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MF시대 세밑풍속도

IMF 한파가 세밑 풍경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여느해 같으면 끼리끼리 콘도로, 스키장으로 떠나 연휴를 한껏 즐겼을 때. 하지만 올해는 흩어져 살던 온 가족이 모여가족회의를 통해 경제난국속의 살림살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많아졌다.

내년에 더욱 심각해질 경제위기를 걱정하며 "어떻게 이 한해를 견딜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려는 것. 특히 실업대란을 앞둔 직장인들은 친·인척 끼리라도 어려움을나눠야 살수 있다며 분주하게 상부상조 약속을 하는 분위기다.

대구 달성군청에 근무하는 서모계장(43)의 세밑도 전에 없이 춥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치솟는 환율과 주가폭락, 부도, 실직 따위가 그저 남의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화장품 회사에 다니던 손아래 동서(45)가 실직했다. 재산이라곤 24평 아파트 한채뿐. 생각끝에 서씨는 동서의 두자녀 학비를 보태는 등 고통을 분담하기로 했다. 섬유회사에 근무하는 큰 동서(51)도 "회사에서 언제 나가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고 있어 부담이 크다. 서씨는 이번 세밑에 동서들과 모여 내년 살림살이를 함께 걱정해볼 계획이다.

고교 교사인 박모씨(37·대구시 수성구 범물동)도 최근 밤잠을 설친다. 형(46)이 토목업을 하다 부도를 내 집까지 잃었고 처남(40)은 주식투자로 2억여원을 날리며 졸지에 파산지경에 이른 것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박씨는 장남 역할을 맡으며장인 장모 용돈을 동서들끼리 갹출하기로 했다.

이처럼 이번 세밑에 부도와 실직을 겪게 된 가족, 친지와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게다가 내년 실업태풍에 실업자가 1백만명을 넘을 것이란소식에 걱정하며 같이 준비하는 모습도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대구 지하철공사 양모계장(40)은 경주에서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니는 동생(33)이 해고될 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끄떡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번 기회에 흥청망청 살아온 지난날을 진지하게 반성해야지요. 고통을 함께 나누면 위기도 극복될겁니다. 그는 동생에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오히려 격려했다.

〈崔在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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