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연합과 이인제(李仁濟)변수가 당락을 갈랐다.
15대 대선은 이처럼 야권 후보단일화와 여권 분열이라는 이상구도속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DJP연합'을 통한 야권 후보단일화가 국민회의의 결정적인 승인(勝因)이라면 이인제(李仁濟)후보가 경선결과에 불복,여권이 분열된 것은 한나라당의 최대 패인이자 국민회의에게는 야권 후보단일화의 효과를 상승시켰다. 김대통령당선자는 자민련 김명예총재와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지역대결 구도속에서도 충청권으로 기반을 넓혀 지역색을 희석시키는 데 성공했고또 보수세력의 우려와 '색깔론'공세를 차단하는 방패막이의 효과도 얻었다.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후보지원단장은 김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우리는 자민련과 단일화를 이루어 내면 반드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공동집권론을 실행에 옮겼으며 이는결국 승리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결국 김당선자는 호남권의 몰표와 자민련 김명예총재의 혼신의 유세에 힘입은 충청권의 압승을 바탕으로 박빙의 승리를 낚은 것이다.
대규모 장외유세의 금지와 TV토론회를 통한 선거운동 등 본격적인 미디어시대 개막도 여권의 프리미엄을 박탈했다. 미디어선거는 거대 여당조직을 통한 기존의 여당식 선거운동과 금권선거를 무력화시켰다. 한나라당은 미디어선거운동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반면 국민회의는 준비된 대통령 등의 캐치프레이즈 개발과 TV광고 및 방송연설, TV토론회 준비 등 미디어선거 전략에서 한나라당을 한 발 앞섰다.
또 선거운동막판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지원을 받을 정도로 악화된 경제파탄에 대한 책임론도 유권자들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최대 패인은 여권의 분열이었으며 이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은 이인제후보의 경선 불복과 대선출마의 명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선거운동 내내 이후보를 괴롭힌 최대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이후보는 병역문제로 지지율이 급락, 11월까지 후보 교체론에 시달리며 당내분에 대부분의 힘을 소진했다. 선거운동 막판까지 차남을 귀국시켜 키재기를 시도하는 등 병역의혹은 대선 막판까지 이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또 이는 이인제후보의 탈당을 촉발, 여권후보의 분열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초래하게 했다. 결국 이로 인해 한나라당은 부산경남(PK)지역에서 이인제후보의 선전을 저지하지 못하는 등영남표 결집에 실패,이후보의 득표율을 15%%미만으로 묶는 전략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주요패인으로 꼽힌다. 물론 이후보는 조순(趙淳)총재와의 결합을 통해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으나 경제 파탄의 책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신당 이인제후보의 최대 패인은 대선중반에 터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신당지원설이었다.이후보는 한때 국민회의 김당선자를 압박할 정도의 지지율을 보였으나 신당 지원설로 지지율이급락, 2위자리를 이회창후보에게 내주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또 경선 불복은 원죄로 이후보를괴롭혔고 열악한 자금력과 조직력은 이인제후보가 TV토론회 등에서 얻은 인기를 표로 연결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는 선거막판 이회창후보측의 사표방지 심리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대통령후보로서의 경륜과 정책·비전 등을 심어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徐明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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