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보 커넥션-정치권대지진(1)

한보(韓寶)사태는 현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와 함께 정치권 구도개편시기를 앞당기는 촉매제로분석되고 있다. 경제불황에 이은 경제악재인 이 사안은 국민생활에도 충격요인으로 등장했다.파장을 점검해 본다.

청와대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노동법 파문에 이어 한보사태까지 겹치면서 태풍의 중심에 위치한 청와대는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김영삼대통령취임 4년만에 최대의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이는 김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타가 수시로 바뀌고 있는데서도 비롯, 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진들도 갈피를 잡지못한 채 우왕좌왕하면서 안팎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다.청와대는 지난 1월초 연두기자회견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부터 시작해 여야 영수회담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전격수용으로 선회했었다. 노동법 재개정문제도 김대통령은 당초의 불가입장을 번복했으며, 파업을 주도한 민노총지도부에 대한 영장집행도 강행을 천명했다가 사실상 철회시켜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해 온 청와대측은 물론 검찰 등 당국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한보철강 부도사태와 관련해서도 김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경제장관회의에서"기업측의 외부차입에의한 무리한 사업추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언급,단순한 금융사고로 인식하고 있는 듯 비쳤다가하루만에 '전형적인 부정부패의 표본'이라고 말을 바꿨다. 물론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의식한 측면이다.

부도가 난 한보철강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놓고서도 청와대와 정부부처간에 한동안 무책임한 얘기만 오갔다. 처음에 관계부처에서 산업합리화업체 지정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곧바로 청와대에서이 방침을 뒤집었고, 3자인수 방안도 공기업화 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한보사태가 불거지고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핵심수석들은 이 사건과 관련한 발언들이 구설에 오르면서 한차례 곤욕을 치렀다. 김대통령은 핵심관계자들의 발언들이 마구잡이로언론에 보도되면서 정부정책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자 몹시 화를 내며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

늘 자신만만하던 청와대가 이처럼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김대통령의 임기말 권력누수(레임덕 현상)가 가시화되는게 아니냐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국정전반에 대한 장악력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김대통령의 영향력이 전같지않다는 것은 분명하고미증유의 한보커넥션이 이를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연말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의 날치기처리에 연이어 터진 한보그룹의 대형 부도사건이 정치권을 강타했고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중이지만 현정권 실세들의 연루혐의가 줄줄이 드러나면서 청렴을 강조해 온 현정부의 도덕성을 또다시 먹칠,김대통령으로서는 할말이 없게 됐다. 특히 김대통령의 오랜 가신인 홍인길의원의 수뢰혐의 구속사실을 접한 청와대는 허탈,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노동법 파문의 책임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논란을 벌이면서 비민주적 당론형성 과정에 불만을 표출했던 신한국당 의원총회와 당무회의는 레임덕 현상의 대표적 사례.여권에서 당지도부의 운영방식에 대한 성토는 바로 청와대를 겨냥하는 화살로 풀이된다. 실제 의총에서 의원들은 청와대비서진의 자질과 보좌능력을 노골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또 최근 검찰간부들이 퇴임후 2년간 공직취임 금지를 규정한 검찰청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것도 권력누수와 무관하지 않다.

여권의 대선후보들 행보에도 이같은 분위기는 두루두루 감지된다.

최근들어 부쩍 독자적인 운신 폭을 넓히고 있는 이들 예비주자들의 움직임에 비추어 앞으로도 김대통령에 대한 도전적 발언수위를 높이는등'홀로서기'양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심지어 김대통령의 지원을받는 후보가 대선에서 반드시 유리하지 않다는 얘기도 거침없이 나오고있다.

김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국민이 납득하는 선까지 수습하지 못할 경우 가뜩이나 뒤틀린 민심이 완전히 등돌릴 것은 뻔하다. 결국 임기말 권력누수를 최대한 차단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김대통령의 구상도 크게 빗나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吳起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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