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바닷가에서

오랜만에 바다엘 왔다. 휴일 하루를 이용하여 잠시 왔다 후딱 떠남이 아닌바캉스를 통한 바다와의 만남은 정말 푸근하고 넉넉하다. 3박4일의 갯가생활. 누가 감히 인생을 살맛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도태 아닌 자연의 선택**

우선 바닷가에선 햇살과 바람을 만난다. 햇살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번도변하거나 오염된 적이 없는 밝음의 원형.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 창세기의 빛은 여름 바닷가에서비로소 완성된다. 바람 또한 가벼운 존재는 아니다. 바람은 햇살과 더불어 '우화속의 외투'를 벗기는 친구 사이로 그 발원점은 영원이다. 그래서 바람은강약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속살거림·격렬함·흐느낌은 비올라의 선율이다. 음악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영원을 불러내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전생물계(Ecosystem)는 항상 자연의 포학과 은총밑에서 살아간다. 동전의양면과 같은 자연은 도태라는 말을 거부하고 '자연의 선택'이란 말로 자신을미화한다. 살아남은 모든 생물은자연의 은총을 찬양하고 자연의 학정에 길들여지는데 익숙해 진다. 이른 아침 물새발자국밖에 없는 바닷가에 나가 보라. 붉은 기운이 황금으로 물드는 저녁바다에서 장려한 낙조와 하나가 되어보라. 황홀함. 그것은 살아있으므로 느낄 수 있는 희열의 극치일뿐 다른 무엇은 아니다.

**후세들에 빌린 지구**

무릇 모든 생명체는 자연에 빚을 지고 사는 존재다. 바꿔말하면 지구는 우리들의 소유가 아니라 무한이나 영원으로 이어지는 후세들로부터 잠시 빌린삶 터이다. 빚은 조금씩이라도 갚을때는 아름답지만 연체이자를 물땐 추해진다. '순천자 존 역천자 망'이란 명심보감 천명편에서 보듯 자연의 이치대로순리로 살아가는게 빚을 갚는 길이요 후세들 앞에서도 떳떳해 진다.캐나다 토론토대 미래학자 앨런 터프 박사는 후세들이 90년대를 살고 있는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정리, 발표한 적이 있다. 요약하면 조상들의 문명이 파괴된 지구를 물려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평화와 안전을 물려주되핵무기와 생물화학무기를 없애달라 △농업·삼림·어업·야생동식물·수질·에너지등 깨끗한 환경을물려달라 △지구를 멸망케 할 가능성들인 위성충돌·전염질병·빙하기도래등을 연구하여 안전하게 해달라 △정부를 효율적으로개선하여 부패가 없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도록 해달라 △인류문화와 지식·문화·음악·예술을 발전시켜 물려 달라 △어린이들이 빈곤·기아·무관심·학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교육을 개선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등이었다.

**자연에 외경심을**

문화는 자연이 사람을 만나는 경계선에서 생겨난다. 세계적 문화의 발상지가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모여 살던 곳이다. 한알의 밀알을 자연속에 심어야 그것이 식량이 되듯 우리는 지금이라도 우리의 문화를 자연속에 접목시켜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한다. 자연은 항상 칼과 코란을 든 이슬람교도처럼 재앙과 은혜를 양손에 들고 사람들에게 사람답게 살 것을 요구하는 한편 자연에 외경심을 갖도록 권해 왔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들은 화학조미료 같은 상공의 맛에 길들여져 자연과의 만남 자체를 꺼리고 있다.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여 치유불능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자연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는 아니다. 자연만큼 보복을 좋아하는괴물도 없을 것이다. 최근 7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중서부지역의 폭염과 러시아를 휩쓸고 있는 가뭄과 산불, 중국 대륙과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홍수등은 모두 인간이 저지른 죄의 값이다. 인간이 자연의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도태'뿐이다. 이 무덥고 긴 여름을 보내면서후세들이 보내온 메시지를 귀담아 들어볼 일이다. 〈구활·본사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