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시장을 뚫자

우리 기업의 러시아 수출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에 안주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러시아 시장을 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걱정하는 러시아통들이 많다.이것은 러시아의 경제상황과 투자여건이 급속히 변하고 있는데도 한국기업들은 러시아를 수출시장으로만 여길뿐 현지투자에는 무관심하다는 반성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현지투자가 필요한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도 수출이 갈수록 힘들어지고있다는 점이다. 경제개혁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러시아는 국내 산업기반이 거의 붕괴돼 부족한 생필품을 거의 수입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정부는 뒤늦게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무역장벽을 높이는 정책을 쓰고 있다. 높은 관세뿐만 아니라 통관이나 검역 강화 등 눈에 보이지않는 장벽도 만만치않다.

올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모든 수입 제품의 러시아어 상표부착 의무화 조치가 그 한 예이다.이처럼 나날이 까다로워지는 러시아 시장을 뚫기 위해서라도 현지에 공장을 세우거나 인수하든지하다못해 합작 등의 방식으로라도 현지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무역장벽은 '직접투자해서 러시아 경제에 도움을 주지 않고 물건 팔아서 돈만 챙기는못된 외국기업'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이런 범주에 드는 것은 물론이다. 러시아 통계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러시아 직접투자는 4천2백만 달러에 그쳐 2백2억 달러에 이르는 러시아 전체의 해외투자유치실적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러시아와 무역에서 96년 1억5천만달러, 97년 상반기 7억5천만 달러의 흑자를 올렸다.

외국기업이 현지에 법인이나 공장을 세우면 최소한 일자리라도 만들어주기 때문에 현지의 시선이훨씬 부드러워지고 장기적으로 볼 때 '러시아 사회에 대해 일정한 기여를 한다'는 점을 앞세워 더욱 유리한 투자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우리 기업은 러시아에 직접투자를 망설이는가.

"결국은 현지화로 가야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러 가지 걸림돌이 많아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대기업 지사장의 말이다.

한국 기업들이 선뜻 러시아 투자를 하지못하는 이유는 많지만 대체로 △투자관련 법규 및 제도미비와 관료주의 △과도한 조세 △마피아의 간섭 △적당한 인수기업이나 합작 파트너를 구하기힘들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인허가 과정이 복잡하고 법인세나 사업소득세등이 지나치게 많으며 치안 부재 때문에 사무실 하나만 열어도 마피아부터 달려든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될 때까지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지금이 투자적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 투자 전문변호사인 최의섭씨(36)는"최근 러시아 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모든 투자 환경이 갖추어진 후 투자하겠다고 생각했을때는 이미 늦다"고 러시아 투자의 특수성을 설명한다.리스크가 큰만큼 이익도 큰 것이 러시아 시장의 특징이기 때문에 모험정신을 발휘할 때라는 것이다. 지금이 러시아 투자적기라는 것은 조심스럽기로 유명해 그동안 투자를 주저하던 일본 기업들이 최근들어 바짝 열을 올리고 있는데서도 알 수 있다.

일본의 러시아투자는 이미 한국의 5배가 넘는 2억2천만달러에 이른다. 시베리아 유전 및 가스전개발, 시베리아 횡단철도 현대화 등 지난해 11월의 일러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96년 말까지 외국인의 대러 투자 누계가 1백32억달러인데 비해 지난해 상반기 6개월 동안의 투자액만 66억달러에 이르는 것만 보아도 97년을 계기로 러시아 투자의 봇물이 터졌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경제개혁이 6년째에 접어들면서 다시 사회주의 경제로 회귀할 위험은 사라졌다는 믿음과 함께 최근들어 러시아 경제가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 투자법 및 제도 정비△조세법 개정 △국영기업 민영화에 대한 외국인투자 범위 확대 등 외자유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보이고 있는 점 등이 외국기업의 투자를 재촉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같이 한국기업의 현지투자가 소극적인 가운데서도 일부 기업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러시아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대우 자동차는 러시아 남부 로스톱나도누에 현지조립공장을 세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러시아에 '넥시아 선풍'을 일으켰다. 중소기업 중에는 문구류와 앨범을 현지 생산하는 '톱 러시아'(대표 유시응)가 러시아 전체 앨범 시장의60%%를 점유하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수년간의 노력과 투자가 허사로 돌아간 모스크바 한러무역센터(KRTC)건설 계획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충분한 투자여건 조사 및 치밀한 투자계획이 뒷받침되지 않는 허술하고 무모한투자의 결과는 항상 참담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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