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철학과 음악 그리고 과학의 나라라고 하는 독일에서 금세기 최대의 6백만명 이상의 유태인학살이라고 하는 전무후무의 사건이 어떻게 생길수 있었는가? 어떻게 그런 광기 어린 사건이 이성과 합리를 가장 앞세우는 나라에서 발생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히틀러라고 하는 미친 독재자 탓인가?아니면 독일이라고 하는 나라, 그리고 그 국민 자체가 그런 속성을 가졌던 것인가? 최근에 와서는 그 원인을 독일의 긴 역사 속에서 찾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히틀러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반유태주의는 유럽의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고 어느 나라에서 나타난 것인지 독일 특유의 것은 아니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1919년 제1차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서 최초의 민주정부가 수립되었다. 그 첫 회의는 평화와 철학을 상징하는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에서 열려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 헌법을 제정했으나 그것은 유례를 볼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게 실패했다. 헌법에 따라 실시된 첫 선거에서 보수 온건파가총투표수의 4분의 3을 차지했으나 패전의 후유증으로 마비된 경제등으로 인해 다음해 실시된 선거에서는 반수도 얻지 못했고 사회는 더욱 우익화되어 갔다. 심지어 판사들까지 헌법에 반하여우익테러분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고, 교사와 교수들은 제1차대전을 일으킨 무력외교노선과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계속 가르쳤다.
히틀러는 어려서부터 게르만 순종주의와 반유태주의에 열광하여 유태인들과 다른 열등민족들이독일을 멸망시키려는 범세계적인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음모가 바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였다. 실업자로서 빈둥대다가 제1차대전에 정보하사로 참전하였고, 주로 제대 장병들로 구성된 보잘것없는 민족주의 정당인 나치에 가입했다. 그는 우선 맥주홀을 폭격하자고 했으나 쉽게체포되어 반역죄로 5년형을 받았으나 9개월만에 가석방되었다. 그는 돌격대(SA)와 친위대(SS)를조직하여 완전무장을 갖춘 사병(私兵)으로 육성하고 경찰조직에도 침투했다. 또한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웅변술로 언제나 독일의 모든 문제를 유태인 탓으로 돌리는 내용의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32년 선거에서 총투표의 37%%를 차지하였고 이듬해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나치는 정부소유의 신문과 라디오를 장악하고 공산당의 시위와 사회당의 간행물 배포를 금지했으며 돌격대는 다른 정적들의 집회를 폭력적으로 저지했다. 원인불명의 의사당 방화사건이터져 히틀러는 사실상 독재자가 되었다. 그는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영장제도, 우편과 전화검열금지를 정지했고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범죄의 폭을 대폭 확대했다.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차지하자 공산당과 사회당 의원들을 축출하고 노동조합도 해산했다.
이어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폴란드를 침략하여 제2차대전을 일으켰다. 그는쉽게 프랑스를 함락하고 영국을 공격했다. 그러나 소련공격의 실패로 전세는 기울기 시작하여 6년만에 패배했다. 그 전쟁은 인류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광범위한 전쟁이었다. 1천7백만 여명의군인이 죽었고 6백만 여명의 유태인들이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살육되었으며 3천만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죽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는 유태인 1천3백명의 목숨을 구한 쉰들러라는 독인인의 실화이다. 오락영화로 언제나 흥행에 성공한 상업적감독의 예술적 승리라고 화제가 되기도 한 이 영화는 수많은 유태인 학살영화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대작이다.
〈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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