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새알심

공사판 기계 소리, 자동차 소리, 앰뷸런스 소리, 메가폰 소리 가득한 세상, 반가운 손님이 누르는초인종 소리에도 아파트 입구문을 빼꼼히 열어 확인하는 세상, 도시, 이 어수선하고 불안한 소리속에서 벗어나 듣고 싶은 소리가 있다. 동지의 기나긴밤, 밤새워 추억하고픈 소리가 있다. 팥죽속의 하얀 새알심만큼이나 정갈하고 따뜻한 소리들이 있다. 생각하면 멀어지는 소리들이다. 뒤척이다 보면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다. 작아질수록 들리지 않을수록 귓바퀴에 두 손 대고 듣고픈 소리들이다.

뒷동산 솔바람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시르릉 톱질하는 소리에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 갈쿠리끝에 풀잎 바스러지는 소리, 고무신 앞축에 낙엽 부딪치는 소리, 한 동 두 동 거부지기 재는 소리, 지게 작대기 끄는 소리, 짐 부리는 소리, 땀 닦는 소리, 옷에 묻은 검불 터는 소리.아이들 뛰어다니며 불 붙이는 소리, 논두렁 밭두렁에 마른 풀 타는 소리, 우루루 불 밟는 소리,마른 쇠똥에 후후 불 살리는 소리, 앞 개울에 얼음 울리는 소리, 얼음 지치는 소리, 얼음 깨는 소리, 팽이 부딪는 소리, 호호 손 비비는 소리.

우물에 두레박 떨어지는 소리, 물동이 찰랑이는 소리, 물더먹에 물 차는 소리, 절구에 쌀알 튀는소리, 김칫독 여는 소리, 도마에 양념 다지는 소리, 솥뚜껑 여는 소리, 부엌에 김서리는 소리, 보글보글 팥죽 끓는 소리, 달강달강 숟가락 부딪는 소리, 지난 해들을 헤아리는 소리, 새하얀 새알심이 입 속에서 녹는 소리.

오늘은 동지다. 그리운 소리를 멀리 둔 채, 어김없이 또 팥죽을 먹어야 한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삶도 부끄러워 더이상 헤아려 먹지 않는 새알심은 소리도 없이, 입 속에서 찐득거리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삐융삐융 전자 오락 소리를 귀울음으로 가득 채우고서 밥상으로 몰려들 것이다. 녀석들은 자랑스레 새알심을 헤아릴 것이다. 그리고, 이 한밤, 옛소리에 뒤척이는 아비와 달리, 미래 우주 전쟁의 굉음을 꿈 속에 보고 행복해 할 것이다.

〈고미술연구소 '솟대하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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