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국민회의총재에 대한 호칭은'DJ'와'선생님'으로 엇갈린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에대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표출해 왔다. 그래서 선생님이란 호칭은 그에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역갈등의 또다른 산물로 각인되기도 했다.올해는'선생님'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정계복귀에 대한 비난여론이 따가웠지만 지난해 이기택총재가 이끌던 민주당을 버리고 국민회의를창당했다. 4. 11총선은 그에게 야권분열과 신당 창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임과 동시에 정계은퇴 번복에 대한 첫 시험대였다. 내각제개헌 저지선 1백석 확보라는 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70여석에그친 참패였지만 제1야당 총재자리에 복귀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점에서 실패와 성공이 점철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자민련과의 개원투쟁 공조에서 시작된 야권공조가 대선공조 분위기로 연결된것은 좋은 징조다.그는 대중연설때마다 "50년만의 절호의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회"라는 표현을 쓴다. 그의 대선출마에 부정적이던 여론도 다소 희석된 것 같다. 이제 목표는 대권4수다. 총선참패에 대한 책임론도어느사이에 사라졌다. '이제 DJ는 끝났다'는 당내의 자조적인 분위기도 반전됐다.야권후보 단일화여부는 그의 대선출마의 주요변수로 자리잡았다. 지난 11월1일, 자민련 김용환총장과의 목동회동이 알려지면서 야권 후보단일화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끄는데도 성공했다. JP측으로부터 DJ로의 단일화에 대한 묵시적동의를 얻어내는 가시적인 성과도 얻었다. 이제 내년 중반이후까지 세를 확대해 야권 공동집권론을 구체화하는 절차만 남았다.
'뉴DJ플랜'으로도 잡지못한 유권자의 마음에도 감성(感性)의 정치로 접근하고 있다. 명예퇴직제가사회문제화되자 '중년의 남자에게 내일은 없다'는 연극을 보고 '총재님 개그 한 수 배웁시다'는타이틀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있다. 지난 92년 진보적 정책을 표방하면서 전국연합과 정책연대를 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 한총련 발언을 하는 등 보수노선을지키고 있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과거 운동권 세력들이 적 잖은 신한국당보다더 보수회귀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과거'비토세력'이던 보수세력들도 그를 다시 보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져 있는 과제는 달라진 그의 모습이 아니다.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당내의 반발을 아우르면서 야권 후보단일화를 어떻게 성사시켜 나가느냐가 화급하다.
본선에 앞서 김상현지도위의장등 당내의 반발을 어떻게 모양좋게 정리해 야권후보단일화에 나서느냐는 예선일뿐이다. 김의장뿐 아니라 제3후보론을 내세우는 정대철부총재와 김근태부총재는 DJ외의 대안을 모색하고있다. 이들이 DJ불가론을 확산시키고 연대할 경우 파장은 적잖다. 적전분열정도가 아니라 전열을 갖추고 나서기도 전에 기력을 다 소진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투명하지 못한 정치적 행보와 정계은퇴번복은 그의 발목을 잡는 최대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도 적지않은 국민들은 지난 92년 12월19일 TV를 통해 생중계되던 그의고별사를 기억하고있다.
"저는 또다시 국민여러분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저는 오늘로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평범한 일개 시민이 되겠습니다. 이로써 40년의 파란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 없습니다…. 이제 저는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 "
양김시대의 종막을 고하는 고별사는 그러나 4년만에 유보됐다. 그는 다시 대권4수생으로 우리 앞에 섰다. 71년 대선출마이후 25년만에 다시 야권의 강력한 대통령후보의 자리로 되돌아온 그에대한 평가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것같다. 자신이 펴낸 베스트셀러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또 한번의 대권도전의 의미로 퇴색되고 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진정한 개혁과 참야당의부재라는정치현실때문이라는 명분으로 변명한다. 적지않은 국민들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쨌든투명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아직까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때문에 3공과 5, 6공을 거치면서 민주화의 화신으로까지 불려졌던 그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발목을 잡는 다른 족쇄는 '대권욕'이다. 여전히 여권은 기회있을 때마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용어로 비난한다. DJ는 "나는 꼭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며 비난을 피해 왔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집념은 누구보다강하다. 지난 87년 대선당시 YS와의 후보단일화를 외면하고 평민당을 창당한 사실에 대해 이제서야 "그때 왜 양보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는 자기고백을 한다.
그의 4번째 대권도전이 성공할 지 여부를 미리 짐작하기에는 지역감정의 깊은골과 세대교체론 등변수가 너무많다.
〈徐明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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