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1만달러에 소비수준 2만달러, 청소년 소비수준 3만달러….
버블경제가 사그라들면서 과소비라는 골다공증에 걸려 구멍 숭숭 뚫린 우리경제의 뼈대가 드러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바닥모를 소비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가. 무엇이 과소비, 호화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서울의 여성자원금고 이사장이며 전문직여성클럽(BPW) 한국연맹 회장인 김근화씨는 "우리네의고질적인 허세의식"이야말로 과소비를 부추기는 주범이라고 꼽는다. 이미 50여년전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영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들이 아직도 1천달러시대의 집과 가구 등을 사용하는 등근검절약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 가난했던 과거와는 깡그리 절연하듯 무엇이든 새것, 고급스러운것에 집착하는 졸부근성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남들에게 뒤질 수 없다는 줏대없는 경쟁심 역시 모방소비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혼수품이 그 한예. 요즘 일부 상류층은 시어머니 예단에 1백만원이 넘는 수입코트와 2백만~1천만원짜리 밍크코트가 필수품목이 되다시피 했다. '안방 장롱의 수준에 맞춰 예단을 보낸다'는 유행어도 있지만 자녀결혼을 앞두고 장롱을 바꾸는 가정도 적지않다.
90년대 들어 부쩍 가속화되고 있는 과소비풍조는 수입품 및 고가품선호, 해외여행, 사교육비, 어린이.청소년용품시장의 확대추세, 가전품 및 승용차의 대형화 등 생활전반을 지배하고 있다.수입브랜드의류는 정장경우 평균 1백만원선에서 1백20만~1백50만원선. 한가지 아이템에 기껏 2~3벌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외제옷'이라는 매력에다 '희귀성 있는 옷'이라는 플러스 알파로 고급지향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화장품 매장에도 국산품코너는 2개정도인 반면 수입화장품코너는백화점에 따라 4~5개씩 차지하고 있다.
'내 아이는 달라요'를 신봉하는 일부 주부들중엔 아이들을 남다르게 키우겠다는 야망(?)때문에 걸음도 잘 못걷는 아이들을 외제일색으로 치장시킨다. 장당 5천원인 속옷과 양말, 8만5천원짜리 티셔츠, 20만원짜리 원피스…. 서울의 일부 백화점중엔 매출이 적다는 이유로 국산유아용품은 아예취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의류, 완구, 식품 등 전체 영유아용품 수입액은 3억~4억달러(3천억~4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고급용품으로만 키워진 청소년들이 유명브랜드만 찾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사실.고급옷, 고급신발만 신던 청소년이 부모의 사업실패 등으로 가난해져도 현실과 상관없이 고급품만 찾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제일기획이 실시한 청소년소비관련 조사에서는 '유명상표의 상품을입어야 자신감이 생긴다'는 청소년이 10명중 3.6명꼴로 나타났다. 고급 캐주얼의류, 패스트푸드업체 등 10대산업들이 호황을 누리는 것도 바로 '내 아이를 기죽이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경쟁심리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최근 일본에서 1년여 연구생활을 하다 돌아온 편지원교수(대구대.법학)는 "우리보다 훨씬 고소득인 일본 직장인들은 점심으로 5백~6백엔짜리 우동을 즐겨먹고, 주부들은 미용료를 아끼기 위해머리퍼머같은 것을 하지 않고 화장도 입술이나 눈썹정도만 하더라"면서 "4만달러시대 주부는 검소하고 1만달러시대 주부는 화려하다"고 말했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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