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증언한다 광복50년...전일본군 위안부 수기4

우리가 탄 배는 이윽고 대만(대만)에서 닻을 내렸다.배멀미에 시달린데다 일본군들에게 당한탓에 걷기조차 힘이 들었다. 대구에서부터 우리를 강제로 끌고온 일본놈이 또다시 우리를 어디론가 끌고갔다.기막히게도 그곳은 일본군상대의 위안소였고 우리를 끌고온 놈이 주인이었다.

위안소엔 자그마한 방이 한 스무개정도 있었던걸로 기억된다. 두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의 크기인 방은 벽과 바닥이 나무판으로 돼있었고 문 대신 포장이 쳐져있었다. 잘때는 군용담요 한장을 깔고 잤다. 이미 기모노차림의 20세전후 여자 10명정도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서로 말을 하지 못하게 했기때문에 어느나라 여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위안소에 온지 처음 얼마동안은 위안부일을 시키지않았다. 그러던 어느날평안도가 고향이라는 한 여자가 내가 꼭 자기동생같다면서 "너는 이런데 있어선 안된다.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하더니 자기방의 벽장속에 숨으라고 했다. 한사흘 숨었다가 그만 나오라기에 나갔더니 아뿔사, 눈앞에 주인놈이 딱버티고 서있는게 아닌가. 놈은 나와 그 여자를 마구 두들겨팼다. 그후 나는위안소의 청소며 여자들의 빨래 등 잡일을 했다.

어느날 주인놈이 날더러 "손님방에 들어가라"고 했다. 방문의 포장틈새로살며시 들여다보니 일본군 병사 한명이 앉아있었다. 기겁을 하고 안들어가려고 뻗댔다. 그러자 주인놈이 거칠게 내 머리끄댕이를 잡고는 어딘가 컴컴한방안으로 끌고갔다. 의자에 앉히더니 주먹으로 머리통을 마구 때렸다. 사정없이 날아드는 주먹질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친듯이 씩씩대며 날뛰던 놈은 칼을 꺼내 순식간에 나의 오른쪽 허벅지를 손 한뼘정도로 쓱 베었다. 그리고는 베어진 살을 보란듯 히떡 젖혔다. 죽을 것같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놈은 참으로 포악했다. 이번엔전화수화기의 줄을 홱 뽑아 구리선이 나오게한뒤 내 양손목에 챙챙 감았다. 그리고는 "바가야로 조센삐(바보같은 조선년)", "고로테시마우(죽여버리겠다)" 등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전화통 손잡이를 마구 돌렸다. 전기고문이었다. 눈앞에 불이 번쩍번쩍 일고 온몸이 사시나무떨듯 부들부들 떨렸다.

몇차례의 전기고문끝에 마침내나는 까무라치고 말았다. 비몽사몽의 초주검상태로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몸은 손가락하나 꼼짝할수도 없었고 허벅지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같이 끌려온 여자중 한명이 그동안 밤에 몰래 들어와 나를 간호해준 모양이었다. 내가 의식을 잃고 있었을때 죽을 씹어먹이기도 했고 자기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기도 했다한다. 또내가 끌려갈때 내방에 있었던 하시가와라는 군인이 약이니 붕대 등을 갖다주었다고했다. 나는 한달정도가 지나서야 웬만큼 몸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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