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초대석-경영 패러다임 변화없인 생존불가능

창사 이래 최대규모의 승진잔치였다는 지난해 12월의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 사람들은 윤종용(尹鍾龍)이라는 인물의 화려한 복귀를 지켜봤다.

지난 66년 공채 7기로 삼성그룹에 입사한 후 초기 3년을 제외하곤 줄곧 삼성전자에 몸담아온 그는 이미 40대 초반에 대표이사를 맡는 등 일찌감치 전자부문의 차세대 주자로 거론되어 왔다.그러나 지난 92년 삼성전자가 가전, 반도체, 통신, 컴퓨터 등 4개 부문을 통합하면서 당시 가전부문 대표였던 그는 김광호 전임 전자소그룹장에 밀려 삼성전기, 삼성전관, 삼성일본본사 등 친정외곽으로 나돌아야 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전자소그룹장 겸 삼성전자 총괄대표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게 된 것은 반도체 경기의 급락이라는 경영환경의 급변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자율 분권경영전환

지난해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는 각 부문별 부사장과 해외법인장들이 대거대표이사로 승진,모두 8명의 대표이사가 새로 탄생했다.

이같은 대표이사의 대거 양산은 삼성전자의 경영형태를 종전의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사적인총력체제에서 각 부분별 대표이사가 최대한의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갖는 자율 분권경영으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반도체 가격의 폭락 등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 17조원으로 국내 재계랭킹 7~8위권의 그룹과 다름없는 거대한 덩치를 기민하게 움직이자면 이같은 분권화 경영이 한층 효율적이라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판단이었다.

즉 그의 삼성전자로의 복귀는 8인 집단지도체제를 통괄하는 '내각수반'으로 삼성전자에 불어닥친위기를 타개하라는 이회장의 의지가 담겨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윤사장의 중용은 그에 대한 이회장의 재신임이자 경영능력에 대한 새로운 시험의 의미도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호의 새로운 키잡이로서 윤사장의 현재 심정은 자못 비장하다.윤사장은 이같은 비장감을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현재 우리의 경영환경은 혹독하고 냉엄해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생존자체가불가능하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영방식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전자산업은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핵심전략산업의 하나인 반도체는 D램가격의 폭락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가전시장 규모도 1.3%%의 미미한 증가세에 그쳤다.특히 D램 가격의 폭락은 95년 47억5천만달러였던 무역수지적자가 지난해에는 1백50억달러로 급증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같은 전자산업의 불황은 삼성전자에도 예외없이 큰 타격을 주었다. 매년 두자릿수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던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16조원을 약간 넘는 수준으로 사상 처음으로 1.2%%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주력품목인 반도체의 매출 격감이었다. 삼성전자의 96년 반도체매출은 61억9천6백만달러로 전년대비 26%%나 줄었으며 이에 따라 시장점유율도 4.4%%로 95년의 6위에서 7위로 떨어진 것이다.

이같은 사정이 올해라고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란게 윤대표의 솔직한 진단이다."세계시장의 50%%를 한국이 공급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의 올해 세계시장규모는 지난해보다70~80%%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시장의 주도 품목인 16메가D램은 공급과잉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가격하락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현장경영이 필수적

그러면서도 윤대표는 이같은 반도체경기의 불황이 '비정상적인' 예외적 현상은 아니라는 냉철한상황판단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메모리반도체 경기의 급락은 지난 3년간의 비정상적인 호황을 마무리짓고 정상궤도로 돌아가는 숨고르기의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반도체경기의 하락은 오히려 호황에 가려 있었던 삼성전자의 허점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분석을 통해 그는 기본에 충실한 자율경영, 스피디한 경영, 심플한 경영 등 세가지를삼성전자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경영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창의와 효율을 저해하는 모든 제도와 관행을 없애고 권한과 책임을 과감히 이양해 단위 조직별 자율과 책임경영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심플한 경영은 '현장경영'과 함께 윤사장이 지향하는 경영철학의 핵심이다."경영자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회사를 계속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에 귀를 기울이고 현장을 돌아다니는 현장경영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큰 조직으로는 현장경영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작은 본사, 작은 본부를 중심으로 권한을 하부조직에 대폭 이양해야 합니다. 심플한경영이 스피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사업구조를 과감히 개편, 반도체, 영상디스플레이, 통신시스템 등 기존주력사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적자사업은 구조혁신과 해외이전으로 정상화시키되안되면 과감히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매출 격감이 비메모리분야의 취약성 때문이었음을 감안, 비메모리분야에 대한 R&D투자를 대폭 늘려 현재 85대 15인 메모리와 비메모리의 비율을 70대 30으로 개선, 비메모리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업체로서의 위상을 확립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가전부문은 국제시장에서 세계최고의 기술력과 품질에 걸맞게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가장 중점을 둘 분야는 디자인 경쟁력의 확보와 이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의 제고이다.

이같은 세부계획을 통해 윤대표는 올해 매출을 지난해보다 8%% 늘어난 17조3천억원(국내부분기준)으로 잡았다.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구가해온 점을 감안하면 매우 보수적인 경영목표이다.그만큼 올해 삼성전자가 헤쳐가야 할 불황의 파고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사람들은치밀함과 저돌성을 겸비한 윤대표 중심의 새로운 경영체제는 이러한 난관을 잘 극복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의 치밀함은 '메모광'이라는 주위의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사업과 관련한 아이디어가생각나면 장소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즉시 수첩에 적어놓는다.

아이디어 수첩에 적어

윤사장의 메모벽(癖)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건희 회장이 부회장으로 있을 때 그는 그룹간부들에게 삼성그룹의 혁신 방안을 기회있을 때마다 얘기했다. 회장으로 취임한 뒤 이회장은 자신이 부회장 시설에 얘기한 내용과 회장이 된 이후에 말한 것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며 자신의 말이 맞나 틀리나 확인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과정에서 아무도 이회장의 지시사항을 기억해내지 못했으나 윤사장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비결은 그의 메모수첩이었다. 1백여가지에 이르는 지시사항이 그의 수첩에 깨알같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같은 면모는 지난 30년간 빠짐없이 써온 일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그의 일기는 현재 대학노트로 1백권에 달한다.

업무추진력도 대단하다. 한번 시작한 일은 최단 시일내에 마무리해야 한다.

또 경영자이기 이전에 기술자로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해외에서 새로운 첨단제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꼭 구입해 자신이 직접 써보아야 직성이 풀린다.그는 이같은 호기심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든 원동력임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삼성맨으로서의지난 30년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사생활없이 일에만 몰두해온 세월이었다는 것.

이따금 선술집에서 부하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일 만큼 소탈한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한 그는 다방면에 걸쳐 모르는 것이 없다. 특히 미술과 음악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윤사장은 그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자주 해외출장을 나갔다. 이를 통해 그는 세계 각국이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생생히 보았다. 특히 투자유치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제시하는 조건들은 우리나라라면 특혜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만큼 상상을초월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자치단체의 태도는 정반대라는 것이 윤사장의 지적이다.

"우리 지자체들은 자기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을 도와주기는 커녕 뜯어먹으려고만 합니다. 그래놓고 자기 지역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불평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윤사장은 재정의 여력이 없어 당장은 투자기업에 지원을 못해준다 해도 '하려는 자세'는 보여줘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와 함께 우리 지자체들이 이같은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는 현상황에서는국내 공단에 무리하게 입주할 생각은 없다고잘라말했다. 물론 여기에는 대구지역도 예외일 수 없다고 윤사장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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