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명의가 없는 병든 나라

'노태우비자금'파문은 이제 한달여가 되고 있다.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친 충격은 말로써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정리정돈을 해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흐르도록 해야하겠는데 상황은 아직도 몹시 어렵다.*안팎으로 많은 피해

노씨 비자금의 충격은대외적으로도 우리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켜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대외공신력이 평가절하되는등 적지않은 상처를 입고 있어앞으로 외교나 대외경제활동에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을 벗어나는데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안팎에서 불거지고 있는 노씨 비자금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한 형편이다. 나라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도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명의가 없는 것이더욱 암담하다.비자금과 가장 관련이 깊은 정치판과 재벌들이 비자금으로인해 곪아있는 환부를 도려내는데 앞장 서기보다는 자기만 살아나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어 비자금상처는 치유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검찰이 노씨의 비자금을 수사하면서 재벌들이 노씨에게 준 거액 가운데 상당액이 정치판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포착됨에 따라 정치권이 초긴장 상태다.결국 노씨에게 돈을 준 재벌이나 돈을 받아쓴 정치인들이 솔직하게 얼마를주고 얼마를 받았는지 털어놔야 지금의 어수선한분위기가 진정될 수 있는것이다.

*지도자들도 발빼기

검찰의 수사로 재벌들은 그들이 내놓은 액수를 어느 정도 밝힌 것으로 보이나 정치판은 지금 '백로와 까마귀'논쟁으로 서로가 물고 뜯는 난장판이 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거의가 노씨 비자금의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한심한 실정이다. 우리 정치판을 끌고 가는 3김씨도 역시 발빼기에 안간힘이다.

검찰이 노씨를 소환하기 직전 북경에 가 있던 DJ는 노씨로부터 20억원을받았다고 뜻밖의 자인을 했다. 조건없는 깨끗한 돈인줄 알았다는 변명을 달았다. 그리고 20억원외엔 한 푼도 더 받은 것이 없다며 YS도 노씨로부터 지원받은 내용을 밝히라고 했다.

YS는 DJ의 실토가 있은뒤 자신은 노씨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일이 없다고밝히고 노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JP는 1백억원이 들어있는 계좌를 갖고 있다는 설이 폭넓게 퍼져도 해명은 없다.3김씨의 이같은 언행은 노씨로부터 직·간접적인 적지 않은 지원을 받았을것이라는 의혹을 벗기기엔 설득력이 없는 것들이다. '더 받은 것이 없다'나'직접 받은 돈이 없다'는 말은 무엇을 숨기려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또한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주지 못하는 언행들이다.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노씨의 비자금 문제는 정치판이 자신의잘못을 감추지 않고 스스로 정화의지를 보이는 것이 가장 빠른 수습의 길인데 이 길이 뚫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노씨가 비자금의 실체를끝내 얘기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결단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로 비자금의 실체를 밝혀 깨끗한 정치풍토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줘야할 것이다.*뒤로 밀린 나라살림

지금 정치권은 어수선한 시국에도 자기는 살고 상대를 죽이기 위한 싸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년도 예산을 심의해야 할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지만 나라살림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은 거의 없고 비자금 태풍에서 벗어나는길만 찾고 있다. 민자당이 어제 당명을 바꾸기로 했다 한다. 겉포장만 바꾼다고 지금의 사태가 해결되진 않는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기회에 정치판에서 누가 백로이고 누가 까마귀인지를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더이상 정치판에서 까마귀가 날지 못하게 해야만노씨 비자금같은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비싼 대가를 치른 만큼 그에 상응하는 발전이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모두가 사심을 버리고 힘을 모을 때다.

〈본사논설위원·김정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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