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채보상운동 90돌 그 교훈을 되새기자(4)

국민의 손으로 외채를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강압과 방해공작으로 1년반만에 막을 내렸다.

이 미완의 계몽운동은 그러나 3.1운동과 물산장려운동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지 13년이 지난 1920년8월. 경제자립을 통한 국권회복이라는 국채보상운동의 불씨는 평양에서 물산장려운동으로 되살아났다. "네손으로 지은것을 먹어라. 네손으로 지은것을 입어라. 네손으로 만든것을 써라. 땅을 꽉 붙잡고 놓지 말아라. 이리 해야 살리라"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한 선각자 중 한 사람인 염태진(廉台鎭)선생이 당시 동아일보에 기고한 호소문은 외제 과소비병을 앓고있는 현 세태에 준엄한 교훈이 되고있다.

그러나 과소비로 얼룩진 요즘의 한국 세태를 보노라면 '역사는 과연 발전하는가'라는 세계 역사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가 새삼스러울 정도다.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던 90년전보다 현재의 국민의 의식수준인 민도(民度)는 도리어 뒷걸음질치는것은 아닌지.

요즘 일부 부유층의 무분별한 씀씀이는 서민층의 모방심리로 이어져 과소비의 대중화라는 달갑지않은 현상마저 빚어지고있다. 급격한 경기하강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소비 성장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돌고있으며 가계저축률도 곤두박질치고있다.

밥지을때 쌀 한술 덜어 모은 돈으로 나라빚을 갚자던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은 어디가고 없는가.국채보상운동의 경제자강자립 정신을 크게는 국산품 애용운동에서부터 작게는 지역상품 사랑운동으로 계승하는 것이 어느때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국산품 애용의 경우 성공의 관건은 국민들의 의식문제로 귀결될수 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의모든 물건이 비록 재가공의 형태라 할지라도 국산품이라는 이름으로 이땅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상품 애용 문제의 경우 시민의식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팔아주려해도 상품이 제대로 없는 브랜드 불모지인 것이다.

60년대 전국을 석권했던 대구의 메리야스가 거의 자취를 감춘 예처럼 대구경북의 고유상표 소비재 산업은 대기업이나 후발 개도국에게 잠식당해 사양화하거나 하청구조로 전락하고 말았다. 섬유는 대구지역의 주종산업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브랜드가 거의 없다.대구시와 대구상의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고유상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라 현재 공동브랜드 '쉬메릭'(CHIMERIC)을 개발해 놓고있다. 아울러 올해중 지역 특화상품 애용운동도함께 전개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되살릴 계획이다.

국채보상운동은 물산장려운동과 함께 당시 사회.경제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국산품 애용의 기풍이 조성되고 사치 대신 검소 풍조가 널리 번졌다. 기생들까지도 외래의 비단옷을 벗어던지고 국산 무명옷을 입는것을 자랑삼았다. 민족자본의 메리야스,양말,고무공업이 크게흥왕하는 계기가 됐다.

국채보상운동 90주년을 맞아 제2의 국채보상운동과 물산장려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있다. 국채보상운동 정신이 과소비와 외제선호라는 고질병을 고치는 특효 처방이 될수 있다는 사실은 90년전 이미 증명됐었다. 〈金海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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