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IMF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금융위기, 국가부도, 대량실업등 듣기에도 참담한 그림자를 드리우고는 있지만 정착 그 실체가 아직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을 보면 유령을 정말 유령인가 보다. 고금리, 고물가, 고실업의 삼두마차를 타고 나타난 IMF가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던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으니 유령이 아니고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민주화를 실현하리라고 믿은 도덕적 정치인이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무능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 그렇고, 선진국인양 위풍당당하게 무서운줄 모르고 써대던 손을 돈구걸하는 손으로 바꿔놓은 것이그렇고 한국적 모델의 문화적 힘이라고 자랑하였던 '유교 자본주의'가 사형선고를 받는 형국이 그렇다. 정치, 경제, 문화를 막론하고 모든 것을 정반대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IMF는 분명 유령임에틀림없을 것이다.
유령은 우리가 정신을 못차릴 때에만 나타나는 법이다.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인식하고 위기에 대처한다면, 유령이란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령은 IMF가 아니고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본래 모습을 직시하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의 확립만이 바로 IMF의 유령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의 조언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 그는 "한국이 총체적인 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금융시스템의 본질적 취약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바깥 세계가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약한 인식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하면서 "강력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이미지가 없거나 아주 미미하며 그나마 싸구려의 이미지를갖고 있다"고 직언한다. 그는 물론 세계를 향해 한국적 문화의 강력한 이미지를 진작시키는 것만이 위기극복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있는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가 없기 때문에 위기가 올 때 쉽게 흔들린다는 것이다.그런데 때아닌 '양력설 쇠기'논쟁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대중대통령 당선자가 "세계와 같이 호흡해야하는 터에 다른 나라가 일하는 음력에 노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언급하면서 재검토를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논쟁을 지켜보면, 우리는 위기의 원인을 정확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여전히 벌거벗은 우리의 모습을 가리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이논쟁이 그동안 음력설을 쇠었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가 도래하였다는 터무니없는 생각과, 마치 양력설을 쇠기만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조삼모사식 처방만을 양산할 뿐이기때문이다.
대통령당선자의 말 한마디로 양력설과 음력설의 공휴일 지정문제가 재론되는 것이 탐탁치는 않지만, 지나치게 많은 공휴일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우리가 양력설을 쇤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세계와 같이 호흡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IMF와 함께 우리에게 친숙해진 세계적 금융중심지 뉴욕의 월가 뒤켠에는 차이나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음력설에 가게를 닫고 갖가지 중국의 전통문화를 선보인다. 이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차이나타운으로 몰려드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인들은 음력설을 '중국설'로 부를 뿐만 아니라 이 때를 중국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로 이용하기도 한다. 어떤 교민이 문화적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음력설도 없고 양력설도 없다고 푸념하던 것이 생각난다.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인과 호흡하려면 우선 우리 자신을 문화적으로 세계에 내세울 수 있어야 하지않을까? 다가오는 음력설에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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