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난에 빠진 회원국을 돕자는 협상이 자국 금융자본 이익을 챙기기 위한 미국의 협상으로 변질됐다"
재협상 끝에 3일 새벽 타결된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 협상 타결 내용에 대한 전문가들의평가다. 이는 이번 협상이 당초의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으로 결말지어졌음을 말해준다.정부는 이번 협상에 앞서 우리정부의 재정이 건전하고 물가도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IMF가 동구나 동남아 국가들에게 요구한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됐다. 협상 초기단계 때만 해도 이같은 정부의 예상은 맞아들어가는 듯했다. 성장률을 2.5%%수준으로 낮추고 부실은행 2~3개를 연내 폐쇄하라는 요구 이외에는 대부분 정부가 예상했던 것들이었다.이 때문에 정부는 1일 협상이 대부분 마무리됐다고 서둘러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이날을 전후해 미국이 협상에 깊숙이 개입, 이런 저런 까다로운 요구를 해오면서 반전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데이비드 립튼 국제담당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재무부관리들을 파견해협상장소인 서울 힐튼호텔에 상주시키면서 IMF를 배후조종했으며 IMF협의단은 말레이시아에서열린 '아세안+6' 회담에 참석하고 있던 티모시 가이스너 미국 재무부차관보의 지시를 받기도 했다.
이같은 미국의 새로운 요구조건이 협상내용에 추가되면서 정부는 협상타결을 발표해했다가 두번이나 번복하는 망신을 당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3일 새벽에 타결된 협상내용은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정부는 당초금융산업의 개방은 오는 98년말로 일정이 잡혀있는 외국 은행의 국내 현지법인 설립 시기를 내년초로 당기고 자본시장은 지난달 19일 발표한 3년 만기 보증 무보증 회사채, 전환사채(CB)의 연내개방 선에서 타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국내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을 거의 대부분 열어제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최종 협상에서 정부는 △3년 미만 단기채 및 국공채, 기업어음(CP)의 개방 △외국인의 국내 금융기관 인수·합병 허용시기의 재조정 △국내은행을 포함한 외국인의 국내기업에 대한 자유로운 인수·합병 허용 △외국인 주식투자의 조기 완전자유화 등을 받아들였다.
미국이 IMF를 통해 관철시킨 이같은 요구조건은 그동안 한국과의 금융협상에서 꾸준히 요구해왔던 것으로, 이번 IMF자금지원 협상이 사실상 미국의 이익을 위한 협상으로 변질됐음을 여실히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내외 금리차가 10%% 이상이나 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국공채 시장을 열었다는 것과 주인이 없는 취약한 경영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중은행에 대한 외국인의 자유로운 M&A와 증권, 보험 등 금융업종별 개방시기를 재조정해 조기 개방을 허용한 것은 우리의금융시장이 이제 외국, 특히 미국 금융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됐음을 뜻한다.미국의 산업 가운데 가장 경쟁력있는 분야가 바로 금융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금융산업이미국의 지배하에 놓일 날도 머지 않았다는 탄식이 금융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결코 과장이아니다. 이같은 점에서 IMF가 거대 다국적 금융자본의 이익 대변기구라는 제3세계국가들의 지적은 재삼 음미할만 하다.
어쨌든 이번 협상 결과 첨단기업으로 무장한 외국의 거대 금융자본과 국제적 환투기 세력들이 준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짐으로써 앞으로 한국의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은 큰 시련을 맞게 됐다. 외환위기 해소를 위한 IMF의 도움이 오히려 한국의 금융시장 전체를 교란시키는 원인(遠因)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으로까지 오게 만든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연초 한보를 시작으로한 대기업의 연쇄도산으로 은행의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우리도 멕시코식 외환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민간연구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의경제기초여건(펀더멘틀)이 튼튼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협상전략에 있어서도 정부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IMF가 이같은 까다로운 요구를 할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을 뿐 더러 미국이 그동안 관심을 보여왔던 부분의 개방을 관철시키기 위해협상에 개입할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의 요구를 반박할 수 있는 논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우리의 형편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는백기항복이다.
〈鄭敬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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