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본격 지방화시대-'6.27'시발 큰 걸음마

올 한 해는 본격 지방자치시대의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에 길이 남을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남겼다. 성숙한 자치의식의 부족과 갖가지 제도적 결함이라는 여건속에서 일단 주민의 손으로 자치단체장을뽑고 지방의회를 출범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역사적인 해'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5.16쿠데타에 의해 막을 내린 이래 실로 34년만의 '본격적인 지방자치부활'이란 점 또한 온 국민의 감회를 새롭게 했다.

오랜 풀뿌리 민주주의의 염원을 담은 '완전 지방자치시대'는 6월 27일 전국에서동시에치러진 4대 지방선거를 통해 그 막이 올랐다.15명의 시.도지사, 2백30명의 시장 군수 구청장, 그리고 9백72명의 광역의원과 4천5백41명의 기초의원. 지방자치 시대는 이렇게 주민의 대표를 주민이 직접 뽑는 선거축제로 힘찬 팡파레를 울리며 돛을 올렸다. 외형적으로 볼때 주민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해온 이른바 관치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주민 자치의 기대는 초장부터 선거과정에서 극심한 중앙정치의개입으로 그 빛이 바래 버렸다. 중앙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키며유세장을 휘저어 놓는 바람에 지방자치는 혼탁한 중앙정치의 축소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출발부터 '지방 홀로서기'는 요원할 것이라는 느낌을 던져 주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중앙정치의 영향인 반민자 바람이 거세게 몰아 치면서민자당 후보들이 곳곳에서 패배의 쓴 맛을 보았다. 무소속 후보들이 대약진을 보이며 다른 정당 후보들 역시 맥을 추지 못하는 이변의 속출이었다.그로 부터 6개월. '젖먹이 지방자치'는 곳곳에서 수많은 변화와 시행착오를 일으키며 그 정착의 단계를 향해 힘겨운 걸음마를 옮겨 가고 있다.전체 41명중 재선의원은 4명에 불과하고 초선의원이 압도적인 대구시의회의 경우 의장 한 자리를 제외한 부의장 2석과 각 상임위원장 전부를 초선의원들이 '장악', 의회운영 과정에서 4년전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의회로서도 비효율적이며, 4년간 축적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진일보한 의회운영을기대한 시민들에게는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에 따라 외국의 경우처럼 일정수의 의석만 교체하는 선거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벌써부터 적잖다.

지방의회 본래의 기능인 '민생자치'를 벗어난 각 정파간 싸움도 우려했던수준 이상이다. 대구시의회에서는 집권당인 신한국당이, 경북도의회에서는무소속 및 야당이 각 4분의 1, 3분의 1 석을 차지하고도 의회운영 과정에서소외당하고 있는 것은 주민의 대표성을 무시한 의회운영이라 할 수 있다.어쨌든 본격 지방자치의 출범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지역살림살이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실례는 주민들의 줄을 잇는 방문으로 결재시간이 제대로 없다는 단체장들의 한결같은 하소연과 민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도민과 가까워 졌다는 점이다. 누구나 만나 대화를 나누려 노력하는 내 자신이 2년전의 모습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도민들 역시 우리지사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년전 임명직으로 지낸 자리에 롤백한 이의근경북도지사는 단체장과 주민이 일체감을 교감한다는 사실에서 지방자치의 첫 의미를 찾았다.

" 다음으로는 정신없이 뛰는 게 달라진 점이다. 내 자신 중앙정부와의 예산투쟁을 위해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중앙 각 부처 장.차관과 연고를 찾아서울을 오르내렸다". 이지사는 "이처럼 지사가 뛰어다닌다는 것은 중앙의권한과 제도가 여전히 지방자치를 묶어놓고 있다는 얘기다"며 명실상부한 자치권 확립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기초 자치단체장들 역시 갖가지 생존전략 마련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중앙 부처에 있는 향토출신 인사 명단을 샅샅이 작성해 예산 로비에 총력전을 펼치는 것은 기본이고 한 푼의 수익사업이라도 더 발굴하기위해 혈안이다.

성주군의 경우 이달 초 군수와 군의회의장이 10여건의 지역 현안사업을들고 함께 상경, 재정경제원과 환경부 등의 향토출신 고위인사를 바쁘게 찾아다니며 예산반영을 호소했다. 경산 구미 안동 청도 등의 군수 역시 이같은 중앙 부처 '로비 방문'을 한차례 이상씩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우려했던 부작용 즉 혐오시설을 기피하는 님비현상과 수익시설 유치를 위한 핌피현상이 도처에서 빚어지며 지역이기주의로치닫는 사태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낙동강변 위천국가공단 지정을둘러싸고 대구시와 부산시의 자치단체, 광역의회가 서로 나서 대립하고 있는 게 그 대표적 사례. 대구시는 국가공단하나없는 지역의 경제활성화를 위해 22만평 규모의 위천국가공단 지정은 불가결하다는 입장인 반면부산시와 경남도는 낙동강 오염을 들어 총력적으로저지하고 있다.

운문댐 수질보호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경주시와 청도군의 충돌 또한그 한 예. 청도군은 운문댐 상류지역에 대한 상수도보호구역 지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경주시는 해당 지역 주민의 생활권을 내세워 극력 반대하는입장이다. 가야산 골프장 건설을 놓고 성주군과 고령군이 벌이고 있는 대립 또한 유사한 사례이다. 성주군은 골프장 건설이 매년 20억~30억원의 세수입을 가져온다는 계산이며, 고령군은 환경오염만 덮어쓴다고 결사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같은 지역간의 대립은 중앙의 지시나 일방적 처리로 손쉽게 해결을 보던자치시대 이전과 판이한현상이라 할 수 있다. 경북도 조동호 지방과장은"날로 늘어나는 지역간 분쟁 해결을 위해 현재 유명무실한 분쟁조쟁위의 당사자 신청주의를 직권주의로 바꿔 분쟁조정위가 적극 개입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영남대 우동기교수(행정학)는 "힘겹게 출범한 지방자치제는 법적 제도적자치권의 확립, 재정확충, 주민자치의식 함양과 함께 지역이기주의 극복문제가 주요 과제로 가로놓여 있다"며 "그 앞날의 성패는 정부와 국민의 자치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김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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