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만수 나의 야구인생(11)

스포츠계에는 유달리 '징크스'가 많다.

시합을 앞두고 '면도를 하면 안된다. 미역이나 계란을 먹지 마라'등에서부터 부적을 착용하는 것도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니다.

이런 징크스때문에 고교시절 나는 혼쭐이 난 적이 있다.

고3에 올라가 나는 주장을 맡게 됐는데 그해 봄 서울 어느 대회에 출전해 숙소에 짐을 푸는 첫날감독님의 친구되는 동문 선배 한 분이 여관으로 나를 찾아왔다.

이 선배는 조용히 나를 근처의 다방으로 부르더니 다짜고짜 "밤 12시가 넘어서 여관 옥상에 올라가 여자 팬티를 하나 훔쳐입고 시합을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나에게 그 선배는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학교의 전통이니 잔말 말고 해야한다"며 다음날 반드시 검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선배와 헤어진후 난감했지만 확인을 하겠다는 말에 할 수 없이 자정이 넘은뒤 옥상으로 올라가아무 팬티나 후딱 집어들고 방으로 왔다.

그런데 막상 팬티를 입으려고 보니 작아서 도무지 허벅지 이상으로 올라가지가 않았다.다음날 선배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멍청하게 아가씨 것을 들고와 그렇다"며 헐렁한 아줌마 팬티를 훔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날 밤 다시 옥상에 올라가 찬찬히 빨래줄을 살펴 그중 제일 큰 것을 고른다음 입어보니 이번에는 맞았다.

1회전을 치르는 날 흐뭇한 미소를 띤 그 선배의 얼굴을 뒤로 하고 경기를 했는데 경기내내 오금이 저려 죽을 노릇이었지만 어쨌든 시합은 이겼다.

끈질긴 선배는 대회내내 감시의 끈을 놓지않았는데 준결승에 올라간 우리는 콜드게임패를 당하고말았다. 아니나다를까 그 선배는 경기가 끝난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채 내게 와 "너 안입었지"라며 나를 다그쳤는데 내가 "보이소"하며 유니폼을 내리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그 선배는 다음 대회때도 계속 찾아왔지만 나는 시합 끝난뒤 선배의 얼굴이 보이면 즉시 줄행랑을 놓으며 결국 '아줌마 팬티'를 입지않고 우승을 했다. 〈정리·許政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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