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고도 경주는 항상 넉넉한 대지의 품으로 다가온다. 저녁해가 뉘였거리며 서산에 걸릴 무렵분황사를 찾아들었다. 절기로는 양력으로 2월쯤 되는 듯한데 분황사 뜰에 들어서니 3층 모전석탑이 고즈넉하게 황금노을을 휘감고 있었고, 경내에는 매화 향기가 그윽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주지스님의 방사로 가서 문안인사를 드렸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화답하면서 주지스님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찻잔과 찻물을 준비했다. 작설의 고운 빛깔이 찻잔을 맑게 채우는가 했더니 어느새 하얗게 마른 꽃잎이 찻잔에 띄워졌다. 두손으로 찻잔을 바쳐서 입가로 가져가니 닿기도 전에 먼저 코끝에서 작설의 향기와 어우러진 매화향기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마른 매화꽃잎을 띄운 작설차는 처음 인연한지라 신비로움 그 자체로 느껴졌고, 그 차맛이란 지상의 언설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불가에서는 차를 준비하고, 달이고, 맛보는 모든 것이 수행의 한 과정이요, 불교정신문화의 독특한색깔표현이다. 언젠가 미국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무렵 무릎을 꿇린채 무려 두 시간이나 일본 다도의 초청에 응해야 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일본 그들만의 다도예법을 통해 일본정신의 한 색깔을 절도있게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불가에서는 차와 관련한 흥미로운 수행 일화들이 참으로 많다.
한 선사가 두 객승에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있습니다" 선사가 말하길 "차나 한잔 들고 가게" 또다른 객승에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차나한잔 들고 가게" 옆에서 시중드는 스님이 묻는다. "어찌하여 일찍이 왔던 이도 차를 들고 가라하고 온 적이 없던 이도 차를 들고 가라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하길 "차나 한잔 드시게" 산사의 밤은 깊어가고 홀로 앉아 차를 달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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