적시되지 않았음을 이인사는 상기시켰다.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는 미관계자도 비슷하게 내다본다. 그는 [북한이 지난해 북.미 고위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및 평화협정 문제를 강도있게 내놨다가미국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것을 일단 서랍 속에 집어넣은 상태]라면서[이번 제네바 협상에서도 이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자기들에게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이 보장하라고 요구하면서 미의회의 서명이 든 {포괄적인 평화 보장안} 같은 것을내놓도록 최근들어 백악관측에 요구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북.미간 관계 개선이 일단 휴전협정과는 별개로 추진되고 주한미군문제도 이같은 맥락에서 남북한과 미국간에 양해되는게 아니냐는 관측이다.북.미간 경제관계개선도 결코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우선 미의회가 행정부에 채우고 있는 족쇄를 풀어야 한다.

적국교역 금지법과 미수출입은행 지원 봉쇄 및 자산동결 조치 등 그간 북.미간 경협을 가로막아온 각종 규제를 폐지 또는 완화하는 권한을 대부분 의회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의회는 지난주 국방관련 법안에 첨부하는 형식으로 대북 재정 지원을 다시한번 봉쇄함으로써 규제를 푸는 문제와 관련해 백악관에 부담을 줬다.

의회의 이같은 조치가 40억달러로 추산되는 경수로 재정 지원에서 미정부가가급적 발을 뺄 수 있도록 사실상 지원 사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백악관으로서는 대북 경협을 추진함에 있어 여전히 반북한 감정이강한 의회에 이처럼 발이 묶일 수 밖에 없다는게 부담임이 틀림없다.북.미 경제 관계에 한국이 연계되는 점도 미국에 짐이 되는 모양이다. 이와관련해 미상무부가 지난 1월15일자로 의회에 제출한 {93년 대외무역정책 연례 보고서}에 흥미있는 대목이 있다.

북한에 대한 금수 문제를 언급하면서 남북경협 확대가 미기업에 부정적인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즉 [남북 경협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합작하고 있는 한국기업이 (대북문제와 관련해) 남한법에는 저촉되지 않을지 모르나 미국내법상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는 결정을 내릴 수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상업회의소가 지난주 본국에 미기업인들이 북한을 방문할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촉구한 점도 관심을 끈다.

우리가 특히 예민할 수 밖에 없는 북.미 관계 정상화 정도와 그 속도에도많은 변수가 얽혀있다.

이번 합의에서 사실상 어물쩡 넘어간 북한의 {핵과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우선적으로 걸리는 문제다. 이는 경수로 지원이란 장기적인 문제와 맞물리면서 향후 북.미간의 특히 정치적 관계 정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게 뻔하다.

물론 이견이 없지 않으나 미관계자들은 이 분야의 북.미 관계 개선이 의외로빨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과거 미.중 관계 개선시 연락사무소가 대사관으로 바뀌기까지 6년여가 소요되기는 했으나 중.미에 비해 북.미간에는 {정리해야할 사안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일이 훨씬 수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핵문제가 심각한만큼 의외로 간단히 풀릴 수 있으며 이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과거 중.미 관계 개선 때보다 넓어지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미국이 일각의 관측과는 달리 이익대표부를 건너 뛰어 연락사무소를 설치키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또연락사무소를 제 3국이 아닌 상대방의 수도에 직접 두기로 한 점도 의미가있다는 것이다.

반면 연락사무소에 너무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관련해 한 미관계자는 합의문에 {외교대표부}란 표현이 쓰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는 북.미 관계가 현시점에서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성격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는 그러나 이 표현이 갖는 {진행형}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의미있게 덧붙였다.

북.미가 화해.공존 쪽으로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디뎠으나 갈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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