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린 중국 닫힌 중국-이혼

사회가 다양화되고 경제가 발전하면 이혼율도 높아진다. 개혁개방이후 경제력향상과 함께 자본주의적 자유로움을 조금씩 맛보게된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혼이 날로 늘고 있는 것이다.중국인들은 예부터 부부의 인연을 '하늘의 명령에 따르는것'으로 여겨 부부가 헤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다. 봉건시대에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슈치(休妻)제도가 있긴했지만 이혼풍습은 없었다. 여자들은 결혼생활이 아무리 지옥같아도 무조건 참고 살아야 했고, 남자들 역시가정조차 제대로 못다스린다는 것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으므로 속으로야 곪든말든 겉으로는 가정을 깨지않았다.

그래서 혼례식 하객들은 신랑신부에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아라'라는 등의 축복의말을 해주었다. 부부사이가 좋고 자녀들도 잘 키운 가정은 '복 많은 사람'이라는 뜻의 '츄엔푸런(全福人)', '하오밍런(好命人)' 등으로 불리며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1919년 신해혁명이후 비로소 이혼이 등장했으나 매우 미미했다. 1949년 신중국이 들어선 이듬해인1950년에 봉건혼인제도의 폐습을 없앤 제1부 혼인법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자유의사에 따른 이혼이 보장됐다. 그러자 봉건적이고 강압적인 결혼생활로 고통당하고 있던 수많은 여성들이 이혼을요구하고 나섰다. 신중국 건국이래 1950~53년, 1959~62년, 1980년이후 등 모두 세차례의 이혼물결이 밀려왔다. 1966년 문화혁명기간 10년동안은 이혼율이 현저히 낮아졌는데 사회혼란으로 법원이이혼안건을 거의 접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0년에 이혼의 자유와 부부쌍방의 애정유무를 주요 이혼요건으로 규정한 제2부 혼인법이 공포되자 이혼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80년 3.5%%에서 1992년엔 7.2%%로 껑충 뛰어올랐고 이후 매년 높아지는 추세이다. 과거엔 길에서 아는 이를 만났을때 "츠러마?(밥 먹었느냐)"라고 인사했지만 요즘은 "리러마?(이혼했느냐)"로 바뀌었다 할만큼 이혼이 흔해졌다.

더군다나 이혼신청자의 70~80%%정도가 여성일정도로 여성쪽의 이혼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부부간의 애정이 완전히 깨져버린, 이른바 '사망혼인'을 여성들이 더이상 참지 않는다는 뜻이며 한편으로는 그만큼 많은 여성들이 불행한 결혼생활의 피해자임을 말해주기도 한다.이혼이 늘면서 당사자들이 큰 다툼없이 원만하게 합의이혼을 하는 '허핑리훈(和平離婚)'이 많아졌나하면 서양영화에서처럼 세련되게(?) 이혼하는 '원밍리훈(文明離婚)'도 늘고 있다. 이혼수속후 함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다거나 친구들을 초대해 이혼의 불가피한 사정을 설명하기도 하며 심지어 마지막을 기념하여 이혼여행을 떠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혼과 동시에 원수로 갈라섰던 과거와 달리 친구사이로 바뀌어질만큼 세태가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혼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불이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가문에서는 이혼당한 딸에 대해 '뿌꽝차이(不光彩: 불명예)'라느니하여 부끄럽게 여기는가하면 상당수 이혼녀들은 직장에서의 주택분배나 간부승진 등의 문제에서 차별대우를 받기도 한다.하지만 기성세대와는 달리 청년들은 이혼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선양(沈陽)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한 96년도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부부간 애정이 완전히 상실됐을때는 이혼하는 것이 옳다고 답했으며 절대 이혼은 하지말아야 한다는 쪽은 10%%에 그쳐요즘 중국청년들의 개방적인 사고를 짐작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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