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석 성묘 유감

이세상 어떤 사람도 조상의 묘소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배례(拜禮)를 올릴 때 만은 경건하고 진실 된 마음이 된다. 세속의 삶터에서 허구한날 때리고 맞으며 치열하게 싸웠던 강퍅한 마음도 성묘 자리에서는 모태속으로 되돌아 가는 듯한 안온함과 평화로운 마음을 품고 엎드리는게 후손의 마 음이다.

성묘의 순간만은 어떤 거짓된 마음도 사악한 욕심도 없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가장 진지하고 순수한 자아를 찾는 순간중의 하나이면서 반면 순박하고 원초적인 바람과 기원을 품고 기구하는 때이기도 하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고관대작이든 말단 월급쟁이든 성묘를 하면서 한두가지 소망과 염원을 조상 앞에 털어놓거나 기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돌아가신 조부모나 부모님 묘소앞에 서 내가 낳은 자식을 증손자, 손자라는 핏줄의 이름으로 뭔가 잘되게 해달라고 기원하거나 자신 의 소망을 기원한다.

그것은 하느님이나 부처님께 올리는 신앙적인 기도나 축원의 바람과는 또 다른 인간적인 맛이 담 긴 기원이다. 물론 조상앞에서 희망적인 기원이 아닌 못난 인생, 실패한 삶에 대한 좌절과 죄책을 회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올 추석 성묘길에는 유난히 많은 기원들과 정치 얘기들이 쏟아질 것 같다. 우선 대선과 경제난 두가지만 놓고 봐도 쉽게 짐작이 간다. 2천5백만명의 귀성객이 아래위로 섞여 움직이다보면 대도 시의 여론과 지방의 정치여론이 마치 난류와 한류가 만나 휘돌듯 난분분할 수밖에 없다. 유난히 정치얘기 좋아하는 국민성도 한몫하고 갑론을박거리가 많게 돼있는 예측불허한 정치판의 난기류 도 추석 연휴 내내 사천만이 몽땅 정치평론가가 되게 하는 요소다. 대권주자고 정당들이고 정부 고 할것 없이 서민들의 살림살이야 곤두박질 치든말든 오직 대권을 어느쪽이 쥐게 될 것이냐는데 만 정신이 팔려있다시피한 마당에 서민대중이 추석 성묘길에 만나 '정치하고 부도 얘기밖에 뭐 할 얘기가 더 있느냐'는 자조섞인 푸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지금 한국에 대권 얘기 빼놓으면 무슨 공통된 얘기가 있고 공감된 기원과 열망이 있는가. 대권과 대권을 위한 정략, 그리고 대권을 위한 끊임없는 변신과 이합집산의 배신밖에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미 경제나 서민 귀성 근로자의 선물보따리 무게 따위는 챙겨줄 사람도 걱정해줄 조직도 없다시 피 돼있다. 불만과 회한이 있으면 성묘가서 개별적으로 조상무덤 앞에서 한풀고 울든지 꿈다짐하 고 오라는 분위기다. 정치꾼은 시장·지사자리 내던지고 출마하는 것이 야심가요 애국자라 우길 지 모르지만 신의 있고 성실한 농사꾼은 보리 심었다가 밀값 좀 좋아졌다고 한창 익어가던 보리 밭을 갈아엎어 버리진 않는다. 신의와 순리를 버리고 야망을 이루는 것은 꿈의 성취가 아니다. 어 제까지 죽일놈이라고 욕하다가 표계산해본 뒤에는 66억씩 해먹은 권력자의 아들을 사면해야 한다 며 표를 구걸 하는것도 말로는 정치라지만 그것 역시 술수이지 정의나 화합의 실현이 아니다. 어 떤 부모라도 제자식이 힘없고 가난한 인생을 살든 돈많고 권력을 쥔 출세한 인생을 살든 옳고 바 른길을 걸으면서 인생의 열매를 얻기를 바라는 법이다.

구걸해서 얻은 명예나, 신의를 내던지고 빼앗아 성취한 부와 권력을 가문의 명예로 여기거나 자 식의 광영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대권을 쥔다는 것이 가문의 영예임은 틀림없지만 어려운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권력만 쥐기 위해 편리한 대로 말을 바꾸고 국민이 비웃을 공약이나 내걸며 표 구걸해서 쥔 대권은 오히려 가문의 불명예다. 순리를 벗어난 욕심으로 조상의 음덕을 바라고서는 아무리 성묘 기원을 해도 이뤄질수 없다는 그 자체가 순리라는 말이다. 올추석 대권주자와 주변 정치꾼들이 그것 하나만 깨닫고 성묘를 해도 괜찮은 명절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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