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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50주년-시리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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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봄 경북도의회. 경북도가 제출한 '농촌 달구지 세금부과 조례안'의승인여부를 놓고 의원간 갑론을박의 격론이 벌어졌다. 농촌에 굴러다니는 달구지에 세금을 매길 경우 4천만환의 세수증대를 볼 수있다는 경북도의 입장을 두둔하는 측과, 농민의 손발인 달구지에 까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느냐는반대파간의 열띤 토론이 그것이었다. 당시는 4·19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정권이 의욕적으로 지방의회를 출범시킨 때라 의원들의 자긍심은 대단했다. 의원들은 마침내 이 안을 부결시켰다."달구지 세금 부과 반대투쟁은 제3대 의회 의원들의 왕성한 의정활동의 단적인 일화지요. 이같은 의정활동도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불과 몇달을 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29세의 청년 도의원으로 달구지 세금 반대투쟁에 앞장선 유성환 현국회의원의 회고이다.

"의욕에 찬 지방자치는 군사정변에 의해 막을 내린 이후 30년 동안 중앙집권통치, 관치행정만이 존재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달구지 세금'식의, 민심은 전혀 고려하지않는 일방통행식 행정에 그동안 주민들은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지방의원 경험이 있는 유의원은 30 여년의 암흑기를 거쳐 명실상부하게 부활한 지방자치의 출범에 대해 "감회가 남다르다"고 토로했다.우리의 지방자치 역정은 유의원의 증언에서 보듯 굴절과 고난의 터널을 거쳐 공교롭게도 광복 50년을 맞는 올해 비로소 그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지난 6월27일 우리는 선거사상 비교적 공명한 분위기속에 15명의 시도지사와 2백30명의 시장 군수를 직접 뽑아 4년전 탄생시킨 지방의회와 더불어 완전한 자치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국민들은 따라서 우리 헌정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자치시대의 도래에 부푼기대를 안고 '주민제일'의 목청을한껏 높이고 있다.

흔히 민주주의 완결편으로 보는 지방자치의 이같은 만개(만개)는 우리의민주주의 수난사와 그 궤를 같이해온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학계 전문가들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광복한 후 반세기 동안 독재와 군사정권의 정권유지를 위해 지방자치는 이용당하거나 억눌리며 만신창이 신세를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맨 처음 우리나라에 지방자치가 선을 보인 것 조차 일본인들의 불순한 식민통치수단 때문이란 것이 학계의 일치하는 견해다. 출발부터가 불행한 운명을 예고한 것이다.

일본은 1919년 3·1운동이 터지면서 조선통치가 벼랑에 내몰리자 그 기만술책으로 자문기구를 설치했다. 3·1운동이 어느정도 진정되던 1920년 7월각 도에는 도평의회, 부(현재의 시, 당시 12 개)와 면에는 부면협의회를 두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인의 불만을 미리 표출시켜 식민통치를 용이하게 할 목적이었다. 이것이 소위 일인들이 한국의 지방자치는 자신들이 씨를 뿌렸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웃기는 얘기이지요. 부면협의회 의원 선출방식을 보면 일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소수의 부와 면에만 민선을 실시하고 조선인이 90% 이상거주하는 보통면 경우에는 관선을 했습니다. 더욱이 선거권자는 전 조선인 2천만명 가운데 6천3백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태동부터 불행한 우리의 지방자치사는 이후 해방을 맞으면서도 계속 고난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49년 7월 이승만정권은 미군정의 입법의원에서 마련했던 지방자치조직법을 답습한 지방자치제법을 제헌국회에서 제정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시행도한번 안하고 그해 12월19일 개정해버렸다. 국민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이정권이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않고 자치단체장 직선의 길도 막아버렸다. 지방행정을 중앙에서 장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50년 5·30 총선에서 참패한 이승만정권은 국회간선을 통한 재선이 불가능하자 집권연장을 위해 52년 4월과 5월 미수복지구 제외 지역에서만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 시·읍·면 의회와 도의회를 구성했다. 이는 이승만의 집권연장 목적이 담겨있었지만 어쨌든 우리 현대사 최초의 지방의회 구성과 그를통한 단체장 선출의 길을 열었던 셈이었다.

이정권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이처럼 4차례나 지방자치법을 멋대로 뜯어고치며 지방행정조직의 장악을시도했다. 최초의 민선대구시장 조준영(민주당)의 강제사임도 그같은 압력에 의한 것으로, 당시 대구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4·19혁명에 의해 집권한 민주당정권은 60년 11월 제5차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 지방자치사상 최초로 완전 자치형식의 지자제를 도입했다. 지방의회 자치단체장 모두 전면 직선제였다. 그러나 이도 6개월만에 5·16으로 시들어버렸다.

그리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정권으로 이어지는 중앙절대권위시대를 거쳐 이제 지방의회와 지자체를 주민이 직접 구성하기까지 우리 지방자치는 질곡과 굴곡의 험난한 시대를 헤쳐온 것이다.

"지역발전과 주민복지 측면에서보다 정권유지 차원에서 우리의 지방자치는춤추어왔습니다. 이제는 국민의식이 엄청나게 발전한 만큼 앞으로 10년 정도지나면 선진국 자치수준으로 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계명대 최봉기교수(지방자치)는 현 지자제수준에 대해성급한 실망보다 북돋우는 격려를 통해 모처럼 확보한 자치제를 발전시켜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북대 윤용희교수(정치학) 역시 "외국은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지자제를발전시켜 온데 비해 우리는 국민 힘으로 쟁취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고 봅니다.그리고 실패한 50년대의 상황보다 현재 자치여건은 월등히양호하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온국민의 염원인 통일의 시대를 대비하는 자세로 자치의식을 키워나가야 합니다"고 말했다.

"아직 중앙통치적 요소가 곳곳에서 자치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일례로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국가사무 1만5천개중 지방에 위임한 고유사무는 20%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칩니다. 중앙과 지방정부간 업무분계도 불명확하구요" 윤교수의 지적이다.

따라서 학계전문가들은 우리사회 각분야의 대 전환점을 시사하는 광복 50주년의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지방자치의 전면실시가 갖는의미를 다함께 주목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말해 성숙한 자치역량을 일구어내 분단을극복하고 민족통일을 앞당기는 국민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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