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도시의 푸른나무(126)

단란주점은 자정이 지나면 문을 닫는다. 닫는 시간은 카운터 뒤 벽시계를보면 안다. 시계침 두 개가 하늘로 꼿꼿이 서서 포개져야 한다. 그때쯤이면 채리누나가 홀에 불 끄고 문 잠가 하고 말한다. 홀에 손님이 없다고 장사가 끝나지는 않는다. 대체로 룸에는 한두 패의 손님이 있게 마련이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손님이 가지 않을 때도 있다. 호스티스들도 그때까지 룸에서 손님과 함께 있다. 손님과 함께 외박을 나가기도 한다. 더러 방범대원과 경찰이 그런 시간에 들린다. 문을 두드린다. 맘보가 문을 열어준다. 룸의 가라오케 노래가 홀에까지 들려온다. 너무 늦잖소, 이제 보내야지 하고 단속반이 말한다. 처음 나는 그들을 보고 겁에 질렸다. 곧 겁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그 정도의말만 하기 때문이다. 콜라나 맥주를 마시며 다리쉼을 하고 가기도 한다. 그 대접은 채리누나가 맡는다. 그들은 돈을 내는 법이 없다.내가 국시집 옥상으로 돌아올 때는 거리가 한산하다. 차도 안다니고 사람도없다. 가로등과 네온사인만이 눈을 뜨고 있다. 서늘한 밤기온이 나를 쓸쓸하게한다. 졸음이 오고 피곤하다. 그럴때, 아우라지가 생각난다. 할머니가 아직도아우라지에 살고 있다고 경주누나가 말했다. 터벅터벅 걸어서 고향까지 가고싶다. 나는 할머니가 늘 부르는 '정선아리랑'을 읊조리며 걷는다. 나를 남들은음치라고 말한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할머니는 아리랑 노래말을 많이 알았다.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었다. 할머니는 젊어 홀몸이 되었다 했다. 징용에 끌려간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고모를 키우며 살았다고 했다. -나는 한이 많은 아낙이야. 네할아버지는 키가 팔척이고, 인물 잘난 장부였지. 그런데 청대같이 푸르던 나이에 그만 징용에 잡혀갔단다. 저 남양군도 어듸메로 갔지. 대동아전쟁 끝나면돌아온다며. 네 고모는 어릴때 홍진을 앓아 얼굴이 곰보였어. 남 갈 때 시집못가구, 스물둘에 사북 금광 놈팽이의 후처로 들어갔어. 자식이 다섯이나 달린홀아비한테. 시집간 이태 후에 애를 낳다 죽었지. 어미 젖을 못 먹으니 외손자도 따라 죽구. 의붓 형제 아래 어미 없이 천대받느니 지 어미따라 잘 갔지. 그부터 내 입에서 아리랑 노래가 떨어지지 않았어. 그걸 부르면 만고 시름이 사라지거던. 길쌈하며 콩밭 매며 입에서 떠나지 않는게 그 노래라.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싸리골에 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이나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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