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학교가 너무 갑갑해. 따분하고 지겨워. 공부하면 뭣해. 그런 것 안하고 싶은 애도 있잖아. 내 멋대로 살고 싶어"수희가 낭창하게 말한다.
"멋대로? 그게 좋아?"
"지금은. 지금 좋으면 됐지 뭐. 내일은 내일이구. 내일도 해가 뜰테지. 그럼 또 사는 거지 뭐. 돈 없음 공기만 먹구"
"나도 공기를 먹어. 할머니 보고 싶잖아?"
"할머니? 난 없어. 시골 어디에 있다나봐"
"아버지는?"
"정말 없어. 아파트 공사 현장서 낙하했지. 낙하산도 없이 말야"경주씨도 그런 말을 했다. 떨어져도 낙하산을 탄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낙하산이 펴지면 살아"
수희가 등을 세운다.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오빠 좀 이상해"
"이상해?"
"왠지 이상해 보여"
"다들 그렇게 말해"
"오빠 정말 최상무파야?"
"최상무파 식구야"
"안믿어져"
"믿지 마"
"정말 안할테야?"
수희가 두 손으로 제 젖을 훑어내린다. 통통한 손이다. 손톱에 보라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나는 침만 삼킨다.
"왜 대답을 못해?"
"대답할까?" 나는 눈길을 떨군다.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너하곤 안할테야"
"왜 임영자 같아서?"
나는 머리를 흔든다. 임영자는 뚱뚱이 개그맨이다. 시애가 떠오른다. 시애가 어디에 사는지 나는 모른다.
"그럼 나 옷 입어"
수희가 담배를 깡통에 빠뜨린다. 발딱 일어선다. 청바지를 풍선 다리에 꿴다. 배꼽티를 뒤집어 쓴다. 살이 쪄 배꼽이 안보인다.
"그럼 나가. 오빠가 하기 싫어 안한거야. 딴 소리하면 안돼"수희가 방문을 연다. 슬리퍼를신는다. 나는 세워둔 목발을 짚는다. 수희가 형광등을 끈다. 어둡고 좁장한 골목길을 나선다.
"추어탕집이랬지? 날 따라와"
수희가 앞장을 선다. 나는 뒤를 따른다. 뒷거리로 나온다. 주정꾼이 내 어깨를 치고 간다. 보컬 룰리의 노래가 쏟아진다. 색색의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전자오락장의 소음이 시끄럽다.
"여기야. 오빠, 또 봐. 다리 낫으면 땅콩(환각제)하고 아이스크림 한통 들고 와. 공짜로 재미나게 해줄께"
수희가 상큼 웃는다. 얼굴에 붉은 네온사인이 타오른다. 천진하고 맑은 미소다. 그 웃음에 시애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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