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의 푸른나무-강은 어디서 시작되나

토요일 오후에는 늘 배추를 다듬고 무를 썬다. 김치와 깍두기에 소금을 뿌려재어 둔다. 토요일 저녁은 술 손님이 부쩍 준다. 조금 일찍 문을 닫는다."아주머니, 내일 나와서 김치 담그는 일 도와드릴게요. 그럼 저는 갑네다"연변댁이 깍듯이 인사를 한다. 시계 작은 바늘이 10에 있다."그래요? 허긴 한양가든은 일요일에 가족 손님이 많으니 거기서 자두 일을도와줘야겠구려. 그럼 내일 와요. 점심이나 함께 먹게"인희엄마가 말한다.

이튿날이다. 인희엄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 플라스틱 들통에다 김치 양념을 버무린다. 그옆 들통에는 포기배추가 재여 있다. 총총 쓴 깍두기도 한들통이다. 나는 숨 죽인 배추단을 인희엄마에게 넘겨준다. 인희엄마가 양념을 배추속에다 바른다.

"벌써 시작하셨네"

연변댁이 들어온다. 총각은 쉬라며 연변댁이 내 일을 맡는다. 안방에서 인희가 나온다. 동화책을 들고 있다.

"시우오빠. 내 동화책 읽어줄까"

인희가 의자에 앉는다.

"인희야, 시우를 아저씨라 부르라 했잖아. 너도 까마귀 골통이니? 왜 그렇게잘 까먹어"

인희엄마가 나무란다.

"시우 아저씨? 이상하네. 어쨌든 앉아. 아저씬 글을 못 읽으니 내가 읽어줄게"

인희가 책을 펼쳐 든다.

"시우야, 넌 마늘통 가져와 마늘 까. 까면서 들어도 되잖아"인희엄마가 말한다.

나는 마늘통을 가져온다. 마늘 껍질을 깐다. 인희가 책을 읽는다."시골에 국민학교가 있었습니다. 집이 먼 어린이들은 학교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 버스 기사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하앴습니다. 이제 버스운전 일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시 아저씨를 만날 수 없대 ' '돌아오는 길에 들판과 댐에서 놀수도 없게 됐어 ' '그래 맞아. 아저씨 이야기도 들을 수가 없지 ' 그 소식을 듣고 우는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기사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인희가 침을 꼴깍 삼킨다.

"국민학교도 안들어갔는데 책을 저렇게 잘 읽다니, 인희가 참 똑똑합네다"연변댁이 말한다.

"입학 통지서가 나왔어요. 봄이면 이제 입학을 할겝니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저렇게 책 읽기를 좋아한답니다"

인희엄마가 자랑스레 말한다.

격동의 세계사를 취재하며 강철처럼 살다 간 세기의 여기자 아그네스 스메들리의 전기가 나왔다.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정규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녀가 세계를 뒤흔든 언론인,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책를 통해서도 하나의 신화로 규정되고 있다. 노신 네루 케테 콜비츠 주은래모택동 주덕등과 교분을 쌓으며 10여년간 종군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이자 여성해방운동가로 활동한 그녀지만 그 업적은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이 없었더라면 망각돼버렸을 정도로 과소평가되었다. 급진적 정치의식과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한 그녀의 이제껏 올바른 평가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출간된 이 책에서는 극단적 여성해방론자이면서도 정치와 성에 있어 천성적인 자유주의자이던 스메들리의 삶이 진지하게 펼쳐진다. 〈실천문학사, 7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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