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을의 안녕 빌어준 1천년 지킴이, 장승

부릅 뜬 눈이 내려본다. 왕방울만한 툭 튀어나온 눈에 주먹코, 거기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 험악한 생김새다. 우리 생활 어디에도 볼수 없는 얼굴이다.

동행한 사진작가 백종하씨(35)는 "귀엽지 않나요?"라고 한다. 글쎄. 무섭기만 한데.지난 9일 오전 10시. 지리산 휴게소를 넘자 고속도로는 눈길이 되고 장승을 찾아가는 국도길은 빙판이 돼 있었다. 엉금엉금 찾아간 남원시 운봉면 서천리. 사람 키보다 두뼘 정도 클까. 석장승이나란히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벙거지처럼 생긴 모자를 쓴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과 여장군의머리가 눈이 쌓여 백발이다.

한때 마을의 길목이었을 곳이 이젠 인위적인 도로에 의해 한쪽으로 밀쳐져 있다. 화강암은 오랜세월에 부서지고 깎였고 가슴에 새긴 명문은 간신히 읽을 정도다. 주먹코는 주독이 오른 술꾼의코처럼 거칠게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맡아온 지킴이다.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경계와 이정표의 구실에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이다.

'파산한' 야반도주꾼, 시집에서 쫓겨난 새댁, 과거보러 떠나던 서생, 옹기종기 모인 악동들…. 마을을 떠나는 이나, 들어오는 이가 꼭 거쳐야 할 길목에, 언제나 그렇게 사람들을 지켜보던 생활속의상징물이다.

장승은 동제(洞祭)의 주신(主神) 또는 하위신으로 솟대, 신목, 서낭당,선돌등과 함께 동제 복합문화를 이룬다. 종류도 목장승과 석장승, 이들이 복합된 복합장승으로 분류된다.

장승 하나만 서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한쌍을 세운다. 드물게 다섯 방위 또는 경계표시마다12곳을 세우기도 했다. 생김새도 인면형, 귀면괴수형, 미륵형, 남근형, 문무관형등 다양하다.일반적으로 남장승은 머리에 관을 쓰고 눈을 부릅뜨고 덧니와 수염을 달고 있는 형상이며 반면에여장승은 관이 없고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고 몸체를 청색으로 채색하기도 한다.지리산 일대는 석장승이 유난히 많다. 남원서 함양쪽 북천리의 '서방축귀장군(西方逐鬼將軍)', 실상사 입구의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아양면 유곡리 새마을 창고 앞을 지키고 있는 '대장군(大將軍)'등. 남원시 인근에만해도 14곳에 석장승이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이 장승을 모두 벅수라고 부른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 석장승은 어디서 본듯한 모습이다. 바로 제주도의가 돌하루방의 모습이다. 얼굴뿐 아니라 벙거지를 쓴 모습이 흡사하다.

민속학자 주강현씨는 "제주도의 돌 하루방은 전남지역의 벅수가 옮겨 간 것"이라고 했다.표정으론 경상도 석장승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상주 남장사 입구 좌측에 있는 석장승 1기. 기교없이 투박하게 새긴 것이 전라도의 아기자기한 모습과는 판이하다. 눈이 치켜 올라간 것이 왕방울눈에서 보이는 해학성과는 사뭇 다르다. 장승의 얼굴이 그 지역민들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통설에따른다면 경상도는 위엄있고 전라도는 해학적이다.

전국에 6백여기의 장승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경북에는 14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석장승이 대부분이다.

목장승은 점촌서 문경쪽 약 5km 지점 장승백마을과 김천시 연명동의 장승만이 남아 있다. 그나마연명동의 목장승은 곧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목장승은 비바람에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부식된다. 연명동의 것은 만들어진지 10년을 넘기고 있다. 그나마 하나는 4H 팻말에 비스듬이 넘어갔고하나는 건축폐기물에 목만 내놓고 있다. 동네 사람들도 "이젠 더이상 안만든다"고 했다.안동대 임재해교수는 "우리 전통문화들이 사라진 것이 새마을 운동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그렇게 볼때 경북지역은 어느 곳보다 새마을 운동이 열심이었던 듯 하다.

더이상 신앙의 의미가 사라진 장승은 하나의 흉물스런 '물건'에 불과했다. 과학적 사고, 산업화 사회의 현대적 사고는 '흉물'을 또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정원을 가꾸기 위해 파가고, 무지에 의해 방치되고, 풍파에 훼손되고. 범접하지 못할 신기(神氣)는 도끼에 난도질 당해아궁이에 쳐넣어졌다.

예천시 용문사 입구에는 우람한 사찰목장승 7기가 보기좋게 있었다고 한다. 둘, 둘, 셋. 세번에 걸쳐 7기가 통째 도둑맞고 말았다.

1천년을 이어져 온 지킴이는 이렇게 인간들에게 배신당했다.

그러고 보니 사진작가의 말대로 자꾸볼수록 귀엽고 친밀감이 든다. 이빨을 드러낸 채 굵은 눈방울을 둘레둘레 굴릴듯 머리를 맛대고 있는 점촌 장승백마을의 목장승.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지켜온 것이 꼭 우리집 오촌 당숙같다.〈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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