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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시론-위험 감수의 문화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하던 경제발전의 모범국가였다.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 이제부터 한국은 겉으로는 멀쩡해보였던 나라가 어떻게 삽시간에 국가부도까지를걱정해야 할 상태로 떨어질 수도 있는가를 보여주는 경제파탄의 한 모델로서 세계의 연구대상이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지금의 경제 난국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사태를 일으킨 원인들을 철저히 규명해야 되겠지만 왠지 자꾸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은 설령 그 원인이 밝혀지더라도 경제를 되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한때 '한강의 기적'에 대한 외부의 칭찬으로 우리가 한참 우쭐해 있었을때 미국의 정치학자인 루시안 파이 교수는 한국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주 요인은 한국인들의 '위험을 겁내지 않는문화'에 있다고 색다른 해석을 하였다. 즉, 전투에서 적진을 마구 유린하고 돌아오는 전쟁영웅들은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다 보면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신념 같은 것이 생겨서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낼 용감한 행동을 하게 되는데, 한국인들에게도 한국의 최근세사가 보여 주듯이 숱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은연중에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기질을 갖게 되었으며 과감하게 일부터 저지름으로써 경제발전의 기회를 포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파이 교수의 '위험 감수의 문화'이론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로서는 좀더 신중하게 검토했어야 했을 여러가지 암시가 담긴주장이었다. 우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어쩔수 없을 때나 하는 것이지 아무때나 하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계속하면 결국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험을 안고 무엇을 한다는 것은좋게 말하면 모험이며 나쁘게 말하면 투기이다. 물론 투기로 요행이 한 밑천을 잡을 수는 있다.그러나 계속하면 언젠가는 가산을 다 탕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어리석은 투기꾼은 계속 투기를하는데 반하여 현명한 투기꾼은 적당한 선에서 투기를 그만둘 줄 아는 투기꾼이다. 그런데 투기를그만둘 수 있는 정도이면 이미 그는 본질적으로 투기꾼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정도(正道)로 사는것이 옳은 것이요 현명한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위험 감수의 문화'로서 파이교수에게 비쳐졌다면 그 원인을 곰곰이 따져서 이를 청산하도록 노력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사회에는 오히려 도처에 투기의 요소가 너무나 팽배해왔다. 어디서나 벌이는고스톱판에서부터 부동산투기를 비롯한 각종의 한탕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정치를 최단기간에 축재할 수 있는,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정치판과이들에게 뒷돈을 대주고 국내외에서 마구잡이로 빚을 낼 수 있도록 보장받아 재벌로 군림하려는사람들로 득실거리는 재계는 우리사회를 거대한 투기판으로 만든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냉혹하리만큼 엄정한 경제세계에는 기적이란 없다. 따라서 '한강의 기적'이란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피와 땀으로 얻어진 것이지 결코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건실하게 사는 풍조가다시 싹트기 전에는 경제회생이란 어렵다. 뿐만 아니라 노력한 만큼 거둘수만 있다면 빚내 번지르르한 허세의 사회보다 사람들은 더욱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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