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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필름세계'(20)-장예모 '붉은 수수밭'

역사를 영웅이 움직인다고 보는 영웅사관은 전제국가인 전통 중국에서 특히 일반적이었다. 세계인구의 5분의 1이 사는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영웅은 흔히 진시황이라고 하나, 완벽한 통일영웅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었고, 그후 7회에 걸쳐 영웅의 통일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1911년손문을 중심으로 한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화민국이 성립하여 2천1백33년이나 계속된 봉건왕조는멸망했다. 그러나 한이 멸망하자 삼국시대가 왔고, 당이 쓰러진 후 5대19국시대가 생겼듯이 중화민국의 성립 후에도 격심한 혼란이 야기되어 다시 통일되기 위해서는 1949년까지의 긴 역정이 필요했고 마지막 통일영웅 모택동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웅사관은 과연 옳은 것인가.이름만은 백성의 나라라는 민국이 되었으나 대지주가 활개치는 낡은 사회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못했다. 원세개를 비롯한 군벌 무장군단이 대지주와 손을 잡고 각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민중을 괴롭혔다. 당연히 민중의 치열한 저항이 시작되었고, 다시 일본군이 침략하여 민중의 고통은설상가상이 되자 그 저항은 더욱 거세어졌다. 장예모의 '붉은 수수밭'은 바로 군벌과 외세에 대한민중저항의 중국현대사를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삼국지식 영웅담이 아닌 소박한민중의 저항사이다. 중국 현대사는 흔히 최후의 통일영웅이라는 모택동을 중심으로 쓰여지나 장예모는 명백히 그것을 거부한다.

1911년 혁명은 양자강 유역에서 터져 요원의 불꽃처럼 중국대륙을 휩쓸었으나 신생 공화국은 생존을 위해 오랜 세월을 두고 싸워야 했다. 특히 군벌은 새 공화국의 앞날을 가로막고서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결국 원세개가 대통령이 되었고 공화국을 쳐부수기 위해 외국에서 자금을차용했으며 의회를 부인하고 국민당을 해산한 결과 중국은 분열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내부사정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 일본침략이었다. 일본은 명치유신 후 무엇보다도 중국을 그 지배하에 두고자 했다. 1931년 이후 일본은 더욱 침략적인 태도를 취하여 끔찍한 학살행위를 자행했다.장예모는 아주 쉽게, 분명히, 화끈하게, 중국의 핏빛 현대사를 말한다. 나귀 한 마리에 팔려 쉰 살이 넘은 문둥이 양조장 주인에게 시집가는 18세의 츄알은 봉건시대 민중을 대변한다. 군벌을 상징하는 문둥이가 살해되고 츄알은 일꾼들에게 평등한 인간관계와 공동의 생산 및 분배를 제안한다. 그야말로 민주적인 공동체의 선언이다. 그러나 뒤이어 일본군이 쳐들어와 마을사람들은 붉은수수밭을 군용도로로 만드는 일을 강요당한다. 일본군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몇이 총살을 당하자 사람들은 처절한 복수를 감행하나 결국은 패배한다. 장예모는 모택동 시대의 중국 혁명영웅영화나 대만 식의 무술영웅영화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민중의 영화를 만들었다.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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