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프로주부-알뜰살림꾼 이분란씨

"24년간의 가계지출 일기쓰듯"

"며칠 전 동네에서 작은 시비가 붙었어요. 7년전에 면장이 수도와 관련해서 3만원씩 돈을 거뒀는데 그게 계량비를 다는 비용이었다는 사람도 있고, 수도 배관비로 냈다는 주민도 있어서 승강이가 벌어졌는데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몰려왔어요. 이집 가계부에는 모든 게 다 적혀있으니확인해보자는 거예요"

결국 이날 가창면 대일2리 주민들은 이분란씨(48·달성군 가창면 대일2리)의 집에서 7년전 가계부를 꺼내놓고, 수도배관비로 3만원을 냈다는 기록을 확인하고 시비를 끝냈다. 이씨의 가계부가이제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붙잡아매주고, 든든히 받쳐주는 대들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의 화합에도 일조를 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어려운 친정에서 더 어려운 곳으로 시집와서 만만찮은 신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마음을 가계부에다 쏟았어요. 학교 다닐때부터 글읽는 것, 쓰는 것에 취미가 많았지만 쪼들리는 형편에 어디 책이나 마음놓고 읽을 수 있었나요"

의성군내 가난한 집안의 6남매중 다섯째로 태어난 산골소녀였던 이씨는 굶어죽어도 공녀만은 안된다던 집안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태성제사에 입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뜨개질하며 돈을모아 4년만에 빚더미에 짓눌린 집안을 일으켜세웠다.

강한 생활력으로 친정을 일으켜세운 이씨는 집안친척 소개로 택시기사를 하던 남편(안수복씨)과만나 지난 74년에 결혼식을 올린 후 지금까지 24년동안 단 하루도 가계부를 적지 않은 날이 없다. 그만큼 철저하게 투명하게 가계를 관리한 덕에 웬만한 불황, 웬만한 어려움은 다 이겨나간다."남편 월급으로 자녀들과 오순도순 살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갔는데 저축추진위원회에서 상까지 주더라"는 이씨는 가계부를 쓰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돈의 지출과 수입내역뿐 아니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지난 삶들이 몇줄의 메모와 함께 24권의 가계부 안에 녹아있다.

2년전 가계부를 펼치니 추석전날(95년9월8일) 포항 송라에 있는 형님댁에 들고갈 과일 3만원, 김5천원, 조카들 줄 과자 9천원, 아주버님에게 드릴 영양제(아로나민 골드) 1만9천원, 추석날 면민조기축구회 찬조 2만원, 조카 용돈 2만원을 쓴 것으로 적혀있다.

"집에서 기른 무공해 포도 대추 감 배 곶감 등을 직접 준비해가고, 없는 과일만 사가니 별로 돈도 들지 않는다"는 이씨는 똑같이 검소하게 마음맞는 남편, 두자녀와 함께 전원주택에서 줏대있는 자린고비로 살고 있으며, 올해 전국저축추진위원회주최 가계부쓰기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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